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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탈출, 문화체험] ④작은 도서관 - 시원한 도서관에서 마음껏 뛰놀자!

여름엔 아이들도 덥다. 그래도 뛰놀고 싶은 게 아이들이다. 땡볕에 땀 줄줄 흘릴 걱정 없이 신나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곳이 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온 가족이 소리 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화영화도 감상할 수 있는 곳, 밤에는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다 잠드는 곳. 바로 어린이 작은 도서관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일 것이라고 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의 천국으로 떠나보자. △놀이터, 캠프장, 학교도서관이 변한다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들 데리고 여름 휴가 왔어요. 공공 도서관인데 소리 내 책을 읽어줘도 눈치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책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 분위기가 형성되고 시원하게 뛰놀 수도 있죠. 키즈 카페보다 편하고 좋아요. 지난 27일 전주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 양미란 씨는 세 자녀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막내가 의자를 끌고 부산하게 움직여도, 이 씨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다. 기자의 등 뒤로는 부산한 발소리가 쿵쿵 지나갔다. 뛰어온 초등학생 5명이 독서 공간 뒤편의 달팽이 공간(구석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아지트)에 들어가 보드게임을 했다. 딱딱했던 도서관이 변하고 있다. 어른과 어린이로 나눠진 열람실에서 숨죽여 책을 읽던 곳에서 가족친구들과 책을 매개로 함께 즐기는 체험형 공간이 됐다. 김경희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장은 도서관은 책을 통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공간이라며,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니 일단 도서관으로 피서를 오라. 상상보다 매력적인 공간이기에 분명히 계속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방학 특집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주체적인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해 난 이 책을 읽을 거예요 목록을 작성하고 도서관 사서와 함께 실천한다. 8월 8일~10일 도서관에 모여 낭독을 하고, 8월 7일에는 생각놀이 과학미술 프로그램을 한다. 인기가 좋은 도서관에서 1박 2일 캠프도 8월 31일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에 하는 영화 상영도 주중까지 확대했다. △도서관 돌며 스탬프 받고 선물도 받자! 전주에는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을 포함해 28개의 공립 작은 도서관이 있다. 전주시립도서관은 여름방학을 맞아 2018 전주독서대전과 연계해 작은 도서관 스탬프 투어를 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작은 도서관별로 준비한 미션을 수행하면 도장(스탬프)을 받는다. 3곳 이상 도장을 받으면 오는 9월 열리는 전주독서대전의 무료 체험권을 준다. 또 작은 도서관에서 한 번에 대출 가능한 책의 수도 10권으로 늘어난다. 미션은 각 도서관의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도 쉽다.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은 책마루로 삼행시를 지으면 되고, 건지산 숲속 작은도서관은 나무 안아주기를 하면 된다. 장애인을 위한 열린점자 작은 도서관에서는 흰지팡이 들고 사진 찍기, 만화책이 많은 중산작은도서관에서는 캐릭터만화 그리기를 하면 된다. 투어는 9월 13일까지 진행한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30 19:10

[불멸의 백제] (146) 8장 안시성(安市城) ②

사신이 왔어? 되물은 양만춘이 옆에 앉은 계백을 보았다. 당황제 이세민이 보낸 사신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이다. 서문(西門)의 수문장이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말했다. 예, 성주께 황제의 전갈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부상서라고 했습니다. 들여보내라. 양만춘이 웃으면서 지시했다. 이세민이 어떤 조건을 내놓는지 그것으로 그자의 용인술을 보겠다. 잠시 후에 안시성의 청에는 당의 사신으로 온 이부상서 유춘관이 중랑장 둘을 대동하고 들어섰다. 금박을 입힌 붉은 색 비단 예복을 입고 머리에 관모를 썼는데 풍채가 좋았다. 뒤를 따르는 중랑장 둘도 장군이어서 늠름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한걸음씩 갈지자로 걸어들어온 유춘관이 양만춘과 계백의 열 걸음쯤 앞에서 멈춰섰다. 청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1백평 쯤 되는 청에는 아름드리 기둥 좌우에 고구려, 백제 장수들이 갈라서 있었는데 가운데 선 왕의 사신 옆모습을 보는 자세다. 잠깐 정적이 덮여졌다. 이부상서 유춘관은 언변이 좋고 지모가 뛰어난 인물이다.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켰을 때 계략을 짠 인물이기도 하다. 그때 유춘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당(大唐)의 사신 이부상서 유춘관이 안시성주를 뵙소. 양만춘과 계백은 앞쪽의 의자에 앉아있다. 사신 유춘관과 장수 둘은 서 있는 상황이다. 마치 상국(上國)에 문안인사차 온 조공국의 사신같은 꼴이다. 양만춘이 대답했다. 말하라. 양만춘은 고구려 서부(西部)의 성주다. 당의 이부상서는 6조의 우두머리 상서이니 최고위층 관리인 것이다. 순간 유춘관이 호흡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황제께서 안시성주 양만춘이 투항을 하면 고구려 서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시고 대장군 겸 요동왕으로 봉하신다고 했소. 나를 요동왕으로? 되물은 양만춘이 눈을 크게 떴다. 상서, 그 말이 사실인가? 황제의 임명장을 드리겠소. 임명장까지 써주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천하 백성의 황제가 될 수 있겠소? 고구려를 정벌하지 않더라도 임명하신다고 말씀하셨소. 여기 백제군 장수도 와 계시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백제군 장수 계백은 백제 담로왕으로 임명하신다고 했소. 그 휘하 장수들도 합당한 직위를 하사하실 것이오. 굉장한 포상이다. 양만춘이 감동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가 요동왕이 되다니, 조상의 은덕이 이제야 나한테 쏟아졌구나. 유춘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양만춘의 말이 진심인지 헷갈린 것이다. 그때 계백이 유춘관에게 물었다. 상서, 백제의 담로는 아직 정벌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나를 담로왕으로 봉할 수가 있단 말이오? 물론 그렇지만 고구려가 멸망하면 백제 담로도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담로가 22개니 그중 몇 개 군을 주시겠소? 난 10개는 받고 싶은데. 그것은. 그때 양만춘이 나섰다. 내 수하 장수들에게도 왕을 시켜주면 안시성을 드리지. 적어도 왕 5명은 더 있어야겠는데. 그때 참다못한 고구려 장수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고 청 안은 웃음으로 덮여졌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29 19:20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그 여름 숲길 - 한지선

