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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원 작가 서평] 보정 김정회 선생 시집 ‘梅妻(매처)를 찾아가네’

보정 김정회(普亭 金正會) 선생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본래 한시로 지었던 것들을 이번에 우리말로 옮겨 「梅妻매처를 찾아 가네」라는 시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매처란 매화를 아내로 삼는다는 뜻이다. 속세의 명리를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고고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보정 선생은 1903년 고창읍 도산리 명문에서 태어나셨고, 1970년 6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장례는 고창 문인장(文人葬)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정도로 문인으로서 명성이 높았다. 선생은 유학자요, 한학자이고, 시인이며, 서화가였다. 가히 세 가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삼절(三絶)이라 부를 만 하다. 서화는 1938년 일본 문전(文展)에서 특선을 수상했고 1956년 대한민국 국전에서는 입선의 영광을 안았다. 선생의 집안은 덕문(德門)이었다.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보통학교를 설립할 때 많은 토지를 희사했다. 대흉년이 들었던 해에는 곳간 양식을 풀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보정 선생은 부안이 낳은 대표적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 1907~1974년) 선생과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다. 보정 선생이 4년 연상으로 동시대인이었다. 고창의 보정 선생은 유학과 한학을 바탕으로 한시의 형식을 빌려 한자로 시를 지었다. 부안의 석정 선생은 불교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자유시를 썼다. 이렇듯 두 분의 철학적 바탕과 표현 문자와 형식은 상이했다. 그러나 두 분의 시문학 정신과 주제와 시대사상은 다르지 않다. 두 분 모두 공통적으로 자연을 찬미하고 전원을 이상향으로서 동경하면서도 항일(抗日) 정신을 일관되게 지키나갔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보정 선생의 1933년 작 「송농(松儂)에게」와 석정 선생의 1939년 작 「슬픈 구도(構圖)」는 다 같이 일제 암흑기 암울한 현실을 개탄하는 작품들이다. 보정 선생의 시는 역시 금강산 연작시 22 수가 진수라 할 것이다. 그 중 「구룡연(九龍淵)에서 감탄하여 부르짖다」를 읊어보면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관동별곡」을 읽는 것 같은 시적 감흥을 느끼게 된다. 장쾌하고 호탕하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구룡연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한 폭의 흰 비단으로 서늘한 가을이 되고자 함을! 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이 비로봉 상상봉이 천상에 닿으니 웅장한 봉우리들 모두 고개 숙이는 것을! 높이 오를수록 용솟음치는 기운 맑은 기(氣) 끌어 모아 만고(萬古) 시름 말끔히 씻어보네. <하략> 아홉 마리 용이 폭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구룡연 절경 앞에서 나라 잃은 선비가 만고 풍상을 깨끗하게 떨쳐버리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한자로 지어진 보정 선생의 시들은 자칫 사장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참에 선생의 손자인 교육학자 김경식(金璟植) 박사의 감수와 한시연구가 이정길(李正吉) 씨의 상세한 역해로 한글번역판이 상재되었다. 6백97 페이지에 이르는 시 전집이다. 여간 경하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로써 보정 선생의 시문학이 새로 햇빛을 보고 재생(再生)되었다 할 것이다.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이매창(李梅窓, 1513~1550), 이병기(李秉岐, 1892~1968), 그리고 신석정, 서정주(徐廷柱, 1914~2000)로 이어지는 전북 시문학의 전통은 우람하고 찬연하다.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정 선생의 시작품들도 전북 시문학의 산줄기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한 문학적 자산이다. ----------------------------------------------------- * 장성원(張誠源) 작가는 김제 출신으로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을 거쳐 제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13 19:59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별 - 김성숙

