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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전북수필문학상에 김철규·박귀덕 씨 선정

전북수필문학회가 시상하는 제31회 전북수필문학상 수상자로 김철규, 박귀덕 수필가가 선정됐다. 1979년 발족한 전북수필문학회는 수필가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회원 150명으로 이뤄진 문학단체. 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88년 전북수필문학상을 제정해 지난해까지 총 6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는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회원을 대상으로 수상 후보자 추천을 받았다. 후보자는 총 4명. 전북수필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작품의 문학성, 전북수필문학회의 활동 실적 등을 평가해 수상자를 결정했다. 군산 출생인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논설위원, 제4대 전북도의회 의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군산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수필집 <인연>, 칼럼집 <아니다,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다>, 시집 <바람처럼 살다가> 등 11권의 저서를 펴냈다. 전라북도문화상,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귀덕 수필가는 김제 출신으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했다. 행촌수필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수필집으로 <삶의 빛, 사랑의 숨결>, <잃어버린 풍경이 말을 건네오다>가 있다. 작촌문학상, 행촌수필문학상, 수필과비평작가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다음 달 21일 오후 5시 전주 바울센터 2층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1.19 20:34

[불멸의 백제] (223) 11장 영주 계백 19

산요님이 오셨소. 오꾸보가 말하자 후다나리는 몸을 일으켰다. 한낮, 오시(12시)가 조금 지났다. 가모성의 청안, 가모성주 후다나리는 타카모리의 오랜 가신(家臣)으로 녹봉 5천석, 산요의 사위가 된다. 그때 청으로 산요가 들어섰다. 피곤한 표정이다. 후다나리가 다가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산요님, 백제방 군사를 이끌고 오셨군요. 백제방 군사가 아니라 계백령지의 군사네. 산요가 수정했지만 후다나리는 시선을 떼지 않고 되묻는다. 같은 군사 아닙니까? 백제방 영지가 계백령 아닙니까? 아니야. 계백령은 아리타, 마사시, 이또 영지를 합한 것으로 왜국 관할일세. 이제 이곳 타카모리 영지도 포함이 되겠군요. 그때 산요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청안에 후다나리의 가신 10여명이 모여 있었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성으로 백제방 기마군 2백여 명이 다가왔기 때문에 후다나리는 성문을 닫고 전투준비를 시켰던 것이다. 이쓰와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가모성은 요충지다. 그리고 성에 기마군 3백, 보군 3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군에 끼어온 산요가 후다나리를 만나겠다면서 먼저 성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 산요가 정색하고 후다나리를 보았다. 이보게, 후다나리. 지금 어쩔 작정인가? 그냥 성은 못 넘깁니다. 33세의 후다나리가 바로 대답했다.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고 죽겠습니다. 옳지. 산요가 머리를 끄덕였기 때문에 청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후다나리도 산요의 반응이 예상 밖인지 눈만 껌벅였다. 그때 산요가 말했다. 잘했어.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게. 이기리라는 생각은 안했을 테니까. . 이 성에 군사 7백여 명, 주민 8천 정도가 있는 줄 알고 있네. 다 몰사하겠지. . 내가 죽기 전에 타카모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이라는 묘비는 세워주지. . 나는 자네가 투항하리라는 기대를 안했어. 내 사위 성품쯤은 아니까. 난세에 5천석 영지를 탐내어 정세 판단도 못하고 군사를 출동시킨 병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대병신이라는 건 알지. . 그리고는 산요가 쓴웃음을 짓고 후다나리를 보았다. 밖에는 계백공의 신복무장 화청이 와 있어. 기마군 2백이지만 이 성안의 군사로는 당해내기 힘들 걸세. 대륙에서 당왕을 패퇴시키고 돌아온 백제군이니까. . 나도 여기서 자네하고 같이 죽겠네. 화청이 날 들여보내면서 그러더군. 한식경 안에 안나오면 같이 죽는 것으로 알겠다고. 쓴웃음을 지은 산요가 안쪽을 기웃거렸다. 내실이 저쪽인가? 가서 내 외손자들을 보고 있을 테니 자네는 나가서 싸우게. 한식경쯤이 지났을 때 성 밖에 군사를 주둔시킨 화청에게 후다나리의 전령이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장군께 말씀드리오. 말해봐라. 나무의자에 앉은 화청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전령을 보았다. 둘러선 무장들은 모두 백제식 가죽갑옷에 어깨에 깃털을 꽂은 무장도 있다. 당군(唐軍) 기마군의 장식인데 그것을 빼앗아 전리품처럼 꽂고 있는 것이다. 그때 전령이 말했다. 성주 후다나리가 장병과 함께 계백령에 투항한다고 합니다. 성문을 열어드릴 것이니 진입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럼 후다나리가 나와야지. 화청이 흰 수염을 손으로 쓸면서 말했다. 갑옷을 벗고 칼을 풀고 걸어서 나와 맞는 법이다. 가서 그렇게 전해라. 그리고는 화청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1.18 19:35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천장 - 장용수

