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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⑨드라마가 있는 음악 - 오페라

클래식 음악에서 대중이 쉽게 친할 수 있는 장르는 오페라이다. 오페라에는 극적 전개가 있는 이야기 즉, 드라마가 있고 연기가 있으며 의상, 무대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무용도 있다. 그래서 오페라를 시, 연극, 음악, 미술, 무용이 하나가 된 종합예술이라고 한다.오페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오페라는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새롭게 나타난 장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원래 있던 연극, 춤, 독창노래 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장르라고 하기도 한다.오페라(Opera)는 '작품(Work)'이라는 뜻의 라틴어 '오퍼스(Opus)'의 복수형이다. 극적인 이야기를 여러 작품을 연결시켜 전개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음악을 위한 드라마(Drama per Musica)' '이야기가 있는 음악 작품들(Opera in Musica)'로 불리웠는데, 후에 '인 무지카(in Musica)'가 생략돼 오페라로 불리게 된 것이다.오페라의 선구적 장르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그리스 시대의 음악이 있는 연극이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신앙이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기도실(Oratory)에서 행하던 기적극이나 신비극이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아 좀더 인간적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세속음악 마드리갈(Madrigal) 연곡이 있다. 오페라에 직접적 영향을 준 장르는 인테르메디오(Intermedio, 복수형은 Intermedi)이다. 인테르메디오는 막간극으로서 연극의 막과 막 사이에 한 막이 끝났음을 알려 주기 위해 행하던 이야기와 합창, 독창, 기악, 춤, 의상이 있는 꽤 공들인 공연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의 양치기 소녀와 목동의 사랑, 기사와 공주의 사랑 얘기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전원극(Pastorale fables)이라고도 했다. 이 인테르메디오가 큰 호응을 얻게되면서 독립적인 장르가 되었고 오페라로 이어진 것이다.최초의 오페라는 카메라타의 일원이었던 시인 리누치니의 시에 성악가이자 작곡가인 자코포 페리가 곡을 붙인 <다프네>이다. 이 곡은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로 간 바르디 백작의 뒤를 이어 카메라타의 논의를 계속한 코르시 백작 궁전에서 1598년 10월에 공연됐다. 이 곡은 불행히도 일부만 남아있다고 한다. 1600년 경 페리는 리누치니의 전원극 <에우리디체>에 또 곡을 붙였다. 사랑하는 에우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오는 지하세계에 내려가 죽음의 신 하데스를 감동시키는 노래를 불러 에우리디체를 살려오는 내용인 <에우리디체>는 1600년 10월 경 피렌체 공국 메디치 가의 공주와 프랑스 왕 앙리 5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피렌체에서 공연됐다. 이 곡을 최초의 오페라라고 하기도 한다.한 아이디어를 창안했지만 그 창안자는 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한 사람이 더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오페라에서 몬테베르디가 그렇다. 페리를 이어 몬테베르디가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오페라는 비로소 대중의 큰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의 악장이기도 한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의 극적인 부분을 색채있는 관현악과 함께 극대화하여 오페라를 아주 인기있는 음악 장르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몬테베르디를 오페라의 첫 위대한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우리가 자주 접하는 오페라들은 <팔리아치> <돈 죠반니> <라트라비아타> <칼멘> 등이어서 오페라는 고전시대쯤에 나타난 음악장르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이렇게 바로크시대에 나타나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가 있는 클래식 음악인 것이다.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정가극), 오페라 부파(Opera Buffa·희가극)의 변화로 이어지면서 오페라는 모차르트에 의해 그 위상을 한층 더 높였고 이태리, 프랑스 등 나라별의 다양한 형태인 베리스모 오페라, 그랜드 오페라들이 나타나면서 대중과 가장 친한 음악 장르가 됐다. 오페라는 대본에 의해 작곡하기에 언어에 배어 있는 민족적 특성이 나타나 더 사랑을 받은 것이다.낭만시대 후기에는 바그너에 의해 또다른 새로운 오페라인 음악극(Music Drama)이 나타났었고, 오펜바흐는 대중의 흥미를 더 끌기 위해 파리의 캉캉춤이 가미된 오페레타라는 장르를 내놓기도 했다. 오페레타에서 힌트를 얻은 20세기 작곡가들은 뮤지컬이라는 새 장르를 내놓아 지금은 뮤지컬이 대중의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예술 공연의 활성화를 위해 시행하는 문예진흥기금 배분을 위한 도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때 음악 분야에서 신청한 뮤지컬을 놓고 문예진흥기금 평가위원들이 뮤지컬은 연극 분야이지 음악 분야가 아니라면서 제외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에비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영국의 뛰어난 작곡가이다. 대본가가 아니었다. 뮤지컬은 오페라 장르의 한 분파인 것이다. 뮤지컬은 음악 분야에서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 공연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장에서는 비교적 많이 무대에 올려진다. 반가운 현상인가? 오페라는 캐스팅된 성악가의 발성 성음도 중요하지만 극의 진행을 알 수 있는 가사 성음의 분명함이 더 우선이다. 오페라의 드라마 진행을 환히 알 수 있어야 완성도 높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극 음악 클래식인 때문이다.우리 고장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오페라 공연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 공연을 관람하며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우리 고장의 음악 문화는 한층 더 성숙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09.11.10 23:02

