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10 13:47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학·출판

[불멸의 백제] (283) 15장 황산벌 2

사비도성에 전령 두 명이 동시에 닿았다. 하나는 달솔 계백이 보낸 장덕 한성이며, 또 하나는 고마미지성에서 달려온 시덕 공지. 둘 다 대왕을 뵈려고 왕궁의 청으로 달려왔지만 공지가 먼저 대왕을 만났다. 의자 옆을 떠나지 않는 내신좌평 연임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대왕, 계백이 성주 진범을 베어 죽이고 유배된 흥수를 풀어 데려갔습니다! 공지가 소리쳐 보고하자 청안이 술렁대었다. 대신들이 수근거린 것이다. 계백이? 의자가 신음소리처럼 물었다. 그때 공지가 다시 소리쳤다. 계백은 대왕의 처사를 비판하면서 흥수를 데려갔습니다! 저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의자가 어깨를 부풀렸을 때 연임자가 나섰다. 대왕, 계백을 부르시지요. 연임자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이미 백제를 배신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사오나 대왕께서 부르셔도 오지 않는다면 반역이 분명합니다. 그것으로 판단하시지요. 그렇지. 의자가 충혈된 눈으로 백관들을 보았다. 누가 계백에게 가겠느냐? 소신이 가겠습니다. 달솔 유백진이 나섰다. 유백진은 전(前) 남방 방령으로 계백과 친분이 있다. 그때 연임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달솔은 계백과 같은 방(方)에서 친밀했던 사이 아니시오? 계백에게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많소. 좌평, 내가 계백에게 속아 대왕을 배신한단 말씀이오? 유백진이 버럭 소리치자 의자가 나섰다. 너는 내 옆에 있어라. 너까지 잃기는 싫다. 그때 연임자가 말했다. 덕솔 하성을 보내지요. 하성은 연임자의 심복으로 내신부의 감찰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청 아래가 소란스럽더니 위사장이 소리쳐 보고했다. 대왕! 계백이 보낸 전령이 왔습니다. 청안이 조용해졌고 의자가 눈을 치켜떴다. 데려오라! 곧 위사장이 먼저투성이 갑옷을 입은 무장을 데려왔는데 계백의 부장(副將) 장덕 한성이다. 한성이 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의자를 보았다. 한성은 32세. 계백을 따라 왜국에 갔다가 지금 대왕을 3년 만에 본다. 한성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대왕! 달솔 계백의 전갈입니다! 의자가 눈썹만 모았고 한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충신 성충을 모함으로 죽이시다니 대왕께서는 역적 연임자에게 속으셨습니다! 의자가 숨을 들이켰지만 대신들은 침묵했다. 다만 연임자 혼자서 빙긋 웃었을 뿐이다. 그때 다시 한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군(唐軍)을 백강에서 막지 않고 신라군을 탄현에서 막지 않은 것은 백제국의 성문을 다 열고 도적 무리를 받아들인 것이나 같습니다! 닥쳐라! 마침내 의자가 버럭 소리쳤다. 백강은 뻘이 깊고 넓어서 오히려 우리가 불리했다! 그래서 구드레 포구에서 막을 것이다! 그리고 탄현은 곧 서방(西方)과 남방(南方)의 군사가 뒤를 칠 것이다! 모두 연임자와 그 무리가 의자에게 조언해준 작전이다. 백강과 탄현은 반역자가 되어 있는 성충, 흥수의 주장이었으니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의자가 손으로 한성을 가리켰다. 너, 들어라. 계백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예, 구례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계백을 이곳 도성으로 오라고 일러라. 예, 대왕. 너를 벌하지는 않겠다. 지금 덕솔 하성과 함께 떠나라! 예, 대왕! 탄현을 넘은 김유신군은 동방군 3만이 막고 있을 테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이르라! 동방 방령 사택부가 지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4 19:54

[신간] 짧은 시 긴 여운, 17음절로 압축한 시심

박성숙 시인이 학창시절 익혀 써 왔던 하이쿠를 손질하고 또 새로 지어 <붉은 꽃 지고>(신아출판사)를 펴냈다. 하이쿠는 일본 고유의 시문학으로 5, 7, 5의 3행 17음절로 이뤄진 짧은 시, 자연에 대한 시인의 서정을 압축한 단시가 주를 이루며 배구(俳句)라고도 한다. 붉은 꽃 지고 / 하얀 숨 토했는데 / 저 꼬까 참새(붉은 꽃 지고 전문). 팔순을 넘긴 박 시인의 자연관이 오롯이 담긴 이 책에는 봄 22편, 여름 30편, 가을 23편, 겨울 24편 등 모두 99편의 하이쿠 작품이 4부에 걸쳐 실렸다. 박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나라가 달라 정서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인간의 보편적 사상과 정서에는 큰 차가 없으리라 스스로 다독이며 용기를 냈다며 큰 이질감 없이 받아 들여진다면 다시 없는 기쁨이겠다고 밝혔다. 소재호 시인은 박성숙 시인은 한국적 하이쿠의 출발점에 선다. 일본 하이쿠의 답습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의 하이쿠의 개척자이며 선구자로서의 창작이라고 평했다. 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전주여고 3학년에 피난학생으로 전입해 졸업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불교대학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다. 지난 1991년 <문예사조>로 등단해 수필집 <쪽씨를 심던 날>, <꽃비가 오네>, <풀꽃이고 싶다>를 출간했고, 2011년 시인으로 등단한 박 시인은 지난 2016년 첫 시집 <규화목 사랑>을 선보였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곡문학상, 전북문학상, 해양수산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2.13 19:55

[신간] 27년만의 신간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채광석 시인이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스물일곱 해 만에 돌아온 채광석 시인의 시는 굵다. 언어는 세상과 시대를 삽으로 펴내면서 시의 벌판을 열어 보인다. 거기에는 시대의 땀과 역사의 눈물이 고여 있다. 잊힌 혁명과 살아남은 자의 죄스러움, 역사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인물 군상을 시로 불러내 현재화하고 있는 시인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 치도 현실 아닌 것이 없고, 한 사람도 삶의 역사 아닌 게 없다는 시대에 대한 소명이다. 굵은 리얼리즘은 대지의 주름을 닮는다. 그의 시어는 그사이에 씨앗을 뿌리고 있다. 가히 오랜만에 만나는 리얼리즘 시학의 귀환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 시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나와 우리 세대의 그림자에게 바친다고 했다. 시집에는 시단을 떠나 있던 그동안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386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죄책감, 체념 그리고 새롭게 살아갈 희망과 기대까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전적 시들이 가득 담겨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까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인간적 갈등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해설에서 채광석 시인의 이 새로운 시적 자서전이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 깊이 도사린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타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이끌어줄 것이다고 평가했다. 순창 출신의 채 시인은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0년 사상문예운동으로 등단. 故김귀정 추모시집 <누가 내 누이의 이름을 묻거든>을 대표 집필하였으며, 시집으로 <친구여 찬비 내리 는 초겨울 새벽은 슬프다>가 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2.13 19:55

