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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면서 엉켜붙는 미사코의 몸은 뜨거운 문어 같다. 방안에는 미사코의 신음으로 가득 덮여졌다. 한 몸이 되고 난 후부터 미사코는 순하고 겁 많은 양에서 사나운 고양이가 되었다. 신음은 야성의 울부짖음 같았고 계백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드는 것처럼 잡고 놓지 않는다. 계백도 어느덧 미사코의 뜨거운 폭풍 속으로 몸이 빨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온몸에서 뻗어 나오는 열기가 미사코의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저절로 탄성이 뱉어졌다. 용암 굴이 터지고 터지다가 미사코가 마침내 온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신음하더니 폭풍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 순간 계백이 온몸을 굳히면서 미사코와 함께 떠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계백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미사코의 숨결에 찬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비틀어 누웠다. 그리고는 미사코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알몸의 미사코는 허물어지듯이 계백의 가슴에 몸을 붙인다. 땀이 배인 몸이 미끈거리고 있다. 그때 미사코가 가쁜 숨을 가누면서 물었다. 주군,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될 것 아니냐? 계백이 미사코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넌 요부다. 미사코. 부끄럽습니다. 뭐가 부끄럽단 말이냐? 제 몸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나도 너 같은 몸은 처음이다. 좋으셨습니까? 요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칭찬이다. 내가 미사코성에 오래 머물지 못할 터라 미리 이야기해놓을 것이 있다. 계백이 정색한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내 자식을 낳으면 계백충(忠)이라고 이름을 붙여라. 미사코가 숨을 죽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여아를 낳는다면 계백진(眞)이다. 알았느냐? 네. 주군. 네가 잘 키우리라고 믿는다. 주군, 본국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미사코가 몸을 붙이며 물었다. 두 눈이 젖어가고 있다. 계백이 다시 미사코의 알몸을 당겨 안았다. 미사코도 두 팔로 계백의 허리를 감는다. 김춘추가 마침내 신라왕이 된 데다가 신라는 위쪽과 좌우가 막힌 독 안에 든 쥐 형국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김춘추는 결사적으로 당(唐)에 매달려 사생결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주군께서도 출진하십니까? 결전의 시기가 오면 가야지. 그것이 언제입니까? 김춘추가 당에 청병을 원하는 사신을 보냈다니 곧 연락이 올 것이다. 당왕(唐王)이 몸도 못 가누는 비만인 데다가 간질병 환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왕이 원병을 보낼까요? 미장이란 요부가 왕비가 되었어. 무후(武后)가 이제는 당(唐)을 장악했다는구나.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무후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정국(政局)이 심상치 않게 되었다. 길게 숨을 뱉은 계백이 미사코의 몸을 바로 눕히고는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미사코, 왜에서도 백제계는 더욱 번성해야 된다. 그때 미사코가 두 팔을 뻗어 계백의 목을 감아 안았다. 두 눈이 반짝였다. 네 주군. 계백의 자손이 왜국에서 번성하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회장 류희옥이하 전북문협)가 주최하는 제30회 전북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26일 오후 4시 전북문학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시 부문 정병렬 시인, 동시 부문 유응교 동시인, 소설 부문 황용수 소설가가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들에게는 상패와 함께 창작지원금 300만원이 각각 수여됐다. 시상식에는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을 비롯해 선기현 전북 예총 회장, 장명수 전 전북대학교 총장, 신이봉 전북문협 수석부회장 겸 전북문학상 후원회장, 조미애 전북시인협회 회장, 수상자와 가족, 문협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시상식은 이점이 전북문학관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아 심사 경위 및 심사평, 시상, 공로패 증정, 격려사, 축사, 수상 소감, 기념촬영 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시상식에 앞서 전북문협 정기총회가 열렸다. 류희옥 전북문협 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한 해를 회고해 보건데 회원들의 협조와 전임회장들의 기틀을 이어받아 무난하게 전북 문협을 이끌어 왔다며 남은 임기 동안 전북 문화예술 발전과 한국문학 발전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민족 문학의 미래와 지역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전북작가회의 2019년도 정기총회가 2월 1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 이번 정기총회에서는 전년도 및 2019년도 사업 보고가 진행되며, 제11회 불꽃문학상과 제9회 작가의눈 작품상, 제1회 참고운상 시상식이 개최될 예정이다. 제11회 불꽃문학상 수상자 오창렬 시인, 제9회 작가의눈 작품상 수상자 곽병창 극작가가 선정됐다. 올해는 선후배 문인들 간의 돈독함을 자랑하는 참고운상이 따로 마련돼 제1회 수상자로 신형식 시인이 선정됐다. 김종필 회장은 전북작가회의는 앞으로도 문학인의 권익과 복지를 지켜내는 일, 국제교류를 통해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일, 무엇보다 세계문학 속에서 참다운 문학을 이룩하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북작가회의는 1980년대 남민시와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의의 전통성을 계승한 단체로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법인 설립 취지에 공감하여 지회 체제로 재편된 전라북도 대표 문학인 단체다. 지역의 정서와 삶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문학의 깊이를 유지하면서 대중들로 그 폭을 넓히는 일을 해왔다.
