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13 16:19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재·학술

농식품부, '한식'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정부가 '김치와 김장문화'에 이어 '한식과 한식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 서 '한식과 한식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식정책 발전방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임정빈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국장은 "우리 식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식과 한식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이를 위한 사전 연구와 준비를 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외국 식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사례를 분석하고 한식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담당할 전담팀을 꾸릴 방침이다. '김장과 김장문화'는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 '프랑스 식문화'가 한 나라의 식문화로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적이 있다. 이와 함께 농식품부는 과거 한식정책이 홍보이벤트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국내 한식 기반을 강화하고 해외 확산을 병행하는 투 트랙(Two-Track) 방식으로 한식 정책의 틀을 전환하기로 했다. 국내의 한식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지역별분야별로 특색있는 우리 음식을 발굴해 명칭과 요리법 등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 품평회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방침이다. 한식의 세계 진출을 돕기 위해서는 국내 한식외식 기업에 해외 주요 도시별 외식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등 현지 지원을 강화하고 한식 홈페이지를 수요자 중심의 종합 포털로 개선할 계획이다. 또 해외 유명 요리학교 4곳에서 운영 중인 한식 강좌를 2017년까지 8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과 한식정책협의체를 구성해한식 관련 정책의 효율을 높이기로 했다. 임 국장은 "한식정책협의체는 전문가 중심의 팀제로 운영될 것"이라며 "한식 정책의 각종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관리하고 부처 간 협업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4.02.03 23:02

