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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명품 천리길, 문인들이 직접 걷고 감동 담아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아버지는 이슬을 털며 강 길을 걸어 들로 산으로 갔다. 봄이었으며, 여름이었고, 찬 이슬이었으며, 서리 친 길이었다. - 김용택 시인 이슬을 털며 걷던 길을 찾아서중. 전북 문인들이 전북의 명품 천리길을 직접 걸으며 느낀 감동을 책으로 엮었다. 사진도 넉넉하게 담겼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펴낸 <김용택 시인과 함께 걷다 - 해찰하기 딱 좋은 전북 천리길>. 전북문화관광재단이 도내 총 44개 천리길 중에서 인문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아름다운 길을 각각 1곳씩 뽑은 명품 천리길, 이 길을 김용택 시인과 지역출신 작가 14명이 각각 다른 색깔로 그려냈다. 단순한 길 소개가 아닌, 그 길을 오가던 옛 선인들의 숨결과 발자취까지도 담아내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글이 이끄는 대로 가다보면, 마치 천리길이 눈앞에 펼쳐진 듯 섬세하고 회화적이다. 또한 작가들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은 이제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소박한 풍경을 선사한다. 여기에 드문드문 소개되는 김용택 시인의 시는 독자들의 마음을 천리길에 머물게 한다. 이 책은 김용택 시인의 머리글과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때로, 길이 되고 싶은 날에는 전주완주김제의 천리길이 펼쳐진다. 송희 시인, 최기우 극작가, 김영 시인이 글을 썼다. 2부 성큼, 네가 다가왔다에서는 장마리 소설가, 이경아 시인, 김기찬 시인, 김형미 시인이 각각 익산군산부안고창의 천리길을 걸었다. 3부 너를 무어라 부를 것이냐에는 진안무주장수의 천리길을 다녀온 김익두 시인, 이연희 수필가, 김소윤 소설가의 글이 담겼다. 4부 더러 짐작되는 일에서는 안도 아동문학가, 신귀백 수필가, 선산곡 수필가, 박성우 시인이 남원임실순창정읍의 천리길을 여행했다. 전북문화관광재단 이병천 대표이사는 이 책을 통해 전북의 수려한 생태 자원 환경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고, 타 지역의 독자들에게는 전북 천리길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여 그 관심이 방문으로 확장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2.27 20:04

[2018 전북 문화계 결산 (7) 문학] 문단엔 ‘경사’ 일상엔 ‘풍요’

올해 전북 문학계는 양적질적 풍성함에 더해 전북의 문인들이 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경사를 맞았다. 전주에서는 전주독서대전이 열리며 책의 도시 이미지를 굳혔고, 지역 곳곳의 카페에서는 인문학 강좌뿐 아니라 시민들이 모인 독서 모임 붐이 일며 우리 삶 깊숙이 문학이 파고들었다.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에도 10대부터 80대 응모자까지 전 세대에서 고른 분포로 작품을 응모하며 문학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책의 도시 전주 독서대전 개최 가을의 문턱인 9월 전주에서 2018 전주독서대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전주한벽문화관과 완판본문화관, 전주향교 등 전주시와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린 축제는 지난해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치른 전주시가 국가대표 책의 도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올해 처음 자체 개최한 행사다. 축제 기간 내내 강연공연과 학술토론, 기획전시, 독서 체험, 독서경연대회, 북마켓 등 책과 관련한 140여 개의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또한 독서대전 개최와 전주의 책 선정, 이에 따른 필사 대회독후감 공모전 등 자치단체와 연계한 다양한 지역의 책 조명 프로그램이 전북 문단 작가들의 선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북 문인 잇따른 수상 경사 올 한해는 전북 문인들이 잇따라 권위 있는 전국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북 문학의 자긍심을 높인 한 해로 평가받는다. 김남곤 시인은 동시집 <선생님이 울어요>로 제55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학상은 한국문인협회가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 문인들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김 시인의 작품이 교육자적 상상과 정신을 바탕으로 동심의 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읍 출신 박성우 시인은 시집 <웃는 연습>을 통해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7년 제정돼 문학사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다. 박 시인의 웃는 연습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잘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김소윤 작가의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은 제6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제주 43사건의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문학작품으로 담아내기 위해 제정됐다. 순창 출신이자 전주에서 활동하는 양봉선 동화작가는 지난 1988년 창간된 순수 아동문예 전문지 월간 <아동문학>이 제정한 대한민국 아동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김형미 시인은 전북지역에선 이례적으로 2018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는 우수작가가 문학적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집필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운 성과 창출에 기여하기 위한 기금으로, 170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일상으로 스며든 문학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전북문화관광재단과 전주익산문화재단, 전북문학관, 최명희 문학관, 지역별 문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 전북전주익산 민예총 등 지역 문화기관 및 단체 등에서 인문학 강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게다가 올해에는 동네 책방의 부활과 이를 통한 활발한 독서 모임이 이어지며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독립출판 서점이 문을 열어 독자들을 찾았고, 이와 연계한 독서 모임도 곳곳에서 이뤄졌다. 최근에는 각종 SNS와 모임 앱을 통한 다양한 독서 모임도 활발히 생겨나며 인문학 열풍과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에 대한 욕구가 맞물려 문학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2.27 20:04

