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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미술관의 힘

구라시키(倉敷)는 일본 오카야마 현에 있는 작은 도시다. 바다에 직접 접해 있진 않지만 작은 강을 끼고 있어 예부터 해안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다. 곡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던 이곳에는 자연히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물류유통의 중심지가 됐으며 상업이 발전하면서 거상들의 저택과 큰 창고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도심을 통과해 흐르는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지붕의 주택과 창고거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도시의 큰 자산이 됐다. 일본정부는 이곳을 국가 중요전통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하고 구라시키미관지구(美觀地區)라 이름 붙였다. 해마다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올 정도로 이름난 관광지가 된 구라시키미관지구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일본 최초의 사설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이다. 1930년에 문을 연 오하라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근대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미술관의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로댕, 고갱, 엘 그레코, 마네와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를 비롯해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소장품만도 3500여점. 그 질적 수준은 물론이고 양적으로도 유럽의 이름난 대형미술관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인구 47만 명의 크지 않은 도시, 이 작은 미술관이 일본 근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이유다. 오하라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구라시키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다. 오하라에게는 화가인 친구가 있었다. 당대 재능을 인정받았던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다. 오하라 집안의 후원으로 공부했던 고지마는 오하라와 벗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교류했다. 오하라는 고지마를 통해 유럽의 숱한 걸작들을 수집하고 자신 또한 일본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근현대 작품을 수집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는 각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4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하라미술관은 고지마가 세상을 떠난 바로 이듬해에 건립됐다. 오하라의 슬픔은 참으로 컸던 것 같다. 오하라 미술관 전시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다. 이 그림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거장 그 누구의 작품도 아닌 친구 고지마 토라지오의 대표작이다. 미술관의 가장 상징적 공간에 고지마의 작품이 놓인 배경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감동도 크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9.19 23:02

과유불급

기원전 211년 진시황제가 전국을 순행하던 중에 객사했다. 이 후 정국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가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 장자 부소가 자살하게 만든 후 부소의 동생 호해를 황제로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이 후 환관 조고는 이사를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지록위마하며 2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농단했다. 결국 첫 통일 중국은 5년만에 망했다.이사는 젊었을 때 하급관리였다. 화장실에서 인분을 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는 쥐들을 자주 목격한 이사는 화장실에서 똥을 먹고 사는 지저분한 쥐와 곡식 창고에서 여유있게 인간의 곡식을 먹으며 사는 쥐의 처지를 놓고 고민했다. 큰 꿈을 품게 된 이사는 관직을 그만 두고 순자 밑에서 한비자와 동문수학하며 화려한 삶을 꿈꿨다. 그는 진나라에 가 왕의 책사가 됐고, 중국 천하 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 말단 관리였던 이사는 재상까지 올라 돈과 명예, 권력을 모두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사는 몸이 찢겨 참형되는 최후를 맞았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도 젊은 시절 별볼일 없었다. 칼을 차고 폼을 냈지만, 하릴없이 놀고 먹는 모습이었다. 이같은 한신을 앝잡아 본 동네 불량배들이 싸움을 걸었다. 한신은 장도를 뽑아 자신을 둘러싼 청년들에게 휘두르는 대신 무릎 꿇고 엎드려 상대방의 가랑이를 기었다. 비웃음을 산 한신은 겁쟁이로 찍혀 살았지만, 기원전 209년 항량이 조카 항우와 함께 군사를 일으킨 뒤 회수를 넘어 하비성에 진을 쳤을 때 항량의 휘하에 들어가 장부의 큰 뜻을 펼치고자 했다. 하지만 항씨는 한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훗날 한신은 유방 휘하로 옮겨가 역발산 기개세의 주인공 항우를 격파하는 등 한나라 창업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세력이 커진 한신을 유방이 경계하면서 양측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생겼고, 결국 유방에 의해 제거됐다. 한신은 가랑이 사이를 기면서 동네 불량배의 의심을 피했지만, 권력의 의심만은 피하지 못했다.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끝없는 야욕이 있고, 제 욕심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 주변에는 사악한 음모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사와 한신같은 지략가도 그 음모와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과유불급이다. 더 큰 욕심과 경쟁은 정신과 생명을 위협한다. 결과물도 화려하거나 영원하지 않다. 그저 남가일몽일 뿐이니, 적당히 그칠 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9.18 23:02

전북대 총장 선거

서울공화국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지방대학들이 더 맥을 못추고 있다. 우수한 자원은 말할 것 없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까지 덩달아서‘인 서울’만 노리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는 대학 학령인구 저하로 대학이 반토막 날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학마다 학생 정원 확보로 아우성이다. 이미 학생 모집이 안 돼 문 닫아야 할 경우가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북대는 그간 강도 높은 구조개혁과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에 힘입어 확실하게 학교 위상을 높여놨다. 전북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가 낙후인데 전북대가 이를 극복하고 지역거점대학 가운데서도 가장 경쟁력이 있는 대학으로 솟은 건 자랑이다. 서거석 총장 취임전만해도 40위권으로 축 처져 있던 대학이 지금은 10위권 정도에 랭크될 정도로 발전했다.미국 실리콘밸리를 예로 들 것도 없이 대학은 지역발전의 중심축이다. 그간 전북이 낙후를 거듭했지만 그나마 전북대가 꾸준하게 경쟁력을 확보해 놓아 미래가 어둡게만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일부 교수들이 연구비 비리로 사법처리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상당수 도민들은 전북대가 잘 돼야 지역이 발전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전북대는 그냥 대학이 아니다. 도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거점국립대학이라서 더 기대치가 크다. 하지만 최근 지역발전을 선도해야할 전북대가 총장선거로 내홍을 겪어 도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북대는 교수 몇몇 사람이 좌지우지할 대학이 아니다. 총장선거는 법에 명시된 대로 하면 그만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직선제는 또 다른 분란을 만들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처음부터 아예 관심을 안 갖는 게 상책이다.교직원 중에는 간선제도 문제가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래도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제도인 만큼 따르는 게 순리다. 현재 동창회나 도민들이 전북대 총장 선거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전북대가 갖는 위상도 위상이지만 그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쌓아 올린 학교 명성이 행여 총장 직선제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해서 걱정을 한다. 지금 우리는 가치관의 혼돈 속에 빠져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어느 쪽이 바른 길인지를 놓고 헷갈려 있다. 설령 주변 상황이 혼돈스러워도 전북대를 발전시킬 인물을 총장으로 선출해야 한다. 대학이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야지 거꾸로 바깥에서 대학을 걱정하면 안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9.17 23:02

