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3 02:54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선유도 여행의 추억

이제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나는 군산의 고군산열도에 있는 선유도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유도에 처음 놀러 간 것은 중학생 때였다.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쉽게 승낙해 주셨다. 나는 기분이 다소 어떨떨하였지만 기뻤다.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니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이 일기예보까지 들먹이면서 설득하니 안심이 되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군산항에서 두 시간 가량 배를 타고 갔다. 처음으로 배를 타서 그런지 멀미를 심하게 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선유도 선착장에서 내려 아름다운 해변가, 파란 쪽빛 바닷물, 수려한 경관들을 보니 기분이 다시 상쾌해졌다. 선유도(仙遊島)는 문자 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뜻이다. 선유도의 면적은 2.13㎢로 서울 여의도 크기의 1/4 정도이다. 인근의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등 함께 모여있는 섬들을 모두 합하면 면적은 4.36㎢가 되며 선유도는 이들 섬들의 중심 섬이다. 섬의 북쪽으로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선유도는 고려시대에 여송 무역로의 잠시 들르는 항구(기항지)로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 최무선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해전 기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함선의 정박기지로 해상요지였다. 원래 이름은 군산도였으나 조선 초기에 창설된 수군진영이 세종 때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감으로써 이곳을 고(古, 옛날)군산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유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깨끗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물놀이는 초등학생 때 동내 냇가에서 배운 일명 개구리 수영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저녁에 친구들과 준비해간 쌀로 밥도 해먹고, 텐트에서 잠을 잤다. 처음 해보는 밥짓기, 설거지와 빨래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다음날, 동네 사는 어느 형의 도움으로 아주 작은 고깃배도 구경하고 산에도 올라가 봤다. 또한, 자그마한 섬 안에 논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다. 몇 해 전에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장(33.9km)의 방조제 위로 곧게 뻗은 왕복 4차선 도로와 탁 트인 바다가 방문객을 시원스럽게 맞이해 주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선유도 쪽을 바라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열도가 보인다. 순간 기억 저 너머에 숨겨져 있던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새만금에 있는 야미도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20분이면 선유도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새만금군산 경제자유구역청의 안내책자에 의하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고군산군도를 2020년까지 국제해양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란다.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유산을 소중히 보존하면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개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 여의도에서 김포공항 방향으로 가까운 거리에 한강변에 위치한 선유도 공원도 고군산열도에 있는 선유도와 한글과 한자 이름이 똑같다. 조선시대에는 한강안에 있는 자그마한 섬으로 봉우리도 있었는데 일제 강점하에 한강치수사업을 시작하면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근처를 지날때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면 서울의 명물 중의 하나가 되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든다. △국경복 처장은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장,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24 23:02

산행단상

나는 산을 좋아한다. 시간 나는 대로 산을 탄다. 동네 산이든 멀리 있는 큰 산이든 가리지 않고 탄다. 때로는 화를 삭이러 가기도 하고, 때로는 큰일을 앞두고 인내심과 체력을 담금질하러 가기도 하며, 어떤 때는 그냥 시간 보내러 가기도 하지만, 산은 언제나 내치지 않고 내가 바라는 바를 준다.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 남들 하는 식으로 지리산에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때로는 운동 삼아 때로는 여행 삼아 30여 년 계속하게 되었다. 처음엔 마음 맞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산행하였지만, 나중에는 거의 매주 혼자 동네 산을 찾거나 가끔 안내 산악회에 신청하여 원거리 산행을 하였다. 7년 전 여름, 산악회를 따라간 봉화 각화산 산행에서 초면의 노등산객으로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해 가을부터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였다. 격주로 진행되는 대간 산행을 빠짐없이 계속하기가 쉽질 않아서 2년 반을 목표로 했던 대간완주를 5년 걸려서 재작년 말에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을 거쳐서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가 넘는 우리나라의 등뼈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말한다. 현재 우리가 백두대간 종주라고 할 때에는 이중 남쪽의 지리산에서부터 설악산 북단 진부령까지의 680km 산줄기를 이어서 산행하는 것을 말하는 게 보통이다. 전라북도에는 지리산에서 덕유산 북단의 삼도봉에 이르는 약 135km의 대간 길이 지나간다. 실제 대간 산행을 하면서 680km의 산행길이 능선으로만, 중간에 한 번도 물을 건너는 일 없이 이어진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리저리 감기고 휘돌아서 아득하게 이어진 능선길을 몇 시간이고 걷다 보면 어느 틈엔가 산을 걸으면서도 하늘을 헤치고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처음 2~3시간의 숨찬 고행이 지나고 나면 다리는 오르락 내리락 힘든 길을 계속 걷지만 하늘과 산과 내가 하나 된 듯한 무념무상의 상태를 느끼기도 한다. 대간 산행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다.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나는 도쿠가와가 말한 인생의 비유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먼 길’이 대간 길이라고 생각한다. 대간 산행을 하다 보면 오르막이 수없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저만치 보이는 봉우리만 오르면 오늘 산행 중에 오르막은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올라보면 또 다른 높은 봉우리가 앞에 버티고 서있는 일이 흔하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산을 타야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도 ‘아, 너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걸을 수 있어야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누구든지 삶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되고, ‘禍不單行’이라는 말이 있듯이 반복해서 역경에 부딪히게 되는 일도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탄식하거나 어려운 일이 또 닥칠까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고 아니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해나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가까운 동네 산행마저 게을리 하다 보니 살집은 늘어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태도가 무디어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일 형편을 보아서 너무 길지 않은 종주산행을 시작해볼까 생각중이다. △이철우 실장은 국무조정실 규제심의관실 과장, 대통령 경제비서관실 행정관, 농림수산식품부 원양협력관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17 23:02

기본이 지켜지는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며

최근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고라는 큰 아픔을 겪었다. 이로 인해 모든 국민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소비가 둔화되는 등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고 있다. 추모와 애도의 마음은 깊이 간직해야겠지만 언제쯤 이 충격을 극복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사고의 수습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번 일을 거울삼아 그동안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이번 사고는 안전을 무시한 과적과 불법 선실 개조, 감독기관의 묵인, 선장과 선원의 기본적 임무 회피, 구조 책임기관의 안일한 대응 등 총체적 부실이 그 원인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고 관련자들의 엄벌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 전국적으로 사고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뿐만 아니라 병폐가 드러난 이른바 관피아, 해운비리 등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비리 사범을 처단하는 것도 재발 방지를 위해 중요하지만, 우리가 선진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국민 모두가 법질서를 준수하고, 각자 자기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기본에 충실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생활윤리 측면에서는 도덕적 이상체인 군자를 목표로 정진해왔고, 직업윤리 측면에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인 정신이 살아 있었다.하지만 근대화를 통해 서구의 제도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정부 주도하에 신속한 성장과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민관유착과 부정부패가 싹트게 되었다. 또한 법률은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국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임에도, 언제부턴가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경쟁에 뒤쳐진다는 의식이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되었다.그러나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로 발돋움하여야 한다.중용(中庸)에서는 “은밀한 곳보다 더 잘 보이는 곳은 없고, 미세한 일보다 더 잘 드러나는 일은 없다. 군자는 아무도 안 보고 듣지 않는 혼자 있는 곳에서 더욱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莫見乎隱 莫見乎微 君子愼其獨也)”고 가르치고 있다. 남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잘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는 비위생적인 음식을 만들고, 각종 공사현장에 기준에 미달하는 자재를 사용하고, 위험의 가능성을 눈감아버리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진국 국민, 또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려면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조심하고 경계하는 윤리의식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체득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회한이 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눈앞의 이익보다는 더불어 함께 잘살기 위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스스로 떳떳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번 일이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깐깐한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오광수 지검장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청주지검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10 23:02