별이 떴어? 햇살 한 줌이 나풀나풀 얼굴을 간질이는가 싶더니 오싹한 바람이 부산하게 몸을 흔들어 깨웠다. 뭐라고? 희미하게 들리는 엄마 목소리. 눈꺼풀과 입술은 솜이불의 무게로 가라앉아 도통 엄마를 불러 세우지 못했다. 별이 떴어? 야가 뭐라고 헌디야. 안 들려! 나 지금 나강게 후딱 일어나서 학교 가잉? 애기는 할머니 집에 먼저 데려다 놓을랑게 너도 어서 가서 밥 먹고 도시락 챙겨 갈라믄, 아, 얼른 인나! 마빡은 또 어디서 깨져가지고 와서는. 아 씨, 또 김치볶음이다. 할머니가 싸주는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묵은 김치 볶음. 군둥내 씻어낸다고 물에 한나절은 불려놨던 김치라서 에미 맛도 애비 맛도 안 나는 허연 김치볶음이 오늘 도시락 반찬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썩을 것들, 또 지 반찬 숨기고 돌아앉는 꼴 좀 보겄구만. 그런데 내가 언제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지? 나는 그래, 할머니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못 써! 아, 밥을 왜 자꾸 달구 새끼헌티 뿌려! 아가 입맛이 없냐? 근디 어찐다냐. 아칙에 계란 두 개 할아버지 부쳐주고 인자 없는디. 내가 가서 닭장 조깨 다시 들이다보고 올란다. 할머니, 나도! 할머니가 마루 아래 신발을 주섬주섬 찾을 때쯤 방남이가 불쑥 마당으로 들어섰다. 바 바 밥 시 시 식사하셔요? 응, 그려. 방냄이 왔냐? 예 예 예에. 방냄이, 밥은 먹었냐? 예 예 예에. 그럼 거기 조깨 있어잉. 나 저그 좀 갔다 오고. 예 예 예에. 방남이는 밥 먹는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마루 끄트머리 즈음에 엉거주춤 앉았다. 왜 거기 그러고 있어? 애 애 애기. 애기? 애기, 안 돼.내가 알지 못하는 언젠가 사고로 바보가 된 방남이는 아마도 마흔이 넘고 쉰도 넘어 보였다. 한쪽 다리를 끌고 한 손도 비틀어진 터라 영락없는 반푼이 취급을 받아서 어린아이들 곁에는 가지 못하게 어른들이 단속을 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일루 와. 아 아 안 돼, 애기. 아, 안 들려! 일루 와! 방남이는 짐짓 못이기는 척 밥상 옆으로 다가왔다. 왜? 어? 뭐 뭐 뭐가? 아, 왜 왔냐고? 아 아 아니 그냥. 밥 먹는 옆에서 가만히 있기가 그랬는지 방남이는 엉덩이를 들고 토방 아래 신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으 으 읍내 간다. 읍내? 돈 있어? 버스 태워 준대? 반푼이 방남이는 버스도 못 탄다. 돈이 있어도 태워 주지를 않는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꼬치꼬치 캐묻다가 반푼이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그나마 방남이에 대해 묻는 것도 관뒀다. 버 버스 안 타. 거 거 걸어서 간다. 야, 밥을 왜 자꾸 조물딱거려? 인 내 봐, 손! 누나, 손! 옳지! 인제 수저 쥐고. 아, 뭣이 안 되야, 수저로 이렇게 밥을 푹! 푹! 푹! 재밌지? 그려, 푹! 옳지, 잘헌다! 근디 뭐라고? 걸어서 읍내를 간다고? 거가 어디라고 걸어서 가? 가 가 가 봤다. 지랄허네. 어느 새 빈 그릇에 밥풀 몇 개 남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닭들이 제 할 일을 다 안 한 듯싶다. 남은 한 알까지 밥풀을 꼼꼼히 떼어 먹었다. 밥 남겼다고 집에서 쫓겨난 뒤 생긴 습관이다. 얼마나 걸리는디? 해 해 해 지기 전에 온다. 심심허겄네. 아 아 안 심심해. 강아지풀이 내 내 낼름거리고 구름이 발라당한다. 야, 구름은 두둥실이야. 그 그 그래, 두둥 두둥실. 뭉게뭉게라고 해도 돼. 무 무 뭉, 뭉, 뭉. 됐고! 내가 중리까지만 가줄 틴게. 아 아 아. 대신 갔다 와서 읍내 얘기 해 주는 거다. 아 아 아. 뒤안을 돌아 나오는 할머니 손에는 내 것이 아닌 계란이 들려 있었다. 요놈 하나 게우 찾았네. 상태 해 줘, 할머니. 너는 그새 밥 다 먹었냐? 어찐다냐? 난중에 저 달구 새끼 하나 잡아먹지 뭐. 저 눈탱이에 허옇게 고내기 낀 놈은 내 꺼여, 할머니. 먼저 잡아먹지 말어. 나 놀다 올게. 어디 가냐? 중리! 방냄이도 같이 가냐? 에 에 예. 아니! 방냄이는 딴 데 간대! 갔다 올게! 방남이의 신발은 언제나 흰 고무신이다. 모양이 없는 것 빼고는 참 요모조모로 쓸모가 많은 신발이었다. 학교에서 개구리밥 떠 오라는 숙제를 내줬을 때도, 벌을 잡아 벌침 빼기 놀이를 할 때도 방남이는 직접 고무신을 벗어 시범을 보였다. 운동화로는 도무지 하기 힘든 것이 고무신으로는 몇 번 만에 성공을 했다. 그래도 읍내까지는 꽤 먼 길인데 걱정이 들었다. 방냄아, 너 신발 괜찮냐? 어 허 허엉. 읍내까지 갈려면 발 아플 거 아녀. 신작로에는 돌도 엄청 많은디. 어 허 엉. 고 고 고무신. 우리 아빠 운동화 빌려줄까? 저녁 때 몰래 우리 토방 밑에 두고 가. 아 아 아니. 고 고무신 조 좋아. 너 신발 찢어져도 나 몰른다잉. 난중에 발에 피 철철 흘림서 엉엉 울어도 나 몰라잉? 어 허 어엉. 야! 근디 저 자전거에 매달려 오는 것이 뭐냐? 앞에 길을 막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쩌렁쩌렁 종소리를 울리며 달려오는 자전거에 매달린 것은 영근이였다. 자전거가 큰지 영근이가 작은지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하고 파이프 사이로 다리만 집어넣어 씰룩거리며 페달을 굴리고 있었다. 저렇게 비틀어진 자세를 하고도 어떻게 제 몸집보다 배는 큰 자전거를 타는지 묘기를 보는 듯했다. 동춘서커스 나가냐? 어디 가냐? 방냄이도? 넌 어디 가는디? 아 씨, 너그 철공소 간다. 동네에 있는 유일한 철공소, 우리 삼촌이 사장이자 직원인 곳이다. 말이 좋아 철공소지 늘 경운기며 탈곡기며 농기계들이 드나들었고, 자전거쯤은 일거리로 치지도 않았다. 철공소에는 늘 베어링이 굴러다녀서 다른 애들이 유리구슬로 구슬치기를 할 때 나는 쇠구슬을 절그럭거리고 다녔다. 왕구슬 열 개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쇠구슬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나는 그깟 왕구슬 따위와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 생일에 한 세 개쯤 선물할 뿐이었다. 영근이는 그중 구슬 선물을 가장 많이 받은 녀석이었다. 왜? 짐빠가 고장 났다고 삼촌헌티 봐 달란다. 잘만 타고 오드만. 아녀, 확실히 어디가 휘었나벼. 멫 번을 자빠질 뻔했어야. 그려, 가도 욕본다. 가 봐. 너는 어디 가는디? 읍내. 읍내? 중리 가서 버스 탈라고? 방냄이는? 방냄이도 읍내. 너그 둘이 읍내 간다고? 뭐덜라고? 강아지풀이 낼름거리고 구름이 발라당허는 것 보러. 뭐? 방냄아, 야가 지금 뭐라고 허냐? 모 모 몰러. 허허허엉. 거 거 걸어서 간다. 야떨이 점점 모를 소리를 허네. 야, 쫌만 지둘려 봐. 아니 천천히 가. 내가 후딱 짐빠 맡기고 따라붙을랑게 천천히 가고 있어잉? 영근이는 또 서커스를 하며 작아져 갔다. 영근이의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자전거는 더욱 커다랗게 보였다. 넘어지면 낑낑거리며 잘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는 무거운 자전거를, 그 위에 올라탔다고 저렇게 재주 부리듯 하는 걸 보면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저 자전거 나이가 예닐곱 살은 되었겠다. 영근이 엄마가 산통을 겪을 때 영근이 아버지가 저 짐자전거에 싣고 읍내 병원까지 내달렸다고 했다. 산달이 가까워오자 영근이 아버지는 자전거 짐받이에 가마니를 깔고 담요를 덮고 했단다. 혹시라도 한밤중에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차도 안 다니는 시골 마을에서 대책이 없으니 그리 준비한다 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영근이 동생은 개도 안 짖는 한밤중에 양수를 터뜨렸고, 영근이 아버지는 영근이 엄마를 불끈 들어, 아니지 영근이 아버지의 체구로 봐서는 불끈 들었을 것 같지 않다. 암튼 영근이 엄마를 싣고 달렸다지, 저 신작로를. 말이 신작로지 애기 머리통만 한 돌덩이들이 심심치 않게 덤벼드는 그 돌밭 길을 어찌 달렸을까. 그 덜컹거리는 가운데 영근이 엄마는 아기가 나오려는 걸 참 잘도 참았겠다. 일설로는 창북리에서 밤늦도록 막걸리를 마시고 갈지자로 경운기를 운전해 오던 영근이 삼촌을 중간에 딱 만나서 자전거와 경운기를 바꿔치기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영근이 아버지의 무용담에 부러 찬물 끼얹을 이유가 없던 탓에 다들 뻘소리려니 했다. 큰일 한 자전거는 영근이 동생이 집에 오던 날, 막걸리도 한 병이나 받아 잡쉈다. 암튼 참 기특한 자전거이니 녹이 슬고 휘었다고 내버려둘 수가 없을 것이다. 아 씨, 천천히 가랑게 벌써 중리까지 왔냐? 가 가 가. 방냄아, 정말로 해 지기 전에 올 수 있어? 어? 어 허 어엉. 진짜지? 해 지기 전에 와야 혀, 엄마 오기 전에. 해, 지기 전에. 그럼 같이 가게. 영근아, 너도 갈래? 나 돈 없는디? 버스 안 탄당게. 진짜로 걸어서 갈라고? 진짜로? 야가 뭣을 들었디야, 귓구녘에 먼지 들어갔냐? 아! 아! 아! 아이 씨! 아퍼! 근디 읍내를 뭐덜라고 가는디? 방냄이, 구경 간디야. 구경? 뭔 구경? 강아지풀 낼름거리는 것도 보고, 구름이 발라당허는 것도 보고, 시장 구경도 허고. 아, 잠깐! 시장 구경? 그럼 자전거포도 있냐? 방냄이는 혼자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있겄지? 시장에 자전거포 없겄냐? 부안 읍내가 얼매나 큰디. 글지? 있겄지? 아 씨,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자전거포는 뭣 허게? 삼촌이 느그 자전거 못 쓴디야? 다리 아래에는 늙어빠진 쪽배가 여럿 매여 있었다. 한눈에도 물일 나간 지 오래돼 보이는 버려진 듯한 배였다. 오늘 제 할 일 못 허는 것들, 여럿 보는구먼. 뭐? 아니, 자전거포는 왜? 아 씨, 자전거 좀 바꾸자고 바꾸자고 해도 쓸 만헌 자전거가 없더라고 우리 아버지가 그러잖냐. 저놈의 짐빠, 엔간치 부려먹었어야지. 우리 삼촌은 뭐라는디? 이제 그만 바꾸리야? 아니, 느그 삼촌이 뭐 그런 말이나 허는 양반이냐? 그냥 맨날 웃기만 허지. 긍게로 내가 가서 한번 보고 아버지헌티 이참에 바꾸자고 씨게 말을 히야겄어. 니가 바꾸자고 헌다고 느그 아버지가 바꾼대? 그런 거시기가 있지. 뭣인디? 뭔 쪼간이 있길래 그려? 있어, 그런 거시기가. 이히히히히. 말헐까? 저번 날에 엄마가 아버지 찾아오라고 혀서 저녁 늦게 종점상회에 갔잖냐. 거그서 딱 봐 버린 것이지. 돈을 세고 있더라고, 이만큼을. 난 그냥 그런갑다 혔는디 아버지가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잖냐. 음마, 뭔 돈이대? 나야 몰르지. 알 것도 없고! 글서 아버지헌티 탁 얘기했잖냐, 대신 자전거 새로 사자고. 음마, 간댕이가 부었는갑다잉. 긍게 나도 몰르겄어야,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근디 아버지가 좋은 놈 나오면 그러자고 하더라고. 