가장 전주다운 방법으로 문화정책을 만들고 지역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자료가 집대성됐다. 전주문화재단(대표이사 정정숙)은 지역문화정책의 연구와 비평을 담은 전주문화논총과 전주문화비평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전주문화논총은 김혜원 박사의 전주형 공예활성화를 위한 디자인마케팅 전략, 임승한 복합문화지구누에 사업단장의 예술진흥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정책 고찰, 조성실 박사의 전주미래유산의 개념과 방향 등 총 8편의 연구논문과 허나겸 씨의 문화현장노트 1편이 수록돼 전주의 지역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주문화비평은 시작 도시 우리 동네 재생이라는 주제어를 중심으로 문학, 미술, 공예, 전시 등 분야별 소주제를 통해 지역의 문화현상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글이 실렸다. 문신 시인의 다시 또 사람의 문학을 위하여, 김혜원 작가의 의자, 물질과 정신의 변증이 시작되는 자리를 위하여, 장명수 전북연구원 이사장의 과장된 전통문화를 비롯한 12편의 글을 담고 있다. 전주문화논총과 전주문화비평은 전주문화재단 홈페이지(www.jjcf.or.kr)에서 읽어볼 수 있다.
16세기 조선을 뒤흔들어 천재 1000명을 죽음으로 내몬 기축옥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문학사학자 신정일이 펴낸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상상출판)에서 그 음모가 밝혀진다. 조선의 천재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건의 시작점에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었던 기축옥사. 이는 기축년(1589년) 생긴 정여립의 모반을 시작으로 사건의 연루자를 색출해나가는 과정에서 동인들이 서인들에게 탄압받은 사건을 말한다. 동인과 서인을 막론하고 뛰어난 천재로 평가했던 정여립, 서인 측의 송익필, 알성 급제를 했던 이발 그리고 정철. 당파와 입장 차이가 컸던 그들은 공존하지 못했고 결국 피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천재들의 참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축옥사는 선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으로 비화됐다. 기축옥사를 계기로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고, 이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저자는 이와 같이 기축옥사에 얽힌 음모와 정여립, 그리고 모반사건에 개입돼 죽어간 천명의 선비들이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비들의 개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선조, 서로 다른 길을 택하는 유성룡과 이항복, 당리를 위해 정적을 죽이는 정철과 정의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영경, 그리고 역모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16세기의 역사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저자인 문화사학자 신정일 선생은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이 대표적이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도보여행가로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비롯해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를 걷고, 400여곳의 산을 오른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전주 지역 문인들의 글 향기가 그윽하다. (사)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가 펴낸 <文脈> 제51호. 전주문인협회는 지난 1993년 <文脈> 창간호를 발행한 이후 매년 두 차례씩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이번 호에는 특집으로 전주문학상 본상 정군수 시인과 문맥상 수상자 나인구 수필가의 대표작을 포함해 시인 52명, 수필가 27명, 동시동화 6명, 평론 3편 등 회원들의 작품이 실렸다. 또한 전주시민문학제, 전주예술제 시화전, 전주문학상 수상자 대표작 시비제막식, 제10회 전주문인대회, 제6회 전주문학상, 제29회 전주예술상 시상식과 전주찬가 시극페스티벌 화보 등이 다양하게 엮어졌다. 이소애 전주문협 회장은 발간사에서 제26회 전주예술제 시화전과 손바닥시집 <詩 속으로 떠나는 가을소풍>은 인기가 넘쳐났다며 제1회 전주시민문학제에 많은 호응을 보내준 전주시민과 관계자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극작가 곽병창 교수가 희곡집 <억울한 남자>를 펴냈다. 지난 2007년 평론집 <연희 극 축제>와 2013년 희곡집 <필례, 미친 꽃>에 이은 세 번째 작품집. 이번 작품집에는 표제작 억울한 남자를 비롯해 귀신보다 무서운,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 대필병사 김막득, 천사는 바이러스 등 소중한 작품 5편이 실려 있다. 이번 희곡집은 곽 교수가 그간 보여줬던 행보와 달라진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역사적 과거를 현대에 대응해 온 작가는 이번 희곡집에서는 역사적 현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 기존 작품 대부분이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며 영향을 미치고, 과거를 생생한 현실로 표현하며 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역사의 그늘에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주목했었다. 하지만 이번 희곡집 중 억울한 남자와 원작이 있는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과 무관하게 채워나갔다. 대신 역사적 사건의 공백을 우화적 상상력으로 담아냈다. 작가는 단순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다양한 의미의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전북 지역과 밀접한 이야기도 작품집에 담았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을 통해 국가라는 이름의 공권력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고발하는 귀신보다 무서운은 지난 2016년 12월 창작 소극장에서 공연되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천사는 바이러스는 매년 연말이면 전주시 노송동을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들 모두 2014년 이후 최근까지 공연한 작품들로 작품마다 계기와 기획 의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작가는 연극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했다. 작가는 갈수록 극예술의 고전적 본질에 끌리고 있는 현실에 여러 번 생각해봐도 인간의 일 가운데 연극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충남 금산 출생인 곽 교수는 전북대 극예술연구회 기린극회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삼십 대 이후 줄곧 극단 창작극회 창작소극장에서 배우, 극작, 연출로 살아왔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을 비롯해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서 극작을 가르치고 있다.
