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백제 말기에 조성된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굽을 물길이 감돌아 흐르는 대형 후원(後苑) 시설과 북문터 등이 발견됐다. 1989년 이후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을 발굴조사 중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올해 조사에서 백제시대 궁성 내부 후원과 연계된 물길 흔적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반 타원 형태의 물길로 둘러싸인 후원은 왕궁리 5층 석탑 북쪽 구릉지대에서 발견됐으며, 규모는 남북 길이 약 240m, 동서 너비 71m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성벽의 중앙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에서는 정면 3칸(길이 4.4m), 측면 2칸(폭 3.9m) 규모의 북문터가 발굴됐다. 이로써 왕궁리 유적에서는 동ㆍ서ㆍ남ㆍ북 모두에 걸쳐 문터가 확인됐다. 또 후원 공간에서 가장 평탄하고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서는 정면과측면이 각각 4칸(10m)인 정사각형의 건물터도 발견됐다. 연구소는 이 건물터가 위치나 규모 등으로 봤을 때 거주 공간이 아니라 의례나제례 등과 관련된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또 '대관관사(大官官寺)'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북벽에서 발견됐으며 5층석탑 북동편의 민묘 이장 지점에서 중국 청자 조각이 나왔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5월 경북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에 있는 석장사지에서 점판암(粘板巖) 자연석에 글자가 새겨진 좁고 긴 각석이 발견되었다. 새겨진 문장의 첫머리에 壬申이라는 간기가 있으므로 임신서기석이라 명명되었다. 손상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 발굴되어 쉽게 명문을 판독할 수 있는 바, 편의상 현대식 한자로 바꾸고 표점을 찍어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 辛未年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秋傳倫得, 誓三年.모두 74자로 5행에 걸쳐 가늘고 깊게 새겼다. 대략 크기는 높이 34cm, 넓이 12.5cm, 두께 2cm 정도이다. 문장의 구성은 좁고 긴 돌의 앞면 오른쪽 모서리를 따라 말하듯이 글씨를 새기다 보니, 윗면은 공간이 많이 생겨 행간이 성글고 아랫면은 상대적으로 촘촘하게 배치되었다. 각고 없이 바로 철필로 바로 새겼으며, 문장이 전환되는 4행에서는 의도적으로 띄어 쓴 흔적도 보인다.각석된 문장에 壬申과 辛未라는 간지가 분명히 보이지만, 그것이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각석의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발견된 지역이 경주 석장사지이며, 그 내용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대략 임신년에 해당하는 시기는 552년, 612년의 것으로 본다. 그 사료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4년 6월에 보물 제1411호로 지정되었다.임신서기석은 작은 돌에 맹서문을 새긴 것이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범상치 않다. 우선 내용면에서 맨 먼저 임신년 6월 16일이라고 구체적인 일자를 기록한 뒤, 두 사람이 함께 하늘 앞에 맹서한다는 내용이 신성함과 비장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다음에는 그날로부터 3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하여 충도(忠道)를 집지(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서한다고 새겼다. 그리고는 만약 이 일을 잃으면 하늘에 큰 죄를 얻는다는 것을 맹서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3년이라는 기간과 충도이다. 3년이라는 기간이 명확하게 설정된 배경을 충도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때 마치 두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맹서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서민의 맹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충도를 행하겠다는 젊은이의 다짐이다. 그 다음에 보이는 명문에서 그 의도가 보다 명확해진다. 만약 나라가 불안해지고 크게 어지러워지면 세상에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맹서하고 있다. 앞에서 맹서했던 충도가 국가를 위한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단 맹서문은 여기에서 끝을 맺는다. 조금의 여백을 둔 뒤 또 별도로 이에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서하기를 시(詩), 서(書), 추전(秋傳)을 윤득(倫得)할 것을 맹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고 추기하였다. 모두 두 번의 맹서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시는 시경이며, 서는 서경이고, 추전은 춘추전이며, 윤득은 차례로 터득한다는 뜻이다. 모두 유교경전으로서 맹서한 충도가 유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형식면에서 보면 문장의 구성방식이 특이하다. 각석된 문자가 모두 한문이지만 그 문장은 한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술목 구조의 전통적 한문표기와는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에 한글식으로 읽어나가면 바로 뜻이 통한다. 