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4-01 16:52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금요수필] 김치찌개의 별미

신팔복 우리네 밥상에 김치가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과 같다. 나는 매일 김치를 먹는다. 만약에 김치가 없다면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식사가 되고 만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는 우리 조상들이 발명한 세계적 저장식품이다. 좋은 배추나 무를 다듬어 절이고, 찹쌀 풀에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어 만든 고춧가루 죽에 좋아하는 액젓으로 간을 맞춰 버무려서 김치를 담근다. 독에 넣어 서서히 자연 발효시키면 젖산이 풍부해지면서 더욱더 맛깔스럽게 숙성된다. 김장김치는 무기물과 비타민을 제공하고, 풍부한 영양분이 들어있어 겨울철 반찬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잘 삭힌 무김치는 찐 고구마와 매우 궁합이 잘 맞아 가난했던 시절에는 끼니로 먹었다. 김치전도 좋고 김치죽도 맛있다. 나는 추운 겨울이면 어렸을 때 입맛이 생각나 가끔 김치죽을 먹는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살살 불어가며 먹는 김치죽은 끝 숟가락에서 더 개운한 맛을 느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김치찌개의 개운한 맛은 밥맛을 돋웠고 술을 당겼다. 그래서 친구와 김치찌개를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오늘도 친구와 함께 손맛이 좋은 작은 식당을 찾아왔다. 묵은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콩나물과 두부를 조금 올리고 그 위에 대파를 썰어 얹어 펄펄 끓이는 김치찌개가 식욕을 돋웠다. 밥은 제쳐 두고 막걸리를 한 사발씩을 마시고 찌개를 맛봤다. 야, 이 맛이야! 감미롭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친구도 무척 좋아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맛을 느꼈다. 어머니는 네발짐승의 고기를 못 드셨지만, 원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 눈으로만 보고도 단박에 맛 좋게 끓여 내셨다. 김장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한잔 술을 또 친구에게 권하며 나도 마셨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갔다. 김장용 무와 배추는 한여름 더위가 지나고 기온이 서늘해질 때 심는다. 무와 달리 배추는 가꾸기가 까다롭다. 무는 종자를 직접 흙에 뿌리지만 배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는 게 보통이다. 모종을 심은 초기에 벌레나 귀뚜라미가 어린 배추 속잎을 끊어먹어 없어지고, 조금 자라면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가꾸기 힘들다. 그래서 해충 방제는 꼭 해야 한다. 올해도 배추 모종 한 판을 사다가 작은 남새밭에 심고 가꿨는데 그런대로 되었다. 며느리와 딸을 불러 김장을 마치고 무와 김치를 몇 통씩 싸서 보냈다. 잘 익은 김치를 먹고 긴 겨울을 거뜬히 이겨냈으면 좋겠다. 김치는 묵을수록 맛이 좋아진다. 묵은 지에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넣든가 신선한 꽁치나 고등어 등의 생선을 넣어 끓이면 감칠맛이 난다. 갓 지어 고슬고슬한 쌀밥에 얹어 먹으면 언제 먹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김치찌개를 놓고선 입맛이 없다고 투정부릴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막 담근 김치보다 신 김치를 더 좋아한다. 숙성되어 시어진 김치가 내 입맛에 맞다. 특히 무김치 국물의 시원한 맛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어 좋다. 땅속에 독을 묻어 숙성시킨 김치는 겨울을 지나면서 더욱 아삭해지고 시원한 맛을 낸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그를 대신하지만.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김장김치는 우리네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던 영양식품이었고, 건강을 챙겨주었다. 김치찌개로 안주를 하며 또 한 잔을 마셨다. 입안이 개운해졌다. 옆자리에서도 김치찌개가 끓고 있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27 16:56

가기 싫은 곳 - 최기춘

최기춘 수필가 살다 보면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곳이 있다. 이가 아파 치과에 가려면 마음이 심란하여 가기 싫다. 군대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제대한 지 50년이 되어가는 요즘도 가끔 군대 가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늙어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라 한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다르다. 적용법도 요양병원은 국민건강보험 의료보호법이 적용되고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복지법을 적용한다. 요양병원에는 의사가 있지만 요양원에는 의사가 없다. 간혹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엘 가 보면 병원이나 요양원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요양병원에 문병을 다녀왔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방안 공기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가 문병한 환자는 거동이 불편하여 일상생활을 요양사들에게 의지하지만 정신은 맑았다. 병실에는 여섯 명이 있었다. 여섯 명 모두가 스스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어떤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분들이었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우리나라도 문병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내는 문병을 갈 때면 꼭 음식을 챙긴다. 집에서 끓여간 도토리묵을 대접하려고 준비하는데 문 옆에 있는 성미 급한 할머니가 나도 좀 주세요! 했다.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 가지고 갔기에 그렇지 않아도 나누어 드릴 참이었다. 입원 환자 중 스스로 앉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분들은 먹여드렸다. 어떤 할머니는 정신이 혼미하여 아내가 먹여드리는데도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는데 웃지 않으려 해도 웃음이 나왔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그러나 매일 간병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의 애환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젊은 시절 술좌석에서 웃으며 농담삼아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이 먹으면 예쁘고 미웁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 벼슬이 높고 낮고, 돈이 많고 적고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요양병원에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서 연명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말이 실감났다. 우리는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안방에서 임종했다. 사랑에서 거처하던 할아버지도 임종할 때면 안방으로 모셨다. 그래서 안방이 제일 위혐한 곳이라는 우스게 말도 있었다. 사람들이 안방에서 제일 많이 죽으니 안방이 제일 위험한 곳이란 뜻이다. 요즘은 위험한 곳의 순위가 바뀌었다고 한다. 요양시설에서 죽는 사람들이 많으니 요양시설이 제일 위험한 곳이 되었다. 요즘은 몸이 불편한 어른들을 집에서 모시기 어려운 가정이 많다. 요즘 노인들은 웬만해서는 요양시설에 가지 않으려 한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요양시설에 가기를 꺼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요양시설을 갈 때마다 느낀 일이지만 요양시설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근무하는 사람들의 근무 환경이나 처우가 좋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서비스의 질도 좋지 않다. 노인들도 사회환경이 바뀌어 노후에 병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시설에 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잘 알지만 요양시설의 환경과 서비스가 나쁘니 가기를 싫어한다. 딱한 현실이다. 요양시설의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다함께 노인들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안락하고 품위있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기 되어야 할 것이다. 요양시설이 스스로 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 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은발의 단상> 등 2권을 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영호남수필, 전북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20 15:45

[금요수필] 감동적인 정년퇴임식

고안상 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후배 L의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이렇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며, 2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오늘 오후 5시에 지인들 몇 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나면 참석해달라고 했다. 어인 일로 오늘 행사를 이제야 전하는가 했다. 하지만 나는 무사히 퇴임하게 됨을 축하하며 참석하겠단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후배는 나와는 30여 년 가까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사이다. 직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후배는 제자들이 많이 따르고 또 존경을 받았다. 후배는 아이들에게 항상 성실하고 의젓하게 살도록 가르치니 제자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 부르며 따랐다. 동료로서 그런 모습에 부러운 마음 가득했다. 약속 시각에 모임 장소로 나갔다. 후배 내외와 세 딸, 그리고 사위가 정중히 우리를 맞았다. 식장에서 많은 제자, 선후배 동료, 학부모와 지인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식장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퇴임식이 시작되었다. 명문대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이 사회자로 나섰다. 큰딸에 의하면 조용히 퇴임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아는지라, 후배에게는 어제저녁 늦게서야 알렸다고 한다. 한 달 전, 세 딸은 어머니께 행사 계획을 말씀드리고, 후배의 제자들과 서로 연락해 조용히 이 행사를 준비해왔단다. 먼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지난 시절의 후배와 가족들, 그리고 교직 생활의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가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어서 세 딸과 사위가 나와 오늘을 있게 해준 부모님께 보은의 마음을 담은 해외여행 티켓을 증정하고, 둘째 딸이 애틋한 마음을 담아 감사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감사와 존경을 담은 감사패와 공로패 증정이 뒤따랐다. 이어 현재 경찰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가 단상에 섰다. 부모님의 반대로 경찰대 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자신을 선생님께서 직접 시험장까지 승용차로 데려다주어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며,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고 살겠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후배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L이 단상에 섰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후배가, 지난 30여 년을 무사히 교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조해준 아내와 가족,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며, 교사로서 지난날이 부족했지만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마련해준 가족과 제자들에게 고맙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축하객들의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가족과 동료, 특히 제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온 후배는 성공한 인생을 산 것으로 보였다. 이 순간에도 일선 학교에는 후배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아이들이 그들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누구나 정년퇴임식을 성대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 퇴임식을 보면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맥아더 장군의 말을 잠시 되새기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조용히 퇴임한다면 오히려 더 의미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감동 또한 오랜 시간 여운으로 남을 것 같았다. * 수필가 고안상은 정읍 호남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 <대한문학>에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신아문예대학 작가회, 정읍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13 17:00

