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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57) 8장 안시성(安市城) ⑬

계백이 사처로 돌아왔을 때는 술시(오후 8시) 무렵이다. 마룻방으로 들어선 계백을 서진이 맞았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나리, 성안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계백의 뒤에 선 서진이 갑옷을 벗기면서 말했다. “당군이 곧 철군을 한다고 합니다.” “허, 우리보다 성안 주민들이 더 빨리 아는구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서진과는 밤에 잠자리를 같이 하는 터라 서로 부담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남녀의 정분은 자연스럽게 몸이 부딪치면서 쌓이는 것이다. 말이 없어도 서먹하지가 않다. 옷을 갈아입은 계백이 저녁상 앞에 앉았을 때 서진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나리, 당군이 철군하면 귀국하시겠지요?” “물론이지.” 술잔을 든 계백이 서진을 보았다. “당연한 일을 왜 묻느냐?” “아닙니다.” 서진이 몸을 비틀며 웃었다. 옷자락이 스치면서 향내가 맡아졌다. 색향(色香)이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계백이 지그시 서진을 보았다. 그렇다. 육정(肉情)이 들었다.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서로의 몸에 정을 느끼는 법이다. 이것은 떼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된다. “왜? 백제로 돌아가기 싫으냐?” “아닙니다.” 계백의 빈 잔에 술을 채운 서진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돌아가셔야지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어. 당군은 필사적이야.” 한 모금 술을 삼킨 계백이 말을 이었다. “당군은 총공격을 해올 거다. 그것도 여러 번. 그 공격을 견디어내야 돼.” 서진이 머리만 끄덕였기 때문에 계백이 손을 뻗어 허리를 감아 안았다. “아직 돌아갈 날을 세기는 이르다.” “나리, 저는 지금이 좋아요.” 계백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서진이 낮게 말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허어.”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서진의 몸을 당겨 안았다. “너는 요물이다.” “나리 앞에서는 아이가 됩니다.” “백제에 돌아가기 싫다는 말이구나.” “백제로 돌아가면 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순간 계백이 서진을 보았지만 시선을 내려서 속눈썹만 보였다. 숨을 들이켠 계백이 술상을 물렸다. 서진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술상을 치우고 계백이 침상에 올랐을 때 방의 불을 끈 서진이 옆에 누웠다. “나리, 언니하고 나리를 나눠 모실 수는 없습니다.” 계백의 품에 안긴 서진이 낮게 말했다. “언니는 함께 모시자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못 합니다.” “……” “다시 태왕비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계백이 잠자코 서진의 옷을 벗겼다. 서진도 계백의 바지 끈을 푼다. 방안에 갑자기 더운 열기가 덮어졌다. 오늘 밤 계백은 거칠었고 서진도 적극적이다. 밖에서 가끔 기마군의 말굽소리, 군사들의 묻고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전장 한복판인 것이다. 그러나 방안은 두 남녀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윽고 열풍이 그쳤을 때 서진이 가쁜 숨을 뱉으며 말했다. “나리, 오늘도 군사들이 죽겠지요?” 계백은 서진의 알몸을 잠자코 끌어당겨 안았다. 그렇다. 수백 명이 죽을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8.13 20:49

[불멸의 백제] (156) 장 안시성(安市城) ⑫

신라는? 당군의 군량을 지원하려고 3천 냥의 마차에 군량 6만 석을 싣고 바닷가로 나가다가 백제군의 기습을 받아 군량을 다 빼앗겼다. 고구려군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영토를 횡단, 바닷가로 나갔던 것이다. 신라의 도성인 금성의 대왕전 안, 선덕여왕이 근심에 덮인 얼굴로 신하들을 보았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황제께서 질타하실 텐데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전하.” 상대등 비담이 나섰다. 여왕 앞에 선 비담의 시선이 옆쪽의 김춘추, 김유신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군량을 실은 마차를 빼앗긴 장수는 김유신의 부장(副將) 양천이다. 양천은 분전 끝에 전사하고 기마군 3천중 2천이 전사했다. 군량을 실은 마차는 모두 백제군에게 탈취되어 불에 태워졌다. “당에 보낼 군량이 탈취되었으니 황제의 추궁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되옵니다.” “사신을 보내란 말이오?” “예, 전하.” “누가 갈 것인가?” “이찬 김춘추공이 가야만 합니다.” 비담의 말투가 강경해졌다. “기마군 지원을 바랐던 당황제께 군량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시켰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이찬이 가서 해명을 해야 될 것입니다.” 여왕의 시선이 김춘추에게 옮겨졌다. “이찬, 또 가겠소?” “전하, 가겠습니다.” 김춘추가 허리를 굽혔다가 폈다. “가서 우리가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황제께 말씀을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죽은 장병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렇소.” 머리를 끄덕인 여왕이 다시 물었다. “언제 떠나시겠소?” “이틀 후에 떠나겠습니다.” 그때 여왕이 소리죽여 한숨을 쉬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대왕전을 나온 김춘추가 복도로 들어섰을 때 김유신이 다가와 옆에 붙어 걷는다. “대감, 또 가시겠소?” 김유신이 묻자 김춘추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당군은 패퇴할 것이오.” “전갈이 왔습니까?” “인문이가 지금 황제와 함께 안시성에 있소. 그곳에서 밀사를 보냈소.” “어허.” “곧 겨울이 올 텐데 안시성은 함락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요. 한 달 안에 당군은 퇴각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저런.” 어느덧 둘은 마당으로 나와 걷는다.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당군이 퇴각하기 전에 사죄사가 가야지 황제가 장안성에 입성하고 나서 논공행상을 할 때 들어가면 큰 화가 미칠 것이오.” “그렇지요.” 김유신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그것을 비담은 아는지 모르겠소. 오직 대감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구려.” “대장군께 전하와 사직을 맡기겠소.”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목숨을 걸고 전하를 지키겠소.” “이번에 황제께 또 여왕 교체를 들먹일지 모르겠소.” 걸음을 늦춘 김춘추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비담이 전하를 해치고 왕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소. 대장군께서 지켜주시오.” 신라의 운명도 첩첩산중처럼 험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8.12 19:29

"우리 시조문학 위한 길에 마음을 다하겠다"

