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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수의 불편한 진실

며칠 전 점심식사 모임에서 한 친구가 갑자기 배(梨) 이야기를 꺼냈다.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보관 중이던 배가 폭삭 썩어버렸다. 딸이 사준 배를 먹지 않고 아끼던 중이었는데,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냉장고 서랍 속에 보관한 것이 실수였다고 애달아하고 있었다. 덕분에 모처럼 냉장고 속은 깨끗해졌다고 했다.나도 배 때문에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다. 지병인 천식 때문에 기침으로 고생할 때마다 배와 도라지 대추 생강 등을 넣고 즙을 내어 마시기 때문에 배를 항상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침 때문에 배를 찾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배가 모두 얼어버렸었다.썩은 배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던가? 하고 나는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배의 껍질에 새카맣게 된 반점들이 군데군데 생겨서 손가락으로 가만히 눌러보았더니 물이 찌익 나오면서 포옥 들어가 버리데!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는 그 배의 냄새를 맡아보았느냐고 물었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그 배는 썩은 것이 아니라 얼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것을 동리(凍梨)라고 표현한다고 설명해주었다.동리(凍梨)란 노인의 피부에 반점(斑點)이 생기는 것이 흡사 언 배의 껍질 같다는 데서, 노인들의 피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90세의 노인을 달리 이르는 말(동아국어사전)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90세의 노인을 졸수라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동리(凍梨)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실은 나도 많은 작가들의 수필 속에서 졸수(卒壽)라는 말을 접하고, 국어사전을 펼쳐보았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 그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졸(卒)의 약자가 아홉 구(九) 밑에 열 십(十)인 글자이기 때문에 九十(90)으로 읽어서 된 말이라고 하는 설명을 어느 친구한테서 우연히 들었다.나는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 서점으로 갔다. 그 글자를 소사전(小辭典)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툼한 한한대사전(韓漢大辭典)을 펼쳐보았다. 아홉 구(九) 밑에 열 십(十)의 글자는 사전마다 풀이가 달랐다. 졸(卒)의 속자(俗字)라고도 하고, 또 졸(卒)의 와자(訛字)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졸수(卒壽)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나이를 나타내는 모든 단어들, 예를 들어, 종심(從心), 고희(古稀), 희수(喜壽), 산수(傘壽), 미수(米壽), 망구(望九) 망백(望百), 백수(白壽) 등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졸수(卒壽)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불확실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그 말의 사용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친구에게 얼은 배 덕택으로 90세를 이르는 말로 동리(凍梨)라는 멋진 표현을 알게 되었으니, 뿌리도 모르는 졸수(卒壽)보다는 동리(凍梨)를 사용하라고 권했다. 나의 훈수가 졸수(拙手)가 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면서.△수필가 이희근 씨는 정읍 출신으로 지난 2009년 계간 〈문학사랑〉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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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05 23:02

초록은 생명의 빛

비가 오고 난 후 산 숲은 로맨틱하다. 물기 머금은 잎은 한층 더 푸르다. 푸른 잎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은초롱으로 빛난다. 그 싱그러움에 이끌려 눈부신 햇빛도 숲을 향해 달려들고 새들도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지난 주 가까운 산에 올랐다. 숲길을 걸을 때 푸른 기운이 허공에 가득했다. 머리 위로 파란 물이 듣는 듯 했다. 불어오는 초록바람에 심란한 내 마음을 세탁했다. 콧속으로 흡입된 청량한 공기가 메마른 내 영혼까지 씻어냈다.지금 전국의 산야는 온통 초록 일색이다. 산도, 들도, 강도, 도시도 초록이다. 그야말로 싱싱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나무들로 빼곡한 숲은 마치 초록빛 바다와 같다.만약 모든 나무들의 색깔이 까만색이나 하얀색이라면 어떻게 될까. 까만색은 너무 어두워 답답하다. 혐오감이 느껴질 것이다. 밤낮으로 시커먼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마치 저승사자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얀 나무는 또 어떤가. 너무 밝아서 춥고 싸늘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산에 모든 나무들이 하얀색으로 도색돼 있다면 사시사철 한 겨울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또 가로수나 정원수가 하얀색이라면 이는 마치 소복을 여인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백의의 천사나, 방금 웨딩마치를 한 신부 같기도 하겠지만.초록, 그곳엔 무한한 생명이 숨 쉬고 있다. 초록은 자연과 평화를 상징한다. 초록은 정신 활동에 지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준다. 초록은 심리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고 감정의 안식을 얻는다. 초록으로 뒤덮인 숲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독일 작가 아스트트 폰 호노레드 드르프는 사랑이 푸른 화환을 쓰면 내 모든 감각은 초록색이 된다. 가슴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는 자는 언제나 초록색을 지닐만하다. 그러므로 사랑의 기가 꺾인 자는 절대로 초록색을 걸쳐서는 안 된다.는 연애시를 발표한 바 있다. 아랍권에서 알 카디르는 초록빛 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황야에서 방황하던 유목 민족들을 물가로 인도해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깨달음의 여행을 떠난 알 카디르는 마침내 생명의 산 위의 구름 위로 올라가 생명의 물을 마시자 그의 옷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영생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꽃봉우리, 잎새, 과일 등 모든 식물에서 색의 시작은 초록이다. 이처럼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에는 초록색이 가장 먼저 주변을 장식하는 것이다.고 역설했다.사람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빨강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분홍색과 자주색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집어내라면, 그것은 초록이다. 나는 그 많은 색깔 중에서 연초록을 좋아한다. 정서가 불안정할 때 초록이 옆에 있으면 생명력을 회복시키고 마음에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우리는 희망을 말할 때 내일의 푸른 꿈을 꾸자라고 하지, 노란 꿈이나 빨간 꿈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만큼 초록은 절대적인 희망의 상징이다.5월도 어느덧 하순으로 접어든다. 지난 6일이 입하(立夏)였기에 절기상으론 이제 여름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천지만물은 성장속도가 빨라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신록의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틔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친다.이제 곧 녹음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아니, 벌써 여름이 온 듯하다. 한여름 짙푸른 숲에 들면 어둑하고 서늘한 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여름은 청춘의 계절이다. 청춘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따라서 초록의 의미는 생명력, 안심, 진정, 긴장이완, 묵상이다. 초록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명의 빛이다.△수필가 신영규씨는 1995년 월간〈문예사조〉, 1997년〈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숲에서 만난 비〉 〈사랑을 소매치기 당한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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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9 23:02

길 잃은 어린 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오늘따라 교회출 입구 스티로폼판에 붙여 만든, 모 권사를 환영한다는 장식도 붙어있다. 평소 자주 드나드는 사무실 이웃 개척교회에서 ‘나의 아버지’라는 복음성가가 녹음 반주에 맞추어 들려온다. 복음성가를 부르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목소리를 지닌 처음 출석한 여자 권사의 부름인 듯하다. 애수 어리고 간절한 소망이 담긴 성가는 이웃에 있는 나까지도 이끌려 가기에 충분한 가창력을 가졌다. 나는 귀 기울여 들으며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시내 변두리 농촌이나 다름없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대문은 물론 울타리도 없었고 키 큰 포플러 나무가 가로수처럼 드문드문 둘러쳐 있었다. 잔디와 작은 잡초들 가운데로 흙이 드러난 오솔길 같은 출입로 옆에는 빨간 맨드라미며 접시꽃이 피었고 흰나비며 잠자리 등 곤충이 철따라 번갈아 꽃을 옮겨 다니며 놀았다. 지금의 교회처럼 뾰족한 교회지붕 꼭대기에는 빛바랜 나무 십자가가 꽂혀 있었는데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상징물이였다. 어린 나는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늘에 계신 분이 높이 솟은 십자가를 타고 교회로 내려오실 거라고 믿었었다.철 따라 여름 성경학교가 열리면 어린이를 모아 놓고 기도하며 성가도 가르쳤다. 유대풍의 복장을 한 선지자가 기다란 ‘모세’지팡이를 짚고 어린 양떼를 거느린 표지 그림의 누가복음, 마태복음 등 질감 좋은 작은 선교 책자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고급 칼라판으로 된 이 작은 책자는 어린 마음에도 욕심나는 것이어서 열심히 받아 모았다. 젊은 전도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경어를 사용했고 엄격한 우리의 부모는 물론 대다수 어른에 비하여 우리를 대우하는 것만 같아 무척 따랐었다.그 뒤 부친께서는 그 작은 교회가 있는 동네를 떠나 양떼 같은 우리 칠남매를 거느리고 고풍스러운 성당 앞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하던 날 나는 작은 교회의 고즈넉한 나무 십자가와 따르던 전도사 선생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의 새로운 놀이터가 된 성당의 십자가는 어린 소년인 나에게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보였으며 마당에 높이 서있는 성모마리아 석고 입상은 그 앞에서 우리의 뛰어노는 모습을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가끔 검고 긴 복장에 흰줄 간 사각모자를 쓴 수녀님이 성경책을 옆에 끼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개구쟁이들이 노는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면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성당 십자가보다 더 높이 연을 날리려 애를 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는 정확하게 5개의 교회와 성당이 있다. 주일이면 수 백 수 천의 신자가 교회에 모여 주변의 교통을 통제해야 할 형편이다. 번쩍이는 대리석 관청 같은 교회 현관 양쪽에는 세련된 큰 웃음을 담은 몇 분의 사목님 그리고 장로님들과 한복으로 치장한 화려한 사모님들이 줄지어 서서 신자를 맞아하는 광경을 본다. 나는 지금도 가끔 주일이면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에 이끌려 아무도 모르게 교회를 찾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줄지어 선 의욕적이고도 성대한 목사님 일행 앞을 통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집중되는 관심과 환영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신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 언덕 위 낡고 작은 종탑 위에서는 주일 종이 울리고 맨드라미, 접시꽃이 핀 마당길을 지나 목사님이 ‘베드로’아저씨처럼 우리를 맞아주던 평화로운 작은 교회를 나는 주일마다 마음 속에서 그리며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으로 남아있다.△수필가 김동영 씨는 전주 출신으로 제50회 〈한국문예연구〉 겨울호에 신인을 등단했다. 한국문예연구문학회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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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5 23:02

