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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에 대한 분노, 詩로 외치다

뒤집힌 배 안에서 손가락뼈가 부러지도록 뭔가에게 매달렸을 그대들에게,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나 또한 그런 나라의 금수만도 못한 시인입니다. 이건 시도 아닙니다.이상국 시인의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읽어 내려가는 김정경 시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전주 경기전 앞 마당에 울려퍼졌다. 광장의 세찬 외침과는 달리 마치 자아성찰과 같은 낭독은 300여 명 시민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먹먹함을 잔뜩 머금은 마음은 이내 무겁고 단단해졌다.예술인들 역시 병신년(丙申年)의 마지막과 정유년(丁酉年)의 새 날을 거리에서 맞았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병용)가 시 낭독과 문학방담을 통해 현 시국에 관한 문학인들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마련한 길 위의 문학콘서트_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가 지난 31일 전주 경기전 앞에서 열렸다.현 정권에 들어 절필 선언을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 후 문학 활동을 재개한 안도현 시인을 비롯해 박성우 김정경 임주아 시인이 자신의 의지를 함축한 시를 낭독했다. 송하진 도지사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참여해 문학을 통한 외침에 힘을 실었다.첫 낭독자로 나선 김정경 시인은 숱한 의혹과 밝혀져야 할 진실은 2014년 4월 16일부터 현재까지 가려져 있다면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우리가 함께 기억하자는 약속의 의미로 세월호 추모시집에 수록된 시를 읽었다고 설명했다. 송 지사는 자작시 느티나무는 힘이 세다를 낭송하며, 하루바삐 국민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제야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뒷방에서 몰래 검열, 배제하면서 현재 한국 문학계가 얼마나 모욕을 당했는지 현대판 분서갱유, 정신적 연좌제와 같은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현 정권에서 비롯한 문제들은 해가 바뀌어도 촛불의 힘으로 끝까지 태워버려야 합니다. 김병용 회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대표로 입장 발언을 했다.문재인 전 대표 역시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 대청소해야 할 현 정권의 가장 심각한 적폐다며 반드시 진상 규명을 해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문화예술의 자유 침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면서 다시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도록 확실히 복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복수란 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이다. 발언을 마친 문 전 대표는 평소 문학적으로 존경한다고 밝힌 안도현 시인과 함께 단상에 올라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낭송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백팩

나의 과거가 사라진다면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과거는 현재의 기억이다. 현재는 미래의 기대가치다. 아버지를 향해 뿌려진 막걸리 한 잔이 나의 과거가 되고 지금이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내 피 속의 우주먼지가 또다시 중력에 끌리는 몸을 만들 것이다.나는 펜을 멈추고 메모장을 덮었다. 열차가 플랫폼에 닿기도 전에 몇몇의 사람들은 출입구 쪽을 향해 줄을 섰다. 손에 들고 있던 낡은 공책을 상자 안에 넣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종착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열차는 속도를 줄였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백팩을 맸다. 백팩은 여행자에게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플랫폼에 발을 디디는 순간, 열차는 나를 습하고 비릿한 열기 속으로 토해냈다. 내가 도착한 해안도시, 여수다.역 출구 왼편으로는 오래전 시멘트 싸이로였다는 전망대가 보였고 그 뒤편에 있음직한 바다에는 크루즈 유람선이 졸고 있었다. 스카이타워 전망대는 하프모양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원통의 싸이로 바깥으로 두르고 뱃고동 소리를 뱉어냈다. 원시의 소리가 광장을 압도했다. 소리가 빛을 통과하는 순간 중력에 가둬진 시간이 사람들의 움직임 속으로 흡수되었다. 여행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일정이나 목적지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떠들어댔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하프의 선율에 음표를 만들며 흔들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상기되어 보였다. 나는 어때 보일까? 그들을 보며 가만히 내 이마를 짚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날 밤이면 나는 묘한 긴장감에 줄곧 잠을 설치곤 했다. 금식을 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체했다. 그 습관은 어쩌면 나에게 존재하는 암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르간 소리는 빈속의 내장을 훑으며 투웅, 하고 공명했다. 중력으로 엮인 그 파장이 거대한 너울을 만들면서 박람회장의 웜홀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팔월의 열기가 광장의 아스팔트 위에서 형체도 없이 이글거렸다. 여수엑스포역 광장과 도로의 경계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서 만성리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나는 그가 적어놓은 공책의 노선을 따라가기로 했다. 만성리행 버스를 타면 마래터널을 지난다고 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7번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정류장은 안내소와 멀지 않았다.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안내받은 대로 박람회장 3문에서 큰 도로 방향으로 일 분여를 걸었을 때 만성리행 7번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그의 공책에 씌어진 마래터널이 궁금했다. 조사를 뺀 몇 개의 단어들이 지도를 그리듯 흩어져 적혀진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유적의 형체를 찾아내라는 것일까. 붓으로 타임슬립의 시간을 털어내듯 그가 남긴 문자들을 생생하게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만성리와 마래터널의 행간의 의미를 찾아, 나의 아버지, 그가 내게 전하는 말의 의미를 찾아.정류장에는 인솔자로 보이는 남자가 스무 명쯤 되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소리 높여 말했다. 학생들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듯 보였다. 팔월 한낮만 아니라면 그들도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었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비켜서시오, 라고 쓰여 있었다. 터널 안에서의 주의사항이 분명했다. 터널과 어울리지 않는 안내판이 검은 아치의 입구 오른편에 붙어있었다. 약 백 미터마다 오른편으로 비켜설 공간을 알리는 LED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보고 지나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관찰한 목격자 누군가는 관할부서에 잘 모르겠더라, 라는 댓글이라도 달아야 할 것이다. 터널은 쌍방이 아니었다. 초행이라면 이용방법에 서투를 수밖에 없겠지만 예상한대로 어떤 이는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관광객들은 왜 낯선 곳에서 더 주의하지 않는 걸까? 편도의 터널 안은 꽉 막힌 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암호 같은 그림을 해석해내지 못했다. 터널 밖의 차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엉성한 테트리스처럼 늘어섰고 급기야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푹푹 찌는 열기 속에 묵혀지는 시간들도 답답했다. 아저씨, 저 좀 내려주세요. 기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한숨을 몰아쉬더니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었다. 사고책임은 지지 않겠다면서. 차 밖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노년의 한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인지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어떤 중년의 남자는 터널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빛이 환한 터널 밖의 차량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세워진 차량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 그들의 얼굴이 겹쳐져 한 사람처럼 보였다. 검은 굴 안에서는 차들의 불빛과 소음만 들렸다. 사람들의 호흡과 뒤숭숭한 소리들이 뒤섞였다. 침이 마르고 헛헛증이 일었다. 마래터널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다. 최대한 벽 쪽으로 붙어서 걸어야 했다.나는 군 입대를 미뤄왔다. 어쩌면 이번에도 입대를 포기하고 다시 연기신청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이틀 후면 군에 입대해야 한다. 여지없이 입대일이 다가오자 또 미칠 것처럼 답답했다. 밑도 끝도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처지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통화는 할 수 없다고 지민에게서 다급한 문자가 찍혔다. 