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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농협, 농산물 연합마케팅 500억 매출

전북농협(본부장 김종운)은 지난해 원예농산물 연합마케팅사업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고 10일 밝혔다.연합마케팅사업은 농협이 물량을 규모화해 농업인의 판매 교섭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산지농협 단위로 진행하던 농산물 판매사업을 2개 이상의 산지농협이 시·군단위로 뭉쳐 공동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으로, 연합마케팅사업을 처음 시작한 지난 2002년 매출액은 12억원에 불과했다.현재 12개 시군 연합사업단과 도단위 광역 연합사업단을 운영하고, 기초 생산조직인 110개의 공선출하회를 육성하여 생산 및 유통의 현장조직으로 활용해 '공동선별 공동계산'을 실시하고 있다.농협 관계자는 "연합마케팅사업 시작 후 공동선별 정착화와 수확 후 관리기술의 도입에 전사적으로 노력,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 전북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출하했다"고 말했다.실제로 전북농협은 지난해 전라북도와 공동개발한 전북 원예농산물 브랜드인 '예담채' 선포식을 시작으로 도내 및 수도권 대형매장에 진출, 전라북도 농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전국 대표 농산물브랜드로 육성하는 성과를 거뒀다.김종운 본부장은 "연합마케팅사업 매출 500억원 달성은 농업인과 농협직원이 땀과 희생으로 이룬 성과이자 희망"이라며 "농협은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 값을 받고 팔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전북농협은 공동선별 회원제 조직인 공선출하회를 연합사업단의 전속 출하조직으로 육성해 우수한 농산물을 연중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1.11 23:02

도내 농식품 일본 대량수출 전기 마련

일본내 초대형 식품 유통기업들이 최근 수출상담을 위해 전북을 방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10일 전북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 식품유통회사인 ACCESS사와 ITOCHU사 임원진은 7일과 8일 2일간 전북을 방문해 제희 RPC와 익산 하림(삼계탕)과 사조CS(김), 진안 부귀농협(마이산 김치) 등 4개 주요 관심품목의 생산 현장을 방문했다. 또한 대상F&B, 대두식품, 지엠에프 등 도내 19개 업체와 수출상담을 벌였다.이번 일본 기업의 방문은 도내 생산 농식품의 수입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일본 방문에 나섰던 김완주 지사의 투자유치활동 등으로 인해 전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도는 일본 기업의 방문으로 그동안 김치 등 2∼3종의 대기업 제품으로 한정된 일본 대형유통매장 입점 및 식자재 유통라인에 도내에서 생산된 식품이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특히 ACCESS사는 오는 7월께 본사 차원의 '한국-전북도 우수 농식품전'을 기획, ACCESS 주관 식품 박람회장에 전북홍보관을 마련키로 협의, 눈길을 모았다.일본 농수산물 수입시장의 경우, 백화점 및 마트 등에서 고객의 수요를 사전 체크하기 위해 시제품 판촉 행사를 일정기간 실시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수출계약이 체결되고 입점이 추진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ACCESS의 유통 협력의 특판 제안은 일본시장 진출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됐다.도 관계자는 "일본의 지역별 시장 여건을 감안해 주요 대형 유통매장과 재래시장 및 도매상, 라인별 유망 바이어를 발굴하고 차별화된 진출 전략을 수립, 올해를 일본 시장 개척의 원년으로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도내 농식품 수출은 채소 및 화훼 등 신선농산물은 배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체농산물이 일본 시장에 집중돼 있으며, 가공식품은 하림을 비롯한 대기업 중심의 조미김, 신선계육, 장류만 수출하고 있을 뿐 중소기업의 수출은 전무한 상황이다.

  • 산업·기업
  • 김준호
  • 2010.01.11 23:02

"'골목상권 죽이기' 더 이상 안돼"