[설특집]다문화가족 완주 권중근·히식 자르갈 부부 가족의 설맞이

권중근(48)히식 자르갈(39) 씨 부부의 집에는 4남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딸 권단야(12)애일(11)과 아들 대일(8)대화(6)는 때로는 친구, 때로는 부모 역할로 부대끼며 자란다. 지난 27일 완주군 이서로에 있는 이들의 집을 찾았을 때도 엄마가 대화의 한복 매무새를 만지는 동안 단야는 대일이의 웃도리를 입혀 주었다. 한복을 정갈하게 입은 대일이는 이날 한글 윷판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자기 이름의 자음을 먼저 찾았다. 내 이름 여기에 있다. 디귿, 이응, 리을.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대화도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자모의 모양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다 국기를 발견했다. 대화는 윷판 한 가운데 태극기를 가리키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내 엄마팀 아빠팀으로 나뉘고 권 씨가 먼저 윷을 던졌다. 윷을 많이 잡아본 듯 두 손으로 4개의 윷을 정리한 뒤 한 손으로 날렵하게 공중으로 내보내자 모가 나왔다. 이어서 또 모와 걸이 나오자 말 2개를 능숙하게 된기역을 지나 한 가운데 태극기에 놓았다. 이어 히식 씨도 질세라 엄마도 잘 해라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도였다. 아빠의 검은 바둑돌이 마지막인 칸인 된지읒을 3칸 남겨놓은 사이 엄마팀의 흰 바둑알은 기역 자리에 덩그러니 놓였다. 다음번에도 엄마팀은 또 도가 나와 흰 바둑돌 1개를 기역 옆 니은 칸으로 옮겼다. 권 씨는 윷놀이는 단순하지만 규칙이 여러 개고 말의 위치도 전략적으로 놓아야 해서 잘못하면 싸움이 난다며 예전에는 상가(喪家)에서 멍석 깔고 윷판을 벌여 밤새도록 돈내기하고 시시비비도 가리고 웃음소리도 났다고 윷놀이에 대한 추억도 들려주었다.전북도청 내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히식 씨는 12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남편을 만났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남편은 몽골어사전을 두고, 부인은 한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6개월간 편지를 주고 받은 뒤 결혼했다. 히식 씨는 그때만 해도 한국에 다문화지원센터가 드물어 독학으로 받아쓰기를 하고 생활 속에서 한국어를 배웠는데 남편이 몽골어를 읽을 수 있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면서 애들은 1~2살 때 몽골어를 했는데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지금은 몇 마디만 할줄 안다고 말했다. 권 씨는 부인에 대해 지역 소식통으로 유학생, 취업생, 결혼이민자 등을 서로 소개하면서 인연을 맺어주기도 한다며 결혼하고 아내에게 한 말이 freedom인데 서로 각자 생활을 존중하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설을 앞두고 고향 생각이 더욱 난다는 히식 씨는 몽골에서는 설인 차강(흰색) 사르(달)에 가족이 모여 양고기를 넣은 찐만두인 보츠와 만둣국인 반쉬, 차가알륵이라는 쌀밥 등을 먹는다고 회상하며 지난 2010년 겨울에 몽골에 갔었는데 아이들이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권 씨는 2012년에는 장인장모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장인이 출국하기 전에 사는 거 보니 흡족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면서 4남매와 더욱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새해 소망을 혔다.● '한글 윷판' 고안한 김중만 원광대 명예교수 "자모 29개 접목윷놀이 진화 꾀해"중국 헤이룽장성이 윷놀이를 성급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가운데 민족 명절인 설을 맞아 한글 윷판이 제안됐다. 29개 자모와 윷밭의 숫자가 일치한데서 고안된 한글윷판이 민속놀이에 한글을 결합해 고유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 한글 윷판은 김중만 원광대 명예교수(68)가 지난 2006년 고안했다. 자음 19개와 모음 10개를 윷밭에 대응했다. 오른쪽 방향으로ㄱ부터 ㅎ까지 14개 홑자음을 동그란 부분을 따라 넣었다. 가운데 十와 원 모양의 남는 2칸에 모음 10자를 배치했다. 원과 십자가 만나는 곳에는 된자음과 함께 우리나라와 주변 4개국의 국기도 표시했다. 십자의 정중앙에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배치하고 동쪽에 미국의 성조기, 서쪽에 중국의 오성홍기, 북쪽에 러시아의 삼색기, 남쪽에 일본의 일장기를 그렸다. 평소 한글 사랑을 외치는 김 명예교수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의 윷놀이판에 한글을 접목해 윷판의 진화를 꾀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그는 이어 기존의 윷판은 대개 달력 뒷면에 29개의 윷밭을 같은 형상으로 그려 품위도 없고, 말이 여러 개 놓인 경우 말 놓을 자리를 정하는데 이견이 있을 때 무질서도 생겼다면서 이를 해소하는 한편 유치원, 다문화가정, 세종학당 등에서 윷놀이를 하면서 한글을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4.01.29 23:02