청포도 익어가는 7월과 마음의 고향 농촌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하략) 이렇게 시작되는 시에는“먼 데 하늘이 알알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란 구절도 나온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이다. 청포도 알맹이마다 7월 하늘이 하나씩 들어 있다고 비유했다.7월의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우울한 얼굴 이었다가, 푸르고 정열적인 얼굴이었다가, 악동 친구 같은 천둥번개를 동반하곤 한다. 이렇게 비 오고, 해 뜨고, 바람 불고, 번개 치는 하늘의 표정이 모두 그대로 자연과 사람에게 스며들어 단맛을 낸다는 7월이다.아름답게 읊조렸던 7월, 자연은 그 녹음의 절정을 맞이한 듯 일어나보면 새록새록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의 강렬한 빛과 대지를 풍부하게 적셔주는 비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를 만들어낸 바로 그 힘일 것이다.“땅을 경작하는 사람만이 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사회가 변화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고 해도 우리 인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은 자연에서 우러나온다. 자연은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자신의 본분에 자족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농업은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만큼만 영위할 수 있는 생명산업이다. 계절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작물도 꽃을 피울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을 의지하고 사는 농민은 그 어떤 경우라도 자만하지 않고 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소박하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도시의 각박함과 삭막함을 벗어나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귀농·귀촌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마음의 고향, 농촌을 찾아가는 도시민이 늘어나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대세이고,‘돌아오는 농촌’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농민의 삶의 터전인 농촌은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의 마지막 보루이며, 우리의 심성을 감싸 안고 어루만지며 순화시켜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지금의 농업·농촌은 산업화에 따른 농촌인구 감소, 젊은 층의 이탈 및 고령화, FTA에 의한 농업개방 등으로 어려워졌으며 미래도 결코 밝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관과 조상의 얼이 배어 있는 전통과 풍습 등의 소중한 자원을 가진 우리의 원초적 향수가 깃들어 있는 마음의 고향이며 진실한 터전인 농촌은 근래에 들어 새로운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과 대지를 적시는 비와 농민의 따스한 손길이 서로 어우러져 탐스러운 청포도가 열리듯이, 농업·농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온 국민이 농촌에 따뜻한 시선과 애정을 보내줘야 한다고 본다. 자!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모든 이들의 마음의 고향인 농촌이 청포도처럼 달콤하고 싱싱하게 영글도록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농촌에 제공하자.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김문규 상무는 농협은행 전북영업본부 본부장, 농협은행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03 23:02

규제개혁과 대중의 지혜

60~70년대 경제의 고속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우리나라는 이제 2013년말 기준 1인당 GDP는 2만 3838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7년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수준을 맴돌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지금과는 다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최근 규제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과잉간섭으로 국민의 자율과 창의성이 침해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속도의 충돌’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기업의 변화속도는 시속 100마일인데 비하여 정부의 변화속도는 25마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대중의 지혜’라는 저서에서 평범한 다수가 탁월한 소수보다 현명하다고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형식과 절차, 규제에 얽매이는 관료제는 사회의 창의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대한 최상의 행동방향을 계획하는 일은 다양한 개인으로 구성된 큰 집단이 우수하고 안정적인 예측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다. 이제 국민은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위키피디아와 UCC를 제작하는 등 소비자가 제품개발과 유통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를 뜻하는 프로슈머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발전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관료제는 빈틈없이 짜여진 틀로 지역발전계획을 만들어 나가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계획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복잡해지고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모든 변수들을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느슨하면서 여백이 많은 지역발전 계획으로 유연성과 융통성을 부여하여 빈 부분들을 주민들이 창조적으로 메워가도록 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도시계획 대신 지역마다의 특성과 활기를 가진 지역 환경이 조성되도록 행정은 조언하고 지원해야 한다. 사람을 구석으로 떠밀어넣는 개발일변도의 정책이 아니라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를 살려나가도록 시민이 참여하는 창의적 지역발전이 필요하다. 요즘은 세계화, 도시화의 분주한 흐름속에서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전통에 대한 향수와 탐구가 늘고 있다. 특히 지방화 시대에 우리의 삶속에 내재된 향토적 특성을 지닌 지방의 전통문화는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주민들이 애착을 느끼고, 삶의 정체성을 찾고, 삶의 에너지를 획득하는 전통문화를 주민들이 주축이 되고, 정부와 지자체는 지원 협력하여 육성해 나가야 한다. 전주한옥마을은 그러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지박물관의 한지뜨기 체험, 한옥마을 탐방, 전주비빔밥으로 점심을 즐기고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신 경기전 관람 등 볼거리와 먹거리 등을 갖추어 전주한옥마을은 걷고 싶은 거리, 머물고 싶은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 보다도 일반대중들이 호흡할 수 있고 역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야 말로 잘 보존하고 육성한다면 사람과 돈이 모이는 지역을 만들 것이다. 전북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주민이 참여하고 행정은 지원하는 활기찬 지역발전 모델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26 23:02

