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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올해의 청년실업률이 IMF 외환위기 무렵 이후 가장 높다고 한다. 결혼을 빨리한 친구들은 자녀들 취업시키기가 명문대학 보내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많은 돈을 들여 좋은 대학에 보내고, 다양한 스펙을 쌓게 했음에도 일자리를 못 구한다니 안타깝다.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까지 한다고 하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거기에 취업과 희망까지 접은 ‘칠포세대’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 잘못된 말도 아닌 것 같다.베이비 붐 세대가 청년일 때 취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는 먹고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서 힘들고 봉급이 적은 직장일지라도 받아만 준다면 어디든지 취업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몇몇 좋은 직장을 빼고는 대부분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요즈음은 옛날보다 훨씬 풍족하고 경제규모도 커졌는데 왜 그럴까.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기업 등의 화려한 명성이나 돈을 위해 취직하려다보니 그런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는 분 말씀이 800명 중에서 20명을 선발하는 입사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지원자 대부분이 유수한 대학 출신에 높은 토익점수,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고 뽑았느냐고 물으니 열정을 가진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과거 화려한 스펙에 중점을 두고 선발해보니 현실에 너무 빨리 안주하고,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법원에 들어와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니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과장, 국장까지 지낸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누구보다 열정이 넘쳐 일도 열심히 하고, 저녁 회식자리나 주말 법원행사에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여 분위기를 돋웠다. 승진도 당연히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친한 친구 중에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친구가 있다. 공고와 공대를 거친 그 친구는 대기업에 가지 않고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사주가 재일교포인데 은사가 추천해서 취업했다고 한다. 처음엔 실망도 했었지만 언젠가 회사를 키워 경영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해외지사도 많이 개척하는 등 열심히 근무한 덕에 임원도 되었고, 회사가 상장까지 되자 사주가 아들 대신 대표이사까지 맡겼다고 한다. 그 친구가 대기업에 취업했다면 지금쯤 임원이나 될 수 있었을까, 아님 벌써 퇴직하여 제2의 직장을 찾고 있지나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다. 젊은이들이 건강해야 그 사회도 튼튼하다. 취업이 안 되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너무 대기업만 고집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금의 대기업이 20년, 30년 후에도 대기업으로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수시대에 접어들면서 직업의 패턴도 많이 변할 것이다. 창업이든 취업이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해야 한다. 열정, 적당한 자신감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을 갖춘다면 언젠가는 역경을 벗어나 성공의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전이 도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인내’와 ‘끈기’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5월은 여러 기념일들이 많은 달이고,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가족 간에 사랑과 정이 넘쳐흐르기보다는 대화와 관심은 적어지고 지나친 기대와 욕심으로 서로의 불편함과 불평이 자주 표출되는 것 같다.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 초등학교 학생의 동시를 발간한 동시집의 한 작품인 ‘학원가기 싫은 날’에는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자 급기야 해당 출판사에서 그 동시집 전량을 회수하여 폐기 처분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여기서 해당 출판사가 밝힌 “어린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쓴 책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출간했다. 이것을 보고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는 말을 통하여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동화 중 하나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부부 이야기로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가난한 농부가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거위 둥지에서 번쩍거리는 황금알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농부는 이 황금알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 이 황금알이 진짜 순금인 것을 알게 된다. 농부는 황금알 하나를 얻어 가난을 면하게 됐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반신반의 하면서 거위우리로 들어갔는데 거위는 두 번째 황금알을 낳았다. 농부는 하늘로 올라갈 듯 기뻤다. 행운을 차지한 농부는 빨리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분명히 황금알을 낳는 저 거위의 뱃속은 황금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상상 속에 빠진다. 결국 거위 뱃속에 들어 있는 모든 황금을 한꺼번에 손에 넣기 위해 거위를 죽이기로 했다. 그러나 거위의 배를 갈랐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뱃속은 황금알이 하나도 없었고 일반 거위와 다를 바 없었다. 우화(寓話)는 인격화 시킨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행동 속에서 풍자와 교훈을 보여 주는 짧은 이야기가 특징이다. 누구나 이 동화를 읽었을 때 저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매일 그러한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에게 커다란 축복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의 선물이다. 하물며 자녀가 지닌 장점 하나 하나 가령, 예의가 바르다든지, 건강하다든지, 성실하다든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다든지 등등이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공부를 더 잘 하라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부족한 것을 채우라고 내모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욕심이 지나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과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선행학습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한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선행학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폐해가 커지자 급기야 나라에서는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얼마나 학원에 가기 싫었을 때가 많았으면 어린 학생이 그런 동시를 썼을까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우리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어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일만 그런 어리석음이 있겠는가? 부모에 대한 쓸데없는 원망이나 배우자에게 바라는 지나친 욕심 등도 같은 맥락에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5월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 가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자.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서 1년이 넘도록 긴장했던 나는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고향 전주에 내려갔다.성묘도 하고 고향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주로 향하던 차 안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었다.나는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하여 대통령 당선자와 마주 앉았다.“한 동지! 이거 큰일이오. IMF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정의 협력과 화합이 필요하오. 지금 나라를 구할 길은 노·사·정이 타협하는 길밖에 없소. 그게 안 되면 IMF에서 우리한테 돈을 꾸어 줄 수 없다고 하지 않소.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소? 지금 국고가 바닥나 있소. 이 일은 정권에 관한 문제요. 한 동지가 이 위기를 극복해주기 바라오.”대통령 당선자께서는 간혹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는 ‘동지’라는 호칭을 쓰시곤 했다.대통령 당선자의 짧지만 간곡한 말씀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인수위 사무실을 나섰지만 앞이 막막했다.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나는 노동연구원 사무실 한 칸을 빌려 협상테이블을 마련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와 정계 대표들이 마침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는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1998년 1월15일 노·사·정 및 정당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당시 외환 고갈과 외채의 늪에 빠진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시급한 당면과제에 대해 노·사·정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만큼 당시의 국가경제는 다급했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한 서로의 입장은 달랐다. 