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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로 변신한 박노해 시인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의 박노해(52) 시인이 만년필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지난 10년간 중동 지역에서 찍은 사진들로 첫 사진전 '라 광야'전을 여는 박 시인은 7일 서울 신문로 '나눔문화'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경을 넘지 못하는 언어 대신 빛으로 쓴 시"라고 자신의 사진 작업을 소개했다.서울 중구 저동의 갤러리M에서 내달 7-28일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박 시인이 1998년 출소 이후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 각 지역을 누비며 찍은 4만여 컷의 사진 중 37컷이 전시된다. 출소 후 갔던 유럽에서 쿠르드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나서 처음 중동을 찾게 됐다는 시인은 고통받는 중동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게 됐다.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어느 때부터인가 오래된 만년필을 든 손에 낡은 흑백 카메라가 함께 들렸습니다. 분쟁현장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것도, 점령자나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습니다."그렇게 낡은 필름 카메라로 치열하게 찍어낸 수만 장의 사진에는 "한 장 한 장마다 단편소설 하나만큼의 사연이 들어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중동은 세계에서 무장력이 가장 집중되고 긴장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낯설고, 멀고, 오해받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이 중동의 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민주화 이후 우리가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빛나는 재생의 힘을 배워갔으면 합니다."이번 전시회는 박 시인으로서는 실로 오래간만의 외출이기도 하다. 1984년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 5개월을 복역한 후에는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와보니 갑자기 너무 유명해져 버렸더군요. 과거를 팔아서 현재를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보잘것없는 노동자였던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10년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는데 실제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를 잘 모르더라고요. 자유롭고 편안합니다."시인은 "사진전 끝나면 또다시 중동으로 떠날 것"이라며 "10년간 피와 눈물로 써온 시 4천여 편도 정리해 내년께 새 시집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전시·공연
  • 연합
  • 2009.12.08 23:02

[전시] 이종만·이동근·오무균 삼인전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원광대 미술교육과 1기 동문인 서양화가 이종만(58) 이동근(58) 오무균씨(59)가 8년 만에 삼인전을 갖는다.미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패기만만했던 30대 젊은 작가들이 이젠 중진 작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자기 세계를 견고하게 보여주면서도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은 창작에의 열정과 실험정신의 산물.'비둘기 작가'인 이종만씨는 이번에도 비둘기 한무더기를 옮겨 놓았다. 군산 월명공원과 원광대 캠퍼스는 수백 마리의 비둘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됐지만,비둘기는 도시에서 사는 유일한 새죠. 모이만 주면, 파닥거리며 날아옵니다. 생동감 있어요. 하늘을 향해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으려면 순식간에 그려내야 합니다."이씨가 비둘기와 싸울 때 오씨는 오랫동안 갯벌에 천착해왔다. 일출과 일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갯벌은 헛헛한 오씨의 심경을 대변한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거친 붓질로 표현된 갯벌은 침잠된 작가의 깊은 내면."갯벌을 찾아서 서해안을 네댓번씩 계속 돌았습니다. 갯벌 속 막대기가 내 고통을 상징화한 것이죠. 어둡다고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캔버스가 바로 나 아니겠습니까."이동근씨는 선돌 시리즈를 통해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우화적으로 드러냈다. 2년 전 정읍으로 이사한 이씨는 아침마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화려한 색감과 동화적인 분위기가 쾌활하고 순수한 작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듯.이번 전시는 전주예치과(원장 강경찬) 개원 7주년 기념전이다.강경찬 원장은 "이들이 나누는 정신적 교감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기 때문에 삼인전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것"이라며 "삼인삼색의 전시가 흰 눈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전시실 3, 4실에서 계속된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09.12.08 23:02

[리뷰] 조선의 내로라 하는 광대들 한자리 "감동 그 자체"