[금요수필]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임두환 수필가 어느 날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재전진안읍 향우회장인 J씨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와는 KT&G에서 오랜 동안 근무하며 신뢰를 쌓아온 사이다. 평소에도 내 고장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재전진안읍향우회장을 맡고부터는 더욱 열심이었다. 막상, 회장을 맡아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힘을 보태달라는 부탁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란 책자를 전하고 가는 게 아닌가. J선배가 전해준 책자를 받아들고는 별스런 책도 있구나 싶었다.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라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끌었다. 책장을 넘겨보니 말과 운의 관계를 알면 인생이 바뀐다.로 시작되었다. 대화법을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바꾸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고 구구절절 귀감이 되었다. 좀 더 젊어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말 잘하는 사람을 청산유수라고 한다. 사람들은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 사람의 말솜씨에 감동한다. 이 책의 저자 마야모토 마유미는 말할 때 중요한 건 유창함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잘 전달해야 된다고 했다. 상대방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론을 먼저 말하고 해설은 나중에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지 않는가. 말은 많지 않아도 밝은 표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아, 그래요? 그렇군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특히, 상대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마음에 거슬리는 언행을 삼가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험담이나 독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말 잘하는 것은 환경이나 학습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격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나는 본시 가방 끈이 짧기도 하지만 사회물정을 몰랐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건배사를 할 때가 있다. 너와 나를 가릴 것 없이 술자리에 들어서면 본인이 건배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느 날 직장 회식자리에서였다. 본부장이 나더러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사전준비가 없던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맥주에 거품이 다 빠지고 미적지근해질 때까지 말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분명히 저런 얼간이 같은 놈!이라고 했으리라. 두서없이 지껄이는 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건배사도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나 말은 짧으면서도 메시지만 분명하면 만점이려니 싶다. 이 책의 저자 마야모토 마유미는 상대와 대화할 때 말 끊어 먹지 말기, 같은 자리에 없는 사람 험담 늘어놓지 않기, 한자리에서 중언부언 하지말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대화는 조물주가 인간에게만 허락해준 훌륭한 능력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즐겁고 긍정적인 대화는 웃는 얼굴에서 나온다. 상대방을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하는 것도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이지 싶다. 긍정적인 말은 뇌세포도 변화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도 변한다는 것처럼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경험으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말은 불운을 가져다주며 줄 수 있으므로. 남의 흠을 보는 눈이 아닌 장점을 볼 수 있는 눈과 언행을 기르도록 노력하자. * 임두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행촌수필문학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으로 <뚝심대장 임장군>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06 15:10

보리누룽지

김순길 탁 트인 들판의 청보리 밭에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초록의 대향연이다. 전국 최초로 보리를 주제로 한 경관농업으로 우리나라 대표축제가 된 고창청보리밭축제 한마당이다. 대지와 하늘이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니 나와 주위 사람들도 모두 푸르러 한껏 젊어진 듯하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런 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시간이 이렇게 멈추었으면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축제의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이다. 즐비한 먹거리 중에서 특히 오늘의 주인공인 보리로 만든 먹거리가 풍성했다. 꽁보리밥과 비빔밥, 보리죽, 보리개떡 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내와 지인부부는 보리비빔밥을 주문하고, 나는 추억의 보리누룽지를 주문했다. 보리누룽지에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깊게 서려있다. 일제 36년의 수탈로 인한 헐벗음과 굶주림. 뒤이어진 6.25전쟁. 1950년대 우리민족의 뼛속까지 스며든 가난은 당연시되었으며, 그것을「보릿고개」라는 말이 대변해주고 있다. 보릿고개는 태산(泰山)보다 높다고 했다. 여기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한(恨)과 설움이 맺혀 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점심걱정, 점심을 겨우 해결하면 또 저녁걱정, 그리고 내일... 매일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태산보다 높은 분이셨다. 나의 어린 시절, 아침식사는 꽁보리밥, 무밥, 시래기밥 등으로 연명하고, 점심은 고구마나 감자 등으로 때웠는데, 이것마저도 없을 때는 물 한 바가지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물만 마시는 나를 보고 새까맣게 타버린 보리누룽지를 먹으라고 주셨다. 밥 지을 때 밑바닥에 있는 보리가 탄 숭늉은 감칠맛이 조금 있었지만, 보리누룽지는 퉁퉁 불어터져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내가 맛있게 먹는 줄 아시고 보리누룽지를 매일 먹을 수 있도록 부엌에 준비해놓고 논밭 일터로 나가셨다. 늦은 저녁시간 일터에서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항상 물 한 바가지를 달라고 하시고 그걸 단숨에 들이키셨다. 어머니는 평소 일터에 나가시기 전에 드시던 보리누룽지를 나에게 주시고 저녁이 다 돼서야 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셨던 것이다. 요즘 보리누룽지의 효능에 대하여 좋은 말이 많다. 쌀은 산성식품인데 반해 보리누룽지는 약알칼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리누룽지는 쌀누룽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몸에 좋다고 한다. 또한, 보리누룽지는 몸속에 있는 온갖 종류의 유독물질과 기름때, 콜레스테롤 같은 것들을 분해시켜 몸 밖으로 모두 빼내 혈액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면 때로는 시간이 아름다움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시간이 해답을 안겨줄 거라고도 한다. 진정,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보리누룽지」는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그 속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눈물이 들어 있었다. 청보리밭 내음이 가득한 오늘, 먼 곳에 계신 어머니가 더욱 생각난다. 어머니, 그립고 그립습니다! * 김순길 수필가는 <에세이스트>로 등단했으며, 무주 부군수를 지냈다. 신아문예대학 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30 17:16