협상의 고비마다 의견이 마찰하고 서로 다투는 소리가 협상장에 가득했다. 교착상태는 물론 때로는 회의 불참을 선언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빈번했다.한마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했다. 경영자는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고 노동자는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국난에 처한 현실을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 고통을 분담하는 길밖에 없다고 호소했다.노사정위원회의 ‘마라톤 협상’은 끝이 없었다. 낮과 밤에 이어 새벽으로 이어지는 마라톤 협상을 거듭하던 1998년 2월 6일 새벽, 드디어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탄생시켜 전 국민을 감동시키고 ‘全 국민 금모으기 운동’과 함께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자 한국에 외채를 빌려준 외국 대형 금융기관들은 만기를 연장해 주었고, 이로 인해 한국은 외환금융 위기의 벼랑 끝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1998년 2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단군 이래 최초라는 노·사·정 합의서를 발표하면서 나는 노·사·정 모두가 자신들의 어려운 입장을 떠나 ‘국가를 살려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서를 만들어낸 각계 대표들에게 감사했다.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노동자와 사용자는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대한민국은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닥쳐도 극복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국가라는 확신을 가진다.
‘권부’라고 하면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을 의미한다.그런데 권부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의 권력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합리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초법적으로 행사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권부라고 하면 청와대의 대통령 권력을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권력행사를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군사독재정권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군부야말로 권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요즘 군부를 권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그런데 요즘 군부가 권부에서 물러난 대신 전혀 새로운 집단들이 새로운 권부로 등장하고 있지 않나 국민들은 염려하고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거대 언론과 검찰과 거대 재벌이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지난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도 하고 국민에게 사과도 했지만 반성도 사과도 않는 집단이 있다. 언론과 검찰이다.새로운 권부로 지목되는 언론, 검찰, 재벌중에서 언론환경의 개선, 언론의 권부화문제가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언론과 정권과의 관계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하고자 한다.나는 이승만 정권 말기에 언론계에 들어가 근 17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그 이후는 정치인으로, 합쳐 55년간이나 언론과의 밀접한 접촉속에서 지내왔다.우리나라가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정권을 극복하고 이만한 민주화를 이룩한 데는 일부 언론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그러나 근래의 언론상황은 국민들에게 공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김대중·노무현 정권 양대에 걸쳐 나는 정권과 주요언론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김대중 대통령은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여러사람이 나서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환경이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할수없다는 단호한 의지로 맞서 싸웠다.노무현 대통령 말기 언론과의 관계가 최악일 때에 ‘언론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한 나의 충고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언론과의 싸움이 당장의 성과도 없고 나에게 상처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언론행태가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가 불가능합니다. 나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국민속에 문제를 제기하고 떠나겠습니다.’국제적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의 작년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도평가는 민주정권시절 20위였던데 비해 68위로 추락했다.정치도 언론도 국민도 우리 언론환경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법관, 직원들과 함께 노인복지회관에 밥퍼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우리 법원은 매달 당번을 정해서 세 번째 주 화요일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간 적이 있었지만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은 의무감으로 봉사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퇴식구에서 식기를 반납 받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식기를 놓고 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살필 수가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짓는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오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는 행복감과 사무실에서의 고민이 한꺼번에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내가 건넨 식기를 받아 수세미로 닦는 자원봉사 아줌마는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고 한다.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달인이 따로 없다. 이분들은 행복이 어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얻는 선물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배식이 끝난 후 행복한 표정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3월 넷째 주말에도 법원 직원들과 함께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대상은 미혼모가 버리는 아이들이나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는 입학 전의 아동들이다. 처음에 입소할 때는 어린 나이임에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고 한다. 보호소 직원들의 체계적인 심리, 음악, 미술 치료 등을 거치면서 부드럽고 평온한 눈빛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머무는데 헤어질 때가 되면 정이 쌓여 눈물을 흘리기도 한단다. 사회적 지원이 많지 않아 보호소 직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우리 팀은 남녀로 구분하여 남자들은 주로 청소를 담당하고, 여자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밥 먹여주는 일을 했다. 처음엔 버려진 아이들을 만난다는 선입견에 심란한 마음으로 왔었으나, 보호소 직원들의 헌신 덕분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바뀐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직원들의 귀한 시간을 뺏어 마음 한구석이 미안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봉사하면서 감동받는 모습을 보고나니 미안한 마음도 한결 덜어졌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올라갈 데도 없고, 더 채울 것도 없는 번성한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 정서, 자발적으로 업무에 헌신하는 것, 타인과 함께하는 것,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에 소속되고 거기에 기여하는 것, 성취 그 자체가 좋아서 추구하는 것이라는 5가지의 행복공식을 제안했다. 이 이론이 기존의 많은 행복이론과 다른 점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자체가 좋아서’하는 행위들을 행복의 조건으로 포함한 데 있다고 한다. 안양지원에 부임한지도 벌써 1년 2개월이 되었다. 주인의식을 갖고서 행복한 법원을 만들자고 취임하면서 강조했고, 본인이 행복해야 민원인이나 당사자도 편안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도 자기소개를 하거나 건배사를 할 때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유난히 늘었고,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는 행복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마치 셀리그먼 교수의 긍정적인 정서를 몸소 실천하는 듯해서 기쁘다.