그리고 서울 집으로 어제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가 찾아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팔로 그것들을 내던지더니, 뒷발로 휴대폰과 컴퓨터 본체를 짓밟아 부수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엄마에게 차마 그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녀와 내가 장난처럼 찍은 사진이 문제였다. 스마트폰은 누구에게나 쉽게 기록의 도구가 되었다. 또래 사이에서는 백 일이나 천 일을 기념해서 연인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진실을 나눈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서로를 찍어주고 함께 본 다음 바로 삭제했다. 우리만의 원칙이었다. 확인하고 싶었을 뿐 남겨둬서 해킹을 당하거나 분실하는 일로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노출시키는 일을 벌이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내게는 사진 한 장도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민의 휴대폰이 문제였다. 내가 보냈던 JPG파일 중 미처 삭제되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그녀말로는 휴대폰으로는 확인되지 않아서 몰랐다고 했다. 부모님과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하고 TV모니터와 연결시켰다가 알몸으로 엉켜있는 사진을 가족 모두가 보게 된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나와 같은 버스를 탔던 학생들이 긴 띠처럼 마래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도 차를 피하며 벽으로 내몰렸다. 아이들은 조심스러워 보였다.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내 발걸음을 되밟으며 잰걸음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위해 성큼, 보폭을 키웠다.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두 번째 사춘기는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내가 없는 게 더 좋겠죠? 내가 없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눈을 피했다. 중심을 잡기위해 벽을 붙들었다.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검은 벽은 서늘했다. 머리카락 끝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퍼지는 차가운 전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검은 화석 속에 깃든 무언가가 아우성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중심을 잃지 않으려 벽을 붙든 내 모습이 더 이상 생식기를 쓸 수 없는 늙은 거미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아니었다. 그가 내게 보낸 상자, 내가 짊어진 상자를 생각했다.누군가 시체들 속에서 아버지를 봤다고 했다. 하지만 제주여자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눈앞은 검고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포승줄에 줄줄이 묶인 사람들이 터널을 지나 구덩이 앞에서 자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왔던 사람들, 그 주검들을 보는 것은 참혹했을 것이다. 이제 자신들도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제주여자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두 눈으로 아버지의 주검이 없는 걸 확인해야 했다. 제주여자에게 터널은 희망이었다.일제강점기의 일본군들은 군수물자를 약탈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이 터널의 건설을 부역시켰다. 한 정 한 정씩 떨어져나간 고통의 흔적은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터널을 뚫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차갑게 잊힌 검은 기억들이 터널의 천정에서 바닥까지 벽을 타고 내렸다. 통행하는 차량과 행인을 위해 설치된 불빛은 푸르스름했다. 그 때문인지 거대한 수용소처럼 음울했다. 내가 상자를 받던 날, 외할머니는 내게 마래터널을 알려주었다. 외할머니가 나보다 더 어렸을 때, 만성리로 가는 이 길은 암흑천지였다. 사람들은 한낮에도 그믐밤처럼 벽을 붙들고 귀를 곤두세우며 걸을 뿐이었다. 오래전 그들은 이 벽을 더듬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차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산소처럼 들이마셨다. 차들의 전조등과 후미등은 점점 더 규칙적으로 패턴화 되었다. 어지러웠다.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다시 벽을 붙들어야 했다. 아아. 누군가가 내 손끝을 쳤다. 벽, 벽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었다. 벽을 붙들 때마다 터널 부역자들의 터진 손이 만져졌다. 한 손 한 손, 또 한 손, 끝없이 내 손을 붙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의 손끝은 뜨거웠다. 나는 더 이상 마래터널이 두렵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들려줬던 그 시절처럼 부역자의 손을 더듬으며 터널을 빠져나왔다. 나의 할머니처럼.터널을 나오자 오른 편 벼랑 아래로 시퍼런 바다가 처연히 부딪혔다. 갈매기들은 낮게 날았다. 수면과 맞닿은 하늘은 눈이 부셨다. 수면이 너울거릴 때마다 잔잔한 물결이 은빛 윤슬을 만들었다. 어떤 의식처럼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한참을 응시했다. 만성리 해변이 보이는 터널 밖의 차들은, 마래터널 안으로 들어오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길 위에 붙들려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서울과 다른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오십 여 미터를 더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비문이 있는 언덕이었다. 언덕에 세워진 비문 주변은 바람소리마저 고요했다. 분명 이곳은 누군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분명했다. 주변의 잡초들은 입대 직전에야 삭발한 머리처럼 뿌리 가까이까지 깨끗하게 깎여 있었다. 친구들이 입대하던 연병장이 떠올랐다. 몇몇은 웃고 몇몇은 찡그렸고, 또 몇몇은 공포에 떨었고, 그렇게 몇몇은 눈물을 닦았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왼편에는 희생지로, 오른편에는 학살지로 쓰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장소를 두고도 해석이 다르다. 무엇 때문에? 여순사건추모비 앞으로 더 가까이 갔다. 어떤 장식도 없이 건조해 보이는 비문을 돌다가 순간 걸음을 멈췄다.단지, 말줄임표만이 비문의 중심에 있었을 뿐이다. 여섯 개의 점,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추모비 뒤편 비문의 내용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여수로 내려오기 이틀 전이었다. 일곱 살 때 헤어져 지금껏 연락 없던 그로부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그 안에 담겨진 낡은 공책 한 권과 사진 한 장 그리고 칠십 년을 산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질끈 눈을 감았을 뿐 울지 않았다. 무책임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릴 의무 따위는 없었다. 나는 그의 성을 따르지 않았다. 엄마의 아들일 뿐이었으니까. 눈을 감은 채로 상자 안에 담긴 것을 더듬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얇고 각진 사진과 손가락 두께만큼 뭉툭한 공책에서 낡은 시간이 느껴졌다. 공책의 겉장은 오랜 노동으로 굳은살이 박이고 튼 것처럼 거칠었다. 상처가 덧나고 간신히 아문 손이라는 걸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공책 속에 넣었다. 글자들이 만져졌다. 꼭꼭 눌린 흔적이 종이의 뒷면에 한 자 한 자 손끝에서 살아났다. 아버지에 관한 것들은 오래전부터 내게는 낯설 뿐이었다. 그러나 뼈에라도 새길 듯 선명했고 손끝에서 전율하는 이야기는 온통 나를 뒤흔들었다. 여름날 중형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나는 꼬박 밤을 새운 채 백팩에 그의 상자를 넣고 여수로 온 것이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아버지는 동경대를 졸업하고 고향의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지역계몽운동에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계몽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에서 43항쟁이 일어난 지 몇 개월이 지난 후였다. 10월 19일부터 칠일천하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살이 있었다. 그때 여수 민간인 일만여 명이 사라졌다. 아버지의 소식도 알 수 없었다. 아니,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후로 흉흉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한반도는 나뉘어졌다. 결국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전쟁은 참혹했다. 약자가 견디기 어려운 최악의 아수라장이었다. 만성리의 검은 해변처럼 사람들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었다. 아버지는 여순사건으로 실종된 후 일 년 반 동안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언제 왔는지 아이들이 내 주변에 빙 둘러서서 말줄임표의 해석을 두고 서로 떠들어대며 킥킥거렸다. 인솔자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이곳은 울어야하는 곳이다. 너희가 서 있는 땅 아래에는 바다로 통하는 굴이 있었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대한민국이 둘로 나뉘는 것이 싫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 결국 여순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어. 지금 너희들이 서 있는 이곳에, 바다와 연결된 구덩이 안에 죽은 사람들을 던져 넣었던 거다. 그 위에 자갈과 바위를 덮고사람들을 던져 넣고 돌로 덮었다. 다시 사람들을 쏟아 붓고 그 위에 돌을. 왜 그랬어요? 한 아이가 질문했다.이곳? 나도 안다. 내게 부쳐진 이 공책 안에는 내가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진실이 새겨져 있으니까. 