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9 18:35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전북의 재발견] 고창자연마당 : 가족나들이 하기 좋은 자연속의 생태공원

집에만 있기에는 내리쬐는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마음이 설레 아이들 손잡고 나들이 겸 소풍 가는 마음으로 자연 속의 생태공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와 봤습니다. 자연마당이란? 도시생활권의 훼손되고 방치된 공간을 복원하여 습지,개울,초지,숲등 다양한 생물서식처를 조성함으로써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면서 시민에게 쾌적한 생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지난 4월 4일 고창 노동저수지 앞에서 생태공원-자연마당개장식을 열었었습니다. 오랫동안 불법 개간, 묘지조성 등으로 훼손돼 있던 생물 서식공간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지역을 안타깝게 여긴 고창군과 군민들이 힘을 모아 사유지 매입, 묘지를 이장시켜 생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나갔는데요. 지난 3여 년 동안 습지조성, 유아놀이터, 숲체험원, 야외학습장, 탐방로 등 다양한 생태 공간으로 꾸며졌습니다. 작지만 소박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언덕을 따라 올라가 봅니다. 길 입구에서부터 불어오는 저수지 바람에 꽃가루 생각도 안 하고 상쾌한 기운을 받았어요. 올라가는 길은 생태공원답게 야자수매트가 깔려있어서 아이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걷기 좋습니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는 빗길에 언덕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야자수매트위로 걸어가시면 더욱더 좋을 것 같더라고요. 헐떡이는 숨을 참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올라가는데 불어오는 봄바람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배어 있어 숲 전체에 풍기고 있었어요. 가는 길목마다 피어있는 꽃들 보는 재미에 아이들 발목을 잡아 한동안 앉아 꽃구경했어요. 꽃가게에서나 볼만한 꽃들과 달리 야생에 피어있는 꽃들은 아이들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꽃이기에 신기해하고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은 생태공원의 포인트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 역시 자연 친화적인 환경의 놀이터에서 나무와 친해질 수 있는 곳이에요. 흔히 아이들이 가는 놀이터는 철근이나 고무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모습이었다면 유아놀이터는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나는 곳인 것 같아요. 지금은 할 수 없는 나무 올라타기나 블록 쌓기 등 우리 아이들에게 추억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에요.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어마 무시한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놀라지 마세요!! 이곳은 억새, 부들, 창포, 연꽃 등을 볼 수 있는 자연형 습지 조성으로 다양한 생물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지역환경 교육센터로 지정된 고창생물권보전지역관리센터와 연계해 군민, 학생의 환경교육 장으로 활용될 계획이라고 하네요. 앞으로 자연 그대로의 습지 조성을 가꾸고 관리해서 군민뿐만 아니라 다른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올 수 있는 자연생태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연마당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쉼터에는 간단한 간식을 들고 와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취사는 할 수 없지만 간단한 간식거리를 들고 와서 물도 마시고 배도 채울 수 있어요. 그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노동저수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네요. 가족이나 연인들이 산책 나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으니 편하게 앉을 수 있어요. 고창의 명소죠! 고창 모양읍성과 연결된 산책로와 자연마당의 탐방로가 눈에 띄어요! 고창 모양읍성에 들렀다가 잠시 생태마당으로 넘어오시면 보물섬을 발견한 듯 신비롭고 즐거운 공간이 될 것 같아요. 고창 자연마당 생태공원 사이사이에 보시면 팻말이 붙어 있어요. 바로 문화재보존지역이라는 팻말인데요. 확인된 유물로 인해 고창읍성의 축조시기 등을 밝혀낼 수 있는 유적이 발견된 곳이라고 해요.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발굴이 되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오래된 토지를 생태공원으로 인해 찾아냈다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역사문화 관광으로 고창군의 또 다른 관광명소가 될 것 같죠? 고창 모양읍성과 연계된 고창 자연마당! 가족들과 나들이 오시게 된다면 모양읍성을 지나 자연생태마당으로 산책오세요! /글사진 = 최유정(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06.03 17:10

[참여&소통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여성은 정치해야 한다, 반드시”

106년 전, 1913년 6월 4일 영국 더비의 한 경마장.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주마에 한 여성이 뛰어들었다. 당시 그 경주는 영국 국왕이 참가했다. 당시 화제가 된 이 사건은 그 여성의 외투에 적힌 글귀 때문에 더 사회에 충격을 줬다. VOTE FOR WOMEN!(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이 여성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슨.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일컫는 서프로제트 운동에 참여한 활동가였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외침은 당대 금기와 같은 말이었다. 에밀리는 참정권 운동으로 무려 9차례나 구금되고 고문을 받았다. 마치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 활동가들처럼 공권력에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1주일 후 죽음을 맞이한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은 거대한 저항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1000여명이 넘는 여성이 투옥되는 등 참정권 투쟁은 에밀리 데이비슨의 죽음 이후 15년이 지난 후 결실을 조금씩 맺기 시작했다. 지난 세기 많은 여성들의 피와 저항으로 얻어낸 투표권은 이제 보편적인 권리가 되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여성들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정치 현장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여성은 정치해야 한다, 반드시 지난 5월 15일, 전주에서는 특별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북지역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진행한 토론회 이름은 <우리는 정치해야 한다, 반드시> 녹색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지역 당원, 20대 페미니스트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정치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을 소환했다. 여성과 청소년, 청년, 성소수자가 바로 그들이다. 우리 사회 여성의 롤모델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노래를 봐도 백 명의 위인 중 여성은 세 명에 불과하다. 한국 5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은 3%에 불과하다. 국회 여성 비율은 17%, 남녀 임금 격차는 통계를 낸 이후부터 OECD 최하위를 놓친 적이 없다. 유리천장은 너무도 높고 두터워 지난 수십 년 동안 깨지기는커녕 흠집만 겨우 난 정도다. 여성 롤모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 것은 여성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성 롤모델이 탄생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를 가진 사회 자체가 문제다.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한 신지예 녹색당 대표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상을 살아내는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봤다.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유리천장을 부수고 사회를 바꾸는 모습은 또 다른 여성들에게 지치지 않고 일어설 기운을 줄 것이라고 봤다. 20세기 초 서프로제트 운동으로 발화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정치를 지금 고민해야 할 때라면서 그동안 가부장제가 규정한 모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청소년 등 사회로부터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직접 자기 정치를 하는 것도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등장과 같은 맥락으로 봤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현재 국회의 국회의원 비율은 남성이 83%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40대 이상의 중장년 비율은 99%. 교육감도 투표로 선출하는 시대지만 청소년들의 투표권은 현재까지도 요원하다. △투표권도 없는 청소년, 20대 정치인 사라진 의회 이날 토론회에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박세영씨는 촛불청소년인권법을 소개하며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청소년 2명 중 1명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권조차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현실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선거 연령을 현행 만 19세보다 낮추는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현실정치 중심에 있는 전주시의회 서난이 의원도 토론자로 나와 청년 정치와 여성 정치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서 의원은 20대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지방의회를 비롯해 정치 현장에 살아남기 힘든 구조에 대해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각 정당의 청년위원회도 20대가 아닌 30대 후반, 40대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이 공감하는 사회 문제를 국회에서 풀기란 쉽지가 않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청년 정치인이면서 여성이라면 감당해야 하는 고통도 상당하다. 선거 과정에서, 정치 현장에서 여성 정치인은 유리천장이라는 장벽에 부딪친다. 특히 인맥과 지연, 학연으로 공고하게 연결된 공간에서 여성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의 정치 참여, 절반을 넘자 이날 토론회는 약 30여 명의 지역 페미니스트와 청년들이 참여했다. 행사 준비에 함께한 전북녹색당 김선경 사무처장은 여성 정치 참여에 공감하는 개인들이 모여 토론회를 준비했다면서 토론회를 함께 준비한 지역의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정치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을 모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8:2, 99:1. 현재 국회가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율이다. 여성의원이 20%가 되지 않는 상황, 청년의원이 1%에 불과한 상황, 청소년들의 투표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는 과연 이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2020년 총선은 이들의 존재로 절반이 채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북에서 열린 토론회는 어쩌면 그 씨앗이 되지 모르겠다. /문주현 자유기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9.06.03 16:56

