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을 사나흘 정도 걸으면 보약 한 재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라는 시구를 읊조리며 수많은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걷기 열풍,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걷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신정일 걷기모임 이사장은 빠른 것에 익숙해진 세상에서 느리게 걸으면서 여러 사물을 만나게 되고, 결국 내가 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걷기의 매력이라고 극찬한다. 속도와 경쟁, 생산성이 강요되는 빠른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많다. 유유자적하며 느리고 여유 있게 사는데 가치를 둔다. 이런 시도가 슬로시티 운동이다. 6월말 현재 29개국 189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 슬로시티는 ‘느려서 더 행복한 섬’ 증도(신안군)와 청산도(완도군) , 차 재배지로 세계 최초인 악양면(하동군), 한옥마을(전주시) 등 11곳이다. 애초 12곳이었지만 장흥군 유치면은 요건 불비로 탈락했고 증도는 지난 1일 재인증을 받아 회생했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인구와 환경, 유기농 생산과 소비, 전통음식과 문화 보존,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패스트푸드 추방 등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다. 문제는 내년 11월 재인증을 앞둔 전주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지만 상업시설이 지정 때보다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격한 상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700여채 중 366곳이 상업시설이니 한 집 건너 음식점, 커피숍, 전통찻집, 숙박시설 등인 셈이다. 고즈넉한 정취는 사라지고 기존의 자생적 문화인력들은 상업자본에 밀려났다. 한옥마을이 기왓장만 얹어져 있을뿐 패스트푸드로 도배된 상업시설로 채워져 있다면 신시가지나 다름 없고 생명력도 길지 못할 것이다. 슬로시티는 전통 보존, 지역주민 중심, 생태주의 등 3대 가치를 추구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한다. 그런데 이젠 이런 가치를 찾기가 어렵다. 슬로시티 재지정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 여부를 떠나 한옥마을의 정체성 만큼은 회복돼야 한다. 그리고 한옥마을 같은 도시형 슬로시티는 특화된 인증기준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증도나 청산도의 기준을 한옥마을에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피상적인 것도 변하고 심오한 것도 변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변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세월이 지나면 기후도 변하고 양치기도 양떼를 바꾼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듯이 내가 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아르헨티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모든 것은 변한다의 노랫말이다. 여린 연둣빛 봄이 짙푸른 녹음으로 변한 지 오래, 이제 곧 바람이 선선해지면 황금빛 들녘으로, 그리고 하얀 수의의 벌판으로 변해 갈 것이다. 때로는 그러한 변화에 의한 다양함이 무료함도 달래주고 힘겨운 현실에 희망을 갖게도 해준다. 내일이면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없다면 팍팍한 사막길 같은 삶의 여정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그렇게 전주 한옥마을도 변했다. 한때 이곳은 부자들이 모여 살던, 전주에서 가장 잘 나가던 지역. 그러나 주거문화가 아파트 중심으로 변하면서 민원이 끊이질 않는 대표적 슬럼가로 급격히 쇠락해버린다. 그러다 한일월드컵 전후 지역혁신을 통해 고즈넉한 기와지붕의 가장 한국적인 마을로 주목을 받더니 이제는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이 밀리는 명소로 탈바꿈을 했다. 요즘과 같은 무더위에도 태조로와 은행로, 골목골목까지 인산인해, 어깨를 펴고 걸을 수 없을 정도다. 10여년 사이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이곳은 지금도 급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다. 너무 급격한 상업화로 본래의 정취, 정체성 모두 찾아볼 수 없게 변질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쉴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는데 시끌벅적한 장터로 변했다. 처음 기획할 때 서울의 인사동처럼 되어서는 안 되다고 강조를 했었는데 위대한 자본의 힘에 밀려 똑 그렇게 닮아가고 있다.다시 소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내 조국과 민족의 고통과 그에 대한 기억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어제 변한 것은 내일에도 변해야 한다/ 이 먼 땅에서 내가 변한 것처럼/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변화의 무상함에 속이 상할 때에는 특히 이런 노래가 격려가 된다. 모두 변한다지만 분명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이 노래가 주는 감동이 그렇고 전통문화나 한옥마을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이 그렇다. 모두 변한다는 진리가 변하지 않듯 변화에 굴하지 않는 사랑만이 바람직한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 이 또한 변할 수 없는 말씀으로 또 위로가 된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군산시 미성동. 도시개발로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새롭게 나면서 온전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이 일대는 도시근교에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운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불이농촌’. 행정구역상 미성동이란 이름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이 들판의 이름이다. 옥구저수지를 끼고 앞뒤로 뻗어있던 들판은 넓이만도 3000ha. 일본의 식민정책이 절정에 이르렀던 1920년대, 토지 침탈을 위해 벌였던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땅이다. 간척은 일본이 조선 토지침탈의 한 방법으로 추진했던 사업이다. 1920년대부터 왕성하게 추진한 일본의 간척사업은 30년대 중반에 이르러 ‘7만 정보에 이르는 땅’을 얻었다. 불이농촌과 김제 광활이 그 대표적 성과다. 특히 불이농촌은 일본에게 매우 상징적인 땅이었다. 당시 식량문제와 빈농구제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던 일본이 해결방법으로 추진한 것이 이주정책. 식민지였던 조선은 일본인들을 이주시키는데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으며 불이농촌은 일본인 이주정책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불이농촌’을 간척한 불이흥업주식회사는 1920년 군산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일대의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바닷물이 닿는 갯벌이었지만 지형적 요소나 자연적 여건이 간척지로 개발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당시 소요된 사업비는 224만 3000원. 사업을 시작한 3년 뒤인 1923년 마무리됐다. 이듬해부터 일본인 이주자들이 찾아들었다. 대부분이 일본의 하층민들이었다. 불이흥업주식회사는 직접모집의 형식으로 이민자들을 끌어들였지만 내무성을 거쳐 일본안의 각 부와 현에 의뢰하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본 이민정책의 통로가 됐다. 이곳에 이주해온 일본인은 340여호. 1924년부터 26년까지 세 차례의 대단위 이주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주해온 일본인들은 출신지별로 마을을 이루어 불이농촌 안에 히로시마촌, 미나미사가촌, 나라촌, 나가사끼촌 등 일본 각 지역의 이름을 붙인 마을이 생겨났다. 소설가 조정래의 ‘아리랑’ 간척농지 이야기가 바로 이곳 ‘불이농촌’의 이야기다.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침략 역사는 오래 되지 않은 과거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경험했던 세대가 같은 시대 안에서 호흡하고 있으니 ‘동시대’ 역사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역사의 기록은 미미하고 흔적은 지워져 간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 절실하다.