추모비가 세워진 이곳은 사라진 일만 여개의 말줄임표였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침묵. 나도 아이들을 따라 내게 물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지? 왜, 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났다. 백여 미터를 더 걸었을 때 다시 왼편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났다. 형제묘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부역자들의 묘라고 씌어 있다.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의지하라는 내용이었다. 형제처럼 의지하라, 형제처럼. 외침이 되어 자꾸만 입 안에 맴돌았다. 가파른 계단을 바라봤다. 오른다 오르지 않는다 오른다 오르지 않는다 오르지 않는다. 나는 잠시 목례를 했다. 꼬리를 물며 늘어선 차량들이 한 여름의 뜨거운 볕 아래 텁텁한 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늘이 있는 계단 구석에 걸터앉았다. 공책을 폈다.아버지는 줄곧 사라졌다 돌아왔다. 돌아올 때마다 몸의 어느 한 곳은 처참히 뭉개어져 왔다. 그러나 침묵해야 했다. 갑자기 사라졌다 돌아오는 일은 변함없이 빈번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누런 양은 주전자를 내밀 때에만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때만이 나는 아버지의 아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시름시름 앓거나 취해 있었다. 그런 아버지라도 내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랐지만 내 바람처럼 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제 명을 다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고개를 들었다. 갈매기 한 무리가 수면 위에 동동 떠 있다. 그들은 무얼 기다리는 건가. 노천카페에는 가족이거나 연인 또는 누군가의 동료들이 앉아 무언가를 마시거나 빨면서 여름을 식히고 있었다. 갈매기들처럼.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아카시아 잎을 떼어내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연인이 레일바이크를 타고 페달을 밟으며 폐터널이 된 곳을 향해 웃어댔다. 무엇이 좋은 건가. 나는 그들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저들과 다른 감정을 가진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진 후 외가댁 어른들을 따라 서울로 와서 본적과 내 성을 바꿨다고 했다. 나의 호적상 부모는 엄마뿐이었다. 검은 해변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순환하는 7번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듯했다. 왼쪽으로 비켜선 차들 덕택에 만성리 해변을 출발한 버스는 터널을 통과해 여수엑스포역 앞을 지났고 오동도 입구 주차장에서 나를 내려줬다. 몇 년 전 어느 여름밤, 엄마는 여수엑스포 관람을 마치고 광장 벤치에서 어렵게 아버지의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엄마를 사랑했다고. 나와 엄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내력마저 두려워졌다. 지금 내 등에 짊어진 상자를 받기 전까지는.이 사진 배경은 등대가 맞네요. 관광안내소 해설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알겠다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동백나무숲길을 따라 등대 전망대로 향했다. 지금은 담장이 없다. 오래전의 등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동백나무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승강기로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백팩에서 상자를 꺼냈다. 빛바랜 사진 뒷면에 써진 아버지의 이름. 등대가 올려다 보이는 담장아래서 어린 소년은 왼쪽 눈을 가늘게 찡그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투정부리듯 찡그리다 찍힌 듯한 사진이었다. 오래전 소년은 담장너머 등대 안에서 먼 바다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진을 양 손으로 감싸 쥐었다. 사진 속 소년이 풍경을, 소년의 눈으로 그 풍경 속의 바다와 섬들을 볼 수 있게 등대 전망대 안을 천천히 돌았다. 철 모르는 핏빛의 동백꽃 몇 알이 처연하게 밟혔다.오동도 광장에서는 음악 분수 쇼가 한창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깔깔거렸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운 듯 사진을 찍거나 지켜보다가 걱정스레 소리치기도 했다. 셔틀기차를 기다리며 안내소 옆 벤치에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나도 저들처럼 저렇게 뛰었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오동도의 기념품점에서 내게 카우보이 모자를 사줬다고 했다. 나는 그 모자를 아버지의 분신처럼 아꼈지만 서울로 이사 가기 전쯤엔 다시 볼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공책을 읽기 전까지, 아버지가 나를 떠난 것은 내가 그 모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오른쪽 상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민의 부모가 운영하는 기념품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방학 중인 그녀도 부모를 돕고 있을지 몰랐다. 그때 느닷없이, 정말 지민이 나왔다. 여행객과 얘기를 나누다가 돈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녀가 사라졌다. 형체도 없는 차가운 입자들이 분수처럼 찢겨져서는 나의 가슴을 여러 갈래로 할퀴었다. 공수부대 원사로 전역한 지민의 아버지는 내게 애비를 닮아서 몹쓸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 있었던 건 지민이 여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대학 엠티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지민은 여수가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개를 쳐들고 지민을 응시했다. 뒤풀이에서 지민이 내게 말했다.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이유를 안다고. 선배의 이름이 여수이기 때문이 아니냐고. 나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새로운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지민에게서 시선을 접고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나는 마지못해 투박하게 말을 털어냈다. 여행은 어때? 뭐, 그냥. 아들, 사랑해. 뭐야, 갑자기. 으응, 엄마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전화기 너머에서 볼우물을 파며 웃고 있을 엄마의 표정이 선했다. 엄마는 참 이상하다. 멀리 있으면서도 나의 결정적인 순간을 찾아낸다. 엄만 오동도에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간 적이 있었어. 바람이 거세서 발을 헛디딜까봐 겁내기도 했지만 그 계단을 끝까지 올랐지. 팔각정까지 갔어. 너도 가보렴. 네 아버지랑 갔던 곳이기도. 엄마는 말끝을 흐리면서 잠시 쉬었다. 그럴게. 엄만 그날 거기서 새해 일출을 봤거든. 지금도 생생하구나. 엄마는 그와의 추억 길을 내게 걷게 하는 것이리라. 엄마와 그도 행복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순간은 진실이었을 것이고,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 나 또한 그랬다. 지민과의 순간은 진실이었다. 지민의 아버지가 우리 사이에 끼기 전에는. 그녀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 지금 여수에 와 있어. 여수갯가길, 같이 걸을래? 분수광장과 오동도 입구까지, 셔틀기차는 방파제를 따라 일천 이백여 미터를 운행했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 동백열차를 탔다. 오동도를 나와 자산공원과 연결된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엄마가 말한 그 계단이었다. 팔각정의 전망대에 미리 자리 잡은 사람들은 여러 도의 사투리를 부려놓았다. 그들에게 여수는 관광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다. 나는 백팩을 고쳐 매고서 팔각정의 여덟 꼭지를 천천히 돌았다. 오동도의 왼편으로 몇 해 전 크게 행사를 치룬 엑스포 행사장이 내려다 보였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엑스포를 필수 코스처럼 찾았을 것이다. 마침 빅오쇼가 시작되었다. 공연장의 음악은 알아들을 수 없이 하울링 되었다. 가장 인기 있던 빅오쇼는 여전히 운용되는 모양이었다. 행사장과의 거리 때문에 제대로 된 메시지를 보거나 들을 수는 없지만 쇼를 보기 위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부모와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다. 키아네아 카필라타, 거대한 해파리의 다리처럼 흩어지는 투명한 물줄기들을 상상해보는 것은 여기서도 충분했다. 아버지는 나와 헤어지기 전에, 소나무 숲과 자갈해변이 있는 여수 무술목의 해양수산과학관에서 키아네아 카필라타를 보여줬다. 유령해파리과에 속하는 맹독성의 해파리라면서 사자 갈기처럼 잘 생겼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여수야아, 키아네아 카필라타에게 물리며언 심장이 약한 사람은 죽지마안, 건강한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살아남는단다아. 너언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애. 세상에느은 키아네아 카필라타가 나타나는 일이 있거어든. 마치 집중시키려는 듯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려는 듯 더듬거리듯 느릿하던 어법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스스로 메아리를 만들며 자신의 그림자를 내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워터스크린 안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스크린 밖으로 뻗어나가는 사자갈기. 수족관을 나와 몽돌밭 무술목 해변에서 말없이 아버지의 갈기에 나를 목말 태웠다. 우리는 함께 무술목 바다 위의 섬 두 개를 바라봤다. 여수야아, 작고 납작한 돌 찾아볼래애? 아버지와 나는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웠다. 