[⑤ 도립국악원] 우리음악 명품화·대중화·세계화 추진

전북도립국악원이 국악의 명품화대중화세계화를 추진한다. 단계적으로 장기 제작시스템을 도입하고 기획 창작공연과 대외교류를 늘릴 방침이다. 도립국악원(원장 윤석중)은 27일 도민의 문화향유 확대와 전통예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여민락(與民樂)을 주제로 올 공연계획을 밝혔다. 창극단무용단관현악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실험적인 작품과 전통의 복원에 맞춰 과거와 현재의 조화에 중점을 뒀다.그동안 창작 작품의 소재가 부족해 공연 소재의 신선함이 미흡했다는 의견을 반영해 공연 규모별로 약 10개의 창작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각 단별로 정기공연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심사를 통해 작품을 선정했다. 특히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해 창작 창극 꽃불이 오는 5월31일과 6월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국악칸타타 황토재, 희망의 노래가 오는 10월 같은 장소에서 선보인다. 이와 함께 현대판 고려장을 소재로 효를 담은 무용극 행복동 고물상이 오는 11월 같은 무대에 예정돼 있다.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사회성과 풍자성 위주의 소재를 발굴해 대중적인 공감대 형성도 꾀한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은 선에서 재즈와 락 반주를 곁들인 퓨전 판소리 5바탕 콘서트와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창극도 기획됐다. 순회공연으로는 지난해 창극단 정기공연 작품인 어매아리랑이 오는 9월, 2012년 무용단 정기공연 미스콩이 6월, 관현악단의 명인명창과 함께하는 국악의 향연Ⅱ가 6월에 예정돼 모두 8차례 도내 문예회관에서 이뤄진다. 찾아가는 공연은 지난해 45차례에서 올해는 50차례로 횟수를 늘리고 전년도 정기공연과 작품과 우수한 창작 작품으로 꾸민다.도시군 지원공연, 지역청소년을 위한 예술무대, 복지시설 방문공연, 유관기관 연계 소외 계층 방문공연 등으로 연중 14개 시군에서 진행한다. 이에 앞서 오는 3월5일 봄을 알리는 신춘음악회를 시작으로 도내 대표적인 상설공연인 목요국악예술무대가 4~6월과 9~11월 모두 18차례에 걸쳐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소규모 공연으로 이뤄진다. 꿈나무 명인명창에게 등용무대를 제공하는 대학생청소년 협연의 밤은 5월20일과 21일에, 도내 관광지에서 수려한 풍광과 함께 하는 문화관광프로젝트 한 여름밤의 예술축제는 6월 말, 역동적인 무대구성이 돋보이는 연말 송년국악큰잔치등으로 대중과 만난다.특히 올해 자치단체 상호교류사업과 35사단 방문공연도 마련했다. 무용극 파랑새가 6월 말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35사단의 임실 이전을 기념하는 전북의 별, 사랑해요 35사단 공연은 사단 사령부 특설무대에서 대규모로 펼친다. 아울러 해외교류도 확대한다. 지난해 1차례에 그친 해외공연을 4차례로 늘려 대외 경쟁력을 높인다는 방안이다. 작품의 세계화와 맞춤형 레퍼토리를 개발해 해외 유명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견줄만한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포부다. 특히 오는 4월 중국 강소성과의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전북의 특성을 살린 공연이 예정됐다. 이와 함께 외교부와 중앙정부 산하기관의 공모사업도 추진한다. 이밖에 마케팅과 문화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도 강화한다. 홍보와 마케팅 전담 인력이 없어 다양한 시도가 미흡했던 만큼 신규 채용 또는 시스템 구축으로 이를 보완한다. 한옥마을 숙박시설과 연계해 공연을 알리고,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를 대상으로 한 집중 홍보도 실시할 계획이다. 전북 가정위탁 지원센터와 협력해 연간 1000여명의 어린이를 초대해 공연 관람의 기회도 제공한다. 윤석중 원장은 지역의 유관기관과 연계해 한정된 예산을 극복하는 능동적인 마케팅과 복지시설공연 등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공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립국악원은 지난해 모두 96차례 공연을 했으며 5만3032명이 관람했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4.01.28 23:02

"어진봉안 행렬·포쇄 재현 시민 참여 이끌어야"