숲길을 걷는 것은 마약과 같다. 어느 순간 숲에 들지 않으면 목마른 것처럼 갈증이 난다. 섬세한 활엽수들로 꽉 찬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난다. 여름엔 태풍이 있고, 폭우가 쏟아지면 드센 물살이 넘어지고 뒤집어지며 아래로 아래로 내달리는 풍경. 숲도 태풍을 겪으면 아프고 상처받은 후에야 다시 고요해진다. 고요한 숲엔 깊은 자정의 한숨 같은 체취가 배어 있다. 그것들이 머금은 그리고 내뿜는 공기 속에 푹 젖으면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치 파도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는 나무 숲속에서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을 피톤치드라 하며,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뿜는 물질로 자체에 살균, 살충,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무가 왕성하게 잘 자라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많이 발산하며, 사람이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피부와 마음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백과사전엔 그 공기에 대하여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숲, 피톤치드. 나는 도시와 시골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마당을 가꾸며, 일주일의 반을 지내는 시골집 작업실은 내장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의 반 중 하루를 내장산 숲길을 걷는다. 유월 어느 오후, 씩씩하게 숲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를 했다. 늘 꿈꾸기는 했다. 이 숲길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그런 생각. 그러나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스치는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숲을 향유하기 위해서 숲의 소리와 냄새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저 걷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있는데 약간 먼 거리에 있던 나무 아래 벤치에서 누군가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깜짝 놀라 그 와중에 안경을 꺼내 쓰고 그에게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바퀴가 초록색인 근사한 자전거를 손으로 잡고 서서 싱긋 웃고 있는 키가 훤칠한 꽃미남.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친근한 사람에 속하는 젊은 성직자이며, 언니의 제자인 그를 숲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예쁜 초록색 베네통 자전거를 끌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오후가 저무는 시각이었다. 나의 코스 나머지를 자전거를 끌며 같이 걷고 되돌아서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숲길을 걷는 내내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는 이어폰을 내렸고, 끝없이 단풍나무로 이어진 내장산 숲길을 걸었다. 왠지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는데 숲길 어딘가에 주차해 놓은 내 차 가까이 가서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로 어두워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방학이 되어 내 작업실 가까운 정읍시의 집으로 와 있던 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와 책을 읽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별로 말을 나눠본 사이는 아니었다. 식구들하고 언니와 만났을 때 언제부턴가 그 옆에 그가 있었고,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그런데 무척 친근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듯싶었다. 우리는 외로움과 그리움과 슬픔 같은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외로울 때 하는 행동에 대한 윤리적 잣대와 어쩌면 윤리와 상관없는 그들 감정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숨 쉬고 살아야 하는데 자꾸 숨을 참으라고 하는 것 같은 그 잣대라는 것의 잔인함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적 지표에 의한 행동양식은 진정한 것인가, 혹은 그냥 원하는 대로 하면 나쁜 것인가, 등등 여기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그날 나눈 격론은 매우 현실적인 세태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도 다 겪고 있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의 굴레에 대한 얘기였다. 지나고 보니 그날 나눈 대화들은 불쑥 꺼낸 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뿐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코엘료의 책 <불륜> 뒤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의 언저리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감정들과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줄과 그 거미줄에 걸려 헐떡이거나 죽거나 숨죽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윽고 어두워져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내 차에 올랐다. 그리고 저녁에 아쉬운 이야기를 다시 나눠야 한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론은 없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봐야 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깨닫고 느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리는 빙수를 먹으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하듯 말했다. 아무튼 결론은 필요 없었다. 숲이 있었으므로. 어쨌든 살아봐야만 아는 것들이므로. 인간의 이야기들은 복잡하나 숲은 고요하다. 우리는 그런 격론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워지기 전에 사랑의 다리가 있는 원적암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숲이나 걷자고.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더위를 심히 타는 사람이므로 입을 열면 안 되었고, 그저 묵묵히, 천천히 산을 올랐다. 여름에는 죽어도 산을 못 오르는 사람인데 중간쯤 가서야 그것이 생각났고, 그냥 내려가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숲길도 걷기 힘들다. 그날이 그 여름의 숲길 걷기 마지막이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폭우가 내린 후 거친 물살을 보기 위해 달려갔고, 장마가 끝나면 숲에 들기 어려울 만큼 더웠으므로 가지 못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는 오후가 되면 나의 작업실로 와서 노을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오래된 북면천의 둑길을 걸으면서 날마다 노을을 마중하러 나갔다. 칠월부터 팔월의 반을 넘기면서 노을을 실컷 보러 다녔다고 할까. 때론 모항의 언덕 위에서, 적벽까지 노을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다녔다. 그해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구월은 다시 숲이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숲은 고요하지만 늘 속삭임이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양광을 담뿍 받은 단풍나무들은 조용히 여러 가지 감정처럼 각기 다른 색들을 띠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정이 미묘하듯 숲은 미묘하고, 숲길을 걷는 것은 뭔가 평화롭다. 내적인 평화가 무엇인지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라고 느낀다. 숲이 그렇다.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갔던 그는 가을에 어쩌다 자전거를 갖고 숲길에 나타났다. 집에 올 때면 그도 늘 숲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탔으므로. 우리는 몇 번 더 같이 걷던 그 숲길에서 코엘료의 그 말에 대해 언급하였고, 그는 남녀 간의 사랑 말고, 더 큰 사랑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부딪쳤고, 격론을 벌이곤 했으나 결론은 없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것이 결론이었다. 혹은 결론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숲길을 걸었고, 그것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나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향긋한 나무 향기나 바람에 날리는 풀덤불처럼 우리의 이야기들은 스쳐 지나갔고, 또 언젠가 스쳐 올 것이었다. 숲을 스쳐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한지선(소설가) * 장편소설 『그녀는 강을 따라갔다』, 『여름비 지나간 후』, 소설집 『그때 깊은 밤에』, 『여섯 달의, 붉은』이 있다. 9인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과 『마지막 식사』를 냈다. 제1회 전북소설문학상과 제2회 작가의눈작품상을 수상하였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27 14:45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100)번개 - '번쩍거리다'에 접미사 '게'가 붙여진 말

