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4 21:53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지역일반

[시론] 고향으로 돌아온 현숙의 어머니 - 양영두

지난 3일 12시 김제시 월촌면 장화동,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가수 현숙(정현숙)의 어머니 김순애여사님의 삼오제 의식이 막 시작될때 묘역에 도착한 나는 흰소복을 입고 퉁퉁부은 얼굴로 상주석에 서서 기도예배 의식을 치루고 있는 현숙씨를 만났습니다.오빠 오셨느냐고 인사 나누기도 바쁘게 장화교회 목사님과 집안분들을 소개했는데 정군수 전북시인협회장이 사촌간이고 장화리가 동래정씨 집성촌이라는걸 알게 되었지요.전북 도민으로서 소충·사선문화상(효행부문)을 수여한 제전위원장으로서 공적인 조문을 드린 겁니다.6월 29일 오전 현숙씨 모친 별세 부음을 연락받고 한양대병원 7호실에 가는 차안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이제 현숙이가 누구를 의지하고 살것인가 걱정이 앞섰지요.15년전부터 몸져 누우신 어머님을 간호하며 서울에 모셔놓고 방송이나 지방출연을 소화하면서 오직하나 병석의 말씀도 잘 못하는 노모를 살리고 봉양하는 것을 일과로 살아온 것을 지켜 보아온 나는, 결혼도 안하고,아이도 없고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염려되었는데.... 저녁 병원에서 만난 전북의 딸 현숙은 슬픔속에서도 너무도 의연하고 소박해서 짐짓 놀랐지요. 삼십여년 대중가요 예술계에서 어려움도 발로 뛰며 이겨내고 뜨거운 가슴으로 선.후배의 어려움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것은 알고 있지만, 수백개의 화환,정·재계,방송언론, 문화예술,사회각계각층의 인사가 쉬임없이 조문하는 행렬을 보고 사람하나의 힘이 이렇게 크고 위대하구나 하는걸 느꼈지요.6남매의 막내딸로 시골에서 태어나 입지전적으로 성공했다지만 정말 자랑스러운 전북의 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여류명사도 이러한 조문객은 없을 것 같고,오직 어머님 한분을 효성을 다해 다바친 그 인덕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하고 감명받았습니다.국민가수 송대관, 태진아, 김성환, 최진희, 정훈희, 인순이, 김상희씨등 유명 선.후배가수, 연기자, 코미디언등과 국민MC송해선생등과 이런저런 담소하며 소주잔 기울이다 새벽녘까지 있으며 한달 병원비가 천팔백만원들때도 있었고 말이 어눌한 노모와 눈과 가슴으로 대화나눈 기막힌 사연, 숨거두시기전 병원에 어려운 환자위해 8,700만원을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 사연....돈이나 권력있다고 아무나 못한 일을 해낸 여장부 현숙의 칭찬과 함께 송해선생이 “현숙 시집가야 할텐데, 좋은 배필만나 살아야 할텐데”하는 말에 코 끝이 시렸답니다.‘효행은 백행지근본’이라고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현실에 가로막혀 어려웁거늘, 생각건대 효녀 ‘심청’은 인당수에 몸바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던 것처럼, 전북의 딸 효녀『 현숙』은 미혼으로 지극정성을 바쳐 어머니의 수명을 15년간 늘려 드렸기에 이 행실은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까지라도 본 받아야 할 귀감이므로 전북도민의 이름으로 효녀각을 지어 주어야 된다고 주창하면서 이제 어머니를 고향의 선영에 모셨으니 현숙은 눈물을 닦고 대한민국과 전북을 더욱 빛내는 국민가수로 정진하기를 기원합니다. 삼가 고 김순애 여사님의 명복을 비옵니다./양영두(사선문화제전위원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7.09 23:02