계백이 미사코 성(城)에 입성했을 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미리 전령을 보낸 터라 성주 미사코와 중신들이 모두 성 밖까지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함께 내성의 청으로 들어섰다. 계백은 계속 동정(東征)을 해왔기 때문에 거성(居城)도 서쪽의 이쓰와(五和) 성에서 4백여리나 떨어진 토요야마성으로 옮긴 것이다. 미사코성은 그 중간 지점이다. 청에 앉은 계백이 앞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미사코에게 물었다. 주민들이 잘 사느냐? 아직 모르겠습니다. 시선을 내린 미사코가 바로 대답을 했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미사코는 이곳의 전(前) 지배자였던 후쿠토미의 동생이다. 계백이 후쿠토미를 죽이고 나서 미사코를 성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신(重臣) 사다케를 보좌역으로 옆에 두기는 했다. 계백의 시선이 사다케에게 옮겨졌다. 사다케, 여기 군사는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 예, 기마군 5천에 보군 1만입니다. 사다케가 바로 대답했다. 이곳은 전마(戰馬)의 산지여서 말을 2만필 가깝게 모았습니다. 잘 조련시키면 기마군 1만은 가능합니다. 가구수, 주민수 조사는 끝냈느냐? 예. 어깨를 편 사다케가 힐끗 옆에 앉은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님이 성주로 부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산속, 골짜기에 숨어살던 주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호구수가 2배나 늘었습니다. 허어. 감탄한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된 일이다. 그래, 얼마냐? 16만호에 주민이 어린아이 포함하여 1백만 가깝게 됩니다. 허어, 영지에 비교하면 주민이 많은 편이 되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후쿠토미 시절에는 땅이 있어도 경작을 안했기 때문에 영지 계산이 안되었습니다. 소신이 바쁘게 계산했지만 이곳 영지가 1백만씩 소출이 가능합니다. 허, 내가 대영주가 되었구나. 주군께선 이미 대영주이십니다.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 네 백성이다. 예, 주군. 너를 믿고 산에서 나왔다니 잘 살게 해줘야 될 것이야. 예, 주군. 미사코의 얼굴은 붉어진 채다. 그날 밤, 계백의 침실 문이 열리더니 미사코가 들어섰다. 자시(12시)가 가까운 시간이어서 내성 안은 조용하다. 방의 불을 켜놓았기 때문에 계백이 미사코에게 물었다. 미사코, 네 자의로 온 것이냐? 네, 주군. 고개를 든 미사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불빛에 비친 미사코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침상으로 다가온 미사코가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너를 만나려고 온 것이야. 손을 벌려 맞는 시늉을 하면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없더라도 네가 이곳 중심이 되어라. 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침상으로 오른 미사코가 계백의 옆으로 파고 들면서 물었다. 주군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계백은 대답하지 않고 옷을 벗겼다.
전북문인협회는 제30회 전북문학상 수상자로 정병렬 시인과 유응교 동시인, 황용수 소설가를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통해 정병렬 시인은 올곧은 문학의 길잡이 정신으로 오염된 세태의 한줄기 시냇물 같은 시를 냈다고 평가했다. 유응교 동시인에 대해 서정시는 물론 최근 동시에 대한 열정으로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점을 수상의 이유로 밝혔고, 황용수 소설가에 대해서는 문학성이 높은 소설집을 펴내고, 소설가 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이 고장 서사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높게 평가했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4시 전북문학관에서 열린다.
