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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도내 인수기업 줄줄이 매각

지난 수년간 알짜기업을 줄줄이 인수, 몸집 키우기에 열을 올렸던 대한전선그룹이 2008년을 전후한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고 휭청거리고 있다. 2009년 5월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는 등 재정상태가 크게 어려워진 것. 이 과정에서 대한전선은 도내 알짜기업들을 줄줄이 시장에 내놓고, 동부산간 주민들의 희망이던 무주기업도시를 무산 위기에 빠뜨리는 등 지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대한전선 손관호 회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선을 제외하고 다른 사업군은 새 주인만 나타나면 모두 정리 대상으로 삼겠다. 올 연말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서 벗어나고, 자산 매각이 마무리되는 2012년쯤이면 예전의 대한전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2002년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고창 선운레이크(골프장) 등 알짜배기 기업을 인수하는데 몰두해 온 대한전선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기업도시 사업에 참여해 무주기업도시(주)를 출범시키는 등 한 때 4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공룡이었다.그러나 대한전선은 기업인수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지난 2008년 전후해 닥친 세계적 금융위기에 부딪쳐 돌아온 부메랑을 맞고 비상 상태에 처했다.그동안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현 쌍방울트라이그룹)를 비롯해 캐나다 힐튼호텔 등 알짜기업들을 매각해 8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지만, 그룹의 전체 부채가 4조1213억원에 달해(부채비율 400%), 재무구조 약정을 벗어날 수 있는 부채비율(200%대) 확보에는 역부족이다.이 때문에 대한전선그룹은 무주리조트와 선운레이크, 무주기업도시 등 약 30여 개 비전선분야 정리에 나선 상황이다.무주리조트의 경우 가격 조율이 여의치 않아 표류중이고, 무주기업도시(주)의 경우 페이퍼컴퍼니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무주기업도시(주)에 따르면 이 회사는 무주군이 18억원, 대한전선이 450억원을 출자해 만들어진 회사이지만, 1년 전 대한전선이 400억여원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다. 사실상 대한전선의 재무적 권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이와관련 무주지역에서는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를 인수하고, 무주기업도시를 한다고 할 때만 해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기업사냥꾼처럼 마구잡이 경영을 일삼다 인구 3만명에 불과한 무주 주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 '나쁜 기업' 이미지를 남겼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9.02 23:02