불품는 '카리스마'에 열광

KBS 2TV '아이리스'의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김승우(40)일 듯하다.출연 분량이나 육체적인 고생에 비해 엄청난 호응을 얻기 때문이다.이병헌 등 NSS(국가안전국) 요원들보다 적게 나오고, 북한 호위부 정예 요원이지만 팀장이라 힘든 액션 연기는 김소연 등 다른 배우들이 소화한다.그는 그저 물기 없는 얼굴로 "움직여!"라고 지시하고, 아주 가끔 총을 쏜다. 하지만 늘 적에게 치명상을 가하고, 작은 움직임으로 큰 울림을 준다.그런 그의 연기에 누리꾼들은 '카리스마 작렬', '미친 존재감' 등의 표현을 쓰며 열광한다. 북한 군복과 양복 등 그의 패션도 화제가 된다.'아이리스'의 소공동 롯데호텔 촬영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곳에는 극중 북한군의 사무실이 차려졌다."박철영의 분량이 적잖아요. 병헌이에 비하면 얼마나 적어요. 그런데 임팩트 없이 연기를 했다가는 화면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사나 행동에대해 많이 연구를 했습니다."김승우가 맡은 박철영은 북한 엘리트 군인이다. 호위부를 이끄는 유능한 정예 요원이자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 내 강경파 인사. 영화 '해변의 여인'이나, 드라마'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등에서 보여준 김승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이렇게 강한 역은 처음이죠. 안 하던 연기를 하려니 저는 무척 재미있습니다.대본을 받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역이었어요. 승부수를 던졌죠. 제작진이 '정말 세련된 북한군을 그리고 싶었다'고 해서 절제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구상했어요. 하지만 솔직히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많이 불안했어요. 촬영장에서는 반응이 좋았지만, 시청자들 눈에 내가 이 역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으니 감사할 따름이죠."그는 이번 연기를 위해 실제로 귀순한 북한 엘리트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그들을 관찰했다."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북한에서 성공한 엘리트는 평양 시내 8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아르마니를 입고 다녀요. 다들 서울 표준말을 쓰고요. 그들은 북한 내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몰라요. 어떤 분은 '북한에 못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귀순해서야 알았다'고도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사람과는 완전히 달라요. 그들을 만난 후 박철영을 표준말을 구사하는 세련된 캐릭터로 만들었죠."하지만 실제 현실과 '드라마적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드라마 속에서 북한 사람이 북한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배우가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도 있기 때문이다."안 그래도 드라마적 리얼리티와 배우적 양심 때문에 북한 사투리를 어미에 반영하는 등 조금씩은 쓰고 있어요. 북한군인데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거저먹는다'고할까 봐 걱정되더라고요.(웃음) 표준말로 쓰인 대사를 받으면 다시 나 나름대로 억양 등에 변화를 준 후 소화하고 있어요. 반면 딱딱한 대사는 세련되게 바꾸기도 해요. '작전개시'는 '움직여!'로, '꼼짝마'는 '거기서!'로 바꾼 것 등이 제 아이디어입니다."그는 "투철한 국가관으로 무장한 박철영은 어찌 보면 단선적인 인물이다. 선화(김소연 분)에 대한 연민 정도를 빼고는 다른 감정도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에 임팩트를 주려니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촬영이 끝나면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느는 것 같다"며 웃었다.하지만 역할에 몰입하면서도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순간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 심각한 드라마를 찍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그의 장난과 유머에 NG를 내기 일쑤다.그는 "난 촬영장에서 유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장난기가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웃느라 NG가 많이 나는데 그게 또 재미 아니냐"며 웃었다.인터뷰 말미에 그의 딸 라희(5)가 휴대폰으로 영상전화를 걸어왔다. 딸의 재롱에 무장해제된 그는 '이보다 행복할 수 없어' 보였다. 실제로 부부 금실이 좋고 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며, 올해 상반기에는 아내 김남주가 MBC '내조의 여왕'으로 큰사랑을 받은 이후 현재는 그가 '아이리스'로 좋은 반응을 얻으니 부러울 게 없을 듯하다."운이 좋을 따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참 감사합니다."