뭐 글고서 채일피일 미룰라고 그렸는지 몰르지만 내가 내 눈으로 좋은 놈 딱 보고 와버리면 어쩔 것이여. 자전거가 그것이 뭣이 그렇게 중허다고? 야, 저기 방냄이가 뭐라고 허는디? 앞서 가던 방남이가 주먹을 쥐고 우리를 향해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 너 우리헌티 주먹질허냐? 내 낼름, 낼름. 방남이 주먹 안에 든 건 강아지풀이었다. 솥뚜껑만 한 손이 쥐엄쥐엄 하니 강아지풀이 뽀록뽀록 주먹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뭐여? 이것이 낼름낼름이여? 내 낼름, 낼름. 야, 영근아! 낼름! 낼름! 에이여, 메롱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아기 적에 이 강아지풀과는 천적이었다고 한다. 아기를 맡길 데가 없던 엄마는 밭일을 나갈 때 나를 데리고 가서 바구니에 넣어둔 채 일을 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더란다. 달려가서 보면 아무 일도 없고, 다시 우는 소리에 달려가 보면 아무 일도 없고. 샛거리 시간이 되어 가만히 아기 바구니를 지켜보니 바람이 불 때마다 바구니 속으로 강아지풀이 넘실거렸고, 그때마다 아기는 숨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렸단다. 대체 이 강아지풀 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내가 무서워한 게 과연 강아지풀이었을까? 문득문득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일깨워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바 바 바다. 아이 씨, 뭐라는 거여. 야, 이 방냄아, 말 좀 똑바로 혀! 아, 바다였다고 하잖어. 이 길이 옛날에는 바다였다고. 에이, 말도 안 돼. 바다가 어떻게 땅이 되냐? 아녀, 나도 들었는디? 난 첨 듣는디? 야, 넌 전학 왔잖여. 어찌케 아냐. 난 여기서 태어나서 쭉 살었는디 내가 더 잘 알지. 여기 간척헐 때 우리 아빠도 돌 날랐디야, 총각 때. 너 태어나기 전에? 글지, 너도 태어나기 전에. 그럼 이 길은 몇 살이냐? 한 열 멫 살은 되지 않겄냐? 그려서 안직도 이렇게 길에 돌댕이들이 많은 것이냐? 글지도 모르지. 옛날에는 저어기 논들도 다 바다였당게. 그려? 논도 다? 어쩐지 밥이 좀 짜드라. 뭔 밥이 짜! 아, 우리 집 밥은 짜. 진짜여! 진짜면 느그 엄마가 밥에다가 소금을 한 주먹 집어넣는가 비지! 아이 씨, 진짜랑게. 아, 그렇다고 혀 두고. 그럼 이 흙을 어디서 다 퍼온 거여? 나사 모르지. 어디서 갖고 왔겄지. 거그는 그럼 민둥산 되었겄다잉? 산을 깎어서 갖고 왔을까? 그럼 땅을 파서 갖고 왔겄냐? 거그는 바다가 되았게? 그렸을까? 그럴지도 몰르겄다잉. 뭣이 그럴지도 몰라. 뭐 사금파리 맞추기 허냐? 바다는 땅으로 만들고 땅은 바다로 만들게? 심 팽기게 뭣 허는 짓이여? 긍가? 그나지나 이 길이 글고 봉게 너보다 형님이다잉? 형님! 하고 불러라. 예, 예, 형님! 에이여, 뽕이다! 영근이가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하고는 지레 저만치 도망쳐갔다. 영근이는 체구가 작은 대신에 달리기를 잘했다. 내가 운동장 한 바퀴 도는 사이에 두 바퀴를 돌고 들어와 여유롭게 웃고 있는 얄미운 녀석이었다. 아무리 쫓아가도 안 되는 줄 알면서 뒤돌아보며 약 올리는 영근이를 기어코 쫓아 달렸다. 따릉따릉! 너, 영근이 아니냐? 어, 안녕하세요? 너 잘 만났다. 안 그려도 일손은 부족헌디 나 한 사람 빠져나올랑게 어찌케나 켕기던지. 너 우리 집에 좀 갔다 와라. 예? 제가 왜요? 말꼬리가 잦아드는 걸 보니 조금만 밀어붙이면 고개 푹 숙이고 시키는 대로 갈 녀석이다. 영근이 저랑 노는데요?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방남이는 어느새 저만치 앞에 가 있었다. 그 큰 덩치가 어디 풀 몇 개에 가려진다고 나름 숨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 긍게 후딱 갔다 와서 놀아도 되잖여. 우리 집에 가서 새참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좀 보고 아줌마랑 같이 갖고와잉. 제가, 어떻게요? 가지 말라고 엉덩이를 꼬집자 움찔하면서도 영근이는 아저씨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했다. 이것 타고 후딱 갔다 오면 되지. 그때 난 보고야 말았다, 반짝하고 섬광을 발하는 영근이의 눈빛을. 넌 배신이야. 이 자전거요? 정말 이거 타고 갔다 와도 돼요? 그려. 너 자전거 잘 타지? 이것은 느그 집 거보다 좋은 것인게. 어찌케 뒤에 아줌마 태우고 올 수 있겄냐? 아, 예! 다녀오겠습니다! 나쁜 녀석. 하긴 자전거 때문에 눈이 멀어 아버지하고도 거래를 한 놈이 우리라고 못 버릴까? 내가 쏘아 날린 눈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이순신 장군도 전사했을 테지만 영근이는 자전거를 타고 눈 화살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미안! 담에 놀자! 잘 갔다와잉! 아저씨가 등을 돌려 논길로 저벅저벅 걸어 저만치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방남이에게로 뛰어갔다. 방남이는 그때까지 들풀 몇 개에 몸을 가린 채 웅크려 있었다. 다 보여! 엉? 어 허어엉. 가자! 어. 여 여 영근이는? 영근이는 잊어. 그놈은 이제부터 배신자여. 내가 준 쇠구슬이 몇 갠디 지가 날 이렇게 배신해? 어쩌면 이 길에 영근이를 기어이 끌어들인 데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 얘기처럼 방남이는 위험한 존재니까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는, 여럿이 놀 때는 몰라도 단둘이 있지는 말라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워대지 않아도 어떤 무언의 규칙들은 놀랍도록 강하게 학습되었다. 방남아, 부안 읍내는 아직 멀었지? 어, 허어엉. 방남이와 나는 여전히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조막만 한 녀석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길에 적막이 감돌았다. 누런 돌 하나, 누런 돌 둘, 누런 돌 셋. 누런 돌들을 세다 지쳐 이번엔 큰 돌 사이를 껑충거리며 뛰었다. 다 다 다친다. 방냄이 너는 고무신이라 이런 거 못하지? 어 어, 다 다친다. 그 많고 많은 돌을 발로 차기도 하고 비석치기도 하고 논으로 던져버리기도 했지만 길은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았다. 방냄아, 내가 왜 읍내에 갈라고 하는지 알어? 모 모 몰라. 있지, 내가 네 살 때 여기 계화도에 와서 1년을 살았다. 그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어 가지고 우리 엄마랑 아빠랑 나랑 뿔뿔이 다 흩어졌단다. 그려서 우리 삼촌이 서울로 와서 나를 데리고 내려왔는디, 내려오는 기차에서 시종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든가 처음엔 시끄럽다고 뭐라고 허던 사람들도 난중에는 같이 울었단다. 가시내 울음에 한이 서렸었다냐 뭐라냐. 결국 지 풀에 못 이겨서 잠이 들었는디 부안 읍내에 딱 도착했을 때 내가 뭐라고 헌 줄 아냐? 삼촌, 나 배고파. 어 어, 배 배고파. 아니, 나는 기억이 안 나는디, 삼촌이 그러는 거여. 내가 그렸다고, 삼촌 배고파, 그렸다고. 말이 되냐? 어찌케 그렇게 엄마 떨어지기 싫어서 울던 애기가 여그 왔다고 눈물을 딱 그치고 배고프다고 한다냐. 근디 내가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는 거여. 읍내 중국집에서. 야, 거시기 말이지. 네 살짜리 애기가 어찌케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냐, 안 그러냐? 아까 내 동생 봤지? 가가 네 살인디 안적도 밥 가지고 장난치고 시 숟가락이나 겨우 먹는디, 어찌케 내가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냐고. 내가 절대 아니라고 한게로 삼촌이 절대 맞다고, 니가 그맀다고. 그려서 내가 한번 확인해 볼라고 허는 거여. 터미널 근처에 중국집이 열 개가 되겄냐, 백 개가 되겄냐? 옛날에 이런 애기가 있었냐고 물어봐야지. 어 어 어. 그도 그렇게 생각허냐? 내가 짜장면 한 그릇 다 먹었다고? 아 아 아니. 그려, 나는 안 먹었다고. 내가 기억나는 건 기차 안에서 울던 거시기, 딱 거기 한 부분이란 말여. 다도 아니여. 그냥 내가 우는디 내 앞에서 삼촌이 같이 울던 그 모습만 기억이 난단 말여. 근디 내가 아무리 기억을 못 헌다고 나헌티 없던 일을 뒤집어씌우면 안 되지. 이것은 쇠구슬 백 개하고 바꾸자고 해도 안 되는 일이란 말여. 아 안 돼, 안 돼. 애꿎은 돌멩이에 울분을 실어 발길질을 해댔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흙먼지 바람이 일었다. 뿌연 바람은 점점 커지고 커져 이내 짐승 같은 소리마저 질러대기 시작했다. 버 버 버스다, 비 비 비켜! 쿠르르릉 쿠르르릉 쿠당탕탕 탕 탕 탕. 바퀴 사이로 돌들이 튀어 날아올랐다. 쿠쿠 탕탕 투다다당 탕 탕. 버스를 피해 옆으로 비켜선다는 것이 그만 발을 헛디디며 나는 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발목이 접질렸다 싶을 때 날아온 돌덩이는 이마를 내리찍었다. 쿠다당 투당탕 탕탕 쿠다다당 쿠르르르릉. 으아아앙! 피 피 피다, 머리, 피 피. 그 순간 떠올랐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멀미에 시달려 급히 내린 나는 길바닥에 시커먼 가락들을 쏟아 놓았었다. 채 소화되지 못한 짜장면 면발이 목구멍에서 걸려 대롱거렸고, 삼촌은 손으로 그걸 잡아 빼내고 등을 연신 두들겨댔다. 아이고, 불쌍한 것, 아이고 불쌍한 것. 그리고 그날 나는 삼촌 등에 업혀 계화도로 들어온 것이었다. 방냄아, 달이 보여? 어 어 보인다, 달. 별은 떴어? 응, 벼 벼 별. 별 많이. *김성숙: 1995년 전주MBC 방송작가 공채. <판소리에 숨어있는 우리의 랩>(1999,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 <그냥 버리기 아까운 전라도 사투리>(2001, 방송대상 작품상), <다큐멘터리 문자예술 서예>(2007,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다큐멘터리 산조>(2003,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독립다큐멘터리영화 <메콩강에는 악어가 산다(2017)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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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3 18:53

