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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세계문화유산 임실 필봉농악

지난 4일 단옷날을 맞이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는 신명 나는 연희 굿판이 펼쳐졌다. 굿판을 주도한 우리 지역의 임실 필봉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된 소중한 마을굿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일찍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유도했던 상쇠(연희판의 꽹과리를 제일 잘 치며 연희를 주도하는 사람)가 계셨는데 제일 먼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으로 초대하면서 그 계보는 시작된다. 계보를 이어 두 번째 송주회 상쇠가 필봉농악을 지켰으며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상쇠 양순용에 의해 전승의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었던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한 분이다. 지난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1980년대, 양순용 명인은 우리의 전통 연희굿에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필봉농악을 정성으로 전수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임실 농악의 진가를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전승과 진흥에 노력하시다가 1995년 작고하시고 명인의 아들 양진성, 양진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필봉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 임실 필봉농악을 잠시 살펴보자. 필봉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룬다. 그리고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며 연희를 행한다. 타 여느 농악처럼 종류에는 섣달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 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 등이 있지만 이 중 임실 필봉농악 판굿은 가장 연희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지난 단오일, 임실 필봉농악 정기발표회 ‘단오야 필봉가자’에는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뒷굿인 노래굿, 돌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등 연희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판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또한, 공연에서 뒷굿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과 탈머리굿도 선보여 많은 관객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이중 도둑잽이굿은 마을공동체의 질서와 결속, 화합을 목적으로 실연하는 연극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연희와 더불어 필봉문화촌 마을 어귀에 창포물 머리감기, 족욕하기, 단오선 부채 만들기, 화채 나눠먹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 체험도 힘께 진행하여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힘든 어깨를 펴고 함께 만나 소통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정한 연희는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열게 하고 소중히 하나 됨을 추구한다. 현실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만, 단옷날의 필봉농악처럼 희망찬 나래를 펴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판을 모두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러한 살판 위에 우리네 삶을 멋지게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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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6

<금요수필>빨간 머리 병아리

해마다 3월이면 마당에는 햇병아리가 그득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용비 마련이나 식구들 보양식 감으로는 닭만 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네집 할 것 없이 병아리를 길렀지만 사료를 사서 기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주로 방목이었다. 아버지는 덕가리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씩 꺼내 머리에 빨간색 물감을 발라 마당에다 훅 던지며 "잘 주워 먹고, 잘 찾아오너라." 하시던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한 배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스무 마리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허실 없이 키워야 한다며 암컷을 더 챙기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요놈들을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딸내미가 사달라는 별표 운동화랑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지.'하셨다.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나는 운동화를 사준다는 말씀에 병아리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강아지는 뒷전이고 병아리부터 찾았다. 