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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두 전북대 교수, 13년만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 연구서 내놔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조선시대 서민 명필인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과의 인연은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0년대 초반, 서정주 시인의 시 전주우거를 읽고 창암 선생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창암의 묘소를 찾은 이후 본격적으로 창암의 친필 유묵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4년 창암에 관한 자료를 책으로 엮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관련 책자와 자료를 재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묵을 수집고증했다. 그 책이 2005년 발간한 <창암 이삼만 선생 유묵첩>이다. 이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에 관한 연구서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민족서도의 길을 열다>를 내놓았다. 창암 선생에 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김 교수는 창암 서도와 서예 특징에 관한 몇몇 연구 외에 이렇다 할 본격적인 창암 연구서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면서 이런 현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면서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창암 선생은 우리나라 서도를 중국 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해 중국 서도와는 다른 한국 서도, 곧 우리 민족서도의 지평을 크게 드높이신 분이라면서 창암 서도 예술에 관한 참뜻과 가치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널리 제대로 알려지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고 빌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의 일생을 선대와 가계, 가족 관계, 청장년과 노년 시절, 서거와 사후 등 평전식으로 자세히 기술했다. 창암 서도의 계보, 창암 서도와 서예의 역사적 의의가치도 풀어 설명했다. 말미에는 현관주련, 비문석각, 서첩 글씨, 병풍서 등 창암의 주요 유묵 작품을 싣고,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창암의 유묵 세계를 살펴봤다. 특히 그동안 설왕설래가 오갔던 창암 선생의 출생설에 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정읍 출생설과 전주 출생설을 정읍 출생설로 확증하는 논증을 전개해 눈길을 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0.25 20:28

전북 수필가 132명 등단작, 한데 모아…

등단, 그 설렘과 떨림. 수필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이름을 올리는 그 첫 작품. 얼마나 많은 공력을 쏟아부어 글을 깎고 다듬었을까. 132명 전북 문인들의 수필 등단작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이 나왔다. 수필집 <다시 읽고 싶은, 그 시절 뜨거웠던, 그 문학 열정, 나의 등단작>(신아출판사). <나의 등단작>에서는 지역 수필문학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작가들의 신선하고 뜨거웠던 초심을 만날 수 있다. 1979년 등단한 김남곤 시인의 연극 같은 인생을 비롯해 2017년 등단한 소종숙 작가의 가을꽃처럼까지. 등단 시기는 세월의 길고 짧음이 있지만 진솔한 삶을 향한 마음은 높낮이가 없다. 수필 쓰기의 첫걸음인 등단작품 속에서 작가들의 초심을 봤습니다. 설렘과 추억이 담겨 있었으며, 박속같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사물을 깊이 통찰하여 예술적 감각으로 풀어나간 필력, 의욕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을 읽었습니다. 박귀덕 발간추진위원장은 발간사를 통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쓴 글, 값지고 귀했다며 등단작이기에 가능했던 작품들을 모아 놓으니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영롱하게 빛났다고 밝혔다. <나의 등단작> 출간은 전북 수필문학단체장들이 모여수필가들의 등단작을 한데 모아 책으로 발간하자는 의견을 모아 시작됐으며, 작가들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을 선뜻 내주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출판기념회는 지난 23일 전주 연가에서 열렸다. 박귀덕 발간추진위원장,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회장, 백봉기 온글문학회장, 이용미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장, 최화경 행촌수필문학회장, 김추리 뿌리문학회장, 윤재석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 문광섭 꽃밭정이 문학회장, 임석재 아람수필문학회장, 정원정 정읍수필문학회장, 김용완 한국신문학인협회장, 이의 덕진문학회장, 남필숙 익산수필문학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편, 1991년 <문예사조>로 등단한 박성숙 작가의 등단작은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1992년 작품을 특별작으로 실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에는 전북 문인 133명의 수필이 담겨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0.25 20:28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길은 길을 만든다