최근 전주시 송천동에 SSM(기업형 슈퍼마켓)인 롯데슈퍼가 기습적으로 개점, 새해 벽두부터 골목 상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습 개점을 막을 수 있는 유관기관의 실질적 행정력이 부재, 민생경제를 살리겠다는 자치단체의 구호가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전주시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는 지난 8일 롯데슈퍼의 개점과 관련 성명을 통해 "지역상인의 반발로 잠시 주춤했던 SSM이 최근 기습적이고 비도덕적으로 개점하고 있다"면서 "동네 슈퍼를 인수해 이름을 바꾸거나 위장 간판을 달고 야간에 공사를 마친 뒤 '날치기 개점' 등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롯데슈퍼의 기습 개점은 대규모 유통업체와 중소유통업의 상생의지를 저버린 행위다"며 "개점을 취소하라"고 규탄했다.그동안 잇따른 사업조정 신청으로 개점이 취소·보류되는 등 대기업의 SSM 진출이 다소 주춤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적극적으로 SSM의 확대를 내비쳤던 이마트는 사실상 SSM 확대를 접은 상태다. 지난 6일까지 중소기업청이 접수한 SSM 관련 사업조정 건수 82건 중 51건을 차지한 홈플러스는 수도권에서 가맹점 형태의 SSM을 도입하기도 했다.이런 가운데 송천동의 롯데슈퍼는 지난해 말 기존 동네 마트의 폐업과 롯데마트의 개업 신고를 동시에 진행, 지역 상권이 개점을 미리 파악할 겨를도 없이 기습적으로 개점, 지역 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약 660㎡ 규모인 롯데슈퍼 송천점은 지난 6일부터 개점을 기념하는 할인 행사를 펼치며 인근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으며, 매장은 인근에서 몰려든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기존 동네 마트에 납품하던 지역의 한 유통업체는 지난 8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가량 롯데슈퍼 개점에 항의하는 차량 선전전을 펼쳤다.치약·샴푸 등을 납품하던 S유통의 김모 부장은 "지난해 말 수금을 위해 방문했던 기존 마트에서 사전 통지도 없이 이번달 초까지 물건을 빼라고 했다"면서 "SSM 개점은 지역 유통업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차량 선전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 관계자는 "롯데슈퍼가 영업신고는 지난해 말에 했지만 지난 5일에서야 기존 납품 업체의 물건을 모두 철수한 만큼 실제 영업개시일 이전인 5일자로 중소기업청에 부랴부랴 사업조정을 신청했다"면서 "현실적으로 영업개시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절실하다"고 성토했다.

  • 산업·기업
  • 이세명
  • 2010.01.11 23:02

글로벌 브랜드 육성사업 '그림의 떡'

중소기업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2010년도 수출중소기업 글로벌 브랜드 육성사업'이 도내 중소기업에는 실효성 없는 사업이라는 지적이다. 지원 기준이 지역 현실과 동떨어져 도내 업체의 참여가 불투명한데도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 6일 '2010년도 수출중소기업 글로벌 브랜드 육성사업'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수출액이 300만불 이상 또는 매출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혁신형 기업(수출유망·벤처·이노비즈·경영혁신 등)으로 수출액 200만불 이상 또는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인 제조업, 지식서비스업 및 제조 관련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브랜드 전략 컨설팅과 함께 브랜드 개발·해외 마케팅에 드는 비용의 50(6000만원 한도)~70%(1억원 한도)를 지원하는 내용으로 오는 15일까지 수출지원센터에서 접수한다.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모두 203개사를 지원했지만 도내는 전무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도내 중소업체가 신청하기에는 기준이 높아 대부분 수도권과 경상권에 집중된다는 것. 관계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신청 자격을 갖춘 도내 업체는 100개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일부 업체는 매칭 방식에 따라 1000만원이 넘는 투자를 꺼려 도내에서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이 유명무실한 상황은 올해도 반복될 전망이다.유관 기관에서는 지역업체의 실정에 맞게 신청 대상의 조건을 완화하거나 기업의 부담금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다.진흥공단 등의 관계자들은 "도내 대부분의 제조업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 방식이고, 설령 지원 조건에 맞는 업체일지라도 일부는 글로벌 브랜드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지원 기준을 완화하면 참여율이 다소 오를 것이다"고 말했다.

