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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시인(1907~1974)의 유해가 고향 부안 땅에 안긴 것은 작고한지 20여년이나 지나서였다. 1974년 7월 6일 작고했을 당시 석정은 고향 선산이 아니라 생전에 휴양지로 삼았던 임실군 관촌면 신월리에 안장됐다. 석정이 작고 한 이후 고향 사람들과 문학인들은 변산반도 입구 해창공원에 석정 시비를 세우고 부안읍 선은리의 고택 ‘청구원’을 정비해 옛집의 모습을 다시 찾는 등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안장된 묘지는 고향에 오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묘지 이장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신 씨 문중이었다. 2000년 3월 29일 비로소 석정의 유해가 부안군 행안면 영리의 선영 가족묘지로 옮겨졌다. 석정이 고향땅에 돌아온 이후 석정문학의 향취를 북돋는 사업은 보다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석정 문학관이 건립되고 그의 문학과 생애를 재조명하는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시인의 시편들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성찰이 이어지면서 그의 이름 앞에 어김없이 놓였던 ‘전원시인’이나 ‘목가시인’이란 호칭이 무색해지고 시세계가 지닌 서정적 깊이와 치열한 역사의식, 현실참여의 시정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9월에는 그의 미발표 시가 공개됐다. 제자인 허소라 시인이 공개한 13편이다. 1946년부터 49년 사이, 해방기에 집중적으로 쓴 시편들은 시인의 현실인식과 역사에 대한 깊은 고뇌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석정에 대한 우리 문학사의 평가가 수정되어야 할 명분은 더 단호해졌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는 ‘신석정 시의 저항정신과 지사의식을 반복하거나 순수 참여 같은 미학적 진영 논리에 가두지 않고 먼나라와 새나라를 통합하려했던 큰 시인으로 기억하게 할 자료’라고 평가했다. 타계 40주년을 맞은 올해, 석정을 기리는 추모의 열기가 더 뜨겁다.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출범하고 신석정문학상(운영위원장 허소라)이 제정됐다. 문학상 첫 수상자로 도종환 시인이 선정됐다.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가 수상시집이다. ‘삶의 문제와 밀착해있는 시세계’‘민중적 정서에 맞닿아 있는 시정신’‘사회성과 서정성의 결합‘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 역시 석정의 시정신과 맞물려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오는 25일, 부안에 있는 석정문학관에서는 신석정문학상 첫 시상식이 석정문학제와 함께 열린다. 석정의 시 정신을 새롭게 잇는 의미가 더해지는 자리. 그래서 더 각별해진다.
지난 2010년 4월 27일, 역사적인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이 열린 날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한-네덜란드 새만금 개발 및 투자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사실을 깜짝 발표했다. 애초 치사 원고 초안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었던 터라 새만금사업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와 전북도는 금시초문이었다. 다음 날 롯데호텔에서 정운찬 총리와 얀 페데르 발커넨드 네덜란드 총리가 새만금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국토의 지도를 바꾸는 새만금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국토 개발 노하우를 가진 네덜란드는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고 들고 “앞으로 정부차원의 협력 뿐만 아니라 양국 민간 기업들간 실질적인 협력도 크게 확대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대선 후보시절인 2007년 10월 25일 전주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국민성공 대장정 전북대회’에서 두바이 개발을 총 책임지는 데이비드 앨든 HSBC 회장을 만나 새만금에 자금 투자를 요청했고 앨든 회장이 국제 투자자 미팅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록 네덜란드나 국제 투자자의 새만금 투자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대통령이 200만 도민들을 상대로 공수표를 날린 것이다. 민선 도지사도 묻지마식 새만금 투자 협약은 남발했다. 치적홍보용으로는 최고의 이벤트였기 때문. 민선 1·2기 유종근 지사는 1999년 4월 새만금유역 환경기초시설사업에 미국 SNC 나발론사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총 3800억원의 민자가 투자되는 환경시설사업은 3년 넘게 타당성 논란만 벌이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민선 3기 강현욱 지사 시절엔 세계적인 설계개발투자 전문회사인 미국 존 포트먼그룹과 새만금 내부개발 투자협약을 체결했지만 물거품이 되었고 캐나다 리나마사의 자동차관련 투자협약도 무산됐다. 민선 4·5기 김완주 지사 때는 투자협약이 천문학적 단위로 껑충 뛰었다. 미국 옴니홀딩스 3조5000억원, 윈저캐피탈-무사그룹 1조5000억원, 페더럴디벨롭먼투사 9200억원, 부산저축은행-미국 스타우트캐피탈 1조원, JY중공업 등의 메가리조트 3조4550억원 등 잇따라 투자협약을 체결했지만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LH 유치 무산에 따른 도민반발 해소차원에서 삼성과 23조 원대 투자협약을 체결했지만 다시 ‘대도민 사기극’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번 속이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속이면 속은 사람이 나쁘다” 한 여성 정치인이 자서전에서 적시한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11월 4일 치러질 전북대 총장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예전과 달리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므로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전북대가 갖고 있는 위상 때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총장임용추천위원 48명은 당일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되는데 교수 가운데 31명 직원 4명 학생 1명 그리고 외부인사 12명으로 구성된다. 그간에는 교수들이 직접 총장을 뽑아 선출이 간편했지만 이번에는 학내구성원 36명과 외부위원 12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임용추천위원 선출부터 복잡하다. 이 때문에 로또총장이 나오는 걸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그간 전북대는 지난 8년 동안 자구노력을 벌여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외형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각종 평가결과에서 잘 드러나 있다. 