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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송이 꽃 세상에서 /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게 하리라 / 수없이 다짐했지만 / 나에겐 봄은 멀고 혹독한 겨울만 / 길고 길었습니다 - 그대 한 송이 수선화 중. 대한예수교장로회 전주 예본교회 최공훈 담임목사가 신앙 기행산문시집 <영원을 소유하라>(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예본교회 창립 30주년 기념시집인 이 책에는 최 목사가 덕유산판문점울릉도 등 국내와 이스라엘몽골미얀마아일랜드 등 국외를 기행하며 느낀 단상을 각각 12부로 나눠 엮었다. 신앙으로서의 영원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즉흥적인 감성도 배어있다. 최 목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영원이다. 영원은 시간 없는 시간이요 세계이다며 영원을 소유하고 누리라고 속삭인다. 최 목사는 광주신학교대학부, 총회개혁신학연구원, 미국낙스신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2015년 첫 신앙 기행산문시집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과 2016년 <인간에게 영원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를 펴냈다.
그러나 화청이 이끌고 돌아온 백제 기마군은 1천여기, 500기의 전상자를 냈다. 신라군 5천기를 격파한 대승을 이루었지만 화청의 얼굴은 그늘이 졌다. 달솔, 다시 한번 갔다 오겠소. 장검의 피를 겉옷에 닦으면서 화청이 말했다. 화청의 수염에도 피가 튀어서 붉게 물들었다. 아니, 이번에는 제2진이 간다. 계백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김유신도 지리를 아는 이상 한꺼번에 5만 대군을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야. 그때 신라군 진영에서 북소리가 다급하게 울리더니 함성이 올랐다. 좋아. 가거라. 김흠춘이 다급한 북소리 사이에서 외치듯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신라군의 기세를 올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기가 떨어진다. 예. 대장군. 소리쳐 대답한 장수는 화랑 반굴, 김흠춘의 아들이다. 18세, 무용이 뛰어나 아비 김흠춘뿐만 아니라 총사령 김유신한테도 사랑을 받는 영재다. 김흠춘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반굴을 보았다. 알았느냐? 네 이름을 세상에 떨칠 기회다. 너는 신라의 영웅이다. 예. 대장군. 장하다. 아들아 불쑥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반굴이 고개를 들었고 주위의 장수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김흠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르르 눈물을 쏟은 반굴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더니 몸을 돌렸다. 김흠춘이 반굴의 뒷모습만 보았을 때 함성이 일어났다. 반굴이 말에 올라 칼을 치켜든 것이다. 이번에는 2차 공격이다. 김흠춘 휘하의 기마군 5천이 반굴을 앞장세워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돌입한다. 옳지. 달려오는 신라군을 본 윤진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쳤다. 윤진은 지금 마상에 앉아 있다. 뒤쪽 제2진의 기마군 1500기가 숨을 죽인 채 윤진의 명을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돌린 윤진이 좌우에 서 있는 부장(副將) 오다와 다까시를 차례로 보았다. 나는 정면에서 부딪칠 테니 너희들은 좌우로 벌어졌다가 제2대가 먼저, 제3대는 3등분한 마지막 부분을 쳐라. 하! 오다와 다까시가 일제히 대답했다. 지금 김흠춘의 5천 기마군은 제1차 접전 때 백제군이 그랬던 것처럼 3열 종대로 길게 뻗쳐 달려오고 있다. 백제군의 심장부까지 쑤시고 들어오겠다는 기세다. 북소리가 더 다급해졌고 아직 2리(1km) 거리지만 신라군의 기세는 창이 날아오는 것 같다. 북소리와 함성, 말굽 소리가 산천을 진동했고 멈춰선 백제군의 말 떼가 웅성거렸다. 기세에 압도당한 것 같다. 그때 윤진이 장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진격! 그 순간 윤진이 말에 박차를 넣었고 1진 5백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나갔다. 한 호흡쯤 후에 오다와 다까시가 제각기 기마군 5백기씩을 이끌고 좌우로 벌어지면서 뛰쳐나갔다. 2,3진이다. 이번에도 백제군은 입을 꾹 다물고 달렸기 때문에 말굽과 장식 소리만 울린다. 함성을 지르지 않는 것은 계백 기마군의 전통이다. 기(氣)를 몸 안에 품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꺼번에 뱉기 때문이다. 앞장선 윤진의 앞에는 호위 기마군 10여기가 뭉쳐서 달리고 있다. 그들 눈에 달려오는 신라군 선두가 보였다. 선두에 선 장수가 있다. 그 장수도 호위 기마군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흰 얼굴, 투구에 긴 꿩 털 두 개가 붙었다.
