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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주 썬플라워 웨딩홀. 정년퇴임식이 열린 이 곳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무슨 전달식 등의 헐렁한 의식이 진행된 뒤엔 단가와 아리랑 곡조가 어울어진 흥겨운 소리판이 벌어졌다. 여자 명창은 전라도 사투리로 분위기를 띄운 뒤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단가 '사철가'와 '쑥대머리'를 불렀다. 하객들이 추임새를 넣지 않으면 혼도 내고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흥을 돋궜다.그런 뒤엔 '진도아리랑'을 불러 하객들을 소리판에 끌어들였다. 하객들은 자연스럽게 아리랑 가락에 맞춰 박수치고 명창과 함께 노래하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소리판은 명창과 150여명의 하객, 정년퇴임하는 주인공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단가는 본격적인 창을 하기에 앞서 부르는 짧은 노래다. 목을 푸는 예비적 기능도 하지만 청중을 소리판에 주체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단순히 남의 놀이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 사설의 이면에는 인생무상과 풍류적 정서가 깔려있다. 이런 걸 보면 정년퇴임식장의 메뉴로 딱 좋다. 퇴임식장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든 건 탁월한 식견이다.또 하나는 맛보기일 망정 소리의 고장다운 걸 보여준 것도 효과다. 이 자리에는 지역 인사들 외에도 마산 출신으로서 전북에서 행정부지사를 지낸 이성열 대한지적공사 사장과 전국의 각 지역본부장들이 참석해 있었다. 이들은 "소리가 있는 퇴임식은 처음"이라며 "소리의 고장의 참 멋을 느낄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고 한다.퇴임식이 끝난 뒤 각 지역본부장들은 본사가 들어설 전주혁신도시 예정지와 새만금을 시찰했다. 동료의 이색 퇴임식도 구경하고 본사 신축부지도 둘러보고 전국적 이슈인 새만금도 둘러봤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주은 격'이다.정년퇴임의 주인공은 권영길 지적공사전북본부장이다. 익산부시장과 두차례 전북도 건설교통국장을 지내고 노조 추천으로 공사에 임용됐다. 퇴임식장에 소리판을 벌인 것도 그다. 자비를 들였다. 마음 먹기에 따라선 일석삼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좋은 사례여서 소개했다. 매년 퇴임식이 열린다. 이제는 정년퇴임식 하면 연상되는 엄숙주의와 고답적인 의전을 깨뜨려보자./이경재 논설위원
네덜란드는 이번 남아공 월드 대회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네덜란드는 누구나 인정하듯 축구 강국이다. 온 국민이 축구의 열성 팬이다. 바다 수면이 육지보다 높아 항상 물과의 전쟁을 해야만 했던 그들은 축구가 그들 국민성에 부합되었는지도 모른다.바다와 싸워 이긴 그들의 저력이 오늘의 네덜란드 축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가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하느님이 만드셨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태고적부터 네덜란드인은 바다와 싸우면서 바다를 막고 간척을 하여 오늘의 네덜란드를 만든것이다. 그들의 진취적 기상은 세계로 뻗어나갔다.네덜란드를 우리는 화란(和蘭)이라고 불렀다. 16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홀랜드'란 이름은 없었고 '바다보다 낮은 지방'이라는 뜻의 '네덜랜즈'였고 홀랜드는 네덜랜즈 북부의 일개 주(州)였다고 한다. 네덜란드 즉, 화란과 우리와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화란인이 우리 한국에 최초로 표류해 온사람이 '얀 냔세 웰테프레'이다. 그는 인조 2년, 1628년에 표류한것이었다. 그의 이름이 '얀'이기에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연(淵)'으로 바꾸어 '박연'이 된것이다. 박연은 추운 겨울에도 화란의 풍습대로 솜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며 한국에 정착하여 외인부대로써 병자호란에 참전하기도 했다.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딸 둘을 낳고 살았다. 박연이 표류하고 26년이 지났을때 화란 상인인, 하멜 일행이 일본 나카사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통역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박연이었다. 박연도 하멜 일행을 만났을때는 자기 모국어인 화란어가 잘 나오지 않아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근 30년동안 화란말을 사용치 않았으니 자기 모국어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하멜 일행은 한국에서 어렵게 생활을 했으며 그의 일행중 8명이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화란으로 돌아갔다. 화란에서 하멜은 그가 겪은 조선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 조선을 처음 화란에 알린 것이다. 2002년 월드 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올린 사람이 화란인 히딩크였다. 화란은 유럽에서 영어 독어 불어가 가장 편하게 통하는 나라라고 도 한다./장세균 논설위원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난초4)바람이 소슬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별)가람 이병기(1891-1968)의 주옥같은 시조다. 초중고 교과서에 실리거나 가곡 등으로 작곡돼 널리 애송·애창되고 있다.국문학계의 큰 별로 존경받는 가람은 3복(福)을 가졌다고 자처했다. 술복과 난초복, 제자복이 그것이다. 그는 청탁(淸濁)을 불문했고 말년에 뇌일혈로 10년 동안 쓰러져 누운 것도 술 때문이었다. 또 그는 난초를 무척 사랑했고 수많은 난초를 길렀다. 난초에 관한 명수필과 시조도 다수 남겼다. 제자복 역시 많아서 국문학계의 쟁쟁한 학자들과 시인들을 키워냈다. 선비다운 풍류와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하지만 진짜 업적은 따로 있다. 가람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데 앞장섰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또 묻혀있던 우리의 고전작품을 발굴해 냈으며 판소리 연구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현대시조 증흥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이런 가람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생가(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가 무너지고 깨져 흡사 폐가처럼 되었다고 한다. 한쪽 담장이 무너지고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과 곤충 사체가 즐비하다는 것이다. 뒷뜰 대나무숲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다고 한다.