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체육 비사] ⑮전북 사격 위상 끌어올린 엄윤섭 전무이사
전북 사격의 역사를 말할때 엄윤섭(50) 도 사격연맹 전무이사겸 임실군청 사격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다른 종목에 비해 저변이 두텁지 않은 상황에서 사격을 시작했고, 특히 지도자로서 오래 활동하면서 기라성 같은 후배들을 배출한 까닭이다.임실 관촌에서 태어난 엄 전무는 관촌중, 전북체고, 한국체육대학을 거쳐 단국대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관촌중 3학년때 그는 프로복서인 홍수환 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되는 모습에 심취해 곧바로 전주까지 매일 오가며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다.홍수환은 77년 11월 파나마에서 열린 WBA 슈퍼밴텀급 경기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맞아 2회 4차례나 다운을 당하고도 3회 기적같은 역전 KO승으로 '4전 5기'신화를 일군 인물이다.이에 앞서 74년 첫 타이틀 획득직후 홍수환은"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란 멘트를 날려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준 일이 있다.권투에 흥미를 느껴 전주체육관으로 오가며 권투를 배웠으나, 엄윤섭은 중학교 졸업 무렵 갈곳이 없어 1년을 쉬게된다.운동으로 진학하자니 턱없이 부족하고, 학력으로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절치부심끝에 1년을 쉬며 권투만 한 그는 도 단위 대회에서 페더급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권투 특기생으로 전북체고로 진학한다.시골에서는 나름대로 운동좀 한다는 그였지만, 최고 엘리트 선수들이 모인 전북체고에서 그는 점점 왜소함을 느꼈다.국가대표가 된 조기남 등과 자신을 비교할때 권투를 해서는 죽도 못먹고 살겠더란 생각이 확 들더란다."열심히 하면 되는게 있고, 열심히 해도 안되는게 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동료들과 비교해보면 권투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죠."고교 2학년이 될때 그는 체고 김극로 교사(현 군산대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구한끝에 사격으로 전환했다."사격은 열심히만 하면 무슨 길이 있겠더라고요."그가 경기 종목을 바꾼 이유다.전북체고 기숙사에서 그는 라면을 끊여먹으며 사격에 전념했다.남들은 중학교때 시작해서 자신이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많은 시간투자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토요일, 일요일이면 다른 동료들은 다 집으로 향했으나 그는 홀로 훈련을 거듭했다.노력이 헛되지 않아 몇달만에 전국체전 전북대표로 선발되고 3학년이 돼선 전국무대에서 우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여세를 몰아 운동 선수로서 선망의 대상인 한국체대로 진학했다.그가 하는 종목은 공기총 10m 경기였다.1.5kg의 무게에 길이 32cm에 불과한 공기총에 모든 진리가 있는 듯 보였다.전국 최강자들이 모인 대학에서 그는 주전으로 활동했고, 2, 3학년때는 주장까지 맡았다.당시 한국체대는 태릉 선수촌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매일 불암산을 오르며 꿈을 키웠다.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냈던 박종규씨가 오랫동안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지냈는데 엄 전무는 대학시절 가까이서 박 회장의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박종규 당시 회장은 한달이면 서너번씩 사격장에 왔고, 특히 사격하는 후배들을 아주 아꼈기에 엄 전무도 자주 격려를 받았다.사격장 입구엔 박종규씨가 항상 즐겨쓰는 '백발백중'이란 비석이 서 있었고, 박씨는 선수들에게 "사격할때는 잡념을 버리라"고 충고하던 음성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는게 엄 전무의 회고다.대학 졸업후 서울 서라벌고, 경기 정윤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한미약품 회장 자녀를 지도한 것이 계기가 돼 그는 91년 전주에 내려와 한미약품 건강식품 대리점을 운영하게 된다.사격을 잊고 사업에 전념하던 그에게 2000년 선배들이 사격전무를 맡아달라고 권유해 그는 현재 11년째 전무이사로 활동중이다.그 과정에서 김기원, 하길용, 이현주 등 국가대표를 길러낸게 큰 보람이다.유철종 전북대 명예교수는 엄 전무가 사격을 지도하고, 널리 보급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와줬다.평소 클레이 사격을 즐기는 유 명예교수는 진정한 사격애호가로 여기고 있다.언젠가 태릉사격장에서 열린 경찰청장기 사격대회때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은 '전북에서 온 사격전무'란 말에 두 손을 꼭 잡고 격려해준 장면이 생생하다.임실 청웅 사격장서 만난 연예인 임채무를 보면서 엄 전무는 "참 멋진 클레이 사격선수"란 느낌을 받기도 했다.언젠가 전북사격연맹 회장이 돼 보고싶은 꿈이 있었으나 이젠 그것을 포기했다.전무를 오래하면서 회장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해야한다는 것을 실감한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영원한 사격인'으로 남기위해 매일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