장안성의 왕비궁 안, 똑같은 복도를 돌고 또 돌아서 환관을 세 번이나 바꾸어 마침내 도착한 곳이 무후(武后)의 거처, 안락궁이다. 김창준은 궁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오금이 붙어서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다. 앞장선 이의부는 여러 번 와본 모양으로 안내역으로 새 환관이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윽고 문지방 밖에 선 이의부가 궁녀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무후께서 기다리시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이의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호사스럽다는 표현보다 정신이 어지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붉은 기둥에는 황금 용이 칭칭 감겨있는 조각을 붙였고 천장, 계단 모두 황금이다. 붉은 비단이 사방에 드리웠으며 서 있는 궁녀들은 얼굴에 흰 칠을 했고 입술에 붉은 물을 들여 귀녀(鬼女) 같다. 자욱한 향내는 이곳이 지상(地上) 같지가 않다. 수십 명의 궁녀, 환관이 오갔고 서 있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낮인데도 사방에 수백 개의 황금색 양초를 켜놓지 않았다면 귀신 세상 같았을 것이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이의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기 때문에 김창준이 서둘러 엎드렸다. 마마, 신라 사신을 데려왔습니다. 이의부가 보고하고 나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엉겁결에 따라서 외친 김장준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 순간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앞쪽 계단 위에 앉은 무후(武后)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무후는 흰 얼굴에 눈썹을 진하게 그렸고 입술은 붉은 점을 찍은 것 같다. 붉은 바탕에 황금 용이 자수로 놓여진 용포를 입고 머리에는 금으로 만든 봉황 관을 썼다. 미모다. 그러나 눈길이 얼음송곳처럼 느껴졌다. 그때 비스름한 앞쪽에 엎드린 이의부가 소리쳐 말했다. 마마, 신라 사신이 황금 5천냥을 보낸다고 합니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황금 1천3백냥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2천냥을 만나고 나서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무후에게 5천냥을 주란 말인가? 그때 무후가 입을 열었다. 신라에 대당군(大唐軍)을 보내달란 말이냐? 예, 마마. 김창준이 서둘러 대답했을 때 무후가 지그시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신라에 금이 많으냐? 예, 많습니다. 마마. 김창준이 얼른 대답했더니 무후의 눈빛이 강해졌다. 내가 당군을 보낼 테니 황금 10만냥을 가져올 수 있느냐? 예, 마마. 백제 땅의 금화를 거두면 10만냥은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곧 당군을 보내도록 하지. 마마,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소정방을 임명해서 출전시킬 것이다. 마마, 꼭 보은을 하겠습니다. 네가 김춘추 대신으로 대당군이 백제에 닿으면 금화 10만냥을 낸다는 약정서를 써놓도록 해라. 당장 쓰겠습니다. 곧 대당군이 출전할 테니 물러가라. 만세, 만세, 만세! 김창준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만세를 불렀다. 이의부와 함께 왕비전을 나온 김창준이 열에 뜬 얼굴로 물었다. 대감, 대왕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의부가 빙그레 웃었다. 무후께서 결정하시면 되는 거요.
그날 밤 침상에 누워있던 계백이 방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귀인(貴人) 차림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다.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계백이 여자에게 물었다. 누구냐? 우에스기의 소실이었던 오타니라고 합니다. 맑고 높은 목소리였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맑은 눈으로 계백을 응시하고 있다. 거리는 다섯 걸음 정도. 기둥에 붙여 놓은 양초 서너 개의 불꽃이 흔들렸다. 여자가 들어와 공기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긴 겉옷을 입었지만 허리를 조여맨 자태가 색정적이다. 이런. 계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느덧 소실이 다섯이나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죽거나 쫓아낸 영주의 처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가진 처첩은 함께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승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여자 측에서도 오갈 데가 없는 터라 원하는 것이다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의 시선이 내려졌다. 예, 중신(重臣) 노무라님이십니다. 노무라가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냐? 주군께서 거부하시면 바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나가서 노무라를 불러와라. 너도 같이 들어오도록. 그러자 여자가 절을 하더니 방을 나갔다. 자시(12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내궁 안은 깊은 정적에 덮여 있다. 계백은 이쓰와(五和) 거성에서 바다와 가까운 이곳 토요야마 성으로 거성을 옮긴 것이다. 그때 노무라와 함께 여자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너는 어떤 기준으로 여자를 내 침소에 넣는 것이냐? 계백이 질책하듯 물었지만 노무라는 머리를 들고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우에스기를 멸망시킨 후로 한번도 우에스기 내궁의 여자들을 위무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위무를 시켜? 계백이 노무라를 노려보았다. 내가 포로로 잡은 적장의 처첩을 위무시켜야 된단 말이냐? 이젠 주군의 처첩이올시다. 정색한 노무라가 말을 이었다. 주군, 한시바삐 안돈시켜 주시옵소서. 이년은 누구냐? 계백이 눈으로 오타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무라가 서둘러 대답했다. 우에스기가 멸망시킨 북쪽 영지에서 포로로 잡혀왔다가 이번에 남게 된 여자입니다. 아비가 우에스기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래서 우에스기의 소실이 되었다가 이번에는 나한테 넘겨졌다는 말인가? 예, 주군. 본인도 주군의 소실이 되겠다고 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돌려 오타니를 보았다. 이유가 뭐냐? 예, 자식을 낳아서 의지하고 살고 싶습니다. 오타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군의 자식이라면 아무도 무시하기 못하겠지요. 강한 자식을 낳겠습니다. 숨을 들이킨 계백이 노무라를 보았다. 노무라도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 계백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오타니에게 말했다. 잘 알았다. 내궁에서 대기하라.