  • 전시·공연
  • 연합
  • 2009.11.09 23:02

[공연] 인후문화의집 특성화 사업 창작판소리 '왜망실뎐' 12일 공개

전주 동쪽, 어금니같이 깊고깊은 왜망실. 아중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도 골짜기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왜망실은 그 이름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왜망실'은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마근대미재(막은댐)에 세워놓은 허수아비를 보고 그 옆 골짜기를 넘어오다 모두 죽었다고 해서 부르게 된 이름. '왜놈들이 이 곳에서 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왜막실'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와막골'이라고 불리워지던 때도 있었는데, 왜망실에 있던 가마터에서 구운 기와가 풍남문에 사용됐기 때문이다."돈 팔천원인가 주더라고. 한 달 내 통장 돈, 봉급이…. 나중 그만 둘 적에는 한 삼만원 받았나, 한 오만원 받았나?"35년째 왜망실 통장직을 맡았던 송태현 할아버지(77). 당시에도 온갖 궂은 일은 통장 몫이었다. 송 할아버지는 "언젠가 김해 김씨 족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족보상에는 마을 이름이 '봉광리'로 적혀있었다"며 "'왜망실'이나 '왜막실'은 구전에 의한 것이지만, '봉광리'는 문헌에 나와있는 명칭이라 개명을 하기 위해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이처럼 역사문화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왜망실이 창작판소리 '왜망실뎐'으로 재탄생했다.왜망실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살아온 이야기와 가족이야기, 마을이야기 등을 구술조사해 판소리로 만든 이번 작업은 전주 인후문화의집(관장 김현갑)의 '2009 전주 문화의집 특성화 사업' 일환. '언제나 흥겨운 전주대표 소고재비' 김형철 할아버지와 '고생도 눈물도 웃음이라 말재주꾼' 정복순 할머니, '왜망실 첫번째 대학생 앨리트' 정규화 할아버지, '삼십오년 청렴지기 영원한 통장님' 송태현 할아버지, '얼굴가득 인자한 빛 따뜻하고 소담해라' 유복례 할머니, '앞마당 당산나무 왜망실 안녕비는' 정대식 할아버지, '낡은 자전거 폐달 밟아 고향으로 출근하는' 김용기 할아버지, '먼저 떠난 부군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이라' 최복례 할머니, '볍씨 하나 허투루 않는 정직한 농사꾼' 최완석 할아버지, '아들딸 호강잔치 휘모리 가락으로 살고계신' 김덕문 할아버지 등 왜망실에 거주하고 있는 어르신 1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과 8월 조사했다.어렸을 때 직접 미투리(삼, 노 등으로 만든 신)를 만들어 신었던 김형철 할아버지(88)는 작업실까지 만들어놓고 짚신을 삼아 장날이 되면 볼거리로 내놓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진안굿을 쳐야 전주에서는 알아줬다"는 농악 이야기부터 A4 용지 40장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전주공고를 졸업한 후 전북대 공대에 진학, 1기로 졸업한 정규화 할아버지(78)는 왜망실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인물. 지도까지 펼쳐 보이며 왜망실에서 일출이 좋은 일출암과 광산터였던 숯재, 굉장히 단단한 점토가 나오는 가마터 등을 짚어냈다.김현갑 인후문화의집 관장은 "지금까지의 마을조사가 보고서 형식으로 자료로서 보관되는 데 그쳤다면, 지역 주민들의 입을 통해 회자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었다"며 "자료를 책으로도 엮을 계획이지만, '전주시민한소리하기'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판소리 '왜망실뎐'을 보급해 볼까 한다"고 말했다.창작판소리 '왜망실뎐'은 12일 오후 2시 전주 아중리 왜망실 용계마을 세번째 모정에서 열리는 마을축제 '왜망실로 떠나는 가을소풍'에서 처음 공개된다. 극작가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이 사설을 쓰고 젊은 소리꾼 이용선 최재구씨가 작창을 했다. 문의 063) 247-8800

