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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역사이론은 무엇이고, 사상가들은 무엇을 주장했는가

역사가는 자신을 숨기고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독일의 대표역사학자인 랑케(1795~1886)와 영국의 역사학자인 E.H 카(1892~1982)의 대표적인 말이다. 랑케는 실증주의를 표방했지만, 랑케는 관념론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다양한 역사관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이런 서양의 역사이론의 변화와 사상가들의 생각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의 <역사이론과 그 대표적 사상가들>(인간과문학사). 저자는 우리 인간생활과 역사에 대한 저명한 세계 석학들의 까다롭고 심오한 사고들을 중심으로 이번 책에 기술했다. 특히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책인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넘어 과연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사상가들(역사학자철학자신학자문인들)의 견해를 담아 더욱 넓고 깊게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난해하지만 독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실제 경험을 통해서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내용을 수록하였다. 책은 1부 역사란 무엇인가, 2부 석학들의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해석, 3부저명한 사상가들의 역사 해석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지식인의 사치로서의 역사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역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2부 석학들의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해석에서는 시대에 따른 역사관의 변화를 통한 정치경제문화사상종교의 면에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구분 방법론을 제시한다. 3부 저명한 사상가들의 역사해석에서는 고대 역사학자인 소크라테스부터 마르틴 루터까지의 시대별 사상가들의 핵심 이론등을 설명한다. 이규하 교수는 이 책은 역사전공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가장 난해한 책으로 느낄 수 있다면서 오랜기간 연구해온 서양의 사상가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 1958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한후 1964년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독일 현대사 연구소, 베를린자유대학교, 본대학교, 프랑스 스틀라스붑르크대학교 연구원을 역임했다. 전북사학회장, 전북대 인문학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09.09 17:25

[신간] 40년 ‘말 전문가’의 조언, 미러링 스피치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말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말에 대해 고민하는 공통된 생각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40년 말 전문가의 조언이 담긴 책이 발간됐다. <미러링 스피치>(미다스북스). 이 책의 작가는 이재호 전 KBS전주방송국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이재호씨다. 이 전 앵커는 40여년 간 말을 직업으로 세상과 맞서는 무기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온 말 전문가다. 그가 40년간 오랜 연구와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법을 관찰해 얻은 결론은 세상에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자기 안에 있는 거울 뉴런의 힘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직접 할 때와 똑같은 활성을 나타내는 신경세포다. 인간은 그 세포의 작용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감정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공감 본능이다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통하는 미러링 대화법을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무엇보다 경청 훈련이 먼저이고, 듣기에도 기술이 있다. 특히 비언어적 신호에 주목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도 메모하며 듣기, 반응하기, 질문하기, 상대방의 말을 미러링하기가 잘 듣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있다. 말투와 억양, 적절한 포즈, 품격있는 말 등 저자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조언도 조목조목 소개돼 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언어를 맞춰라,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라, 몸이 말하는 신호를 주시하라,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맞장구 쳐라, 좋은 질문으로 말을 대신하라 등 미러링 대화법 시크릿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980년 KBS한국방송 취재기자로 입사, 전주방송총국의 9시뉴스 앵커로 다년간 활약하고 취재부장과 보도제작부장, 보도국장을 역임했다. KBS 본사에서 보도특집을 제작하고 통일부 차장을 거쳐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09.09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 - 김근혜 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오래 전,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하는 인간을 다룬 책이 있었다. 이 책에서 인간은 놀이에서 지금의 문명을 이루어냈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놀이는 시간의 소비쯤으로 여기지만 사실 예술과 스포츠, 과학까지도 놀이적 성격을 띤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른도 아이도 놀이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놀이를 빼앗긴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얼마 전, 김근혜 동화작가의 첫 장편동화가 나왔다. 등단 후,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선보인 책이라서 소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제롬랜드라는 공간이 가지는 선명성 때문에 제목부터 시선을 끌었다. 또한, 가상세계를 하나하나 만들어 수많은 몬스터를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우정과 자신들의 일상을 기억하며 제롬랜드를 빠져나오게 하기 까지, 창작 과정의 수고스러움이 눈에 선했다. <제롬랜드의 비밀>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게임과 관련한 동화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게임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 나선다. 친구를 찾기까지 많은 가상공간 속에서 몬스터들과 대항하며 결국 친구인 찬서를 찾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게임은 지나치지만 않다면 집중력이나 판단력, 순발력까지 키워준다. 하지만 게임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줄 모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함정이다. 놀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선택한 게임, 하지만 그 대가가 혹독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게임을 무한대로 할 수 있다는 유혹으로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쉽게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처럼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 아이들은 언제든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져 일상을 탈출하고픈 생각이 들 것이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가 게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새로운 자극이 함께 하고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함과 박진감, 생동감이 있다. 이처럼 가상공간은 모험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 수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대리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어른들이 관여하지 않는 자신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은밀한 곳이기도 하다.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험과 이야기가 게임에는 가득하다. 그러니 어찌 게임을 멀리하겠는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눈만 뜨면 골목길을 누비던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환경도 시설도 좋은 놀이터가 많지만 빈 공간으로 남아 있고, 아이들은 모두 경쟁으로 몰려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 기성세대들이 맘껏 누렸던 것처럼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등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을 만큼 노는 것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 주지 않는 한 게임의 유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제롬랜드의 비밀>을 통해 아이들이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맘껏 놀 수 있는 세상의 필요성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잊힌 기억은 온몸으로 느낄 때 되살아 나!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이 땅의 아이들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놀이의 장을 펼쳐야할 때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9 16:58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1) 맑아서 불온했던, 날망의 소나무 시인 이광웅