[신간] 치매 할머니 돌보며 패션디자이너 꿈꾸는 소년 성장기

전주 출신 아동문학가 이마리 작가가 치매 할머니를 돌보며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소년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를 그린 장편 동화 <빨강 양말 패셔니스타>(나무와숲)를 펴냈다. 이 책은 갈수록 늘고 있는 치매 환자에게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기존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꿈을 어떻게 키워나가는지 보여주는 작품. 빨강 양말을 신으면 왠지 자신감과 힘이 샘솟는 것 같은 주인공 상두의 꿈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것. 치매 걸린 할머니를 돌보느라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야 하지만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의상을 스케치하고 바느질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TV 보느라 할머니가 집을 나가신 줄도 몰랐다. 자책하며 할머니를 찾아 나선 상두. 할머니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이 책은 치매 걸린 할머니 이야기를 씨줄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를 날줄로 엮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 패션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동화다. 책은 바다 건너온 편지, 워너비 H 형, 빨강 양말, 공범, 그것 대작전, 거꾸로 피터팬, 겨울왕국, 할머니가 사라졌다! 등 168쪽으로 구성됐다. 그림은 하루하루 그림을 끄적거리지 않으면 불만족스런 하루를 보냈다며 투덜거리는 그림쟁이, 일러스터 유유 씨가 맡았다. 이마리 작가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영어소설과 동화를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가슴 설레는 이야기로 어린이와 만나고 싶어 동화 쓰기에 푹 빠졌다고. 지난 2006년 부산 가톨릭문학상, 제8회 목포문학상 등을 받았고, 창작동화 <버니입 호주 원정대>, <구다이 코돌이>, <코나의 여름>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2.13 19:55

[불멸의 백제] (282) 15장 황산벌 ①

으악! 목이 잘리면서 진범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머리통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달솔, 왜에서 병력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흥수가 머리 없는 진범의 몸뚱이가 뒤늦게 넘어지는 것을 본 척도 않고 물었다. 기마군 5천이요. 계백이 물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흥수를 보았다. 신라군은 지금쯤 탄현을 넘었지 않겠습니까? 연임자가 술수를 써서 넘게 했을 것이다. 둘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숙소 마당을 나와 대문 앞에 섰다. 대문 밖에는 하도리가 이끄는 기마군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하도리는 전점의 휘하 무장과 부하들을 처치하고 고마미지 성을 장악해놓은 것이다. 주위를 둘러본 흥수가 긴 숨을 뱉었다. 나는 달솔 덕분에 살았지만, 병관좌평은 북쪽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 같다. 좌평, 대왕께선 판단이 흐려지신 것이오? 나도 이곳에 귀양을 당하고서야 알았으니, 대왕은 오죽하셨겠느냐? 같이 구례성으로 가십시다. 계백이 하도리를 불러 흥수의 말을 준비시키면서 핏발이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탄현을 동쪽의 신라군이 거쳐야 할 난공불락의 요지다. 만일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다면 사비도성을 막을 곳은 황산벌뿐이다. 그 시간에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는 탄현을 넘어가고 있었다. 탄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길로 20여리(10km)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탄현을 지키면 백제는 온전하다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이다. 모두 연임자의 공이다. 말을 타고 탄현의 고개를 내려가면서 김유신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연임자가 1백만 대군의 몫을 했다. 지금쯤 성충, 흥수는 죽었을 것입니다. 옆을 따르는 대장군 품일이 말했다. 흥수는 남방 소속의 고마미지 성으로 귀양을 보냈고, 성충은 북방의 안산성에 보냈습니다. 그때 품일의 말을 흠춘이 받았다. 고마미지, 안산 성주는 모두 연임자의 심복입니다. 성주가 유배된 죄인을 죽이겠지요. 계백이 지금쯤 백제 남방에 닿았을까? 김유신이 묻자 품일과 흠춘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놈이 걸리는군. 김유신이 흰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웃었다. 허나 이미 늦었다. 백제의 국운은 이미 꺼져가는 촛불이다. 오후 미시(2시) 무렵, 탄현의 긴 골짜기를 가득 메운 신라군이 이제는 내려가고 있다. 그때 김유신이 말고삐를 당기면서 옆에 선 흠춘에게 말했다. 이제 탄현을 건넜으니 백제군과 부딪칠 곳은 황산벌뿐이야. 그렇습니다. 흠춘이 정색하고 김유신을 보았다. 이곳에서 사흘 거리입니다. 총사령. 계백이 남방에 상륙하지 않았다면 무인지경이 되지 않았겠느냐? 왜국에서 오는 길은 남방의 구례성이니 그곳에서 황산벌까지는 닷새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계백이 구례성에 지금 닿았다고 해도 우리가 사비성을 먼저 칠 수 있겠다. 예, 총사령. 선봉에 일러라. 오늘은 술시(8시)까지 행군하고 내일 아침에는 묘시(6시)에 출발한다. 예, 총사령. 흠춘이 말을 몰아 달려갔을 때 품일이 김유신에게 물었다. 도총관은 백강을 무사히 지났다니 이제 사비성을 좌우 협공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에 전령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한 둑도 주먹이 들어갈 틈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는 예가 지금 백제에서 일어나고 있다. 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지요. 품일이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3 19:55

[신간] 아이들의 눈으로 본 교실 옆 초록세상

군산푸른솔초등학교 3학년 5반 아이들이 송숙 교사와 함께 교실 옆 화단을 가꾸며 1년 동안 모은 사진과 글을 엮은 어린이 시집 <호박꽃오리>와 교실이야기를 담은 <맨드라미 프로포즈>(도서출판 학이사)를 출간했다. <호박꽃오리>는 26명의 아이들이 꽃과 곤충을 관찰하며 쓴 90여 편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1년간 교실 옆 화단에서 맨드라미, 봉숭아, 샐비어, 목화, 해바라기와 벼, 무, 배추, 토마토, 고추, 상추 등을 가꾸며 초록 세상을 가슴에 품었고 꿀벌, 참새, 자벌레, 하늘소와도 친구가 됐다. 착하시고 착하시는 담임선생님/ 우리에게 자연을 가르쳐주시는/ 담임선생님/ 오늘은 해바라기 씨를 나누어 주셨다/ 해바라기야, 빨리 자라라/ 우리 선생님처럼 예쁘게 자라라(김문찬 학생의 우리 선생님) 아이들의 짤막한 시 한 편 한 편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작고 순한 생명들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 싱그러운 상상력과 동심이 담겨있다. 특히 시집은 초등 3학년이 지닌 글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현행 맞춤법에 맞춰 수정하지 않았으며, 전라도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사투리의 말 멋을 살리기 위해 표준어로 고치지 않고 본래의 원고를 그대로 보여줘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맨드라미 프로포즈>는 화단을 가꾸며 보낸 한 해 동안의 기록이다. 송숙 교사는 화단을 가꾸며 벌어진 재미있고 뭉클한 시간들을 사진과 함께 일기형식으로 엮어냈다. 아이들의 선한 눈동자와 밝은 미소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사진들은 송 교사가 직접 찍은 것들이다. 정성훈 학생은 참새가 와서 벼를 먹는 것도 재미있었고 화단에 꿀벌, 털두꺼비하늘소, 노린재가 놀러 오는 것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혜린 학생은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써보니 즐거웠고 시집이 나온다니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송 교사는 2017년 4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1주일에 두 편씩 칠판에 시를 써놓고 아이들과 함께 일기와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아이들의 눈빛이 순해지고 정서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체감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능을 흘려보내기 아까워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엮어 시집시똥누기를 처음 발간했고, 이듬해에는 분꽃귀걸이를 펴냈다. 송숙 교사는 밤사이 변화된 식물들의 모습에 신기해하던 눈빛들, 새로운 곤충이라도 나타나면 쪼르르 달려와 제게 알려주던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들, 쫑알거리던 입술들, 화단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초록의 생명들과 함께 환히 웃던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을 이 기록을 통해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시를 쓰면서 자연과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출판기념회는 14일 오후 4시 군산푸른솔초등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9.02.13 19:55