태조어진 봉안행렬과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 행사를 전주의 대표적 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전주시와 사단법인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이 23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개최한조선왕조 의례문화 재현행사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다.이날 토론회는 조선왕조의 의례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전주의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며, 지난해 개최한 의례문화의 재현행사에 대한 전반적 검증을 통해 발전방향을 찾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강제훈 고려대 교수는 경기전 어진 이안의식과 재현가능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전주의 태조어진 봉안행렬의 고증의 내용과 더불어 고증의 충실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지난 2013년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궁중의식의 전승실태 및 목록작성 연구용역 자료를 소개하면서 전주의 궁중의식은 타당성 평가 및 충실성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는 태조어진 봉안행렬 재현행사 평가 및 발전방안주제 발표를 통해 전주의 역사적 뿌리를 재확인하고 이를 시민정신의 근간으로 세울 것인지, 문화관광용 콘텐즈로 활용할 것인지 좀 더 분명하고 세심하게 행사의 의의와 목표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두 목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행사의 성격이나 진행방식, 행사의 주체 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 그럼에도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시적 가치에 폭넓게 동의하고 스스로 동참하면서 즐기는, 두 목표를 충족시켜야 마땅하다고 말했다.곽 교수는 어진 봉안행렬이 성공적인 문화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원형에 대한 충실한 방식으로 재현이 우선돼야 하며, 어진전을 포함한 경기전의 공간적 상징성과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어진과 경기전을 둘러싼 배경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상품과 스토리텔링 방안을 찾아낼 것을 주문했다.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조선왕조실록 포쇄 인원과 방법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포쇄에 관한 자료, 포쇄사관 선임 및 포쇄 시기, 사관일행 구성 및 행렬방법, 포쇄에 참여했던 인원 및 장소, 포쇄 절차와 방법 등 포쇄 고증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했다.이와 관련해 홍성덕 전두대 교수는 실록 포쇄 재현행사 평가 및 발전방안주제 발표를 통해 지난해 행사에서 전주사고의 역사성을 잘 표현한 문화관광 상품으로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모으기 위해서는 포쇄하는 과정에서 극적 대사 등을 포함한 고증의 적극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홍 교수는 또 어진 봉안행렬전주사고 전시관실록복본화감사행렬경기전체험프로그램 등과 연계하고, 실록의 봉안보존관리활용 등을 소재로 하는 문화상품 개발 등의 종합적인 문화행사계획 수립을 제안했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1.24 23:02

삭막한 도시, 어떻게 바꿨는지 들어보실래요?

나에게 도시는 무엇인가? 내가 살고 싶은 도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좋은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명제들을 탐색하고 실현해 가는 7명의 도시기획자들이 오래된 도시, 전주 탐색에 나선다. 22일 오후 7시부터 전주전통문화관 한벽극장에서 열리는 북콘서트오래된 도시 전주, 안녕하십니까. 세상을 바꾸는 7인의 도시기획자들에게 듣는다는 부제를 달았다.북콘서트를 여는 소란출판사가 펴낸 <도시기획자들>의 저자들을 초대했다. 김병수(오래된 전주를 청년의 땅으로 바꿔낸 사회적기업 이음 대표), 오형은(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는 경관을 빚어내는 커뮤니티 플래너), 유다희(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공공미술프리즘 대표), 이강오(서울숲 운영자이자 서울시 그린 정책의 핵심 브레인), 이채관(책 읽는 도시 풍경을 그려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기획자), 천호균(도시 안에서 착한 생산과 착한 소비의 다리를 놓는 쌈지농부 창업자), 최정한(도시의 욕망 에너지에 주목한 홍대클럽데이 창안자) 씨.이들은 일찍이 좋은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을 품고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청년몰, 서울숲,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홍대클럽데이 등 굵직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해 성공시켰다. 이들에게 도시는 인문학이며, 농부이며, 숲이며, 이야기이며, 욕망이며, 청년이며, 예술이다. 이들이 엮은 <도시기획자들>은 도시기획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7인이 각자 꿈꾸고 실현해 온 7가지 빛깔의 도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7인 7색의 이야기가 도시는 ( )이다는 7가지 키워드로 펼쳤다. 이날 북콘서트는 일그러진 도시의 표정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 넣을지,, 끊어진 사람 사이 관계와 이야기를 어떻게 복원할지 함께 고민하는 이야기마당이다. 도시기획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통해 사람과 도시의 운명공동체적 관계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더욱 주목해야 할 소셜 잡으로서 도시기획의 매력과 필요한 자질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들을 수 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소란출판사 관계자는 좋은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다시 탐구하면서 삭막한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깊은 일상의 철학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 소개했다.북콘서트는 포럼안녕하십니까와 최명희문학관, PNB풍년제과, 홍지서림이 후원했다. 이날 북콘서트는 KBS전주 손혜원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되며, 지역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임이스트 최경식 씨와 어쿠스틱 포크밴드 이상한 계절, 고교생 밴드인 선경이와 아들들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문의 063)251-3800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1.20 23:02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22일 원광대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한국 역사학계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강(文岡) 이이화 선생(76)이 오는 22일 원광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원광대는 16일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자 2갑자가 2014년 갑오년을 맞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의의를 기념하고, 평생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해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는데 헌신한 국내 역사학계 거목 이이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이이화 선생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광주에서 보냈으며, 광주고를 졸업한 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중퇴하고 이후 역사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이후 민족문화추진회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연구생활을 했고, 1997년 역사문제연구소장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면서 100여 권이 넘는 저서와 많은 논쟁적인 논문을 남겼다.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현장답사와 연구를 시작해 전북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동학농민전쟁인물열전, 녹두장군 전봉준 등을 집필했다.한편, 이이화 선생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22일 역사학자로서의 소회를 담은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위수여를 기념하는 특강을 펼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14.01.17 23:02