지방재정과 지역발전

지역일꾼을 뽑는 6·4지방선거가 끝났다. 1995년에 처음으로 통합 실시된 지방선거도 어느덧 6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슬픔으로 조용한 가운데 치러졌지만, 가장 커다란 쟁점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었을 것이다. 지금 당선자들은 기쁨보다 자신의 공약이행을 위해 고심하고 계실 것이다.1995년에 지방자치시대가 출범할 당시, 국가 전체예산은 약 75조 원이었고, 지방행정예산은 약 37조 원, 지방교육예산은 13조 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4년 국가 예산은 약 356조 원, 지방행정예산은 159조 원, 지방교육예산은 약 53조 원으로 4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만큼 국가의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했다는 증거이다.필자는 국가재정의 전문가로서 전북 예산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14년 전북의 경우, 시·군을 포함한 도(道) 전체의 행정예산은 약 8조 6000억 원, 교육예산은 약 2조 6000억 원으로, 17개 시·도 가운데 8위에 해당 한다. 또한, 일선 시·군 예산을 살펴보면, 전주시 예산은 1조 원을 훌쩍 넘어섰고, 익산시와 군산시 예산도 9000억 원을 육박하고 있어 곧 1조 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이처럼 일선 시·군 예산이 1조 원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조언하고자 한다.첫째, 예산은 꼼꼼히 짜고 물수건 짜듯 절약해서 써야 한다.예산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편성하느냐이다. 예산편성 단계에서 시장, 군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새로 선출된 시장의 입장에서는 재임 기간에 공약이행을 위해 예산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은 공무원들의 소신과 원칙이다. 그리고 집행과정에서도 공무원들이 단돈 10원이라도 아낀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지출해야 한다.둘째, 예산에 대한 통제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지방의회가 심의, 확정하지만 일정한 한계가 있다. 특히 새로 선출된 지방의회 의원들은 재정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예산을 심사하기 어렵다. 전문가를 통해 기존사업의 성과평가와 신규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감시인(Watch dog)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정을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셋째, 재정정보를 수시로 공개해야 한다. 분기별로 세입 현황 및 세부사업에 대한 집행 실적을 공개하고 지역 내 총생산과 고용현황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연말에는 부채가 얼마이고, 만약 늘어났으면 왜 늘어났는지 시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자치단체장 만능주의보다는 시민들과 동행하면서 지역발전과 시민들의 행복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인간은 누구나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특히 지방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 군수의 입장에서는 예산확대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소신과 원칙,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재정정보 공개를 통한 감시체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본다.7월 1일이면, 민선 6기의 시장, 군수가 지방행정을 이끌게 된다. 새로운 지역일꾼을 통해 침체된 전북사회가 활기를 찾았으면 한다. 지역이 발전하고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자율과 독립 그리고 참여를 통해 성과를 공유하면서 행복 바이러스가 이웃에게 퍼져 나가길 희망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19 23:02

산딸나무의 지혜

팔랑개비 모양의 산딸나무 흰 꽃이 아직도 전국의 산야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층층나무 속에 속하는 이 나무는 세계적으로 30~60개의 종이 서식한다. 미국 버지니아주와 북 캘롤라이나주의 주화이고, 미주리주의 주목이며,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의 주화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봄에 벚꽃이 지자마자 그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나 화려함을 더 하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흰 꽃뿐 아니라 분홍색 꽃도 많다고 한다. 나도 산딸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북한산에 수백 번을 올랐지만, 그 꽃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다가 2년 전 방한한 LA 수목원장과 같이 창경궁에서 그의 눈에 띈 그 토종 꽃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이 없으면 손에 쥐여줘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dogwood’로 부르는데 개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그 줄기를 단도 (dagger) 손잡이로 사용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처형한 십자가를 이 나무로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그 흰 꽃잎이 십자가 모양이라서 그렇게 추즉하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는 남자들이 이 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 구애하였는데 그 꽃이 되돌아오면 거절의 표시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미국인들은 이 꽃에 대해 많은 애착심을 느끼는 것 같다.그런데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은 거의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다. 동백꽃 등 상록수들은 항상 잎이 피어 있는 중에 개화하니 무엇이 먼저냐 따질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나무 등 낙엽수는 꽃을 먼저 피운다. 그들이 이른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가을에 이미 생식을 대비한 ‘꽃눈’ (인간으로 보면 사춘기라고 할까?) 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인데, 이 ‘꽃 눈’ 은 겨울의 저온을 지나며 숙성해야 개화가 되므로 겨울이 지났다고 느끼자마자 우선적으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래야 자식들을 만들어 종족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파리 피우고 뭐하다 시간 다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제일 급한 일인 후손 생산을 위한 꽃부터 피우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철들자마자 하는 짓이 짝짓기지만 때를 놓치면 언제 짝을 짓고 언제 새끼를 낳을지 모르니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빨리들 짝짓기하라고 성화를 하지 않는가? 생물의 섭리가 같은 듯하다. 토종 산딸나무는 잎이 다 난 5월에야 꽃이 피는데 가을에 열리는 빨간 열매가 산딸기 같아 산딸나무로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꽃이라고 하는 이 십자가 모양의 꽃이 사실은 그 가운데의 조그만 꽃을 감싸고 있는 포엽이라고 불리는 변형된 이파리라고 한다. 꽃이 작아서 벌레들에 눈에 안 띠므로 이들을 유혹하기 위한 목적으로 잎이 변형되어 꽃 같이 보인다니 생존을 위해 다양한 진화를 계속해온 식물들의 지혜가 경이롭다. 많은 식물들처럼 산딸나무도 자웅동체로서 굳이 다른 나무로부터 수정을 받을 필요는 없으나 끼리끼리 수정을 할 경우, 열성의 번성으로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멸종할 우려가 있으므로 가능한 외부 수정을 하고자 이러한 포엽이라는 변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관피아’ 로 명명된 끼리끼리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비판받는 것을 보며 우리가 산딸나무의 지혜에서 배울 바가 많음을 느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12 23:02

이사의 부부학

지난 달 또 이사를 했다. 3년만의 이사다. 결혼 후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10차례 넘게 이사를 한 것 같다. 여자들에게는 야단맞을 소리지만, 이사를 보통 평일에 하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장을 핑계로 귀찮고 힘겨운 이사의 노동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삿날이 금요일인데다 근무지가 지방인 탓에 이사 당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말이나마 아내에게 “금요일 직장일을 마치고 최대한 빨리 서울에 올라가 짐정리를 도울게”라고 했더니, 아내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니 저녁 먹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순진하게도 아내 말대로 했을지 모르겠지만, 25년의 결혼연륜을 쌓은 필자로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자칫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아니 안다기 보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리라. 50살의 문턱을 넘은 중년 남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위기의식과 생존본능이 필자에게도 작용했던 것이다. 아무튼 금요일 저녁 서울역에 내린 다음 곧바로 이사한 집으로 직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짐정리에 정신이 없는 아내는 머쓱한 표정으로 나타난 나의 얼굴을 향해 다짜고짜 눈을 흘기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딴길로 새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직행을 결정한 나의 판단력에 감사했다. 집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것 치워라, 저것 가져와라 하면서 작업지시를 쏟아 놓는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참 동안 군소리 없이 사역을 하다가 서서히 아내의 굳은 표정이 펴지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돌이켜 보면 올해 25주년을 맞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밀고당기기, “밀당”으로 점철된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부관계를 주도권을 둘러싼 샅바싸움으로 접근하는 식의 ‘밀당’의 프레임으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부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꿀물(sweetheart)’로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당밀(糖蜜)’의 프레임으로 바꾸어야만 둘이 하나되는 참된 부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다음 예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태평양의 한 섬에 자니 링고라는 남자가 사리타라는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섬에서는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측에 지참금으로 암소를 지불하는 풍습이 있었다. 링고는 결혼에 앞서 암소 8마리를 지참금으로 주었는데, 이것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왜냐하면, 사리타는 남태평양의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신부로서 그리 예쁜 편이 아니어서 암소 1마리만 줘도 충분했는데, 무려 8마리나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리타가 해가 갈수록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니라 링고가 사리타에게 암소 8마리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암소 8마리의 가치를 부여받은 사리타는 정말로 암소 8마리 가치의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가치있게 봐주는 눈, 넉넉하게 평가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상대방을 변화시킨다. 남편이 아내를 왕비로 대우하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왕으로 대우하면 왕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혼식이 한창인 이 계절의 예비 부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05 23:02

