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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개최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6일 오후 전북일보사 7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인 시 부문 한경선(60경기도 고양), 소설 부문 권준섭(22서울), 동화 부문 김영숙(45대구), 수필 부문 이진숙(54전주) 씨는 각각 더욱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남곤 전 전북일보 사장을 비롯해 김경희, 김계식, 김영, 김종필, 류희옥, 박예분, 서정환, 서재균, 석인수, 소재호, 윤이현, 이준관, 이운룡, 이소애, 이형구, 장태윤, 정병렬, 전병윤, 정성수, 전일환, 전정구, 조기호, 조미애, 주봉구, 최기우, 허호석 등 원로중견 문인과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 백성일 부사장, 서창원 이사, 위병기 문화사업국장이 참석했다. 한경선 시인, 권준섭 소설가, 김영숙 동화작가, 이진숙 수필가라는 호명으로 운을 뗀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들에게 축하한다.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문인이 되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한국 문단을 넘어 세계로 지평을 넓히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창작의 바다로 출항에 나서는 후배들을 선배 문인이 도와달라며 전북일보도 자긍심을 갖고 문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활약상을 소개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평에 나선 소재호 시인은 문학이란 인상 깊게 통찰한 바를 감동 있게 표상하거나 경이적인 관점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언어예술이라며 이번 작품들 모두 이에 합당한 걸작이었다. 모든 당선자에게 깊이 축하한다고 격려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6 20:08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오늘을 밑거름으로, 훨훨 날 길”

한국 문단의 큰 빛 되기를. 16일 전북일보사 7층 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는 한국 문단의 신예 탄생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선배 문인과 가족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시상식에서 당선자들은 각자 등단의 기쁨을 밝히는 한편 이에 더해 앞으로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한 생각들도 털어놨다. 30대부터 시작한 글 쓰는 일이, 정말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정말 막다른 벼랑 끝에서 붙잡아줘 고맙습니다. 시 훈민정음 재개발 지구로 당선한 한경선 작가는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를 수십번,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한 순간,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는 행복하지만 슬프고 힘든 이 길을 함부로 걷지 않겠다며 죽는 날까지 열심히 쓰라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쓰겠다고 말했다. 소설 창으로 당선한 권준섭 작가는 올해 스물둘로 문청(文靑)중 문청이다. 그는 지금껏 왜 글을 썼나 생각해보니, 내가 썼던 모든 글과 문장들이 내게 힘과 위안이 되어 줬다며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겠다. 쉬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필 한 걸음으로 작가의 길에 오른 이진숙 작가는 당선 소식을 듣던 날을 잊지 못한다. 너무 기쁜 마음에 거실에 흩어져있던 책들도,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들도 예쁘게만 보였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튿날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말한다. 이내 그는 내가 받은 사랑만큼 열심히 써서 더 많은 위로를 주는 글을 쓰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이제 인생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살며, 글 쓰는 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라 느끼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 주위에 마음 아픈 아이들에게 글을 써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 봐요. 동화 성냥팔이 소녀로 등단한 김영숙 작가는 당선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하지만 이 자리에 와보니 날아올랐던 높이 만큼 어깨가 무거움을 느낀다며 그 무게만큼 신중하게 글을 읽고, 쓰며,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선택해서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문단에 첫 발을 내디딘 네 명의 작가에게 축하의 말도 이어졌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이는 글을 쓰는 작업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는 말이라며 글은 언제나 신선해야 하고 아무도 되뇌지 않은 새롭고 창의적인 언어만이 뇌리에 각인된다. 아무리 문력이 반백년 지난 원로 문인일지라도 펜을 잡는 순간이 바로 그 글을 쓰는 시작점이다고 조언했다. 그는 영광스러운 오늘을 밑거름으로 삼아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달라고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6 20:08

[불멸의 백제] (264) 13장 동정(東征) 20

계백이 화청과 함께 토요야마성에 입성한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다. 1만여 명의 군사가 입성할 때 성에서 미나미, 가와사키 등 우에스기의 중신(重臣)들이 마중을 나왔고 주민들은 길가에 엎드려 일행을 맞았다. 우에스기의 영지는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복속한 것이다. 오오다숲에서 우에스기를 죽인 것으로 55만 석 영지가 평정되었다. 국경에서 대기했던 노부사다와 동생 다까다는 자결함으로써 수하 군사들의 목숨을 구했다. 주군, 우에스기의 여섯 째 아들 아오모리가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백의 부장(副將) 다께다가 보고했다. 청에 앉은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모리는 서북쪽 국경의 4개 성을 장악하고 우에스기 일족을 모아놓고 있다. 데리고 오도록. 계백이 말하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토요야마성의 정청은 넓고 화려했다. 55만 석 영주의 거성답게 위압적이다. 조처의 소영주가 압도당할만했다. 이윽고 아오모리가 청 안으로 들어섰는데 뒤로 가신 둘이 따른다. 아오모리는 단정한 용모에 몸매도 단단하게 보였다. 이윽고 계백의 10보 앞으로 다가선 아오모리가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 손은 청 바닥에 짚으면서 이마를 붙여 절을 했다. 우에스기의 자식 아오모리입니다.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대감의 처분을 받고자 왔습니다. 청에는 계백의 무장 50여 명에다 우에스기의 신하까지 70여 명이 정연하게 앉아있다. 고개를 든 아오모리가 계백을 보았다.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고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러나 입은 꾹 닫쳐진 채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청 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너, 살고 싶으냐? 예, 대감. 바로 대답한 아오모리가 다시 두 손으로 청 바닥을 짚었다. 이제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지만 시선은 필사적으로 떼지 않는다. 아오모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살려주십시오. 어떻게 살겠느냐? 절에 들어가 중이 되겠습니다. 네 가족은? 영지를 떠나 농사를 짓겠습니다. 몇 명이냐? 예, 처가 식구까지 모두 37명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부처님께 대감의 무운장구를 빌겠습니다. 엎드린 아오모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청 안이 숙연해졌을 때 계백이 말했다. 네 아비의 원혼도 달래주거라. 네 아비는 내가 죽였다. 아오모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너한테 변방의 성을 몇 개 주고 싶지만 네 자손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 다른 곳에 가서 새 영지를 만들어 보거라. 예, 대감. 계백의 시선이 화청의 부장 복위에서 옮겨졌다. 네가 아오모리에게 황료 1천 냥을 주고 국경까지 호위해주고 오너라. 예, 대감. 감동한 아오모리가 청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사례를 하고는 물러갔다. 청에 가신들만 남았을 때 화청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군, 이곳을 동정(東征)의 중심으로 삼으시지요. 어깨를 편 화청이 말을 이었다. 동쪽에 수천만 석의 영지가 펼쳐져 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5 19:56