다시 봄에

콩나물밥을 해서 달래장에 비벼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입 안에 달래향이 가득하다. 앞대산을 바라보는 냇가랑 둑엔 달래들이 지들끼리 키를 재며 저무는 봄빛을 온몸에 빨아들이고 있을 터이다. 퇴근한 뒤 아직 햇살이 남아있어서 냇가랑 둑에 간다. 머리가 반백이 된 지 오래지만 나도 어려선 ‘나물 캐는 가시내’였다. 햇빛이 골고루 퍼지는 둑이며 논밭두렁을 훑고 다니면서 달래며 냉이 쑥을 캤더랬다. 손길 재바른 동네 언니들이 실하고 보기 좋은 나물들을 몽땅 캐가고 난 뒤여서 나는 찌끄래기들이나 캤다. 그러므로 내 달래 냉이들은 빼빼 말랐고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하지만 찌끄래기들이나마 내 차지하려고 꼼지락거리다보면 봄햇살에 미역 감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고 어떤 때는 어질머리가 들어 하늘이 노래지기 일쑤였다. 어질머리를 참고 캐온 달래 냉이를 이것도 나물이라고 캤냐고 어머니는 소쿠리째 내동댕이칠 게 빤하지만, 그래서 나는 또 속울음을 삼켜야겠지만 그래도 둑길에 나설 땐 신이 났다. 머릿속에는 달래가 꽉 들어찼는데 요놈의 달래들 대체 보이질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만고만한 풀들 때문에 영 헷갈린다. 앞대산을 조금 비껴 선 둑길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그 곳에 가보고 싶다. 나물 캤던 시절을 간직한 내 직감이 오랜만에 꿈틀거린다. 그 곳엔 틀림없이 사람 손을 안 탄 달래며 냉이 쑥들이 봄바람을 헤적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무더기 무더기 그야말로 달래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에게게? 요게 뭐람? 고것들 내 입속으로 들어오려면 한 열흘은 기다려야겠다. 문득 그때의 언니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따라붙지 못하게 늘 앞서가며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깔깔깔 봄들녘에 깨소금을 뿌려대던 언니들. 그니들은 버스차장, 방직공장, 가발공장으로들 떠나갔다. 어디에서 살든 곱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내 눈가가 따뜻해진다. 그니들도 나처럼 앞이 가물거리는 눈을 달고 소쿠리 대신 비닐봉지를 들고 어느 둑에 앉아서 저무는 봄날 하루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차장이라고 공순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상처받았던 날들을 저무는 봄햇살에 말리며, 오랜만에 실컷 눈물도 흘리면서 그 때 휘어진 마음이 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나는 언제부턴가 곧이듣지 않았다. 절약과 저축, 검소한 생활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 된 물질만능 이것은 사람마저 수단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여기에 5촉짜리 알전구만도 못한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갑질을 일삼는 촌뜨기들의 억지가 사방에서 거든다. 그런데도 지금이 좋은 세상인가. 살맛나는 세상은 물질화를 통해 익숙해진 것들을 거절하는 데서부터 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물밥 해먹고 살았어도 그땐 사람들 사이가 이렇게까지 데면데면하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림 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빈곤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뿐이라고 냇가랑의 저녁물결이 반짝인다. 오늘 저녁은 딸애가 봉동 장터에서 사온 달래로 찬거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이현옥 씨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우석대신문〉과 〈문화저널〉 등에 책과 관련된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석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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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8 23:02

면죄부

좋아하는 계절, 초봄에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집 옆 모퉁이 취 밭에서부터 뒤란의 머위 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천나무 울타리 밖 매실나무 밑을 누비며, 그것도 부족해 어디에 또 없을까 희번덕거리며 그 새싹을 뽑아냈다. 그것도 한 주간을 사이에 두고 두 차례에 걸쳐. 그 여린 새싹에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양, 떡잎과 겨우 두어 장의 속잎이 돋아 무순보다 더 여린 싹들을 몇 토막을 내어 두엄자리에 던져버렸다.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 밤중에야 희미하게 소리 들리네.눈 녹아 남쪽 개울물이 불어 났겠거니 / 풀싹은 얼마쯤 돋아났을까?춘흥(春興)이라는 정몽주의 시다. 나 또한 선암리의 긴 겨울동안 이 시를 생각하며 새 봄을 기다려온 터였다. 구성산에 오르며 눈 덮인 산등성이에서 춘란 한 촉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가. 그리고 나뭇가지의 잎눈을 보며 새봄을 맞을 설렘으로 얼마나 부풀었던가.그런데 이제 막 떡잎을 피워낸 그 여린 싹을 사정없이 뽑아낸 것은 그게 한삼덩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위의 모든 것을 감고 올라가며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기 때문에 견뎌내는 곡식과 나무가 없다.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 지 돌 틈에서도 살아나며, 며칠만 지나면 덩굴이 저만치 뻗어나 있다. 이래서 나는 눈에 띄기만 하면 한삼덩굴을 뽑고야 만다. 남의 밭, 길가를 가리지 않는다.모름지기 악의 근원은 힘을 못 쓸 때 제거하는 것, 내 맘 속 악의 싹을 뽑아내려는 듯하다. 뒤돌아서면 금방 다시 돋을 줄 알면서도.그러나 항상 이렇게 잔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무언가를 가꾸기 때문에 울안은 그야말로 풀과 곤충의 천국이다. 이른 봄, 햇살이 채 따뜻해지기도 전에 앙증맞은 꽃 모양에 비해 이름이 좀 그런 개불알꽃, 줄기를 꺾으면 나오는 노란 진액이 아기의 그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애기똥풀, 보라색과 하늘색이 조화롭게 꽃 색깔을 이룬 현호색, 민들레 등이 잔치를 이룬다. 게다가 꽃밭에 심은 며느리바랑꽃, 진안 마이산 밑에서 두어 포기 옮겨왔는데 지금은 수십 포기의 무더기가 되어 등불이 된 하얀 색의 은초롱꽃이 시나브로 피고 진다. 문제는 화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채소와 더불어 자라고 피고 시드는 것.또 다른 문제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 때문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속에서 추위를 이겨 내고 싹이 튼 생명인데 어느 꽃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먼 데서 옮겨다 심고, 어느 꽃은 좋아하면서도 흔하기에 뽑아 없애야 하는가? 같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으면 어울리니까 아름답다 하고 외따로 피어있으면 조화를 깬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인가?모든 것은 크고 작고 간에, 귀하고 흔하고 간에, 나름의 중요함이 있어서 서로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긴 고민 끝에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어느 풀이든 꽃이 피었을 때는 뽑지 않는다고. 그간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워 꽃까지 피우느라 애쓰고 힘쓴 것에 대한 예우로. 잡초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죄를 주었을지라도 나는 면죄부를 준다.한데 그 후 얼마 있다 다시 보면 그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씨방을 활짝 열고 씨앗을 흩뿌리면서.△수필가 황숙 씨는 익산 출신으로 지난 1991년 전북 여성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96년 계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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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4 23:02