[금요수필] 내장산 용굴암

이대영 초여름 은빛 햇살 쏟아지는 싱그러운 연초록 잎 사이로 도열한 신록 터널이 나를 반긴다. 이 터널 끝에는 내장사가 있고 왼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용굴암으로 가는 길이다. 여름의 전령사 매미들의 합주소리가 예서제서 넘쳐흐르고 절간에서는 둔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안의와 손홍록 두 선비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올 것만 같다. 용굴암 자락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계곡을 따라 험한 절벽의 도랑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보니 벌써 숨이 차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은 평탄한 도로라 여유 있게 올라가는 나를 보면서 400여 년 전 두 분의 모습을 반해 보려고 애를 썼다. 내장사에서 용굴암까지 평탄한 계곡사이를 걷고 돌다리를 몇 번 건너다보면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지닌 용굴암에 이르게 된다. 내장산의 비경에 취하여 굽이굽이 금선계곡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용이 승천했다는 용굴암을 보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용굴암은 거의 수직으로 된 바위에 부엉이 집처럼 자리하고 있어 철제 사다리를 수십여 계단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다. 헐떡이며 겨우 올라 한숨 내쉬고 바라보는 순간 내가 바로 임진왜란 때 우리조상 태조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용굴이다. 알겠느냐?하는 소리가 폐부 깊숙이 울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1592년 부산에 침입한 왜적들이 서울을 향해 돌진하며 전 국토가 함락의 위기에 처해 사람마다 자기 살길을 찾아 동분서주 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나라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로 이때 혼란스런 속에서도 의연히 일어난 두 선비가 있었다. 두 선비는 자기 집 가솔들과 우마차 20여대를 끌고 태조 어진과 왕조실록이 있는 전주 경기전 향해 정읍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니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마침 전라감사 이광과 정읍 내장산을 적합한 피신 장소로 협의 하여 확정하고 있던 차였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태조어진과 바로 옆 사고에 있는 실록들을 우마차에 실으니 62궤짝이나 되었다고 한다. 타인의 눈을 피하여 밤낮없이 무거운 우마차를 밀고 끌며 용굴암의 험악한 계곡을 올라갔을 모습을 생각하니 두 분의 거룩하고 숭고한 나라사랑에 고개가 숙여졌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바위절벽위에 이렇게 끌어 올려 진 어진과 실록을 두 분이 번갈아가며 숙직을 서면서 애를 태웠겠구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장산이란 지명의 내장(內藏)이란 말은 안쪽에 깊이 감춘다는 의미가 있으니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7년간의 긴 전쟁이 끝난 뒤 다른 곳에 모셔있던 어진과 실록은 모두 화마에 소실되어 버리고 없었다. 그런데 1년 여 이곳에 머물던 어진과 실록은 아산객사로 이안했다가 강화도를 거쳐 묘향산보현사 별전에 봉안하여 화를 면하고 다시 전주에 모셔져 지금의 태조어진과 실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역사의 한도막인 태조부터 명종까지 열세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안의, 손홍록 두 선비의 숭고한 나라 사랑의 정신에 참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진은 국보317호 지정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은 국보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늘도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며 유유히 우리와 함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 이대영 씨는 전주 서신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으며 현재 어진박물관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잊혀가는 옛말 모음집 <그게 시방 무신 말이디아>를 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16 20:11

[금요수필] 우리 동네 꽃동산

이금영 연둣빛 물결이 아침의 빗장을 연다. 베란다에 나가 싱싱한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한다. 하룻밤 사이에 연두가 초록으로 재주를 넘었나. 아니야 아직은 연두야. 온도계를 오르내리는 일교차에도 따사로운 초록 햇살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뭇잎도 꽃잎도 하루가 다르게 초록을 닮아 간다. 한낮엔 초여름 날씨인 듯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목련이 지고 구름 같은 벚꽃도 꽃비로 흩어진다. 철쭉이 자기 차례라고 홍조를 띠고 있어 그 진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 완산 칠봉은 요즈음 동요속의 꽃 대궐이 되었다.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노래가 흥얼거려질 수밖에. 꽃 대궐 가는 길 이곳은 나의 고향은 아니지만 20여 년을 살아 왔으니 고향 같은 곳이다. 남부시장 다리를 지나 싸목싸목 걸어서 완산 시립도서관으로 오르다 보면 도서관 뒷산이 바로 꽃 대궐이다. 꽃향기 따라 걷다 보면 솔 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가슴으로 파고드는 소쩍새 소리가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핑크빛 겹 벚꽃이 만개하면 터널을 이루어 꽃그늘 아래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셀카봉 셔터를 눌러댄다. 망울망울 피웠던 꽃들이 바람에 흔들려 연분홍 꽃잎들의 꽂진 자리가 꽃눈으로 펼쳐진다. 차마 발걸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요리조리 살피며 한발씩 즈려밟아 본다. 완산 칠봉은 꽃 대궐뿐이랴. 봉우리가 일곱 개라 칠봉이 아니던가. 자세히 숲을 드려다 보면 맹감나무와 산딸기도 보이고 키 작은 야생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에 송진 냄새도 더하며 지나는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을 한다. 완산 칠봉 꽃동산은 몇 해 전만 해도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시대는 바야흐로 넷트워크 시대인지라 신문과 TV에 몇 번 소개되더니 오늘에 이르렀다. 완산 칠봉 투구봉 꽃동산은 개인의 소유였는데 명소가 되다 보니 사회에 환원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선친의 묘가 있는 야산에 꽃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부터 40년 이상을 정성 들여 가꾼 꽃밭이었다. 비록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평생을 자연적인 꽃동산을 만들겠다는 열정과 의지로 그는 꿈을 이루었다. 그의 노력으로 봄맞이하는 이들에게 화려한 불꽃 같은 생명의 꽃을 선물로 안겨준 것이리라.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꽃구경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꽃봉오리 같이 예쁜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오고, 꽃보다 더 예쁜 사랑으로 만난 젊은이들이 사랑의 꽃향기에 취해 헉헉대며 올라온다. 저어, 꽃동네가 어디쯤 있나요? 네, 벌 나비들의 날갯짓을 따라서 곧바로 오르면 됩니다. 거의 다 왔어요. 끝없는 상춘객 물결들의 대열이 우리 동네 꽃동산으로 밀려오다니 마치 주인처럼 흐뭇하기만 하다. 짙붉은 꽃들이 아침 햇살에 불꽃 되어 반짝거리면 마음도 따라서 반짝이고, 순백의 철쭉을 만나면 마음도 순화되는 느낌이며 어른 키보다 훌쩍 커서 만개한 영산홍을 올려다보면 관객도 어느새 훌쩍 커진다. 우리 동네 봄꽃동산의 대표적인 꽃들은 조팝나무, 영산홍, 겹벚꽃과 해당화, 백일홍, 철쭉, 흰철쭉, 노랑 매화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말 그대로 아름다운 꽃 대궐이다. 완산칠봉 꽃동산에 만개한 겹벚꽃과 철쭉 사이에 선들선들 징검다리 밟고 오는 봄바람이 휘어진 초록을 붙들고 고향의 봄노래를 부른다. * 이금영 수필가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가톨릭문우회. 전북수필. 행촌수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행복을 담다>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09 20:28

[금요수필] 할머니의 연봉

정남숙 나는 지금까지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10년 전, 선생님, 이제 아이들 한 번 가르쳐 보시죠. 귀향하여 농장을 가꾸며 틈틈이 서원에 들러 한자사범과 훈장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훈장 선생님이 권하는 말이었다. 아직은 가르칠 실력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충분하다며 노인복지관에서는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며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왜 거기를 가? 하며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할머니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정치, 경제, 시사, 교육까지 다방면으로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고 묻는 나에게, 노인복지관에 다니다 보니 이런 상식적인 것은 기본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래요? 하며 응대를 해주니 더욱 신이 나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뉴스를 전해 주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며, 전문가 수준도 아니니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지만, 그와 헤어지고 나면 괜히 얌전한 할머니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주책을 떠는 떠들이로 만든 주범이 노인복지관인 것 같아 복지관 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도 노인복지관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해 재능 나눔 자원봉사 일자리로 노인복지관을 찾았다. 복지관직원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추후 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 한 번 나를 봤을 뿐인데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까지 불러주다니, 그 동안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노인복지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눈 녹듯 녹아내리고 반가움에 신뢰감까지 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지관을 나서다 뒤돌아보니 아무 의미 없이 일자리만 원해 들어갔던 복지관 건물이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며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나는 손자손녀가 세 명이 있다. 그 중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출국할 날이 다가왔다. 한 달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다. 제 부모들은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등이 휠 테지만 나는 할머니로서 의무감으로 적은 용돈만 주며 잔소리만 들어놓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손자에게 내 연봉에서 두둑이 현금을 찾아 할머니도 연봉 받는다.고 자랑을 했다. 옆에 있던 제 어미가 할머니 일 년 수고하신 보수라며 허투루 쓰지 말고 할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내가 받는 연봉은, 1일 3시간, 1달, 열흘 30시간, 1년 중 9개월 동안만 일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에서 받는 보수다. 매월 십일조를 떼고, 남은 금액을 차곡차곡 모아 쌓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자손녀에게 할머니의 사랑으로 인심을 쓸 수 있게 해 준 게 나의 귀한 연봉이다. 손자들에게 전에 주던 용돈보다 비록 액수는 적을지라도, 내 수고의 대가를 받아 전해주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 손녀와 성적이 올라 좋아하는 큰 소녀에게도 축하해 줄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과거 노인들은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요즘 노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늙으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는 말이 있다.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위해 일하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일자리와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봉이 필요하다. 내 수고와 내 이름으로 받은 보수는 액수와 관계없이 내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나의 연봉은 아주 의미 있는 소중한 나의 근로소득이다, * 정남숙은 대한 문학으로 등단하여 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40여 년 살다가 귀향하여 고향에서 농장경영하며 전주의 역사, 문화, 알리는 문화해설자로 봉사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02 20:46