적상산을 넘어 날아가는 새무리들이 구름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간다. 바람이 내어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랬다. 저 새들처럼 내가 이곳 포내리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자녀들과 남편과 함께 벌써 40년이란 길을 걸어왔다. 아스라이 먼 것 같아 보이던 길은 내 앞 가까이 있었다. 처음 이곳 포내리에 올 때만 해도 버스는 먼지 자욱하게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30분 넘게 달려야만 도착하는 마을이었다. 아버님 생신날에 맞추어 왔던 날. 버스는 그렇게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투덜거리고 왔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듯 가까운 산길을, 아니다, 굽이굽이 돌아서는 산들이 나에게 왔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던 길은 또 내 앞에 가르마를 가르듯 나타났다. 어느 곳이든 시골은 내 유년 시절 마을과 잇닿아 있고 닮아 있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다 닮아 있는 것일까. 유년 시절 오르던 야트막한 산등성이도 당산나무도 어쩜 이리도 닮아 있는지 고물고물 몰려 있는 초가집과 싸리대문과 싸리 울타리 돌담들. 고샅길에 맨발로 뛰어나오신 어머님의 환한 웃음과 동네 어르신들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 여울지게 들리던 그리운 음성들. 자작거리며 매운 연기를 내뿜던 부엌 아궁이 속을 한없이 바라만 보던 그 그리운 불꽃들. 그렇게 느리게만 흘러가던 시간들이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내가 아프게 서 있다. 살아온 날들의 아픔이다. 행복하게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야 했던 흔적들이다. 몸부림치며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온 면역들이다. 지금 적상산이 바라보이는 곳 마을 포내리에서 그리운 것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어린 신부로 견딘 날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나에게 듣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하여 조금씩 마음의 길을 내고 누군가 나에게로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 남자와 함께 작은 텃밭에서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땅에 심는 날은 참으로 힘들었다. 40년 동안 적상산 자락에 발을 뻗고 뿌리를 내리는 동안 작은 바람으로 기다려온 희망이 조금씩 우리에게 길을 내고 왔으면 좋겠다. 느리지만 아프지 않게 산골에서 살아내는 일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은 없었지만 지금 산등성이를 넘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는 길이다. 10년 전 사업으로 조금 기우뚱했지만 서로가 의지하며 잘 견디어 왔음은 보이지 않게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임을 안다. 우리는 또 이렇게 슬픔의 길을 지우며 걸어가고 있다. 길은 우리가 닦아 놓은 나의 앞을 먼저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고 믿는다. 길을 걸어왔으므로, 가는 길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먼지 자욱하게 달려왔던 길에서 이제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달려 나가게 되는 것, 그 길에서 나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선옥: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직도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을 냈다. 글벗회원, 무주작가회의 회원.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25 13:59

[불멸의 백제] (206) 11장 영주 계백 2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가신 중에 떠난 자는 몇 명이냐? 셋이 처자식을 끌고 떠났습니다. 나머지는 저와 함께 남았습니다. 사다케가 말하자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사다케, 너한테 수습하는 일을 맡기겠다. 돌아가 가신과 주민들을 안돈시켜라. 숨을 들이켠 사다케가 시선만 주었을 때 계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들었느냐? 내가 일을 맡긴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죽으라고 할 때까지 네 배는 나한테 맡기도록 해라. 몸을 돌린 계백을 바라보던 사다케가 이윽고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고 절을 했다. 그날 밤, 야마토성 내궁의 침실에 누워있던 계백이 문밖의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나리, 내궁의 시녀가 왔습니다. 백제에서부터 따라온 위사여서 지금도 나리라고 부른다. 무슨 일이냐? 그때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침실의 문을 열었다. 마루 위 등의 불빛을 받고 선 두 여자가 보였다. 뒤쪽에 선 위사는 당혹한 표정이다. 그때 앞에 선 시녀가 계백에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게 해주시지요.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자 시녀가 앞장을 섰고 뒤를 젊은 여자가 따른다. 시녀는 나이 들어서 머리가 반백이다. 시녀의 우두머리인 시녀장이다. 이윽고 계백이 자리에 앉았을 때 여자 둘은 나란히 앞에 앉았다. 방 안의 공기가 흔들리면서 향내가 맡아졌다. 기둥에 붙여진 양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그때 시녀가 말했다. 수청을 들 부인을 모셔왔습니다. 이미 짐작은 한 터라 계백이 가볍게 대답했다. 필요 없다. 데려가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는 너희들처럼 닥치는 대로 상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 백제 본국은 그렇게 기준이 섰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앞으로 이곳도 그렇게 기준이 있어야겠지, 물러가라. 이분은 이또님의 소실로 아야메님입니다. 영주님. 이또가 죽었으니 절에 가서 여승이 되어도 좋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을 때 시녀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제는 절로 가실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침실에서 쫓겨났으니 자결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죽지 말도록 해라. 사다케님은 명을 받들겠지만 아야메님은 다릅니다. 영주님. 네가 데려왔으니 너도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 계백이 눈을 치켜뜨고는 시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쳐 장검을 쥐었다. 건방진 년, 내 앞에서 위협을 하느냐? 이리 목을 늘여라. 두 년의 목을 단칼에 베어주마. 그러자 시녀와 아야메가 동시에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더니 목을 늘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장검을 쓰윽 빼들었다. 칼집에서 칼이 빠져 나오면서 쇳소리가 났고 두 여자의 몸이 굳어졌다. 그때 계백이 다시 장검을 칼집에 꽂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늙은 년은 불을 끄고 물러가라. 그리고는 침상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아야메라고 했느냐? 너는 새로 태어났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24 19:37