[불멸의 백제] (263) 13장 동정(東征) 19

노부사다가 동생 다카다를 보냈습니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장 복위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투항 사절입니다. 장군. 데리고 와. 화청이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전막 안에는 무장들이 모여 있었는데 밝은 분위기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주둔한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우에스기가 죽은지 9일째. 그동안 바깥 세상은 언덕 위에서 저절로 굴러가는 바위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 복위의 안내로 다카다가 들어섰는데 차분한 표정이다. 화청의 다섯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한 다카다가 두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노부사다는 항복합니다. 노부사다의 목숨은 맡기겠으나 군사는 충성스럽고 잘 훈련되었으니 계백 영주님의 군사로 써 주시기만 소원합니다. 항복하는 놈이 무슨 조건을 붙인단 말이냐? 화청이 버럭 소리쳤다. 눈치를 보다가 휘하 무장놈들이 야반도주를 하니까 결국 항복해오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장군. 너는 노부사다의 동생이라면서? 예, 장군. 너도 죄가 있다. 왜 둔한 네 형놈을 지금까지 눈치만 살피도록 했느냐? 일찍 항복했다면 칭찬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늦었다.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몇 놈이 남았느냐? 기마군 1천2백, 보군 1천3백, 잡군, 사역병 2천4백입니다. 오합지졸이군. 외람되오나 노부사다에게 우에스기 영지 소탕의 선봉을 맡겨주시면 소임을 책임지고 끝내겠습니다. 어젯밤에도 무장들이 군사를 이끌고 도망쳤지? 예, 장군.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장군. 네 형한테 가서 말해라. 예, 장군. 이미 늦었다. 눈을 가늘게 뜬 화청이 흰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노부사다한테 군사는 내가 맡아줄 테니 보내라고 해라. 예, 장군. 노부사다는 아스카의 소가 대신한테 가든지 자결하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너도 마찬가지. 알았느냐? 예, 장군. 너희 형제는 시기를 놓친 거다. 가거라. 그러자 다카다가 말없이 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카다가 진막을 나갔을 때 화청이 복위에게 지시했다. 네가 노부사다의 군사들을 데려와라. 예, 장군. 쓴웃음을 지은 복위가 말을 이었다. 눈치만 보다가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로써 국경에 있던 우에스기의 병력도 정리가 되었다. 어젯밤 노부사다의 진을 빠져나온 세 무장은 화청의 진으로 투항해 온 것이다. 노부사다는 모르고 있었지만 화청의 마음은 그것으로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다. 노부사다까지 받아들이면 먼저 투항한 세 무장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된다. 그래서 화청이 노부사다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때 화청이 복위에게 지시했다. 주군께 보고를 해라. 이제 우에스기의 주력군은 다 해체되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4 16:22

[불멸의 백제] (262) 13장 동정(東征) 18

마침내 계백이 우에스기를 멸망시켰구나. 소가 에미시가 아들 이루카에게 말했다. 한낮, 이루카의 저택 청에는 에미시와 중신(重臣)들, 그리고 우에스기 영지에서 달려온 가신까지 1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에미시가 우에스기의 가신 이쯔키(五木)에게 물었다. 너는 노부사다를 만났느냐? 만나지 않고 곧장 여기로 왔습니다. 우에스기의 처남 중 하나인 이쯔키는 42세, 3천석 녹봉을 받는다. 에미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쯔키를 보았다. 우에스기의 처남이 너를 포함해서 몇 명이나 되느냐? 이쯔키가 서너 번 눈을 깜박이고 나서 대답했다. 20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처가 몇 명이지? 10명이 넘습니다. 그렇군. 거기에 아들이 37명이라니. 한숨을 쉬고 난 에미시가 이루카를 보았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우에스기 영지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낫겠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루카가 묻자 에미시는 힐끗 이쯔키를 보았다. 이미 늦었다. 지금쯤 내분이 일어나다 망해가고 있을 게다. 이루카는 입을 다물었고 에미시의 말이 이어졌다. 자식들, 처남들끼리 전쟁 중일 테니 계백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국경에 있는 노부사다의 5천 군사는 어떻게 합니까? 아마 노부사다 휘하 무장들 사이에도 내분이 일어나 쪼개질 거다. 에미시가 머리를 저었다. 거기에다 우에스기 영지까지 파견할 병력도 없다. 그랬다가는 에미시가 입을 다물었지만 이루카는 다음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가는 되려 이쪽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때 에미시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쯔키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쉬거라. 이것으로 우에스기 가문의 존망(存亡)이 결정되었다. 말뜻을 알아차린 이쯔키는 입을 열지도 못했다. 과연 노회한 에미시의 예상이 맞았다. 그 시간에 국경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노부사다의 진막 안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엇이? 나까모리가? 앞에 선 무장은 외면한 채 대답했다. 예, 마사키와 유시로도 함께 간 것 같습니다. 마사키? 유시로도? 노부사다의 입술에 경련이 일어났다. 모두 측근 무장이다. 무장이 말을 이었다. 끌고 간 병력이 2천 가깝게 됩니다. 밤사이에 무장들이 도망친 것이다.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무장들을 모두 불러라! 노부사다의 고함이 비명처럼 울렸다. 무장이 서둘러 진막을 나갔을 때 노부사다가 옆에 선 다까다에게 말했다. 다까다는 노부사다의 동생이다. 다까다, 내가 너무 우유부단한 거냐? 어쩔 수 없었지요. 다까다는 참모형이다. 정색한 다까다가 말을 이었다. 형님, 화청의 대군이 50리 거리에 있습니다. 계백이 왜 화청에게 우리를 공격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지금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노부사다가 말을 이었다. 도망친 배신자들이 후회하게 될 거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3 18:38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아우타르케이아 길 - 박월선