퉁퉁퉁퉁퉁퉁수없이 많은 말줄임표들이 수면 위를 날았다.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말이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 같기도 해서 좀처럼 놀아달라거나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갑자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로부터 멀리 튕겨졌다, 물수제비 뜨던 조약돌처럼. 나와 엄마는 외가 어른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에게 함께 가겠다거나 여수에 남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만하게 어린 마음으로도 그의 침묵을 무책임하다고 느꼈다.아버지가 사랑한 여자는 제주여자였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제자였던 제주여자는 아버지 곁에서 아들인 나를 돌봐줬다.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당한 날은 1950년 7월 9일이었고, 제주여자는 사형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면회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때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 나는 제주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고 누나라고 불렀다. 갓 스무 살 처녀였기 때문이었다. 제주여자가 내 처의 어머니라는 걸 여수를 낳고 알게 되었다. 여수 나이 일곱 살 때였다.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오동도를 감싼 바다에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해상케이블카의 여러 빛이 돌산까지 다리를 만들며 건너갔다. 팔각정으로 올랐던 가파른 계단을 다시 내려와 오동도 주차장 입구에 있는 터널로 들어섰다. 마래터널과는 달랐다. 화려한 쇼윈도보다 더 눈이 부셔서 한참 동안 눈을 껌벅이고서야 중심을 잡았다. 나를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오는 다른 여행객들도 있었다. 터널은 길지 않았다. 하멜등대가 보였고 그 뒤편에 돌산대교가 있었다. 종포를 따라 이어진 해안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술을 부리고 색소폰으로 재즈를 연주했다. 사람들이 여자 보컬을 중심으로 공연팀을 겹겹이 에워싸고는 환호성을 지르거나 휘파람 소리를 냈다. TV 오디션프로에서 인기를 얻은 보컬인가 싶었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손이 그들의 눈보다 더 바빴다. 공연감상은 사람의 눈이 아닌 휴대폰들이 대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자체 발광하는 수십수백 개의 살아있는 눈들을 쳐든 그들이 더 흥미로워 보였다. 거리 버스킹 공연은 아주 다양했다. 바다 위에서는 유람선이 사람들을 향해 고동을 울리더니 해양공원을 따라 서서히 미끄러지듯 흐르며 심해의 발광체 같은 야경을 만들었다. 배에서는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 자산공원에서 시작해 하멜등대 위로, 다시 거북선대교와 돌산공원까지 이어지는 해상케이블카의 불빛이 여수의 밤바다를 살아있게 했다. 지금은 관광객들 틈에 섞인 나도, 더 이상은 먼 섬이 아니었다. 거리공연을 보는 사람들을 보며 걷다보니 거북선 모형이 있는 이순신 광장까지 왔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 너머 진남관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배가 고팠다. 음식점거리라는 원형의 입간판의 불이 밝았다. 나는 어둠이 켜지는 해안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성수기라 식당 어디나 사람들로 붐볐다. 낯설고 북적거리는 음식점에서 나 혼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차라리 카페가 나을 것 같았다. 천사 문양이 그려진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과 와플을 주문하고 컴퓨터가 어디 있는지 둘러봤다. 여수갯가길을 검색하려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종업원이 먼저 그 길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가 멋쩍은 듯 나에게 슬쩍 웃어보였다. 그는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문의하는 여행객이 많아서 자신도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제주라고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특별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여수를 선택했다고 했다. 나는 이틀 뒤면 입대할 거라고 말했다. 톡.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니,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해. 미안. 지민에게서 온 문자를 지웠다. 남자는 여수 시티투어를 하는 노란버스를 타면 갯가길이 시작되는 곳에 내려줄 거라고 했다. 서두르면 다행히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겠어요. 내가 고맙다고 하자 그는 자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여수갯가길을 걸을 거라고 했다.비릿한 바람이 정면으로 얼굴을 스쳤다. 여수 밤바다를 에둘러가는 노란 버스의 이층에서 바라보는 여수의 밤풍경이 자꾸만 흔들렸다. 버스는 돌산의 갯가길 1코스가 시작되는 돌산공원 아래서 나를 내려줬다. 갯가물이 흐르는 가장자리, 완만하게 흐르는 물살처럼 오늘만은 그렇게 걷고 싶었다. 몇 달 전이었다. 엄마는 보던 신문을 접고 일어섰다. 아버지와 첫 데이트를 했던 길이 갯가길 코스가 되었다면서 왠지 쓸쓸해했다. 그 갯가길을 오늘 내가 걷는 걸 안다면 엄마는 뭐라 하실까. 돌산대교 아래 우두리항에서 길은 시작되었다.바다가 밀려와 부딪혔다. 갯가 너머로 해안선이 멀리 물러나 있었다. 무술목에서 몽돌 사이를 흐르던 파도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몽돌아래 단단한 근육질의 모래사장이 드러나 있었다.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한때는 불가사리였을 오각형 모양의 하얀 화석도 함께. 그와 물수제비를 뜨던 곳이 여기 어디쯤이지 않았을까. 섬 두 개가 보였다. 오래전 그때처럼 말이다.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돌을 꺼냈다. 호흡을 늦추며 수를 세었다. 하나아 두울 세엣, 던졌다. 여섯 번쯤 튀어 오르다가 가라앉았다. 아버지나도 모르게 입술 밖으로 소리가 흘렀다. 창백해진 무술목 해변을 서둘러 뒤로 했다. 한때는 향일암이라 불리기도 했다던 영구암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어쩌면 막차가 떠난 후인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의상실은 서울에서도 꽤 이름을 얻었다. 그렇지만 나는 텅빈 집에서 혼자 차려 먹어야했던 식사가 너무나 싫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고등학교 때 외할머니의 차를 몰래 타고 나오기도 했다. 아버지를 떠난 엄마가 미워 반항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는 생각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몇 번의 가출 끝에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버스가 왔다. 버스로 방죽포 해수욕장을 지나 영구암 아래 마을인 임포까지 왔을 때는 달이 높이 떠올랐다. 살이 가득 오른 달이었다. 막걸리가 채워진 양은 주전자, 그가 할아버지를 위해 심부름을 했던 그날이 오늘이었을까. 달에는 막걸리가 채워진 것이 분명하다. 달을 보고 말했다. 우리 막걸리 한 잔 어때요? 달이 헛헛하게 웃었다.옛 주막 같은 선술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돌산 갓김치를 안주로 내어주었다. 달이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달과 막걸리를 마시거니 주거니 받거니. 창밖으로 임포의 밤 풍경이 흔들렸다. 그에게 막걸리 한 잔을 올리고 싶어졌다. 내 사정을 들은 주인아주머니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채우더니 잔 하나를 챙겨줬다. 가로등이 별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포구에 매여진 여러 척의 배들이 서로를 부비며 피붙이처럼 의지하고 있었다.포구 끝에서 백팩을 풀어 내렸다. 사진과 유골함을 꺼냈다. 달항아리 같은 둥그런 주전자에서 막걸리 한 잔을 따랐다. 그에게 잔을 건넸다. 그도 나도 바다를 바라봤다. 막걸리 잔 속의 흰 것을, 바다에 뿌렸다. 바다가 출렁거렸다. 밤의 파도가 달빛을 보듬고 금빛 윤슬을 목말 태웠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지러운 것도 같고, 취해버린 것도 같았다. 아버지는 사진을 바다에 띄워 보내길 바랄까? 어릴 적 나와 닮은 아버지를,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어린 소년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사진을 천천히 백팩 안에 넣었다.곧 해가 떠오를 것이다.암자로 오르는 계단은 널찍했다. 잘 골라진 계단은 암자에 거의 이르러서 끝이 났다. 한 계단 한 계단 시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외할머니에게 들었다. 동트기 전의 어둠이 낯설지 않았다. 발아래 느껴지는 단단함에서 힘이 느껴졌다. 계단 양 옆으로 난 숲은 어둠이 깊었다. 암자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고 몇 번이나 이름을 잃었다가 다시 영구암으로 불리었다. 여수라는 지명도 세 번이나 이름을 잃었다가 결국 되찾았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거대한 비석을 기대어 놓은 듯 좁은 토굴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백팩의 끈을 꽉 틀어잡았다. 여러 겹의 형체들이 겹쳐졌다 흩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구석에는 누군가 기도를 하려 켜두었다가 다 타고 녹아내린 촛농들이 원형과는 다른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슬쩍 춤추듯 흔들리며 어둠을 밝히는 초들이 벽에 기대어 꽃처럼 피어있었다. 문득 무술목에서 주웠던 화석이 기억났다. 흘러내린 초의 흔적들 옆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주머니 안에서 화석에 배어있던 모래 낱알들이 만져졌지만 털어내지 않았다.암자로 오르는 길의 바위들은 거북의 등처럼 예외 없이 풍화가 되어있었다. 새벽 여명은 바람의 흔적을 쓰다듬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비틀거리다 기댄 바위에서는 마래터널에서 내 손을 붙들던 손의 흔적이 만져졌다. 날이 새면 여수엑스포역으로 가서 용산행 KTX를 타야 한다. 그리고 입대해야 한다.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지민의 이름을 지웠다. 관음전 앞의 하늘이 붉어졌다. 날이 밝고 있었다. 백팩의 상자를 꺼냈다. 손을 얹었다. 상자를 열어 아버지의 뼛가루를 날렸다. 하늘로, 바다로, 경계가 없는 곳으로. 바다에도 하늘에도 눈시울이 있었다. 가슴이 화끈거린다. 여수야아. 귓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내 심장에서 들려오는 게 분명했다. 해무 위로 뜨거운 것이 젖어들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서 문이 열리고 있었다.해가 떠올랐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여순사건 다뤄…탐구정신 돋보여"