[불멸의 백제] (205) 11장 영주계백 1

다음날 저녁, 이또의 거성(居城)인 야마토(大知)성에 계백이 입성했다. 이또는 영지 5만 7천석을 보유한 영주였지만 백제계 명문가였다. 그러나 왜 왕가와 소가씨 가문에 불만을 품고 은밀하게 신라계와 내통하다가 멸문을 당한 셈이다. 멸문을 당했다고 하지만 이또와 소수의 측근, 병사 일부가 죽었을뿐 나머지는 다 살아있다. 가족도 아직 멀쩡하다. 선봉대에 의해서 성문은 이미 활짝 열렸고 살아남은 가신(家臣)들이 모두 청 앞 마당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새 영주의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이다. 역적인 영주가 참살된 경우에는 가신들도 모두 죽이는 것이 통례인 것이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계백이 측근들과 함께 청에 올랐을 때 선봉대를 이끌고 먼저 온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주군(主君), 역적 이또의 가신중 5백석 이상을 받은 자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이미 마당에는 횃불을 여러개 켜놓고 모닥불까지 만들어서 화랑이 충천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모두 32명으로 그중 4명은 이번에 이또를 따라갔다가 죽었습니다. 마당에 모인 가신은 28명이 남았다. 모두 단정한 차림에 칼은 몰수당한 채 포로처럼 꿇어 앉아 있었는데 비장한 표정들이다. 그때 마루끝에 선 계백이 가신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또 다다시가 4대째 내려온 영주라고 들었다. 맞느냐? 맞다, 백제방 관원을 시켜 이또와 아리타, 마사시의 집안 내력과 성품, 가족, 주민들에 대한 통치 방법, 가신들의 성향까지 조사를 해온 것이다. 그동안 칠봉산성 성주를 지냈을 때부터 주민들을 다스려온 계백이다. 전투에서는 일시적으로 용장(勇將)이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장(智將)이 패권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온 계백인 것이다. 덕(德)만 베풀어도 안되고 누르기만 해서도 안된다. 선정을 베푸는 것이 전쟁보다 어렵다고 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또 다다시는 제 조상의 덕분으로 영주를 이어 받았지만 백성들은 수십년동안 늘어나는 조세와 부역과 군역(軍役)에 시달리기만 했다. 이곳 영지는 곡식의 소출이 좋다면서 조세를 다른 곳보다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오히려 주민 수가 줄어들었다. 힘들어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계백의 목소리가 마당 밖으로도 퍼져나가 병사와 하인, 내성에 들어온 주민까지 담장에 붙어 귀를 기울였다. 오늘자로 이또 다다시 가문은 끝났다. 너희들, 이또의 가신이었던 너희들에게 묻는다. 죽은 이또에게 충성하겠다는 자들은 영지를 내놓고 떠나라. 그러나 새영주인 나한테 충성하겠다는 자는 남아라. 내가 판단해서 결정을 할테다. 그리고는 계백이 몸을 돌렸다. 화청과 윤진, 백용문이 뒤를 따른다. 저녁, 술시(8시)가 되었을때 청에서 화청과 술을 마시던 계백에게 하도리가 다가와 보고했다. 주군, 이또의 중신 사다께가 왔습니다. 사다께는 이또 다다시의 중신으로 5천석 영지를 떼어받고 집사 노릇을 해왔다. 나이는 55세, 사다께 또한 이또 가문의 대를 이은 가신이다. 곧 청 안으로 들어온 사다께가 두손을 바닥에 붙이더니 계백을 보았다. 주름진 얼굴,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제가 중신(重臣)으로 가신들을 대표해서 말씀 드립니다. 이또 다다시는 능력이 없고 사리사욕만 차리는 영주였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그리고 새 영주가 새시대를 열어야겠지요. 사다께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제가 가신을 대표해서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23 19:20

[불멸의 백제] (203) 10장 백제령 왜국 19

오, 왔느냐? 여왕이 아래쪽에서 엎드려 절하는 계백을 내려다보았다. 여왕의 얼굴은 수척하다. 여왕의 남편 죠메이왕이 재위 13년 만에 죽고 나서 아직 왕자가 어렸기 때문에 결국 왕후가 여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죠메이왕을 왕으로 옹립한 것도 소가 에미시였으니 소가 가문(家門)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이 여왕을 우러러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까지 떠올라있다. 네 공이 크다. 이번 신라소를 격파한 공(功)을 말하는 것이다. 여왕 즉위식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백제방(方) 관원들을 몰사시킨 신라측에 대해서 여왕의 진노도 대단했다. 아직 김부성은 잡히지 않았지만 섭정 이루카에게 두 번이나 재촉을 할 정도다. 황공합니다, 전하. 계백의 목소리가 청 안을 울렸다. 왕궁의 청도 백제 왕궁을 모방해서 붉은 색 기둥에 사방이 트여졌다. 여왕의 옥좌는 계단이 6개다. 백제왕의 계단이 9개였기 때문에 3개를 줄인 것이다. 청 안에는 백제방 방주 부여풍 왕자가 와있었는데 여왕 옥좌의 한 계단 아래쪽에 앉았다. 섭정 소가 이루카는 청에 늘어앉은 문무(文武) 대신들의 맨 앞에 앉아서 여왕과 풍을 바라보는 위치다. 오늘은 왜국의 문무 대신, 백제방 방주와 여왕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왜국은 수백년 동안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백제에서 이동한 유민이 규슈에서부터 정착하여 제각기 영지를 세우고 동진(東進)하여 마침내 이곳 아스카까지 진출하는 동안 왜 왕실은 백제계로 이어져온 것이다.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이며 지금도 백제어가 일상으로 사용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말과 섞여지기도 했지만 왕실과 영주, 지도층은 모두 백제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왜왕의 한 계단 아래에서 왜국 대신들을 내려다보는 백제방 방주 풍왕자의 위상이 바로 그것을 나타낸다. 그때 섭정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번에 반역을 도모했다가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이또 영지에 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미리 합의가 된 일이어서 이루카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하루라도 주인 없는 영지로 둘 수가 없으니 그 세 곳 영지를 모아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다스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여왕이 풍을 보았다. 방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계백은 본국에서 성주(城主)를 지낸 적도 있으니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풍의 말을 들은 여왕이 계백에게 물었다. 계백, 세 영지를 합하면 16만석이 된다. 맡아서 백성을 돌보겠느냐? 명을 받겠습니다, 전하. 계백이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미리 풍한테서 지시를 받은 터라 사양하는 시늉을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 되었다. 주인을 잃은 영지에서 도적떼가 모인다던데 오늘이라도 당장 부임하라. 예, 전하. 네가 백제의 은솔 관등으로 제3급품이니 이곳 왜국에서는 2급품 소덕(小德)이 적당하다. 소덕 직위를 받으라. 황공합니다. 계백이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는 것으로 어전회의가 끝났다. 여왕과 풍이 청을 나갔을 때 대신들의 우두머리인 섭정 이루카가 계백에게 다가왔다. 이루카는 대신(大臣)으로 1급품 대덕(大德)이며 섭정이니 최고 실권자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21 17:40