[전북의 재발견] 부모님과 여행하기 좋은 김제 명소…청룡사에서 아리랑 문학마을, 망해사까지

5월은 날씨도 화창하고 휴일이 많아 나들이 가기 딱 좋았습니다. 국내 어디를 가든 좋은 날씨 덕에 한가로운 짬을 내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거대한 평야 지대가 있고 고대 저수시설 중 가장 큰 벽골제가 자리하고 있는 김제 여행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다 보면 승용차는 필수가 됩니다. 승용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모악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청룡사가 있습니다. 모악산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금산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템플스테이 등으로 방문하는 여행객이 많은 금산사와는 달리 같은 모악산에 위치한 금산사 말사 중 한 곳인 청룡사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모악산 도립공원으로 들어가 금산사 계곡을 따라 차로 10분가량을 올라가야 나오는 청룡사는 오르막길이 심해 이런 곳에 절이 있더니 의외로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 놀랐습니다. 고즈넉한 안개 속에 보이는 계곡이 김제의 숨겨진 여행지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청룡사는 금산사에 속한 암자 중 한 곳인 용장사였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는데 1963년 월정 스님이 삼칸토굴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용천암으로 개명해 1974년에 진입로와 관음전을 복원, 1983년에 사찰명이 청룡사로 개명되었다고 합니다. 주 법당인 관음전과 스님의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포함해 건물이라고는 3채뿐이지만 그렇기에 조용한 사찰의 분위기가 더 느껴졌습니다. 사찰 마당에서 안개 낀 모악산 기슭을 바라보며 산새 소리를 벗 삼아 조용한 자연 풍경을 즐기는 것이 번잡스럽고 관광객이 많은 곳보다 더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설<아리랑>의 배경인 징게맹갱(김제만경)에 소설 속 장소들을 재현해둔 아리랑문학마을도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아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 외리 마을 일대에 터를 잡아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만경 너른 들)의 우리나라 대표 곡창지대의 살아있는 문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리랑문학마을은 홍보관, 하얼빈역, 내촌. 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홍보관 1층은 벽면을 소설<아리랑>에 대한 텍스트로 꾸며 놓았습니다. 12권짜리 대하소설 대강의 줄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책을 미처 보지 못한 이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는 공간입니다. 2층은 김제 출신의 독립투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죽음도 불사하고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전진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넓은 야외의 또 다른 공간으로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역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을 실감 나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린 후 안중근 의사가 당긴 방아쇠에 의해 총격을 받는 역사적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에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갔던 사람들의 열악한 이민자 가옥도 볼 수 있습니다. 내촌. 외리 마을의 촌락의 모습은 보기에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살았던 집주인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근대 수탈 기관이 재현된 곳은 아마도 소설<아리랑>의 아픔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일 겁니다. 면사무소, 주재소(일제강점기 순사가 근무하던 기관), 우체국, 정미소 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죽산면사무소 내에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의 땅을 빼앗는데 활용되었을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낙조 풍경이 유명한 망해사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입니다.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있다 하여 망해사라 이름 지어졌는데 새만금사업으로 바다가 아닌 만경강 하류와 맞닿아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사찰로 오래전부터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던 호국사찰의 역할을 했습니다. 망해사의 명물로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와 낙서전, 낙서전 앞의 두 그루의 팽나무가 유명합니다. 팽나무는 선조 22년(1589)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창건하고 그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만큼 망해사를 지키는 것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망해사 뒤쪽의 진봉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서해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망해사 앞 범종각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만경강을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여행을 왔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볼거리를 마음껏 즐겼다면 먹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지평선의 고장 김제 맛집 100선에 든다는 검정콩 두부수제비보쌈으로 유명한 곳으로 찾았습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릴 정도로 영양가가 뛰어나 우리 식생활에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검은색 식품은 신장 기능을 돋우고 생식기계통의 기능을 좋게 한다고 알려졌지요. 검정콩 두부전골과 검정콩 왕만두를 맛보았습니다. 검정콩은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해독작용이 뛰어나 혈관을 튼튼하게 해줘서 고혈압과 동맥경화에도 좋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검정콩을 활용한 음식은 한 끼 식사로 영양 만점입니다. 맛도 좋아서 김제여행으로 맛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거리도 많고 먹는 것도 만족스러운 김제여행은 연휴 때 부모님과 함께 가기 좋은 여행지였습니다. 번잡스럽지 않고 고즈넉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딱 어울릴만한 장소로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김제여행을 권합니다. /글사진 이난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06.03 16:45