지난 4월16일 오전 8시 48분 무렵,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사고 당일 날씨는 좋았다. 그저 평온한 아침이었다. 이 거대한 여객선이 침몰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배가 기울었고, 생때같은 단원고 학생 등 모두 294명이 사망했다. 아직까지 10명의 여객은 실종 상태에 있다. 벌써 사고 4개월이 됐다. 사고 원인은 비리종합선물세트였다. 급기야 사고 후 구조 등 조치에서 법 위반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해양경찰의 해체가 결정됐다. 경찰과 검찰은 세월호 관련 수사에 착수, 29명을 구속하는 등 모두 34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지목됐던 유병언 회장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알맹이가 빠진 수사가 돼버렸다. 세월호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관피아 등 구조적 비리 앞에서 국민들은 더욱 경악했다.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이 규명돼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세월호특별법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행 법에 따른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거부한 것이다. 국가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또한 비극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은 처음부터 여의치 않았다. 양측의 입장 차가 너무 컸다. 하지만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가 전격 합의했다. 서로 양보한 결과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세다. 유족은 물론 야당 내 강경파와 정치권 밖 강경 세력들이 재협상을 요구했다. 합의된 특별법에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야당의 특검 추천권이 빠졌다는 것이다. 관철하라는 요구다. 새정치연합은 결국 재협상을 선언했다. 여야 합의는 뒤집혔다. 야당 등은 세월호 사고의 심각성을 안다면 여당이 재협상에 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여당은 야당이 국회법에 따른 협상의 결과를 깨면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여야는 기회있을 때마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가겠다’고 말한다. 국민없는 정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대치하는 형국을 보면 여야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없다. 야당은 정치적 만회를 위해, 여당은 정권 안위만을 위해 싸운다. 퇴로가 없다.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다. 양보없는 평화적 해결은 없다. 여야는 양보 카드를 내놓아라.
입추와 말복이 지나선지 아침 저녁이 제법 서늘하다. 저녁이나 새벽녘에는 홑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살갗이 차갑다. 자연의 섭리는 어김이 없다. 민선 6기가 출범한지 한달여가 지났어도 뭔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못 느낄 정도다. 도나 시군이 인사를 단행했지만 그 정도 갖고서는 변화가 감지 안 된다. 도는 산하기관장한테 9월말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최종적으로 통첩한 상태다. 이 사실이 대상자에게 알려지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들려온다. 정작 방을 빼야 할 사람이 누군지가 헷갈린다는 것. 자기 분수도 모른채 남들이 방을 안 빼 오히려 자기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깜깜히 기관장이 있다. 누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질 않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정무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일부는 내배째란식으로 오불관언으로 버티고 있다.김완주 전지사 때는 산하 기관장을 거의 몰아내다시피 했다. 담당 국장을 통해 방을 무작정 빼도록 압력을 가했다. 하루도 못 견딜 정도로 고통을 안겨줬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산하기관장은 행복한 편이다. 오너가 바뀌었으면 임기가 남았어도 두말 할 것 없이 사의표시를 하는 게 맞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필 겨를도 없다. 자신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경선 때 이줄 저줄 선 사람은 말할 것 없고 김 전지사한테 충성을 다해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은 좌고우면 할 것 없이 방을 빼야 한다. 새 술은 그래서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와서 미꾸라지 마냥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사의 표시를 안 하려고 버티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도와 전주시는 성격이 다르다.지역도 똑같다. 지사가 바뀌었으면 지사가 일할 수 있도록 주변이 바꿔져야 한다. 관 주변을 에워싸는 사람들이 바꿔져야 한다. 김 전지사 때 활동했던 사람이 송하진 지사 때도 똑같이 그 연장선상에서 역할을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스스로들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지금 전북은 혁신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인적쇄신이다. 김 전지사가 전주시장 때부터 도움을 받아온 분들은 쉬어야 맞다. 16년간이나 관 주변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운 분들은 매너리즘에 젖어 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임무교대 시간이 됐다. 아이디어는 있어도 코드가 맞질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 당해온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비주류를 당직 전면에 배치한 것처럼 전북에서도 각 부문별로 임무교대가 이뤄져야 한다. 노장청이 새롭게 조화를 이뤄야‘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를 만들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세계적 관광지인 프랑스 파리와 리옹, 일본 요코하마와 고베, 중국의 상해 등은 야간 경관조명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과 부산 등 규모가 큰 도시들이 야관 경관조명 사업에 앞다퉈 공을 들이고 있다. 