시조 문학 이론과 창작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물론 문학인으로서 평생을 사사한 스승 가람 이병기 선생에게 공을 돌립니다. 뜻밖의 큰 상을 받아 매우 기쁩니다. 여생도 우리 시조 문학을 위한 길에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삼복 염천에 새벽 5시부터 전북 전주에서 강원도 인제까지 꼬박 5시간 반을 달렸다. 건장한 남성도 쉽지 않은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수상 소감을 말하는 최승범(87) 전북대 명예교수의 눈은 심지가 굳셌고 입가엔 기쁨이 묻어 있었다. 만해축전조직위원회(위원장 이관제동국대 대외부총장)가 주최한 제22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12일 설악산 백담사 아래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렸다. 최승범 교수는 이날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최 교수를 난초 향과 같은 풍류와 정갈한 정취로 시조 문학을 이끌어온 분이라고 소개했다. 한보광 동국대 총장은 한평생 시조와 수필을 가르쳐온 고고한 선비로서 60년 가까이 향토문학 발전에 초석을 이뤄 전북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라고 드높였다. 그의 수상은 만해대상을 만들고 운영해오다가 지난 5월 입적한 무산 오현 스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미수(米壽)의 수상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수상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1000여 명의 방문객 앞에서 고향 남원에서 태어난 일, 전북대에서 학업을 마치고 모교인 전북대에 재직해 생활터전을 닦아온 이력 등을 짧게 이야기하며 60여 년 문학 인생을 회고했다. 그는 스승인 가람 이병기 선생과 함께 무산 스님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시조사랑과 만해사랑, 나라사랑을 일깨워 주신 무산 스님의 뜻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동수김기화류인명 시인, 우은숙 시조시인, 유백영 사진작가, 이금택 전 한국일보 기자 등 전북의 문인언론인과 최 교수의 가족들은 이날 시상식장을 방문해 기쁨을 함께했다. 아쉽게 참석하지 못한 김남곤, 안홍엽, 서재균, 안도 등 오랫동안 함께 지낸 문인들도 사전에 축하 인사를 나눴다. 김동수 시인은 최 교수가 세계적인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한 것은 문인뿐만 아니라 전북 도민들도 함께 기뻐해야 할 큰 자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조의 태두인 가람 이병기 선생 이후로 전북문학이 좀처럼 정립되지 못했는데 최승범 시인께서 그 맥을 이어받아 전북문학의 줄기를 세웠다며 최근 전북문단이 가야 할 방향성과 정체성을 잃고 잡음이 많다. 최 교수의 향토성, 문학성, 올곧은 정신을 본받아 자성하고 제대로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12 19:29

[불멸의 백제] (155) 8장 안시성(安市城) ⑪

그 시간에 연개소문은 안시성 동쪽 1백여리 지점에 있는 오골성(烏骨城)에서 장수들과 주연을 벌이는 중이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장수들 앞에는 술상이 놓였고 연개소문의 얼굴에는 취기가 배 있다. 이세민은 안시성에 발이 묶여진 셈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떠나기가 더 힘들어진다. 술잔을 든 연개소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권위에 집착하게 되면 제 위신과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법이지. 이세민은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않고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막리지 전하. 막리지 요영춘이 연개소문을 보았다. 신라가 백제군에게 군량을 빼앗긴 후에 이세민의 질책이 두려워서 사신을 다시 파견한다고 합니다. 그래야겠지. 이번 전쟁에 신라의 충동질이 일조했으니까. 연개소문이 장수들을 둘러 보았다. 사신으로 또 김춘추가 갈 것인가? 김춘추밖에 인물이 없습니다. 막리지이며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로가 대답했다. 더구나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이가 이세민의 시동으로 전쟁에 나와 있습니다. 이세민의 기색을 제 아비한테 알려줄 테니까요. 과연. 연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덧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신라에서 다음 왕위(王位)는 김춘추가 차지하겠다. 모두 입을 다물었고 연개소문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 않으냐? 고구려, 백제, 신라, 당, 대륙의 4국 중에서 김춘추만큼 제 왕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뛰는 인물이 어디 있느냐? . 김춘추는 왜국에도 들어가 청병을 했다가 수모를 당하고 쫓겨났다. . 그 후로 나한테도 단신으로 찾아와 백제를 견제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다가 잡혀 죽을 것 같으니까 도망쳤다. . 그 후에는 백제 수군(水軍)에 잡혀 의자왕 앞에까지 끌려갔다가 놓여나지 않았느냐? 4국(國)에서 이런 위인이 있는가 찾아봐라. 술잔을 내려놓은 연개소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대륙의 왕국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자는 영웅이다. 그러더니 연개소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웃었다. 다음에 이자를 보면 불문곡직하고 죽여라. 말 한마디 들을 필요가 없다. 무조건 죽여라. 알았느냐? 예엣. 둘러앉은 고관 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했을 때 연개소문이 다시 술잔을 들었다. 난세일수록 운이 강해야 영웅이 되는 법. 역사는 결국 승자의 편에서 쓰이게 마련이다. 모두 술잔을 들었지만 아무도 감히 말대답하지 않는다. 주연이 끝나고 청을 나왔을 때는 술시(8시) 무렵. 막리지 요영춘의 옆으로 태대형 고준이 다가왔다. 고준은 연개소문의 측근으로 이번 전쟁에서 주력군의 선봉장을 맡았다. 연개소문은 오골성에 12만 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요영춘이 멈춰 섰을 때 고준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 대막리지 전하와 의자왕, 이세민과 김춘추가 영웅이란 말씀일까요?

  • 문학·출판
  • 기고
  • 2018.08.09 19:59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102)또라이 - '돌다' 아닌 '돌'에서 파생된 말

우최또, 똘끼, 똘추라는 유행어를 알고 있는가? 모른다고? 그러면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우최또’는 우주 최강 또라이, ‘똘끼’는 또라이 끼가 있는 사람, ‘똘추’는 또라이 추한 놈이란 뜻이다. ‘또라이’라는 뜻도 잘 모르는데 무슨 말이냐고? 우선 실마리부터 찾아보자. 위의 말들은 인터넷 국어사전에까지 올라 있는 또라이의 변종 유행어로 요즘 우리 사회에 정신 나간 또라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또라이는 국어사전에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또라이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쓰인 말이 아니며 또 지금과 같이 심각한 정도나 상태를 반영한 말도 아니었다. 또라이라는 말은 1978년 11월 24일 자 경향신문 기사에서 처음 보이는데 여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또라이라는 말이 권투 경기의 후유증이 심해서 가벼운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키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권투인을 권투인 스스로가 붙인 슬픈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라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고려해 동사 ‘돌다-정신에 이상이 생기다’와 관련해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또라이는 다름 아닌 ‘돌아이’에서 변한 말이며 이는 ‘아이’에 접두사 ‘돌-’이 결합한 어형이다. 접두사 ‘돌-’은 돌계집, 돌무당, 돌중 등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수준 이하의’, ‘질이 떨어지는’ 정도의 의미를 띤다. 이에 따른다면 돌아이는 보통 아이와는 달리 수준이 떨어져 이상하고 모자란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아이를 가리킨다. 이런 돌아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부각하면서 ‘똘아이’로 되게 발음했을 것이고, 똘아이의 어원이 불분명해지자 ‘또라이’로 표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식 밖의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런 ‘아이’들에게도 일반인 전체 의미 적용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8.09 19:32