  • 산업·기업
  • 이세명
  • 2010.01.08 23:02

[일과 사람] '노점상 출신 CEO' 석봉토스트 김석봉 대표

"어차피 쪽팔릴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모자와 작업복을 던져버리고 흰색 가운을 사서 입고, 토스토를 굽기 시작했습니다."1997년 서울 무교동 길거리에서 창업해 이제는 전국 300개의 가맹점을 갖춘 석봉토스트 김석봉 대표(51)는 7일 무주 예체문화관에서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로의 삶'을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인 김 대표는 이날 "길거리에서 만약 사람들의 비웃음 때문에 가운을 벗었다면 오늘'성공한 CEO'라는 반열에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토스트의 프로가 될거야라는 결심을 하자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그는'토스트의 프로'가 되기 위해 △첫째 설탕대신 야채로 단맛을 내고 뒷맛이 깔끔한 '품질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고객 맞춤서비스 제공'을 위해 외국어 공부 및 한 명이 세 개 이상 주문시 전날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한다. △셋째 잠과의 전쟁을 통한 수면단축(3개월만에 열시간의 수면에서 5시간으로 단축) △넷째 잠 다음의 게으름을 물리친다. △다섯째 거지근성을 뿌리뽑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를 실천했다.2000년부터 텔레비젼 방송을 타기 시작한 그는 3년여 동안 3백여 차례에 걸쳐 언론에 소개됐다.그는 "손님들에게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들어 드리려 제 얼굴을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바꿔 저만 봐도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손님 인상이 정말 좋으십니다"라고 인사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서비스 정신을 강조했다.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고 시련과 고통의 단점을 장점으로 강화해 나 자신부터 변하지 않으면 프로가 될 수 없다고 깨달았다"면서 "프로는 스스로가 변화해야 하는 걸 알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며 특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하고 이기면 반드시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고 말했다.그는 "20대에야 공부를 시작해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결혼 당시 매우 가난해 가족의 생계 해결과 봉사를 위해 거리에서 토스트 장사를 나섰다"면서 "초기에 노점상 단속, 기물 압수, 즉결심판, 벌금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고 말했다.석봉토스트는 마가린 대신 트랜스지방이 없는 카놀라유를 사용하는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레시피로 '감동브랜드 대상'·'프랜차이즈 소비자만족도 1위' 등 각종 상을 휩쓸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 산업·기업
  • 김경모
  • 2010.01.08 23:02

자동차 부품업체 500개 유치한다

오는 2018년에는 자동차 부품업체 500개가 유치되고, 신규 일자리 2만6000개가 만들어진다. 이에따른 부가가치는 6조원에 달하며, 자동차의 수출규모는 80억불로 확대될 예정이다.전북도는 7일 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2018년도 전북 자동차 산업 비전을 발표했다.도는 이날 "그동안 추진해 온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 육성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면서 "여기에 미래를 대비한 기반구축 작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2018년에는 도내 자동차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에 따르면 도내 자동차 산업은 최근들어 성장률과 사업체 수, 부가가치 증가율 등이 전국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자동차 관련 사업체 수는 155개소에서 253개소로 63.2%가 늘어났고, 매출액은 6조9484억원에서 10조5052억으로 무려 51%가 증가했다. 수출액도 24억9000만불에서 36억6000만불로 확대됐다.또한 자동차 산업의 집적화 정도를 나타내는 클러스터 비중지수(Ci)도 15에서 19로(2007년) 21%가 증가, 도내 자동차 산업 특화도가 고도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펄프나 종이제조, 영향·음향 등의 여타 제조업의 평균 지수는 7~8 수준이다.자동차 산업 종사자 수는 2005년의 1만7700명에서 2만3048명으로 30%가 증가했다.이에따라 도는 성장세 지속을 위해 고효율·그린카로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에 대비, 'Green부품과 Power부품소재, Smart부품' 등 3대 특화분야를 중점 육성하는 한편 미래형 기술 보유 핵신선도기업을 유치키로 했다.이를 위해 현재 경량화·고효율 등 친환경 자동차 부품산업 육성기반 및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 전장산업 등 국가연구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미래형 기술개발 연구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 산업·기업
  • 김준호
  • 2010.01.08 23:02