신춘문예가 시작된 지 한 세기가 되어간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문학제도이다. 한국문단은 신춘문예와 잡지를 통해 유지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 의의가 크다.신춘문예는 가슴 설레게 한다. 새로운 탄생에 어디 설렘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작가로 탄생한다는 것은 사회 역사 속에 나 자신을 투척하는 일이다. 이는 영광과 책임이 함께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하는 이들에게,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축하를 드리는 것이다.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6편이었다. 매뉴얼에 따라 달려가는 시대상을 다룬 가만 있으라, 현실과 단절된 개인의 삶을 소재로 한 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추적한 백팩,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사는 발레리나 지망생의 일상을 그린 카페 헤밍웨이, 벽지에 근무하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내 사이에서 희박해지는 인간관계를 다룬 고객님 안녕히 가세요, 다문화사회의 일면을 그린 닭 등을 읽었다. 전반적으로 개인의 지위 약화, 느슨한 인간관계, 무의미한 일상 등을 다루면서 주제의식이 좀더 치열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본심에 올라온 작품 가운데 카페 헤밍웨이와 백팩 두 편을 두고 논의를 벌였다. 카페 헤밍웨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희석되고, 존재의 연결이 느슨해지며, 삶의 가치가 의미의 지평 너머로 사라지는 현대인의 삶을 점묘식으로 그린 수작이었다. 그러나 서사를 엮어나가는 힘이 딸린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결국 백팩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정확한 문장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풀어지지 않고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아버지의 생애를 서술하는 부분과, 백팩을 메고 아버지의 죽음을 찾아가는 여정과, 지민과의 사랑과 이별 등을 알맞게 교차하여, 이야기를 엮어 내는 솜씨가 남달랐다. 여순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점, 등에 지고 가는 백팩과도 같은 역사적 부담감에 대한 상징성 등, 미래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탐구정신과 태도가 돋보이기도 했다.그러나 아쉬운 결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백팩 속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행위가 과연 적극적인 결말인가?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행위가 역사를 청산하자는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상징성이 약하다. 이와 같은 회고적 여행구조는 결국 작가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감상에 빠지게 한다. 센티멘탈리즘으로 완결짓는 소설적 해결보다 치열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비판의식이 작가의 몫이라는 인식이 투철해지기를 바란다. 응모한 분들의 정진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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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산중 요양원 묘사, 사실정물화처럼 생생"

올해 신춘문예에는 예년보다도 많은 분들이 응모한 열기로 세밑의 겨울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180여 분, 4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응모한 편수만큼이나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심사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을 천평칭(天平秤)저울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경중을 재어보면서 선후우열을 가려보았다.결국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허정진의 요양원 가는 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온 작자의 가슴 에이는 깊은 마음의 심연이 심사자의 가슴을 아리고 여울지게 한 리얼리티에 연유된 소이연인 것 같다.수필은 작자가 직접 체험한 삶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감동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기고백의 장르다.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심경을 그저 붓 가는 대로의 의미를 담아내는 게 수필(隨筆)이다. 따른다(隨)에 함의된 속뜻은 어떤 수준에 이른다(到)나 베스트(至)와 동질적이므로 좋은 수필을 쓰려면 반드시 어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작자는 단아하던 몸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고, 늘 꽃으로 남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 모르는 신세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산중 작은 요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노구들의 고독한 삶의 앙상한 형상들을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거나,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라는 빛바랜 산중요양원의 묘사는 허랑하고도 생생한 사실정물화로 다가들었다.이러한 허허로운 노년의 삶과 죽음에 이르게 되는 김은옥 씨의 은사시나무나 송귀연 씨의 잿불에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감자나 고구마를 찌기 전 껍질을 벗길 때 사용했던 김학철 씨의 달챙이 숟가락의 아린 어려운 삶에도 드리어져 있고, 고단한 노년의 노점상 제2인칭관찰자 시점의 수필 제례시장 박시윤 씨의 마수걸이에서도 리얼하게 그려졌다. 이들 모두 다 당선작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당선작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는 제한성이 심사자로서 매우 아쉽고 야속하기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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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요양원 가는 길

도심지를 벗어나 늦가을 들녘을 가로지른다. 분주함 속에 풍요가 거쳐 간 논밭에는 허허로움과 적막으로 가득하다. 그루갈이를 하려는지 곱게 가다룬 논이랑이 소멸과 생성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엮어내고 있다. 갈잎 같은 작은 새떼가 서쪽으로 기울어진 바람을 타고 물결치듯 지나간다. 길섶에 열병처럼 늘어선 풀꽃들이 새삼 알짝지근하다. 세상 밖이어서인지 친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산중 작은 요양원이다. 2층의 단아한 주택에 넓은 정원을 가졌다. 각종 꽃나무들이 앞뜰을 이루고 뒤뜰에는 여러 유실수들이 실하게 열매를 맺었다. 시득부득 말라가는 꽃잎마다 지난밤 청아하게 빛나던 달빛냄새가 스며들었다. 바닥에 수북한 낙엽들이 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오체투지 중이다. 별장처럼 단독주택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한 모양이다. 원장인 중년부부와 여덟 할머니가 한 지붕아래 동무되어 살아간다. 식구 많은 어느 가정집 같다.예배 중이었나 보다.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소파나 휠체어에 작은 몸 웅크리고 가는귀먹은 얼굴을 갸웃거린다. 마음과는 달리 찬송가는 늘어지고 우물우물하다. 그래도 잘박잘박 발장단과 휘적거리는 손동작으로 기꺼이 흥겨워하는 눈치다.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우련한 눈빛들이다. 더 이상 변곡점 없는 삶의 여정을 마치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에 따라 움직이듯 담담한 표정이지만 조금은 아쉬운 듯도 한 무엇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복잡하고 혼탁한 생각에서 벗어나 다음 생의 맑은 영혼을 찾아 나선 순례자들 같다. 청안하게 푸르던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긴 채 침묵 속에 들어간 겨울 숲처럼 야위고 굽은 등은 왠지 서늘하고 쓸쓸하다. 보고만 있어도 자꾸 슬퍼진다.꽃님이니 달님이니 예쁜 방 이름을 붙여놓았다. 머리맡 탁자에 가족사진첩이 체납된 고지서 같은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방안은 정돈되고 청결하지만 온기가 보이지 않는다. 살 냄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꽃병의 들꽃향기도 머무는 자의 향취일 뿐이지 먼 길 떠나는 사람에게는 결코 미혹과 위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갖고 갈 짐도 없다. 옷장과 침대 그리고 발밑에 보따리하나뿐이다.후덕한 인상의 원장부부가 한마디 귓속말을 전한다. 할머니들 방에서는 밤마다 옷장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만장처럼 흐느적대는 시간으로 보자기 싸매는 손들이 밤새 사르륵거린다. 입고 갈 고운 옷 하나 머리맡에 두고 크고 작은 보퉁이 발밑에 쟁여놓는다. 꽃님방 구순 먹은 할머니는 엄마가 내일 데리러 온다하고, 달님방 막내 할머니는 고향 뙈기밭에 감자 캐러 간다며 속절없는 밤을 붙잡는다. 