수필과 비평 '황의순 문학상'에 배혜숙 수필가

<수필과비평>(발행인 서정환)이 주최하는 ‘제13회 황의순 문학상’에 배혜숙 수필가, ‘제18회 수필과비평 문학상’에 안경덕·피귀자 수필가가 선정됐다. 배혜숙 작가는 수필집 <토마토 그 짭짤한 레시피>로 ‘황의순문학상’을 받았다.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사유, 문학 대상에 대한 미시적이고 섬세한 표현 등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한국 수필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97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40여 년간 수필가로 활동해왔다. 국제PEN한국본부 울산지부장을 지냈고, 울산문학상과 춘포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안경덕 작가는 수필집 <달도 밝다 보름달이거든>으로 ‘수필과비평 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 ‘보리밭’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실상문학상 우수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수필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았다. 수필집 <그대에게 가는 길>로 같은 상을 수상한 피귀자 작가는 지난 2003년 작품 ‘잃어버린 세월’을 <수필과비평>에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창작에세이>를 통해 문학평론가가 됐고, 제5회 대구수필가협회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이다. 시상식은 오는 25일·26일 성남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수필과비평> 2018 하계 수필대학 세미나와 함께 열린다. 25일에 시상식과 수필문학 세미나 및 정기회의가 진행되고 이튿날에는 남한산성 일대로 문학기행을 간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9 19:32

[여름엔 미스터리] (하)게슈타포·블랙골드·폐가 -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맞닥뜨리는 공포

전북지역의 신아출판사가 출판도서 시장의 블루오션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 오싹한 미스터리와 잘 맞는 계절, 여름을 맞아 신간 6권이 나왔다. <안시성>(작가 김상중), <자살로 위장해 드립니다>(작가 최진환), <지하실의 멜로디>(작가 김한강)에 이어서 이번에는 <게슈타포><블랙골드>(작가 한유지), <폐가>(작가 하요아)를 소개한다. △ <게슈타포>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변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생물학전쟁이라는 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에서 펴낸 <살인자와의 대화>로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유지 작가의 신간 <게슈타포>. 테러의 신무기로 개발된 바이러스 게슈타포를 쫓는 국정원 요원들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 사람에게 기면 증상을 일으키는 게슈타포를 살포해 도시의 모든 질서를 마비시키는 것. 소리 없는 아우성 마냥 잠든 도시에 무혈 입성해 지배권을 빼앗는 것이 목표인 세력을 색출하는 과정, 정치외교 등이 얽힌 음모의 배경이 흥미진진하게 담겼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펼치지만 테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블랙골드> 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일본이 한반도에 금괴를 숨겨 놓았다면? <블랙골드> 역시 한유지 작가의 과감한 상상이 잘 구현된 작품이다. 평범한 두 사람이 취미로 드론을 날리던 어느 날, 드론이 미군 기지를 촬영하다가 추락해 버린다. 여기서부터 평범한 두 사람의 일상이 바뀐다. 의문의 사건과 낯선 인물들과의 만남은 영원히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을 추적하게 한다. 그 비밀이 바로 일제 강점기 때 숨겨진 금괴, 그리고 약 800억 원에 달하는 국채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금괴의 존재를 알고 탈취하려던 미국러시아와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 그리고 이를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허구의 소설이지만 작가가 실제 관계자로부터 들은 소재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썼다. 들었던 이야기에서 금괴보다 채권이 더 강렬했다는 한 작가는 70년 전 발행한 1억 원의 국채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10%의 복리 이자라고 계산하면 오늘날 약 800억 원으로 불어난다며 하지만 현재 상환된 채권이 1%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99%는 어디에, 누구 손에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글로 풀었다고 말했다. △ <폐가> 하요아 작가의 소설 <폐가>는 전형적인 공포소설의 구성을 따른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을 수상했던 작가답게 감각적인 문체와 빠른 전개,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된 극중 인물들이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익숙하지 않은 곳, 폐가는 공포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독자에게 공포를 팔기 위해 폐가에까지 발을 들인 오트컬 잡지 기자는 결국 여자의 원혼을 마주한다. 원혼과 사냥꾼, 도끼맨, 도살하는 남자 등이 얽힌 그날의 살인은 여전히 폐가와 함께 되풀이 되고 있었다. 신아출판사 관계자는 다수의 공포소설 연재 경험이 있는 하요아 작가의 정통 공포물 <폐가>는 공포 애독자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9 19:32

[불멸의 백제] (154) 8장 안시성(安市城) ⑩

의자왕이 계백의 서신을 받았을 때는 안시성 공방이 3개월이 넘었을 때다. 계백의 서신을 품고 온 장덕 백용문은 안시성에서 빠져나와 남쪽 바닷가로 내려온 후에 백제 무역선을 타고 왔다. 대륙의 동쪽은 백제령 담로가 이어져 있어서 백제 무역선을 쉽게 만난다. 의자가 백용문이 올린 계백의 서신을 읽고 나서 얼굴을 펴고 웃었다. “백제군이 안시성의 주력군으로 기틀을 잡았구나. 장하다.” 그때 아래쪽에 서 있던 병관좌평 성충이 말했다. “대왕, 당왕 이세민이 겨울이 되기 전에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철군해야만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세민이 수 양제보다 나을 게 없지.” 의자가 바로 말을 받았다. “군사력이나 장비 면에서 수 양제가 이세민보다 몇배는 나았다.” 그러나 수 양제 양광은 요동성에서 막혀 1백만 대군이 곤욕을 치르다가 회군했다. 당시 요동성을 우회하여 고구려 내륙으로 진입했다. 수의 30만 대군은 살수대첩에서 고구려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여 살아 돌아간 군사는 2천여명 뿐이었다. 그것이 수(隋) 멸망의 원인이 된 것이다. 단 아래쪽에 있던 내신좌평 흥수가 한걸음 나섰다. “대왕, 안시성으로 돌아갈 장덕 백용문에게 고구려 대막리지께 가는 밀서를 줘 보내면 되겠습니다. 따로 사신을 보낼 필요가 없겠습니다.” “옳지.” 의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잘 왔다.연개소문공에게 가는 밀서와 내 말까지 전하거라.” “예, 대왕.” “밀서는 곧 써주겠지만 전할 말은 이렇다. 잘 들어라.” 의자가 헛기침했다. 글로 적어 보내는 밀서와는 달리 전할 말은 사담(私談)에 가깝다. 개인적인 말이니 친숙한 사이에서의 전갈이다. “내가 신라 김유신이 끌고 올라가려던 수레 3천대를 포획했다고 전해라. 이건 밀서에 적을 만한 일도 아니다.” 긴장한 백용문에게 의자가 웃어 보였다. “양곡이 6만석 실려 있었으니 당군 30만이 넉 달간 먹을 양식이었다.” “예. 대왕.” “우리 백제군이 신라의 양곡 수송로를 차단하고 있을 테니 이세민을 꼭 잡아서 구경을 시켜주기 바란다고 전해라.” “예. 대왕.” 둘러선 백관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백제 조정 분위기는 밝고 자유스럽다. 왕좌에 앉은 대왕 앞에 문무백관이 늘어서 있지만 가끔 자색 관복과 비색(緋色) 관복의 신하들이 뒤섞일 때도 있다. 그러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색띠와 관복을 입은 것은 1품 좌평(佐平)에서부터 6품 나솔까지이며 7품 장덕에서 11품 대덕까지는 비색 관복, 12품 문독에서 16품 극우까지는 청색 관복인 것이다. 그때 성충이 입을 열었다. “지난달에 신라 국경에서 가야족 6천호 3만여명이 백제령으로 넘어왔다고 은솔에게 전해주게.” “네. 좌평.” 성충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남방방령이 가야족 이주민이 넘쳐나는 바람에 아예 국경에 대군을 대기시켜놓고 있다네.” 그말을 들은 안시성의 백제군 사기는 충천할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고국 백제가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면 적의 목을 몇개 벤 것보다 더 기운이 날테니까. 그것을 모두가 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8.08 19:34