우리 그만해요, 이제!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붉게 노을이 타고 있었다. 나는 6개월째 무직자였다. 그녀는 내가 앞으로도 무직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녀는 직감 능력이 뛰어난 여자였다. 당시 나는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한동안 일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뭐라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는 사무실 안에 앉아 있으면 서서히 어디선가 생고무 태우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간신히 오전을 넘기면 생고무 탄 냄새 때문에 점심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뒤집어졌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릿속 뇌수들이 모두 회반죽처럼 걸쭉하게 변해 버려 이것과 저것을 가지런하게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도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쯤 되면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응급조치를 하듯이 소주를 반병 정도 마시는 방법밖엔 없었다. 참, 어지간허다. 그런데 술 마시는 변명치고는 좀 시적이다. 이걸 글로 한번 써 보는 건 어때? 문청이었던 술친구의 제안. 그 친구의 제안 때문이라기보다는, 술을 좀 줄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불면에 시달리던 어느 날 친구의 말이 떠올라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 뭔가는 처음에는 넋두리로 시작되어 그녀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가 청혼을 위한 로맨스가 되었다가 다시 신세 한탄이 되었다가 급기야는 신을 저주하는 울분이 되었다가 다시 자조적인 신세 한탄으로 추락하곤 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정리하는 것에는 일정한 관점과 의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곁가지를 쳐내고 그녀에게 나의 상항을 설명하고 청혼을 하는 형식으로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글의 마무리를 유예하고 있었던 것은 불면의 밤이 짧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조차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결혼이라는 실제적인 생활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포기할 만큼의 용기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이제 그만 좀 놔줘요. 난 그냥 평범한 남자 만나서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난 입안이 써 술잔을 거푸 마셨다. 그리고 결국 취해 버려서 그녀에게 추접스러운 간청을 하다가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일어났다. 그녀 어깨 너머로 바라다 보이던 흐릿한 세상이 깜깜해졌다. 블랙아웃! 맹렬한 추위에 눈을 떴다. 전주 덕진공원 벤치 위였다. 누가 덮어 주었는지 신문지 몇 장이 덮여 있었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울렁증이 일어 급하게 토하고 나자 벌떼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 얼마나 웅크리고 잤는지 목과 허리는 굳어 버린 것 같았다. 돌덩이처럼 차가운 몸.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술이 생각났다. 그녀를 생각하자 다시 무딘 칼로 연한 살을 서서히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쓰던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실행하기로 했다.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샀다. 중국으로 들어가 티베트를 거쳐 인도까지 갈 작정이었다.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중국의 거얼무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천장공로는 아득했다. 그곳을 몇몇 일행과 함께 나는 랜드크루저를 타고 넘었다. 삼천과 사천오백의 고도를 넘나드는 산악의 길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았다. 나는 호흡을 고르게 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으나 날숨의 뒤끝은 간신간신했다. 고산증에 시달리느라 머릿속은 몽롱했고 문득문득 해독할 수 없는 이명이 들렸다. 문득 유년 시절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되살아나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엄마, 도대체 왜 날 낳았어? 티벳은 이미 겨울이었다. 그리고 산악의 길들은 끝이 없었다. 벼랑을 돌아서고 계곡을 가로지르며 길은 끝없이 몸을 뒤틀었다. 정수리를 가르는 칼바람은 코끝에서 맵싸했다. 계곡을 훑으며 내려오고 올라가는, 아찔한 바람들은 문득 한 덩어리로 뭉쳐 산악을 후리치며 흩어졌다. 그 막막한 산악의 길을 몸으로 열어가는 수행자가 있었다. 수행자의 모습은 초라했다. 수행자는 오 척 단신의 몸에 누더기 같은 붉은 가사를 입은 채로 빙판길 위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길바닥에 배를 붙이고, 손으론 언 땅을 쓸어안으며 이마를 얼음이 뒤덮인 길 위에 밀착시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해야만 가능한, 파충류의 그것과 유사한, 가장 더디고 정직한 길 읽기, 오체투지였다. 강렬한 자외선에 노출된 그의 피부는 그가 입은 붉은 가사보다 더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의 눈썹과 수염에는 땀방울 같은 고드름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의 오체투지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함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의 오체투지는 진화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했다. 차창 밖의 산들은 만년설에 뒤덮여 있었다. 눈 덮인 산악의 길들이 이어지다가 믿을 수 없이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서 낯선 행성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압도적인 풍경 속을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인 수행자들이 전설처럼 오체투지로 길을 열어 나갔다. 수행자들이 오체투지로 도달할 간절함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길은 그를 중심으로 순간 태어나고 순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산악의 까마득한 산등성이 위에서 야크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수행자를 묵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지프는 눈길 위에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수행자들을 앞질러 나갔다. 그렇게 산악의 길을 넘어 라사에 도착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늘 마니차를 돌렸다. 라사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뱅, 뱅, 뱅, 돌리는 마니차를 볼 때마다 나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마니차를 돌리기만 해도 불경을 읽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러나 마니차를 돌리는 두루뭉술한 대승불교의 원리가, 라사의 사원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체투지를 하며 밀어 올리는 열망이,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무참한 중국의 총칼을 막아내진 못했다. 티베트 수도인 라사도 상권을 장악한 중국인들에 의해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영혼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던 포탈라 궁 앞에는 중국인 혁명 기념탑이 서 있었고, 그 주변은 이미 중국의 환락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티베트의 자유를 외치며 승려 하나가 분신했다고 들었다. 벌써 100명째라고 했다. 문득 오체투지로 라사를 향해 간다던 수행자가 떠올랐다. 그가 길 위에서 얼어 죽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창을 한다고 했다. 천장? 가이드가 그 단어를 처음 설명해주었을 때 그 단어에 매혹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장례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천장터는 사천고지에 자리한 사원의 뒤편에 있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가파른 천장터까지 시신은 가족에 의해 옮겨졌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사천고지의 산 위까진 구름도 감히 오르지 못했다. 멀리 히말라야 산맥의 주봉인 신성한 초롱라마가 만년설에 뒤덮여 있었다. 가족들이 망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라마 승려가 집착할 것 없는 짧은 생의 덧없음을,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돌아갈 근원의 자리인 공(空)의 세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진언 소리는 날 선 바람이 토막을 내었다. 승려가 물러나자 천장사가 나섰다. 