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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관찰자의 모순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 굳이 동·서양을 비교하자면 외형적으로 서양적 사고방식이 조금 더 객관적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성이 외형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한의학처럼, 서양 의학이 보기에 허술한 듯한 동양적 사고(思考)가 더 현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매사가 그렇겠지만 얼굴을 맞대고 만나 특정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객관성이란 잣대를 설정하기는 정말 어렵다. 달리 말하면 결론을 얼추 내려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악의성을 전제로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언론에서는 이처럼 얼굴을 맞대고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인터뷰(interview)라 하기도 하고 면접, 대담, 회견 등을 들춰보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넓은 의미로는 조사·진단·시험·취재 등의 목적으로 특정한 개인·집단과 대면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조사기술로서의 면접법은 자발적으로 의견을 말하게 하는 식의 임상적 연구에서 행해지는 비지시적은 자발적으로 의견을 말하게 하는 식의 임상적 연구에서 행해지는 비지시적 면접(nondirective interview)과, 질문지나 테스트지 등을 이용하여 행하는 지시적 면접(directive interview)으로 대별된다.’면접 또는 인터뷰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 역시 신문방송학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면접과 관련해서 관찰자의 모순(observer‘s paradox)이란 용어가 있다. 면접을 시도하면서 아무리 객관성을 유치하려 애를 쓴 들, 실제로는 자신이 아는 만큼 혹은 말 할 줄 아는 만큼만 들린다는 이야기이다.물론 이러한 관찰자의 모순은 의도적 또는 악의적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이상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면접이 학문적인 선언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웬만큼 알고 또 경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전달했던 내용이 방송에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활용(?)되는 묘기를 목격한 사람들은 사실만을 추구하고 전달한다는 언론의 구호가 얼마나 가식적인지를 체감한다. 윤리적 경계를 넘어가면서 취재한 결과물의 윤리를 언급했던 방송물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남을 욕하기보다는 나에게 허물이 없나 다시 한 번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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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10 23:02

[오목대] 어설픈 취재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신문중 하나다. 보도의 정확성과 심층성,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런 이 신문이 지난해 5월 사고(社告)를 통해 독자들에게 뼈아픈 사과를 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주디스 밀러(57) 기자의 오보(誤報) 때문이었다. 밀러는 28년간 NYT에 몸 담으며 미국 언론인이 부러워 하는 퓰리처상, 듀퐁상, 에미상을 수상한 탁월한 기자였다. 그녀는 2001년 9·11 테러 이전에 이미 알 카에다와 테러조직에 관한 심층 보도로 각광을 받았다. 9·11 이후에는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해서 은닉해 두고 있다는 특종을 터뜨렸다. 다른 언론들은 이같은 특종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는 이라크 민족회의(INC)라는 망명조직이 던진 미끼였다. 마침 이라크를 공격할 명분을 찾던 부시 대통령은 밀러의 기사가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부시는 이를 빌미로 이라크전쟁을 시작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후 이라크를 샅샅이 뒤졌으나 핵무기나 화학무기는 나오지 않았다. 밀러의 특종은 하나도 입증되지 않았다. 당연히 NYT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NYT는 28건에 달하는 밀러의 이라크 기사를 조사했고 어떤 부분이 사실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고 사과했다. 그녀 역시 사임하고 말았다. 그녀는 전쟁에 목 말라 있던 부시정권과 네오콘, 그리고 이와 연계된 이라크 망명조직의 정교한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한 셈이다.최근 MBC PD수첩팀의 황우석 교수 관련 보도도 이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 이번 취재는 황교수팀의 내부제보에 의해 비롯되었다. 제작진은 이를 믿고 연구원의 난자제공 의혹과 연구결과의 진위여부에 대한 취재에 돌입했다. 그러나 취재원에 대한 지나친 강압 등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진위여부는 뒷전으로 밀리고 시청자들의 엄청난 저항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과방송을 내보내고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취재팀도 대기발령이 났다.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줄기세포 연구가 차질을 빚고 한국 과학계의 신뢰가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보자가 악의를 가진 배신자인지 용기있는 의인(義人)인지 아직 알수는 없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어설픈 취재가 진실과 국익을 해칠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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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9 23:02