잘 가르치는 대학 1위라는 평가를 받는 등 각종 평가에서 6관왕을 차지한 전북대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간 외형적인 성장을 바탕삼아 질적인 성장으로 바꿔 놓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역량 있는 총장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서거석총장이 개혁드라이브를 걸어 학교위상을 올려놓았지만 이 방식 갖고서는 더 이상 질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간 직선제 총장들은 내치와 외치에 중점을 둬가며 총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외부의 환경변화로 내외치 양쪽 모두에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총장이 되어야 맞다. 내치만 신경 써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조직장악력이 뛰어나며 정부를 상대로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야 전북대가 거점국립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상한 학자스타일이나 인격을 우선시해서 총장을 뽑은 때는 지났다. 지금은 경영마인드를 지니면서 내부적 발전요인을 한데 끌어 모을 수 있는 통합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학교를 기업처럼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다. 각 후보들이 학교경영에 대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지만 몇몇은 현실성이 떨어져 실망스럽다. 두세명 후보 이외에는 저 후보가 왜 출마했는지 자질이 의심 갈 정도다. 총장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덕목도 갖추지 못한 후보가 용감하게 출마한 것은 안타깝다. 전북대 총장은 의욕만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학내 판단이 옳으면 외부인사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교수들이 진정으로 학교발전을 위해 고민했으면 한다. 상무이사 주필
“지금까지 경제학을 공부해 왔지만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공산주의에서 나오는 말이냐” 이명박(MB) 정부 때 정운찬 총리가 이슈화시킨 이익공유제에 대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쏟은 날선 비판이다. 이 회장은 “(MB정부) 경제정책은 낙제점”이란 말도 했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들이 목표 이익을 달성하면 추가 이익에 대해서는 협력업체들에게 나눠주자는 개념이다. 재계 대표 격인 이 회장이 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니 정부가 곱게 생각했을 리 없다. 이 시점이 2011년 3월 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남이전 확정(5월16일) 두달 전이다. 전북에선 LH 경남이전 반대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무렵이다. 길거리는 LH 경남이전 반대 플래카드로 뒤덮였고, 정치권은 삭발과 청와대 앞 농성을 벌이며 MB정부를 맹렬히 성토했다. 삼성과 전북이 처한 이같은 미묘한 시점인 4월27일 삼성의 새만금 투자 MOU(양해각서)가 탄생했다. 이 회장의 발언으로 입장이 난처해진 삼성, LH 무산에 따른 전북도민의 반발. 삼성의 새만금 투자는 두 사안의 절묘한 조합에서 기획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전북의 전략산업인 신재생에너지에 삼성을 끌어들였고, 정부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던 삼성이 이에 호응했을 것이다. 정부는 삼성투자로 전북의 성난 민심을 무마하려 했고 LH 수렁에서 빠져나올 명분이 필요한 전북 역시 ‘훌륭한 거래’로 인식했을 법 하다. 이른바 LH빅딜이다. 실제로 이 발표가 나오자 전북도는 LH 관련 현수막을 삼성 새만금투자 환영 현수막으로 갈아치웠다. 이런 배경이 깔린 ‘삼성 새만금 투자’가 또 논란을 빚고 있다. 9월25일 변경된 새만금 기본계획에 삼성의 투자 근거인 신재생에너지 용지가 삭제됐기 때문이다. 애초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급조됐다는 의혹이 이는 터에 아예 투자대상 용지마저 삭제돼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전북도의 어정쩡한 태도도 도마에 올라 있다. 앵무새처럼 삼성의 말만 옮기거나, MOU를 공개하면 신뢰를 깨 투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등의 언급은 유치하다. MOU의 진정성과 유효성, 삼성의 투자의지를 확인해서 공식적으로 도민에게 밝혀야 맞다. 새만금 삼성투자가 물타기 돼선 안된다. 구속력이 없는 MOU로 장난치는 정치인도 많다. 이 기회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재벌가의 새롭지 않은 치부를 들춰냈다. 자신이 경기교육청을 통해 확인한 것을 토대로 재벌가 자녀들이 외국인학교인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와 서울국제학교에 불법편법으로 입학했다고 주장했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겸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박 회장의 차남과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의 두 딸, 정일선 BNG스틸 사장의 차녀 등 5명이 그 장본인들이다.구본능 회장과 박정원 회장 등은 싱기포르 현지에서의 기업활동 중에 취득한 영주권을 빌미로 외국인학교에 입학했다. 정몽석 회장의 두 딸은 에콰도르 영주권을 획득해, 정일선 사장의 차녀는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해 외국인학교에 입학했다. 싱가포르, 에콰드로 등은 기업활동을 통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겉으로는 합법으로 비춰지지만, 세상 비웃음 살 일이다.재벌가의 부도덕함은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전 KBS 보도에 따르면 국내 10대 재벌일가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재벌일가 921명 가운데 628명의 출생지를 확인했더니,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 모두 119명이 미국에서 출생했다. 또 현재 미국 국적자는 씨제이 이미경 부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 딸인 정윤이 전무 등 95명으로 10%에 달했다. 이들 중에서 46명은 각 기업 주요 주주로 해마다 배당금을 받고 있다. 1980년 이후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재벌가 남성 35명 가운데 23명이 외국 국적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물론 이런 행태는 재벌가 뿐 아니다. 과거로부터 유명 정치인, 공직자 자녀들이 이중국적 취득 등 사유로 병적 제적된 경우가 많았다. 공직자 청문회 단골 메뉴다.재벌들이 경제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국내 환경을 이용해 치부하면서 기본 의무 조차 외면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세계적 부호가 된 빌게이츠 부부가 기부왕이 됐다는 기사가 매년 되풀이되지만, 대한민국 재벌 중에서 기부왕이 됐다는 소식도 없다. 그 대신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오너들이 추악한 경제범죄의 주범이 돼 줄줄이 기소되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도배할 뿐이다. 그들은 징역살이를 피하기 위해 권력과 우울한 거래도 불사한다. 당연히 내놓아야 할 범죄수익금을 토하면서도 사재 사회 환원이라는 타이틀을 좋아 한다.