‘참고운상’을 아시나요

신형식 시인 평소 품행이 반듯하고 학식과 문재를 겸비한 선비로서, 우리 회원들의 건강한 술판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심초사하면서 귀한 가산을 수시로 헐어 탕진하여왔기에 그 큰 손길 무궁무진 이어지기를 앙망하여 삼가 이 상을 드립니다. 곽병창 극작가가 ㈔전북작가회의 제1회 참고운상 상패에 새긴 글이다. 참고운상은 전북작가회의가 선후배 문인들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 제정해 지난 1일 시상했다. 첫 수상의 영광은 신형식 시인이 안았다. 전북작가회의는 신 시인은 그 동안 전북 내 문인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왔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깨를 내주었고,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는 지갑을 열어보였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신 시인은 예쁜 이름의 상을 만들어 시상해준 후배 문인들이 고맙고, 올 상반기에 졸고를 출간하여 고마움에 부응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신 시인은 공대 교수로서 시 쓰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후배 문인들이 동료로 함께 해줘서 든든했고 모임 때 술을 자주 샀다고 귀띔했다. 20여년만에 네 번째 시집을 낸다는 신 시인은 순창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전북작가회의 부회장과 전북민예총 회장을 지냈다. 시집으로 <추억의 노래>와 <정직한 캐럴 빵집>이 있다. 현재 전북대 공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후학을 이끌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2.13 19:55

[불멸의 백제] (281)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7

계백이 구례항에 도착했을 때는 7월 6일이다.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예정보다 사흘이 늦었다. 다행히 병선 3척이 실종되었을 뿐 군사와 말 대부분은 무사했다. 그러나 20일 가까운 항해에 군사와 말은 지쳤다. 이틀은 쉬어야 한다. 구례성에 들어간 계백에게 성주 목천기가 말했다. 달솔, 좌평 흥수, 성충이 김춘추의 뇌물을 받고 밀서를 교환하다가 발각이 되었소. 무엇이? 놀란 계백이 목천기를 쏘아보았다. 구례성의 청안이다. 함께 들어온 화청과 윤진도 놀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목천기가 길게 숨을 뱉었다. "내신좌평 연임자가 그 증거물을 들고 대왕께 보고한 터라 두 좌평은 어쩔 수 없이 유배되었소." "유배되었다고? 이 전쟁 중에?" 계백의 목소리는 외침 같았다. 청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가 목천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예, 전쟁 중이어서 죽이지 않았다고 하오. 연임자 이놈이 마침내 어깨를 부풀린 계백이 목천기에게 물었다. 나솔, 두 분은 어디에 계신가? 흥수좌평께서는 여기서 50리 떨어진 고마미지성에 유배되셨고 성충좌평께선 북방의 안산성에 계시오. 그때 계백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달솔, 유배자를 만나실겁니까? 윤진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대왕께서 간신에게 속으셨다. 자르듯 말한 계백이 화청과 윤진을 보았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말과 군사를 쉬도록 하라. 난 좌평을 뵙고 오겠다. 그러지요. 화청이 긴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소장은 달솔만 따르겠소. 계백이 하도리와 기마군 5백여기를 거느리고 고마미지성(城)에 들어닥쳤을 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이다. 놀란 성주 진범이 계백을 맞았는데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마미지성은 남방 소속으로 상안의 군사가 1천여명, 성주 진범은 5품 한솔관등이다. 곧장 청으로 안내된 계백이 기다리고 선 진범에게 바로 말했다. 성주, 내가 이곳에 유배된 흥수좌평을 뵙겠다. 지금 어디 계신가? 성안 객사에 유배되어 계시나 대왕의 명이 없으면 만나지 못하십니다. 30대 중반의 진범이 예상하고 있었던 듯 바로 말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범 앞으로 다가갔다. 너, 이곳에서 머리가 잘리겠느냐? 달솔, 무슨 말씀이시오? 진범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고 입이 반쯤 벌려졌다. 진범은 대성8족 중 하나인 진(眞) 씨다. 그리고 연임자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임자가 흥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 순간이다. 청 주위에서 갑자기 비명과 외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칼을 쥔 하도리가 올라왔다. 손에 쥔 장검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 하도리가 소리쳐 말했다. 성주놈이 청 주위에 숨겨놓은 위사 10여명은 다 죽었습니다. 그때 계백이 진범에게 말했다. 네가 앞장을 서서 좌평께 안내해라. 겁에 질린 진범이 입만 달삭였을 때 하도리가 칼등으로 진범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앞장서. 개 같은 놈아. 객사에서 계백을 본 흥수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여졌다. 달솔이 왔는가? 좌평, 이게 왠일이시오? 계백이 소리치듯 묻자 흥수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달솔, 큰일 났어. 당군(唐軍)을 백강 입구에서 막아야 하는데 연임자와 상영이 대왕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다. 시기가 늦었는지 모르겠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셨소? 계백이 다시 소리쳤을 때 흥수가 이를 악물었다. 자만했다. 우리도, 그리고 대왕도.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칼을 빼면서 진범의 목을 쳤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2 19:34