창조적 도시, 소통과 관용의 사회

요즘 주변에 외국 음식점이 늘어나 가끔 이색적인 요리를 즐긴다. 태국의 매콤 새콤한 새우수프라 할 수 있는 ‘톰얌꿍’, 타이식 쌀국수 요리인 ‘새우 팟타이’, 인도네시아식 볶음밥이라는 ‘나시고랭’ 등을 맛보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 요리가 아니라 해도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우리나라 문화가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를 누빈다고 한다. 이와 반면에 우리나라에도 외국의 음식은 물론 서울 한복판에 중국인과 일본, 동남아 등 외국 관광객이 넘쳐나고,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 국내거주 외국인은 2013년 1월 기준 144만 5000명이 넘는다. 또한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의 국적만 195개국이며, 국제결혼 출신국도 117개국에 이른다. 2050년에는 외국인이 인구의 9.2%인 40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외국 인재의 국내유치와 개도국의 젊은 노동인력의 국내유입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우리가 준비없이 맞이한다면, 일부 국가의 사례처럼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통합에 저해되는 문제가 우려된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삶의 현상으로 이해하고 포용적인 다문화사회로 나아갈 때 국가경쟁력과 창의성의 고양으로 문화적 풍요로움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은 주류사회 문화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집단의 문화정체성과 독창성을 존중하는 문화다원주의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에 따르면, 창조적인 도시는 기술, 인재, 관용 이라는 3T(Technology, Talent, Toler ance)를 갖추어야 한다. 대도시에는 최고대학, 정부기관, 연구시설이 있어서 최고급 연구자들이 몰려든다. 창조적인 개인은 개인의 자유와 상품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문화적 기회가 풍부한 곳에서 살고 싶어한다. 개방과 매력이 부족한 도시에서는 창조집단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소통과 관용의 문화가 있어야 기술과 인재를 유인한다고 한다. 관용이란 다름과 차이를 인내하고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양식과 가치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열린 사회가 관용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2013년 1월 현재 우리 고장 전라북도 인구 187만명 중 외국인 주민수는 2%에 해당되는 3만8000여명에 이른다. 앞으로 새만금 등 지역개발이 본격화되면, 늘어나는 기업활동의 생산력을 증진하기 위한 이주노동자의 유입과 다문화 가정의 증가 등이 예상된다. 특히 중국 등외국과의 물품과 관광, 인적교류가 늘어나면서, 전북은 세계로 도약하는 글로벌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우리의 꿈이 진정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풍부한 전통문화유산을 살리고, 한스타일, 한브랜드 등 한문화(K-Culture) 발전과 병행하여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문화가 살아갈 수 있는 소통과 관용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첨단기술 기업,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창조적 계급 구성원들이 자리를 잡고 우리가 바라는 창조적인 지역혁신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29 23:0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책방 앞을 지나다가 불교 최초의 경전이라는 ‘숫타 니파타’를 발견하였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최초로 적어 놓은 것으로 읽기 쉽고 편안한 글이다. 좋은 말씀이 많지만 법정스님이 자기 오두막 벽에 붙여 놓았었다는 문장이 맘에 들었다.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무소의 뿔이 무엇이기에 그처럼 흔들리지 말고 혼자서 가라 했을까? 30여년전 네팔에 살 때 보니 힌두국가라서 소 대신에 새까만 물소를 농사에 부리고 잡아 먹고 있었다. 그게 무소인가 했더니 아니고 네팔 남부 부처님이 태어난 지역에 사는 코뿔소가 그것이라고 하였다.영어로 라이나서러스(rhinoceros)라고 하는데 뿔이 두 개인 아프리카 것과 달리 네팔 코뿔소는 뿔이 하나로 더 희귀종이라고 하였다. 고생대에서 갓 나온 놈처럼 무식하게 생겼지만, 총알도 뚫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 껍질이 갑옷처럼 몸을 감싸고 있다. 덩치도 3톤 가깝고 뿔도 1미터에 이르니 정글의 왕이라고 할 만 하였다.1981년 내가 네팔을 떠날 때까지도 그곳은 사실상의 절대군주국이었다. 1990년부터는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나 1996년부터 시작된 공산반란은 모든 정파간 합의로 2006년 실질적 민주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와중인 2001년 6월, 왕세자 디펜드라가 역사적으로 왕실의 원수 집안인 라나족 처녀와 자신이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왕 비렌드라와 모친 샤왕비 등 왕족 7명을 만찬장에서 기관단총으로 몰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날 왕궁의 대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족이 왕의 동생 기아넨드라였다. 그는 뜻밖에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절대왕정제를 선포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다. 2008년에 네팔이 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면서 그는 왕위를 잃었고 1768년 성립된 샤 왕조는 종말을 고하였다.네팔 근무중 왕제인 그를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는 여러 이권에 개입하는 등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47년 그가 태어났을 때 왕궁 점성가는 그의 부친이 그를 보게 되면 액운이 오니 격리시키라고 해서 왕궁 밖에서 길러졌다고 한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왕실 학살의 배후로 의심을 받기도 하였었다. 그와 가까운 네팔 기업인이 한번은 나에게 무소뿔 얘기를 하였다. 사냥금지인 무소를 이 왕제가 잡는다고 하였다. 아랍 왕족이나 부호들이 그 뿔을 휴대용 칼의 손잡이에 쓰는 것을 최고로 치며, 또 이를 갈아서 최음제로 쓰기 때문에 같은 무게의 금과 바꾼다고 하면서 그에게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관심이 없다고 하니 무소의 껍질을 보여주었다. 쇳덩이처럼 단단하였다. 왕제가 잡은 것으로 싸게 주겠다고 하였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그랬던 그가 2001년 6월 왕이 될 때까지 네팔 자연보존협회 의장으로 활동한 열성적인 자연보호자라고 알려져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상한 동식물들을 정력제니 강장제니 하며 먹는 일이 많지만 효과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무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현혹되어 무고한 생명체를 죽이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무소처럼 혼자서라도 지조를 지키며 꿋꿋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15 23:02