이러한 문장법은 이 각석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한문의 발달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명문의 執, 辛, 得자의 체세와 容자의 형태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 이은혁(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김영석)은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답사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이번 답사는 전북대 사학과 학생들과 제주교육대 사회교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올해를 시작으로 대학생과 함께하는 동학농민혁명유적지 답사를 매년 개최할 계획이다.답사 첫 날인 24일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문병학 이사의 해설로 고창지역 유적지 답사를 시작으로, 고창읍성과 판소리박물관,전봉준생가, 고인돌박물관, 무장읍성, 무장기포지, 미당시문학관, 손화중장군 피체지,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을 둘러본다. 25일에는 전주역사박물관 이동희 관장의 해설로 전주역사박물관과 풍남문, 전동성당, 경기전, 어진박물관, 향교 등을, 26일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부장의 해설로 만석보터, 전봉준고택, 고부관아터, 사발통문작성지, 무명농민군위령탑, 말목장터를 거쳐 황토현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신수 문화재전'을 열고 있다. 최근 박물관에 들어온 수입품(국가귀속유물)과 토제장구, 잔무늬거울, 청동창, 백자청화문자명호 등 미공개 유물 6점을 일반에 공개한다.전시 유물 중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조선시대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에 조성된 유적인 전주 삼산리와 고창 용산리에서 출토된 토제장구이다. 전주 삼산리 토제장구는 조선시대 생활유적에서 확인되었는데 유물의 2/3가 남아 있어 보존처리를 통해 복원되었다. 하지만 고창 용산리 출토 토제장구는 가마터에서 출토되었고, 발견 시 유물의 절반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남아 있는 부위 만으로는 전체 모습을 추정할 수 없어 복원이 어렵다.장구는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 하나로 현재 대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지지만, 토제장구를 통해 조선시대에는 흙으로도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백자청화문자명호와 전북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유적인 완주 갈동에서 발견된 잔무늬거울과 청동창이 함께 전시된다.이영범 국립전주박물관 보존처리 담당자는 "앞으로도 발굴 유물을 비롯한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보존·복원하고 전시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지역의 문화 중심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신수문화재전=내년 1월 30일까지 전주박물관 2층 홀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전통문화로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후세 양성에 전념하겠습니다."지난 16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매사냥의 기능보유자 박정오씨(69·진안 백운면 백암리)는 이같이 의지를 다졌다.매사냥과 함께 평생을 같이 해 온 박 옹은 "사라져 가는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 사냥을 함께하는 매와 함께 밤을 새우며 자축했다"고 전했다.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록된 데에 대한 소감에 대해 그는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매사냥이 인류 무형유산에 등록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금까지 매사냥의 명맥을 유지해 온 나 자신이 큰 영광으로 느끼고, 동시에 막중한 사명감도 갖게 된다"고 말했다.진안의 유일한 '매꾼'인 박 옹은 매사냥의 원조격인 마을 주민 김용기·전영태씨(작고)에게 사냥법을 배워 30여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는데 지금은 아들 신은씨(43)에게 전수하고 있다."날 짐승을 길들인다는 것은 인내없이는 안됩니다. 매를 산에서 받아 오면 20~25일간은 습관을 들이게 되는데, 경계심을 풀고 유대관계를 가지려고 화장실가는 시간만 제외하곤 24시간 방안에서 날을 새며 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두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소개했다.박 옹은 "그래도 지금은 장터에 가거나 마을회의 때면 전수자인 아들에게 맡겨놓고 가기 때문에 조금은 수월해졌다"고 옛 일을 회고하면서 "2007년 전북도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매사냥을 널리 보급하고 명맥을 유지하려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돼야 한다"면서 그런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서기태 진안군청 문화예술 담당은 "세계적인 무형유산이 진안에 최초로 등장함에 무한한 자부심이 든다"면서 "이를 잘 보존하는 데 행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한편 진안군에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인류 무형무산은 매사냥의 박 옹이 최초이며, 이번 유네스코 등록을 위해 전북도는 지난 6일 문화재청에 관련자료 등을 첨부, 매사냥의 유네스코 등록을 추진했었다.