이광웅 시인. 이광웅 시인은 1940년 익산에서 가난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얼굴이 유독 희고 목이 길었던 시인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명문고인 남성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사유가 깊고 감수성이 뛰어나서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소설과 시, 수필 등을 써서 많은 상을 받기도 하면서 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외국의 고전을 원서로 죽죽 읽을 만큼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다. 시인은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쳤을 때 건강이 나빠지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시를 썼다. 그때 그의 독자는 시인의 누이동생들이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시인은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신석정 선생을 만나서 문학적 깊이를 채워나갔다. 석정 선생의 권유로 전북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또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잡지사 교정 일도 하고 시도 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항식 교수는 시인의 재능을 살리고자 원광대학교에 문예장학생제도를 마련하였고, 그를 첫 대상자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1959년 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1967년 유치환과 1974년 신석정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 졸업 후 원광여고를 거쳐 1976년부터는 군산제일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했다. 시인은 당시 문단에 풍미하던 모더니즘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현실을 올바로 보고자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시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1982년 겨울 늦은 저녁, 군산경찰서로 다급한 전화가 한 통화가 왔다. 버스 승객 중에 누군가 불온 유인물을 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버스 안내원은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같은 구절을 보고 신고한 것, 군산경찰서에서 내사한 결과, 술에 취한 이광웅의 제자가 선생님에게서 빌려온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을 깜박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온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사회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오송회 사건>을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경찰이 공소장에 제시한 불법 서적은 오장환의『병든 서울』, 이영희의『전환시대의 논리』 등이었고, 북한의 교육제도와 순수한 우리말 보존을 평가한 것은 고무찬양죄가 되었다. 단지, 월북작가의 시집을 돌려 봤다는 이유로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이옥렬, 황윤태, 강상기, 채규구, 엄택수와 조성용 등 군산제일고 교사 9명이 구속되면서 시인은 조작된 공안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사 다섯 명이 소나무 아래에서 모였다 하여 그 유명한 오송회 사건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남성고(南星高) 출신 선생님이라 하여 오성회(五星會)로 몰아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분이 다른 학교 출신이어서 성(星)자를 못 쓰고, 대신 소나무 송(松)자로 썼다는 웃지 못할 비사도 전하고 있다. 시인은 용공 사회주의 건설을 기도한 주동자로 조작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고 복역하다가 1987년 6.29선언 이후 4년 8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감옥에 있을 당시 시인은 필기도구조차 빼앗긴 상태여서 단 한 줄의 글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주워 온 못을 날카롭게 갈아서 우유 곽에다 시를 쓰고, 책 표지를 뜯어 그 위에 붙여 놓은 방법으로 그 시편들의 생명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 빛을 본 것이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에 실려 있는 <바깥의 노래>, <바람의 손길>, <햇빛 한참> 등이다. 시인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무력함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바람이 부네 마파람 바깥 세계로부터의 무슨 전령이나 되듯이 개구리 울음소리 아득히 이 바람결에 실려 오네. <중략> 여수도 무기수도 수갑 찬 사형수도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왜 어떻게 감옥 안에 흐르며 머무는지 손에 잡힐 듯이 말할 수 있을 거네 바람이 부네 세계에서 가장 넓고 부드러운 바람 감옥의 바람 -이광웅의 시 「바람의 손길」의 일부 시인은 1988년 8월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되었지만, 다시 해직교사가 되었다. 그 이유는 참교육을 부르짖었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옥중생활의 고단함과 통일과 민주에의 열망, 출소 후의 낙수 같은 시, 교사로서의 애환, 그리고 초기 시편들이 수록되었고, 또한 문익환 목사의 서문과 김용택 시인의 발문도 실려 있다. 문익환 목사는 당신의 자상한 마음으로 골라낸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 울려오는 가락만으로 우리는 당신의 믿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바람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군요라고 했다.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무지막지한 고문과 억울한 철창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놓은 것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 시집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생명은 거룩하여라.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일밖에.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 김용택 시인도 그의 시편을 꼼꼼하게 독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 그리고 조국 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시를 쓸 것이라고 다짐했던 시인을 서해 바다와 그리고 군옥벌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월명공원 날망에 선 한 그루 소나무로 비유하기도 했다. 시인은 우리에게 세 권의 시집을 남겼다. 첫 시집은 1985년에 펴낸 시집은 『대밭』(풀빛, 1985)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감옥살이할 때 누이동생이 펴냈다고 하는데, 맨 뒷장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이 시집은 한 결결한 정신의 감동적인 변모의 기록이며, 동시에 내면 서정의 모더니즘에서 민중해방의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 문학의 한 극적인 승리의 기록이다. 당시 시인과 함께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현 국회의원)은 시인 이광웅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대는 이 땅의 맑은 풀잎이었다가 허리에 도끼날이 박힌 상처받은 소나무이었다가 그대는 별자리에서 쫓겨난 착한 별이었다가 견결한 향기로 시드는 가을 들판 마른 쑥잎으로 앉아 있다가 그대는 진흙도 물벌레도 다 와서 살게 하는 고운 호수였다가 천둥번개도 눈보라도 다 품어주는 저녁 하늘이었다가 그대는 지금 갈기갈기 소나기로 내려앉은 슬픔 쏟아지며 쏟아지며 온 세상을 다 적시는 눈물의 빗줄기. -도종환의 시 <이광웅 시인> 전문-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도종환, 안도현 등의 후배 시인들과 좋은 시인 선생님이 되기를 꿈 꾸었고, 한때는 교육문예창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교조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여 또 해직의 아픔을 당해야 했다. 그 후 전주 한샘학원에서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1992년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가서 창작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그 무렵 시인은 암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 육신은 암에 의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세 번째 시집 『수선화』(두리, 1992)를 출간했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22일, 시인은 52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6년 뒤, 1998년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금강하구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시비를 세웠다. 언제나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이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시 「목숨을 걸고」가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광웅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9 16:34