해안을 낀 부산이 앞서 가고 있다.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는 1만6000개의 LED 등으로 단장됐다. 사업비만 104억 원이 투입됐다. 해운대와 광안대교 등 아름다운 경관 조명을 자랑하는 부산은 프랑스 리옹과 홍콩 등 세계적인 도시들과 이젠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야간 경관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체류형 관광지화함으로써 관광객 증가, 숙박업 성업 등 지역경제에 효자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도시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유명 조형물과 건축물은 랜드마크 역할도 한다. 어두운 거리를 밝히고 치안유지에도 효과가 있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미적 가치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긍정적 효과 때문에 ‘국제조명도시연합’이란 단체도 발족돼 있다. 2001년 출범한 이 단체는 프랑스 리옹에 본부를 두고 회원도시 간 디자인과 경관 조명 분야의 협력체제 구축 등의 활동을 한다. 세계 66개 도시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전북혁신도시에도 야간 경관조명의 ‘명물’이 등장했다. 40년만에 서울을 떠나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가 그 건축물이다. 지상 5층, 지하 1층의 웅장하고 멋진 신사옥은 전북의 상징물인 ‘북’과 원형 ‘우주선’을 형상화해 각각 소통과 도전의 뜻을 담았다. 이같은 독창적인 건물 외관이 야간에는 조명을 받아 하늘에 붕 뜬 우주선이 된다. 공사 사옥관리부의 박영준과장은 “전기료 때문에 조명 중단을 검토했지만 밤이면 어두운 지역인 데다 볼거리를 요구하는 민원이 많아 밤 10시까지 야간 경관조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월16일 개청한 KESCO는 경관견물의 본보기이자 전북혁신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 있다. 전북혁신도시에는 내년까지 12개 공공기관이 이전한다. 모두 내로라 하는 기관들이다. 혁신도시가 볼품 없는 사각형 건물들로 채워진다면 답답할 것 같다. 그런 건축물은 야간 경관조명의 효과도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기관들이 KESCO처럼 미적 가치를 담았으면 한다. 특화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도록 혁신도시를 아름답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일본의 전통문화도시 가나자와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당당한 아우라를 지닌 가나자와성(城)이다. 복원된 건물들을 이용해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성 안과 밖의 광장에서는 대형 음악회 등 시민들을 위한 행사들이 다채롭게 꾸려지고 있다. 성 앞쪽의 일본 3대 명원(名園)의 하나인 켄로쿠엔과 더불어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으로, 진정어린 복원을 통해 관광명소로 거듭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복원은 백년 후의 국보를 만드는 일이다. 단순히 끊긴 역사를 잇거나 볼거리 하나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의 예지를 모아 다음 세대 국보가 될 만한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단순한 경제살리기나 지역활성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과거에만 연연하지 않고 미래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기대 살 수 있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와 같은, 전통 하나 우뚝 세워가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원은 전통의 창조다. 제대로 된 창조는 진정성 위에서만 가능하다. 제멋대로의 상상 정비나 상상 복원은 끼어들 틈이 없다. 가나자와성도 철저하게 고증된 것만 복원정비하고 있다. 예산규모에서도 그 진정성은 확인된다. 1996년부터의 1차 복원에 쓰인 경비가 252억엔, 토지매입비 112억엔을 뺀 순수 복원정비경비만 140억엔, 우리 돈으로 14조원. 2006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진행될 2차 복원 예산은 50억엔(5조원).이 복원의 또 다른 의미는 밀폐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16세기 말 축성 이래 이곳은 성주들만을 위한 금단의 땅. 명치시대에 병부성, 육군성이 들어서면서도 출입금지는 마찬가지. 가나자와대학이 들어서면서 일부에게만 해금됐다가 이 복원을 통해 온전한 시민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을 통해 무형의 일본 전통목조공법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 이처럼 큰 규모의 목조성곽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둥과 대들보를 짜 맞춰 거대한 뼈대를 이루는, 일본 최고의 전통 대목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 복원된 건물 곳곳에 벽 투시공간을 마련해 내부구조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전통목조공법의 산 교육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복원은 과거로의 단순 회귀가 아니다. 미래로의 당찬 발걸음이다. 왜곡의 역사를 떨치고 스러져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전라감영 복원의 진정한 의미도 의당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판소리가 그렇게 좋은 소리인줄 몰랐어요. 듣다보니 그냥 푹 빠져서 끝까지 들었다니까요.며칠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로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다는 친구가 있었다. 누구 소리인가 궁금했는데 김소희 명창이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놀라웠어요. 그 친구 덕분에 판소리 음반을 정리하다 박동진 명창(1916~2003)의 소리를 들었다. 선생은 작고하기 전까지 30여년동안 판소리 무대를 평정(?)해 가장 치열하게 판소리 대중화를 이끌었던 국악인이다. 문득 선생이 열망했던 판소리 대중화는 어디쯤 와있을까 궁금해졌다. 사실 문화의 국경이 허물어진지 오래, 모든 장르가 혼재된 문화충돌의 시대에서 우리 전통 문화를 자리 잡게 하려면 그만큼 치열한 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 치열한 노정을 기꺼이 선택한 명창. 그가 박동진 명창이다. 선생은 전통판소리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이 시대의 언어로 창작판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앞장섰다. 공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열여섯 살에 집을 나와 전국의 이름난 소리꾼들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배웠다. 스승은 정정렬 유성준 조학진 박지홍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명창들. 그러나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소리계보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독창적인 소리로 구축한 창조적 판소리를 개척했다. 판소리연구자들은 선생의 소리를 동편제나 서편제로 분류할 수 없고, 그렇다고 중고제로도 분류될 수 없는 독특한 경지의 소리라고 평했다. 선생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68년, 흥부가 완창발표회를 통해서였다. 