김한창 소설가가 몽골문학연맹 90주년 기념 공로훈장을 받았다. 이번 훈장은 지난 2015년 몽골문학상 이후 두 번째 성과다. 김 소설가는 지난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시아거점 몽골문학 레지던스 소설작가로 선정돼 몽골 울란바타르 연구교수로 파견된 후 객원교수로 재임하면서 한국과 몽골의 교류문집소설선집 발행 등을 추진, 지속적으로 두 나라의 문학발전에 기여해왔다. 지난해 7월 외국인 처음으로 몽골문학연맹 회원에 가입했으며 몽골문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여러 편 쓰기도 했다. 김 소설가는 9년 가까이 몽골 문인들과 교류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피부로 느꼈다면서 지난해 문학연맹 회원이 되면서 몽골에 씨를 뿌린 한국문학의 발로가 이번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잘 왔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연자춘을 보았다. 연자춘은 9품 고덕(固德) 벼슬로 칠봉산성에서부터 계백의 휘하로 종사하다가 사비도성에 남았던 장수다. 연자춘이 청에 엎드려 계백에게 말했다. 달솔, 다시 뵙게 되어 꿈만 같습니다. 연자춘은 42세, 계백보다 연상이었지만 심복으로 따르던 부하다. 이곳은 계백의 거성이 되어있는 토요야마성의 청 안이다.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아스카 왕궁에서 이곳까지 1천여 리 길입니다. 달솔의 영지가 8백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두 백제방의 직할령이야. 달솔께서 영주이시지요. 대영주이십니다. 연자춘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연자춘은 의자왕이 계백에게 보낸 사신이다. 의자왕이 계백의 심복이었던 연자춘을 골라 보낸 것이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청 안에는 계백의 중신(重臣) 노무라와 다케다, 그리고 하도리까지 셋만 둘러앉았다. 연자춘이 주위를 물리쳐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달솔,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계백은 고개만 끄덕였고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신라왕 김춘추가 당왕 이치에게 사신을 보내 원병을 청하는 한편으로 신라 안의 전(全) 군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럴 때도 되었지. 김유신을 총사령으로 하고 대장군 품일, 흠춘을 좌우에 나누어 정병 10만을 동원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唐)까지 멸망시켜야 될 것이다. 당왕 이치가 무후(武后)가 된 미랑에게 빠져있어서 정사는 미랑이 다 한다고 합니다. 나도 들었어.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제야말로 백제, 고구려가 중원(中原)을 차지할 때다. 예, 당(唐)도 3대(代)에 끝날 것 같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연자춘이 열기 띤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는 달솔이 정예군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계백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오히려 본국이 더 가깝다.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가려면 내해(內海)를 거쳐 동해로 나가야 되지만 이곳에서는 곧장 동해를 건너면 된다. 그때 다케다가 말했다. 배만 준비된다면 열흘에 본국에 닿을 수 있습니다. 주군.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연자춘을 보았다. 들었느냐? 예, 달솔. 이제 내 영지가 1백50여만 석, 기마군 2만에 보군 3만을 갖추게 되었다. 대왕께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달려간다고 말씀드려라. 예, 달솔. 두 손으로 청을 짚은 연자춘의 눈이 더욱 번들거렸다. 물기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수(隋)가 3대 39년 만에 멸망하고 이제 당(唐)이 3대 40년도 안 되어서 멸망하는구나. 이제는 백제의 천하다. 수는 문제(文帝) 양견에 이어서 양제(煬帝) 양광, 양유까지 3대를 거쳤지만 양제가 목메어 죽고 나서 2대째에 멸망한 것이나 같다. 그리고 당이 이연, 이세민에 이어서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제위에 올랐지만 제 아비의 첩을 왕후로 두고 비만해서 거동을 못 하는 데다 간질병자다. 왕후 무후(武后)가 권력을 쥐었다니 곧 멸망하지 않겠는가?
당왕 이치는 몸이 비대했을 뿐만 아니라 간질병까지 있었기 때문에 정사(政事)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구나 여색을 밝혀 닥치는대로 여자를 탐했는데 이틀에 한 명씩 궁에서 여자의 시신이 밖으로 버려졌다. 그것은 무후(武后)가 이치가 상관한 여자를 때려죽여 궁 밖으로 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 궁녀들은 당왕 이치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도망치기 바빴으니 밤이면 여자를 찾아다니는 이치를 궁에서 왕귀(王鬼)라고 불렀다. 이치는 무후를 왕비로 책봉한 후부터 거의 정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 사신이 자주 찾는 것은 이의부, 허경종 등이었다. 그들은 무소의가 왕비가 되도록 공이 컸기 때문에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전하께선 요즘 대전에 잘 나오시지 않아서 뵙기가 어렵소. 이의부가 웃음 띤 얼굴로 김창준에게 말했다. 김창준은 진골 왕족으로 김춘추의 친척이다. 대감, 방법이 없겠습니까? 김창준은 45세, 지금까지 당에 여섯 번째 오는 셈이어서 장안성의 지리는 물론이고 이의부가 뇌물을 밝힌다는 것까지 안다. 오늘 김창춘은 이의부에게 황금 3백 냥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의부가 만나준 것이다. 이의부가 눈을 좁혀 뜨고 김창준에게 물었다. 황금이 몇 냥이나 남았소? 가져온 것은 다 떨어졌지만 빌릴 수는 있지요. 옳지, 공대인한테서 빌린다는 말인가? 예, 자주 거래를 해서 신용으로 빌리고 갚습니다. 그렇다면 황금 1천 냥을 가져오시오. 방에 둘 뿐이었지만 이의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왕비께 여쭤서 신라의 원병을 보내도록 애쓰리다. 대감, 한시가 급합니다. 김창준이 상기된 얼굴로 이의부를 보았다. 촛불에 비친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당군(唐軍)만 파견해 주시면 대감께 황금 3천 냥을 드리지요. 우선 1천 냥을 가져오도록 하고. 대감 약조를 해 주시지요. 이것 봐요.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이의부가 눈썹을 모으고 혀를 찼다. 이찬, 나하고 한두 번 만났소? 아닙니다, 대감. 지금 세상이 무후(武后)의 세상이 되었소. 무후가 누군지 아시오? 압니다. 잘 모르는 모양인데 새겨들으시오. 무후께선 미랑으로 계실 때부터 돌아가신 선왕의 왕비나 마찬가지였소. 그렇습니다. 선왕(先王)께서 40이 넘으셨을 때 14살이 된 미랑(媚娘)을 보시고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짓고 총애를 하셨소. 예에. 천하가 아는 일이었지만 김창준은 처음 듣는 척했다.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는 이런 일은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워한다. 지금 이의부는 현재의 당왕(唐王) 이치(李治)의 부친 이세민의 애첩이었던 미랑, 즉 무후(武后)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치는 제 부친의 애첩 미랑을 왕비로 삼은 것이다. 그것을 당의 대신 이의부는 자랑삼아서 떠벌리고 있다. 무후의 권력을 과시할 목적인 것이다. 이의부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무후께서 지시하시면 왕께서는 두말하지 않으시오. 그러니 내일 금화 1천 냥을 가져오시오. 예, 대감. 김창준이 두말하지 않고 엎드렸다.