‘김영란법’ 이라 알려진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지난 3월 26일 대통령 재가를 거쳐 27일 관보에 게재됐다고 한다. 이 법은 이날부터 1년 6개월의 유예기간 뒤인 내년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되며, 김영란법에 의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와 유치원 임직원 등이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 등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15일 교육현장에 남아있는 불법 찬조금과 촌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각 학교에선 교원이나 교감을 담당관으로 지정하고 불법 찬조금·촌지 근절을 위한 자체 세부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담당관들은 학기 초인 3월과 9월, 스승의 날 전후,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명절 즈음에 세부계획에 따라 자체 점검을 한다고 한다.김영란법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른바 떡값 검사,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의 경우처럼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공직자들이 일상적인 친분 관계에 의한 돈이나 금품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있고, 서울시교육청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 대책 발표 후에 담임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올 때 어떤 선물도 가져오면 안 된다는 안내를 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어머니 아무 것도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커피 한 잔도 안돼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등의 말도 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러한 문제는 ‘선물’과 ‘뇌물’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데에서 발생한 것 같다. 엄밀하게 따지만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사회통념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과도한 선물은 이미 선물이 아니다. 그러나 선물은 서로가 훈훈한 정을 나누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적절한 선물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필자가 속한 한 CEO과정의 동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의 회장은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장이었는데 말도 별로 없고 인상에서부터 행동까지 좀 특이하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모임의 구성원들이 회장에게서 어떤 사람의 향기나 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회장이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였다. 선물을 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시를 좋아하는데 특히 영시를 좋아한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영시를 영문으로도 읽지만 영문보다 더 시의 맛을 살려주는 번역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 기가 막히게 영시를 맛을 살려 번역하시는 분이 바로 고 장영희 교수라는 것 이었다. 자기가 지금 선물로 준비한 책은 장영희 교수가 번역한 영시집인데 자기 혼자 그 맛을 즐기기 너무 아까워 우리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 회장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으며, 모임에 참석한 회원 모두가 환호하였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장영희 교수를 만난 사람은 없지만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가 너무 빨리 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감동은 더 컸던 것 같다. 내 집무실 책상에 조그만 거울 하나가 놓여있다. 일하다가 가끔 그 거울을 보고 표정도 밝게 하고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새도 바로 잡는다. 가까운 사람이나 후배, 동료들에게 거울 선물을 하나 하면 어떨까?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도 하고 가능하다면 자기의 내면까지도 들여다 보라는 말을 하면서 선물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겠는가?
“저는 암에 걸려 행복해요. 암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찾았으니까요!”폐암 수술을 받고 몇 달이 지난 아내가 요양지에서 산책 도중 문득 쏟아낸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내에게 가슴이 미어지는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아내를 힘들고, 외롭게 했으면 암에 걸려 행복하다는 말을 할까? 라는 자책감 때문이었다.지난 2010년 8월, 건강하게만 보였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놀란 마음으로 병원에 달려갔는데 뜻밖에도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까?’라는 절망감에 하늘을 원망했다.그러나 절망과 원망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절박했다. 우선 환자인 아내가 병마와 싸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병은 약의 처방이나 의사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 본인이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정신력과 의지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폐암에서 완치되었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평생을 걸어온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셨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수술을 담당하신 의료진의 세심하고 따뜻한 정성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그러나 암이란 것이 수술만으로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나는 폐암수술을 마친 아내를 부축하여 공기 맑은 곳을 찾아 항암치료를 위한 요양생활을 시작했다.그 요양생활은 아내와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절망과 희망, 그야말로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시간이었다.어느 날 아내는 제주도 바닷가 편백나무 아래서 “하나님 살려 주세요. 편백나무야! 나를 살려다오.” 라며 절규했다. 또한 밤마다 심한 기침으로 인한 고통을 못 이겨 “나는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라며 힘없이 돌아눕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 볼 때는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그런가 하면 아내가 언제부터인지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4~5㎞씩을 걷는 모습을 볼 때는 ‘아내는 꼭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아내의 병은 정치인의 내조자로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가시밭길 같았던 인생길을 함께 걸으며 겪었던 고통이 폐암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아내를 폐암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그래서 나는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가 폐암 수술을 받은 지 언 5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내게는 별명이 하나 생겼다. 내가 아내를 극진하게 병간호를 해 주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수간호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그렇게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언 5년의 세월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지난 시절, 나에게 느꼈던 섭섭한 마음을 지난 5년 동안 이미 모두 용서한 것 같다.아직 아내의 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다. 요즘도 병원을 찾아 항암치료를 받는다. 아내의 건강을 함께 걱정해 주셨던 많은 분과 특히 의료진 여러분께 고향의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요즘 일부 지도급 정치인들이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영달에만 목적을 둔듯한 정치행태를 보면서 정치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시에 맞는 존경할만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내가 직접 겪은 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을 알리는 몇 가지 감동적인 일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 정치인들의 자세를 바로잡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1970년대 엄혹했던 박정희 독재시대 김대중 대통령의 생명을 건 반독재투쟁과 통일방안 주창등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지방자치제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를 당장의 이해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는 정치적 혜안과 확고한 정치신념이 쟁취한 산물이었다.1989년말 제1야당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원내총무인 나에게 노태우 대통령과의 여야영수회담에서 지방자치제실시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협상하도록 지시했다.당시 시대적 상황은 야당이 총선거에서는 한번 해볼 수 있지만 지방자치제 선거는 전혀 승산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지적에 대하여 김대중 총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정당 후보가 거의 다 당선되더라도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보다는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 낫다. 지방자치제를 깔지 않고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이런 김대중 총재의 확고한 신념이 지자제 실시를 부활시켰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 때 일을 잊을 수 없다.여론조사 방법을 통해 간발의 차이로 노무현후보가 승리했지만 정몽준후보 측은 노무현 후보선거운동에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당시 여론은 정몽준이 적극 협력해주면 한번 해볼 수 있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을것으로 나와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말고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협력을 얻도록 독촉했다.양 진영사이에 절박한 막후협상이 진행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어떤 자리를 줄것인가였다. 그것도 처음에는 서면합의를 요구했다. 양진영사이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채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정몽준 진영에서 마지막 사자가 나한테 왔다.어떤 서면합의도 요구하지 않겠다.다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두사람만이 밀실에서 만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떻게 대우하겠다는 구두약속을 해달라는 것이었다.그분은 이렇게 덧붙였다. 구두로 말해달라는 것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 참여의 명분을 위해 덕담을 해달라는 것 아니냐.나는 그 밀사의 말을 그대로 노무현 후보에게 전달했다.그런데 노무현후보의 답변은 단호했다.나나 그나(정몽준) 단일화를 위해서 자리흥정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밀실에서 단둘이 얘기해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렇게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그런 대통령은 하지 않겠습니다.차라리 원칙을 지키다 낙선하는 것을 통해 정치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당장의 이해관계에 구애되지 않는 이런 단호한 용기가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다.개인적으로 험난하고 불편하더라도 시대적 과제에 몸을 던지고 대의를 쫓는 정치인을 미래의 지도자로 밀어주고 싶다.