[불멸의 백제] (280)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6

나솔 진의창의 밀서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의자의 친필 밀서다. 기마군 5천을 이끌고 7월 7일까지 도성에 닿으라. 밀서에서 시선을 뗀 계백이 진의창에게 말했다. 25일 남았으나 맞추도록 하겠다. 닷새 후에 출발하면 구례성에는 15일이면 닿을 것이다. 구례성에서 도성까지 닷새면 된다. 달솔, 그럼 소인도 함께 가지요. 백제에서 달려온 진의창이 말하자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진 준비는 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계백을 따라온 화청과 윤진, 하도리가 따라 돌아갈 것이고 왜장 다께다가 같이 가겠다고 해서 합류시켰다. 그날 밤, 계백의 품에 안겨있던 미사코가 말했다. 나리, 백제방 방주께서도 백제로 가십니까? 풍 왕자께선 이곳에 계실 것이야. 미사코의 어깨를 당겨 안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왜국은 백제 담로 중 가장 큰 영지다. 본국은 대왕이, 왜국은 왕자 전하께서 통치하시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야. 곧 개선해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계백이 손을 뻗어 미사코의 불러오기 시작한 아랫배를 쓸었다. 이놈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사내아이라고 믿으십니까? 믿는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다나에가 다음 달에 산일이 되었으니 첫 아이를 낳겠구나. 그리고 이어서 아야메, 하루에의 순서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왜국에서 정실 노릇을 하고 있는 미사코가 가장 늦다. 그러나 미사코는 영주이며 정실이다. 다음날 아침, 계백의 거성(居城)인 토요야마성에 계백 영지의 소영주(小領主), 중신(重臣)들이 다 모였다. 그 중 소영주가 되어있던 화청, 윤진 등은 이번에 계백을 따라 출진을 하게 된다. 계백과 미사코가 청의 안쪽인 상석에 나란히 앉았을 때 청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방 3백자(90m) 가깝게 되는 청안은 중신들로 가득 차 있다. 계백이 서열대로 질서정연하게 앉아있는 영지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들어라. 계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나는 대왕의 명을 받고 본국에 다녀올 것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계백령은 왜국에서의 내 정처인 미사코가 영주 대리를 맡는다. 중신(重臣)으로 사다케, 노무라, 슈토가 보좌할 것이다. 미사코가 여영주(女領主)가 된 것이다. 이것은 백제방주 풍왕자 전하께서도 허락하신 것이니 모두 영지의 관리를 철저히 해야 될 것이다. 알았느냐? 예엣! 모두 일제히 대답을 해서 청을 울렸다. 계백은 영지를 미사코에게 맡겨놓고 떠나는 것이다. 미사코의 배 안에는 계백의 자식이 들어가 있다. 그것으로 여영주(女領主)의 권위가 더 무거워졌다. 닷새 후, 병선(兵船) 350척에 탑승한 기마군 5천, 말 1만3천필은 서쪽을 향해 출진했다. 목적지는 백제 남방(南方)의 구례항, 대장선의 3층 누각 위에 선 계백의 옆으로 화청이 다가와 섰다. 달솔, 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이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화청이 흰 수염 속의 입을 벌리고 웃었다. 달솔께선 대륙의 백제령 담로 연남군에서부터 백제 본국, 그리고 왜국 백제방 영주를 지내시다가 다시 본국의 전쟁터로 가시고 있소. 그대는 나보다 더하지 않는가? 끌려가듯 웃은 계백이 힐끗 멀어지는 왜국 땅을 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1 19:33

[불멸의 백제] (27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5

이제 기회가 왔어. 내신좌평 연임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택부를 보았다. 이보게, 방령. 그 이치를 아는가? 무슨 말씀이오? 사택부가 찌푸린 얼굴로 연임자를 보았다. 밤 해시(10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주위는 조용하다. 이곳은 사비도성의 서방(西方)에 위치한 내신좌평 연임자의 저택 안, 마루방 안에는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연임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거대한 전각도 대들보 한 개만 어긋나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네. 연임자의 시선을 받은 사택부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연임자는 내신좌평으로 관리들의 인사권을 쥔 실세다. 다섯 명 좌평 중에서 병관좌평 성충 다음 서열이지만 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전내부의 수장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그 연임자가 신라 김춘추로부터 10여 년간 뇌물을 받아온 반역자인 것이다. 연임자는 대성8족 중 하나인 연(燕)씨로 한때 집안이 융성했지만 무왕 때부터 몰락했다가 연임자가 가문을 일으켰다. 의자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임자가 말을 이었다. 방령, 이번에 신라군이 왔을 때 지원군을 늦추기만 하면 되네. 늦추기만 하면 되겠소? 그래, 왕이 동방군(東方軍)을 후위군으로 둔다는 것은 그대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나 같지 않은가? 그건 그렇소. 쓴웃음을 지은 사택부가 말을 이었다. 성충이가 왕에게 말했을 것이오. 사택부는 믿을만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틀만 늦추면 되네. 연임자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앞에 앉은 사택부는 45세, 역시 대성8족 중 하나였지만 신진 세력인 성충, 윤충, 의직, 흥수 등에게 밀려 변방으로 떠돌다가 연임자의 추천으로 겨우 동방방령이 되었다. 사택부의 직위는 제2품인 달솔, 동방은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으로 상비군이 4만 가깝게 된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 3만을 추려 계백군의 후위군 역할을 맡은 것이다. 내가 계백보다 나이나 경륜도 많고 전장에 많이 나갔소. 더구나. 그 뒷말은 안 들어도 안다. 사(沙)씨 가문은 대성8족 중 으뜸 가문인 것이다. 무왕(武王)에 이어서 의자왕대까지 왕권이 강화되면서 대성8족은 견제를 받았다. 대신 신흥 세력이 중용되어 백제국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연임자가 말했다. 왕은 자만하고 있어. 당군(唐軍)쯤은 백강이나 탄현에서 격파하고 김유신군은 황산벌에서 단숨에 깨뜨릴 계획이야. 하지만 내가 그러지 못하게 할 거네. 어떻게 말씀이오? 좌평 흥수, 성충을 역적으로 몰아 일단 입을 막을 작정이야. 놀란 사택부를 향해 연임자가 빙그레 웃었다. 신라 김춘추가 뇌물을 보냈다는 증거를 보이면 왕은 어쩔 수 없이 둘을 구금하겠지. 증거가 있습니까? 신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편지가 있어. 연임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일 신라 첩자를 잡아 왕께 데려갈 거네. 물론 그 첩자는 목숨을 걸고 온 신라 화랑이야. 과연. 왕은 혼란에 빠지겠지. 좌평, 신라가 도성을 차지하면 내 위치는 어떻게 되겠소? 그대는 좌평이 되어서 나와 함께 백제를 다스리기로 하지. 김춘추왕과 약조가 되었습니까? 몇 번이나 했어. 정색한 연임자가 사택부를 보았다. 벌써 10년이 넘었네. 이제 김춘추공은 신라왕이 되셨고 우리도 가문을 다시 일으킬 때네. 가문만 일어나면 누가 왕이 되어도 좋소. 마침내 마음을 굳힌 사택부가 똑바로 연임자를 보았다. 반역은 이렇게 일어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0 18:39

[신간] 정읍학연구회 ‘정읍사’