만약 병아리가 보이지 않으면 입술을 쭉 빼고 '구- 구-구'를 외치며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입술이 얼얼해져 헛바람이 나오도록 한참 찾다보면 엉뚱하게도 뒷집 대밭 속에서 어미 닭과 함께 삐약거리며 따라오는 병아리를 보면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대숲은 족제비나 들고양이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행여 잡아먹힌 병아리는 없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곤 했었다. 이렇게 돌보아도 병아리 수는 차츰 줄어 열서너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알에서 깬 지 3~4개월쯤 자라면 중병아리라 했고 대략 6개월이 지나면 암탉은 알을 낳았으며 어미 닭도 이 무렵이면 젖떼기라도 하듯이 새끼들을 아프지 않을 만큼 쪼아댔다. 3~4개월이 지나면 암수 자웅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수컷은 암탉과 달리 다리가 길고 꺼벙했지만, 벼슬이 돋고 혈기가 넘쳐 눈도 불그스레 번쩍거리며 가끔 하늘로 목을 쳐들고 '나는 왕이다'고 외치듯 '꼬끼오' 소리도 제법 질렀다. 수컷들은 암컷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싶은 자리다툼 싸움이 갈수록 치열했다. 피가 나도록 상대방을 마구 쪼아대며 싸우다가 한 쪽이 날개를 서서히 접으며 눈꺼풀을 내리깔면 한바탕 싸움은 끝났다. 그뿐만 아니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파헤쳤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아들이라더니, 우리집도 남동생 넷이 모이면 수탉처럼 형과 아우가 따로 없이 서로 욕지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며 자랐다. 사실 나도 병아리가 아니던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때쯤이면 대추 볼때기가 발그스름했다. 아침 일찍부터 대추나무 밑을 서성였던 일이며, 벌집이 달린 줄도 모르고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주인집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놀라 신발짝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벗겨진 신발짝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날이 밝았다. 날이 밝자, ‘최 생원 계신가?’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때는 무서워 떨었건만, 지금은 토방에 놓인 신발짝 하나마저 왜 이리도 그리움으로 밀려오는지!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운동화와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은 내 어린 시절 병아리와 함께 자라면서 머릿속에 도장 찍힌 희망이었다. 병아리는 자라서 어김없이 알을 낳았는데 딸 결혼식도 보지 못할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 선반에 올려놓고 저고리 동정을 달아 벽에 걸어 놓았건만, 입어보지도 못하신 아버지였다. 지금도 달걀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별표 운동화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최정순 수필가는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속 빈 여자‘외 4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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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순창 고추장

지난 29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는 성금연가락보존회(대표 지성자)가 주최·주관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한바탕 이수자 발표회’가 있었다. 연주된 가야금산조는 춘사 성금연이 구성한 산조로 창작자의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견과 이해를 통한 반복으로 다듬고 다듬어진 가락의 창조물이다. 성금연 명인은 일찍이 1960년대 파리민속예술제와 1972년 최초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었으며, 음악가로만 아니라 국악예술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봉직하며 교육자로서도 익히 알려진 가야금의 명인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3월 지성자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하였는데 그녀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이어받고 일찍이 8세 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가야금의 명인이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고제古制의 예스러움과 투철한 예술 감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지성자 명인은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 오랜 세월 삶의 이치를 가락으로 구성하고 가녀린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원초적 소리이다. 그리고 같은 산조라 해도 각 개인 환경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고 나타내는 마음 표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전통 악기 중 가야금은 그러한 산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다. 가야금산조는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 또한 다채롭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 구분에서 굿거리가 삽입된 점이 특징이며 다른 유파流派에 비하여 간결하고 경쾌하며 감칠맛이 있다. 