법원의 기관장이 하는 업무인 개명(이름 변경)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유들을 접하게 된다. 과거에는 개명허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바뀐 이름으로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을 강조하여 허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요즈음은 2005년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이름이 가지는 공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여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폭넓게 허가하고 있다.각 법원마다 사정이 비슷하지만 안양지원의 경우에도 1년에 약 3000건 정도의 개명신청 사건을 처리하고 있고, 한 번에 한해서는 대부분 허가해 주고 있다. 문제는 한번 개명을 한 후에도 다시 개명신청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어려서 개명을 한번 허가받았음에도 성년이 되기 전에 다시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심문기일을 잡아 왜 다시 신청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대개는 부모의 의사에 따라 재차 개명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때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간혹 아이의 의사가 완강하여 꼭 이름을 다시 개명하고 싶다는 부모들을 만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런 사건의 경우 부모와 아이를 같이 심문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 뜻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아이를 따로 불러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의례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 불렀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면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그다지 수긍하는 것 같지 않다. 학생이 성년이 돼서 신청하면 그땐 허가해 줄 수도 있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지 그때도 판사님이 여기 계속 계시냐고 물을 때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개명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대부분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름에 걸고 기대는 심리가 많은 것 같다. 대학진학을 못 해서, 취직을 못 해서, 결혼을 못 해서, 사업이 어려워서, 가족이 중병에 걸리거나 사망해서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이름인 것 같은데 점쟁이나 작명가가 대개는 이름의 획수가 맞지 않거나 액운이 끼었거나 손재수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 같고, 점집이나 작명소의 설명서를 첨부하여 법원에 개명신청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우스갯소리로 개명을 폭넓게 인정해 주었더니 점집과 작명소만 돈을 버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람의 운명이 이름을 바꾼다고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허가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세계 143개국을 상대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1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지나친 경쟁심 때문이 아니겠냐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름 변경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보다는 좀 더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서라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신청자가 많아져서 기꺼운 마음으로 허가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울의 사립 초등학교 입학 경쟁률이 올 들어 하락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2015학년도 사립초 모집 현황’에 따르면 서울의 39개 사립초의 전체 경쟁률은 2.2대 1로 지난해 경쟁률은 2.4대 1보다 낮아졌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 영어몰입교육의 폐지를 들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사립 초등학교의 영어교육 정상화를 위해 영어 몰입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폐지시키고, 1, 2학년 대상 영어수업도 할 수 없게 한 바 있다. 언어 몰입 교육(Language immersion)은 제2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가르칠 언어를 이용하여 다른 일반 교과목 수업을 하는 것을 말하며 1960년대 캐나다의 영어 사용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처음 시도되었다고 한다.교육열이 남다른 한국 학부모의 지대한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그동안 일부 사립초등학교에서 해왔던 영어 몰입교육이 논란이 된 것과 달리 한국어 몰입교육을 잘 운영해 오는 미국의 공립학교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인 클레어 릴리엔탈 학교(Claire Lilienth al Alternative School)에서는 한국어 몰입교육 프로그램 KIP(Korean Imme rsion Program)을 20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이 학교는 샌프란시스코의 중류층 가정이 밀집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어와 한국에 관심이 많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릴리엔탈 초등학교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으로 두 언어와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긍정적인 다문화 태도와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학년 4개 학급 중 한 반은 한국어 몰입교육을 하는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반은 영어 이외의 과목을 한국어로 가르친다. 한국어 몰입 반 학생들의 1/3 정도는 한국어와 영어를, 1/3 정도는 한국어만을, 3/1 정도는 영어만을 말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설명하는 수업을 열심히 따라서 하고, 학년이 오를수록 한국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한다.지난 1월 중순부터 서울교육대학교 재학생 6명이 4주 동안 이 학교에서 한국어 몰입프로그램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한국의 영어 몰입교육과 다르게 이곳은 원어민 교사가 없기 때문에 서울교대 학생들이 한국어 원어민 강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한국어 몰입교육을 한다는 것이 가슴 벅찬 일이었으며,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의 열정으로 한국어 몰입 프로그램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교재와 강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다.이를 지원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국민 모두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고 한국 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그 방안의 하나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의 역할을 들고 싶다. 대학이 나서서 교재개발이나 강사를 보내주는 일에 앞장서면 어떨까? 교육대나 사범대의 교육과정을 생각하면 교재의 제작이나 방학을 이용한 재학생 교육봉사 등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우리에게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예비교사가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많이 있지 않은가?