[불멸의 백제] (153) 8장 안시성(安市城) ⑨

그물에 걸린 고기나 마찬가지다. 당군은 그물 속에서 꿈틀거렸고 성벽 아래쪽으로 물러선 백제군은 일제히 활을 쏘았다. 투석기로 던진 돌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그물에 덮인 당군에 맞았다. 함성이 진동하고 있다. 이제 성벽 위로 올라온 백제군이 그물속의 당군을 찔러 잡는다. 성 밖의 당군이 넘어진 운제를 기어올라 왔다가 기겁을 하고 물러가다가 굴러떨어졌다. 성벽 위의 그물 덩어리와 그물에 덮여 죽는 당군의 참상을 본 때문이다. 그리고 그물에 걸려 성벽 위로 올라설 수도 없다. “와앗!” 성벽 위의 백제군이 당군의 시체를 성 밖으로 던지면서 함성을 질렀다. 성벽에 걸쳐진 거대한 운제 2개는 불타오르고 있다. 해가 한 뼘쯤 솟아올랐을 때 당군은 물러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체를 수습하고 갔지만 지금은 버려두었다. 그만큼 혼란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대승이오.” 지원군을 이끌고 달려온 양만춘이 계백의 옆에 서서 패퇴해가는 당군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성 밖의 들판에 깔린 당군의 시체는 5백여구나 된다. “운제에서 쏟아진 당군을 그물로 덮을 묘수를 썼다니, 우리도 그물을 만들어야겠소.” 양만춘이 옆에 늘어진 그물을 뜯었다. 질긴 삼줄과 쇠줄을 섞어 만든 그물이다. 칼로 끊기 어렵게 가는 쇠줄을 안에 심어 놓았다. 성벽 뒤쪽에 늘어뜨려 놓았다가 좌우에서 당기면 그물이 펼쳐지는 단순한 구조다. “이세민이 운제를 묶어 새로운 공성기구를 만들었지만 우리한테 당했구려.” “당군은 또 다른 공성기구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양만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당군은 땅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오려고 세 군데에서 땅굴을 팠다. 하루에 1백자(30m)씩 무서운 속도로 파 들어오다가 그것을 탐지한 고구려군에게 몰살을 당했다. 고구려군이 위에서 땅굴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땅굴 안에 있던 당군 수백명이 생매장을 당했다. 이제 당군은 투석기로 돌을 날리지 않는다. 성안의 고구려, 백제군은 이미 지하에 엄폐물을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날아온 돌을 모아 무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안에는 1년 반을 지탱할 양식이 저장된 데다 수십 군데의 마르지 않는 식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려, 백제 연합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 계백이 사처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신시(4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이제는 사처 집사가 된 덕조가 계백을 따라 마루방에 들어서면서 물었다. “주인, 당군이 동쪽도 막았다는 게 정말입니까?”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왜? 넌 도망갈 생각이었느냐?” 당군은 터놓았던 동쪽까지 막아버린 것이다. 이것은 안시성의 군민(軍民)을 몰사시키겠다는 결의다. 지금까지는 성을 비우고 후퇴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래서 경비가 허술한 동쪽을 통해 덕조와 서진이 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니올시다. 주인께선 서운한 말씀을 하시오.” 얼굴을 찌푸린 덕조가 말을 이었다. “주인, 낮에 시장에 나갔다가 상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그때 방으로 서진이 들어와 계백의 갑옷을 뒤에서 벗겼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어서 덕조는 뒤로 물러섰다. 벽에 등을 붙인 덕조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그런데 성안에 당군 첩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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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7 20:32

