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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생명의 터전 바다

이의 전북일보에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의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가슴을 한참 진정해야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해안은 아직 청정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우려했던 현실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요즈음은 쓰레기도 국제화 되어 이웃나라 플라스틱이 우리나라 연안까지 밀려온다니 바다 오염은 지구인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할 문제다. 어느 날 환경운동연합회로 부터 크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상영한다는 문자를 받고 감상을 한 적이 있다. 알바트로스는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을 먹이라 생각하고 어린 새에게 이를 먹이는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의 미드웨이 섬에 수천 마리의 어린 알바트로스가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채로 죽어 볕에 말라가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플라스틱 등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비극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태평양 외딴 섬에 무리 지어 살고 있는 새의 삶과 사랑이야기이자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 때문에 죽어가는 가여운 생명, 그 생명을 사랑하게 된 어느 남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영상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가 생명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니 기가 막혔다. 언제부터인가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되다 보니 공동주택의 쓰레기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장소에는 플라스틱 병이 뒹굴어 다닌다. 그런데 순간 사용하여 버린 이것들의 재활용은 20%도 안 되고 나머지는 지구상에서 남아 분해되는 시간이 무려 400년이란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한다. 플라스틱 없이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제품들을 제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용품들은 말할 것 없고 반도체, 얇고 화려한 LCD와 유기EL 디스플레이, 고성능 2차전지, 초극세사와 기능성 섬유, 자동차 내장재 등은 플라스틱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을 제품들이다. 이처럼 가볍고 단단한데다 가공이 쉬워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며, 편리함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이 이제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바다하면 낭만의 푸른 파도로 설렜는데 생명을 죽이는 플라스틱 잔해가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한심하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조류에 의해 태평양으로 모여든다. 그로인해 한반도 크기의 일곱 배보다 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겼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햇빛과 파도에 의해 찢기고 부서져 크기가 점점 작아지겠지. 작은 조각이 물위를 떠다니면 해양 생물체들이 먹이로 알고 주워 먹는다. 이 쓰레기의 잔해가 우리들의 밥상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겠지. 지구의 70%인 바다는 오늘도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고래의 사망 원인 중 56%가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사망한다고 한다. 바다로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은 새우, 홍합, 굴 등 다양한 해양 동식물의 먹이가 되고, 결국 이들은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 지구의 70억의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과학의 발달은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모든 만물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지구의 일원일 뿐 만물과 함께 살아야 할 책임을 져야 되리라. 공생의 순리를 지킨다면 아름다운 지구는 초록별로 남으리라. * 이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 전북수필, 영호남수필. 덕진문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여자나이 마흔 둘 마흔 셋>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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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1 20:02

[금요수필] 그때는 몰랐다

임영희 언젠가부터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웰빙(Well Being)이란 미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자연, 건강, 안정 등 정신적인 가치까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여기에 영적인 건강을 추가해 심리적 건강을 중시하는 추세다. 그러더니 얼마 후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이 대세라며 영육 간 치유의 생활과 방법이 많이 밀려왔다. 물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바야흐로 <웰 다잉>의 시대가 뜨고 있다. 웰 다잉(Well Dying)은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고령화와 가족 해체 등 여러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등장한 현상이다. 또한, 노인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의 도움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이 퍼졌다. 건강 체크로 고독 사를 예방하고 그동안의 삶을 기록하거나 유언장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웰 다잉을 실천할 수 있다.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자 기업과 복지관 등에서는 비문 짓기부터 사후 신변 정리까지 웰 다잉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모두가 평등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이란 소멸되는 게 아니라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마지막을 후회 없이 맞이할 수 있을까. 한때는 60까지만 살려고 한 적도 있다. 여러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치자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하지만 다 지나고 보니 잘 견디고 참아왔다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 본다. 물론 고희에 이르러서야 모든 걸 내려놓고 희생 인내하는 생각으로 살려고 애쓰는 걸 감출 수 없다. 나중에 그런대로 중간 점수는 받고 싶은 마음이리라. 친정어머니 병구완 중에 교통사고 수술 후유증으로 심한마비와 통증이 나를 짓눌러도, 아침저녁에 수도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지낸다. 그러면 마음으로나마 잠시라도 위로를 받는다. 사는 게 뭐 별것인가. 일하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주위를 정리하며 단순하게 살려 한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 소중히 간직했던 것을 나누어주고 아주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러니 마음도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것 같다. 의식주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어 개운하기 까지 하다. 그런 연유서인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항상 좋은 긴장감을 갖고 만끽하며 지내련다. 신과 함께 그 분 안에서 그리고 책과 꽃으로 내 빈 가슴을 채우기도 한다. 요즘에는 가끔 운명을 사랑하라는 김연자 아모르파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김종환 가족을 위한 노래도 내 심금을 울린다. 두곡 모두 영혼을 살짝 건드리며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어느 날에 천상의 선물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런대로 즐겁고 후회 없이 지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몽환적으로 보인다. * 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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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4 19:57

엄지손가락 - 정근식

정근식 수필가 퇴근 무렵 직원이 갑자기 휴가를 냈다. 광주에 계신 아버지 때문이란다. 아버지께서 팔순이 넘으셨는데 교통사고와 노환이 겹쳐 치매 증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하고 나간 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직원은 휴대폰도 집에 두고 가셨으니 찾으러 다니는 수밖에 없다면서 전화를 받자마자 형제들에게 연락을 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서둘러 허겁지겁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는 가정의 엄지 역할을 하는 장남이다. 엄지는 첫 번째 손가락이다. 짧고 굵어 볼품없지만 손의 중심이다.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이 연합하여 물건을 집거나 들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엄지 없이 다른 손가락만으로는 손의 기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엄지와 다른 손가락은 형제처럼 서로 협력의 관계이다. 그렇다고 둘째나 셋째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엄지가 다른 손가락과 힘을 합하여 손의 기능을 하듯이 형제들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세월이 변해서 장남의 역할이 다소 희석되기는 했지만 형제간의 마음을 모으는 중심은 역시 엄지로써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장남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급히 휴가를 내고 부모님을 찾으러 가는 그 직원도 삼남매 중 장남이기 때문에 먼저 연락을 받고 또 엄지라는 책임감 때문에 다른 자녀들보다 먼저 부모님을 찾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곤 한다. 나도 그 직원처럼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고 삼남매의 맏이다. 그리고 부모님 모두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어머니는 십 년째 암 투병중이시고 아버지는 척추염으로 고생을 하신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최근 대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다. 그 결과 두 분 다 건강이 많이 호전되어 다행이다. 우리 부모님도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내게 맨 먼저 연락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은 두 동생들과 의논을 한다. 특히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간병에 대해 의논하고 치료비를 나누어서 부담하기도 한다. 내가 힘들 땐 가끔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생들이 있어 좋다. 다음날 휴가를 냈던 직원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다행히 아버지를 찾아 밝은 표정이었다. 다른 형제들까지 모여 찾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집 근처에서 길을 잃고 주위를 몇 시간이나 헤매다가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근 합계 출산율이 매우 낮아졌다. 지난해 출산율이 1.24명이라고 한다. 자녀의 수가 1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많아 장남, 차남, 삼남이라고 했지만 요즘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장남이거나 장녀이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 현실을 본다면, 노부모를 부양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자녀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형제들이 힘을 합하여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혼자 부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 부양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자기 부모의 힘든 모습을 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아프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함께 나눠야 할 형제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출산의 현실을 보면 다음 세대가 심히 걱정이 된다. 검지, 중지가 없는 세상에서 엄지손가락 홀로 손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정근식 수필가는 현대수필로 등단하고 수필사랑문학회, 행촌수필, 대구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국민연금공단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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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7 21:57