38년만의 노고단 산행

2014년 5월 4일 아침 일찍 화엄사를 출발, 노고단을 향해 산행을 떠났다. 중학교 2학년때 보이스카웃 단원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 38년만에 기억속에 아득한 그 길을 어느덧 50대 초반의 중년의 몸이 된 필자는 다시 올라갔다. 초입부터 내내 길동무가 되어 준 계곡의 물소리, 알알이 맺힌 땀방울을 말려주는 싱그러운 바람의 손놀림, 굽이굽이 길섶마다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향연. 5월의 신록은 어느 수필가의 표현대로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살 청신한 얼굴”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리산의 대자연은 조물주의 위대함과 오묘한 솜씨를 소리높여 찬양하고 있었다. 38년전의 노고단 등반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힘든 산행이었다. 요즘은 지리산 전역에서 비박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텐트에다가 며칠치 먹거리까지 싸들고 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어른들도 힘든 화엄사-노고단 코스를 집채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지금이야 등산을 즐겨하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등산 모임이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어떻게든지 가지 않으려 했던 것도 중2때 산행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힘들어 하던 코스를 이번에 혼자서 가뿐히 올랐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친 김에 노고단-성삼재-만복대-정령치까지 10킬로미터가 넘는 산행을 계속 이어갔다. 총 18킬로미터가 넘는 강행군이었다. 작년 8월 직장동료들과 함께 2박3일에 걸쳐 성삼재-노고단-반야봉-벽소령-장터목-천왕봉-중산리 코스를 등정한 데 이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개인적으로는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한 것 만큼이나 대견스러운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이번 연휴기간 동안 여행길에 나서게 된 것은 올해 팔순을 맞는 어머니의 친정 집안 행사가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구례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길동무가 되어 모시겠다는 필자의 제안에 부모님들은 큰 아들 힘들까봐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구례 화엄사 부근 숙소에서 2박3일동안 셋이서 한방을 쓰면서 부모님과 모처럼 살갑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5월 5일에는 아버지와 지리산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을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82세지만 지금도 매일 탁구를 1시간 이상 치셔도 거뜬할 정도로 건강하신 아버지시다. 부모님은 구례 여행을 마치시고 대전 사택에서 하루 더 주무신 다음 5월 6일 서울로 떠나셨다. 출발하기 직전 어버이날 선물로 두 분만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해드렸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가 두 분의 발을 차례로 씻어 드렸다. 7~8년 전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매년 한번 정도는 부모님 발을 씻겨 드리고 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됐다 하시고, 어머니는 쑥스러워 하신다. 그래도 반강제로 세족식을 마쳤다. 어색함 속에서도 두 분의 얼굴에서 흐뭇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부모님. 두 분께 고맙기 그지 없고, 이런 훌륭한 부모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4일간의 황금연휴를 부모님과 보내도록 허락, 아니 먼저 나서 그런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적극 권유한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아무래도 이번 지리산 기행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08 23:02

가정의 달을 생각하며

최근 우리는 엄청난 사고를 당해 침통한 시점이다. 이번 사고로 200여 명의 꽃다운 나이의 자녀를 잃거나 실종 당한 부모와 가족들의 애틋한 심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진도 팽목항의 부두에서 애타게 살아돌아 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름가까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평상시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과 뭉클한 애정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빈다.어렵고 힘들 때면 가족은 큰 힘이 된다고 한다. 1973년 영국에서 있었던 대형 화재사건 때의 일이다. 섬머랜드 호텔 화재로 3000여 명의 투숙객 중 5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부상한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서 가족단위의 휴양객들은 서로를 찾아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사력을 다해 피난해서 대부분 생존한 반면, 그렇지 않은 휴양객들은 제각기 흩어졌고, 불과 4분의 1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위기상황에서 가족이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끈끈한 유대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설날이나 추석이면 분가된 가족들이 본가에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 세배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남아 있다. 그 어느 나라 못지않은 끈끈한 가족애가 살아있다. 그런데 최근 가족 상황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혼 가구가 매년 늘어나, 2000년 25만 가구에서 2010년 기준 52만 가구에 달하고, 이와 연계되어 한부모 가구도 2000년 112만 가구에서 2010년에는 159만 가구에 이른다. 금년 4월 현재 결혼 이주여성이 28만명으로 다문화 가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홀로사는 독거노인 가구도 2000년 54만 가구에서 2013년 125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7%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 가구수도 2010년 기준 1만2,848 가구이다. 한 가구당 가구원수도 점점 줄어들어 90년 3.77명에서 2010년 2.69명에 불과하다. 1인 가구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비율이 2005년 전체 가구의 20%에서 2010년 23.9%에 달한다. 일본은 2010년 기준 31.2%라고 한다.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가정을 돌보는 시스템은 가정 자체에만 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많은 지역에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가정의 어려움이 있다면 도울 수 있는 길을 사회가 나서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밥상머리 대화라는 게 있어 왔다. 식사때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면서 예법도 전수하고, 집안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이다 가족간 식사 횟수가 많은 집은 그렇지 않은 집에 비하여 자녀의 우울증, 자살률 등이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가정양립 여건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하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다시한번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가정의 달은 지난 2005년 1월부터 시행되는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시행되었다. 가정의 중요성을 고취하고 건강가정을 위한 개인, 가정,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취지이다. 5월 한달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대화와 소통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고장 전북에서 부터 어려운 가족을 서로 돌보고, 가족과 함께하는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01 23:02