당시는 판소리가 거의 사라져가던 시기. 여섯 시간에 걸친 긴 시간동안 관객들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어르고 웃기고 울리는 선생의 소리는 판소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년이나 2년 단위로 완창회를 이어가면서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해낸 선생은 한편으로는 종교와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우리 시대의 창작판소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소리의 재창조 작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까닭이다. 특유의 재담과 타고난 목, 지칠 줄 모르는 소리 공력으로 시대의 언어를 담아 관중을 호통치고 울리고 웃음을 주었던 선생의 무대에는 늘 관중이 몰렸다. 전통과 창조가 따로 가지 않는 무대의 미덕은 자연스럽게 관중을 끌어들여 감동시켰다. 오늘의 무대에서도 판소리 대중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은 아직 공허하다. 선생의 무대를 되돌아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최근 불거진 육군 28사단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했고,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일벌백계 의지를 밝혔다. 야당은 전임 김관진 국방장관 당시 일어난 사건이라며 청와대로 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은 착잡하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너무 자주 터지는 군대 내 구타 사망사건, 총기 난사 사건 등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 마음을 짓누르고 타들어가게 한다. 요즘같은 현실 속에서 ‘군대 보내고 싶지 않다’ ‘군대 간 아들 데려오고 싶다’고 울부짖는 부모 하소연을 누가 탓할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정전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징병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성인이 된 남자는 군 복무의 의무를 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우리 국민은 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남자라면 반드시 다녀와야 할 곳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신성한 군 복무에 임하는 아들들을 두고 누가 부모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윤일병은 비교적 군사 교육훈련 강도가 미약한 의무대에 배치됐다. 그러나 윤일병은 ‘악마의 구타’가 대물림 되는 지옥의 담장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의무대 배치 후 선임병들의 끈질긴 구타에 시달렸고, 자신이 토해낸 오물을 강제로 먹이는 등 치떨리는 악마의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희생됐다. 군 검찰은 조사 후 악마의 구타를 숨긴 채 상해치사죄로 기소했지만, 분노한 국민들은 살인죄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군은 사병들 사이에 벌어지는 구타 사건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대장, 중대장 등 간부들은 사병들의 얼차려, 군기잡기 구타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사병들 사이의 ‘쫄병 길들이기’가 잘 돼야 부대가 잘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위계질서가 잘 잡혀야 조직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간부들의 이기적인 타성이 있다. 이런 조직은 결국 경쟁력을 잃기 마련이다. 쫄병 기죽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군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며 몇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본질을 숨기고 책임을 면하고자 했다. 군 수뇌부가 진실로 ‘싸우면 꼭 승리하는 강병’을 원한다면, 사병을 진실로 사랑하는 간부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 끊임없는 간부 소양교육을 통해 ‘모든 간부의 덕장화’를 이뤄야 한다.
순천 곡성에서 출마해 49.4%를 얻어 당선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56)이 전국적인 히어로가 됐다. 새누리당으로 공천 받아 지역주의 벽을 무너뜨리며 당선된 것은 호남에서 16년 만에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할 정도로 신망이 두터운 이 의원은 선거운동 내내‘머슴론’을 내걸고 지역민에게 다가섰다. 18대 국회 때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호남예산 지킴이로 활약하는 등 호남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진정성에 지역민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 젖힌 것. 4전5기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이 의원은 폐쇄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아이콘으로 벌써부터 큰 활약이 기대된다.30년 가까이 민주당 정서로 살아온 도민들은 이 의원의 당선을 어떻게 느꼈을까. 새누리당 후보라도 진정성이 느껴지면 표를 줘 이제는 당선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지역주의가 깨지는 현상이 감지된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새정치연합의 김부겸 후보는 40.33%라는 값진 표를 얻었다. 특히 대구의 정치1번지라는 수성구에서 47.49%을 득표해 새누리당 권영진 당선자 득표율 49.93%에 거의 육박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야권단일 후보인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새누리당 서병수 당선자에게 1.31% 차이까지 바짝 따라 붙었다. 도내서도 무소속 후보들이 기초단체장에 7명이나 당선돼 야당이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속설을 옛말로 만들었다. 과거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그간 지역주의 덫에 갇혔던 순천 곡성 주민들이 스스로 잘못된 정치구조라는 걸 깨닫고 과감하게 선거혁명을 일궈냈다. 이들은 이 의원을 통해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해서 지역발전을 도모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무소속 돌풍의 불씨를 살려 가야 한다. 다음 총선 때 김부겸 후보가 대구에서 출마하면 금배지를 달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서도 지역감정이 깨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멍청하게 민주당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실리를 챙기기 위한 전략적 투표를 해야 한다. 깜이 되는 새누리당 후보가 출마하면 한두 명이라도 당선시켜야 한다. 20대 총선이 2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전남의 이정현 의원처럼 지역감정을 극복 선거혁명을 전북에서 일궈낼 새누리당 후보가 나와야 한다.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장관이나 박철곤 전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들도 진정성이 부족하다. 도민들 가운데는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살 수 있다고 새누리당에 표를 던지는 소신파가 20% 이상으로 많아졌다. 전북의 이정현을 찾아 금배지를 달아주자.