아픔과 슬픔을 향한 메시지…최기종 시집 ‘슬픔아 놀자’

최기종 시인은 아픔과 슬픔을 극복 혹은 망각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에게 아픔과 슬픔은 인생을 함께 열어가는 동반자이다. 세상의 아픈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시집 <슬픔아 놀자>에는 그런 그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은 아픔과 슬픔에 관련된 시 60편으로 가득하다. 그는 세상의 아픔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슬픔이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표제 시 슬픔아 놀자에서는 슬픔에게 손잡고 놀자, 얼싸안고 놀자, 동무하며 놀자, 신랑각시 되어 놀자고 한다. 세상의 아픈 것들이, 내가 그렇다, 삶의 이유 1 갈대밭에서 등에서도 사람들의 애환을 신파나 절망으로 바라보고 주저앉히지 않는다. 대신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역설적으로 그려내 바닥을 차고 일어서게 한다.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이훈 교수는 이 시집의 슬픔에 대해 슬픔은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라며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솔직한 인정, 불쌍한 존재들에 대한 동정,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공감 등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고 평했다. 부안 출신인 시인은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등을 펴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전남민예총 이사장이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0.18 19:13

그리움의 힘…‘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

교사 출신 전길중 시인이 시집 <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를 펴냈다.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이 안에는 시인의 삶과 생각이 온전히 담긴 70편의 시편들이 빼곡히 실려있다. 언제 그녀가 숲을 먹었는지/올곧은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그리움 딱딱 쪼는 딱따구리/옴팡진 가슴에 박힌 불씨로/짜릿짜릿 사랑의 말을 박는다(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 일부) 누군가를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을까. 시인은 숲속에서 딱따구리 소리와 계곡의 소리, 휘파람새의 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고백한다. 외롭다고, 그립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담담히 풀어낸다. 시집의 표제작 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는 시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힘으로 쓴 시다. 현순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그동안 시로써 피력해 온 존재의 근원, 삶, 죽음,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 이 시들에서 갈무리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생각이 무르익어가는 만큼 이 시집의 언어들은 조금씩 더 뜻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호응해 줄 것이라 믿는다면서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생의 방향과 빛깔이 선명해지는 어떤 한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익산 출신인 시인은 1987년 시문학에서 늦가을 정원, 안개로 천료를 받아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경 너머 그대 눈빛>, <제 그림자에 밟혀 비탈에 서다>, <울선생님 시 맞지요?>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두리문학상과 등대문학상, 전북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문학회와 한국문인협회에서 활동 중이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0.18 19:13