6차산업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와 농협대 교수를 지낸 현의송(72)씨는 6차 산업화야말로 우리 농촌의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2005년 일본 농촌을 배낭여행으로 둘러보면서 농업·농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6차 산업에서 찾았다. 그리고는 ‘6차 산업을 디자인하라’는 책을 냈다. 책에는 ‘그린투어리즘의 메카 우키하’, ‘전통문화 유산을 상품화한 시라가와 사람들’, ‘농업디즈니랜드, 사이보쿠’, ‘돼지고기의 명품 가고시마 흑돈(黑豚)’, ‘테마와 감동으로 고객 사로잡는 이카노사토 종합농장’ 등 성공 사례들이 즐비하다. 또 ‘식문화를 창조하는 우마지무라 농협’, ‘지역을 활성화한 기노사토농협 파머스마켓’ 등의 사례처럼 농협이 혁신 주체가 돼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요즘 ‘6차 산업’이 각광 받고 있다. 6차 산업은 1차 산업인 농림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가공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을 결합시킨 산업을 일컫는다. 사실 농사 짓는 것만으로는 힘들고 수지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가공하거나 직매장을 통한 직거래로 2차 산업화를 하면 부가가치가 높아진다. 나아가 어메니티(쾌적함·농촌다움)를 활용한 그린투어리즘과 체험, 식당운영 등 3차 산업으로 연계시키면 소득도 나아지고 재미도 쏠쏠하다. 6차 산업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주창한 개념이다. 1차×2차×3차 산업이 결합된 6차 산업화를 할 때 비로소 농촌과 농업에도 희망이 있다고 본 것이다. 6차 산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전북의 핵심 농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6차 산업은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성과가 저절로 담보되지는 않는다. 인프라와 기술, 정직과 신뢰, 고객과의 소통, 틈새시장 개척, 홍보와 마켓팅 등 어느 것 하나 손쉬운 게 없다.농업·농촌정책의 본산인 농촌진흥청이 어제 전북혁신도시에서 신청사 개청식을 갖고 한국 농생명식품산업의 실리콘밸리를 다짐했다. 전북도의 농업정책도 사람 찾는 농촌, 제값 받는 농업, 보람 찾는 농민 등 이른바 ‘3락(三樂) 농정’이다. 이 기회에 농업·농촌정책을 주도면밀하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구호나 말로 하는 건 전시행정 밖에 안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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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9.16 23:02

'슬픔은 힘이 되고'

때로 슬픔은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난 봄과 여름,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슬픔으로 안아야 했다. 그 덕에 자본과 야합한 정치권력의 비인간적 횡포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천민자본주의의 민낯, 그것에 영합한 식기(識妓-지식을 파는 기생, 혹은 識寄-기생하는 지식인)들의 뻔뻔스러운 백마비마의 억지 논리를 참아낼 수 있는 근기도 길렀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일베와 어버이 무리들의 폭거에도 절망하지 않는 저력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그 지극한 슬픔 덕분에. 그 슬픔이 진양 장단이나 계면조로 풀어지기도 하고 춤이나 풍물의 신명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북이나 장구의 장단이 독려의 응원가가 되어주고 아쟁이나 해금의 흐느낌이 격려의 박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으로 맺힌 것들을 신명으로 풀어내며 이 풍진 세상의 희망가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전통음악의 뿌리이자 힘이리라!지난 주말 서울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이렇듯 희망을 되살리는 마력을 지닌 우리전통음악 한마당이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스물 셋의 이름으로 펼쳐졌다. 김무길, 김광숙, 이태백, 안숙선, 김일륜, 동남풍 등 이 시대 최고의 명인들이 모여 한풀이 신명의 씻김굿을 고향을 잃은 서울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출연자 모두 이 지역의 자랑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들!고수는 특별한 연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정성만 갖추면 그 숨길 수 없는 내공이 무감각한 영혼들마저 뒤흔들어버린다. 세월호에,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뻔뻔함에, 굳어져버린 마음들이 거문고, 아쟁, 가야금 산조에 꿈틀거리더니 독감으로 청을 낮춘 안숙선명창의 춘향가 한 대목에 탄성과 환호로 피어났다. 신명의 끝을 보여주겠다! 동남풍의 숨을 멎게 하는 가락은 결국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이 감동의 탄식은 전주다움이 듬뿍 담긴 뒤풀이로 이어졌다. 칭찬과 감사의 인사말이 막걸리 향기와 어우러지면서 서울의 밤은 저물고, 피곤 가득한 뿌듯함 가라앉히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서울 시장과 교육감까지 참여하여 이 지역과의 소통과 교류를 다짐하기도 했으니 슬픔은 기어이 힘이 되고 만 셈이다.그렇게 변방이 중앙을 감동시켰다. 가장자리의 천덕꾸러기 전통이 오늘의 감동을 통해 미래로 우뚝 서고 슬픔의 아픔이 그에 힘입어 감격의 신명으로 승화되는 놀라운 연금술, 이를 마련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9.15 23:02