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했다. 더운 기운(暑氣)을 제압하고 굴복(制伏)시킨다는 뜻이다. 무더위를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정복하자는 뜻이겠다. 그러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영양가 많은 음식으로 복달임을 하는 까닭이다. 伏(복)자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이다. 伏을 파자하면 사람 人(인)변에 개 犬(견)이다. 사람 옆에 개가 엎드려 있으니 개는 사람에게 든든한 존재다. 그런 연유인지 복날엔 멍멍이의 희생이 컸다. 그런데 요즘엔 삼계탕을 많이 찾는다. 삼계탕은 계절에 관계 없이 누구나 즐겨 찾는 보양식의 지존이다. 닭고기는 단백질 함유랑이 높고 지방이 적어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다. 삼계탕에 들어있는 인삼 대추 마늘도 더위를 이기는 영양소다. 최근엔 한방삼계탕, 전복삼계탕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계탕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뚝배기에 뜨겁게 끓여낼 때 제 맛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 중의 하나도 삼계탕이다. 삼계탕의 원조로 불리는 서울 서소문의 한 삼계탕 집은 언제 가도 일본, 중국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닭 전문업체인 하림은 일본 홍콩 대만 호주 싱가폴 태국 등 6개국에 삼계탕을 수출하고 있다. 동남아에선 삼계탕 전문점을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삼계탕이 식품위생 점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에 이달부터 수출된다. 축산물의 미국 진출은 삼계탕이 처음이다. 2004년 가금류 가공제품의 수출을 미국에 요구한 지 10년만이다. 수출의 문이 열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국 식품안전조사국의 서면조사, 2008년 현장조사 및 보완 요구, 2010년 현장 재조사 및 보완 요구, 2012년 삼계탕의 대미 수출 법적 근거 마련, 올해 3월 26일 가금제품 수출국가 목록에 한국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 등 복잡한 과정을 밟았다. 하림의 문경민 이사는 “수출업체는 전북의 하림과 경기도의 마니커 두 곳인데 하림은 연간 100만 달러 어치를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계탕의 세계화는 다른 한식의 세계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AI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들에게도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계인들이 이열치열의 심오한 뜻을 알는지 모르겠다. 뚝배기에서 우려낸 뜨거운 음식을 땀 뻘뻘 흘리며 먹은 뒤 “어이, 시원하다”고 하는 그 느낌 말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이/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신동엽 시인과는 대조적으로 서구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수영 시인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물론 여기서 시인이 더러운 역사와 전통을 그 자체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사회의 발전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역사의 뿌리가 없으면 진정성도 없고 진실 없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전통이 없으면 지붕위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위태롭다.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을 때 그 위에서 문화가 싹트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사랑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와 전통을 아끼는 반동으로 잠시 주목을 받고 있는 전주지역에 어느새 불온한 역풍의 징후가 도저하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전통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한물 간줄 알았던 유행가 가락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잘난 외국인 전문가들 모셔다 놓고 전통에 매달려야 하나? 새로운 흐름에 힘을 실어야 하나? 그들 듣기에는 해괴한 질문을 해대면서. 전통과 역사의 단절을 겪어보지 못한 그들에게는 현재 노는 물이 역사요 전통이다. 그러니 기왕의 노는 물을 새삼 챙길 필요가 없다. 전통에 연연하지 말라고 쉽게 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창씨개명에까지 이른 철두철미한 일제식민통치와 미군정 반세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다 잊었고 잃어버렸다. 학문이나 공부에서도 성균관, 향교, 서원 그 어느 맥도 잇지 못했다. 아니 그곳이 무엇 하던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땅의 학생이요 교사요 교수다. 음악이나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고 문학에서조차 그 전통이 개화기를 넘지 못한다. 농민혁명조차 쿠데타로 이어받지 않았던가? 그들의 고상한 조언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아직은 반동이 더 필요할 때다. 내 땅에 뿌리박은 거대한 뿌리의 전통을 확인할 때까지는. 그 뿌리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빨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나마 전통문화의 명맥이라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는 특히나 더. 그래야 그것을 터 삼아 혁신이든 창조든 융합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오사카에 있는 동양도자미술관은 한·중·일 3국의 명품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스미토모 그룹이 기증한 아타카컬렉션을 위해 1982년 11월 오사카시가 설립했다. 아타카컬렉션은 사업가였던 아타카 에이이치(安宅英一)가 평생 모았던 한국과 중국 도자기, 일본 근대미술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은 안목을 자랑하는 수집가였던 아타카는 도자기만도 천여 점을 수집했는데, 이 중 793점이 한국도자기다. 신라토기부터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 종류도 다양하고 수준도 빼어나다. 아타카회장의 회사는 2차 오일쇼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지만, 관리책임을 맡았던 스미토모 은행이 빚을 떠안으면서까지 아타카컬렉션을 오사카시에 기증해 흩어지는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1999년, 이 미술관에 301점의 한국도자기가 더해졌다. 전주 출신 재일교포 이병창씨가 수집한 컬렉션이었다. 초대 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그는 중국도자기 50점과 연구기금을 더해 소장하고 있던 컬렉션을 이곳에 기증했다. 덕분에 동양도자미술관은 한국도자기 연구의 거점으로도 명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미술관은 3층에 ‘이병창 컬렉션’ 전시실을 따로 두었다. 고려시대의 청자상감모란문매병, 조선시대의 청화초화문호와 철사매조문호를 비롯해 걸작이 즐비하다. 조선 정조시대 대표적인 백자항아리로 꼽히는 ‘백자청화 동채 연꽃무늬 항아리’도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동양도자미술관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3년 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던‘이병창컬렉션’ 도록으로 이미 감동 받았던 터였다. 