[독자 백가쟁명] 관광산업에서의 리더의 역할 - 최병창

어느 기업에서나 리더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관광산업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것이 리더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리더는 사람이나 동물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다"라고 옥스퍼드 사전에 나와있다. 즉 길을 찾는 것과 그 길로 사람들을 인도 하는 것이 리더에게 주어진 크나큰 과제인 것이다. 관광산업에 있어서 리더의 역할은 첫째, 올바른 길을 찾는 것, 즉 방향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요구한다. 요즘처럼 경영에 있어 경쟁이 치열하고 의사결정에 대한 선택의 폭이 다양한 환경에서 리더의 역량은 조직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경영에 있어서 리더는 방향만 제시할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이 목표에 부응하여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능력, 즉 지도력이나 통솔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이 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관광종사원들의 희망사항으로 불리워지는 인센티브제도는 최고점에 달하는 길로 이끌어야 지도력이나 통솔력은 강해진다.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리더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GE 잭월치는 은퇴하기 전 연봉이 무려 한화로 2천 5백억 원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8억 원에 해당한다. 실로 놀라운 금전적 보상이 아닐 수 없다. 미래를 올바르게 예측하고 구성원들을 통솔하는 능력에 대해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선도하는 리더들이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경영에 있어 나는 과연 리더라고 생각되는가? 나는 과연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되는가? 나는 과연 남들이 인정해주고 있는 리더라고 생각되는가? 차세대 경영리더들에게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 리더라고 생각되는가? 이런 4가지 차원에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며 정면으로 도전해 올 때의 심정, 자신이 그토록 신뢰했던 사람이 말없이 등을 돌릴 때의 심정, 오랜 고민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지 않아 전략부재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어김없이 날아올 때의 심정, 이 모든 심정들이 리더십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상황들이다. 오늘날 관광경영에 있어 리더는 더 이상 지위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적인 매력이나 인품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전을 향하여 노력하고 성취해 가는 한 개인의 역량과 성과에 초점이 맞춰진다."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 박사에 의하면 1940년 이전의 리더십은 리더의 개인적인 역량에 의해서 좌우되었던 것 같다. 정직인 시대였으므로 리더십을 평가받는 기회가 그만큼 드물었기 때문에 개인의 성품, 인격, 성실 등 인간적인 됨됨이가 중요했던 시기이다. 얼마나 조직을 위해서 적절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했는가 보다는 과연 존경할 만한 인물인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던 시기다. 1940년에서 1990년까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리더십의 자질로 꼽히게 된 시기다. 즉 외적인 성격과 처세술, 대인관계요령, 카리스마, 이미지 등 자신의 꿈과 비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가가 리더의 핵심요인이었다. 산업이 급격히 발달하고 다양한 기회가 창출되면서 구성원들에게 강한 공감대를 형성시키면서 도전의식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했다. 뜻을 모아 리더가 제시한 방향으로 이끌기만 한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손색없는 결실을 거둘 수가 있었던 때다. 그러기에 리더는 성공의 상징이었고 승리의 대명사였다. 1990년 이후에 와서 리더십에 큰 변화가 왔다. 리더는 더 이상 절대적인 성공의 상징이 아니었다. 성공과 실패의 굴곡을 겪어나가는 모습을 함께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조직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시스템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리더의 수평적 이동도 빈번해졌다. 즉 포괄적 리더십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곧 원칙중심의 리더십 시대인 것이다. 원칙중심의 리더십 시대에는 리더의 리더십이 주어진 상황에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세 과정의 리더십이 관광산업에 있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더 중요한 뜻이 있다. 관광산업에 있어 원칙중심의 리더십이면 모두 성공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직도 가족단위의 경영은 인간적 됨됨이가 중요하고 독립된 경영이나 중간단위의 경영은 리더의 개인적인 역량이 중요하며 프랜차이즈 경영이나 대규모 경영은 원칙중심의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경영자가 관광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의 리더가 될 것이다.