[금요수필] 김장배추와 김장

김재교 해마다 가을이면 김장철이 된다. 김장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는 겨울철을 내내 싱싱한 푸성귀를 사람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도록 하는 참으로 고마운 음식이다. 올해도 뜰안 꽃사과나무 능금 볼에 노랑물이 비치는 걸 보니 김장철로 접어든 것 같다. 이때쯤이면 감도 많이 붉어진다. 나는 올해 벌레 때문에 조금 늦게 항암배추 한 판을 일반 모보다 비싸게 샀다. 미리 거름도 많이 넣고 물도 주고 정성을 쏟았다. 늦게 심어서인지 남의 일반배추는 속이 차는데 우리 배추는 속이 찰 생각은 없고 검푸르고 키만 자랐다. 아내가 짚으로 포기 위를 묶어 주었다. 그리고 저녁때는 구집포로 덮으며 모를 잘 못 구입했단다. 걱정이 되어 속으로 사면되지 생각했었다. 아내는 서울에 있는 아이들과 김장 날을 정했으나 그때까지는 배추 속이 차지 않아 못할 것 같아 20여일 늦추었다. 수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컴퓨터 공부 도중 배추 사정을 잘 아는 컴퓨터 반 친구 말을 꺼냈다. 앞에 앉은 컴우 님이 20여 포기 여유가 있으니. 공부 끝나면 뽑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또 한 분이 20여 포기가 있다고 했다. 순간 40여 포기를 얻게 되었다. 아내한테 이야기 하니 반가워했다. 컴우 님들 댁에 가서 배추 22포기를 얻어왔다. 다음날 컴 총무님이 배추 23포기를 자기 차로 실어다주었다. 그래서 갑자기 배추부자가 되었다. 김장 날이 바뀌니 무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땅에 묻었다. 묻고 보니 필요한 분들이 있어 봄으로 약속을 했다. 다음날 수필 수업을 마치고 오면서 귤 2상자를 사서 그동안 몇 달을 땀 흘려 가꾼 배추를 기꺼이 주신 컴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장 5일 전에 밭에 있는 배추를 거두어 보니 걱정보다 속이 많이 찼다. 수원에 사는 손녀가 자기도 김치를 담그겠다고 야단스레 문자가 왔다. 우리 내외는 3일 전에 김장할 배추를 다듬고 다음날 3년 된 소금에 절여 그 다음날 지하수로 4번을 씻었다. 절인 배추를 보니 여기저기서 보태주어 정말 많았다. 전주에 살고 있는 이모 둘과 조카, 큰아들 내외, 손녀와 딸, 우리 내외 등 대식구의 김장축제가 시작되었다. 이모가 닭을 세 마리나 가져 오고, 돼지 목살 5근을 삶으니, 잔칫상이 되었다. 잔칫상 앞에서 경기도에 사는 손녀가 영어로 말하기 도 대회에서 1학년 전체 대상을 받았다며 대견스럽게 모든 식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다. 얼마나 진지한지 대견스러운지 박수가 절로 나왔다. 작년에는 서울의 언니 봄이가 서울시 주최 영어 토플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올해는 아인이가 대상을 받았다며 아인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올 김장은 열다섯 집이 나누게 되었다. 기상청에서는 김장한 날이 올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제일 따뜻하고 화목한 날이 되었다. 내년에는 조금 일찍 심고 더욱 정성을 들여 컴우 님들과도 나누어야겠다. 배추를 나르고, 자르고, 절이고, 속을 무치며 김장 준비하는 일은 힘이 무척 든다. 이 때 일을 분담해서 할 일을 줄여주고 또 이야기도 해가면서 김장하는 일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은 미풍양속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할 일을 줄여주는 정다운 풍습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그 모습이 바로 한국인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 김재교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백두산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선조인 임진왜란 구국공신 의병대장 김면 장군의 일대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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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0 20:02

[금요수필] 여기, 지금(Here and Now)

백봉기 여기, 지금(Here and Now)은 톨스토이가 자주 쓰던 말이다. 그의 저서 <지금, 여기, 당신> 제목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지금,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자. 여기, 발 디딘 곳에 행복이 있다. 당신, 진짜 나로 살아야 한다. 우리, 더불어 산다는 의미다. 지금은 영원의 축소판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이요, 지금 미워하는 사람이 영원히 미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왜 이 말을 갑자기 꺼냈을까? 연말연시에는 행사가 많다. 따라서 건배사를 미리 준비해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건배사를 들어야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까?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된다. 건배사는 회식 분위기를 기대 이상으로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가라앉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와인보다 진한 향을 남기는 센스 있는 건배사를 하면 덤으로 좋은 이미지와 더불어 주목을 받게 된다. 건배사는 일단 술잔을 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짧게 하는 것이 좋다. 길게 하면 자칫 분위기를 망칠 수가 있다. 그리고 건배사를 하기 전에는 동기유발을 위해 간단한 소개가 필요하다. 또한 선, 후창이 필요할 때는 제가 OOO라고 선창하면 다같이 OOO라고 함께 외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 사전 고지를 한다. 삼행시로 된 건배사는 먼저 운을 띄어 주고 답한 다음 다 끝난 후에는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는 것이 좋다. 회사직원들이라면 회사 이름이나 본인의 부서 이름으로 삼행시를 외쳐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미리 준비한 사람과 준비가 안 된 사람의 건배사는 차이가 있다. 준비 안 된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여러분, 건강이 최고입니다. 우리 오래오래 삽시다. 라든가 아니면 행복 합시다. 등 식상하고 상투적이고 건배사는 분위기를 잡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건배사다. 건배사는 건배할 때 자신의 소원과 기원을 담는 말로 보통 건강과 발전, 행운을 빌지만 술잔을 맞대어 소리를 내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 있다. 건강이 중요하지만 건강이라는 말을 빼고 차라리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처럼 다른 의미의 멘트를 통해 건강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건배사 한두 개씩은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나는 친구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나이야 가라!를 외친다. 건배사를 하기 전에 먼저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가 무엇이죠?라고 물으면 금방 나이아가라폭포라는 답변이 나온다. 그러면 곧바로 건배사는 나이야 가라! 로 하겠습니다.라며 건배를 하면 모두가 목청 높여 건배를 한다. 여기에는 세월아 저리 비켜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또 하나 준비한 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말한 Here and Now, 여기, 지금이다. 이것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습니다. 황금, 소금, 지금입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며 지금, 여기, 당신을 위하여!!를 외치면 금방 분위기가 살아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 Here and Now, 여기, 지금! ※ 백봉기 수필가는 한국산문으로 등단하여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등 3권의 수필집을 내고 현재는 전북예총 사무처장과 온글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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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금요수필] 첩첩산중(疊疊山中) 여행기

김세명 만원의 행복 도내 순환관광에 참여했다. 나는 일요일이면 특별한 종교도 없어 혼자 여행을 떠난다. 지난번에는 선운사 코스와 내장산 코스를 답사하고 11월18에는 덕유산 향적봉에 올랐다.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니 편했다. 백두대간 덕유산은 언제나 힐링을 하게 해준다. 발아래 멀리 보이는 계곡의 집들이 두세 두세 하다. 첩첩산중이다. 그곳에서 내가 태어나 자랐다니, 나의 인생길처럼 참 멀리도 왔다. 부모님이 너무나 훌륭한 분이라고 되뇌어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확실해 지는 것이 있다. 앞서 세상을 사신 분들의 삶이 결코 나보다 못한 분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 분들이 살아왔던 삶의 날들은 분명 오늘의 나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세상살이를 하셨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몫을 아름답게 감당하셨다. 오늘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그분들보다 어렵다고는 할 수 없겠고, 특히 그분들이 처했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렵고 힘든 시대였다. 1944년 음력10월14일 나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28살 아버지는 27살 때였다. 평생 농사꾼으로 사시면서도 나와 형제들을 잘 기르시고 가르치셨으니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 어제는 나의 자식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내 생일을 축하했다. 감회가 깊었다. 첩첩산중에서 태어나 나를 비롯하여 자손들이 번창했으니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도 기뻐하시리라. 나의 고향에 대한 추억은 일에 파묻혀 지게를 지고 모내기를 하며 풀베기와 보리타작, 콩 털이를 하던 생각뿐이다. 몹시 가난했던 게 내 어린 시절이었고, 그 뒤 군대에 입대하면서부터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고향엘 가면 괜스레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아 주눅 든 마음으로 몸가짐에 조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향토를 지키며 흙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객지 바람에 거덜난 사람 같아 자괴심이 들었다. 물레가 도는 가슴으로 어둑어둑한 길을 올라가는데 개구리 합창소리가 대낮보다 더 시끄럽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그만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소리를 빽 지를 뻔했다. 그것은 벌거숭이 내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의 왁자지껄하던 함성이었으며, 타작마당의 기계소리나 도리깨질 소리 같았다. 아니 풍물 치는 소리나 밤안개 속에서 들려오던 개짖는 소리 같았다. 첩첩산중 가난하게 살던 어린 시절에 본 붉게 물든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나의 희망이요 꿈이었다. 동네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어린 소년의 눈에 비쳐오는 타는 놀빛은 한없는 동경과 꿈의 세계였다. 그러나 전광석화처럼 청장년시절이 지나가 버렸다. 노년에 향적봉에서 발아래 보이는 고향의 모습을 보며 명상에 젖었다. 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과 첩첩산중의 두메산골은 자연의 소리며 힐링 장소였다. 사람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진즉 알았지만 오늘 다시 실감했다. 장수 장안산 덕산 계곡으로 향했다. 제2용소는 남부군 영화 촬영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논개의 생가 터를 보고 전주로 향했다. 오늘은 짧은 여행이지만 나에게는 의미하는 바가 컸다. * 김세명 수필가는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하여 <수필과 비평>에서 등단했으며 수필집 <업業> 등이 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과 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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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0 19:57