모악산 기슭, 텃밭 길을 걷는다. 숲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하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도시가 보이는 산 아래로 간다. 텃밭 가는 길목에 아기 흑염소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아저씨가 아직 퇴원을 안 하신 모양이다. 퇴직을 하고 흑염소 농장을 시작했다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얼마 전 물어본 적이 있었다. 흑염소 아저씨가 안 보이시네요? 글쎄 암에 걸렸대. 지금 병원에서 수술하고 치료 중이라네. 아들이 가끔 와서 흑염소 사료 주고 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아저씨. 어서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며 길을 걷는다. 흑염소 농장 너머로 걷다 보면 다랑이 논이 보인다. 다랑이 논은 모두 4층으로 되었다. 그중 3층, 4층 다랑이 논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이 논은 농사를 안 짓는대요? 작년에 가뭄이 들어서 아래 논 주인과 칼부림을 했어. 왜요? 아래 논 주인이 저 위 계곡에서 먼저 물을 호스로 끌어서 아래 논에 물을 대니, 위 논 주인이 물이 부족했던 거지. 아, 가뭄. 올봄 너무 가물어서 우리도 텃밭에 물을 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열 받은 이 씨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물을 끌어오는 호스를 낫으로 잘라버렸어. 그러니 아래 논 주인과 싸움이 난 거지. 다친 사람은 없나요? 낫 들고 덤벼드니 경찰서에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살인 미수죄라고 난리가 났지. 그래도 사람은 안 다쳐서 조용히 끝났어. 다행이네요. 도시에서 직장 다니던 자식들이 허겁지겁 와서는 아부지, 농사지어서 얼마나 남는다고 그라요, 이제는 농사짓지 마시오, 그 논 팝시다, 그랬다지. 과수원 길에 소문이 파다해. 빈 논에는 소문만큼 풀들이 무성하다. 과수원을 지나 기슭 아래 이르면 텃밭이 있다. 텃밭으로 지나는 길에는 작은 보랏빛 자운영 꽃이 피고 잡풀 속에서 피어난 참나리 꽃도 화사하다. 그동안 몰랐던 더덕 꽃도 길을 걷다 발견한 것이다. 계절을 모르는 듯 피어난 코스모스도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질경이가 가득 찬 길을 밟고 가기 미안해 사뿐히 지르밟고 지나는 텃밭 길이다. 밭고랑과 고랑 사이를 밟고 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계절별로 다른 햇볕의 강약도 즐긴다. 도시의 경쟁 속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악산 기슭이 나를 안아서 위로해 준다. 힘들었지? 수고했어. 풀과 꽃들이 나무가 바람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군가와 경쟁하기보다 연약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영원의 소유자인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오늘 하루는 모악산에게 위로받고 들꽃들에게 사랑도 받을 자격이 있어.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땅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햇볕과 바람이 들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최근 깨달은 게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레몬밤 허브 한 줌을 심었더니 아주 잘 자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잘라 말려서 아들 방에, 남편 자동차 안에, 그리고 텃밭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향기를 만끽했다. 그런데 휴가철에 2주 정도 그곳을 찾지 못하고 3주째 갔더니 그 옆에 심어 놓은 참외 덩굴이 허브 줄기를 감아 허브를 전멸시키고 있었다. 작은 땅에 욕심껏, 너무 많은 것들을 심어 놓았으니 뻗을 자리가 부족했던 것을! 텃밭으로 가는 길 아래 엉성하게 만든 평상에 누워 책 한 권을 꺼낸다. '행복의 경제학'. 쓰지 신이치 글은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풍요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 너무나도 서둘러 왔기 때문에 행복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져버렸다. 작가는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과 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사이의 균형 감각이며, 자신과 세상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 나는 늘 많이 가질수록 행복해진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더 많이 갖기 위해 땀 흘리는 개미처럼 살아왔다.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유는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 것 같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가슴을 쓸고 가는 휑한 찬바람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런데 이 길은 내게 가르친다. 만족하고 순응하며 소통하라고. 나는 텃밭까지 오르는 길을 아우타르케이아 길이라고 명명한다. 아우타르케이아(자기만족이라는 그리스어) 길은 헛되고 무익한 것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정도껏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 길에서 위로받고 자연이 선물해준 채소들을 가득 안고 다시 도시의 집으로 걷는다. 바람 한 줌도 가슴에 품고서. *박월선: 200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동화 '딸꾹질 멈추게 해줘', '닥나무 숲의 비밀', '내 멋대로 부대찌개'(공저) 등.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1 17:48

근대 연예 농악의 정점, 여성농악 예인들 한눈에

1959년 남원국악원에서는 최초의 여성농악단인 남원여성농악단이 만들어졌다. 김영운, 강도근, 주광덕 등 판소리 명창들과 남원의 국악 동호인들이 참여해 단원들을 교육하고 단체를 운영했다. 이보다 1년 늦게 만들어진 단체인 춘향여성농악단은 강도근 명창의 여동생 강선화가 단장을 맡았다. 명창 강도근과 대금 명인 강백천, 정읍농악 꽹과리 명인 전사종, 장구 명인 김병섭, 채상소고 명인 정오동 등이 단원들을 교육했다. 오갑순, 안숙선 등은 춘향여성농악단의 스타였다. 호남우도농악의 상쇠 나금추도 수습을 떼고 이 단체에서 처음 상쇠가 됐다. 안숙선의 외가 어른들이었던 강선화, 강도근, 강백천은 요즘 연예 기획사의 트레이너들처럼 소녀들을 당대의 농악 연예인, 국악 연예인으로 성장시켰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여성농악 예인들. 최근 발행된 <향기조차 짙었어라>는 이 여성농악 예인들을 생생하게 되살린 책이다. 이 책에는 여성농악 최초의 상쇠 장홍도, 남원국악원의 숨은 주역 김정화, 여성농악의 간판스타 오갑순, 여성농악의 장구 스타 배분순, 춘향여성농악단의 열두발상모 박복례, 국악계의 거목이 된 명창 안숙선, 춘향여성농악단의 4대 상쇠 이희숙, 호남우도 부포놀이의 명인 상쇠 나금추, 춘향여성농악단의 사업부장 김수덕, 춘향여성농악단의 마지막 세대 소고잽이 노영숙 등 10인의 구술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실려 있다. 구술자들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남원여성농악단과 춘향여성농악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이다. 이를 기획한 사람은 1960년대 중반 춘향여성농악단의 소고잽이로 활동했던 노영숙이다. 그는 강백천 일가와 함께 지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단체의 해산도 지켜봤다.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 한국예술단으로 선발돼 전사섭, 유지화 등과 공연을 했고 이후 박귀희 단장의 한국민속가무예술단 단원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한 바 있다. 노영숙은 <여성농악단 연구>(2004)를 발행한 전북대 국문과 강사 권은영과 협업해 책을 완성했다. 농악 연구자이기도 한 권은영은 채록과 편집, 해설을 맡았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9.01.10 20:02

[불멸의 백제] (261) 13장 동정(東征) 17

사냥을 나갔던 우에스기가 오오다숲에서 계백에게 사냥을 당한 후에 영지 안은 즉시로 내분에 휩싸였다. 우선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성 안에서 세 자식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셋 중 품이 배다른 형제인데다 같은 배에서 난 둘도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동복형제 중 동생이 형을 죽였고 이틀 후에 그 형이 배다른 아우한테 죽임을 당했다. 그 전쟁으로 세 형제가 보유했던 전력이 3할 정도만 남았다. 7백여 명이다. 살아남은 동생 이름이 아끼로, 24세. 그 아끼로가 승리의 기쁨을 하룻밤도 느끼지 못하고 미나미가 이끄는 군사에게 패배, 목이 베어졌다. 이렇게 토요야마성은 우에스기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미나미의 수중에 떨어졌다. 대감께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린다고 말씀드려라. 미나미가 오오다숲에 머물고 있는 계백에게 전령을 보내면서 말했다. 토요야마성은 대감이 입성 하시기를 고대한다고 전해라. 그 시간에도 우에스기의 영지 안은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자식끼리 전쟁이 일어나 자식 넷이 살해되었고 일곱은 도망쳤으며 하나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섯째 아들 아오모리다. 23세, 북쪽 국경의 성주로 나가 있었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로 평소 근면하고 검소해서 주민의 인망을 모았던 자식이다. 아오모리는 주변의 3개 성을 모아 독자 세력을 형성했는데 군사는 5천여 명, 기마군 2천, 보군 3천 정도다. 또 하나, 국경에서 계백을 기다리고 있다가 주머니가 터진 사냥꾼 꼴이 된 노부사다. 정병(精兵) 수천을 보유한 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노부사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았다. 우에스기가 사냥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사흘이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우에스기가 죽은 후로 살아남은 가신, 무장들이 흩어졌지만 노부사다한테는 보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생존자 대부분이 토요야마성, 또는 우에스기의 아들들한테 달려간 것이다. 아연실색한 노부사다가 평정을 찾고 나서 한 일이 아스카의 섭정 이루카에게 전령을 보낸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런 내용의 밀서를 이루카가 받았을 때가 우에스기가 죽은 지 엿새째가 되는 날이다. 그때 노부사다는 화청의 대군이 옆쪽에 닿았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기절할 듯 놀라 좌불안석이 되어있던 상황이다. 이제 이루카가 어떤 지시를 하건 떠날 생각이 일어났다. 그런데 우에스기가 없는 영지로 돌아갈지, 아니면 후쿠토미 영지를 통과해서 이루카에게 갈지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계백은 미나미의 전령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전령을 기다리게 한 후에 이틀간 사냥을 계속했으니 우에스기를 죽인지 어느덧 8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날 아침, 다시 토요야마 성에서 미나미가 전령을 보냈다. 이번 전령은 기치성주 가와사키다. 40대의 가와사키가 진막 안에 들어와 계백에게 절을 하고 말했다. 우에스기 영지의 42개 성 중에서 38개가 투항서를 제출했습니다. 가와사키가 계백을 우러러 보았다. 4개 성은 우에스기의 여섯째 아들 아오모리와 함께 서북쪽 국경에 모여 있는 바, 말씀만 내리시면 소탕군을 모아 섬멸시키겠습니다. 계백이 지그시 가와사키를 보았다. 진막 안은 조용하다. 둘러선 무장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이윽고 계백이 입을 열었다. 너도 이곳에서 이틀만 더 기다려라. 이번 전쟁은 서두르는 쪽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기다려라.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0 20:02