라스트포원

2000년대 초반, 힙합 대열에 혜성처럼 등장한 비보이가 있다. 전주 출신 비보이그룹 ‘라스트포원(Last For One)’이다. 재기발랄함과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춤으로 무장한 라스트포원은 2002년 거리로 나온 이후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주목을 모았다. 2005년에는 비보이들의 꿈인 독일‘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하면서 정상에 섰다. 그 대회에서 라스트포원 멤버들은 ‘아티스트’라고 쓰인 네임카드를 받았다. ‘우리도 아티스트’라는 자긍심을 그때 갖게 됐다. 비보이를 예술가로 대접하는 국가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다. 춤으로 세상과 소통해온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플래닛 비보이)로 제작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라스트포원은 모든 비보이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2009년, 전속되어 있던 기획사가 파산하면서 현실은 고단해졌고, 미래는 암울했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맨손으로 버티면서 갈등과 고뇌는 깊어졌다. 그러나 연습실이 없어 더부살이로 전전하면서도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의지와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들이 만든 춤과 음악은 아주 서서히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떠났던 멤버가 다시 돌아오고 비보이 춤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멤버가 새 자리를 채웠다. 어느사이에 20대와 30대가 된 라스트포원의 여덟 명 비보이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대를 읽어내는 춤, 희망과 위안을 주는 춤을 만들어 대중들을 만나고 싶었다. 라스트포원의 리더인 조성국은 ‘이제 길이 조금씩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추석 연휴, 비보가 전해졌다. 멤버 최선우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는 지난 7일 고향집을 찾았다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라스트포원 주니어로 활동하다 군 입대를 한 그는 지난 봄, 제대하자마자 라스트포원에 합류했다. ‘3년 동안 춤을 출 수 없는 일상이 너무 힘들었다’는 그는 춤에 일상을 걸었다. 20대 후반, 춤을 추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비트가 강하고 빠른 음악을 즐겼던 춤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그가 무대로 관객을 다시 만난 지 5개월. 오랜 기다림으로 만난 무대는 생애만큼이나 짧았다. 사실 그의 이름은 낯설다. 스타들의 온갖 일상에 매스컴이 주목하는 시대지만 무대에서 빛났던 한 비보이의 사망소식은 지인의 블로그로 간신히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영원한 라스트포원, 그의 명복을 빈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9.12 23:02

지리산흑돈 거리

남원시 인월면 소재지에서 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시골 치고는 제법 큰 건물과 간판이 눈에 띈다. 남원흑돈클러스터사업단과 고원흑돈이다. 1층에는 버크셔클럽이란 식당과 정육 등 가공제품 판매 코너가 자리잡고 있다. 남원흑돈클러스터사업단이 운영하는 버크셔클럽의 주요 메뉴는 물론 흑돈이다. 흑돈명품한마리 메뉴는 삼겹살과 목살, 뒷다리살 등 6개 부위가 모듬으로 나오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지리산흑돈 고기는 일반 삼겹살처럼 노릇노릇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쇠고기 정도 익었을 때 먹어도 된다. 비계 맛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퍽퍽살’인 뒷다리살은 넓고 얇게 썰어 나오는데, 부드럽다. 부위 부위마다 시중의 일반 돼지고기, 흑돼지 고기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풍부한 육즙, 부드러우면서 쫄깃함이 살아 있는 살코기, 마치 설탕을 친 듯한 단맛까지 그대로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남원흑돈클러스터사업단 관계자는 “지리산흑돈은 육종전문가인 박화춘 박사가 개발한 100% 순종 버크셔만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중의 일반 흑돈은 잡종 흑돼지다. 품질 편차가 너무 크고 지리산흑돈에 비해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버크셔 순종을 육종했다는 지리산흑돈과 잡종흑돈, 토종흑돈, 똥돼지, 토종흑돼지 등 털이 검은 돼지를 둘러싼 진실이 뭔가 의문스러워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토종 흑돼지는 없다. 자료에 의하면 1910년 무렵까지 토종흑돼지가 있었지만, 이 무렵부터 일제가 버크셔 등 외국종을 들여와 개량에 나섰고, 해방 이후에는 대부분 잡종 흑돼지가 됐다. 토종흑돼지는 체중이 75㎏에 불과,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육종학상으로, 제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육종관리가 안된 채 3년이 넘으면 고유 특성이 떨어지게 돼 있다. 전문가의 철저한 육종관리가 계속돼야 고급 품질이 유지된다. 결국 지리산흑돈을 제외한 국내 검은 털 흑돼지는 모두 잡종이라고 보는 게 맞다. 2004년 남원흑돈클러스터사업단을 출범시킬 당시 박화춘 박사는 이 잡종 흑돼지로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버크셔다. 그는 미국에서 들여온 버크셔를 육종, 한국 유일의 100% 순종 버크셔를 시장에 내놓았다. 전북이 만든 최고의 상품이다. 남원이나 전주 도심에 ‘지리산흑돈 거리’가 생겨 관광객이 북적거릴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9.11 23:02