[불멸의 백제] (251) 13장 동정(東征) 7

기치성 성주는 가와사키. 40대쯤의 사내로 체구가 컸다. 한눈에 봐도 백제계다. 성문 밖까지 마중나온 가와사키가 계백을 보더니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성주 가와사키가 달솔님을 뵙습니다. 폐를 끼친다. 계백이 말에서 내리면서 대답했다. 이곳 우에스기 영지는 변방이다. 더 동쪽으로는 영주 이름도 제대로 적혀있지 않은 땅이 수천리나 뻗쳐 있지만 이 곳 우에스기 영지의 영주도 아스카 왕실로부터 7품 직위인 대의(大義) 벼슬을 받았을 뿐이다. 계백은 왜국 왕실의 본국(本國)인 백제의 2품 달솔이며 왜국에서도 2품 소덕(小德) 벼슬인 것이다. 가와사키의 주군(主君)인 우에스기보다도 5등급이나 높다. 더구나 가와사키는 왕실로부터 직급도 받지 못했다. 안내받아 들어간 기치성은 백제식 석성으로 잘 축조되었다. 자리잡고 앉은 계백에게 가와사키가 휘하 무장들을 인사시키면서 말했다. 제 조상도 백제계이고 성씨는 협(?)씨였습니다. 대감. 그러냐. 그러나 본국을 떠난 지 수백년이 되는 데다 백제방과도 교류가 끊긴 지 수십년이 넘어서 고향을 잊었습니다. 백제방과의 교류가 끊기다니? 계백이 정색하고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소가씨가 왕실을 끼고 권세를 부리는 것이 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말하라. 본래 저희 협(?)씨와 소가의 목(木)씨 가문은 백제 본국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명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가씨가 먼저 왕실을 끼고 우리를 변방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그런가? 왜국에 왔을 때는 우리가 더 세력이 컸지만 1백년쯤 전부터 소가씨의 이간질로 분열되고 왜인들도 이탈했습니다. 너도 협(?)씨 일족인가? 예, 대감. 우에스기 영지는 우리 협(?)씨 일족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백제방에 협조해라. 내가 돌아가면 너한테도 직위를 줄 터이다. 황공합니다. 대감. 그 말이 기뻤는지 가와사키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날 밤, 주연을 끝내고 가와사키가 내 준 내실의 침소에 들어가기 전에 슈토와 하도리가 계백을 따라왔다. 밤 해시(10시) 무렵이다. 주군, 가와사키가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다 합니다. 슈토가 주위를 둘러보며 낮게 말했다. 주연에서 상석에 앉은 계백은 혼자 마셨지만 슈토, 하도리는 가와사키와 이야기를 오래 주고 받았다. 무슨 이야기냐? 우에스기 가문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슈토가 말을 이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은근히 영주에 대해서 불만도 비쳤습니다. 그때 하도리가 거들었다. 우에스기가 여색(女色)을 좋아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하도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소인이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오라고 해라. 저는 밖에서 감시를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적지 같아서요. 하도리가 말하더니 슈토와 함께 청을 나갔다. 계백이 한숨을 쉬었다. 우에스기 영지는 든든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26 17:19

[불멸의 백제] (250) 13장 동정(東征) 6

또 동진(東進)이다. 미사코에게 미사코성(城)을 맡기고 보좌역으로 사다케를 남겨놓은 계백이 그날 오전에 성을 떠났다. 당황한 것은 미사코뿐만이 아니었다. 사다케도 놀라 허둥거렸지만 곧 자신의 책무를 느끼고는 미사코와 함께 성 밖으로 나와 계백을 전송했다. 계백이 마상에서 미사코에게 말했다. 미사코, 잘 들어라. 예. 대답한 미사코가 반짝이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옆에 선 사다케는 숨을 죽이고 있다. 이제 이 땅에 도적의 무리는 소탕되었으니 백성이 마음놓고 농사를 짓고 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냐? 네. 계백이 말고삐를 채면서 물었다. 네 할 일이 무엇이냐? 그때 바로 미사코가 대답했다.알려 주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옳지.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는 가장 좋은 답이다. 주위에 둘러선 무장(武將)들이 숨을 죽였다. 말이 코를 부는 소리와 말굽으로 땅을 차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왜 그런지 대답해 주마. 네. 아는 척 나서지 말아야 한다. 미사코가 시선만 주었고 계백의 목소리가 대기에 울렸다. 이제 이곳이 안정되었으니 성주는 없는 듯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백성들이 더 기운이 나서 일하고 살 것이다. 내 말을 들어가 새겨보도록. 그리고는 계백이 말고삐를 당겨 몸을 돌렸다. 계백의 등에 대고 사다케가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그것을 본 미사코가 서둘러 따른다. 주군, 앞쪽은 우에스기 영지입니다. 미사코성을 떠난 지 이틀이 되었을 때 슈토가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후쿠토미의 영역이 끝나고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가 다가온 것이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백이 머리만 끄덕였다. 앞서 간 선봉대에서 아직 전령이 오지 않았다. 오후 신시(4시) 무렵, 계백의 기마군 1천5백은 속보로 전진하고 있다. 우에스기는 백제계로 3백여 년 전, 일가(一家)가 무리를 지어 왜국에 건너와 영주가 되었다. 문명(文明)과 전술(戰術)이 발달되고 철기 무기까지 소지한 백제계 유민들은 바로 왜인을 규합, 호족 세력으로 기반을 굳히는 것이다. 그 후로 우에스기는 영토를 넓혀가면서 기반을 굳혀왔는데 지금은 영지가 55만석에 군사가 2만 가깝게 되는 동방의 대영주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의 영주는 우에스기 다까노, 45세, 영주가 된 지 25년이다. 그때 앞쪽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계백 앞에서 말을 세운 전령이 소리쳐 보고했다. 앞쪽 기치성(城)에서 성주가 백제방 달솔님을 영접하겠다고 했습니다. 계백은 백제방 달솔 직임으로 동정을 하는 중이다. 그때 슈토가 물었다. 여기서 몇 리 거리인가? 60리쯤 됩니다. 고개를 돌린 슈토가 계백에게 말했다. 주군, 기치성 근처에서 야영합니까? 계백은 야영할 계획이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성주한테 성에서 묵게 해달라고 해라. 대답한 슈토가 전령에게 이르자 전령이 돌아갔다. 그때 하도리가 계백에게 말했다. 주군, 우에스기의 속을 알 수가 없는데 성 안에서 머무는 건 위험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에스기는 왕실이나 백제방의 지시를 거의 받지 않는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25 19:06

