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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소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지 시킨 채 군병의 출동 준비를 했지만 소문은 딴 곳에서 새었다. 신라소와 동맹을 맺은 호족 마사시 일족에 끼어있던 병사 시로가 도망쳐나와 백제방에 뛰어든 시각이 해시(10시) 무렵, 시로는 왜인(倭人)으로 풍왕자가 신임하는 왜인 무장 아베와 동향 사람이다. 오늘밤 자시에 백제방을 기습할 것입니다. 병력은 대아찬 박경이 이끄는 6백이고 응원군으로 김부성이 군병 3백으로 뒤를 잇는다는 것입니다. 아베가 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베의 옆에 선 시로가 말을 받는다. 박경에게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가 왜인 군병을 모아 붙었고 김부성은 이또가 가담했습니다. 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백을 보았다. 은솔, 나는 전쟁을 치러보지 못했다. 그대에게 맡긴다. 황공합니다. 계백이 풍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벽에 선 덕솔 국연에게 물었다. 백제방 안에 병사가 몇이 있는가? 당장 전장(戰場)에 보낼 병사는 2백 남짓이오. 내가 3백을 데려왔으니 5백이야. 그만하면 되었다. 그때 아베가 나섰다. 은솔, 적은 박경의 6백에 김부성의 3백까지 9백이오. 지금 호족들에게 전령을 보내면 내일 오전까지 3천은 모을 수가 있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아베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아군은 백제방 안에서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 낫습니다. 백제방의 청 안이다. 이곳 청은 사방 1백자(30m) 규모로 붉은색 기둥에 대황초를 여러개 붙여 놓았다. 왜 왕궁의 청에 뒤지지 않는다. 청 안에는 20여명의 무장과 백제방 관리가 모여 앉아 있었는데 상석에 앉은 풍왕자의 바로 앞에 계백이 자리잡고 있다.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것 보게, 아베. 예, 은솔. 신라군이 자시에 온다니 내일 낮까지는 우리가 방어를 한다는 말인가? 예, 은솔. 그것이 안전합니다. 고맙네. 숨을 들이켠 아베에게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대의 왕자 전하를 위한 충정은 천년이 지나도록 기록되게 하겠네. 은솔, 과분하오. 아베가 큰 눈을 끔벅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베는 북규슈(北九世)의 호족으로 오래전부터 백제의 신민임을 자처했다. 충직한 데다 무용도 뛰어났기 때문에 풍은 왜인(倭人) 심복으로 삼아왔다. 다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기마군 3백을 이끌고 지금 곧장 신라소를 치겠네. 정공법이지. 아베, 그대는 남은 2백을 모아 왕자 전하를 지키도록 하게. 예, 은솔. 기세에 눌린 아베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풍을 보았다. 전하, 입만 가지고 싸우는 김부성에게 대륙을 휘젓고 온 백제 기마군을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숨을 들이켜면서 풍이 머리만 끄덕였다. 계백을 따라 무장들이 일어섰기 때문에 대황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계백이 청을 나갔을 때 풍이 아베에게 말했다. 아베, 이곳은 왜백제(倭百濟)다. 네 자손들에게도 대를 이어서 왜백제를 넘겨주어야 한다.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연정 김경식 수필가가 시문집 <황혼의 강변을 거닐며>를 내놨다. 이 시문집은 30권의 전문 학술서적을 저술한 교육학 박사인 그의 첫 번째 문학작품이다. 시문집은 사물을 직관하고, 시대와 사회를 관조한 시와 수상으로 가득 차 있다. 5대째 대물림으로 농사를 짓고, 평생 교육의 길을 걸어온 그는 문학은 춥고 시릴 때 볕을 쪼일 수 있는 양지이고, 폭염에 쉴 수 있는 서늘한 나뭇잎 그늘이었다고 시문집 전반에서 애정을 드러낸다. 김 수필가는 오늘날 사회상의 아픔에 대해 종종 글로 표현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내 감정이 주위 환경에 부딪치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글로써 표현해 본 것이 나에겐 시가 되기도 하고, 수상이나 칼럼이 되기도 했다며 늙어가면서 삶의 여유를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텃밭에 시를 비롯한 문학이라는 작물을 가꾸며 조용히 살기를 소원한다고 밝혔다. 김 수필가와 막역한 지기인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축간사를 통해 문학은 가슴을 뜨겁게 넉넉하게 그래서 삶에 자양분을 더해준다며 연정이 이 나이에도 쉼 없이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많은 젊은 지식인들의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장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현재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중국 동북 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상하)>, <중국교육전개사> 등 30권이 있다. 1997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시선일여(詩禪一如)라는 생각으로 어려울 때마다 수행하는 자세로 시를 써왔습니다. 그런 사람을 눈여겨보고 상을 주시니 고맙고 기쁩니다. 저보다 훌륭한 문인들이 많아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제7회 중산문학상 수상자인 김동수(71)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이같이 밝히면서 수상 소감을 갈음했다. 지난 9일 전북문학관에서 열린 제7회 중산문학상 시상식이 문인들의 깊은 관심과 뜨거운 성원 속에 끝났다. 이날 축사는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과 전북문인협회 류희옥 회장이 맡았다. 김애경이재형 씨가 수상자의 시를 낭송했다. 중산문학상 심사위원인 허호석 시인은 김동수 시인의 작품 세계는 선적, 우주적, 범신론적이다며 문학과 인간 존재의 의미가 동일성으로 육화된 그의 탐미적인 시는 삶과 문학의 가치를 고양하고 탐구하려는 시인의 면모가 엿보인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1981년 시문학 시 추천으로 등단했다. 현재 백제예술대 명예교수로 미당문학회장, 미당출판사 대표, 온글문학 대표 등을 맡고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1회 전라도 천년의 시향(詩香)-시극 페스티벌이 오는 13일 전주 한벽극장에서 열린다. 시극은 시의 내용을 대중이 친숙하게 이해하도록 연극 형식으로 풀어낸 장르다. 이번 공연은 전주 황방산 서고사와 나주의 영산강을 소재로 전북과 전남의 시극배우가 한 무대에서 공연한다. 전북재능시낭송협회, 전남재능시낭송협회, 모레노 극단, 한문화국제협회예술단이 무대에 선다. 심태섭 성악가의 축하공연도 마련돼 있다. 전주대학교 류명희 객원교수가 총 예술 감독을 맡고, 염정숙씨와 이소라씨가 연출을 맡는다. 행사는 전라북도와 전남재능시낭송협회가 후원하고, 모레노 극단과 한국문화교육개발원이 주관, 소울공연예술원이 주최했다.