멸시 받으면서도 의로운 일에 몸 던지는 각설이 생애

원로 소설가 윤영근 한국예총 남원지회장이 대하장편소설 <각설이의 노래>를 펴냈다. 윤 회장은 한 소리꾼의 삶을 세상에 내놓는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한 갑자만이고, 이름 앞에 소설가라는 명패를 단지 40년만이다며 십 수 년 동안 내 안에 살았던 한 각설이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신명난 장타령 한 대목 부르고 싶다고 밝혔다. 소설 <각설이의 노래>는 사회적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멸시를 받으면서도 의로운 일에 몸을 던지고 신분을 초월하여 소리꾼의 길을 찾아가는 각설이의 생애를 그렸다. 윤 회장은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항일 투쟁을 벌이는 각설이와 독립운동가를 등장시켜 일제 암흑기에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그렸다며 전쟁통에도 소리 공부에 매진한 주인공의 노래는 잊혀진 문화요, 찾아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비문학적으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얼시구시구 들어간다. 절시구시구 들어간다 / 그저께 장에는 눈이 오고, 어제 장에는 비가오고 / 오늘 장에는 내가 왔네.(1장 그 겨울의 만남. 7쪽) 장타령으로 시작한 <각설이의 노래>는 간다간다 나는 간다 / 대궐같은 이내집을 움같이 비워놓고 / 분벽같은 고운 방에 반달같은 처자두고 / 금상자 옥상자에 가지의복 쌓아두고 (8장 해방의 날은 오고. 645쪽) 장타령으로 끝을 맺는다. 각설이들의 장타령이 설움이나 한의 토설이 아닌, 해학이나 시대상을 담은 흥겨운 가락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각설이의 노래>에는 팔도 장타령 가사와 정겨운 남원 사투리까지 더해져 읽는 재미가 솔찬하다. 윤 회장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했고,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상쇠>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1984년 한국예총 남원지부 창설해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를 창립해 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문학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저서에는 장편소설 <동편제>, <의열 윤봉길>, <평설 흥부전>, <평설 최석천>, <유자광전>, <아름다운 삶> 등이 있다. 한편 윤 회장은 오는 11월 10일 오후 4시 남원 켄싱턴리조트 대공연장에서 <각설이의 노래>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신기철이용수 기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10.18 19:13

[불멸의 백제] (202) 10장 백제령 왜국 18

은솔, 영주가 되어라. 이키타가 물러갔을 때 풍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 안에는 이제 중신(重臣) 대여섯 명만 둘러앉았다. 전하, 명(命)이시라면 따르겠으나 소장이 감당할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본국에서 성주를 지냈지만 이곳은 체제가 다르다. 백제 성주는 왕이 임명한 후에 수시로 바꿀 수가 있다. 계백이 칠봉산성 성주였다가 수군항장, 고구려 원정군 사령관까지 지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왜국의 영주는 그곳에서 대(代)를 잇는다. 그곳에서 가신(家臣)을 만들고 영지의 소출에 따라 병사도 양성한다. 하나의 소국(小國)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풍이 말했다. 백제방이 왜 왕실과 함께 왜국을 통치해왔지만 무력(武力)은 본국에서 온 장병들로 충당했다. 풍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두 눈이 번들거렸다. 그래서 신라소 놈들이 함부로 날뛰었고 소가 가문이 월권을 해도 강하게 저지를 하지 못했다. 풍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 소가 측에서 어젯밤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영지를 맡기려고 한 것은 나름대로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돌린 풍이 중신(重臣) 백종을 보았다. 백종은 55세로 왜국에서 30년을 지냈다. 장덕 벼슬이나 왜국에서도 6품 소신(小信) 벼슬을 받았다. 왜국의 물정에 통달한 문관(文官)이다. 장덕, 말해라. 풍의 지시를 받은 백종이 입을 열었다. 아리타와 마사시는 어젯밤에 죽었지만 가신(家臣), 군병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아리타, 마사시에게 충성하고 있어서 소가 가문이 영지를 빼앗는다고 해도 골머리를 썩일 것입니다. 백종이 말을 잇는다. 아리타는 6만5천석, 마사시는 4만3천석 영지를 갖고 50석당 1명씩의 군사를 낼 수가 있으니 각각 1300명, 8백여 명의 군사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신은 각각 1백여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계백이 잠자코 백종을 보았다. 어젯밤 아리타, 마사시는 가신 10여 명, 군사 1백여 명과 함께 시체가 되었다. 살아남은 가신, 군사들은 제각기 영지로 도망쳤을 것이다. 백종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소가 측은 아리타, 마사시 영지의 안돈을 은솔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김부성과 함께 도주한 이또가 있지 않습니까? 이또 이야기는 없습니까? 그렇다. 김부성은 왜호족 이또와 함께 도주했다. 그러자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 이또가 잡히지 않았지만 이또 영지도 몰수해야 되는 것 아닌가? 풍의 시선을 받은 백종이 말을 이었다. 이또 영지는 소가 측 옆입니다. 5만7천석이고 기름진 땅입니다. 소가 측이 제 영지로 편입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교활한 영감 같으니. 어깨를 부풀린 풍이 옆쪽에 앉은 관리를 보았다. 시덕, 네가 에미시에게 가거라. 예, 전하. 시덕 등급의 관리가 대답하자 풍이 말을 이었다. 이또의 영지까지 계백에게 넘긴다면 영지를 안돈시키겠다고 전해라. 예, 전하. 안돈시키겠다는 말을 세 번쯤 되풀이해서 너희들의 속셈을 다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어라.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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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8 19:13