[불멸의 백제] (249) 13장 동정(東征) 5

미사코님은 쇼토쿠 태자가 세운 호류사에 보내져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온 인재입니다. 뭐라구? 호류사? 계백이 머리를 기울였다. 쇼토쿠 태자는 왜국에서 신처럼 숭상 받는 인물이다. 쇼토쿠 태자 역시 백제계이자 요메이왕(用明王)의 제2왕자로, 어머니가 백제계인 소가노 우마코의 생질녀다. 쇼토쿠 태자는 소가노 우마코와 함께 섭정이 되어 스미코 왜왕을 보좌했는데 왜국 최초로 헌법을 제정했다. 또한 불교를 장려하여 호류사, 시텐오사(四天王寺)등 41개의 절을 세웠으며 호류사는 목조건물로 고구려에서 건너간 담징이 본당의 금당벽화를 그렸다. 쇼토쿠 태자가 죽은 후에 소가 에미시가 왜국 섭정이 되었고 뒤를 이어 소가 이루카가 지금 섭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사다케가 말을 이었다. 미사코님이 이곳 후쿠토미 지역의 여보살로 불리웠습니다. 후쿠토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미사코를 따르는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다. 미사코님이 앞에 나서지 않고 약탈해 간 양곡을 굶주린 주민에게 다시 나눠준다던가 부모를 잃은 아이를 절에 수용하고 잔혹한 행동을 하는 장졸을 벌하였기 때문에 그나마 후쿠토미의 체제가 유지 되었던 것입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미사코님이 주군의 소실이 되겠다고 자청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년이 나를 이용할 작정이었군. 주군, 미사코님은 25세로 평생 남자를 맞지 않겠다고 공언하신 분입니다. 아직 남자맛을 몰라서 그렇지. 주군, 미사코님은 아스나 하고는 다릅니다. 아스나가 침상 위에서는 제일이었다. 주군, 미사코님은 쇼토쿠 태자님이 제정하신 17조 헌법뿐만 아니라 학문, 문장에도 뛰어납니다. 주군을 더욱 빛나게 만드실 분입니다. 사다케의 이마에 땀방울이 배어나있다. 그것을 본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다음날 아침, 계백이 청에 앉아서 사다케에게 지시했다. 후쿠토미의 동생 미사코를 데려오도록. 예, 주군. 사다케는 바로 대답했지만 둘러앉은 장수들이 술렁거렸다. 잠시후에 사다케와 함께 미사코가 들어섰을 때 청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미사코는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저고리에 바지를 입은 남장 차림이었지만 미모가 더 두드러졌다. 그러나 수십 명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어깨를 펴고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여러 말 하지 않겠다. 네가 그동안 선정을 베풀어 주민의 칭송을 받았다니 이 성에서 내정(內政)을 맡아라. 미사코가 시선을 들어 계백을 보았다. 눈동자가 흐려져 있다. 두 볼이 조금 달아올라 있었는데 조금 열린 입술 끝을 가늘게 떤다.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 이곳을 미사코성으로 부르겠다. 너는 미사코성 성주다. 내 가신(家臣)이고. 그리고는 계백이 머리를 돌려 슈토를 보았다. 미사코에게 기마군 1천, 보군 2천을 떼어주고 무장을 보좌시켜라. 옛. 슈토가 납작 엎드려 명을 받았다. 계백이 이제는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 네. 미사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계백이 정색하고 말했다. 쇼토쿠 태자님의 선정을 실현해보도록. 네. 넌 내 가신이야. 네. 나는 네 주군이고. 네, 주군. 계백이 이제는 사다케를 보았다. 사다케, 미사코성 성주한테 소실을 찾아줘야 되지 않겠느냐?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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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4 19:15