한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쓰임이 일상용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환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지가 우리 곁에 온지는 아주 오래다. 종이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듯이 한지의 역사 또한 찬란하다. 과학이 안겨준 온갖 편리한 기계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빛을 잃었던 한지의 가치가 다시 우리의 삶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 비단은 500년을 간다지만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했다. 비단 보다도 그 가치를 더 인정받았던 한지의 역사 속에서 전주한지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한지는 그 자체로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에 비해 빼어난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특히 조선 초 전주의 조지소(造紙所)에서 생산된 전주 한지는 왕실에 진상되거나 명나라와 청나라에 보내는 공물로 쓰일 정도로 명품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혔다.사실 사양길에 놓였던 전통한지의 부상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한지의 쓰임이 다양해지면서 이어진 결실이다. 전통한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지의 산업화로 모아졌다. 그런데 현실을 돌아보면 성과는 아주 미미하다. 전주한지도 다르지 않다. 전주에서조차 수입산 종이가 즐비한 전시대에서 전주한지의 이름은 무색하다. 중국에서부터 값싸게 들여온 무더기 수입종이들이 백지부터 색지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한지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한지는 부상하고 있는데 전주한지 산업화의 길이 좀체 트이지 않는 국면은 안타깝다. 들여다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다.예부터 전주한지가 명품으로 이름을 알렸던 바탕은 문서와 책을 만드는 순지로서의 기능이다. 그러나 한지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전주한지는 순지(닥 100%)를 만들어내는 대신 화선지로 그 명맥을 이었다. 그마저도 값싼 수입산 화선지가 들어오면서부터는 뒤로 밀려났다. 더 이상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된 때문이다.다행히 2008년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순지로서의 전주한지 전통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전주한지 생산자들이 순지 생산에 주목하게 된 덕분이다. 5-6년이 지난 지금은 품질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전주한지 명품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절실한 과제는 또 있다. 한지의 본래 쓰임, 종이로서 기능을 되찾게 해주는 일이다. 일상을 돌아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난 주말 찾은 정읍 산내면 옥정호 구절초테마공원은 밀려드는 차량과 인파로 인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행사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면서 극심한 정체현상이 빚어지자 일부는 차를 되돌릴 정도로 대성황이었다. 안행부가 꼽은 전국 오지 중에 오지인 정읍 산내면이 이렇게 개벽할 줄은 누구도 상상 못할 일대 사건이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정읍 구절초 축제는 쇠락을 거듭하는 산골 주민들의 자구책에서 비롯됐다. 첩첩산중인데다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면서 각종 개발행위가 제한됨에 따라 갈수록 피폐해지는 삶의 터전을 바꿔보기 위해 주민들이 의기투합했다. 당시 유성엽 정읍시장을 만나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산촌인 만큼 꽃 축제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유 시장도 도청 보건환경국장 재직 당시 불가피하게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했던 부담감이 컸던 터라 지역주민들의 활로 마련차원에서 이를 흔쾌히 수용하고 적극 지원에 나섰다. 일본 미야자키현을 비롯 국내·외 선진지를 찾아 벤치마킹하면서 꽃 축제를 구상했다. 처음엔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정읍 산내면 구복리 구절재 인근 농경지에 구절초를 비롯 야생화를 심고 제1회 들꽃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논밭에 행사장을 마련한 탓에 사람과 차량이 수렁에 빠지는 등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래서 한 해를 쉰 뒤 2007년 산내면 매죽리 망경대 일대 지금의 행사장으로 옮기고 축제 이름도 옥정호 구절초축제로 바꾸었다.올해로 9회째를 맞는 옥정호 구절초축제는 매년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제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옥정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울창한 솔 숲, 그 아래 흐드러진 연보랏빛 구절초가 환상의 조화를 이뤄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게 만든다. 여기에 인공으로 조성된 구절폭포와 벼를 이용한 유색벼 아트경관, 3km에 달하는 숲속 산책로, 75000㎡에 조성된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메밀꽃밭이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또 입장권으로 시골 아주머니들이 직접 만든 청국장과 손두부 구절초수재비 등을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다.처음 시작은 미약했었지만 지난해 50만 여명이 구절초 축제장을 다녀갔다. 올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주관한 ‘2014 대한민국 베스트 그곳’에 선정되면서 지난해보다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읍시도 구절초 테마공원이 있는 산내면 일대를 구절초 산업특구로 추진할 계획이다.이번 주말에는 정읍 구절초 향기에 푹 빠져 보면 어떨까.