[불멸의 백제] (152) 8장 안시성(安市城) ⑧

계백이 함성 소리에 눈을 떴다. 먼 쪽에서 울리는 함성이다.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서진이 이불을 끌어 가슴을 가리면서 따라 일어났다. 갑자기 터진 함성에 문밖은 소란해졌다. 옷을 걸친 계백이 밖으로 나왔을 때 위사장 하도리가 마당에서 소리치듯 말했다. 당군의 공격이오! 이 시간에? 계백이 동녘 하늘 보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다. 석달이 되는 동안 당군이 새벽부터 공격하는 것은 처음이다. 당군이 서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도리의 두 눈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서문을? 계백이 갑옷 허리끈을 여미면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서문은 백제군이 맡은 것이다. 당군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공방전을 치르면서 서로 부르고 답하며 욕설은 욕설로 상대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계백이 서문으로 달려갔을 때 하늘은 부옇게 밝기 시작했지만 공격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당군(唐軍)은 이번 안시성 공격에 모든 기구를 다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만든 것도 많았다. 구름사다리인 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포차로 돌을 쏘아 성벽과 성안 가옥을 부쉈고 당차, 충차, 누차 등을 동원하여 성벽과 성문을 깨뜨렸고 불화살을 쏘았다. 그때 마침 2대의 운제가 위쪽에 당군을 가득 싣고 다가왔는데 평상시와는 다르다. 계백이 그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준비해라! 오늘밤 서문을 맡은 장수는 나솔 윤진. 목청이 터질 것처럼 소리쳐 독전을 하고 있다. 그때 어둠을 뚫는 것처럼 운제(雲梯) 2대가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운제는 2대를 연결시켜 통로를 만들어 놓고 그 통로에 가득 당군을 태우고 있다. 운제 2대와 통로에 태운 당군은 수백명이다. 이 수백명이 성벽 위로 쏟아지면 당해내기 어렵다. 쏘아라! 장수들이 목이 터져라 하고 외쳤지만 운제는 괴물처럼 다가왔다. 이쪽에서 쏜 불화살에 운제 곳곳이 불에 타고 있었지만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서 부서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덩이가 다가오는 터라 더 위협적이다. 운제의 밑쪽에는 거대한 나무바퀴가 10여개나 달려 있었는데 당군 수천명이 뒤쪽과 아래쪽에서 밀고 있다. 계백이 마침내 허리에 찬 장검을 빼 들었다. 윤진이 다시 소리쳤다. 기다려라! 아래쪽 당군이 내지르는 함성과 백제군이 맞받아 지르는 외침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오늘 당군은 결판을 내려는 것 같다. 운제 2대를 묶은 괴물의 크기는 길이가 250자(75m), 높이가 1백자(30m)였고 각 운제의 두께는 50자(15m)가 넘는다. 당군은 그동안 이 괴물 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계백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기다려라! 놈들이 쏟아질 때까지! 이제 운제가 20자(6m) 거리로 다가왔다. 운제 위에 탄 당군의 눈도 보인다. 그때다. 운제가 앞쪽으로 기우는 것 같더니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성벽 위로 넘어졌다. 우와앗! 당군의 함성이 진동했고 그 순간 운제와 통로에 가득 타고 있던 당군이 성벽 위로 쏟아졌다. 수백명이다. 그때 계백과 윤진, 화청까지 소리쳤다. 그물을! 그 순간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명의 백제군이 일제히 그물을 당겼다. 우왓! 보라. 성벽 위로 그물이 펼쳐지면서 쏟아진 당군을 물고기처럼 덮어버렸다. 거대한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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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불멸의 백제] (151) 8장 안시성(安市城) ⑦

밤, 남장을 벗고 여자 옷으로 갈아입은 서진은 아름답다. 삭막한 바위산에서 솟아난 꽃 같다. 안시성주 양만춘은 정부인에 소실까지 거느렸고 장수, 군관들까지 부인을 두고 있었지만 백제군 장졸들은 홀애비다. 그래서 여자 좋아하는 화청은 이미 과부 하나를 숙소에 데려다 놓고 임시 부인 노릇을 시켰고 장수들에다 12품 이하 관직의 무장들까지 요령껏 여자를 두었다. 고구려나 백제 모두 혼인한 남녀 간의 정절은 중하게 여겼지만 교제는 자유롭고 여자가 위축되어 살지는 않는다. 신라는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계백도 양만춘이 여러 번 숙소로 여자를 보내 시중을 들게 했지만 다음날에는 내보냈다. 서진이 술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가 자시(12시)쯤 되었다. 밤늦게 술이냐? 술상을 본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술상 머리에 앉은 서진이 술병을 들면서 따라 웃었다. 한산성에 잡혀 있을 때부터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죠. 요망한 년, 이곳에서는 신라 첩자 노릇은 못 하겠구나. 술잔을 든 계백이 지긋이 서진을 보았다. 제가 도성의 나리 사택에 있을 때도 태왕비께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서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것을 아씨는 아시지요. 같은 신라 출신이라 그런가? 예, 저도 가야 출신인데다 고향이 아씨 마을에서 30리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계백이 술잔을 비우고는 긴 숨을 뱉었다. 술맛이 달다. 전장(戰場) 한복판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서진의 목소리도 꿈속에서 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한산성에 있을 때부터 아씨를 언니로 불렀습니다. 아씨가 저보다 한 살 위이시거든요. 잘 한다. 그래서 아씨도 첩자로 만들었느냐? 아씨께서 나는 아이 때문에 움직일 수 없으니 네가 나리를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계백의 잔에 술을 채운 서진이 옆으로 붙어 앉았다. 서진한테서 향내가 맡아졌다. 체취가 섞인 색향(色香)이다. 나리, 전 아직 남자의 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진이 반짝이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붉어져 있다. 하지만 몸은 뜨겁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허, 과연 요물이구나. 나리를 그리면서 여러 번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계백은 어느덧 자신의 몸도 뜨거워진 것을 깨달았다. 그때 서진이 계백의 바지 허리끈을 쥐면서 몸을 붙였다. 나리, 술상을 치울까요? 놔둬라. 술이 반병이나 남았다. 술에 취하시면 방사가 금방 끝난다고 합니다. 그만두시지요. 이런 색녀(色女) 같으니, 넌 긴 방사를 좋아하느냐? 오래 안기고 싶은 거죠.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계백이 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서진이 허리띠를 풀었다. 나리, 불을 놔둘까요?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서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계백의 바지를 벗기던 서진의 손이 뜨거운 몸에 닿는 순간 놀라 움츠렸다. 첫 경험일 것이다. 그때 계백이 서진의 치마를 젖히고는 속바지를 찢듯이 벗겼다. 그리고는 서진을 번쩍 안아서 침상에 눕혔다. 서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감았다. 계백이 서진의 알몸이 된 하반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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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5 19:44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앉으면 글, 서면 길 - 김병용