그는 도끼날로 두어 번 시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곧 쇠 하나가 흙과 물, 불, 바람 사이를 가르며 지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천장사는 고원지대의 희박한 공기층을 가르며 도끼를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와 팔, 다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관절을 제대로 파고든 도끼날에 팔은 한 번에 떨어졌지만 목과 다리는 몇 번의 수고가 더해졌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머리와 팔, 다리는 분해된 인형 그것처럼 느껴졌다. 천장사가 이번에는 칼을 질러 몸속의 장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묵직한 비린내와 함께 한 번도 개봉된 적 없는 순결한 속살들이 햇살 아래 꽃처럼 피어났다. 푸른 하늘가에는 피 냄새를 맡은 검은 새들이 모여들어 허공을 맴돌았다. 사신들이었다. 머리와 팔, 다리, 그리고 햇살 아래 드러난 장기들은 망자가 살아 있음을 유지하기 위해 씹어 먹던 야크나 산양의 그것과 다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천장사가 언덕을 내려오자 검은 새들이 흐벅지게 붉은 꽃들이 피어난 자리에 엉겨 붙었다. 지상의 것들을 먹고 키운 몸은 그렇게 검은 새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망자의 가족이나 승려들은 모두 돌아갔다. 시신의 살을 다 발라 먹은 검은 독수리들도 떠났다. 그리고 까마귀들 몇 마리만 망자의 부서진 뼈마디 사이를 쪼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육신도 결국 이렇게 분해되어버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녀의 연꽃 같은 가슴도 저와 같이 분해되어 결국 흙과 물과 바람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었다. 가이드가 재촉하는 바람에 더는 천장터에 머물 수가 없었다. 티베트에는 나무가 없어 화장을 할 수도 없고, 시체를 묻어도 얼어서 썩지 않아서 천장을 합니다. 라사 맥주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시원한 맛이었다. 천장을 안내해준 가이드, 그리고 같이 천장을 참관했던 노년의 영국 여인과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식당에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가이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노년의 영국 여인과 나는 본격적으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입안에서 알 수 없는 비린 맛이 느껴져서 맥주를 계속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비가 걱정이 되어서 그녀에게 서툰 영어로 양해를 구했다. 당신은 오늘 내 술값을 지불해 줄 수 있어요? 왜? 나는 배낭 여행자이고 인도까지 여행을 할 생각인데, 여유가 거의 없어요. 그건 네 사정이고, 왜 내가 너에게 한턱을 내야 하는지 설명을 해봐. 혹시 나에게 원하는 게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너와 난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해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 내 손가락을 하나 팔게요. 별로 맛은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웃었다. 시간의 건너편에서 그녀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시간 속에서 고독하게 사위어온 여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문득 그 사람의 일생이 보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눈가에서 곱게 흘러내린 주름살과 다르게 그녀의 눈빛은 깊고 어둡고 축축했다. 그녀는 내 주순에 맞게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몸동작을 사용해서 요령 있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 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70%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정도면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같은 영국인과 이야기해도 50% 미만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30% 미만으로밖에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지 못하고 산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티베트에서는 남자 두 명이 한 여자와 결혼하는 풍속이 있는 거 알아? 그녀의 말에 의하면 티베트의 기후 환경 때문이라고 해다. 티베트는 긴 겨울과 짧은 여름 때문에 밀이나 보리 같은 작물밖에 재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는 것. 해서 남자 한 명은 식구들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농사를 짓고, 다른 한 명은 도시로 나가 장사나 다른 돈사는 일을 해서 아이들의 학비와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돈을 번다는 것. 그리고 도시로 나간 남자가 일 년에 두어 번 집으로 돌아오면 나머지 하나는 잠자리를 양보하고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네요!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네요. 아름다운 이야기지! 욕심 때문이지! 어쨌든 이기적인 인간들은 가족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그럼,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가족을 만들면 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자들은 무슨 짓이든 다 하잖아. 그게 미덕처럼 여겨지는데 그게 세상을 망치는 거야.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비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야. 그럼, 남자들은 뭘 위해서 살아야 하죠? 바보같이 그걸 왜 나에게 물어? 2017년 여름, 덕진공원에 갔다. 그리고 20대 후반, 술에 취해 잠들었던 그 벤치에 앉아 보았다. 흔히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나무 벤치였다. 여기 저기 칠이 벗겨진 자리가 까맣게 변색된 채 사위어 가는 벤치. 20년 전 그 벤치였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오늘 밤 추억에 젖어 여기서 잠들면 모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이곳의 풍경은 언제나 주말 오후처럼 한가롭다. 연못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오래된 포플러 나무들과 아이스크림 판매대, 놀이터, 화장실, 기념비들이 늘어서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난 중고등학교 때 이곳으로 소풍 나온 여공들을 꼬시러 오곤 했었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녀의 붉은 가슴 같은 연꽃.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성실하고 다정한 남자를 만나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녀가 원하는 삶일지, 아니면 이십 대의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남들처럼 결혼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던 건지, 그도 아니면 단지 나를 피하고 싶어 했던 건지 알 길이 없다. 이제 나는 그녀가 세속에 환멸을 느껴 머리를 깎고 수도를 하다가 환속해서 술집 주모가 되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 젊은 친구, 길을 갈 때는 바닥을 보지 마. 그렇게 걸으면 시간이 반대로 흐르거든. 가장 좋은 것은 그저 눈앞의 풍경을 즐기는 거야! 티베트에서 만난 영국인 할매가 헤어지면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백 달러짜리 석 장을 주었다. 그때로서는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아 덥석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티베트의 라싸에서 장무를 거처 네팔의 카트만두, 포카라를 찍고 인도를 갔다. 빳빳이 고개를 들고 걸어서. 그리고 마침내 인도의 바라나시에 도착했었다. 돌아올 계획이 없는 여행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는 삶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골목길을 떠돌고 있다.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아직 생고무 타는 냄새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간섭과 경쟁이 덜한 일을 찾아서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그래도 견딜 수 없는 날들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날이면 티베트의 고지대에서 만국기같이 나부끼던 타르초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설산의 타르초를 읽고 온 바람이라는 느낌이 확연한 날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껍다. *장용수: 200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소설필명 장용석) 당선. 현재 말레이시아 말라야대학교 아시아유럽어학과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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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6 16:57