  • 전시·공연
  • 도휘정
  • 2009.11.09 23:02

[최동현의 명창이야기] ⑨최초의 여자 소리꾼 진채선

본래 판소리는 남자들만 부르던 것이었다. 판소리는 무당 가계의 남자들의 창조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애초부터 여자들이 판소리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안방이나 대청 등 가까운 거리에서 청중들을 마주하고 노래를 불러야 했기 때문에, 당시의 도덕률에 비추어 여자가 판소리를 부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기에 여자 창자가 일반화된 것은 서양식 무대가 도입되어 공연자와 청관중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 개화기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신재효의 시대에 여자 소리꾼이 최초로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진채선이다.진채선의 성이 진(陳) 씨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진채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조선창극사>>에는 성이 없이 '채선(彩仙)'으로만 되어 있었다. 채선이라는 이름도 보통 사람들의 이름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진채선은 기생 출신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창문화원장을 오래 한 이기화는 현장조사를 통하여 채선의 고향이 월산면 검당포이고, 그의 선대가 고창군 무장면에서 건너온 진 씨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강한영도 1975년 경에 고창에 와서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고창군 심원면에서 주막을 하는 진채선의 이질녀 김막례를 찾아냈다. 김막례는 무당 집안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채선의 성이 진 씨이며, 무당의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진채선 생가의 위치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사등부락 522번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심원면 월산리는 검당, 사등, 죽림, 월산, 마산 등 5개 마을로 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검당에서 소금을 구웠기 때문에 검당이 가장 컸었다고 한다. 검당은 본래 천민들의 집단으로 거주지였으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소금 생산에 종사하고 있었다. 검당이 천민들의 집단 거주지였다면, 같은 천민이었던 단골 또한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무장 진 씨와 검당포 무당이 만났던 것일까? 전해오는 말로는, 진채선의 조부가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무장으로부터 검당포로 건너와서 과부였던 김당골과 함께 살게 되면서 진씨가 검당포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김막례의 증언에 의하면, 채선이 유년시절에 당골 학습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다니면서 등 너머로 익힌 노래 솜씨가 당골 학습 선생에게 알려지게 되어 별도로 소리지도를 받게 된 것이 판소리 공부의 첫 인연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노래 솜씨가 소문이 나서 어머니를 따라 큰 잔칫집의 소리판에 다녔다고 하였다. 그 후 진채선은 처음 소리를 가르치던 선생이 신재효에게 다리를 놓아주어 신재효의 문하에 들어갔고, 거기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아 명창이 되었다고 했다.진채선이 판소리 학습을 하는 과정이 어떠했는가에 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신재효의 각별한 배려 속에서, 신재효의 집에 드나들던 소리꾼들에게 소리를 배웠을 것이다. 