[오목대] 정보 양극화

최근 우리사회 최대 화두는 양극화로 모아지고 있다.수도권과 지방,대기업과 중소기업,수출과 내수,정규직과 비정규직등 사회 구성요소간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한국사회의 고질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양극화가 결과적으로는 빈곤층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양극화는 정보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도시의 저소득층,노인,장애인과 농어촌· 산간벽지 주민등 정보화 취약계층의 개인용 컴퓨터(PC) 보급률은 63.3%,인터넷 이용률은 28.9%에 불과해 도시 중산층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이같은 정보격차는 빈부차이를 심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현재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만도 12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정보접근및 정보이용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이다.전국에 구축된 초고속 인터넷망을 활용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고,각종 민원,금융,업무 등을 컴퓨터를 이용 처리하고 있다.원격교육이나 원격진료 등이 인터넷과 연결돼 있을 정도이다.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IT강국’임을 내세워도 세대간· 지역간 또는 취약계층의 정보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진정한 ‘IT강국’이라 할 수 없다.정보화 소외계층의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 접근성 향상이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정부가 이같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내년부터 2010년 까지 모두 1조8858억원을 투입하기로 한것은 시의적절하다.이를 통해 정부는 1500만명에 이르는 취약계층의 정보화 수준을 국민 평균치 대비 현재의 53.5%에서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취약계층이 정보통신 시설과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이들을 도와줄 정보격차 해소 연구센터를 설립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특히 장애인을 위해 통신중계 서비스(TRS)를 운영하고,고령층의 노후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유비쿼터스 건강관리등 디지털환경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사회안전망 확충 차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정보격차는 자칫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구성원 모두가 유비쿼터스 사회로 함께 가는 의미에서도 취약계층의 디지털 편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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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8 23:02

[오목대] 후백제 왕궁

견훤은 900년 도읍지를 전주로 옮겼다. 그 당시 견훤이 세운 왕궁이 중바위에서 전고 동편의 물왕물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 견훤고성이라고 쓰여져 있고 <동국여지승람>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견훤의 고토성이 언급되어 있는 점을 보면 견훤의 왕궁이 중바위에서 물왕물에 이르는 어디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익산 왕궁평이 견훤의 왕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그렇지만 아직까지 어디에 견훤 왕궁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전주 국군묘지 위에서 중바위 사이에 있는 동고산성 자리가 후백제의 왕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글자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기와조각, 봉황처럼 생긴 새가 새겨진 기와조각, 그리고 무사가 좌우대칭으로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왕궁의 증거가 아니다. 통일신라에 있던 것들이기에 통일신라시대 것일 수도 있다.또 지난 1992년 동고산성에서 발굴된 대규모 유적지를 왕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정한 간격에 따라 230여 개의 초석이 놓여있는 건물지를 거대한 2층 건물로 해석해 왕궁건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10여개의 건물지가 더 발굴됐으며 이들도 왕궁건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왕궁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하나도 없다. 왕궁일 수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 마구간 건물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왕궁으로 보기에는 아직 확실한 유물이 없다고 생각한다.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주시는 후백제 왕궁이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곳을 발굴하고, 복원을 하여, 역사공원을 만들겠다며 사업에 나서고 있다. 전통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2014년까지 총 110억원을 투입하여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곳을 중심으로 후백제와 관련된 건물복원, 문화상품 개발, 복원지역 관광자원화까지 하려는 생각은 성급하다. 먼저 발굴을 통해 후백제와 관련된 확실한 유물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확실한 유물이 없으면 학계의 공인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확실한 유물을 찾아낸 다음 학계의 공인을 받아 사업을 해도 늦지 않다. 사업을 잘못 서두르다 미륵사지 동탑처럼 건물을 날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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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7 23:02

[오목대] 옳고 그름

사람은 약점들과 어두운 부분들을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에도 잘못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기에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잘못을 범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임을 의미한다.물론 부단한 자기 수련을 통해서도 우리는 잘못을 하나도 범하지 않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은 언제나 다시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자체가 잘못일 수 있기 때문이다.인생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와 실수를 범하는 일도 있다. 한편으로는 걸핏하면 남의 잘못은 지적하여 핏대를 높이면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쉽게 용서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제3자가 되어 바라보아야 한다. 옳은지 또는 그른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른 줄 알면서도 남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더 크게 하는 일이다. 옛 어른은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 하였다. 반성하는 것 자체가 인간다울 수 있다. 자신이 범하는 잘못은 보통으로 생각하고, 걸핏하면 남의 잘못은 특별하게 생각하면서 지적하고 꾸짖는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때는 먼저 자신의 잘못을 비추어 보라. "자신을 꾸짖으면 밝아지고, 자신을 용서하면 어두워진다."고 하였다.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점점 사람의 행실이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금방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안다. 다만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이 강해서 늘 그릇된 행위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모방송사의 제작진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나 사과방송까지 했다. 뭘 잘못했는지를 그들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적 정서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는 잘못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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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6 23:02