[금요수필] 격양가를 부르는 봄까치꽃

왕태삼 바야흐로 에메랄드빛 봄까치꽃이 온 산하에 피고 있다. 하얀 겨울을 지우는 푸른 별들의 향연이 보석처럼 빛난다. 얼음장 개울가에도 잔설의 밭둑에도 피더니, 대문 밖에도 올망졸망 아기들처럼 무더기로 몰려왔다. 푸른 은하수가 백주대낮에 가장 낮은 땅에서 지천으로 흐르고 있다. 이에 비해 매화는 게으른 미녀처럼 이제야 기지개를 켠다. 언제부턴가 봄의 전령사는 빙자옥질 고매한 매화가 아닌, 장삼이사 봄까치라 생각했다. 봄까치는 지조와 절개의 매화보다 단연 봄의 선구자들이다. 단지 뽐내지 않았을 뿐,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피고 지는 신비한 코발트빛 선남선녀들이다. 그들은 나에게 근면과 희망, 지혜와 순수, 겸양한 신화를 가르친다. 향기 대신 몸으로 보여주는 처절한 봄까치 - 새끼손가락만 한 키에 새끼손톱만 한 꽃을 보노라면 나는 절로 무릎을 꿇고 숙연해진다. 봄까치는 근면과 희망의 연주자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스스로 박수치며 노는 돌배기를 닮았다. 칭얼대지 않고 아침 햇살을 튕기며 옹알거리는 아기의 목소리는 지친 어른들을 눈 녹듯 풀어준다. 봄까치는 지혜로운 천사다. 농부의 발걸음이 들녘으로 나오기 전, 다른 풀들이 깨기 전, 미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마치 지금쯤 깊은 산 속에서 얼음을 이고 피어오를 노란 복수초 같다. 그러나 복수초는 외로이 멀리 살지만 봄까치는 들판, 개울가, 길가, 화단 등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봄소식을 한 아름 직접 보듬고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처럼 작은 체온을 싣고 골목골목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봄까치는 겸양한 무리들이다. 늘 상대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공자의 말씀〔려이하인慮以下人〕을 새긴다. 저렇게 궁벽지고 냉혹한 벌판에서도 봄의 불쏘시개로 들어가 세상의 배경으로 타오른다. 그들은 진정한 보석 같은 사람들이다. 결국 작은 꿈과 꿈들을 모아 푸른 언덕을 함께 쌓아간다. 봄까치는 벌들의 놀이공원이다. 벌들은 한 오라기 미인의 속눈썹만 한 봄까치의 꽃대에 올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마치 벼룩의 간을 빼먹듯 잔인해 보이지만 벌들은 아이들처럼 곡예 부리며 신나게 꿀을 딴다. 눈 깜짝할 새 꽃대는 활처럼 휘어져 내리고, 벌들은 화들짝 놀란다. 봄까치가 통째로 춤을 춘다. 벌들은 또 오르며 즐겁게 소스라친다. 나의 고개도 방아깨비처럼 절로 끄덕인다. 벌은 꿀도 먹고 놀이도 즐긴다. 이것은 자기의 수분 값을 지불하는 봄까치의 상도덕이 선사하는 자연의 놀이다. 자기보다 몇 배 덩치 큰 벌들을 부르는 봄까치 - 그들은 외유내강의 꽃이다. 이처럼 봄까치는 가장 작지만 가장 큰 고요한 평화를 구가한다. 그 화평한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봄까치를 본받을 일이다. 풍요로운 음식을 싣고 가는 이 시대, 그 수레바퀴는 왜 삐걱거리며 절며 가는지? 과적은 아닌지? 수레바퀴는 짝짝인지? 즐거운 격양가는 왜 부르지 못하는지? 시대착오적 망령들이 수레바퀴의 핸들을 썩어버린 자기 방죽이나 이념의 투기장으로 꺾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들판에 달려 작지만 화평한 세상, 푸른 봄까치를 만나 심리치료라도 받아 볼 일이다. 무릎 꿇고 자세를 낮춰 태평성대를 귀담아 들어볼 일이다. * 왕태삼 시인은 계간 <문학시대>를 통해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작촌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의 등을 떠미는 사람들>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25 20:37

[금요수필] 연둣빛 들풀처럼

박일천 산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해본다. 내 안에 쌓인 도시의 그을음이 숲에 정화되어 가슴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 금곡사로 가는 길옆으로 편백이 빽빽이 서 있어 하늘이 조각달처럼 보인다. 산모롱이를 돌아 내려가는 길섶에 할머니가 어린 쑥을 다듬고 있다. 아직 바람이 찬데 아장아장 걸어 나온 쑥이 반가워 샀다. 코끝에 스미는 쑥 향기로 금방 봄이 내 곁으로 왔다. 다랑논에서는 경칩이 며칠 남았는데 벌써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목청껏 울어댔다. 양지 녘엔 어느덧 초록빛 담배 나물이 너풀너풀 자랐다. 나도 모르게 동무들아 오너라.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보자.라는 동요가 저절로 나왔다. 노래처럼 그 옛날 바구니 들고 나물 캐던 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은 봄이 올 즈음이면 멀리 아중리 저수지 근처로 나물을 캐러갔다. 나물 캔다는 핑계로 나들이 갔다. 남노송동에서 걸어서 마당재를 지나 갓바우 마을을 돌아 나물을 하나둘 캐며 저수지 끝자락 왜망실까지 갔다. 나물이 눈에 띄지 않을 때는 자갈을 들추어 병아리 솜털 같은 노란 어린 쑥을 캐냈다. 언덕배기에서 냉이와 쑥부쟁이를 캐고 논에서는 벌금자리, 자운영을 바구니에 담았다. 해가 설핏해져 산 그림자가 저수지로 내려오면, 봄나물 원정대는 다 못 찬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지 간으로 들어서며 의기양양한 소리로 엄마! 아중리서 나물 캐왔어. 아직은 추운디 그 먼디를 갔다냐? 손이 터서 깜밥이구만. 하며 어머니는 나를 따뜻한 아궁이 앞에 앉혔다. 부지깽이로 불을 허적거리는 엄마 품에 기대어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어머니는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묵은김치를 숭숭 썰어 쑥국을 끓이고 나물무침을 하셨다. 김칫국만 먹다가 모처럼 쑥국에 나물 반찬을 먹으면 밥이 입안으로 그냥 넘어갔다. 지금도 나물 캐던 어린 시절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시골집에 가면 가끔 뒤란 메실 밭에서 냉이와 달래를 바구니에 담으며 나물 캐는 계집애로 돌아간다. 봄볕에 돋아난 연둣빛 들풀처럼 순순한 아이 마음을 오래도록 가슴에 지니고 싶다.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해맑게 웃을 수 있어, 우리네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주고 주름살을 다림질해 주리라. 모악산 기슭 밭이랑 사이로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머지않아 산야의 나뭇가지에도 새순이 다투어 피어나 서로 다른 봄빛을 내뿜으리. 봄 언덕에 꿈의 빗장을 풀고 상큼한 바람이 머문다. 어둠의 그늘을 벗어 노래하는 눈부신 햇살의 춤은 시간의 회로를 돌리고 다가선 발걸음마다 물오른 나무마다 꽃, 꽃들이 핀다. 견딜 수 없는 음지마다 그래도 살겠다고 생명을 틔우는 이름 없는 들풀조차도 살같이 고운 연둣빛 여린 잎마다 안개가 머물다 간 곳에 이슬 머금은 세수를 하고 아지랑이 아른대는 저, 해 말간 미소 산모퉁이에서 사온 쑥으로 국을 끓였다. 쑥 냄새가 그 옛날처럼 입안에서 봄 향기로 피어난다. 움츠렸던 어깨 펴고 싱그러운 봄기운을 담은 푸릇푸릇 알싸한 생명력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봄 향기, 눈 꽃잎 머리 위에 사르르 감추지 못하는 설레임으로 피어나는 봄 향기가 피어난다. * 박일천 수필가는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하여 <토지문학 수필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문협 회원, 샘문학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바다에 물든 태양>, <달궁에 빠지다>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18 20:13