[불멸의 백제] (242) 12장 무신(武神) 18

고개를 든 계백이 옆쪽에 선 하도리를 보았다. 하도리는 외면한 채 못 들은 척 하고 있다. 계백이 우에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도 아스나 성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노의 생존시절에 시녀를 때려 죽인 일도 있었다면서? 예, 주군. 우에노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룻밤 고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스나가 하인들을 시켜 때려 죽인 것이다.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웠지만 고노에게 둘러대려는 핑계다. 주위 사람들은 누명을 씌웠다는 것을 다 안다. 아스나는 겉으로는 청초하고 고고한 성품처럼 보였지만 내면(內面)은 잔인했고 오만했으며 투기와 고집이 세었다. 중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아스나로는 안된다는 민의(民意)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계백이 말을 이었다. 넌 그대로 영지를 지켜라. 나는 네가 필요하다. 우에노가 눈만 껌벅였을 때 계백의 시선이 하도리에게 옮겨졌다. 하도리. 예. 주군. 다 들었을 테니 네가 히지성(城)에 가서 처리를 해라. 예. 주군. 계백이 다시 우에노를 보았다. 우에노. 너는 하도리가 히지성에서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그때 우에노가 입을 열었다가 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하도리가 서둘러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아마 하도리는 너나 나하고는 달리 사감(私感)을 품지 않고 처리하고 돌아올 것이다. 나흘 후, 소가 가문(家門)의 수장(首長)인 전(前) 섭정 소가 이루카를 맞는다. 이곳은 에미시의 대저택, 이루카가 찾아온 것이다. 양쪽 중신들이 늘어앉았고 두 부자는 마주보며 앉았는데 이루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님 들으셨습니까? 아, 귀가 먹지 않았으니까 지금 네 말도 듣는다. 요즘 이루카가 제멋대로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에미시가 내쏘듯 말했다. 그때 이루카가 헛기침을 했다. 계백의 위사장 하도리란 자가 옛 고노의 영지로 들어가서 살육을 했더군요. 나도 들었다. 소실로 삼았던 고노의 처와 자식을 무참히 베어 죽였습니다. 계백이 시킨 것이지요. 너는 아느냐? 무엇을 말씀이오? 아스카의 시선을 받은 에미시가 빙그레 웃었다. 죽은 고노는 소실이 한명도 없었다. 그랬던가요? 이번에 죽은 고노의 처가 가만두기 않았기 때문이지. 투기가 심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번에 그 여자가 이쓰와성으로 데려와 달라고 백방으로 손을 썼던 모양이다. 그래서 죽인 겁니까? 계백이 죽인 것이 아니야. 어깨를 편 에미시가 쓴웃음을 지었다. 위사장한테 처리를 맡긴 것이지. 부하한테 책임을 떠넘긴 것 아닙니까? 계백의 용인술이다. 정색하고 말한 에미시가 이루카를 보았다. 반면교사야. 너는 남의 약점이나 장점을 보고 배우도록 해라. 앞으로 보기 싫은 소실은 위사장을 시켜서 꼭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네 교만이 언젠가는 네 목을 조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 꼴을 보려면 아버님은 장수하십시오. 그때 헛기침을 한 에미시의 중신(重臣) 하나가 말했다. 저녁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자리를 옮기시지요. 가끔 있는 일이어서 두 부자는 일어섰고 중신들도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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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3 15:59

[불멸의 백제] (241) 12장 무신(武神) 17

거성(居城)인 이쓰와 성으로 돌아온 계백은 내정(內政)에 집중했다. 전(前) 영주들이 쌓아놓기만 한 군량을 풀어 굶주리는 주민에게 빌려주고 추수가 끝나면 갚으라고 했더니 창고가 금방 비워졌다. 시도때도 없이 부역으로 징발해온 악습을 철폐하고 한달에 한번, 그것도 부역에 나온 주민에게는 양곡으로 부역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언제 부역날이 있느냐고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을 계백령 전체에 시행한지 석달만에 주민이 2할이나 늘어났다. 무신(武神) 계백에 대한 칭송이 아스카 조정 근방뿐만 아니라 멀리 동쪽 끝까지 전해졌다. 다른 영주들이 계백령 흉내를 내었지만 바탕이 다르니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계백은 본국에서 성주(城主)를 지내 성 내 주민들의 의식주를 보살펴준 경험이 있는 영주다. 본국 백제는 왜국보다 문화나 제도가 수백년 앞선 문명국인 것이다. 내치에 힘쓴지 석달이 지난 늦가을의 어느날 저녁, 계백이 거성의 침실에서 다나에의 시중을 받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다나에가 말했다. 대감, 제가 지난달부터 끊겼습니다. 무슨 말이냐? 예, 임신을 한 것 같습니다. 몸을 돌린 계백이 다나에의 반짝이는 눈을 보았다. 얼굴은 어느덧 붉게 달아올랐다. 계백의 씨가 다나에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냐. 잘했다. 아들을 낳으면.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무장(武將)으로 키워라. 예, 대감. 다나에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계백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 순간부터 다나에의 지위는 부인으로 상승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네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네 자식도 인정을 받는다. 예, 대감, 명심하겠습니다. 왜국에 계백의 자손임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예. 계백이 지그시 다나에를 보았다. 소실이 넷이나 된다. 계백가(家)의 자손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왜국이 백제화(百濟化)가 된다. 이제는 히지성주가 된 우에노가 이쓰와성으로 찾아왔을 때는 첫눈이 내렸을 때다. 청에서 우에노를 맞은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네가 성주 노릇을 잘 한다고 들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예, 말씀드릴 일이 있사온즉, 이것은 은밀히 말씀을 드려야만. 청에 두손을 짚은 우에노가 쩔쩔매면서 말을 잇는다. 주군, 주위를 물리쳐 주시면. 그러냐?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머리를 들고 중신들에게 말했다. 위사장만 남고 다 물러가라. 그러자 하도리만 옆쪽 기둥 옆에 섰고 계백과 다섯걸음 앞에 꿇어앉은 우에노 둘만 남았다.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말해라. 예, 아스나님에 대한 말씀을. 도성에 온다는 이야기냐? 불쑥 계백이 묻자 우에노가 숨을 들이켰다가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얼굴이 굳어져 있다. 주군,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내실 하인 편에 편지를 보냈더구나. 너는 모르고 있었느냐? 예, 주군. 그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도성으로 두 모자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전하려고 왔느냐? 아스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무엇이냐? 그러면 안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우에노가 붉어진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아스나님은 투기가 심하시고 기가 세어서 분란을 일으키게 되실 것 같습니다. 제 친척이지만 계백령에는 어울리지 않으신 분입니다. 우에노가 이를 악물었다가 풀고 말을 이었다. 저, 우에노가 아스나님 모자를 모시고 은퇴를 하려고 왔습니다. 국경 근처의 절로 모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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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2 20:05