길을 찾는다는 것 자연이 인간에게 최초로 허락한 길은 지구의 생김새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산길과 물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 가파른 옛길들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최초로 맺어진 역학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 관계를 때로는 거스르고 때로는 협상하며 인간은 길을 개척해왔다. 다리를 놓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의 격절감을 무화시켰고, 굽은 길을 반듯하게 펴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산 한가운데에 터널을 뚫었다. 물길의 흐름도 돌리고 운하를 굴착했는가 하면 난바다 한가운데 뱃길을 내더니 마침내 하늘길까지 열었다. 왜 이와 같이 사람들은 집을 나서 길을 열었을까? 우선, 한무제 때 서역로를 열었던 장건의 경우나 실크로드, 차마고도와 같은 교역로 혹은 마르코 폴로의 모험담이나 콜럼버스의 항해 등에서 볼 수 있듯 인간들은 전쟁과 동맹, 무역과 교류 등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목적하에서 길을 나섰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천하를 주유했던 예수, 석가, 공자의 경우나 구도를 위해 구역(九譯)의 역경을 넘나들었던 현장, 혜초, 엔닌과 같은 구법승들처럼 추상적인 가치를 찾아 길을 떠난 이들도 인류사에는 수두룩하다. 또, 아문센이나 피어리, 텐징 노르가이나 라인홀트 메스너와 같은 극지 탐험가들은 인간의 질서 안에 들어와 있지 않던 야생의 땅에 기어이 발길을 들이밀었다. 이러고 보면 길을 나서고, 낯선 곳에서 난생처음 만나는 사건을 겪는 일이란 게 결국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던져 남들을 위해 길을 닦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을 찾는다는 말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다는 뜻 이상, 비밀의 탐구나 진리의 추구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이유가 또한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몸을 던져 다리가 되고 길을 닦는 일,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일이라니! 이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길은 인간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이 빚은 소금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시대별로 당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자연지리, 인문, 경제, 국방, 정치 지리적 인식의 총합이 실제의 지표에 그려낸 거대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세상의 모든 길은 인간들의 호기심과 필요, 욕망이 뻗어 나와 다져진 길이다. 이 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거기 누가 사는가?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이 길은 또 어느 길과 이어지는가? 길 들이다라는 말 문학이란 사람들의 삶이 그려내는 무늬를 말과 글로 붙들어두는 인간들의 행위, 사람이 남긴 모든 자취마다 문학은 깃든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나 유럽 문학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오디세이아가 길 위의 문학, 길을 찾기 위한 장쾌한 모험과 도전의 기록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길 찾기란 이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인간의 행위로 우리들에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글과 길의 친연성의 출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의 송 라인(Song lines)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산과 호수, 나무와 바위에 대한 기억을 길고 긴 노래로 엮어 흥얼거리고 또 그걸 후손들에게 암송하게 하였다. 이 노래를 배우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에 대한 상상을, 자신의 입이 부르는 노래를 자신의 귀로 들으며 머릿속으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키워나갔을 것이다. 부른다, 노래를 부른다, 길을 부른다, 풍경을 부른다, 기억을 부른다. 그 노랫가락만큼이나 길고 긴 가락 속에는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도 담겨 있으리라! 이처럼, 그들의 노랫가락 안에는 공간이 담겨 있고, 풍경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며, 그 길을 먼저 걸었을 선조들의 여정이 또한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선인들의 감성을 이해하면서 자신들의 공간감과 공간에 대한 친연성을 자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였다. 내가 어디 살고 있는가를 안다는 것은 곧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로 길게 이어진 길을 자신의 마음에 들이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진 그 길을 걸어온 선조들과 나 사이의 연계선을 찾는 것. 송 라인은 노래로 엮여진 풍경에 관한 기억이기도 하며, 그 기억이 전승되어온 길에 관한 노래이기도 하다. 애버리지니의 송라인은 구술문학의 전통이 갖는 아름다움과 유장함 그리고 그 전승 과정에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상력의 전승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왜 우리 선조들은 이 바위를 곰과 같다고 노래했을까, 저 강을 왜 은빛 강이라고 했을까, 라고 물으며 후손들의 상상력은 무한 증폭된다. 아마도 우리가 글이라고 하는 문학적 상상력의 출발은 이와 같이 길 위에서 또는 길을 상상하며 시작된 인간의 지적 행위였을 것이다. 동양 최초의 문학이론서라고 할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도 이와 흡사한 최초의 문명화된 인식이 드러난다. 하늘에도 무늬가 있고, 땅에도 꿈틀거리는 자취가 서려 있는데 어찌 인간의 마음에 무늬가 없겠는가! 글이 마음이 그려낸 무늬를 구체적으로 외화(外化)하는 것이라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최초의 자극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말 길들이다라는 말은 묘한 말이다. 길들이다라는 말은 내가 무엇인가를 복종케 하고 나를 이해하게끔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자기 수긍을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다. 내 마음 안에 이제껏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길을 들여놓는 것, 너에게 가는 길,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들이는 것. 한 사람의 마음에, 생애 깊은 곳에 길을 들여놓으려면 당연히 길을 만나야 한다. 즉, 길에 나서야 한다. 길에 나선다는 것은 길을 향해 나가는 것, 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 길은 목적이며 동시에 과정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복잡한 길과 길 위의 풍경들이 길에 나선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 파동을 일으키고 그 파동이 아로새겨진 인간의 마음이 결국 글을 쓴다. 서면 길, 앉으면 글 글이란 결국 길 위에 선 인간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상 앞에 앉아 찬찬히 자신의 마음결을 살펴 더듬더듬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후나 공간적 차이 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면에서 길과 글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글이란 결국 문자로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 인식의 지도. 길은 곧 글이 되고, 그렇게 그려진 몇 편의 글은 오래 사랑을 받으며 후학들의 길이 되어 계속해 뻗어나간다. 길을 걷는 것은 무엇보다 몸, 발바닥부터 손끝까지 사람들은 온몸의 움직임을 길의 흐름에 일치시킨다. 이렇게 온몸으로 길을 밀고 나가며 세계 인식의 밑그림을 획득한다. 이 경지를 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단계라고 말하고 싶다. 길에서 돌아와 서탁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은 백지 위에 길을 그렸다 지우며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때 가지 못한 길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고지에 쓰든 자판을 두들기든 혹은 머릿속에 그리든 쓰기(writing)의 과정이며, 연상(imaging)과 심리적 투사(projection)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차츰차츰 길 위에서 주운 말, 숲을 헤치며 체득하게 된 경난(經難)의 깨달음을 통해 자기 나름의 정명(正名), 맥락(脈絡)을 취득하게 된다. 말하자면, 스스로 문리(文理)를 열어 나가는 것이다. 문리란 곧 울창한 언어의 숲에 자신만의 작은 오솔길을 내는 일. 작가는 그 스스로 길잡이가 되어 숲을 헤치고 나가야만 길을 낼 수 있다. 초입에 들어서는 일부터 종점에 도착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의 순간들이 모여 마침내 길이 되는 것과 발단에서 결말에 이르는 스토리텔링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이런 면에서 작가란 곧 여행자다. 앉으면 글, 서면 길로 살아가는 방랑자! 길 위에서 글을 구상하고, 글을 쓰면서는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글쟁이인 터, 글쟁이는 곧 길라잡이기도 하다. 좋은 글은 작가의 긴 여행, 그의 몸과 마음이 걸어온 길을 통해 그려진다. 오늘 우리는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어떤 글을 그려내고 있는가? 작가의 행로를 따라 함께 걷다 보면 필연, 우리는 어느 곳엔가 당도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으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일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따라 길은 우리 마음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길이 드는 것, 길이 나는 것이다. /김병용(소설가) * 1990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당선. 장편소설 『그들의 총』, 소설집 『개는 어떻게 웃는가』, 여행기록서 『길 위의 풍경』, 연구서 『최명희 소설의 근원과 유역』 등을 냈으며, 『길은 길을 묻는다』, 『전북의 재발견-길』, 『아름다운 순례길』, 『이순신 백의종군로』 등의 책임 집필.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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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3 15:25