신재효가 직접 쓴 <도리화가>에는 진채선을 향한 절절한 애정이 담겨 있다. 이로 보아 신재효가 진채선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리는 신재효의 집에서 소리 사범 노릇을 했다고 하는 김세종으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소리공부를 마친 진채선은 1867년 한양으로 올라가 경복궁의 경회루 낙성연에 참여하였다. 진채선이 어떻게 해서 경회루 낙성연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재효가 경복궁 재건을 위해 돈도 내고, 노래도 지어 바쳐 임금으로부터 절충장군이라는 벼슬을 받았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신재효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진채선을 데리고 간 사람은 김세종이었는데, 여성이 먼 길을 간다는 게 힘든 시절이라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갔다고 한다. 소리도 남장을 하고 했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진채선이 남자 복장을 하고 소리를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된다.그런데 대원군의 실각 후 대원군 곁을 떠난 진채선은 어디로 갔을까? 고창으로 돌아와서 신재효를 만났다고도 하고, 한양의 기생이 되었다고도 하고, 중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진채선 이후 한참을 기다린 후에 우리는 허금파나 김초향, 이화중선 등 여자 소리꾼들을 만난다. 일제 초기에 활동했던 이들은 진채선이 닦아놓은 길이 있었기에 소리꾼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이름도, 명예도 다 진채선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09.11.09 23:02

완주 전북재활학교 장애 인식 개선 콘서트

'우리 모두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완주군 고산면 전북재활학교(교장 이민우)는 5일 오전 학교 강당에서 김순옥 이사장, 김영진 도교육청 교육국장, 박규선 도교육위 의장, 임원규 완주군의장과 학생, 학부모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9 장애인식 개선 희망·감동 콘서트'를 개최했다.초·중·고 지체장애 학생 76명이 푸른 꿈을 키워나가는 특수학교인 전북재활학교의 이번 콘서트에는 꿈과 희망을 테마로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더불어 함께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한 이번 행사는 장애인에게는 장애극복 의지를 고취하고,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함으로써 사회통합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이번 장애인식 개선 콘서트는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합주, 국악 천재 박성열의 판소리(SBS 스타킹 출연 3연승), 퓨전 밸리댄스(정신지체인), 연극, 색소폰 연주(시각장애인), 가요 독창(SBS 스타킹 출연 지체장애인 가수), 휠체어 댄스(지체장애인 국가대표), 교향곡 연주 등 9개의 마당, 그리고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 시화전, 서예, 한지공예작품 등의 전시를 통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쳐보였다.전북재활학교 이민우 교장은 "비록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용기와 희망 그리고 자신감만 있다면 장애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것이며 이번 행사가 이런 인식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전북재활학교는 장애인 교육에 큰 뜻을 두고 초대 최승구 이사장이 지난 1983년에 설립했다.