내가 계백을 알지. 김부성이 말하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신라소 안, 청에는 10여명의 무장(武將)이 모여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겁다. 밤, 술시(8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신라소는 며칠전부터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2백여명의 군사가 상주하고 있다. 근처의 민가, 뒤쪽 골짜기 안의 마을에도 호족들의 준병이 대기하고 있다. 섭정이며 실권자인 소가 이루카가 통제를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권력의 공백상태다. 며칠전 왕비가 왜왕으로 즉위했지만 아직 기반이 굳혀지지 않은 것이다. 김부성이 먼곳을 보는 눈으로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내 사촌 김품석이를 죽인 놈이지. 내 가문하고는 철천지 원수다. 김부성도 왕족이며 김춘추 하고도 먼 친척이 되는 것이다. 김부성이 말을 이었다. 이미 칼을 빼든 상태야. 서문사(西門寺)의 일이 우리 소행인줄로도 밝혀졌으니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대감. 앞에 앉은 무장이 나섰다. 계백이 이끌고 온 군병은 3백여명이라고 합니다. 배에서 내린지 얼마되지 않았을 테니 오늘밤 기습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는 1천명 가깝게 됩니다. 계백이 도착하기 전에 백제방을 쳐서 오갈데 없는 신세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신라소의 2인자인 대아찬 박경이다. 박경이 말을 이었다. 대감, 저에게 군병을 맡겨주시면 오늘밤 백제방을 치고 결판을 내겠습니다. 내가 우유부단했다. 자책한 김부성이 박경에게 말했다. 소가 일족과 백제방과의 싸움을 붙이려고 골몰하다가 시간만 끌게 되었다. 그동안 군병을 더 모을 수는 있었지요. 위로하듯 말한 박경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부성을 보았다. 대감, 결단을 내려주시오. 좋다. 김부성이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 그대가 화랑 석춘과 아광을 부장으로 삼고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의 군병 6백을 이끌고 오늘밤 백제방을 쳐라. 치는 시각은 자시(12시)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깨를 편 박경이 소리쳐 대답했다. 기밀이 새나가지 않아야 할테니 지금부터 잡인의 출입을 통제 시키겠습니다. 나는 화랑 아성과 호족 이또의 군병 3백을 이끌고 지원군을 맡을 테다. 그대 뒤를 따라 응원을 할 테니 서둘러라. 예옛. 힘차게 대답한 박경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모두 살기를 띤 얼굴이다. 무장들이 청을 나가자 김부성의 옆으로 화랑 아성이 다가와 섰다. 아성은 22세, 역시 진골(眞骨)가문의 왕족이며 김부성의 친척이다. 대감, 백제방을 태우고 왕자 풍과 계백까지 죽이고 나면 왜왕이 신라소를 인정해줄까요? 왜왕보다 소가 가문이 먼저 우리와 제휴하게 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부성이 흐려진 눈으로 아성을 보았다. 소가씨는 백제계지만 이제 백제로부터 벗어나 왜국을 지배하려는 것이지, 우리는 소가씨의 앓는 이를 빼주는 셈이 될 것이야. 발을 뗀 김부성이 뒤에 아성 혼자만 따르자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아성, 아스카만에 전함 2척만 대기 시켜라. 만일의 경우에 대비 하는거다.
