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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은 꿈들이 무대 위에서 또렷한 빛으로 피어올랐다. 지난 22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열린 ‘꿈의 극단 전주’ 첫 정기공연 ‘두드림’은 26명의 어린 단원이 만들어낸 ‘성장의 기록’ 그 자체였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장면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날 공연이 남긴 감동은 연기력이나 눈물 서사가 아닌, 단원들이 1년간 쌓아온 솔직한 마음과 시간이 만들어낸 울림에서 비롯됐다. ‘꿈의 극단 전주’ 단원들은 지난 1년간 매주 연극·신체·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탐색하고 표현하는 법을 익혀왔다. 이번 작품은 우연히 발견한 ‘소원 램프’를 통해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각자의 상처와 꿈을 마주하고, 결국 서로의 마음을 두드리며 성장의 문을 여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단순한 줄거리였지만, 단원들의 표정과 동작에는 자신이 겪어낸 고민과 깨달음이 조용히 스며 있었다. 공연 초반은 귀엽고 소박했다.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장면이 깊어질수록 단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쌓아온 감정의 언어들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대사는 흔들리고 움직임이 어긋나기도 했지만, 서로의 호흡을 기다리며 장면을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무대를 진심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무대에 오른 단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성장을 들려줬다. 이예찬(완산중 3학년) 군은 “처음엔 진로 때문에 들어왔지만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인생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며 “무대에 서니 쑥스러움보다 책임감이 먼저 느껴졌다. 기회가 생기면 꼭 다시 서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 경험은 많지 않지만 “프로처럼 서겠다”는 말처럼 이날 무대에서 흔들림보다 집중이 돋보였다. 주요 노래 장면을 이끈 천세연(대정초 6학년) 양은 “처음엔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정말 힘들었지만 1년 동안 연습하며 자신감이 생겼다”며 “무대를 마치고 나니 1년간 함께한 단원들과 무대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밀려와 울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연 전에는 떨렸지만 퇴장할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하은(전주북초 6학년) 양은 극단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처음엔 ‘왜 우리는 화려한 복장 없이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지?’라고 의문이 많았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꾸며낸 쇼가 아니라 진짜 꿈을 찾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 직전 무대 뒤에서 위압감을 느끼고 긴장했지만 “막상 마치고 나니 정말 상쾌했고 앞으로도 계속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해졌다”고 전했다. “Do Dream! 두드려봐! 우리는 모두 꿈의 주인공!”이라는 마지막 외침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응축된, 단원들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선언처럼 들렸다. 관객의 박수는 이들의 서툰 연기보다 그 용기와 성장을 향해 쏟아졌다. 표현이 서툴던 아이들이 이제는 관객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이 ‘꿈의 극단 전주’가 추구하는 예술교육의 결실이다. ‘꿈의 극단 전주’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26명의 어린 단원들이 참여하는 5개년 프로젝트다. 전주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이 사업은 예술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표현력과 협업 능력을 기르고, 스스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공연은 그 첫 단계의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완의 무대였지만, 그 미완성 속에서 더 깊고 생생한 감동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이제 막 꿈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두드림의 소리가 앞으로 어떤 무대를 열어갈지 기대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전현아 기자