기부문화의 진화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열풍을 몰고 왔다. 확산의 힘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에 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모아내기 위해 시작된 사회운동이다. 참여자는 얼음물을 뒤집어 쓰거나 후원을 하게 되는데, 이후 24시간 안에 다시 대상자 3명을 지명해 참여하게 하는 릴레이방식으로 운동을 확산하고 이어간다. 얼음물을 뒤집어 쓰지 못하는 경우엔 100달러를 대신 기부하도록 되어 있다. 기부문화의 진화다.올 여름부터 급격히 퍼지기 시작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 애플 CEO 티모시 쿡, 페이스 북 CEO 마크 주커버그를 비롯, 스티븐 스필버그, 리오넬 메시, 레이디 가가 등 각 분야 세계적 명사들이 참여하면서 확산의 가속도가 붙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대상자로 지목받아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대신 100달러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답했으며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지목을 받았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도 지역과 계층,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이스 버킷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아이스 버킷 참여가 늘어나면서 인터넷에는 그들의 동영상과 사진이 연일 중계되고 있다.유행처럼 번지다보니 부작용도 없진 않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취지가 가려지고 홍보 수단으로만 이용된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가져온 기부문화의 성과는 놀랍다.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처음 시작한 미국의 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협회는 지난 8월 29일까지 기부금 1억 9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행사를 시작한지 한달 만이다. 이 협회의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은 280만 달러였다니 놀라운 변화다. 한국루게릭병협회 역시 아이스 버킷 운동이 본격화된 지난달 이후 기부액이 2억원을 넘었다고 밝혔다.이 운동이 퍼져나가면서,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환자를 후원하는 본질보다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유명인들의 인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의 변질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운동 만큼 짧은 시간에 기부문화를 대중화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사실 릴레이 방식의 캠페인은 그동안에도 여러 분야에서 시도되어왔다. 그러나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독특한 방식은 기부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면서도 기부를 독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한 사례다. 의미있는 일을 서로에게 권할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확산을 아직은 반가운 마음으로 주목하는 이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9.05 23:02

익산시의 약속

정부는 1994년 도·농 통합 작업을 강력히 진행했다. 인접 시·군을 합쳐 통합시로 만들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 출범을 앞둔 포석이었다. 전북은 통합 대상인 전주시-완주군, 이리시-익산군, 군산시-옥구군, 김제시-김제군, 정주시-정읍군, 남원시-남원군 중에서 전주-완주만 통합에 실패했다. 전주-완주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리 걸음이다. 그동안 세 번의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단체장과 국회의원 등 정치적 이익 집단들이 통합 반대를 선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합 작업은 도지사와 전주시장, 완주군수가 통합 찬성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진행됐지만 결국 반대 세력에 눌렸다. 이를 놓고 단체장, 조합장, 국회의원 등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가진 세력이 물밑에서 반대 여론을 조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994년 정부가 시·군 통합을 밀어붙여 대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선 단체장들 때문이었다. 정부는 행정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관선 단체장들을 내세워 통합을 관철시켰다. 남원과 김제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었다. 정주시와 정읍군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전통성, 역사성을 중시하고 이름을 ‘정읍’으로 정하면서 통합에 성공했다. 군산시-옥구군, 이리시-익산군은 진통이 있었다. 도·농 통합이 공식 거론되기 전, 옥구군은 군산시내에 있던 군청사를 대야면으로 이전하기 위해 신청사를 신축하고 있었다. 당연히 반대 여론이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에 성공한 것은 군산시 구성원들의 큰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청사 입주가 불발된 대야는 특별한 발전이 없는 상황이다.익산군은 함열을 중심으로 가장 독립적인 곳이었다. 때문에 주민 반발이 가장 거셌다. 당시 익산군수는 주민들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러면서 통합 서류에 서명했다. 당연히 당시 주민 정서를 고려해 통합시 이름을 익산시로 하고, 통합시 청사를 북부권(함열)으로 이전하는 약속도 끌어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사실상 지켜진 약속은 없다. 군청과 함께 관계 기관들이 모두 빠져나갔을 뿐이다. 갈수록 실망 뿐이다. 지난달 27일 익산시의회는 익산시가 제출한 시청 9개 부서 함열 이전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통합 농촌지역이 이런 불이익을 받는다면 완주군이 전주시와 통합할 이유가 있을까. 통합 반대자들을 누가 탓할까.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9.04 23:02

송 지사의 3대 과제

송하진 지사가 선거 때 썼던 3가지 구호가 머릿속을 맴돈다. 소득 2배 증가와 1억명의 관광객이 전북을 찾고 인구 300만명의 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구증가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농인구 증가와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전북은 계속 곤두박질 쳐 겨우 187만 명에 머물러 있다. 연간 500만명이 전주를 다녀가지만 전주시 인구는 65만 선이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유입되는 바람에 전주시 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도시가 즐비하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최소 100만명은 넘어야 한다. 광역시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서 전주 완주를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창했던 것이다. 전주 완주를 통합해도 70만명을 넘길 정도다. 두 차례 통합에 실패해 송 지사가 정치적 내상을 입었지만 통합이 전북 발전을 위하는 사업인 만큼 해내야 한다.삼락농정을 펴 농촌을 살리겠다고 의욕을 과시한 송 지사가 할 일이 많겠지만 전주 완주 통합을 비롯 공항건설 그리고 익산의 KTX역사를 호남선상에서 전주혁신도시와 새만금 가까운 쪽으로 이전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업은 장기 과제일 수 있다. 해당 자치단체의 주민 합의가 전제 되어야만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칫 섣불리 손댔다가는 꿀도 못따고 벌만 쐴 수 있다. 익산 KTX 역사를 전주 가까운 쪽으로 옮기려고 채수찬 전 국회의원이 힘썼지만 워낙 익산시민들의 반대가 심해 이야기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김완주 전 지사는 아예 익산표를 의식해 익산 KTX 역사 이전 문제를 공론화도 못하고 접었다. 일제 때 호남선을 전주 유림들의 반대로 전주로 통과시키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지 않던가.익산 KTX 역사를 호남선 쪽으로 옮기면 새만금은 물론 전주혁신도시 그리고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도 고루고루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역세권 개발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뉴타운이 조성될 수도 있다. 물류 유통의 거점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이제 도민들도 지역 이기주의의 낡은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전주로 오가는 수도권 주변을 살펴보면 천지가 개벽돼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천안까지는 수도권이 됐다. 충북 진천도 수도권으로 편입돼 기업체수가 전북도 전체 보다 많다. 충청도 사람들은 전략적 투표를 잘해 국가예산도 잘 딴다. KTX 익산역사를 호남선 쪽으로 옮기자는 건 전주만 이익을 보는 개념이 아니다. 전주 익산 군산 김제 새만금 주변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은 통합을 해서라도 광역권 개발을 서둘러 나가야 한다. 송지사 어깨가 한층 무겁게 됐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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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9.03 23:02