계백이 아스카에 도착했을 때는 왜왕 즉위식이 끝난 지 닷새가 지났을 때다. 전선(戰船) 3척에 3백 정예군을 싣고 도착한 계백은 백제방으로 들어가 풍왕자에게 신고를 했다. 은솔 계백이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잘 왔어. 풍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계백을 맞는다. 손을 들어 앞쪽 두 걸음 거리에 계백을 앉게 한 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로만 듣던 용장을 보게 되는구나. 황공합니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밝은 분위기다. 모두 계백의 명성을 들어 아는 것이다. 몸은 왜국에 있어도 수시로 본국에서 오는 쾌선의 전령과 오가는 사신을 통해 정세를 듣기 때문이다. 풍은 의자의 동생으로 38세, 왜국 생활이 10년이 넘은 데다 전에는 대륙의 담로에서 태수를 지냈다. 견문이 넓고 역사에 밝다. 풍이 입을 열었다. 은솔, 그대는 역사(歷史)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전하. 그러자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지금은 대륙과 본국은 물론 왜국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명장(名將)이지만 훗날 네 기록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알고 있느냐? 예,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승자에 의해 조작되고 묻혀 버린다. 멸망한 왕조는 악(惡)이 되고 정복한 지배자는 선이다. 예, 전하. 명심해라. 대백제의 지금 융성이 잘못되었을 때는 온갖 조작으로 덮어씌워 질 것이니. 예, 전하. 그때에는 네 명성도 죽을 때 한두줄의 기록으로만 남겨지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어깨를 편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교활하고 비굴한 악인의 손에 역사를 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면서 쾌선 전령에게서 들었습니다만 백제방 관인들이 습격을 당한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풍의 눈빛이 강해졌고 둘러앉은 중신들도 숨을 죽였다. 숨을 고른 풍이 입을 열었다. 신라소의 김부성이 나를 치려고 한 것이다. 덕솔 진겸과 수행원이 나 대신으로 몰사를 했다. 소가 가문에 혐의를 씌웠다고 들었습니다만. 소가가 권력욕이 강하나 백제인이다. 백제를 등질 위인은 아니다. 먼저 신라소를 쳐서 몰사를 시키지요. 여왕께서도 나한테 맡기셨다. 정색한 풍이 말을 이었다. 김부성도 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풍의 시선이 옆쪽에 앉은 덕솔 윤환에게로 옮겨졌다. 덕솔, 네가 말하라. 예, 전하. 40대쯤의 덕솔 윤환이 계백과 풍의 중간쯤에다 시선을 두고 말했다. 김부성은 신라에 우호적인 호족들로부터 용병을 얻었습니다. 지금 신라소 근처에 모인 용병이 5백명 가깝게 되어서 민심이 흉흉합니다. 그때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놈들은 소가 가문에 뒤집어씌우려던 혐의가 발각되자 발악을 하는 것이다. 김부성은 신라에서 김춘추가 실권자로 부상하자 용기도 일어났을 것이다.
알았다. 소가 에미시의 편지를 읽은 풍이 시선을 들고 말했다. 앞에는 에미시의 중신(重臣) 오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백제계인 소가 가문에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공합니다. 왕자 전하. 오다 또한 백제 유민으로 둘은 백제어로 말하고 있다. 50대의 오다가 머리를 들고 풍을 보았다. 전하, 왜국의 부리는 백제계입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서 이만큼 기반을 굳힐 수 있었던 것도 백제방 덕분입니다. 백제방을 습격하려는 발상을 낸 것은 우리 백제계의 의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족속들의 소행입니다. 네 말이 맞다. 머리를 끄덕인 풍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덕솔 진겸 이하 12명의 수행원이 몰사를 했다. 놈들은 내가 궁에서 나오는 줄 알고 나를 노렸던 것인데 진겸이 대신 죽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백제방의 청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비장한 표정이다. 풍의 말이 청을 울렸다. 어젯밤 본국에서 쾌선을 타고 온 전령의 서신을 읽었다. 신라왕 덕만이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단이 이번에 우리를 습격한 것과 유사하구나. 암살을 하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수단이 말이다. 오다는 눈만 치켜떴다. 바다 건너 소식은 백제방이 훨씬 빠를 것이다. 풍의 말이 이어졌다. 신라는 비담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고 새 여왕 승만이 즉위했다. 김춘추는 승만의 뒤에서 조종하는 섭정 역할이 되어서 권력을 장악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김춘추의 계략대로 된 것이지만 백제와 신라와의 합병은 멀어진 대신 신라는 당의 신하국으로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예, 전하. 이럴 때일수록 왜국은 하나가 되어서 신라의 모략에 대비해야 될 것이라고 소가 대신에게 전하라. 예, 전하. 풍이 머리를 끄덕이자 오다가 절을 하고 청을 나갔다. 그때 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위사장이 보고했다. 전하, 예인 동복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무엇이? 놀란 풍이 상반신을 세우더니 물었다. 서문사에서 실종되었던 동복이 말이냐? 예, 전하. 불러라. 청 안이 술렁거렸고 곧 위사장이 초췌한 모습의 관리 하나를 대동하고 청에 올랐다. 예인 동복이다. 동복은 지난밤에 진겸과 함께 백제방으로 돌아오다가 기습을 받았던 것이다. 일행은 몰사했지만 동복 한명만 실종되었었다. 청에 엎드린 동복은 40대의 예식 관리다. 풍이 정색하고 물었다. 어떻게 살았느냐? 덕솔이 서문사 안으로 피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습격자는 보았느냐? 모두 검은 옷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만 보았지만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누구 목소리냐? 신라인이었습니다. 동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풍을 보았다. 덕솔이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습격자가 신라인이었다는 것을 전하께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청 안에 살기가 덮였다.