[금요수필] 받아들여야 할 운명

김현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데 마지막 이별은 죽음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이별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중요하다. 내가 올 한 해 동안 한 일 중에 잘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주 효자 추모관 프레미엄실에 부부 유택(幽宅)을 장만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전 연명 의료중단 의향서의 등록이다. 원래는 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려 했는데 아내의 반대가 완강하여 포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무척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여유로울 때는 나의 장례식 그림을 미리 그려보기도 한다. 얼마 전 성도들이 모여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이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건강하게 살다가 부르시는 날 평안히 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즉 병사를 하거나 사고사를 당하지 않고 타고난 명만큼 살다가 평안히 죽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기원이다. 91세 된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병이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손들이 모였다. 혼수상태에 빠지자 신부인 아들이 함께 마지막 미사를 올렸다.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고맙다며 마지막으로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놀랐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여 위스키를 드렸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얼음을 넣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맛있다면서 이번에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 했다. 아들이 안 된다고 하니 죽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바로 나다. 담배 한 개비만 다오.하며 간청했다. 담배를 받아들고 여유 있게 피우더니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얘들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안녕!이라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비록 일화이지만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밝은 행동을 생각하고 얼마나 어머니다운지 서로 이야기하며 웃었다. 할머니는 평생 위스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었는데 참으로 위대한 할머니였다. 대개는 준비 되지 않은 채 마주친 육친의 여러 죽음을 통하여 비통하고 애절한 경험을 한다. 이렇게 마음 편히 고인을 보내드린 적이 없다. 나도 이처럼 발길 가볍게 떠나면서 남은 가족에게도 슬픔을 남기고 싶지 않다. 어느 유서 이야기다. 할머니가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면서 유족에게 유서를 썼다. 너희들이 내 자식이어서 고마웠고 그동안 나를 돌보아주어 고맙다. 너희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릴 때 나를 바라보던 눈길에 행복했다. 하느님이 부르실 때 이렇게 곱게 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줘서 참말로 고맙다. 남편을 잃고 세상 무너지는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너희들이었다. 너희가 있어서 행복했다. 자녀들은 이 유서에 감동했고 그와의 이별을 잘 견뎠다. 평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미 수필 속에 녹아있지만 나도 이제 자녀들에게 짧은 고별사는 준비해야 될 것 같다.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몇 마디 적으면 모두 고맙다. 가족이 있어 살맛이 났고 행복했다.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라.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삶을 마감할 때 도움을 받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명을 주신 신과 부모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돌보아준 자녀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사람은 죽는 순간에 업을 정화하기 위한 강력한 기회가 주어지므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에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 * 김현준 씨는 대한문학 수필부문으로 등단하고 영호남수필 전북부회장, 대한문학 작가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이젠 꼴찌가 좋아 등 6권이 있으며, 대한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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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3 19:59

[금요수필] 고향 선물

문진순 이것저것 정신없이 챙겨서 아이들 휴가를 보내고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과 주방이 발 디딜 곳조차 없이 엉망이다. 그래도 피곤이 몰려와 잠깐 쉬었다 치우자고 밀쳐두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한나절이나 자버렸다. 부리나케 일어나 세탁기에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주방 가득 널려있는 그릇들을 씻고 닦아서 제자리에 넣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갑자기 어느 시인의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시가 생각났다. 하루를 견디기가 지루하고 힘이 들 때에는/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가 있다면/내일의 하늘은 코발트 빛 희망일 겁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서서 어둑해진 거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은 일들일랑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추억만을 잔 속에 채워 내일을 살아가는 지혜로 만들어 보자.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엄마, 같이 못 와서 섭섭해요.라는 문자가 왔다. 뭘, 나는 내일 옛 친구들 만나러 동창회에 가는데.라는 문자를 보내고 싱긋 웃었다. 우리 고향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8월 15일 전후해서 전국에 흩어진 회기별 동창들이 만나 그리움과 설렘을 안고 꼴짝 꼴짝 예약된 장소로 모여든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모두가 싱크 홀에 빠진 듯 그날만을 기다리다가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모두가 옛날로 돌아간다. 올해에도 고향 친구들의 배려로 땡양지 생태마을 펜션에 도착했다. 하늘은 맑고 산과 들엔 싱그러운 푸르름이 폭염과 가뭄에 지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고, 달디 단 공기도 우리를 환영했다. 친구들은 오는 대로 가볍게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며, 마주 보고 웃는 인사로 서로 반겼다. 총무가 새벽 내내, 청소하고 물을 받아 채웠다는 검정 그물망 밑의 풀장은 물이 가득 차 넘실대고, 식당에서는 맛있게 준비한 어머니 표 산채반찬을 안주삼아 술잔이 오가며 이야기꽃이 피었다. 소, 사슴, 돼지, 염소 철렵국까지 갖가지 안주와 폭주로 떠들썩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고, 콩비지 찌개 안주가 제일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엄지 척하는 친구들이 정다웠다. 허리가 굽고 희어진 머리카락으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정겹다. 친구들이 하나둘, 별이 되어 떠나고, 어딘가 아파서, 체력이 달려서 올 수 없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어릴 때 앞니가 다 빠진 입으로 열심히 뜯던 옥수수의 빈자리를 떠올려본다. 지글지글 숯불에 익어가는 삼겹살의 고소함이 몇 점의 젓가락질로 느끼해지는 나이, 밤새워 마시던 소주와 막걸리도 적당히 조절하며 거절할 줄 아는 나이, 노래방 평상과 풀장과 산책길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고, 정치 이야기, 사는 이야기에 열도 올리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적당히 주저앉을 줄 아는 나이, 먹는 거는 줄이고 잠자리는 편해야 하는 나이다. 그래서일까? 동창회에 와서 처음으로 11시에 숙소에 들어 잠자리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변화되어가는 친구들의 건강한 정신에 작은 긍지를 느낀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새벽 찬바람에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힘자랑을 한 번 해보며 그 추억을 고향 선물로 가져가리라 기대해본다. * 문진순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영호남수필 사무국장, 대한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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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6 19:58