[위병기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 1. 이치백 전 전북향토문화연구회장 “전북인 긍지 잃지 않고 과감히 자립하려는 마음가짐과 행동 뒤따라야”

흔히 나이 70을 일컬어 고희(古稀)라고 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70세까지 살기가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인 요즘엔 70년의 세월이 적게 느껴질지 몰라도 70개 성상은 결코 짧지 않다. 하물며 일제 식민통치와 뒤이은 남북분단및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속에서 70이란 숫자는 의미심장하다. 숱한 사건과 사고가 빈발했고, 수없이 많은 인물이 명멸해간 세월이 아니던가. 올해 창간 69주년을 맞은 전북일보는 내년 6월이면 창간 70주년이 된다. 이에 본보는 매달 한번씩 도내 각계 인사를 만나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향후 전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첫번째는 반세기 가까이 언론에 몸담아 온 이치백(90) 전 전북향토문화연구회장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백세시대여서 그런지 아직은 건강합니다(웃음). 16년간 맡고있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직을 최근에 후배에게 넘겼습니다. (사)전북향토문화연구회는 도내 일원의 각종 향토 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지역문화 발전한다는 기치를 내세웠는데 어쨋든 긴 세월동안 나름대로 전북과 전북민을 위해 하나의 돌탑은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또 7월에 유네스코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만, 무성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됩니다. 사실 제가 15년간 무성서원 원장을 맡아왔는데 오랫동안 노력해서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아 전북몫 찾기가 화두였구요, 요즘에도 지역사회에서 전북이 과연 어떻게 좌표를 정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합니다. 그런점에서 오늘날 전북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려면 반드시 지난 역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 자리를 빌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전북인이여, 필요할땐 반드시 목소리를 내고 늘 도민으로서 긍지를 잃지말자고 말입니다. 90개 성상을 살아오면서 느낀건데요, 지역민들이 좀 오기도 있고 집요한 구석이 있어야만 대우받습니다. 바로 이웃한 전남이나 광주와는 늘 형제처럼 잘 지내야 하지만, 전북이 전남광주의 한 속주처럼 가볍게 취급돼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가 보호받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방화 시대에 지역민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을 때 과연 누가 그 지역을 살피겠습니까. △그 연장선상의 얘기입니다만, 한때 전북홀로서기란 말이 있었지요 맞습니다. 3김시대가 한창 기승을 부릴때 저는 전북홀로서기를 주창했습니다. 전북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소석(이철승)이 양김과의 대결에서 패한이후 정치적으로 전북은 급격히 전남광주권에 편입돼 버립니다. 따라서 전북홀로서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었는데요, 민주대 반민주 구도하에서 자칫 적전분열이 되면 안된다는 여론 때문에 사그라들었지요. 그런데 잘 보세요. 전북몫은 다른 사람에 의해 그냥 주어지는게 아닙니다. △많은 이들은 전북이 과거엔 잘 살았는데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집고 넘어갈게 있어요. 과거 경상도는 가난해서 풍족한 전라도 지역에 머슴살이와서 겨우 먹고 살았는데 잇따른 산업화 과정에서 전라도가 소외되면서 역전됐고, 오늘날 전북은 소외의 대명사가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큰 틀에서보면 오랫동안 야당의 길을 걸으며 아웃사이더였던 전북은 늘 관직에서 소외되면서 경상도보다 크게 뒤쳐졌던게 사실입니다. 쌀 위주의 농경사회때 호남에 큰 부자가 많았지만, 경상도 역시 큰 부자가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또 광복이후 일본 유학생중 전라도보다 영남인들이 훨씬 많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경부선 축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 이후에는 두말할 것도 없구요. 한국 100대 기업 오너중 전북 출신이 얼마나 되며,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에 전북인이 몇이나 됩니까" △김대중노무현 정권때 전북 인사들이 반짝 등용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크고작은 자리에 도내 인사들의 기용폭이 제법 늘어나면서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지 않습니까. 무장관무차관 시절과 비교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요.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북 출신 인사중 많은 이가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고 몇 안됩니다. 전북 인사가 등용되면서 금방 세상이 뒤바뀔것으로 도민들은 기대했는데, 고관현직에 발탁된 사람들은 개인의 복지는 달성했는지 몰라도 도민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 팍팍해진게 현실입니다. 굳이 군산경제가 폭망한 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북도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있다는 것은 곧 전북이 주는 매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분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현 단계에서 지역 지도자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하나의 일화를 말씀드릴까요. 1968년 4월 23일자 전북일보 신문 1면에 커다란 호소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박용상 사장과 진기풍 편집국장 시절인데 당시 저는 부국장겸 정치부장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며칠간 밤새워 준비했습니다. 대략 5개 사항인데 전북인의 과감한 등용, 전군도로 확포장, 향토은행 설립, 호남야산개발 추진, 원광대 종합대 승격이 바로 그것입니다. 결과적으로 5개 사항은 거의 다 실현됐는데요, 제가 언론인으로서 가장 보람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삼양사 전주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이환의 지사, 은병근 전주시장이 수당(김연수)을 찾아가 읍소한 것을 잘 모를 겁니다. 군산 입주가 기대됐던 LG화학이 구미로 방향을 틀고, 자사고인 상산고를 없애려고 하는 지역 풍토가 개선되지 않으면 전북에 미래가 없습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늙은 낙타를 따르라는 아랍 속담처럼 시대가 변했지만 지도자들이 더 겸허한 자세로 원로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몸을 불살라야 합니다.용두사미로 끝내는 풍토를 없애지 못하면 전북엔 미래가 없습니다. 도민과 지역 지도자 모두에게 하고싶은 말입니다. 아직도 전북엔 시기하고 질투하는 관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단합하지 못하고 전북인의 긍지를 갖지 못하면 우리가 후배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기업체가 됐든 뭐가됐든전북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을 도민 스스로 작고 부끄럽게 여긴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제대로 알아주겠습니까. 좀 부족해보여도 지역사회의 인재 키우기도 더 배가돼야 합니다. 이치백 회장은 평생 언론인임을 자부하는 이치백 회장은 1929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 해성초, 이리공고, 원광대를 거쳤다. 도내 언론인중 최초로 성곡언론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동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25세때 연합신문 기자로 출발, 얼마후 전북일보로 옮겨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내며 필력을 과시했다. 이후 전라일보 초대 사장을 거친뒤 일선에서 은퇴, 전북향토문화연구회장으로 활동했다. 서울분실장을 3년간 지내기도 한 그는 지역 언론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관훈클럽 감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감사 등도 지냈다. 일선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파노라마처럼 설파하는 그는 이 시대 최고 원로중 한명으로 꼽힌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기획
  • 위병기
  • 2019.06.02 15:15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높이에서 새로 살자