전주풍물시동인회 30주년 기념…‘달빛이 닦아놓은 길’

지역의 중견원로시인으로 이뤄진 전주풍물시동인회의 동인지 풍물 30주년 기념 특집호가 나왔다. 전북문단의 가교 구실을 하며 수많은 문인의 사랑을 받아온 3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에 빗대면 30년이라는 시간은 청년의 혈기가 어느 정도 다듬어져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 단계까지 이른 시기다. 작품보다 인간을, 인간보다 삶을, 삶보다 더 소중한 거시기를 추구하자며 소재호, 이동희, 정희수, 진동규 등 4인이 1987년 9월에 첫 모임을 갖고 시작한 풍물이 중요한 길목에 들어섰음을 짐작케 한다. 달빛이 닦아놓은 길이라는 주제 아래 빼곡히 실린 회원들의 신작시와 알찬 소식들로 풍물이 건재함을 알려준다. 보랏빛 표지의 첫 장을 펼치면 창간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변화된 표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30년의 역사 동안 풍물에 참여한 우리 지역 시인들의 이름도 독자를 반긴다. 김남곤, 김영, 문금옥, 박영택, 발철영, 소재호, 신해식, 심옥남, 우미자, 유인실, 이동희, 이문희, 장욱, 정군수, 조기호, 조미애, 조정희, 조춘식, 진동규, 최만산, 김기찬 등 풍물에 참여한 21명의 작가 작품이 오롯이 실려있다. 특히 참여 시인 18인의 육필원고를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시의 깊이도 깊이지만, 시인 각자의 개성이 필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책 말미에는 지난 30년 동안 전주풍물의 연혁을 정리해 인간사 한 세기 동안 흘러온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운룡 원로시인의 초대시를 비롯해 류희옥 전북문인협회 회장, 김동수 온글문학대표,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 회장, 김현조 금요시담동인회장의 축하의 글도 빼곡하다. 전주풍물을 사랑한 전북 문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철영 회장은 여는 글을 통해 풍물이 이제 서른 해를 맞았다. 지방에서 이름값 하는 문사들의 의기와 열정으로 태동하여 지금까지 탈 없이 이어 오면서 문단의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온 동인지로는 그 연조가 제일 깊지 않나 싶다며 풍물을 거쳐간 많은 시인들이 한때 대단한 자존감이나 소속감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음이 그 증거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0 20:02

“멈추지 말고 앞으로”

책을 펼쳐 향기를 쫓으니 푸릇푸릇 풀내음이 났다. 70세 고희를 넘어 80세 산수를 바라보는 세월, 마음공부가 담긴 수필집이건만. 책 제목 때문일까. 이여산 수필가가 네번째 수필집 <마음 밭 잡초를 뽑으며>(북매니저)를 펴냈다. 나이를 먹을수록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데 말은 그리 하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고, 놓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있으니, 그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지난 2017년 결혼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을 치렀다는 저자는 책 머리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새 날에 감사와 희망을 걸어본다고 했다. 아련한 기억의 한켠. 저자는 밀밭에서는 심은 일이 없는 가라지도 저절로 나고 자라듯이 나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만하며 착하게 살고 싶은데 (중략)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며 내 마음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지만, 잡초는 뽑으면 어느 새 또 생겨서 나를 괴롭힌다고 고백한다. 그런가하면 칠전팔기란 말도 있지 않은가. 매사에 절반의 실패가 있더라도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꿋꿋한 의지로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독자들을 응원한다. 이 책은 1부 한여름 밤의 꿈, 2부 낭만에 몸을 싣고서, 3부 사랑으로 피어난 꽃, 4부 멈추지 말고 앞으로, 5부 그리움이 머무는 곳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미술협회 회원인 양윤영 작가가 표지그림을 그렸고, 서평을 대신해 수필가 김은실 씨가 친구의 글 - 지금처럼 곱고 환한 미소를으로 출간을 축하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43년간 교편을 잡았다. 지난 2000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전북수필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여류문학회, 무주문인협회, 카톨릭문우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아름다운 인연>, <하얀 꽃 그늘 아래 누워서>, <향수> 등 3권을 펴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10 20:02

전북소설가협회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작가 선정

전북소설가협회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작가(60)가 선정됐다. 협회는 지난 5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제12대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10일 밝혔다. 임기는 2년이다. 부회장은 박은주 소설가, 사무국장은 박이선 소설가가 선임됐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정영신 회장은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대하장편고전소설 윤하정삼문취록의 혼사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2006년 월간문학 7월호에 소설 엄마의 시간표로 등단했고, 빈롱의 물안개로 제3회 전북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17년 제12대 회장 취임 후 최초로 소설낭독회를 통해 소설 창작과정을 작가의 육성으로 직접 듣고 이해할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소설과 영상문학의 만남. 소설과 영상음악의 만남, 전주의 풍수 이야기, 장타령과 동냥아치, 백정의 삶 등 향토색 짙은 다양한 주제의 문학강연과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지역 문인과 관심 있는 도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정영신 회장은 앞으로도 소설낭독회와 문학강연, 문학기행,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등 전북도민과 함께할 수 있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따뜻한 소설, 문학적 감성이 흐르는 풍류 전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문학·출판
  • 신기철
  • 2019.01.10 16:12