[금요수필] 예술 메세나

백봉기 메세나(Mecenat)란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과 시설을 후원하는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리고장에서도 ㈜하림이 예술인들을 위하여 22년째 매년 2500만 원을 예술상금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공로상을 포함해 250여명이 수상했으니 그 수혜액수는 짐작이 갈 것이다. 매년 적지 않은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후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IMF 때와 회사가 화재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멈추지 않고 지원을 했다. 고마운 분이 또 있다. 목정문화재단은 1993년부터 이 고장 청소년들에게 예술적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매년 <전북고교생백일장> <목정미술실기대회> <목정음악콩쿠르>를 개최하있다. 그리고 전주 이행욱씨와 남원의 ㈜명성화학 신이봉 회장은 전북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아 주기위해 전북문학상 상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도서출판사 공익사의 김서종 사장과 전주 푸른산부인과 김부철 원장도 문화예술인들에게 성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개인이나 기업 또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 메세나운동은 고대 로마의 외교관이었던 마이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다. 메세나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프랑스로, 기업이나 개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정부에서도 메세나법을 만들어 이들에게 많은 세금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 법이 생긴 뒤 3배가 넘는 기부금이 문화예술단체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밖에 영국과 미국, 일본도 메세나운동이 활발한 나라로 기부금의 상당 부분을 손금산입으로 처리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인이나 종교단체 등에 내는 기부금은 세금혜택을 주는 반면, 순수 문화예술단체에 내는 후원금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09년에 메세나 활동 지원에 관한 법안이 발의 됐지만 수년간 상임위원회에서 표류하다가 2013년 말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99.8 : 0.2라는 숫자가 말해주듯이 국민들이 내는 기부금 중에 종교단체에 25%, 해외구호에 15%, 시민단체와 정치인에게도 3%가 넘는데예술문화 단체에 내는 후원금은 고작 0.2%이다. 최근에 예술문화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예술인들의 생활은 녹녹치가 않아 마음 놓고 예술창작에만 전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실 내 주변에도 붓 대신 대리운전대를 잡거나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32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열악한 환경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 실시한 정부의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학, 무용, 미술 등 10개 분야 2천명의 조사자 중에 36%가 문화예술 활동으로는 수입이 한 푼도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한 달에 백만 원도 벌지 못하는 사람이 응답자의 65%나 됐다고 하니 예술계의 벌이가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이 간다. 최근에 뜻있는 기업들이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에서 메세나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정부가 국민행복과 세상을 아름답게 할 가장 아름다운 기부가 문화예술부분이라는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하루 빨리 메세나운동이 활성화되도록 더 많은 세금혜택을 주는 등 예술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 백봉기 수필가는 한국산문으로 등단하여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해도 되나요> 등 4권의 수필집을 내고 현재는 전북예총 사무처장과 온글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11 20:36

[금요수필] 베짱이도 좋다

노은정 나는 가금 개미가 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한다.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높고 가파른 진흙길을 개미가 되어 오르고 있다. 오르고 또 오르고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 도 없는 처지가 되어 자꾸만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일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데굴데굴 굴러 원점에 나뒹굴어져 있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신음소리를 낼 수도 없다. 미련스럽게 또다시 가파른 진흙길을 묵묵히 기어 올라간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도 숙명처럼 자꾸 올라간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까,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정상까지 갈 수 있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벌레가 내 등에 올라 타 도무지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몸을 흔들어 보고 비틀어 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녀석은 껌 딱지처럼 꼭 붙어서 내 몸과 일체가 되기라도 하듯이 꼼짝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녀석을 등에 업은 채 오르려다 그만 발을 헛디뎌 또다시 데굴데굴 구르고 만다. 마침내 녀석은 보이지 않고 나는 질척거리다가 눈을 뜬다.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 있고 서둘러 일 나갈 준비를 한다. 학생들과 함께 한 날들이 어느덧 20여년이 흘러가고 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나름대로 노련한 실력을 갖추었을 만한데 언제나 새롭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교육의 변화양상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매 순간 정진해야 한다. 결국 현실에서도 나는 개미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어디 나 혼자만의 일이겠는가? 현대인들 대부분은 바쁘다. 병으로 지쳐있다. 약도 없고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지만 누군가로부터 간섭을 받거나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여지없이 증세가 심해진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내와 불편을 초래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탓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오래전에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여유와 낭만 그리고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일상, 다양한 관계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개미처럼 살아가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가끔은 베짱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황금돼지해인 2019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접어들었다. 물론 소득에 알맞게 국민들의 생활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격히 향상된 것은 아니지만 거리를 오가다 보면 사람들의 옷차림새와 얼굴 표정이 예전에 비하여 한결 밝아졌다. 차림새와 표정이 밝아진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또한 고급 져 보이면 어떨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에 나이가 들어간다. 뒤돌아보면 아쉬움만 남고 앞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인생을 알만하고 인생을 느낄 만하니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 만하니 이마엔 주름이 새겨져 있다. 한 조각 한 조각 모자이크한 듯한 삶을 어떻게 맞추나 걱정하다 세월만 보내고 완성 되어가는 맛 느낄 만하니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흐른다.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이지만 살아 있음으로 얼마나 행복한가를 더욱 더 가슴 깊이 느끼며 살아가자.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힘들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맛이 솔솔 나지 않겠는가! * 노은정 씨는 월간 <한비문학>에서 동시와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한국아동문학회에서 동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창작지도자격증을 취득하여 한우리 논술교사로 있으며 동시집 <호박이 열리면>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04 20:42