[불멸의 백제] (200) 10장 백제령 왜국 16

무엇이? 신라소가? 흠칫 머리를 든 소가 이루카가 다시 물었다. 불에 타고 있다는 거냐? 예, 대감.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사다케가 말했다. 예. 신라소 안의 신라인은 물론이고 지원을 나온 호족들은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네가 보았어? 예. 순찰병을 데리고 가서 보았습니다. 누, 누구를 만났느냐? 예. 백제군 장수인데 청색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럼 12품 문독 이하다. 이루카가 말했지만 백제군 16품 극우 벼슬이라고 해도 왜국에서는 어렵게 본다. 백제방 소속 관리는 물론 병사도 왜국에서는 직접 연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루카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신라소가 순식간에 멸망했구나. 백제군의 수뇌는 누구냐? 은솔 계백이라고 합니다. 으음. 불타는 대문 앞에 대아찬 박경과 화랑 둘의 머리가 창대에 꽂혀 있었습니다. 호족들의 머리는 땅바닥에 놓였구요. 김부성 머리도 내걸렸더냐? 김부성은 불에 타서 시체를 찾이 못했다는 말도 있고 도망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비겁한 놈. 대감. 옆에서 중신 마에온이 말했다. 시급히 부친께 연락을 드리시지요. 이런 일은 부친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시종을 보내라. 아니, 내가 가겠다. 이루카가 벌떡 일어섰을 때다. 청 밖이 수선스러워지더니 불빛이 왔다갔다 했다. 아직 축시(오전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어서 사방은 먹물 속 같다. 그때 시종이 서둘러 청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대감, 전(前) 섭정께서 오셨습니다. 에미시를 이곳에서는 그렇게 불린다. 곧 소가 에미시가 청으로 들어섰다. 이루카의 인사를 받은 에미시가 중신들과 함께 청 안에서 마주보고 앉는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서두르고 있다. 에미시가 묻는다. 들었느냐? 예, 그래서 아버님께 가려던 중입니다. 이루카가 눈썹을 모으고 에미시를 보았다. 백제방이 신라소를 멸망시켰습니다. 아버님. 김부성이 도망쳤지만 곧 잡힐 것이다. 신라소 측에 붙었던 호족들도 이번에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놈들은 우리한테도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니 잘 된 거다. 아버님, 백제방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요? 그 여세를 몰아서. 그래서 내가 온 것이야. 입맛을 다신 에미시가 지그시 이루카를 보았다. 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예? 저는. 백제방 계백은 상승 장군이다. 대야성 김품석을 죽이고 연개소문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소문이 난 용장이야. 더구나 안시성에서는 당황제의 눈알 하나를 빼놓았다. 자, 너는 계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 . 내일 날이 밝으면 백제방에 왜국 호족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오늘밤에 죽은 호족 놈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충성을 맹세하겠지. . 왜국 군병의 수문은 백제군을 이끄는 계백의 눈에는 원숭이 무리로 보일 것이다. 자, 네 복안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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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6 19:44

[불멸의 백제] (199) 10장 백제령 왜국 15

선두에 서서 마당으로 뛰어든 기마군은 조장(組長) 조무다. 이미 대문 앞에서 신라군 둘을 베고 달려온 터라 장검에는 피가 묻었고 피가 튄 갑옷에 말도 흥분한 상태다. 그때는 마당에 서있던 박경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놈! 말을 내달리면서 조무가 소리쳤다. 조무는 칠봉산성 아래의 개울가가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여서 군사로 뽑혔다가 계백이 칠봉성주가 되었을 때부터 전장(戰場)에 따라나왔다. 계백과 함께 대야성 싸움, 수군항, 안시성까지 종군을 했다가 지금은 왜국에 와있다. 그 짧은 순간에 조무는 마루 위에 선 박경을 보았고 다음 순간 들고 있던 장검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내던졌다. 말이 마루 위로 뛰어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급했다.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이 가장 중요하다. 수십 번 아수라장 같은 전장을 겪은 터라 조무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한 적도 있다. 손에 쥔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가 더 나갔지만 박경과의 거리는 10보, 거기에다 말이 두 걸음을 더 딛는 바람에 5보로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로 금방 한 바퀴 돈 장검의 끝이 박경의 가슴에 박힌 것은 눈 깜빡할 시간도 안되었다. 박경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장검이 가슴 깊숙하게 박힌 채 뒤로 벌떡 넘어졌을 때다. 조무가 탄 말이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마루 끝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그 서슬에 조무도 마루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조무의 조원 서너명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적장을 죽였다! 다음 순간 선봉군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청이 이끈 선봉군이다. 그 다음부터는 도살이다. 쫓고 쫓기는 자들만 있을 뿐 대항해서 싸우는 광경은 보기 힘들었다. 전장(戰場)이 그렇다. 기세를 타면 일당백이 되고 사기가 떨어지면 1백명이 1명을 못 당한다. 수십명을 한명이 쫓기도 한다. 겁에 질리면 적이 거인으로 보이고 사기가 오르면 적이 좁쌀 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순식간이다. 화랑 석촌은 분전하다가 백제군 셋을 죽였지만 창에 찔려 분사했다. 화랑 하광은 도망치다가 백제군에게 난도질을 당했는데 머리통을 베어든 백제군사는 장수를 베었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왜군 장수 아리타는 신라소로 들어오려다가 백제군을 맞자 그대로 도주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그래서 백제 본군(本軍)과 마주쳐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마사시는 싸우려고 허둥대다가 창에 찔려 죽었으며 신라소를 지키는 일을 맡은 이또는 마루 밑에 숨었다가 다리부터 잡혀 끌려나와 목이 잘렸다. 김부성이 없습니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을 한식경이라고 한다. 밥 한 그릇하고 다시 절반쯤 먹었을 시간이 지난 후에 화청이 계백에게 보고했다. 화청의 흰 수염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져 있다. 피가 튀었고 피 묻은 손으로 수염을 쓸었기 때문이다. 신라소의 마당 안이다. 사방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는데 신라인은 전멸했다. 그런데 신라소의 수장(首長) 김부성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하도리가 왜인 하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왔다. 장군, 김부성이 화랑 아성과 함께 아스카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이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잡혔답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누가 가서 잡겠느냐? 마치 사냥꾼을 찾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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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5 20:29