[금요수필] 지켜야 할 양심

신팔복 오늘은 모처럼 모악산을 갔다. 산은 혼자 오르는 길도 좋지만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것도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산이 주는 정서와 자연의 감성은 인생의 참맛을 더해준다. 제철을 맞았던 단풍들은 다졌지만 아직도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이 스산한 바람에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등산길에는 자연을 사랑하자든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여러 개의 리본이 바람에 나불댄다. 좋은 말이다. 헐벗은 산을 가꿀 때 온 국민이 나무 심기에 동참했고 관심을 가지고 숲을 가꿔왔다. 꽃샘추위가 몰려와도 식목행사는 어김없이 이뤄졌다.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가꿔진 것이다. 앞산도 점점 물이 들어간다. 우리의 산하는 이제야 겨우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 가듯 우리의 자연환경도 잘 보호하고 가꿔나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일부 양심을 버리는 얌체족이 있어 안타깝다. 한마디로 꼴불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한심하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다. 산 정상에 올라 자연을 벗 삼아 먹는 점심은 어느 요리 집 음식에 비하랴. 그런데 문제는 먹고 남은 빈 병이나 깡통, 과자봉지, 음식물 찌꺼기, 휴지 등을 함부로 버려 자연을 훼손하고 있어 볼썽사납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생활 쓰레기들이 나 몰라라 방치되고 있다. 적어도 자기 쓰레기는 되가져가 분리해서 수거하고 쓸 만한 물건은 재활용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가 깨끗하게 보존해야할 아름다운 산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각종쓰레기들로 인해 자연경관이 병들어가고 있다. 조그만 양심이 남아있다면 버리지 말고 배낭에 넣어 가져가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의 양심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연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는 결국 좋은 경관을 망치고 금수강산을 썩게 할 뿐이다. 작년에 아들이 사는 캐나다에 갔을 때 아내와 밴프 공원을 관광했었다. 그런데 그 어디도 오염되지 않고 맑고 깨끗한 환경들이 보존되어있어 참으로 부러웠다. 선진국의 면모가 보이는 관광지였다. 지금도 그 아름다운 경관이 잊히지 않는다. 모악산은 우리에게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해주고, 맑은 공기도 제공해주고, 자연의 소리도 선사해주는 등 우리의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무의식중에 버린 쓰레기들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최소한 각자가 가지고 간 쓰레기는 가지고 오는 작은 실천이야 말로 우리의 등산길과 문화유산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양심을 버린 꼴불견은 주택가에서도 볼 수 있다. 감시카메라도 무용지물이다. 전봇대 밑에 슬쩍 버린 쓰레기는 누가 치워줘야 하는가. 환경미화원들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다.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살기 좋은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은가. 실천하는 양심으로 버려진 물병을 배낭에 담았다. 비록 쓰레기를 버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 그 반대편에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쓰레기를 줍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으면 모악산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며 지나간 수많은 역사가 숨 쉬는 모악산에 보답하는 것보다 얻어가는 것이 더 많아 고마운 시간으로 내 마음 속에 남는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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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9 19:59

[금요수필] 은발(銀髮)의 단상

최기춘 거울에 비친 은발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60세까지만 해도 흰머리가 서릿발 같아 감추고만 싶었는데 고희를 넘긴 지금은 은발이 인생의 계급장 같아 빛나 보인다. 고희란 두보의 곡강시에서 비롯된 말로 옛날부터 70세까지 살기가 드문 일이라는 뜻에다. 두보가 활동하던 1200년 전에는 70세면 오래 산 나이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이다. 그래도 70이 넘으면 달마다 늙는다고 한다. 갈 길이 그리 멀지 않은 나이다. 고희는 인생 4계절 중 가을이다. 해 질 녘의 저녁노을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과 비교된다. 가을 산에 올라 일렁이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면 이른 봄부터 농부들이 씨 뿌리고 가꾼 땀의 결실들이 풍요롭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도 크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는 계절이다. 가을밤에는 유난히 구슬프게 우는 풀벌레 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가랑잎 구르는 소리들이 가슴을 파고들며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며 홀로 사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더욱 시리게 하는 계절이다. 붉게 물든 가을의 저녁노을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이글거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에 묻힐 것을 생각하면 허망하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도 머지않아 나무와 작별을 하고 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봄부터 같이 지내던 어미나무와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법한데 아쉬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이미 이별의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즐거운 파티에라도 가려는 모습으로 곱게 차려입고 소슬한 가을바람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작별한다. 그간 꼼짝 못하고 한곳에서 매달려 지낸 한을 풀려는 듯 사방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유유자적 한다. 낙엽의 모습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방랑자를 연상케 한다. 고추잠자리와 경쟁이라도 하듯 공중제비를 돌다가 어디론가 가버리는 녀석들도 있다.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자동차기 범람하는 도로 위를 뒹구는 처량한 녀석들도 있다. 얌전한 새색시마냥 한눈도 팔지 않고 사뿐히 뿌리로 내려앉아 효심을 다하려는 듯 알몸이 된 나무의 뿌리를 감싸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뿔뿔이 흩어지는 것 같아도 제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참 많다. 그래서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했나 보다. 계절마다 낙엽과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동일시하며 때로는 울적해 한다. 하지만 시들어 떨어지는 낙엽의 몸짓은 얼마나 고맙고 성스러운 것인가. 그 몸짓을 생의 소멸로만 읽어온 내 사색이야말로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낙엽은 봄과 여름엔 푸르름과 녹음으로 산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가을이면 노랑, 빨강으로 멋진 수를 놓기도 한다. 그리고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뿌리를 감싸주고, 알몸으로 엄동설한을 외롭게 보내는 나무들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준다. 또한 내년 봄이면 새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낙엽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찬사를 보낸다. 어린 시절에는 곱게 물든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가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창문을 바를 때 같이 붙여 놓았던 생각이 난다. 나도 낙엽처럼 살고 싶다. 멋있고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살고 싶다. ------------------------------------- * 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머슴들에게 영혼을〉이 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영호남수필, 전북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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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2 20:02

[금요수필] 홍엽(紅葉)을 밟으며

김철규 수필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을 보내는 것이 서러워서인지, 아니면 살바람에 폭설이 쏟아질 겨울이 다가옴을 두려워해서인지 직지사 일주문부터 대웅전 앞까지의 도로는 홍엽으로 단장한 실크로드다. 비에 젖은 홍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차마 밟혀 상처를 입지 않을까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듯이 몇 번이고 발밑을 보았다.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나와 보니 비는 멈추고 화사한 오색단풍은 손짓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마침 군산예술촌 동아리 문인 일행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왔기에 합동기념촬영이 필요해 저마다 멋진 포즈로 몇 컷했다. 직지사 경내 어느 곳이든 가나는 사람들은 홍엽 꽃 속의 주인공들이다. 마치 음력 10월 초 하룻날이어서 절간의 고요함을 깨는 스님의 법문소리와 목탁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메아리 지고 있다. 숙연함 마저 감돌게 하는 침묵의 고요 속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며 중생들을 일깨우는 소리가 백팔 번뇌 고깔모자를 쓰고 지나간다. 30여명의 일행은 끼리끼리 기념사진을 찍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진풍경의 낙엽의 화두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방에 둘러싸인 산은 구름의 자태로 장식되어 동양화 한 폭이다. 특히 박물관 옆길에 쏟아진 낙엽은 어느 소녀가 제 무게에 겨워 스스로 몸을 놓고 한없이 가벼움으로 세월에 날리는 파편을 주우려는 모습에 발걸음이 멈춘다. 홍엽의 양탄자를 걸으면서 흰 구름이 산자락을 휘어감은 모습에 취해 비를 멈춰준 하늘을 보느라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깜빡했다. 뒤늦은 달음박질은 약속장소인 일주문 앞에서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직지사에 인접해있는 백수 정완영 문학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시조시학에 권위자중의 한사람으로 자연과 아름다운 삶을 노래한 백수의 <조국>시를 새삼스레 바라보며 마지막 소절인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를 되새겼다. 97년이란 긴 인생여정에서 생전인 2008년 국비, 도비, 시비 등 22억여 원으로 백수문학관을 세웠다는 설명에 아연했다. 왜냐하면 군산의 채만식문학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수문학관과 이웃한 몽향 최석채 선생 유적비와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 기념비를 보았다. 몽향 최석채 선생은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주필,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의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세론을 대변하고 역사를 증언했다. 우리 언론사에 크게 새겨질 정론의 대 논객이었고, 직필의 참 언론인이었다. 같은 언론인 출신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비문을 새겨 읽으며 매주 한 차례 실리는 그의 칼럼은 서슬 퍼렇던 독재정부에서 한줄기 소나기였고, 핍박받는 자들의 위안이자 피난처였다는 업적에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잠시 홍엽으로 장엄하다. 홍엽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길 위에서 몸 버리는 저들 중에 어느 하나 생애에서 목마른 사랑을 이룬 자 있었을까? 저들만의 그리움이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다. 올가을의 동아리문학기행은 내 마음이 오색중 하나인 홍엽에 젖은 까닭을 묻고 있다. *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전라북도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장과 새군산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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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5 19:53