다양한 관점에서 정읍의 문화를 논의해 온 정읍학연구회에서 해마다 발행하는 정읍학의 다섯 번째 책을 내놓았다. 해마다 1권씩의 연간 저절 학술지로 간행되어온 이 학술지는 이번에 5호의 간행을 맞게 됐다. 이번 5호에서는 풍류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정읍의 술, 민중 종교, 선비문화, 풍류 문학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 속에는 기초 논의로서 정읍 풍류 문화의 전반적인 기조(김익두)를 필두로, 술과 풍류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읍지역 막걸리를 사례로 다루면서 정읍지역 막걸리의 역사, 특성, 미래 등을 매우 현장감 있게 논의한 지역 막걸리의 가치 제고와 막걸리 산업 진흥 방안(김재영)이 수록돼 있다. 일제강점기 태인 무극대도의 민족운동 연구(안후상)는 정읍이 낳은 21세기 사상 증산사상의 역사, 그리고 종교적 전개 과정의 한 중요한 사례로 정읍 태인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보천교 이후의 무극대도의 독립운동과 새로운 미래국가 건설운동을 구체적으로 조사분석하고 있어 흥미롭다. 정읍의 선비 풍류문화 연구의 한 사례로는 두 가지 글을 담았다. 먼저 새로 찾은 스토리 : 정읍 선비 성당(誠堂) 박인규(朴仁圭)와 전주 구강재(龜岡齋)(이종근)에서는 정읍 출신 선비 유학자 성당 박인규의 삶과 전주에서의 활동, 그리고 관련된 전주 지역의 여러 유적들을 현지조사에 의해 제시한다. 또 호남 유학과 성리학의 비조인 일재 이항의 수제자 의병장 건재 김천일 선생의 삶과 그 역사적 의미를 그의 삶 전체 과정의 구체적인 추적을 통해서 조명하는 일재 이항의 수제자 건재 김천일의 삶과 역사적 의미(허정주)가 있다. 문학 분야를 다룬 논의로는 정읍지역에 전승되어오는 고전문학 분야의 여러 풍류문학 텍스트들을 조사정리분석한 정읍지역 풍류문학 연구(이용찬)를 소개한다. 부록으로 빅터 터너(Victor Turner) 교수의 논문 신화, 제의, 그리고 드라마 속에 공연의 보편 개념들이 존재하는가?(김익두 옮김)를 수록해 두었다. 학술지 정읍학을 통한 정읍학연구회의 이러한 지역연구 활동은 우리 지역을 연구하는 전문 학술단체가 거의 없는 전북의 현실 속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2.07 19:56

[신간] 박갑순 씨 투병기 ‘민머리에 그린 꽃핀’

오늘,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살기. 이것이 두 번의 암을 만나 투병하는 과정에서 얻은 나의 다짐이다. 암 환자의 고통을 직접 겪어본 사람의 목소리만큼 생생한 울림이 또 있을까. 두 번의 암을 앓으면서 겪었던 치료과정을 날 것 그대로 글에 담았다. 박갑순 씨의 책 <민머리에 그린 꽃핀>(도서 출판 Book Manage)은 암 완치에 닿을 수 있는 힘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박갑순 씨는 완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암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가장 큰 힘이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지난 2014년 12월 위암 초기로 수술을 받은 박갑순 씨. 2017년 2월 유방암 수술로 인생의 고비를 한 번 더 만난다. 또 암이라니? 유방암 소견서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자 세상에 혼자인 듯 절망감이 엄습한다. 그 길로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실컷 울었다. 하지만 이내 곧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막연한 각오로 이어진다. 수술 날짜를 잡고 부안의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가 바쁜 일이 있어 한동안 오지 못할 것이라고 에둘러 인사도 했다. 그렇게 1년 6개월간의 길고 긴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저자는 감사의 약효에 대해서 거듭 강조한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눈을 뜰 수 있는 아침, 하루의 햇살과 눈을 맞추는 일 모두가 감사한 시간이라고. 암 환자의 고통은 결국 환자 자신의 몫이기에 박갑순 씨는 긍정의 힘을 통해 스스로를 살리겠노라 마음을 다잡는다. 2018년 6월 12일에는 첫 시집 <우리는 눈물을 연습한 적 없다>를 발간한다. 시집의 절반 이상이 투병 중에 쓴 것들이라고. 앞서 2015년 위암 수술 후 발간한 수필집 <꽃망울 떨어질라>처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들을 쓰면서 병상에서도 꿋꿋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도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처방 받은 약을 잘 복용하며 매사 긍정적으로 많이 웃고 지낸다는 박갑순 씨. 자신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함께 걷자고 손을 내민다. 그의 씩씩함에 절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이유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02.07 19:56

[신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책기계 구출기”

귀한 물건, 귀한 줄 알기 어렵다.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김진섭 책공방 북아트센터 대표가 <책기계 수집기>(책공방)를 펴냈다. 책공방이 1년 1책 자유출판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책공방 아카이브 시리즈 5번째 결과물로 장인들의 책기계가 어떻게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까지 이르게 됐는지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멸종동물처럼 사라져가는 책 만드는 도구와 기계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저자의 부지런한 열정, 그리고 보물을 만났을 때의 기쁨과 아쉬움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기계들은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됐고, 때로는 회사가 성장했다는 이유로 버렸다.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수작업으로 책을 만들던 기계와 그것들을 노련하게 다루던 장인들은 지금 시점에 이르러, 적어도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기계는 현재 우리나라 현장에서 모조리 사라졌다. 책 기계만이 아니라 손으로 사용한 책 제작 도구 또한 다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지털의 광채로 아날로그의 그림자를 마지막 한 점까지 지우면서 자칫, 기계에 담겨있는 정신까지 사라지지 않았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책 기계 수집을 통한, 수작업으로 책 만들던 시대를 기록하는 저자의 결기와 그 길을 가는 우직함을 엿볼 수 있다. 또 인쇄도 하고 간판도 만드는 순창 문방구와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소 중앙 인쇄사 등 저자가 소개하는 명품 인쇄소들도 눈길을 끈다. 제책의 달인인 저자가 기획하고 작업해서 그럴까. 책 내용뿐만 아니라 겉모양과 구성도 특별하다. 우선, 책공방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누드양장제책 방법으로 책등의 속살을 드러내 예스러운 맛을 살렸다. 또 책 위, 아래와 책배를 재단하지 않아서 독자들이 낱장을 넘길 때 세 번째 책장은 북나이프로 절취하면서 읽도록 했다. 무척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마치 편지봉투를 뜯으며 무슨 글일까 기대하는 두근거림도 크겠다. 책은 서문 책 속에 간직된 또 하나의 얼굴, 1장 멸종동물처럼 사라져간다, 2장 고물이 실은 보물이라면, 3장 뇌세포에 새겨진 명품 인쇄소들, 4장 기계 수집, 예삿일이 아니다, 5장 나는 왜 가시밭길을 걷는가 등 256쪽으로 이뤄졌다. 저자는 지난 2001년 책공방을 설립했고, 2013년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에 둥지를 틀고 지역출판 전문가 양성학교와 자서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한 곳에서 배울 수 있는 책예술학교와 책공방을 전국을 확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저자는 <책 잘 만드는 책>, <책 만드는 버스>, <북 바인딩>, <책 잘만드는 제책>과 책공방 아카이브 시리즈로 <한국 레터프레스 100년 인쇄도감>, <책공방 15년>, <책공방, 삼례의 기록>, 를 펴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2.07 19:56