통상 기존 시가지는 기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방도로를 내주거나 주차장을 확보해서 그 기능을 회복시켜 주면 그만이다. 전주시는 그래서 기존 시가지는 기능회복에 중점을 둬 정비하고 신시가지는 계획도시로 만들어 간다. 신시가지는 한마디로 계획도시다. 미래를 내다보고 수용인구에 따라 용도지역을 배분하므로 그 만큼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수립해야 맞다. 신시가지는 백지상태에서 개발계획이란 그림을 그리므로 개발 주체인 시의 의지가 무척 중요하다.서부신시가지는 여러 면에서 실패작이다. 수용인구를 잘못 계산했다. 1만3000명이 살 것으로 생각하고 만든 신시가지가 현재는 2만5000명이 살고 있어 문제가 생긴 것. 중저밀도를 고밀도로 바꿔줘서 주상복합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한 것이 잘못이다. 교통혼잡은 물론 주차장을 제대로 확보 하지 않아 몸살을 앓고 있다. 상가마다 아우성이다. 건물마다 주차장을 법정기준대수만 확보해 놓아 주차난이 의외로 심각하다. 신시가지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엉터리 신시가지가 됐다. 획일화된 원룸촌 건설은 무지의 소치 아니고서는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더 아이러니는 42층 초고층아파트를 짓도록 허가해준 것이다. 도대체 행정하는 사람들이 제정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청 앞에다 42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들어서도록 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조롱거리다. 전주시가 대구보다 여름철 무더운 도시가 된 것은 전주천과 삼천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바람통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 이 같은 상황을 잘 아는 시가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처럼 또 초고층 아파트를 허가 해준 것은 두고두고 지탄 받아야 맞다.시는 도청 앞 체비지 2775평을 160억2000만원에 매각했다. 평당 581만원 꼴이다. 이 땅은 3차례나 지구단위계획을 변경시켜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도록 했다. 이 땅은 원래 시에서 호텔을 지었으면 하는 땅이다. 시는 체비지가 안 팔려 재정 압박을 받는다는 이유로 결국 이 땅을 업체에 매각한 것. 지금 5개동 513세대 아파트가 신축 중에 있다. 입주가 시작되면 이 일대는 교통대란을 겪을 것이다. 특히 조망권 침해로 인접 아파트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부산 해운대나 인천 송도도 아닌 이곳에다 시가 볼썽사납게 초고층아파트를 허가해준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런 고층아파트 짓자고 서부신시가지를 만든 건 아니다. 10년도 못 내다보는 전주시의 단견에 실망스럽다. 시의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침묵만 할 것인가. 벌써부터 시에서 대한방직을 또 어떻게 요리할지 걱정스럽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하는 말이다. 막돼 먹은 말의 줄임말이다. 막말은 이제 하나의 언어현상으로 등재될 정도로 공공영역에서 자주 목격된다. 특히 법조인, 교수, 연예인 등 지도층의 막말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여자가 왜 이렇게 말이 많냐”(2013년 부장판사) “늙으면 죽어야 해요”(2012년 부장판사) “넌 아르바이트로 술집 나갔다며? 내가 호스티스 × 가르치게 생겼어”(2013년 서울 모 대학교수) “복받은 ×은 살이 쪄도 유방에 찐다”(방송인 김구라) 등이 그런 예다.“참, 저런 것이 시장이냐” 조규대 익산시의회 의장이 지난달 27일 줌마페스티벌 행사장에서 박경철 익산시장을 두고 한 막말이다. 애초 예정된 축사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화가 난 조 의장이 단하에 함께 있던 시의원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조 의장의 막말 때문에 지금 박 시장과 시의회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박 시장은 의회 불출석과 공무원 단도리를 쳤고 어제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 의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시의회를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보는 것 같다. 반면 익산시의회는 박 시장 규탄 성명을 내고 “시장과 간부공무원들이 시정질의에 불참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직권남용과 지방자치법 위반 등으로 고발할 태세다. 언어의 힘은 언어가 부각시키는 이미지에서 나온다. 대중의 마음 속에 과대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조 의장의 막말은 상대방의 명예를 상하게 할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혼잣말처럼 한 막말을 누군가 옮겨 일이 커진 것인데 민감하게 반응할 일도 아니다. 면전이 아니면 대통령도 욕 하지 않던가. 제일 원인은 박 시장의 소통부재에 있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모현 우남아파트 주민 대피명령, 광역상수도 전환, 9개 부서 함열 청사 이전 등 현안을 의회와 협의 없이 일방 추진했다. 의회는 집행부 들러리가 아니다. 제동이 걸릴 수 밖에. “독불장군” “저런 것이 시장이냐”는 막말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집행부와 의회가 충돌하고 서로 흰 눈을 들이대면 지역이 시끄럽다. 조 의장은 박 시장을 만나러 시장실(2일)과 집(4일)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둘은 친구 사이다. 이젠 박 시장이 화답할 차례다. 고개 숙이는 자가 승자다. 지나친 아집은 자신을 베는 칼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관선 단체장 시절, 단체장들에게 국회의원은 하늘같은 존재였다. 그들에게 자칫 잘못 보였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몰랐다. 국회의원에게 깎듯이 할 수 밖에 없는 먹이사슬 구조 아래서 단체장은 확실한 ‘을’이었다. 1995년 기초·광역단체장을 모두 선거로 선출하면서 정치적 지형이 변했다. 그러나 선출직 단체장 시대에 들어와서도 전북지역 단체장들의 처지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지방선거 공천권을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온통 장악하고 있는 전북지역 정치 특성 때문에 선출직 후보들은 민주당 공천에 사활을 걸었다. 당연히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밉보인 후보들은 탈락하고, 뭔가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인물 대부분이 당의 공천권을 확보했다. 그들의 당선은 100%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전북지역 역대 단체장 중에서 고창 이호종, 김제 이건식, 정읍 강광 등 무소속 몇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민주당 쪽 공천자가 당선됐다. 무소속 출마했다가 곧바로 당에 복귀하는 단체장도 많았다. 그런데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익산 박경철, 김제 이건식, 완주 박성일, 진안 이항로, 장수 최용득, 임실 심민, 부안 김종규 등 7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했다. 역대 지방선거 최다 무소속 단체장이 탄생했다. 민선 6기가 출범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무소속 단체장이 대거 포진하면서 지역 국회의원들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다. 1년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국가예산철이 됐는데 기초·광역단체장들의 국회와 중앙부처 상경활동 등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도지사 움직임에도 불만인 듯한 분위기다. 국가예산 문제라면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나 똑같은 마음자세로 임할 일이다. 서로 배려해야 한다. 정보를 교류하고, 도와가면서 한 푼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하지만 오월동주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보면 최규성 의원과 이건식 시장, 이강래 의원과 최진영 시장, 강동원 의원과 이환주 시장, 김춘진 의원과 이강수 군수 등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이 돌았다. 요즘도 그런가.어쨌든, 국회의원들이 협조가 잘 안된다며 단체장들을 비난하거나 서운해 하는 것은 곤란하다. 국회의원은 더 이상 단체장의 갑이 아니다.