새만금개발청의 한계

수정된 새만금특별법이 2012년 말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전북도는 새만금사업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예산 장치인 ‘새만금특별회계’ 설치가 무산됐는 데도 국토부에 전담기구가 설치되는 건 큰 성과라며 장밋빛 전망을 해댔다. 새만금개발청이 발족되면 농림식품부, 환경부 등 6개 부처로 나뉜 업무가 일원화돼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전담기구가 총리실을 떠나 특정 부처에 소속되면 다른 부처를 컨트롤하는 데 한계가 따르고, 청장이 차관급인데 다른 부처에 씨알이 먹히겠느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마침내 새만금개발청은 국토부 산하 기구로 발족돼 2013년 9월 12일 문을 열었다. 하지만 당시 우려했던 지적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회 이상직 의원(전주 완산 을)과 총리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간의 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다음은 4월14일 국회 정무위 속기록을 간추린 것이다. “작년 새만금개발청 예산이 얼마 올라왔는지 알고 있나요?(이상직) 제가 청의 예산까지는…(김동연)/ 새만금개발청이 주관청으로서 업무를 다 하고 있잖아요?(이) 새만금개발청이 직접 다 하기 보다는 농식품부 등 관련 부처, 산업부도 그렇고요. 거기에 부처 예산이 죽 들어가 있는 거고요(김)/ 청장이 차관급인데 장관이 말 듣겠습니까? 새만금기획단을 해체했으면 지원단이라도 둬야 할 게 아닌가?(이) 국토부에 외청이 있는데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을 총리실에 두는 것은 정부조직 원리상 안 맞고요(김)/ 지금 농림부하고 문화체육관광, 환경노동을 조율할 사람이 없어요(이) 그러니까 위원님, 새만금청이라는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이 있는데 총리실에 국(局)이나 1급 단을 만드는 것은 조직원리상 맞지 않습니다(김) / 그러면 간사단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이)” 속기록엔 새만금개발청의 한계와 이를 커버할 총리실 지원단 설치를 요구하는 이 의원의 분투, 이를 빠져나가는 김 실장의 받아치기가 잘 그려져 있다. 김 실장의 발언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새만금개발청이 발족되면 만사형통일 것처럼 호들갑을 떤 전북도의 단견행정을 꼬집는 것 같다. 어쨌건, 정부 차원의 대표성과 부처 컨트롤 측면에서 총리실 새만금지원단 설치는 꼭 필요해 보인다. 헌데 기대난망인 모양이다. 결국 전북의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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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9.02 23:02

비극적 세계관

정조 이후의 혼란 쇠퇴기를 연상시키는 요즘의 상황, 루시안 골드만의 비극적 세계관을 곱씹는다. 세월호에 갇힌 민초들은 불안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엉뚱한 민생 챙긴다며 파쟁만 일삼고 있다. 진실이 빤한데 허위의 말장난으로 혹세무민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자아의 진실과 세상의 허위 틈에서 고뇌하는 인간이 택하는 태도가 비극적 세계관이다. 세상이 온통 거짓과 부패 속에 빠져있을 때, 그런 현실에 굽히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거짓 세상을 버리고 초월적 진실 속으로 은퇴해버리는 것이 하나요, 세상을 진실된 것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현실 속에서 투쟁하는 것이 둘이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 진실과 허위의 간극이 건너뛸 수 없도록 아득하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 때 취하게 되는 길이 바로 비극적 세계관이다.북유럽으로 서둘러 이민 가방을 챙기는 것이 첫 번째 길이라면 광화문 광장에 모여 기꺼이 동조 단식을 감행하는 것이 두 번째 길이요, 떠나지도 뛰어들지도 못하며 고뇌의 술잔만 기울이며 탄식으로 울분을 삭이는 것이 세 번째 길이리라. 그러나 자포자기는 아니다. 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을 완전히 거부하지만 현실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현실이 싫지만 이 현실을 통하지 않고는 진실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비극적 역설 앞에 고뇌하는 것이다. 그것은 운이 좋으면 밀턴의 〈실낙원〉이나 베토벤의 〈영웅교향곡〉과 같은 위대한 예술로 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포장마차에서의 혁명이나 허한 담배연기로 사라지곤 한다. 부재로만 존재하는 진실, 골드만은 이를 숨은 신(Hidden God)이라 부른다. 한용운 선사는 이를 논개에 빗대어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 탄식한 바 있다. 다시 신동엽 시인은 이를 먹구름에 갇혀 하늘을 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푸른 하늘이 엄존하는데 구름 껍데기에 가려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껍데기는 가라 외친 것이다. 물론 외친다고 사라질 구름이 아니다. 잠시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를 덮을 또 다른 구름이 밀려온다. 정조 이후의 세도정치, 동학농민혁명 후의 일제강점, 419의 516, 서울의 봄과 신군부, 그리고 오늘 유신의 부활까지!다시 담배를 피워야 하나? 아니면 군도의 민란 보며 극장에서라도 혁명을 꿈꾸어야 하나?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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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1 23:02