"촌은 유희경 선생과 매창 이향금 여사의 삶과 시(詩)는 단순한 천민문학이 아니라, 조선문학사에서 마땅히 동등한 위치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호남고전문화연구원 이사장인 김병기(70)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제1회 촌은‧매창 추념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안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촌은·매창 추념 학술대회’는 조선 중기 두 문인이 남긴 문학적 성취를 본격적으로 조망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첫 학문적 장이다. 그동안 각기 조명되던 매창과 촌은의 문학을 ‘쌍방(雙方)’의 관계적 문학으로 바라보자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매창 이향금은 부안에서 태어난 여류 시인으로, 기생이라는 신분적 제약 속에서도 당대 문인들과 교유하며 한문학에서 보기 드문 여성적 자의식과 섬세한 정한을 담아냈다. 촌은 유희경 역시 중인 출신이면서 사대부 문단에서 인정받은 사례로, 예(禮)와 시(詩)에 밝아 ‘양반이 배우러 간 천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두 사람은 조선 특유의 성리학적 신분사회 안에서 문학 활동 자체가 쉽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만 오히려 그 제약은 두 문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학계는 이들이 남긴 연정시를 두고 ‘억압된 시대가 낳은 가장 인간적인 기록’이라 평한다. 이날 기조발표에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조선과 명·청 문학사를 비교하며 두 인물의 문학사적 의미를 짚었다. 김병기 교수는 “오래도록 사회적 기억 밖에 머물렀던 두 인물에 대해 과감한 재조명이 필요한 때”라며 “단순한 신분의 희생자나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그들이 남긴 문학적 성취와 삶의 궤적을 정당한 학문적 자산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천민으로 치부됐던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은연중의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와 평가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천민 신분이라는 낙인이 문학적 가치를 가리는 장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촌은과 매창은 모두 조선의 천민으로 태어났고 당시 사회구조에서는 이들의 삶과 표현이 낮게 평가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남긴 시와 교유 관계, 삶의 기록을 통해 단순히 주변부의 인물이 아니라,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존재임을 역설했다. 주제 발표에서는 두 사람의 작품과 교유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특히 연정시 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학자들은 연정시를 조선문학에서 보기 드문 양방(兩方) 교류 문학으로 평가했다. 이재숙 충남대 교수는 매창의 한시가 지닌 미적 특질을 분석하며 “매창은 여성문학 전통을 잇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직접 끌어올린 드문 여성 창작자”라고 평가했다. 임종욱 동국대 교수는 “촌은은 중인 신분으로 양반 문단의 중심부에서 활동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며 그가 남긴 ‘촌은집’의 사료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촌은의 교유 범위와 시문 편집 과정은 조선 중기 문인 네트워크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두 문인을 기리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향후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학계에서는 ‘매창집’과 ‘촌은집’의 정본화, 번역, 부안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사업 추진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는 강릉유씨 촌은선생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이뤄진 만큼 문학사적 균형을 바로잡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한다”며 “학술대회를 비롯해 매창과 촌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작품을 알릴 수 있도록 전북도와 부안군 등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 기자
만경강의 생태와 자연을 담은 사진전이 완주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호연 사진 초대전으로 꾸며지는 ‘제5회 만경강 환경 보전 및 생태 사진전’이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완주군이 추진 중인 ‘만경강 기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천연기념물 느시와 노랑부리저어새, 뻐꾹나리, 쥐방울넝쿨 등 지역 생태를 60여 점의 사진으로 담아냈다. 전시에는 꼬리명주나비의 무늬를 클로즈업한 사진과 요정이 춤추는 듯한 노랑망태버섯 등 만경강 특유의 신비로운 풍경이 담겨 있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작가 이호연 씨는 “가을이 저물고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에 한 장의 사진이 따뜻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고 믿는다”며 “만경강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을 더 많은 분들이 사진을 통해 느끼길 바란다”고 전시 소감을 전했다. 다섯 번째 개인전을 맞은 이 작가는 2017년 완주군 생태아카데미 수료 후 ‘만경강 사랑지킴이’ 동아리를 조직, 초대회장을 맡았다. 개막 기념식은 24일 오후 1시 30분, 완주군청 1층 로비에서 진행된다. 관람은 무료이며, 완주의 자연과 만경강을 새로운 시선으로 만나고 싶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전현아 기자