익산시는 5년전 이곳에 가람문학관을 건립하고 이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산타령만 할뿐 방치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이곳을 '가람시조마을'로 확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일대 2만㎡의 부지에 130억 원을 들여 시조문학관 건립은 물론 체험관, 테마길 조성 등 한국시조문학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제발 이번에는 헛약속이 아니었으면 싶다. 자랑스런 인물을 번번이 욕되게 해서야 되겠는가./조상진논설위원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생물학적 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몸이 어느때 잠자야 하고 , 먹고, 일어나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역활을 하고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을 관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환경변화는 생물학적 시계의 적응을 어렵게 만들수도 있다.이럴때, 사람은 외부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게되고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이 깨지고 만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생물학적 시계뿐만 아니라 정신적 시계도 있다는 것이다 . 현재에 살면서도 현재의 변화를 모르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의식의 초점이 고착된채 살아가는 것이다.이런 증상이 심할때는 정신적 질환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60년대나,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교포들이 그동안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지 못했을 때는 지금도 한국은 독재자 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도 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정신적 시계는 40년전의 과거에서 멈추어져 있는 것이다.일반인들의 정신적 시계보다도 정신적 시계가 과거 60년대나, 70년대에 고착되어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투적 투쟁을 해야 하고 미국은 후진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제국주의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투쟁적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숨가쁘게 위를 향해 발전해왔다.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후 대통령 단임제 실시, 그리고 지방자치제 실시, 전국 공무원 노조 인정 ,다양한 시민단체 등장등 민주주의에 대한 하드웨어는 그런대로 갖추어진 셈인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보완 차원의 소프트 웨어적 개선작업이 남었을뿐이다.개선이나 개혁이 필요할뿐 전투적 혁명은 구시대 작품이다.20세기말 세계 그리고 지금도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속에 있다. 지금은 급변하는 세계에 어떻게 적응할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때이다. 그런데도 1960년대나 1970년대식 아날로그적 정신적 시계를 들이대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일수밖에 없다. 강대국들에 에워쌓인 한반도는 과거 고착적, 정신적 시계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 정신적 시계가 요구된다./장세균 논설위원
도내에 공항이 없어 도민들이 겪는 애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외국 나갈 기회가 잦아졌지만 공항이 없어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다.남들은 다 디지털 시대에서 살지만 도민들은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것 같다.시간 경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글로벌이니 디지털이니 하는 말들이 한낱 사치스럽다.군산공항이 있지만 미군 공항이어서 제주도만 오가는데 이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공항은 밖으로 나가는 신발과 같다.전북은 공항이 없어 육지속의 섬으로 전락한지 오래다.도민들이 외국 한번 나가려면 비행기도 타기전에 파김치가 돼 버린다.4~5시간 이상씩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을 오가기 때문에 탑승 전에 이미 녹초가 돼 버린다.출국 2시간 전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하므로 잠도 못자고 꼭두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외국으로 관광 간다는 기쁨도 잠시일 뿐 개고생만 한다.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시간이 있어 낫다.그러나 외국 관광객이나 바이어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주나 도내 다른 도시를 올려고 하겠는가.전북이 뒤쳐진 원인 중 하나가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관광이나 새만금에 대한 해외 투자객 유치가 이래서 경쟁력이 없다.외국 투자자나 바이어들은 공항에서 1시간권 밖이면 쳐다 보지도 않는다.그래서 대기업 공장 주변에는 공항과 항만이 붙어 있다.그간 도가 공항 건설을 위해 애를 썼지만 남은 것은 김제공항 건설부지가 배추 밭으로 변해 있는 것 밖에 없다.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두 정권 때 김제공항을 건설했어야 옳았다.지금껏 도내에 공항이 없는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 결정적이다.그간 국회의원 지내면서 호의호식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그 때 기회를 못잡아 지금 이 모양이 꼴이 되었다.김완주지사가 새만금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은 먼저 공항문제부터 풀고 넘어가야 한다.그래야 새만금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지금까지 미군을 상대로 힘겹게 군산공항 확장이나 국제선 취항 보다는 차라리 김제공항을 건설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김제 시민들을 설득해서 공항을 건설해야 전북이 산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토착비리라는 말은 지역주민들이 듣기에 매우 거북한 표현이다. 지역 전체, 또는 구성원들이 마치 비리집단인 것처럼 비칠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토착비리는 없어져야 할 대상임엔 틀림 없다. 사회질서를 깨뜨리고 경제행위를 왜곡시키는 사회악이기 때문이다.과거 토착비리의 주인공들은 대개 지역 유지들이었다. 힘 깨나 쓰는 유지들이 권력과 결탁해 잇권에 개입하고 이득을 취하는 따위의 행태들을 보였다. 