[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33)(주)전주페이퍼-⑥종합제지회사로 도약

1965년 새한제지로 출범, 삼성에 인수된 뒤 굴지의 제지기업으로 성장한 전주제지는 1990년대 이후 큰 변화의 파도에 휩싸인다. 전주제지는 초창기 10만평에 달하는 논과 밭, 황무지를 갈고 닦아 초지기 1호기5호기까지 가동하며 국내 신문용지의 50% 가량을 공급할 만큼 괄목성장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 소유 분산, 업종 전문화 등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1989년 들어 대기업이 영위하는 사업 가운데 중소기업형 분야 정리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전주제지는 결국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됐다. 삼성그룹은 1991년 11월 6일 전주제지와 신세계백화점의 분리독립 방침을 전격 발표했고, 1993년 7월28일 은행감독원의 확정을 통해 삼성-전주제지는 완전히 분리독립 됐다. 이 때 전주제지 대주주 이인희 고문은 임직원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처우도 삼성과 동등 또는 그 이상으로 보장하는 등 사기 진작에 힘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 제2창업 전주제지 김인호 사장은 삼성과의 분리독립이 발표된 지 6일 만인 1991년 11월12일 발표한 '최우량 기업의 실현을 위한 선언'을 통해 독립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행보를 서둘렀다. 김 사장은 선언에서 인재 제일의 경영, 새로운 그룹으로의 성장, 독립경영 체질의 확립, 새로운 기업 문화의 창조 등 네가지를 강조했다. 삼성의 그늘을 털고 독립된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명 변경도 추진됐다. 사명 개명작업은 91년 1월부터 착수됐다. 사내에서 공모한 결과, 2만여개의 후보안이 제시됐고 한자 및 외국어 조어형은 배제하기로 했다. 그리고 1992년 5월1일 순한글 명 '한솔'이 새로운 사명으로 결정됐다. 한솔은 발음이 쉽고 외국어 표현도 용이했다. 또 의미적으로도 크다, 유일하다는 뜻의 '한'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소나무와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솔'을 결합한 한솔은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겠다는 임직원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1992년 9월23일 임시주총에서 사명 변경을 결정하고, 창립 27주년인 1992년 10월1일 제2 창업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사명 '한솔제지주식회사'가 공식 사용됐다. ▲ 독립의 몸부림 한솔제지는 완벽한 독립을 위해 사명 변경에 이어 새로운 시각물(한솔 마크)을 제작하고, 1994년 1월에는 사가 '한솔의 노래'도 발표했다. 종합제지회사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담은 '한솔플랜2000'도 1992년 9월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00년 매출목표 3조 원, △세계적 규모의 종합제지회사로 성장, △제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안정적 사업 다각화 추진으로 요약된다. 즉 제지를 중심으로 원료 조달, 생산, 판매체계를 구축하고 물류, 환경, 엔지니어링 등 제지와 관련된 신규사업에의 진출을 통해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이는 당시 경영 환경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한솔제지는 1991년 12월 종이 생산량 400만톤을 달성, 업계 최초로 세계 100위권에 진입한 상태였다. 1986년 1000억 원을 돌파했던 매출액도 1991년 11월29일 3000억 원을 기록했다. 또 전주공장은 신문용지와 중질지, 재생지를 생산하는 대단위 전문공장으로 육성하고, 장항공장은 고급인쇄용지 전문 생산공장으로, 또 대전공장은 산업용지 전문생산공장으로 특화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한솔은 또 폐수처리제 등 고분자화학과 정밀화학을 겨냥한 화학회사, 제지수송과 관련된 물류회사, 금융기업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같은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 홍보 전략도 실행해 나갔다. 1991년 말, 기획실 산하 홍보팀을 홍보실로 승격하고 1993년 8월에는 '손과 종이'라는 주제로 첫 TV광고를 내보냈다. 1994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제일 많이 심어 온 기업'이라는 이미지 광고를 해 환경기업의 이미지를 심고자 했다. 또 1995년 한솔문화재단을 설립, 미술관과 종이박물관 건립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전통한지 제작 기술 보존을 위한 학술 활동비 지원 등 각종 문화 및 지원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 세계 3위의 신문용지 생산공장 1980년대 후반부터 신문용지 시장이 호황이었다. 1990년 신문용지 내수는 전년대비 21.7% 증가한 51만 7000톤을 기록했고, 생산량은 17.5% 증가한 52만 1938톤에 달했다. 수출도 53.4%나 증가했다. 1973년 중단됐던 신문용지 수입이 1989년부터 재개되고, 또 89년 2만3807톤이었던 수입량이 90년에 4만312톤에 달할 만큼 신문용지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제지업계도 설비를 확충했고, 94년들어 생산량이 전년대비 21.4%나 증가했다. 그렇지만 신문사들의 잇따른 증가와 중앙지의 지방분공장 설립, 증면 경쟁이 이어지면서 신문용지 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신문사들의 증면과 다면인쇄, 컬러인쇄가 가속화 하면서 신문용지의 평량 경량화 등 품질 고급화 작업도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전주제지는 54g/㎡였던 신문용지 평량을 경량화하는데 성공, 1989년 7월부터 국내 최초로 48g/㎡의 컬러 신문용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3년 11월29일에는 새로 증설한 6호기에서 46g/㎡의 초경량 신문용지를 생산해 냈다. 초경량 신문용지 생산은 신문 1부당 중량을 줄여 우편료 절감, 배달 용이 등 효과를 낳았다. 또 85년과 86년에 이어 93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개조 공사를 실시하는 등 품질 관리에 꾸준히 노력했다. 1989년 5호기 건설로 전주제지는 하루 1390톤의 종이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제지공장이었지만, 단일공장 규모로는 세계 25위에 불과했다. 이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종합제지회사로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생산량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내려졌다. 1991년 11월6일 핀란드 발멧사와 초지기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6호기 증설에 들어갔다. 1500억원이 투입된 이 공사는 1992년 4월 기공식, 12월 기계 설치공사, 1993년 8월16일 시험운전을 거쳐 16개월만에 완공됐다. 6호기는 연간 26만톤 생산능력(최대속도 1500m/분)을 갖춘 초지기와 29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탈묵펄프 처리시설을 갖춘 국제규모였다. 이를 통해 한솔제지는 세계 4위의 신문용지 생산 공장으로 발돋움했다. 이어 2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 연산 24만톤, 설계속도 1700m/분, 신문용지 코팅설비 기능까지 갖춘 7호기 발주 계약을 1995년 1월 필란드 발멧사와 체결했다. 7호기 가동으로 전주공장은 연간 100만톤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3위 규모의 신문용지 생산공장으로 그 위상을 높였다. ▲ 종합제지회사로 도약 전주공장을 신문용지 전문공장으로 육성한다는 장기 전략에 따라 인쇄용지 생산공장은 충남 장항 금강하구언변에 세워졌다. 1990년 4월 장항공장 PM21(장항에 있는 제2공장에 건설되는 초지기 1호라는 의미) 건설본부가 발족된 뒤 1600억여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시설된 PM21은 1992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백상지 등 인쇄용지 생산에 들어갔다. 장항공장은 1992년 5월21일 준공과 함께 본격 가동에 들어갔고, 이어 94년 5월 준공된 중성지 생산 초지기 PM22호기는 그해 27만5000톤을 생산, 장항공장의 독립 기반을 이뤘다. 한솔제지는 이와 아울러 특수지 사업과 산업용지 사업에도 진출하며 제3공장 건설프로젝트를 진행했고, 1995년 대전공단 내 7만여평의 부지에 백판지 공장을 설립, 가동에 들어갔다.또 백판지 생산업체인 동창제지를 1994년 인수, 연간 40만톤의 백판지 생산능력을 갖췄다. 이에따라 한솔제지는 1990년대 중반 무렵 신문용지는 물론 중질지, 백상지, 정보용지, 백판지 등 각종 용도의 종이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종합제지회사의 위상을 갖췄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9.02 23:02