[딱따구리] 허탈감에 빠진 임실군민

‘이번에는 제발 좀’을 줄기차게 염원했던 임실군민들은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으로 또다시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군민의 손으로 선출한 민선 단체장이, 그것도 세 명씩이나 줄줄이 감옥으로 보내야 하는 심정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정부가 민주화를 부르짖고 이를 토대로 지방자치시대에 접어 들면서 그도안 힘이 없었던 주민들의 ‘권한’은 막강한 위치에 올라섰다.그 권한은 바로 투표행위다.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선출한 주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는 등 비약적 민주화를 일궈낸 것이다.그러나 군수 한 명의 잘못된 군정과 행보로 얼마만큼 지역과 지역 주민이 큰 피해와 상처를 받는지 10년의 민선시대를 통해 우리는 절실하게 경험했다. 현재 임실군의 사정을 굳이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민선시대 3명의 임실군수가 연이어 사법부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뇌물수수’혐의였다.임실군이 가난하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충당하려고 뇌물을 받는다는 항변을 혹시라도 한다면, 주민들의 마음을 두 번 울리는 일이 될 것이다.초대 군수가 그랬으면 2대 군수는 이를 본보기로 삼아야 했는데도 3대 군수마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을 당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김 군수의 이번 구속사태가 언론을 타면서 전국을 강타한 반면에 이상하게도 임실지역에서는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다.군민 개개인이 잘못 뽑았다는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고, 너무 허탈해 차마 입을 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자치단체의 수장을 잃은 임실군이 발전 방향을 잃고 또다시 표류할까 안타깝다.

  • 지역일반
  • 박정우
  • 2007.07.09 23:02

[오목대] 로스쿨

실로 오랜만에 법학전문 대학원(로스쿨)설치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국회법사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미적거림으로 주춤했던 법안이 국민들의 따거운 눈총에 백기를 든것이다.지금까지 이 법안이 지체된 이유는 법사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꼴이었고 그들 발에 그들 스스로 도끼질을 하라고 한셈이었다.처음부터 법안 심사 주체가 될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차일피일 지연작전으로 나갔던 것이다. 로스쿨 제도는 법룰시장의 시한폭탄이다.지금까지 로스쿨 반대측의 주장은 법적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변호사들이 로스쿨을 통해 양산되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수도 있다는것이었다. 이주장 뒤에는 바로 기존 변호사들은 충분한 법률지식을 구비 하고있다는 전제가 숨어있다.과연 현실은 그런가. 그리고 우리인구에 비해 변호사가 너무 적다보니 희소가치의 엄청난 프레미엄을 변호사에게 주고 있다.그런데도 변호사가 너무 많다보니 사무실 임대료도 제대로 못낸다는 엄살아닌 엄살도 나오는데 이는 과거의 잘나갔던 변호사 시절보다 못하다는 것일뿐 지금도 특권직업인 것은 분명하다. 또 사법시험 통과는 곧바로 조선사회 과거시험 합격으로 동일시하여 그만한 사회적 대우를 원한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숫자는 약 1만명이 넘는 것으로 통계된다. 남한인구 4500만명에 만명이라면 인구 4500명에 변호사 한명꼴이다. 미국은 현재 변호사 숫자가 약 6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인구 3억에 65만명은 인구 500명에 변호사 한명꼴이다. 이통계는 엄연히 우리나라 변호사들 희소가치의 높이를 말해준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법칙은 사회 어디에나 적용되는데 복잡한 사회는 그만큼 법률 수요가 많게되고 변호사 공급이 적으면 변호사 수임료는 자동적으로 오를수밖에 없다. 높은 수임료는 법원문턱을 높게 만들어 가난한 사람에게는 법의 조력은 멀리있다.그래서 유전무죄(有錢無罪)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비아양거리는 은어가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늦게마나 통과된 로스쿨 법안을 환영한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7.09 23:02