2009년 12월 4일! 조선의 내로라하는 광대들이 온고을(全州)에 모였다. 실로 얼마만인가?아니, 이렇게 조선의 광대들이 모두 모인 것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있긴 있었던가? 그들이 공연에 앞서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무대에서 사진을 남겼다. 실로 70년 만에 이 땅의 광대들은 사진 속에서 모두 하나가 됐다.올해는 서양에 생긴 일종의 잡귀(雜鬼)라 할 '신종플루'로 인해, 전 세계가 소란스러웠다. 급기야 이 땅의 신명난 축제도 판을 벌릴 수 없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아쉽게도 무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올해의 끝자락에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4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를 만난 건 무척 다행이었다. 이 공연은 '열림의식'인 열림무(전북도립무용단)와 함께, 조선의 광대에게 바치는 '축문(祝文)'을 낭독(김명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김일구, 송순섭, 조상현 명창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동리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광대가'를 바탕으로 소리를 들려주었다. 동리는 일찍이 광대의 네 가지 덕목(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을 얘기했다. 이번 작품은 이런 광대가를 시작으로 해서, 과연 이 땅의 광대들은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신광대가'였다. 판소리는 물론이요, 경기민요(이춘희 명창 등), 서도민요(이은관 명창 등), 남도민요(박송희 명창 등)가 어울렸다. 소리의 개별적인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소리들이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나 여류명창들이 남도민요를 들려 줄 때, 몸이 불편한 성우향 명창을 도와, 제자이기도 했던 김영자 명창이 추임새 등으로 흥을 돋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대의 사제관계에 있어서 보필(輔弼)이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훈훈한 자리였다. 지난 2007년 소리축제에선 '판소리 명인명가'란 이름으로 네 명의 여류명창(오정숙, 최승희, 성우향, 안숙선)의 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이듬해 오정숙 명창(1935~2008)은 타계했다. 이번 무대를 지켜보면서, 오정숙 명창을 생각했던 건 나만은 아니었으리. 소리축제는 이렇게 판소리 공연사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왔다.이번 무대에는 춤도 빠지지 않았다. 이매방(승무)과 김백봉(부채춤), 두 명무가 수제자와 함께 한 춤사위에서 처연한 느낌마저 들었다.'광대의 노래'에서 첫 선을 보인 '신광대가'(김태균 작시, 김대성 작곡)에선, 광대의 네 가지 덕목을 새롭게 얘기한다. 바로 풍류, 생명, 인간, 민족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은 국악관현악(김재영 지휘, 경기도립국악단)을 바탕으로 해서, 판소리 독창(왕기철, 염경애, 김경호, 이주은)과 합창이 어우러진 대규모의 작품이었다. 합창은 전통발성(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과 서양발성(익산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으로 나뉘어져 있다.가사와 곡조 모두 신경 쓴 것이 역력하나, 가사와 곡조의 밀착성이 조금은 아쉽다. 관객들이 자막의 도움 없이도, 가사가 귀에 보다 쏙쏙 들어왔으면 좋겠다. 우리말이 갖고 있는 장음과 단음, 강조되어야 할 단어가 자연스레 전달되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거다. 무엇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합창은 웅장해야한다는 전제는 벗어나야한다. 합창이 전체적으로 웅장한 것을 강조하다보니, 단아하거나 섬세한 시적(詩的) 정서가 더욱 그리워졌다. 판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경제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소리꾼 하나, 북잽이 하나, 이렇게 두 명의 광대로 충분하지 않은가! 부채하나, 북채하나 들면 끝나지 않는가! 이런 판소리의 효용성을 생각한다면, 판소리에 바탕을 둔 음악에서도 절제는 미덕이 될 것이다.내년이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10년이다. 소리축제는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축제다. 타 지역사람들에게는 이 지역의 얼굴과도 존재다. 내년 소리축제에서 이 작품을 보다 더 다듬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신광대가'에서 '시조(時調)' 한 수도 들었으면 좋겠다. 시조란 이름처럼 그 시절의 얘기를 담은 노래였으니, 어디 당시 광대가 그런 노래를 외면했겠는가? 소리축제의 10년을 결산하는 역작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광대의 노래'를 듣고 나니, 광대(廣大)란 두 글자가 더욱 화두처럼 다가온다. 이런 광대와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연결하고 싶다. 사전에서는 '천지의 조화를 주재하는 온갖 신령'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뜻이라면, 광대와 연관 지어서 두 번째 풀이를 추가해야 한다. '천지의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명을 갖춘 사람'이 바로 제대로 된 '광대'아니겠는가! /윤중강(음악평론가,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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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12.08 23:02

[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⑫나치 만행에 대한 쇤베르크의 분노?