산새소리에 늦은 잠이 깬 할머니들은 서둘러 거울속의 온전한 제 모습을 보고서야 주섬주섬 보자기를 풀어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익숙한 일상처럼 호접몽 같은 어젯밤이 파적거리가 되어 저녁이면 지는 꽃잎들 활옷처럼 다시 피는 하루가 이어진다.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뿐임을 안다. 되돌릴 수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이 내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조락한 내 몸이 안다. 구태여 시간을 욕심내지 않는 저승길에서 생존에 집착해야 할 이유와 의미는 공허하다. 그래서 무덤덤하다. 더 이상 세상에 왈가왈부하지도, 싫은 것을 결코 싫지 않게 넘어가지 못했던 그 완강함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한때의 절망과 결핍들도, 상처투성이 과거들도, 평생 햇빛 한번 제대로 없이 보낸 삶의 남루와 회한도 잘라버린 신경세포처럼 통증을 잃은 지 오래다.별님방 할머니를 방문한 늙숙한 자식 내외가 있다. 청유형의 완곡어법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이 날빛 방안을 머쓱하게 떠다닌다. 수다도 눈물도 아닌 그저 허허로운 웃음이나 풀풀 날리며 무료한 오후를 핥아내고 있다. 바쁜 일이 있는지 금방 일어서는 자식의 기름기 없는 목덜미를 보면서 출근처럼 저녁의 기약이 아니라 매번 마지막일 것 같은 아릿한 배웅을 한다. 서로가 맞잡은 미지근한 손의 함의는 무엇을 전하고 있었을까.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길이었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니라고,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시지 말라고 단호하게 못 박지 못했던 그 순간을 내내 자책하고 불편스럽기만 했다.음식솜씨만큼 입맛도 까다로우셨는데 이젠 그런 투정마저 번거로워 할 만큼 기력을 잃었다. 단아하던 몸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다. 그나마 의지하고 타시락거리며 살던 남편마저 떠나보내고 여린 늑골사이 녹슨 거푸집에서는 매일 서늘한 바람이 분다. 노구에서 여자가 사라졌지만 늘 꽃으로 남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도 모른다. 당신 자신이 낙엽이니까.생의 마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일까. 자신의 행동과 의지로 생활하다가 천명이 다해 자기 집에서 잠자는 듯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누구나 원하는 행복이 아닐까. 하지만 더 이상 자기 몸 하나 지탱할 기력이 없거나, 내가 나를 몰라보는 만일의 경우가 생긴다면 어찌해야할까. 가족의 사랑과 품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기를 대다수가 원하지만 실상 현실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대다수라고 한다.전문적인 치료나 호스피스의 심리적 도움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사자에게 더 평안한 일인지도 모른다. 먹고사느라 아등바등 대는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부모자식간의 젖빛 교감만을 내세운 봉양이 언제까지나 효심의 임계점을 견디어낼지도 염려가 된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있는 터에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불효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접 수발하고 모시는 자식들도 많은 것을 보면 편리나 효율만이 능사는 아닌 것도 같아 마음이 더욱 찹찹해진다.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의 표정 잃은 눈빛이 덜컹거린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고 해도 가족이 배제된 공간은 시골 간이역처럼 낯선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행여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요양원을 마음에 두었을지 모르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듯 그 마음은 먹먹하기 이를 데 없을 듯하다. 부모 다음은 또 우리세대인데 그때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불현듯 궁금하다.서늘한 찬기를 품은 실바람이 차창너머 허공의 발부리에 넘어져 휘청거린다. 노을에 비친 새털구름이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떠나는 여인들의 뒷모습 같다. 요양원 가는 길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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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사라져가는 우리 것 지키는 시심"

시문학이 지닌 제일의 가치는 문학적 진실에 있다. 문학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읽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파열음을 내는 사색적 자극, 물신의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도 격조 높은 심미적 쾌감을 주는 표현의 아름다움이 결합하여 시를 시답게 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적 진실이다.이런 시문학의 진리를 외면한 채 시류에 편승하거나 소위 신춘문예형 시 쓰기로 독자를 현혹하려는 자세를 경계한다. 그런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문학 지망생들이라면 반드시 화자의 체험이 깊이 육화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체험적 진실이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말을 갈고 다듬는 일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제1사명이 바로 모국어의 지킴이가 아니겠는가.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여덟 응모자 33편의 작품을 정독했다. 제목이 곧 제재라면 김정숙 씨의 새우가 쓴 고래의 자서전은 새우가 쓴 고래의 전기여야 마땅할 것이며, 한문수 씨의 폭우를 만나다에서는 중심 제재인 폭우를 형상화하려는 진술들에서 폭우의 원관념이 실종되고 말았다. 체험적 진실이 깊이를 이루지 못한 점, 표현의 언어 감각이 의욕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런 작품들을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끝까지 남은 작품은 김진희 씨의 허공과 최인순 씨의 불을 자르는 사내와 정연희 씨의 귀촌이었다. 세 응모자들이 함께 묶어 응모한 다른 작품들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허공은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체험의 내면화 정도에서 섬세함이 모자라다 보았으며, 불을 자르는 사내에서는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으려는 의장(意匠)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파란 불꽃만 피워 올린 한 그루 불꽃, 정원사가 다듬어 놓은 불은 몇 백 년을 활활 타오를 것이다 등의 표현의 참신성에서 끝까지 당선작과 겨루었다. 그러나 귀촌의 장점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아쉽게 여긴다.당선작 귀촌의 미덕은 많다. 사소한 듯이 보이는 소재들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지켜내려는 시심(詩心), 모국어의 지킴이로서 올바른 시인의 사명에 대한 자각, 체험이 육화되어 스스로 우러나온 태어난 시이지 만들어진 시가 아니라는 점,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몸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려 이를 형상화해 내는 시안(詩眼)의 참신함 등에서 당선작으로 밀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았다. 귀촌이 함축하는 세계가 오늘의 농촌-시골마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막연한 소문으로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의장은 뜻있게 보였다. 다른 응모작들 까끄라기 바람수습 씀바귀에서도 고른 밀도를 보여, 이 당선자가 펼쳐 보일 시문학의 장래를 안심할 수 있겠다는 것도 당선작으로 미는데 힘이 되었다.좋은 시를 만난 느낌이 소중하다. 아깝게 선에 들지 못한 시문학 지망생들의 분투를 빌며, 당선자의 문운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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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시가 쇠약한 농촌에 울림 줄 것"

내 생애 가장 근사한 선물인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우리들의 고향은 비약적이고 시린 곳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늘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해주는 모체다. 점점 쇠약해져가는 농촌의 현실이 마음 아프지만 시란, 그 본질적인 곳에서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되돌아보면 비탈길을 내려와 햇살 쏟아지는 신작로로 떠나 온 그곳. 화려한 도색의 글들이 쌩쌩 지나간 뒤를 바라볼 때마다 나의 글은 갓 도시에 입성한 사람처럼 주눅이 들고 한없이 초라했다. 그런 시를 위로한 것은 바람의 속삭임이었다. 바람은 내 손을 잡고 물결치는 푸른 보리밭을 날다가 꽃가지를 흔들어대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그 촌스러움은 한없이 작아지다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별빛을 가득 채우는 넓은 가슴이기도 했다.소박한 시를 쓸 수 있는 환경과 우리들의 고향인 촌에 감사한다. 또한 힘을 실어 주신 유안진, 이동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두 분의 선택에 누가 되지 않는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다.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날이다. 늦게 찾아 온 시가 늦은 것이 아니라 이미 어린 날의 순박한 체득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들의 고향을 위해 언제나 흙냄새 나는 정론을 펼치고 있는 전북일보에 감사드린다. 잊지 않고 글다운 글 열심히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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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심사평] "글 쓰는 바탕 튼실, 훈훈한 여운 남겨"