[금요수필] 맨발에게 말을 걸다

문경근 산책로 초입에 들어서니 맨발의 청춘들이 눈에 띈다. 나이 든 이들도 질세라 맨발이다. 늘그막이라고 점잔을 빼느라 신발을 벗을까 말까 뭉그적거리고 있는데, 맨발로 걸으면 성인은 아랫배가 빠지고, 고혈압인 사람은 혈압이 조정되며 라는 안내판의 글 몇 줄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바로 이거다. 맨발 걷기가 이렇게 좋은 건데, 이를 무시하면 어리석기 아니면 발바닥 환자가 아닌가. 밑져야 본전이고 운 좋으면 남는 장사일 것이다. 양말을 돌돌 말아 운동화 속으로 깊이 밀어 넣은 뒤, 양팔의 균형 맞추듯 두 손에 나누어 들었다. 지금부터는 오직 건강을 위한 걸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 발은 참으로 오랜만에 길에서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맨발과 흙길의 만남, 자연과 뜻이 잘 맞아 편안한 조합이지 싶다.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오랜만에 흙길과 발바닥을 대면 헤어진 남녀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듯 조심스럽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선득선득 간질간질하여 실실 웃음이 나온다. 반갑기는 한데 할 말이 마땅치 않으면 그저 웃고 마는 상황이 이런 건가. 발바닥에 일부러 힘을 주기도 하고 종종걸음도 쳐보기도 한다. 흙길 외출에 나선 발바닥도 덩달아 신바람이 나는지 들뜬 탄력이 감지된다. 한결 가벼워진 발은 호사를 누리며 주인에게 홀가분함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준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며 발바닥에 바람을 쐰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나들이 나선 손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듯, 발그레한 발바닥에 생기가 돈다. 그동안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쓰다듬어준 일이 있었던가. 무심한 주인을 만나 칭찬 한 번 못 해준 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발의 외모는 물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이력까지도 진지하게 생각하며 오늘따라 둥둥 떠받들고 싶어진다. 맨발이라야 겨우 집안에서 방바닥을 디뎌보거나 어쩌다 물가에 나갔을 때 모래밭을 밟아본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긴 시간에 아니었으니, 흙 맛을 보고 싶은 발바닥으로서는 답답하고 감질이 났을 것이다. 맨발에게 말을 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내 몸을 지탱해주며 때로는 마음의 무게까지 감당해주었지. 그동안 수고 많았다. 굴곡진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삶을 떠올려본다. 70년 넘는 세월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굳은살로 누적된 채 손길을 받아주고 있다. 딱딱하고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불현듯 유년 시절 맨발의 기억이 한 자락 깨어난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남의 신발을 훔쳐 가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찢어진 신발이나 심지어 맨발로 등교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던 때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에 맞춰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내 고무신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울고불고했지만 맨발로 교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귀갓길은 고통과 눈물로 범벅되었다. 발바닥은 쓰라리고 잃어버린 신발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다. 풀이 죽어 들어오는 나를 본 어머니는 혀만 끌끌 찰 뿐 꾸지람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작로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온 아들의 상심을 헤아리고 있었지 싶다. 흙길과 설렌 만남을 끝내고 다시 험한 세상과 맞서는 무장을 해야 한다. 시원한 물로 깨끗이 씻은 발에 다시 양말과 운동화를 신긴다. 냉엄한 세상 속에서 맨발은 안 될 테니까. * 문경근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정읍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를 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28 20:21

[금요수필] 새해 복 많이 짓게 해 주세요

최동민 오늘도 맑게 갠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푸른 하늘처럼 맑다.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테니스장으로 간다.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아침부터 가만히 서 있어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리 클럽의 젊은 친구가 시원한 수박을 한 덩이를 사 왔다. 더울 때는 수박처럼 시원하고 푸짐한 것이 없다. 수박 한 덩이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흐뭇하게 해주었다. 참 고마웠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수박을 사 왔다. 이것이 얼마나 복 받을 일인가? 내가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내가 수박을 준비했다. 그다음에 다른 친구가 그리고 또 다음 친구가 사오니 수박파티가 줄을 이었다. 이런 덕택에 지난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었다. 이런 분들이 있어 여러 사람이 행복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운동이 끝나면 이번에는 총무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이 줄지어 식사를 제공한다. 누구라고 순서를 정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돌아가면서 베풀고 있다. 모두 식사와 더불어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회원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운지 모르겠다. 단골로 다니니 언제나 푸짐하고 인정이 넘쳤다. 이 맛이 그리워 주말이면 어딜 가지 못한다. 나는 매일 아침 새벽 미사 때면 저는 복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더욱더 복을 많이 짓게 해 주십시오라고 천주님께 빌곤 한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안골노인복지관에 내는 기부금도 더 올려서 내기로 했다. 내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조금이나마 앞장서서 실천해 보려는 마음에서 먼저 베풀려고 한다. 언젠가 나와 같이 평생교육원에서 공부를 하는 학우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아는 것이 많았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복을 받으려 하지 않고 지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보고 나도 복을 받으려 하지 않고 복을 지으려고 한다. 베푸는 것도 배워야 한다. 훌륭한 사람들의 베풂을 보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적이서 감동적이다. 이것을 본받고 깨달아야 한다. 행복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베푸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일이며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공기관은 우리에게 베품이 많다. 지난여름 도서관이 제일 좋은 피서지임을 알았다. 집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개장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공부하기 좋다. 요즈음은 농한기라 조금 한가하다.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도서관으로 나가 하루를 즐긴다. 신간 서적도 많아 일부러 돈을 주고 살 것도 없다. 월간 잡지나 신문도 보며 시사상식도 넓힐 수 있다. 나는 아내 덕분에 행복하다. 아내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곁에서 나를 잘 도와주고 있다. 아내도 베풀기를 좋아한다. 한 번은 우리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아래층에 사는 아줌마가 지난번 아로니아 가루 귀한 것을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며 김치와 두부를 건네었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내는 주위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포용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요가 스트레칭으로 자기 관리를 잘하여 언제나 건강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요리 솜씨도 좋아 식탁을 즐겁게 해주어서 항상 고맙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다 많은 복을 지어야겠다. * 최동민 씨는 교직에 재직하다 퇴직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암 이삼만 선양회 초대작가(문인화)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21 20:30

[금요수필] 예술 작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유현상 티티안은 16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다. 사람들의 눈에 그의 붓놀림은 너무 쉬워 보였다. 작품들 역시 쉽사리 금방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티티안은 오랜 연마와 꾸준한 작업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는 불굴의 장인이었다. 샤를 5세에게 <최후의 만찬>을 바치며 보낸 편지는 그가 그림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알게 해준다. 폐하, <최후의 만찬>은 7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린 결과물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작 열흘 동안 일해 흉상 하나를 만든 대가로 50시킨(고대 베이스의 금화)이나 청구하는 것이오?하고 베니치아의 귀족이 그에게 불평을 하는 것이다. 티티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것을 열흘 동안 만드는 법을 익히는 데 3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군요. 맞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평생을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과이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엔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품 마다 마다 돈 가치로 따지면 본인에게는 무한대의 가치인 것이다 모처럼 서예를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기위해서 서예실을 찾았다. 한참 서예 연습을 하다가 반가이 맞이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다. 친구는 서예를 언제부터 시작했지?, 거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했으니 거의 60년 쯤 된 것 같지?, 이제, 통달했겠구먼!, 이제 시작인데 뭘 서예의 외길을 거의 30년 걸었는데도 이제 시작이라니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서예작품이 구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걸어가서 펼쳐보니 내가 보기엔 너무나 멋진 서예 작품이었는데 버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 내가 보기에 너무 훌륭한 작품인데 왜 버렸나., 응, 좀 마음에 안 들어서 , 그렇다고 이 아까운 작품은 버리는가. 그럼 혹 나에게 줄 수는 있나, 안 돼! 너무나도 결연한 자세로 말해서 나도 당황했다. 이왕 버릴 거니 나를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 말인데 친구는 단호히 말했다. 다음에 기회 닿으면 그때 한 점 해주겠네.하며 말하는 그의 본뜻은 이러했다. 자기의 작품 중에서 실패한 작품인데 우리 집에 가 있으면 서예를 한다는 사람이 보게 될 경우도 있을 텐데 자기를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이라도 실수한 작품이라 생각되면 아깝지만 과감히 버리는 것이 자신의 수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완전한 작품만 세상에 내 놓는다는 것이다. 역시 프로의 근성을 알게 되어 공연히 얼굴이 빨개졌다. 평생을 절차탁마하며 피나는 노력을 해서 오늘의 그 멋진 작품이 나온 것이다. 모든 작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시, 수필, 소설, 미술, 서예, 음악, 무용, 공예 등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다. 김연아의 피겨선수도 그렇고, 양궁선수도 그렇고, 박지성 선수도 그렇고, 조용필 가수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평생을 쌓아온 그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오늘의 예술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예술을 감상할 때는 드러난 겉만 보지 말고 심오한 내용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작가의 피땀과 참모습까지 발견해야한다. ▲ 유현상은 순창 교육장과 전북과학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중앙위원으로 있으며 동화집 <늦게 말한 사람이 진거야> 등 동화집과 동시집을 펴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14 20:56