[불멸의 백제] (198) 10장 백제방 왜국 14

계백이 이끄는 3백 기마군은 정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계백을 따라 안시성에 다녀왔으며 그 중에는 대야성을 함께 친 무장(武將)도 있다. 나솔 화청이 그렇고 이제 11품 대덕 관등이 되어 비색 띠를 맨 하도리가 그렇다. 나솔 윤진은 수군항에서부터 심복이 된 무장이요, 장덕에서 나솔로 관등이 오른 백용문도 계백을 수행하고 있다. 백제 기마군은 10인 1조(組)를 조장인 16품 극우가 지휘한다. 앞장선 첨병으로 2개 조가 살같이 어둠 속을 내달렸는데 길 안내역으로 백제방 군사 둘이 끼어 있다. 그 뒤를 선봉을 맡은 화청이 수염을 휘날리며 1백기를 이끌었고 뒤를 중군 겸 본군(本軍)인 2백기가 계백을 중심으로 내달리는데 한 덩어리의 불덩이 같다. 땅이 울렸고 기수들의 살기(殺氣)가 전염된 전마(戰馬)는 머리를 젖혀 들고 콧바람을 세차게 뿜어낸다. 그 시간에 신라소 안에서는 김부성의 지휘 하에 출동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투석기와 충차, 마차에는 투석기용 바위를 가득 채웠고 기마군과 보군으로 나뉘어 제각기 점고를 받는 중이다. 신라군과 함께 출동할 왜군은 신라소 밖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령이 수시로 왕래를 한다. 밤이 깊었지만 주위는 열기에 덮여 있다. 서둘러라! 이번 공격대의 대장 박경이 마당에 서서 소리쳤다. 횃불을 환하게 밝힌 마당은 군사들로 가득 차 있다. 대아찬, 아리타님이 이끈 왜군 150이 도착할 것이오! 화랑 석촌이 다가와 보고했다. 이또님의 군사는 서문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아리타의 왜군만 도착하면 바로 출동이다! 충차는 내보냈는가?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땅이 울렸기 때문에 박경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리타한테 말을 달리게 하지 말라고 전해라! 예, 대아찬. 석촌이 마당을 나갔을 때 박경이 혀를 찼다. 왜인들은 야습의 기본도 모른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말굽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말굽 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에 박경은 화가 났다. 전장(戰場) 경험이 많은 박경이 그것이 1, 2백기의 기마군의 말굽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리타의 기마군은 몇이냐? 5, 60기라고 들었습니다. 뒤쪽에 있던 화랑 하광이 소리쳐 대답했다. 다가온 하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아찬, 아리타군(軍)이 아닌 것 같소. 그, 그러면. 그때 말굽 소리가 와락 가까워지면서 땅이 흔들렸다. 그러나 인간의 소리는 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마당으로 군사들이 뛰어 들어오더니 그 중 서너명이 소리쳤다. 기마군이다! 그것이 어느 기마군인지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때다. 지척으로 다가온 말굽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이미 신라소의 모든 문은 열어젖혀 놓았다. 출동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비명과 함께 처음으로 함성이 울렸다. 와앗! 짧고 굵은 함성을 들은 순간 박경은 이를 악물었다. 백제군이다. 창으로 찌르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마당으로 기마군이 진입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14 18:36