"반부패·청렴생활 실천 합시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자 윤리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한국농어촌공사가 전체 임직원 반부패·청렴 서약에 나섰다.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본부장 왕태형)는 31일 본사 김영성 이사, 왕태형 본부장, 김창종 노동조합전북본부장, 지사장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반부패·청렴 서약 및 다짐 결의대회'를 가졌다.이날 다짐대회는 경영진의 강력한 청렴의지를 사내에 전파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 생산기반정비사업 등에서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부조리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로 열렸다.전북지역본부 관계자는 "CEO의 강력한 반부패 청렴의지를 전파·공유하자는 차원에서 공사의 모든 직원들이 청렴 서약에 나섰다"며 "지난해 반부패 시책 평가 최우수기관이었던 우리의 '청렴 공사' 이미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전북지역본부는 이날 예산집행 및 계약 과정의 투명성과 깨끗한 공직풍토를 조성하고, 민원에 대해 신속·친절·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고객서비스 향상 방안도 모색했다.한편 김영성 이사는 이날 도내에서 시공을 맡고 있는 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농어촌공사의 반부패 청렴의지를 전달한 뒤 "하도급 공사대금 현금지급 제도화 등 공정사회 구현에 시공업체들도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김 이사는 "신뢰받는 공직문화 조성을 위해서는 집행의 투명성과 직원의 청렴생활 이행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며 "고객이 요구하는 청렴수준이 크게 높아진 만큼 우리의 노력도 배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9.01 23:02