강지애‧유수경 시인이 제26회 전북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전북시인협회(회장 이형구)는 제28집 종합문예지 ‘詩의 땅‘에 출품된 원고 중 최우수작품으로 강지애 시인의 ‘에버그린’과 유수경 시인의 ‘빵에 잼을 바르다가’를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협회는 올해 출품작 가운데 우수작이 많아 심사위원들의 논의 끝에 ‘찾아서 드리는 상’을 생략하고, 강지애‧유수경 시인에게 본상을 수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지애 시인은 2000년 <문예사조>에서 등단하였으며 현재 완주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수경 시인은 2001년 <시와 시각>으로 등단해 전북시인협회 남원지역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올해 2회째를 맞은 신인상 부문에는 시집 <너는 사각거리고>를 출간하고 제28집 ‘詩의 땅’에 시 ‘니은’을 출품한 김소형 시인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시인들이 결기를 세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놓은 언어들이 눈부셨다”며 “심사과정은 고됐지만 전북시단이 밝아 유쾌하고 즐거웠다”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3일 오후 4시 30분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다. 박은 기자
전북여성가족재단(전정희 원장)은 지난 21일 2025년 여성사발간위원회 최종회의를 개최하고 여성정책연구소 기본과제 ‘전북특별자치도 여성사 발간 중장기계획(2026-2030) 수립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전북자치도 여성사발간위원회는 지난 8월 지역 여성사 관련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지역학, 여성학, 역사학자 및 현장 전문가 등 총 12명으로 구성됐다. 이번 연구(책임연구 백미록 연구위원)는 전북여성사 발간 중요도와 시급성을 세 차례에 걸쳐 조사해 연구 타당도와 합의도를 높이는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전북여성사위원회와 구분된 별도 전문가 패널 25명을 대상으로 전북여성사 주제와 추진방향, 사업과제 등을 조사해 분석했다. 연구결과 2026년부터 발간할 최우선 영역은 ‘여성농민’이 선정됐다. 한국사 관련 주제로‘동학농민혁명과 여성’이 제시됐다. 역사서술 방식은 주제사를 중심으로 구술사, 생애사, 통사혼합이 전문가들의 높은 합의를 얻었다. 연구시기는 1945년 이후 현대로 합의됐다. 향후 여성농민 주제 이후에는 여성노동, 여성운동, 여성문화 순서로 전북여성사 발간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전북자치도 여성사 발간 기본계획은 도 최초로 수립됐으며 2026년 이후 여성정책연구소 토대연구사업으로 예산이 반영됐다. 전북여성가족재단은 전북 여성의 서사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기획연구를 진행하며, 전북여성기록을 아카이빙하는 등 확산사업을 동시에 추진한다. 또한 여성사발간위원회의 안정적 운영, 여성사 전문 연구기관 협업체계 구축 등 추진체계를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박은 기자
“분명 혼자 갔는데⋯.” 지난 8월 말 강릉하이원아레나에서 축구 최강팀을 가르는 코리아컵 결승행 티켓을 두고 전북현대모터스·강원FC가 맞붙었다. 전북은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4강 1·2차전 합계 스코어 3대2로 결승에 올랐다. 원정석은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 전북 팬이 모였다. 원정 버스를 운행하지만, 개인이 이동하는 경우 전주~강릉까지 대중교통으로 편도 5시간, 자동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린다. 기자 역시 전북 머플러를 챙겨 원정석에 앉았다. 경기 전부터 서포터즈를 이끄는 콜리더의 신호에 맞춰 응원이 시작됐다. 누군가는 가족과, 누군가는 친구·연인과, 누군가는 혼자서 왔을 테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혼자’라는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북이 골망을 흔들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끌어안고 환호했다. 사실 전북의 원정 응원 규모는 K리그에서도 손꼽힌다. 지난해 9월에는 성적이 부진한 상황에도 대전 원정을 위해 원정버스 14대가 동원된 바 있다. 이날 전북 팬 약 5000여 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도 많은 팬이 원정 경기를 찾으면서 거스 포옛 감독 역시 “전주 시민들, 특히 전북을 응원해 주는 팬들께 감사하다. 홈뿐만 아니라 먼 원정까지 항상 와 줘 많은 응원을 보내 주셨다”고 말했다. 이같은 연대는 홈 경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주성에서는 매 경기 1~2만 명의 팬이 모이면서 훨씬 큰 초록 물결이 만들어진다. 응원석에 앉은 팬들을 중심으로 전주성 전체에 응원가가 퍼진다. 다 같이 전북의 색깔인 초록색 옷과 머플러로 하나가 된다. 경기장 밖에서도 연대는 이어진다. 다양한 소모임이 활동하며 자체 응원 물품을 만들고, 경기가 끝나면 뒷풀이를 가지며 관계를 유지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올 정도로 선수 소식, 전북·타 구단 정보, 해외 축구 이야기까지 활발히 오간다. 공통점은 하나다. ‘전북’이라는 하나의 팀을 통해 관계가 확장되고 이어진다는 점이다. 먼 원정길도 함께 움직이고, 잘 모르는 사이도 한목소리로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다. 먼 강원 원정길에서 기자가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분명 혼자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늦게 왔으니 일찍 가는 걸까요? 추석 전부터 영랑 시인의 장광에 날아 오던 골붉은 잎, 벌써 거진 돌아갔습니다. 감잎은 늦게 오지요. 다른 과실나무 꽃 피워 열매 앉힌 뒤 오월에나 나오지요. 잎 돌아가는 가지에 밝힌 꽃등 더욱 밝습니다. 감나무는 기원전 3, 4000년 전부터 가꾸었다던가요? 뒤란에, 텃밭 가에 흔히 볼 수 있는 배고프던 시절 요기가 되던 나무지요. 늦 피는 꽃이 꼭 복주머니 같습니다. 주머니 가득 복을 채워 줄 것만 같지요. 지금 나이 지긋한 이들은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줍던 시금털털한 꽃 맛을 추억할 겁니다. 감, 우리네 인생처럼 젊으나 젊었을 땐 떫기만 하지요. 홍시도 곶감도 찬바람에 된서리까지 견뎌야 단물이 배지요. 배, 매실, 참외처럼 가까운 과실입니다. 스스로 방석을 깔고 스스로 접시를 받친, 한때는 큰 대접 받았지요. 풍년입니다. 감밭 가득, 감나무 밑동마다 수북수북 환합니다. 가을 캔버스가 너무 작은 걸까요? 저 프레임 밖에는 분명 끙끙 감 바구니를 든 밝은 주인이 있을 겁니다. 시인 김남주가 “조선의 마음”이라 했던 고수레 까치밥이 꼭대기에 붉을 겁니다.