문화의 힘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인가? 중동의 부국들은 선진국 대접을 못 받으나 유럽의 소국들이 존중 받는 것은 왜 그런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결과로 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서‘문화의 힘’을 생각한다.뉴질랜드 오클랜드박물관 입구에는 신라토기부터 조선백자에 이르는 150여 점의 우리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 한국과 사업하던 분이 모아 박물관에 장기 대여하였는데 1994년에 그 분이 사망하여 국제경매에 팔릴 형편이었다. 남반구 최대의 한국예술 컬렉션이 세계적으로 흩어질 처지이니 이를 구매하여 박물관에 장기 임대해 줄 독지가를 찾아 달라고 박물관장이 협조를 요청하여 왔다. 한인 백만장자들의 의사를 타진하니 모두 부정적이었다. 정부에 건의 끝에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입하여 지금까지 거기에 장기 임대로 전시하고 있다. 일 년에 수십만 명이 와서 보니 우리나라에 가져 온 것보다 더 효과적인 문화 홍보가 되고 있다.1999년 가을 오사카를 방문하는 길에‘시립동양도자미술관’을 찾았다. 재일교포 이병창씨가 기증한 수 백점의 우리 옛 도자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주 출신으로 해방 후 오사카 영사사무소에 근무했던 이병창씨는 일본에서 건설업을 하여 모은 돈으로 우리 도자기를 구입하였는데 이를 오사카시에 기증하고 시는 이를 전시할 박물관을 건축한 것이다. 모국에의 기증도 검토하였으나 일본에서 돈을 벌어 일본 내에서 도자기를 사 모았으며 일본인들이 이를 보아야 재일교포들이 긍지를 가지고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우리보다 더 잘 평가하는 일본이 이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고 하였다.필자는 LA총영사로 근무 중 미국내에 한국정원은 하나도 없으나 일본정원은 19세기 후반 이래 주요 도시에 수백개가 조성되어 일본의 문화국가 이미지를 대중 속에 뿌리박는데 큰 기여를 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정원이 문명화된 인간의 의식 속에서 차지하는 열망의 비중을 생각해 보라. 에덴동산, 바빌론 정원, 무릉도원 등 인간은 정원을 지상의 천국으로 꿈꾸지 않았는가? 노력 끝에 LA 카운티 수목원내에 5000평 규모의 한국정원을 최고의 위치에 조성하도록 수목원 계획에 포함시켰고, 현지 교민들을 중심으로 40만 달러를 모아 2007년 말 수목원에 기증하였다. 이 자금으로 2008년 10월 윤선도의‘오우가’를 개념으로 하는 기초설계가 작성되었으나 1000여만불이 드는 건설비 문제로 무산상태에 있다. 미국 뉴멕시코의 알버커키나 아리조나의 피닉스는 근래 시에서 수백만 달러를 기채하여 일본정원을 조성하였다. 미국 각 도시는 일본정원이 없으면 뭔가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에게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후에 미국이 일본의 영토 대신에 한반도 북부를 소련에 양보한 데에는 일본의 하드파워 못지않게 오랫동안 그 문화예술에 심취하고 그 소프트 파워를 평가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우리에겐 인류역사상 두번째로 자기를 만든 기술과 예술성, 한글이라는 우수한 표음문자를 만든 능력, 독특한 판소리 음악과 고유한 정원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문화·예술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성장된 하드 파워에 걸 맞는 소프트 파워를 발전시켜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4.17 23:02

블라인드 사이드

최근 A 선교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A 선교사는 2006년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외딴 섬 잔지바르에서 학교와 병원을 짓고, 고아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메일에는 최근 근황과 함께 재정형편이 급속히 어려워졌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다행히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필자가 A 선교사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 근무할 때였다. 소년원 출신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들의 인생스토리를 담은 동영상의 제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로 버려졌고, 청소년 시절 소매치기가 되어 소년원을 드나들던 비뚤어진 그 아이가 지금은 지구 건너편 아프리카로 건너가 선교사가 되었다는 드라마틱한 감동스토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A 선교사의 성공은 한 멘토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해 팔순 가까이 된 그녀는 30년 넘게 꾸준히 소년원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해왔다. A 선교사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그의 삶속에서 어머니와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학자 에미 워너의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워너 교수는 1955년에 카우아이 섬에서 가장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신생아 201명의 성장과정을 40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중 3분의 2는 자라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나머지 3분의 1에 해당하는 72명은 모범적으로 성장했다. 워너 교수는 72명이 역경을 이겨내고 반듯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연구를 집중했고, 그 결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한 이 72명의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해 냈다. 그 공통점은 성장과정에 그 아이들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그들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그동안 비행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중 상당수는 워너 교수의 지적대로 올바른 성장에 필요한 분량의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아이들이었다. 자존감이 낮으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성인 강력범죄자의 가정환경을 심층분석한 연구결과도 거의 예외없이 범죄자들이 주로 고아이거나 결손·조손가정 출신으로 대부분 불우한 청소년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사람이 어느 부모밑에서, 어떠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날지는 본인이 선택할래야 선택할 수 없는 사항이다. 자신이 도무지 선택할 수 없는 부모와 가정환경, 그것만으로 인생의 운명이 결정되고 고착되어 버린다면 그 사회는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받아볼 변변한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내야 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얼마 전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시야의 사각지대를 뜻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결손가정에 태어나 거리로 내던져진 한 흑인소년의 삶이 한 백인여인의 참사랑에 의해 기적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독자들도 꼭 한번 보기를 강추한다. 우리 사회의 슬픔과 절망의 ‘사각지대’가 하나 둘씩 없어지기를 기대하면서.

  • 오피니언
  • 기고
  • 2014.04.10 23:02

급변하는 세상, 전북 3.0 구현

요즘에는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카톡을 확인하고, 식사할 때도 스마트폰을 찾는 일이 많다. 전철이나 버스에서도 고개숙이고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까지 꼬리처럼 스마트폰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요즘 카페가 급격히 늘어났다. 카페에서는 커피 한잔 마시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노트북 들고와 장시간 앉아 일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이에 맞추어 카페들도 와이파이와 인터넷 환경을 갖추어 디지털화에 적극이다. 스마트 기술의 혁신은 산업, 생활방식, 사고방식, 문화 등 우리사회 제반 영역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아날로그 시대, 산업화 시대에는 도시는 항구주변에서 발달하고, 철도와 자동차가 중요하며, 공장지역, 주거지역, 상업지역이 분리되어 이를 연결하는 대중교통과 도로망이 만들어 진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는 스마트 워크 방식으로 바뀌어 굳이 사무실에 가지 않고도 대부분 집에서 일하고, 업무적 만남은 자꾸 줄어들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출퇴근을 위한 자동차 수요는 줄고, 집은 일과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형태로 변화하고, 남는 시간이 많으니 걸어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공원같은 생태환경이 중요해 질 것이다. 이에 따른 지방행정의 정책도 변화될 것이다.정부 역시 급속한 사회 변화에 맞추어 정부운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정부 3.0은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여 투명한 정부, 서비스 정부, 유능한 정부를 구현하고자 한다.디지털의 세계는 무한 복제가 가능하여 풍부한 세계로서 너그러워지고 공유가 일어난다. 디지털 시대에는 나눔, 공유, 개방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국의 아마존 닷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닷컴 같은 회사는 자신들의 핵심자원을 공개한다. 그리하여 소규모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자원과 브랜들를 활용해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해놨고, 이로 인해 알리바바의 경우 기업공개를 통하여 3년동안 만들어진 일자리가 100만개라고 한다. 알리바바가 직접 일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든 인프라로 인해 직원 4∼5명의 가내수공업 수준 기업들이 무수하게 생겨난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정부3.0 구현을 위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데이터에 접근하고, 데이터를 가공하고 활용하여 서비스를 개발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시민과의 소통, 시민의 정책참여를 통해 정책수요자의 요구를 더 정확히 파악하여 국민의 다양한 유형과 특성, 선호 등을 고려하여 개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수요자에게 더욱더 다가가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의 변화는 인류 전체 역사의 변화와 맞먹는 수준이고, 지난 20년간의 변화가 100년안의 변화보다도 크다고 한다. 앞으로 짧으면 10년, 늦어도 20년 이내에 우리의 생활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3D 프린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기술혁신과 변화의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측하고 선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각 산업과 기업, 국가와 지역의 미래가 달라진다. 전북이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통해 전 산업과 일상적 경제활동은 물론, 일하는 방식 등에 있어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진한다면 디지털 시대에 우뚝 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북 3.0 시대가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4.03 23:02