코로나19 확산, 전북지역 공연·수익 ‘반토막’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전북지역 문화예술 공연 건수와 수익이 실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반기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도내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도민들의 대면 문화향유 기회도 늘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이에 온라인 공연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산하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 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전북지역의 올들어 지난 8월 31일까지 도내 문화예술 공연개막 건수는 45건이었다. 유형별로는 연극 29.4%, 뮤지컬 27.5%, 클래식 25.5%, 복합과 국악공연 각 7.8%였다. 이 같은 공연 횟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1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도내 유형별 공연 건수는 뮤지컬이 31.6%, 클래식 29.1%, 연극 18.8%, 복합공연 18.8%, 국악 7.7% 등의 순이었다. 공연 횟수뿐만아니라 수익도 급감했다. 도내 올해 45건의 공연 수익은 3억8900여 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익 8억5600여 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도내 문화예술계는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될 경우 공연 감소와 수익 악화가 더욱 심화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도내 극단 관계자는 소규모 공연예술 단체의 경우 최근 문화예술계가 대안으로 삼고 있는 온라인 공연만 하더라도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꽉 막힌 상황이다며, 장르별 특성 등을 감안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 속 문화예술 단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고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재단 자체적으로 온라인 공연 지원 등 여러 지원을 마련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백세종
  • 2020.09.08 17:49