선택의 순간에서 가치관의 힘

만약에 신(神)이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마법의 램프를 선물하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돈’이 가져다주는 요행을 가끔씩은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생각들이 잠재하는 것은 ‘물질의 풍요’를 중요시하는 삶의 가치관에서 시작된다. 가치관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때로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을 때, 바로 그때 가치관은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인간의 3대 선택이란 명제를 들면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했다. 누구는 배우자의 선택이고, 무엇은 직업의 선택이다. 끝으로 가치관의 선택은 삶의 질적인 방향을 가늠하는 갈림길이다. 부자들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폭이 가난한 상대보다 훨씬 다양할 수 있다. 즉 ‘돈’은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기름지면서도 유리한 기회를 맞이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방적인 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상하와 우열은 이웃이나 상대와의 비교에서 유발된다. 한국 사람들의 소득은 독립이후 60여 년 사이에 수백 배로 늘어나 부자나라로 살아가면서도 삶의 만족도는 우리보다 가난한 터키나 중국보다도 더 낮다고 하니, 왜 그럴까? 어찌했든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퍼즐(숙제)이다.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먼 훗날 백발이 인생을 가로막을 때에야 느끼듯, 불만과 과욕과 허영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미래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다. 100세시대를 바라보는 요즘과 비교할 때 1945년 광복 이전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가난했기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고 질병에 걸려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했다. 먹을 것이 없어 배는 불룩 튀어나오고 검게 탄 야윈 체형이 말해주듯 국민 대다수가 영양실조에 걸렸었다. 6.25를 지난 때에는 미군(美軍)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모아 파는 상인들 덕분에 일명 ‘꿀꿀이죽’으로 연명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어른들은 떠올리기 싫은 추억에 눈시울을 적신다. 부모들에게 가난은 이리도 야박하고 천덕스러웠던 것이다. 억척스럽게 살다간 질박한 선조들은 가난이라는 아프고도 고독한 긴 터널을 겪으면서도 올곧은 생각과 정직한 품성으로 고난을 견디어낸 것이다. 우리들 후손들은 과연 얼마나 고맙게 여기면서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먹을 것들이 지천(至賤)이다. 해마다 음식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몇 조(兆)의 경비가 쓰여 진다고 한다. 물질이 풍족해질수록 그 풍요로움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배고프지 않는 삶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에 미화 1달러(한화 1,150원 정도)로 살아가는 지구상의 인구는 15%, 2달러로 사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33% 즉 25억여 명이 넘는다는 유엔의 통계다. 상식과 이성에 바탕을 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로운 언행과 판단이 행복의 가늠자다. 후회의 의미는 주어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상황들을 겪은 뒤에야 그 가치를 비교하면서 후회와 한탄에 젖어든다.△수필가 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 칼럼집 〈도전하는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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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3 23:02

봄의 향기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그것은 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눈이 내린 다음 빙판위로 자동차가 달리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겨울이 짙어지면 봄이 그만큼 가까워지기 때문에 겨울이 좋은 것이다. 일년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그러나 기다려지는 계절은 가을이 아니고 봄이다.봄을 기다리는 것은 꽃이 피는 까닭이다. 나는 꽃을 사랑한다. 겨울 온실 속에서 계절 없이 피어있는 꽃도 사랑하지만, 영하15도의 혹한 속에서도 꿈을 키워하며 봄을 기다리는 야생화는 나를 더욱 감동시킨다.바쁜 마음으로 잔설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 붉게 피어나는 동백! 그리고 꽃잎을 먼저피우는 백목련과 자목련을 사랑하고, 라일락향기를 사랑하며, 산도화와 배꽃도 사랑한다.들녘에 피어나는 민들레꽃을 사랑하고 오랑케꽃을 좋아한다. 나는 여인중에서 델라를 사랑하고 오필리아를 좋아한다. 그들은 모두 봄에 피어나는 꽃 같기 때문이다.창문으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살이 하품과 졸음을 불러온다. 오랜만에 나로 하여금 길게 기지개를 켜게 하는 햇살이 정겹다. 응달 골짜기에 희끗희끗 남아있던 눈이 봄비로 깨끗이 녹아내리고, 쥐불을 놓은 언덕위에서 피어나는 파르라니 솟아나는 쑥이 귀엽다.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개울가에서 솜털처럼 피어나는 버들강아지, 밭에 돋아난 새파란 보리의 새순이 정겹다. 시장노점상들이 좌판에 펼쳐놓은 냉이와 달래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다.어느덧 봄은 우리 곁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새벽을 알리는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정답고, 저녁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봄은 싱그러운 계절이다. 언제 봄이성큼 찾아왔는지 베란다 화분에도 연초록 풀이자라고 있다. 두 그루의 철쭉이 번갈아가면 꽃을 피우고, 새파란 군자란에 꽃대가 여러 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즐거운 봄소식을 알리려는 몸짓이다.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고, 베란다 창을 신문지로 닦고 광택제를 뿌리니 맑아지는 유리창에 얼굴을 몇 번이고 비추어 보기도 한다.벌써 새 학년 새 학기를 기다리는 작은아이가 봄맞이 청소를 마치니 기분이 좋다며, 여러 가지 저녁 찬거리를 주문한다. 큰아이는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역시 음악뿐이라면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찾아 볼륨을 높인다.이번 주말 저녁 식탁은 봄을 느낄 수 있도록 상큼한 봄나물 무침과 쑥국을 끓여 오붓한 봄을 즐겨야겠다.△수필가 황점복 씨는 지난 2003년 문예연구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상, 2004년 여성문학상, 2008년 커피문학상, 2011년 시흥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수필집 〈빈손의 미학〉, 〈아름다운 간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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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27 23:02

그 골목의 현악 4중주

중화요리 집 태백관의 소리는 4중주다. 인연이라는 질긴 현으로 구성된 현악4중주다. 탕탕, 똑딱똑딱, 달그락달그락, 부릉부릉, 지천명을 넘긴 태백관의 4인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잘 버무려진 삶의 화음이다. 소리란 듣는 이의 몫. 한낱 음식점의 잡동사니 소음도 내게는 아름다운 선율이다.삼십년 전 그날, 늙은 호박을 싣고 태백관에 온 트럭과 이삿짐을 싣고 온 우리 트럭 간에 좁은 골목에서의 영역다툼으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설핏 트럭 위에 실린 커다란 호박에 욕심이 갔다. 얼마 후, 앞치마를 두르고 달려온 부부의 손에 아까 그 호박이 들려있었다. 부끄럽게 호박 한 덩이를 건네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태백관의 사람들과 이웃이 되었다.척추 골수염으로 왜소한 키를 가진 주인이자 태백관의 주방장인 양씨와 아내 윤씨의 도마질 소리는 바이올린의 고음 대다. 주방을 오가는 오씨의 목소리는 비올라의 중음이고, 배달하는 장씨의 활기차고 싱싱한 소리는 첼로의 저음이다. 그들은 모두가 동등하게 분담해서 제 소리를 낸다. 처음부터 빠른 선율로 다잡아 이끌기도, 때론 가쁜 숨을 내뱉고 잠시 숨고르기도 한다. 그 조화로운 삶의 소리가 리듬과 선율, 화음이 완전한 화성과 음색의 하모니를 이루는 날이면 태백관의 영업은 성공이다.삶이 조금 나태해진다고 느낄 때 현악4중주를 듣는다. 온 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음향과 중간 중간 격렬해지는 짜릿함, 연주가 끝난 후 남는 여운과 잔상. 잔잔한 선율의 풍부한 리듬감이 좋아서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말한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균형을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몫의 소리에 충실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해진다고.맛 집으로 유명해진 그 곳 사람들은 어릴 때 고아원에서 함께 자라 지금껏 형제의 연으로 살아가지만 혈육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다. 처음부터 그들의 연주가 완벽했던 것도 아니었다. 불협화음으로 만났다 헤어지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화합만이 살길이라는 걸 깨달았고 서로를 보듬어 오늘에 왔는지도.탕탕 본격적인 태백관의 영업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양씨가 반죽을 내리친다. 에너지가 넘친다. 똑딱똑딱 태백관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육신을 가진 윤씨의 동작도 세심하고 빈틈이 없다. 리더를 보좌하는 제2인자의 솜씨답다.달그락달그락 홀을 담당하는 오씨. 예의 바르고 인사성이 밝아 적임자다. 건설현장으로 부초처럼 떠돌다 다친 다리를 끌고와 합류했다. 부릉부릉 골목골목 오토바이로 곡예 하듯 배달 다니는 장씨는 공장용접공으로 일하다 한쪽 눈을 잃고 방황할 때 양씨가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번듯한 대로변에 나앉지 못하고 생의 뒤안길만 전전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도심의 변두리 좁은 골목. 그들이 비비고 기대며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어 삶의 생기가 넘친다.저 집, 오늘도 제1바이올린의 굽이치는 선율이 경쾌하다. 뒤를 이어 나긋하면서도 고요한 제2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곧 비올라와 첼로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것이다. 아침 골목이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수필가 윤미애 씨는 경북 포항 출신으로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수필 대상, 포항소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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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3 23:02