인허가와 공무원 인사, 공사 수주나 단속 무마 조건의 잇권 챙기기 수법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과거 전북지역에 나돌았던 '5적(賊)'이 좋은 예다.이젠 토착비리도 진화하고 있다. 민선 이후 지역의 권력이 단체장에 집중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아무리 유력한 유지라 할지라도 단체장·지방의원 선거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개 털'이나 다름 없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지역의 권력의 핵심이고, 주변 세력들이 과거 유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동에 따른 토착세력의 판도가 변환되고 있다.이런 구조적 변화를 이해 관계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새롭게 부상한 이들 권력의 핵심과 연(緣)을 맺기 위해 분주하다. 단체장은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 비리도 선출직과 관련한 구조적인 비리로 특화하고 있다. 이른바 '신(新) 토착비리'다. 토착비리를 없앨라치면 이들 핵심에 대한 정보와 관리가 첩경일 터이다.이런 유형의 비리가 터진다면 단체장도 그 책임을 벗기 어렵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본인만 도리질 친다고 부정되겠는가. 다산(茶山)이 강조한 목민관의 표상은 청빈과 청렴이었다. '청렴한 목민관의 행장은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책 한수레쯤이면 된다'고 했던가.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형제들 조차 관저에서는 만나지 않았다.단체장·지방의원들한테 다산과 호치민의 철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캠프사람만 끼고 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신 토착세력의 특권적 행태를 부추길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깜'도 안되는 인물을 특정 자리에 앉혀 막걸리집 안주꺼리가 되고 있다. 어느 사업은 누구한테 간다는 소문도 나온다. 선거가 끝나면 비리의 시작이다./이경재 논설위원
백두산은 애국가에도 나오는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이자 만주 여진족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중국 청나라때는 백두산 근처에 못들어가도록 금족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요즈음 백두산의 지진 빈도수가 급격히 늘고 마그마 상승으로 분화구 산체가 부풀어 올라 머지 않은 장래에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기하고도 있다.화산 폭발의 재앙은 실로 엄청나다. 기원후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폼페이 도시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화 된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과거 10세기에 일어났던 백두산의 화산 폭발은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의 50배 규모였다고 한다.이런 엄청난 화산 폭발의 흔적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도호쿠 지방이나 핫코다 산지와 같은 산악지대 또는 삿뽀로 ,하코다테, 무카와 등 홋카이도 광활한 지역 어디에서도 백두산 화산재가 발견된다고 한다.역사학게 정설로는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발해의 멸망 원인을 백두산 화산 폭발과 연관시키는 새로운 학설도 있다.일본에서 최초로 백두산, 도마코마이 화산재를 발견했던 도쿄 도립 대학의 마치다는 1992년에 "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바 있다. 강연의 서두는 소원주씨가 저술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이란 책속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이라는 오늘의 주제를 보면 마치 화산 분화가 발해 멸망의 원인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것 뿐입니다. 진실의 역사는 무미건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수년이 지나서 오늘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그 옛날 발해 한복판에 위치했던 백두산의 약 1000년전 분화는 대단한 규모의 것으로 인간과 그 주변 자연환경에 초래한 영향이 매우 컸다는것은 분명합니다.그것과 발해의 멸망과의 관계에 대해 결론을 얻기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백두산 화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정부 수립 초기, 카리스마가 강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법부를 마땅치 않아했다. 판결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는 김병로 대법원장이 대표적이었다.그래서 이 대통령은 법조계 인사들을 만날 때면 "헌법 잘 계시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깎듯이 대하고 어려워 했다고 한다.9년 4개월 동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8-1964)는 우리나라 사법의 뼈대를 세운 분이다. 그가 정치 권력으로 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추앙받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항일운동 경력이다. 가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순창에서 최익현의 의병에 가담했다. 또 100여 건 이상의 항일변론을 맡았다. 6·10 만세운동, 백두산 펑펑고을 화전민사건, 대구 학생 비밀결사, 광주학생사건, 안창호 변론 등이 그것이다. 그러기에 이승만 등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둘째는 해박한 법률지식이다. 가인은 경성전수학교(서울대 법대 전신)에서 유일한 조선인 교원으로 그의 명강의는 유명했다. 명쾌한 논리와 방대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 법전편찬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세째는 강직한 성품과 청렴한 생활이다. 공사(公私) 구분이 추상같았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법원 직원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했다. 1957년 이임사에서 "전 사법 종사자에게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명예롭기 때문이다"고 말할 정도였다.대법원이 이러한 가인을 기려 그의 고향인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에 '가인연수관'을 세웠다. 심적산과 추월산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담양호와 가인이 어릴 적 공부하던 낙덕정을 굽아보는 곳이다.116억 원을 들여 1년 5개월만에 완공한 이 연수관은 8만303㎡(2만4291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시설은 객실, 세미나실, 강의실, 천연 잔디구장 등을 갖췄다. 판사와 법원 공무원들의 단체행사, 연수, 세미나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개관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가인은 법관의 인격수양과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가인연수관이 사법종사자들의 인격수양과 휴식에 요긴하게 쓰였으면 한다./조상진논설위원