[불멸의 백제] (222) 11장 영주계백 18

거성(居城)의 청에는 화청과 윤진이 와 있었는데 각각 5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 계백의 거성에도 5백 가까운 병력이 있었으니 1천5백의 군사력이다. 그 중 기마군이 5백5십, 2백5십을 기반으로 3백을 늘렸다. 급조한 군사들이어서 허점이 많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윤진이 계백을 보았다. 백제 기마군단 1개만 데려와도 거침없이 진군할 텐데요. 백제 기마군단은 2천5백으로 형성되었다. 대륙의 백제 담로에서는 1개 기마군단이 그 배인 5천이다. 대륙은 지형이 평탄한 데다 장거리 이동이 많아서 1개 군단이 움직이면 말떼가 2, 3만 필이 따른다. 예비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청과 윤진은 대륙에서도 기마군을 지휘했고 특히 화청은 멸망한 수(隋)나라에서부터 기마군이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나솔이 돌아오는 대로 이쓰와 성으로 진입한다. 이번에는 한낮에 국도를 따라서 가는 거야. 둘러앉은 셋의 앞에 지도가 펼쳐져 있다. 셋이 함께 가는 것이다. 화청이 손끝으로 국도를 짚고 이쓰와 성까지는 350리(175km), 도중에 타카모리 영지의 성 3개를 지나야 된다. 3개가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성 한곳에서라도 군사가 나오면 격전을 치러야 될 것입니다. 성 하나에 최소 5백 이상의 병력이 있을 테니까요. 계백이 머리만 끄덕였다. 이번에도 계백의 군사는 기마군 5백이다. 말은 3천필, 보군은 영지에 남겨놓고 전군(全軍)이 기마군이다. 그때 윤진이 말했다. 타카모리가 생포되면서 영지의 가신, 군사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일부가 결속해서 복수를 하려는 놈들도 있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화청이 대답했다. 백용문이 하세가와의 어떤 대답을 듣고 오던 간에 25만석이나 되는 영지야. 지렁이만 있을 리가 없어. 오후 신시(4시) 무렵이다. 바깥 마당에서는 말 울음소리, 발굽소리로 소란했다. 출동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동시간은 밤 술시(8시), 밤길을 달려 내일 이른 아침인 묘시(6시)경에 타카모리의 거성인 이쓰와 성에 진입하려는 계획이다. 그때 청 밖에서 하도리가 소리쳤다. 주군! 산요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들었고 화청과 윤진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루카 섭정에게 말 50필을 진상하러 왔던 타카모리의 중신 산요다. 말을 바치고 나서 돌아가려다가 이쓰와 성의 변을 듣고 아스카에 머물고 있던 산요를 하도리가 데려온 것이다. 곧 하도리와 함께 산요가 들어섰는데 비장한 표정이다. 왕성이 있는 아스카에서 이곳까지 2백리(100km) 가깝게 되었으니 강행군을 했을 것이다. 마치 포로로 잡힌 것 같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산요, 그대가 왕성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 그대 주군도 이곳에 있다. 계백 앞에 엎드린 산요가 머리를 들었다. 50대 초반의 산요는 지쳤기 때문인지 10년은 더 나이들어 보였다.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영지에 하세가와 님이 계시니 그분이 정리를 도울 것입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영주에 그 신하들이로구나. 너한테 영주네, 영지의 주민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산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나카모리의 일족을 몰사시켰다는 말을 들었겠다? 타카모리는 그 말을 듣고도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영지 양도증에다 가신, 주민들한테 나한테 복속하라는 서신을 써 주더구나.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타카모리 영지에 진입하면 네 일족도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내 손으로 죽여주마. 그것이 군주, 신하들이 받아야 할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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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8.11.15 19:53

김형철 시인, 삶 되돌아보며 풀어낸 이야기

김형철 시인이 자신의 여섯 번째 시집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합니다>와 자신의 삶을 돌아본 회고록 <동초의 인생과 문학>을 펴냈다. 시인은 아내와 함께 맞는 80년이라는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과 함께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갚지 못한 마음을 시편으로 한곳에 엮어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시집에는 시인이 여행을 하거나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시인은 남미와 중국, 일본 같은 해외뿐 아니라 변산과 금강산 등 국내 여행을 하며 돌아본 사람과 풍경을 시로써 표현했다. 시 아래에 덧붙인 시인의 설명을 보고있으면 흡사 여행기를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집 후반부에는 부모님과 아내, 시인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놓았다. 33년의 지방 공무원 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인생 후반기 등을 담담히 풀어낸 회고록에서는 시인의 부지런했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략) 인생의 긴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정년의 문턱에 서서/ 조석으로 그림자 늘이고/ 햇볕 쨍쨍한 정오에는 움츠려/ 신발 밑으로 잦아드는 그림자를 본다. (하략) 회고록에 실린 시 자화상에서 처럼 그는 은퇴 후 삶에 대해 헛헛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집과 회고록을 통해 꿈틀거리며 평범한 인생과 문학의 길을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는 마음의 창에 쌓인 먼지를 닦고 닦아 행복한 마음 부자를 꿈꾼다고 말했다. 1997년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한 저자는 줄곧 부안에 머물며 향토시를 쓰고 있다. 월간 한국시 신인상, 백양촌문학상, 노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공무원문학회, 전북시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회원과 원불교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1.15 19:53

신남춘 시인, 삶의 희로애락 담아

월간 <한비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신남춘 시인이 6년만에 두 번째 시집 <비오는 날의 초상>(신아출판사)을 펴냈다. 지난 2012년 발표한 첫 번째 시집 <풀꽃 향기>가 자연의 꽃과 나무를 시집 속으로 옮겨, 문명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상처를 입은 마음을 다독거렸다면, 이번 <비오는 날의 초상>은 저자가 부지런히 새로운 풍토, 생경한 물상 등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체득한 것들을 쏟아낸다. 저자는 시인의 말을 통해 모자람이 있지만 수년의 고통 끝에 조심스럽게 두 번째 시집을 올린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아 보듯 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세월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간다. 오늘 지나면 또 오늘이 오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란 마냥 똑같은 날은 아니었다며 슬펐지만 기쁨이, 울었지만 웃음이, 허무했지만 희망이, 분노했지만 사랑이 오는 그런 날을 기다리며 사는게 인생이라고 했다. 작은 개울물로 출발하여 / 크고 넓은 대하로 나아가 / 작은 울음이 큰 울음 되는 것 // 강변의 수런거리는 풀꽃들 / 목울음까지 눈 맞춤하다가 / 물 비늘 잔잔히 울고 가는 것 // 높은 하늘, 망망한 바다를 / 기웃거리며 우리는 얼마나 흔적 없이 잦아들었던 가 제1부에서 5부에 걸쳐 91편으로 묶은 시집의 첫번째 시인생은. 이 시에서 저자는 수많은 변이를 겪는 삶의 흥망성쇠를 강의 흐름으로 의인화한다. 삶의 희로애락은 굽이굽이 사무치는 중에도 강변을 눈부시게 하는 기화요초도 만나고 하늘과 구름과 은하수까지 강물에 첨벙첨벙 뛰어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소재호 시인은 저자의 시 세계를 동양적 정한이 유로(由路)되는 서정시의 표상, 신남춘 시인의 시는 낭만적 서정시다며 시인의 심상은 맑고 깨끗하며 건강하다. 흔들리며 가끔 유랑의 길에 오르는 나그네의 삶이 언뜻언뜻 뜨인다고 평했다. 부안 출신인 저자는 우석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42년간 교편을 잡았다. 교직에서 퇴직 후 지난 2011년 월간 <한비문학> 신안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부안문인협회, 서울시인협회, 석정문학회, 시마을작가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아문예대학작가회 회장, 한국한비문학회 시 분과회장 등을 맡았다. 한비문학상 시 부문 대상, 월간 추천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15 19:53