[불멸의 백제] (248) 13장 동정(東征) 4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가 숨을 들이켜고나서 대답했다. 네, 사다케님이... 이번에는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사다케에게 다른 무장한테 보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때 여자가 시선을 들고 계백을 보았다. 눈동자가 또렸했고 맑은 눈이다. 제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오빠를 죽인 사람이다. 네. 압니다. 왜 나한테 보내달라고 했느냐? 소실이 될 바에는 무신(武神)의 소실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여자가 잠깐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네. 살겠습니다. 누구하고? 사다케님이 골라주신 무장하고... 그럼 돌아가라.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덧붙였다. 너는 잘 살 것이다. 여자가 절을 하고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어금니를 물었다. 숨을 들이켜면서 외면했던 계백이 문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아침, 청에서 조회를 마친 계백이 슈토, 하도리 등 무장들과 함께 영지 시찰을 나갔다. 위사대와 기마군 500여기를 대동한 영주의 행차다. 후쿠토미가 장악했던 영지는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농지 대부분이 버려져 있는데다 농사를 지어도 후쿠토미의 무리가 약탈하듯이 소출을 빼앗아 가는 터라 수확을 하자마자 야반도주하는 농가가 많았다. 무법천지다. 후쿠토미 일당 뿐만이아니라 야적떼가 많아서 아예 괭이를 들 힘만 있으면 야적 무리에 가담하는 농군이 많았다. 한나절을 말을 달렸지만 농가 서너 채밖에 발견하지 못한 계백이 신시(4시)무렵이 되었을때 한숨을 쉬고 탄식했다. 당분간 이곳에 거성을 만들고 주민을 끌어모아야겠다. 땅은 비옥한데 농민이 보이지 않다니 이럴수가 있단 말이냐? 계백이 슈토에게 지시했다. 군사들에게 방을 붙이도록 해라. 앞으로 이곳 새 영지에서는 3년동안 농작물 세를 걷지 않고 부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주군. 슈토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이웃 영지에서도 주민이 쏟아져 올 것입니다. 법을 엄격히 시행해서 관리의 포탈이 절대로 없도록 할 것이며 야적은 보는대로 잡아 죽일테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해라. 예. 주군. 이곳 영지는 말이 25만석이지 실제 경지 면적으로 보면 40만석이 넘는 땅이다. 주민이 다 도망가서 소출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백이 한나절동안 1백여리를 달렸어도 영지의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내실의 청으로 다시 사다케가 찾아왔다. 주군, 미사코님을 이곳 거성의 내실 집사로 임명했습니다. 허락해 주시지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런데 미사코가 누구냐? 계백이 묻자 사다케가 정색했다. 예. 후쿠토미의 동생입니다. 아니, 다른 장수의 소실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느냐? 본인도 그런다고 했고. 예. 그것보다 내실 감독이 맞을 것 같아서요. 이맛살을 찌푸린 계백이 사다케를 보았다. 너는 나한테 충심(忠心)으로 대하는 줄은 안다. 그런데 잘못하다가는 네 목이 먼저 떼어지고 나서 진심이 알려질 수도 있겠다. 예. 주군의 곧은 성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제 머리통쯤이야 별것 아니올시다. 닥쳐라! 예. 주군. 속셈이 무엇이냐? 미사코님이 이곳 영지에서 주군을 훌륭하게 모실것입니다. 사다케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23 19:28

[불멸의 백제] (247) 13장 동정(東征) 3

백제의 해외 22개 식민지인 담로 중에 왜국이 가장 크다. 왜국(倭國)은 지리상으로 신라와 가까웠지만 백제 초기부터 유민이 몰려가 규슈 (九州)를 지배했던 것이다. 그래서 왜인(倭人)들은 백제인들로부터 문명을 받아들였고 자연스럽게 백제계 유민이 지배세력이 되었다. 백제는 백가제해(百家制海)란 말에서 국호를 만든 것처럼 일찍부터 해양으로 진출, 해외에 22개 식민지를 보유한 해상강국(海上强國)이다. 후쿠토미 일가(一家)를 토벌한 후에 계백은 여왕과 섭정의 인장이 찍힌 승인서를 받았다. 후쿠토미가 장악했던 25만석 상당의 영지를 계백에게 할양한다는 내용이다. 승인서를 받은 날 저녁, 후쿠토미의 거성(居城)인 산성에서 장수들과 함께 주연을 마친 계백이 내실로 들어왔을 때 중신(重臣) 사다케가 따라왔다. 주군, 후쿠토미의 처자는 어떻게 합니까? 내실의 청에 앉은 계백에게 사다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첩이 7명이나 있고 자식은 모두 14명입니다. 계백은 입맛만 다셨고 사다케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영지를 정복했거나 이양을 받더라도 전(前) 영주는 물론이고 처자도 영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더욱이. 말을 멈춘 사다케가 계백을 보았다. 후쿠토미 같은 경우는 처자를 무사히 내보낼 상황이 아니다. 처자식이 나중에 복수를 할 테니 화근을 없애야 한다. 계백이 입을 열었다. 처첩을 장수들에게 개가 시키면 안될까? 안됩니다. 사다케가 바로 대답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주군께서 이또의 측실, 아리타의 측실을 받아들이셨지만 휘하 장수들은 안됩니다. 왜 안되는 거냐? 주군의 소실이 되면 안심이 되나 장수들의 처첩이 되어서 배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청이나 윤진, 백용문 등 휘하 장수들에게도 처첩을 보냈지 않은가? 그분들이야 안심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 소인한테 처리를 맡겨주시지요. 사다케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주군께서는 모르고 계시는 것이 낫습니다. 계백이 한동안 사다케를 응시했다. 고노의 미망인 아스나와 아들 히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을 소실과 양아들고 삼기까지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히지를 잘 키워 든든한 무장(武將)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윽고 계백이 고개를 들었다. 알았다. 맡기겠다. 주군, 후쿠토미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같이 처리하겠습니다. . 남동생이 배다른 동생까지 셋입니다. 모두 무장(武將)이니 죽이겠습니다. . 화근은 남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아스나의 경우가 되풀이되면 안되겠지. 후쿠토미의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배다른 여동생인데 죽이기는 아깝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다른 무장한테 보내라. 예, 주군. 전례를 따를 필요는 없다. 영지에 분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포용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엎드려 절을 한 사다케가 내실을 나갔다. 그로부터 한식경쯤 지났을 때 계백은 방문이 열리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들어서고 있다. 이곳 산상에는 시중들 소실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계백이 물었다. 누구냐? 그때 여자가 두손을 모으고 서서 계백을 보았다. 우수에 덮인 얼굴이 밤에 이슬을 받은 수선화같다. 여자가 시선을 내리고 대답했다. 예. 후쿠토미의 여동생 오진입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20 19:57