정부가 지방 자치단체의 호화 또는 과대청사를 막기위해 신축청사의 최대면적을 제한한다고 한다.아울러 지자체 단체장의 집무실 면적기준도 제시됐다.이런 내용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속에 담겨 있다.지자체가 열악한 재정 자립도 개선은 생각지 않고 호화 청사 짓기에 열을 내고 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대표적인 예가 성남시 청사이다. 성남시는 인구가 95만명인데 새로 신축된 청사의 연면적은 무려 7만 4452 평방미터에 지하 2층에 지상 9층 건물이다. 건축비와 토지 매입비 총액이 무려 3200억원이다.이런 아방궁 같은 청사는 지난해 국정 감사때도 '한국판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지적을 받은바 있다. 사실상, 시 청사나 군 청사는 일반 시민들의 이용 빈도수가 극히 적다. 오히려 동사무소 ,즉 주민센터가 일반 시민들과 행정적으로 더 밀착되어 있는 편이다.호화 청사란 대부분,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을 좋게 할뿐 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별로 없다, 호화 청사를 짓는데 아무런 제동 역활을 못하는것이 또한 시의회, 군의회이다.그리고 의원들의 제동과 입을 막기위해 의회 청사나 의장 집무실을 호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전략적이다.지난 2008년에도 전북도의 일부 시군 청사가 행안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호화청사라는 지적에 따라 교부세가 삭감되기도 했다. 행안부는 자치단체의 호화청사 운영을 방지하기 위해 교부세 산정방식을 개선하여 호화청사를 예산 낭비로 간주하고 교부세를 삭감키로 한것이다. 호화청사에 근무한다고 공무원들의 근무자세가 좋아지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官)은 높고 백성은 낮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장신만을 조장할뿐이다. 호화청사는 국민들에게 친밀감보다는 오히려 이질감만을 줄뿐이다.호화청사를 빗대어 하는 말이 아방궁(阿房宮) 청사라고 하는데 아방궁을 진시황제가 지을때 죄수 70만명을 동원했다. 아방궁은 죄수들의 땀으로 지어 진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호화청사는 주민들의 혈세(血稅)로 지어진 것이다. 정부가 아방궁 청사건축에 제동을 건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으나 환영할만한 조치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새만금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처럼 소개되고 있다.유토피아 인 것처럼 말이다.정말 그럴까.역대 지사들이 새만금을 희망의 땅으로 열나게 홍보한 탓이다.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만큼 고비 때마다 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비전 없는 전북에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새만금은 전북의 희망이므로 장차 성공하면 우리나라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김완주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새만금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까지 떠올리면서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말은 옳은 말이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준공기간을 10년 앞당겨 내년부터 해마다 국가예산 1조원씩을 쏟아 붓어야 내부개발을 마칠 수 있다.19년간 2조9천억원을 들여 33㎞를 막은 액수에 비한다면 21조는 천문학적이다.노태우·김대중 간 정치적 합의로 태동된 사업이어서 논란이 많았다.개발론자와 환경보존론자는 걸핏하면 쌍심지를 켰다.개발론자들은 솔직히 새만금을 너무 많이 팔아 먹었다.선거 때마다 지사나 국회의원 할 것 없이 새만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처럼 새만금을 갖고 놀았다.새만금사업은 만병통치약이요 요술방망이와 같았다.걸림돌에 부딪치면 막고 품는 식으로 뚫고 나갔다.안되면 그 때마다 관제데모대를 불러 들이면 그만이었다.새만금이란 단어가 전북에서는 희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민을 우민화시키는 면도 있었다.때로는 정략적 발상에 따라 도민들을 동원 체계화 한면도 없지 않다.새만금을 도민들의 뇌리에 하나의 신앙심으로 똬리 뜰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없다.외화내빈격이나 다름 없다.지금까지는 바지락 양식장 사가지고 보상 받아 떼부자 된 사람이나 정치적으로 새만금을 가지고 놀아 정치적 이득을 챙긴 세력들만 득의만면하다.앞으로 내부 개발 사업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지만 김지사의 취임사에는 이같은 구체적 방안이 없다.수질개선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그간 특별법이 만들어져 내부개발이 탄력을 받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정부 의지가 없어 내부개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최근 방조제 일부를 헐어 배가 드는 통선문을 설치하려는 의도는 또다시 해수유통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김지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는 1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백화점을 지키는 경비보안 조장은 백화점 건물 옥상의 컨크리트 바닥 대부분이 균열로 인해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깨져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사고 나기 1년 전이었다. 이 사실을 상부에 알렸지만 언제나처럼 묵살됐다. 사고가 난 뒤 그는 인터뷰에서 "윗 대가리가···"라며 원통해 했다. 따지고 보면 조직내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부른 사고였다.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비슷한 케이스다.소통(疎通)을 뜻하는 커뮤이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s(공통· 공유)가 어원이다. 동사 communicare는 '같이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조직내 상하· 동료 간에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문제다.소통할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핵심이다. 