[불멸의 백제] (260) 13장 동정(東征) 16

화청이 이끄는 기마군 1만이 미사코성을 지나 우에스기 영지 국경에 닿았을 때는 그로부터 나흘후다. 화청은 나이가 66세, 신라의 김유신과 동년배였지만 이도 몇 개 빠지지 않았고 허리도 곧은 거구다. 수(隨)나라 양제 시절에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로 있다가 이연이 반역을 일으키자 반기를 들었던 화청이다. 그러다 가족이 몰사하고 단신으로 백제령 담로로 도망쳤다가 백제해(海)를 건너 본국으로 귀화한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그후로 계백의 심복이 되어 고구려와 당의 전쟁때 안시성에서 이연의 손자 이치(李治)가 이끄는 당군을 물리쳤다. 그러다 이제 왜국에까지 건너와 계백 휘하의 영주가 되었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노부사다는 기마군 5천이라고 하지만 전투병력은 3천 남짓입니다. 정찰하고 돌아온 복위가 보고했다. 나머지는 치중병, 사역병들입니다. 복위는 중원의 백제령 담로 출신이다. 화청과 고향이 가까워서 심복 무장이 되어 있었는데 담로에서부터 기마군 생활을 해서 지금은 기마군 대장중의 하나다. 45세, 9품 고덕(固德) 벼슬로 계백을 따라 왜국으로 건너왔지만 지금은 1천 기마군을 거느린 무장, 화청의 영지에서 3천석을 받는 중신(重臣)이 되었다.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놈들 기마군 체제나 전술이 우리보다 1백년은 뒤졌다. 대륙에서는 기마군간 전투가 매일 일어나지만 이곳은 산이 많고 골짜기가 깊어서 기마군 이동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화청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골짜기에 주둔한 총사령의 진막 안이다. 안에는 화청과 복위 등 대여섯의 무장이 둘러앉아 막 저녁을 마친 참이다. 술시(오후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진막의 기둥에 양초를 매달아 놓았다. 그때 무장 하나가 물었다. 장군, 노부사다의 기마군이 50리(20km) 거리에 있습니다. 단숨에 짓밟지 않고 이곳에서 머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군의 명령이다. 화청은 이제 계백을 주군이라고 부른다. 보료에 등을 기대고 앉은 화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누가 그 이유를 말해보라. 무장들을 둘러본 화청이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지시를 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하셨다. 그때 무장 하나가 화청을 보았다. 노부사다가 공격 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잠깐 시선을 주었던 화청이 다른 무장들을 보았다. 또 없느냐? 아군의 위용에 압도된 우에스기 가신들이 이제 우에스기까지 죽임을 당한터라 투항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화청이 이번에도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에스기가 오오다숲에서 중신, 아들과 함께 사냥을 당했다는 것은 이미 화청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계백도 오오다 숲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복위가 입을 열었다. 우에스기가 죽고 나서 37명이나 된다는 아들, 친척, 가신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것 입니다. 지금 우에스기의 거성인 토요야마성은 내분에 휩싸여있겠지요. 화청의 시선을 받은 복위가 정색했다. 우에스기 내부에서 정리가 되도록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그때 화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 칼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9 19:41

[불멸의 백제] (259) 13장 동정(東征) 15

활을 겨눈 선두의 기마군을 본 순간에 우에스기는 말고삐를 채었다. 빠른 반응이다. 사냥으로 단련된 반사신경이 저절로 작용한 것이다. 앗! 옆에 서있던 소토메가 놀란 외침을 뱉었다. 입을 쩍벌린 소토메의 시선이 그쪽에서 떼어지지 않는다. 저놈들은 누구야? 우에스기 앞이어서 큰소리는 못치고 뒤쪽 위사대에게 물었는데 위사대도 소토메와 비슷한 표정이다. 그 순간이다. 우에스기가 상반신을 젖히면서 날아온 화살을 피했다. 쌕! 화살이 파공음을 내면서 우에스기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놈! 놀랍고 분한 우에스기가 눈을 치켜뜬 순간이다. 탁! 타격음이 경쾌하게 들리더니 우에스기가 벌떡 머리를 젖혔다. 우에스기의 이마에 맨 띠에 화살이 박혀있다. 우에스기가 반쯤 몸을 돌렸을 때다. 그동안 소토메와 위사대는 움직이지 못했다. 우에스기만 몸을 돌린 상태에서 이마에 화살을 맞은 것이다. 와앗! 함성을 지른 것은 슈토다. 슈토가 말단 군사처럼 함성을 지른 것이다. 계백은 눈 깜박하는 사이에 화살 두 대를 날렸다. 첫 화살이 박히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두 번째 화살이 시윗줄에 걸쳐지고 활이 만월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튕겨진 순간은 말이 네굽을 모으고 네 번 뛰었을 때다. 그야말로 눈 깜박하는 순간이었지만 말은 30보쯤을 더 달렸고 표적과의 거리는 1백20보 정도, 슈토는 우에스기가 첫 번째 화살을 상반신을 젖혀 피하고 나서 다시 머리를 세웠을 때 이마에 화살이 박히는 것을 본 것이다. 악! 소토메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마에 화살이 박힌 우에스기의 몸이 뒤로 젖혀지고 있다. 주, 주군! 엉겁결에 그렇게 소리친 순간 소토메의 벌린 입 안으로 들어간 화살이 목을 뚫고 뒤로 나왔다. 으아앗! 우에스기를 호위하고 있던 위사대는 1백여명, 나머지는 모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저놈들! 위사대장이며 우에스기의 12번째 아들 노무라가 소리쳤다. 노무라는 우에스기가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이미 7, 80보 거리고 다가온 기마대를 무시할 수가 없다. 저놈들을 잡아라! 노무라가 소리친 다음 순간 화살이 날아와 왼쪽 눈에 박혔다. 안시성에서 계백은 당 고종 이치(李治)의 눈을 화살로 맞춰 애꾸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노무라와의 거리는 70보, 화살이 왼쪽 눈을 뚫고 들어가 뒷머리를 깨고 밖으로 한 뼘쯤이나 나왔다. 뇌가 부서진 노무라는 말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저승으로 떠났다. 죽여라! 슈토가 우에스기, 소토메에 이어서 노무라까지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 소리쳤다. 손에 장검을 빼들고 있다. 와앗! 뒤를 따르는 기마군의 함성, 모두 앞쪽의 장면을 본 터라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일당백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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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20:03