전북역사문화학회(회장 나종우 원광대 교수)가 19일 오전 11시 전북도청 중회의실에서 '전북 향토사의 재발견'학술대회를 개최한다.도내 향토사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현장에서 발로뛰고 있는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심도 있는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다.이날 대회는 나종우 회장의 기조발표 '전북향토사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시작으로 1부와 2부, 종합토론으로 오후 4시까지 이어진다.김종운 부안군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부안청자의 발생과 확산', 김선기 원광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익산의 사찰유구를 통해 본 백제문화의 창의성'을 발표하며 '일제강점기 군산지역 불교현황', '남원지역의 불망비로 본 지방관', '정읍매장문화재 발굴성과와 과제', '동리정사 옛모습에 대한 재검토'등의 연구성과도 발표된다.토론자로는 한성욱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학예실장, 이문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최규호 남원시청 학예연구사 백덕규 김제시청 학예연구사, 노기환 김종철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학예연구사가 참여한다.나종우 회장은 "우리지역은 소중한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향토사 연구는 문화자원의 스토링 텔링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안 죽막동 유적지가 동아시아 해양제사 유적지로서 세계문화유산의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따라 죽막동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하기 위한 학계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12일 부안군청에서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와 부안'을 주제로 열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세미나에서 임효재 동아시아고고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동아시아 제사 유적지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죽막동과 일본 오키노시마가 유일하다"며 "일본 오키노시마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려진 만큼 우리도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죽막동 유적지는 국립전주박물관이 1992년 발굴 조사한 우리나라 최초의 제사 유적지로 백제를 비롯해 대가야, 중국 남조의 제사유물 800여 점이 출토,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평가받았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도 "죽막동 유적지가 있는 부안은 중국 강남에서 들어오는 길,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길, 한반도 남부 동안에서 오는 길, 일본열도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었다"며 "죽막동 유적지가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임효재 회장은 이어 "오키노시마는 작은 파편까지 추려 8만여 점에 이르는 유물들을 국보급으로 지정한 반면 죽막동은 전체 유적지 중 1/10만 발굴된 상태"라며 "국내·외 학계를 중심으로 죽막동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이를 위한 교육적 시설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송화섭 전주대 교수는 "항해 보호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당제의 역사는 백제 죽막동 해양 제사의 전통이 현재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며 "죽막동에서 출토된 인형이 용왕굿의 띠배보내기 의식에서 봉헌물로 바쳐지는 허세비와 흡사한 것을 볼 때 죽막동은 해양신앙의 관점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부안군이 주최하고, 전주대 산학협력단과 변산해양문화포럼 주관한 이번 세미나는 심승구 한국체육대 교수, 곽장근 군산대 교수, 조상진 전북일보 논설위원, 이혜은 동국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동리문화사업회는 11일 동리대상 수상자 선정 심의위원회를 열고 40평생을 판소리 중흥과 대중화에 헌신한 조소녀 명창을 수상자로 선정했다.조소녀 명창은 1941년 충청남도 아산 출생으로, 첫 스승인 박초월 명창에게 사사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습을 중단, 스물아홉에 오정숙 명창과 이일주 명창에게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였다.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늘도 뚫을 것 같다'는 평판을 들을 만큼 소리 공력을 쌓아가지만 목에 이상이 생겨 일곱 번의 성대 결절 수술을 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무대 활동보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소리에 대한 꿈과 열정을 풀어냈으며, 그의 문하에서 공부한 200여명의 제자들은 국악계의 든든한 재목으로 성장했다.그는 1984년 제2회 남도예술제 판소리 특장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명창 반열에 올랐다. 그후 전라북도 문화상, KBS 국악대상을 수상 하였으며, 1996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또 (사)완산국악제전진흥회를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 올해 15회째 완산전국국악대제전을 개최했다.한편 동리대상은 고창군과 (사)동리문화사업회가 동리 신재효 선생의 문화예술사적 업적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판소리 진흥에 업적을 남긴 연창자, 고수, 판소리 연구가 중 한 분을 선정, 매년 상장과 부상으로 일천오백만원을 수여해 오고 있는 우리나라 판소리 부문 최고 권위의 시상이다.시상식은 11월 19일 오후 2시 동리국악당에서 열린다.