회심의 미소

1월 하순 어느 수요일 오전이었다. 친구와 단둘이 모악산에 오르면서 달성사 정문에 이르렀을 때, 친구는 계곡에 있는 병꽃나무 위에 하얀 실처럼 다닥다닥 붙어 너슬너슬하게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그것은 꽃이 아니라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붙어 있는, 작년 가을에 익은 사위질빵 열매였다. 그러나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이 코스로 등반을 하면서 자주 보아온 나무의 이름을 오늘에야 묻는 이유가 궁금했다.며칠 전에 친구는 부인과 함께 전주천변에 산책을 나갔다. 둔치의 개나리나무 위에 하얗게 걸쳐 있는 것을 본 부인은 친구에게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친구는 부인으로부터 그것도 모른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을 발견했다.정년퇴임하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동부인모임이 있었다. 퇴임 후, 오전에는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고, 오후에는 고스톱도 치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많은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고 있었다. 명칭도 수요산악회로 바꾸고, 매주 수요일 10시에 중인리 버스종점에서 만나 모악산 등반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회원이 20여 명이나 되어서 산에 오르거나, 식사를 하거나, 또 고스톱을 칠 때마다 시끌벅적했다.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변했다. 회원 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었고, 상처(喪妻)를 한 사람도 있었다. 그 외에도 건강상의 이유나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다. 그러다가 10여 년이 지나자 오전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고작 두서너 명밖에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점심 식사에는 여남은 친구들이 모였다.산에 오르는 방법도 달라졌다. 힘을 자랑하며 떠들썩하니 앞장서서 산에 오르내리는 데만 신경을 썼던 지난날과는 달리, 서두르지 않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용하고 여유작작하게 담소를 즐기며 걷고 있었다. 유유자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자연히 10여 년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친구는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번식력이 좋은 외래식물이냐고 물었다. 이름이 외래어처럼 낯설게 들린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것은 사위가 짊어지는 지게의 질빵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순 우리말이다.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식물로 양지바른 길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토종식물이다.다른 덩굴식물과는 달리 사위질빵은 기어오르는 나무의 줄기뿐만 아니라 나무 전체를 차지해버리는 습성이 있다. 꽃이 피면 나무 전체가 사위질빵의 꽃으로 덮인다. 사위질빵을 규모가 큰 교목(喬木)으로 착각하는 이유다.친구는 사위질빵이란 이름도 확실히 알았지만, 자기 부인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회심(會心)의 미소였다.△수필가 이희근 씨는 지난 2009년 계간 〈문학사랑〉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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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6 23:02

도찐 개찐

KBS 2TV 개그콘서트에 ‘도찐개찐’이라는 코너가 있다. 앞가슴에 윷판을 그린 쫄쫄이 복장을 한 개그맨들이 도찐개찐 노래를 부르면서 정치인이나 사회상을 비판하는 풍자성 개그이다. 얼마 전에 방송한 것을 보면, 전봇대에 오줌 싸는 개처럼 옆 사람에게 다리를 올리자 ‘넌 뭔데 갑자기 다리를 올리냐?’고 묻자, ‘넌 왜 갑자기 세금을 올리냐?’고 맞대응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밥에 그 나물, 그것이 그것이라는 의미로 사회현상을 빗대고 있다. 도찐개찐은 ‘별반 다르지 않다.’ 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면 한 칸, 개가 나오면 두 칸을 가는데, 결국 하나나 둘이나 그게 그거란 것이다. 비슷한 말로 ‘오십보 백보’ ‘그 밥에 그 나물’ 또는 ‘청명에 죽나 한식에 죽나’ 라는 속담도 있다. 청명과 한식은 대개 하루 차이인데, 하루 더 살다 죽으나 하루 먼저 죽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이 허다하다. 특히 선거 때는 ‘저 사람만큼은 우리들의 심정을 이해할 거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 어렵고 힘들게 사는 우리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잘해줄 거야!’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마저도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면 금방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일본 간 나오토(菅直人) 신임 총리는 다른 총리들과는 달랐다. 역대 총리들이 재계와 정계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집안의 자손이었던 것과 달리 간 총리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민초 출신이었다. 처음 지지율도 60%대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취임 1개월 만에 첫 성적표는 반토막이 난 지지율 30%였다. 소비세율 인상 때문이었다. 가난한 민초들을 대변할 줄 알았던 총리가 세금을 인상한다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판도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나온다. 출범 당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65%가 넘었다. 그러나 요즘은 20%대까지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논쟁이 있지만 다른 정권 때나 지금이나 ‘도찐개찐’이라는 것이다. 정부만이 아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갑론을박하는 여당이나, ‘친노니 비노니’하며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야당의 모습도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둘 다 도찐개찐이다. 도찐개찐은 바람직한 말이 아니다. 실망하고 포기할 때 쓰는 부정적인 용어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오십보 백보’는 없을까? 정말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인물이나 정책은 없을까?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난 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슬로건을 바꿨다. 명품 도시, 살맛나는 도시, 품격 있는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 꿈이 있는 도시 등 지역민에게 희망을 주는 표어들을 내걸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역시 ‘도찐개찐 ‘ ’구관이나 신관이나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지.△수필가 백봉기 씨는 지난 2008년 〈한국산문〉으로 등단해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를 발간하고, 한국미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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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27 23:02

어머니와 지팡이

어머니는 전화기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첫 번째 벨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다.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요?” “다리가 아파 죽겠다.” 어머니의 퇴행성관절염이 갑자기 더 심해 지셨나보다. 여든하고도 여섯에 접어든 연세시니 아프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싶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로 단걸음에 달려갔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반갑기는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힘이 드시는지 지팡이를 짚고 겨우 일어서신다. 기뚱 기뚱 지팡이에 의존하여 걷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어머니의 무릎은 수술은 가능하지만 나이 드신 분이기 때문에 그냥 통증만 가라앉게 해준다는 병원이 있어 그 병원을 찾아갔다. 매주 1회씩 모두 5회를 맞아야 아프지 않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느덧 어머니가 4회 주사를 맞는 날 어머니의 아파트를 찾아갔으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려고 하신다. 이유는 돈만 많이 들고 낫지도 않으며 커다란 주사바늘이 너무나 무섭고 아프시다며 그 주사를 그만 맞겠단다. 나는 참 난감했다. 5회까지 다 맞지 않으면 지금까지 맞은 것이 허사라고 어린아이 타이르듯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면서 얼마나 아픈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신다. 이틀 후 이른 아침 핸드폰으로 어머니가 부르신다. 송광사에 벚꽃이 만발하였다는데 언제나 갈 수 있는 것인지 꽃이 질까봐 걱정이 되신다고. 나는 바로 가기로 약속하고 하던 일을 뒤로하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벚꽃 터널 속을 지나칠 때는 엄마와 친구분들은 소녀처럼 밝고 맑게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셨다. 위봉폭포의 정자(亭子)에 올라 자리를 펴고 준비한 간식을 즐기는 할머니들은 웃음소리에 이어 박수를 치시며 노래를 부른다.“찔레꽃 곱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리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86세이신 엄마의 18번이 끝났다. 72세 할머니는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66세 할머니는 꽃을 든 남자라는 노래를 열창한다. 나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은 마음으로 힘찬 박수를 보내며 앙코르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세 분이 합창이다. 옆에서 이른 점심을 먹던 젊은 할머니들이 합세를 하여 산중 노래마당이 울려 퍼졌다. 위봉 폭포도 얼마나 좋은지 춤을 추며 맑은 목소리로 박자를 맞춘다. 위봉 폭포는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지 싶다. 어머니는 작년에 경로당 노래경연대회에서 자신이 소속된 아파트 노인합창단이 우수상을 거머쥐었다고 상금을 자랑하시곤 했었다. 오랜만에 참 많은 꽃을 보아서 몇 년 동안 꽃구경 안 가도 되겠다며 가슴에 가득 담으셨다고 행복해하시는 할머니들에게 나는 내년에도 또 구경시켜드릴 테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의 지팡이는 못난 자식이라는 것을 나는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수필가 박영임 씨(58)는 고창 출신으로 지난 2005년 〈문예연구〉 수필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08년 한국농촌신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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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3 23:02