황의춘 시집 ‘하늘나라 우체통’ 발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소개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의 사례들이다. 조촐하고 소박한 생활 감각을 중시하는 이 태도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황의춘 시인의 시집 <하늘나라 우체통>은 이 소확행의 속성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인은 조촐하고 소박한 삶을 희구한다. 소재 역시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은 거대 담론보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상적 관념이나 사물, 사건에 주목한다. 그리고 연민과 동정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 속 삶의 갈피를 무덤덤하게 기록해 나간다. 삶은 외줄 타기다// 줄에 걸린 바람에/ 육탈肉脫이 시작되면// 햇살 한 조각에/ 두엇 살점 내어주고// 넉넉지 못한/ 초가살이도 내어주고// 흰 뼈에 새긴/ 그리움도 내어주리 (초분 전문) 전북대 양병호 교수는 시인은 현실을 구조적이거나 분석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과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라며 이를 통해 가혹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한다고 평했다. 시인은 1990년 계간 시와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석조문학, 청하문학, 군산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1.15 19:53

[불멸의 백제] (221) 11장 영주계백 17

편지를 읽은 하세가와가 조심스럽게 접더니 앞에 놓았다. 이곳은 하세가와의 저택 안, 안쪽에 앉은 하세가와의 얼굴은 병색이 짙다. 그러나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하세가와가 앞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계백의 심복 나솔 백용문, 계백이 한상성주 겸 수군항장이었을 때부터 동고동락을 해온 장수 중의 하나다. 그 백용문이 밀사의 임무를 띠고 타카모리의 중신(重臣) 하세가와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 하세가와가 읽은 편지는 타카모리가 쓴 글이다. 타카모리의 영지를 모두 계백에게 바칠 것이니 모두 계백에게 충성해주기를 바란다고 써진 편지다. 하세가와가 입술 끝을 비틀면서 입을 열었다. 이 편지를 갖고 오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하세가와의 눈동자는 흐려져서 앞에 앉은 백용문의 뒤쪽을 보는 것 같다. 청은 10평쯤 되었는데 타카모리의 가신 1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편지를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짐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하세가와가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에 청 안에 어색한 정적이 덮여졌다. 그때 백용문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백용문은 가죽 갑옷차림이다. 부하 5명을 데리고 이곳까지 말을 달려온 것이다. 노인, 타카모리님에 대해서 더 물어보실 말이 없으시오? 없습니다. 하세가와가 여전히 흐린 눈으로 백용문을 보았다. 장군께선 계백영주의 중신이며 거성(居城)의 수비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나한테 오신 목적이 이 편지를 전하시는 것 뿐이시오? 이번에는 하세가와가 묻자 백용문이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께 그대로 말씀드릴까요? 그럼 말씀하시지요. 내 주군이며 상관이시기도 한 계백장군께서 날 보내시면서 딱 한 말씀만 하십디다. 모두 숨을 죽였고 백용문의 말이 이어졌다. 하세가와한테 이 편지를 주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고와라. 이렇게 말씀하십디다. . 묻는 말씀이 없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소. 그리고는 백용문이 입을 딱 다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당황한 하세가와가 따라 일어서려다가 비틀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은 하세가와가 두 손을 내민 채 백용문에게 말했다. 장군, 잠깐 앉으시지요. 타카모리님에 대해서보다 다른 것을 여쭤보겠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백용문에게 하세가와가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묻는다. 장군, 타카모리 가문은 멸문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 가신, 수천 명 군사는 어떻게 됩니까? 내 주군께서는 어떤 말씀도 없으셨으니 내가 내 생각을 말씀드리리다. 백용문의 목소리가 작은 청을 울렸다. 아마 네 생각대로 행동하고 오너라 하고 내 주군께서 말씀하신 것 같소. 듣겠습니다. 그 주군에 그 신하라고 당신들도 다 같소. 어깨를 편 백용문이 하세가와를 노려보았다. 타카모리는 목숨만 살려주면 다 드리겠다고 했소. 그자에게는 신하고 주민이고 안중에 없었소. 제 처자식이 몰사했다는데도 눈 하나 끔벅하지 않았소. . 그리고 저 편지를 써 준 것이오. . 그러니 당신들도 마찬가지겠지. 누가 그런 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단 말인가? . 내 생각을 말하리다. 백용문이 호통치듯 말했다. 가신들이 결속해서 내 주군께 복속한다는 서약을 하시오. 그래야 영지가 안정이 되고 주민들이 편하게 살 것 아니오? 그것이 우선이요. 그리고는 백용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영주다운 영주를 만나면 영지 주민들이 첫째로 혜택을 받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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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4 19:39

[불멸의 백제] (220) 11장 영주계백 16

무슨 일인가? 청에 와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지만 백제방의 전령은 왜국의 관리와는 다르다. 전령은 8품 시덕 관등의 백제관리로 백제방 방주이며 백제왕자(王子), 왜국의 제1품 벼슬인 대덕(大德) 부여풍이 보낸 자인 것이다. 소가 이루카가 왜국의 섭정이라고는 하나 백제방은 왜국 왕가(王家)의 자문역이며 방주는 왜왕의 자문관이니 이루카보다는 격이 높다. 실권은 없지만 위상으로써는 소가 가문이 감히 눈을 맞출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때 전령인 시덕 연권이 어깨를 펴고 이루카와 에미시를 번갈아 보았다. 40대의 연권은 두 부자(父子)와 안면이 많다. 대감, 왕자 전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둘의 시선을 받은 연권이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마리타, 마사시, 이또의 영지를 다스리게 된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타카모리의 기습을 받아 어쩔수 없이 타카모리의 거성을 기습, 일족을 멸문시키고 타카모리를 생포했습니다. 에미시도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로 연권을 노려보았고 이루카는 허리를 흔들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때 연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사시가 전에 합의한 5천석 영지를 내놓으라면서 군사를 투입시킨 것입니다. 지금 마사시 영지에 기마군 2천 5백, 보군 3천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계백은 타카모리를 생포하고 철수했지만 이대로 후환을 놔두면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깨를 편 연권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타카모리의 영지를 몰수하며 소가 가문과 계백이 나누어 통치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십니다. 타카모리는 영지를 내놓겠다는 합의서를 써낼 생각이며 가신들도 죽거나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이대로 두면 무주공산이 되어 도둑떼가 창궐하게 될 것이니 시급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에미시가 물었다. 지금 타카모리 영지에는 누가 있나? 하세가와가 있습니다. 으음. 신음을 뱉은 에미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영감이 죽기 전에 안좋은 꼴을 보는군. 왕자 전하께서는 타카모리 영지는 이미 없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지와 여기 있는 섭정의 영지가 타카모리 영지와 붙어 있어. 에미시가 이루카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코이 산 서쪽 땅을 소가 가문이 가져가도록 하지. 그럼 이번 혼란을 수습하도록 해주겠네. 전하께서는 아와강 서쪽 땅을 소가 가문이 가져가는 것이 공평하다고 하십니다. 연권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소가 가문에 대한 왕자 전하의 예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몇만석짜리 땅으로 성의를 훼손시키면 되겠습니까? 이봐, 성의라니? 누구한테 선심쓰는 것이냐? 화가 난 이루카가 버럭 소리쳤을 때 에미시가 손을 들어 말렸다. 섭정, 시끄럽다. 아버님, 계백이 안하무인입니다. 타카모리가 과욕을 부린 벌을 받은 것이다. 그놈이 성급했고 앞뒤를 구분 못한 때문이야. 자르듯 말한 에미시가 연권을 보았다. 알았네. 왕자 전하의 뜻을 받들겠다고 전해드리게. 연권이 청을 나갔을 때 이루카가 찌푸린 얼굴로 에미시를 보았다. 아버님, 아와강 서쪽 영지를 우리가 떼어 받으면 계백을 타카모리 영지 25만석중 18만석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16만 5천석에서 단숨에 18만석이 불어나 34만 5천석의 대영주가 됩니다. 너는 이미 85만석 아니냐? 에미시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루카 자신은 90만석이다. 거기에다 이번 7만석을 합치면 1백만석 가깝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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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3 19:57