이은 류영근(70)은 서예 문인화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서예가다. 전통 수묵 기법 위에 실험적 재료와 구성이 더해져 먹이 담아내는 사유의 농담을 각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해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서구 문화회관에서 25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초대개인전 ‘서예문인화 이은 류영근’에서 선보이는 70여점의 작품들도 먹빛의 번짐과 여백의 사유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 류영근의 작품 ‘청풍’은 화면을 가득 채운 사선의 대나무 줄기는 먹의 농담으로 공간의 입체성을 그려내고, 대나무 잎들은 휘몰아치는 바람의 감각을 붓끝에 실어낸다. 먹의 번짐은 감정의 흐름을 상징하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줄기는 세상의 시련에도 꼿꼿하겠다는 태도를 암시하는 듯하다. 단정한 먹의 선으로 완성한 작품은 마치 스스로를 지탱하는 정신처럼 꺾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작품 ‘희망’은 진달래와 참새를 화면에 등장시켜 수묵채색화로 먹선의 절제와 붉은 채색의 과감함이 조화를 이룬다. 수묵 특유의 스며듦과 퍼짐을 독창적 화법으로 구현하여 희망찬 봄날을 떠올리게 한다. 류영근 작가는 한글과 한문서예, 문인화를 아우르는 서예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자 서예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전국서예문인화공모대전과 휘호대전에서 운영위원장과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이은 서예관 관장으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은 기자
호남오페라단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인구 100만도 안되는 중소도시의 척박한 환경을 생각하면 가히 한국오페라계의 신화적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호남오페라단이 자축의 의미로 빼어든 카드가 베르디의 <운명의 힘>이다. 그리고 <리골레토>, <오텔로>에 이어 베르디 오페라 3개년 기획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기도 하다.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운명의 힘>은 이후 작가를 바꾸고 이야기 마무리도 수정을 가한다. 베르디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일까? ‘알바로’의 자살이 논란거리가 된 것을 의식하여 수정을 가했다. <운명의 힘>은 이렇게 사랑과 복수, 구원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장대한 음악 속에 담아낸 걸작으로 탄생하며, 인간의 고뇌와 신의 섭리를 함께 응시하는 서사로 평가받아왔다. 그럼에도 15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운명의 힘>의 감동은 극적 스토리텔링보다 음악의 힘에 있다. 근대 낭만주의 시대의 비극적 운명에 우리의 감정을 맡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베르디의 음악적 화술 때문일 것이다. 비교컨대 현대 드라마에 비하면 베르디 오페라 대본은 사건의 서사가 섬세하거나 친절하지 않은 편이다. 사건 자체가 선 굵은 사랑과 질투, 복수 등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세세한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베르디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선율에 싣는데 진력한다.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 격정적인 감정의 폭발을 예의 주시하며 표현하는 일, 그것이 베르디 오페라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호남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연륜에 걸맞은 역량을 과시해 보였다. 물론 그 배경에는 지휘자 미켈리와 함께 전주시립교향악단과 전주시립합창단의 수준 높은 연주가 큰 역할을 감당했다. 또 평소와는 다르게 국내 성악가만을 활용한 기획은 무대 전체에 균형감과 안정감을 부여하면서,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치열함으로 상대적으로 긴 러닝타임의 지루함을 지워냈다. 특히 주, 조연을 망라한 고르고 압도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은 무대에 역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성공적인 공연의 일등공신이 되어주었다. 레오노라의 김라희, 임경아, 알바로의 박성규, 이재식, 카를로의 한명원, 조지훈의 농익은 목소리는 무대의 집중력을 배가시켰으며, 과르디아노,칼라트라바 후작역의 이대범, 이대혁은 중후한 저음과 노련한 연기로 안정감 있게 노래하였고, 실라역의 최승현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길지않은 출연시간이었음에도 뛰어난 무대장악력을 보여주었고, 멜리토네역의 베이스 바리톤 김지섭은 코믹한 연기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손색없이 하여주었다 호남오페라단의 <운명의 힘>은 창단 40주년 기념공연으로서 손색없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가장 잘 알려진 관현악곡인 서곡부터 레오노라의 아리아 ‘성모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Madre, pietosa Vergine)’ 3막에서 알바로가 부르는 ‘오, 천사의 품으로 올라간 그대여(O tu che in seno agli angeli)’, 카를로의 ‘이 속에 내 운명이(Urna fatale del mio destino)’ 등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관객들에게 베르디의 진수를 선물해주는 시간이었다. 40년을 달려온 호남오페라단. 그동안 달려온 길로 만족하지 않고 50주년, 60주년을 향해 더욱 힘내어 달리기를, 그래서 한국현대 오페라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전주문화재단과 한국전통문화전당 통폐합과 연계해 전주시가 신규 설립한 전주관광재단이 출범 100일이 지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조직 구성원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데다, 관광 플랫폼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구체적인 전략마저 부재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전주관광재단에 따르면 용선중 신임 대표이사는 지난 8월 초 임명장을 받고 2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 이후 정원 15명 규모의 조직을 구성해 전주만의 새로운 관광 이미지 구축과 관광 콘텐츠를 확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출범 100일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관광재단 공식 홈페이지에 주요 사업 계획이나 중장기 비전이 담긴 문서는 아무것도 게시되지 않았다. 