‘시대의 거울’ 옷의 역사·상식, 쉽고 흥미롭게

우리는 옷을 입고 산다. 의식주 중 그 첫 번째. 옷은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인류문명을 이룩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도구 역할을 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거나 신분개성 등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었다. 옷에 관한 역사와 상식을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책이 나왔다. 전주 출신 송명견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펴낸 <옷으로 세상 여행>(이담북스). 옷은 인간의 삶과 함께하며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사상, 과학이 다 옷 안에 배어있습니다. 패션이 시대의 거울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저자는 벌거벗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옷을 우리가 살아가며 소중함을 잊고 사는 공기와 같다고 비유하고, 이 책을 통해 옷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 그 힘이 얼마나 세고 중요한지 역설한다. 먼저 문익점 이야기나 나폴레옹의 모자, 패션 혁명가 이브 생 로랑 이야기 등 패션이 역사를 바꾼 사례를 들려준다. 또 구한말 조선 외교관의 패션과 시련, 대통령의 파란색 옷 등 정치와 패션의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밖에 옷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지식이나 과학적 상식 등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를테면 구한말 이 땅을 거쳐 간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는 그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온갖 형태의 모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나라를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 프랑스 한 여행 잡지에 공기와 빛이 알맞게 통하고 여러 용도에 따라 제작되는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사람들이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기사가 오르기도 했다.(46쪽)고 소개한다. 책은 1부 역사를 바꾼 패션, 2부 세월 속의 옷, 삶 속의 옷, 3부 정치와 패션, 4부 패션과 사회, 5부 누가 유행을 만드는가?, 6부 시대의 거울, 패션, 7부 옷 속에 숨어 있는 과학, 8부 잡곡밥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옷은 사람을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한다. 나아가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생명을 지키기도, 빼앗기도 했다며 이 책이 각자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2.20 19:57

전북문학대상에 ‘서재균 아동문학가’

올해 처음 제정된 전북문학대상에 전북문학의 원로 서재균 아동문학가가 대상을 수상했다. 전북문학관이 주최주관한 전북문학대상 시상식이 20일 오후 전북문학관에서 열렸다. 전북 도민과 함께하는 전북사랑 문학축제 일환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1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김규화 시인의 하이퍼시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참석한 100여 명의 문인과 문학 애호가들은 열띤 분위기로 김규화 시인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임실문인협회 이용만 회장의 시 낭송으로 시작한 2부에서는 본격적인 전북문학대상 시상이 이뤄졌다. 전북 문학 원로 서재균 아동문학가가 올해 제정된 전북문학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전북문인협회 김영 부회장은 심사평으로 서재균 문학가는 전북 아동 문학의 산 역사이자 주춧돌이며 기둥이다. 전북문인협회 회장을 하며 회원 화합과 역량강화에 힘썼고,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후배들을 잘 이끌어 귀감이 됐다며 지역의 문학인들을 잘 이끌어준 고마운 마음에 심사위원 모두 이견이 없이 선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내와 함께 단상에 오른 서재균 문학가는 훌륭한 문인이라면 좋은 글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거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본인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상을 받는다는 게 참 부끄럽다면서 이 상을 준 것은 문인으로서 앞으로도 품격을 잘 지키고 부끄럽지 않은 활동을 보여달라는 의미로 생각하겠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은 이동희 시인에 대한 공로패도 수여됐다. 이 시인은 지난 2009년부터 2년 동안 전북문인협회 회장을 지내며 전북문학관 건립에 주춧돌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동희 시인은 (문학관 건립된 지)7년이나 지난 후 공로패를 받게 돼 쑥스럽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2.20 19:57

[불멸의 백제] (246) 13장 동정(東征) 2

풍왕자가 계백이 보낸 전령의 보고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다. 전령으로 달려온 장수는 9품 고덕 벼슬의 연성이다. 전하, 달솔이 후쿠토미를 사로잡아 처형하고 25만석 상당의 영지를 획득했습니다. 고덕 연성이 소리쳐 보고했다. 백제방의 청 안에는 방의 관리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다 왕실의 내관(內官)까지 불러서 함께 보고를 받는다. 연성이 말을 이었다. 후쿠토미는 무쓰 골짜기에서 화공을 받아 병력 태반을 잃고 화살을 맞아 생포되었다가 처형했습니다. 오, 잘했다. 풍이 큰 소리로 치하했다. 내가 곧 여왕께 말씀드려 후쿠토미가 장악했던 영지를 계백령으로 편입시키도록 하겠다. 전하, 달솔이 전하께 올리는 서신입니다. 연성이 밀봉한 서신을 두 손으로 내밀자 관리가 가져가 풍에게 전했다. 머리를 끄덕인 풍이 서신을 펴고 읽더니 연성에게 말했다. 알았다. 달솔한테 무운을 바란다고 전해라. 예, 전하. 연성이 물러가자 풍이 왕실의 내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관들도 모두 백제계다. 여왕전하께 달솔의 전공을 들은 대로 전하도록 하게. 예, 전하. 내관 둘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백제방의 방령이 늘어났습니다. 축하드리오. 방령(方領)이 곧 왕실의 직할령 아닌가? 직할령 소출이 많아지면 왕실의 재정이 늘어날 것이고 그대들의 녹봉이 높아지는 것이네. 정색한 풍이 말을 잇는다. 달솔 계백의 영지 확장으로 올해 안에 그대들의 녹봉은 2배가 될 것이네. 감복하옵니다. 내관들이 다시 납작 엎드려 치하했다. 이렇게 백제방은 왕실의 재정과 인사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에 섭정 소가 이루카는 동방에서 돌아온 첩자의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루카도 지금 계백의 동정(東征)에 대한 보고를 받는 중이다. 이윽고 첩자의 말이 끝났을 때 이루카가 물었다. 그, 계백이 지금 시나산 근처에 있느냐? 예, 그곳에서 각 지역의 주민 대표를 모으고 있습니다. 첩자가 말을 이었다. 무신(武神)이 왔다고 주민들까지 모여들어서 시나산 근처는 금방 큰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계백 그놈이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가? 이루카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중신(重臣) 마에몬이 나섰다. 주군, 계백에게 축하 사절을 보내시지요. 뭐라고? 일국(一國)의 섭정으로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이루카의 시선을 받은 마에몬이 말을 이었다. 그쪽 시나산, 무쓰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땅은 기름지나 도적 무리가 횡행해서 주민들이 강한 영주를 바라고 있었지 않습니까? 우리도 여러 번 토벌대를 보냈지만 성과도 내지 못하고 회군을 했는데 계백은 단숨에 도적무리의 수괴를 잡아 죽였습니다. . 계백에게 치하 사절을 보내고 그쪽 영지를 계백에게 할양한다는 서신을 보내시지요. 마에몬이 쓴웃음을 지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미 계백이 보낸 전령이 풍왕자와 왕실에 보고를 했을 것이고 그쪽 영지는 당연히 계백의 영지가 될 것이니 주군께서 미리 그렇게 말씀하시면 빛이 날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머리를 끄덕인 이루카가 바로 지시했다. 그렇게 서신을 써라. 예, 주군. 그나저나 계백이 온 후부터 백제방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군. 이럴 때는 잠자코 계시지요. 마에몬이 달래듯이 말했다. 이루카의 제갈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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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9 16:35