감칠맛을 논할 때 우리는 전통음식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추장하면 영조英祖와 전라북도 순창이 떠오르는데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였고, 가장 오래 장수한 왕이다. 장수의 비결이 있음 직하나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의는 매번 설사와 어지럼증으로 입맛이 없는 영조를 걱정했지만, 가을 보리밥에 고추장, 즙저만 있으면 족하다며 늘 검소한 수라를 드셨다 한다. 이러한 고추장의 감칠맛은 왕의 건강을 지켰고 그 맛의 비결은 지금도 순창 지역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 그 둘은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하고 색다른 멋과 맛에 있다. 가야금의 요동치는 선율은 맛깔스러운 별미와도 같고 고추장의 감칠맛은 가야금 선율의 휘몰아치는 감동과 같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구성진 가락과 감칠맛에 동요되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삶을 지켜왔다. 자. 이제 우리 가야금산조를 듣고 즐기며 순창의 고추장을 영조처럼 탐식하며 감칠맛을 즐겨보자. 그리 녹록지 않은 세상의 삶이지만 우리네 마음에는 감칠맛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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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금요수필>우리 동네 작은 공원의 오후

우리집 곁에는 둘레 500여m 쯤 되는 작은 공원이 있다. 제법 오래된 공원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숲이 울창하고 주민을 위한 운동기구도 있다. 비가 와도 운동할 수 있는 배드민턴 구장도 있으며 여기저기 오솔길도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단풍이 볼품없는 낙엽으로 변하여 나뒹굴고 있었다. 공원을 청소하는 할아버지 두 분이 오솔길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쓸어 모아 큰 포대에 담고 있었다. 아파트나 공원의 청소부, 길거리의 청소부들은 흔히 초겨울을 낙엽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엊그제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강천산엘 갔었다. 초겨울의 문턱에 들어선지라 대부분의 단풍은 낙엽으로 변했고 어쩌다 한 그루씩이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더 받으려는 듯, 떠나가려는 붉은 단풍잎을 붙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답다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지만 단풍으로서 일생을 마치고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싶었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기가 돋는 봄철이면 연두색 싹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녹음으로 변하며, 가을엔 단풍으로 변하고 초겨울이면 낙엽으로 나뒹구는 것이 나뭇잎의 일생이다. 이것이 곧 만물은 생로병사한다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나도 연두색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고, 녹음같은 청년기도 있었으며, 지금은 단풍같은 노년기에 서 있다. 또 언제일지 모르지만 낙엽같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를 보면 여느 나무같이 처음에는 연두색 잎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지만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뭇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벚나무는 잎도 나오기 전에 화려한 꽃을 피워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벚나무의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단풍으로 변하기도 전에 벌레에 갉아 먹히고 검게 변하여 볼품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벚나무의 단풍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초근목피나 일생의 삶이 마찬가지인데도 그걸 모르는 친구나 선배도 있다. 가을이면 최고라며 으스대고 뽐내던 단풍이나, 봄날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는 벚나무의 단풍도 생을 다하면 똑같이 하찮은 낙엽으로 변한다. 낙엽으로 변해서까지 옛날의 찬란했던 과거를 못 잊어하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거리로서 전쟁을 하는 사람, 가는 인생을 논하는 사람, 맛깔난 시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대상일 뿐이다. 아름다운 단풍은 예쁜 소녀들의 책갈피 한 쪽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바람까지야 갖지 않지만 아름다운 노년의 빨갛고 샛노란 단풍일까? 아니면 한때는 화려했지만 검고 볼품없는 벚나무의 단풍일까? 바람결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단풍들이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비바람이 휙 불었다. 단풍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굴었다. “요놈의 바람 때문에 낙엽도 못 쓸겠구먼.” 바람과 낙엽을 원망하며 담배를 꺼내 피워댔다. 그리고 또 싸리비를 잡고 낙엽을 쓸어 모은다. 어제까지도 아름다움을 뽐내던 단풍나무 잎이나 은행나무 잎이나 볼품없던 벚나무 잎이나 청소부의 비질에 같이 한타령으로 포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엔젠가는 거름으로 변하여 다시 나무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박제철 수필가는 경찰생활 후 정년퇴직하고 대한문학에서 등단하여 수필가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으며 첫 번째 수필집‘지금 여기 그대로의 기쁨을 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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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풍년 기원" 3일 단오 맞아 축제, 전시 등 개최