[불멸의 백제] (240) 12장 무신(武神) 16

백제방에서 계백은 왕자 풍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다. 풍이 묵고 가라면서 주연을 열었기 때문이다. 백제방의 고위 관원, 계백을 따라온 화청과 장수들이 모두 참석한 주연이다. 달솔, 대왕께서는 아직도 신라와의 통합을 바라시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술에 거나하게 취한 풍이 넌지시 말했기 때문에 계백은 긴장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있어서 다른 사람은 듣지 못했다. 계백이 몸을 조금 기울였고 풍이 계백의 귀에 입술을 가깝게 대었다. 신라는 이미 김춘추가 왕이 된 것이나 같고 당의 1개 현이 되었다.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니 신라를 빨리 멸망시킬수록 이롭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신라는 이미 영토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그때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당왕 이세민이 놔두지 않을 것이다. 김춘추는 무서운 놈이다. 동방(東方)의 한신이지요.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다시 웃은 풍이 길게 숨을 뱉었다. 김춘추는 이제 당(唐)에 업혀있는 몸이야. 당왕을 주무르는 영웅이지. 운(運)이 끝까지 따라줄까요?김춘추의 운이 강하면 백제와 고구려의 대륙진출은 일장춘몽이 되지. 풍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는 왜국에서 기반을 더욱 굳혀야 한다. 풍은 이 말을 하려고 김춘추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아스나가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우에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해시(10시) 무렵, 늦은 시간이다. 이곳은 고노성의 내성 마룻방 안.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에노는 고노성 성주대리를 맡고 있는데다 아스나의 친척이기도 하다. 마님, 부르셨습니까? 우네노가 묻자 아스나가 앞 쪽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우에노님, 주군께선 지금 어디 계시지요? 어제 백제방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에노가 바로 대답했다. 방주 전하를 뵙고 오실 것입니다. 어디로 오실지 알고 계세요? 그것은. 머리를 든 우에노가 아스나를 보았다. 어제 계백은 고노성을 떠난 것이다. 백제방에 간 것은 확실하지만 계백령의 도성으로 돌아갈지 또는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이제 40만석 가깝게 되는 대영주인 것이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기마 위사대 1천기가 따른다. 그때 아스나가 입을 열었다. 우에노님, 제가 도성에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히지하고 같이 말입니다. 히지님은 주군(主君)의 양자가 된 신분, 주군과 함께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나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고 두 눈이 반짝였다. 우에노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영주 고노가 생존시에도 아스나는 당찬 영주 부인으로 소문이 났다. 고노가 오히려 심약한 성격이어서 아스나를 여영주라고 가신들이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 아스나가 말을 이었다. 나도 이젠 주군의 어엿한 소실, 이런 좁은 영지의 작은 성에 박혀 있으면 다른 소실들의 기세에 밀릴 가능성이 많아요. . 주군을 가깝게 모셔야 잊혀지지 않고 무시를 당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때 우에노가 고개를 들고 아스나를 보았다. 마님, 조금 기다려보시지요. 아스나의 시선을 받은 우에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서두르시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가 있습니다. 남녀 관계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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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2 14:02

전북작가회의 제11회 불꽃문학상에 오창렬 시인

제11회 불꽃문학상 수상자로 오창렬 시인(56)이 선정됐다. 수상 작품은 올해 발표한 시집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모악). 우슬, 반 넘게는 마음으로도, 인간의 품격 등이 수록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오롯이 담겨있다. 심사는 정양최동현김용택안도현복효근 시인과 임명진 평론가, 이병천김병용 소설가, 김종필 아동문학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는 인간과 자연, 우리 사는 사회에 대한 통찰이 더 깊어지면서도 서정시가 지니는 언어의 결과 따스함을 잃지 않고 있다며 인간의 품격을 깊은 울림으로 그려냈다고 밝혔다. 오창렬 시인은 부족한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분들로부터 인정과 격려를 받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내 삶과 시가 사람들의 삶으로 한 발짝 보폭을 넓혀볼 용기를 얻었다. 용기를 주셨다는 점에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원 출신인 그는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계간시지 시안 신인상에 하섬에서 등 4편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된 바 있으며, 제8회 짚신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전북작가회의 정기총회가 열리는 2019년 2월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종필)가 2006년 제정한 불꽃문학상은 어둠과 혹한 속에서 빛을 발하는 불꽃처럼 뜨거운 정신으로 문학의 길을 밝혀가길 바라는 동료 문인들의 격려가 담긴 상이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2.11 19:57

[불멸의 백제] (239) 12장 무신(武神) 15

계백은 달솔 품위로 임명되고 나서 왜국 백제방의 제 2인자가 되었다. 달솔은 백제 16개 관등 중 2품으로 좌평 다음이다. 동, 서, 남, 북, 중 5개 방의 방령(方領)을 맡거나 중앙관서인 내관(內官) 12부와 외관(外官) 10부의 장(長)이 달솔 관등이다. 또한 본국(本國) 외의 영토인 22개 담로의 태수도 대부분 달솔 관등인 것이다. 왜국의 백제방은 특별한 경우여서 왕자를 보내 왜왕과 함께 통치한다. 고노 영지의 분란을 수습하고 돌아온 계백이 먼저 백제방으로 찾아가 풍왕자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잘했다. 보고를 들은 풍이 칭찬부터 했다. 내가 여왕께 보고드리고 소가 섭정을 불러 영지를 네 앞으로 정리하겠다.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소실이 하나 더 늘었구나. 양자도 한 명 얻었고. 예, 전하. 씨를 뿌려서 곡식을 얻는 법인데 그대는 남이 뿌린 곡식을 창고에 쌓기만 하려느냐?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남이 거둔 곡식도 제 손에서 잘 자라면 제 곡식이 됩니다. 고노의 자식이니 왜인(倭人)이겠지만 씨가 좋으면 좋은 종자가 되겠지. 잘 기르지요. 왜국의 지도층이 모두 백제계이지만 왜인의 균형도 필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신라가 자주 당(唐)에 걸사표를 보내 당군(唐軍)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풍이 화제를 바꾸었다. 백제방의 첩 안에는 중신(重臣) 10여명이 둘러 앉았지만 대화는 풍과 계백이 나누고 있다. 풍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 김춘추,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이용하여 여왕을 시해한 후부터 신라인의 민심(民心)이 김씨 왕가(王家)를 떠났기 때문이다. 김춘추에 대한 민심이 나쁜 것입니까? 바로 그렇다. 정색한 풍이 계백을 보았다. 김춘추 그 자는 당(唐)의 신하가 되겠다고 진즉부터 당왕(唐王)에게 약속을 했지 않느냐? 제 아들을 당왕의 시종으로 보내고 신라 관원에게 당의 관복을 입히고 신라가 당의 속국이 아니라 1개 주(州)로 인정 받기를 바라는 놈이다. 신라의 사직을 지킨다는 명분이나 그것은 김춘추 자신의 욕심일 뿐이다. 백제의 왕 의자나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대륙으로 진출하여 천하(天下)를 제패하려는 것과는 반대다. 신라가 반도의 구석에 박혀 밖으로 뛰쳐나갈 길이 막혀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때 풍이 불쑥 물었다. 달솔, 네 영지가 얼마나 되었느냐? 예, 이번 고노의 3만8천석까지 38만3천석으로 늘어났습니다. 소가 가문의 영지를 합하면 두 부자(父子)가 200만석 가깝게 된다. 풍이 말을 이었다. 50석당 군사 1인을 모은다고 해도 4만명이야. 전시(戰時)에는 3명도 모을 수 있으니 10만이 넘는 군사가 된다. 전하, 소가 가문이 백제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권력욕은 절제하기가 어렵다. 정색한 풍이 계백을 보았다. 수천년 역사에서 상대를 믿었던 왕국이 꼭 망했다. 그리고 그 망한 왕국은 패륜과 무능, 압제로 매도당했다. 너도 그것을 명심해야 된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승자가 정의다. 장민호기자 ledzep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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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8.12.10 20:33

[불멸의 백제] (238) 12장 무신(武神) 14

그날 밤, 침상에 누워있던 계백이 문이 열리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아스나가 들어서고 있다. 기둥에 붙여놓은 양초의 불꽃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그 바람이 슬쩍 계백의 코를 스치면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여자의 체취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아스나가 잠간 눈동자를 고정시키더니 눈길을 내렸다. 볼에 홍조가 피어났다. 화장기가 없는 피부는 창백하기 때문에 표시가 난다. 아스나가 시선을 내린 채 다가온다. 한 걸음, 두 걸음, 흰색 비단 겉옷을 입고 두 손을 앞에서 마주 쥔 채 다가오는 것이다. 품위가 배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소실을 상대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아스나는 중키에 가냘픈 몸매다. 이윽고 침상 끝에 선 아스나가 시선을 들어 계백을 보았다. 이제는 얼굴에 홍조가 가득 덮였다. 불빛을 받은 눈도 번들거리고 있다. 아스나의 꽃잎 같은 입이 열렸다. 벗고 들어갈까요? 그러는 게 좋겠다. 그러자 아스나가 그 자리에서 겉옷을 벗어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마치 나비가 껍질을 벗고 나오는 것 같다. 그 순간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아스나의 알몸이 드러난 것이다. 아스나는 겉옷 빝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아스나가 한 손으로 젖가슴을, 다른 손으로 음부를 가렸지만 그것이 더 자극적이다. 아스나가 그 자세로 계백을 보았다. 얼굴이 더 붉어졌다. 침상으로 올라갈까요?들어오라. 아스나가 한쪽 다리를 들어 침상에 오르는 순간 검은 숲이 드러났다. 숲속의 선홍빛 연못도 보인다. 계백이 이불을 들쳐서 금방 태어난 아이 같은 아스나의 몸을 받아들였다. 아스나가 바로 계백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더니 두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추워요. 과연 알몸은 바깥 공기를 맞아 차다. 계백이 아스나의 어깨를 바짝 감싸 안았다. 다리 하나가 자연스럽게 아스나의 하반신을 둘렀다. 그때 아스나의 숨결이 계백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장군, 감사드립니다. 이제 네 낭군 아니냐? 예, 낭군. 아스나의 손이 뱀처럼 미끄러져 내려와 계백의 남성을 쥐었다. 그러더니 숨을 들이키면서 얼른 손을 떼었다. 계백이 아스나의 입을 입에 넣듯이 붙였을 때 뜨거운 혀가 꿈틀거리며 빠져나왔다. 다음날 오전, 계백은 아스나, 히지와 함께 청에 올랐다. 전(前)에 아스나의 남편인 영주 고노가 생존했을 때와 같은 분위기다. 고노 대신으로 계백이 영주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계백은 아스나를 옆쪽에 앉게 했고 히지의 자리는 그 가운데다. 청 안에는 계백의 장수들뿐만 아니라 성에 남아있던 고노의 가신들도 불렀기 때문에 좁은 청이 가득 찼다. 아스나는 처음에는 부끄러운지 시선을 내린 채 얼굴을 붉혔다가 곧 냉정을 되찾았다. 이제 계백의 소실인 것이다. 그때 슈토가 계백에게 보고했다. 대감, 성 밖 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중신(重臣) 오시마와 오우치가 일족과 함께 도주하다가 생포되었습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그놈들을 따르던 부하까지 다 몰사시켜라. 예엣! 앞으로 이곳은 히지성(城)으로 부른다. 히지가 성장하면 이곳 성주가 될 테니 가신들은 잘 보좌하라. 추상 같은 명이다. 모두 머리를 숙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우에노가 중신(重臣)으로 성의 수비장을 맡아 히지를 모시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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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9 19:52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옹골진 전주의 길맛 - 최기우