[불멸의 백제] (219) 11장 영주계백 15

하도리가 청으로 들어섰을 때는 오시(12시) 무렵이다. 주군, 타카모리가 양도서를 쓰겠다고 합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이곳은 계백성의 청 안이다. 진시 무렵에 성에 도착한 계백이 잠깐 눈을 붙이고는 나온 참이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을 때 하도리가 말을 이었다. 타카모리 영지 25만석을 계백령의 계백공에게 양도하겠다는 양도서입니다. 청 안에 둘러앉은 가신(家臣), 장수들이 수군거렸는데 몇 명은 소리죽여 웃음소리를 내었다. 계백은 여전히 보료에 몸을 기댄채 듣기만 했고 하도리가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영지의 가신, 장수, 군민들에게 앞으로 새 영주를 맞아 충을 다하라는 글도 쓰겠다는 것입니다. 머리 상처는 어떠냐? 불쑥 계백이 물었더니 하도리가 어깨를 치켜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여전히 엄숙한 표정이다. 예, 칼등에 맞은 머리 꼭지가 터졌기는 하지만 뇌가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제정신이란 말이렸다? 예, 머리가 아프다고 술을 달라고 해서 한병을 주었습니다. 영지를 내놓고 죽겠다더냐? 아니올시다. 주군. 턱도 없는 말이라는 듯이 하도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려주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살겠다고? 예,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저한테도 사정을 합니다. 제 일족이 아이까지 몰사된 것을 알고 있느냐? 예,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직 제 목숨은 살려달라고 했단 말이지? 예, 주군. 옳지. 계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를 가져갈만 하다. 하세가와한테 그 합의서와 가신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보내주도록 해라. 무엇이? 버럭 소리친 이루카가 옆에 앉은 에미시를 보았다. 오시(1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둘의 앞에는 타카모리 영지에서 달려온 전령이 엎드려 있다. 하세가와가 보낸 전령이다. 전령은 어젯밤의 내막을 보고했는데 과장이 심했다. 계백군(軍)을 수천명으로 보고했고 타카모리측 피해자도 수천으로 부풀렸다. 이루카의 저택 안이다. 오늘도 부친 에미시가 와있었기 때문에 진구 섭정이 내막을 함께 들은 셈이다. 타카모리를 생포해갔단 말이냐? 이루카가 비명처럼 묻자 전령이 한숨을 쉬었다. 40대쯤의 하세가와 가문의 가신이다. 예, 대감. 일족은 다 죽이고? 예, 유아까지 다 죽였습니다. 허, 타카모리 가문이 끊겼구나. 이루카가 말했을 때 에미시가 물었다. 그리고 기습군이 돌아갔단 말이냐? 예, 대감. 하세가와는 그 사실만 보고하라고 하더냐? 예, 대감. 질문을 그친 에미시가 머리를 둘려 이루카를 보았다. 하세가와가 타카모리한테 만정이 떨어진 것 같다. 그나저나 계백이 안하무인입니다.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이러다가 우리 가문에다 칼을 휘두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마당이 떠들썩하더니 집사가 소리쳤다. 백제방 왕자 전하의 전령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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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2 19:31