계백은 왜국의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백제방의 직할령을 늘려가고 있는바, 이것은 왜왕과 백제방간의 합의에 의한 것입니다. 풍이 계백을 신임하는 것 같구나. 왜왕께서도 의지하고 계시지요. 계백은 왜국에 두는 것이 낫다. 의자가 결론을 내었다. 왜국은 수백년간 백제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화(百濟化) 되었다. 계백이 직할령을 늘려 그것을 더욱 굳히게 하도록 해라. 백제인은 오래전부터 왜국으로 집단 이주를 해서 제각기 근거지를 넓히고 호족이 되었는데 그것이 왜국의 왕가(王家)와 지방 영주의 뿌리다. 백제인들은 왜인과 동화, 선진문명을 전파하고 무기와 전술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왜국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지금 왜왕 일가(一家)는 물론이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섭정 소가 이루카도 백제계이며 담로인 왜국을 관리하는 백제방에는 왕자 풍이 방주가 되어있다. 왜국은 명실상부한 백제령이다. 그때 내신좌평 목부가 나섰다. 대왕, 당왕이 한달동안이나 신라왕이 보낸 사신을 만나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가 고개를 들었고 목부가 말을 이었다. 신라왕이 계속해서 걸사표를 보내는 터라 읽기가 싫다는 것 입니다. 하긴 제 애비의 애첩을 왕비로 들이느라 머리털이 빠졌을테니까.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여색(女色)을 끊임없이 밝히는구나. 의자가 용상에 등을 붙였다. 신라여왕 김승만(金勝曼)은 재위 8년만인 작년에 죽고 마침내 김춘추가 신라왕위에 올랐다. 김춘추는 이제 신라의 29대 왕이 된 것이다. 목부의 말이 이어졌다. 대왕, 김춘추는 군사만 파병해주면 백제는 모두 당의 직할령으로 내놓고 신라는 신라국으로 남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으음. 신음을 뱉은 의자가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들어라. 예. 1백여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대답했을때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지금 신라는 백제에게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져있다. 의자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된다. 김춘추가 당을 이용하여 끝까지 항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에서 군사를 파병할 여력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가 말했을때 의자가 머리를 저었다. 너희들은 김춘추를 가볍게 보고 있다. 대륙 동쪽의 3국(國)중에서 김춘추만한 인재가 없다. 모두 숨을 죽였다. 김춘추를 칭찬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제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적은 없다. 오랑캐인 당(唐)에 붙어서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지탱하고 있는 소국(小國), 김춘추가 바로 신라다. 김춘추는 고구려, 백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대야성을 백제에게 함락당하고 성주인 사위 김품석과 딸이 살해당했으며 42개의 성을 빼앗겼다.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영토가 반토막이 되었으며 내란이 일어나 상대등 비담 일당과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명운을 유지해 온 것은 오직 김춘추의 공이다. 김춘추는 적국(敵國)인 고구려에 단신으로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백제를 함께 공격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다. 왜국에 밀항해서 왜왕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가 백제방의 호의로 풀려 나오기도 했다. 당으로 가는 중에 해상에서 백제 수군에게 잡혀 도성으로 끌려왔다가 다시 풀려난 인물이다. 그때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김춘추는 영웅이다. 적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청안에 한동안 정적이 덮여졌다.