지난해 2월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5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 인해 문화재를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12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예원예술대 개교 10주년을 맞아 열린 문화재 보존학과의 국제학술 심포지엄'그림, 應目會心 하며 만나다'는 국내 문화재 보존 과학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자리였다.강대일 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교수는 "숭례문은 우리의 문화재 보존철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 경고를 주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고 본다"며 "문화재를 보존하며 활용해야 하고, 활용하며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강 교수는 이어 1997년부터 용인대를 시작으로 국립공주대, 경주대, 예원예술대 등에 문화재 보존학과가 개설되고 있지만, 전공 교수와 이론·실습시간이 적어 내실을 기하기 어렵다며 문화재 보존 전문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 사찰 벽화를 보존하려면 예방적 보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한경순 건국대 회화과 교수는 "한국의 사찰 벽화는 외부환경에 노출돼 있어 채색층에 대한 보존 처리와 습기의 유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어렵다"며 "예방 보존에 힘쓴다면, 벽화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전경미 예원예술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근대 이후 정읍 영모재와 담양 미암사당, 임실 양요정과 같은 민화적 그림과 조선 후기 교화적 목적에 의해 그려진 벽화의 영향으로 2000년대 이후 서민을 위한 담장벽화가 유행한 것"이라며 "대중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간직한 벽화의 보존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또한 "조선후기 벽화는 석회를 반죽하여 바른 벽이 아닌 모래와 흙을 섞어서 바른 벽에 그린 것"이라며 "조선 말기 혹은 일제 강점기 유입된 새로운 건축 표현에 기인해 잘못된 상식이 통용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동안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네 개로 알려져 있다. 오늘 소개하는 창녕 진흥왕척경비(이하 창녕비)는 이전의 세 비와 달리 척경비라는 명칭을 붙였다. 문헌을 들춰보면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금석총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전의 기록에는 창녕비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여타의 세 비는 모두 비문의 첫 행에 진흥왕의 이름과 '巡狩管境'이라는 내용이 보이므로 진흥왕순수비로 확정하였으나, 창녕비에는 첫 행에 비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학자마다 순수비와 척경비 또는 왕과 신료들이 회맹한 것을 기록한 회맹비(會盟碑)로 규정하는 등 그 설이 분분하다. 현재 문화재청에 따르면 '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로 명명되어 있으며, 1962년 국보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척경비란 영토를 개척하고 세운 비를 의미한다.창녕비는 앞서 소개한 세 개의 순수비와 달리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우선 비의 형태로 볼 때, 다른 순수비들이 정방형의 석재에 개석(蓋石)을 얹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반하여 창녕비는 전형적인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특이하다. 또 비문을 새길 비면을 정리하면서 비의 형태에 따라 거의 정방형의 직선을 그어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왼쪽 상단부는 돌의 모양에 따라 마치 계단처럼 구획되어 있어 매우 특이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부정형의 자연석에 정형화된 공간을 확보하면서 빚어진 특이한 공간구성은 여러 가지 추측을 유발한다. 비문의 구성을 관찰해보면 먼저 비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긴 뒤 비문을 감싸는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마지막 세 글자인 ?智述干?이 사각의 구획선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보면 글씨를 새긴 뒤 비문의 바깥에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비문의 첫 구절은 "()巳年二月一日立"이다. 여기에서 판독된 ()은 辛자로 이해되어 辛巳년을 뜻하는데, 고예(古隸)로 쓰인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비에도 이와 비슷한 자형이 보인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는 글자의 윗부분 立이 士로 되어 있어 마치 來자처럼 보인다. 비문에서 나타나는 이체자이다. 여기에서 호태왕비를 예로 든 것은 창녕비의 자형이 정형화되지 않은 과도기적 형태를 지니고 있어 호태왕비와도 일면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신라의 고비에서 나타나는 고졸함이 창녕비에서도 엿보이는데, 그 결구방식이나 조화미에서는 이전의 순수비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있다. 판독된 내용에 따라 건립연도를 추정해보면 신사년은 진흥왕 22년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한 651년에 해당한다. 신라의 북진정책과 아울러 남진정책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기년의 아래에 보이는 "寡人幼年承基, 政委輔弼"이라는 구절은 진흥왕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과인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정사는 보필하는 자에게 맡겼다는 내용인데, 이는 「삼국사기」에 진흥왕이 즉위할 당시의 나이가 7세였다고 하는 내용과 부합한다. 7세에는 정사를 판단하고 결정할 만한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부득이 섭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사기」에서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며,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정황을 알 수 있다.이후의 내용은 성년이 된 진흥왕이 함께 수행한 신료들의 관작과 이름을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새로 개척한 영토에 대한 처치와 진흥왕의 권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을 잠시 인용하면 "서인(書人)은 사탁의 도지 대사(導智 大舍)이다. 촌주(村主)는 멱총지 술간(멱聰智 述干), 마칠지 술간(麻叱智 述干)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담당한 직책과 이름 그리고 직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나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書人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필자의 눈길을 이끈다. 그것이 비문의 서자를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탁의 도지(導智)는 창녕비의 서자로서 소속과 직위를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이은혁 (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