왕실의 사신이 여왕의 즉위를 통보했을 때 소가 이루카가 먼저 옆에 앉은 아버지 소가 에미시를 보았다. 오후 신시(4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니 그 시간의 왕실에서는 여왕과 풍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었다. 여왕이 즉위하셨단 말이지? 에미시가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사신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루카의 저택 청안이다. 청에는 가신(家臣) 50여 명이 정연하게 늘어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예, 백제방의 풍왕자께서 대관식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이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왜왕 즉위식에는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 주관해왔다.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야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왜왕이 백제계가 된 지 2백여 년, 그것이 관습이다. 대관식에 결격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루카는 외면했다. 경축한다는 말도 아직 뱉지 않았다. 그때 에미시가 말했다. 여왕께 축하드린다고 전해주게. 소가 가문이 충성을 다해서 여왕을 모시겠다는 말도 전해주게. 예, 대감. 그리고 곧 소가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 드릴 것이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대감. 에미시는 72세, 30여 년간 섭정을 지내다가 3년 전 이루카에게 섭정직을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정정하다. 사신이 청을 나갔을 때 에미시가 둘러앉은 가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가 섭정과 둘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 거침없다. 가신들이 두말 못하고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이 나간 청에는 둘만 남았다. 검게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끝 쪽에 경호무사 둘이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때 에미시가 주름진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이루카를 보았다. 어젯밤에 서문사 앞에서 풍왕자 일행을 쳤느냐? 그런 일 없습니다. 거침없이 대답한 이루카가 똑바로 에미시를 보았다. 요즘 백제방의 풍왕자와 갈등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제 뿌리를 파헤치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그렇다면 신라방 놈들이군. 에미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김춘추 족속들의 교활함은 가끔 제 위주로 사물을 판단하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놈들은 현장에 우리 가문이 찍힌 갑옷조각, 허리띠를 두고 갔다. 우리가 풍왕자를 기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까? 놀란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저는 풍왕자 일행이 요즘 아스카에서 돌아다니는 야적들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연못에서 키운 고기 밖에 안 되는 거야. 눈을 부릅뜬 에미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척 단구였지만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이루카는 숨을 죽였다. 지금 당장 중신(重臣)을 보내 풍왕자에게 어젯밤의 일을 해명해라. 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그 편지도 갖고 가도록 해라. 예, 아버님. 얼굴을 붉힌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그리고 당장 군사를 보내 신라소를 몰살시켜 버릴까요? 놔둬라. 에미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것은 백제방의 처분에 맡기기로 하자.
최명희문학관이 지난 5일 남원으로 혼불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최명희문학관에서 3월부터 소설 <혼불> 열 권 읽기를 끝낸 완독지기들과 4월부터 <혼불> 필사에 도전한 필사지기들이 참가한 기행은 남원 광한루와 서도역, 혼불문학관 등을 방문했다.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혼불문학상 시상식도 참석했다. 기행에 참가한 허혜지 씨(25전주)는 가을비 내리는 남원의 풍경이 소설 <혼불>의 아름다운 문장처럼 단정하고 아늑했다고 말했다. 이번 혼불문학기행은 (사)혼불문학전주MBC최명희문학관혼불문학관이 주최주관하고 남원시와 전주시전라북도가 후원했다.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지부장 이소애)가 주관한 제1회 전주 시민문학제 백일장 시상식이 6일 전북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렸다. 장원 박윤지(기린초 1학년) 학생 등 7명을 비롯해 차상, 차하, 가작 등 74명의 수상자가 기쁨을 누렸다. 이날 식장에는 황권주 전주시청 문화체육관광국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원,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등 내빈과 수상자 가족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전북 문인들도 참석해 수상작을 감상했다. 시상식이 열린 전시장에는 74점의 그림일기, 운문산문의 입상작이 전시됐다. 천년고도 전주가 후백제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전통이 담겼다. 경기전, 풍남문, 한옥마을 등 지역 명소에 관한 여행기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0일까지 이어진다. 수상작은 전시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엮어 전주지역 학교, 도서관, 주민센터에 전달됐다. 이소애 전주문인협회 회장은 이번 문학제가 우리 고장 전주를 알리고 꿈나무들에게 소중한 애향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며 문학제가 거듭할수록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우영(58) 시인이 8년여 만에 네 번째 시집 <활에 기대다>를 펴냈다. 정 시인은 시력(詩歷) 30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냈다. 과작 측에 속하는 편.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30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낸 것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시에는 사람의 정신을 현란하게 하는 속도가 없다. 대신 방향이 존재한다. 이 작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따뜻한 햇살 느낄 수 있다는 게./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는 게./ 고소한 강냉이 코에 닿는다는 게./ 이런 느낌 오랜만이야./ 부러움도 안타까움도 없어. (허기에 먹히다-고독사,들 부분) 정 시인의 시는 뜨거운 목숨을 가만히 부르면서 빛난다. 심지어 가까운 사물에게도 목숨을 불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곁에 있다가 떠나간 옛사람들마저 살려낸다. 그렇게 죽음을 삶으로 또 삶을 죽음으로 옮겨 놓으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갖는다. 안경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다른 때 같으면 먼저 여분 안경 찾았을 것이나/ 어쩐지 그런 생각은 안 들고/ 다리 부러진 안경이 짠해지는 것이다./ 부러진 다리와 다리 잃은 몸통/ 받쳐 들고 사뭇 경건해진다. (달리는 무어라 부를까 부분) 어쩌면 그가 세월호 참사, 제주 43 사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 사회적 죽음을 당한 존재들에게 무심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시인은 임실 출신으로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신동엽학회장을 맡고 있다.