지역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와 예술가를 발굴해 조명한 소중한 책이 발간됐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이 지역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펴낸 <강을 거닐다>와 문화예술인을 재조명하고 집대성한 <익산예인열전>(문학)이 그것. 지역자원콘텐츠 사업 일환으로 진행 중인 지역 스토리텔링 시리즈의 이번 편 강을 거닐다는 지역의 젊은 작가 박태건, 김정배, 김형미, 서덕민 등 4명의 집필진이 참여했다. 웅포, 성당포 등 금강 인근 지역 포구 중심의 이야기들을 한데 엮었다. 강과 강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 강을 따라 흘렀던 역사 등 지역의 보석 같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2015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공모사업에 선정된 그 때 그 시절 영정통 사람들을 시작으로 2017년은 익산역을 중심으로 중앙동 일대의 근대와 철도 이야기를 모은 근대 익산을 거닐다를, 2018년은 웅포, 성당포 등 금강 인근 지역 포구를 중심으로 지역의 이야기들을 강을 거닐다라는 제목으로 엮어냈다. 금강변 용 이야기부터 허균의 맛의 기억들, 탑천을 따라 발길을 옮긴 무왕의 순례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 장을 넘기게 한다. 기쁨과 슬픔, 절망 등 모든 것을 안고 흐르는 강물처럼 이 책에도 강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장 사이사이 사진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시선과 함께 지역 작가들의 소중한 생각들도 느낄 수 있다.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익산 또는 익산 관련 문화예술인을 재조명하고 집대성한 <익산예인열전>은 익산문화관광이 추진하는 인물 아카이빙 사업이다. 2017년 시각 예술 분야에 이어 2018년 문학 편에는 눈의 시인 박항식, 시골무사 이성계의 서권, 교육가이자 아동문학가 소석호, 별의 시인 안건옥, 오송회 사건의 맑아서 불온했던 시인 이광웅, 호연지기씨 조두현 등 여섯 명의 예인들을 선정했다. 예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 제자 등이 집필에 참여해 풍성한 기록을 엮어냈다. 2019년 공연예술 분야까지 열전을 펴내고 최종적으로는 익산예술사 발간을 통해 지역예술사 연구를 집대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과거와 현재의 지역문화자원과 사람을 통해 미래 지역 예술을 준비하겠다는 익산문화관광재단의 목표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지역 스토리텔링 <강을 거닐다>와 <익산예인열전>(문학)은 비매품으로, 전국 도서관 및 주요 문화예술시설에서 만날 수 있으며, 재고 소진 시까지 익산문화관광재단을 통해 배포한다.
전주시 서학동은 삶의 흔적과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동네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서학동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통해 국내외 사람들이 서학동만의 훈훈한 인정을 취하길 기대합니다. (판소리 다섯마당 예술마을 만들기 시민위원인 박영진 글로벌문화협회장) 전주문화재단이 전주한옥마을 인근 서학동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담은 서학동 마을술사 교과서 <두루미가 살았던 우리 동네 서학동 이야기>를 발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판소리 다섯마당 예술마을 만들기 성과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학동 미리 보기 △서학동 느리게 걷기 △서학동 동네 밥상 레시피 △부록 등 총 9종 47개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학동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서학동 미리 보기에는 서학동의 조성 시기와 위치, 조형물 등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서학동 느리게 걷기에는 서서학동, 동서학동, 대성동, 색장동, 서학동 산책길에 대한 정보가 수록돼 있다. 전주문화재단 정정숙 대표이사는 앞으로도 문화 재생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주민주도의 지속 가능한 운영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며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국립무형유산원을 거쳐 서학동을 체험하고 갈 수 있도록 방문을 유도하겠다라고 밝혔다.
제 아무리 드론이 난다 해도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를 어찌 모른다 하시나이까. 58년전,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엄동의 계절로 등단한 목천 정병렬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출판사)를 펴냈다. 팔순 노년에도 그는 나이를 모르고 젊으며, 지역문인들로부터 신사의 품위와 활발한 문단활동을 인정받고 있다는 시인. 못에게는 / 망치가 구원의 신이다 / 못된 것 망치로 두들기면 / 한번 박은 못은 죽도록 꽃이다 / 몸을 태워 일생을 웃는다 / 저 널빤지 밤하늘 / 별 하나 - 저 별, 망치가 빛난다 전문. 이운룡 시인은 시평설 정병렬의 개안 투시와 통찰의 심상 을 통해 그는 언어의 엄격한 결백성을 시창작의 과업으로 믿고 이를 구현코자 노력한 시인이다며 이제 거목과 거목이 어깨를 짜고 숲이 되어 살아가는 식물적 생태와 같이 정병렬 시인을 숲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으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정 시인의 시는 함부로 넘겨볼 수 없는 중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을 꼼꼼하고 신중하게 숙고해야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시집은 서시 2편과 1부 너를 만나는 눈길, 2부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 3부 담쟁이 벽보, 4부 연날리기에 걸쳐 79편의 시를 새겼다. 순창 동계 출생인 정 시인은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중등 영어 교사로 30여 년간 교편을 잡았다. 시집 <등불하나가 지나가네>, <물길어가는 새떼들>, <설원에 서다>, <외롭다는 것>, 산문집 <희망시인내동사랑가>를 출간했다. 전북시인상중산문학상을 받았고, 한국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가 <이규하 교수 논문집-원로 역사학자의 독일 현대사 연구>(한울)를 출간했다. 이 교수가 팔순에 맞춰 펴낸 이 책은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역사에 대해 자세하고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전쟁으로 야기된 독일의 재무장 논쟁, 중국 산둥반도에서 독일일본 제국주의 충돌 연구 논문도 더했다. 이 교수는 독일 격동기의 역사정치사상에 대해 자료를 수집연구하고 보완해온 글들을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어 매우 기쁘고 홀가분하다며 자신의 전공 분야 중 핵심을 이 책에 모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비교적 부피가 작은 책이지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고 가장 힘을 들였으며, 외국에서 외국 자료로만 쓴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책은 제1부 아돌프 히틀러,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분단, 독일 통일, 제2부 한국 전쟁과 서독의 재무장 논쟁, 부록 독일 전통사상의 한 주류 등 318쪽으로 구성됐다. 이 교수는 전북대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현대사연구소, 베를린 자유대학교 연구원, 하버드 대학교 연구교수, 전북사학회장, 전북대 인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대 명예교수로 있다.