[불멸의 백제] (258) 13장 동정(東征) 14

오오다숲은 사방 50리(20㎞) 면적에 숲이 우거졌고 개울이 많아서 짐승들의 소굴이었다. 그래서 우에스기는 1년에 네댓 번씩 이곳에 와서 사냥을 했는데 지난번에는 곰을 3마리나 잡았다. 활로 고을 잡는 무장은 영지내(內)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우에스기는 명궁인데다 힘이 세었다. 우에스기가 사용하는 대궁(大弓)은 길이가 5자(1.5m)에 화살은 4자(1.2m)여서 작은 창같다. 오늘은 짐승이 안보인다. 오전 오시(12시) 무렵, 우에스기가 마상에서 짜증을 냈다. 오전에 우에스기가 사냥한 짐승은 꿩 3마리, 노루 1마리다. 몰이꾼인 기마군 3백이 오오다숲 동쪽을 훑어서 우에스기 앞으로 짐승을 몰았지만 큰 짐승은 보이지 않은 것이다. 기마군이 남쪽으로 돌아갔으니 그쪽은 개울이 많은 곳이라 큰 짐승이 많이 도망쳐올 것입니다. 중신(重臣) 소토메가 말했다. 이곳은 숲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동단위, 사방을 굽어볼 수 있는데다 2백보쯤 트여서 최적의 목이다. 이곳으로 사방에서 쫓겨온 짐승들이 지나가는 것이다. 지금쯤 계백이 미사코성에 가 있겠지? 불쑥 우에스기가 물었기 때문에 소토메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결에 우에스기의 머리칼이 날렸다. 투구에 흰 끈을 질끈 동여매었지만 뒤쪽을 묶은 머리털이 흔들렸다. 우에스기는 비대한 체구인데도 말을 잘 탔다. 말을 좋아해서 지금 우에스기가 타고 있는 적토마는 4대째 내려오는 순종이다. 첩자를 보냈으니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소토메가 다가서면서 말했다. 만일 계백을 처치하면 미사코성도 주군께서 차지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후쿠토미의 영지는 50만석이 넘습니다. 그러면 주군께서는 1백만석이 넘는 대영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내가 50 이전에 1백만석 영주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소원이 이루어질까? 계백만 죽이면 가능한 일입니다. 소토메가 긴 얼굴을 들고 웃었다. 소토메의 여동생이 우에스기의 4번째 소실로 아들 둘을 낳았다. 그중 하나가 성주가 되었고 하나는 아직 미성년이다. 머리를 끄덕인 우에스기가 말을 잇는다. 그럼 너한테도 성주를 시켜주마. 네가 성주가 될 때도 되었다. 소토메는 44세, 우에스기의 측근에서 20년 가깝게 보냈으니 머릿속에 들어가 앉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공합니다, 주군. 감동한 소토메가 머리를 숙였을 때 서쪽에서 말굽소리가 났다. 서쪽에서도 몰이꾼이 짐승을 몰아오는 것 같다. 앞장서 달리던 계백이 공터로 다가가면서 손에 쥔 활에 살을 먹였다. 뒤를 따르던 슈토와 하도리는 똑같이 숨을 삼켰다. 그동안 하도리는 수없이 계백의 궁술을 보았다. 그러나 슈토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치켜뜬 눈을 깜박이지도 않는다. 계백이 이끈 기마군은 2백기, 숲속이어서 뒤쪽 일부분만 보인다. 2열 종대로 숲속을 달리고 있었지만 전속력이다. 훈련보다도 실전 경험이 뛰어난 군사들이다. 그 순간 숲을 벗어나면서 계백은 앞쪽 언덕 위에 서있는 우에스기를 보았다. 거리는 180보, 계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시위에 먹이고 있던 화살과 함께 활을 치켜들면서 허리를 세웠다. 계백과 동체가 된 말이 달리면서 허리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계백을 위하여 반동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 순간 계백이 만월처럼 부풀려졌던 시위를 놓았다. 거리는 150보, 살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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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7 19:45

[불멸의 백제] (257) 13장 동정(東征) 13

성 안의 군사는 4천 남짓이지만 지휘관은 셋입니다. 미나미가 다케다에게 말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미나미와 다케다, 오진은 성 안 종각의 담장 옆에 둘러서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어서 미나미의 눈 화장이 더 뚜렷해졌다. 미나미는 35세, 3천석을 받는 우에스기의 중신(重臣). 녹봉지가 토요야마에서 1백여리 떨어진 바닷가다. 미나미가 말을 이었다. 시바다, 요미우리, 간센 세 놈인데 이놈들은 모두 우에스기의 자식이지요. 어둠속에서 미나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우에스기는 14명의 부인과 소실 사이에서 37명의 사내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18명이 스무살이 넘은 성인입니다. 그래서 휘하 군 지휘관, 성주, 측근 무장으로 모두 배치시켰지요. 자식으로 위사대를 만들겠구만. 위사대장도 12번째 아들입니다. 정색하고 말한 미나미가 다케다와 오진을 번갈아 보았다. 우에스기 가문은 백제계 얼굴에 똥칠을 하는 가문입니다. 이 정도에서 멸문을 시켜야지 자식들이 다시 씨를 뿌리면 왜국은 오염될 것이오. 미나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미나미도 백제계인 것이다. 계백이 마상에서 고개를 돌려 슈토를 보았다. 슈토, 우에스기의 아들이 성주로 있는 성이 6개나 된다면 저항이 심하지 않겠느냐? 배다른 아들들이어서 연합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슈토가 계백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깊은 밤, 계백이 이끈 기마대 5백은 우에스기 영지 깊숙이 전진하고 있다. 이곳은 거친 황야여서 인적도 없고 짐승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슈토가 말을 이었다. 형제 간의 갈등이 많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복종심도 강하지 않습니다.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아들이 37명이라니.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백제계 자손을 마구 뿌리기로 작정을 했구나. 그것이 우에스기 가문(家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입니다. 주군. 왜 그러느냐? 우에스기가 죽고 나면 모두 머리 잃은 뱀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온 슈토가 말을 이었다. 아들 휘하의 가신, 무장들이 심복하고 있겠습니까? 우에스기가 죽었다는 것이 드러나면 가만 두어도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디, 두고 보자.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웃었다. 이제 우에스기의 사냥터는 50여리 남았다. 지금 국경에 노부사와가 이끈 5천 군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중신(重臣) 이키타가 말하자 에미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우에스기, 그놈이 변방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까 현실감각이 무디어졌다. 나태해진 것이지요. 이키타가 말을 받았다. 에미시는 72세. 이키타도 동갑이다. 에미시를 50년이 넘도록 모신 터라 이키타는 표정만 봐도 배가 고픈지, 똥이 마려운지를 안다. 이키타가 말을 이었다. 권좌에 오래 앉아있으면 그 자리가 평생 그대로 있을 줄 압니다. 달콤한 말과 음식, 예쁜 여자에 젖어서 다른 세상을 모르게 되지요. 나한테 하는 말이냐? 주군께서는 섭정 자리를 이루카님께 넘기셨습니다. 그래도 큰 일은 내가 결정하지. 그건 그래야지요. 계백이 우에스기가 숨겨놓은 노부사와란 애송이한테 당할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오히려 우에스기 가문이 멸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계백은 후쿠토미 영지에 이어서 우에스기의 55만석까지 차지하게 된다. 150만석의 대영주가 돼. 계백은 백제방 신하올시다. 대영주가 아니지요. 이키타가 긴 숨을 뱉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영지를 소유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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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6 19:20