전주는 길에도 맛이 있다. 거리마다 늘어선 맛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쭉 뻗은 길이든, 갈림길이든,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길이든, 전주에서의 걸음과 걸음은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소살소살 물소리 한가한 전주천과 삼천의 산책길, 온갖 나무가 넉넉한 황방산과 건지산 숲길, 지금은 폐선이 돼 버린 아중역과 팔복동의 기찻길, 굽이굽이 이어진 완산동과 노송동의 골목길, 젊은 기운이 넘치는 객리단길, 취객들의 발길이 흥성거리는 삼천동 막걸리골목과 신시가지의 맛집 거리, 때깔 좋은 한복의 행렬이 화사한 한옥마을 태조로. 낯설면 낯선 만큼, 낯익으면 또 낯익은 그만큼 설레고 다정한 전주의 길들. 우리가 손잡고 내딛는 걸음마다 소중한 인연과 사연들이 향기로 번진다. 곡선으로 흐르는 전주의 길 전주의 골목과 거리에선 꼭 해찰해야 한다. 전주의 길은 그 자리마다 금세 마주칠 것 같은 얼굴들을 감춰놓았기 때문이다. 기웃기웃, 두리번두리번, 딴 길로 새면 또 다른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그 길은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정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포근하다. 북적이든, 한적하든, 멀든, 가깝든, 고단하든, 즐겁든 전주의 길에는 이 길로 다니던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발자국에 발자국이 쌓이고, 그 위에 또 발자국이 쌓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도 구불구불 이야기를 담은 길을 낸다. 길과 길이 잇는 선에 우리가 있다. 전주는 직선보다 곡선을 선택했다. 곡선은 사람의 길이다. 전주는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전봇대와 가로등을 옮기며 인도를 비우고 있다. 전주역 앞 첫마중길이 한 예다. 직선을 버리고 곡선을 되살려, 자신을 굽히니 마음이 보이고, 모든 것이 평화롭다. 전주가 매달 두 차례 차의 길을 시민에게 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를 잠시 밀쳐두고 사람과 생태, 문화로 채우는 차 없는 사람의 거리에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서두름 없는 전주의 길. 그곳에 우리의 자화상이 있다. 생동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마음과 몸짓. 굽이굽이 인생사, 시름 안고 길에 서면 어느새 길은 우리를 보듬고 다독인다. 질기지만 고운 인연과 일상의 소박한 풍경이 자분자분 말을 걸어온다. 이 길은 결코 그 끝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곳을 향해 길이 열린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길은 나서는 이에게 언제나 열려 있고, 그 길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지는 나서는 이의 몫이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의 꿈도 성장한다. 그 길은 우리가 함께 걷는 길이며, 휘파람 불며 가는 길이다. 바른 마음으로 걷는 길이며, 새로운 도전으로 다시 시작하는 길이다. 사연도 깊은 전주의 골목골목 전주한옥마을에는 처마 낮은 골목들이 누군가의 발길을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서 있다. 골목들은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며 낱낱이 흩어진다. 골목쟁이에 이르렀는가 싶다가도 다시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전주한옥마을의 골목과 골목들. 어디로 접어들던지 이름도 모를 골목길들은 사연이 깊다. 그리고 끝없는 좌절과 소망의 회오리 숨결들이 점점이 고을고을 새겨진 골목길들을 결코 놓치지 말라. 붙잡으라. 그 이야기와 삶의 흔적들을 지금 우리가 놓치면, 이제는 아무도 못 찾는다. 끝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와 마을과 집안마다 흘러내리는 이 숨결과 이야기를, 갈피마다 주워 담아 품고 길러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최명희 『혼불』 제3권) 향교길은 검푸른 대나무 숲에서 나온 바람 소리가 마중을 나와 있다. 맑은 소리는 걸음을 떼는 길 위로 푸르게 깔린다. 쌍샘길 골목을 누비면 울울창창 숲을 이룬 오목대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최명희길은 길 한복판에 서 있는 배롱꽃 그늘에 앉아 책장을 넘기기에 그만이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 옆 태조길에 서면 경기전 담 위로 전동성당이 꿋꿋하다. 전동성당에서 풍남문을 지나 남부시장으로 들어서면 시장의 골목골목이 나뭇가지들처럼 서리서리 얽혀 있다. 콩나물국밥이나 순대국밥으로 허기를 채워도 좋고 싱싱한 푸성귀나 어물, 과일 한 바구니를 왁자지껄 흥정해 들고나와도 유쾌하리라.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집들의 무너진 담과 이끼 서린 기왓장에도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에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전주 완산동 골목길에 대한 추억을 남겼다. 삶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작가의 풍부한 언어 구사 능력은 고향 전주의 미궁과 같았던 이 골목 저 골목의 깊숙한 골목쟁이까지 빠짐없이 담아 놓았다. 대문을 밀고 나서면 오른쪽으로 집 울타리를 낀 골목 끝이 바로 천변이다. 골목 길이는, 천변 쪽으로는 그저 몇 걸음 되지 않았으나, 동네 안쪽으로 가면서 세 갈래로 나뉘고, 그것들이 가다가 새끼를 쳐서 다시 몇몇 갈래가 되어, 그 골목은 들어서기만 하면 미궁처럼 헤매기 쉬웠다. 그래서 우리들의 어린 날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의 말처럼 골목골목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날만 밝으면 눈을 비비고 튀어나와 밥때를 넘기고도 배고픈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시멘트 블록 담을 치지 않았던 예전에 담을 대신했던 탱자나무 울타리는 무척이나 정겨웠다. 휘황하게 피던 하얀 탱자꽃. 달빛 좋은 봄날에는 검은 생나무 울타리가 꽃 너울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리. 아이들이 있는 집의 추녀 끝에서 낭랑한 웃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게 전주의 골목길이다. 다양한 빛깔과 무늬를 품은 전주의 길 전주는 길의 이름만으로도 그 길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온갖 사연을 만나게 한다. 정여립로, 최명희길, 귄삼득로, 운암로, 영경길, 호성로, 춘향로, 콩쥐팥쥐로와 같이 위인의 이름(호)이나 문학작품을 빗댔기 때문이다. 전주가 오래전부터 거리의 특성을 살려 이름 붙인 테마가 있는 거리도 마찬가지다. 루미나리가 설치된 걷고 싶은 거리와 비보이의 상징물로 꾸민 청소년거리,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공구상점이 늘어선 공구거리, 금은방과 한복집이 모여 있는 웨딩거리, 한글을 주제로 다양한 조형물이 있는 한글테마거리 등 온갖 빛깔과 소리가 거리를 채운다.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반기는 자만마을과 산성마을은 시골길을 거니는 것처럼 친근하다. 그러나 이 거리는 무작정 한 가지 이름만을 품거나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문예술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시인화가소리꾼배우들이 숱하지만, 한때는 헌책거리, 콩나물국밥집거리, 소극장거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처럼 전주의 길은 그 무늬가 한결같지 않아서 더 매력적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다른 무늬를 띨 것이다. 그러니 늘 새 길 가는 것과 같다.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신을 딛고 서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은 다 안다. 엉거주춤인지 제자리걸음인지 뒷걸음인지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어도 길은 아득하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길을 걸으면 옛 정신이 스며든다. 우리가 걸음걸음을 더 똑바로 해야 하는 이유다. *최기우: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 희곡집 『상봉』,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전주, 느리게 걷기』, 『꽃심 전주』,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전국연극제 희곡상(2회), 전북연극제 희곡상(3회), 불꽃문학상, 천인갈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 전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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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7 12:10