시간은 가고 공(功)은 남는다

카랑한 날씨다. 궂긴 소식도 아닌데 왜 이리 가슴에 부딪힘이 세찰까. 가던 길의 방향이 어디인지 어리보기처럼 어리벙벙히 며칠이 지났다. 지난날 어머니가 내뱉었던 지랄 같다는 심정이다. 수필 지도 교수의 퇴임 소식을 듣고서다.아련한 추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칠년 전 아무 인맥도 없이 다만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받고자 모 교육원 수필창작 반에 등록 했었다. 지(知)에의 갈망은 나이, 거리가 문제되지 않았다.그 무렵 나는 난들 같은 팔풍받이에 집 한 채 지어놓고, 이십여 년 시골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다. 정읍에서 전주를 내왕하는 데는 교통편이 만만찮았다. 시골구석에서 택시를 호출해서 터미널까지, 거기서 시외버스로 전주 완산 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다시 택시로 강의실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주 일 회 내왕하는 게 조금도 각다분하지 않았다. 초기 몇 년은 결석 한 번 안 했다. 서울로 이사하고서도 월 한 두 차례는 전주까지 와서 수강하고 당일치기로 돌아가곤 했다. 왜 지금까지 수필 창작 반을 탯줄 잡듯 붙잡고 쫓아다니느냐면, 그만한 연유가 있다. 한가지 씩 새롭게 배워지는 것도 즐거웠지만, 교수의 수강생들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와 문우들과의 사귐이 묵정이처럼 못내 정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메떨어진 것처럼 글이 쓰이지 않을 것 같아서다.아침 개강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휑한 강의실에 사람이 왔다간 흔적이 묻어 있었다. 등에 불이 켜져 있고 에어컨이나, 겨울이면 온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탁상 위엔 어김없이 교수의 손가방이 놓여 있었다. 교수께서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서 찾아오는 수강생을 손수 챙기는 데에 따뜻한 감동이 가슴팍을 흥건히 적셨다.이 나이 되도록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강의실에서 보지 못한 풍경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삯꾼이 아닌 스승을 모신 게 뿌듯했다. 차츰 알게 되었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는 그 분에게 신뢰가 갔다. 평생 사부님으로 모셔도 되겠다 싶었다.첫 강의에서 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누구나 가슴에 주훙글씨처럼 아로새겨두었을 것이다. 글쓰기에 끊임없이 격려와 가능성을 심어주고 북돋아 주는 그 분의 매력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때 난 자분정 같이 내 가슴에 글감의 소재가 마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밤새워 글로 퍼내도 다시 괴어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풋솜씨로는 어림도 없었다. 한 편의 수필이 되도록 글맛을 살리자면 대장간의 앞메꾼처럼 불린 쇠를 시우쇠 다루듯 글줄을 다듬어야 한다. 그 일에 즐거움을 갖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그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학습 분위기에서 주워오면 된다.오랜 세월 글 쓰는 배움터에서 스승이 떠난다니 허우룩한 기분을 몇 줄의 글로 삭혀 보았다. 어딘들 스승이 서 있는 자리에는 또 문하생들이 모일 것이다.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시간은 가고 공은 남는다.△수필가 정원정 씨는 지난 2009년 제2회 행촌수필 문학상, 2010년 제11회 우정사업본부 전국편지쓰기대회 일반부 은상, 2011년 제3회 목포 문학상 수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201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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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06 23:02

홍시

홍시는 제철 맛을 잃지 않는다. 설령 설익은 홍시라 할지라도 얼고 녹으면서 그 맛을 더한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김치냉장고 덕에 논에서 우려먹던 도사리, 대청마루와 채반 위, 뒤란 큰 항아리 속의 홍시를 사철 맛보고 있다.오래 전부터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는 일 년 내내 떡하니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있다. 비닐봉지에 두 개씩 담겨 김치통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바로 대봉이다. 늦가을 첫서리가 올 때쯤 몇 접을 주문하여 거실에 쫙 깔아놓고 적당히 홍시가 되면 냉동 보관한다. 대봉은 이듬해 가을이 익어서야 그 자리를 잠시 비워주고는 다시 냉동 칸 전부를 차지한다. 식구들도 여간해서 먹을 수 없다. 손님 대접용이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오는 손님마다 전원생활이기에 가능하다며 한마디씩 한다.회사에 다닐 때였다. 직장선배가 집에 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원생활을 하는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선배였다. 말은 야외나들이 나왔다가 내가 생각나 들렸다고 했지만. 수직 관계는 이미 무너졌고, 어느 순간 나는 전원생활의 선배로서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누지도 않았는데 해거름이 되었다. 마당 울타리에 태양이 붉게 내려앉기 시작하자 낮 동안 해를 이고 있던 지붕이 더는 못 참았는지 급기야 거실로 열기를 쏟아냈다. 거실을 둘러보더니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보이지 않자 체념했는지 선배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풀기 시작했다.나는 이때다 싶어 기운이 쇠한 해가 축 늘어져 기대고 있는 서 창가에 놓고 대봉을 꺼내 놓고 녹기만을 기다렸다.돌덩이 같던 연주황색의 대봉에 얇은 성에가 낄 때쯤 선배는 묘한 미소를 띠더니 대접에 물을 떠 오라 했다. 목이 마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컵에 물을 떠다 줬다.선배는 크게 웃으며, 대접 두 개에 물을 삼 분의 이 정도 받아오게라고 하였다.대접에 수돗물을 받아오자 감을 담그며,이야기하다 보면 감이 녹을 거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이게 이한치한(以寒治寒)이여. 동상을 찬물로 서서히 빼는 거와 같아. 밖의 열로 녹이면 겉은 물컹하고 안은 얼음덩이야.라고 했다.이야기하는 중에 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감 표면에 제법 쌓인 눈처럼 짙은 성에가 드리우더니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감색은 자주색으로 짙어만 가고 얼음은 전등 빛에 반짝거렸다. 신기한 듯 감을 굴리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천진난만해 보였는지 선배는 웃기만 하였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갑더니 대접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한 참을 지나자 이제 됐을 거야. 물 버리고 수저 좀 가져오게라고 했다.한 술 떠서 오물거리며 상글방글 이게 바로 천연 아이스크림이여. 쥐도 늙은 쥐가 사는 게 낫다는 말이 있잖아.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요즘 사람들이 날고 긴다 해도 옛 어른들의 지혜는 배워야 혀라며 어깨를 으쓱했다.△수필가 전성권 씨(53)는 진안 출신으로 지난 2011년 〈문예연구〉로 등단해 순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DC 기획총괄본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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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30 23:02