음력 5월 5일(6월 3일)은 단오떡을 해 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하는 날이다. 바로 대한민국 명절 중 하나인 ‘단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라고도 부른다. 전주 곳곳에서도 전주단오 축제, 단오에 놀오방, 2022 전주단오부채전 등을 열고 함께 모여 ‘단오’를 즐기고, 풍년을 기원한다. △전주의 대표적 절기 행사 ‘2022 전주단오’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전통문화콘텐츠 연이 주관하는 2022 전주단오 축제가 3, 4일 양일간 전주 덕진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2022 전주단오 축제는 단오길놀이 공연과 전주시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식인 단오 풍년 기원제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한바탕 벌어진다. 단오 풍년 기원제, 전북무형문화재 공연, 온고을 문화예술제, 단오 청소년 예술제 등도 예정돼 있다. 전통놀이마당에서는 3일 전주시 20여 개의 동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동별 대항전으로 윷놀이 실력을 뽐내는 자리가 마련된다. 어린이 투호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4일에는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외그네, 쌍그네 대회가 진행된다. 또 2022 전주단오 축제를 기념해 코로나19 시대의 끝을 알리고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연화정 인근에서 ‘초여름밤의 제야, 빛의 향연’ 조명 쇼도 선보이고 있다. 이는 4일까지 이어지며 연화정 도서관, 연화교 일대에서 오후 8시 30분부터 관람할 수 있다. △현대화된 우리놀이 체험할 수 있는 ‘단오에 놀오방’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선태)이 4, 5일 양일간 전국 최초 전통놀이문화 거점 공간인 우리놀이터 마루달에서 ‘단오에 놀오방’ 행사를 연다. 원활한 놀이 환경을 위해 현장 예약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단오의 전통 세시풍속과 놀이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2개 팀이 입장해 1시간 동안 다양한 놀이체험(창포물 손 씻기, 단오선 만들기, 통통씨름, 돼지씨름, 격구놀이)을 즐기는 시스템이다. 이날 놀이체험 통해 모은 조각으로 추첨 행사에 참여하면 실뜨기, 뿅망치, 바람개비, 한지공기 등 다양한 우리놀이 꾸러미도 받을 수 있다. 김선태 원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의 세시풍속과 놀이문화를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방문객들이 현대화된 우리놀이를 즐기며 일상생활에 활력을 더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부채의 맥 이어오는 선자상, 이수자 작품 ‘한자리’ 전주부채문화관(관장 이향미)이 7일까지 전주부채문화관에서 2022 전주단오부채전을 개최한다.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오는 선자상과 이수자 12인의 작품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단오는 모내기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대한민국의 큰 명절 중 하나다. 단옷날 우리 선조들이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은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당시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 있어 부채를 제작해 임금님께 진상했다. 진상 받은 부채는 단오선이라 부르고 여름 더위를 대비해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전주부채는 조선시대부터 전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사랑받았다. 현재도 전국에서 부채를 가장 많이 만드는 명산지다. 전주에서 부채를 만드는 장인 5명이 경제적인 문제와 고령화, 별세 등을 이유로 부채 작업에서 손을 놓았다. 이에 전주부채문화관은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오는 선자상과 이수자들의 작품에 주목했다. 이들을 위해 단오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대인들에게 전주부채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전시를 마련했다. 문의는 전주부채문화관 전화(063-231-1774~5)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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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2.06.02 16:33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또 다른 사람 피카소 - 3