한줄 한줄에 담긴 세월의 흔적

조기호 시인이 스무 번째 시집 <하지 무렵>을 내놨다. 여든을 넘은 시인은 평생을 겪어온, 손때 묻은 연륜을 서리서리 풀어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력과 창의력이 퇴화됨을 느낀다는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달이 서너 편의 시를 써낸다. 시를 쓰는 날은 가만히 늙어가는 자신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를 읽으면 세월의 흔적 묻은 얼굴로 시 한 뼘을 끼적이는 그의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 무렵, 모내기하는 아버지와 감자 삶는 어머니가 있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시인. 이렇듯 옛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그의 시편에는 ‘여백’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여백은 점심에 반주 한잔 나누는 친구들, 전깃불 안 껐다고 지청구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간다. 또 시인은 이승과 저승에 대해 고뇌하면서 버리고 비우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흔적을 비우고 거둔다는 것조차 부질없음을 깨닫고, 채움도 비움도 거둠도 모른 채 살아가리라 결심하기도 한다. “(상략) 당신의 영혼이 가고 마음 가고 또 가을마저 가고나면/ 서러운 수의를 껴입은 나는 막차를 탑니다.// 맥 빠진 강물이 나를 따라옵니다./ 나를 부르실 때까지 바람은 가득하였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백신은 언제쯤/ 이승 어느 울음에서나 빚어질 수 있겠습니까.” ( ‘이별 백신’ 일부) 전주 출신인 조 시인은 전주문인협회 3·4대 회장과 문예가족 회장, 전주시풍물시동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바람 가슴에 핀 노래>,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목정문학상, 후광문학상, 전북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8.02 20:08

[여름엔 미스터리] (상) '안시성'외 2권 - 짜릿한 반전 스릴러 '무더위 싹~'

전북의 신아출판사(대표 서정환)가 지역 출판사의 활동 토대를 개척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한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 더 탄탄해진 노하우와 라인업으로 올 여름, 6권의 미스터리 신간을 냈다. 중앙집권화된 출판도서 시장을 뒤집을 지역의 신선한 작품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김상중 <최후의 결전 안시성> 올해 배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안시성이 개봉 예정인 가운데, 나라를 삼키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책으로도 볼 수 있다. 김상중의 <최후의 결전 안시성> 역시 책봉의 질서를 어지럽힌 고구려를 징벌하려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망과 백성을 지키려는 장수 양만춘의 일념이 가차 없이 맞붙었던, 처절한 88일의 분투를 담았다. 주제의 화제성, 대중성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도 과감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신아출판사 관계자는 김상중의 <안시성>은 불필요한 인물과 전개는 과감히 생략하고 두 인물의 심리와 치열한 전쟁터 묘사에 집중했다며 밀고 당기는 공성전의 맥락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팽팽한 심리전이 작품의 묘미라고 말했다. △최진환 <자살로 위장해 드립니다> 삶이 지옥인 민초에게 그의 살인은 구원이었다. 두 번의 호란을 겪고 백성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던 17세기 조선. 곡절을 지닌 주인공 김삿갓이 시대에 서 있다.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는 민초들은 그에게 살인 의뢰를 한다. 그러나 죽이라고 청부하는 것은 고리대금업자, 비리에 찌든 관리양반들이 아니다. 바로 의뢰자 자신이다. 소설의 설정은 음울하면서도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진환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김삿갓의 행위는 무도한 살인일까, 구원일까.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빠른 전개와 극적인 반전으로 소설의 품격을 높였다. 실제 역사에 살인자가 구원자라는 도발적인 허구의 소재를 녹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김한강 <지하실의 멜로디> 미스터리 소설은 패턴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야기가 독특하고 반전의 효과마저 탁월하면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지하실의 멜로디>가 그렇다. 중국 유학 생활을 오래한 김한강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미국, 유럽까지 넓혔다. CIA와 FBI 등 국가정보요원들의 암투와 테러, 사랑 이야기다. 현대적인 주제배경 설정에 느와르 액션사랑을 적절히 가미해 최근 트렌드에 맞는다는 평가다. 김한강 작가는 국가, 정권, 불특정 소수의 안위를 위해 가려져야만 했던 비극에는 무고한 시민의 희생도 많지만 미국 CIA, FBI, 대한민국의 국가정보 요원들도 있다며 음지에서 활동하다 끝내 버려지기도 하는 이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2 20:08

[불멸의 백제] (150) 8장 안시성(安市城) ⑥

당황제 이세민을 만나고 왔다고 벼슬이 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군(唐軍)의 공격이 수그러진 것도 아니다. 당군은 안시성의 고구려, 백제군 수뇌부를 투항시키려면 심하게 공격하여 위세를 보여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았다. 연일 맹공을 퍼부어서 성벽이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물어졌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군은 즉각 보수하고 반격했다. 당군은 안시성 4면을 포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동쪽은 터놓아서 퇴로를 만들어 놓았다. 지원군이 오지 못하도록만 할 뿐이지 언제든지 동문을 통해 물러나도록 한 것이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사흘, 닷새, 열흘이 되더니 한 달이 금방 지났다. 두달이 지나 석달째가 되었을 때 공격하는 당군은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반대로 수비하는 고구려 주민들의 사기는 그만큼 높아졌다. 더구나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북방의 안시성은 겨울 추위가 매서운 곳이다. 안시성은 창고에 1년 이상 먹을 양곡이 쌓였고 성안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수십 군데가 있어서 내년 겨울까지도 버틸 수가 있다. 그러나 성밖에 포진한 30만 가까운 당군은 겨울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또 반복되는 것이냐?” 마침내 당황제 이세민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목소리가 신음을 뱉는 것 같다. 둘러선 장수들은 머리를 숙였고 이세민의 목소리가 바위처럼 굴러떨어졌다. “이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회군해야 된단 말인가!” 그동안 수많은 전략이 나왔지만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안시성을 놔두고 뒤를 쫓지 못하도록 5만 군사를 배치시킨 후에 곧장 고구려 심장부로 진군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황제의 친정(親征)을 장수들을 내보내어 싸우는 것처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말에 아무도 더 주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군은 초조해졌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안시성의 사기는 높아졌다. 그래도 당군은 쉽게 철군하지 않았다. 황제의 친정인 것이다. 이세민의 탄식처럼 ‘또’ 패주했다가는 수(隋)양제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고구려가 바로 천하의 중심(中心)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계백에게 위사장인 하도리가 달려왔다. 저녁 무렵, 성안 사택을 숙소로 쓰고 있는 계백이 마악 저녁상을 물렸을 때다. “은솔, 백제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 백제에서?” 놀란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일행이 보였다. 앞장선 사내는 덕조다. 깜짝 놀란 계백이 눈만 크게 떴을 때 덕조가 소리쳤다. “주인! 다시 뵙습니다!” “웬일이냐!” “아씨가 보내셨소!” 다가온 덕조가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마루에서 내려간 계백이 덕조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다가 숨을 들이켰다. 덕조의 뒤에 서 있는 사내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희고 깨끗한 얼굴, 두건을 썼지만 소년같다. “아니, 네가…….” 그때 소년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옆으로 다가온 덕조가 말했다. “아씨가 시중을 들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때서야 계백의 시선이 미소녀에게서 떨어졌다. 바로 서진이다. 태왕비의 시녀, 신라의 첩자 취급을 당하고 계백의 사저에 갇혀 지내던 서진이다. 사비도성으로 옮겨 왔을 때 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고화가 보내다니, 몸을 돌린 계백이 덕조와 서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서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리, 전장에서라도 모시고 싶습니다.” 백제를 떠난지 반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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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2 17:52