[금요수필] 봉실산의 당산제

이숙자 수필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완주군 봉동읍 신봉암리 고향마을을 잊은 적이 없다. 마을 뒤쪽으로 봉실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양쪽으로 활짝 편 매의 날개처럼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바로 이 봉실메산 줄기가 동네를 보호한다고 한다. 정상의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농사철에 가뭄이 들면 동네어른들이 그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옥녀의 가랑이 사이로 오줌줄기 같은 물줄기가 가득 흐르기를 비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는 힘센 장사가 갖다 놓았다는 크고 검푸른 바위가 장승처럼 서 있었다. 동네를 수호하는 그 신성한 바위의 이름은 바우쟁이다. 신봉암리는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인 명당이라 그런지 시골의 자그마한 동네에서 면장이 셋이나 났고 출향한 여섯 명의 목회자가 활동을 하고 있다. 조그만 산동네지만 별일들이 많다. 연애당 솔밭이라고 하는 곳에서 겨울이면 몇 쌍의 부부가 탄생하곤 했으니 말이다. 결혼식장이 없어 마을 처녀들이 결혼식장을 꾸미곤 했다. 색종이테이프를 사다가 솜씨를 부려 사철나무에 꽃처럼 꽂아서 식장을 마련했다. 시골마을에서의 결혼식은 곧 마을의 축제며 잔치이고 놀이였다. 워낙 빈궁한 시절이라 혼례 집의 잔치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너나없이 잔치의 주인공처럼 즐거워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나는 마을부녀회장을 5년이나 맡았다. 그때 우리마을은 120호로 이웃 간에 꽤 다정하게 지냈다. 동네 어른들은 마을길을 넓히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하느라 힘을 합쳤다. 가난의 배고픔을 눈물과 푸념을 섞어 나누며 서로 이해하고 살았다. 정월 초엿샛날엔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언젠가부터 연례행사로 치러졌다. 마을의 재앙을 막고 가정마다 복되고 기쁜 일을 축원하며 일년 농사의 풍년을 소원하는 기복행사였다. 당산제를 열기 전에는 어떠한 살생도 금하였으며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냉수욕을 했다. 그리고 고깔을 쓰고 풍물소리에 맞춰 얼쑤덜쑤 춤을 추며 시멘트종이에 돼지머리를 근사하게 그려 깃발처럼 매단 장대를 앞세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할머니들은 고쟁이 허리춤을 양손으로 벌려 배뿔뚝이마냥 몸을 흔들흔들하며 춤을 추었다. 아저씨들은 얼굴에 숯검댕이칠을 하고 다리를 들썩거리며 돌아다녔다. 마을의 액을 몰아내는 몸짓이었다. 그 춤의 행렬은 옹달샘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모정과 우물, 공동변소까지 두루 돌아 바우쟁이의 바위장승에게까지 제사를 지냈다. 남녀노소 어우러져 경건한 맘으로 비손을 하고 함께 나눠먹는 신성한 축제였다. 동네어른들이 비록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착한 심성이 마을을 포근하고 그립게 만들었다. 해마다 새해는 오건만, 나는 추억으로 풍물을 치는 소리를 듣고 신명나게 춤을 춘다. 이미 귀천하신 어른들 .그분들은 생활의 고난과 고통을 신에게 맡기고 오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다할 뿐으로 살았을 것이다. 개인욕심보다는 그야말로 이웃사촌과 동고동락하는 화합과 우애의 정신으로 살았던 것 같다. 비록 궁핍했지만 나눌 줄 알았던 사람들. 서로서로 챙겨주며 도왔던 사람들. 초가삼간이나 오두막집의 산골마을이 정말 그립다. 산자락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에 불현듯 친정나들이를 하고 싶다. * 이숙자 수필가는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할동하고 있다. 수필집 <늦은 햇살이 아름답다>가 있으며 현재는 시낭송가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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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21:36

[금요수필] 등 굽은 소나무

박순희 수필가 몇 달 전 여름이 가기 전, 남덕유산을 다녀왔다. 신 기슭의 야생화와 눈 맞추며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세월아 가거라 해찰하며 오감을 즐겼다. 비단결 같은 햇살이 내려앉은 능선위로 여린 초목의 숨소리가 가빠진다. 갈맷빛 치마 주름의 능선에는 얇은 사(絲) 하얀 구름이 바람결 따라 가렸다 들쳤다 유혹하는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망이 탁 트인 넓은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 맞닿은 높은 봉우리와 깊숙이 내려앉은 계곡에 여기는 햇살이, 저 골짝엔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내건 오솔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아련한 마을들이 정겹게 엎드려있다. 인생길과도 같은 산길! 산길을 걸으면 비단길만 있는 게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도 자주 만난다.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바로 가는 길은 없다. 누구나 바닥에서부터 오르는 법이다. 때로는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깊은 수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느 골짜기나 다 낯설다. 아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세월의 켜가 온몸에 화인처럼 남아있다. 마디마디 삭풍과 타는 가뭄을 견딘 상흔으로 점철된 몸피가 애달프다. 길을 가던 나는 오한에 떨고 있는 노송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까맣게 옹이 뽑힌 그 아득한 시간의 틈새로 새떼들이 보이고 바람 부는 날이면 낡은 관악기 소리가 들리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노송, 저문 날 꽃들의 유배가 하늘 길에 닿아있는 천년 서린 한에 검버섯 슬은 노송 앞에서 나는 문득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쭉쭉 벋은 소나무는 대들보 감으로 이미 뽑혀 갔지만 등이 굽은 나무는 땔감으로밖에 쓸모가 없어 아직도 남아있는 노송을 보며 조용히 귓속말을 전했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도 로키산맥의 3천 미터 수목한계선에서 자란나무로 만든단다. 모진 설한풍에 굽은 허리를 펼 날 없이 상처투성이로 박힌 옹이가 천상의 공명으로 맑은소리를 낸단다. 그때까지는 이 산을 지키며 기다려라. 사물의 정의는 생활과 문화의 트렌드에 따라 다르게 해석 된다. 먹고살기 급급했던 시대에는 꽃이나 분재에 눈 돌릴 새가 없었지만 삶의 질이 향상되어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고 아파트마다 화분 몇 개씩은 들여 놓을 수 있는 살림이 되었다. 따라서 굽은 나무의 가치와 위상이 역전됐다. 이제 굽은 나무는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터줏대감이 되었고 굽은 나무분재는 칙사 대접을 받는다. 굽은 나무에 대한 가치와 인식을 백팔십도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굽은 나무의 옹이에서 인생의 간난신고를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를 한 후 전원생활을 꿈꾼다. 꿈을 실현하기 전원주택을 짓고 농지를 매입하고 제2의 인생을 구가한다. 등 굽은 소나무로 비유되는 터줏대감들은 귀농 귀촌인의 친절한 멘토까지 자임한다.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등 굽은 소나무의 주가는 상승일로에 있고 등 굽은 소나무가 있는 한 고향은 언제나 포근하고 청청하다. 산을 내려갈 때에는 뻣뻣하게 세우고 내려갈 수는 없다. 언제나 허리를 낮추어야 한다. 고개도 숙여야 한다.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산길에서 배운 진리를 되새기며 귀가를 했다. *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으로 등단하였으며 행촌수필 문학상 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행촌수필 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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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1 19:25