6일 전주 시청광장에서 시작된 '태조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 기념 대제'. 이날 행사는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가 왕의 분신이자 상징인 어진을 모신 도시로서 전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널리 알리는 자리가 됐다. 특히 시민들이 사진을 비롯해 동영상으로 이날 행사를 올려 트위터에서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송하진 전주시장은 "이번 행사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히는 자리"라면서 "전주의 자존심을 자신감으로 승화시키는 날"이라고 밝혔다.기념대제는 조선시대에 어진을 봉안한 과정을 재현한 행사로 전라관찰사가 충청관찰사로부터 어진을 넘겨받아 경기전으로 모시는 고유례, 어진 행렬, 어진봉안례로 진행됐다. 송하진 시장이 전라감찰사로 분장, 취타대와 향로를 안치한 향정이 기수와 의장대와 함께 행렬에 동행했다. 신연 의장과 봉시 예관이 어진을 모신 가마인 신연을 호위하며, 모사된 대형 어진이 모셔지면서 전주기접놀이보존회, 전주지역 풍물패를 선두로 하는 시민축하행렬단이 행진했다. 어진행렬단과 시민축하행렬단은 오거리 문화광장, 팔달로를 거쳐 경기전으로 2km를 행진했다.시민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왕의 행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삼삼오오 거리로 나온 어르신들은 일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감격스러운 순간을 확인하기 위해 걸었다.태조어진 행렬을 보기 위해 걸어왔다는 이심기씨(59·전주시 삼천동)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순간"이라고 했다. 울산에서 전주에 나들이 왔다는 이정희씨(29)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가 함께 살아숨쉬는 곳 같다"며 "전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말했다.행렬단은 행진 중간 중간에 시민들을 위한 포토 타임도 가졌다. '기회는 이때다!' 는 심정으로 시민들은 너도 나도 휴대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들고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댔다."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김경미씨(46·전주시 송천동)는 "어진이 서울로 올라갔을 때만 해도 정말 서운했는데, 다시 전주로 돌아와 참 다행"이라며 분주하게 사진을 담았다. 이희정씨(78·전주시 호성동)도 "내가 전주 이씨여"라고 말문을 열더니 "이제 어진박물관까지 개관됐으니 더이상 부러울 게 없다"고 덧붙였다.경기전에 도착한 어진은 여섯 번의 북소리를 신호로 향정을 앞세우고 조선 왕실의 종친 제관들에 의해 진전에 모셔졌다. 어진을 경기전에 봉안하게 됐음을 알리는 봉안례가 거행,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초헌관과 아헌관, 종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하지만 이번 봉안 행렬이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고증된 봉안행렬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망궐례 역시 봉안 행렬과는 무관한 행사로 태조어진을 봉안한 대신들이 객사에 들러 무사 봉안을 임금에게 고하는 배례(拜禮·절하여 예를 표함)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좀더 세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전주시가 6일 개관을 앞둔 전주어진박물관의 운영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전주역사박물관과 통합 민간위탁 방침을 밝혀 빈축을 사고 있다. 민간위탁을 맡길 예정이었던 3대 문화관(전주부채문화관, 전주소리문화관, 완판본문화관)은 문화시설 위탁 공고조차 내지 않은 상황이다.지난 2일 전주시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을 통합위탁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문화시설 민간위탁 수탁자 모집 공고를 발표했다. 문제는 어진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의 통합 운영안에 관한 논의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한 문화예술인은 "전주시가 어진박물관의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관한 가이드 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누구에게 운영을 맡길 것인가만 고민하고 있다"며 "이는 시가 재정의 부담은 덜면서 수탁자에게 어진박물관 운영을 떠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더욱이 경기전은 전주시가 관리하고,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은 다른 수탁자가 맡게 되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주체가 운영하게 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태조 어진의 국보 승격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을 환기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시가 어진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통합 해 민간위탁을 맡기는 것은 책임 회피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은 "현재 예산에서 어진박물관을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민간위탁을 결정한 것"이라며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오히려 민간 전문가들이 더 잘 운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오는 11~12일 열리는 서울 G20 정상회의장이 전북 전주의 한지와 전통가구로 꾸며진다. 전주시는 전주의 전통가구와 병풍, 한지등(燈), 한지타일 등이 G20 정상회의장을 꾸미는 주요 소품으로 결정됐다고 1일 밝혔다. 정상회의장에 배치되는 전통가구는 전주시가 개발한 서랍장, 조명, 다도세트와석전 황욱 선생의 유품인 사방탁자, 이층장, 반닫이 등 10여 가지이다. 