[우리시대의 성공기업인] (33)군산 서수면 덕유패널(주) 채수하 대표

사진-화상부(사진설명-군산시 서수면 덕유패널㈜ 채수하 대표가 자사 견본 제품과 홍보책자를 놓고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군산시 서수면 덕유패널㈜ 채수하 대표(58)는 형제 많고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7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유학으로 선진 산업 현장과 이론 학습을 병행한 뒤 귀국, 형들이 설립한 공장의 운영을 맡았다.덕유패널㈜은 현재 국내 건축용 메탈패널 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지난 2007년 169억원, 2008년 179억원, 지난해 1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200억원을 예상한다.한국도심공항터미널, 인하대 자동차기술연구소, 경남 테크노파크, 군포 근린생활관, 평창 과학관, 군장대 조선공학관 등 도내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기관·공장 외벽에 이 회사 제품이 쓰였다.채 대표는 신제품 개발을 독려, 회사 내 '일 만드는 사장'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연구 개발을 강조했다.▲ 평범한 제품은 경쟁력 없어건물의 벽 또는 외장재로 쓰는 패널, 덕유패널㈜이 4년 전 출시한 메탈패널은 일반 패널과 투입하는 원자재 가격은 비슷하지만 30% 가량 높은 판매 가격을 받는다. 지역 중소기업이 생존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몸부림 친 결과물이다. 기존 낱장의 단속식 메탈패널과 달리 여러 개를 이어 대형 판으로 제작해 시공 기간과 비용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생각의 차이가 매출의 차이로 이어졌다."기존 범용 패널은 시장확대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건축자재다 보니 외상거래가 많고 수요자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었습니다. 가격이 아닌 품질 경쟁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패널이 필요했습니다. 고객이 필요한 제품을 만들면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회사가 됩니다."자사 제품에 대한 자긍심은 홍보책자에도 드러나 있다. 홍보책자라고 보기에 다소 두꺼웠다. 뒤를 보니 일반 서적처럼 바코드가 있다."사람이 거주·사용하는 건물을 디자인하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2년에 한번씩, 판매용으로 홍보책자를 제작합니다. 현재 3권을 발행했습니다."▲ 농촌 가난한 집안 형제의 꿈이 담긴 공장채 대표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고 26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서 수 십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일 산업계 곳곳을 몸으로 배웠다. 자동차·문구·화학 공장, 삼성정관 독일법인, 눈 치우기, 가든 청소, 자동차·가구 운송, 노름방 문지기, 대형서점, 태권도 사범 등 밤새워도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였다."학비가 없어서 독일을 선택했어요. 원래는 스포츠의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전과가 안돼 베를린 자유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독일은 학생이 1주~2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잘 갖춰서 있어 산업현장에서 그들의 성실함과 저력, 중소기업이 강한 산업구조 등을 몸으로 익혔습니다."그는 지난 1993년 귀국한 뒤 1996년 형들이 주주로 참여·설립한 덕유패널㈜의 경영을 맡았다."회사는 저희 형제의 꿈이 담긴 공장입니다. 형들이 다짐했던 '돈 벌면 고향에 공장을 짓자'는 일념을 실현한 곳입니다."막상 경영을 맡았지만 생소한 분야여서 초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읽은 뒤 천직으로 여기며 전념하게 되었다."지인의 추천으로 사업 아이템을 골랐지만 모르는 분야라서 많이 힘들었는데 어느날 김진애 의원(민주당)의 <건축은 중요한가?>라는 책을 읽었어요. 패널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을 꾸미는 제품입니다. 게다가 수명이 자꾸 짧아지는 시대에 건축 패널은 비교적 수명이 긴 제품이란 걸 깨달았죠."▲ 제품 활용 범위 넓히고 고용창출 꿈채 대표는 현재 열에 강한 조선 내장재와 결로가 생기지 않는 건물 환기 통로를 개발하며 제품 활용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대형 선박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건축물입니다. 승선한 사람에게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불에 타지 않는 친환경 단열재가 필요합니다. 우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곳에서 부가가치를 높인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식경제부·중소기업청 주관 연구개발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며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매년 2건 가량 특허를 출원했습니다."그는 고향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회사의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정직하게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팔고, 많은 인원을 채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 늘어나는 제조업체로 남길 바랍니다."