노나라 임금 이야기는 좋은 예다. 우연히 날아온 바닷새를 노나라 임금이 데려와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주면서 극진히 대우했다. 그러나 새는 슬퍼할뿐 음식도, 술도 한모금 먹지 못한 채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진정으로 새를 기르고 싶다면 사람의 방식이 아닌 새가 원하는 것을 주어 길러야 한다는 우화다.주변에 '껍데기 소통'들이 많다. 말로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사는 사람, 내 생각만이 선(善)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듣는 것으로 그만인 사람, 자신한테 불리할 것 같으면 서둘러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 등등.선거 때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민선 5기 단체장들의 공통된 화두가 소통이다. 김완주 지사가 "민선4기 행정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쌍방향 소통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소통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늦게나마 다행스럽다.하지만 대화의 자리만 갖는다고, 얘기만 듣는다고 소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지사가 아닌 주민, 시군, 직원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사 자신이 변화해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 소통일 뿐이다./이경재 논설위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란 일본 경제성장의 침체 시기이다.지금도 일본 경제 동력은 예전이 아니다. 여기에다 일본의 대표적 국가 브랜드였던 도요타가 리콜사태에 부딪쳐 곤혹을 치루었다. 나라가 어려우면 과거속에서 영웅을 찾는법이다.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사카모토 료마'가 뜨고 있다. '료마'는 지방의 하급무사로 태어나 에도에서 검술을 익히며 왕정복고(王政復古)주장과 왕정을 따르되 서양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존왕양이'운동도 접하였다. 그는 짧은 33세의 인생에서 유연한 발상과 탁월한 협상력, 추진력을 발휘했다. 일본인은 료마의 리더쉽을 그리워 하고 있다.한국은 일본인에게는 제 3국이다.외국도 일본 자국도 아닌 그중간인 제3 국인것이다.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는 고령사회이다. 4명중에 1명은 65세 이상이다. 일본의 정치구조는 파벌로 엮어졌다. 파벌내에는 자기들의 일정한 질서가 있다. 파벌의 수장이 되어야 총리의 물망에도 오른다. 파벌의 평범한 멤버가 수장까지 오르려면 많은 세월이 결린다.그래서 대부분 총리의 나이가 70세가 넘었던 것이다. 일본 사립 대학들의 교수정년이 대부분 70세가 넘는것도 사회 지도층 년로화(年老化)의 한 단면이다. 일본사람은 윗사람의 지시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엣날, 코오베 지진때 화재가 났는데도 윗사람으로부터 수도전을 풀라는 지시가 없어 수도전을 그냥 잠그둔채 놓아두었다고 한다.일본은 지진 나면 자동적으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게 되었는데 화재가 나면 누군가라도 수도전을 풀고 화재를 진화(鎭火)했었어야 했었다. 일본인은 주어진 일은 열심히 잘하지만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회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자기 전공이 아닌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한다고 한다.이런 말조심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약 1백년을 거치다 보니 개인이 살기위한 보신책(保身策)의 유산이다.이런 소심증 때문에 일본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일본인은 강자(强者)에 매우 약하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가 '스모오'다. 스모오 우승자에게는 갖가지 상들이 주어지지만 2등에게는 아무 상도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선비는 '어질고 학식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코자 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 중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는 경우를 처사(處士)라 했다. 또 학문에 조예가 깊어 후생을 가르치면서 바른 도리를 제시하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 했다. 선생은 벼슬에 나간 '공(公)'보다 더 높은 존경을 받았다.선비는 두가지 방향을 지향했다. 하나는 스스로 도(道)를 연마하는 것이다. 도의 수행을 통해 행동과 예절을 바르게 하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또 하나는 후세에 말씀을 내려주고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저술을 통해 도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약점괴 한계가 없지 않다. 봉건질서의 기반이 되었기에 불평등한 신분구조에 이바지했다. 또 명분만을 중시해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유학이나 선비정신이 벽에 부딪친 서양학문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꽤 되었다.이와 방향이 같진 않으나 전주에서도 한옥마을의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비의 길 조성을 위한 학술대회' 등이 그것이다.지금까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광산업 차원에서 인기를 끌었다. 도시와 인접한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자체가 볼거리였다.하지만 '콘텐츠'내지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겉만 그럴싸 했다. 이제 그 '정신' 즉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말부터 선비들의 집합소였다. 일제의 유학자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기호학파의 정통을 잇는 간재(艮齋) 전우의 제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흔히 '3재'라 불리는 터줏대감 금재(欽齎) 최병심과 고재(顧齋) 이병은, 유제(裕齋) 송기면이 대표적이다. 또 대대로 오목대 아래 살아온 목산(木山) 이기경의 후손을 비롯 김교준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 유학자들이 모여 선비촌을 이루었다.이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지조를 지키며 일제에 항거하는 등 선비 본연의 길을 걸었다.그러나 지금 이들의 자취는 묻혀지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이들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돼, 한옥마을이 명실상부한 명소로 발돋움했으면 한다.