눈과 마음은 기대 이상의 호사를 누렸다. 문득 우리 도자기가 왜 이곳에 기증되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시실 입구 인사말, ‘숙고 끝에 국외에서 한국문화유산을 발창하기 위해 귀한 컬렉션을 일본에 두기로 결심했으며 한일우호친선의 힘이 되고 재일 한국인의 지위향상을 뒷받침 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기증자의 뜻이나 ‘이러한 깊은 사려와 뜨거운 기대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미술관측의 답이 의미심장했다. 알려진 일화가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이병창씨는 국립박물관에 자신이 아끼던 백자를 기증했다. 그는 백자를 온도 습도를 맞춰 전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설비가 미흡한 박물관으로서는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가 다시 한국에 와 다시 백자를 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병창컬렉션’이 도자미술관에 기증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5년 전 정부는 아파트 인동거리(동간거리)를 완화했다. 자치단체들은 아파트 건물 높이의 1배인 인동거리를 0.8∼0.6배까지 줄이는 조례를 제정했다. 인동거리 0.6배가 적용되면 100m높이의 아파트 동간 거리는 60m로 줄어든다. 줄어든 40m는 입주민들의 일조·프라이버시·조경을 침해한다. 반면 건설사 배를 채운다. 아파트 주민에게 건물 높이와 일조, 바람길은 중요하다. 인동거리가 짧아 주민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채광이 부족하고, 바람이 솔솔 들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진다. 전주 서부신시가지에서 도청 건물은 고층이다. 그런데 내년이면 고층 축에 못낄 전망이다. 도청 앞 삼천변의 상업지구에서 42층, 36층 등 초고층 아파트들이 쑥쑥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42층 주상복합 스카이타워는 5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아파트와 도청 사이에 공원이 있고, 삼천은 천혜의 공원이다. 남향으로 모악산이 쑥 들어온다. 아파트 코앞에는 음식점과 술집, 모텔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동간거리는 불과 8m다. 아파트 동간거리로는 상식 이하다. 게다가 고층으로 지을 수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상업지구에 들어서는 건물은 공동주택의 인동거리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상업지구 내 아파트 사업은 돈방석 사업인 셈이다. 아파트 숲 전주는 ‘고열의 도시’다. 전문가들은 아파트가 바람길을 막아 전주 열섬현상이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1층을 필로티로 설계해 통풍이 원활하도록 해야 열섬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주시는 담당 부서 명칭을 ‘푸른도시조성과’로 만들어 부르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백만그루 나무심기 사업도 벌였다. 그러나 요즘 전북도청 앞 상업지구에서 공사가 한창인 스타힐스, SK뷰, 힐스테이트, 아침도시, 스카이타워 등 고층아파트울타리를 보면, 전주시의 도시정책 수준이 의심스럽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믿을 수 없다. 청정한 도시 환경은 뒷전이고, 바닥난 전주시 곳간과 토목건설업자 금고만 생각한 행정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상업지구에 들어서는 아파트는 돈덩어리다. 저층은 상가로 분양하고, 인동거리 제한없이 고층 아파트를 올려 분양한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울 수 없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주었는가. 이럴 바에야 도시개발하면서 용도는 뭐하러 미리 정하는가 싶다. 그때 그때 되는대로 용도를 정해 팔면 될 것을 말이다.
도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관은 어디일까. 전북대학교다. 그 이유는 지난 8년 동안 구성원들이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2000년대 중반 무렵 전북대는 교수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 않고 일부 교수들이 연구비나 횡령하는 학교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실력 있는 학생들이 유입되지 않고 설령 입학했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학 해가는 추세였다. 거점국립대학이란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학교 위상이 곤두박질 쳐 40위권도 벗어났다. 서거석 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전북대는 달라졌다. 취임초 서 총장이 내걸었던‘국내 10대 세계100대 대학’이란 목표가 달성될지 모두가 의아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 총장 자신부터 강도 높은 개혁작업을 벌이면서 학교 위상이 지난해 말 12위로 껑충 뛰는 쾌거를 달성했다. 전북대는 올 10월 총장을 공모제로 선출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의 편입학이 보편화 돼가고 있는 추세하에서 어떻게 학교 위상을 고수해 나갈지 고민스럽다.교수회와 총장 선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타 대학과 같이 전북대도 결국에는 간선제로 총장을 뽑아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교수를 총장으로 뽑아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금 10명 후보가 자신이 적임자라고 외쳐대지만 학내외 여론을 종합하면 빅3 정도로 압축된 분위기다. 선택 기준은 첫째로 대학 본연의 기능이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므로 전공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이룬 학자인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래야 총장이 된 이후 영이 서서 거대한 조직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덕목은 경영 마인드다. 국가예산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 그 능력 여부다. 지금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예산 확보는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국회나 행정부에 인맥이 없으면 국가예산을 마음 먹은대로 확보할 수 없다. 후보 가운데는 욕심만 많지 서울 지리가 서툰 것은 물론 도내 국회의원들조차 소통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예산 확보하는데는 지역을 뛰어 넘어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과도 긴밀한 협조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산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인적네트워크가 종횡으로 잘 구축된 후보를 선택해야 옳다.차기총장 때는 학령인구 저하에 따라 신입생 확보부터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 또 계속된 구조조정에 따른 피로감 확대로 학내 자율성이 훼손될 우려도 안고 있다. 오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전북호를 구하려면 전북대 총장을 잘 뽑아 전북대가 명불허전임을 보여 주면 될 것 같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참여정부 때 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부안 출신의 최석식 상지영서대 총장은 한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이었다. 