전주사범부속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보다는 운동에 더 흥미를 느꼈다. 특히 축구와 탁구를 좋아하고 운동에 소질이 있었는지 여러 대회에도 나갔다. 그러나 대회에서 큰 상을 받지는 못했다.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회장에 선출되었다. 직선제로 전교 어린이 회장에 뽑힌 나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다.학교와 동네에서 친구들이 잘 따르는 타입 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기린봉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기린봉은 전주 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이다. 기린은 키가 크고 재주와 지혜가 많은 동물인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젊은이를 가리키는 ‘기린아’라고 하는 것은 아마 여기에 근거가 있는 듯하다. 기린은 성군이 이 세상에 나올 전조로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 전주 일대에서 아름다운 곳을 고른 전주 10경 가운데 제 1경이 기린토월(麒麟吐月)인데, 동쪽 기린봉 위로 보석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달을 가리킨다.한마디로 기린봉은 전주 시민에게 상서로운 산이다. 전주 시내에서 익산 쪽으로 20리쯤 떨어져 있는 기린봉 큰 바위에 사람들은 소망을 써 붙이고 간절히 기도를 하곤 했다.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친구들이랑 기린봉에 올랐던 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써 붙이는 바위 앞에 이르러서 어린 나이에 나의 장래희망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종이에 ‘국회의장’이라고 써서 바위에 붙이고 기도를 드린 다음 그 종이를 바위 아래 파묻었다.그때만 해도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어린이들한테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대통령’ 아니면 ‘국회의원’, ‘장관’ 등을 꼽을 때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게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야당을 이끌고 있는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이 더 멋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때 나는 신익희 의장이 했다는 연설 내용을 어른들로부터 간간이 들으면서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호감이 많이 갔다. 특히 선생의 수려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그날 바위에 ‘국회의장’이라고 소원을 쓴 것은 국회의장이라는 지위나 감투보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라는 사람의 인격을 닮고 싶다는 소년다운 소박한 뜻이었다.나는 지금도 어떤 지위나 힘의 유무보다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역사와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인생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되느냐’라는 타이틀(title) 보다는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훗날 나는 우직하게 국민행복과 통일을 지향하며 ‘정도(正道)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바르게 가고자 하는 것이 정도의 길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미래의 장기적인 비전과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오직 당장 이해관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라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바른 길을 가는 정도의 정치인이다. 역사를 의식한다는 것은 올곧은 현실을 창조해 나간다는 뜻이다.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정의롭게 국민의 편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이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평화로운 통일조국을 이루어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거의 한계점에 이르러 있다.우리나라에서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은 계층적 지역적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고,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할 국회는 대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생결단의 전투장이 되어있다. 민주정치의 중추여야 할 정당 역시, 오직 대통령권력 쟁취에 대한 유·불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그 결과 국민을 위한 생산적인 정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국가권력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킨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되고 대통령직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기 때문이다.’이 글은 2008년 7월. 17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30년간의 현역정치인생을 마감한 제가, 정치원로로써 해야 할 소명을 모든 정치적 폐단의 근본원인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 개혁운동에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호소문의 서두이다.그때로부터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었고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변화도 있었다.그러나 긍정적인 발전은 거의 없었다. 대화와 타협 협상의 정치보다는 전투적 대립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고 당연한 귀결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계층적 지역적 갈등과 세대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국가발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절대 필요한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자본축적이 위험수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맡은 사람, 정치를 이끄는 사람, 경제를 책임진 사람들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추궁하고 따져야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구조의 기본 틀에 대해서도 심각히 따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죽음의 키스를 만난다’는 세계적 정치학자 칼 뢰벤슈타인의 경고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세계선진국 집단이라고 하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과 한국, 멕시코 말고는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바꾸어 말하면 미국 이외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성공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한국의 대통령제는 건국 초 미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제도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많은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다.군대,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가정보원 등 모든 권력의 칼자루가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독재국가 말고 정상적인 국가에서 우리나라처럼 권력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된 나라는 없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지역감정과 지역주의가 심각한 나라의 경우는 권력집중의 폐해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다수지역은 다수지역대로 소수지역은 소수지역대로 하나밖에 없는 대권을 쟁취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본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권력독점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폐해를 주어왔지만, 우리 전북과 같은 소수지역의 경우 그 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권력독점의 틀을 분권의 틀로 바꾸는 문제가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이자 ‘위대한 반대자’로 칭송받는 홈즈는 1919년 Abrams v. U.S.A 판결에서 ‘진리의 가장 궁극적인 선은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달성될 수 있다’라고 설시하였고, 이 법리는 소수의견에서 출발하였지만 현재 미국 헌법이론을 대표하는 판시가 되었다. 현재의 정치지형도에서 충청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 생각으론 다양성이라고 본다.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가면서 당선되는 충청에서는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야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니, 인구도 늘고 정부지원도 집중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건이 헌재에 계류 중일 때에는 결론이 어떻게 날 것 같으냐면서 은근 슬쩍 의견을 떠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정당은 마땅히 해산되어야 한다고 자기의견을 피력했다. 그 후 헌재에서 해산결정이 난 뒤 자기견해가 맞았다고 만족스러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해산결정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의 1심에서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법원이 그럴 수 있느냐며 듣기에 민망한 공격이 계속되었고, 1심 재판장을 잘 아는 나로서는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재판에서 1심과 다르게 유죄가 선고되자 그러면 그렇지 라면서 법원이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사람도 많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 대법원 결론이 남아 있다.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법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지만, 실제 재판하는 법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하는데도 여론에 따라 그 결론이 좌우된다면 누가 그 재판을 신뢰하겠는가. 재판은 용광로에 비유할 수도 있다. 재판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다. 법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법관들이 그 의견들을 심사숙고하여 결론을 냈다면 일응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결론에 수긍을 못하면 항소를 하며, 또 이에 대해서 불복이 있으면 상고를 하면 된다. 입맛에 맞는다고 칭찬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른 이들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흔드는 일이다.법관 3명이서 합의부 사건을 처리할 때 쟁점이 많이 부딪치는 사건에서 내가 생각하는 결론과 다른 견해가 나오지 않을 때는 왠지 불안하다. 오히려 반대의견이 제시되어 치열한 난상토론을 거치고, 하나의 통일된 의견으로 결론이 날 때 그 결론이 단단하고 제대로 되었음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란 없다.