화청이 장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말을 달린다. 4자(120㎝)짜리 장검이어서 휘두르면 엄청난 검풍(劍風)이 일어난다. 흰 수염을 흩날리며 붉은색 겉옷이 바람에 펄럭였고 장검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화청이 이끈 기마군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모두 왜군으로 백제 땅에서의 전투는 처음이다. 그러나 영주 계백을 모시고 왜국을 종횡무진 석권했지 않은가? 백제군의 기마군은 아리타, 타카모리, 후쿠토미 등을 토벌하고 나서 받아들인 혼성군,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계백을 중심으로 돌처럼 뭉쳐졌다. 붉은 불덩이가 달려가고 있다. 이번에도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앞쪽을 응시한 채 질풍처럼 달린다. 모두 가죽 갑옷만 걸친 경장 차림이어서 전마(戰馬)는 가벼워진 몸이라 두 배의 속력을 낸다. 말굽 소리만 땅을 울리고 있다. 이제 신라군과 3백보로 가까워졌다. 그때 화청이 장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종대로! 벽력같은 단 한마디의 외침. 쏘아라! 백제군과의 거리가 300보가 되었을 때 김신생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 순간이다. 김민생이 눈을 부릅떴다. 백제군이 먼지구름 속에서 뒤로 주욱 밀려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군 진영에서는 일제히 화살이 날아갔다. 하늘을 뒤덮은 화살은 마치 검은 구름 같다. 앗! 김민생의 뒤쪽에서 놀란 외침이 일어났다. 보라. 먼지가 걷히면서 백제군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뒤로 물러선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백제군의 좌우가 속력을 늦추면서 종대 대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빗발 같은 화살이 백제군 진영으로 덮어씌우듯이 떨어졌지만 서너기 밖에 맞지 않았다. 말도 쓰러진 것이 두어필 뿐이다. 그러나 백제군은 어느새 50여보 앞으로 덮쳐왔다. 김민생의 심장 박동이 거칠어졌다. 그동안 수십번 기마전을 치렀지만 이렇게 날래고 이렇게 잘 훈련된 기마군은 처음이다. 이것이 모두 왜군이라니. 와아앗! 백제군이 가까워지자 신라군이 함성을 내질렀다. 지금 백제군은 화살 대형으로 쑤시고 들어온다. 앞장선 장수는 흰수염을 가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치켜든 장검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거리가 30여보. 그때서야 백제군에서 함성이 울렸다. 백제! 흰 수염의 장수가 벽력처럼 외치자 뒤를 따르는 기마군이 일제히 함성처럼 따른다. 백제! 다음 순간 백제군 장수가 장검을 휘둘러 신라 선봉의 기마군을 쳤다. 한칼에 베인 신라군이 말과 함께 곤두박질을 치며 엎어졌고 곧 양쪽 기마군이 부딪쳤다. 따르라! 신라군을 벤 화청이 다시 장검을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화청의 앞으로 호위기마군이 가로막았고 송곳처럼 뚫고 나간다. 화청은 말이 속력은 줄였지만 거침없이 나가고 있는 것에 만족했다. 말고삐를 채면서 화청이 다시 소리쳤다. 우측으로! 잘 훈련된 기마군이다. 화청의 뒤를 따르는 백제군은 곧 송곳처럼 신라군 진영을 쑤시면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라군은 넓게 퍼져 있어서 길이 트인다. 화청도 다시 옆으로 달려드는 신라군의 창을 칼로 쳐내면서 그 반동으로 휘둘러 목을 쳤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신라군 장수를 베었다! 베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소리에 백제군이 일제히 함성을 뱉는다. 와앗! 화청은 앞쪽이 트인 것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빠져나왔다. 첫 번째 접전은 이겼다.
옵니다! 다케다가 소리쳤지만 계백은 먼저 보았다. 4리(2km) 앞 쪽 들판에 가득히 펼쳐져 있던 신라군 중앙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먼지구름부터 일어났다. 기마군이다. 기마군으로 짓밟겠다는 의도다. 이쪽도 기마군, 앞쪽을 응시한 채 계백이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신라군은 이쪽과 비슷한 기마군을 내놓을 것이다. 신라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적으면 밀리고 많으면 손해다. 그렇다면, 고개를 돌린 계백이 장수들을 보았다. 우리는 1500기로 돌파한다. 누가 가겠는가? 제가 가겠소! 윤진, 화청, 다케다가 동시에 소리쳤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입을 열었다. 덕솔 화청이 1진, 덕솔 윤진이 2진, 다케다는 3진이다. 먼저 화청이 저놈들을 쳐라. 달솔, 고맙소. 화청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무성한 흰 수염이 잠깐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흩날렸다. 화청이 힐끗 푸른 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구름 한 점 떠있지 않은 하늘은 짙은 바다색이다. 달솔, 날씨가 참 좋소. 그렇구만. 태연의 하늘도 맑았지만 이곳이 더 푸른 것 같소. 함성이 울리면서 말굽소리에 땅이 진동을 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연이다. 태연유수 이연의 휘하 장수였다가 이연이 수(隋) 양제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도망쳐 백제에 귀순했다. 나이가 66세. 지금 앞쪽의 신라군 총사령 김유신과 동갑이다. 그때 화청이 말고삐를 채면서 계백에게 소리쳤다. 달솔! 가겠소! 가게. 계백이 화청의 옆 얼굴에 대고 짧게 말했다. 군더더기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저 시선 한번 부딪치고 말 한마디 툭 던지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심중(心中)이 전해진다. 말머리를 돌린 화청이 박차를 넣더니 숨 다섯 번도 안 쉬었을 때 백제군의 한쪽이 무를 자른 듯이 떼어지면서 곧 한덩어리가 되어 신라군을 향해 돌진했다. 붉은색 갑옷, 붉은색 천을 두른 백제군 1500기다. 마치 불길이 신라군을 향해 번져가는 것 같다. 엇! 저쪽! 옆에서 지르는 소리에 김민생은 고개를 들었다. 앞쪽 백제군 진영 우측이 쩍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기마군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거리는 이제 2리(1km) 정도. 붉은 옷자락이 펄럭였고 밝은 햇살에 창검이 번쩍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제군은 기합소리, 함성도 지르지 않는 것 같다. 이쪽이 어지럽게 함성과 외침을 뱉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못 느끼지만 가깝게 다가가면 섬뜩해진다. 마치 귀신부대 같다. 김민생이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쳐라! 이런 상황에는 전술이 필요없다. 이리저리 가라고 명을 내리면 오히려 혼란이 일어난다. 눈앞에서 덮쳐오는 적을 두고 나누고 돌고 붙으라고 소리칠 경황도 없다. 필요한 것은 사기다. 반드시 쳐 죽이고 밀고 나가겠다는 기백, 이것이 승부를 가른다. 김민생은 흠춘군(軍)의 선봉장. 용장(勇將)이다. 42세. 수십번 전쟁을 치른 백전노장. 진골 왕족이기도 하다. 김민생이 옆에 바짝 붙어 따르는 화랑 반굴을 보았다. 대장군 김흠춘의 아들. 18세. 이번에 첫 춘전이다. 반굴이 김민생의 선봉대로 자원해서 온 것이다. 이제 백제군과의 거리가 500여 보로 가까워졌다.