‘내 귀는 소라껍데기 바닷소리를 그리워한다’는 시로 유명한 시인 장 콕토가 방문했을 때, 그는 아프리카 악기인 미림바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두드리고 있던 미림바를 장 콕토에게 넘기자 장 콕토는 전문가답게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아하! 예상했던 대로군. 당신에게도 전혀 음악이 없어.”라며 낄낄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 콕토가 음악적인 지식같은 것은 모두 버리고 아무렇게나 두드리기 시작하자 “그건 좋아. 참 좋아.”라며 다시 낄낄대는 것이었다. 이 일화는 그가 규격을 위한 규격을 싫어하고 개성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가 모리스 라벨과 친구이고 젊은 시절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도 같이 일한 적이 음악을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이어서 전통 음악에 대해서 아주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명배우 게리 쿠퍼와 우정을 나누고, 게리 쿠퍼가 그 우정의 징표로 보내 준 하얀 카우보이 모자와 자동 권총 콜트 45를 꺼내 깡통을 박살내고는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쉽군"이라며 으스대다가 멕시코의 상스러운 노래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살아있는 신이라 여겨 외경심에 가득한 기자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나의 부인 재클린과 벌거벗고 탁구를 치는 것”이라며 가볍게 응수해 버린다.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 의사가 오는 날이면 의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온 집안을 우당탕탕 뛰는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또 간접적으로 의사의 검진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리는가 하면 이렇게 장난기를 보이던 그가 어느 때는 미동도 하지 않고 사색에 잠겨 다른 사람의 근접을 막기도 하였다. 그는 물론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기도 하고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처럼 아직 살아서 신격화된 사람도 드물다. 1년에 한 번쯤 가는 투우장에서는 그가 들어온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있으면서부터 그가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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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30 17:0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다시 부른 민중의 노래

지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하며 보수 정권으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시도하였고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5·18 유족들의 뜻을 받아 기념식을 주관하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제창' 형식으로 불린 민중가요이다. 이후 '제창'은 2009년부터 종북 논란의 이유로 '합창' 형식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다. 특히 2010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을 식순에 넣어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제창'은 참석한 모든 이가 함께 부르는 음악의 형식이다. 그리고 '합창'은 여러 화성을 만들어 함께 부르는 노래 형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누구나 다 같이 부를 수도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창'과 '합창'은 각각의 논리와 변으로 서로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고 화합을 추구하는 민주적 추모 행사에 전대미문의 음악적 궤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국가가 인정한 민주화 추모 행사에 애매한 음악의 갈래로 의미 부여를 교란했으며, 때아닌 경기민요의 등장으로 성급한 정책의 혼돈으로 남았다. 지난주 다시 돌아온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 다시금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대통령은 '합창'으로 일축했던 보수의 고정관념을 깨고 '제창'의 형식으로 그 의의를 다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는 마음속 깊이 응어리졌던 노래를 세상 밖으로 용출시켰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음악은 대부분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분을 잃었을 때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 앞에서 곡을 했고 힘든 일을 할 땐 노동요로 그 고됨을 이겨 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공동체 삶 속에 희로애락의 노래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불렀고, 그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삶의 토대를 그리며 더 행복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역사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고 그 노래는 국민 가슴속에 자리 잡아 한 시대의 위안이자 민중의 노래로 남았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진보의 정치적 성과라 생각지 말고 보수의 논리로 그 뜻을 논쟁치도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간 아픈 역사적인 산물로 만들어진 선율이요, 가사이다.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네 맘을 곱씹어 만들어 냈던 노래인 것이다. 비장한 단조의 멜로디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흐르는 곡의 4/4박자는 우리들의 맥박이요, 외치는 간결한 가사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처절하게 돌아가신 유공자들의 영혼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후대들로 하여금 다시 이러한 역사의 불행이 오지 않게 동기 부여를 한다면 제창이 중요하리요, 합창이 뭐 그리 중요하리요. 역사의 중요한 멜로디가 되고 소중히 함께 부르고 싶어 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제 '제창'과 '합창'이란 음악적 논쟁 앞에 멈추지 않고 아픔 없는 나라를 위한 민중의 노래로 남아 그 의를 돌아보며 영원히 함께하는 역사적 산물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5.26 17:07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또 다른 사람 피카소 - 2