빛과 그리고 그림자

살다보면 까닭도 모르고 답답하게 지낼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의 생리불순이다. 갈수록 많아지는데 분명치 않으니 답답하다. 몸무게, 운동, 스트레스가 관계된다 하나, 갸우뚱거리게 한다. 그러다 어느 겨울날 아침 깨달음을 얻었으니 바로 빛과 그림자였다.수능이 끝나면 여고를 대상으로 성교육을 다니는데, 멀리 광주까지 가는 날이었다. 다니던 학교가 아닌 낯선 곳이라 신경이 쓰였다. 준비를 마치고 머리도 식힐 겸 정원에 나갔다.초겨울, 나목들 속에 잎이 지지 않은 목련을 보았다. 가로등에 접해있는 목련에 잎이 달려 있었다. 가로등 열에 잎이 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관찰해보니 열이 아닌 빛 때문이었다. 낮에 갈색이던 잎이 밤에는 불빛에 초록빛을 띠었다. 겨울이 더 깊어지자 잎은 지고 꽃망울이 커지는데, 늦게 잎이 달렸던 가지에는 꽃망울이 없었으며, 4월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았다.가로등 밑은 암 것도 안 되어, 들깨도 안 되고, 강낭콩이니 녹두도 넝쿨만 뻗고, 그려서 내가 가로등 밑자리 여남은 평을 동네에 내놓은 거여. 시멘트 입혀서 동네 주차장으로 쓴 게 얼매나 존냐.어머니가 집에 들른 아들에게 자랑하더라는 이정록 시인의 글이 생각났다. 동네 입구에 가로등을 놓자 그 아래는 농사가 안 되었다. 그래서 농사를 포기하고 동네에 희사한 것이다. 왜 가로등 가에 목련꽃이 피지 않고 들깨가 열지 않는 것일까?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구약 창세기 천지 창조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빛이다. 빛에 의해 낮과 밤이 생기고, 빛에 적응하며 모든 생물은 진화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에디슨이 하나님처럼 빛을 만든다. 이후 우리는 새로운 빛 속에서 길들고 있다.동물이건 식물이건 시시때때 변한다. 일주기로 변하는 것을 서카디안 리듬이라 한다. 이 조절은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에 의한다. 호르몬은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분비되며 새벽 2시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또 어두울수록 많이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항산화 작용, 면역에도 영향 끼치고, 잠을 잘 자게 한다. 그래서 야간근무자들이 쉬이 살이 찌고, 각종 질병에 잘 걸리는 것이다.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는 어둡게 하고 잠을 푹 자야 규칙적인 생체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잠을 잘 자야 아름다운 미인, 잠자는 미녀가 된다.전등불이 우리의 새싹들을 해치고 있다.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불 켠 채 자는 아이들.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잠드는 아이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당부한다. 많은 아이가 생리불순을 겪는 걸 잘 알기에 거듭 부탁한다.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는 불을 끄고 잠을 자게 해야 한다.시골에서 자라 아침에 해 뜨는 동쪽을 향해 가고 저녁에는 해 지는 석양으로 향하던 필자는 여명이나 황혼에 고동치듯 두근거리곤 한다. 왜 그 시간만 되면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생물은 소리를 지르는지 찌르르 찌르르, 뻐꾹 뻐꾹, 뀌뜰 뀌뜰, 꼬끼오. 경계에 꽃이 핀다. 밝음과 어둠이 바뀌는 시간이면 만물이 요동친다. 어서 가자 어서 가 일하러 가야지. 어서 가자 어서 가 잠자러 가야지.△이희섭 씨는 전북대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미즈베베산부인과병원장이다. 김제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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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3 23:02

J라는 남자

몇 년 전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수술 받고 퇴원하던 날 의사선생님은 100% 재발을 우려했었다. 다만 재발 기간이 언제이냐는 본인이 관리하기 나름이라 했었다.지인들이 내 무릎 상태를 염려하고 물어주면 다리를 극진하게 모시고 산다고 말하곤 한다.그렇게 상전 같이 모시던 무릎이 또 다시 도전을 해와서 이젠 수술보다는 운동요법을 해야지 생각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했었다.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소문을 냈고 준비물 점검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화만큼은 욕심을 내서 준비했다.모두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지 꽃피는 봄날이라서 새벽공기가 그리웠던 것인지 걷고 뛰고 줄넘기하고 벌써 등산을 하고 약수물까지 떠오는 분들도 계셨다.일주일쯤 뛰었을 때였을까? 옆에서 같은 속도로 뛰던 J라는 남자가 말을 건네는 것이다.낯가림도 심하고 더구나 자고 일어나 부시시한 맨 얼굴에 꾀죄죄한 차림이라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아는 체 할까 말까한 상황에 낯선 남자가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잘 뛰십니다. 건강코스 마라톤에 출전하십니까?상쾌한 음성에 깔끔한 외모까지 음흉하지 않은 인상은 결코 기분 나쁘지 않았다.아니요 그냥 봄이라서 운동 나왔어요.하면서 한마디로 일축해버리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뛰었다.5주째 되는 날 J는 내 주위로 뛰어와 보조를 맞추더니 저 내일부터는 못나옵니다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뛰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J는 여전히 같은 톤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J는 은행에서 직책이 과장이었단다. 갓 입사했을 때 첫눈에 반해서 오랜 구애 끝에 사내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미인대회 출신으로 은행에 취직을 하게 된 미녀였단다.맞벌이를 하다가 은행 구조조정 당시 아내는 명예퇴직을 했고 신혼 때 맞벌이로 종종대느라 느끼지 못했던 사랑과 여유로움을 느끼며 또 다른 부부애로 오히려 구조조정을 고마워(?)했다고 했다.그런 어느 날 중앙뉴스와 각 신문마다 떠들썩할 정도의 은행 비리 사고가 보도 되었고, 그 사건의 배후에 J의 상사와 아내가 얽힌 사실을 알았단다. 그에 대한 충격으로 방황과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고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은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형님 내외가 돌봐주고 있다며 그들이 그나마 살아가는 힘이라고 했다.출근해야 하는 조급한 안타까움과, 따뜻한 위로를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럴만한 사이가 못되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본인 이야기에 취해있더니 운동을 마무리하려는 내 동작을 감지했던지 서둘러 할 말을 끝낸 J는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했나요?하며 멋쩍어 했다.난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힘내세요. 세상은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다잖아요.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고맙습니다. 악수나 한번 하지요?하고 내민 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잡았더니 J의 손은 그간의 힘든 시간을 말해주듯이 차가웠다.새벽 운동은 무릎의 건강을 위한 계기였지만, 상담공부할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라며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은사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내일 운동하면서 혹시 J가 있나 무의식적으로 두리번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수필가 문유자 씨는 지난 2000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다. 김제문인협회 회원으로 현재 중학교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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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16 23:02