이번 시집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여정이 다 함축된 것입니다. 전근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하늘을 머리에 이고> 출판기념회가 지난 8일 오전 11시 전주 완산구 연가 무궁화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을 비롯해 서정환 신아출판사 사장, 소재호 시인,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 임병찬 전북애향운동본부장, 김남곤 시인, 전영배 대한노인회 전주시지회장 등 도내 원로문인과 인사들이 참석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 책에 서문을 쓴 소재호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소개하며 이 책에는 시 작품뿐만 아니라 기행문과 산문이 함께 실려 있어 시인이 인생의 한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이 시의 제목인 하늘은 신, 인간윤리, 삶의 좌우명 등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버지를 통해 어르신을 공경할 줄 아는 시인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축하 인사를 전하는 자리에서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은 내가 아는 전근표 시인은 부모를 섬기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사람이다면서 전 시인의 이러한 효심과 애향심은 평소 정을 나누길 좋아하는 성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앞으로 시인으로서 더 정진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낭송에는 류혜원홍명희 씨가 나서 전 시인의 작품 늙은 고목나무의 슬픔과 하늘을 머리에 이고를 잔잔한 음악에 맞춰 읊었다. 전근표 시인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지금까지의 시집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떠날 수 없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묵을 수록 깊은 향기가 나고 살아 숨 쉬는 시를 쓸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진안 출신인 전근표 시인은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령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하림 상무이사를 지냈다. 2008년 <한국시>로 등단,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제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아버님! 하늘나라 그곳에도 꽃은 피었나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꿈의 노래(해를 품은 아버님 사랑)> 등을 발간했다.
잘 싸웠다. 계백이 소리쳐 말했다. 이곳은 웅치산성 아래쪽, 3영의 군사가 다 모였다. 이번 전투는 백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신라군 선봉대를 흩트렸다. 좌우를 펼치고 달려들던 신라군 선봉대는 백제군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바람에 저희들끼리 겹치고 아군의 화살에 맞는 혼란이 일어났다. 백제군은 재빠른 기마전술로 물러나 다시 모였고 신라군은 지금도 정비 중이다. 신라군과의 거리는 4리(2km) 정도, 아직도 먼지에 덮인 신라군 진영을 바라보면서 계백이 말했다. 앞쪽에는 3영의 대장, 장수들이 다 모여 있다. 이제 신라군은 5만 병력을 믿고 한꺼번에 덤볐다가 저희들끼리 죽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계백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장수들을 보았다. 황산벌은 기마군 대군이 전투를 하기에는 좁은 곳이야. 그것을 안 김유신은 한꺼번에 대군을 몰아넣지 않을 테니 너희들의 무용(武勇)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가 있다. 수백 명 장수들의 눈빛이 강해졌다. 한낮, 아직 정오도 안 되었다. 한차례 싸움에서 신라군 선봉군 1만을 혼란에 빠뜨린 백제군 5천은 사상자도 수백 명 정도다. 신라는 그 10배의 손실을 입었다. 계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들어라! 이번에는 김유신이 정예군을 뽑아 우리 3영의 진을 깨뜨리려고 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5천이 한 덩이가 되어서 친다! 와앗! 장수들이 일제히 함성을 뱉었다. 그야말로 사기충천, 모두 생사(生死)를 잊은 표정이다. 대부분이 왜군 장수다. 본국에서 신라군을 맞아 서전에서 혼란에 빠뜨렸다는 자긍심이 넘쳐흐른다. 전군(全軍)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김유신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좁은 구덩이 안에서 혼전이 벌어지면 숫자가 많은 쪽이 불리하다. 김품일과 이번 서전에서 혼란에 빠졌던 선봉대장 김흠춘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신의 본진 앞, 잠깐 멈춰선 대군의 대장군 둘이 총사령과 함께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김유신이 둘을 번갈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백제군이 잘 훈련되었다. 기마군의 진퇴가 능란하고 전의(戰意)가 펄펄 솟아오른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적은 죽기를 각오한 자세입니다. 김흠춘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허나 우리 신라군은 대군(大軍)임을 믿고 느슨해져 있었습니다. 계백이 처자를 왜국으로 보냈다는 소문이 아직 덜 퍼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김품일이 말했다. 왜군 병사들에게 그 소문이 다 퍼졌다면 사기가 떨어질 텐데요. 아니다. 쓴웃음을 지은 김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알 정도니 이미 소문이 다 퍼졌을 것이다. 아니, 그러면. 그것이 오히려 백제군 주력인 왜병의 사기를 더 북돋웠을 거야. 우리도 이겨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 두 대장군의 시선을 받은 김유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흠춘, 이번에는 선봉군 5천을 뽑아 백제군과 정면으로 부딪쳐라. 5천 대 5천으로. 예, 총사령. 김흠춘이 어깨를 부풀리고 대답했을 때 김유신이 품일에게 말했다. 너도 5천 기마군을 뽑아 대기해라. 네가 2진이다.