[불멸의 백제] (217) 11장 영주계백 13

결사대를 따라 청으로 진입한 계백은 청 안쪽에 서있는 타카모리를 보았다. 옆에 그림 같은 미인이 타카모리에게 딱 붙어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여자에게 의지하고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눈이 초점이 또렷한 대신 타카모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치켜뜬 눈, 벌린 입, 엉거주춤한 자세가 그렇다. 이것은 계백이 눈 깜박하는 순간에 본 장면이다. 생명체는 이 짧은 순간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계백이 소리쳤다. 다 죽여라! 영주이며 대백제 은솔, 대장군, 대륙을 누비며 당왕 이세민의 눈알을 뺀 용장 계백이 손수 칼을 쥐고 외친 것이다. 벽력 같은 외침, 이 외침을 들은 수하 결사대는 누구인가? 계백을 따라 수십번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들이다. 와앗! 처음으로 결사대의 외침이 터졌다. 전투는 기세로 승부가 난다. 접전, 난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기가 오른 용사의 기세는 일당백이 된다. 내려치는 칼날은 제아무리 검법의 달인이라고 해도 막아내지 못한다. 으악! 앞을 가로막던 가신 하나의 비명을 시작으로 청에 살육이 일어났다. 치고 받는 싸움이 아니라 도살장이 된 것이다. 막는 시늉을 했지만 시늉이고 대부분 단칼에 베어진다. 계백은 결사대 사이를 빠져나가 타카모리를 향해 달려갔다. 이제 타카모리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다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는 중이다. 타카모리의 팔을 잡아 부축한 여자가 없었다면 넘어졌을 것이다. 타카모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상황에 빠진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장의 전투에 선 적도 없다. 앞을 가로막은 위사 하나의 어깨에서 허리까지를 베어 넘어뜨린 계백이 타카모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옆에서 위사 하나의 칼날이 날아왔지만 어깨를 비틀어 피하면서 칼로 목을 쳤다. 피가 분수처럼 튀어 계백의 몸에 뿌려졌다. 그때 타카모리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여자와 함께다. 타카모리! 계백이 벽력처럼 소리쳤다. 나는 영주 계백이다! 천둥 같은 소리가 청에 울렸을 때 살아있던 두어 명의 가신, 위사가 주춤했다. 놀란 것이다. 그때 타카모리도 숨을 들이켰지만 머리를 돌리지는 않았다. 여자만 이쪽을 보았을 뿐이다. 그때 계백이 한걸음 뒤까지 다가가며 다시 소리쳤다. 너, 타카모리 아니냐? 아니오! 타카모리가 엉겁결에 소리친 순간이다. 계백의 칼이 날아가 타카모리의 뒷머리를 쳤다. 아악! 타카모리의 비명이 청을 울렸다. 밤, 자시(12시)가 되었을 때 자리에 누워있던 하세가와가 마당에서 울리는 소음에 몸을 일으켰다. 말굽 소리, 외침, 부르고 꾸짖는 소리가 내실까지 들린 것이다. 누구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면서 소리치자 문 밖에서 집사 요시다가 소리쳤다. 모리 님이 오셨습니다. 모리는 타카모리의 위사부장으로 500석을 받는 가신이다. 하세가와가 문을 열자 앞쪽 마루 밑까지 와있던 모리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하세가와 님! 큰일 났습니다! 이제 주변에 등불을 든 하인, 경비병이 모여 섰기 때문에 모리의 몰골이 드러났다. 피투성이다. 하세가와의 시선을 받은 모리가 소리소리쳤다. 다 죽었습니다! 하세가와의 눈빛이 강해졌고 모리의 입꼬리가 떨렸다. 계백군이 내궁을 기습해서 청에 있던 가신, 위사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계백이 선두에 섰습니다! 내궁으로 진입해서 주군의 마님들, 일족까지 모두. 내전에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주군과 나미코님을 사로잡고 마장의 말을 타고 모두 철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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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21:36

한 사서가 권하는 즐거운 책 읽기

독서의 중요성을 알지만 정작 책을 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책 읽을 용기와 힘을 주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백명숙 사서의 <책과 잘 노는 법>(가림출판사). 사서를 천직으로 여기며 전주대학교 도서관에서 30년 넘게 책과 호흡해 온 저자가 즐거운 책 읽기를 위한 비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책과 잘 노는 법>은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사람, 책 읽기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안내한다. 또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게 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책 읽기가 즐겁게 노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이 한 뼘씩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책과 놀아보기를 제안한다. <대통령의 글쓰기>을 펴낸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 있다며 책을 읽으며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고 책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와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인문학 공부법>의 안상헌 작가는 한 사서의 자기 영혼을 위한 시간의 기록인 이 책이 자신이 선택한 책이 어떻게 삶을 바꾸었는지 그 결과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며 여러모로 이 책은 소파에서 읽고 가슴으로 남기기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부안 출신인 저자는 현재 전주대학교 단과대학 행정업무를 맡고 있으며 <나를 바꾸는 가르침>(하나의 책)을 공저자로 펴낸 바 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4일 전북은행 중산지점 3층 투어컴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08 21:36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 전봉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

2018년 4월 서울 종로네거리 영풍문고 앞에 전봉준(1855~1895) 장군의 동상이 건립됐다. 이 자리는 한말 전옥서 터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 공주 우금치에서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갇힌 장소이다. 동상 건립을 주도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이를 두고 동상은 한국사 속에서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이 바르게 평가되고, 제 위치를 찾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동상 건립을 시작으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전봉준연구소를 세워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그 첫 사업으로 송정수 전북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역작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을 총서 제1권으로 선정해 발간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병술보>에 수록된 전봉준 장군 관련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병술보는 1886년(병술년) 천안 전씨 문중에서 간행한 <천한전씨세보 병술보>로 이 족보의 소유자인 고(故) 전성태 씨는 송정수 교수의 외가 쪽 삼촌이다. 송 교수는 <병술보>의 발견 경위와 그 진위를 검토한 뒤 전봉준 장군의 출생과 가계, 유동 생활과 그 기간 만난 동지들, 피체와 죽음 그리고 묻힌 곳에 대한 내용을 순서대로 서술했다. 그는 전봉준의 족보 분석을 토대로 전병호와 전봉준이 동일인임을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봉준의 출생지(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를 비롯해 처가와 외가를 포함한 가계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전봉준이 살아온 마을들을 추적해 유동 생활을 정리했다. 신영우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상임이사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을 넓은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증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 연구는 현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연구였다. 전봉준 장군과 인척이 되는 송정수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 교수는 전봉준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됐던 정읍시 옹동면 수암마을의 장군천안전공지묘 조사발굴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2016년 11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는 이 무덤에서 회곽묘(17세기 조선 중기의 묘제)를 발견하고, 전봉준 장군의 무덤이 아니라는 고고학적 판단을 내리고 발굴 조사를 중단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회곽묘는 17세기 조선 중기부터 시작해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시대 이후까지 사용된 묘제로 발굴한 무덤은 얼마든지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 수 있다면서 다시 새로운 발굴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책이 계기가 돼 전봉준 장군의 새로운 모습들이 점차 세상에 드러나 보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명청사학회,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중국근세향촌사회사연구>, <중국 정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들>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1.08 21:36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에 정읍 출신 박성우 시인

정읍 출신 박성우 시인이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자야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돼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다. 수상작은 최근 2년 이내에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선정한다. 심사위원들은 <웃는 연습>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고 평했다. 또한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는 한편, 이를 거슬러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으로 시인 고형렬, 시인 천양희, 문학평론가 한기욱 씨 등이 참여했다. 정읍 출신인 박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08 21:36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걷다, 생각하다, 쓰다 - 이준호