전주문화재야행, 코로나19로 온라인 전면 전환

올해 전주문화재야행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전환된다. 전주시는 문화재를 보고 체험하는 2020 전주문화재야행을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등 온라인콘텐츠와 손잡고 오는 12일부터 내달 8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는 특히 전주문화재야행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태조할아버지와 야행이 캐릭터를 새롭게 제작해 선뵌다. 캐릭터는 굿즈(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출시와 프로그램 운영에 활동할 예정이다. 유튜브 속으로, 전주야행TV를 슬로건으로 한 이번 야행은 12일 열리는 전주야행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야경(빛의 술사들) △야로(문화재 술사들) △야사(이야기 술사들) △야화(그림 술사들) △야설(공연 술사들) △야식(음식 술사들) △야숙(여행 술사들) △야시(흥정술사들) 등 8야(夜)를 주제로 14개 프로그램, 약 90개의 영상콘텐츠가 제공된다. 또 문화유산 VR 온라인투어를 통해 경기전, 전라감영, 풍남문, 조경묘, 남고산성, 향교, 오목대, 완판본문화관, 소리문화관, 부채문화관 등 10곳의 문화재를 가상현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극연기 따라하기 △방구석 한식대첩 △바람을 가르는 제기차기 △상상 속 어진 그리고 △문화재 3?4행시 짓기 △카카오톡 문화재 OX퀴즈 △거리의 화공 △마인크래프트 전주건설 공모전 등 이벤트도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시는 킴스트레블, 디노따TV, 미스리TV, 탑미남 고봉, 임실들깨아줌마, 셀프미 등 인기있는 유튜버 6명을 지난주 초청, 왕과의 산책과 경기전 사람들, 경기전 좀비실록 등 다양한 영상콘텐츠 녹화를 진행한 상태다. 시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대표 온라인 콘텐츠를 QR코드화해 공공장소와 시내버스, 전주한옥마을 일원에서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제공할 방침이다. 최락기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전주를 대표하는 야간 문화행사인 야행이 코로나19로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했다면서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전주문화재야행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09.08 17:49