윤도(輪圖)와 장인

윤도(輪圖)는 ‘가운데에 지남침을 장치하고 가장자리에 원을 그려 24방위로 나누어 놓아, 방위를 헤아리는 데 쓰는 기구’다. 일종의 나침반인 윤도는 지관들의 전유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주역을 바탕으로 풍수지리를 보는데는 윤도가 필수품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윤도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를 통해 일상용품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들은 거울을 단 ‘면경철’, 부채 끝에 매다는 ‘선추’, 십장생 등 조각품으로 모양을 낸 대형 윤도까지, 예술성을 살린 소장품으로도 윤도를 생활 속에 들여놓았다. 1950-60년대만 해도 윤도는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식 나침반이 나오면서 윤도 자리에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나침반이 들어서게 됐다. 일상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지금은 나침반 또한 쓰임새로서의 역할이 적어졌으니 이제 윤도는 더욱이나 낯선 존재가 됐다. 우리 지역에는 윤도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명, 중요무형문화재 제 110호인 윤도장 김종대씨가 그다. 여러해 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은 윤도를 만드는 전통을 300년 넘게 지켜온 곳이다. 윤도는 대개 크기로 종류가 나누어진다. 윤도에 그어진 원이 만들어낸 한 칸을 ‘층’이라고 부르는데 1층부터 24층까지 그 쓰임이나 내용에 따라 종류가 구별된다. 윤도를 만드는데 에는 아무리 층(원의 수)이 적어도 4-5일, 24층짜리는 4개월이 족히 넘게 걸린다. 윤도는 대추나무로 만드는데, 그것도 200년 넘은 고목이어야 한다. 단단하고 갈라지지 않으며 각을 할 때 연하면서도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00년 넘은 고목이 곧바로 글자를 파낼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라진 채로 물속에 1-2년, 다시 은근한 곳에 말려서 3년 정도는 놓아둔 후에라야 비로소 칼을 댈 수 있게 된다. 윤도위에 글자를 새겨 넣는 각(刻)은 본을 뜨거나 연필로 글자를 쓴 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칼로 직접 파낸다. 깨알처럼 가는 글자를 수천자 새겨넣어야하니 아무리 숙련된 장인이라 해도 고행이 아닐 수 없지만 덕분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윤도는 이제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장인은 쓰임새를 다한 윤도의 가치를 예술품으로라도 살려내기 위해 나섰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윤도뿐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전통공예가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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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8.29 23:02

매표하는 사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바티칸행 비행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교황은 방한 중 매일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정치적 이용 우려에도 개의치 않고 유족이 건네 준 노란 리본을 왼편 가슴에 달았다. 광화문 앞에서 단식투쟁 중인 유민 아빠를 만나고, 또 다른 유족 이호진씨에게는 프란치스코란 이름으로 세례를 직접 주었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다. 사고 직후 팽목항 현장을 방문해 확실한 조치를 약속했고, 세월호 참사 한 달째인 5월16일에는 유족 대표단 1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면담에서 정부의 부족했던 부분을 사과하고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시스템을 근본부터 다시 바로잡아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며 유가족 여러분이 그동안 느낀 문제점과 또 바로잡아야 되겠다는 의견을 주시면 꼭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종교 지도자는 어떤 사건, 사고의 구체적 해결 당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종교와 그 지도자가 사고 피해자는 물론 대중의 위로와 치유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많은 대중은 종교가 실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원상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종교 지도자가 내미는 손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의해 적어도 정신적 치유를 얻는다고 믿는다.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 중에 한없이 낮은 자세를 보이고, 세월호 유족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종교 지도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전형이다. 살을 애는 고통 앞에서 정치적 좌고우면이란 없는 것이다.그러나 아쉽게도 정치판은 다르다. 진심보다는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다. 타인의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요즘 우리 정치판이 그렇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실익을 따지느라 정신없다. 야당은 유족 눈치를 보느라 여당과의 두 번째 협상까지 깨트렸다. 여당은 법과 원칙만 외치고 있다. 대통령은 유족에게 언제든 찾아와 의견을 달라던 약속을 외면한 채 민생경제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말만 허공에 쏘아대고 있다. 그들이 애간장을 태우며 분노하는 유족의 요구를 앞에 두고 암투를 벌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정치적 이익이다. 민심(표)를 얻어 권력을 얻고자 함이다. 지금 상황은 결국 매표 작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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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4.08.28 23:02

단체장 예산 확보

도내에서 무소속 후보 절반이 단체장으로 당선됐다. 표현이 무소속 반란이지 실제는 예고된 결과였다. 민주당의 무원칙한 공천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그간 전북에서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공천을 했던 것. 국회의원 스스로도 그 결과에 놀랐다. 정작 공천 칼자루를 쥐었던 국회의원들만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이미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간 30년간 적폐가 선거 때 일순간에 폭발한 것이다.한 단체장은“무소속으로 당선돼 이제는 그들의 눈치 안 보고 오직 주민만을 위하는 행정을 펼 수 있게 됐다”고 무척 반겼다. 공천 받아 당선되면 공천권자인 국회의원한테 충성을 다해야 하므로 소신있게 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단체장 스스로가 국가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정당정치 구조하에서는 여든 야든 소속 정당이 있어야 국가예산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난 단체장은 여야를 뛰어 넘어 국가예산을 잘 확보하지만 그렇지 못한 단체장은 힘들 수 밖에 없다. 단체장은 이 때문에 중앙정치권과 연결고리를 잘 맺기 위해 온갖 힘을 쏟는다.지금 전북 정치 구조가 야당 국회의원이 전부인데다 단체장 반절이 무소속이어서 국가예산 확보하기가 힘들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할 때 누가 더 많이 국가예산을 확보했느냐로 평가한다. 때로는 양측이 국가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공과를 놓고 볼썽 사나운 일도 생기지만 국비 확보하는 일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단체장이 취임 2달이 돼가지만 아직도 국회의원과 보이지 않게 서먹거린다. 노골적으로 비난은 못해도 선거감정이 남아 있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가 20개월 밖에 안 남아 국회의원이 오히려 국가예산 확보에 더 급하다. 국회의원들은 한푼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재선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발품도 많이 판다. 이런 상황속에서 무소속 단체장들이 세종시와 여의도를 들락거리며 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한 예산 작업이 힘겨울 뿐이다. 무소속 단체장 중에는 중앙부처나 여의도를 가본 적이 없어 지리가 어두운 사람도 있다. 본인이 중앙에 가서 예산을 많이 확보했다고 자화자찬성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부처가서 문전박대 당해 홧김에 지인들 불러 소주잔 기울인 일도 허다하다. 표 먹고 사는 국회의원과 무소속 단체장은 결코 일희일비할 계제가 아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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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8.27 23:02