석정의 꽃덤불에 안기다…제5회 신석정문학상 시상식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는 예술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시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 가까이하게 한 분이 신석정 시인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석정 선생이 더 그리워집니다. 제5회 신석정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제가 지난 13일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시상식에는 윤석정 신석정기념사업회 이사장, 정군수 석정문학관장, 허소라 석정문학관 초대 관장, 소재호 전 석정문학관 관장, 류희옥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김남곤 전 전북일보 사장, 이운룡 전 전북문학관장, 조미애 전북시인협회 회장, 김영 김제예총 회장, 김윤아 한국신석정시낭송협회 회장 등 관계자 및 문인들과 신석정 선생의 유족들, 권익현 부안군수, 문찬기장은아 부안군의원, 김춘진 전 국회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신석정문학상에 선정된 이향아 시인은 신석정 선생은 문학의 멘토였다. 선생의 시를 읽으면서 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선생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좋은 시를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시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문학 강연을 이어갔다. 신석정촛불문학상을 수상한 조경섭 시인은 민족정신과 시정신을 지키고 세운 석정 선생의 문학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상상력과 메타포에 관한 많이 고민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윤석정 이사장은 한국신선정시낭송협회가 부산에서 발족해 더 의미 깊다. 부산의 시 애호가가 전국 각지의 낭송가를 모아 활동하는 것은 석정 선생에 대한 성과와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신석정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석정 선생의 선양 활동을 열심히 해나가겠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당부했다. 또 정군수 관장은 석정 시인은 식민지와 분단, 민주 모순 등 어두운 시대에도 죽음보다 더 지난한 지조를 지키며 푸른 별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런 그의 거룩한 시대정신이 이제 평화와 광명의 빛으로 달려오고 있다며 두 수상자가 석정의 시대정신을 잘 선양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린 제4회 신석정전국시낭송대회에서는 전희자 씨가 대상을 받았다. 이외 문학상 시상식을 전후해 시낭송가들이 신석정 시인의 임께서 부르시면, 이향아 시인의 수상 작품 꽃다발을 말리며 등을 낭송했다. 부안교육문화회관 음악교실의 가곡 공연, 한국신석정시낭송협회의 시극 공연 등도 펼쳐져 큰 호응을 얻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0.14 18:36

세종한글서예연구회, '서예로 보는 한옥마을 편액 이야기' 발간

세종한글서예연구회(회장 정명화)가 <서예로 보는 한옥마을 편액 이야기>를 발간했다. 상업화에 가려진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성과 인문학적 가치를 편액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편액은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다. 이번 책에서는 풍남문, 한벽당, 전주향교, 양사재, 학인당 등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있는 공간들의 편액을 해석해 누구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한글서예연구회가 기획하고 이에 맞춰 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이 집필했다. 전주 최씨종대(宗岱) 화수각(花樹閣)의 편액은 근원 구철우(1904~l989)의 작품이다. 전남 화순에서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무렵에 이미 소년 명필로 유명했다. 종대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집터, 화수(花樹)는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따라서 화수각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건물을 의미한다. 천주교 전동교회와 성심유치원이란 전동성당 입구의 빗돌을 누가 썼을까. 전북 중견 서예가 백담 백종희(한국서예교류협회 회장)가 해성중 3학년에 다닐 때 쓴 것이다. 그는 당시 소년 조선일보의 문예상에서 서예 대상을 차지했고, 이후 문교부장관상을 2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최근 빗돌 위에 새로운 문패를 붙이면서 더이상 백담 선생의 글씨는 볼 수 없게 돼 아쉬움을 남긴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10.11 19:19

안성덕 시집 ‘달달한 쓴맛’…어둠을 닦아 빛을 만드는 시편들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안성덕 시인이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달달한 쓴맛>을 펴냈다. 이 안에는 어둠을 닦아 빛을 만들어내는 시편들이 가득하다.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 그의 품은 넓고, 절망과 고통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은 섬세하다. 시인은 자신의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이번 시집에 이야기시의 형태가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기억을 치장하지 않는다. 다정하고 순연한 유년의 풍경을 담백한 목소리로 고백할 뿐이다. 엿을 먹었네/ 꿈결인 듯 앞산 너머 뻐꾸기가 울면 철걱철걱 엿장수가 가위를 쳤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할머니 흰 고무신은 금세 녹았고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오래 쓰라렸네/ 소쩍새는 밤이 깊도록 훌쩍거렸네 (달달한 쓴맛 일부) 나아가 시인은 세상을 다독이고, 타인을 보듬는다. 이러한 다정한 시선은 가족과의 관계로부터 기원한다. 특히 그에게 지극한 사랑을 전해준 어머니는 그 기원의 바탕이다. 월남전에 파병된 형을 그린 별, 아내와의 토닥거림을 다룬 핑계 등 가족에 관한 시편들도 다정의 기원을 엿보게 한다. (상략) 갓난아기로 돌아가신 걸까 틀니 빼 쓰레기통에 버렸더라는 어머니, 태엽 감듯 시간 맞춰 공양하시고 무덕무덕 애기똥풀꽃 활짝 피우신다// 쑥고개 아래 연수요양병원 315호실 저, 저 꽃바구니 십 년은 더 걱정 없겠다 (조화 일부) 이와 관련해 박동억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투쟁해야 하는 현실도, 아픈 상실도 조금씩 내려놓으며 안성덕 시인의 시는 넉넉한 품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품은 어머니를 넘어 신화적인 여성성에 비유된다며 천상과 지상을 모두 포용하는 이 근원적인 모성이야말로 안성덕 시의 뿌리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읍 출신인 시인은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입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시집 <몸붓>을 냈다. 제5회 작가의 눈 작품상과 제8회 리토피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광대에 출강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0.11 19:19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