지면으로 만나는 익산의 역사문물 ⑩ 망국의 유허에서 고도로

귀공인지 민력인지 끝내 아득하기만 해라위로 용화산 만 길 등성이를 능가하였네천년을 두고 그 석재가 죄안을 이루었으니금마국의 무강왕이 참으로 가련하구나-김종직(1431~1492)의 익산 미륵사 석부도(益山彌勒寺石浮屠)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익산 미륵사 석탑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백제 무왕을 마한의 무강왕으로 착각하였지만, 그는 시에서 미륵사 석탑을 미륵산의 위용을 능가하는 석탑일지라도 망국의 유물일 뿐, 부질없음을 드러낸다.마한의 중심이자 백제의 또 다른 수도였던 익산은 후백제 견훤에 의해 한때 주목받았지만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 망국의 유허(遺墟)정도로 치부되었을 뿐이었다.그러했던 익산지역이 마한과 백제문화의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00년대 초부터 진행된 이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의 성과 때문이다.현대적 의미의 학술조사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조사는 1910년 12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때에 왕궁평, 미륵사지, 석불리 석불, 왕궁탑 등이 조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때의 조사자들은 쌍릉을 마한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는가 하면,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석탑을 통일신라시대 유적으로 분류하는 등 익산과 백제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견해를 취하였다. 1917년~1918년에도 익산지역에 대한 조사가 있었지만 왕궁리탑의 실측도면이 작성된 것 외에는 1910년보다 심화된 내용은 없었다. 다만 1917년 조사로, 쌍릉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부여 능산리고분군과 유사하다는 점이 밝혀졌으며, 쌍릉에서 출토된 목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진열되기도 하였다.익산지역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7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창설된 이후부터이다. 마한과 백제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제문제를 조사연구하는 기관으로 발족한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 동탑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마한과 백제 관련 유적을 발굴조사하였다. 특히 마한과 관련하여 신동리 무덤, 율촌리 분구묘 등 마한 분묘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주목된다. 그리고 백제와 관련해서는 오금산성, 미륵산성 등 백제 산성과 미륵사지, 제석사지, 연동리사지 등 절터를 비롯하여 웅포리 고분, 입점리 고분, 쌍릉 등 고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사연구가 진행되었다.이러한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조사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05년 익산이 고도(古都)로 지정될 수 있었다.조선시대 익산은 망국의 한이 서린 땅이었을 뿐이다.100년 전만 하더라도 익산은 고사에 기록된 것처럼 고조선 준왕이 왔던 곳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현재 익산은 마한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고도였다는 것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그러나 아직 익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밝혀지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여전히 익산지역의 실체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이 의문은 어느 연구소, 어느 박물관만이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익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풀 수 있을 것이다. (끝)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1.15 23:02