본인은 혁신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20세기 음악에 가장 큰 혁신적 영향을 준 음악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시대의 현상을 외면한 예술이 예술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당 시대 현상을 외면한 예술은 공감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예술은 속해있는 사회에 참상이 있으면 그 참상을 예술에 용해하여 표현함으로써 더 생생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쇤베르크의 작품 46 <바르샤바로부터의 생존 A Survivor from Warsaw>이 그 한 예이다. 이 작품은 히틀러 나치 정권의 바르샤바 유대인 독개스 학살 만행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놓은 음악이다.20세기 음악의 혁신인 12음음악 창안자 쇤베르크는 빈(비엔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 핍박을 피해 베를린으로 갔을 때는 루터교로 개종했었고 프랑스로 가서는 다시 유대주의로 개종, 끝내는 미국에 망명하여 UCLA대학 교수로 삶을 산 음악가이다.쇤베르크는 20세기 음악의 창작 화두가 된 탈-조성(Post Tonal)을 해결하기 위해 12반음이 다 똑같이 중요성을 가지는 12음음악을 창안하였다. '음악은 새로움을 추구해야 가치가 있으며 그 새로움은 진정한 새로움이어야 한다'며 조성에서 벗어난 무조음악의 통일성을 얻기위한 방편으로 12음기법을 창안한 것이다.쇤베르크는 자신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들의 계승자라고 주장하지만 음악사적으로 볼 때 그는 클래식 음악의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혁신가이다.8세에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한 그는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작곡을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그가 아마추어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에게 대위법을 배우기도 했다. 쳄린스키 누이와 결혼하여 베를린으로 간 그는 그 곳 카바레에서 일하기도 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도움으로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기도 했다. 2년 후 빈으로 다시 돌아 온 그는 역시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준 제자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을 만났고 그들의 음악어법은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제2 빈 악파'라고 하기도 한다. '제1 빈악파'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쇤베르크는 '음악은 인류의 나아갈 방향과 보다 높은 삶을 계시하는 예언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때문에 음악은 모든 민족과 모든 문화에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라면서 아무도 말한 적이 없는 그 무엇을 말하는 음악을 쓰고 싶어 했다. 작곡가들은 누구나 본인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제자 알반 베르크와 함께 당시 20세기 초에 나타난 인간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 표현주의에 속하기도 한 그는 답습하고 있던 낭만파의 조성을 30대 초반에 버리고 40대에는 탈-조성 즉, 무조(Atonality)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표현주의는 낭만주의에서 나타났지만 내적 경험이나 실제 경험을 표현하는 방법은 낭만주의와 달랐다.쇤베르크는 47세때 첫 12음 작품 피아노 모음곡을 발표한다. 새로운 방향의 지평을 연 것이다. 아무도 말한 적이 없는 그 무엇으로 말하는 음악을 작곡한 셈이다. 그래서 전통의 중심인 조성 축은 견지하면서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또다른 새로움을 추구한 동시대 음악가 스트라빈스키와 비교하여 후기낭만시대의 바그너, 브람스와 같은 예로 비교되기도 한다. 바그너는 혁신을 창조하였고 브람스는 전통 속의 창의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바르샤바로부터의 생존>은 남성합창, 관현악과 함께 사람 목소리를 악기 소리와 동등하게 취급한다거나 나레이터(설명자)의 슈프레흐 스티메(말하는 듯 한 소리 Sprech Stimme), 샤우트(외침소리 Shout) 등 현대적 성악 기법이 사용된 음악이다. 히틀러에 대한 증오를, 독개스에 의한 종족 말살 시도를 고발하는 음악이다. 트럼펫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로 시작되는 음악은 음악을 통한 음산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외침소리, 독백, 분노 등이 표현되어 있다. 군중들의 분노인 남성합창도 긴장을 더해 주어 전율을 느끼게 한다. 현대음악이지만 쉽게 친할 수 있는 클래식인 것이다.현대음악을 어렵다고 생각하게 한 것은 작곡가의 책임이 크다며, 걸러지지 않은 게 많고 이해하려면 꽤 많은 지식이 필요한 현대음악이 많지만 자기는 현대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관심있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노력한다는 여성 작곡가 진은숙의 얘기처럼 쇤베르크는 <바르샤바로부터의 생존>에 슈프레흐 스티메, 샤우트 등 새로운 성악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한 시대의 아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관심있게 들을 수 있게 묘사해 놓은 것이다. "예술은 장식이어서는 안된다. 진실이어야 한다"면서 음악도 진실을 일깨워 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쇤베르크의 <바르샤바로부터의 생존>은 들으면서 어렵다는 느낌이 없다. 관심있게 들으면 나치 만행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의미와 현상을 음악 예술로 표현해 놓은 현대음악 클래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현대음악은 녹음, 영화, 텔레비젼, 컴퓨터 등 문명기기에 의해 어느 시대보다 많은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전 어느 시대보다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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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12.08 23:02