  • 산업·기업
  • 이세명
  • 2010.09.01 23:02

LH, 서부신시가지 5-4블럭 중·대형 공급계획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주시 효자동 서부신시가지 내 5-4 블록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 공급계획을 진행 중인 가운데 도내 지역 수요자 선호도 등을 고려, 중소형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LH는 효자 5-4 블록에 125㎡ 124가구, 145㎡ 236가구, 155㎡ 120가구 등 모두 480가구를 공급키로 하고, 당초 9월 중 공사에 착공해 내년 상반기 분양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닥친 재무위기 등의 상황으로 인해 LH는 효자 5-4 블록 등 전국의 올해 착공계획 물량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계획을 조정하고 있다.현재로서는 5-4 블록 공사가 당초 계획대로 내달 중 착공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이런 가운데 도내 미분양 아파트 2500여 가구 중 중대형 평형이 상당수(1000여 가구)에 달하고, 도내 주택 구입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중소형에 몰리는 상황이어서 사업성 등을 고려해 평형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도내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중대형은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중소형은 물량이 많이 달린다"면서 "LH가 지역의 이런 상황을 반영해 아파트를 공급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시민 박모씨(41)는 "지난 2007년 LH가 공급한 효자동 중대형 아파트는 올 상반기에야 미분양 물량이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LH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 미분양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형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LH 관계자는 "수요 여건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평형 등에 대한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산업·기업
  • 박영민
  • 2010.08.31 23:02

"LH, 무문별 사업확대, 재무구조 악화"

감사원, LH 기관운영감사 결과.."신규착수 10조원 줄여야"(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무분별한 사업 확대와 기반시설 부담, 과도한 토지 보상금 지급으로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됐다.감사원은 LH에 대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이런 내용의 문제점들을 밝혀냈다고 30일 밝혔다.감사원에 따르면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논의가 본격화된 2003년 이후 두 공사는 주도권 선점을 위해 타당성 검토를 소홀히 한 채 사업을 확대했다.이에 따라 미분양 토지 규모는 2003년 2조7천357억원에서 2005년 3조4천128억원, 2007년 7조7천362억원, 작년 17조7천942억원으로 대폭 늘었다.감사원은 또 LH의 7개 사업을 표본으로 선정, 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그대로 사업을 추진하면 수요 부족 등으로 3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특히 감사원이 자금조달 여건 등을 고려해 LH의 적정 사업물량을 재검토한 결과연간 신규사업 착수물량은 올해 규모보다 10조원 적은 24조5천억원 미만으로 나타났다.또 지난해 사업계획 승인 이후 아직 착공하지 않은 물량 45만호 중 7만3천호는 수요 부족 등으로 장기적으로도 사업착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감사원은 국토해양부 장관과 LH 사장에게 사업타당성을 재검토해 수요가 없거나수익성 개선 여지가 없는 사업은 축소 또는 취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이와 함께 LH는 43개 사업지구에서 스포츠센터 건립비 등 총 4조7천억원에 달하는 지자체의 부당한 기반시설 설치 요구를 그대로 수용, 주택공급가격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아울러 한 사업지구의 경우 적정 보상가격보다 1조3천억원 가량 보상비를 과다 지급, 결과적으로 사업성이 악화되고 부채가 급증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감사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기반시설 설치비는 조성원가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국토해양부와 LH측에 통보했다.