[불멸의 백제] (245) 13장 동정(東征) 1

움직이지 않아? 척후의 보고를 받은 후쿠토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후쿠토미는 42세, 장년이다. 그러나 6척 장신에 뼈대가 굵고 힘이 장사여서 창을 던지면 20보 거리의 표적을 맞춘다. 척후가 대답했다. 예, 사방에 정탐병을 보내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장군. 그놈들이 우리 허실을 알아내려는 게다. 쓴웃음을 지은 후쿠토미가 옆에 선 부장(副將) 오치를 보았다. 오치는 후쿠토미의 동생이다. 오치, 여기서 기다리다가 놈들에게 기선을 빼앗기겠다. 네가 오늘 밤 기습을 하고 나서 흩어지자.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신중한 편인 오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시(12시) 무렵에 놈들의 좌측을 치고 곧장 벌판을 빠져 나가지요. 그때부터 우리는 소부대로 흩어진다. 후쿠토미가 둘러선 부하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계백은 대륙에서만 싸웠기 때문에 왜국의 험한 지형도 모르고 이곳에 맞는 기마군 전술도 익숙하지 않아. 모두 숨을 죽였고 후쿠토미의 목소리가 진막을 울렸다. 우리가 무신(武神)이라는 계백을 잡아 죽이거나 지쳐서 도망치게 한다면 우리는 중부(中部) 제 1의 세력이 된다. 근처의 성들이 모두 우리에게 복속할 것이 아니겠느냐? 과연 그렇습니다. 부하 하나가 맞장구를 쳤고 진막 안에 떠들썩한 소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후쿠토미는 2,3백명 단위의 전투는 수십번 겪었지만 이런 대규모 전쟁은 처음이다. 그러나 전에 겪은 수십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후쿠토미다. 지형 이용에 뛰어났고 직접 앞장을 서는 용장이어서 후쿠토미를 따르는 부하들이 많은 것이다. 후쿠토미가 결연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오치, 준비해라. 자시에 기습이다. 해시(오후 10시)가 되었을 때 오치는 기마군 점검을 마치고 출진보고를 하려고 후쿠토미의 진막으로 다시 들어섰다. 후쿠토미의 본진은 무쓰 골짜기의 중심에 위치했는데 3면이 골짜기로 막혔고 앞면만 트였다. 형님, 가겠습니다. 갑옷 차림의 오치가 당당한 모습으로 보고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오, 한바탕 혼내주고 빠져나가라. 이미 후쿠토미도 준비를 마친 상태다. 오치가 진격하면 후쿠토미가 이끄는 본대 5백은 뒤를 따르다가 옆으로 빠져나갈 것이었다. 나머지 1천여 명의 보군도 1백명 단위로 나뉘어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적은 오치의 기마군 3백을 맞아 당황하다가 곧 앞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그때다. 와앗! 함성이 울렸기 때문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다음 순간 함성이 더 커졌다. 밤에 골짜기를 울리는 함성은 메아리까지 겹쳐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때 진막 안으로 장수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장군! 적이오! 적이라니? 짜증이 난 후쿠토미가 버럭 소리쳤을 때 갑자기 함성과 함께 밖이 밝아졌다.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간 후쿠토미는 사방이 불길로 둘러 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화공(火攻)이다. 이, 이런. 함성이 더 커졌고 주위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후쿠토미는 상황을 파악했다. 백제군이 3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좌, 우, 위쪽에서 불화살이 계속해서 날아왔고 함성은 더 커졌다. 형님, 아래쪽으로! 오치가 다급하게 소리친 순간이다. 아래쪽에서 부장 하나가 달려와 소리쳤다. 적이 계곡 앞을 막았소! 아뿔사. 후쿠토미가 신음했다. 무쓰계곡 앞이 막혔다는 말이다. 적이 3면을 화공으로 막은 후에 앞을 가로막았다. 이 가파른 골짜기가 불길에 둘러싸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후쿠토미다. 함성과 함께 이제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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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8 19:43