근암 유응교 시인이 동시집 <별꽃 삼형제>(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를 냈다. 2011년 첫 동시집 <까만 콩 삼 형제>를 발간한 이후 두 번째다. 유 시인은 많은 어린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면서 들에 핀 꽃이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동시를 가까이 하면 아이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 같은 마음에 동시집을 냈다고 말했다. 동시집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산 너머 흘러가는 구름,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 장미가 곱게 핀 담장길,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등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세계에 갇혀 있다면 보지 못할 풍경들이다. 총 123편이 담긴 책은 작품마다 유 시인이 직접 촬영하거나 고른 사진을 함께 수록해 시적 감동을 키웠다.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고/ 시간에 맞춰 집에 오고//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건/ 누가 뭐래도 시계다.(시간의 힘) 아이의 시선에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 작품도 있다. 본인의 의지 없이 기계적으로 생활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시계가 힘이 세서 그런 것라고 재치있게 꼬집었다. 현재 전북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인 유 시인은 다수의 대학 전공 이론서와 칼럼집, 시집을 냈다. 한국예총이 수여하는 한국 예술문화 대상, (주)국제해운이 수여하는 바다사랑상을 수상했다.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여행에세이와 실용서 등을 잇따라 펴내 눈길을 끈다. 전북도청 비서실 임수용 주무관과 공보실 추성수 주무관은 <아르메니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인의 눈으로 아르메니아를 소개한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에 관한 자료와 정보가 많지 않았던 2017년 7월,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활동차 아르메니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곧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아르메니아를 관찰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임 주무관은 아르메니아로부터 받은 자료에 바탕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자연문화 유산, 명사와 명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전북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추 주무관은 평소 습관처럼 아르메니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신화 속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아라라트 산을 품은 나라이다. 동서양 교차로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천 년에 걸쳐 러시아, 터키 등 강대국들의 침략과 수탈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의 촛불혁명처럼 아르메니아 국민들 역시 벨벳혁명이라는 평화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 정부를 세웠다. 알면 알수록 우리와 닮은 나라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 사람 냄새는 희망에 대한 믿음과 갈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며 조국을 항상 잊지 않는 동포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아르메니아 국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외에도 임 주무관은 공직 비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리더처럼 비서하라>도 출간했다. 2014년부터 도지사 수행비서로 일하는 임 주무관은 단순한 보좌 역할에서 벗어나 리더와 함께 성장하는 비서들에 주목했다. 5년 차 수행비서의 눈으로 본 특수성, 비서의 마인드부터 자기관리인맥관리 방법, 관가 전설의 수행비서들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현직 수행비서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비서가 기록과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 명함에 의미를 담는 방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법 등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업무 기술도 실었다.
무엇이? 다 죽었어? 놀란 풍의 외침이 청을 울렸다. 오전 묘시(6시), 왕궁의 접객소 안, 백제방에서 달려온 한솔 해두가 풍 앞에 엎드려 있다. 비를 맞고 달려온 바람에 옷에서 물이 떨어진다. 예, 덕솔 진겸과 장덕 윤판을 포함해서 모두. 누구냐? 현장에 이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해두가 풍 앞에 뜯어진 어깨 갑옷과 허리끈, 머리띠를 펼쳐 놓았다. 눈을 치켜뜬 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모두 소가 가문의 운장이 박혀있는 것이다. 소가 이루카의 부하들이다. 이놈들이. 어깨를 부풀렸던 풍이 해두를 보았다. 시신은 모두 수습했느냐? 예, 적은 한구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습니다. 그랬겠지. 덕솔 장덕 이하 시신 12구는 방의 창고에 일단 모셔 놓았습니다. 잠깐. 풍이 해두의 말을 막았다. 12구라고 했느냐? 예, 왕자 전하. 일행은 진겸 이하 12명이 아니냐? 예, 한명은 서문사 영내에서 피살된 것 같은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냐? 예, 예식을 주관한 예인(禮人) 동보입니다. 찾아라. 예, 왕자 전하. 놈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예, 그래서 덕솔 자성이 방(方)의 군사 1백명을 이끌고 소인과 같이 왔습니다. 어쨌든 오늘 오전에 대관식이 열릴 것이다. 어깨를 편 풍의 두눈이 번들거렸다. 여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은 왕궁의 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안이었다. 