“소중한 미래자원, 바다에 관심을” 제13회 해운문학상 공모

바다는 인류의 생명줄이며 우리들의 미래입니다. 해운은 인류의 활동과 삶의 모태이며 핏줄입니다. 지난 2017년에 명칭을 바꾸고 응모 대상도 전국으로 확대한 해운문학상이 올해 제13회를 맞아 다시 한번 거듭난다. 해양의 가치가 더 귀해지는 새만금 시대에 발맞춰 주최주관후원 주체가 새롭게 구성된 것. 지난해까지는 ㈜국제해운이 단독 주최했지만, 올해부터는 전북일보사가 공동 주최자로 손을 맞잡았다. 바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더욱 높이고, 해양문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확장하기 위해서다. 또한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를 구성, 작품 심사 등을 주관하게 됐다. 운영위원장은 김남곤 전 전북일보사 사장이 맡았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인 만큼 해양수산부한국문인협회가 후원자로 참여하고, 한국예총 전북연합회도 힘을 보탠다. 제13회 해운문학상 작품 공모는 오는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다를 주제로 한 미발표 순수창작물인 시와 수필을 응모할 수 있다. 올해 시상은 해운문학상 대상해운문학상 본상바다문학상 등 세 부문. 해운문학상 대상에는 해양수산부장관상, 상금 300만 원, 순금 10돈이 주어지며, 해운문학상 본상에는 전북일보 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공동시상으로 상금 200만 원을 수여한다. 바다문학상은 공모하지 않고 전북지역 기성문인 중 해양문학 발전에 힘쓴 공로자를 찾아 시상한다. 바다문학상 수상자에게는 해양수산부장관상과 순금 10돈이 주어진다. 윤석정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 이사장(국제해운 대표전북일보 사장)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해양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전북에서도 해운문학상을 통해 중요한 미래자원인 바다와 해운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응모작 접수는 우편(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18. 전북일보사 문화사업국)으로만 한다. 응모작 겉봉투에는 제13회 해운문학상 응모작이라고 표시하고 응모분야, 성명, 연락처를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단, 작품 안에는 응모자의 신원을 암시하는 성명 등 일체의 표시를 금지한다. 당선작은 오는 5월 20일자 전북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시상식은 같은 달 31일 바다의 날에 열릴 예정이다. 제13회 해운문학상 공모와 관련한 문의 사항은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010-4642-8573)으로 전화하면 된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02.06 18:46

“봄은 왜 이리 더디 오는가” 백관수 ‘동유록’

정녕 때는 2월이건만 / 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 세 다다미 크기의 감방 창 아래에서 / 역시 나 홀로 모름이련가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투옥된 근촌 백관수 선생의 한시 정녕 때는 이다. 봄은 오고 있지만, 그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진정한 봄은 오고 있는 것인지, 그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옥중의 수인은 간절히 표출하고 있다. 근촌 백관수 선생이 옥중에서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쓴 한시를 엮은 <동유록>이 세상에 나왔다. 애초 작품은 한시로 되어 있었지만 근촌의 차남인 백순이 한글 번역과 영문 번역을 맡아 이번에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작품집에는 일제의 지배에 대한 시적 저항의 정신이 담겨 있으며, 시대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룬다. 특히 1919년 동경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저항의 정신과 기개와 맞물려 있다. 근촌은 <동유록>에서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사상을 동경 감옥안에서 두 가지의 마음으로 표출했다. <동유록> 전편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후편의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그것이다. 그가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봄은 반만년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이며, 충의로운 나라 사랑이 갈망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이고, 열방의파리강화회의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보는 한국의 독립이며, 그리고 2.8 독립운동이 불씨가 되어 한국 전역에 독립운동이 번져 이뤄지기를 열망하는 한국의 독립이다. 근촌은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고 있다. 위를 우러러보거나 아래를 굽어보아도 그의 2.8 독립선언의 외침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커다란 옳음과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동경 감옥 안에서 다짐하며 간직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마음은 2.8 독립운동을 일으켰던부끄럽지 않은 마음이다. 한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일편단심의 마음이며, 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는 마음이고 큰일을 이루지 못한 스스로의 후회와 형세가 따라주지 않는 잘못이 있는 인간의 허물을 인정해야 하는 마음이다. 백순 교수는 부친의 이러한봄을 기다리는 마음과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1919년 3.1 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수립, 1945년 대한민국의 해방을 가져오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승곤 전북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서평을 통해 근촌의 동유록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나온 눈물 어린 저항시로서, 일시적으로 일제의 굴욕적 지배에 놓여 있지만, 반드시 이 굴레를 벗어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투지가 뚜렷이 엿보이게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간 한 지식인의 삶의 모습에서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과 감성은 물론 그의 인간적 면모까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2.06 18:46