[최동현의 명창이야기] ⑫동편제 판소리의 상징 송만갑 (2)

명고수였던 김명환이나 김득수씨는 생전에 역대 최고의 명창으로 송만갑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통성으로 내지르는 힘차고도 높은 목소리, 철성의 단단한 음질, 고음에서 저음으로 뚝 떨어지면서 내는 경드름(경기도 민요와 같은 선율)의 멋진 변화는 아닌 게 아니라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송만갑에게도 직접 배운 바 있는 강도근 명창도 생전에 송만갑과 같은 목은 자기는 흉내도 낼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제자로서 겸양이 섞여 있는 말이라 액면 그대로 믿기는 그렇지만, 실제로 강도근은 송만갑과 같은 그런 변화무쌍한 멋은 부리지 못하였다.송만갑은 궁내부 별순검이라는 실제 벼슬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소리꾼 중에서 실제 벼슬을 한 사람은 송만갑이 유일하다.송만갑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낙안 출생이라고 했다는 말은 이미 지난 주에 했다. 그런데 그 자서전에서는 또 자신이 10세 전후로부터 아버지에게 학채를 받아 이웃에 사는 박만순에게 가서 박만순이 세상을 뜨던 21세 때까지 소리를 배웠다고 하였다. 송만갑의 아버지는 송우룡으로 당대 명창이었다. 그런데도 자기 아버지에게 소리를 배우지 않고 굳이 박만순에게 배웠다는 것이다. 그것도 10년이나 배웠으며, 박만순이 세상을 뜬 뒤에는 3년이나 스승의 상을 입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송우룡의 소리를 전혀 배운 바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무래도 박만순의 소리를 송만갑이 많이 계승했던 것 또한 틀림없는 일인 듯하다. 이야기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송만갑은 스승 박만순의 삼년상을 치르고 나서 '하루 아침에는 부모에게 절하고 표연히 객지에 나섰다'고 하였다. 그가 언급한 곳은 순창, 담양, 광주, 전주, 곡성, 충주, 제천, 부여, 강원도와 경상도 등이다. 가는 곳마다 송만갑의 소리 들어보자는 사람이 많아서 아무 불편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서른일곱 살(1902)부터 마흔여섯 살 되던 해(1911)까지 서울에 머물렀다고 하였다. 그가 서울에 온 시기는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칭경식)를 위해 극장 협률사를 짓고, 전국의 명인명창들을 불러들인 때와 일치한다. 이 때 상경한 소리꾼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협률사 극장이 생긴 이후 판소리 창자들이 서울에 오래 머물며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장이라는 출연 공간이 생기면서 서울에 머물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송만갑이 궁내부 별순검이라는 벼슬을 한 것도 이 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송만갑은 서울에 있다가 나라의 명을 받고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했다고 하였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기차도 기선도 놓이지 않은 이 산천을 막대 끝이 닳도록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송만갑의 자서전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이 있다. 그가 민영환을 모시고, 상해를 들러 미국에까지 가서 3년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봉천(심양), 북경, 상해 등지를 골고루 보았다고 하였다. 판소리 명창이 궁내부 별순검이라는 실제 직을 수행했다는 것만도 신기한 일인데, 그에 더하여 송만갑은 중국, 미국까지 여행을 했다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연유로 민영환을 송만갑이 모시게 되었는지도 알 수는 없으나, 본인이 기술한 자서전이고 보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송만갑은 평소에도 마음씨가 너무 좋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박동진 씨도 돈이 없어 소리를 배울 수가 없었는데, 아침부터 조선성악연구회에 열심히 나가는 것을 본 송만갑이 방안으로 불러들여 '박타령'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송만갑은 1939년 1월 1일 하필이면 새해 첫날에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최동현(군산대 국문학과 교수)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09.12.07 23:02

[공연] 5인5색의 소리 이야기 '조소녀 명창일가 판소리 다섯 바탕'