멈춰야 하는가, 달려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가져야 하는가.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그만 내려놓아야 하는가. 쉼 없이 근면해야 하는가, 이제 그만 소위 힐링을 구해야 하는가. 지지부진한 삶 속에서도 이런 질문들은 종횡무진 파고든다. 이 질문다발은 결국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합쳐진다.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구는 이렇게 해야 옳다 하고, 다른 누구는 또 저렇게 하라고 한다. 이렇게 살라는 사람이나 저렇게 살라는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아 보이니 선택은 더욱 어렵다. 모두 틀리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맞아서라기보다 필시 자기만의 각성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뭘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무명(無明)에 빠져있으면 돌고 도는 윤회의 틀을 못 벗어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삶의 무대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말하기 전에 어디서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연극배우도 연기를 잘하려면 자기가 서는 무대의 정체에 밝아야 한다. 인간이 사는 무대는 두 덩어리로 되어 있다. 하나는 인간이 만든 덩어리, 다른 하나는 인간이 안 만든 덩어리.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인간이 만든 것 아니면, 안 만든 것이다. 인간이 안 만든 덩어리는 인간과 별 관계없이 자기가 가진 원칙에 따라 자기 알아서 스스로 돌아간다. 자기 알아서 스스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自然)이라고 한다. 다른 한 덩어리는 인간이 만들었다. 문명(文明)이다. 문명(文明)이라 할 때의 문(文)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다 인간의 손이 닿았다는 뜻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문자(文字)는 인간이 만든 기호이고, 문학(文學)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에 관한 지적 활동이다. 문명은 문화(文化)라고 하는 인간의 독특한 활동이 만든 결과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하거나 만들어서[文] 변화를 야기[化]한다. 이런 의미로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존재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일을 가장 근본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만년필을 만들었다 치자. 만년필이 없던 세상과 만년필이 새로 등장한 세상은 다르다. 어찌 되었건 이제 세상은 만년필이 있는 세상과 없던 세상으로 갈라진다. 달라진 것을 변화라고 한다. 만년필을 만든 사람은 이 세상에 변화를 야기한 격이다.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인류의 삶은 더 넓어지고 편리해진다. 인류에게 하는 중요한 공헌이다. 만년필을 만든 사람은 인간 삶에 변화를 야기하였고, 만년필을 만들지 않고 사용만 하는 사람은 야기된 변화의 결과를 그저 수용했다. 물론 만년필을 수용하여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다른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것도 문화적 활동이다. 인간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존재다. 즉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다. 이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인간은 두 층으로 격이 나뉜다. 누군가는 변화를 야기하고, 누군가는 야기된 변화를 받아들인다.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활동을 하는 사람을 자유롭다, 주체적이다, 독립적이다고 표현하고, 야기된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종속적이다고 칭한다. 인간이 근본적인 의미를 잃지 않고 활동하면, 자유롭다-독립적이다-주체적이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문화적인 높이로 산다는 뜻이다. 만년필을 만든 사람은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고, 누군가 만든 만년필을 수용하기만 하면 종속적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 하는 활동이 창의적 활동임은 매우 자명하다. 그래서 자유-독립-주체-창의는 같은 차원에서 하나로 모여질 수밖에 없다. 문명은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낮은 층을 이루는 것이 물건들이다. 물건은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로서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대포, 컴퓨터, 군함, 연필 등등이다. 물건은 물건 자체의 역량으로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길과 돌아다니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좋은 물건이 나온다. 물건이 나오고 돌아다니는 길을 제도라고 한다. 도시, 농촌, 민주제, 공화제, 사회조직 등등이다. 이것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좋은 제도는 좋은 물건이 등장하도록 보장한다. 그런데 제도는 또 좋은 세계관이나 생각의 방식, 즉 철학에서 비롯된다. 철학은 추상적이다. 좋은 철학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구체적인 일상의 삶은 좋은 물건으로 보장되고, 구체적인 좋은 물건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좋은 제도가 만들며, 좋은 물건들과 좋은 제도는 추상적인 좋은 철학이 책임진다. 한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물건에만 가 있으면 후진국, 물건과 제도에 가 있으면 중진국, 물건과 제도와 철학에 모두 가 있으면 선진국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선진국이라 불러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단계에 와 있지만, 아직은 중진국이다.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쟁들은 여전히 제도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공수처를 만드느냐 안 만드느냐, 내각제로 바꿔야 하나 아니면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해야 하는가, 대학입시에서 수능을 몇 퍼센트로 하고 자사고를 폐지하느냐 유지하느냐, 선거제를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재벌을 개혁해야한다 말아야 한다 등등 수준 높은 거의 모두가 제도와 관련된 것들이다. 의식도 매우 제도 의존적이다. 자녀들을 교육 시키고 싶은 방향은 이런데, 교육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고 하는 말이나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내 삶이 사회구조 때문에 이리 되었다고 하는 한탄들도 결국은 모두 제도에 깊이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은 자신과 사회를 독립적으로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가 당연히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교육은 입시 제도에 함몰되어 있다. 고등학교라는 제도에서 대학이라는 제도로 이동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대학이나 고등학교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나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옆으로 밀쳐져 있다. 교육 현장의 황폐화는 교육의 정신과 철학이 사라지고, 제도를 지키려는 종속적 습관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유의 높이는 제도까지는 도달했으나 문화나 철학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는 중진국 상위 단계까지는 왔으나 선진국으로 진입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종속적 단계로는 가장 높지만 자유롭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모든 말들을 다 묶으면 결국 우리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다는 말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느 단계에 사는가. 자유롭고 독립적인가. 아직 아니다. 우리 삶을 채우며 편리와 풍요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물건 가운데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은 거의 없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는 제조업 강국이라 물건을 잘 만들고 또 수출해서 먹고 산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들어 수출까지 하는 물건이라 해도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을 들여와 따라 만들었을 뿐이다. 물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제도를 우리가 만들어서 쓰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우리 삶의 구체적 구성물인 물건과 제도 모두 외부에서 들여왔다. 독립적이기 보다는 종속적인 구조 속에서의 번영과 발전이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시도해야 할 새로운 도전은 매우 분명하다. 제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는 일이다. 정치적이고 감성적인 독립이 아니라 삶의 독립, 생각의 독립,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높이의 독립이다. 인간을 규정하는 말들은 적지 않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수,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호모 이코노미쿠스 등등.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드는 일을 기준으로 한 분류들이다. 이런 모든 분류를 하나로 통합하여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말하면,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도전에 나서지 않는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문명은 인공적이고 조작적인 것이며, 이런 문명을 쌓는 인간은 인공적이고 조작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공과 조작을 거부하고, 그냥 아무렇게 하거나 내버려 두는 것을 자연이라고 하면서 높은 차원의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는 인간적이라기보다는 패배적인 자세일 뿐이다. 문명을 건설하는 사명을 가진 인간에게 자연적이라는 말은 인위와 조작적 활동의 결과를 원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지, 인위와 조작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삶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삶이다. 다시 말해,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사는 삶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있던 곳에서 없던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즉 변화를 야기한다. 아직 인식되지 않은 곳, 아직 경험된 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의미에 닿아있는 인간이라면 머무르지 않는다. 혁명의 깃발을 완장으로 바꾸지 않는다. 지속 부정과 새말 새몸짓으로 무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새말 새몸짓은 무엇인가. 제도의 높이에서 멈춘 상태를 넘어서서 삶의 태도와 관점의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 철학과 과학과 문화적인 높이로 상승하는 일이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높이로 올라서는 도전을 감행해야 한다. 바로 문화적이고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단계로 상승하는 일이다.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신화는 물건과 제도의 높이에서 이룬 발전이다. 후진국과 중진국 정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제 이런 성공 신화를 뒤로 물리치고 한 단계 더 높고 새로운 신화를 써야 한다. 산업화 세력이 건국 세력을 도태시키고 새로워졌듯이,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을 밀어내며 나라를 새롭게 했듯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새말 새몸짓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키는 도전이다. 민주화 단계까지 올라서면서 하던 얘기와 주장을 아직도 계속하면서 그것을 지키려고만 하고 있다면, 당신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하더라도 아직 인간적이지 않다. 권력과 재력으로는 어쩔지 모르지만, 인간으로는 미성숙 상태에 있다. 깃발을 완장으로 바꿔 차고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사소한 사람일 뿐이다.