아무튼 피카소가 젊은 날 무명 시절에 청운의 꿈을 안고 파리에 왔으나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알아 반겨줄 리 없었다. 비를 피해 뛰어들어 간 화랑에서 그는 저 비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들고 있던 그림을 맡아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75살쯤의 그가 끄적거린 그림 하나가 2500불 정도의 시장성을 가졌고 그의 전문 화상인 칸바일러는 그의 그림 한 장을 100만 불에 팔기도 했다. 그는 그런 일들에 대하여 “무슨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아. 사람이 일생에 한 번은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어. 그런데 칸바일러는 매일같이 당첨되는 것처럼 내 그림을 판단 말이야. 가격은 10만 불이든, 100만 불이든 문제가 아니지. 우리가 하루에 50번씩 식사를 할 수는 없거든, 얼마에 팔리거나 그것은 마찬가지지”라고 말하고는 있으나 내심은 자신의 그림이 비싼 값에 팔린다는 것에 대해서, 또는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서 앞을 다투어 자신의 그림을 구입해 가는 것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그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사인 sign 따위는 필요하지 않지. 왜냐하면 그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알고 있으니까.”라는 자신만만, 어쩌면 건방진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그는 그림이든 판화든 간에 사인을 하지 않고 나중에 자신의 그림을 들고 오는 사람들에게 뒤늦은 사인을 해 주고는 그 대가로 일금 일만 불을 사례로 받는 철면피함도 보여 준다. 어느 날 화상 피에르 마티스가 그의 초기 작품을 들고 그의 사인을 받으러 왔다. 사인이 있어야 그 그림을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피카소 자신이 친구 마티스에게 선물했던 것인데, 피에르 마티스는 앙리 마티스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나 돈을 준비하지 않고 자기의 아버지와의 관계만 믿고 찾아온 피에르 마티스가 피카소의 사인을 못 받고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5.23 17:37

'한지 물결' 일렁이는 흑석골...전주천년한지관 개관

“전통한지의 새로운 도약을 만들어 갈 전주천년한지관. 전통한지의 역사적•기술적•학술적 접근으로 한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공유의 장을 실현합니다. 전통한지의 가치를 새로이 하고 한지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천년을 이어온 전주한지의 원형보존과 전통한지의 세계화를 이끌 전통한지 생산시설 ‘전주천년한지관’이 문을 열었다. 23일 전주천년한지관 개관식을 열고 전통한지 계승과 보전, 문화 확산을 위한 거점 공간으로서 국내 최대 한지 제조 시설을 보유한 한지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개관식에는 김승수 전주시장, 김남규 전주시의회 의장,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전주한지장, 전통한지 생산시설 자문위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전통한지 제조•생산의 맥을 이어온 흑석골 일원에 조성된 전통한지 제조 시설인 ‘전주천년한지관’의 개관을 축하했다. 이날 개관식에서는 사물놀이, 제막식, 전주천년한지관 조성 경과보고, 환영사 및 축사, 한지 찢기, 전주천년한지관 둘러보기 등을 진행했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질 좋은 한지를 제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지 원형을 학습, 체험할 수 있는 한지복합문화공간이다. 총 83억 원이 투입돼 2년여간의 공사 끝에 건축 면적 1,216㎡, 연면적 874㎡,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건물 1층에는 초지방, 도침방, 건조장, 한지 저장고 등 전통방식의 한지를 제조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건물 2층에는 전시관, 사무실, 회의실 등 문화•사무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주천년한지관에서는 향후 전통한지 후계자 양성교육, 한지 원료 보급사업, 한지제조기술 책자 발간 등 전통한지 계승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 생활 한지예술, 한지조형 전시기획, 기업연계 협업 등 전주한지 대중화를 위한 사업도 추진될 계획이다. 김승수 시장은 “전주한지는 바티칸 교황청과 세계 3대 박물관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 지류 전문기관 등으로부터 그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 뛰어나다”면서 “전주천년한지관이 전주한지의 원형을 보존•복원하여 역사성이 살아있는 고품질 한지를 생산하는 거점공간이자 한지의 세계화를 이끌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선태 원장은 “한지는 전주의 정신이자 전통문화자원”이라며 “전통적인 재료와 방식으로 최상품의 전주한지를 복원하고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해 나가겠다. 전국을 넘어 세계에 우리의 우수한 종이, 한지를 알리는 메카의 역할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천년한지관의 운영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일•월요일은 휴무다. 한편 전주시는 전주한지의 원형보존과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앞서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한지 원료 닥나무 수매사업, 전주한지장 지정, 고종황제와 바티칸 교황간 친서 복본 전달, 전주한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5.23 17:35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청춘 마이크' 발대식 개최