울다 웃다, 눈물을 쏙 빼놓는 '흥보가', 풍자성이 높아 곱씹을수록 맛있다는 '수궁가'. 완결성이 높아 판소리 백미로 꼽히는 '춘향가', 여성 소리꾼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심청가', 어려운 한자가 많아 소리꾼들도 외우느라 애먹는다는 '적벽가'.6일 오후 7시30분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리는 '한 집안 소리꾼들이 전하는 다섯가지 소리 이야기'는 전북도 문화재 제2호 춘향가 예능보유자인 조소녀 명창일가의 판소리 다섯 바탕을 듣는 무대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초청 공연이 아닌 명창일가의 무대로는 첫 시도.조카손녀딸 조혜원(26·국립극장 미르예술단 단원)씨가 '흥보가'로 문을 연다. 흥보가는 재담이 많아 서민성이 강하다. 기교 보다는 힘있게 내지르듯 소리하는 조씨는 가난한 흥부의 서러움이 극에 달하는 '매맞는 대목'을 선보인다. 중앙대 음악학과를 졸업, 권삼득 추모 전국국악대제전 일반부 종합대상을 차지한 바 있다.조카 이경아(26·한국전통문화고 교사)씨가 '수궁가'로 이어간다. '춘향가''심청가'가 아닌 '수궁가'는 또다른 도전. 이씨는 음역이 넓은 수리성과 저음과 고음을 아우르는 소리로 '별주부 모친 탄식하는 대목'을 소화한다. 중앙대 일반대학원 졸업, 진도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다.유일한 청일점이자 또다른 조카인 조용균(28·정읍사시립국악단 상임단원)씨는 '춘향가'를 선보인다. 연극적인 표현에 능한 그는 칼 쓰고 풀어헤친 머리로 귀신형용이 된 춘향의 넋두리를 담은 '이몽룡 장원 급제하는 대목'을 부른다.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졸업, 해남명랑국악대제전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다.'심청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비극성이 가장 강조된 소리다. 조카 조혜리(28·광주시립국극단 상임단원)씨는 심청가의 '부녀 상봉하는 대목'을 통해 계면의 아름답고 서러운 이미지를 잘 단련된 기법으로 표현해낸다.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졸업한 그는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명창부 대상자다.딸 조희정(29)씨는 남성다운 씩씩함과 장쾌함을 잘 드러내는 '적벽가'로 갈무리 한다. 어느 바탕의 소리 보다 탁월한 공력과 힘을 필요로 하는 무대. 눈대목인'조조 탄식하는 대목'은 적벽강에서 죽은 조조의 군사들이 새가 되어 조조를 원망하는 것으로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 전북대 일반대학원과 우석대 교육대학원 졸업,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전북대·전주예술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수는 조용복. 전국고수대회 대명고부 대상을 수상, 국립국악원 민속단 상임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이번 공연은 우진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전주시가 후원한 '2009 우리소리 우리가락'의 81번째 공연이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09.12.04 23:02

[전시] 스승과 제자, 붓으로 함께 펼치는 상생과 화합

'줄탁동시'의 마음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준비한 전시가 열린다.서예가 김두경씨(문자조형연구소 문자향 대표)의 제자들로 구성된 반개동인(伴開同人·회장 전용직)의 '줄탁동시 여고함금전'.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 닭이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상생과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여기에 옛 것을 곱씹고 함께 품어야 한다는 '여고함금'이 더해져 각별한 의미를 담게 됐다.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쌓아온 지 올해로 13년. 건강상의 이유로 빠진 세 사람을 제외하면 전용직 회장을 필두로 김정자 이경순 이금로 최성희 소자혜 이경화 안연순 허길자 문승욱 김경자 김경란씨가 참여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며 이젠 막역한 사이가 됐지만,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해를 더할수록 진지하다.'천자문'을 금문, 소전, 한간, 초간, 예서, 행서, 해서, 초서 등으로 새롭게 풀은 것이 특징.최성희씨는 "'천자문'의 중요성이 간과될 때가 많아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시작했다"며 "말이 '천자문'이지 회원들이 써내려간 분량만 보면 만 장에 가깝다"고 말했다.서예가들이 대개 많이 쓰는 서체는 예서와 행서. 하지만 회원들은 금문(청동기 시대에 쓰던 상형 문자), 초간(초나라 시대의 예서와 전서의 중간 형태), 목간(한나라 시대의 예서와 전서의 중간 형태) 등 자료를 찾기도 힘든 서체를 시도했다. 서울 인사동까지 가서 자료가 남아 있는지 샅샅이 뒤지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 한 자 한자 비교하면서 문자적 원리를 찾아냈다. 최성희 이경화 김경란 소자혜 김경자 전용직씨는 개인 도록까지 따로 만들었다.김두경씨는 "공부를 오래 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엄청난 일을 도전했다는 것에 대해 반감도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공부해야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다들 직장이 있지만, 밤 잠 안 자가며 연구해 새로운 서체로 담아낸 작업이 의미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전시는 4일부터 10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개막식은 5일 오후 3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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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4 23:02