[불멸의 백제] (244) 12장 무신(武神) 20

아스카에서 300여 리, 계백의 영지 이쯔와 성에서 200리 떨어진 무쓰 계곡, 이곳이 호족 후쿠토미(福富)의 근거지다. 후쿠토미는 왜인(倭人)으로 백제계 영주 휘하에서 무사(武士)가 되었다가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미개척지인 동국(東國)을 넘어와 호족이 되었다. 대부분의 도적무리 수괴가 이런 식으로 호족이 되거나 동국의 영주 행세를 하는 것이다. 후쿠토미의 계산에 의하면 영지의 넓이는 사방 70여 리, 서쪽의 영지 기준으로 말하면 25만석, 주민 수는 4만여 명이다. 후쿠토미는 군사 2천여 명을 보유했고 그 중 기마군이 5백, 근처에서는 적수가 없는 무력(武力)이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무쓰 계곡의 10리(5km) 앞에서 원정군을 정지시킨 계백에게 슈토가 다가와 보고했다. 후쿠토미가 전군(全軍)을 모아 결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슈토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기마군 5백, 보군 1천5백 정도입니다. 슈토의 척후가 정찰을 하고 온 것이다. 그때 슈토의 부장이 잡아온 사내를 계백 앞으로 끌고 와 무릎을 꿇렸다. 농민 차림의 사내는 사색이 되어 있다. 이놈이 정찰하다가 도망치는 것을 잡았습니다. 계백이 고개만 끄덕이자 슈토가 사내에게 물었다. 후쿠토미는 지금 어디 있느냐? 예, 진중에 있습니다. 사내는 바로 대답했다. 건장한 체격으로 무사(武士) 같다. 슈토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오는 줄 알고 있었느냐? 예, 이틀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대비를 하고 있었겠구나? 예, 후쿠토미는 무쓰 골짜기에서 싸운 다음 제각기 흩어져서 소규모 병력으로 백제군을 공격한다는 전략을 세워 놓았습니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되면 원정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때 슈토가 다시 물었다. 처음부터 소규모 병력으로 싸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백제 대군과 한번 정면으로 부딪쳐서 허실을 알아내겠다고 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전술이다. 사내를 끌고 가라고 지시한 계백이 둘러선 장수들에게 물었다. 후쿠토미가 주민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알아보도록. 서둘 것 없다. 예, 주군. 계백의 의중을 알아차린 슈토가 몸을 돌렸을 때 사다케가 말했다. 주군, 후쿠토미가 선정을 하고 있다면 살려주실 겁니까? 그것도 조건이 있어.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욕심이 과한 놈이면 살려주지 못한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이번에는 노인 두명이 끌려왔는데 후쿠토미 세력권 안에 사는 주민이다. 진막 안으로 노인을 데려온 계백이 둘을 편하게 앉도록 한 다음에 직접 물었다. 너희들은 본래부터 이곳에서 살았느냐? 아닙니다. 서쪽 아오야마 영지에서 마을 전체 주민이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노인 하나가 바로 대답했다. 아오야마 영지는 아스카 서남쪽의 15만석짜리 면적이다. 바닷가에 위치해서 어업이 주업이고 산지가 많아서 농작물 소출은 적다. 그때 다른 노인이 말을 이었다. 무신(武神)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디 이곳을 백제령 직할로 포함시켜 주소서. 후쿠토미의 포탈이 심한가? 수시로 양곡을 빼앗고 젊은이는 군사로 뽑아가니 주민들이 산속에 숨어 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른 노인이 말을 뱉는다. 법이 없고 도적의 무리나 같습니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유민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니고 있습니다. 부디 무신께서 백성을 구제해 주옵소서. 그때 옆에 서있던 노무라가 사다케와 눈을 맞추더니 함께 머리를 끄덕였다. 명분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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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7 19:58