전주시는 당초 연간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전주를 찾고, 기존 한옥마을에 편중되던 관광지가 전주시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관광산업의 체계적인 개발과 통합마케팅을 수행할 전담조직이 필요하다며 관광재단을 설립했다. 전주관광재단 설립 및 운영조례에 따르면 재단은 △관광자원 개발 등 관광콘텐츠 확충 △국내외 관광홍보 △마이스(MICE) 유치 지원 △관광시장조사·연구·컨설팅 △관광 전문인력 양성 △관광기업 육성 지원 등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관광재단이 설립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관광콘텐츠를 개발할지 어떤 관광객을 우선 유치할지 중장기 성장 로드맵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계획이 없어 관광업계에서도 “재단이 실제로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 최인경 전문위원은 “전주는 문화와 관광이 함께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전주관광재단 설립은 관광산업에 매우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관광재단의 출범은 업무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적인 사업 이행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라고 제언했다. 관광재단은 올해 인적 구성을 마치고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 실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주관광재단 중장기 발전전략’ 용역을 추진하고 있으며 다음달 12일 전주대학교 온누리홀에서 발전전략 포럼을 열어 전주관광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립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재단 관계자는 “관광 분야가 워낙 전문성을 필요로 하다 보니 아직 인적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라며 “내부적으로 사업 구상이나 계획 등은 천천히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까지는 사업보다는 전주관광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이터 수집과 행정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은 기자
상영 기회가 적었던 전북지역 신진‧청년 영화창작자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제5회 뉴웨이브영화제가 22일부터 23일까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전주영화제작소 4층)에서 열린다. 제5회 뉴웨이브 영화제는 이틀간 ‘전북섹션(전북지역 작품)’ 4회에 걸쳐 총 14편이 상영된다. 22일에는 개막식과 함께 전북 1섹션에 정빛아름 감독 영화 <배우는 엄마>와 육광수 감독의 <그릇된 소녀> 송진경 감독의 <대책없는 여자>를 상영한다. 23일에는 전북 2섹션에 Koo Veintitrés 감독의 <하울라>, 한서율 감독의 <개를 위한 러브레터>, 박동채 감독의 <어-푸!>가 관객들과 만난다. 또한 전북 3섹션의 김선빈 감독의 <오프사이드> 라주형 감독의 소지인 감독의 <오래달리기> 최승아 감독의 <요리사, 편순이 그리고 슈퍼맨> 등도 상영한다. 마지막으로 폐막식과 함께 전북4섹션에 이한들 감독의 <스쿼터> 박래경 감독의 <타미플루> 현준 감독의 <그녀가 돌아온 이유> 유강현 감독의 <쿵>을 상영하며 영화제가 마무리된다. 영화제 섹션은 상영이 끝난 후 감독‧배우 등 게스트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진다. 관객과의 대화는 제5회 뉴웨이브영화제 집행위원회인물보라 청년들이 직접 모더레이터로 나선다. 예매는 포털 사이트에 ‘뉴웨이브영화제 예매하기’를 검색해서 진행하면 된다. 티켓 가격은 1매당 5000원이며 티켓 취소 및 환불은 영화제 1일 전까지 가능하다. 온라인 예매로 매진되지 않은 판매분에 한해 현장 매표소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박은 기자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금산사 조실인 금산당 도영 대종사가 20일 오전 5시 20분 송광사 약사전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65년, 세수 85세. 도영 대종사는 1941년 부안에서 태어나 1961년 김제 금산사에서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했다. 같은 해 금산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68년 법주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9년 금산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1970년 동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금산사 주지, 제8·9·10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등을 역임했했으며, 제4대 조계종 포교원장에 올라 종단 포교 기반을 닦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미래 불교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아 백산장학재단 이사장으로 15년 넘게 전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도영 대종사의 법구는 21일 금산사로 운구되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오는 24일 오전 10시 금산사 처영기념관에서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 전현아 기자
강경호의 <내 강아지들을 만나러 갑니다>(푸른사상)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세계는 죽은 이후에 가는 ‘저 세상’이지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낙원 또는 지옥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제각각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처럼 묘사된다. 그래서 잔인하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듯 다른 신비한 세계에게 ‘미스터 하’라는 절대자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리드미컬하게 풀어냈다. ‘나’라는 화자는 오랜 세월 갇혀 있던 조그만 구멍에서 어떤 세계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우연히 놓인 낯선 세계에서 화자는 자신의 강아지를 찾아 헤매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절대자 ‘미스터 하’를 찾아 나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닮은 공간에서 화자는 위험과 좌절이라는 극한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글쎄요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닐 거예요. 