[불멸의 백제] (148) 8장 안시성(安市城) ④

뭐라고? 사신이? 이세민이 앞에 선 대장군 우성문을 보았다. 오전 사시(10시)무렵, 우성문은 어깨를 부풀리며 거친 숨을 뱉는다. 예, 그런데 사신이 백제군 수장인 계백이란 놈입니다. 오오. 이세민의 눈이 좁혀졌다. 황제의 진막안이다. 백여명이 넘는 장군들이 긴장한 채 이세민과 우성문을 번갈아 보고 있다. 그때 우성문이 말을 이었다. 폐하, 그놈이 아군의 허실을 염탐하려고 온 것입니다. 바로 참수해서 머리를 창끝에 꽂고 위세를 보여야만. 가만. 이세민이 우성문의 말을 막았다. 말이 많구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넌 몸보다 말이 빠른 놈이다. 황공 무지로소이다. 이세민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우성문의 감군으로 나갔던 곽영탁이 어디 있느냐? 네, 폐하. 말석에 서있던 곽영탁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진막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세민의 대장군이며 태수, 도독 등 여러 직임을 보유하고 있는 우성문을 개 부르듯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곽영탁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세민의 눈이 다시 좁혀졌다. 너는 감군으로 우성문의 패퇴를 속인 놈이다. 네 죄를 알렸다? 기가 질린 곽영탁이 숨도 쉬지 못하고 땅바닥에 이마를 붙인채 엎드려 버렸다. 이세민의 시선이 우성문에게 옮겨졌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너를 두고 한 말이겠다. 그렇지 않으냐? 이제는 우성문이 땅바닥에 엎드렸고 이세민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쥐새끼가 여우의 위세를 빌어서 나대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이세민의 시선이 요동총독 서위에게로 옮겨졌다. 총독이 말해보라. 예, 서가호위(鼠假虎威)가 되겠습니다. 이놈, 우성문. 이세민이 엎드린 우성문을 꾸짖었다. 백제군 계백에게 대패를 하고 감군과 함께 그 사실을 숨기고는 계백이 사신으로 오니까 탄로가 날까봐서 겁이 났느냐? 우성문은 엎드려 떨기만 했다. 이세민과 긴 인연이 있었으니 성격을 더 잘 아는 것이다. 냉혹하고 잔인해서 형제도 눈 깜박 하지 않고 살육하는 이세민이다. 부친인 태조 이연도 이세민이 겁이 나서 현무문의 변이 일어난지 두달만에 황제 위를 이세민에게 넘겨주고 물러났다. 그때 이세민이 엎드린 둘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놈들, 내가 모르고 있었던 줄 아느냐? 이세민이 아래쪽에 선 위사장에게 지시했다. 감군 곽영탁의 머리를 떼어서 창끝에 꽂아 계백이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 놓아라. 네, 폐하. 우성문은 사지를 결박해서 그 머리통 옆에 꿇려놓아라. 네, 폐하. 계백을 극진히 영접하여 나한테 데리고 오라. 이세민이 지시하자 장수들이 서둘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질서가 엄정한 한편으로 빈틈이 없다. 이윽고 안시성에서 보낸 사신 계백 일행이 황제의 진막 앞에 도착했다. 그때 진막 앞에는 창끝에 꿰인 곽영탁의 머리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었고 그 밑에는 우성문의 사지가 결박한 채 꿇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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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1 19:34

[불멸의 백제] (147) 8장 안시성(安市城) ③

“성안 군기가 엄정하면서도 장졸의 사기가 높았습니다.” 유춘관이 말을 잇는다. “오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띠었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춘관은 이세민에게 안시성 분위기를 전하는 중이다. 안시성에 들어갔다가 나온 유춘관의 말을 들으려고 진막에 모인 장수들은 귀를 세우고 있다. 이세민이 쓴웃음을 짓고 물었다. “내 제의를 비웃더냐?” “아니올시다. 폐하.” 정색한 유춘관이 이세민을 보았다. “요동왕에 임명한다고 했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장수들이 많아서 속에 있는 말을 내놓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백제 장수는 어떻더냐?” “담로왕으로 봉한다고 했더니 담로 10군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놈이 욕심이 과한 놈이군.” 이세민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부터 맹공을 하면 놈들이 다급해져서 내 제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예, 폐하.” “시간이 지나 기력이 떨어지면 요구조건이 더 내려가게 된다. 흥.” 이세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요동왕? 담로왕? 어림없다.” 그 시각에 양만춘과 계백, 그리고 양국의 지휘부가 둘러앉아 다녀간 당 사신 이야기를 한다. “성안 동정을 살피러 온 것이야.” 양만춘이 말하자 장수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성안에 오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장수 하나가 대답했다. “성안 분위기를 보고 오히려 사기가 꺾였을 것입니다.” “며칠 공격을 하고 나서 또 사신을 보낼 것입니다.” 다른 장수가 말했다. “지난 전쟁 때 수(隋)와 요동성 싸움에서 수 양제는 사신을 여덟 번이나 보냈습니다. 그때 성안 동향을 잘못 전했다고 사신으로 갔던 장수를 양제가 베어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당황제의 후의에 감격했다고 했는지도 모르겠군.” 양만춘의 말에 장수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이때 우리도 사신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양만춘이 계백을 보았다. “우리가 말씀이오?” “예, 우리는 성안 장졸과 주민을 설득시키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당군(唐軍)이 20리쯤 물러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옳지.” 양만춘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도 벌고 당군이 진용을 옮기는 실리까지 얻을 수가 있겠습니다.” “두번째는 속지 않겠지만 지금은 설마 하고 사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묘안이오.” 고구려 장수들도 대부분 머리를 끄덕이거나 웃었다. 그때 고구려군 부장(副將) 한성위가 계백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가 사신으로 갑니까?” “내가 가지요.”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내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고구려군 장수 우보성이 나섰다. 기마군 대장으로 5품 조의두대형 장군이다. 양만춘이 정색하고 계백을 보았다. “백제군 수장(首將)이 가셔도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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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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