[불멸의 백제] (243) 12장 무신 19

백제와 가까운 규슈로부터 이곳까지는 대부분 평정이 되었으나 동쪽은 아직 미개척지가 널려있기는 합니다. 중신(重臣) 하세가와가 말했다. 이쓰와성의 청 안, 계백이 가신(家臣) 1백여 명을 모아 놓고 국사(國事)를 논하는 중이다. 계백은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 기존 영지의 중신도 그대로 끌어들였고 그동안 발군의 기량을 보인 무장이나 책사가 중용되었다. 하세가와의 말이 이어졌다. 서쪽 영지에서 영주의 학정을 피해 이주한 주민들도 많기 때문에 그곳을 기반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토호들이 많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회의는 동정(東征)이다. 계백은 이제 40만석 가까운 영지의 영주다. 그러나 풍왕자는 계백에게 은밀히 동정을 지시했다. 물론 풍왕자는 조오메이 여왕과 합의를 한 것이다. 계백의 영지가 늘어날수록 백제방과 함께 왕실의 세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때 옆쪽에 앉은 사다케가 입을 열었다. 사다케도 중신이다. 주군, 동쪽의 영지를 면적으로 계산하면 수천만 석이 됩니다. 그러나 주민수는 알 수가 없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도적 무리도 몇이나 되는지 모르는 실정입니다. 먼저 사전 조사를 치밀하게 한 후에 시행해야 됩니다. 옳다. 계백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참조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도적의 무리 때문에 학정을 피해 달아난 주민들이 다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있다고 하지 않느냐? 가까운 곳부터 소탕해 나갈 것이다. 계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계백의 영지는 안정되었고 주민들이 몰려오는 상황이다. 백제에서 계백을 수행해 온 화청, 윤건, 백용문 등은 이제 영지안의 소국(小國) 영주가 되어 내정(內政)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에게 내정을 맡기고 계백은 다시 동진(東進)하려는 것이다. 계백의 시선이 슈토에게 옮겨졌다. 타카모리의 장수였던 슈토는 이제 계백의 중신(重臣)이 되어있다. 타카모리한테서 1천석 녹봉을 받다가 지금은 1만석을 받는 소영주다. 슈토, 출정 준비는 언제 끝나느냐? 예, 사흘 후에는 기마군 3천이 떠날 수가 있습니다. 슈토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비마 6천필까지 준비를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위사장 겸 직할군 사령관인 하도리에게 물었다. 직할군 1천기는? 예, 직할군도 사흘 후면 준비를 끝내고 출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흘 후에 출진이다. 계백이 말하고는 하세가와를 보았다. 하세가와, 그동안 네가 중신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라. 예, 주군. 사다케와 노무라는 나와 함께 간다. 일사불란하게 회의를 마친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백은 슈토와 하도리가 이끄는 기마군 4천기를 이끌고 동정(東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날 밤, 계백의 침실에서 품에 안겨있던 하루에가 말했다. 대감, 언제 돌아오십니까? 왜 묻느냐? 하루에의 알몸을 당겨 안은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사흘 후에 동정을 떠나는 계백이다. 내궁의 소실들은 계백이 부르기를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계백은 색(色)을 밝히는 성품이 아닌데다 절제력이 강했다. 그것을 소실들도 알고 있어서 내색은 하지 못한다. 그때 하루에가 계백의 손을 잡더니 제 배에 붙였다. 따뜻하고 둥근 배에 계백의 손바닥이 덮여졌다. 순간 계백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너도? 하루에가 계백의 가슴에 얼굴을 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배 속에 아이가 들었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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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6 19:44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글쓰기 저변 확대…도전적 작품은 부족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혹은 오늘날 현실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통찰한 작품보다는 평범한 일상적 소재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았다. (시 부문 심사위원 이길상 시인) 세월호 참사,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 사회적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일상성 회복일까. 지난 14일 전북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흐름에 대해 사회나 시대 현상보다 개인적, 일상적인 서사를 글쓰기 제재로 다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신춘문예 공모에는 871명이 총 2245편을 응모했다. 응모자와 응모작 수가 대폭 증가한 지난해(842명, 2168편)보다 소폭 늘어 상승세 기조를 유지했다. 부문별로는 시 372명이 1430편, 단편소설 153명이 162편, 수필 240명이 536편, 동화 106명이 117편을 응모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응모가 많았지만, 10대부터 80대 응모자까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강원, 경상, 전라, 충청,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작품을 보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일본 등 해외 곳곳에서도 응모해왔다. 심사는 전북일보 문우회(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모임) 회원인 김형미 시인, 문신 문학박사, 안성덕 시인, 이길상 시인, 이준호 소설가, 최기우 극작가가 참여했다. 시 부문 예심은 안성덕, 이길상 위원이 맡아 모두 10편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시 부문의 경우 전반적인 수준은 상향됐으나 응모작 수에 비해 참신하고 도전적인 작품이 적었다는 평가다. 두 위원은 세월호 참사, 촛불 혁명 등 사회적 이슈가 지나갔기 때문인지 세상을 다룬 작품이 적었다며 문학도 세상과 삶의 일부라 했을 때 청년 실업, 학교 폭력, 갑질 문화, 비정규직 문제, 미투 운동 등 현실을 다룬 작품이 적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신인으로서의 개성과 시의 완숙도, 시적 성취 등에 유의해 심사했다는 이 위원은 직설적이고 사변적인 진술, 빈약한 시적 상상력 등 시작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형상화가 안 된 시들이 있어 아쉬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단편소설 부문 예심은 이준호, 최기우 위원이 담당해 모두 7편을 본심에 올렸다. 청소년, 노인,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는 의견. 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 것도 특징적이었다. 두 위원은 대체로 문장과 구성은 안정돼 있으나 참신한 작품은 드물었다. 세태를 잘 표현했으나 깊이 있는 이해력은 부족해 보였다며 에피소드 위주의 파편화된 서사가 많았는데, 이는 개인화 고립화되는 사회현상과 관련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수필은 사회 현상보다 개인 신변잡기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수필을 심사한 김형미, 최기우 위원은 기본적으로 수필 장르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며 전반적인 글쓰기 저변이 확장된 것은 긍정적으로 보이나 문장 만들기에 공을 들이다 보니 전체 구성이나 의미, 감동 등 생동감을 주는 부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동화는 전반적으로 동화다운 작품이 많았다는 평이다. 주로 학교 안 아이들의 갈등, 엄마와 자식 간의 문제 등이 주를 이뤘다. 문신, 이준호 위원은 응모작 대부분이 생활 동화였다. 그러다 보니 동심, 상상력은 부족했다며 특히 동화 어법을 오해한 작품이 많아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당선작은 본심을 거쳐 2019년 1월 1일자 본보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한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2.16 19:43

집필에서 출간까지 20년… 윤흥길 장편소설 ‘문신’

교과서에도 실려 우리에게 익숙한 <장마>부터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으로 현대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윤흥길 작가가 등단 50주년에 맞춰 신작 장편소설 <문신>을 내놓았다. 집필부터 출간까지 무려 20년이 소요된, 총 다섯 권에 달하는 초대형 장편 소설이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노역이 한창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산서 지방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 가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그리고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혼돈으로 가득한 시대,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나가는 다종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도출해낸다. 제목인 문신도 글의 주제와 관련 깊다.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 하에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왔다. 부병자자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남자들이 나중에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몸에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다. 윤 작가는 부병자자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치열한 귀소본능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윤 작가는 작품에서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손에 만져질 듯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등단 후 50년이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낸 거장만이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경건성의 바탕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듯이, 소설을 짊어지고 그 고통스러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신문사에 근무하며 작가와 인연을 맺은 김훈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장대한 서사로 그려내는 것 또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큰 문제에 대해 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신은 그동안 쓴 것 중 가장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 작품이다. 남은 생에 다시 이런 작품은 쓰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총 5권에 달하는 <문신>은 이번에 1권부터 3권까지 출간됐으며 2019년 상반기 4권과 5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1942년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1977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로 제4회 한국문학 작가상을 받았다. 소설집으로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꿈꾸는 자의 나성>, <소라단 가는 길>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 <묵시의 바다>, <에미>, <완장>, <낫>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제6회 21세기문학상, 제12회 대산문학상,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2.13 19:59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