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을 변경하여 여성의 종중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나 호주제도의 위헌성을 들어 폐지를 이끌어낸 헌재의 결정 등은 시대가치의 변화에 따라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변한 사례이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견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고, 무언가가 옳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얘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전주북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입시 날이 다가올수록 친구의 얼굴이 어두워만 갔다. 완주군 봉동읍 생강마을에 사는 친구인데 이유를 물었더니 “중학교 때도 보결로 입학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할 일이 걱정”이라며 한 숨을 쉬었다.“너무 걱정 마라. 혹시 네가 재수가 좋아 시험장에서 내 뒤에 앉게 되면 답안지를 보여주마.”나는 걱정하는 친구가 너무 딱해 보여 다만 위로삼아 ‘립(lip)서비스’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소위 컨닝을 모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되고 말았다. 시험 당일 수험표를 받고 보니 그 친구가 바로 내 뒤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윽고 시험 첫 시간, 나는 시험지 문제를 풀고 뒷자리 친구에게 약속대로 답안지를 보여 주었다. 비록 위로의 말이었지만 친구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시간에도 나는 답안지를 친구가 볼 수 있도록 슬그머니 밀쳐놓았다. 그런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시험감독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고 나에게 1차 경고를 주었다. 그런데 셋째 시간에도 친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친구를 외면하자니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허사가 되고, 계속 보여주자니 이번에는 선생님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부정행위’ 그 자체는 나쁜 일이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답안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선생님이 갑자기 “학생, 답안지를 놓고 나가!”라고 소리치며 답안지에 빨간 색연필로 ×표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시험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우리는 시험장을 쫓겨나 학교 앞 중국식당에 마주 앉았다.“걱정할 것 없다. 너는 전주에 남아 2차 고등학교를 가면 될 것이고, 나는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서울에 가서 2차 고등학교를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친구를 위로해 주고 다음 날, 나는 서울로 상경하여 고모님 댁에 의탁하며 서울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나를 시험장에서 쫓아낸 분은 천 건 선생님이었다. 서울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천 건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반가움보다는 내가 앙심을 품고 찾아 온 것은 아닐까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담고 정직하고, 정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셨다.만약에 전주고 입시장에서 우리의 부정행위가 발각되지 않았다면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천 건 선생님께서 정말 큰 교훈을 주셨다는 생각에 지금도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내가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시절, 청와대로 손님이 찾아왔다. 천 건 선생님께서 결혼한 의사인 아들과 며느리를 인사차 내게 보내신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진심어린 격려를 해 주었다.어느덧, 58년의 세월이 지나 그 일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을 알 수 없다.입시위주의 교육이 인성교육을 실종시키고 극심한 경쟁이 윤리와 도덕의식을 마비시키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천 건 선생님의 엄격한 교육이 아쉬울 따름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최근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44개 국가 중 26위였다. 지난 20년간 줄곧 20위권 안이었는데, 많이 밀려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 133위로 최하위권이며 ‘정치인에 대한 공공 신뢰’가 97위로, 베트남(49위)과 우간다(94위)보다도 아래라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인 불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참담한 급추락이다. 왜 이렇게 됐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는 정치권의 극한 대결이다. 정치 불신과 미래 국가경쟁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국민 눈에는 권력다툼과 싸움질만 보이는 정치다. 국회는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장일 뿐이고, 정당과 정치인들은 국민은 뒷전인 채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를 반복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정부는 나은가. 대통령 후보 때와 취임 후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 사과도 하지 않는다. 정책의 일관성 유지는 커녕 국정의 사령탑 기능도 작동되지 않는다. 국민생활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하고, 세금을 늘리면서도 증세정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우리 정치는 많이 투명해졌다. 선거 부패도 개선됐고 공직후보자 추천과 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높아졌다. 특히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으며 인권, 복지, 평화, 균형발전 같은 진전된 가치들도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정치가 일본보다 낫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의식만은 과거보다 더 비판적이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이나 90년대 초반까지도 야당 정치인은 시민 집회에서 박수받고 다녔다. 지금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심한 듯하다.정치불신을 심화한 고질적 문제는 첫째, 지역주의 구도이고 둘째, 권력의 과도한 대통령 집중이다. 많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요즘 언론의 행태와 뉴 미디어를 통해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종편 등을 통해 정치인은 연예인화하고, 정치적 이슈는 가십처럼 다뤄지고 있다. 정치가 국민신뢰를 얻으려면, 비상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단방약은 없다. 근본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법부기 자율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능력을 기르고,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자긍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 눈치 보기를 탈피하면 야당과의 협상이 가능해진다. 그동안은 대부분 대통령 권력이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그제 여당 원내대표 선출때 반란표가 몰렸다고 한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여건 야건 강경파가 득세하면 무한대결이 벌어지고 국민불신은 증폭된다.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지도자들의 특단의 노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필자는 2008년 5월, 17대 국회 고별 연설에서 여당에게는 소수의견 포용을, 야당에게는 물리적 저지의 자제를 권고했다. 당시엔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여겨졌지만, 후일 ‘국회선진화법’으로 반영돼 작년 정기국회때는 사실상 처음으로 물리적 충돌 없이 타협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런 일이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근본적 개혁방안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혁파’가 필수적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순기능은 놔두고 역기능, 특히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권력의 과도한 집중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대결적 정치가 종식되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 출범 후 2년간 확실해진 것은 국정혼란과 정치적 갈등의 진원지가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점이다. 정치권 원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동시에 사심 없는 위치에서, 이 나라를 정치불신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낀다. 광복 70년, “이 과제를 포기하지 말고 함께 집중 노력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자”고 모든 정치인, 언론, 국민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안양지원에서 근무한지도 벌써 10개월이 넘었다. 관할이 안양, 군포, 의왕, 과천 합하여 115만 가량 되니 책임이 무겁다. 대학교 때 안양에 계시는 친척들을 뵈러 왔을 때는 서울 근교의 조그만 소도시였다. 안양에 평촌이라는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논밭으로 있었던 땅들이 번듯한 관공서와 빌딩 등으로 변해 60만이 넘는 큰 도시가 되었다. 내 고향은 남원이다. 남원 시내에서도 운봉 쪽으로 20리가 넘게 들어간 쪽들 〈남평(藍坪), 섬진강 상류로서 홍수 때마다 개활지에 푸르른 쪽이 많이 자라서 지어진 이름이다〉이고,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에도 나온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이름이다. 예전에 전주로 유학 왔을 때 내세울게 없었던 남원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 가나 내 고향을 물으면 전북 남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객지에서의 생활은 사람의 성격까지 바꾸게 했다. 