지면으로 만나는 익산의 역사문물 ⑨ 익산이 품고 낳은 사람들

조선시대 익산지역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고 또 모여들었으며, 죽어서 묻혔다.관계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성종 17년(1486)에 태어나 명종 17년(1562)에 죽은 소세양(1486~1562)을 들 수 있다. 소세양은 관직이 좌찬성까지 올랐으나, 관직을 사직한 뒤에는 익산으로 내려와 말년을 보냈다. 소세양이 익산에 터를 잡은 이유는 외손봉사를 위해 외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소세양은 문장은 물론이고 율시와 송설체에 뛰어났으며 그의 저서로는 <양곡집>(陽谷)이 있다. 왕궁면 용화리에는 소세양 일가의 묘소가 있는데, 소세양의 아버지인 소자파(1451~1524), 소세양 본인의 신도비 등과 함께 중종 37년(1542)에 소세양이 직접 지은 어머니 왕씨의 묘비가 있다.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유계(1607~1664)를 들 수 있다. 그는 죽어서 익산에 묻힌 경우이다. 유계는 1633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1636년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여 청과 강화한 후 유배되기도 하였다. 후에 복직되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그는 특히 학문으로 더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1639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은거하면서 지은 <가례원류>(家禮源流)는 훗날 노론과 소론 사이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1659년에는 효종이 승하한 후 대비의 복상문제가 일어나자 기년설을 주장한 노론 편에 서서 남인을 논박하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노론의 역사관을 반영하여 고려사를 재구성한 <여사제강>(麗史提綱)을 편찬하였다.유계는 이이(李珥, 1536~1584)와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노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여러 편 저술한 노론의 전위적인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죽은 뒤 익산에 묻혔는데, 그의 신도비문과 묘표는 각각 현종 9년(1668)과 13년(1672)에 노론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이 지었다.충의를 대표할만한 인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이보(1544~1592), 소행진 등을 들 수 있다. 연안이씨인 이보는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키고 400여명의 익산 출신 의병과 함께 이치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익산 은천사의 주벽으로 배향되어 있다.한편 조선 전기 문신이자 좌리공신에 오른 이숭원(1428~1491)을 파조로 하는 연안이씨 충간공파 문중에서는 다른 곳에 있던 이숭원의 위패, 영정, 교지, 공신회맹록 등을 선조대(1567~1608)에 익산으로 옮겨오기도 하였다. 후에 후손들은 어서각, 현동사(영당) 등을 세우고 이것들을 봉안하였다.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함열 사람 호산 서홍순(1798~?)이다. 서홍순은 전주 풍남문의 호남제일성을 쓴 서예가이자, 글씨로 일가를 이룬 이삼만(1770~1847)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홍순은 초서를 잘 썼으며, 가늘게 쓴 것은 바탕의 무늬와 같아 글자가 없는 듯 했다고 한다. 이삼만이 서법의 전수를 위해 <화동서법>을 간행하였듯이 서홍순 역시 함열에서 목판으로 찍은 <호산필첩>을 간행하기도 하였다.종교계에서는 일제강점기 익산에 터를 잡은 뒤 우리나라 4대 종교로 발돋움한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을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다.원불교는 박중빈이 1916년 고향에서 얻은 깨달음에 연원을 둔다. 그러나 현재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24년 익산에 불법연구회를 조직한 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박중빈과 제자들은 6만여 평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한편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교리 공부를 통해 원불교의 터전을 닦았다.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1.08 23:02

"문화유산 기초연구 유네스코 등재 확대"