고향의 봄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개나리, 진달래, 매화, 산수유가 활짝 피었고, 푸른 새싹들이 땅에서 나무에서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돋아나고 있다. 길거리 사람들의 모습은 생기가 있고 발랄하다. 옷차림도 예쁜 꽃들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변했다.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어릴 적 고향이다.유년 시절,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 산과 들녘을 향해 마냥 뛰놀던 추억. 뒷동산에서 깡통으로 불장난을 하다 산 전체를 온통 시커멓게 태웠던 기억. 또한 동네 아낙네들이 양지바른 텃밭이나 길가에 모여 쑥과 냉이를 캐던 모습들도 눈에 선연하다. 그리고 봄바람이 불면 젊은 청춘들은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지금쯤 내 고향에는 봄이 오고 있겠지.소년이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겼다. 35년째 타향살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필자뿐만 아니라 고향을 떠나온 모든 분들은 봄이 오면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 이유는 고향이 삶의 뿌리이고 추억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고향에 부모 형제와 선영을 두고 있는 출향민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생각으로 눈시울을 적실 것이다. 지금 고향 어르신과 친구들은 봄을 맞이하고 있겠지.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작년에 우리나라 경제는 저성장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다. 군산 국가산업단지의 경우 가동률이 70% 안팎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기업인과 근로자 모두가 움츠렸던 한해였다. 다행히 올 들어 경기가 서서히 꿈틀거린다고 한다. 그 여파가 전북에까지 미쳐 모두에게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정부가 2013년 귀농인구를 발표했는데, 다행스럽게 전북지역으로 귀농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참으로 기뻐할 일이다.봄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정부는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위해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창조경제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창조경제란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미래의 성장산업을 육성해 가는 것이다. 전북이 그 중심에 우뚝 서야 하며, 청년 기업인 또는 벤처들을 위한 비즈니스 밸리(business valley)를 선점해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전북지역으로 모이고, 지역내 대학이 성장해가며, 새로운 산업을 통해 발전해 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익산의 경우 ‘농업 및 식품관련 창업밸리’를 국가식품클러스터 단지내에 조성해야 한다. 이럴 경우 농촌지역이 창업의 메카로 발전해 가며, 단순한 농업이 1차(생산), 2차(가공·유통), 3차(관광 등 서비스)산업이 융합되어 6차(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많은 출향민들이 고향에 대해 걱정한다.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작지만 강한 전북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며칠 지나면 봄은 다시 추억으로 남는다.초등학교 시절, 아침 일찍 동네 어귀에 모여 씩씩하게 교가(校歌)를 부르며 등교하던 모습이 선연하다. 그 시절 선배, 친구, 후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주말에는 고향마을을 찾아 냉이 무침과 쑥국을 맛보면서 막걸리에 취해 옛 추억에 잠길까 보다. 내 고향 남쪽나라에는 봄이 오고 있겠지. △김수흥 실장은 익산이 고향이며, 이리고, 한국외대 영어과, 미국 오리건대대학원을 졸업했다. 입법고시(10회)를 거쳐 국제국 미주주재관(워싱턴), 국제국장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27 23:02

한국 문화의 세계화

유럽과 미국 등 서구문명권에서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서양사회의 인식이 그간 많이 변화해 온 것에 금석지감을 느낀다. 오랫동안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등의 문화만을 주로 접해온 서양사회도 90년대 말부터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문화에 어느 정도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한국 상품의 세계적 진출이 그 기반이 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2000여년 전 진나라 때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과 교류를 하면서 서양문명과 쌍벽을 이루는 문명의 존재를 알린 바 있다. 일본도 16세기 중반이래 제한된 지역에서지만 서양과 교류의 문을 계속 열어둠으로써 중국 외에 또 하나의 수준 높은 문명국이 동양에 있음을 알려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조선시대 500여년간 사대사상과 폐쇄적 유교이념에 억매여 우리의 존재를 서구에 각인시키지 못하여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도자기, 팔만대장경, 불교건축 유산, 한글, 판소리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급문화 콘텐츠를 상당 수 가지고 있다. 한류가 말 그대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일시적 유행이나 흐름이 아니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문화로 존속하려면 대중문화 위주가 아닌 이러한 고급 전통문화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한글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많은 정부예산을 들여 이를 외국 소수 문맹부족에게 보급하는 등의 일은 무모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같은 표음문자인 로만 알파벳이 이미 오래 전에 세계를 제패했기에 이에 우리가 도전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남이 갖지 못했거나 세계적으로 경쟁 가능한 우리의 고급문화와 전통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알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2차대전중 적국으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서양의 변함없는 호의적인 인식은 오랫동안 독특한 일본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데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일본정원은 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수백년간 서양인들을 매혹시켜왔다. 미국 내 수백 곳과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일본정원은 서양인들에게 어릴적부터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중국도 이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정원을 세계 각지에 빠르게 보급하고 있다. 우리도 세계에서 자기식 전통정원을 주장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의 하나이나 미국에 조차 제대로 된 우리 전통정원이 하나도 없다. 이에 필자는 아름다운 LA카운티 수목원내에 최고의 부지를 확보하고 미국 내 최초가 될 본격적인 한국정원 조성을 추진하였으나 2008년5월 갑작스런 귀국으로 중단되어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현지 한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무관심으로 1천만불에 달하는 예산 확보가 안되어 이제 미국측이 부지 제공을 취소하려는 상황이 되었다.무형문화인 역사 속의 사건들도 그림·음악·영화 등의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한국문화를 세계화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세계화와 문화융합의 시대에 전통문화만 고집하는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되지만 세계화될 수 있는 고유문화 콘텐츠를 찾아내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나가는 것은 한류를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인 현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20 23:02