전주 한옥 보존지구에 국내 관광객과 외국 관광객도 제법 많아졌다. 단독 주택 시대가 가고 아파트 문화가 정착되면서 한옥에 대한 이해 부족이 많다. 민속촌에나 가보아야 한옥의 개념을 접할 정도이다.우리 전통가옥의 특징은 온돌방, 낮은 담장, 높은 대문, 마루, 많은 창문을 들을수 있다. 옛날의 우리는 중국과 달리 방에서 앉아서 밥 먹고 생활하는 좌식(坐食)문화이었다. 우리 전통 가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장혜영씨는 그가 쓴 '한국 전통문화의 허울을 벗기다'에서 보여준다.한옥 대문은 대부분 꼬불꼬불한 길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우리 마을이 주로 산비탈이나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길이 꼬불꼬불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낮은 담장은 중국 가옥의 높은 담장과 대조적이다. 중국은 널따란 평야 지대에 집이 있어 외부로터 강한 비바람, 또는 이방인으로부터 방어를 위해서 높은 담장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마을위치가 산악이나 계곡에 있어 외부인으로부터 자연 방비가 가능했기에 담장이 낮게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한옥 담장이 낮은 이유를 우리의 좌식생활, 그리고 온돌생활과도 관련시킨다. 온돌은 여름에도 뜨겁기 때문에 외부와의 통풍이 잘되기 위해서는 담장이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옥이 온돌로 인한 통풍 환기가 중요했다면 중국가옥은 반대로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방풍(防風),보온을 위해 중국 가옥의 담장이 높다는 것이다.거기에 중국의 널따란 평야는 이동의 편리를 가져와 이방인들이 많게되어 방비 차원에서도 담장은 높아져야 했다고 한다. 한옥의 특징중의 하나인 '마루'는 좌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마루'인데 다른방으로 이동할때 마루를 통과하면 신을 신고 벗는 번거로움을 피할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장혜영씨는 한옥의 낮은 담과 외부에 공개돤 마루는 자기 아닌 타자(他者), 즉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게 만들었다고 해석한다.자기 개인만의 밀폐된 공간이 없기에 중국처럼 사고의 심오성과 독립성이 저해 받았다고 해석한다.이런 해석도 우리것에 대한 새로운 평가 작업의 하나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자치단체장은 사법권만 없지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다.국회의원도 고향에서 단체장 하기를 바랄 정도다.이호종 전 국회의원이 고향에서 군수를 지냈다.도지사는 국회의원이 욕심낼 정도로 매력 있는 자리다.전주시장도 국회의원 지낸 사람이 될 것이다.국회의원이 단체장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단체장이 갖는 권한이 커서다.국회의원은 철저히 짬밥 즉 선수에 따라 국회직을 나눠 먹어 초선은 물당번 하기도 가쁘다.국회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한다.제 아무리 잘났어도 짬밥이 부족하면 목소리를 못낸다.대정부 질의 한번 하기도 어렵다.국회의원 배지 차면 모든 일을 할 것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니다.거수기 노릇을 할 때가 많다.초선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결국은 원내대표 손바닥 안에서 논다.초선일수록 중앙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이 없어 지역구에 자주 온다.거물들은 아무래도 지역구 관리가 소홀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예산 확보나 민원처리는 짬밥이 많은 의원이 잘 한다.행정부에 그만큼 인맥이 많기 때문이다.예전과 달리 눈먼 돈 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국회의원에 대한 매력을 잃어간다.이 때문에 눈길을 자치단체장 쪽으로 돌린다.국회의원이 공천권을 꽉 쥔 것 같지만 6.2 지방선거 때 오히려 공천권 때문에 역풍 맞아 혼쭐난 국회의원이 있다.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의원들은 다음 선거 때 어려울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민주당 정서가 강한 탓에 지사 선거가 싱겁게 끝났다.표정 관리만 잘 하면 그만이었다.특별히 애쓴 사람도 없었다.그런데 도청이 요즘 선거 때 얻은 전리품을 나눠 갖기 위한 논공행상식 인사를 하느라 부산하다.승자독식이라고 하지만 전문성도 없는 캠프 출신들을 도나 출연기관에 앉히면 예스 맨만 늘어 결국 공조직만 죽인다.능력 검증도 않고 선거 때 잠시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주면 당사자는 좋겠지만 그 조직은 죽게 돼 있다.그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온 개방형 자리 사람들이 방 빼라는 통보를 받고 억울함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아무리 파리 목숨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직원 5600명, 예산 57조7963억, 자산 50조원, 빚 109조원. 작년 10월1일자로 통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외형 견적이다. 국민 주거생활의 향상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다. 공룡화된 LH는 지금 엄청난 부채 때문에 건물을 매각하고 구조조정과 윤리강령을 실천하는 등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LH가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은 본사 이전이다. 전주와 경남 진주의 혁신도시를 놓고 눈치만 보며 차일피일 미룬지가 벌써 9개월이다. 직원들은 어떨까. 두 지역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터라 본사 이전 관련 질문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만다.충남 보령 출신의 이지송 사장(70)은 건설부와 수자원공사에서 잔뼈가 굵었고,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노련한 지휘관이다. 몇달 전 아무도 모를 만큼 극비리에 전북을 방문한 뒤 전남에 내려가기도 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지방선거가 끝나자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LH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한다. LH 기능을 분산 배치할 것인지, 일괄 이전할 것인지의 문제다. 