1983년에 군산에 정착했으니 햇수로 34년째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 시가지가 바둑판처럼 구획돼 있다. 80년대엔 영화동과 월명동에 일본식 건축물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월명산은 군산 도심에 자리한다. 명월이 아니라 월명인 건 일본식 어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망매가」의 지은이가 월명사인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월명산의 벚꽃은 일제강점기엔 경성에서 특별열차를 편성할 정도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월명공원은 문학이나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탁류의 악한 고태수가 산책하려다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만둔 곳이자 어린 고은이 신사참배를 하던 곳이다. 광기 어린 좌우의 살상으로 정신이 피폐해져 방황하던 고은이 노숙하던 곳이자 부산 출신의 소설가 김정한이 소주에 독을 타서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곳이다. 고은이 장항제련소 굴뚝을 건너다보며 영원성을 생각한 곳이자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곳이며, 고은이 출가한 동국사가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뚫은 해망굴은 탁류에서 고태수와 장형보, 행화가 은적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통과한 곳이자 고은이 미군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지나친 곳이다. 그중에서도 수원지와 그 주변의 산책길은 나에게 각별하다. 하루에 한 번, 시간을 정하지 않고 월명공원 수원지 둘레를 걷는다. 체육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까지 이용하면 한 시간 남짓한 코스다. 시간을 늘리고 싶으면 주변의 해발 100미터 내외인 산을 슬쩍 끼워 넣는다. 그러면 금세 두세 시간짜리 코스가 된다. 월명산 내에 있는 수원지 역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수원지와 산책길의 인연은 고3 때로 거슬러간다. 그땐 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원지 둘레에 철망이 쳐두었고, 주변의 길은 비포장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와 낚시를 하다 감시원에게 낚싯대를 빼앗긴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시멘트 포장에 우레탄까지 깔아 비가 와도 흙탕물 튈 걱정 없고, 오래 걸어도 무릎 상할 염려가 없다. 흙길 그대로 보전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이다. 오히려 이런저런 부속시설과 편의시설이 설치돼 이용이 편리하다. 지금은 수원지를 월명호수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그렇지만 수원지를 뭐라 부르건 나와는 상관없다. 나에겐 어디까지나 수원지일 뿐이다.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한다는 건 사유화하고 구속한다는 거니까. 명명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순간 명명된 사물의 본질과 정체성은 훼손돼 버리니까. 어느 지역의 집필실에 가건 맨 먼저 산책길을 만든다. 하지만 그 어느 산책길에도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 단지 식수공급원의 용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수원지라고 고집하는 건 아니다. 수원지와 산책길은 내 글의 원천이자 자산이다. 수원지의 물빛이나 냄새는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비 오는 날이면 머리를 꼿꼿이 쳐든 괴생물체를 발견한다. 어스름 저녁이면 외래종인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때 숲을 지배하던 청설모는 다 어디로 간 걸까? 공도교에서 쌀 튀밥을 주면 몰려드는 잉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개가 심한 어느 겨울밤, 흰 체육복을 입은 커플을 유령으로 착각해 머리칼(?)이 쭈뼛 섰던 적도 있다.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벤치에서 인기척에 남녀가 후다닥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면 괜히 미안해진다. 산책길에 떨어진 야구 모자나 장갑 한 짝을 발견하면 그 물건들의 주인들을 상상하게 된다. 며칠 전엔 오후 열한 시쯤에 갔더니 예닐곱 마리가 무리를 이룬 개떼를 만났다. 무슨 모의라도 하는지 산책로 한가운데서 모여선 녀석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작년엔 집필실에서 돌아와 몇 달 만에 갔더니 민둥산이 되다시피 했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 때문이었다. 겨울 산의 황량함과 스산함은 신록이 우거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모든 글들이 수원지와 산책길에서 구상되고 숙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산책길이지만 나에겐 사색과 모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편백나무 숲에 누워 장르를 구분 않고 다운받은 음악을 듣노라면 상상력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풀벌레 소리에 볼을 간질이는 미풍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걷기 좋아하는 글쟁이들이 군산에 놀러오면 꼭 안내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아름다운 길은 많다. 가본 곳을 잠깐만 떠올려도 동해안 자전거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부안 마실길 등등이다. 하지만 산책길처럼 마음이 한갓지고 여유로워지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산책길이 끼니때마다 먹는 집밥이라면, 다른 길들은 돈가스나 짜장면쯤 될까. 이따금씩 정해진 코스를 이탈해 채만식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는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군산의 원도심은 탁류 속에 그대로 재현돼있다. 군산시는 관광객들을 위해 탁류의 배경지와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중심으로 탁류길을 조성해두었다. 탁류의 등장인물들이 걸었던 동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녹슨 못 하나, 비바람에 퇴색한 판자 한 쪽이 모두 정겹고 애틋하다. 채만식의 발자취를 따라 고즈넉한 밤거리를 걷노라면 일제강점기로 타임슬립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영화 <밀정>에서 경성 밤거리를 밝히던 가로등이 현재 군산에 설치된 가로등과 모양이 같다는 걸 안 뒤론 그런 느낌은 더욱 강렬하다. 어느 시인은 채만식을 친일 작가라고 단정한다. 채만식의 친일 작품이 서른 편이 넘는다고 박박 우기는 데엔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반성적 사유의 결여에서 오는 오만과 자만의 산물이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그 시인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하는 가정 뒤엔 으레 당꼬바지에 도리우치를 쓴 고등계 형사의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김훈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밀리언셀러 작가여서도, 미문을 구사해서도, 지면 곳곳에 깊은 사유의 흔적이 스며 있어서도 아니다. 그가 「치욕」에서 나는 내가 체험하지 못한 시대의 고통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일이 두렵다.라고 심경을 밝힌 다음부터다. 시대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그의 균형 잡힌 사고가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 또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자신할 수 없다. 채만식은 매문으로만 생계를 유지했다. 한땐 그의 식솔뿐 아니라 형의 가족들까지 부양해야 했다. 머리맡에 원고지를 쌓아두고 글을 쓰는 게 그의 평생소원이었다. 한 번 정착된 문자는 오래 전해진다. 구술과 문자의 차이이다. 채만식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덮어놓고 친일 작가 운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 평론가는 채만식이 친일을 내면화해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때론 채만식이 원망스럽다. 항일이나 반일의 길은 가지 못할망정 왜 손가락질당하는 길을 가셨습니까. 오늘도 산책길을 걷는다. 공도교 입구가 막혀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언젠가부터 확장 공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눈으로만 읽고 머리엔 입력하지 않은 탓이다. 당분간은 다른 코스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코스가 좋을까.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내가 걷는 산책길과 채만식이 걸어간 탁류길은 어느 지점에선가 이어져 있기도, 끊어져 있기도 하다. 연결됐나 하면 단절됐고, 단절됐나 하면 연결됐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걷는다. 그게 인생 아니던가. *이준호: 1994년 작가세계 소설 당선, 2001년 MBC 창작동화대상 장편동화 당선, 할아버지의 뒤주, 그해 여름, 닷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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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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