‘다양성 영화’란 이름을 달고 개봉한 영화 한편이 놀라운 흥행성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이다. 이 영화는 8월 중순 국내 개봉 된 이후 한 달 만에 250만 명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 1일엔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넘어섰다. ‘다양성 영화’로 국내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관객 수 293만 4000명(2009년)을 뛰어 넘은 기록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OST는 국내음원 순위까지 석권한 상황이다. ‘다양성영화’는 저예산을 투입한 소규모 실험·예술 영화를 이른다. 대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상업영화와 달리 소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특성 때문에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기준으로만 본다면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기에는 투자한 제작비가 너무 많다. 제작비 2500만 달러(253억 원)에 개봉관 수만도 185개나 된다. 출연배우들도 ‘캐러비안의 해적’의 키이라 나이틀리, ‘어벤져스’의 마크 러팔로, 그리고 ‘마룬5’의 보컬인 팝스타 애덤 러빈 등 할리우드의 주류스타들이다. 이 때문에 ‘다양성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의심(?)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요소가 성공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비긴 어게인’은 스타로서 명성을 잃은 음반프로듀서와 스타가수 남자친구를 잃은 싱어송라이터가 뉴욕에서 만나 함께 노래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끌어가는 힘은 음악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감각을 돋보이는 영상과 세련된 음악의 조화는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존 카니 감독은 이미 전작 ‘원스’를 통해 음악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스’는 제작비 15만 달러(한화 1억 5000만 원)로 제작한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당시 국내에서 독립영화 사상 처음으로 20만 명 관객을 모았다. ‘원스’에 이어지는 ‘비긴 어게인’은 특히 한국에서 압도적인 흥행성과를 올리고 있다. 알려지기로는 이 영화의 해외 매출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거둬들인 액수라고 한다. 주목되는 것이 있다. 흥행 공신으로 꼽히는 ‘입소문’ 효과다. 전문가들은 ‘비긴 어게인’을 본 관객들이 SNS와 블로그를 통해 올린 홍보 효과가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광고 효과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마케팅의 새로운 힘이 확인된 셈이다. ‘입소문’의 효과가 흥미롭다.
김병조는 1980대 인기 코미디언이었다. 배추머리를 한 그는 ‘지구를 떠나거라’ 등 숱한 유행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지금‘명심보감’을 강의하며 대중의 또 다른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병조에게는 ‘6·10’의 아픔이 있다. ‘6월 10일’은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87년 6·10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1987년 이날, 군사 독재 장기 집권을 반대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민주 세력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다. 공권력에 의해 박종철(87년 1월)·이한열(6월)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분노한 대중은 6월10일 집회,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결국 노태우의 6·29선언을 받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김병조는 노태우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6·10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코미디 한토막을 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민정당 고위 인사가 요구한 원고를 코미디 말미에 읽었다.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이고, 통일민주당은 고통을 주는 당이다.”그의 7년 인기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김병조는 담장 위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서슬퍼런 독재 상황에서 그는 민정당 간부의 말을 듣든, 듣지 않든 TV스크린에서 사라질 위기였다. 얼마전 전북을 찾아 명심보감을 강연한 그는 “단지 대중을 웃겨 먹고 사는 사람이 실내 정당행사에서 개그 한 토막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짜여진 원고 한 줄 읽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다”며 어리석었음을 후회했다.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홀어머니가 군산 구시장통에서 길거리 장사하며 자식을 키웠다. 그의 누나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겨우 인기를 얻어 효도하는 상황을 접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입장을 너그럽게 봐 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27년. 김병조는 행복해 보인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반전이었지만, 부친에게 배운 ‘명심보감’798구절을 학생·대중에게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는 많은 길이 있다. 그 길을 어떤 자세로 걸어 가느냐가 문제다. 김병조는 오늘도 명심보감을 강의한다. 지족상족 종신불욕(知足常足 終身不辱·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다), 안분신무욕 지기심자한.(安分身無辱 知機心自閒·분수를 알면 욕됨이 없고, 일의 실마리를 알면 마음이 여유롭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지 말라고, 남을 배려하며 범사에 감사하라고 충고한다.