[오목대] 연탄 예찬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중략).../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안도현 님의 '연탄 한장' 이라는 시는 평소 하찮은 땔감 정도로 생각해서 아무렇게나 취급해왔던 연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제 몸을 태워 방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탄, 밥 짓고 찌게 끊여 허기진 배를 채워주게 하는 연탄, 다 타고난 다음에는 눈 내린 비탈길에 뿌려져 사람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들어 주는 연탄, 그 끝없는 희생에 우리는 문득 숙연한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연탄은 60~8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었다. 연료혁명에다 주거환경까지 획기적으로 개선된 요즘이사 연탄가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당시에는 중산층 이하 태반의 가정이 연탄없이 겨울을 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 시절 가장들의 푸념이 김장김치 한 독에 쌀 한가마니, 그리고 연탄 백장만 있으면 나랏님도 안부럽다고 했던 것을 보면 연탄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대단했나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경기가 장기복합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기름값과 가스값이 치솟으면서 연탄을 찾는 서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연료값이 부담스러운 가정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교체하고, 사무실 난방도 기름이나 전기에서 연탄으로 바꾸는 경우가 크게 늘고있다는 것이다. 서민살기가 더 고달퍼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기는 하나, 모처럼 연탄이 뜬다고 하니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꼭 싫지만은 않다.여기서 다시 안도현 님의 시 한편을 더 빌린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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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5 23:02

[오목대] 경우의 수

엄마와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의사선생님께는 절대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리고 그 아들은 진찰실로 들어갔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엄마와 아빠가 진찰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본 광경은 우려했던 상황 그대로였다. 아들은 손에 물총을 들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얼굴에 물기가 흥건한 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이 내용은 아주 오래전 네 컷 만화 중 하나다. 다른 장르에도 이런 기능이 있기는 하겠지만 소위 ‘행간의 의미’를 읽는 재미는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단 네 장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도입, 전개, 갈등, 절정, 결말까지 모두 풀어 내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다시 앞서의 이야기를 이어 보기로 하자. 아이가 장난을 꾹 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장난을 먼저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의사 선생님이었다. 이상하게 생긴 망치를 들고 무릎 연골을 툭툭 쳤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장난을 거는 의사선생님으로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이는 단지 의사 선생님의 도전을 받아 주었을 뿐이다. 물총으로 말이다.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무릎 연골을 쳐서 그 반응을 보려는 단순한 진료행위에 지나지 않는데 아이가 먼저 장난을 건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 두 등장인물의 견해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만화는 가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이 현실에 미치는 파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그 갈등의 결과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황우석 교수팀과 모 언론사와의 갈등이 그런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문제를 제기한 언론사에 대해서 황 교수팀은 ‘언론은 검증자격이 없다’며 응대를 거부하고 있다.이런 상황의 해석에 대한 경우의 수를 보면 이렇다. 황 교수팀의 연구가 옳고 언론이 자격이 없을 가능성, 황 교수팀의 연구가 옳기는 하지만 언론 역시 검증할 자격도 있거나 황 교수팀의 연구에 문제가 있고 언론이 검증할 자격이 있거나 황교수팀의 연구에도 문제가 있지만 언론 역시 검증할 자격이 없을 가능성 등이다.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둘째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진행중인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른다. 그런 형편에 보도국까지 가세한 모양새가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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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3 23:02

[오목대] 불성실한 교수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얼마전 서울대 교수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연구와 강의에 불성실한 일부 교수들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정 총장이 제시한 ‘불성실한 교수’의 유형은 세가지다. △1주일 중 하루에 수업을 몰아 넣고 나머지는 집에서 머물며 △주중에 골프를 치고 △대외활동에 치중하거나 지나치게 해외여행이 잦은 경우를 꼽았다. 평소 정부가 대학에 관여하는 것을 비판해 왔던 정 총장이었기에 이같은 자아(自我)비판은 신선하게 들렸다. 이러한 쓴소리가 서울대 교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혹 지방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지방대 교수들은 지금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지방국립대와 사립대, 전문대 등 입장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부분 3중고를 겪고 있다. 신입생 모집난과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 그리고 부족한 재원이 그것이다. 나아가 뽑아 놓아도 편입시즌만 되면 또 한바탕 연쇄이동으로 홍역을 치러야 한다.특히 요즘같은 입시철이 가장 고달프다. 도내의 경우 고교졸업생수가 대학정원의 65%밖에 되지않아 학생 모시기에 모든 교수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고등학교를 찾아가 입시설명회를 갖는 것은 기본이고 캠퍼스 투어며 수시합격자 해외연수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일부 대학은 교수당 신입생수를 할당하기도 하고, 홍보차 나간 고교에서 학생유치에 따른 뒷거래를 은연중 비칠때는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이러고도 학생수가 채워지지 않으면 폐과로 몰려, 전공이 다른 학과로 옮기거나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 내년부터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을 공개하는 ‘대학정원 공시제’를 도입함에 따라 더 죽을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는 뒷전이고 강의 또한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대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지방교수들도 없지 않다. 특히 서울에 가족을 두고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일주일에 2-3일 내려와 강의시간만 때우고 서울로 올라가 버린다. 방학때는 연구실에 먼지만 쌓인다. 지방에 정(情)도 없고 여차하면 뜰 차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 강의에 충실할 리 없고, 학생지도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지방대에서 불성실한 교수는 서울에서 출퇴근 하는 경우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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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2 23:02