사당 안에는 백제식으로 제단이 차려졌고 백제식 관복을 갖춘 궁(宮)의 관리들이 도열해 서 있었는데 여왕이 왕좌에 앉아서 제사장인 왕사(王師)로부터 왕관과 옥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죠오메이 왕에 이어서 여왕 고교쿠(皇極)의 시대가 된것이다. 여왕은 대관식에 백제방 방주인 풍왕좌와 왕궁 관리들만 참석시켰는데 왕실의 전통이다. 호족이나 영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시위이기도했다. 다만 섭정인 소가 이루카를 부르지 않은 것이 걸렸지만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여왕의 사신을 보내 통보를 했다. 여왕과 풍이 접견실에서 마주 앉았을 때는 오후 신시(4시)무렵이다. 풍이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했지만 여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왕좌께서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왕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는 왕위를 왕자께 물려드릴 작정이요. 그래야 정국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백제 대왕이 계신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허락을 받아야지요. 정색한 풍이 여왕을 보았다. 실은 어젯밤 백제방으로 돌아가던 덕솔 진겸 이하 10여명의 백제방 관리가 기습을 받아 몰사했습니다. 놀란 여왕이 숨을 들이켰을 때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놈들은 내가 백제방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내 대신 덕솔 진겸이 죽은 셈입니다. 누구 소행입니까? 현장에 소가 가문의 장식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는데 전상자를 깨끗히 거둬간 놈들이 흔적을 남긴 것이 수상합니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멍텅구리는 판단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한자어 朦聽骨(몽청골, 듣는 데 어두운 골격)이 변한 것으로 보는 견해다. 멍을 의태어, 텅과 구리를 접미사로 보는 어원설도 있다. 하지만 멍텅구리에 쓰인 멍텅은 흐리멍텅하다의 멍텅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흐리멍텅하다의 표준어는 흐리멍덩하다인데, 이는 17세기에 맑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을 지시하는 데 쓰였다. 구리의 정체는 아리송하지만 몽구리(중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라는 단어에 쓰인 접미사 구리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놀림을 받을 만한 대상을 지시할 때 쓰이는 말로 여겨진다. 또 바닷고기 가운데 멍텅구리라는 고기가 있는데 원래는 뚝지라고 불렸다. 뚝지는 몸이 통통하고 못생긴 데다 동작마저 굼뜨고 느리다. 이 물고기의 속성이 인간에 투영돼 멍텅구리의 의미가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밤, 자시(12시)가 지나자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한두점씩 뿌리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서문사(西門寺)의 대문 기둥이 흐리게 보였을 때 진겸이 말했다. 서둘러라. 빗발이 굵어진다. 말고삐를 쥔 진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르는 시종은 12명, 그중 경호무사는 여섯, 여섯은 이번 왜왕 조오메이 장례식을 거들고 돌아가는 백제방 문관(文官)들이다. 장례식도 백제식으로 치렀기 때문에 백제방이 기인(技人), 예인(禮人)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옆을 따르던 장덕 윤판이 말했다. 덕솔, 금방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소. 쇠? 머리를 든 진겸이 어둠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칼 말인가? 매복이 있는 것 같소. 윤판의 눈 흰창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쪽은 모두 기마로 이동한다. 앞에 경호무사 넷이 둘씩 나란히 서서 길을 텄으며 뒤에는 기인, 예인 여섯과 경호무사 둘이 맨 끝을 따르는 대형이다. 윤판은 38세, 백제방에 온지는 2년이나 20년 동안 전장(戰場)을 누빈 역전의 무장이다.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살기(殺氣)를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다. 진겸은 43세, 전시(戰時)의 관리였으니 대응력이 빠르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낮게 소리쳤다. 돌파하라! 그순간 윤판이 허리에 찬 장검을 빼들면서 박차를 넣었고 소리쳤다. 매복이다! 따르라! 놀란 앞쪽 경호무사 넷이 박차를 넣었지만 진겸과 윤판이 맨 앞에 선 꼴이 되었다. 그 뒤를 12명의 시종이 따른다. 그때다. 옆을 따르던 윤판이 먼저 낮은 신음을 뱉었다. 화살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힌 것이다. 몸을 숙여라! 화살이다! 그러나 윤판이 말등에 몸을 붙이면서 소리쳤다. 숲에서 쏜 화살이다. 숲속의 길이라 거리는 5, 6보 밖에 되지 않는다. 서문사 앞까지! 진겸이 칼을 치켜들고 있었지만 적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서문사 앞까지 내달린 진겸이 말고삐를 채어 말을 세웠다. 이곳에서도 다시 숲길을 빠져 나가야 한다. 그때 다가온 윤판이 말에서 뛰어내리면서 소리쳤다. 덕솔! 제가 이곳에서 막을 테니 어서 절 안으로! 장덕! 다쳤는가? 그 사이에 일행이 절의 대문 앞에 모였는데 수행원이 네명 줄었다. 경호무사 둘에 기인이 둘 낙오한 것이다. 무사 하나가 발길로 절의 대문을 차면서 소리쳤다. 하나는 칼로 문을 내려쳤다. 그때다. 앞쪽 길에서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쏟아져 왔는데 10여명이다. 그리고 뒤쪽에서도 5, 6명이 달려오고 있다. 이놈들, 분명히 신라놈들일 것이다. 눈을 치켜뜬 진겸이 소리쳤다. 잘 들어라! 너희들 중 하나는 꼭 살아서 왕자께 보고를 해라! 진겸이 칼을 고쳐 쥐면서 다시 외쳤다. 이놈들은 왜인 시늉을 하고 있지만 신라인이다! 신라인이 기습했다는 것을 알려라! 그순간 화살이 쏟아졌다. 먼저 소리친 진겸의 가슴에 화살 2대가 박히더니 윤판의 몸에도 다시 화살이 박혔다. 그때 서문사 정문이 열리면서 서너명의 경호무사, 기인, 예인이 쏟아져 들어갔다. 쳐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어둠속에서 외침이 울렸다. 습격자의 외침이다. 바로 신라어다. 그리고 백제어, 고구려어도 된다.