소설 <거품시대>로 고도성장의 그늘과 욕망의 거품을 보여준 홍상화 작가가 한국의 국가 지도력을 높이 샀다. 홍 작가의 신작 소설 <30-50 클럽>(한국문학사)에는 한국이 30-50 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한 사건을 서사 전면에 띄우고 있다. 앞서 클럽에 가입한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모두 식민지를 착취한 덕분에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피식민지로서 강국에 착취를 당하면서도 자본을 축적해 어려운 관문을 헤쳐나갔다고 강조한다. 홍작가는 그 성공요인을 밝히기 위해 집요하게 파헤친다. 이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대화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부 한국의 국가 지도력, 미국을 뛰어넘다:1961~2016과 제2부 세계로 뻗는 한국,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2017~2018은 재미경제학자와 소설가의 심층 대담이다. 제3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그 사이 한국의 선택은?과 제4부 미중 간의 경제전쟁과 한반도 비핵화의 길는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중국 전문가와 소설가의 깊이 있는 대화록이다. 홍상화 작가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거쳐 1989년 장편 <피와 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저서로는 <거품시대> <불감시대> <정보원> <사랑의 멍에> <동백꽃> 등이 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가야와 관련한 국내 자료를 모두 모아 정리한 <가야 자료 총서> (1질 7권)을 발간했다. <가야 자료 총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국 고대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야와 관련한 문헌금석문 등 각종 사료와 가야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자료, 논저목록 등 국내에 있는 가야 관련 모든 자료를 총망라한 것으로, 334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총서는 △문헌 사료편 △일제강점기 자료편 △유적 발굴조사 자료편 △논저 목록편으로 구성됐다. <가야 자료 총서> 책자는 도서관과 지자체 등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배포될 예정이며, 원문정보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번 총서에 수록된 자료는 복원과 연구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가야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일본에서 조사된 가야 관련 유적유물 자료와 국외에서 간행된 논저목록을 정리한 <가야 자료 총서-국외 자료편>을 추가로 발간할 계획이며, 총서 자료의 최신화도 꾸준히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안도현 시인의 문학적 감수성과 신철 화가의 따뜻한 회화가 만나 시 읽기의 참맛을 선보인다. 시집 <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모악출판사)에는 안도현 시인이 선정한 유명 시인의 시 65편이 담겨 있다. 황동규, 이성복, 정희성, 천양희, 도종환, 송찬호, 함민복, 김해자, 장석남, 문태준, 손택수, 박성우 등 거장부터 중견과 신진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단을 이끌어가는 쟁쟁한 시인들의 빛나는 작품이 수록돼 있다. 시집 곳곳에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는 신철 화백의 감성적 그림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인 65명의 개성 넘치는 시 65편에 대해 안도현 시인은 소재를 발효시킨 후 언어의 체로 걸러낸 시라면서 하나같이 섬세하고 가무스름하고 당당하고 쌉쌀하고 여릿여릿하다고 말했다. 시인은 그 시편들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특유의 섬세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독자들은 시인의 해설을 통해 또 다른 시적 질문과 만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발견하면서 진정한 시 읽기의 맛을 알아간다.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 물음에 안도현 시인은 시를 읽는 일로 생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답한다. 남의 시를 읽지 않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 허영에 갇혀서 시인으로 행세하고 싶을 뿐이라고도 말한다. 누군가의 마음 한쪽을 적시기 위해서는 남의 시를 꾸준히 읽어야 하고, 그렇게만 한다면 세상의 모든 말과 우주의 예사롭지 않은 기미를 날카롭게 알아챈다고 강조한다. 안 시인의 말에는 좋은 말 한 마디, 빛나는 문장 하나를 품고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녹아있다.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비롯해 <북항>까지 10권의 시집을 냈다. 소월시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우리는 태어나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한평생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월랑 전근표 시인이 네 번째 시집 <하늘을 머리에 이고>(신아출판사)의 출간소식과 함께 시 쓰기에 대한 새 꿈을 알려왔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동안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 이를 자연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한편의 시였다고 전근표 시인은 말한다. 인간 본성의 선한 바탕에 과거 삶의 경험과 현재 사회현상을 시공을 초월한 자연에 접목한 시를 쓰겠다는 것. 시인은 그것이 곧 바람직한 미래 인간성 복원을 위해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한 편의 언어적 파노라마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왔다. 이 시집은 백두산아! 천지에 새 꿈 넘치게 하라 연꽃 하늘을 머리에 이고 초승달 어머니의 강 통일이여 오라 여행 및 문학기행기 등 모두 7부로 나눠져 있다. 시와 산문이 함께 실려 있어 문집의 성격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전근표 시인은 본인의 네 번째 시집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재호 시인은 시를 앞세워 더욱 문향(文香)을 드러내고 싶었던 시인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았다. 서문을 쓴 소재호 시인은 시인의 경륜만큼이나 시가 성숙되어 있으며 그 아우라와 감동성으로 연유하여 볼 때 문예 작품으로서 매우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여겨 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시인은 벌써 시집 네 번째를 상재하는 마당임에도 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며 그는 지난 적 군문에서나 기업의 장에서 높은 위치의 리더로서 혼신의 힘으로 소속인의 사명을 다하던 그 전력 못지 않게 오늘에도 문학공부의 열의가 매우 뜨겁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호병탁 시인은 해설에서 전근표의 작품에는 난해한 어휘나 비틀린 어법이 전혀 없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쉽게 이해된다면서 전 시인은 문사로서의 자기 도야에 안일을 돌보지 않는 작가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전근표 시인은 2008년 한국시로 등단해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제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아버님! 하늘나라 그곳에도 꽃은 피었나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꿈의 노래(해를 품은 아버님 사랑)> 등을 발간했다. 전북문인협회 공로상과 진안 에술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하늘을 머리에 이고> 출판기념회는 8일 오전 11시 전주 중화산동 연가에서 원로 문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는 한국 문단의 등용문으로, 그동안 치열한 문학정신을 가진 작가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문단을 살찌우며 문학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이들,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이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책을 소개합니다. 장르 제한 없이 전북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두고 3년 이내 출간된 작품을 독자에게 추천할 예정입니다. 주말 남쪽에는 매화가 한창이었다. 향기를 머금은 매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하지만 올봄만큼은 봄나들이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으레 봄이면 화사하게 터지는 섬진강변 벚꽃 이야기며 지리산을 불태울 노고단의 철쭉 이야기도 미세먼지가 다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에 내내 시달려서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잠 못 이루는 밤에 오창렬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눈 밝은 시인은 무심한 세상에서 그만의 독법으로 읽어낸 이야기를 나긋나긋하면서도 조곤조곤 풀어 놓는다. 그 흐름이 장대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동안 내가 알던 시인에게 이런 구석이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도도한 물결이 시집 곳곳에 출렁거린다. 그 와중에도 시인은 자모음의 결합 같아서/바람도 허물지 못하는 적막 한 채(적막)를 치는 거미와 같은 소소한 일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인이 세상에 던지는 이야기는 자식 걱정에 늘 안타까운 눈을 하고 있는 어머니(열아흐레 달)나 기약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사랑(덜컹거리는 창문)의 다른 이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첫 시집 <서로 따뜻하다>로 많은 평자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바 있는 오창렬은 계간지 <시안>에 하섬에서로 등단한 시인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세상을 보는 맑은 눈은 이번 시집에는 더 깊고 따뜻해졌다. 그의 두 번째 시집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의 갈피에는 그가 이 힘들고 어두운 세상 너머에서 발견한 따뜻한 사람 냄새와 충만한 생명이 넘실거린다. 이 화창한 봄날에 꽃들은 지천에 피고 지다가 오창렬의 시 속에 가만 문을 열고 들어와 흐드러진다. 눈 속에서 피어난 봄길 밝히는/노오란 촛불 한 그루(복수초)도 매혹적이지만 저 꽃과 꽃 사이의 여백이 오히려 꽃(여백)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지리산 바래봉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을 철쭉이 눈에 밟힌다. 이처럼 그의 시집 곳곳에는 사방에서 이 봄을 찬란하게 사르고 있을 복수초며 철쭉, 벚꽃, 산수유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이 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허전하거나 설렘으로 마음이 들뜨는 이라면 이 시집을 구해 읽기를 권해본다. 운이 좋으면 오후 5시 무렵은 그늘이 깊어지는 시간(그늘을 재어보다)라는 구절처럼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 시구절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읽다 보면 밤은 짧고, 어쩌면 이대로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처럼 당신도 이 시인과 만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이 봄날에는. * 장창영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그동안 다녀온 여행기를 여행잡지 <뚜르드 몽드>에 연재하고 있다.