전주한옥마을에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면서 전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서울 등 외지에서는 전주를 갔다 오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킬 때마다 안주가 더 나오는 그 푸짐한 매력 때문에 관광객들 어깨춤이 절로 난다고 한다. 값도 별로 비싸지 않은데 평소 맛볼 수 없는 안주까지 배부르게 맛볼 수 있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한옥마을 구경을 마치고 돌아 갈 때는 풍년제과에 들러 초코파이 한두상자는 손에 들고 간다.보통 관광지에 가면 그 지방 특색 음식을 맛보게 돼 있다. 예로부터 맛의 고장으로 알려진 전주서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맛본다. 값이 좀 비싸다는 점도 들지만 그래도 향토색 짙은 음식을 맛봤다고 그런대로 만족해 한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주의 인심까지 맛볼 수 있었다고 후한 점수를 매긴다. 전주시민들은 일상화 되었기에 느낄 수 없는 점을 외지 관광객들이 쉽게 느끼는 게 있다. 다름 아닌 ‘가맥’이다. 가게서 북어 계란말이 갑오징어 등 안주를 시켜놓고 맥주를 실컷 마시는 게 다른 지역에서는 없다. 가맥이 하나의 관광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전주시민들은 관광객들이 한옥마을을 많이 찾지만 걱정도 많이 한다. 이대로 계속해서 관광객이 찾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외국인도 더 늘어 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한번은 몰라도 두번 이상은 찾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전주한옥마을만이 갖는 정체성이 차츰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비싼 땅값이 비싼 상가 임대료를 가져와 음식 값은 물론 모든 물가가 비싸졌다는 것이다. 체험할 것도 별로 없는데 굳이 전주를 두번 다시 찾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특히 전주사람들에 대한 외지인들의 평가를 한번쯤은 잘 새겨 들어야 할 것 같다. 외지인들이 전주사람들을 흔히 양반이라고 한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도라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인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부담스러운 대목이 있다. 그들 가운데는 전주사람들이 이 정권서 장차관 한명 안시켜줘도 불평 한마디 안할 정도로 주민들이 순해 빠져서 양반이란 단어를 써 준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장·차관 안시켜 준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사는 게 나아지고 권력에 대해 아예 체념을 해버려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불만의 소리마저 없다고 꼬집는다. 주민들의 의식이 이 정도니까 존재감 없는 정치인이 국회의원 해먹는 건 아닐까.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는 절제와 청빈의 표상이었다. 유명한 일화가 많다.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을 참다 못한 한 판사가 사표를 들고 대법원장을 찾았다. 그에게 돌아온 대법원장의 말. “나도 죽을 먹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 그 판사는 부끄러워 사표를 집어 넣어야 했다. 다른 관청은 외제차를 쓰는데 우리만 나쁜 국산을 쓰니 누가 알아주느냐는 불만에는 “나라 찾은지 얼마나 됐다고…국록을 먹는 우리 아니면 누가 우리산업을 키워주느냐”는 호통이 떨어졌다. 비싼 양복 대신 두루마기를 입었고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손잡이가 부러져 반 토막이 난 도장을 대법원장 재임 9년3개월 동안이나 사용했다. 가인은 또 불의에 대항하는 상징이었다. 이승만 정부의 사사오입 개헌을 비판했고 눈엣가시로 여긴 이 대통령이 사표를 요구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대차게 응수했다. 독립운동과 무료변론, 서슬 퍼런 독재권력에 맞서 사법부 기틀을 세운 이가 바로 순창 출신의 가인 김병로다. 전북은 가인 김병로와 ‘검찰의 양심’ 최대교(익산) 전 서울고검장, ‘사도 법관’ 김홍섭(김제) 전 서울고법원장 등 ‘법조 3성’을 배출했다. YS-고건 총리 시절, 전주지방법원장에 부임한 경북 봉화출신의 강철구 법원장이 “전북은 법조 성지로 알려져 있는데 비석 하나 없더라”고 가시돋힌 지적을 했다. 그러자 고건 총리한테 편지를 보내 3억 지원을 요청했고 고 총리는 내무부에 지시해 당시 이승우 교부세 과장(군장대 총장)이 지역개발비 명목으로 이 돈을 전주시에 보냈다. 각 분야 인사로 동상건립추진위가 구성되고, 언론인 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이 공동 상임대표를 맡아 추진했다.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진 ‘법조 3성’의 동상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마침내 ‘가인 기념관’이 건립된다. 전북 법조인들이 ‘법조 3성’을 기리기 위해 전주 만성지구 법조타운에 세우기로 했다. 한데 더 중요한 건 법조인들의 ‘가인 정신’ 실천이다. 벤츠 검사, 막말 판사, 정권 눈치보기 등으로 국민신뢰가 떨어져 있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1957년 12월 퇴임사). 가인의 꾸짖는 소리는 쩌렁쩌렁한데 현실은 화답할 줄을 모른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한때 장학숙 건립이 뜨겁게 유행한 적이 있다. 서울의 높은 전세와 하숙비를 고려하여 열악한 지역의 인재들을 지원하겠다는 가상한 취지로 입안된 것이다. 이들이 장차 국가지도자가 되어 그 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해주리라는 계산이 그 저변에 있다. 이를 통해 교육에 한 맺힌 지역민들의 표를 얻겠다는 저의도 물론 깔려있는 정책이다.그 덕분에 많은 지역의 인재들이 서울의 모모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지역의 대학은 더 열악해지고 더불어 인구 및 인재의 서울쏠림은 심화일로에 있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그 지역을 소외시키고 중앙-지방의 차이만 더 조장하고 있다. 지역대학생들의 열등의식만 잔뜩 조장한 채 지역의 푼돈으로 서울 경제를 살찌우고 지역의 인재마저 빼앗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잘난 인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 당연한 특권으로 향유할 뿐이다. 그들이 그것을 은혜로 여겨 지역을 위해 노력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먹이로 훈련시킨 강아지가 먹이 없이도 주인을 위해 봉사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자기 몸 추스르기도 버거워 이 지역과의 인연을 애써 감추려는 이 지역출신 중앙고위층들을 보라!더구나 이제 소수 인재들에 기대어 지역발전을 꾀하는 시절은 지났다. 지역 스스로 내부 역량을 키워가지 못하면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는 꼴 되기 십상이다. 오려고도 하지 않는 한양낭군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다림은 새만금 30년으로 족하다!그 예산과 노력, 지역의 대학을 살리는데 모아주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현재 지방대학은 쇠락의 위기에 처해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쇠락이 바로 지방의 붕괴로 이어지고 다시 이것이 대학의 부실화를 재촉하는 것으로 확대재생산 된다는 점이다. 