잡찬 김부성은 김춘추의 친척이다. 왜국에 온지는 3년, 그동안 꾸준히 왜왕실 관리들의 환심을 사 놓았지만 백제방(百濟方)의 위세를 당할 수는 없다. 백제방은 2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왜왕실 또한 백제계인 것이다. 백제 왕실과 마찬가지로 수백년 간 이어져왔기 때문에 신라는 아스카에 신라소(新羅所)라는 이름으로 저택 하나를 빌려 20여명의 상주 인원을 두고 있을 뿐이다. 백제방은 궁성 근처에 성 같은 대저택에서 왕자를 방주(方主)로 삼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왕실의 주요 대신은 물론이고 지방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였으니 신라소는 사신 영접이나 무역거래를 돕고 있을 뿐이다. 김부성이 박치수를 불렀을 때는 해시(오후 10시) 무렵이다. 신라소 안쪽 내실에서 둘이 마주앉았을 때 김부성이 말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왕후가 왕위를 잇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데다가 소가 이루카는 이 기회에 왜왕이 되려고 하거든. 그렇게 되면 왜국은 소가 가문에게 넘어가고 백제와는 원수가 되는 것이지. 불빛을 받은 김부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김부성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이루카는 신라한테 매달리게 되지 않겠나? 백제는 왜국을 잃는 거야. 그때 박치수가 물었다. 대감, 지금 풍이 왕궁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왕후께 대관식을 치르라고 조르고 있지 않을까요? 아직 나오지 않았어. 김부성이 눈썹을 모으고 박치수에게 말했다. 아찬, 10명을 데리고 가서 풍을 치도록 하게. 지금 말씀이오? 풍이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지금 달려가 길목에서 기습하는 거야. 대감, 풍은 10여 명의 위사를 끌고 다닙니다. 10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내 호위병 10명을 더 떼어줄 테니까 20명으로 하지. 예, 풍을 베고 현장에 이루카 대신의 경호병들의 흔적을 남겨놓지요. 옳지. 김부성이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과연 그대는 칼솜씨만큼 지모도 뛰어난 무장이다. 만일에 대비해서 모두 이루카군(軍)의 복장을 하고 전상자는 현장에서 치우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박치수는 거구다. 6척 장신에 허리에는 장검을 찼는데 화랑 출신의 무장이다. 내실을 나온 박치수가 부관 석필을 부르자 어둠 속에서 사내 하나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검은 옷을 입어서 얼굴만 드러났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대감의 경호병 10명까지 합쳐서 20명으로 백제방주 풍을 친다. 박치수가 낮게 말하자 석필이 숨을 들이켰다. 길목에서 기습합니까?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서문사(西門事) 앞길이 좋겠다. 숲속인 데다 길이 좁지 않으냐? 앞뒤에서 막고 쳐야 합니다. 좌우 숲에 매복시킨 기습대가 풍을 죽여야 한다. 내가 숲에서 직접 풍을 치겠다. 오늘 왜국의 존망이 결정되겠습니다. 이루카가 왕위에 오르면 일등공신은 우리가 되는 것이야. 박치수가 어깨를 부풀렸다. 검객으로 명성을 떨쳐온 박치수다. 지금까지 검술시합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박치수다. 어느새 석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전북시인협회(회장 조미애)가 수여하는 제19회 전북시인상 수상자로 우미자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이운룡 시인전정구 문학평론가는 우 시인은 원숙함이 묻어나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시적 긴장감과 언어 구사의 능숙함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1983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우 시인은 35년간 시집 <무거워라 우리들 사랑>, <길 위에 또 길 하나가>, <바다는 스스로 길을 내고 있었다>, <첫 마을에 닿는 길> 등을 냈다. 우 시인은 뚜벅뚜벅 작은 걸음으로 걸어온 등단 35주년에 기쁜 소식을 들었다며 남은 생애에 연륜처럼 더욱 깊어진 시를 쓰라는 뜻으로 알고 따뜻한 시, 영혼이 맑은 시를 많이 쓰겠다고 말했다. 축하공연이 곁들여지는 시상식은 11월 5일 오후 4시 전주 웨딩팰리스 웨딩홀에서 열린다.