이순신 백의종군 루트

명장 이순신은 사후에야 빛을 본 인물이다. 선조의 무능과 정쟁으로 7년 동안이나 일본의 침략에 시달린 조선을 구해낸 영웅이지만 상당 기간 조명 받지 못했다. 정조시대에 와서야 대접다운 대접을 받았다. 정조는 임진왜란 발발 200주년이 되는 1792년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가증(加贈)했다. 또 이순신의 글들을 모아 ‘이충무공전서(全書)’를 편찬했다. 호남의 자긍심이 잘 드러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란 표현도 이 전서에 들어 있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일본이 후하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함대의 수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는 “나를 영국의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순신에 비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산케이신문 기자 출신의 일본 국민작가인 시바 료타로도 이순신을 ‘세계 제일의 해장’이라 극찬했다고 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은 전했다. 이순신의 존재는 조선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오히려 헤이하치로나 시바 료타로 등 일본 측에서 그의 존경심이 계승됐다는 것이다. 성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난중일기는 이야기(story telling) 보물창고다. 1597년 초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가까스로 풀려나 한양∼경기∼충청∼전북∼전남 승주에 이르기까지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는 일정도 그런 경우다. 이중 전북구간의 행적이 관심을 끈다. “전주 남문 밖 이의신(李義臣)의 집에서 잤다. 판관(부시장) 박근이 보러왔다. 부윤(시장)도 대접했다.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와 생강을 보내주었다. 이튿날 일찍 떠나 오원(관촌) 역에서 쉬고 아침도 먹었다. 조금 뒤 도사(부지사)가 왔다. 저물어 임실현에 이르렀다. 원(현감) 홍순각이 나왔다.”이의신은 덕수 이씨 신(臣)자 항렬로 보아 이순신의 친인척일 것이다. ‘남문 밖 이의신의 집’이 어느 곳쯤 될지 궁금하다. 이곳을 찾는다면 한옥마을과 연계한 좋은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것이다. 나아가 삼례∼전주∼관촌∼임실∼남원에 이르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루트’를 발굴하는 것도 욕심 낼만 하다. 행정기관과 학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가능할 것이다. 모함 당해 고초를 겪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며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행로와 발자취는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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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8.26 23:02

청소년 전통문화체험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지만! 예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며 탄식으로 한숨짓던 말이 저절로 입 주위를 맴돈다. 청소년을 위한 국립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전주 원도심 내에 연면적 5000㎡에 250명의 숙박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총 사업비 140억 원(부지 매입비 별도) 등 꽤 구체적인 내용이어서 더 기대가 된다. 조바심도 그만큼 더 크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절대 안 되기에.애초 전통문화체험교육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은 전주가 전통문화도시를 선언하면서 표방한 5대 핵심전략사업 중 하나였다. 정부가 전주전통문화도시에 선뜻 손을 들어준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준비가 잘 된 전주가 대신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문화관광부와 전주시가 공동으로 발주한 국토연구원 용역보고서에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전통문화에 낯설어 스스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들, 이런 상황이 더욱 심각한 해외동포 자녀, 그리고 급증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이들에게 우리의 뿌리를 확인시켜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케 하는 것이다. 가장 명분이 뚜렷한 사업인데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3대문화관(소리, 부채, 완판본) 때문이다. 한옥마을 내에 인프라가 아직 열악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한옥마을은 급격하게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전통문화도시의 명분은 꽤 엷어지고 말았다. 요즘 회자되는 위기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그래서이다. 이 사업이 더욱 반가운 것이. 위기를 극복할 튼튼한 동력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든든한 구원투수를 아껴 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명분은 확실했지만 그 전망은 불투명했다. 과연 수요가 있을까? 지금은? 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수학여행이 대규모 명승지 관람에서 소규모 체험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주처럼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 없다. 전국의 수학여행단만 유치해도 쉴 틈이 없을 것이다.다만 이런 주문은 덧붙이고 싶다. 수요에 현혹되지 말자는. 청소년들에게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 자부심을 고취한다는 명분에 더 충실하라는. 그래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설 수 있다. 더불어 그 수요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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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5 23:02