당선작으로 뽑은 동화 할머니의 라디오 사연은 구성이나 문장에서 빈틈이 거의 없어 글을 쓰는 바탕이 튼실함을 보여주었다.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알뜰살뜰 깔끔하게 엮어 훈훈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좋은 동화작가로 눈여겨 볼 만할 듯싶다.엄마를 잃고 아빠는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 가 있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조손가정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다.주인공인 12살 어린이 예은이는 허구한 날 라디오를 들으며 청취자 사연에 줄곧 글을 보내는 할머니가 답답하여 자주 맞부딪친다. 결국, 할머니의 집착은 예은이를 향해 끊임없이 샘솟는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의 전환도 무리가 없다.긴 여운을 남기는 끝마무리도 좋았다.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결국 흠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내려놓는 일이다. 진부함을 뛰어넘은 소재나 전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었으나 완성도에서 허점이 크다거나, 대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애정과 당위성에 대한 고민이나 천착의 노력이 아쉽다거나, 어린이 독자에게 읽히기 거북한 거친 말을 쓰고 있다거나. 작품을 내려놓을 때마다 거기에 배어 있는 열정과 고뇌의 흔적이 안타까워 마음이 무거웠다.신춘문예 당선이 문단 등용의 관문이 되어 온 지 그 역사 오래이다. 용이 승천할 때의 그 힘찬 용트림 같은 신인의 패기가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세상이 너무 풍요해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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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할머니의 라디오 사연

예은아! 어떻게! 할매가 된 것 같다!흥분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라면을 끓이다 말고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할머니 얼굴은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이번엔 진짜야?진짜야. 들어봐라. 김복임. 분명이 전주 사는 김복임이라 했다.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디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양쪽 귀를 쫑긋 세웠다.네. 사연 잘 들었고요. 전주에 사는 김꽃님 씨에게는 선물로 침구 세트 드릴게요.에이, 뭐야. 김복임이 아니라 김꽃님이잖아.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이상하네. 아까는 분명히 김복임이라꼬 했는디. 전주 주소까지도 맞았는디.할머니는 머쓱한지 괜히 귀 후비는 시늉을 했다.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에이, 뭐야. 좋다 말았네. 할머니 때문에 라면만 불게 생겼잖아.나는 툴툴거리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등 뒤로 할머니의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힘이 쭉 빠졌다.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라디오 사연을 쓴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붙잡고 라디오 사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그저께는 내가 짐 들고 내려가다 쪼까 쉬고 있는데, 어떤 머시마가 도와주겠다고 하데. 그러면서 내 짐을 들고 다시 올라간 거 있지? 내가 내려가고 있던 것도 모르고 말이여. 하하하.사연을 말하는 할머니의 눈은 언제나 빛났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할머니가 라디오 사연에 집착하는 걸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엉터리 맞춤법, 재미도 없는 이야기. 과연 이런 사연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열두 살인 내가 봐도 의문이 들었다.할머니, 이런 건 글 잘 쓰는 사람들이나 뽑히는 거야. 그리고 요즘 누가 그렇게 손으로 써. 인터넷에 접속하면 되는데. 보기 힘들어서 읽어주지도 않겠다.내가 이렇게 말하자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사연 쓰기에 빠져들었다. 전단지 뒷면이든 스케치북이든 가리지 않았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뭔가를 열심히도 적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있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아가, 할마이가 우산 가지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할머니의 문자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현관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예보에 없던 비 소식이라 마중 나온 엄마들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엄마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새삼스럽게 부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야, 차예은. 너 그러다가 운동화 다 젖는다.옆에서 나와 같이 엄마를 기다리던 보람이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신발을 내려다봤다. 빗물이 조금 튀겼을 뿐인데 정말로 운동화의 파란 앞코가 축축이 젖어있었다.야, 너도 메이커 운동화 하나 사라니까. 그거 얼마나 한다고.보람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래. 요즘 그렇게 티 나는 짝퉁 신발 신는 사람이 어디 있냐?민성이가 옆에서 보람이 말을 거들었다. 민성이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내 신발을 쳐다보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신발이었다. 나는 신발주머니로 얼른 신발을 가렸다.암튼 우린 먼저 간다.멀리 보람이의 엄마가 보였다. 나도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할머니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괜히 할머니에게 화가 났다. 우산도 없이 터벅터벅 정문을 나섰다. 그때였다.할매가 기다리라 안 했냐? 많이 기다렸나? 내 새끼 젖었네.구부정한 허리로 부랴부랴 걸어오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비에 젖은 나를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내 머리며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쏘아보며 말했다.왜 이렇게 늦게 와? 또 라디오 들은 거야?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엔 정말로 될 것 같아서.할머니 목소리가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뭐? 정말 라디오 듣다가 늦은 거라고?황당해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내게 우산만 씌워주었다. 나는 우산을 뿌리쳤다. 할머니가 보란 듯이 비를 맞고 성큼성큼 걸었다.할매가 늦어서 화 많이 났냐?할머니는 집에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 내가 좋아하는 감자전까지 만들어줬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콕콕 찔렀다.할매가 늦어서 참말로 미안하다. 이것 묵고 풀면 안 될까?책상에 지저분하게 쌓인 할머니의 사연들이 눈에 보였다. 괜히 다가가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이런 것 좀 그만 쓰면 안 돼? 뽑히지도 않는 거 매일 쓰면 뭐해? 시간 아깝지도 않아? 이거 쓸 시간 있음 차라리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겠다!그냥 속상해서 한 말이었는데 말하다보니 너무 지나쳤다. 허리가 아파서 거동도 힘든 할머니보고 나가서 일을 하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눈치만 봤다.그런데 무섭게 화낼 줄 알았던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눈 밑에 커다란 그늘이 생겼다. 침묵을 지키던 할머니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미안하다. 할매가 예은이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할머니는 상 위에 어질러진 종이들을 쓸어 모았다. 그러고는 내다 버리려는지 재활용 박스에 하나씩 담았다. 어? 이러려던 건 아닌데. 나는 당황해 할머니의 상자를 빼앗았다.그렇다고 누가 버리래? 할머니는 말을 꼭 받아들여도!나는 툴툴대며 상자를 갖고 내 방으로 향했다.나도 한때는 부모님과 살던 때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 엄마 사랑도 받고 좋은 옷을 입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삼 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의 모든 게 달라져 버렸다. 아빠는 지방에 일하러 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이곳에 살게 되었다.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을 수 없었고 내가 갖고 싶은 것도 가질 수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이커 운동화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울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했는데,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부릅떴다가 감았다. 생각을 떨치려고 상자 안에 있는 할머니의 사연 하나를 집어 들었다.라디오 세상 (10시) : 의류 상품권. 예은이 키가 부쩍 자라서 가지고 있던 옷이 다 작아짐. 얼른 당첨돼서 예은이가 좋아할 만한 메이커 옷으로 바꿔줘야겠음.이게 뭐지?무심코 집어 읽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라디오에서 받고 싶은 선물인가?나는 호기심에 계속 읽어 내렸다.방글방글 쇼 (12시) : 간식 2종 세트. 당첨되면 반 아이들 모두에게 간식을 준다고 함. 이거 보내주면 예은이 친구들도 좋아하겠지? 