현존 장학숙 사업은 이런 악순화의 고리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그런 차원에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이 지역 대학 소재 도시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인재들을 위한 장학숙을 지으라고. 인재육성장학금도 이 지역출신보다는 이 지역 대학에 다니는 인재들, 특히 외국인학생들을 위한 것으로 바꿔가라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지역의 대학을 살릴 뿐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길도 열어가라고. 변덕스러운 개인에 기대지 말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가라고. 지역이나 지역대학의 위기가 중앙-지방의 구조적 모순과 함께 얽혀있는 것이니.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올 가을 한국 연극계의 화제작으로 주목받은 작품이 있다. 지난 9월 21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됐던 중진작가 이강백의 즐거운 복희다. 외진 호숫가 펜션에 살고 있는 여섯 명 주인이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벌이는 마케팅의 실체를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통해 우리시대의 민낯을 들춰낸다.이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는 주제로도 그렇고, 작품의 완결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무대공간의 특성으로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부족하지 않게 받았다. 거장의 신작다운 결실이다.사실 이 작품은 남산예술센터의 2014 공동제작 작품 공모 당선작이다. 대개의 공모전이 신인이나 젊은 작가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문화적 환경으로 볼 때 중진,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 응모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공모에서 떨어지면 감내해야 할 부담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강백도 이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듯하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공모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전주 출신인 이강백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등단작 〈다섯〉을 공연했던 극장이 바로 남산예술센터다. 그는 자신이 쓴 희곡이 무대에서 연극으로 공연되는 것을 처음 봤던 그때, 평생 연극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 했다. 지난해 오랫동안 몸담았던 서울예대에서 정년퇴임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도 그때의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단다. 그의 공모전 투고는 그런 소망으로 이뤄진 듯하다.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극작가로 살아오면서 한국 연극을 성장시켜온 그는 우화와 비유가 주를 이루는 수많은 대표작으로 알레고리의 대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강한 것과 약한 것,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립 속에서 현실에서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들을 자신만의 특별한 형식으로 담아온 그의 족적은 빛난다.지난 주말, 공연 막바지에 즐거운 복희를 보았다.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내는 비극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선과 악, 허구와 진실의 경계다. 세월호의 비극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지금, 즐거운 복희가 던지는 시대적 메시지는 역시 울림이 컸다.작가는 이 무대로 다시 데뷔했다고 했다던가. 그의 새로운 시작이 더 기대된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A-옥션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예가 강암 송성용의 작품 석 점을 경매에 부쳤다. 이날 경매에 나온 송성용의 작품은 기대 이상의 고가에 낙찰됐다. 경매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전주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 현판 글씨(72×512㎝)가 5000만 원에 팔렸다. 또 추정가 80만~160만 원으로 제시된 66.5×69㎝ 크기의 풍죽도는 80만 원, 추정가 1000만 원~2000만 원으로 나온 107×34㎝ 짜리 백납도 8폭 병풍은 1100만 원에 낙찰됐다. ‘호남제일문’의 낙찰자는 전주사람이고, 단독 응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같은 낙찰가는 A-옥션이 이전에 진행한 강암 작품 거래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작품을 많이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강암의 작품은 그동안 대개 30만~460만 원 선에서 낙찰됐다고 알려진다. 지역 서단의 자존심으로 알려지는 강암의 작품 가격 치고는 사실 양에 차지 않는 선이다.강암 선생은 1913년에 태어나 1999년에 작고했다. 김제 백산 출신인 그는 부친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으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일제시대에는 창씨개명과 단발을 거부하며 선비정신을 지켰다고 한다. 광복 이후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서예의 5체와 사군자, 소나무, 연, 파초 등을 소재로 한 문인화의 대가로 꼽혔다. 전북도립미술관은 강암 선생 탄생 10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를 기획, 지난 18일부터 강암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도립미술관의 4개 전시실을 5개 부분으로 나눠 서예, 문인화 등 135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오는 10월12일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왜 100주년을 기념하지 않고, 101주년 특별전을 여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이현령비현령처럼 도립미술관측은 이번 강암특별전의 주제를 ‘101주년의 새로운 탄생-강암은 정신이다’로 정한 뒤 ‘이번 전시는 숫자 단위를 꽉 채운 100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101에 무게 중심을 두고 강암이 추구했던 정신의 부활에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을 붙였다. 어쨌든 전북 최고 명필로 꼽히는 서예가의 소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으니 관람객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다.또 세계소리축제 기간에 함께 열리는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도 소리문화의전당 등 전주 일원에서 열린다. 초가을을 맞아 전주 서단이 가을 들녘만큼이나 풍성하다.