쯔마고의 주민 헌장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 일본 중부 나가노현에 있는 작은 마을 ‘쯔마고(妻籠)’이 내건 구호다. 쯔마고는 에도시대, 교토에서 도쿄를 잇는 나가센도(中山道)에 형성된 여관마을이다. 나가센도는 전체 길이가 530km에 이르는데, 그 사이에 역의 기능을 하는 69개의 마을이 만들어졌다. 자연히 사람들이 묵어갈 수 있는 여관이 마을마다 많이 생겨나게 되어 사람들은 이 마을들을 역참마을, 혹은 여관마을이라고 불렀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더러는 없어지고 더러는 옛 모습을 잃었지만, 이중 6개 마을이 ‘중요전통적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되어있다. 그만큼 보존이 잘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도 쯔마고는 최고로 꼽히는 마을이다. 1601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마을의 역사는 400년을 넘어선다. 한두 시간 돌아보면 족할 정도로 마을은 아주 작지만, 이 마을을 지켜낸 주민들의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그 결실은 마을의 역사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마을자료관에도 있다. 자료관은 역이었던 ‘쯔마고혼진(妻籠宿本陳)’을 복원한 공간이다. 흑백사진이나 민속자료는 대부분 1960년대부터의 것이지만 마을의 오랜 역사는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 알려지기로는 쯔마고가 오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민속자료를 수집하던 ‘쯔마고를 사랑하는 모임’의 활동 덕분이다. 쯔마고 주민들은 1971년 ‘주민헌장’을 제정하고 ‘팔지 않고 빌려주지 않고 부수지 않는다’는 구호를 만들었다. 이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위원회의 역할도 흥미롭다. 식당위원회, 숙박위원회 등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건축물 보존을 위한 ‘통제위원회’나 행사와 축제를 관리하는 ‘문화위원회’도 있다. 주민 스스로 다양한 규약을 만들어 지키며 마을을 보존해낸 사례는 일본 안에서도 시민운동의 모범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1976년 쯔마고를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일본의 첫 지정마을이다. 지정구역도 마을 공간 뿐 아니라 주변부를 포함시켜 그 넓이가 1,2454ha나 된다. 쯔마고는 1983년 보존재단을 설립해 더 적극적으로 마을 보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 7월에 찾아간 작은 여관마을은 아름다웠다. 시간이 멈춘 듯, 에도시대 건축물이 이어지는 마을 곳곳에서는 쯔마고 주민들의 의지가 빛났다.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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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8.22 23:02

사랑의 조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교황의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1984년과 1989년 두 번 방한했다.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 및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이 열렸고, 1989년에는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겸해 이뤄졌다. 이번 방문은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혼란과 갈등이 유난히 많다.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가 간절한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월호 참사 유족 등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위로하고 사랑으로 다독였다.한없이 낮은 곳을 향하는 교황의 겸손한 자세가 뭇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었고, 방한 기간 중 그의 언행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교황의 한국 방문시 비춰지는 대한민국은 순교와 분단, 가난의 역사다. 그들은 한국 사회 곳곳 비틀리고 응어리진 곳을 어루만지고자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방한 당시 비행기에서 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그는 순교자의 땅이라고 말하며 목숨을 걸고 쌓아올린 한국 천주교 역사에 경의를 표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나와 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위로하는 등 고통 속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먼저 챙겼다. 소형차와 KTX를 이용하고, 아이들 이마에 입을 맞추며 축복하는 그의 겸허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낮은 곳을 챙기고, 청빈한 생활을 고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실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영접 나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와대 연설에서도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는 18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뒤 한국을 떠났다. 이날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위로와 평화, 화해가 필요한 인사들이 대거 초청됐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남북한을 향해 “죄지은 형제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사랑이든 평화든 결국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8.21 23:02

전북권 공항

외국을 오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왜 전북에는 공항이 없을까. 제주도를 오갈 때 이용하는 군산공항은 우리 땅에 있지만 미군공항이다. 비행기가 이착륙 할 때마다 일정액의 공항사용료를 지불한다. 그간 민선 지사들마다 재임 중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의욕을 과시했다. 가장 가능했던 시기는 DJ정권 실세였던 유종근 전지사 때였다. 유 전지사는 김제공항을 건설하려고 부지까지 매입했었다. 하지만 김제가 지역구인 최규성 국회의원, 곽인희 전시장 지역유지 등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김제공항건설사업이 유야무야됐다. 유지사는 김제 주민들한테 심지어 계란 세례까지 당했다.강현욱 전지사 때도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 빵빵 쳤지만 진척이 안 됐다. 공항건설 문제로 요란법석을 떨기는 김완주 전 지사 때가 제일 심했다. 지난 2008년 MB정권 때는 감사원이 김제공항의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시켰다. 전북도만 공항건설이 시급하다고 외쳐댔을 뿐 중앙정부는 별로였다. 그 당시 MB정권에 김지사가 밉보였기 때문에 대규모 SOC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 없었다. 2009년도에 MB가 군산공항을 확장해서 국제선을 취항시키는 게 맞지 않겠냐면서부터 김 지사가 다시 군산공항 확장으로 매달렸던 것. 김 지사는 그 이후 미군 측과 실무협의회를 두 차례 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김 전지사는 정치권에서 그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외롭게 공항건설사업을 추진했다.그가 재임 중 가장 아쉬운 대목은 공항건설이었을 것이다. 그 아쉬움의 표현이 지난 6월11일 마지막 도의회에서 옛 김제공항 부지에 전북권 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말한 데서 속내가 묻어난다. 아쉬움과 실망이 컸던 그로서는 이 대목서 할 말이 많을 것이다.국가중추시설인 공항건설은 정치권이 총력을 펴야 가능하다. 그간 우리를 발목 잡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광주와 전남 정치권이다. 지난 2007년에 개항한 무안국제공항이 전북권에 공항이 들어서면 항공수요가 줄어든다는 논리를 내세워 중앙정부에 대놓고 반대를 일삼았다. 청주공항 건설 때도 수도권과 가까워 항공수요가 없을 것이라며 반대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항공 수요는 기업유치와 직결돼 있어 공항이 생기면 수요는 문제 될 게 없다. 지금 새만금에 한중경협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빨리 새만금에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 그간 존재감이 없다고 핀잔 받아온 도내 출신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송하진 지사와 협력해서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다음은 아예 생각마라.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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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8.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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