  • 기획
  • 기고
  • 2019.05.29 20:02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전북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 ③ 완주 삼례역~완주 상관면 신리

4월22일 맑음. 낮에는 삼례역 장리의 집에 가고, 저녁에는 전주 남문 밖 이의신의 집에서 묵었다. 판관 박근(朴勤)이 와서 만났고, 부윤도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판관이 유둔(기름종이)과 생강 등을 보내왔다.(난중일기중) 판관이 보내온 유둔은 비올 때 사용하는 기름먹인 두꺼운 종이이고, 생강은 약성이 좋은 식품이다. 장군이 백의종군하는 동안 건강을 잘 챙기고 요긴하게 쓰라는 마음이 은근히 느껴진다. 본래 전주시장 격인 전주부윤은 전라도관찰사(전라감사. 지금의 도지사)가 겸임을 하였고, 부윤의 업무는 판관(종5품)이 맡아서 처리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같은 비상시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가끔 전주부윤을 별도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만난 전주부윤은 박경신(朴慶新)이다. 그는 임진왜란 강화협상기인 1595년 10월에 부임하였으며, 후일 정유재란기에 남원성이 함락되었을 때 전주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하게 된다. 그의 후임이 바로 충경공(忠景公) 이정란(李廷鸞)이다. 1592년 임진왜란 개전 초기의 이치(梨峙)전투 때에는 수성장이 되어 전주성을 지켰고, 1597년 8월 하순 전주성 함락 이후에는 69세의 고령의 나이에 다시 전주 부윤이 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전열을 재정비한 전주의 인물이다. 그리고 장군이 하룻밤을 묵은 집의 주인인 이의신(李義臣)에 대하여는 명종실록에 1561년(명종16년) 윤5월 호조정랑으로 삼았다라는 짧은 기사가 보이는데, 기대승과 안방준 같은 유학자들과 교류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백의종군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박홍로였고, 칠천량해전 직후인 1597년 7월 25일 황신으로 교체되었다. 이번 답사는 완주군 삼례역에서 출발하여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로 들어선 후, 완주군 상관면 신리로 들어서는 길을 걷게 된다. 5월의 중순이 끝날 무렵 완주군 삼례역을 찾았다. 모처럼 내린 비와 세찬 바람에 이팝나무와 아카시아도 온통 흰색 꽃비를 뿌려놓았다. 이번 답사에는 경남 하동군청의 김성채 학예사도 동참을 하여 외롭지 않은 걸음을 하게 되었다. 삼례역 옆으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에서 답사를 시작한다. 삼례 상생 나무숲 공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공원 조성 기념석 있는 곳에 이르면 만경강과 강 건너 멀리 전주 시가지의 모습이 보인다. 완주 8경의 하나인 비비낙안(飛飛落雁)은 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풍경을 일컫는다. 한내는 너른 강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만경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비비정이 지척에 있지만, 백의종군로는 이곳을 들르지 않고 공원 기념석 맞은편 이정표 있는 곳에서 강변의 마을로 내려선다. 마을을 벗어나 4차선 도로인 삼례로 비비정버스정류소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삼례교로 향한다. 삼례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만경강 제방 위의 도로 한내로로 들어선다. 차선도 없는 좁은 도로이지만,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고 만경강의 풍광과 싱그러운 벚나무 가로수와 함께하는 예쁜 길이다. 한내로로 들어서서 약 30분 정도 진행하니 평리라는 마을 입석이 보인다.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쥐업정이라는 글과 입석 하단에는 춘향전의 이도령이 밟고 한양간 다리라는 설명도 새겨 놓았다. 어느덧 만경강의 본류와 헤어져 있는 전주천을 뒤로하고 전라선 철길과 동부대로 아래를 차례로 지나 팔복동 산업단지로 들어선다. 백의종군로는 중고차 시장 옆의 작은 하천 왼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감수길)를 걷게 된다. 전주연탄 앞 폐선된 철길을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는 왼쪽 신복로로 진행하고, GS충전소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전주시를 관통하는 기린대로에 이르며 공단지역을 벗어난다. 이제 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추천대교로 향한다. 추천(楸川)은 전주천에 삼천이 합수되며 전주천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백의종군로는 추천대교를 건너 전주천 옆의 가리내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터미널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덕교를 건너 전주천 동로에서 다시 전주천을 만난다. 이제 서신교, 진북교, 어은교, 도토리골교 앞을 차례로 지나고, 다가교 사거리에 이르러 왼쪽의 충경로로 방향을 튼다. 차이나타운과 약전거리가 있는 전라감영2길로 들어서서 일제강점기 때에 헐린 전주부성의 서문이 있었던 곳(서문지西門址)을 지나 풍남문에 닿는다. 이번 답사는 가리내로 아래 전주천을 따라 나있는 생태탐방로와 천년전주 마실길을 이용하여 다가교까지 이동하였다. 생태하천으로 잘 복원된 도심 속의 전주천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지역의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예전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에 이르면 이번 답사구간의 2/3 정도를 진행한 셈이다. 풍남문 정면 방향으로 나있는 좁은 시장 길을 걸어 한옥마을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싸전다리를 지난다. 이곳에서는 전주천을 남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길은 전주교대 앞의 서학로로 들어서서 국립무형유산원을 지나 17번국도인 춘향로를 만나는 오거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차량 통행이 많고 소음이 심한 춘향로 대신에, 정면 승암교를 건너서 전주천변의 바람쐬는 길과 아름다운 순례길로 이어지는 뚝방길을 걸어 상관면 신리로 향한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춘향로와 나란히 걷는 길이다. 치명자산성지, 색장교, 은석교 옆을 차례로 지나 왼쪽으로 전라선 철길이 뚝방길과 나란히 이어질 즈음, 정면으로 신리의 아파트단지가 많이 가까워져 있다. 어둠이 찾아들 무렵 정여립 생가터 입구의 월암마을정류소에서 힘겨운 걸음으로 상관면행정복지센터 앞에 닿으며 답사를 마친다. 구간 거리는 약 25km이고, 식사시간 포함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 기획
  • 기고
  • 2019.05.28 16:51