조용하고 말이 없던 나는 낯선 타향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숨어있는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덕분인지 점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나는 가난한 집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때는 대부분 세끼 밥 챙겨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 때를 놓치면 굶기 쉬웠고, 식사 때도 음식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규칙적인 식사가 습관화되었고, 무슨 음식이든 잘 먹는다. 고시공부 할 때나 낯선 환경에 가서도 잘 적응했던 비결인 것 같다.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지금도 틈나면 등산, 축구, 테니스 등을 즐긴다. 초등학교 때 1학생 1구기운동에 따라 핸드볼을 했는데 덕분에 공을 가지고 노는 감각이 길러진 것 같다. 운동을 잘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려서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거나 들판으로 냇가로 놀러 다니면서 단련된 체력이 역설적이게도 고시공부나 판사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 여건이 안정되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자랑스러워졌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고향 들녘이나 냇가의 방천 둑을 거닐면서 마음을 다잡던 시절이 생각나고, 도시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고향 산천을 가지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리 바빠도 1년에 최소한 4번 이상은 고향을 간다. 명절 2번과 여름휴가 그리고 법원 동료들과 지리산 등산하러 갈 때이다. 부모님이 계셔서이기도 하지만 내 고향만큼 포근하고 정이 가는 곳도 없다. 지리산이 가까워서 내려갈 때마다 등산을 하거나 둘레길을 걷거나 정 시간이 없을 때는 차로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까지 산책 정도는 해야 마음이 후련하다.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실루엣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반갑고도 그리운 내 고향 전북!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경제력도 다른 도·시에 비해 다소 뒤지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북적이는 고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아련하게 고향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에…지면으로나마 고향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청양의 기운을 듬뿍 받아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빌어 본다. △박희승 지원장은 남원 출신으로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돔 구장이자 한국 실내스포츠의 성지라고 불릴만한 장충체육관이 최근 2년 8개월의 공사 끝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하였다는 뉴스에 많은 국민들이 환호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신문 보도에 의하면 장충체육관은 1963년 문을 연 이래 한국스포츠와 함께 호흡했다. 김기수는 1966년 6월 장충체육관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이 됐다. 한국 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이었다. ‘박치기왕’ 김 일은 1967년 4월 세계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1983년도 출범한 농구대잔치와 민속씨름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1984년 시작된 대통령배 배구대회 역시 장충체육관에서 열전을 펼쳤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후 시설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농구는 잠실체육관과 잠실학생체육관으로 터를 옮겼다. 배구만이 장충체육관을 사용했다. 결국 서울시는 2012년 5월 장충체육관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2년 8개월 만에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리모델링은 오래된 건축물을 최신 유행의 구조로 바꿔주는 작업을 말하는 것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서울 강남의 저층아파트를 중심으로 유행하여 고층아파트나 단독주택까지 확산되었다.리모델링을 보다 넓게 해석하면 건축물의 노후화 억제 또는 기능향상 등을 위하여 증축 개축 뿐 아니라 건물을 대수선을 하는 모든 행위까지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건물의 어떤 공간을 대수선하는 리모델링은 그 공간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노후되거나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 후 수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 기능을 하고 있을 지라도 항상 가꾸고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미리 고치고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필자는 대학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수선 리모델링을 시행하여 많은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킨 경험이 있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공간을 접하는 구성원들은 신선한 느낌을 받으며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효과는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그래서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리모델링은 아직은 쓸 만할 때, 미리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 이유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젖어있는 타성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주변 환경이 간단한 조치만으로 새롭게 다가올 때, 다른 과제도 이렇게 미리 손을 본다면 훨씬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타성에 젖지 않고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둘째, 공간이 그 역할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 어떤 공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유행과 시대에 뒤처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항상 조금씩 고쳐나가면 낡거나 노후되는 시간을 더디게 하기도 하고, 조금씩 유행과 시대에 맞춰나가게 되어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사용할 수 있다.셋째, 건물이나 공간을 전면 개 보수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공간이 노후되거나 훼손되어 전면적인 개 보수를 하는 것보다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이 돈이 덜 드는 것 뿐 아니라, 낡은 공간이 아닌 새롭고 쾌적한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이 주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구성원의 행복감이 주는 무형의 경제효과까지 생기게 될 수 있다.이러한 리모델링에 대한 생각을 건물이나 공간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해 보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우리도 자신이 뭔가 잘못되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습관이나 자신만의 사고의 틀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어느 틈엔가 때묻고 이끼가 낀듯한 양심과 예의 염치도 한번 손보고, 더불어 사는 삶과 배려도 다시 세우고, 밋밋한 일상이 향기나는 멋짐으로 다시 태어나는 리모델링을 다 함께 해 보았으면 좋겠다. 2015년이 시작된 지는 어느새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설날이 남아있지 않은가?△신항균 총장은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서울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통일교육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경제연구소가 ‘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르는 사회적비용이 년 82조에서 246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2015년도 예산규모가 375조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실로 엄청난 금액이 사회갈등 비용으로 허비되고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이 2007년 이후부터 크게 둔화되어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선진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부가가치 창출과 국민복지 증대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계층, 이념, 세대, 지역갈등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공존하고 있어 국가의 역량을 제대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의 가혹한 식민 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세계사에 유례없이 6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지만, ‘압축 성장’으로 인한 ‘압축 갈등’이 사회 각 곳에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분단의 현실로 인한 이념갈등이 존재하고, 경제사회적 양극화 심화과정에서 계층과 지역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치갈등인 환경과 세대갈등이 복합적으로 충돌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나라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대통합이 필요하다. 즉, 우리 사회에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하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국민대통합’은 단순히 관념적인 구호나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주요 원동력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다. 