백제군 중앙군의 맨 선두는 십인장 사이또, 허리 갑옷만 걸치고 상반신은 붉은 천으로 감았는데 장검을 치켜들고 있다. 24세, 이마에도 붉은 띠를 매어서 불덩이가 날아가는 것 같다. 뒤를 따르는 9명의 기마군도 모두 왜군. 말발굽 진동이 땅을 울렸고 말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사이또 조(組)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 뒤를 바짝 붙어 달리는 모리, 혼다, 나까무라의 조(組)도 마찬가지. 본국(本國) 백제 땅에서 적과 처음으로 부딪치는 싸울아비의 감동으로 모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있다. 계백 중앙군 2천기가 이렇게 돌진한다. 쏴라! 백제군이 와락 가까워졌기 때문에 선봉군 중군의 대장 김동천이 소리쳤다. 그 순간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재고 있던 수백의 궁수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거리는 3백보. 그러나 쌍방이 마주 보고 달려가는 터라 화살이 닿은 무렵에는 2백보 거리가 된다. 유효사거리다. 어엇! 그때 김동천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불덩이가 두 개로 쪼개진 것이다. 달려오던 백제군이 그야말로 도끼로 통나무를 쪼개듯이 2개로 좍 갈라졌다. 그 순간 백제군에서도 화살이 쏘아 올려졌다. 앗! 김동천이 놀란 외침을 뱉었고 뒤를 따르던 신라군의 함성이 뚝 그쳤다. 으음. 김동천이 눈을 부릅뜨고 안장에 매단 방패를 꺼내 몸통을 가렸다. 이제 백제군은 비스듬히 앞쪽을 지나간다. 거리는 2백보, 그 순간 백제군이 쏜 화살이 날아왔다. 신라군이 쏜 화살은 대부분 백제군이 갈라진 빈 공간으로 쏟아진다. 아앗! 뒤쪽에서 신음과 외침이 울렸기 때문에 김동천이 잠깐 해찰을 하다가 어깨에 충격을 받고는 몸을 비틀었다. 윽! 저절로 신음이 터지면서 손에 든 방패가 떨어졌고 몸이 기울어졌다. 화살에 맞은 것이다. 쳐라! 선봉 바로 뒤쪽에서 달리던 중군(中軍)의 선봉대장 다께다가 버럭 소리쳤다. 그 순간 처음으로 왜군에게서 함성이 터졌다. 이얏! 목이 찢어질 것처럼 기성을 지른 왜군의 기세가 벌떡 올라갔다. 지금까지 불덩이 귀신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달려오던 왜군이다. 왜군의 함성이 진동했다. 다께다는 이제 선봉대가 신라군 선봉 좌측과 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부딪치면서 밀고 나간다. 다께다는 반으로 쪼개진 우측군을 맡고 있었는데 좌측군은 야마노가 지휘한다. 죽여라! 다께다가 다시 소리쳤고 기세가 오른 왜군이 함성으로 응했다. 오. 선봉군 중심에 있던 김흠춘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이쪽은 지대가 조금 높아서 백제군이 다 보인다. 보라. 백제군 중심의 기마군 2천여기가 반으로 뚝 갈라지더니 좌우로 비스듬히 달려가 신라군을 친다. 그리고 좌우에서 달려오던 1천여기의 백제군이 방향을 틀어 중앙군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빈틈이 없다. 좌우의 백제군을 맞으려고 곧장 달려나가던 양쪽 신라군이 허둥대다가 중앙군 선두와 섞여지고 있다. 저런. 김흠춘이 탄식했다. 겹쳐진 신라군은 무용지물이다. 그때 백제군이 다시 방향을 틀어 산성 쪽으로 돌아간다.
중군(中軍)의 김유신도 선봉군 앞쪽에 붉은 막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백제군이다. 맑고 개인 날씨, 먼지가 가라앉은 황산벌 앞쪽에 마치 붉은 꽃밭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장관이다. 쓴웃음을 지었지만 김유신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그때 김품만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총사령, 선봉대가 공격을 할 것 같습니다. 중앙의 기마군을 내보내겠지요. 그렇구나. 제가 기동군으로 좌우를 협공할까요? 그럼 아군끼리 겹친다. 김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백제군이 벌려선 위치가 좁다. 그곳에 대군(大軍)이 들어가면 숫자가 적은 쪽이 유리하다. 과연. 김품만이 김유신을 보았다. 계백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군요. 왜군 기마군이 잘 훈련되었다. 거리가 4리(2km) 정도가 되었으나 벌려선 붉은색 기마군은 정연했다. 김유신이 다시 칭찬했다. 얕보면 안 된다. 기다려라. 계백이 앞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김유신의 본군(本軍)은 움직이지 않겠지만 선봉군은 멈춰설 수가 없다. 주군, 김흠춘의 기마군도 빈틈이 없습니다. 옆에 선 다께다가 감탄했다. 그런데 장비가 무겁게 보이는군요. 그렇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말에 쇠갑옷을 입혔고 기마군 장비가 너무 무겁다. 형식에 매어있다는 증거다. 기마전에서 우리가 유리합니다. 다께다가 분위기에 들떠 움칠거리는 말을 달래면서 말했다. 다께다는 계백령의 신하였기 때문에 계백을 주군(主軍)으로 부른다. 그때 앞쪽 장수가 소리쳤다. 선봉군이 옵니다! 계백도 보았다. 김흠춘의 선봉군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선봉군 중앙의 기마군이 화살촉 모양이 되어 달려 나오고 있다. 그 뒤를 삼각으로 이룬 기마군 2천기 정도가 따른다. 계백이 좌우를 둘러보았다. 좌우의 기마군은 그물 모양으로 벌어지고 있다. 끝쪽이 앞으로 나와 그물 안으로 백제군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김흠춘의 기마군은 1만, 백제군의 2배다. 이윽고 계백이 소리쳤다. 3면 동시 공격! 그 순간 고수가 격렬하게 북을 쳤다. 백제군의 북소리는 높고 여운이 적다.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아 들고 말에 박차를 넣었다. 백제군이 옵니다! 부장 성진이 소리쳤지만 김흠춘은 마상에서 앞을 노려본 채 대답하지 않았다. 3개대로 나뉘어졌습니다! 성진이 두 번째 소리쳤을 때 김흠춘이 잇사이로 말했다. 부딪쳐라! 백제군은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3덩어리가 되어 달려온다. 눈 깜빡할 사이다. 마치 꽃밭이 3개의 불덩이로 나누어진 것 같다. 빠르구나. 그 와중에도 김흠춘이 감탄했다. 백제군이 금방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와앗! 백제군을 맞으려는 신라군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기 때문에 천지가 울렸다. 이쪽의 전고(戰鼓)도 더 격렬하게 울렸고 땅은 달리는 말굽 소리로 흔들렸다. 그런데 백제군 쪽은 조용하다. 함성이 안 들린다.