[오목대] '손안의 TV'

‘손안의 TV’라고 불리는 지상파DMB(이동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오늘부터 수도권에서 실시된다.KBS 등 4개사가 방송을 시작하며, 2개 방송사는 시험방송을 시작함으로써 본격적인 DMB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아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6월 본방송을 시작한 위성DMB에 이어 세계 최초로 지상파DMB 까지 서비스하는 명실상부한 이동휴대방송 선두주자 자리에 서게 됐다.정보통신(IT) 강국임을 다시한번 세계에 알린 셈이다.지상파DMB는 영국BBC 방송의 기존 아날로그 음성송출을 디지털로 바꾼 DAB(디지털 오디오방송)를 발전시킨 방식이다.DAB의 부가서비스인 문자방식에 주목하여 동영상 전송까지 가능하게 우리가 개발한 것이다.국내에서 개발된 방송표준은 유럽으로 다시 건너가 유럽표준으로 채택돼 향후 국내 기술의 국제표준화 추진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휴대전화나 단말기를 통해 뉴스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시간과 공간 제약없이 즐길 수 있는 지상파DMB는 위성DMB와 함께 현대인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미디어로서,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네트워크에 접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 도래의 첨병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진다.전문가들은 지상파DMB의 성장 잠재력을 과거 유선전화가 ‘1인 휴대전화 시대’에 도달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올해 40만명 정도인 서비스 이용자가 2010년에는 약1026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같은 DMB의 경제적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DMB의 출현에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휴대전화 중독계층을 더욱 확대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이미 10∼20대의 경우 거의 휴대전화 중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휴대전화를 한순간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는다.통화를 안할 경우에도 쉴새 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즐긴다.세상과 통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 처럼 보인다.우리 방송의 드라마는 최근 동남아의 한류열풍에서 보듯 시청자를 사로잡는데는 최고 수준이다.‘손안의 바보상자’ 드라마에 몰입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는 웃지못할 일이 늘어나지나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든다.지상파DMB의 경우 시청료도 없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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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1 23:02

[오목대] 줄기세포

황우석교수의 난자복제를 둘러싼 윤리논란으로 뜨겁다. 그만큼 황우석교수의 난자를 통해 배양한 줄기세포가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란 간단히 설명하면 근육, 뼈, 신경, 피부 등 어떤 신체기관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만능세포이다. 따라서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이를 근육, 뼈, 피부, 간, 폐, 심장 등으로 마음대로 전환할 수 있다면 수많은 질병에 손상된 기관을 쉽게 대체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줄기세포는 수정란이 처음으로 분열할 때 형성된다. 이들은 유전자가 모두 똑 같은 세포지만 분열하면서 주변 환경과 세포내의 다양한 교감에 따라 결국 뼈, 뇌 등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한다. 따라서 줄기세포는 모든 세포의 모세포라고 할 수 있다. 황우석교수는 이러한 만능세포를 처음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만능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앞으로 인간의 모든 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만능세포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활용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배아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인슐린 생산세포를 만들어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당뇨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뇌세포를 만들어 치매환자의 죽은 뇌세포를 대체할 수 있게 되면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 즉 배아 줄기세포를 신체의 각종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시키는 인체 신호체계를 밝혀 이를 인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질병이 발생한 조직과 기관을 재생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암, 파킨슨병, 척추손상, 심장병 등 모든 질병에 대한 대처가 가능해진다.이러한 무궁한 가능성 때문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의료시장은 곧 천문학적인 규모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8일 ‘황우석 연구 성과의 경제적 가치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5년쯤 국내 줄기세포 연구진의 성과가 창출할 국부를 연간 최대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시장은 연간 최대 324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따라서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줄기세포 관련 핵심 기술과 인재 확보와 함께 특허 확보를 통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은 가히 전쟁에 버금갈 것이다. 승자가 차지할 명성과 경제적 이득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가장 앞 서 있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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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30 23:02