화이트데이와 용기

실패를 두려워 말고 인생의 바다 향해서 용감하게 진격하라며칠 남지 않은 3월 14일은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과 함께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4월 14일 블랙데이는 연인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386세대인 필자에게는 낯선 기념일들이다. 국적 불명이든, 기업의 상술이든 간에 짝을 찾아 나선 청춘들의 푸르른 젊음이 필자의 눈에는 부럽기만 하다. 화이트데이에 가슴 속에 품어온 연정을 상대에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가수 송창식의 ‘맨처음 고백’의 노랫말을 보면 그 애타는 심정을 잘 알 수 있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 서서 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 화를 내면 어쩌나 토라지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달 두달 석달. 내일 다시 만나면 속시원히 말해야지 눈치만 살피다가 일년 이년 삼년.”노래의 주인공은 왜 주저하고 머뭇거렸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두려움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정작 거절당했을 때 받게 되는 상처가 두려웠으리라. 사람의 마음에는 자신의 뜻이 좌절되는 것을, 상처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방어기제가 내장되어 있다. 올해도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새해 시작과 함께 품었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분들이 많을 것이다. 게으름도 원인이겠지만, 사랑고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탓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C.S. Lewis라는 작가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서 “실망감(disappointment)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 왔던 소망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비로소 나타나는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Lewis의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실망감은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다. 만일, 근자에 들어 실망감을 느낀 적이 없다면 문제일 수 있다. 아예 꿈이 없거나, 꿈이 있다 하더라도 꿈으로만 머물러 있고 이를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책 제목처럼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배는 항구에 가만히 정박해 있으면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배의 본래 목적이 아니다. 배는 저 넓디 넓은 대양을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야만 비로소 배다운 배가 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새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난파의 리스크가 있더라도 말이다. 도전해야 한다. 한 때 실망을 맛보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신학기다. 인생의 선배로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심정으로, 앞길이 구만리같은 젊은 학생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보다, 꿈을 꾸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는 점이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이지, 꾸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면 무엇을 해서 드는 후회보다 하지 않아서 드는 후회가 훨씬 많다는 점을 꼭 얘기해 주고 싶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과 함께 저 드넓은 인생의 바다를 향해 용감하게 진격하라고 말하고 싶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13 23:02

아기 울음소리가 그리운 시기

요즘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난 2월 28일 발표한 통계청의 ‘2013년 출생·사망통계 잠정치’는 그러한 경향을 뒷받침한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수라 하는 작년도 합계출산율은 1.19에 불과하다. 2011년 기준 평균 합계 출산율이 1.70인 OECD 34개국 중 합계 출산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수를 의미하는 조(粗)출생률도 8.6명으로 전년보다 1.0명 감소하였으며 관련 통계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역대 최저치라 하니 너무 우려스럽다. 지난 2009년 합계 출산율이 1.15명일 때, 삼성경제연구소 전망에 따르면 오는 2100년에는 이대로 가면 한민족 총 인구가 현재의 절반 수준인 2468만명으로 감소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500년이면 현재 인구의 0.7%인 33만 명만 남게 된다고 하니, 이쯤되면 한민족은 소멸위기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만혼에다 결혼기피 현상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초혼연령은 32.1세, 여성의 초혼연령은 29.4세라 한다. 초혼연령의 증가는 가임기간의 감소로 이어져 출산율 감소의 원인이 된다.또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어렵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수입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서 그리고 과도한 주거·결혼비용 등이 결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혼해도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으면, 결혼을 주저하게 되고, 자녀 수도 줄이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자녀의 양육비 부담이 상당한 폭으로 늘어난 것도 적은 수의 자녀를 선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기준 자녀 1인당 대학졸업(22년간)까지의 총 양육비는 3억 896만 4000원으로 추정되어, 2009년(2억6204만 4000원) 대비 크게 늘어났다. 특히 사교육비가 월 22만 8000원으로 비중이 제일 높다. 사교육비 경감을 통한 저렴하고 균등한 교육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점점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전북에서 저출산 해결은 더 절박한 과제이다. 반듯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지역의 젊은이들이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 취업할 기회가 많아지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생활안정과 보람을 찾아서, 결혼도 적기에 하고, 출산율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요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일과 가사의 이중부담으로 출산을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다. 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생활양식이 정착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일-가정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 촉진이 필요하다. 원격, 재택 근무, 시차출퇴근, 집중시간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로의 전환 등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지난 2월 4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방안’으로 대체인력지원금 인상, 시간제 보육반 확대, 초등 돌봄교실 운영, 시간선택제 채용 전환 확대, 스마트워크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지역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지자체와 기업의 협조와 지원이 필요하다. 전북에서 부터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도처에 울리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06 23:02

우리에게 외교란 무엇인가

36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후, 이제 외교에 관해 가르치며 외교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서양의 전통적 개념으로는 외교는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19세기 중국이 서양세력에게 굴욕을 당할 때까지는 외교의 개념이 서양과는 달랐다. 서양에서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을 통해 국가의 크기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가 불가침적인 주권을 가진다는 원칙이 확립되었으나 동양에서는 19세기까지도 패권국인 중국에게 모든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는 관계여서 대등한 국가간의 외교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었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돌봐준다는 “사대자소”와 조공을 바치고 답례를 하는 “조공회사”가 대중국 관계의 원칙이었고 이에 반하면 대국의 징벌이 있을 뿐이었다. 1637년 1월 30일 조선의 인조가 송파나루에서 단상의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박는 ‘3배9고두례’를 하며 대국에 항거한 것을 사죄하는 치욕을 당한 “삼전도의 굴욕” 이 이러한 냉엄한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조선과 일본, 유구, 월남, 태국 등 중국의 주변국들은 상하 관계의 국제질서 속에서만 살아 온 셈이다. 이들 주변국들간 상호 관계는 중국 중심의 큰 질서 안에서 “교린”이라는 대등한 교류가 있을 수 있었으나 매우 제한된 범위의 관계라서 외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1842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이러한 중국 중심의 동양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서양식 외교개념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서양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류를 해온 일본은 이를 빨리 간파하고 ‘脫亞入歐’의 기치를 내세워, 사대질서 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한 조선 등을 어렵지 않게 식민지화 하였다. 2차대전 이후에는 미·소 대결을 거쳐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확립되었으나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보통국가화로 인해 미국이 동북아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이에 따라 한국이 다시 19세기말~20세기 초와 같이 강대국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희생양이라는 것은 한국이 다시 주권을 잃을 우려가 아니라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 더 확고하게 들어감으로써 북한이 사실상 우리와 관계가 없는 땅이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외교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의 문제라는 차원임을 인식하게 된다. 통일을 위한 외교에서 전쟁과 평화는 국제관계의 상황이면서 또 외교의 수단이기도 하다. 19세기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외교)의 한 방법” 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는 비스마르크의 독일과는 달리 통일외교의 수단에서 전쟁을 배제해야 되니 한 손을 묶고 싸워야 되는 형편이다. 평화적인 수단으로만 통일을 달성해야 하는 우리에게 통일의 시간이 허락될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미국이 통일에 협조적일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위정자와 이를 선출하고 감시하는 백성들의 외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책임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외교나 국제질서의 변화에 무지해서 주권까지 잃었던 과거를 가진 우리는 역사에서의 교훈을 되새기며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2.20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