물론 그 자가 진짜 ‘미스터 하’의 시자에게 들었다면 맞겠지요. 이건 내 추측이지만, ‘미스터 하’를 저세상이나 그 어디에서도 만났다는 사람이 없으니 ‘미스터 하’는 가상의 존재일 수 있어요(…중략…) ‘미스터 하’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재사(才士)가 필시 있을 거예요. 여기 선민의 도시보다 억압이 덜해 자유롭기도 하고요. 누가 압니까?”(158쪽 일부) 소설은 지난한 과정 끝에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인간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절대자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절대자의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라며 “그런데도 두 사람은 절대자를 만나려는 의지가 굳건하다. 아마도 의지는 영속하고 그 의지가 끝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 강경호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국문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그날 이전> <에델바이스> <천상의 묵시록(전2권)> <포세이돈의 후예들> <관용> 등이 있다. 박은 기자
아닌 것은 아니라고 귀싸대기 올려붙일 줄 아는 시인의 눈 부라림이 생생한 시집이다. 시인은 헛딛고 헛짚으며 살아온 한국 사회의 맹점을 예전 교육 현장에서 꺼낸다.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지만,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시집에는 “머리통에 어깻죽지에/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 그런 종이 띠를 두르고/ 양팔간격으로 늘어선” 1940년대 국민(초등)학생들이 있고, 양팔간격 사이로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깨뜨리자 삼팔선」)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수업 시간에 “출입문 드드륵 밀고 들이닥쳐/ 머리 긴 아이들 머리통에 한 줄씩/ 드르륵 드르륵 신작로를 내놓고” 나가는 1950년대 바리깡 훈육부 선생님이 있고, “그렇게 길들기가 죽어라 싫어/ 일주일 넘게 신작로를 그대로 이고 다닌”(「신작로」) 학생도 있다. 시인은 이 시절을 “황량했다”라고 표현한다. 바르지 못한 시대의 바르지 못한 일들. 철썩철썩, 학생들의 뺨을 갈기는 선생은 1990년대까지 꽤 많았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진저리 쳐지는 그 순간순간은 애잔한 그리움이자 씁쓸함이며, 여전한 통증이자 참담함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두 선생님이 있다. 정작 이름 석 자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의 귀를 번쩍 열리게 했고, 지그시 입술까지 깨물게 했다. “원래 건달이었는데 이사장 친척이라서/ 자격증도 없이 체육선생이 되었다고들’ 했던 ‘별명이 무식이었던 체육선생님”은 농구공·배구공·축구공을 던져주고 알아서 편 짜고 놀다가 끝나면 공만 체육실로 가져오라 시키고 당당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들이닥친 훈육부 선생들에게 “왜정 때 배운 대로만 풀어먹을라고 저 지랄들을 해댄다.”(「잃어버린 이름」) 라고 쌍욕 하며 막아서기도 했다. 분필 하나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오는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화학선생님”은 출석도 안 부르고 차렷 경례 끝나면 곧바로 노트도 책도 없이 고개를 한 번씩 좌우로 저으며 수업 내용을 칠판에 빼곡하게 적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말거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시험 답안지에 모두 ‘×’를 친 시인에게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화학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선생님이었다.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시인을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정양(1942∼2025)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달리 “발표한 작품이라도 고칠 데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대도 사람도 변하니 지나간 것을 보면 당연히 고칠 게 많다는 것이며,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는 믿음이다. 시집에 실린 시도 다시 고쳐 내듯 시인은 묵히고 삭힌 기억을 또렷하게 살려냈다. 그 아득한 기억은 어둡고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 소소한 것을 위대하게 하고, 비루한 것을 장엄하게 했다. 후배들 곁에서 시대와 ‘맞짱 뜨는 법’을 조금 더 알려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오늘도 우리는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2016)를 읽으며 귀싸대기 때릴 순간을 기어이 기다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게, 지루하면서도 신바람 나게, 한 번 뿐인 내 인생을 그렇게 그리며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이 만든 길을 걷다 이탈하면 모든 걸 잃은 기분이 들지만, 나만의 길을 만들다 모르겠으면 잠시 멈추거나 다른 길을 그리면 된다. 중요한 건 지웠던 흔적도, 삐뚤삐뚤한 선도 모두 내 길이라는 것, 그리고 연필을 쥔 사람 역시 언제나 나라는 사실이다.”(책 ‘언폴드’ 중 발췌) 브랜드 디렉터로 활동 중인 김경주 작가가 신간 에세이 <언폴드 Unfold: 무너진 나를 일으켜 준 새벽 드로잉>(후즈갓마이테일)을 펴냈다. 지난 3년간 매일 같은 시간, 새벽 다섯 시에 자신과 마주하며 그려온 1000여 점의 드로잉 중 544점을 엄선해 글과 함께 묶은 고밀도 감성 아트북이다. 책 제목 ‘언폴드(Unfold)’가 뜻하듯, 저자는 구겨지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펼쳐지는 과정을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비유해 차분히 기록한다. 인생의 가장 추웠던 ‘겨울’이자 상실과 좌절의 시기였던 12월에서 출발해, 타인의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을 돌보는 ‘봄’, 새로운 균형을 찾는 ‘여름’,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가을’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무너짐–회복–성장–확장’의 서사가 완성된다.