[금요수필] 두물머리 물처럼

나인구 불가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마음속에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욕심 등을 벗어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그러면 착득거(着得去)하라 한다. 즉 지고 가란 뜻이다. 이 말은 조주 스님이 엄양 스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 안의 집착을 버리고 자세를 낮추며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 위한 끝없는 담금질을 통해 빈 그릇이 될 때 그 안에 생명수가 넘쳐흐를 수 있다. 비워냄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들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지나온 자리를 둘러보고 반성해볼 때가 종종 있다. 욕심, 집착, 갈등 등으로 후회스러운 삶이 얼마나 많았는가? 언젠가 전주 추천대교를 지나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전주천이나 삼천천을 거닐 때는 그 흐르는 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천대교 옆을 지날 때 갑자기 이렇게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들어오지?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주 천과 삼천 천의 발원지가 어디인가? 모악산과 저 멀리 임실이나 상관의 골짜기를 내려와 전주 시내를 관통하여 추천대 두물머리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와 시가지의 오염되고 악취가 풍기는 냇가를 어떻게 지내 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추천대교 아래에서 만났으니 지난 모든 것 버리고 우리 한마음으로 넓은 만경강으로 가자한다. 그곳에 가면 용담이나 대아리, 완주 동상면 밤샘에서 흘러온 물들과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유유자적하게 건강한 강물로 흘러 바다를 꿈꾸게 될 것이다. 나는 퇴직을 하고 나서 처음에는 아침이면 무의식중에 넥타이를 매고 옷을 챙겨 입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어디를 가려느냐고 묻기에 출근준비를 한다.고하며 웃었던 때가 있었다. 이후 흐르던 물이 고여 있을 수만 없어서 노인복지관, 교회, 그리고 평생교육원 등을 찾아다니며 아직도 비어있는 지식의 그릇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나다닌다. 상처로 얼룩진 지난날, 욕심으로 집착했던 마음을 다 비워버리고 살 요량으로 하루하루를 살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물질이야 내려놓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마음속에 채우고 싶은 여러 욕망은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다. 지금도 욕심을 부려 원망이나 미움으로 얼룩진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욕망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소망을 바라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이 우주와 합일된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그것을 관조함에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실에 너무 집착하여 소망과 욕망을 서로 혼동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부질없는 욕망을 자제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기원하여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포근한 삶을 이루었으면 하고 또 소망해 본다. 흐르는 두물머리 물처럼 함께 어울려 옛일을 잊고 그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즐겁고 건강하게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다. 모든 것 버리는 방하착의 심정으로 살고 싶다. 내가 버리고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하면서 함께 손잡고 늘그막의 사람들과 두물머리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먼저 손 내밀면서-. * 나인구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시, 수필로 등단한 뒤 전북문인협회 이사, 전북수필문학회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회장으로 전북수필문학상, 문맥상을 수상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07 20:43

[금요수필] 추임새

김학철 국악인 박동진 명창이 언젠가 TV에 나와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여라고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일이 있었다. 이렇듯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으로 먹는 먹거리처럼 귀로 듣는 소리 역시 우리 소리가 들을수록 가슴에 와 닿게 되었다. 우리 소리는 언제 들어도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 난다. 며칠 전 어느 수필문예지 출판기념회에서 여류수필가가 <흥보가>를 불렀다.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주연이라면 고수는 조연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판소리 사이사이에 흥을 돋구기 위해 고수가 북을 치며 얼씨구- 또는 좋고- 좋지-, 아니면 으이- 따위의 추임새를 넣는다. 이런 조흥사助興詞나 감탄사인 추임새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신이 나는 일이고, 관객은 관객대로 흥이 나는 일이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 김장철의 배추라면 고수는 양념이다. 배추와 양념이 제대로 버무려져야 맛깔스런 김치가 되는 것처럼 소리꾼과 고수가 일심동체가 될 때 완벽한 판소리가 되기도 한다. 고수 없이 소리를 하는 사람 혼자서 89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완창 한다는 것은 맥이 빠지고 지루한 일이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기념회에서는 소리꾼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고 전문고수도 없었다. 다만 많은 참석자들 중 남자수필가 56명만이 소리를 하는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 수필가가 부른 흥보가는 맛깔스럽고 추임새가 잘 어우러져 행사장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생각해 보면 추임새는 소리를 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령 성악가나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것도 일종의 추임새다. 또한 어린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해 준다거나 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내는 일, 김밥할머니가 평생 고생해서 번 전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일 등으로 사회적 찬사를 받는 일도 추임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추임새는 널려 있다. 얼마 전 문우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을 때 밥을 먹다가 보니 반찬 그릇마다 비어 주인에게 추가반찬을 청하며 반찬이 너무 맛있어 동이 났습니다. 앞으로는 맛있게 만들지 마세요.라며 빈 반찬 그릇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맛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싱글벙글하며 반찬과 더불어 부침개 한 접시를 더 갖다 주었다. 이 또한 추임새의 덕을 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남에 대해 험담이나 흉보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게 살아왔다.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거나 그 순간에는 감동하다가도 곧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험한 사건, 사고가 터진다.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 저렇듯 바쁘고 복잡하며 불안한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은 추임새가 아닐까? 의식적인 추임새나 무의식적인 추임새는 자주자주 넣어야 한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빠졌을 때 힘을 받쳐주기 위한 것이거나, 강약을 보좌해 주거나, 소리의 공간을 메워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임새가 들어가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고수의 감각에 의해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또 소리꾼과 고수의 호흡이 잘 맞을수록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추임새야 말로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하거나 밝은 사회로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진정한 추임새는 곧 흥이고 칭찬이자 격려다. * 김학철 수필가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이사, 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2.28 20:19

[금요수필] ‘덕분에’ 라는 말

박종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모두 다 이루어지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사형통하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금년에도 어김없이 이렇게 다양한 설 축하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중에 며칠이 지나서도 잊혀 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 남아있어 여러 번 들어다 본 메시지가 있다 세월 차암 빨리 가는군요. 우리말에 덕분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 속엔 사랑과 은혜 그리고 감사가 들어 있다고 하네요. 오늘도 부모님 덕분에, 친구님 덕분에,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며. 특히 당신 덕분에 항상 잘 지냅니다.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인생길, 덕분에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아 복 많이 받으세요.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요.라는 어느 수필가가 보내준 축하메시지는 왠지 가슴을 찡한 울림을 주며 남아있다. 그것은 평소에 잊고 지내던 덕분에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다가와 가슴을 두드렸기 때문 이싶다. 덕분德分에 라는 말은 베풀어준 은혜나 도움이라는 뜻으로 덕德, 덕윤德潤, 덕택德澤, 은덕恩德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 덕을 나누어준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고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가를 돌이켜 보니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주려는 것보다는 받으려고 힘쓰며 살아왔지 않았던가, 아마 의례적인 인사겠지 하면서도 덕분에 라는 말이 머릿속을 뱅뱅 돌며 떠나지를 않았다. 덕분에라는 말에 자신을 반추해본다. 육십이 넘도록 공직에 있을 수 있었으며, 노후에도 알량하지만 이렇게라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세 분의 덕분에 라고 생각된다. 돌이켜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토끼가 발을 맞추고 앞뒤 산에 간대를 걸치면 걸친다는 험한 산중에서 태어난 터라 마을사람들은 으레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농사일이나 시키던 때였다. 그런데 나를 대학까지 보내주신 아버지, 그건 순전히 아버지 덕분에였다. 또한 평생 한없이 예뻐해 주시며 대학입학금을 내 주신 외할머니의 덕분에도 있었다. 그리고, 새벽 일찍 밥을 지어 이십 리도 넘는 통학을 도와주신 어머니의 덕분에도 잊을 수가 없다. 젊은 시절 잔병치례로 고생하던 퇴계 이황이 양생법을 자세히 소개한 활인심방이라는 의서에 심취하여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고의 노력 덕분에 일흔 살까지 건강하게 장수를 누렸다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주위에서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저희는 잘 지내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가 나한테 힘을 줘서 덕분에사는 느낌이라고 한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나도 세분들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생각하니 가슴 깊이 흐르는 뜨거운 그리움이 폭포수 되어 목이 멘다. 덕분에 라는 말은 사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두루 사용되고 있다. 당신 덕분에 꽃이 피었습니다.,당신 덕분에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행복합니다.,당신 덕분에 웃으며 살아갑니다.,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당신 덕분에 저녁 잘 먹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이런저런 일로, 덕분에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덕분에 라는 그 말 한 마디 듣는다는 건, 덕德 하나가 쌓인다는 거 아닐까? 당신 덕분에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 일인가. * 박종은 수필가는 고창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고창예총 회장으로 있다. 영랑문학상과 전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의 포트폴리오>와 산문집 등 10권의 저서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2.21 20:31