  • 산업·기업
  • 연합
  • 2010.08.31 23:02

농어촌公 '반부패·청렴' 서약 다짐

한국농어촌공사(사장 홍문표)는 30일 경기도 의왕시 본사 인재개발원 대강당에서 홍문표 사장, 김경안 감사, 장태원 노동조합위원장 등 임직원 6000여명이 '반부패청렴'서약 및 다짐 결의를 했다.이번 결의대회에서는 △비리연루자는 성과개선대상자로 우선 선정하여 퇴출, △비리연루자의 직상위자는 계열연대책임을 묻는 등 인사조치 강화, △선물접대문화 타파, △전직원 대상 청렴의식교육 및 CEO안내문을 발송하였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6000여 임직원이 '청렴서약서'를 본인이 자필로 쓰고 서명날인 하였다.청년 실업대책 일환으로 9월중에 취약계층이 많은 농어업인 자녀를 포함한 100명의 신규 사원을 채용할 방침이다. 이번채용은 특히 지역인재 확대 차원에서 특별 전형을 통해 50%는 농어업인 자녀로 뽑는다.또 농어촌공사는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책도 수립, 추석을 앞두고 체불임금 등이 있는 곳은 공사에서 공사대금을 직접 지불할 예정이다.아울러 하도급 공사대금이 적기에 현금 지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이행여부를 하도급업체에 직접 확인하는 등 공사현장의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시스템화 해 나가기로 했다. 올해 공사의 건설공사비만도 2조 3천억원에 이르고 1600개 사업현장의 1200개 하도급업체 10,000여명의 근로자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산업·기업
  • 연합
  • 2010.08.31 23:02

"LH, 무문별 사업확대·토지보상 재무구조 악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무분별한 사업 확대와 기반시설 부담, 과도한 토지 보상금 지급으로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됐다. 감사원은 LH에 대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이런 내용의 문제점들을 밝혀냈다고 30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논의가 본격화된 2003년 이후 두공사는 주도권 선점을 위해 타당성 검토를 소홀히 한 채 사업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미분양 토지 규모는 2003년 2조7천357억원에서 2005년 3조4천128억원, 2007년 7조7천362억원, 작년 17조7천942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감사원은 또 LH의 7개 사업을 표본으로 선정, 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그대로 사업을 추진하면 수요 부족 등으로 3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감사원이 자금조달 여건 등을 고려해 LH의 적정 사업물량을 재검토한 결과연간 신규사업 착수물량은 올해 규모보다 10조원 적은 24조5천억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사업계획 승인 이후 아직 착공하지 않은 물량 45만호 중 7만3천호는 수요 부족 등으로 장기적으로도 사업착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국토해양부 장관과 LH 사장에게 사업타당성을 재검토해 수요가 없거나 수익성 개선 여지가 없는 사업은 축소 또는 취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LH는 43개 사업지구에서 스포츠센터 건립비 등 총 4조7천억원에 달하는 지자체의 부당한 기반시설 설치 요구를 그대로 수용, 주택공급가격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 사업지구의 경우 적정 보상가격보다 1조3천억원 가량 보상비를 과다지급, 결과적으로 사업성이 악화되고 부채가 급증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기반시설 설치비는 조성원가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국토해양부와 LH측에 통보했다.