이밖에 이철량 화가가 그림을 그린 모란병풍과 차종순 교수가 디자인한 한지등, 한지등 칸막이, 국기 한지등 등도 포함됐다. 이들 소품은 각국 정상들의 오찬장과 라운지, 복도 등에 배치되며 전통문양을새긴 한지로 만든 타일도 정상회의장의 벽면을 도배한다. 이와 함께 전주 한지는 G20 정상회의의 행사 진행요원에게 주는 참여 증서로도쓰인다. 임민영 문화경제국장은 "전주의 한지와 가구가 우리나라의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데다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준 결과"라며 "전주를 세계에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일은 조선 태조어진을 전주에 봉안한 지 600주년을 맞는 날이다. 전주시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6일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뒷편의 어진박물관을 개관하고 어진 봉안 600주년 기념대제를 연다.행사의 주관을 맡은 전주문화재단(이사장 라종일)은 어진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오후 1시 30분부터 태조어진 봉안행렬을 재현하고 봉안례를 치른다. 의장대와 취타대 등 총 600여 명이 참여하는 어진 봉안행렬은 시청광장을 출발해 오거리 문화광장과 팔달로를 거쳐 경기전에 도착할 예정이다. 행진 중간 이어지는 어진 영접례·봉안례 등은 고증을 바탕으로 한 거리축제로 거듭나게 한다.전주문화재단은 같은 날 오전 11시30분부터 풍패지관(객사)에서 망궐례 의식을 재현한다. 망궐례는 조선 시대 각지의 관찰사와 관리들이 매월 1일과 15일 객사에서 왕과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배례(拜禮·절하여 예를 표함) 의식이다. 전주문화재단은 또한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과 백일장·사생대회를 열고, 궁중복식·탁본 체험 등을 마련한다.박물관 개관 기념 전시로 '불멸의 위엄, 조선왕릉'도 개최된다. 1392년 제1대 태조부터 1710년 제27대 순종까지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소개된다.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은 "전주가 태조 어진을 지난 600년간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주최하고, 전주전통문화센터(관장 김민영)가 주관하는 '왕가의 산책'과 '수문장 교대 의식'도 열린다. 전문가 고증에 의해 제작된 15세기 세종대의 궁중복식 및 의장물을 입은 왕과 왕비, 수행단 등 총 20여 명은 6일 오후 1시 경기전에서 궁을 산책하는 '왕가의 산책'을 재현할 예정이다.'수문장 교대 의식'은 7일 오후 1·2시 경기전에서 조선시대 도성과 궁의 각 문을 관장하던 최고 관리자인 수문장의 교대 의식을 재현, 왕실의 호위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김민영 관장은 "이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상설 재현했던 행사로 중앙의 문화행사를 지역과 연계해 전주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태조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을 맞아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도 뜻깊다"고 말했다.
태조어진과 경기전의 역사를 담아낼 어진 박물관이 다음달 6일 개관된다.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 뒷편에 건립된 어진 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에 1194㎡ 규모로 어진실과 가마실, 역사실, 수장고, 기획전시실 등을 갖췄다. 어진박물관 건립은 태조어진을 영구히 보전하며, 경기전의 역사를 내실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경기전 정전 침실과 같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어진실에는 태조어진과 새로 모사된 세종·영조·정조·철종·고종·순종의 어진이 전시된다. 태조어진 전용 수장고에는 1872년 모사된 태조어진만 보관되며, 1년에 한두 차례 특별한 날에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역사실에는 경기전에 태조 어진이 봉안된 후 이에 얽힌 각종 유물들이 보관된다. 주요 유물로는 경기전의 내력과 건축, 관리, 의례 등을 수록한 「경기전의」, 1872년 태조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을 기록해 둔 '어진이모도감의궤',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던 그림 '일월오봉도', 경기전 제례에 사용됐던 각종 제기 등이다.가마실에는 1872년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썼던 어진의 가마인 신연(神輦), 귀중품을 옮겨 싣는 데 쓰인 가마인 채여(彩輿), 조선시대 고관의 행차 때 사용했던 가마인 가교(駕轎) 등이 보관된다. 어진을 옮길 때 사용된 각종 가마들은 국내에서 유일한 것들로 지난해 새롭게 보존처리를 거쳤다.어진박물관 개관에 맞춰 40기의 조선왕릉을 소개하는 특별전 '불멸의 위엄 조선왕릉'도 열린다. 1392년 제1대 태조부터 1710년 제27대 순종까지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소개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 박물관이 보관해오던 유물들이 전시되는 것으로 조선왕릉의 조성과 분포, 국장 절차 등의 설명까지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재단법인 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김종문)이 20일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고분에서 가야계 고분 가운데는 처음으로 출토된 중국제 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유물을 공개했다.이 번에 공개된 유물은 88고속도로 확장공사 구간에 있는 총 9기의 월산리 고분군 가운데 5호 고분에서 주로 나온 것이다.5호 고분은 봉분이 원형으로 길이 16m, 높이 3.5m의 중대형 고총인 수혈식 석곽묘로, 청자천계호와 철제초두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청자천계호(靑瓷天鷄壺)는 광구병의 형태로 한쪽에는 계수(鷄首)가, 반대편에는 구연에서 동체까지 연결된 고리형 손잡이가 부착돼 있고, 어깨에는 대칭으로 '∩'자형 귀가 부착돼 있다.천계호(天鷄壺)는 중국 동진과 남조에서 제작된 청자로, 백제 한성 시대부터 동진과의 교류를 통해 백제 중앙에서 수입한 유물로 아직까지 가야지역에서는 출토된 예는 없다.이 고분에서는 또 중국 남조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자루솥과 금제이식, 유리곡옥, 유리옥, 갑옷, 발걸이, 기꽂이, 통형기대, 대부호, 유개단경호도 출토됐다.