북이 울린다. 오전 진시(8시), 신라군이 먼저 움직여 황산벌로 나오고 있다. 앞장선 신라군 선봉군은 기마군 1만, 좌우 끝이 조금 앞으로 나온 반원형 진(陣), 그 중심에 대장군 김흠춘이 5천 기마군을 한 덩어리로 만든 채 거대한 산이 굴러오는 것처럼 다가온다. 넓게 펼쳐진 진(陣)의 폭은 2리(1km), 양 끝에 포진한 1천기씩의 기마군은 시위에 쟁여진 화살촉 같다. 선봉군 뒤로 1리(500m) 거리를 두고 김유신과 대장군 김품일이 따르고 있었는데 병력은 3만, 김유신의 중군(中軍) 2만을 김품일이 좌우로 둘러싸고 나가는 형국이다. 앞이 훤하게 보이는 터라 허점이 보이거나 필요할 때 김품일의 기마군 1만을 기동군으로 응용하려는 것이다. 그 뒤를 후위군 1만이 따른다. 거리는 1리, 5만이 철갑을 겹겹이 입은 것처럼 나아간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이다. 수십 개의 대고(大鼓)가 울리는 데다 기마군의 말굽소리, 그러나 하늘은 맑아서 구름 한 점 없다. 서늘한 날씨, 북소리에 맞춰 속보로 나아가는 신라군의 어깨에 힘이 실렸다. 아직 앞쪽에서 백제군의 반응은 없다. 멀리 15리쯤 앞쪽으로 검은 산맥이 둘러쳐져 있다. 그곳, 3개 산성에 백제군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백제군은 일시에 쳐들어올 것이다. 김흠춘이 앞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앞에 첨병대를 보냈지만 시야가 탁 트여서 3개 산성이 보인다. 산성과는 이제 15리(7km) 정도, 아직 백제군은 기척이 없다. 이쯤 되면 첨병이나 유격군을 보내 진로를 방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김흠춘의 옆을 따르던 부장(副將) 성진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산성을 비우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가 있느냐? 김흠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지금 나란히 속보로 전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0대 중반으로 백제군과 수십 년 전장에서 만난 성진이 대답했다. 계백의 기마군은 모두 왜에서 데려온 왜군입니다. 계백의 영지에서 조련시켜 데려왔다지만 훈련이 덜 되었는데 모릅니다.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김흠춘이 나무랐지만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북은 더 힘차게 울렸고 말발굽 소리는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그때 성진이 소리쳤다. 백제군입니다! 고개를 든 김흠춘이 앞쪽 산성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기마군을 보았다. 3개 산성에서 동시에 쏟아져 내려왔기 때문에 햇살에 번득이는 창날이 위압적이다. 온다! 북을! 성진이 소리치자 옆쪽 고수들이 세차게 북을 쳤다. 전투개시의 북이다. 그때 앞쪽을 응시하던 김흠춘이 소리쳤다. 저놈들이 옆으로 비껴간다! 숨을 들이켠 성진이 말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섰다. 과연 그렇다. 백제 기마군은 정면으로 닥쳐오는 것 같다가 옆으로 비껴 달리는 것이다. 거리가 4리(2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이쪽은 바라만 볼 뿐이다. 도망치는가요? 옆으로 다가온 아들 반굴이 물었기 때문에 김흠춘이 고개부터 저었다. 아니다. 저놈들이 무력시위를 한다. 그때 옆쪽에서 낮은 탄성이 울렸다. 보라. 이제는 흙먼지가 걷히면서 백제 기마군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 붉은색 갑옷을 걸쳤다. 그래서 불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다. 3개 산성에서 쏟아져 나온 기마군은 직선으로 달려오다가 제각기 말머리를 틀어 옆으로 비껴가고 있다. 정연한 움직임이다. 백제 기마군이 황산벌 앞쪽을 붉은 불길로 가로막는 것 같다.