행시(19회) 출신으로 과학기술부 연구개발국장과 과학기술정책실장,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그가 차관 시절 한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경상지역 대학교수들은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사업이 확정되기도 전에 찾아와 과학기술 예산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던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전북의 대학들은 그런 일이 없더라.” 정보에 어두워 예산을 흘려보낸 사례를 지적한 것이다.공무원들도 중앙부처에 인맥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서기관 시절 “전북출신 공무원을 창 밖에서 손짓으로 불러내 예산서류를 전달하곤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부처에 전북출신이 없다 보니 드러내 놓고 로비할 상황이 아니었던 탓이다. 반면 경상도 지역은 상공회의소 등이 마련한 ‘윤활유성 비축물량’까지 싸들고 다니며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도내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느끼는 정서도 비슷하다. 경상도 지역 매체는 부처에 고위 관료들이 많다 보니 정보량도 넘쳐나고 찾는 발길도 북적댄다. 그런데 전북은 그렇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의 1기 내각 장·차관급 116명 중 전북 출신은 고작 4명(3.4%)뿐이었다. 지난주 장·차관급 13명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이른바 2기 내각이다. 그런데 전북 출신은 단 한명도 끼지 못했다. 행정 부처는 17부 3처 18청이다. 장·차관급 자리가 38개에 이르는 데도 전북 출신이 한명도 없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물부재? 아니면 아예 씨앗을 말리겠다는 의도? 헤아릴 길이 없다. ‘전북 무장관 무차관’의 2기 내각은 ‘송하진 도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업·관광·탄소와 새만금 등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모두 정부 예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중앙부처가 돕지 않으면 헛바퀴만 돌릴 수 있다. 예산과 사업 등 일은 사람이 한다. 고위직에겐 정보력과 의사결정권이 있다. 장·차관 인사에 관심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영남 중심의 편중인사가 지속되다 보니 향후 차관에 오를 인재마저 씨가 말라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들의 한탄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도 전북 정치권은 화 낼 줄도 모른다. 과거엔 안 그랬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 세상에 의미 있는 일치고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학문이나 예술은 물론 사랑까지도 온전히 자신을 잊는 오랜 몰두가 있어야만 빛나는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 황동규 시인은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광기의 열정과 헌신이 전제되어야만 우연에 기대는 것도 가능하다. 이 미치광이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현실적 조건이라도 장애가 될 수 없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을 불러일으킬 여건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분발을 촉구하는 자극제일 뿐이다. 밀턴은 시력을 잃고도 <실낙원>, <복낙원> 등 위대한 서사시를 썼으며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하고도 합창 교향곡, 장엄미사, 후기 현악사중주 등 인류 최고의 유산을 남겼다. 상업화, 산업화에 저항하며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시와 그림으로 그려낸 영국 최고의 낭만시인 블레이크는 아예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산으로 부식해 그린 동판에 직접 채색을 하여 오랜 공정을 거쳐 어렵게 찍어낸 그의 시그림은 그 내용도 혁명적이지만 그 생산방식도 광적인 열정의 몰입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의 것이다. 이들에게 현실에의 순응은 죽음일 뿐이다. 습관, 인습에 젖는 것은 진부함(cliche)을 용납하는 것이요, 이런 상투성이야말로 예술 생명의 포기에 다름 아니다. 하여 이들은 항상 우리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이방인이요 아웃사이더다. 버림받아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한 이들은 때로 저주받은 존재, 추락한 천사로 불리기도 한다. 길에서 죽은 포우나 그를 떠받들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처럼.문제는 이것이 먼 나라의 옛날 얘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중심인 한옥마을, 슬럼화한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켜온 미치광이들! 이 문화예술 공예인들의 광기어린 열정 덕분에 이 마을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그런데 이제 이들이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선지자들처럼. 돈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이 거리에서 예술혼을 들먹이는 일은 미치광이의 넋두리, 상업성에 휘둘리면 민원이 가장 많던 옛 슬럼가 시절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해보지만 이미 황야를 맴도는 선지자의 허한 울부짖음 취급이다.하기야 어느 역사에 죽은 시인의 사회 아닌 시절이 있기나 했나?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전주의 구도심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더디긴 하지만 거리는 새로워지고 있고, 옛 주인들이 떠나간 자리는 새 주인을 맞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손님들을 맞는 가게들이 있다. 중앙동 옛 전북도청 근처에 있는 태고당도 그 중 하나다. 태고당은 옛 물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렀을법한 오래된 골동품 가게다. 골동품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 골동품 거래가 성했던 전주의 명성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전주의 번성했던 골동품 가게들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폐업을 하거나 더러는 다른 동네로 이전해 문을 열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팔고 살 물건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었다. 물건은 나오지 않는데 가격은 예전만 못한 현실은 골동품 가게의 급격한 위축을 가져왔다. 우리의 옛 물건이 놓였던 자리에 중국의 값싼 물건이 놓이기 시작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한때 시내권에서 이주한 골동품 가게들이 완산동 용머리고개 인근에 하나둘 문을 열면서 그 일대가 골동품 거리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자취도 희미해졌다.태고당은 1983년 문을 열었다. 당시 전주에서는 운학당이나 고려당, 만물상 등 이름난 골동품가게들이 뒤를 이어 문을 닫고 있을 때였다. 