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저자는 ‘내 생각이 나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다. 매일의 그림과 짧은 문장은 감정의 파동을 다스리는 도구가 되고, 삶을 다시 일으키는 단단한 힘으로 쌓인다. 독자는 그 꾸준함 속에서 ‘성실함이 결국 자신을 구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새벽 드로잉을 시작한 계기는 6년 전 인생을 뒤흔든 사건에서 비롯됐다. 김 작가는 “교과서처럼 반듯하던 제 삶은 이혼이라는 파도를 만나 순식간에 뒤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일상을 ‘사는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절감하던 어느 날,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빨간 봉투를 건네준 장면이 강렬하게 남으며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 저자는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매일 새벽을 깨우고, 그림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으며 스스로를 치유해 왔다. <언폴드>는 단순한 드로잉북이나 에세이를 넘어, 한 사람이 혼란과 상실 속에서 자신을 회복해 나가는 섬세한 기록이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에 관한 진정성 있는 안내서로 자리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를 전한다. 저자는 경영학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뒤 ‘마이모리’라는 브랜드를 운영했고, 현재는 브랜딩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단순한 선과 단어 속에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 왔던 꿈을 조금씩 펼쳐 가고 있다. 전현아 기자
“떠나요/우주에 있는 해왕성으로//따라와요/우주복 입고/우주로 떠나요//부릉부릉/ 무지개 자동차를 타고/우주로 가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이 동시의 제목은 ‘빨간 자동차를 타고’이다. 삼계초등학교(교장 이수연) 동시집 <삼계친구들 동시놀이터>(다詩다)에 실린 엄태양 학생의 글이다. 해왕성으로 떠나는 무지개 자동차에 올라탄 화자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들어앉는다. “뭉게구름은 포근해/ 새털구름은 부드러워/ 강아지 토토탱구처럼/ 포근하고 따뜻해/ 구름을 안아보고 싶어”(허시은 ‘구름’). 포근하고 따뜻한 구름 위로 포개지는 마음은 어떤 걸까 상상해본다. 이처럼 아이들의 애정 어린 시선은 발랄한 상상력으로 뻗어나가 우리 눈앞에 믿음직한 세계를 펼쳐놓는다. 동시집 <삼계 친구들 동시놀이터>에는 꼬리치며 다가와 상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동물들과 아이들의 호기심이 범벅인 동시 84편이 담겼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김헌수 작가에게 동시 쓰기 수업을 받은 삼계초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학생들을 지도한 김헌수 시인은 “동시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일이며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꺼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며 “삼계초 학생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꼬마 시인들”이라고 설명했다. 삼계초 학생들은 과하게 꾸밈말을 넣거나 의미를 과장하지 않는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지만 깊고 느린 여백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했다. 맑고 투명한 문장과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그림은 성인이 보고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그래서 어떤 글들은 간결하고 솔직해도 괜찮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바퀴가 굴러가요/ 풀잎들이 흔들려요/ 내 마음도 하늘을 날아요”(엄태준, ‘자전거 타고 가는 길’)처럼 직관적이어서 가슴 깊이 와 닿는 아이들의 마음이 진한 울림을 준다. 삼계초 이수연 교장은 “학생들이 문학과 예술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며 “아이들의 감성과 재능을 키우는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은 기자
조선시대 전라도 일부 지역과 전주의 서포에서 인쇄해 출판한 완판본 전반을 다룬 인문서적 <완판본 출판의 유통과 활용>(역락)이 출간됐다. 저자 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완판본 출판의 내용과 유통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전주 시내 완판본 유적지와 전북특별자치도의 사찰출판 유적지를 소개하고, 완판본의 세부적인 연구와 지역 문화를 연결해 활용 방안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완판본의 문화유산 지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지역의 여러 문화와 관련성 탐구를 강조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완판본 서점의 발달과 유통 과정을 다룬다. 완판본의 출판을 담당한 전주 서포(출판소) 발달을 살피고, 출판된 각본의 출판 내용과 출판물의 전국적인 유통 과정을 짚는다. 2부에서는 완판본 인쇄와 출판의 발간지를 제시하여 연구자나 일반인들이 답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전주의 도시구조와 완판본 유적지를 소개하고 전주를 찾는 이들이 답사할 수 있도록 주요 지점을 설명한다. 3부는 완판본 연구와 활용에 대해서 다룬다. 전라감영본 ‘동의보감’의 서지와 가치를 논리적으로 전개해 완판본 연구가 지역문화 선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4부에서는 완판본 문화의 계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많은 완판본 중에서 문화유산 지정의 필요성을 다루고, 관련된 책을 통해 근거를 제시한다. ‘완판본 문화’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문화의 복원과 디지털 전략을 통해 완판본 문화와 정신 계승 문제를 총체적으로 아우른다. 저자 이태영은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장과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국어사학회장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문학 속의 전라 방언> <전라북도 방언 연구> <국어사와 방언사 연구>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서지와 언어> 외 다수가 있다. 박은 기자