헌데 선거가 끝나고 보니 정치적 갈래타기가 방정식 보다 더 복잡하다.전북은 당초 '분산 배치'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 정운천 전 장관이 '일괄 이전'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LH를 전북에 일괄 배치하기로 이명박 대통령과 교감을 나눴다"고 해 복잡해졌다.반면 '일괄 이전' 입장인 경남은 이달곤 전 장관이 한나라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일괄이전하겠다고 해 힘을 얻었지만 무소속인 김두관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이 힘 쓸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선택이 어차피 정치적이라면 철저하게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지난 30년간 소외받았던 전북의 지역주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LH가 전북에 유치돼야 한다"는 논리다. 혁신도시 조성 취지와 낙후의 정도를 고려한 판단, 영남 정권에서 호남을 배려한 결정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그리고 그 같은 논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전달한 정 전 장관은 지금부터 이 대통령의 '공감'을 실천해 보여야 한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 없는 정치인 소릴 들어도 싸다./이경재 논설위원
지난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때였다. 그만큼 세월은 많이 흘러 전쟁의 상흔(傷痕)도 잊게도 해주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6.25를 먼 이야기처럼 의식한다.통계에 의하면 6.25 전쟁으로 남북한 민간인 3백만명이 죽었고 남북한 군인, 약 100만명이 살상을 당한 골육상쟁(骨肉相爭)이었다. 전쟁은 물론, 북한의 도발이었다. 6.25 전쟁 원인을 놓고 여려 학설이 있다. 마치, 미국 남북전쟁을 놓고 여려 원인설이 있듯이 말이다. 음모설,충돌설,수정론이 바로 그것이다.6. 25 전쟁 원인에 대해 미국의 커밍스(B ,C Cummings)라는 사람은 미국 고문단의 문서를 중심으로 내전론(內戰論)을 내세운다. '내전론'은, 6.25는 한반도 자체내의 문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토지개혁이다. 북한은 해방후 바로 토지개혁을 단행했는데 남한은 그렇지를 못해 남한의 토지개혁 완성을 위해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다.둘째는 웅진반도에서 남한과 북한의 잦은 충돌이 있었는데 1950년 6월 24일, 새벽에 남한측의 도발과 여기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 비화되어 철원,금화,양양등 38선 전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 구(舊) 소련의 극비문서가 공개되자 6.25의 원인도 밝혀질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신 공개된 소련문서에 의하면 6.25 전쟁 직전에 소련은 북한에게 차관 형식으로 약 5천만 달러에 상당하는 최신 소련제 무기와 장비를 제공했다는 것이다.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南侵)의사를 정식으로 표명한것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 회의에서 였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스탈린은 여려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950년 1월 17일에 김일성은 다시 남침여부를 스탈린에게 타진(打診)했고 얼마후 1월 30일에 남침 허락을 받았다.그후 4월에 다시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은 극비회담을 가졌는데 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전쟁에 유리해졌다며 남침에 대한 중국으로부터 승인 받기를 요구했다. 한달쯤 지나 김일성은 중국의 승인과 협조를 얻기위해 모택동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미군이 참전하면 중국도 참전하겠다고 했다. 남한의 북침설은 설 땅이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의 남북간 대결에만 머문 전쟁이 아니었다. 동북아 및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오늘날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이나 천안함 사건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소련군이, 남쪽에 미군이 진주해 군정을 실시했다. 남쪽에는 이승만, 북쪽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정부를 수립했으나 실질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다.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불안한 평화 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은 수차례 소련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 무력침공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은 미국을 의식해 소극적이었으나 중국의 통치자 모택동은 적극적이었다. 결국 소련은 중국이 북한에 전쟁 원조를 하는 조건으로 김일성의 남침을 승락했다.반면 미국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였고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독자적인 전쟁 수행능력이 없다고 오판하였다. 또 전쟁 직전까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저평가해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그러데도 이승만은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실지(失地)를 회복하겠다"고 장담했다. 한술 더 떠 채병덕 육참총장은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기를 부렸다.이같은 상황속에 6·25 전쟁은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3년 1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되었다. 남북 양측을 합해 250만 명이 숨졌고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남겼다. 전체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고 산업시설과 공공시설, 교통시설의 80%가 절단났다.전쟁을 통해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유일체제의 기반을 닦았다. 또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공고화되고 우경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이러한 상흔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남북간의 첨예한 대결은 물론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일찌기 '전쟁론(戰爭論)'을 쓴 K.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정치지도자의 서투른 판단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말해준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조상진 논설위원