[금요수필] 내 노년의 삶과 놀이터 - 진안 마이산

이용미 마이산은 내가 태어난 고장의 명산이면서 내 노년의 삶과 놀이터다. 결혼 전 짧은 직장생활 외엔 살림만 하던 주부가 21C들어 처음으로 시행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가는 삶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으랴. 마이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과연 있었을런지. 조선 태조가 왕이 되기 전, 선인으로부터 왕권의 상징인 금자(金尺)를 받는 꿈을 꾸는데 그곳이 마이산으로 전해진다. 당시 고려 장수이던 이성계는 그 꿈을 꾼 얼마 뒤 남원 운봉까지 쳐들어온 왜군을 크게 이긴 후 개선 길에 특이한 봉우리를 만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받았던 금자를 뭉텅이로 묶어 놓은 것 같아 속금산(束金山-금자를 묶어놓은 산)이라 명하고 돌아간 12년 뒤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이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마이산을 형상화한 일월오봉도를 항상 용상 뒤에 두어 든든한 울타리로 왕을 지키는 왕의 상징물이 되었다는 등 역사와 야사, 전설과 설화가 어우러진 갖가지 이야기 속에는 청실배나무도 함께한다. 청실배나무 이성계 고려 말 장수 시절 시간만 나면 전국 명산을 돌며 기도를 했는데 마이산에도 들러 기도의 증표로 심었다는 돌배나무 일종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은수사(銀水寺) 배나무 옆에는 사찰명의 유래가 되는 맑은 우물이 있다. 그 우물 뒤로 수마이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그 바로 아래는 신라 시대부터 나라에서 제를 올리던 제사 터로 지금까지도 매년 군민의 날 전날 산신제를 올리고 있는 신성한 자리다. 그 아래 우물과 그 옆 배나무라면 옛이야기 속 풍경이 떠오르고 배나무의 장수(長壽) 이유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런 청실배나무와 나와의 인연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은 문화유산 스토리텔링 전국대회 수상이다. 상금과 함께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열망 등 내게 참 많은 것이 주어졌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빠른 정년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떠돈 지 오래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를 넘어 집 장만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 오포 세대라는 젊은이들의 실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년을 하고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로 아직은 더 일하고 싶은 나이 많은 젊은이가 주위에는 너무 많다. 남편도 그중 한 사람이다. 35년 직장생활이 즐겁기만 했을 리 없는데 퇴직 후 내 출근길을 도우며 정류장에서 부러운 듯 배웅하는 모습이 짠할 때가 많다. 내 하는 일과 일터가 그래서 더 고맙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과 소통은 삶의 활력이 되면서 걷는 그 길은 바로 자연스러운 내 운동장이 된다. 엄니 어디 가요?/속꼼산(마이산)에/왜요?/니(너) 잘되라고 빌러 말을 아끼며 바쁘게 집을 나서던 어머니는 나들이 차림에 쌀자루였겠지, 작은 보퉁이 하나 머리에 이고 계셨다. 가지각색으로 피어나던 꽃들 이울고 나뭇잎 차츰 무성해지는 사월 초파일이면 연례행사로 이어지던 어머니의 마이산 행이었을 텐데. 칠십이 멀지 않은 내가 아직도 건강히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 축복과 고마움에 예닐곱 살 때쯤이었을 그날의 짧은 대화 속 정경을 자주 떠올린다. 마이산에 다녀온 그 날 밤 어머니 꿈속에서 날 위한 목자(木尺) 하나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모자라면 채우려 노력하고 넘치면 덜어내는 여유, 마이산은 그런 마음의 여유로 꿈을 꾸며 사랑을 생각하는 이야기 동산이다. 거기에 각자의 사랑 이야기 한 자락 넓게 펼치거나 걸쳐놓아도 탓하거나 흉보는 이 없는 너르고 편안한 나의 놀이터다. * 이용미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하여 현재 마이산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수필집 「그 사람」외 2권을 펴냈으며, 행촌수필문학상과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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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5 20:28

[금요수필] 아미산,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

홍성주 수필가 내 고향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이고 지금의 장류단지가 위치한 아미산의 남쪽 금과면 연화리이다. 나는 연화리에서 태어나 금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나가 생활하였고 경기도에서 공직생활을 하였기에 평생을 객지를 떠돌며 살아왔다. 누구나 그러하듯 고향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곳이기에 나 역시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학창시절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아미산을 연관시켜 생각해 오던 내 삶이었다. 왜냐하면 아미산 정상에는 암벽으로 된 커다란 봉우리가 자라잡고 있으면서 사람의 이마처럼 보이기에 아미산(峨嵋山)이라고 하였던 것 같고 그 봉우리에 있는 바위를 덤 바위라고 불러 왔기 때문이다. 덤 바위의 뜻은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덤으로 더 준다는 말이나 무덤에서의 덤과 같은 의미에서 많다크다넉넉하다의 뜻이 내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나대로의 해석을 하면서 덤 바위의 본뜻은 덕(德)바위가 와전되어 덤 바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따라서 덤 바위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으로서 금과 면민과 순창군민을 껴안아 왔고 이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순하고도 순한 양으로서 강간, 강도, 살인폭력의 수배전단에 한번도 오르내리지 않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 된 것이리라. 내동리(내동리는 법정리고 연화리는 내동리에 속하면서 행정리로 떨어진 자연부락임)는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어 마을 입구에 정부에서 세워놓은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간판이 방문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갖고 있는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미산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미산 바로 아래 첫 마을에서 태어났고 아미산을 오르내리며 자랐기 때문이다. 아미산에는 산토끼는 물론 다람쥐, 노루, 오소리, 멧돼지 등의 산짐승과 각종 산새 및 갖가지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자 섬진강 상류의 청정지역 보금자리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전국 시범 전원주택단지로 지정하여 농어촌공사에서 추진 조성했다. 어렸을 때 산에 올라 가을이면 으름다래머루깨금 등을 따 먹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 년 전 늦은 봄에 아미산을 올라보니 울창한 소나무 밑에 피어난 철쭉꽃이 솔향과 함께 장관을 이루어 전국 어느곳과 겨누어도 절대 빠지지 않는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정상에 쉽게 오르도록 철사다리가 만들어져서 등산하기가 쉬워졌고 금과에서 아미산 중턱을 가로질러 순창 장류단지 옆의 강천산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함으로서 세상 정말 좋아졌다는 것을 실감케 하기도 한다. 이제 금과에도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선 것을 보면 금과(金果)라고 하는 지명대로 금 열매가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여 혼자 기뻐해 보기도 한다. 일지기 선친께서도 훈장을 하시면서 연동 팔경기라는 글을 남기셨지만 선친께서 팔경기에 쓰신 것처럼 내고향은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은 아니지만 사람살기에 아주 좋은 고장임에는 틀림없기에 내 고장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향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고향을 떠난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리라. 이름 그대로 순창군 금과면이 참으로 순박하고 금과실 같은 아름답고 값진 결실이 맺어지기를 거듭거듭 비는 마음일러니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진실로 나타나기를! △홍성주 수필가는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순창문인협회 지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삶의 길목에서>, <휴당산방의 겨울 아침>, <영원 속의 기다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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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8 19:13