  • 산업·기업
  • 연합
  • 2010.08.30 23:02

[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32)전주페이퍼-⑤세계를 향하여

경영이 안정된 19701980년대 기간에 전주제지는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했다. 규모의 생산체계 구축과 병행, 안정 성장을 위한 기업의 체질 개선도 진행시켰다. 1977년 3호기 가동과 더불어 생산능력 2.1배, 인력 1.4배, 자산 3.1배가 증가하는 등 모든 부문이 급격히 팽창,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관리기법이 요구되자 1978년 9월 한국과학기술원과 생산 관리 및 기계부품 관리의 전산화 용역 계약을 체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1979년 11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컴퓨터를 임차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제지업계 최초의 업무 전산화였다. ▲ 제지업계 최초 업무 전산화 1980년 3월에 전산팀을 발족하고, 그해 7월에는 휴렛 팩커드(HP)사의 컴퓨터 HP-3000-33(용량 0.5MB)을 도입했다. 이에따라 자재 및 생산관리를 전산처리하게 됐고, 이어 인사 및 회계관리 시스템도 개발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1978년 6월1일 목표관리제, 1979년 10월 사업부제가 채택됐다. 그러나 목표관리제도는 조직단위로 실시돼 개인의 목표의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어 개인을 하나의 사업부 단위로 설정하는 개인별사업부제를 1985년 3월15일부터 실시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적 향상에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개인주의 만연과 경영관리자의 창의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작업표준을 설정하고 과거 실적에 의한 목표 부여와 인센티브제 도입, 부서별 평가기준의 차별화 등을 실시하며 개선해 나갔다. 1989년에는 대표이사 직속기구로 경영합리화추진본부를 설치하고, TPI(Total Productivity Innovation)라는 종합생산혁신운동을 전개했다. 영업전략도 강화했다. 경쟁사에 비해 공급량이 열세인 신문사에 대해서는 가격할인, 외상기일 연장 등 당근을 제시하며 점유율을 높여갔고, 1986년에는 서울지역 대리점들을 한데 묶어 거목회를 조직, 가동했다. ▲ 원료의 안정적 수급 노력 제지산업은 전형적인 장치산업으로 원료 조달 비용을 낮춰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전주제지는 원목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1989년 7월에 원목 공급업체를 하나로 묶은 송우회(松友會)를 발족했다. 송우회는 1989년 3465만재, 1991년 4891만재의 원목을 공급하는 등 전주제지의 원목 수급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971년부터 주요 원료로 사용해 온 고지의 안정적 확보에도 힘썼다. 1986년 15만2000톤, 1990년 37만4000톤 등 매년 고지 수입량이 늘어나자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첫 해외지점을 개설하고 고지 및 펄프를 조달했다. 이어 1988년에는 캐나다 ETL사와 설립한 합작법인 사무소를 벤쿠버와 뉴욕에 개설했다. 전주제지는 1972년 하루 30톤 생산 규모의 탈묵펄프생산시설을 갖췄고, 3호기가 가동되기 시작한 1977년에는 200톤 생산규모로 증설했다. 4호기 건설이 진행되던 1984년 하루 500톤 생산규모의 탈묵펄프 생산시설을 갖췄는데, 이는 단일공장 세계 최대의 탈묵시설이었다. 이무렵 탈묵펄프 배합비율도 70%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탈묵펄프를 많이 배합하면 신문용지의 백색도가 매우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수출용 신문용지나 교과서 용지를 생산할 때는 탈묵펄프를 25%밖에 배합할 수 없었다. 이에 전주제지는 1986년 표백탈묵펄프를 개발했다. 그 결과 수출용 신문용지의 탈묵펄프 비율이 25%에서 45%까지 높아졌고, 1989년에는 일반신문용지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탈묵펄프 비율도 80% 수준까지 향상됐다. 전주제지는 하루 300톤 규모의 쇄목펄프를 생산해 중질지 및 옵셋용지에 65%, 신문용지에 20%의 비율로 배합했지만 쇄목펄프는 강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수입 열기계펄프는 쇄목펄프보다 강도가 2배 이상 높고, 자동화가 가능했다. 1988년 12월 캐나다 하이맥사에 설비를 발주, 공사에 들어간 열기계펄프는 1990년 1월부터 정상가동됐다. 