“자손들에게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송승엽 소설 ‘답방’

30여 년을 중국과 북한 분야에서 종사한 송승엽 씨(70)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소설 답방을 펴냈다. 남북 관계가 여기서 더 후퇴해서는 안 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한반도의 미래조차 후퇴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깔린, 한반도의 꿈이자 희망인 항구적 평화 정착의 염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그려냈다. 소설은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남한 무역상사 팀장 자녀와 유학 온 북한 고위층 자녀가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자연스럽게 싹튼 남여 고등학생의 사랑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저자가 축적한 메모를 바탕으로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송 씨는 최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급진전을 보면서 우리 손자들만큼은 통일된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소망을 그리려면 공상이라는 큰 그릇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기 위해 소설이란 형식을 빌렸다는 이야기. 소설 속 주인공의 사랑에는 정보기관의 집요한 방해와 긴급 소환 위험이 뒤따른다.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룬 이들의 사랑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남북한이 함께 성장하며 평화로 가는 길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 자손들은 편안한 세상에서 즐거운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바람을 소설에다가 공상으로 엮어 집어넣었다며 열강들 틈에 낀 우리나라 상황을 볼 때 차라리 영세중립국화해서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좋지 않냐는 생각을 해 봤다고 말했다. 작가는 1948년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중국어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과 중국이 미수교 상태였던 지난 1991년 대한민국 대사관의 전신인 KOTRA 주 베이징 대표부 근무를 시작으로 10여 년간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정무공사로 끝으로 퇴직했으며 공직생활 30년 동안 중국 및 북한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에는 한국 대기업의 중국투자 관련 자문과 광운대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보태며, 현재는 학창시절 가졌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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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석
  • 2018.12.06 19:58

[불멸의 백제] (237) 12장 무신(武神) 13

그때 계백이 머리를 돌려 히지를 보았다. 히지는 대여섯살쯤 되어 보였는데 단정한 모습이다. 얼굴도 아스나를 닮았다. 그러나 마당에서 일어난 참극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아스나도 마찬가지다. 나란히 앉은 두 모자(母子)는 나무로 만든 인형같다. 이제 사방이 조용해졌다. 마당에 수백명의 장수와 군사가 모여섰고 청 안의 장수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너, 몇살이냐? 히지에게 물은 것이다. 깜짝 놀란 히지가 아스나부터 보았다. 눈에 두려움이 가득차 있다. 나란히 앉아있던 아스나가 대답을 하라는 눈짓을 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히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섯살입니다. 계백이 다시 물었다. 저놈들이 왜 죽었는지 아느냐? 예. 계백의 눈빛이 부드러웠는데 히지가 입안의 침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무슨 욕심? 영지를 차지하려고. 땅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히지에게 물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무신(武神). 누가 그러더냐? 아스코가. 아스코가 누구냐? 시녀입니다.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어머니를 따라 중이 되고 싶습니다. 중? 예. 왜?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네 아비의 뒤를 따라 영주가 되었겠구나? 예. 영주가 되고 싶으냐? 그때 아스나가 숨 들이켜는 소리를 내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져있다. 청 안의 장수들, 마당에 모여선 장졸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바람이 불어와 피비린내가 맡아졌지만 모두 히지를 주시하고 있다. 그때 히지가 대답했다. 예. 그순간 아스나가 어깨를 치켜 올렸다. 다시 숨을 들이켰기 때문이다. 장수들도 술렁거렸고 마당의 장수 하나는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네가 영주가 되려면 부하를 모으고 네 땅을 빼앗은 영주를 죽여야되지 않겠느냐? 히지가 눈만 껌벅였지만 그 말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는 표정이다. 그때 계백의 시선이 아스나에게 옮겨졌다. 네 어머니하고 같이 말이다. 그때 아스나가 두손을 청 바닥에 짚고 엎드렸다. 아이의 생각없는 말입니다. 대감. 아스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머리를 든 아스나의 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때 계백이 다시 히지에게 물었다. 너, 영주가 될 수련을 할테냐? 이제 히지는 상황을 조금 안 것 같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채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그때 계백이 다시 물었다. 너, 내 양아들이 되지 않겠느냐? 그순간 청 안 장수들이 술렁거렸다. 슈토가 어깨를 한껏 부풀렸다가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계백의 목소리가 이어서 울렸다. 내 양아들이 되어서 영주 수련을 해라. 히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고 계백의 시선이 아스나에게로 옮겨졌다. 그대는 내 소실이 되겠는가? 아스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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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6 19:58

위로가 필요한 순간 따뜻하게 빛나는 시편들

박두규 시인은 30년 넘게 시를 써오는 동안 삶의 지침이 되어줄 북극성 하나쯤은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내 시가 세상의 길이 되는 걸 꿈꾸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은 북극성처럼 창공에서 반짝거리며 우리를 새로운 세상의 길로 이끄는 시들을 탄생시켰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에는 그가 생명, 평화, 자연이라는 주제를 통해 도달한 진솔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모진 세상 속에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고요하고 속됨이 없는 명징한 세계를 선사한다. 시집에 수록된 67편의 작품들은 내성(內省)의 울림을 준다. 시인은 내성의 파문을 바깥 풍경의 한 자락으로 펼쳐놓으면서 세상과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든다. 33년 동안 물밑을 헤엄쳐 왔다./ 언젠가부터 때가 되면 수면 위로 올라가/ 오래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고 싶었다. (중략)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어머니의 젖을 물고 바라보았을/ 첫날의 경이로운 하늘을 기억해내고 싶었다./ 글을 처음 익힐 때처럼 책을 읽고/ 시를 처음 쓸 때처럼 펜을 잡고 싶었다./ 얼마나 더 이승의 밥을 훔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세월이 또 온다. (퇴직 일부) 생애 절반을 교사로 살았던 그는 퇴직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난다. 삶에서 한발 물러서서 새로운 삶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새로 낳고 있는 중이다. 김해자 시인은 해설을 통해 박두규의 시는 언어도단이면서 언어 이전이고 언어로 받아들여져 모셔야 하는, 선(禪)과 닮아 있는 시의 운명을 보여준다며 우주적 생명의 바다에서 함께 춤추는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먼저 평화가 되려는 태도는 그가 왜 관념적인 선적 정신주의에 빠지지 않는지를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시인은 1985년 남민시(南民詩) 창립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5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문화신문 지리산 人 편집인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2.06 19:58

[불멸의 백제] (236) 12장 무신(武神) 12

그렇습니다. 아스나가 대답했다. 그때 슈토의 뒤쪽에서 우에노가 나타났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에노가 소리쳤을 때 슈토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렇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반란군은 이제 진압되었소. 잠시 후에 모시러올 터이니 기다리시오. 슈토가 말하더니 우에노를 돌아보았다. 우에노, 마님을 모시고 있게. 예, 슈토님. 우에노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을 때 아스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고노성의 영주가 정무를 처리하는 청은 돌보지 않아서 마룻바닥이 부숴졌고 천정에 거미줄이 걸쳐졌다. 그래서 군사들이 서둘러 바닥을 깔고 청소를 했다. 작은 성안에 1천기의 기마군이 진입해온 터라 말발굽 소리로 가득 찼다가 차츰 가라앉았다. 청에 오른 계백이 안쪽에 마련된 보료에 앉았을 때 군사들이 성 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중신 타노와 타마나를 끌고 와 앞쪽 마당에 꿇어앉혔다. 마당 주위에는 군사들이 늘어섰고 청안에는 장수들이 좌우로 벌려 앉았다. 한낮,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맑은 날씨다. 그때 하도리가 말했다. 전(前) 성주의 부인이 오십니다. 곧 안쪽 문으로 아스나가 아들 히지를 데리고 청안으로 들어섰다. 주위는 조용하다. 둘러앉은 장수들은 시선을 받은 아스나가 하도리의 뒤를 따라 다가오고 있다. 계백이 아스나를 보았다. 그 순간 계백이 숨을 멈췄다. 아스나와 시선이 마주쳤고 잠시 떼어지지 않았다. 흰옷 차림의 아스나는 창백한 얼굴에 조금 홍조가 띄워져 있다. 적당한 키, 갸름한 얼굴,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나이에 몸매는 가늘지만 품위가 있는 모습이다. 그때 계백이 눈으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미리 비워둔 자리다. 계백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아스나가 히지와 함께 옆쪽 방석 위에 앉았다. 다섯 보쯤 떨어진 자리지만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청안은 조용하다. 장수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마당에 꿇어앉은 타노와 타마나는 40대 중반쯤으로 아직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다. 타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칼등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때 계백이 마당에 선 장수에게 물었다. 저놈들 휘하 군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예, 일부는 죽였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해서 잡아놓았습니다. 장수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명령했다. 다 죽여라. 옛. 저놈 가족들도 몰사시켜라. 옛! 저놈들의 친척도 찾아서 다 죽여라. 옛! 그리고 내 눈앞에서 저 두 놈을 베어죽여라. 난도질을 하는 게 낫다. 옛! 몸을 돌린 장수가 둘러선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베어 죽여라! 타노와 타마나는 말 한마디라도 할 여유를 갖게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계백의 추상같은 명령이 이어서 떨어졌고 그것을 들은 몸이 위축되었을 때 군사들이 사방에서 칼을 치켜들고 덮쳐왔다. 험악한 기세다. 으으악! 난도질은 공포감과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단숨에 죽이는 것은 호사다. 두 반란수괴의 비명이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피걸레가 되면서 멈춰졌다. 고깃덩이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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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5 19:59