도내에 있는 자연·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우수성을 입증하는 기초연구와 협력관계 구축,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북발전연구원(원장 김경섭) 문화관광연구부 장세길 부연구위원은 6일 이슈브리핑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지역의 자연·문화유산을 보존 및 계승하는 의미와 함께 지역공동체 주도의 보존활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지역발전의 중요한 전략으로 평가 받고 있다”면서 “도내에서도 유네스코 등재효과 등에 대한 사례 분석을 통해 전북의 세계유산 후보군을 발굴해 등재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강릉단오제의 경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세계적인 축제가 됐고, 이는 지역의 자긍심과 대외 이미지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지역발전을 이끌었다는 게 장 부연구위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장 부연구위원은 △유산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기초연구 선행 △민·관추진체 구성 및 등재추진 대내·외 선포 △국내 관련 기관과 MOU 체결 등 협력관계 구축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 개최 △타 지역 또는 타 국가와 공동등재 적극 활용 △전라북도의 적극적인 지원 등의 추진전략을 제안했다. 그는 “전북의 자연·문화유산들이 등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면서 “특히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시·군에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세길 부연구위원이 선정한 유네스코 유산 등재 전라북도 후보군은 다음과 같다.△세계유산=그리스도교 한옥 교회군, 김제 다종교 화합마을, 김제 벽골제, 부안도요지, 장수남원 가야고분군 △세계기록유산=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춘향전, 태인 고현동향약 △인류무형문화유산=한지, 젓갈문화, 짚·풀공예 △생물권보전지역=부안군, 정읍시, 동부권(무주·진안·장수·순창군) △세계지질공원=진안·임실군(마이산 및 진안분지), 고창·부안군(갯벌 및 변산국립공원) △창의도시네트워크=남원시

  • 문화재·학술
  • 김정엽
  • 2014.01.07 23:02

미륵·숭림·심곡사 유물 통해 고려인 삶·문화 엿볼 수 있어

고려시대 익산과 관련된 기록은 금마군, 여량현, 낭산현 등 여러 작은 고을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과 1344년 원 순제의 황후 기씨의 외향이라 하여 익주로 지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렇게 역사책에 쓰인 글로 500여 년 지속된 고려시대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문화재를 살펴보는 것이다.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첫 번째로 고려가 대업을 이룬 데에는 부처의 호위에 힘입었다고 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불교국가였다.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산과 물가에 사찰, 탑, 석불 등이 도처에 조성되었다. 익산지역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는데, 고려시대 익산지역에서 번성했던 사찰을 꼽자면 삼국시대에 창건된 미륵사를 비롯하여 숭림사, 심곡사 등을 들 수 있다.미륵사는 조선 <태종실록>에 실린 자복사 88곳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금마의 제례를 주관하는 자복사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숭림사 역시 고려 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실물은 없어졌지만 재산대장에 ‘지정 5년’(1345)이 새겨진 기와가 그려져 있어,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 해준다.심곡사에는 연화대좌 형태의 기단부가 있는 칠층석탑이 있어 관심을 받아왔는데, 2012년 6월에 이 석탑의 상층기단과 지대석 두 곳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더욱더 끌게 되었다. 칠층석탑 상층기단의 사리구멍에서는 백자항아리와 함께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금동불 2구가 봉안되어 있었으며, 지대석의 사리구멍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에 조성된 불감과 함께 금동불 7구가 발견되었다.특히 사리갖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지대석의 사리구멍에서 확인된 불감과 금동불이다. 불감의 문은 파손이 심하지만, 안쪽에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이 보존수복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불감 내부에서 확인된 7구의 불상 가운데 불감의 앞쪽에 있는 금동불좌상 1구와 금동보살좌상 2구가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반면, 뒤쪽에 봉안된 4구는 앞쪽의 3구와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앞쪽에 안치되어 있던 아미타삼존불은 라마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뒤편 금동불 4구는 고려 전통 양식을 기반으로 하여 조선 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한편, 여산면 원수리에서는 순금제 불상이 출토되었는데, 이 불상에 ‘신축辛丑’년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어 주목받아왔다. 이 불상 역시 심곡사 금동불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에 유행한 라마양식 불상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신축년은 1361년으로 추정된다.이러한 고려시대 익산사람들이 이룩한 다채로운 불교문화재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고려시대 익산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1.02 23:02