이후 3년간 열기계펄프 사용에 따른 원가 절감액은 2732억원에 달했다. ▲ 1986년 11월 매출액 1000억 돌파 전주제지는 1986년 11월13일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1968년 신문용지를 생산한 이래 총190만톤의 종이를 판매함으로써 일궈낸 성과였다. 경제성장에 따라 국가 전반에 걸친 문화수준이 향상되면서 종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물론 고가의 인쇄용지 수요도 크게 늘난 점, 신문시장 팽창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제지공업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신문용지 생산량은 1986년 27만2000여톤에 불과했지만, 87년 30만2000여톤, 88년 36만8000여톤, 89년 44만4000여톤, 1990년 52만1000여톤 등 87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 5호기 증설 1987년 6.29선언에 의한 언론자유화 조치 등 요인으로 언론산업이 팽창, 신문용지 자급이 무너졌다. 87년 당시 국내 일간신문은 30개에 불과했으나 89년 12월에 68개로 늘어났다. 면수도 87년 12면에서 90년 24면으로 증가했다. 이에따라 88년 31만 7000톤이던 신문용지 수요는 1992년 67만 7000톤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1990년에 4만312톤을 수입할 만큼 신문용지 공급 부족이 심화됐다. 이에 전주제지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5호기 증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증설 후 공급과잉을 예상, 수출 거래선 확보에도 나섰다. 홍콩 호주 등을 중심으로 신문용지 수출 거래선을 확보한 전주제지는 1987년 11월 무역의날 행사에서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전주공단 내에 5호기를 설치하기로 한 전주제지는 3만2000평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고 투자비 1113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유상증자(51억9000만원) 실시, 회사채(150억원) 발행, KDB시설자금(470억원) 등 내자 745억원을 조달했다. 또 외자 368억원을 도입했다. 전주제지는 1997년까지 보유해야 할 생산능력을 65만9000톤으로 추산하고 5호기의 제원을 지폭 5폭, 운전속도 1100m/분, 생산능력 하루 590톤으로 결정했다. 1988년 4월 기공된 5호기(미쓰비시중공업) 증설공사는 이듬해 9월1일 준공됐다. 이 과정에서 제2호 열병합발전소와 열기계펄프 설비도 건설됐다. 이에따라 전주제지의 연간 생산량은 30만톤에서 50만톤 규모로 성장했고,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열기계펄프 생산시설을 국내 최초로 갖춰 원가도 크게 절감됐다. ▲ 정보산업용지 시장 진출 1980년대 중반 이후 정보산업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복사기와 팩스, 컴퓨터, 프린터 등 정보기기가 산업현장과 일반에 대량 보급됐다. 전주제지는 1979년 12월 국내 최초로 설립한 제지연구소를 통해 다양한 용도의 종이를 개발해 나갔다. 1981년 중질복사용지를 개발한데 이어 OCR용지, 청사진 원지, 고속 레지저프린터에 사용되는 비충격 방식의 NIP(Non Impact Printer)용지 등을 개발해 생산했다. 이어 1986년 팩스에 사용하는 감열지(무색 염료인 로이코 염료와 현색제가 만나 열에 의해 반응함으로써 발색(發色)하는 특수지) 개발에 들어간 전주제지는 1987년 4월 공사에 들어가 1988년 5월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술적 어려움으로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했고, 1989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스타팩스'라는 상표로 판매에 들어갔다. 전주제지의 감열지 개발 생산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였다. 이후 1989년 불연무기질종이 개발, 1990년 흑백 및 컬러잉크젯용지 국산화, 1991년 열전사용지, 고감도 감열지, 바이오펄핑기술, 무진지(無塵地)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미립자 발생이 적고 불투명성 및 내열성을 갖춘 무진지 개발은 세계 세 번째 쾌거였다. 한편 전주제지는 기업이미지 변신을 통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986년 창립 21주년을 맞아 새로운 심벌마크와 로고를 제정,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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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0.08.26 23:02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