나는 무주 안성사람

이재숙 내 고향은 무주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이다. 나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 궁대에서 태어났다. 다른 때 같으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동네 사람들 모여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지만 그 해엔 완전히 세상이 달랐다. 지금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막내 작은할머니의 말씀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아야! 하늘엔 쌕쌕이가 날고 불빛만 보면 폭격을 하니께 호롱불을 요강 안에 켜놓고 네 에미가 널 낳았다. 미역국도 못 먹고 낳아 농게 딸인디, 어찌나 울어대던지, 그도 잉 너 땜에 네 애미가 살았어 밤에 덕유산 빨치산들이 마을로 내려오면 젊은 여자보고 눈빛이 달라져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머리에 얹고 산속으로 데려가기도 할 때잉게, 이제 막 얼라를 낳은 산모라 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단다. 네 할미가 대신 보리쌀이랑 산으로 이어다 주었었지. 이렇게 말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그 옛날 일이 실은 큰 변란과 슬픔의 이야기다. 밤에 보리쌀을 이어다 준 일로 빨갱이로 몰려 할머니는 둘째 아들을 잃었고, 밤엔 빨치산들에게 반역자로 몰려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 많은 젊은이가 죽어 나갔고 휴전이 되자 아버지와 작은삼촌 두 명만 살아남았다. 궁대마을은 독특한 지형을 갖춘 동네다. 뒷산은 적당히 높아 땔감을 구하거나 산나물을 깨러 아낙들이 오르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앞산이라 불렀던 산은 뾰족하게 솟은 커다란 한 개의 봉우리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남자 상징의 앞산 때문에 우리 동네에는 남자아이들이 넘쳐났다 한다. 나도 아들 사형제에 외동딸이었고 아버지도 여자 형제가 없었고 할아버지도 4명의 남자 형제들만 있었다. 명실공히 삼대에 걸쳐 딸이 하나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양념딸이다. 지금은 사전 마을 옆으로 길이 넓게 나고 큰길에서 몇백 미터만 들어가면 궁대마을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안성면 소재지로 나오려면 짱짱하게 10리를 걸어 금평리를 지나야 갈 수 있어 어린 나에겐 멀고 먼 길이었다. 찐 감자나 고구마를 손수건에 싸 들고 한없이 걸어야 했다. 유독 걷기 싫어하는 엄청 귀한 양념딸을 위해 아버지는 대처로 우리들을 내보내셨을 것이리라. 우리는 담력을 시험한다고 어둑해지면 앞산에 가려고 오랫동안 모의도 하고, 내기를 걸곤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아장터가 있는 곳은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장터에서 흘러오는 냇물은 너무도 깨끗하고 시원해서 여름엔 여자아이들도 목욕하곤 했다. 물론 서너 명 이상 모여서 말이다. 우리는 뻐꾸기 울음에도 깜짝 놀라 팬티만 입고 도망 오곤 했다. 지금은 칠현계곡 쪽에서 명천을 지나 우리 동네 뒤쪽으로 2차선 도로가 나 있다. 앞산에 살던 호랑이 부부는 덕유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양지바른 앞산 모퉁이에서 깊은 잠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대단한 교육열 덕분에 전주에 나와 공부할 수 있었다. 앞산의 정기인지 덕유산 치맛자락 끝, 그 바람 덕인지 우리 형제들은 잘 자랐고 일 년에 두어 번씩 안성 궁대 허물어지진 집터에 차들을 대고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성묘를 하곤 한다. 지금은 열댓 집에만 사람이 사는 궁대마을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조상님들이 나지막한 선산에서 지키고 계신다. 나는 어디서나 자랑스럽게 무주 안성사람이라고 말한다. 왼쪽 멀리 덕유산을 두어 따뜻한 그림자가 깊고 앞산의 봉우리는 힘이 넘쳐 자손들이 번성했다. 앞산을 싸고 흐르다 고인 작은 호수는 자비로움과 인정을 배우게 했다. ================================================================ △이재숙 수필가는 전주일보 신춘문예와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입협회, 전북시인협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열린시문학상, 국제해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젖은 것들은 향기가 있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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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1 19:19

방귀를 뀔 자격

안관엽 나는 몇 년 전 쇠락해 가는 구도심에 서울의 아파트 가격 반의반 값도 안 되는 주택을 하나 구매했다. 비록 싼 가격이지만 제법 널찍한 화단을 조성하고 조그마한 텃밭도 만들어 푸성귀는 자급자족하고 있다. 그리고 마당에 자갈을 깔아 오솔길을 만들어 가끔 맨발로 지압운동도 하며 소일하고 있다. 작은 화단에는 상록수 몇 그루와 더불어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나무를 심었더니 보기도 그럴 싸 하다. 이전에는 공터로 비워두어 잡초만 무성하고 험상한 모습이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웃 사람들이나 지나는 사람들도 형형색색의 조화로운 꽃과 향기에 취해 가던 걸음을 멈춘다. 텃밭에 심어놓은 가지와 고추는 허튼 꽃을 피우는 법이 없으니 변변찮은 식탁에는 훌륭한 찬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 맛도 시장에서 파는 물건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오늘도 폭염에 구슬땀을 흘리며 폭염을 견디고 살아남은 꽃들과 채소를 돌보면서 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눈다. 가을이 익어 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하늘이 맑아지니 꽃 색깔도 선명해지고 채소들의 잎새도 싱싱함이 더해진다. 올여름을 되돌아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온도의 상승으로 기상 관측 사상 유례가 없는 더위가 몰려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벌써 내년이 걱정된다. 지구 온난화 주범 중에는 각종 공해 물질의 배출이 큰 요인이다. 그런데 우스갯소리 같지만, 미국 한 연구소에서 소들이 뀌는 방귀도 한 몫을 차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소나 돼지의 방귀와 트림,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때문인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강한 온실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 육식을 즐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육식을 하면 소 방귀 보다 훨씬 고약한 사람 방귀의 우려 때문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못하나 마음대로 박아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사는 곳은 큰소리로 부부싸움을 한들 누구 하나 간섭하는 이가 없다. 옆집 사는 사람들이 귀가 어두워진 노인들일까? 아니면 세상 풍파 다 겪었기에 모르는 척하는 걸까? 이 생각에 저 생각에 잠 못 이루며 상념을 풀었다 되감기를 몇 번 하는 날 밤은 방귀가 밀려나온다. 오늘도 어제 저녁 재종형님과 몇 잔 나눈 막걸리가 제대로 발효가 되었는지 방귀가 밀려나온다. 고가 아파트 가지고 종부세 내며 사는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중화작용을 하는 나무하나 풀 한 포기 심지 않았기 때문에 방귀를 뀔 자격도 없다. 하지만 나는 전원주택에 살면서 화단과 텃밭에 각종 상록수와 화초들을 많이 심은 사람으로서 방귀를 뀔 자격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은 시원스럽게 방귀를 뀌어 본다. 그러면 화단의 나무들이 내가 배출한 배기가스를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푸른 초장의 작은 초목들도 한몫 거들 것이다. 우리는 평생 건강과 행복과 사랑과 돈을 찾아 헤맨다. 하나를 성취해 정상에 올랐다 한들 또 다른 욕구와 고통이 생기며 생각대로 꾸준한 행복이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속에 근심 걱정 응어리 모두 방귀로 배출하고 마음을 비운 채 항상 오늘을 축제처럼 살자. 여러분은 이런 방귀를 뀔 자격이 있다. ================================================================= △안관엽 씨는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지금은 취미로 정원관리사와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 가끔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으며 올해 말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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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4 19:27

내 고향 노적마을 - 고재흠

내 고향은 푸른 산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산 높고 물 맑은 청정지역 노적마을이다. 노적마을엔 산이 깊어 아침 해는 늦게 떠오르고 석양 노을도 늦게까지 머물러 있어 해가 질 무렵이면 적막감이 감도는 마을이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변산 지역에 위치한 노적마을은 변산에서 두 번째로 높고 덕성스러운 산으로 알려진 삼예봉(三藝峯) 줄기 노적봉 밑에 노적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좌측에는 거석천, 우측에는 청림천이 있어 좌우 두 냇물이 모이는 양수 합이라 예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산 가운데 마을로서 형국이 좁지만, 평원을 이뤄 땅이 비옥하고 논이 밭보다 많은 특이한 지형이라고 평하며 길지(吉地)라서 귀인이 난다고 했다. 명산은 인걸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듯이 이 마을에서 조선시대 때 11명의 과거급제자가 배출되었다. 문과 홍문관 교리 1명, 무과 1명, 진사 7명, 중추원 의관 1명, 금부도사 1명 등이다. 그중 밀양박씨와 전주이씨 댁에서 진사 3명이, 그 외 여덟 분은 모두 우리 고가(高家)집안의 선조다. 우리 마을 앞 한가운데 효죽(孝竹)거리가 있다. 예부터 과거에 급제하면 으레 나무로 용을 만들고 파란 물감을 칠하여 높은 대나무 끝에 매달아 놓고 과거 급제자들의 영광을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효죽을 세웠던 그 길거리를 효죽거리라 부른다. 본인과 가문의 영광은 물론, 부안군과 호남지방, 나아가 전국적인 위상을 높인 쾌거라 할 수 있다. 효죽대로 뽑힌 그 대나무는 크고, 곧고, 높이 잘 자라서 우수한 효죽대로 한 역할을 맡았다. 수많은 대나무 중 우수한 장대로 뽑혔으니 그 대 역시 큰 영광을 얻었다. 조선시대에 세웠던 효죽거리의 효죽은 간데없고 지금은 그 유허지에 옛 선현의 발자취만 남아있다. 요즘 사회와 비교하면 과거급제는 고등고시 격이다. 한 명의 과거 급제자도 없는 마을이 많은데, 한 마을에서 11명이나 합격자가 나왔으니 희귀한 사례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지역은 오지여서 경제 사회적 문화가 미급한 환경이지만 많은 인사가 탄생한 점 그리고 위 선인들의 높은 학덕과 명성을 오래도록 기리고 후세에 길이 귀감이 되도록 하고자 그 옛날 효죽을 세웠던 거리였는데 요즈음은 조금 뜸하여 하루빨리 고향마을에 효죽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 고향 노적마을은 과거급제자가 많이 탄생한 만큼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마을이다. 50세대가 살았지만, 예의범절과 인심이 후하고 도둑이 없어 인근 마을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불행한 6.25사변을 겪는 동안 밤이면 빨치산이 마을로 내려와 주민의 재산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갔으며 내변산 주민 600여 세대가 모두 피난길에 나섰다. 이후 피눈물 젖은 피난살이를 하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빨치산이 완전히 소탕되어 지역주민들은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 다시 광명을 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옛날 오지였던 지역이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청정한 관광지를 찾는 탐방객들의 주목을 받는 명승지가 되었다. 영롱한 별빛과 은은한 달빛이 언제나 어둠까지도 밝혀주는 내 고향 노적리. 가을이 깊어가는 이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감으니 고향 동산에서 뛰놀던 내 유년의 추억이 영화의 스크린처럼 스쳐 간다. ============================================ △고재흠 수필가는 월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회장과 한국신문학인협회 전북지회장을 역임했다. 수필집 <초록빛 추억>이 있다. 전북수필문학상과 부안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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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20 18:42