[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신선처럼 살겠다던 네가 어째서 허풍만 늘었느냐

7월, 한반도의 남부지역은 간간이 내리는 장맛비와 따가운 햇볕이 독수리 부리만큼이나 매섭다.눈이 시릴 정도의 투명한 옥빛 계류, 산자락 그 어디선가 불어오는 청아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영인아? 네가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울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넘었다. 너는 내게 항상 그랬었지. ‘이 세상에는 돈만이 사무친 한을 풀어주고 타오르는 욕망을 잠재울 것’이라고….그래서 넌 기어코 성공하여 리무진을 타고 온다고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지.그러나 ‘돈’이란 그리 쉽게 버는 것이 아니고 또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돈은 정당하게 벌어야 하며, 그러려면 먼저 황폐해진 네 마음 밭을(心田) 기름지게 가꾸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때는 명산의 고요 속에 파묻혀 초근목피를 먹고 이슬을 마시며 신선처럼 살겠다던 착한 네가 어찌 그리 허풍만 늘었는지 모든 형제들이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단다.돈 전(錢)자는 쇠금 변에 창 과(戈) 자가 두개나 있어, 본래 창은 무기로써 잘 쓰면 생명을 지킬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신영규(수필가)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7.06 23:02

[오목대] 도굴

우리 문화재의 수난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저질러졌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인 골동상과 호리꾼(‘호리’는 ‘도굴’의 일본말) 패거리들이 들어 와 닥치는대로 고분을 파헤친 것이다. 그들은 초기에 주로 개성과 강화도 일대의 왕릉을 포함한 고분에서 각종 고려자기와 부장품을 노다지로 약탈해 갔다. 이들 고려자기들은 일단 서울로 모아졌다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당시 서울의 골동상에는 이러한 도자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대개 개성인삼과 함께 일본으로 보내는 선물감으로 쓰였다. 그들은 고려자기를 최고로 쳤고, 한국인을 하수인으로 이용했다. 한때 이같은 도굴과 수집으로 생활하는 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였다니, 폐해가 어떠했겠는가.이렇게 유출시킨 고려자기 경매전시가 1909년 가을 도쿄에서 열렸는데 그때 카탈로그 서문에는 이런 귀절이 보인다. “이 고려자기는 옛날에 외국으로 건너간 것을 제외하면 한국 안에서는 단 1점도 지상에서 볼 수 없었고 모두 고분에서 파내고 있다.” 이어 이런 대목도 나온다. “고려시대 무덤들은 모두 오랜 세월의 풍우속에 꺼져 버려 우리들 눈에는 분별할 수 없으나 한국인은 막대기(쇠꼬챙이)로 그것을 찔러보고 그 속의 음향으로 감정을 하고 파내는 것이다.”이런 도굴의 역사는 기원전 기록에도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들의 시신이 있는 피라미드에 교묘히 미로(迷路)를 만들어도 도굴꾼들이 알아내 부장품을 도굴해 갔다. 역대 파라오들은 도굴의 방지에 부심해 BC 16세기 투트메스 1세는 눈에 띄지 않는 산골짜기 암굴에 은밀하게 왕의 시신을 매장했으나 이마저 용케 찾아내 부장품을 도굴해 갔던 것이다. 며칠전 전국을 돌며 도굴을 일삼아 온 일당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임실 운암과 익산 웅포, 경기도 여주, 경북 상주 등의 야산 묏자리에서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등 고려와 조선시대 진품 도자기 10여 점을 도굴했다 경찰에 검거된 것이다. 20여 년전부터 배운 풍수지리를 활용해 명당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쇠막대(탐침봉)로 1m-1m 30㎝ 가량 찔러 본후 주변을 파헤쳤다는 것이다. 요즘 도굴꾼들은 내시경 카메라까지 이용한다니 갈수록 수법이 정교해지는 모양이다. 이집트가 유명해진 것은 도굴 덕분이라는 말이 있긴 하나 도굴은 결국 범죄일 뿐이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7.06 23:02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