  • 산업·기업
  • 전북일보
  • 2010.01.08 23:02

[지역상품이 부자전북 만든다] ⑧영농조합법인 금계식품

참살이 음식으로 꼽히는 감식초. 바이전북 업체인 영농조합법인 금계식품(대표 임장옥·정읍시 산외면)은 무농약으로 재배한 감을 3년 이상 숙성해 감식초를 만들어 판매한다. 1.8ℓ들이 1병이 2만2000원으로 일반 감식초보다는 50% 가량 비싸지만 농협NH·우체국 쇼핑, 초록마을과 같은 유기농 매장 등을 통해 전국의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김제가 고향인 임 대표(63)는 직접 400주의 감나무를 무농약으로 관리해 매년 잘 익은 감을 알코올 발효와 초산발효 등 4년의 숙성기간을 거친 감식초로 만들어 지난해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임 대표는 "농약을 친 감나무에 비해 감의 수확률은 50%이지만 사람의 건강을 위한 음식인데 만드는 법도 건강해야 한다"는 지론을 밝혔다.농협 직원이었던 그는 감식초의 효능을 직접 경험하고 감식초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원이던 시절 술·담배를 너무 좋아해 위·장·간에 문제가 생겨 계속 병원을 들나들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감식초를 전해들었지만 80년대 중반에는 제조하는 곳이 드물어 책을 보고 어릴적 어머니가 해주던 감식초를 떠올리며 집에서 만들어 복용하자 건강이 호전되면서 감식초의 가능성을 봤습니다."임 대표는 지난 1994년 법인을 설립, 지난 1999년부터는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 대학 교수 등에게 자문하며 제조법을 익혔다. 문제는 판로개척이었다. 지난 2007년 7월 바이전북 인증 뒤 상표 디자인 지원을 받고 수도권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박람회 등에 참여, 입소문이 났다."한때 감식초 붐이 일 때는 전국에 250여개의 감식초 공장이 있었지만 출혈경쟁을 하는 등으로 지금은 20여곳만 남았습니다. 금계식품은 무농약이라는 차별성과 비교적 오래된 업체로 매년 매출이 성장하며, 소량이지만 미국·일본·캐나다로 꾸준히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임 대표는 올해 15년을 기념으로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올해에는 15년산 감식초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또한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제도) 인증을 받는데 주력하겠습니다."

  • 산업·기업
  • 이세명
  • 2010.01.07 23:02

[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②일제강점기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자본주의가 서서히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자본주의였다. 우리 재래식 공업은 일본의 식민지공업과 함께 발전해 왔다. 문제는 일본의 서구화된 공업생산경영과 달리 재래식공업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고, 기계시설도 갖추지 못해 여전히 수공업 상태였다는 점이다. 1910년에 들어서면서 공장제 기업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체제 기초공작 때문에 미미했다. 당시 일제는 방직물을 일본에서 수입했다. 국내에는 방직공장을 세우지 않고 조면공장을 세웠다. 조면을 일본으로 수출, 자국 방직공장에서 고부가가치 방직물을 생산한 뒤 우리나라에 수출해 거대 이익을 챙기는 데 주력했다. 이와관련 전북대 최낙필 교수는 저서 '지방경제의 이해'에서 "일본이 1910년 회사령을 공포한 것은 일본의 국내공업과 경쟁되는 근대공업의 건설을 억제하고 경쟁되지 않는 부분의 공업 건설에 한정하여 허가한다고 하는 정책적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이라며 "일본의 국내공업을 위한 식량원료를 증산시키는 방향으로 자본을 유치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1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 자본은 주로 은행, 상업, 운수, 농업 부문에 주로 투입됐다. 광공업 투자는 1차대전 수요에도 불구하고 미흡했다. 그러나 점차 식민지 지배체제가 확립되고, 경제기초가 구축되면서 식량과 원료 확보를 위한 근대적인 공장제 공장 건설에 나섰다. 1910년 후반부터 공장건설이 현저히 많아졌지만, 몇개의 제련소와 제철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정미업과 섬유공업 부문의 공장들이었다. 1919년 공업 생산액은 농업 생산액의 18.2%에 불과했다. 공장의 반수 이상이 수공업적 기술에 의존한 영세공장이었고, 동력을 사용하는 공장은 10%에 불과했다. ▲ 1913년 조선면화 이리공장 가동 당시 전북의 공업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899년 군산항 개항, 1912년 호남선과 군산선 등 철도 개통 등으로 사회간접시설이 갖춰졌지만, 전북의 공업은 군산과 이리, 전주를 중심으로 느리게 진행됐다. 군산의 경우 1899년 개항 후 1907년 십팔은행 군산지점 등 4개의 금융기관이 1920년까지 들어섰다. 군산항을 통한 수출입물량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군산항을 통한 수출액의 97% 이상은 쌀이었고, 쌀과 관계 있는 정미소와 양조장이 들어섰다. 1899년 5월 우에노 주조장, 10월 이와모토 주조장, 1909년 12월 향원 주조장, 1917년 10월 하나오카 정미소, 1919년 7월 조선 정미소(주), 1920년 10월 군산주조(주) 등이며, 규모는 미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인구 4000명에 불과했던 익산시는 1912년 이후 크게 팽창, 1919년 무렵에는 인구 1만명에 달하는 소비도시로 발전했다. 1913년 일본인이 조면기 32대를 설치하고 운영한 조선면화 이리공장이 당시 이 지역의 유일한 공장이었다. 해방후 익산이 쌍방울과 태창으로 대표되는 방직공장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기반인 셈이다. 일제시대 당시에도 전북지방은 공업화에서 크게 뒤져 있었다. 19101919년 당시 우리나라 제조업 성장률이 12.9%에 달했고, 1920년 무렵 우리나라 전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7.3%였지만, 전북의 제조업 비율은 1%에도 못미쳤다. 1916년 당시 도내 전체인구의 87.7%가 농업과 축산, 임업 등에 종사했지만, 광공업 종사자는 1%에 불과할 만큼 공업화에서 뒤져 있었다. ▲ 전주 동양제사 종업원 500여명 달해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농업이 62.1%로 줄어들고, 제조업이 25%로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도 농업은 2.6%에 불과한 반면 제조업은 8.4%에 달했다. 1920년대를 거치면서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것이다. 이 당시 전북지역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1910년대에 6개의 공장이 세워진 반면 1920년대에는 9개 공장이 설립됐다. 1920년 군산주조(주), 1923년 미호제염소, 1924년 나가타정미소, 1926년 가모석험공장마사키조선철공소, 1927년 나카오장유양조장, 1928년 오사와조선소조선주조(주)지점, 1929년 린켄냉장고 등이 세워졌다. 1910년대에 비해 업종이 다양해졌고, 이같은 과정을 거친 군산의 1930년 인구는 3만4556명에 달했다. 익산도 교통요충지로서 공장 설립이 활발했으며, 1925년 인구가 1만3403명으로 불어날 만큼 발전했다. 1927년 당시 문화상회 등 34개의 중소 공장이 있었고, 이리주조, 이리소주, 전북소주도 가동됐다. 당시 익산의 주요 공산품은 생사, 양말, 철 주물, 죽세공품 등이었다. 전주도 1925년 인구가 2만3000명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전주에는 주로 잠업과 관련된 제사, 잠종, 잠구 공장이 들어섰다. 원료구입이 용이하고, 값싼 노동력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경공업이 주를 이뤄 발전한 것. 1927년 전북제사(주) 전주공장이 설립됐다. 이 공장은 공장부지 4370평, 건평 1038평, 종업원 300명에 달했다. 또 1928년 편창제사방적주식회사 전주제사소(동양제사)가 설립됐는데 공장부지가 1만2000평에 달했고, 종업원도 5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이었다. 1921년 162개였던 도내 공장수는 1930년에 195개로 33개가 증가했다. 종업원 수도 3486명에서 5266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미업이 주종을 이뤘고, 제지업과 주류제조업, 신문 인쇄업 등이 뒤를 이었다. 정미업은 전체 생산액의 85%를 차지했고, 주류 제조업은 2%, 기타는 1% 미만일 정도였다. 일제 침략전쟁이 산업구조에 영향을 미쳐 1930년대 전북의 공업도 변화를 보였다. 화학공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2%였고, 기계기구업과 가스전기업 등이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1.07 23:02