사회적기업 문화통신사 협동조합(대표 김지훈)이 지난 18일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2022년 문화가 있는 날 ‘청춘 마이크-화무십일홍’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날 발대식은 ‘청춘 마이크-화무십일홍’에 선정된 22개의 팀 소속 청년 예술가가 참여한 가운데 위촉장 수여, 사업운영 안내, 워크숍 순서로 진행했다. 문화통신사 협동조합은 현재 사회적 현상과 문제를 청년 예술가의 다양한 예술 감각과 공감적 요소로 창작예술 활동을 연계하고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등 새로운 예술적 실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전라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문화통신사 협동조합의 최락민 팀장은 “청춘 마이크 사업을 통해 국민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청춘 마이크-화무십일홍’으로 치유와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청년 예술가들에 다양한 장르와 협업해 사람이 남는 사업,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이 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청춘 마이크-화무십일홍’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과 사회적 기업 문화통신사 협동조합이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사업 중 하나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5.22 17:11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관광본부 설립 1주년 "내실 다졌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이기전, 이하 재단) 관광본부는 설립 1년을 기념해 보도자료를 통해 “재단은 전북 관광 컨트롤 타워 역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전북이 나아가야 할 관광의 새로운 역할 모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단은 3기 운영 출범과 함께 문화와 관광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지역과 상생하는 문화와 관광 플랫폼’이라는 경영 비전을 내걸었다. 지난해 본부별 책임경영 및 성과 창출, 미래 조직으로의 신속한 전환을 위해 3본부(경영, 문화에술, 관광) 체제에 돌입했다. 이중 관광본부는 설립 1년을 맞이해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담은 공식 자료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관광본부는 일 년 동안의 성과와 개선점을 살펴 지역관광의 미래를 선도하는 강소 조직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계기를 갖고자 한다. △전북관광 중ㆍ단기 비전체계 정립 재단은 3본부 체제 개편 전 관광 부문에 대한 체계적인 경영목표, 비전체계가 빈약했다. 이에 관광본부 출범 이후 전북관광 컨트롤 타워 역할 수행, 대한민국 5대 관광도시 진입, 전북관광 10대 거점 육성 및 명소화, 세계 50대 마이스(MICE) 개최도시 진입 등 4대 중ㆍ단기 핵심 목표를 설정했다. 현재 목표 달성을 위해 4대 전략 및 12대 핵심 과제를 선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관광 전담기구 최대 국비 공모사업 선정 관광본부는 출범과 동시에 2022년 사업예산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최근 15개 광역 관광 전담기구(RTO) 중 최대 국비사업을 유치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21년 하반기터 총 4개 국비 공모사업에 응모했다. 관광기업지원센터 구축 및 운영(5년, 100억), 쇼핑관광 활성화(4년, 50억), 지역 마이스 활성화(매년 약 2억), K 컨벤선 육성ㆍ지원 사업(0.6억)에 최종 선정되면서 약 152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마이스(MICE) 사업 활성화 기반 구축 관광본부는 본부 개편 후 척박한 전북 마이스(MICE) 환경에 신규 사업 발굴과 체계 정비 등을 통해 마이스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이스(MICE)는 기업 회의, 포상 관광, 국제회의, 전시 박람회 등과 같은 이벤트의 영문 약자다. 국제회의, 전시회, 박람회 등을 통해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광본부는 2021년 7월 광역시ㆍ도 마이스 전담기구인 전북 마이스 뷰로를 신설했다. 매년 국비 확보가 가능한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코리아 마이스 얼라이언스, 한국마이스협회, 국제지속가능관광위원회 등 정회원 가입을 통해 전북 마이스 유치 기반도 다졌다. 이밖에도 지역과 상생하는 마이스 협력 체계를 위해 도내 대학생, 취업준비생, 청년의 참여를 이끌어 교육-인턴-취업의 선순환 모델 구축하고 지역 마이스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도내 마이스 행사 유치에도 전념을 다하고 있다. 또 관광본부는 △ESG 관광사업 선도 △초광역 관광협력 네트워크 구축 △2022 국제 지속가능 관광위원회(GSTC) 국제 콘퍼런스 유치 등 1년 동안 수많은 사업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 1년 동안의 성과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 개선이 필요한 점도 다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의 최근 3개월 간 ‘작년 동 기간 대비 지역별 외지인 방문자 수 증가율’을 보면 전라북도가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5위를 기록했다. 