[전시] 한국과 일본의 동양화 인연

세 개의 원이 겹쳐지면, 공통 분모가 생겨난다.동양화에 모태를 두면서 각기 다른 표현을 지향하는 세 명의 동양화가 천범진(40), 나카오카 나츠미(34), 오구라 아야코씨(35)가 6일까지 전주교동아트센터에서 '이심원展'을 열고 있다.이들은 셋은 1999년 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 동경과 서울, 동경과 전주를 오가며 한국과 일본의 미감과 정신을 나눈 지 10년. 2007년 전시에서 '명(明)'으로 이심전의 길을 열었다면, 올해 전시는 '계(繫)'로 지금까지의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았다.천씨는 "한국화와 일본화의 차이는 아무래도 재료"라며 "일본화는 석채를 주재료로 진하게 덧바르는 반면 한국화는 분채와 석채를 아교에 개어 화사한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천씨는 모자상을, 나카오카씨는 꽃이 피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그림 안에 흐르는 정서는 모성애로 집약된다. 오구라씨는 생활 속 이름없는 들꽃을 소재로 석채를 칠하고 금박을 입힌 뒤 다시 석채를 입혀 입체감이 두드러지도록 표현했다.천씨는 고려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 일본 동경학예대학 대학원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나카오카씨는 동대학 타마미술대학 이부회화과와 동대학원 미술연구과 회화 전공 연구생. 오구라씨는 동경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를 졸업하고, 료토쿠지 대학 예술학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이들은 이번 전시에 한국화와 일본화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공개 강좌(3일 오후 2시~4시20분)도 열었다.나카오카씨는 '일본화의 새로운 재료'를 주제로 부패가 빨리 되는 아교의 단점을 보완한 아토그루를 소개했다. 오구라씨는 그가 주로 사용한 '금박과 석채표현', 천씨는 '모미가미(족자에 쓰이는 장식용 종이)의 소개'를 통해 이를 회화적으로 접목시키는 방법을 설명했다. 마치 도자기에 금이 가있는 듯한 무늬가 색다른 미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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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4 23:02

[전시] 전라미술상 제15회 수상작가전 등

▲ 전라미술상 제15회 수상작가전 -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 1층 1전시실전라미술상 수상작가인 박민평 김오성 여태명 이상조 박상규 이종만 서일석 김선태 김동헌 김신교 조 헌 전량기 이효문 차유림 이문수씨가 함께 한 전시. 전라미술상은 1994년부터 작고한 전북화방 이승갑 사장이 전북 미술의 맥을 잇기 위해 제정한 상. 올해 수상작가인 이문수씨는 '밥 시리즈'를 통해 밥과 나귀는 노동을 의인화해 원초적인 노동을 보여주면서도 인간 사이의 신뢰를 부르짖는 화폭을 선보였다.▲ 3人展 -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 3,4실서양화가 이종만 이동근 오무균씨의 삼인삼색전. 자연을 소재로 유채를 두텁게 덧발라 자신의 미적감흥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이종만씨, 선돌을 소재로 개성있는 화폭을 선물하는 이동근씨, 갯벌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오무균씨의 화폭을 만날 수 있다. 전주예치과 개원 7주년 기념전.▲ 유기종 개인전 '말씀언' - 31일까지 문화공간싹지난 5월부터 '문화공간 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유기종씨와 재뜸마을 사람들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집주인을 담은 포스터, 쟁반에 붓으로 쓴 메뉴판, 찌그러진 냄비로 만든 꼴라주 작품 등이 작품속 주인공.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풍경들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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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4 23:02