[전북의 재발견] 고창 인기명소 찾아보기 "드라마, 영화에 숨겨진 고창 즐기기"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녹두꽃. 동학농민혁명의 선봉장이었던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태생지가 고창읍내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해당 드라마의 나오는 장면들 대부분이 고창의 무장읍성과 고창읍성 배경으로 나오고 있지요. 쟁점이 되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 장소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그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거나 배경을 카메라에 담아 sns에 올리기도 하죠. 고창에는 유명한 촬영장소가 손꼽힐 만큼 많은데요. 문화유적이 많은 고창 지역의 특성상 스크린에 담아내는 일이 많아 고창의 아름다운 곳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럼 고창의 숨겨진 명장면의 명소들을 한곳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고창읍성 주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126 고창읍성은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왜적의 침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고창의 명소 중 한 곳이에요. 특히 소풍이나 행사시즌에는 정말 많은 분이 고창읍성을 찾으시죠. 고창모양읍성에서는 어떤 영화와 드라마들이 촬영됐을까요? 열렬한 고창사랑을 밝혀온 이준익 감독은 영화에서 여러 번 고창을 프레임에 담았습니다. 고창읍성은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도 자주 나왔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영화 사도와 왕의남자입니다.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린 영화 사도. 조선시대의 관아라고 하는 고창객사 에서 촬영되었어요.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어두운 감정을 극도로 드러내는 분위기에 객사가 배경이 되었습니다. 조선최초의 궁중광대극, 질투와 열망이 부른 피의 비극! 아름다운 욕망과 화려한 비극의 조선최초의 궁중광대, 왕을 가지고 놀았던 남사당패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의 남자! 대나무 숲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주인공인 공길이의 쫓기는 장면을 주 배경으로 찍었던 고창 맹종죽림사적입니다. 대나무 숲이 크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곧게 뻗어 있는 대나무의 크기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그 외에 최종병기 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나온 곳은 맹종죽림사적입니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찍은 장면에서는 한 번씩은 볼 수 있는 고창의 명소이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성곽을 따라 돌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유래가 있는 고창읍성의 성곽. 성곽은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운치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창 청보리밭은 봄에는 푸른 청보리밭을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밭을 만날 수 있는 학원관광농장이에요. 약 100만여㎡에 달하는 넓은 구릉 위에 자연이 빚어낸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푸르름이 묻어나는 싱그러움과 계절마다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창 청보리밭 주소 : 전북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 산 119-2 메밀의 꽃말은 연인이에요. 드라마 속 주인공인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와의 연결고리였던 메밀꽃. 드라마 주인공의 고난과 역경의 시작을 뜻하는 장소로 보이던 곳에서 행복한 해피엔딩이 되었던 결혼식 장면까지 메밀꽃밭이 다했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만큼 유명해진 고창 청보리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으시죠? 천오백 년의 고찰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 도립공원은 형형색색의 단풍이 손짓하고 붉디붉은 동백꽃과 꽃무릇이 수많은 이야기를 피워내는 곳입니다. 선운사 주소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선운사 선운사의 용문굴과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다는 낙조대. 선운산 낙조대에서 보는 일몰은 주변의 저수지와 능선이 어울려 일대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마봉은 하늘을 날며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말을 형상하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드라마 대장금 주인공의 엄마와의 슬픈 이별 장소였던 용문굴! 선운사 입구에서 1시간가량 걸어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영화 곡성은 선운사에서 추격전과 천마봉에서의 대립 관계를 잘 나타내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백사장의 폭이 700m, 길이가 1,000m인 구시포 해수욕장은 약 700,00㎡규모로 명사십리와 함께 해송림이 우거진 곳이에요. 길고 넓은 백사장이 늘어져 있고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 피부병 치료에 좋은 모래찜질과 해수찜을 즐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바닷물이 빠지면 백사장이 단단해져서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이고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합니다. 갯벌 한 점 없이 고운 백사장이 돋보이는 곳이죠. 영화에서 종종 말을 타고 바닷가를 질러 명사십리를 달리는 장면은 이곳에서 찍었다고 해요. 고창 구시포해수욕장 주소 : 전북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신재효 고택은 그의 사랑채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당대에는 선생 문하의 광대들과 소리 배우러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신재효 고택! 여류 명창의 길을 연 진채선 명창이 소리 인생을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재효 고택 주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00 1867년 조선최초 여류소리꾼이야기 도리화가!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던 조선말기 소리가 운명인 소녀가 나타나 일어나는 판소리 이야기이죠. 도리화가의 여주인공처럼 신재효 고택에 앉아 진채선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따뜻해진 5월 날씨! 가족들과 연인들과 가까운 고창 나들이로 장소속의 영화장면을 생각하면서 여행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글사진=최유정(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05.27 17:31