전북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도청 소재지인 전주에 번듯한 호텔이 없다는 게 가장 자존심 상한다. 전통문화도시인 전주가 한류의 원류로 소개돼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주말에는 한옥마을에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지난해는 한옥마을에 500만이 다녀갔고 올해는 700만이 찾을 전망이다.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물밀듯이 몰려들지만 최고급 호텔 등 숙박시설과 전통의 정취를 자아내는 상가가 보잘 것 없어 경유관광지로 전락하고 있다.요즘 호텔은 숙박기능만 하지 않는다. 각종 회의를 열 수 있는 컨벤션 기능은 물론 비즈니스 그리고 쇼핑 레저 휴식 등을 종합적으로 취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각 도시가 그래서 경쟁적으로 최고급 호텔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전주는 어떤가. 도청 앞에 호텔부지로 떼어 놓은 땅이 팔리지 않자 급기야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허가를 내줬다. 도청 앞에 초고층 42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신축 중에 있다. 부산 해운대도 아닌 이곳에 초고층 아파트가 우뚝 솟아 도청사부터 조망권을 가린다. 시민들은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근시안적 행정에 불만이 많다.52년 만에 수원에서 전주로 이전해온 농촌진흥청은 개청 이후 각종 국제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전주에 대규모 컨벤션센터나 호텔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수원에는 이 같은 시설이 충족돼 불편이 없었지만 전주에는 큰 호텔이 없어 행사 장소를 제주나 인접 광주 대전으로 옮겨야 할 상황이라는 것. 문제는 혁신도시만 덩그러니 조성했을 뿐 그에 앞서 수용태세를 전혀 갖춰 놓지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 그 만큼 전북도와 전주시의 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 같은 상황인데 언제 이 문제가 해소될지 기약이 없다. 원래 전북도는 이 같은 상황이 도래될 것을 예견, 전주 종합경기장 자리에 전시 컨벤션센터를 짓는 조건으로 도유재산인 종합경기장을 전주시에 무상 양여했다. 송하진 시장 시절에 종합경기장의 일정부지를 롯데쇼핑에 제공, 호텔과 쇼핑몰 영화관을 짓도록 하고 롯데쇼핑은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1종육상경기장과 야구장 등 대체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김승수 시장이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로드숍 업주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쇼핑몰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고 있다. 전주시민 68%가 찬성하는 종합경기장 개발 건을 김 시장이 좌고우면 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김완주 전지사와 함께 도에 있을 당시 전주시에 무상 양여한 종합경기장을 이제 와서 김시장이 반대하는 건 모순된 행동으로 전주 발전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남원 서남대 설립자인 이홍하(75)씨는 광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부업으로 목욕탕을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광주 시내에 땅을 사 1981년 여상을 설립했다. 이후 10여년 사이에 광양 한려대와 보건대 등 6개 대학을 세웠다. 1991년 4년제 종합대학으로 개교한 서남대도 그 중의 하나다. 교과부 감사 결과 교비를 빼내 학교를 설립하는 식이었다. 이씨는 결국 등록금과 국고보조금 횡령(1004억원) 등의 혐의로 2012년 11월 구속됐다. 교육부는 지금 관선이사 8명을 파견해 서남대를 관리하고 있다. 서남대가 존폐 기로에 서 있다. 의사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서울 송파 갑)은 지난 6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홍하는 교육계의 유병언”이라고 비판하고 서남대 폐교를 요구했다. 폐교될지, 존치될지 서남대 사태는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핫 이슈다. 이런 틈을 타 목포대와 순천대가 의대 유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목포대는 1990년 3월 의대설립을 교과부에 건의한 뒤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유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중진인 박지원 의원(전남 목포)이 중심에 있다. 순천대 역시 2012년 12월 의대설립추진위를 결성하고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의대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박근혜 정부 실세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 곡성)은 7.30 보궐선거 때 순천대 의대 유치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서남대 사태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설립자 이씨의 ‘막장 사학’ 운영과 지역의 이익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직원들의 입장이 있고, 정치논리에 휩싸여 있는 점도 그 이유다. 대학은 지역발전의 중요한 인자(因子)다. 서남대의 핵심은 의대다. 폐교 수순을 밟은 뒤 의대가 전남의 대학에 유치된다면 남원으로선 이런 낭패가 없다. 남원시의회와 서남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공동대표 이병채·김상근)가 서남대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서남대 의대 협력병원인 예수병원도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서남대 사태를 다룰 기관은 교육부와 국회다. 그런데 전북 국회의원이 농림축산수산 분야에는 3명씩이나 몰려 있으면서도 교육 관련 상임위에는 단 한명도 없다. 지역이익의 관점이 소홀히 다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또 지역사회 역시 너무 조용하다. 이런 식이라면 눈 뜨고 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개를 데리고 새벽산책을 해본 사람은 안다. 참 성가시다는 것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이끌고 간다.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고 영역 표시하느라 가다 서다를 계속한다. 주객이 전도되어 개 뒤꽁무니 쫓다가 산책 기분 망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화와 관광의 관계를 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문화가 관광을 이끌어야 하는데 끌려 다니기 일쑤라는 것이다. 느리고 더딘 속성 때문에 다른 것과 만나면 꼭 이런 수모를 당한다. 문화공보부 시절에 문화는 공보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문화부라 칭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돈도 못 벌고 힘도 없어 곧바로 관광과 체육을 업어야 했다. 이름 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이것이 문화의 속성이요 한계라면 한계다. 문화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목적으로 하면 문화답지 못해 결국 돈도 놓치게 된다. 문화가 돈벌이를 목표로 하는 관광과 묶이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이다. 문화재단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의 예산으로 꾸려가는 곳이다. 그 목적이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쓰자는 데 있다. 기금 확보가 중요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래야 건강한 문화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게 된다.돈 버는 것이 중요한 관광은 문화재단의 일이 아니다. 돈이 되기 때문에 공공예산 지원 없이도 가능하다. 수많은 관광회사나 여행사를 보라! 관광정책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하려면 관광공사를 세워 이끌어가게 하면 된다. 문화재단은 느리고 더딘 문화를 전문성을 갖추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문화는 분명 관광의 강력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관광을 목표로 하는 순간 문화의 건강성을 잃어 결국 관광자원이 되지도 못한다. 전주한옥마을이 각광을 받게 된 것도 그곳의 독특하고 건강한 문화 덕분이다. 요즘 위기를 운위하는 것도 돈벌이에 그 문화가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으면 관광의 열기도 이내 식어버릴 것이다. 제대로 된 문화만이 관광자원도 되고 산업도 된다. 돈의 유혹에 넘어가면 허접 쓰레기로 전락하여 돈도 자원도 되지 못한다.사람과 개의 습성이 다르듯 문화는 문화의 길이 있고 관광은 관광의 전략이 있다. 잘못 섞으면 시너지는커녕 괜한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 진정 돈과 사람을 모으겠다면 재단이 아니라 공사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전주 화약(全州 和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