[공연] 광대의 노래 등

▲ 광대의 노래 - 4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가 광대들의 삶과 우리 전통예술의 숭고한 역사를 돌아보는 창작공연 무대 '광대의 노래'를 선보인다. '광대의 노래'는 창작국악관현악에 판소리합창과 서양합창, 창과 민요, 기악, 무용 등 국악의 전 장르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국악공연이다. 스스로를 '광대'라고 부르는 소리축제 김명곤 조직위원장이 작시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클나무오케스트라 협주곡의 밤 - 5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바이올린 강소윤이 생상의 '론도 카프리치오소'로 문을 열고, 클라리넷 정수빈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선보인다. 피아노 김현정과 이진아, 이충훈은 각각 베토벤과 쇼팽,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김예솔(바이올린)이 비에니아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전주아미고스기타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 - 6일 오후6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아미고스란 스페인어로 친구들이란 뜻. 클래식 기타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인생의 회전목마''카바티나''섬집 아기' 등 다양한 장르의 곡으로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김문성씨가 기타, 나수연씨가 플루트, 첼로는 소중연씨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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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4 23:02

[전시] 젊은시절의 꿈, 보따리를 풀다

젊은 시절 가슴 안에 품었던 로망을 꺼내 들었다.귀밑 머리카락이 희끗해질 무렵 전주교육대학 5기 동문들이 뭉쳐'Art Group'展(회장 김진회)을 열고 있다.김진회 회장은 "다 늙어갖고 친구들 만나는 재미로 하고 있다"며 "교장 퇴직 후 40년 이상 해왔던 다양한 취미를 핑계 삼아 우의를 다진 전시"라고 말했다.'올드 보이'의 로망을 꿈꾸는 이들은 김진회 박정수 방기종 오태환 윤찬호 윤춘흥 이춘수 최 현씨.동양화 서양화 서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각각 다섯점씩 40여점을 선보였다.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 회장은 각각 온화한 마음과 덕을 강조한 '채근담구'와 도를 행하는 길에 관한'전서작품'등을 내놓았다. 전북사진연합회장과 전국서화예술인협회 초대작가를 역임한 박정수씨는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구절초 향과 어우러진 햇살을 담은 '틈새의 香', 수십 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너울 타게 날아가는 '천상의 서가'등을 선보였다.벤치에 앉아 졸음에 겨운 노인을 통해 뒤안길의 감회를 담은 오태환씨의 작품 '인생길'도 눈길을 끈다.김 회장은 "이 모임을 3년 전부터 추진했는데, 지난해 비로소 결성됐다"며 "밥그릇 싸움을 위해 한쪽 구석으로 밀쳐 놓았던 로망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전시는 4일까지 전북교육문화회관 제2전시실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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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3 23:02

[전시] 일상의 행복, 시민과 나누다

취미가 직업으로 발전했다. 우표, 수석, 분재, 사진, 사물놀이는 아내보다 더 우선되는(?) 취미.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이젠 밥벌이까지 하고 있다.전주 연세교회(담임목사 한홍석)의 '제1회 사진 및 수석 기획전'에 초대된 임일태 전주 기전대 겸임 교수다.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일찍 접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산 지가 19년.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 봐야 하는 성미 덕분에 몸이 온갖 혹사를 당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만둘쏘냐. 미국, 스리랑카, 루마니아 등 31개국에서 열린 국제사진대회에서 494회나 수상, 미국 사진작가협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이번 전시엔 '모정'을 주제로 한 백로, 꾀꼬리, 흰배지빠귀새 등 새 사진 60여점을 내놓았다."일제 시대부터 임실에 백로가 왔다고 들었습니다. 임실 만큼 전경이 깨끗하게 나오는 곳이 없죠. 먹이 물고 들어와서 새끼한테 밥 주는 장면이 제일 멋집니다. 신의 섭리가 묻어납니다. 백로는 부부간 키스도 해요. 30m 인근만 가도 딱딱 거리며 부리 마주치는 소리가 들리죠."수석 100여 점을 출품한 유재설씨(전주중학교 교사)도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또다른 주인공. 태국, 필리핀, 중국, 캄보디아 등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시작된 수석 사랑은 벌써 27년째."아무래도 애착이 제일 많이 가는 것은 '산수경석'이죠. 누가 사간다고 생각만 해도, 서운해져요. 충주 남한강에서 나온 돌인데, 골이 많이 파여 있는 모습도 독특하고, 청색 계열의 색감이나, 단단한 질감이 참 좋습니다."한홍석 담임 목사는 "이번 기획전의 판매 수입금 모두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여질 예정"이라며 "좋은 작품을 흔쾌히 내준 임 교수와 유 집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전시는 7일까지 전주연세교회 3층 비전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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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2.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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