[오목대] 누리꾼

꾼이 접미사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직업이나 습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난봉꾼, 개평꾼, 주정꾼, 협잡꾼, 거간꾼, 땅꾼 등이 그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 직업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습관이나 장기, 그것도 나쁜 뜻으로 쓰인 경우가 훨씬 많다. 따라서 직업을 나타내는 쪽이라고 보기도 힘들다.정치인이라면 전문성과 직업을 나타내지만, 정치꾼이라면 정치인의 협잡성을 부각한 욕말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더우기 정치가 한자말이므로 꾼 대신 한자말 인이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어감으로 볼 때, 꾼은 좀 촌스러운 느낌을 주고, 인은 품위가 있는 듯 느껴진다. 혹시라도 우리말을 천시하고 외래어를 숭앙하는 잘못된 인식이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자말인 우유나 서양말인 밀크는 별 거부감이 없지만, 우리말인 소젖은 왠지 이상하다. 누드, 나체, 알몸 역시 같은 뜻인데, 왠지 알몸은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컴퓨터 통신에 참여하는 사람'의 뜻을 가진 '네티즌(netizen)'의 우리말 대체어는 '누리꾼'이다. 이 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자시민, 통신족, 누리잡이 등등의 후보어를 놓고서 네티즌들의 투표로 탄생된 신조어이다. 즉, 누리꾼은 네티즌을 토박이말로 만든 새말이다. `세상, 세계`를 뜻하는 `누리`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꾼`을 보탠 말이다. 근래에, 누리꾼 등으로 순수한 우리말을 되살려 쓰고자 하는 경향이 결집되고, 그리하여 꾼이라는 말이 새롭고 신선한 어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속되고 천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컴퓨터통신 왕국을 자부하면서 네티즌이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쓰기에도 좀 그렇다. 오랜 세월 깃들어진 우리들의 언어 정서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누리꾼이라는 말에 대한 많은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최근 노대통령이 누리꾼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혹시라도 언어에 의한 인식 비하가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된다. 사실 국민들의 언어정서가 아직 그렇게 앞서가고 있지 않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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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9 23:02

[오목대] 소신발언

사람의 인격은 천차만별이어서 딱히 몇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수 있겠으나, 실제로 공통된 성향을 보이는 성격유형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가령 특별한 이슈나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개개인의 반응은 모두 다르지만, 이 때 대체적으로 추종파와 눈치파, 소신파 등 세종류의 성격집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추종파는 자신의 주장이 없거나, 있더라도 전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남의 뒤를 좇아 무사안일을 추구한다. 특별히 내세우는 주의 주장이 없으니 남과 부딪힐 일이 없고, 따라서 원성을 사거나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무조건 예예만 하는 '예스맨'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눈치파는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살피다가 유리한 쪽으로 잽싸게 편승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눈치에 관한한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 사태가 여의치 않다 싶으면 꿈쩍도 않고 중립을 지키는 재주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한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이들이 대개 눈치파에 속한다.소신파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는 강직한 성격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도덕심과 원칙이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직하다는 평도 듣는다. 여기다 자신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소양도 갖추고 있다 . 세가지 유형 중 가장 바람직한 성격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신이 지나치면 아집과 독선에 빠져 일을 더 크게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소신파들은 자기 신념과 주장이 강해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일체 타협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이 '쌀협상 비준안 처리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소신발언을 해서 찬성측으로부터 '토론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농촌출신이면서, 더구나 농민시위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겁없이 소신발언을 한 것이 극적인 효과를 올리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조의원의 지역구인 홍천 횡성 농민들은 배신발언이라며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소신발언이 될지 독선발언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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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8 23:02

[오목대] 소리의 길이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이냐 눈물이냐.’ 말놀이 중의 하나로 쓰는 이 표현의 핵심은 무엇일까. 동일한 음절인 ‘눈’이 그 의미에 따라서 길게 발음하기도 하고 짧게 발음하기도 하는 음장이 이 말놀이 문장의 핵심이다.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음절을 이루어 의미의 변별력을 갖게 되지만 이런 음절은 길게 혹은 짧게 발음하는 방법으로 다시 의미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짧게 발음하는 눈(眼)과 길게 발음하는 눈:(雪)의 의미가 구분되는 것이다.돌(週)/돌:(石), 말(馬)/말:(言), 못(釘)/못:(不能), 발(足)/발:( ), 배(船, 梨, )/배:(倍), 열(熱)/열:(十), 병(甁)/병:(病) 등 상당수 단어에서 소리의 길이는 의미를 구분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하지만 이런 소리의 길이가 어느 지역에서나 의미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서울말과 중부방언의 첫음절에서만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두 번째 음절로 가면 길게 소리나던 음절도 짧게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북지방 사람들이 소리의 길이에 따라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리의 길이는 순수한 우리말에서도 구분이 잘 안 되지만 한자어에서는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그도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 아닌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사정이 이러한데 요즈음 우리말을 잘 알고 쓰자는 의도에서 신설된 우리말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리의 길이에 관한 문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내는 의도는 소리의 길이도 중요한 우리말의 한 기능이니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나 중부방언권에 사는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사람이 체감하는 소리의 길이에 대한 분별력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의 문제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우리말을 바로 잡자는 생각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이미 굳어버려서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억지춘향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주 사용하는 순우리말도 구분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사고(思考)’와 ‘사고(事故)‘를 발음할 때의 길이 차이를 구분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더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토박이들이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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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6 23:02