산소없이도 살수있는 동물을 지중해 심해(深海)_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영국 B B C 방송이 발표했다고 한다.이 발견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마르케 공과대학의 로베르토 다노바 교수의 연구팀이다.그동안 심해나 지하 깊숙한 곳에서 산소 없이도 생존이 가능한 단세포 생물은 여러번 확인됐지만 다세포(多細胞) 동물이 발견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발견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는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생명체의 패러다임(Paradigm)에 변화를 주는 회기적인 사건이다."패러다임"이란 특정의 시대에 어떤 영역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思考)의 틀을 말한다 .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고대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보았다.이것을 '지구 중심설'또는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이 움직인다고 해서 천동설(天動說)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인 사람이다.이것을 더욱 정밀한 이론으로 만든 사람이 '프톨레이마이오스'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지가 발달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16세기가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가 지구 천동설을 뒤엎고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중심이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다는것은 과학사의 상식이다.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꿔진것이다.지금까지 화성이나 금성, 목성에 생물이 존재할수 없다고 생각한것이 과학자들의 우주 생명체에 대한 패러다임이었다.지구의 대기는 질소가 78%,산소가 20%, 이산화 탄소가 0.035%, 아르곤이 0.93%, 나머지는 기타이다. 지구에 산소가 풍부하다보니 산소가 지구 생명체의 필수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성의 대기, 주요성분은 이산화탄소이고 그밖에 소량의 질소와 산소가 있을뿐이다.금성은 이산화타소가 대기의 주성분이고 목성과 토성의 대기 주성분은 수소와 헬륨이다. 산소가 모든 생물체의 절대 필요 원소라고 하는것은 지구에서나 통용되는 생명체 패러다임일뿐 다른 행성에서는 수소나 이산화탄소를 절대로 필요로 하는 생명체가 존재할수도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이번 발견이 열어 준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지방의회 임기 2년의 전반부 의장단 선출을 둘러싸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간에 내홍이 심각하다.의장단은 통상 다선의원이 맡는게 관례다.그러나 이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의장단 선출 과정을 보면 한마디로 요지경 속이다.몇명 안된 시군의회에서 각종 컨넥션들이 날개친다.선출방식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교황선출방식을 준용해서 의장을 뽑기 때문이다.교황은 콘클라베(conclave)라는 비밀회의에서 뽑는다.콘클라베는 자물쇠를 잠근다는 뜻이다.교황선출 방식은 도덕적으로 검증된 성직자들의 선출 방식이다.성 베드로 대성당 내 시스틴 소성당에서 각국의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모여서 선출한다.추기경들은 한장의 투표용지에 한명의 이름을 기입하는 비밀투표 방식을 택한다.자신의 이름을 써도 무방하며 추기경이나 주교가 아니어도 된다.특정 사제가 선거인단의 유효표 3분의 2 이상을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된다.투표 결과는 시스틴 성당에서 투표 용지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색깔로 알 수 있다.검은 연기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표시고 교황이 선출되면 재에 화학약품을 섞에 흰 연기로 피워 올린다.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수용한다"(Accepto) 는 말로 공식 확인하고 추기경단 의장은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창문에 나타나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새 교황이 생겼다)이라고 선언하고 신임 교황의 이름을 발표한다.그러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에서 이 같은 제도를 준용해서 쓰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한 의사 전달과 금품이 오가는 개별적인 선거운동이 이뤄져 갖가지 폐단이 야기된다.의원간에 담합과 이합집산으로 상임위원장 나눠먹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파벌이 형성돼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도의회와 전주시의회만 공개적으로 후보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다.익산시의회는 2명의 국회의원이 있어 복잡한 양상이며 나머지 의회도 마찬가지다.앞으로는 교황선출방식을 적용치 말고 후보 등록을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과정을 거쳐야 탈이 안난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