지금까지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경제적 요인만으로도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대통합 기반을 통해서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또한 국민대통합은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선결과제이다. 전문가들은 통일에 대한 준비로 자유민주주의 신장, 경제정의 실현, 빈부격차의 완화,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 국민대통합과 관계된 요소들이다. 남북통일에 앞서 남한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선결과제인 것이다.이처럼 우리에게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것이 ‘국민대통합’이다. 지역, 세대, 이념, 계층 간의 격차와 위화감을 줄이고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것과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국민 모두가 상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국민대통합이다. 국민대통합은 대변혁과 도전의 시대에 우리의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주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자, 정신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대통합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갈등은 여러 요인과 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소통과 참여, 그리고 협력 없이는 달성되기 어렵다.따라서 존경하는 도민 여러분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대통합 발전을 위해 앞장 서 주실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한광옥 위원장은 제11, 13, 14, 15대 국회의원, 제1기 노사정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역임했다.
지난 연말 전북 출신 중앙언론인 모임인 전언회(全言會) 송년회에 초청된 송하진 지사가 “국토교통부 산하로 되어있는 ‘새만금 개발청’을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해 새만금사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언론인들의 협력을 호소했다. 송 지사는 지난 5일 열린 재경 전북도민 신년인사회에서도 이같은 호소를 거듭했다. 단군 이래 가장 대규모 국가 역사(役事)라 불리는 새만금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새만금 개발청’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 개발청이 한 개 관련 부처에 속하는 바람에 범정부 차원의 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전북 출신 정계, 관계, 언론계, 재계 등이 힘을 모아 총리실 이관을 관철해야 하리라고 본다. 필자도 새만금사업이라는 옥동자를 낳는 데 적어도 산파 역할은 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다.새만금사업은 지난 1970년대 초 ‘옥서(전북 옥구, 충남 서천)지구 농업개발사업 계획’으로 처음 구상되었고, 1987년 ‘새만금 간척 종합개발사업’으로 발표되었다. 제7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전주 유세(1987년 12월 10일)에서 “새만금 사업을 최우선사업으로 선정해 임기내 이룩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취임 후 1년이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경제부처들은 ‘사업타당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새만금사업 공약을 휴지통에 넣은 상황이었다.이런 가운데 1989년 3월 10일 당시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간의 영수회담에서 김 총재가 경제사안으로는 오직 한 가지, 바로 새만금사업의 추진을 강력히 요청했고 영수회담 합의에 따라 사업추진이 가능하게 되었다. 필자는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로서 김대중 총재에게 정부의 새만금사업 포기 결정에 따른 전북 인심의 악화를 전하고, “새만금 사업 재추진을 실현시켜야만 전북 인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진언했다. 실제로 전북 인심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었다. 전북도민들에게 새만금사업은 신앙이나 종교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도민들 사이에는 특히 정부가 호남을 배려한다고 할 때 그 과실(果實)은 전남, 광주가 가져가고 전북은 매번 소외된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이러다 보니 한 유력 신문사는 사옥 건물에 ‘전북 홀로서기 운동’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이 운동의 추진을 선언할 정도였다. 필자는 정치인으로서 고향 전북의 이같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때마침 열린 영수회담을 통해 이 문제의 ‘정치적 결단’을 추진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잘 성사된 것을 정치역정의 큰 보람중 하나로 여 있다.새만금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국가적 자산이다. 무엇보다 여의도의 140배인 4만여 헥타르(ha), 1억 2000만평의 땅이 아닌가? 그것도 사유지(私有地)라고는 없어 정부가 수용 부담 없이 마음껏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땅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전북이 탄소산업, 관광산업, 식품클러스트 등에 집중하는 것에 희망을 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가 전북에 온 것도 큰 축복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북은 새만금사업에 운명을 건다 할 만큼 총력을 모아야 한다. 새만금 개발청의 총리실 이관과 함께 대형 외국자본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지난 1980년대 말 국가 부도위기를 맞았을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위기극복에 기여하고 외국인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새해부터 우리 도민 전체가 금 모으기 때의 간절한 심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부와 정치를 설득하는 작업,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일에까지 손잡고 나서야 한다.△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2014년 갑오년 한해가 저물어간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새해 초부터 경주에서 폭설로 강당이 무너져 학생회 행사에 참가 중이던 대학 신입생들이 변을 당했고, 온 나라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외에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고양 터미널 화재 등이 연이어 발생해서 안전 불감증과 관리 감독의 소홀, 제도와 법령의 미비로 인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또한 계모가 의붓딸을 때려 사망하게 한 사건을 비롯해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와 한층 잔혹해진 청소년 범죄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 집단 및 계층 간의 갈등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여전히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이런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삼자는 철저한 반성 하에 안전 부처의 신설, 관피아 척결 등 구조적인 문제 개선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인면수심의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신속한 보호조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도 제정되었으며, 사회갈등 영역에서의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를 힘들게 했던 2014년을 떠나보내며, 보다 희망차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해본다.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자 스스로 올바른 가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올바른 생각과 반듯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나눔과 베풂의 가치를 외면한 채 각자 돈과 출세만을 궁극의 가치로 삼는다면 치열한 경쟁과 갈등만 있을 뿐 배려와 상생이 토대가 되는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 문화를 만들고, 관련 법규를 준수함으로써 더 이상 안전을 무시한 불법과 편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다가오는 2015년 새해에는 더 이상 비극적인 대형사고가 반복되지 않고, 계층 간의 갈등도 지혜롭게 해결되어 보다 밝고 희망찬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지속, 미국의 금리 인상, 일본의 엔저정책, 급작스런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한 수출 부진과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 체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외환위기 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낸 저력이 있다. 또한 국민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창조경제 노력이 꾸준히 진행 중에 있으며, 일자리 창출, 노사갈등, 경제구조 개혁 등 현안들은 노사정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조해 나감으로써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얼마 전 개봉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1000만에 가까운 관객이 보았다고 한다. 위 영화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 가족애 등이 그 이유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면,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딛고 기적처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지난날 역경을 이겨내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온 우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속 명대사처럼, 우리 스스로 희망을 갖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꿈을 이루는 을미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