이는 이동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수치다. ‘위드 코로나’로 접어든 급속한 환경 변화의 시기와 맞물렸음에도 상위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전북 관광의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이에 반해 전국 15개 광역 관광 전담기구, 12개 광역 컨벤션 뷰로 중 전담인력과 예산은 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본부는 “전담인력과 예산이 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국내 15개 RTO 중 최대 국비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금년 하반기 개소를 앞둔 전북관광기업지원센터, 한옥마을 연계 쇼핑관광 활성화 사업 및 국제지속가능관광위원회(GSTC) 아시아ㆍ태평양 콘퍼런스 등 재단 관광본부가 실행해야 할 굵직한 단위 사업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5.22 17:10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통춤을 아는가

지난 30일 전라북도 전주에 춤과 관련된 모든 상상이 가능한 춤 놀이터 문화공간 ‘금파아트센터’가 개관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한량무 보유자인 故 금파 김조균, 전북무용협회장을 역임한 故 김숙의 딸이자 금파아트센터 창립자인 애니킴 이사장은 “춤의 학문적 가치와 사회적 중요성을 높이고 그 실천의 장을 이끌기 위해 금파아트센터를 마련했다”라 말했다. 또한, 실험적인 춤 작업뿐 아니라 전통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통해 확장하고 성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침체하였던 전통예술계로서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쁜 마음에 전통춤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논해보자. 우리나라의 노래와 춤은 지방마다 다르며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환경에 따른 삶의 적응방식이나 민속문화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인 전라도는 소리에 강점이 있다. 특히 판소리는 선조 대대로 명창이 많았으며 이를 애창하며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마한과 백제로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농경문화와 다양한 농경민속, 민간춤들이 만들어졌고 각 지역마다 농악, 여성적인 소리춤들이 발달하여 존재감이 특별했다. 전라도의 춤에는 여성춤, 손짓춤 같은 특성을 나타내는 선의 아름다움이 존재했고 춤에 따른 배경음악이 뛰어난 강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경상도의 춤은 수직·수평적이다. 평면적·동적인 춤이 발달했고 마당춤과 방안춤 등 복합적인 전승이 이루어져 흥겹고 여흥적인 춤의 특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각 전라도와 경상도의 독특한 지역적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담론은 선입감이란 공론을 만들었고 전라도는 마치 춤이 부족하다는 감성으로 표현됐다. 담론의 사유를 논하자면 그것은 호남의 뛰어난 소리와 기악선율문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춤이 저평가된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논하자면 경상도의 춤이 발달하게 된 원인에는 지역 향토춤과 탈놀이 그리고 기방문화가 있었다. 그중 큰 획을 긋고 있는 기방춤은 과거 영남지역에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에서 춤을 배웠던 예인들이 권번에서 춤을 지도했었고,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호남에서 피난 온 많은 예술가들이 영남의 각 지역에서 호남춤을 전파해 현재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유추해 볼 때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우리 한민족은 오랜 세월을 지내며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창출하고 호, 영남의 특색있는 색깔로 화합을 이끈 민족이다. 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춤, 기악, 기예, 연희 등 지역의 특화된 장점을 근거로 다양한 예술을 보존하고 이어가며 발전시켜 왔다. 특화된 지역의 예술적 장점을 담론으로 표현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부분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만 공통된 생태문화권을 형성하면서 함께 이루어진 주체를 분류하여 지역 나눔을 가져야만 하는가 의문을 가져본다. 물론 특화된 지역의 장점을 부각시켜 더 나은 결과물을 찾기 위한 연구의 방편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명제가 굳어진다면 연구의 시발점조차 잃게 되는 두려움을 안게 될 것이다. 이제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고정관념은 뒤로하고 지역의 특화된 예술은 장점으로 품으며 또 다른 서로의 장, 단점을 찾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로소 통합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관점, 정교한 논리를 준비하며 전통춤을 알릴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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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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