문화재 수리 5년간 739억 투입

문화재청은 문화재수리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문화재의 가치와 진정성 유지를 위한 문화재수리 정책을 체계적·종합적으로 추진하고자 내년부터 2018년도까지 시행할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5개년 기본계획’을 27일 관보에 고시했다.이번 기본계획은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중장기 계획으로, 철저한 현 실태 진단에 근거해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문화재수리 정책이 이루어지도록 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이를 위해 기본 계획은 향후 5년간 추진할 정책을 3개 대과제, 6개 중과제, 20개 세부추진과제로 선정했다. 이 사업에는 국비 682억 원, 지방비 57억 원을 합친 739억원이 투입된다.이번 기본계획에 따라 문화재수리 부재의 수집·보존·연구를 위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연면적 1만3000㎡)를 설립하고, 문화재 중요도에 따라 적정한 수리업자와기술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문화재수리업자에 대한 평가·공시, 기술인력에 대한 경력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운영한다.또 문화재수리기술자 국가자격시험을 개선해 전공과목을 확대 개편하고 심층 면접을 강화하며, 2012년에 처음 시행한 의무감리 제도를 적극 활성화해 감리대상을 확대하고 감리자격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문화재수리 전통재료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사업 추진 방안도 마련한다.문화재청은 이번 기본계획이 지자체에서 자체 실정에 맞는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하는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3.12.30 23:02

지면으로 만나는 익산의 역사문물 ⑦ 후백제 개국의 터전, 익산

익산지역은 위만에게 쫓긴 고조선 준왕이 내려와 재기를 꿈꾸던 곳이며, 백제 무왕 역시 익산을 발판으로 삼고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였다. 백제와 고구려의 패망 이후에도 익산지역에는 재기와 부흥을 꿈꾸는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보덕국을 세운 고구려 유민이 있었고, 의자왕(재위 641~660)의 오래된 원한을 씻고 백제를 부흥시키고자 했던 견훤(867~936)이 있었다.892년 무주를 중심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였던 견훤(867~936)은 900년 완산주에 이르러 열광하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백제는 금마산에서 개국하여 6백년이 되었는데, 신라의 김유신(595~673)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였으니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물론 이 연설은 이 일대의 민심을 이용하기 위한 연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후백제 건국의 정통성을 백제, 더 나아가 마한과 연결시킨 점이다. 견훤은 후백제 건국의 정신적역사적 토대를 익산에 두었던 것이다.익산지역은 한때 준왕이 마한을 건국한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마국이 마한의 맹주로 한때를 호령하였던 곳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또 다른 도읍이 들어섰던 곳이었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 그들의 땅을 고구려 유민에게 내주기도 하였으며, 보덕국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 아래 익산지역의 많은 백제 유민들 역시 피해를 입었다. 익산 사람들의 그러한 박탈감은 마한과 백제를 잇겠다는 견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을 것이다.후백제 개국의 정신적 토대를 익산으로 삼았던 견훤은 마한과 백제 계승의식을 대내외에 표방하기 위해 익산일대에 대한 정비를 단행하였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미륵사 개탑開塔이다.미륵사 개탑에 대한 이야기는 <갈양사 혜거국사비>에 나온다. 혜거국사(899~974)는 고려 광종 19년에 국사가 된 승려인데, 후삼국시대에는 주로 후백제지역에서 활동하였다. 혜거는 917년 금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922년에는 미륵사 개탑을 계기로 열린 선운사 선불장에 참석하기도 하였다.선불장이 열릴 정도였다면, 미륵사 개탑이 단순히 석탑의 보수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미륵사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수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후백제 왕실 사찰로 추정되는 봉림사지 석조삼존불의 보살상의 손과 유사한 미륵사지 출토 청동보살 손이 주목된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 혹은 고려로 단정할 수 없는 기와나 금속공예품 등 역시 922년 미륵사 개탑 시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미륵사에 대한 정비뿐만 아니라, 백제 궁성터에 대한 정비도 실시하였다. 옛 백제 궁성에는 왕궁리 오층석탑을 조성하고 금동불입상을 봉안하였다. 이처럼 백제의 옛 궁성에 다시 세운 왕궁리 오층석탑은 후백제 견훤이 백제를 계승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표방하기 위한 기념비적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다.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3.12.25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