  • 전시·공연
  • 백기곤
  • 2009.11.06 23:02

[공연] 판소리와 사군자 '맛있는 비빔'

지난 여름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는 국악으로 연주하는 '전주비빔밥' 노래에 맞춰 전주비빔밥을 비비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비빔밥 퍼포먼스가 생경한 서울 사람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가을, 이번에는 판소리에 맞춰 사군자를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7일 오후 7시30분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에서 열리는 천년지향(千年之響) 나니레의 '천년의 비상, 미래의 소리'.피리 구음에서 이름을 가져온 천년지향 나니레는 1990년 창단한 문화포럼 나니레가 탯자리. 국악 작곡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선, 코리안월드뮤직그룹 오감도의 안태상과 조송대,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 신승섭,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황은숙 박덕귀, 전주세계소리축제 김성훈 등이 창단멤버였다.창단멤버로 현재 나니레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훈 대표는 "창단 초기에는 새 국악운동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을 찾아다니며 악보 받는 게 일이었다"며 "슬기둥을 2∼3일씩 쫓아다녀도 악보를 주지 않아 휴지통을 뒤져서 기본적인 음만 표시돼 있는 것을 찾아 덮어씌우는 작업을 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말했다.그동안 단원들도 많이 바뀌고 활동도 소그룹 형식으로만 해왔지만, 최근 노동부 예비 사회적기업 발굴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지원을 통해 젊은 연주자들을 영입하며 내부를 추슬렀다. 천년지향 나니레 안에 국악쳄버 나니레, 비빔밥 퍼포먼스 예술단 비빔바우, 수라음향단 수라향, 영화음악팀 뮤 등도 새로 구성했다.이번 공연은 한층 '젊어진' 나니레가 새롭게 출발하는 자리. 판소리 사군자와 판소리 아카펠라 '화초장', 국악칸타타 '사랑가' '정읍사', 하모니병창 '제비노정기'가 이어지는 동안에 무대 위에서는 사군자가 피어나고 판소리 사설이 문인화로 표현된다. 무대 뒷면에 가로 7m, 세로 2m에 이르는 대형 화폭을 설치한 뒤 한국화가가 화폭 뒤에서 그림을 그릴 예정.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화가가 보이지 않아 웅장한 화폭에 수묵화가 그려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판소리 아카펠라 '화초장'에서는 여창 2명과 남창 1명이 현란하고 테크니컬한 비트 박스와 배틀 형식으로 만나며, 하모니병창 '제비노정기'에서는 깨끗한 음색의 가야금병창 하모니를 들을 수 있다.마지막 무대는 전주비빔밥의 세계화를 위한 퍼포먼스곡 '비빔사랑'. 강성오씨가 위촉작곡한 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친숙한 보사노바풍으로 작곡했다. 김대표는 "새로운 전통공연을 시도하면서도 전라북도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갖는 공연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도휘정
  • 2009.11.06 23:02

[공연] 도립국악원 무용단 봉사공연 등

▲ 도립국악원 무용단 봉사공연 - 7일 오후 2시 정읍 정읍여중 강당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이 지역간·계층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봉사공연을 이어가고 있다.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공연이라 무대와 같은 화려한 조명등은 없지만, 화려한 춤사위와 전통과 퓨전이 함께 하는 타악공연 등 레퍼토리는 다양하다.화려한 의상과 함께 놀이가 곁들여진 '포구락'을 비롯해 '삼도설장고', '강강술래', 창작무용 '밥', 무용단 전원이 함께 연주하는 북소리 '울림' 등이 펼쳐진다. 문의 016-890-0875▲ 우리춤동아리 춤무리 제1기 첫 작품발표회 - 7일 오후 7시30분 전주우진문화공간40대 이후 건강한 삶을 위한 작은 반란. 2008년 출범한 우리춤동아리 춤무리 1가 첫 작품발표회를 연다.장인숙 널마루무용단 단장의 지도로 한국춤을 추기 위한 기본동작으로 굿거리장단과 자진모리장단, 입춤, 부채춤 등을 익혔으며 두차례 자체 수련회를 가진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기본무, 입춤, 여심, 부채춤 등을 선보인다.오송 이양자, 유연수씨가 특별출연해 호남살풀이춤과 화관무를 춘다.▲ 김춘숙 '심청가' 완창발표회 - 8일 오후 2시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전라북도립국악원 예술단 창극단원 김춘숙씨가 첫번째 판소리 완창발표회를 갖는다. 명창 김소영의 제자인 그는 이번 발표회에서 동초제 '심청가'를 3시간여에 걸쳐 부른다. 김 씨는 "스승님의 소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부족한 부분을 연습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전남 여수 출생으로 원광대와 같은 대학원을 수료, 1991년 도립국악원 창극단에 입단했다. 고수는 조용안 공병진씨.