햄버거, 피자, 떡볶이 중에 선택할 수 있음.지금은 두시 (14시) : 5만 원 문화상품권. 예은이 읽고 싶은 책을 5권이나 살 수 있음. 매일 빌려 읽는 거 보면 안쓰러움. 이번에는 꼭 당첨되어야 함. 제발!라디오 천국 (18시) : 베이비 아토피 세트. 예은이 목덜미에 아토피처럼 붉게 올라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님. 아토피로 번지기 전에 얼른 치료해줘야 함.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할머니는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라디오 사연을 보낸 것이었다. 아마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기록한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에게 투정만 부리다니.새벽의 라디오 (새벽 1시) : 발열 매트. 이불이 얇아서 예은이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됨. 새벽 시간대라 경쟁이 치열하지 않음. 다른 곳보다 더 신경 써서 재밌고 길게 쓰도록!며칠 전 깜깜한 새벽이었다. 볼륨을 잔뜩 줄인 채 라디오의 스피커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깬 것이 화가 나 할머니에게 무작정 소리를 질렀다.이런 바보같이 뭐하는거야!안녕하십니까. 디제이 선생님들.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주 사랑스러운 손녀딸이 하나 있습니다. 늙고 못난 할미라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것이 늘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착하고 애교 많은 손녀딸 예은이가 있어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디제이 선상님의 좋은 목소리로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선물을 보내준다면 다른 건 필요 없고, 손녀딸이 신을 수 있는 운동화 교환권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손녀딸이 좋아할 만한, 예쁜 모양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추신. 우리 예은이는 엑스라는 가수를 참 좋아합니다. 같이 듣게 꼭 틀어주십시오.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당장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할머니, 우리 라디오 듣자.며칠 후, 나는 라디오 앞으로 할머니를 끌었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그냥 왠지 오늘은 할머니랑 같이 듣고 싶어서.얼마 전 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할머니에게 느꼈던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갔다. 단지 글만 쓰면 소개되지 않을 것 같아 할머니랑 찍은 사진도 붙이고 알록달록 종이접기도 함께 넣었다. 물론 선물은 할머니에게 꼭 필요한 건강식품으로 신청을 했다. 신청곡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내가 보낸 사연을 방송하는 날이다.네가 웬일이냐? 먼저 라디오를 듣자고 하고.할머니는 의아한 듯이 내게 물었다.그냥 오늘따라 할머니랑 라디오가 듣고 싶네.나는 모른 척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신 나는 음악과 함께 디제이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이번 주 사랑이 가득한 편지는 완산구에서 보내주신.이번에는 과연 사연이 소개될까? 꼭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와 나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았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7.01.02 23:02

[전북 서점가 한해 돌아보기] 탄핵 여파…정치·시사도서 인기 '이변'

책은 기쁠 때면 유희가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되며 혼란한 세상에선 지침서가 된다. 올 한해 전북도민들은 어떤 책을 통해 위로 받고 길을 물었을까.전주의 홍지서림, 호남문고, 문화서적과 군산 한길문고 등 도내 지역 서점들에 따르면 올해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창비)로 인해 예년보다 소설책 구매가 크게 늘었고, 하반기에는 암울한 정치현실로 인해 정치시사적인 책들에 대한 관심과 구매가 급증했다.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치인과 언론인이 정치적 이슈에 관해 쓴 책과 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헌법 서적들이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 특히 도내 서점에서는 시국과 관련해 이슈를 끈 책들을 모아놓은 특별 섹션도 생겨났다.전주 서신동에 위치한 호남문고에서는 한손엔 촛불, 한손엔 헌법을이란 주제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돌배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냈던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함세웅 신부주진우 기자의 <악마 기자 정의 사제>(시사IN북), 정철운의 <박근혜 무너지다>(메디치미디어),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풀빛)등을 잘 보이는 서점 입구 쪽에 배치했다.호남문고 관계자는 서점인만큼 책을 통해 국민의 뜻을 보여주자는 내부 의견이 나와 코너를 별도로 만들었다.또한 서점에 주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군산의 한길문고에서도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 코너에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푸른숲), <대통령의 글쓰기> 등을 올렸다.올 한 해 전반적으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지난 5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적으로 소설 열풍이 불었다.도내에서도 올해 소설 판매가 예년보다 늘었는데, 지난 29일 전주 문화서적 등 일부 지역 서점에서는 여전히 <채식주의자>가 품절된 상태로 현재까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한편, 지역에서 나온 서적들도 세종도서문학나눔에 선정되고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지역 출판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로 문학 서적이 주목을 받았는데, 허수정의 소설<노령>(신아출판사), 윤수천의 <멋진 춤을 보여줄게>(소년문학), 형효순의 수필집<이래서 산다>(수필과비평사), 정양의 시집<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 박기영의 시집<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 등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6 세종도서 문학나눔에도 선정됐다. 정양과 박기영 시인은 이번 신간으로 각각 구상문학상과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다.출판사 관계자들은 중앙의 대규모 출판사들이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지역 서적들이 조명받은 것은 뛰어난 작품성과 작가의 역량으로 인한 결과라고 분석하며 호남문고, 홍지서림 등 일반 서점에서도 지역 서적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만큼 도민들이 지역 작가들의 책도 많이 관심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6.12.30 23:02

전북 중견 시인들이 전하는 따뜻한 세밑 위로

어느 때건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세밑은 없지만, 2016년 한 해도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고 문학계도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속에서도 도내 중견작가들이 시집과 여행기 등 굵직한 저서를 잇따라 출간, 연말을 훈훈하게 감싸주고 있다.● 남궁웅 〈겨울바다〉광주민주화 항쟁이 아주 잊히기 전에 아주 잊지는 말자고 민중의 가슴으로 증언하는 서사시집이 출간됐다.남궁웅 작가의 〈겨울 바다〉(북매니저). 어느덧 삼십 년이 지났건만 기억 속에서는 잊혀지지 않는 암흑시대를 살아왔다는 시인은 오직 정의와 미래를 위해 3대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지만 결국엔 몰락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본 대로 들은 대로 낱낱이 증거해주고 싶어 시집을 냈다. 대전 출생으로 1992년 〈문학세계〉에 등단했으며 시집 〈완행열차〉 〈속 완행열차〉 〈불의 우상〉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펴냈다.● 김월숙 〈그 발자국 따라〉김월숙 전북여류문학회장이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또 따스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시집 〈그 발자국 따라〉(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달에 꽃피다〉와 〈아직도 그가 서 있다〉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관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행을 하며 느낀 점 등을 담은 시 65편을 총 4부로 나눠 실었다. 부안 출생으로 1998년 〈문예사조〉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삼례여중에 재직하고 있다.● 윤현순 〈시를 품은 발걸음〉시를 품은 채 발걸음을 옮기며 백두산과 몽골, 금강산, 중국 등을 여행한 윤현순 시인의 여행기 〈시를 품은 발걸음〉이 발간됐다.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 이번엔 여행기로 네 번째 작품을 펴냈다.작가는 그동안의 삶이 너무 정형화되고 숨차게 살아왔다는 느낌이 있어 이제 조금 여유를 갖고 싶었다며 너무도 소중한 여행 이야기들을 삶과 연결시켜 글을 풀어가다보니 파격적인 문단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1996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여류문학회장을 역임했다. 전북시문학상(1996)과 시대문학상(1996), 제1회 구름재 박병순시낭송대회 대상을 받았다. 시집 〈되살려 제모양 찾기〉 〈노상일기〉와 현대시 CD롬 시집 〈중심꽃〉이 있다.

  • 문학·출판
  • 진영록
  • 2016.12.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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