[불멸의 백제] (27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3

"어딜 보세요?" 뒤에서 미사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옷자락이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저녁 무렵, 성의 5층 누각에 선 계백이 앞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가온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섰다. 바람이 미사코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고 긴 머리칼 몇 가닥이 얼굴을 휘감았다. 미사코의 체취가 맡아졌다. 향기가 섞인 살 냄새다. 계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사코가 같은 방향에 시선을 준 채로 다시 말했다. "노을은 볼 때마다 달라요. 얼핏 보면 똑같은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요." "" "냄새도, 파도도, 날씨도" 계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녁노을이 붉은 비단을 덮은 것처럼 바다를 물들였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쪽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바다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미사코는 잘못 물었다. 어딜 보느냐고 묻지 말고 뭘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토요야마성, 미사코가 따라와서 닷새째 머물고 있다. 토요야마성에는 소실이 셋 있다. 아야메, 하루에, 다나에다. 그중 다나에와 하루에는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르다. 이번에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서 바다냄새가 맡아졌다. 토요야마성에서 서쪽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미사코, 저 바다 건너편에 전운(戰雲)이 덮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보입니다." 미사코가 바로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시늉을 했다. 계백이 더 붉어진 수평선 위쪽 하늘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이 펼쳐져 있다." 미사코가 숨을 죽였다. 곧 미사코는 미사코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사코는 엄연히 소영주(小領主)인 것이다. 미사코성(城)을 중심으로 옛 후쿠토니의 영지를 통치해야만 한다. 계백의 목소리가 누각 위에 울렸다. "난 조만간 저곳으로 돌아간다. 미사코." "알고 있습니다. 주군."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바짝 붙어섰다. 계백의 측실 중에 미사코만이 이런 행동을 한다. "미사코, 네가 중심이 되어라." "예. 주군." "내 자식들을 낳으면 네가 다 뒤를 봐주도록 해라." "주군이 옆에 계셔야지요." "있을 것이다." "꼭 돌아오신다고 약속해주세요." "돌아오마." "하루에, 다나에님은 곧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야메님도 잉태를 했습니까?" "했을 것이다." "제가 낳는 아들이 적자가 됩니까?" "내가 백제방과 이곳에 남는 중신(重臣)에게 말해놓겠다. 네 아들이 적자다." "주군." 미사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미사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코가 계백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말씀 하시려고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다른 소실들 인사도 받아야 할 것 아니냐?" 미사코를 왜국 내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미사코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이곳 계백 가문은 걱정하지 마세요. 뿌리는 단단히 굳혀놓을 테니까요." "다른 백제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너희들의 바탕이 든든하다." "좋은 밭(田)입니다." 미사코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바다를 건너가실 때는 뵙지 못하겠군요." "언젠가는 돌아올 테니까." 이제는 계백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왜국이다. 뒤쪽 청에는 이미 향초를 여러 개 켜놓아서 환해져 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곳, 왜국은 내 고향이나 같다. 내 자식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뿌리를 뻗고 열매를 맺어갈 테니까."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06 18:46

[불멸의 백제] (276)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2

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이 좌평 성충, 흥수, 연임자 등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달 전에 김창준이 당왕 이치한테서 당군의 파병을 통보받았어. 지금은 파병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소정방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각 주(州)에서 제대로 군사나 물품이 준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관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이번 파병은 제 나라 일도 아닌 데다 겨우 미랑에게 뇌물을 써서 이루어진 일이라 그렇습니다.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미랑은 현(現) 당왕(唐王)의 부친 이세연의 애첩이었을 때의 이름이다. 그 미랑이 이세연의 총애를 받아서 무미(武媚)라는 호를 받았는데 본래 이름이 무조(武照)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 조정은 당(唐) 왕실의 패륜을 경멸하여 죽은 아비의 소실을 왕비로 삼은 당왕(唐王) 이치는 물론 무후 미랑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말했다. 이찬 김창준이 장안성에 머물면서 계속 미랑에게 뇌물을 바친다니 성과가 있을 것이오. 그럴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미랑이 뇌물 몇만량에 대군(大軍)을 동원할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제 욕심만 차리는 계집이라고 해도 일국의 왕비가 된 괴물입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설령 당왕 이치는 그냥 넘긴다고 해도 대신들에게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옳다. 의자가 입술 끝을 올리고 물었다. 그 명분은 신라, 백제, 고구려까지의 병합이겠지? 그렇습니다. 신라는 이미 당의 관복을 입고 당의 속령으로 자처하고 있으니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에는 속국으로 삼겠다는 명분을 세울 것입니다. 결국 김춘추의 당과 일심동체론이 당의 대신들에게도 먹히겠지. 신라의 위협이 당의 위협으로 될 것입니다. 김춘추가 필사적으로 당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야. 눈을 가늘게 뜬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제일 두려운 상황이 무엇인지 아느냐? 의자가 묻자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얼른 대답하는 대신은 없다. 의자의 시선이 내신좌평 연임자에게 옮겨졌다. 내신좌평이 말해보라. 당의 대군이 예상 외로 많이 출정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몇십만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대백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나섰다. 당의 대군이 빨리 오는 경우입니까? 아니다. 의자의 시선이 성충에게로 옮겨졌다. 병관좌평이 말해보라. 이치가 죽고 미랑이 집권하는 것 아닙니까? 옳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친 의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은 두 번째로 두려운 상황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왕. 그럼 무후(武后)가 당왕(唐王)이 되겠구나. 미랑은 왕비를 퇴위시키려고 제가 낳은 딸을 질식시켜 죽인 요물입니다. 과연. 의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 딸을 질식시켜 죽인 미랑은 그 죄를 왕비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랑은 왕비가 되었다. 그때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두려운 상황은 김춘추와 미랑이 결탁하는 것이다. 세쌍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나이들었지만 지금도 수려한 용모에 언변이 뛰어났고 재능은 따를 자가 없다. 미랑이 그자를 만난다면 이 세상은 김춘추가 장악하게 될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31 20:02

[불멸의 백제] (275)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1

장군, 이번이 마지막 기회요. 김춘추가 말하자 김유신이 먼저 길게 숨부터 뱉었다. 그렇습니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앞쪽에 사람 사는 민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 쓰게 웃은 김춘추가 술잔을 들었다. 깊은 밤. 해시(10시) 무렵이다. 동경의 내성 청 안에는 신라왕 김춘추와 대장군 김유신 둘이서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둘은 왕과 신하이기 전에 처남 매부 사이며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함께 겪어온 동지이기도 하다. 김유신의 무력(武力) 뒷받침이 없었다면 기라성 같은 다른 진골 왕족을 젖히고 김춘추는 신라왕이 되지 못했다. 김유신 또한 김춘추의 지원이 없었다면 가야 출신으로 대장군까지 이르지 못했다. 둘은 합심하여 상대등 비담의 난을 평정했고 그 와중에 여왕 김덕만을 제거했으며 사촌 여동생 김승만을 여왕으로 옹립했다. 후에 선덕, 진덕으로 불린 여왕들이다. 진덕여왕 김승만이 재위 8년 만에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되었으니 53세가 되었을 때다. 김춘추가 지그시 김유신을 보았다. 장군, 백제를 멸망시키면 고구려는 저절로 떨어지는 감이나 같소. 그렇습니다.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연개소문의 기반이 불안한 터라 연개소문만 죽으면 고구려는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소.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는가? 신라가 명운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은 김춘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하면서도 내분이 많았던 신라다. 성골, 진골 왕족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왕조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백제 의자왕 초기에 대야성이 함락되고 주변의 42개 성까지 백제령이 되는 바람에 영토의 4할을 빼앗겼다. 그야말로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어 있었던 상황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대국 백제, 고구려는 호시탐탐 대륙을 노리는 중이어서 신라를 등에 붙은 거머리 정도 밖으로 여기지 않는다.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전하, 당군(唐軍)이 온다는 소문은 백제에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김춘추가 6살 연상의 김유신을 보았다. 아마 연개소문도 알고 있을 것이오. 연개소문은 지난번 이세민의 침공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아직 군병을 모아 백제를 도울 여력이 없습니다.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면서 말을 이었다. 제일 위험한 쪽은 왜입니다. 그렇군. 왜에서 계백이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전하. 그 놈이 또 뒤를 치면 큰일이오. 첩자의 말을 들으면 영지에서 군사 5만을 금방 모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놈이 동진을 해서 서쪽 해안까지 닿았다니 바다만 건너면 바로 우리 등에 닿게 되지 않겠소? 진즉 우리가 왜를 개척했어야 했습니다. 뼈다귀 싸움하는 바람에 다 놓쳤지. 지금 가장 위험한 적이 계백입니다. 김춘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을 왜에 묶어놓아야 할 텐데 방책이 없겠소? 백제 조정 내부에 있는 첩자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 내가 이찬 김기평을 불러 지시를 하리다. 길게 숨을 뱉은 김춘추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장군, 5년쯤 후에는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오. 장군의 생각은 어떠시오? 어떤 세상이 펼쳐졌을 것 같소? 그때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소신은 대왕께 충성을 한 장수로만 알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이건 관심 없습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30 19:30