그동안 아영과 운봉고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중대형 고총은 대가양 양식의 토기가 출토돼 지역이 대가야의 영역에 포함된 것으로 추측됐으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이뤘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분석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은"아영과 운봉고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중대형 고총에 대해 체계적인 발굴조사 및 연구가 이뤄진다면 백제와 가야와의 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륵사지석탑을 재현해 만든 미륵사지 동탑이 군데군데 금이 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다, 제작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석축 일부도 화공 접착제로 짜집기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철저한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현재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한 켠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 만든 동탑이 해체복원 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석공예 전문가와 함께 동탑의 부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문악구(동탑문)의 주변 석축 6군데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금이 가 그동안 제기돼 왔던 부실시공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특히 석공예 전문가들은 '동탑을 제작하던 당시 석축의 일부가 떨어져나가자 이 곳을 화공접착제로 보수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중압력을 버티지 못한 채 균열 상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관계기관의 조속한 진단을 제기했다.또한 동탑을 이루고 있는 기단부 석축 이곳 저곳에서도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부분을 그대로 화공접착제를 이용해 제작한 흔적인 역력하게 드러나 석공예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석재 관리의 부재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동탑 기단부의 한켠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모서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방치되고 있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서 탑을 지탱하고 있는 석축의 일부가 내려앉거나 끊어진 곳도 나타나 보수의 시급성이 요구되고 있다.익산시 관계자는 "동탑은 1992년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문화재청의 안전진단 결과 구조물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재조사 전문기관인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원장 이영철)과 함께 10일-11일 박물관 교육관에서 '고대 동북아시아의 수리(水利)와 제사(祭祀)' 학술대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는 2천년 전 마한시대 마을유적인 전남 보성군 조성리 유적에서 확인한 수로시설과 울산 약사동 유적의 통일신라시대 제방유적이 주제로 오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눈에 띠는 대목은 부엽공법(敷葉工法)이다. 이 공법은 최근 고고학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으로, 이 공법을 응용한 고대 유적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전국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글자 그대로는 '나뭇잎이나 풀 등을 까는 공사 방법'이라는 의미가 있는 부엽공법은 중국에서 기원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진 기술로, 연약한 지반을 다지고자 기초공사를 할 때 나뭇가지와 잎 등을 기초 부분에 넓게 펴서 까는 공법을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가 '오성리(鳥城里)에서 약사동(藥泗洞)까지'라는 점부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보듯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부엽공법의 실체를 조명하는 자리다.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만든 두 유적은 모두 논농사와 관련된 수리시설이면서 부엽공법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고대인들은 이런 시설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수리시설의 안전이라든가 마을 공동체의 안녕 등을 기원하는 각종 제사를 지낸 흔적도 대체로 같이 발견된다. 이런 의례는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라 해서 수변제사(水邊祭祀)라고 한다. 수리시설과 수변제사의 결합 양상은 고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엿보인다. 이에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조성리 유적과 약사동 제방유적, 함안 가야리 하천제방 유적 같은 국내 수리 관련 유적 외에도 고대 일본의 대표적인 저수시설인 사야마이케(狹山池) 발굴 성과와 특징을 일본 고고학자가 보고하며, 중국에서도 왕솽후이(王雙懷) 산시(陜西)사범대학 교수가 고대 중국의 수리 관개(灌漑)시설 전반을 소개한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바위 표면 23.8%가 훼손됐다."울산시로부터 '반구대암각화 암면 보존방안' 학술연구 용역을 의뢰받은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이와 함께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강화제를 이용한 접합이나 충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9일 울산시와 공주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비파괴조사를 실시한 결과 암각화의 표면에 발생한 탈락 및 박락의 면적이 3만9천27㎤로 산출됐다. 이는 암각화 주암면의 23.8%를 차지하는 것이다. 바위표면 성분분석에서는 암석 구성광물의 하나인 방해석(석회질과 동일)이 내부로 침투한 물과 반응해 최대심도 3∼4㎜의 풍화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해 울산대 조홍제 교수가 반구대암각화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스멕타이트(바위의 훼손을 가속화하는 점토광물)는 발견되지 않았다.