그날 밤 계백이 주둔한 웅치산성으로 좌평 충상이 찾아왔다. 호위군사 셋과 함께 말을 달려온 것이다. 계백은 흥수와 함께 맞았는데 둘을 본 충상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곳에서 함께 죽읍시다. 허, 좌평, 우리는 그대와 함께 죽을 생각이 없네. 흥수가 정색하고 말을 받았다. 청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충상이 계백과 흥수를 번갈아 보았다. 도성은 이미 연임자가 장악하고 있소. 동방과 서방, 남방군은 모두 연임자의 모략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모일 수도 없소. 오직 이곳만 도성을 막고 있을 뿐이오. 대왕께서 무슨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계백이 묻자 충상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길게 숨을 뱉었다. 달솔, 대왕께선 달솔이 좌평 흥수를 유배지에서 빼낸 것에 진노하셨네. 좌평, 잘 오셨습니다. 계백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충상을 보았다. 좌평께선 이곳에 남아 있다가 대왕을 모시지요. 무슨 말인가? 저희들하고 같이 싸우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오. 아니, 그것은 눈을 크게 뜬 충상이 흥수를 보았다. 충상은 충신이다. 충신(忠臣)이라고 해서 다 기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목에 칼을 대면 변절을 하는 충신이 9할은 된다. 충상이 그런 부류다. 연임자가 반역을 하는 줄 뻔히 알면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망설이고 회피했다가 이곳에 온 것은 마지막 용기를 낸 셈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흥수의 얼굴에 쓴 웃음이 번져졌다. 이보게 좌평, 죽는 것이 능사가 아닐세. 충상에게 흥수는 선임자인 데다 연상의 어른이기도 하다. 그러나 흥수가 연임자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떠날 때에도 도와주지 못했다.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나 같다. 흥수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연임자가 백제국을 안에서 무너뜨리는 것을 방관하다가 지금은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죽을 자리를 찾아온 셈인가? 그렇습니다. 시선을 내린 충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겁자를 받아주시오. 그때 계백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하도리 있느냐? 예, 달솔. 기다렸다는 듯이 창밖에서 목소리가 울리더니 하도리가 위사들과 함께 들어섰다. 그 순간 충상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다. 계백이 충상에게 말했다. 좌평,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곳 웅치산성의 감옥에 계시오. 달, 달솔, 왜 이러시는가? 눈을 크게 뜬 충상이 계백을 보았다. 함께 죽도록 해주시게. 달솔. 우리가 떠났을 때 김유신이 이곳 감옥에 갇힌 좌평을 보고 풀어줄 것이오. 아니, 달솔 적인 나에게 잡혀 갇혀져 있다는 것은 곧 우군이라는 표시일터, 김유신이 우대를 해줄 것이오. 달솔, 나는 김유신과 같이 도성으로 가서 대왕을 모시기 바라오. 그때 흥수가 말을 받는다. 좌평, 알겠는가? 이곳을 지난 김유신은 소정방과 함께 도성을 함락시키지 않겠는가? 그러면 대왕은 포로가 되네. 충상은 숨만 쉬었고 흥수가 말했다. 여기서 죽겠다는 용기로 포로가 된 대왕을 모시기 바라네. 그게 달솔의 뜻이네.
김유신이 황산벌 남쪽 끝에 멈춰 섰을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북쪽 끝의 산성에 진을 친 백제군과는 20리 거리가 되어서 기마군들이 내달린다면 한식경만에 칼을 부딪칠 거리다. 내일 아침에 바로 돌파한다. 김유신이 진막에 모인 장수들에게 말했다. 장수들이 긴장했고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이 앞장을 서서 전진한다. 백제군이 대항에 올것이나 밀고 나간다. 전법(戰法)이 없다. 밀고 나가다가 백제군이 부딪치면 물리치고 가란 말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발이 흩날리면 눈발을 맞고 가라는 말이나 같다. 이것이 백전노장 김유신의 용병술이다. 그동안 수백번 전투를 치른 김유신이다. 사사건건 세밀하게 적전지시를 하면 오히려 그 지시가 걸림이 되어서 장수들이 제대로 용병(用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만. 김유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선봉군은 김흠춘이 맡고 선봉군과 본군의 사이에 유격군을 두되 수장(首將)은 김품일이다. 각자 방심하지 말라. 김품일과 김흠춘은 진골 왕족으로 각각 화랑인 아들 관창과 반굴을 데리고 출전했다. 간단하고 명료한 작전지시가 끝나고 장수들이 물러갔을 때 대장군이며 중군(中軍)의 수장인 김행보가 말했다. 총사령, 계백이 3개 산성에 군사를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그냥 전군(全軍)을밀고 나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계백의 기마전술에 유린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유신과 둘만 있는 자리여서 직언을 한 것이다. 김행보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빙그레 웃었다. 너, 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왔다는 말을 들었느냐? 예, 신라군에서도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자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계백은 결사의 대형으로 부딪쳐 올 것이다. 그러니 더욱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군사들도 수장(首將)이 처자식을 베어 죽이고 앞장서 나설테니 모두 죽을 각오로 따르겠지. 그렇습니다. 단 한차례의 돌격으로 부숴진다. 김행보의 시선을 받은 김유신이 다시 웃었다. 파도가 한번 철썩, 바위에 부딪치는 것으로 백제군의 돌격은 끝날 것이다. 숨만 들이켠 김행보를 향해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파도는 뭉쳐서 맞는 편이 낫다. 그러고 나면 백제군은 흩어질 것이다. 과연. 죽음을 무릅쓴 돌격은 한번이면 끝난다. 두 번째에는 일어날 기력도 없이 주저앉아서 죽여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역시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김행보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법도 없이 뭉쳐서 나가는 이유를 이해한 것이다.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군해 나가면 3개 산성의 백제군이 일제히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부딪치겠지요. 김행보가 말을 받는다. 아마 선봉군은 절반쯤 돌파하고 나서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그때 유격군이 섬멸하는 것이지. 이것이 김유신의 머릿속에 든 전략이다.