[제14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본상] 오빠의 바다 - 박미림

박미림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호된 꾸지람을 받은 날,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버렸던 거였다. 난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해버린 오빠가 섭섭하고 미웠었다. 70년대는 연좌제가 무시무시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겐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계셨다. 보도연맹 서기로 일했다는. 6.25가 발발하기 직전, 그가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나가 한밤중에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늘 우리 일가친척을 주눅 들게 했다. 그 끔찍한 사연은 쉬쉬해야만 했던 우리 집의 불행한 가족사였다. 함부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갔다. 그로 인해 판검사를 꿈꾸던 삼촌도, 공무원을 원했던 사촌들도 모두 꿈을 접어야 했음을 오빠는 뼈아프게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좌제가 걸려있는 가족들에게 똑똑하다는 건, 어쩌면 형벌이었을 거다. 공부한 들 뭘 해,난 희망이 없어,죽고 싶어.오빠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이곳저곳 낙서장에는 자신과 시절을 비관하는 글들로 빼곡했었다. 그러니 집을 나간 오빠가 달포 넘어서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제발 살아있기나 해라.그래, 희망이 없는 젊음이란, 이해하고도 남지.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 가족이 단서를 찾느라 책을 뒤지고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속을 태우다 그만 지쳐갈 즈음이었다. 그날도 가족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중이었을 거다.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루 끝에 선 저 사람,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 엉클어진 수염, 퀭한 눈, 낯설었다. 저 이가 정녕 내가 아는 우리 오빠란 말인가? 하지만 어색하다거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그는 쓰러져 시체처럼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그는 푸르르 깨어났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죽음 근처에서 헤매던 냄새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바다를 한껏 껴안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는 죽기 위해 생의 끝인 양 바다를 향해 달렸다고 한다. 충청북도 보은 땅, 자신을 태어나게도 했거니와 자신의 삶을 저당잡은 고향을, 가족을, 등지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완전한 반대 방향인 바다로 바다로 향해 끝없이 달렸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다시 목포로, 죽고자 찾아 나선 바다였다. 그가 죽기 위해 바다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파도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안돼, 아들아! 그건 안돼. 바다는 죽고자한 마음들을 흔들어 일으켜 주었을 것이다. 아픔을 토닥토닥 안아주고, 흔들리며 살아온 제 생을 일러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문득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다가온 사람. 하얀 제복의 대학생이었다. 해양대학. 눈이 부셨다고 했던가? 가슴이 뛰었다고 했던가? 희망처럼 무엇이 번쩍 솟아올랐다고도 했다. 그래 바다와 함께 살자. 파도 너머엔 빛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 시작할 것이다. 얼마나 흔들리고 흔들렸던 것일까? 깨어난 그에게 단단한 각오가 보였다. 오빠는 머리를 깎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가 불과 1년 남짓, 급기야 검정고시를 거쳐 목표한 대학을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순탄치는 않았지만, 무사히 외항선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엄마는 늘 부뚜막에 바다를 모셔 놓고 사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왕신이자 포세이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추운 겨울 부뚜막에 떠 놓았던 조왕보시기 정화수가 얼었다고 야야, 오빠에게 좋은 일이 있을랑갑다. 이것 좀 봐라. 돛을 단 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정화수 보시기의 물은 배처럼 얼어있다. 가운데가 볼록 치솟아 정말 바다 위에 돛배 같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굳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과학 사전을 찾아보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의 상상이 옳다고 무조건 믿고 싶었다. 사방 바다를 만날 수도 없는 충청도 산골에서 우리 엄마는 부뚜막에 날마다 바다를 모셔 놓았던 거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품을 줄 아는 바다, 흔들릴수록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 엄마의 부뚜막이 그 바다가 아니라고 누가 우길 수 있겠는가? 오빠의 하얀 제복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마을의 설렘이었다. 대학생도 귀한 오지 마을, 오빠가 오는 날이면 이웃 마을 언니들까지 괜히 우리 집 앞을 서성대곤 했다. 그런 오빠가 다녀갈 때마다 나는 말로만 듣던 먼 바다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갔다. 바닷가에도 바지락이며 조개 농사를 짓는 어촌이 있다는 것도, 태평양 한가운데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진짜 배를 넘기도 한다는 것도, 그 파도를 헤치며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는 것도. 나에겐 모두 처음 듣는 특별한 세상 이야기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렵던 시절 우리 가족을 일으켜 준 바다의 신은 누구였던가? 용왕인가? 엄마의 부뚜막 조왕신인가?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바다를 달린다는 포세이돈인가?그때 오빠가 잘못되었더라면?바다가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물려 흔들리고 떠밀려가던 우리 가족을 포근하게 껴안아 준 바다. 그러기에 나는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포기할 뻔했던 오빠의 젊음을 토닥여 주고 일평생 안아 준 바다.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없던 바다 위에서 꿋꿋이 견디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오빠. 그의 고독한 삶을 존경하는 만큼 나는 바다를 흠모한다. 전화가 왔다. 바다와 평생을 산, 갓 퇴직한 오빠의 초대 전화다. 동생아, 우리 이사한 집에 놀러 올래? 거실에서 바다가 보여. 나는 눈물이 났다. 오빠는 언제까지나 바다와 함께 살고 싶은가보다. 보은(報恩)이리라. 절망이었을 때 그를 안아준 바다에 대한. 수화기 너머엔 바다가 있다. 작은 배 한 척 노을 속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갈 것이다. 일출이 눈부시다면 일몰은 아름답다 했던가? 오빠의 해넘이 풍경도 그랬으면 좋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8 17:12

"수탈의 역사 만경·동진강을 ‘생태문화’ 발원지로"

전북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을 수탈의 강에서 생태 문화의 발원지로 아젠다를 확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연구원(원장 김선기)이 7일 이슈브리핑을 통해서다. 전북연구원은 만경강과 동진강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농업공업생활용수 등으로 이용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강 문화와 관련해 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친환경, 생태 부문으로 전환 중인 상황에서 역사와 문화를 덧입혀 새로운 생태문화의 아젠다를 확립하자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강은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이자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강을 바라보는 관점은 치수(治水)와 이수(利水)로 대표되는 제어 공간과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는 친수(親水) 공간으로 양분돼 있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은 벽골제와 눌제로 대표되는 농경문화의 대표지로 생태자원과 역사문화 자원의 보고(寶庫)로 평가했다. 이 때문에 충분히 강 문화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연구원은 유럽의 경우 강문화를 통한 라인강 고성가도, 예술회랑, 비엔날레, 수변공원의 조성으로 도시민의 여가, 문화 공간으로 조성할 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 유치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만경강과 동진강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북연구원 김보국 박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생태의 보전과 함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만경강과 동진강을 강문화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생태복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괴되었던 강을 원상복구하며 역사 차원에만 머물렀던 친일 청산에서 벗어나 환경 측면의 친일 청산으로 전환하여 생태문화 사업 추진의 주요 근거로 제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북은 선제적으로 강 생태 문화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강문화 거점 공간을 조성한 뒤 생태의 복원과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강문화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천경석
  • 2020.09.07 18:55