현재의 당왕(唐王) 이치(李治)는 당태종 이세민의 아홉째 아들이다. 이세민에게는 1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왕비인 문덕왕비한테서 낳은 왕자는 장남인 승건, 넷째 아들 태(泰)와 아홉째아들 치(治), 셋뿐이었다. 그런데 장남인 왕태자 이승건(李承乾)은 남색을 밝힐 뿐만 아니라 성격이 괴상해서 이세민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남색의 상대자인 칭심(稱心)이라는 미소년을 죽여버리자 이승건은 더 미쳤다. 죽은 칭심의 초남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배회했으니 태종 이세민의 울화가 터지지 않을 리가 없다. 또한 태종은 넷째 황자 태를 사랑했다. 이승건은 다리 병신이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도 놔두었고 태가 비만해서 걷기 힘들어하자 그에게만 궁중에서도 수레를 탈 수 있도록 허락할 정도였다. 그러자 태에게 황태자를 이양할 눈치를 챈 이승건이 자객을 보내 태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다. 다시 왕자간 내분이 일어날 분위기였다. 그래서 태종 이세민은 아홉째 아들 치(治)를 후계자로 세운 것이다. 이것이 치(治)가 당왕이 된 이유다. 그것이 정관 17년, 서기 634년이었고 태종은 6년후 정관 23년, 서기 649년에 51세로 죽는다. 28세에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형이며 태자인 이건성, 동생 원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지 23년만에 죽었다. 그당시 이세민은 형 건성의 아들 5명, 동생 원길의 아들 5명까지 다 죽였으니 이번에는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여자 문제는 여전히 지저분했다. 이세민은 죽인 동생 원길의 처 양씨를 총애하여 왕비 문덕이 죽은 후에 왕비로 세우려고 했다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그리고 지금, 당왕 이치는 제 아비가 총애하던 미랑을 제 애첩으로 삼았다. 그 미랑이 나중에 당나라를 잠깐 무씨 왕국으로 바꾼 측천무후가 되었으니 백제 관점에서 보면 상놈의 나라다. 미랑은 소의가 되더니 이치(李治)가 왕위에 오른지 6년만인 서기 655년에 왕후에 올랐다. 이치의 왕비가 된 것이다. 백제 의자왕 15년이다. 음, 그 무소의의 나이가 지금 몇이라구? 의자가 묻자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예, 올해로 32세입니다. 그럼 이제 무후(武后)로 불리우겠구만? 그렇습니다. 백제 왕궁의 청 안이다. 백관이 도열한 청 안에서 다시 의자가 묻는다. 이세민이 죽은지 6년이 지났다. 당왕 이치는 제 아비의 애첩이었던 미랑을 궁으로 불러들여 소의(昭儀)를 시켰고 이제 왕후가 되었다. 그런데도 당 조정에서 간하는 신하가 없었는가? 있었지만 무소의가 다 모함해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당왕 이치도 무소의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이세민의 업보가 제 자식에게 넘어간 것일까? 형제의 미망인을 제 처첩으로 삼는 것은 오랑케의 풍습이긴 합니다. 본래 이세민의 아비 이연이 오랑케인 선비족이란 소문은 있습니다. 아무리 오랑케라도 그렇지. 어찌 이치(李治)는 제 아비 이세민의 애첩을 데려다가 이제는 왕비로 삼는단 말인가? 의자가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이것은 당 조정이 썩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든 신하들은 없느니만 못하다. 지당하진 말씀이오. 대신 서너명이 입을 맞춰 말했다. 소신들은 그런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소이다. 백제가 중원을 제패해야 제대로 된 인륜의 왕도가 세워질 것이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의자가 성춘을 보았다. 어디, 계백의 이야기를 듣자, 백제방의 영토가 왜에서 얼마나 늘어났는가?
전북과 깊은 인연, 거장 황석영 ‘금관문화훈장’ 수훈
시간과 존재의 숨결로 표현한 기도 형상
'작지만 강한' 전북도립미술관의 반란
부안여성작가 13명, 30일까지 제9회 단미회展 ‘Art Memory’
제3회 전북특별자치도 예술·관광상 공모
[안성덕 시인의 ‘풍경’] 모래톱이 자라는 달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아동문학가, 이경옥 ‘진짜 가족 맞아요’
전북 청년작가들의 비빌언덕, 유휴열미술관
제4회 민족민주전주영화제 14일 개막
전북과 각별…황석영 소설가 ‘금관문화훈장’ 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