[불멸의 백제] (274)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0

화청과 윤진, 백용문은 계백을 따라 본토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 담로인 왜국으로 건너온 후에 왜국 영주가 되었다. 계백이 영지를 나눠준 것이다. 물론 계백령이라 불리는 계백의 영지 안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계백의 신하다. 그러나 각각 10여만 석의 영지를 통치하고 영지 안 주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터라 왕(王)이나 같다. 또한 전(前) 영주의 소실이나 이리저리 인연을 잡아 내실에 처첩을 둘씩, 셋씩 거느렸고 시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딴 세상을 사는 중이다. 그 계백의 원래 측근 셋이 미사코성에 모였다. 계백이 부른 것이다. 미사코성은 계백령의 중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동정(東征)하면서 거성(居城)을 여러 번 옮긴 터라 계백의 처첩은 모두 동쪽 토요야마 성으로 옮겨갔다. 미사코성의 미사코만 예외다. 그대는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구나. 계백의 앞쪽에 앉은 화청에게 말했더니 청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윤진과 백용문이 웃은 것이다. 물론 화청은 안 웃었다. 대신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이러다가 오래 못 살 것입니다. 화청이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고 밤에 젊은 여자에게 원기를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 그 죗값을 받습니다. 이젠 그럴 때도 되었지 않나? 이렇게 살았다면 30년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나솔, 자책할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限)을 품은 채 다음날을 기다리며 살았으니 이렇게 견딘 것입니다. 고개를 든 화청이 계백을 보았다. 달솔, 고향으로 돌아가 육신을 눕히고 싶습니다. 누가 있다고 그러는가? 다 흙이 되어 있으니 저도 같은 땅의 흙이 되려고 그럽니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원이다. 수(隋)나라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였던 화청은 이연이 아들 이세민의 설득을 받고 반란을 일으키자 수 양제에게 보고를 했지만 발각되어 가족이 몰사를 당했다. 그 후로 화청은 몸을 피해 도망을 쳤고 이연은 승승장구, 마침내 당(唐)을 세운 것이다. 그것이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이제 화청은 63세, 백발로 덮인 노장(老將) 모습으로 바다 건너 왜국의 영주가 되어 대륙을 그리고 있다.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 계백의 말에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치를 깔고 앉은 미랑이란 요물도 마찬가지지요.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그때 윤진이 입을 열었다. 주군, 곧 당군(唐軍)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정색한 계백이 셋을 둘러보았다. 이제 영지의 기반이 굳어졌을 테니 정병을 길러 만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셋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표시를 했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대군(大軍)을 수송할 수 있는 대선단을 만들 테다. 이것은 풍왕자께서도 허락하셨다. 그때 윤진이 물었다. 대군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본국으로 데려갈 병력은 기마군 2만, 말이 5만필이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양곡은 반년분을 싣고 간다. 사역병, 잡병, 기타 부속병까지 5천은 더 있어야 될 것이고 마차나 진막, 자재까지 준비해야 됩니다. 모두 원정군 경험이 있는 터라 화청이 말을 잇는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윤진을 보았다. 원정군 준비는 나솔 윤진이 맡고 기한은 년으로 한다. 모두 적극 협력하도록. 아직 당군(唐軍)의 병력, 출동 일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29 15:59

[불멸의 백제] (273)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9

네가 누구냐?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묻자 김창준이 납작 엎드렸다. 장안성 왕궁의 청 안이다. 예, 신라 사신 김창준입니다. 소리쳐 말했지만 당왕과의 거리가 30보나 되어서 잘 안 들렸는지 이치가 비만한 몸을 꿈틀거렸다. 눈썹이 찌푸려져 있다. 누구? 김춘추라고? 아닙니다! 김창준입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대답하자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추가 김창준으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군. 그때 옆쪽의 이의부가 반 발짝 앞으로 나섰다. 대왕전하.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려던 이의부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 옆에 앉아있던 무후가 손을 저었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라는 표시다. 그때 무후가 말했다. 김춘추나 김창준이나 그 이름이 그 이름이지, 안 그러냐? 높고 앙칼진 무후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러자 이의부, 허경종이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마마, 그렇습니다. 그때 무후가 이치를 돌아보았다. 대왕, 신라가 원병을 청하니 보내 주시지요. 그놈들은 맨날 원병이야?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어떻게 사노? 신라가 없어지면 백제 고구려가 대당의 등을 찌를테니까요. 무후가 쨍쨍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왕, 대왕이 즉위하시고 나서 고구려 백제는 인사도 안 했습니다.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랬지, 인사도 안 했지.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삼아서 병력을 모으라고 하지요. 소정방을, 그자가 살아있나? 원정군 사령관으로 적당해요. 청 안에 백 명이 넘는 백관이 도열하고 서 있었지만 계단 위의 옥좌에 나란히 앉은 왕과 왕비가 거침없이 국사를 논하고 있다. 아니, 논하는 것이 아니다. 왕비 무후가 왕 이치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백관들이 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제 일상화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그때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소정방을 보내지. 백제를 멸망시키면 그곳에 도독부를 두고 속령으로 삼을 것입니다. 옳지, 속령으로. 그때 이의부가 소리쳐 대답했다. 대당(大唐)이 천년만년 번성할 것입니다. 만세! 대왕 만세! 왕비 만세! 그러자 다른 백관들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엎드려있던 김창준도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따라 부른다. 이제 되었다. 왕궁을 나오면서 김창준이 부사(副使) 김익수에게 말했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에 눈물까지 고여져 있다. 신라가 이제 살아나는구나. 대감, 애쓰셨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당의 도성 장안성에서 석 달째 머물고 있었던 김창준이다. 성문을 나온 김창준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대왕께서 그토록 공을 들이신 덕분이다. 저 돼지 같은 놈의 군사를 빌려 개떼 같은 백제, 고구려를 치는 것이다. 대감, 감개가 무량합니다. 김익수도 눈물을 닦았다. 둘은 신라의 충신이다. 다시 발을 떼면서 김창준이 말을 이었다. 어서 이 소식을 대왕께 알려야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28 19:35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