달솔, 여쭤볼 말씀이 있소. 청을 나갔던 화청이 다가와 계백에게 물었을 때는 사시(10시) 무렵이다. 화청의 뒤에는 윤진이 따르고 있다. 앞에 선 화청이 주춤거리는 것 같더니 계백을 보았다. 달솔, 대답해 주시오. 이 사람아. 뭘 물어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 계백이 웃지도 않고 되물었더니 화청이 멋쩍은 듯 수염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렸다. 뒤에 선 윤진은 아까부터 딴전을 부리고 있다. 화청이 다시 계백을 보았다. 달솔,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 밤에 토성에 다녀오셨지 않소? 그렇지. 토성이 불에 타 재가 되었다고 들었소. 맞네. 달솔. 뭔가? 화청이 눈을 부릅떴다. 처자를 베어 죽이셨소? 계백이 시선만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윤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벌써 윤진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윤진이 부른다. 달솔. 너는 또 무슨 일이냐? 소문이 다 퍼져 나가서 모두 울었지만 사기가 떨어졌소. 저런. 윤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달솔, 왜 그러셨소? 어깨를 부풀린 윤진이 계백을 쏘아보았다. 장수들도 이곳저곳에 처자식이 있소. 군사들이야 격해져서 죽음을 잊겠지만 장수들은 앞뒤를 재어야 될 것 아닙니까? 처자식도 다 죽였으니 내 차례다 하고 덤비는 장수에게 승산이 있겠습니까? 과연. 계백이 남의 일처럼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옆에 서 있던 화청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난 처자식을 하도리의 부장 혼다를 시켜 왜국으로 옮겼어. 지금쯤 구례 포구에서 왜국행 배를 탔을 것이네. 아아. 화청의 얼굴에 금방 웃음이 떠올랐다. 달솔, 잘하셨소. 그래야지요. 윤진도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수들에게는 그렇게 말해주겠소. 윤진과 화청이 서둘러 청을 나갔을 때 계백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렇다. 처자를 베어 죽이고 배수진을 친 것처럼 싸우다 죽을 생각이었지만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하도리의 부장 혼다를 시켜 그날 밤으로 구례 포구로 떠나보낸 후에 토성에 불을 지른 것이다. 잠시 후에 청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다께다가 뛰어 들어왔다. 주군, 신라군이 왔습니다. 다께다가 소리쳐 말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고 숨결도 고르다. 먼저 기마군이 남쪽 언덕 위에 포진했고 뒤를 선봉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는 25리(12km)가량 됩니다. 오늘 저녁에야 진을 칠 것이다. 계백이 청을 나서면서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전쟁이 시작되겠지. 주군, 마님과 공주님을 구례 포구로 보내셨다는 말을 듣고 장수들이 모두 기운을 냈습니다. 옆을 따르던 다께다가 말했다. 다께다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처자를 죽여 명예를 지키는 장수가 아니다. 그런 명예는 필요 없다. 발을 떼며 계백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명예도 지켜지는 법이다.
대학의 도(道)는 밝은 덕(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화함(親)에 있으며, 지극히 착함(至善)에 머무름에 있다.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가 유학의 사서, 대학(大學)의 명제와 의미를 고찰해 책으로 펴냈다. 주자의 대학장구를 의식하지 않고 증자가 쓴 대학 원본을 토대로 장, 절, 항목을 부여해 해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대인들을 위한 단순한 의미에서의 고전(古典)에서 나아가 동양의 전통인문 수양의 정화(精華)를 집중적으로 반영한 대학(大學).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을 내용으로 형성된 전통은 오늘과 미래에도 향하고 있다. 특히, 물질이 초고도로 발달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인간상, 사회상, 정치상을 보면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는 머리말을 통해 이같이 설명하며 이 책이 엉망의 그늘에서 빠져 나오는 인격적 수양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유교에서는 개인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아 수양하는 수신(修身)과 집안을 바로 다스리는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 온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확장과정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학은 일종의 윤리철학이자 사회철학,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요즈음 천편일률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읽혀지고 있는 주자의 이른바 대학장구를 벗어나 증자의 원본 대학에 대하여 주자의 견해를 떠나 자유롭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필자의 대학 바로보기(교육과학사, 2017.1 발행)도 퍽 의미 있고 유익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장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현재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중국 동북 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석좌교수로 있다. 1997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상하)>, <중국교육전개사>, <황혼의 강변을 거닐며> 등 30권이 있다.
최은섭안준희 교수가 <화장품 광고와 아름다움의 문화사>를 펴냈다. 이 책은 산소같은 여자, 깨끗함이 달라요 등 광고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 출신의 최은섭 교수와 한국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해온 문화인류학자 안준희 교수가 국내 화장품 광고의 100년사를 기술하고 광고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입체적으로 다뤘다. 한국 최초의 국산 화장품으로 등록된 박가분과 뒤이어 출시된 설화분이 1922년과 1921년 동아일보에 각각 광고를 게재한 지 100년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한국의 화장품 광고에 투영된 아름다움의 문화사를 살펴보려는 의도로 기획, 광고를 연구하는 광고학자와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만났다. 저자는 국내 화장품 광고의 변화가 마케팅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냈는지를 분석했다. 수직적으로는 한국의 화장품 산업이 어떤 시대적 배경과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변천해 왔고, 수평적으로는 화장품 광고를 사회문화적 텍스트로 접근해 이곳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구조와 그 변화상을 젠더, 계급, 우리와 타자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경성의 모던걸이 서울리스타로 바뀌어 불리게 된 화장품 광고의 시간 여행, K-Beauty의 중심에 있는 우리 화장품의 브랜드 스토리, 여성과 아름다움 사이에 담긴 인간과 사회의 속 얘기 등이 포인트다. 최은섭 교수는 15년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화장품 광고를 제작했던 경험과 2005년 이후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져온 광고에 대한 관심사 등을 이 책에 녹여내고자 힘썼다고 밝혔다.
㈔문화연구창이 문화예술비평지 <담론창> 910호를 나란히 발간했다. 문화연구창은 전주한옥마을, 내 인생의 노래 등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두 권씩 지역문화예술계의 소식을 담은 <담론창>을 발간해왔다. 이번에 발간한 <담론창> 9호는 사용자 공유공간 PlanC - 1년의 기록, 10호는 2018 미술로창. 사용자 공유공간 PlanC는 전주한옥마을 은행로에 위치한 적산가옥으로 지난 2017년 기획자 정문성 씨가 지인에게 5년간 무상으로 임대 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9호 사용자 공유공간 PlanC - 1년의 기록에는 사진작가 장근범 씨의 33 새만금, 갯벌의 기억-땅의 환상을 시작으로, 한국화가 고형숙 작가가 그래픽노블 미술서적을 소개한 미미책방, 퍼포먼스 작가 연정 씨의 립스틱 파티 등 PlanC에서 진행한 열세 번의 프로젝트가 담겼다. 10호 2018 미술로창에는 문화연구창이 진행하는 미술 관람 프로그램인 미술로(路)창 잡담클럽의 1년을 기록했다. 미술로창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점심을 함께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된 일정. 참여자는 각자 식사비만 들고 전주 시내 전시장을 방문하거나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지난 2014년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259회가 진행됐다니 놀랍다. 문화예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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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존재의 숨결로 표현한 기도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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