[금요수필] 신춘문예 단상(短想)

김덕남 항상 새해가 되면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덕담이 이어진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정초에는 신춘문예 관한 관심이 제일 크다. 특히 올해에는 내가 소속된 문학단체 회원이 둘이나 중앙과 지방언론사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카 톡 방이 축하 인사로 뜨거웠다.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크고 작은 불씨를 안고 한 번쯤은 정상에서 불사르며 우뚝 서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그 실력을 공인받고 공개적으로 제 위치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그 꿈의 첫 번 째가 신춘문예이다. 당선 가능성의 확률을 셈하며 자기지역은 물론 타 시도의 언론사 까지 응모 권역을 넓히며 응모를 한다. 그러나 많은 신춘의 도반들이 그 정상 가까이서 고배를 마시며 연일 수런수런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같은 해 장원을 비롯한 또 다른 급제의 영광을 안은 인재들이 많았건만, 신춘문예 당선만은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 적어도 수년을 갈았던 펜의 꿈이 모두가 허탈한 도전으로 끝나고 만다. 별을 따는 야망으로 은근한 기대를 안고 숨을 죽이며 분투했을 작가 지망생들이다. 그런데 그 고지에서 탈락한 글이라 해도 당선작과 견주어 한 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기 글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미련을 안고 또다시 숙성되지 않은 글로 무모한 도전을 한다. 작가의 심상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글의 당선작이란, 명확한 기준의 기계적인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극소수 심사위원의 정서적 감정 코드와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물론 기본 문법이나 주제 의식이나 감동을 주는 문학적 기교 등 타당성 있는 객관적인 심사기준은 있다. 그런 관점에 따른다 해도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듯, 최종 작을 결정하는 분들의 문학적 관점이나, 사상이나 가치관은 각각 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당선작은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작가가 경험한 구체적 사건과 사물을 의미화하고 형상화하여 일상과 대입해 나가는 글이 많다. 신춘문예를 대비한 글쓰기 반이 따로 있다는 통설은 신춘문예의 글쓰기 기법과 유형을 짐작하게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 아닌가. 요즘엔 파격적이고 통통 튀며 대담하게 글을 쓰는 신선한 문학도들이 많다. 그들은 신춘문예 쪽엔 아예 관심도 없고 자기만의 글을 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묵직한 여운도 충분히 남긴다. 심지어 세상에 고백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갈등의 복합적인 내면 이야기까지도 높은 차원의 시각으로 통찰하여 숙련된 문장으로 이끌고 간다. 신춘문예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글 마당이기에 그 당선만이 문학의 절대가치가 아니라는 어느 평론가의 위로는 위로로서 그친다. 신춘문예 당선은 국내 문학행사로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수상이어서 역시 자랑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다. 번뜩이는 창작력으로 무장한 풋풋한 문학도들, 농익은 삶의 지혜와 무한한 자기 숙련으로 다져진 경륜이 쌓인 문장가들. 무수한 그 별들이 밤하늘에서 저렇게 빛나고 있다. 저 어느 곳에 내별 하나쯤 떠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나에겐 낙타 바늘귀 들어가는 일처럼 요원한 일인가? 그러나 저 하늘에 내 별 하나 오르지 못한다 해도 또 어떠리. 밤하늘을 우러르며 빛나지 못한 내 글일망정 온유한 생각으로 스스로 내 글에 빠져 지내는 것도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인 것을. * 김덕남 수필가는 전주용소초등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에세이스트 신인 수필가상으로 등단했으며, 풍남제주부백일장(시), 전국 물사랑 공모전(은상) 향촌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추억의 사립문>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2.14 19:54

[금요수필] 버티며 사는 인생

한성덕 어느 덧 격동과 파란의 세대를 살아온 막내가 환갑을 맞는 돼지 해. 그것도 황금돼지 해인 기해년의 태양이 아파트 창 너머로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우아동 럭키아파트는 전주시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비껴 앉은 끝자락에 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다. 그래도 아파트 뒤편 저 멀리서 올망졸망한 진안고원의 산들이 손짓한다. 그 유혹에 사로잡혀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고향 쪽 도로로 들어서 시골집까지 자동차로 50분 거리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 50분을 달려가는 동안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오르내리며 느끼는 스릴과 창밖의 풍광을 즐기는 재미에 취하다보면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무주가 고향이 아니라면 그 기분을 어찌 알겠는가? 나만이 갖는 맛이요, 즐거움이다. 아파트에서 전주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전주역 바로 옆에는 30층짜리 오피스텔 아파트와 함께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며 공사가 한창이다. 그 대형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좋아서인지 지날 때마다 설렌다. 그리고 전주역도 새로 건축되며 그 뒤쪽 드넓은 뜰에는 새로운 주거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는 낭보가 들린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무척 반가워서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몇 년 전부터 전주역 앞거리가 달라졌다. 관광객이 첫 발을 딛는 전주역 앞 약1km 가량의 첫 마중 길은 고향의 거리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도로양쪽에는 느티나무가 멋을 뽐내니 살아 숨 쉬는 거리공원이 되었다. 몇 십 년이 지나면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싱가포르의 거리를 방불케 할 것이다. 차들은 그 사이의 공원 양쪽도로를 타고 서행한다. 창가에는 거리의 작은 것들이 낭만을 이루고 도심 속 허파가 되어 꿈틀거린다. 크리스마스 전부터 공원은 초롱초롱한 야등으로 출렁거린다. 연인들은 손을 맞잡고 추억을 담아내고 찾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깜박깜박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달라지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오지의 럭키아파트가 점점 좋아지고 사는 맛도 매일처럼 새롭다. 목회에서 조기은퇴하고 지금은 보금자리를 럭키(lucky)아파트로 정한 것 자체가 복이다. 이름처럼 여기저기서 행운이 샘솟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 행운이 안겨주는 희망을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럭키아파트에 살련다. 앞으로 그 주변에 더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버티고 살아 볼 참이다. 버틴다고 하니까 얼핏 씨름의 버티기 생각이 난다. 씨름이라야 고작 초등학생시절 장난기서린 씨름이어서 씨름다운 씨름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하면 이만기가 떠오른다. 씨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게 버티기라고 한다. 실제경기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은 공격보다 버티기라니 알만하다. 다리에 힘을 잔뜩 줘서 상대공격에 안 넘어져야하고, 두 팔로 샅바를 굳게 잡고 잘 견뎌내야 한다. 팔다리에 쏠리는 힘은 배와 팔뚝에서 땀방울을 만들고, 장딴지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았다. 서로가 힘껏 버티다가 약점이 느껴지면 후다닥 기술을 걸어서 쓰러뜨린다. 약점으로 무릎을 꿇으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도 잘 버텼으니, 올해도 잘 버티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이다.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게 감사해서다. 후회 없는 인생이 되려면 잘 버텨야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 한성덕 수필가는 은혜림교회 목사를 은퇴하고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신아문예대학에서 수강 중이며 신(信).망(望),애(愛)로 버무려진 성직자 수필집 <단, 하루만이라도>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2.07 19:56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