[오목대] 황우석과 특종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24일 난자 기증과 관련 “2명의 여성연구원이 난자를 기증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황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여러분에게 속죄하기 위해 줄기세포 소장직을 비롯 모든 겸직에서 사퇴하겠다”며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그 동안 빚어진 ‘생명윤리 논란’으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가를 피력한 셈이다.이번 파문은 지난해 5월 미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지와 황교수팀 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발단되었다. 영국의 ‘사이언스’지가 황교수팀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생산성공 논문을 보도한지 꼭 3개월 만의 일이다. 네이처의 시라노스키 기자는 실험에 쓰인 난자를 어디에서 확보했는지를 취재하면서 대학원생인 여성연구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여성연구원은 ‘어려운 연구에 내 난자부터 기증하는 것이 실험자로서의 자세’라며 자랑스럽게(?) 답변했다. 기자는 재차 확인했고 어디서 수술받았는지 묻자 문제의 미즈메디병원까지 스스럼없이 알려줬다. 이것이 네이처에 ‘난자구입 의혹’으로 대서 특필되었던 것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헬싱키선언에 따라 연구원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은 대가성이 개입될 수 있어 윤리적으로 금하고 있는 터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이 연구원은 “영어가 서툴러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후 협력자였던 미즈 병원장이 불법난자매입을 시인하고, 특히 황교수와 ‘형제’라며 줄기세포 성공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미국 피츠버그대 새튼교수가 결별을 선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사건은 세계과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던지고 있으나 시작은 인터뷰 몇마디에서 였다. 사실 황교수의 연구는 인류의 난치병 치료와 줄기세포 산업이라는 양측면에서 노벨상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생명윤리라는 지뢰밭을 건너야 하는 아슬아슬한 연구다. 그 과정에서 황교수는 언론의 특종경쟁에 ‘국민적 신화(神話)’로 승격되었고 이번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흔히 생명윤리는 스캔들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언론도 ‘국민의 알 권리’나 ‘진실’을 내세우지만 마찬가지다. 황교수는 언론의 속성인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을 너무 몰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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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5 23:02

[오목대] 빗물 활용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283㎜로 세계 평균인 973㎜의 1.3배에 이르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평균치는 세계평균의 12% 수준에 불과하다.게다가 강수가 여름 장마철에 집중돼 수자원의 60% 이상을 그대로 바다에 흘려보낸다.이 때문에 유엔은 우리나라를 물부족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오는 2025년이면 물기근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받고 있다.그런데도 우리의 1인당 물소비량은 세계 최고수준인 374ℓ로 OECD 회원국가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도시화 확산 추세로 앞으로도 물소비량은 더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물공급량을 늘이기 위한 댐 건설사업이 막대한 재원부담과 개발적지 감소등으로 지속적 추진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자원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물을 아껴쓰는 것 못지않게 버려지는 물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독일,일본등 수자원분야 선진국에서는 물 부족 해결책으로 이미 빗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정원용수나 화장실등의 생활용수로 사용하여 적지않은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0년 부터 지붕면적이 2400㎡ 이상인 체육시설에 대해 빗물이용 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해 전국적으로 월드컵경기장 4곳이 지붕에 고이는 빗물을 따로 모아 잔디 살포용 등으로 쓰고 있다.지극히 제한된 일부 대형건물에서만 빗물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청계천 복원 성과에 크게 고무된 서울시가 이번엔 빗물을 친환경적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조례및 기본계획을 수립,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도시 지표면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뒤덮이면서 대부분의 빗물이 하수관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한 시책인 것이다.아파트나 대형빌딩,운동장등의 지하에 대용량의 저수조를 만들고,빗물 배수관은 미세한 구멍이 뚫린 침투형 도랑으로 설치해 빗물이 땅속에 많이 스며들게 함으로써 지하수를 보충한다는 계획이다.땅속으로 스며드는 빗물이 줄면 하천이 마르고,또 대기중으로 증발되는 빗물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열섬현상 방지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갈수기에는 주요 하천이 수량부족으로 삭막한 모습을 보이고,여름철엔 열섬현상으로 시달리는 전주시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시책일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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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4 23:02