[불멸의 백제] (235) 12장 무신(武神) 11

고노 영지의 거성(居城)은 둘레가 8리(4km) 정도에 높이는 10자(3m) 남짓의 석벽이 세워진 소성(小城)이다. 그런데 이 소성이 남북으로 두동강으로 나뉘어져서 북쪽은 중신(重臣) 타노(田野)가, 남쪽은 역시 중신 타마나(玉名)가 차지했다. 이 소성을 빼앗으려고 두 중신이 제각기 군사 2백여명을 끌고 들어와 진을 쳤기 때문이다. 서문 안쪽에는 고노의 처자인 아스나, 히지 모자(母子)가 내몰려 있었으니 보기에도 안타깝고 흉했다. 아스나는 끝까지 충성하는 가신(家臣) 10여명에 시녀, 군사 1백여명과 함께 저택에서 기거하고 있었으니 하루가 10년같은 세월일 것이다. 거기에다 성밖의 영지에도 중신 2명이 호시탐탐 영지를 노리는 상황이다. 아스나가 진즉 히지를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죽은 남편 고노의 유지를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남았다. 자신마저 도망치면 영지는 사분오열이 되어 내란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전 진시(8시) 무렵, 북문 안에 주둔하고 있던 타노는 말구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가 그것이 말굽소리인 줄 알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문을 박차고 나간 타노가 마루에 서서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그때 마당으로 군사 하나가 뛰어들었다. 기마군이요! 누구냐! 어느 기마군이야? 말발굽소리는 1,2백기가 아니다. 엄청나다. 42세의 타노가 처음 듣는 말굽소리다. 그때 군사가 소리쳐 대답했다. 모릅니다! 몰라? 벌써 북문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말굽소리가 더 가까워지더니 비명과 함성, 외침이 일어났다. 놀란 타노가 방에 있는 검을 집으려고 몸을 돌렸을 때 마당으로 10여필의 기마군이 들이닥쳤다. 이놈! 멈춰서라! 뒤쪽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일어나자 타노의 오금이 얼어붙었다. 머리만 돌린 타노는 경장 차림의 기마군들을 보았다. 내려와라! 앞에 선 기마군이 소리쳤다. 장수같다. 누, 누구요! 타노가 기를 쓰고 겨우 소리쳤을 때 장수가 달려왔다. 아앗! 놀란 타노가 외침을 뱉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방으로도 도망치지 못한 타노는 장수가 내려친 칼등에 머리통을 맞고 뒤로 벌떡 넘어졌다. 기절을 한 것이다. 아스나는 땅이 울리는 말굽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계백군의 진입을 알고 있었다. 계백군은 북문 수문장인 우에노가 열어놓은 북문으로 몰려들어올 것이다. 작은 성이다. 곧 말굽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비명과 외침이 일어났다. 모두 성 안의 군사, 장수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소리다. 담장너머 성 안이 온통 말굽소리, 외침으로 가득찬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밥 한그릇 먹을 시간도 안되었다. 어느덧 놀라 지르는 외침이 뚝 끊긴 것이다. 말굽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때 내궁으로 쓰는 저택 대문으로 기마군 대여섯이 들어섰다. 앞에 선 기마군은 장수다. 황소뿔 투구를 썼지만 어깨와 허리 갑옷만 걸쳤고 손에는 피가 묻은 장검을 쥐었다. 아스나는 마루에 나와 서있었는데 황소뿔 장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장수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아스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계백령 영주 계백대감의 기마군 대장 슈토요, 아스나님이시오? 목소리가 우렁찼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04 19:36

‘최명희·서권·문정희’ 삶과 작품세계 조명한다

혼불기념사업회와 전북작가회의가 작고 문학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2018 작고 문학인 세미나를 7일 오후 4시 전주 최명희문학관에서 연다. 작가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혼불학술 세미나의 주인공은 소설가 최명희(1947-1998)와 서권(1961-2009), 시인 문정희(1961-2013). #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삼고 싶었습니다.(최명희, 호암상 수상소감 중) # 내가 한 일에 후회가 없도록. 어두워 깊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네. 나는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네.(서권,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 남의 자리를 뺏은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한 봉우리에 올라보니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할 수많은 봉우리가 보입니다.(문정희, 신춘문예 시상식서) 이들은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또 꿈을 좇아 소설가와 시인이 됐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전후로 세상을 떠났다. 치열하게 글을 쓴 세 문학인의 공통점이다. 전주 출신 최명희 소설가는 전주기전여고 등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고,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소설 <혼불>이 당선됐다. 전북애향대상(1997)호암상(1998) 등을 수상했으며, 총 10권 장편소설 <혼불>을 펴냈다. 군산 출신 서권 소설가는 전주전일여고 등에서 교사로 일했다. 2007년 실천문학에서 단편소설 검은 선창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유작 소설로 <시골무사 이성계>(다산북스)가 있다. 진안 출신 문정희 시인은 전주 우석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제1회 작가의눈 작품상을 받았다. 유작 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예지시선)가 있다. 최명희 소설가에 대한 발제는 윤영옥, 토론은 최기우 씨가 맡았다. 문정희 시인에 대한 발제는 문신, 토론은 이영종임영섭 씨가 참여한다. 또 서권 소설가에 대한 발제는 변화영, 토론은 장진규문상붕 씨가 진행한다. 장성수 혼불기념사업회 대표는 작고 문학인 세미나는 학술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의미보다 문학인 스스로 서로를 보듬고 상처를 쓰다듬는 여정이다며 작은 것에 감격하고, 하찮은 것에 놀라고 신기해하던 최명희서권문정희 세 작가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삶과 작품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2.04 19:36

[불멸의 백제] (234) 12장 무신(武神) 10

마님. 부르는 소리에 아스나가 머리를 들었다. 침실 안, 아스나는 막 아들 히지(日出)을 재운 참이다. 밤, 해시(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시녀 마스꼬의 목소리여서 아스나가 낮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마스꼬가 얼굴만 조금 안으로 내밀었다. 마님, 우에노 님이 오셨습니다. 눈을 크게 뜬 아스나가 잠깐 망설였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안으로. 네, 저는 밖에 있겠습니다. 마스꼬는 망을 보겠다는 말이다. 곧 문이 더 열리더니 방 안으로 우에노가 들어섰다. 우에노는 아스나의 먼 친척이 된다. 올해 37세. 3백석을 받는 수문장직이지만 백제에서 가져온 불경을 외우고 검술에도 뛰어났다. 그래서 지난번에 타카모리 영지와의 합병을 상의했던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선 우에노가 예의바르게 문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굴이 무섭게 굳어져 있다. 마님, 지난번 말씀을 듣고 실행을 하지 못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우에노가 두손을 방바닥에 짚고 아스나를 보았다. 제가 타카모리의 가신 슈토 님께 말씀을 드렸던 바, 슈토님은 타카모리 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호흡을 고른 슈토가 말을 이었다. 슈토님은 타카모리님이 마님과 히지님을 살려둘 분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타카모리 님이 영지 욕심을 내다가 백제방의 장군인 계백 영주께 타도당해 영지가 일거에 몰수되었습니다. 그때 우에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아스나를 보았다. 마님, 제가 조금 전에 슈토 님이 보낸 전령을 만났습니다. 숨을 들이킨 아스나에게 우에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슈토님은 이제 계백 영주의 가미군대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50리 거리인 하소산 건너편에 기마군 1천 기를 이끌고 와 있습니다. 계백령의 영주이신 계백 영주를 모시고 와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스나가 숨을 죽였고 우에노의 말이 이어졌다. 계백 영주께서는 슈토 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역적들을 단숨에 처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님과 히지 님을 안돈시켜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마님. 우에노가 부르자 아스나가 입을 떼었다. 우리 두 모자가 절에 가서 살기만 하면 돼요.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하루라도 빨리 전쟁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어야지요. 모두 산으로 도망가서 3년째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어요. 마님.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우에노가 아스나를 보았다. 돌아가신 주군께서도 잘 하셨다고 하실 것입니다. 제가 끝까지 마님과 히지 님을 모시겠습니다. 우에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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