[찾아가는 군산이야기] 군산보리, 수제맥주로 태어나

우리나라 주류 중 가장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맥주!! 퇴근 후 한 잔, 모임의 술자리, 그리고 더운 날씨에 땀 흘리고 시원하게 목으로 넘기는 맥주 한 캔의 청량감은 지친 서민의 일상에 활력소가 됩니다. 우리 주변의 식당이나 마트, 편의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과하지만 않는다면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주는 아이템 중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맥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소비가 이뤄지는 주류인 만큼 그 종류와 제조 방법 또한 다양합니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국산과 외산이 뒤섞인 혼돈 상태로 회사마다 맥주 맛에 자존심을 내걸고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마셔왔던 맥주의 주원료가 전량 외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보리를 주원료로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보리가 어디에서 재배되어 맥주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계시는 분들은 극히 적을 듯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맥주를 예정하는 분들에게 반갑고도 즐거운 소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지난 4월 농산물 가공지원센터에서는 여러 언론사가 참여한 가운데 국내 수제 맥주 산업의 맥아 소비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주제로 발표가 있었습니다. 흰찰쌀보리하면 군산이 떠오를 만큼 보리 주산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제는 흰찰쌀보리를 넘어 맥주의 원료가 되는 최상 품질의 맥아를 생산함으로써 본격적인 국내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간혹 맥주와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면 물탄 맥주, 싱거운 맥주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 보리로 만든 수제 맥주가 본격적으로 판매된다면 국내 맥주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같은 과일이라도 품종에 따라 식감과 맛이 조금씩 다르듯이 보리에도 여러 종류의 품종이 존재합니다. 그중 맥주를 만드는 품종은 라거를 만드는 광맥과 에일(흑맥주)의 원료가 되는 흑호 품종이 사용되는데 맥아 외에도 쌉쌀한 맛을 조절하는 홉과 발효를 돕는 효모, 그리고 물, 4가지의 주원료를 혼합하여 일정 온도에서 발효과정을 마치면 우리가 마시는 맥주가 되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이번에 신축된 군산 농산물 가공지원센터의 군산 맥아 가공 특화사업 시설에서 식혜, 조청, 장류를 만들 때 사용되는 엿기름도 함께 생산하고 있습니다. 보리의 발아, 건조설비의 우수성, 생산효율, 가공 품질 등 이미 검증을 마친 시설로 기존 업체들보다 가격과 제품의 퀄리티 면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지역 보리 농가들의 소득 증대와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시설로 연간 250여 톤의 보리로 맥아와 엿기름 생산하지만 2023년 이후로 2,000톤까지 확대하여 식혜 공장과 고추장 공장에 납품될 예정이며, 대형마트와 유통 업체, 로컬푸드 직매점을 통하여 가정에서도 위생적이고 항상 같은 품질의 엿기름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함께 참여한 기자들로부터 군산시 농업기술센터 김미정 농촌지원과장에게 군산 보리에 관해 질의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유통과정 중 수입 맥아와 경쟁력을 갖춰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압도적이었는데요. 아직은 수입 맥아와 단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만, 최상의 품질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사용하여 맥주를 제조했을 때 주류세 50% 감면 혜택이 지역별로 확대된다면 수입 맥아와의 경쟁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명쾌한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농산물 가공센터 2층 제조 현장에는 현업에서 보리농사를 지으시는 농민과 수제 맥주 창업을 준비하시는 예비 창업주, 한국수제맥주협회 연구원이 자연에 가까운 보리 맛 그대로의 맥주를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소규모 맥주 제조업의 경우 미국 약 4,300개, 독일 약 1,300개, 일본 약 400개가 있을 만큼 활성화되어 있고 지역 농민들과 밀착된 기업형으로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120여 개의 업체에서 수입 맥아를 이용하여 만든 맥주로 0.5~1%의 시장 점유율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향후 10년 이내에 수제 맥주 시장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며 국산 맥아를 원료로 하여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다양한 풍미의 맥주가 만들어진다면 맥주도 하나의 맛집 문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군산에서 열렸던 축제 현장을 다녀가신 분들은 이미 농산물 가공센터에서 만들어진 맥주를 맛보셨을 겁니다. 최근 미성동에서 열렸던 꽁당보리축제, 시간여행축제 등 군산을 대표하는 축제마다 빠짐없이 가장 맛있게 발효된 맥주를 홍보하기 위해 가지고 나오는데 발효기에서 바로 내려 먹는 맥주 맛은 그때 마셨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물론 완성이 덜 된 것이기도 하고 생맥주 냉각기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시원함과 인위적인 탄산이 가미되지 않아서 톡 쏘는 맛은 덜했습니다. 그래도 한 모금의 맥주 안에는 보리 본질의 맛이 그대로 담긴 풍부하고 깊은 향이 느껴질 만큼의 구수함과 쌉쌀함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5% 이내라고 하지만 입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폭넓은 풍미가 오랫동안 남아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은 빠지고 구수함이 더 강해지는 맛이라고 할까요?? 쉽게 예를 들어 커피 생콩을 로스팅 후 바로 마시는 것과 로스팅된 커피를 오랜 시간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쳐 마시는 커피 맛의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가 되어 즉석에서 내린 맥주를 맛보게 됐는데 조만간 군산에 수제 맥주 거리가 조성된다면 그땐 우리 보리로 만든 신선한 맥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듯합니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인더케그 수제 맥주 공장을 견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주)인더케그는 반맥즙 수제 맥주 제조업체로 발효과정 직전 단계의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업주나 개인이 간편한 발효 장비를 이용하여 원하는 기간의 숙성과정을 거치면 나만의 색깔 있는 레시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법적인 허가 절차로 국내에 유통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게 남았습니다. 그래도 현재 중국, 필리핀, 인도, 태국 등 해외시장에서 우리 기술력을 인정받아 전량 수출되고 있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조만간 법적인 허가가 끝나는 대로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기원전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도 맥주의 기록이 발견됐을 만큼 인간에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술이죠. 아직은 독일이나, 미국보다 수제 맥주 시장의 후발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개인의 개성이 톡톡 튀는 시대에 정형화된 틀 안에 만들어진 완제품보다 나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맛을 찾아가는 현재 세대와 코드를 맞춰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아이템임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우리 보리로 만든 국산 맥주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일생의 한 번은 꼭 맛봐야 할 버킷리스트에 오르는 그 날까지 우리 국민의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획
  • 기고
  • 2019.05.27 17:08