마마, 망설이시면 왕가(王家)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풍이 말하자 왕후가 머리를 들었다. 수심이 덮인 얼굴이다. 왕궁의 내전 안, 풍은 잡인의 출입이 금지된 내전 안까지 들어와 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죠오메이 왕의 장례가 끝난 지 사흘이 되었지만 왕후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왕궁의 내대신(內大臣)으로부터 왕관만 받아 쓰는 의식만 치르면 되는 일이다. 풍이 말을 이었다. 마마, 소가 일족이 이 기회를 노리고 왕위를 찬탈할 것입니다. 그럴 명분이 있소? 왕후가 겨우 물었을 때 풍이 상반신을 기울였다. 내전에는 시녀까지 물리치고 둘뿐이었지만 풍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가는 이제 백제인이 아닙니다. 소가 가문이 대를 이어서 왕실과 인연을 맺고 섭정을 50년 가깝게 이어서 해온 터라 새로운 왕가(王家)를 세워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젯밤 본국에서 보낸 쾌선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열흘 후에는 대왕께서 보낸 은솔 계백이 정병 3백을 이끌고 이곳에 옵니다. 어서 왕위에 오르시고 그때까지만 버티시지요. 어젯밤에도 이루카가 보낸 밀사가 궁의 좌대신 마에다를 만났다고 합니다. 대신들이 이루카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인 것 같습니다. 그때 왕후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일 왕위에 오르겠소. 왕자께서 준비를 해주시오. 제가 궁 안에 머물면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루카는 저만 없애면 왕위를 찬탈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저도 이곳에서 마마를 지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소가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온 목협만치(木협滿致)가 시조다. 소가만치로 개명한 후에 소가 가문은 왜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왜국의 첫 기틀을 세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어머니는 소가 노우마코의 생질녀다. 그때부터 소가 가문은 쇼토쿠와 함께 왜국의 법을 제정하고 문화를 장려했는데 호류사 등 40여 개의 절을 세웠다. 호류사의 금당 벽화도 그때 고구려에서 건너간 담징이 세운 것이다. 쇼토쿠가 죽자 유일한 섭정이 된 소가 노우마코는 왜국의 실세가 되었으며 그 후부터 50년 간 그 아들 소가 에이시, 소가 이루카까지 권력이 승계된 것이다. 내궁을 나온 풍이 밖에서 기다리는 덕솔 진겸에게 말했다. 덕솔, 왕후께서 내일 왕위에 오르시겠다고 했다. 잘 되었습니다. 진겸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루카도 주춤할 것입니다. 선왕의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은밀히 방해를 할 테니 내궁 안의 관리들만 모아놓고 왕위에 오르시도록 할 작정이다. 이루카에게는 알리지 않으신단 말씀입니까? 에미시한테도 알리지 않겠다. 왕위에 오른 후에 통보를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내궁에 머물면서 대관식 준비를 할 테니 장덕 연홍과 의식을 도울 관리들을 보내라. 예, 왕자 전하. 진겸이 말을 이었다. 호위병 50을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이제 본국에서 은솔 계백님이 오시면 불안한 상황이 종결되겠지요.
부친 에미시와 헤어져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이루카가 중신들에게 말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 집권한 지도 1백년이다. 그중 50년간은 왜국 왕의 섭정으로 통치했다. 이만하면 때가 된 것이 아니냐? 거침없는 언행이다. 청 안이 조용해졌다. 이루카의 저택은 규모가 부친 에미시의 저택을 능가한다. 성벽 같은 담장이 내성, 외성 구분으로 두 겹으로 둘러쳐졌고 저택 안에 주둔한 사병(私兵)은 2천명이나 된다. 마치 궁성이나 같다. 그때 중신 아베가 나섰다. 40대 중반의 아베는 대를 이어서 소가 가문에 충성한 호족가문이다. 대감,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밀사가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이곳 정세를 보고했을 테니 대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대비 말이냐? 이루카가 묻자 아베가 주위부터 둘러보고 대답했다. 아스카 주위에 왕실파 백제방에 불만을 품은 호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자들은 기회만 오면 원한을 갚으려고 합니다. 모두 숨을 죽인 것은 아베의 의중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이루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방법이 있느냐? 신라가 보낸 밀사단에 검객이 끼어 있다고 합니다. 누구한테 들었느냐? 신라의 밀사 잡찬 김부성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그자가 너에게 그 말을 해준 속마음이 무엇일까? 백제방의 고관이나 백제방의 수족이 되어 있는 왕실 관리들을 처치하는데 써달라는 뜻이겠지요. 교활한 놈들이지만 쓸모는 있군. 대감, 왕위가 왕후에게 넘어가도록 놔두실 겁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중신 아소가 물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보료에 몸을 기댔다. 조금 전에 부친 에미시 앞에서 말을 꺼냈다가 꾸중만 들었던 것이다. 이루카의 중신들은 모두 이루카와 생각이 같다. 이윽고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백제 본국에서 어떤 대처 방안이 나올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다. 이루카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내 조상은 백제계지만 왜국에까지 와서 백제왕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이루카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왜국에서 대권을 장악한지 어언 1백년 가깝게 되는데도 우리가 백제방 휘하에서 지내야 한단 말이냐? 지당하신 말씀이오. 아베와 아소가 동시에 말했다. 이번에 독립을 해야 됩니다. 아베, 신라의 밀사를 만나라. 이루카가 말하자 아베가 상반신을 기울였다. 예, 주군. 만나겠습니다. 풍왕자는 왕궁에 갈 때 동화(東和寺) 앞을 지난다고 알려줘라. 예, 주군. 요즘은 왜왕이 죽었기 때문에 매일 왕궁에 갈 것이다. 예, 주군. 대답한 아베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루카를 보았다. 신라 밀사는 그 보상을 바랄 것입니다. 어떻게 말해줄까요? 백제방이 무력해지면 신라와 당이 만세를 부르겠지. 그래, 신라인 몇 명을 관리로 임명해주겠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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