[불멸의 백제] (256) 13장 동정(東征) 12

토요야마 성을 나온 우에스기의 행차는 대단했다. 먼저 사냥감을 모으는 역할로 기마군 3백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위사대 1백이 기마로 따랐는데 깃발로 뒤덮인 행차다. 뒤로 말을 탄 우에스기가 아끼는 소실 후지코와 함께 나란히 걷는다. 주위에 가신과 시녀, 시종이 1백명 가깝게 둘러쌌고 뒤는 위사대 1백이 치중대와 함께 움직인다. 멀찍이 물러서서 우에스기의 행차를 구경하는 주민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사냥 행차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 여자가 요즘 얻은 소실이지? 길가에 서있던 상인 복색의 사내가 옆에 선 사내에게 물었다. 후지코의 뒷모습을 눈으로 가리키고 있다. 응. 다키성의 보군대장 마누라였다는군. 옆쪽 사내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자식이 둘이나 있는 년인데 우에스기가 부르자 냉큼 달려왔다는 거야. 싫다는 년이 없겠지. 싫다면 남편에다 자식까지 몰사시킬 테니까. 저 색골은 누가 잡아가지 않나? 목소리를 죽였지만 둘러선 구경꾼들 몇은 다 들었다. 듣고도 피식거리며 웃는 것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주민 대부분이 우에스기의 행태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저 놈이 없어져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겠구나. 잘 되었다. 다케다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다케다는 등에 나무 짐을 짊어졌는데 영락없는 나무꾼이다. 옆을 따르는 오진, 뒤쪽에서 등에 어물 짐을 지고 있는 한고, 미타 등 10여 명도 모두 다케다의 부하다. 다 들어왔습니다. 오진이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우에스기의 거성(居城)인 토요야마성 안이다. 우에스기는 사냥을 하러 성을 나가고 다케다 일행은 성에 들어온 셈이다. 한낮, 미시(오후 2시)무렵이어서 성 안은 활기에 차 있다. 거성(巨城)입니다. 성 안을 둘러본 오진이 감탄했다. 이곳을 동방(東方)의 거점으로 삼아도 되겠습니다. 오진은 다케다의 부장(副將)으로 전(前)에는 다케다와 함께 후쿠토미의 가신(家臣)이었다. 50석을 받던 다케다는 이제 1천석 무장이 되었고 20석짜리 말단 무사였던 오진은 500석을 받는 무장이 되었다. 계백이 능력을 기준으로 녹봉을 주었기 때문이다. 둘 다 검술에 뛰어났고 학문까지 갖춰서 계백의 눈에 띈 것이다. 오진, 그대가 서문 쪽을 맡게. 다케다가 말하자 오진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다케다와 오진은 3백명을 이끌고 토요야마성에 잠입한 것이다. 모두 농부, 장사꾼, 어부로 위장하고 병장기를 숨겨서 한낮에 잠입했는데도 성문지기의 눈길 한 번 받지 않았다. 오늘이 우에스기의 사신 야쿠가 계백을 만나고 돌아간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야쿠, 네가 이번에는 미사코성에 한 번 다녀오너라. 마상에서 우에스기가 옆을 따르는 야쿠에게 말했다. 지금쯤 계백이 미사코성에 있겠지? 아마 그럴 것입니다. 미사코가 미인이라고 했는데 아깝다. 야쿠가 입을 다물었지만 우에스기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잠행을 해야겠지. 예, 주군. 계백이 당분간 그곳에 있겠지? 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가신들이 아야기했습니다. 이곳까지는 못 와. 섭정이 책임을 진다고 했어. 우에스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지코는 뒤로 떨어져 있다. 노부사다가 이끈 5천 기마군이 국경 쪽에 도착했을 거다. 만일 계백이 미사코성에서 다시 이쪽으로 온다면 그때는 영영 돌아가지 못해. 야쿠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만 끄덕였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3 19:51

전북작가회의, 서른 즈음에 펴낸 특별히 특별한 책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작가의 눈> 통권 25호와 테마 수필집 <천년의 허기>를 나란히 펴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흔들리는 세상을 30년 살아왔다는 전북작가회의. 그 나이 서른 즈음, 지난달 15일 같은 날 태어난 특별히 특별한 책 두 권이 반갑다. △<작가의 눈> 통권 25호 전북작가회의 김종필 회장은 <작가의 눈> 발간사에서 이 짧은 문장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다며 지난 1997년 발간한 창간호 창간사 일부를 인용했다. <작가의 눈>은 세상이 어두울수록, 세상의 몸과 마음이 썩어문드러질수록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어야겠다는 우리의 다짐인 동시에,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자 하는 작가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는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특집, 제11회 불꽃문학상, 제9회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작수상소감과 함께, 회원들의 신작시소설동시동화수필 작품을 383쪽에 걸쳐 씨줄날줄로 엮었다. (상략) 가야할 길들이 있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들이 길을 만들 듯 / 전북작가회의 30주년 / 서른 송이 꽃송이가 피었다 / 길을 따라 나선다 저만큼 마흔 송이, 쉰 송이 / 환하다 / 그렇게 길은 시작되는 것이다 - 박남준 시인의 축시 꽃들이 길을 내어 중.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특집에서는 지난해 10월 개최한 30주년 기념 좌담회를 기록한 글을 비롯해 최동현 시인의 내가 겪은 전북작가회의 30년, 이병초 시인의 이제 너희가 대답하라! 등이 담겼다. △테마 수필집 <천년의 허기> 멸치눈물두부졸임, 아버지표 배추김치, 외할머니 도토리묵, 청포묵으로 반찬을 올리고, 호박대국, 아욱국 도 한 그릇, 나를 살린 추어탕, 붕어매운탕에 튀밥 세 봉지 . 전북작가회의 회원 40명이 음식 이야기로 밥상을 차렸다. 글마다 흑백삽화를 얹혀 읽는 즐거움도 더했다. 형형색색 먹거리가 TV를 장악했다. 모 프로그램은 패널들이 등장해 먹는 이야기로만 꽃을 피운다. 말로 맛을 음미하고 거기에 가격과 시각적인 맛마저도 품평한다. 가히 허기의 전성시대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먹거리로 채울 수 없는 허기, 그것은 그리움과 애틋함과 사랑에 관한 허기이지 않을까. 그리고 독자에게 권한다. 마흔 편의 이야기를 맛보며 허기를 채워보라고.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03 19:51

양우식 시집 ‘대충 살면 어때서’

양우식 시인이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시를 통해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집 대충 살면 어때서(도서출판 한솜)를 펴냈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툇마루에 앉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겨서일까, 힘들게 지나왔던 격랑의 시간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하고 작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적어 내려간 글이 시가 됐다. 시인의 지나온 삶은 파랑 치는 바다였다. 그러한 삶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긴 지금은 아픔도 결국 회심 속에 환기된 사랑의 결정체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힘들고 지난한 체험이라 해도 종국에는 스스로 어루만지기 마련이다. 양 시인은 깨지고 몽글어진 몽돌이 되기까지 남모를 참담함을 넘어선 격랑의 시간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의 바다는 자신을 반추시키는 울림이다. 표제작 대충 살면 어때서에서도 인생이라는 편도로 떠나온 여행길에서 / 깨달음은 그렇게 종착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를 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절절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었을까. 시인은 시집에서 시로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위안을 주었다고 말한다.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절제된 시적 언어는 작가뿐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 양우식 작가는 완주 삼례 출생으로 <한국문학예술>에서 동시 부문을, <대한문학>에서 수필과 시 부문에 등단했다. 지난 2011년에 첫 시집 <그런 사람 있었을까?>를 냈고, 2017년에는 수필집 <그래도 소중한 날들>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03 19:51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어머니! 당신의 몸길 위를 걸어갑니다 - 김행인