역시 예전 같지 않은 골동품 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간상인으로 일정한 공간 없이 돌아다니며 골동품을 사고팔았던 태고당 주인은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게를 차린 후, 전주에서 가장 큰 골동품 가게로 번창시켰다. 부침이 심한 골동품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길을 온전히 지켜온 덕분이었다. 태고당은 30여 년 동안 골동품 마니아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었다. 지금도 이 공간에는 삼국시대 토기부터 오래된 음반까지, 일상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제 가치를 알아보아주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게 안을 채우고도 넘쳐 밖으로 나온 오래된 물건들은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오래되고 작은 것일수록, 일상 속에서 친숙한 것일수록 애잔함도 진하고 호흡도 깊다. 이 세상에 쓸모없거나 버려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 공간은 가르쳐준다.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넘쳐나지만, 정작 전주가 지켜온 가치 있는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그래서인가. 태고당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최근 건설협회 전북도회가 300억 원대 농협 전북통합본부 신축공사 참여 확대를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 어느 정도는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농협본부 신축공사에 도내 업체가 30% 이상 의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그동안의 요구가 수용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농협의 건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NH개발은 설계와 시공을 일괄 발주하는 턴키방식 입찰을 전격 취소했다. 그리고 앞으로 지역업체들이 농협 대형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전북 건설업계는 300억 원대 전북농협통합본부 신축공사와 관련, 지역 업체들의 참여 지분 확대를 요구했다. 낙찰 대기업이 30% 이상을 지역업체에 하도급하도록 의무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농협 거래 중단, 농협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했다. NH개발은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했지만 결국 지역 건설업계의 강도높은 압박에 애초 입장을 철회한 것이다. 농협지역본부 통합청사 신축 입찰은 충남과 충북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NH개발은 지난달 턴키입찰을 진행했고, 충남통합본부를 제외한 전북과 충북은 유찰됐다.당시 충남통합본부 입찰의 낙찰 업체는 계룡건설이다. 계룡건설은 충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건설 대기업이다. 계룡건설은 입찰시 지역업체와 40%의 공동도급을 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전북 연고의 1군 건설업체가 있었다면, 계룡건설처럼 지역업체 참여를 대폭 확대한 PQ(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 서류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건설협회 전북도회가 NH측에 무리한 압박을 가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북에는 계룡같은 업체가 없다.전북은 몇 년전부터 1군 건설업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건설시장이 무너지면서 줄줄이 좌초됐다. 전북혁신도시는 요즘 건설경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지역건설업체들은 쥐꼬리 공사만 하고 있다. 규모가 큰 공동주택 대부분은 타지업체인 호반건설, 중흥건설, 우미건설, LH 등이 지었다. 지역 건설업계가 혁신도시 노른자위 땅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에 외지업체들이 엄청난 돈벌이를 하고 지나갔다. 요즘 정부는 복지에 매달려 SOC를 축소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의 타지역 진출은 거의 없다. 전국 대비 2% 경제권에서 나눠먹을 파이는 뻔하다. 결국 지역 건설업계는 농협 청사 하청에 목매는 신세가 됐다.
전북대가 혁신을 통해 학교위상을 확실하게 살려냈다. 지난 2007년 서거석총장이 취임하기 이전만 해도 전북대는 대학평가에서 43위를 기록, 거점국립대학중 가장 경쟁력 없는 대학으로 낙인 찍혔다. 70 80년대는 SKY대학을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전북대에 지역 인재들로 북적였다. 74학번 때는 법학과와 행정학과에서 사시와 행정고시에 10여명 이상이 합격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타 시도와 경제여건이 비슷했던 80년대 중반 무렵에는 가난한 인재들이 전북대에서 청운을 꿈을 꿨다. MB 때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가 사시 행시 양과에 합격했고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권춘기씨와 박성일 완주군수 등이 행시에 합격했다.서울공화국이 형성되면서 전북대도 예전처럼 우수한 학생들이 유입되지 않고 서울로 빠져 나가 침체의 늪을 거듭했다. 연구에 전념해야할 교수 가운데는 연구비에 눈 멀 정도로 잿밥에 관심이 많아 사법처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연구해야 할 교수 가운데는 유흥음식점과 골프장을 전전긍긍하는 바람에 지역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논문 한편 제대로 안 써도 월급 나오는 철밥통 대학이 되다 보니까 학교 위상이 곤두박질 쳤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까 우수한 학생들이 전북대로 유입된다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 없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북대는 비전 없는 암울한 대학이 돼 도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그랬던 대학이 서 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 총장은 먼저 교수채용 기준을 강화했고 시간만 지나면 승진했던 승진요건을 확 뜯어 고쳤던 것. 교수 승진요건을 종전보다 4배로 강화했던 게 주효했다. 처음에는 교수들의 저항이 심했지만 워낙 서총장의 개혁의지가 확고해 이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결과 2013년도 공시 기준으로 전임교원의 1인당 SCI 논문수면에서 거점국립대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전북대가 거둔 성과는 땀의 결정체다. 총장 자신부터 자기 혁신을 가져온 게 이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서 총장 취임 당시 내건 ‘국내 10대 세계 100대학’이란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구성원부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올해 대학특성화사업 분야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해 향후 5년간 350억의 국비를 지원받고 잘 가르치는 대학 평가에서도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평가로 인구수와 경제규모로 영향 받는 평판도를 제외하면 전국 12위에 랭크돼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든 전북대 구성원 모두에게 도민들이 박수 보내면 어떨까.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전주 화약(全州 和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