싸리비 합창소리

휴대전화의 알람 노랫소리에 잠을 깼다. 밤새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큰 눈발이 계속 흩날리고 있었다. 눈길에서 거북이걸음으로 차를 몰고 새벽기도회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환상적이었다. 온 시가지가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나무들도 새하얀 눈꽃을 피우고, 날더러 자기 세상 사람이 되라고 유혹했다.집에 오자마자 눈을 쓸었다. 집안 계단은 아내가 부삽으로 치웠다. 대문 밖은 내 몫이었다. 앞집 H 선생님은 우리 대문 앞 골목길로 다닌다. 눈이 오면 아무리 추워도 H 선생님과 경쟁이라도 하듯 골목을 쓴다. 음식물쓰레기 전용 수거용기를 내놓을 때도 그렇다. 다음날은 비운 용기를 몰래 대문 앞에 가져다 놓는 경기가 벌어진다. 오늘도 경쟁심의 발동으로 골목길을 쓸고 나서 우리 집 골목을 쓸었다. 조그만 빗자루로 쓸다 싸리비로 쓸었다. 눈이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이 내렸다. 제설도구인 눈삽이나 넉가래 사는 걸 미룬 게 후회스러웠다.다음은 집 앞 인도를 쓸었다. 옆집 대문 앞도 쓸었다. 6시가 넘어도 고샅은 고요했다. 오른쪽 건물인 S 아파트 나동의 뒷담 너머 50m쯤 되는 인도로 눈길이 자꾸 갔다. 내 마음도 눈을 쓸라고 재촉했다. 지금까지 눈을 쓸 때면 그쪽은 관심 밖이었다. 오늘은 인도로 다니는 얼굴들을 그려보며 두세 걸음만 쓸었다. 그런데 끝까지!라는 강한 울림이 들렸다. 눈 위에 고양이 발자국만 군데군데 있었다. 몇 번 허리를 굽히다 펴다 하면서 쓸고 나니, 큰 공을 세운 것 같았다.어릴 적 눈 내리는 고향 집 생각이 났다. 해마다 가을에 짚으로 이은 노란 지붕에 눈이 쌓였다. 마당과 텃밭, 골목길에도. 그때는 눈이 왜 그리 자주 왔는지. 자고나면 오고 또 오곤 했다. 많이 쌓인 곳은 내 키를 훨씬 넘었다. 아마 지리산 끝자락인 남원시 운봉읍 덕산마을이라 그랬을 성싶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고사를 치룰 때 폭설로 날짜가 연기되기도 했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에 대풍년이 들 징조라며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눈 오는 날 고향에서의 아침은 바빴다. 먼저 마당을 쓸고 사립문 밖으로 나가 고샅을 쓸기 시작했다. 예서제서 일찌감치 눈을 쓰는 싸리비 소리가 합창을 했다. 남자들의 기침 소리도 이따금 들렸다. 개들도 좋아서 뛰어다녔다. 누구네 집 앞을 가리지 않고 눈을 쓸다 만나면, 밤새 안녕히 주무셨느냐?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마을길은 모두 뚫렸다. 그제야 자기 집 안 구석구석 눈을 쓸었다. 아낙들은 물동이를 이고 마을 한가운데 있는 샘으로 나갔다.지금 시골은 초 고령사회다. 그렇지만 눈 오는 날 아침이면 눈 쓸기의 미풍양속은 이어 오고 있을 것이다. 도시의 눈 오는 날 아침은 어떠한가? 안타깝다. 집 앞 골목은커녕 대문 앞 눈도 쓸지 않고 다니는 게 도시문화라고 여긴 것 같다. 그 탓으로 쌓인 눈과 빙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2006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를 제정했다. 자기 집 앞 눈 치우기의 시민문화를 만들고, 안전한 겨울나기를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 조례는, 누가, 언제, 어디를, 어떻게 눈을 치워야 하는지를 규정해 놓았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시청과 언론매체가 홍보했지만 시민들은 아직도 시큰둥한 것 같다.나는 우리 집에 잇닿아 있는 집 앞 인도만 쓸고 있다. 조례에는 보행자 전용도로와 이면도로도 쓸어야 한다는 걸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다. 소방도로인 마을길도 눈과 얼음을 치워야 하니까 눈 쓸 면적이 넓어졌다. 앞으로 눈 오는 날은 눈 동요를 부르며 눈을 쓸고 싶다. 아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신바람이 나지 않겠는가. 동화 나라 같은 꿈을 꾸어 본다. 눈 오는 날 아침이면 우리 마을에도 내 집 앞과 마을길의 눈을 쓰는 싸리비의 합창소리를 듣는 날이 오면 좋겠다.△수필가 정석곤 씨는 2009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풋밤송이의 기지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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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09 23:02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큰 어머님은 임실군 성수면이 친정이시다. 그래서 임실댁이라고 불렸다. 옛날이라 배우시지는 않았으나 머리가 남달리 영리하시고 예쁘셨으며, 말을 재치 있게 잘하여 별명이 변호사였다.우리를 보면 항상 웃는 낯으로 유머를 잘하셨다. 어려운 시절에 5남 5녀의 자녀를 키우다 보니 변변히 가르치지도 못하셨다. 김제 시골에서 오래오래 사시다가 가산을 정리하고, 그리운 고향을 떠나 서울 노량진 산꼭대기로 이사 하셨다. 방 하나에 온 식구들이 기거하였다. 그때가 60년대 말이다. 자녀들이 회사에 다니면서 근근이 사셨다. 그런데 의문이 있었다. 큰어머님 오빠가 국회의원도 하시고, 변호사를 하시는 성공한 오빠였기 때문이다.큰 어머님이 힘들게 사셔서, 오빠의 도움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웃으셨다. 큰 어머님은 농촌 다른 아낙네와 달리 오빠를 자랑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전혀 도움을 받으려는 기색도 없었다.큰 어머님의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오누이간에 베풀며 사시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사람의 능력은 한이 없다. 한 사람이 몇 만 명을 먹여 살리는 분도 있다. 성공하였다면 몇 안 되는 형제자매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변호사라는 직업은 누구나 성공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여의도에서 90세가 넘도록 변호사를 하시다가 10여 년 전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변호사님의 생애가 궁금하였다. 임실 고향에는 어떤 도움을 주셨는지, 큰어머님 자녀에게 물어봤으나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며느리를 얻고 보니 변호사님과 앞뒷집이 아닌가. 작년에 사돈하고 용담댐으로 놀러 가기 위해 사돈댁에 들러야 했다. 변호사님이 고향에 남긴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왔다. 동네 앞 어귀에 비석을 남겨놨다고 하셨다. 비석의 내용은 88올림픽 때, 이 마을 청년이 육상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돌의 길이는 1.5m 정도의 예쁜 자연석이다. 그 비용을 변호사님이 부담했다고 한다. 서울로 이사 간 후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인 큰 어머님께 왜, 남 보듯 하였을까? 사람은 스스로 일어서야 하기에 일부러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변호사 수입으로 도와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본인은 어떤 느낌으로 사시었을까. 그 당시 오빠되는 분은 널리 이름이 알려져, 말만 들으면 다 아는 훌륭한 국회의원이요, 변호사지 않았는가. 지금의 변호사와도 차원이 달랐다. 큰 어머님은 30여 년 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혈육! 이 얼마나 다정한 말인가! 나는 누님 한 분과 동생 넷이 있는데 서울과 부산에서 산다. 두 동생은 나보다 못 산다. 못 사는 동생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동생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며 살아가고 있을까. 형제들에게 애로 사항이 있는지 가끔 전화만 한다. 또 고향에는 어떤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많은 반성을 하게 하는 아침이다.△송일섭 작가는 김제 출신으로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지난 2012년 새만금 상상일기 공모전 장려상을 수상했다. 전북문인협회회원, 영호남 수필회원, 행촌수필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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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26 23:02

아톰에게

와~ 눈 온다!누군가 외치자 공부에 열중하던 너와 친구들은 함성 소리와 함께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지. 12월 첫날부터 쉬지 않고 내린 눈 세상에서 너희들은 마치 강아지들 같구나. 머지않아 겨울방학이니 사랑스런 너희들과 함께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3월 첫날, 맨 뒷자리에서 과묵하게 앉아있는 아톰 너의 모습은 선생님을 긴장시켰단다. 초등학교 2학년이 아닌 5학년이나 6학년처럼 보였거든. 철부지 개구쟁이들 속에서 넌 항상 차분하고 의젓했어. 친구들도 그런 너를 알아보고 맨 처음 반장으로 뽑아주었고.우리 반은 선생님과 같이 개성에 따라 친구들 별명을 한 명 한 명 지어주고 있지? 동작이 느리면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겐 책먹는 달팽이, 호기심 많고 여기 저기 참견도 잘 하는 친구에게는 호기심 꽃게, 선생님 말을 자꾸 따라하는 친구에게는 해커 앵무새, 이밖에도 무지개물고기, 여왕잠자리, 비보이, 공작새, 여기엔 네 별명 아톰도 들어 있지.언제나 차림새 깔끔한 네가 하루는 머리카락을 가운데로 모아 세운 새로운 스타일로 등교를 했더구나. 그 모습이 멋지기도 했지만 처음 본 순간 선생님은 문득 너 만 할 때 본 인기 만화 주인공 아톰이 떠올랐단다. 아톰의 머리 모양이 너랑 비슷했거든. 그래서 네 별명을 아톰이라 부르자고 한 거야.처음에 너는 이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단다. 넌 운동선수가 꿈이니까 그와 관련된 별명을 갖고 싶었던 거겠지. 운동이라면 뭐든지 잘 하는 너는 꿈도 자주 바뀌었어. 맨 처음 축구선수였다가 농구선수로 수영선수로, 이제는 네트 너머로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한국전력의 전광인 같은 배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구나.운동을 좋아하는 성격답게 언제나 학교생활이 즐거운 아톰! 학급의 궂은일이나 힘이 필요한 일도 앞장서서 하는 한결같고 듬직한 너! 한번은 아톰 네가 어떤 고학년 형의 부당한 행동에 맞서 대결까지 마다않는 배짱도 보여주었지. 이제야 말이지만 두 사람을 불러 화해를 시키면서도 선생님은 속으로 너의 용감함에 크게 박수를 보냈단다.지난달에는 친구들이 꺼려하는 한 전학생을 껴안아 스스로 짝꿍이 되어 도와주던, 어른들도 하지 못할 대범한 포용력이 반 친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지. 그때 선생님은 네가 운동선수도 좋지만, 우리나라와 인류를 위해 보다 더 큰일을 해도 좋을 큰 그릇이라는 생각을 했단다.언젠가 책에서 읽었다며 나비 효과가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있지? 또래들에 비해 어른스럽다 하더라도 아직 초등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는 네가 그런 큰 질문까지 하여 선생님은 깜짝 놀랐단다. 다시 말하지만 나비 효과란 지금 네가 하는 멋진 작은 행동들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는 온 지구에 태풍처럼 큰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해.아톰아! 만화의 주인공 아톰은 로봇이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곱 가지 초능력도 가지고 있단다. 〈우주소년 아톰〉은 미래 사회에도 사랑, 우정, 용기, 헌신과 같은 인간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지. 이제 네 별명이 얼마나 뜻이 깊고 너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겠지?아톰 지민아, 내년에도 네가 우리 반이 된다면 선생님도 얼마나 좋을까. 같은 반이 되지 못하더라도 선생님은 항상 너의 멋진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할게.내일 아침도 눈을 뜨면 너와 친구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으면 좋겠구나!△수필가 전하연(본명 전현자) 씨는 1995년 〈창작수필〉로 등단. 수필집 〈신新 포석정 놀이〉 〈섬진강 찔레꽃〉과, 교단일기〈칠판에 시를 적을 때〉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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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9 23:02