길에 대한 어느 추천사 몇 해 전 가을, 들길 하나가 내게 추천사를 써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 길이 사람을 추천하면 모를까 감히 사람이 길을 추천하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네 사람들을 낳았을지도 모를 길인데. 그즈음 나는 달이 바뀔 적마다 수십의 무리와 함께 이 산길, 저 들길을 밟으며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꽤 많은 친구들이 언제든 내가 가자고 하면 가고, 걷자고 하면 나와서 걷던 호시절이었으니, 길이 내게 추천을 청한 게 무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이름 없는 들길 하나쯤 추천해 주고 소개비를 받아먹으면 어떠랴. 하지만 나는 감히 그에 대해 함부로 주절거릴 수가 없었다. 이름 없는 길도 아니었거니와, 감히 나 같은 소인배가 이러쿵저러쿵 평을 할 대상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될 만큼, 이 들길은 내게 숭모의 대상이었다. 우리 전라북도의 이 길 저 길 곳곳을 샅샅이 헤매고 다녔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길의 맛을 그래도 많이 아는 편이라 자부해왔음에도, 내가 이 들길에게서 받은 감동은 마치 아이에게 듬뿍 내려준 어머니 사랑처럼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몇 해 동안 가슴 깊이 간직했던 이야기. 더 이상은 묵힐 수 없어 사모곡(思母曲)을 부르듯이 끝내 털어놓는다. 구불구불 내 어머니 몸 같은 구불길 이름이 구불길이라고 했다. 낮은 산등성이와 논배미를 구불구불 돌아서 가는 길이라 붙여진 이름일지 몰라도 나는 그 이름만으로 어머니를 연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 어머니의 구불구불한 인생 여정 탓일 수도 있겠고,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 가슴과 배의 포근한 느낌 탓일 수도 있겠다. 옥산저수지 수변산책로는 구불길에서도 다섯 번째 구간, 구불5길이라고 했다. 나는 늦은 가을날 이 길을 처음 만났다. 공식 명칭이 옥산저수지라 하지만 호수라 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호수 초입에서 둑방으로 올라서면 맨 먼저 눈부신 억새 숲에 경탄을 멈추지 못한다. 둑방길에 발을 딛자마자 억새의 화려한 흔들림이 나그네 발길을 그만 붙든다. 잿빛 구름이 낮게 내려와 억새풀과 한 덩어리로 춤을 춘다. 저만치서 오색 바람개비가 자연의 풍력발전처럼 빙빙빙 돌아간다. 어릴 적 추억도 함께 돌아간다. 호수 위 하늘 높이 방패연이라도 띄우면 좋을 것처럼 바람은 세차다. 이 인공 언덕 위의 풍경은, 가을 끝자락에서 탈색한 나무와 빛들의 떨림이 한가락 자연의 노래를 들려준다. 둑방길을 뒤덮은 억새 숲길을 지나 수변산책로로 들어선다. 잘 단장된 산책로는 가을 내내 떨어져 길 위에 곱게 쌓인 낙엽들 덕분에 푹신푹신하다. 주변의 온 산을 뒤덮은 마삭줄은 낙엽과 함께 포근한 이불이 되어 촉촉한 마사포길을 만들어 주었다. 걷는 내내 나그네의 발은 안식에 젖어든다. 호수 옆으로 낙엽이 온통 다 떨어져 쌓인 갈숲 흙길은 구불길의 압권이다. 숲속의 은은한 나무 향은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내내 건강과 치유의 향을 맘껏 나눠주고, 낙엽이 쌓인 포근한 길은 편안한 촉감으로 내내 발길을 감싸 준다. 나그네의 호사다. 가만 보니 길 주변에 습지가 잘 발달된 자연생태학습장이 형성되어 있다. 곤충과 야생화, 새 들이 공생하는 체험학습장이다. 곳곳에 표시된 안내판에는 서식하는 생물 종류의 다양성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수지의 물빛도 아름답거니와 나뭇잎 모양의 녹색 의자며 노란색 안내판, 둥근 통나무 의자, 나이테가 선명한 널빤지 모양의 긴 의자, 녹색 화살표가 선명한 빨래판 모양의 이정표 등 세심하게 공들인 시설들도 아름답다. 자연의 경치 못지않게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정성스러운 길이다. 이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아오른 대나무 숲길이 반겨준다. 두어 번 깊은 호흡을 하고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맑아진다. 이산화탄소를 몽땅 빨아들이고 산소를 뿜어내는 대나무 숲은 그야말로 하마 숲이라 할 수 있겠다. 호수 주변에는 물빛길, 꽃향기길, 대나무숲길, 소나무숲길, 단풍나무숲길, 왕비들나무 같은 다양한 활엽수와 침엽수가 무성하게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호숫가 둑길을 걷다가 산자락으로 접어들면 위태로울 만치 바짝 좁아진 수변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위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호젓한 숲길을 걷노라니 늦가을 쌀쌀한 바람을 막아 주는 소나무 숲을 뚫고 황금빛 석양이 눈부시다. 한참을 걷다가, 몸 안 어디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느낌에 파르르 떨고 만다. 가만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이 나뭇잎에 비치는 햇빛에 부딪혀 떨리는 것이었다. 아! 나는 순간 가슴이 쿵 울리고 말았다. 어머니 숨결 같은 햇빛, 그 안에서 아주 작은 내가 태어나고 있었다. 이름마저 빼앗긴 굴곡진 역사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청암산은 원래 취암(翠岩)산이었다. 푸르다는 의미의 취암산이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푸를 청(靑) 자를 써서 청암산으로 이름을 둔갑시켰다니, 남의 땅 이름을 함부로 바꿀 정도라면 그만한 저의가 있었겠다. 산 주변을 물로 가득 채워 버린 대공사가 들판을 내려다보던 바위의 색깔을 아예 바꿔 버리지 않았겠는가? 주변이 온통 논이던 해발 116.8미터짜리 낮은 산을 파헤치고 둑을 쌓아서 저수지로 바꿔 놨으니 말이다. 일제 강점기 1939년 옥산ㆍ회현 일대에 수원지로 조성한 옥산저수지가 이 호수다. 해안을 끼고 비옥한 대지를 가진 옥산, 회현, 대야, 임피, 서수 들녘에서 많은 농산물이 생산된 곡창지대 군산. 이를 수탈하기 위해 전군도로와 철도를 만든 일제가 곡물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저수지가 필요했다. 이 호수는 오늘날 군산의 제2저수지다. 주변 농경지와 군산 시민의 상수도 역할을 한다. 1963년부터는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물이 깨끗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호수 주변의 자연 생태까지 잘 보존되었다. 일제가 옥구 평야의 미곡을 퍼내가기 위해 산을 파헤치고 둑을 쌓고 논을 막아 만든 인공의 저수지가, 어언 80년이 지나는 동안 물 맑은 호수로 변모했다. 세월이 오늘날의 천연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군산 옥산저수지, 아니 옥산호수의 수변산책로는 청암산 능선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과 호수를 옆으로 끼고 도는 구불구불한 수변길이 나란히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14.8킬로미터에 이르는 구불 5길, 7시간은 걸려서야 다 걸을 수 있다는 군산 구불길 25킬로미터 중에서 절반을 넘는 길이다. 햇볕 창창한 가을 문턱이다. 나는 또다시 이 길을 찾아 일상의 무게를 물 위에 띄워 올리고 싶다.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둑방길 억새밭을 지나 숲의 호흡을 느끼며 타박타박 호수 둘레를 걷는 안식의 길. 굴곡진 역사를 살아온 내 어머니 구부러진 몸 같은 길. 알록달록 수풀이 우거진 호수 주변을 따라 이리저리 느릿느릿 구부러지고 싶다. *김행인(본명 김수돈): 평화동마을신문 편집인/마을미디어 운동가/시인. 2010년 월간 『문학바탕』 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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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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