전주풍물시동인회가 연간 시집 제34호 ‘풍물’을 펴냈다. 전주풍물시동인회는 ‘작품보다 인간을, 인간보다 삶을, 삶보다 더 소중한 거시기를 추구하자’며 소재호, 이동희, 정희수, 진동규 4인의 회원으로 1987년 9월 처음으로 결성돼,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시동인회다. 이들이 새롭게 펴낸 이번 시집에는 김남곤, 진동규, 최만산, 이동희, 소재호, 정군수 등 지역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20여 명의 시인이 창작해 낸 60여 편의 신작 시를 만나볼 수 있다. 또 김영·소재호·이동희·장욱·정군수·조미애 회원들이 새롭게 펴낸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전주풍물시동인회의 연혁도 담겼다. 김기찬 전주풍물시동인회 회장은 발간 소감을 통해 “성장과 집중을 위해 하루하루가 모험이길 바란다”며 “새가 하늘을 뚫듯,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더듬듯, 광부가 갱도로 들어가듯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자, 때론 나를 파괴하며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죽지 않는 그 순간까지 변화의 고통을 견뎌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전현아 기자
익산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 도시 익산’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2025 익산 문학의 밤 – 문학이 익산을 기억하다’ 다음 달 13일 오후 5시, 익산 중앙동 문화살롱 이리삼남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익산 문학의 밤’은 익산 출신을 대표하는 윤흥길·박범신 작가와 안도현 시인이 참여해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세 작가가 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익산 문학의 뿌리와 정체성을 되짚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도시의 미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대담 진행은 박태건 원광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맡는다. 이번 대담에서는 △익산은 왜 문학의 도시였는가 △기억 속 풍경과 역사의 증언 △익산이 다시 문학의 도시여야 하는 이유 △문학 도시 익산 구현 전략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된다. 작가별 5분 발제를 시작으로 60분 대담, 청중 질의응답, 실천 과제 공유 순으로 이어지며, 행사 후에는 현장 뒷풀이도 예정돼 있다. 행사를 주최한 북카페 ‘기찻길옆골목책방’ 윤찬영 대표는 “지난해 박범신 작가가 책방을 찾았을 때, 옛 문학반 학생들이 매년 12월마다 ‘문학의 밤’에 모여 시인들 앞에서 작품을 발표하던 기억을 들려줬다”며 “익산의 정체성이었던 그 문학의 밤을 다시 살려보고 싶었다. 익산이 다시 문학의 도시로 거듭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5 익산 문학의 밤’ 참가비는 1만 원이며 학생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한편 행사 장소인 문화살롱 이리삼남극장은 과거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고 이주일 씨가 가수 하춘화를 구한 일화로 널리 알려진 옛 삼남극장 인근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쇠퇴한 원도심 중앙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매달 강연·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문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전현아 기자
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26일 오후 7시, 예음헌에서 차와 이야기가 함께하는 국악콘서트 ‘다담(茶談)’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에는 건축가 전해갑이 이야기 손님으로 초청돼, ‘문화가 갑이다’를 주제로 예술과 공간,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을 나눈다. 전해갑은 완주군 소양면의 ‘아원고택’과 ‘오스갤러리’ 대표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간을 디렉팅한 건축가이자 갤러리스트다. 그가 운영하는 아원고택은 BTS가 머문 장소로 알려지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전통 한옥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날 ‘다담’에서는 오랜 시간 지역에 뿌리내리며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탐구해 온 전해갑 건축가가 ‘공간이 곧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관점으로 건축과 예술, 그리고 문화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건축 철학이 국악의 선율과 어우러져, ‘문화가 삶 속에서 완성되는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특히 ‘우리 음악 즐기기’ 순서에서는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이 정대석 작곡 거문고 독주곡 ‘수리재’를 연주한다. 이 곡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류정신을 표현한 작품으로, 거문고의 섬세한 울림이 잔잔한 여운으로 번지며 한국적 미의 깊이를 전한다. 또 이날 공연은 명사와 차 한 잔을 나누며 국악의 정취와 인문학적 통찰을 전하는 국립민속국악원의 대표 기획 공연의 2025년 마지막 무대로, 건축가 전해갑의 시선과 거문고의 고요한 선율이 어우러져 한 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문화적 휴식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공연은 전석 무료(58석 한정)으로 진행되며, 티켓 예매는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과 카카오톡 채널, 전화(063-620-2329)로 예약할 수 있다. 전현아 기자
다름으로 이어온 36년의 동행 ‘삼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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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만 즐거웠다”…1948편 접수된 전북일보 신춘문예 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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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하기정 ‘건너가는 마음’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다양한 소재와 내면을 살피는 작품 다수…글을 끌고 나가는 힘 아쉬워”
김명자 시인 첫 시집 ‘광야를 사랑하는 법’ 북토크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