[오목대] 풍남문과 복원

후백제 시절 전주성은 기린봉 밑에서 전주고 뒤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제초기에도 성벽의 돌이나 토성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후백제의 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적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전주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제시대에 전주성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려시대에는 지금의 전주시 구도심인 평지에 성이 있었다. 기록에 공양왕 원년 1398년에 전라관찰사인 최유경이 전주성과 4대문을 축성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전주의 중심이 평지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고려 중기에도 평지에 성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정유왜란(1597년) 때, 왜군에 의해 전주성과 성문이 일부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전라감사 조현명은 영조 9년(1733년)에 시작해서 다음해까지 전주성을 재건하였다. 이때 문루를 3층으로 지어 명견루라고 불렀다. 1767년 전주성내를 휩쓴 대화재로 명견루도 소실되었다. 1768년 전라감사 홍낙인이 다시 지으면서 2층으로 중건하였고 지금의 이름인 풍남문으로 개칭하였다. 태조의 출향지라는 풍패지향의 풍자와 남쪽문이라는 남문을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전주성은 동학혁명의 와중에서 동학군과 관군이 전투를 하면서 많이 무너졌다. 특히 서문 쪽이 크게 부서졌다. 1905년 일본의 감독 하에 있던 통감부는 폐성령을 내려 전국의 성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여 전주성 서편이 철거되었다. 1911년부터 동편도 철거되어 풍남문을 제외하고 전주성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풍남문은 1978년 보수공사를 통해 포루, 종각, 옹성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築城啓草(축성계초)는 1733년에서 1734년까지 2년에 걸친 전주성의 재건 과정을 전라감사인 조현명이 기록한 내용이다. 이 때 풍남문을 재건하면서 옹성을 없앤 것으로 드러나, 현재의 풍남문이 잘못 복원되었음을 보여준다.이는 사적을 복원할 때, 함부로 복원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현재도 미륵사나 후백제 전주성의 일부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다. 미륵사 동탑도 복원했지만 아무도 원래 모습을 모른다. 모르면서 복원했으니 거짓 복원한 셈이다. 원래 모습을 모르면 복원을 하지 않는 것 낫다. 잘못된 복원은 사적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정 필요하면 인근에 재건이나 중창을 하는 방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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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3 23:02

[오목대] 무형문화

하드(hard)의 시대에서 소프트(soft)의 시대로 변함에 따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을 얼마나 확보하고 축적하고 있는지가 장기적인 경쟁력 유지에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무형자산은 계량적인 측정이 곤란하기 때문에 그 보유 정도나 가치를 잘못 판단하여 전략상 실패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무형자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소홀히 여긴다는 것이다.무형자산의 본질은 정보이다. 기술력, 브랜드, 서비스 제공 능력 등의 무형자산은 모두 정보나 지식과 관련되어 있는 ‘정보 자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찌보면 보이지 않기에 간과하기 쉽다는 공통점도 있다.무형자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육성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육성에 소요되는 시간과 절차가 경쟁 상대와의 차이를 형성하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무형자산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도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리 쉽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다.육체가 유형이라면 정신은 무형이다. 신체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생각과 마음의 아름다움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의 관점에서 외모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논리다.또한 무형자산과 같은 유사한 개념으로 무형문화재를 들 수 있다. 문화재는 과거에 생성된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의 결과물이다. 문화재는 우리 겨례의 모습과 얼이 담긴 소중한 자료이며, 그 속에서 지혜와 슬기를 찾을 수 있다. 유형문화재가 망가져도 다시 복원할 수 있지만, 무형문화재는 한번 사라지면 다시 복원하기 어렵다.무형문화재의 전시·공연·전승 등을 위한 무형문화유산 전당이 전주에 들어설 전망이다. 전주가 전통문화예술분야의 중심적 위치를 확보하는 한편 무형문화재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판소리가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뽑혔다. 하지만 모정당에서 전주 무형문화유산 전당 설립이 불요불급한 일이라고 예산 삭감의사를 나타냈다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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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2 23:02

[오목대] 농토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답에 보상을 해주는 별 희한한 제도까지 다 생겨났지만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멀쩡한 농토를 까닭없이 놀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상당 수 국민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판인데 빈 땅을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혹 하천부지나 국공유지 같은 주인없는 땅이 나오는 기척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유를 해버리는 것이 당시 농촌 실정이었다.그 뿐인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온종일 논밭 가장자리의 초목을 파내기도 하고,그러다가 이웃의 논밭두렁 경계를 침범이라도 하는 날엔 안면 몰수하고 대판 싸움이 붙기도 했다. 또 곡식을 붙일만한 땅이 있다 싶으면 산등성이도 마다 않고 온 가족이 총동원돼 개간에 나섰고, 심지어 돌멩이 천지인 임야까지도 밭으로 일궈 곡식을 심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한 때는 노는 땅을 활용하자며 논두렁에 콩을 심어 수확을 하기도 했고, 담벼락 밑이라도 빈 공간만 있으면 온갖 채소를 심어 빠듯한 살림살이에 보태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엔 농토가 삶 자체를 좌지우지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러나 우리 사회가 발빠르게 산업사회로 이동하면서 농촌을 떠나는 농민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농촌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갑작스런 산업구조 재편에다 정부의 무역지상주의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농촌이 하릴없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세계무역자유화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농촌은 아예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토는 이제 삶의 전부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세상이 바뀐다고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쌀값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하며 울부짖더니 결국 제풀로 지쳐 농사짓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쌀농사는 지어봤자 망하게 될 것이 뻔하니 차라리 과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농토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농지로서의 보존가치를 잃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같이 온갖 정성을 다 바쳐 가꿔온 생명의 터전이 맥없이 무너져 가는데, 농민들만 애가 탈뿐 여타 국민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그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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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1 23:02