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또 초음파 탐사결과 지난 2003년의 같은 탐사 때보다 초음파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7년 동안 침수 반복으로 암각화 바위면의 강도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공주대는 이에 따라 사연댐에 의한 침수와 노출의 반복으로 생긴 반구대암각화 바위 표면의 다양한 균열과 탈락 등 훼손을 보완하기 위해 접착제와 충전제를 사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주사기법이나 링거기법 등으로 훼손된 바위면에 강화제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암각화 하부면 또한 동일한 암석을 사용해 보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울산시의 보전방안대로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만수위를 현 60m에서 52m로 낮출 경우 암각화의 침수를 방지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공주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이 건설된 후에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다"며 "균열, 탈락, 박리, 변색, 생물의 침착, 풍화 등 유형별 훼손원인을 분석해 보존처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울주군 사연댐 상류에 위치해 만수위 때 물에 잠겨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반구대암각화의 보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학술용역을 의뢰했다. 시와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이날 오후 시청 상황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용역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의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전주의 가치를 알아가는 자리가 마련됐다.전북일보와 전주역사박물관, 전주학추진위원회, 전주시가 공동주관한 제9기 전주학 시민강좌 '경기전과 조선왕실제례'가 4일 오후 2시 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시작됐다.첫번째 강의 주제는 '조선시대의 어진'. 강사로 나선 조선미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전해오는 어진이 수폭에 불과하긴 하지만, 조선시대 태조에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효의 어진이 제작돼 진전에 봉안됐다"며 "어진제작과 봉안에는 거국적 관심이 뒤따랐다"고 어진의 상징적 기능과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임시관장기구의 설치나 어용화사 선발 등 어진제작과정을 보면 각 단계마다 길일길시(吉日吉時)가 택해지고 왕과 대신들의 봉심(奉審 : 임금의 명을 받들어 능소나 묘우를 보살핌)이 행해지는 등 어진제작에 쏟은 국가적 배려가 막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진제작이 왕가에서 자손이 조상을 추모하려는 뜻에서도 행해졌지만, 제작된 어진을 진전에 봉안함으로써 그 조종이 영구하기를 꾀하려는 사회적 기능도 지대했죠."조교수는 "어진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진전 봉안 때 동원된 인원이나 엄격한 의례 절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전쟁 동안 미천한 신분의 참봉이 어진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피난 시 왕 이하 관료들이 어진을 앞에 두고 통곡하며 비탄에 빠졌던 것을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또 진전에 화재가 났을 때 왕이 소복하고 3일간 곡하고, 심지어는 진전 근처에서 실화나 벌목사건이 있거나 큰 비나 큰 눈이 내린 경우에도 위안제를 지냈다고 덧붙였다."우리나라에서 어느 시기에 처음 어진이 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시대에 들면서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숫자의 어진이 제작됐습니다. 활발한 어진제작에도 현존 어진은 소수에 불과해 경기전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 영조 어진,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된 영조 영잉군 때 초상화 및 철종과 익종어진, 고종어진 몇 폭과 순종어진초본이 전해올 뿐입니다."조교수는 "조선 태조는 일국의 시조인 만큼 특별한 예우를 받아 상당한 수의 어진이 제작됐지만, 현재 경기전의 태조어진 1본만 전해오고 있다"며 "태조 어진의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전주시와 전주 소재 박물관들이 보여주는 각종 의례의 재현의식과 태조어진을 둘러싼 각종 학술과 전시행사 등을 통해 조선시대 어진이 지닌 사회적 기능과 상징적 의미를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고종 어진은 현재 전주박물관과 원광대박물관, 개인소장으로 여러 폭이 전해오는데, 이처럼 여러 점의 '어진 그리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조선조 내내 품어왔던 어진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전통적 사고에서는 어진이란 왕이나 조종 그 자체로 진전 이외의 외부로의 유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고종연간 이후 이런 관념이 희박해진 듯합니다."조교수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이르면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나 혹은 지나간 옛 왕조를 못 잊는 일부계층이 어진 갖기를 소원한 듯 해 고종황제의 어진 제작 역시 제법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다음 강좌는 9월 11일 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열리는 '「경기전의」로 본 조선 말의 경기전 관리체제'. 이동희 역사박물관장이 강사로 나선다. 참가 희망자는 역사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63) 228-648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복영 시인-장선희 ‘조금조금 초록 벽지’
540억 투입 전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1억...내실 부족 우려
권일송 시인 30주기 추모 및 순창문학 출판기념회 성료
정읍 칠보 유무형 문화유산 백과사전⋯㈔정읍문화유산연구회, ‘하늘과 땅과 사람과’ 출간
2026 교동미술상 수상자에 조헌·강유진 선정
전북 미술의 새 물결…군산대 조형예술디자인학과 동문 ‘우담회’ 창립전
전주세계소리축제 새 집행위원장에 김정수 전주대 교수 선임
박보검이 무주에 떴다⋯상점 하나 없는 곳에 왜?
발렌타인데이 전주의 밤 수놓을 재즈 스탠더드의 정수
[안성덕 시인의 ‘풍경’] 입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