  • 전시·공연
  • 도휘정
  • 2009.11.06 23:02

[공연] '에버그린밴드' 일곱번째 정기연주회

실버 브라스밴드(brass band)의 탄생으로 창단부터 화제를 모았던 에버그린밴드(단장·지휘 황병근).에버그린밴드의 제7회 정기연주회가 7일 오후 5시 전북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열린다.2003년 7월 5명으로 발족, 같은해 12월 창단 기념 정기연주회를 열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에버그린밴드는 장애인과 노인 행사를 비롯해 교도소 등 전국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7년 동안 300여회의 공연을 펼쳐왔다.황병근 에버그린밴드 단장은 "짧게는 20~30년씩, 길게는 50~60년씩 악기를 다뤄온 전라북도에서 제일 노련한 연주자들"이라며 "에버그린밴드가 완숙기에 접어들면서 음악 전 분야를 소화해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일상적인 공연이 대중적이고 편안한 곡들로 생활에 위로와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정기연주회는 수준 있는 곡들로 청중들에게 고급화된 무대를 선물하는 자리. 황 단장은 "이번 정기연주회에는 클래식, 팝, 아리아, 가곡, 라틴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했다"며 "새롭게 선보이는 곡들인 만큼 관악기에 맞춰 편곡해 에버그린밴드만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그 중에서도 설장고 명인 배난경씨와 함께 하는 공연은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에버그린밴드가 특별히 마련한 무대. 소프라노 이경선, 가수 김종교 김종윤씨도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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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9.11.05 23:02

[전시] 돌에 새긴 인간의 존재, 그리고 삶의 터전

'피는 물보다 진하다.'9일까지 전주서신갤러리(관장 박혜경)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이세덕씨의 설치 조각전'혈의 기원'의 근간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풀고, 그동안 작업해온 철 대신 돌로 깎고 다듬어 표현했다."경남 거창에 갔다가 간지석 돌무더기를 보고 저거다 싶었습니다. 철은 새기고, 용정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해야 하지만, 돌은 정하고 망치만 있으면 뚝딱뚝딱할 수 있거든요."간지석(터를 잡거나 축대를 쌓는데 쓰이는 돌)에 250여개의 지명과 150여개의 성씨를 새긴 돌 400여개가 전시됐다. 작가는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성씨와 삶의 터전을 이뤄온 지명은 과거에 뿌리를 두지만, 변화를 거듭하며 이어져 오기 때문에 미래를 지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좋은 돌을 고르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런데 워낙 비싸서요. 섬세한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작품을 구상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값싼 돌을 구했고, 틈 나는대로 작업했습니다. 미련하지 않으면 못하는 작업이죠."남·북의 지명 2만7000개 중 250여개만 새겨놓은 상태. 빨간색 락카로 덧칠해 강렬하고 숭고한 이미지가 강조됐다. 전시장에 검은색 천을 깔아 그 위에 작품을 흩어놓는 방식을 취했다.작가는 "검정은 두려움과 그리움, 삶과 죽음을 뜻하는 반면, 빨강은 분노와 열정의 색"이라며"빨강과 검정의 조화로 유한한 인간의 존재와 삶의 터전에 대한 애환을 승화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성씨와 지명을 소재로 한 '혈의 기원'은 앞으로도 계속된다.군산 옥구 출신인 그는 현재 전북대 미술학과와 군산대 건축학과에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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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09.11.04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