[익산에ON多] 만경강(3경 사수곡류)의 여름풍경

익산의 남쪽 따라 김제와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가는 만경강(길이 81.75㎞)에는 강 구간의 특색에 따라 만경 8경이 있습니다. 그중 만경강의 옛 이름인 사수와 만경강 옛 물길의 모습을 통해 역사와 전통,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표현한 곳이라는 '3경 사수곡류'에 방문해보았는데요. 잠시 8경에 대해 안내하자면, 1경 만경낙조 - 만경강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곳 2경 신창지정 - 새 창이 나루를 오가던 사람과 이곳에 남겨진 역사 문화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 3경 사수곡류 - 만경강의 옛 이름인 사수를 표현하여 굽이치는 만경강의 중심에서 옛 물길과 사람들의 어우러짐 4경 백구풍월 - 백구정에서 만경강을 내려가 보며 아름다운 경치를 벗 삼아 자연을 노래하는 곳 5경 비비낙안 -비비정에서 만경강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 6경 신천옥결 - 옥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만경강의 허파 역할을 하는 신천습지가 있는 곳 7경 봉동인락 - 편안하고 즐거운 봉동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곳 8경 세심청류 - 세심정에 앉아 마음을 씻고 흐르는 만경강에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 만경강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공급 역할 외에도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수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토사가 쌓이고 물이 얕지만, 한때는 강 상류까지 배가 통할 만큼 물이 깊었다고 해요. 만경강의 '3경 사수곡류'는 물길에 깃든 만경강 옛 모습과 함께 강가를 수놓는 정취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수정에서 너른 익산의 경치를 보며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고요 봄에는 벚꽃이, 가을엔 억새가 피는 등 계절의 특색을 그대로 표현하는 곳입니다. 이런 만경강 사수곡류의 여름 풍경은 어떨까요? 구름 한 점 없는 드넓은 하늘과 너른 벌판처럼 탁 트인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오늘날 만경강의 이런 모습은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한 대대적인 쌀 증산 활동과, 그 목적으로 만경강에 대해 대규모 수리 사업을 벌이면서부터라고 하는데요. 만경강의 수리 사업은 인공 제방 축조와 곡류가 심한 부분을 직선으로 바꾸는 직강공사, 댐 건설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강은 물흐름의 특성상 곡류천을 이루게 마련이고, 만경강 역시 심한 곡류천이었습니다. 여기에 제방도 튼실하지 못해 매년 여름이면 홍수 피해를 겪었고요. 하지만 직강공사와 인공 제방의 축조로 만경강 유로는 크게 변하게 되고, 당시 쌓았던 제방이 대부분 오늘날까지 그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요. 물줄기 따라 강둑 드라이브와 자전거 주행이 유명한 이곳에선 익산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데 목천대교 방면으로 조금만 더 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볼수록 규모가 정말 큼이 느껴지네요 시원시원하게 뚫린 길~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사업비 2888억 원을 들여 2011년~ 2020년까지 11개 지구로 나눠 하천환경 정비 사업을 하고, 자전거길과 체육시설, 광장, 공원 등 친수 시설을 조성해오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더욱더 많은 발길이 이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철새가 많이 찾는 곳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조형물이 보입니다. 보는 각도마다 다른 모습으로 초록색의 자연은 산림욕의 기분을 주네요 다만 이곳 근방은 사수정 외에 그늘이 없다는 점~ 산책보다는 자전거 주행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쭉 뻗은 길들이 보입니다. 그런 만큼 익산시에서는 만경강 자전거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는데요. 4월~11월까지 (7,8월은 중단) 운영하며 주말 및 공휴일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료로 2시간(☎063-837-3538)이라고 하니 넉넉하게 즐겨볼 수 있겠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와 복지를 위한 친수공간의 경우 신지 지구에는 수변공원이 조성됐고, 저산지구에는 축구장과 족구장이 갖춰진 체육 공간, 목천지구는 파크골프장과 제방 잔디공원, 춘포지구는 수변공원, 축구장이 조성됐다고 하는 만큼 강 따라 소소히 즐기기 좋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자연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인 만큼 길가에 핀 꽃들을 보며 한여름(7~8월) 전, 후로 라이딩하러 와보면 어떨까요? /글사진=서수진(익신시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05.27 16:54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