이스타항공, 올해 국제선 4~5곳 취항

저가항공사 이스타항공은 올해 일본과 중국을중심으로 4~5곳의 정기성 국제선 노선을 취항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이스타항공 이상직 회장은 이날 취항 1주년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24일 부정기 국제선 인천~말레이시아 쿠칭 노선을 시작으로 올해 국제선 운항에본격적인 시동을 걸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월7일 김포~제주 노선을 시작으로 운항을 시작했으며, 이날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중국 상하이와 심양은 4월 하순 취항을 계획하고 있으며,일본 시코쿠와 규슈 등 노선 취항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은 취항 1년 만에 약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국내선 항공사 중 탑승율과 소비자만족도, 저가항공사 수송실적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매출을 국내선 1천억, 국제선 500억원 등 총 1천500억원을 목표로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5대를 운항 중인 B737 기종을 올해 3대 더 추가 도입하고,국내선에도 2곳의 새로운 노선 취항을 계획 중이다. 그는 이어 "국내선 운항 경험을 통해 갈고 닦은 기량을 한껏 발휘해 동북아 최고의 저가항공사로 발돋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국내선은 김포~제주, 군산~제주, 군산~김포 노선, 국제선은인천~쿠칭(말레이시아)과 인천~고치(일본) 노선에 전세기를 운항 중이다. 특히, 국내선의 경우 공급석의 약 10%를 1만9천900원에 판매하는 '얼리버드' 운임제로 많은 승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 산업·기업
  • 연합
  • 2010.01.06 23:02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