굴러오는 탁구공

황춘택 새알같이 작은 공 하나가 내 앞에 굴러온다. 세 살 어린이가 부모 앞에 굴려 보내는 공처럼 귀엽고 애교스럽다. 얼른 손에 쥐어보면 차가운 듯하지만 금세 체온에 젖어 들어 부드럽다. 탁구장에는 똑딱똑딱 공치는 소리가 창가에 빗방울 소리처럼 들린다. 마치 그들의 놀이터 인양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자랑스럽게 구르고 있다. 탁구대에 튀어 오른 공이 탁구채에 맞아 빗살같이 달리고 공중 높이 올라가 떨어질 때는 목표 지점에 이른다. 기묘한 모습에 관중의 박수 소리가 진동한다. 또 공이 네트 위를 징검다리 건너가듯 튕기며 다른 곳으로 떨어질 때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잘 못 맞은 공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면 고개를 갸우뚱 한숨을 내쉬게 한다. 작은 탁구공이 무대의 주역으로 드라마를 엮어내고 있다. 탁구는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좋다. 가족과 친구들 모임에 친목으로 할 수 있다. 탁구공이 손에 잡히면 탁구대에 힘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힘이 솟아오른다. 집에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는 가까운 노인복지관 탁구장으로 간다. 실내에 들어서면 오가는 탁구공이 운동하는 사람의 도구로 빛살처럼 날아다닌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리면 실수로 공이 천정으로 튕겨 나가서다. 타자는 그런 실수 없이 잘 치고 싶은 마음으로 쥐어진 탁구공을 마주 보며 소원을 빌어 본다. 탁구공아! 지금 내가 시키는 대로 잘 좀 움직여다오. 말없이 부탁한다. 탁구공은 그 뜻에 따라준다는 약속을 하고 상대 코트 안으로 힘차게 달려간다. 빗살같이 넘어간 공으로 후련한 마음이다. 순간 넘어갔던 공이 이쪽으로 다시 잽싸게 넘어오니 아니, 이럴 수가! 탁구공에 속아준 내가 바보로 여겨진다. 귀엽게만 보이던 공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 줄은 몰랐다. 탁구장에서 운동하고 차례를 기다릴 때는 탁구공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린다. 모든 잡념은 물로 씻은 듯이 없어지고 즐거움만 남는다. 물총새가 냇물 속의 물고기를 순간에 챙겨 먹듯이 탁구채를 잽싸게 휘둘러 상대 코트에 떨어뜨리면 관중은 그 소리에 눈길을 끈다. 그때마다 탁구의 참 맛이 보이고 흥미롭다. 탁구장에서 터지는 웃음은 한 달 동안 웃을 수 있는 양만큼 짧은 시간에 웃어 준다고 할 수 있다. 웃음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때 매일 이렇게 웃음이 있어 얼마나 좋을까! TV를 볼 때나 친구 모임에 특별한 태도나 유머로 웃음을 만들어 주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지름 40㎜ 무게 2.7g의 작은 공이 관중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우정을 자아낸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국교를 트이게 해 준 것도 탁구공의 외교 덕이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남북화해의 길을 열어 준 역할도 했다. 작은 것이 큰일을 못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은 나사못이 사닥다리를 받쳐주고, 다이너마이트 한 알이 바위산을 부수는 예와 같다. 손에 쥔 핸드폰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소리를 끌어 드린다. 작은 것이 작동하여 세상을 변질시킨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평소 작은 일에 소홀하지 말고 지혜를 쏟아 가치를 추구하며 탁구공처럼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남겨준다. 탁구공은 나의 친구요 애인 같다. 오래오래 부드럽게 같이 지내고 싶다. 운동경기가 끝나 공을 바구니에 담으려니 그동안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준 작은 공의 고마움을 품에 안겼다. ================================================================= △황춘택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대한문학작가회 이사,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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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3 19:48

내 고향 김제 백산서원

안영 수필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김제 궁지마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내 고향은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맛과 멋의 고장이다. 동네 앞에는 활처럼 생긴 연못이 있고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쟁이처럼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사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버스도 다니지 않은 황톳길의 질퍽질퍽한 마을인데 중학교 다닐 적에야 환한 전기가 들어왔다. 마을에는 우물이 두 곳 있었는데 동네 어귀 윗 우물물을 먹는 사람들은 아들을 많이 낳고, 동네 끝자락의 아랫 우물물을 먹은 사람들은 딸을 많이 낳는다는 설이 있다. 우리 집은 맨 윗집인데 어머니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 첫닭이 울기 전 제일 먼저 일어나 샘물로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빌었다. 일등을 양보하지 않으셨던 덕택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다. 지금도 매년 칠석날이면 청년들이 우물을 청소하고 돼지를 잡아 참외와 수박 그리고 노란 옥수수 등과 함께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낸다. 또 하나 우리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백산서원이 있다. 1928년 3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으며 측면 벽이 용마루까지 삼각형으로 아주 잘 지어졌다. 우리가 숨바꼭질할 때마다 기대어 놀던 아름드리 기둥은 백두산에서 벌채한 나무로 지금은 나무 사이에 틈이 갈라져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2000년 6월 전라북도 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돼 이 또한 자랑거리다. 사당과 내외 삼문이 있고 강당은 무인과 무관들이 모여 강의를 하던 곳으로 5칸의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다. 매년 음력 2월이면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김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백산서원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 아이들의 놀이터,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우리 집도 한때는 정원이 좋고 수목이 울창한 아주 멋진 집터였지만 팔순의 어머니가 혼자 사시기에 버거워 읍으로 이사를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그 옛집을 잊을 수 없어 오빠가 다시 그 집을 사서 편리하게 구조 변경을 하니 어느 펜션 부럽지 않게 되었다. 내 고향에 백산서원이 우뚝 서 있는 한 모든 재앙을 막아줄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농촌 건강 장수마을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촌소득사업과 건강복지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얼마나 청정한 곳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내 고향 궁지마을은 백산서원을 중심으로 바로 맞은편에 근대에서 현대로 넘나드는 삶들이 숨을 쉬고 있는 새마을구판장이 있고 지금도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이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우리 마을에 예부터 전해오는 모심는 소리, 논 메는 소리, 산야 소리, 집터 다지는 소리, 상엿소리 등 노동요 5곡 자료가 남아 있어 재현하고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오늘도 찬바람 서성이는 대숲의 백산서원은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효부와 열녀가 많이 났다는 백산서원의 마당에서 보리밥에 우렁이 된장국을 끓여 쓱쓱 비벼 먹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안영 수필가는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한국문학예술에서 시로 등단했다. 전주여성의쉼터 원장을 역임했고 전북문인협회, 가톨릭전북문우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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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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