한국소리전당 소리킥2 온라인 전환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기획제작한 소리킥 시즌2 흥부, 소리를 차다!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으로 전환된다. 전당은 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선수들과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愛, 소리꾼 이건일조현정, 상모꾼 안태호 등 전북 출신 예술인들이 대거 출연한 소리킥 시즌2 흥부, 소리를 차다!가 온라인으로 전환된다고 7일 밝혔다. 당초 소리킥 시즌2는 오는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소리전당 연지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공연예매 티켓만 600여장, 수익금 1200만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이지만 수도권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2주 연장되면서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했다. 예매한 티켓은 모두 환불조치 되며 녹화는 오는 12일 연지홀에서 진행된다. 온라인 공개는 유튜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채널에서 무료로 공개되며 공개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소리킥은 판소리의 고향인 전북의 소리에 태권도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융복합 공연이다. 고전소설 흥부전을 바탕으로 권선징악이라는 테마를 더한 태권소리극으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물론 태권도와 판소리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국악 장단에 현대적인 유머까지 덧입혀 전 세계인 누구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국 전통 문화가 주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태권도의 각종 품새와 겨루기 동작, 고난이도 격파,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칼군무까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愛는 2011년 창단,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각종 페스티벌에 참여해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쳤다. 이번 소리킥 공연에서는 국악 작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이밖에도 샌드아트 흥부와 놀부 이야기, 판소리, 국악, EDM까지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 낼 사운드 트랙이 펼쳐진다. 소리전당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취소가 됐다면서 온라인 영상에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시·공연
  • 최정규
  • 2020.09.07 17:30

광고가 미치는 영향은?

길을 걷다보면 길 위에는 다양한 광고를 접할 수 있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며, 현대 생활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광고는 생산품을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도록 하는 공간적 사회적 거리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고는 매체의 발달과 시대적 요구에 맞춰 신문, TV, 자동차, 잡지, 인터넷, 휴대폰, 광고지, 벽보, 옥외광고, 플래카드, 의류, 생활용품 등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광고의 효과는 어느정도일까. 광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박영삼 사진작가는 8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광고는 말한다는 주제의 개인전을 갖는다. 7번째로 여는 개인전이니 만큼 작가가 현대 광고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에 착안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특히 광고 매체 중에서 화물차 버스 및 택시의 부착광고물, 사거리의 플래카드, 현대상가의 간판, 한옥마을 상가 및 대문의 간판, 스키장, 광화문 전주역 전주롯데백화점 광주고속터미널 등에서 촬영한 사진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박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광고는 소비자의 심리와 예술성을 결합시켜 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광고는 제품을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다. 광고가 제품을 파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어떤 제품을 상대 제품보다 눈에 띄게 하고, 소비자들이 좋아하도록 해서 사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광고는 제작 초기부터 철저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그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광고의 시대적 변화 경향 및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진이 매체로써 광고에서 갖는 역할과 비중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를 짚어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전북사진대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여행자의 잔상, 여로의 감성, 가을상추객, 여행자의 군상, 전주 태조로 완상 등을 주제로 6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 전시·공연
  • 최정규
  • 2020.09.07 17:30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시간이 없다

얼마 전 어느 작가의 전시장에 갔을 때에 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작품은 일반인들의 눈을 의식한 프레임과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이 절충 된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눈에 맞추었다는 것은 곧 사실적이고 장식적이며 완성도를 갖는 것이고,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이란 추상적이고 즉흥적 충동이 가미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과 동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절충하게 된다. 그러기에 멀리 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계속 맴돌게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주문했다. 주변의 시선에 맞추려 하지 말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힘껏, 지속적으로 가보라. 결과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한발 한발 가다보면 어느 덧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고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일단 거기까지 목표를 삼아 나아가라. 아마도 그 작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주변의 지지를 받아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변의 시선을 훌쩍 떠나 독보적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주변의 시선을 어쩌지 못하는 고리에 잡히는 순간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볼모가 된 삐에로처럼. 시간이 없다. 나는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매일 만나도 매일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 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얽혀 살 것 같지만, 홀로 되어 멀리 가게 되는 것은 멀지 않다. 시간이 없다. 언젠가 강의 중 한 한국화가가 금생에는 이렇게 하고 내세(來世)에나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 내세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그것이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겨라. 그렇게 해도 갈 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봐야 내세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이다.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삶의 물결에 흔들리다보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 길을 갈 때에만 보람을 느낀다. 그것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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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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