삼한사온

차에 눈이 한 짐이나 쌓여있다. 다행히 큰길은 얼어서 번들거리지 않고 녹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를 타고 나갈 요량으로 차창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데, 출입구 계단에 주먹만 한 눈 뭉치로 만든 눈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잣나무 사이에서 병아리가 뒤뚱뒤뚱 날개를 파닥거리며 달려오는 듯하다.철쭉 가지 끝에 달린 꽃눈이 날개를 파닥거리게 했을까?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을 찍으려 이리저리 눈을 맞추다 보니 눈사람의 못생긴 얼굴에 생글거리는 미소가 담겨 있다. 걸림이 없는 둥글둥글한 것도 미소가 된다.겨울에 눈이 쌓인 날에는 어지간하면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 미적거리면서 눈에 녹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눈이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미룰 핑계를 찾는다. 마치 길에 쌓인 눈에 공포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피한다. 차에 스노체인을 갖고 다니기는 하지만 한 차례도 쓰지 않고 겨울을 보낼 때도 있다.물론 겨울을 지나면서 빙판이 된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미끄럼을 타다가 밭으로 구를 뻔한 일도 있었고, 눈길에서 브레이크를 밟다가 빙글빙글 돌았던 때도 있었지만 용하게도 차 문이라도 바꿀 만큼 세게 부딪친 적은 없었다. 겨우내 운전을 잘하다가도 눈길에서 사고 한 번 나면 말짱 헛일이라는 어느 택시기사의 말에 공감하고 어지간하면 눈길에 나대지 않는 조심성으로 사고를 피한 것인지도 모른다.눈이 오는 날이면 운전을 피할 생각에 답답하기는 하지만 내가 운전하지 않는 날이면 어린 시절 추억에 젖기도 한다. 모정 올라가는 경사가 가파른 길에서 종일 눈썰매를 타던 일, 꿩을 몰아서 잡겠다고 동네 선배를 쫓아 이 산 저 산 뛰어다녔던 일, 모닥불을 피워놓고 젖은 나일론 양말을 말리다가 누르스름하게 태워 먹은 일, 손에 쥐면 물기 뚝뚝 떨어지는 눈을 뭉쳐 눈싸움하던 일이 떠오른다.이제는 그 시절 눈 뭉치에 맞아서 아팠던 느낌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손등이 터서 갈라진 자리를 파고 들어가는 안티푸라민의 싸한 냄새도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추억도 따지고 보면 그 순간을 현재형으로 재현하는 것이라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손등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너무 많은 바람이 지난 탓인지도 모른다.날씨도 세계 경제를 따라가는 듯하다. 경제가 불황이라고 추위도 불량해진다. 재수 없는 사람은 고스톱판이 끝날 때까지 피박 쓰는 것처럼 지붕에 닿을 만큼 눈이 쏟아졌는데, 쏟아진 눈을 치우자마자, 마치 치우기를 기다렸다는 듯 다시 퍼붓기도 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들판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몽땅 깔아뭉갤 듯 마치 끝장이라도 볼 것처럼 퍼붓는다.금수강산을 증명하던 삼한사온도 요즘에는 잘 맞지 않는다. 춥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겠다고 덤비는지 한 열흘씩 버티는 듯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단골 시험문제였던, 삼한사온이라는 단어도 고사성어의 수렁에 빠진 듯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배구경기의 중계에서나 쓰던 블로킹을 기상예보시간에 사용한다. 블로킹 현상이라고 사근사근 설명하는 예쁜 일기예보 진행자가 블로킹한 선수보다 더 심술궂어 보일 때도 있다.약삭빠른 동장군들은 동네 수도 계량기 터뜨리기 경쟁이라도 하듯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담을 넘나든다. 간간이 악에 받친 할머니들이 다 식어가는 연탄재를 들고 나와 길바닥에 패대기치며 삿대질을 해댄다. 오늘은 낡은 신코에 먼지만 날리지만, 내일이면 눈구름 지나가고 햇볕이 다시 날 것이다. 저 할머니처럼 대놓고 삿대질만 잘해도.△수필가 임상기씨는 지난 2001년 〈지구문학〉에 수필 당선, 2012년 〈문예연구〉에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김제지부회장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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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2 23:02

본심

저 단풍든 나무처럼 당당하고 싶다. 어쩌면, 불붙은 잎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치에도 깔아 놓았구나. 본심은 숨길 수 없으니.흔히 단풍을 표현할 때 아름답게 물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울긋불긋한 색소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왕성했던 엽록소가 빠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붉고 노란 제 색깔을 드러낸 것이다. 뜨거운 광합성의 여름, 초록이 들끓은 젊음의 계절을 지나, 본래 자아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이 때 나무는 얼마나 찬란하게 자신을 뽐내는가.그런 모습을 보려고 새벽녘에 내장산으로 간다. 아들 녀석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했으니, 어언 이십 여 년이 흘렀다. 아직 잠결인 녀석들을 이불에 둘둘 말아 차에 태우고 달려가면, 산은 윤곽도 보여주지 않고 캄캄했다. 그래도 온몸으로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깊은 품을 오롯이 독차지한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지.이제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어둑한 산길을 호젓이 걷는다. 지내온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거친 파도에 휩쓸리듯 살아왔구나. 잠깐 멈추어 숨을 고르고 자신을 지긋이 바라본다. 너무 애태우지 마라. 우주를 운행하는 그 기운에 순응하면서 가라. 무장을 하고 왔지만 볼이 시리다.일주문에 이르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 산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라니. 값없이 선물로 받은 오늘, 이 복을 누리고 여한이 없이 살아야한다. 내일은 기대할 수 없는 시간이므로 남은 생명엔 미련을 두지 말자. 감격은 바로 오늘 살아있는 것, 지금을 미루지 말고 기쁘게 누리자. 저 단풍처럼 뜨겁게 마지막을 살자.잎을 다 떨구고 맨몸에 열매를 가득 달고 선 늙은 돌감나무야, 모과나무야, 애썼다. 함께 세월의 강을 건너왔구나. 지금은 올려다보기만 하는 저 서래봉엔, 올라타고 놀았던 새파랬던 시절이 어려 있다. 잔디밭에는 두 살 남짓한 아들이 앞에 있는 공을 차려고 막 폼을 잡고 서있네. 두 주먹을 쥐고 설렌, 꼬마사진 한 장이 오버랩 된다.저 단풍에는, 나무가 생존하는 위한 이치가 담겨 있지. 날씨가 선선해지고 해도 짧아지면, 나무도 슬슬 겨울 날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필요한 영양분을 서둘러 나뭇가지로 보낸 뒤, 나뭇잎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아 버리지. 그래야 영하기온에 동사를 막을 수 있거든. 그러면 엽록소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제 빛깔을 내기 시작한다.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둔 두려움이 있느뇨. 단풍나무 앞에 서서 백석 시인의 싯구를 읊조린다. 무성했던 젊음을 잃어가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구나. 밖으로 향하던 생명을 안으로 거두면서 자족하구나. 무언가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간다는 것이지. 버려야 할 것을 내려놓는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황홀했으면 좋겠다.햇살에 비춰진 단풍잎은 불타는 마음을 고백하는 듯하다. 애절하고 열렬한 연서가 읽어진다. 곧 낙엽으로 스러질 걸 알기에 저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가슴 저리게 간절한 단풍잎처럼, 그렇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본래의 빛깔도 보여주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싶지 않다. 소슬바람에 단풍잎이 뛰어내린다. 정녕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오래 머무는 것이 없구나.오늘이 가기 전에, 진심을 보여주기로 한다.△소선녀 수필가는 김제 상정보건진료소장으로 수필집 〈봄이면 밑둥에서 새순을 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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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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