[오목대] 혁신 단상

요즈음 공무원 사회의 주제어는 ‘혁신’인 모양이다. 혁신공무원, 혁신도시, 혁신사례, 혁신마인드, 혁신교육 등 예전에 없던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혁신이라면 기술혁신, 품질혁신 정도로 알고 있던 터라 요즈음의 혁신표현들을 보면서 시류(時流)를 느끼게 된다.혁신이란 결국 잘 하자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그리고 그 단어의 지향점이 긍정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가 그래도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옛말이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혁신이란 말을 자주사용하는 것은 흥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러한 혁신 의지는 빛을 보기 어렵다.전주지검과 전북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고소사건은 인원을 기준으로 하면 11,096명으로 전체 사건의 27.1%라고 한다. 그 중 불기소율이 75%이고 인구당 고소·고발, 무고 사범이 전국에서 최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진정사건도 한 해 1000건 이상 접수되었지만 사건화된 비율은 3.6%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구 10명당 무고사범은 5.3명으로 9개 도 단위 지역 중 1위라고 한다. 인구비율로 보더라도 10만명당 고소·고발 건수는 전국 3위라고 한다.운동경기에서 이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보다 내가 잘 하는 방법이 그 한가지다. 다른 한 가지는 내가 못 하더라도 상대방이 더 못하면 내가 이기기 마련이다. 한 경기만 놓고 보면 이겼다는 소리를 듣기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가 잘 해서 이긴 사람은 다른 경기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상대방 잘못으로 이긴 사람은 다시 그런 실력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자기 힘으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예나 지금이나 교육계는 모든 사람의 공통관심분야라고 할 수 있다. 중등교육은 교사평가제 도입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고 대학들은 신입생 확보에 비상이 걸린 형편이다. 지금 당장의 경쟁 상대자는 같은 지역에 있겠지만 종국적으로 보면 타지역과 경쟁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교육계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제 살 깎아먹는 식의 출혈경쟁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단세포적인 생각으로는 글로벌시대에서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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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9 23:02

[오목대] 태권도 개혁

1960, 70년대 태권도는 한국의 상징이었다. 당시 태권도 사범들은 맨 몸 하나로 아메리카나 중동, 아프리카로 날아가 주먹으로 벽돌을 깨고 100㎏이 넘는 거구의 서양인들과 맞대결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제자를 지도해 세계인의 뇌리에 태권도라는 한국문화를 심었다. 그들이야말로 한류(韓流)의 원조였던 셈이다.그런 태권도가 지난 7월 큰 고비를 맞았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퇴출종목으로 꼽혔던 것이다. 다행히 세계태권도연맹(WTF) 등의 전방위적 노력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 때 IOC는 태권도의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낮은 흥미도와 판정의 공정성, 그리고 미디어 노출이 저조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측은 200쪽에 이르는 개혁보고서를 만들어 설득에 나섰다. 채점및 규칙개정, 전자호구 도입, 과감한 주먹기술의 도입 등을 담았다. 태권도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 완전히 탈바꿈된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그러나 정작 개혁할 것이 그것만일까. 오히려 태권도가 너무 이기고 지는 시합에만 집착, 신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사실 태권도는 경기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해방이후 본격적으로 경기화된 것은 1963년 전주에서 개최된 44회 전국체전 부터였다. 1961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되고 전국체전에 공식경기로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에 이어 1975년에는 일본 가라테를 제치고 국제경기연맹(GAISF)에 가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종목에 채택됐고 2000년 시드니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 성장과 달리 태권도에 대한 외국인의 존경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태권도 경기장에서 외국인들은 한국 선수가 이기면 야유를 보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편파판정 시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유럽태권도연맹 같은 경우는 국기원에서 발급하는 단증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단증 발급을 공공연히 요구한다.이러한 현상은 너무 경기측면만 강조한 때문이다. 원래 태권도는 정신(생활)을 중시했다. 초창기 외국에 나가 태권도를 개척했던 사범들도 의리나 예의, 극기를 강조하고 모범을 보였다. 지난해 말 무주 태권도공원을 유치한 전북으로서는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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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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