번개는 하늘에 나타나는 전기적인 현상을 말한다. 사계절 내내 일어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관측된다. 천둥이 청각적인 요소를 반영한 것이라면, 번개는 시각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있다. 영어로는 ‘thunder’와 ‘lightning’으로 구별된다. 번개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번’ 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번쩍거리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번개의 ‘번’ 자는 ‘번쩍거리다’의 맨 앞 자를 따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번’ 자가 ‘밝다’에서 왔다고 보고도 있으나, 여러 정황상 ‘번쩍거리다’에서 온 것이 맞는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번’ 자는 명사나, 형용사가 아닌 동사 어간에서 온 말이다. ‘개’가 붙여진 사연도 재미있다. 원래는 ‘개’가 아니고 18세기까지는 ‘게’로 적었다. 답을 미리 말하면 ‘개’ 자는 접미사다. 혼자서는 쓰이지 못하고 앞말에 붙여서 쓰는 말이다. 지우개 등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간다. 지우개는 ‘지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에는 이런 식으로 ‘게’나 ‘개’ 자가 붙는 것이 무척 많다. 언뜻 생각해도 지게, 덮개 등이 있다. ‘지는 것’, ‘덮는 것’이라는 뜻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26 19:40

자연법칙에 따른 생사의 순환을 노래하다

‘목련 꽃길 같이 갈 수 없어서/ 꽃의 속도로 피어날 수 없어서/ 내가 나를 겪는 수천 일 동안 춥고 어두웠다…서로 가는 길 달라도 극점은 같다는 목련꽃말/ 저 수두룩 은백의 문장들 무늬들 물결들// 눈부셔/ 얼어붙은 내 등에 퍽 퍽 꽃불이 인다/ 타오르는 감각들/ 푸르게 확장되는 길/ 발끝이 환해진다’(표제작 ‘꽃의 고도’중) 사물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이 돋보이는 심옥남 시인이 신간 <꽃의 고도>(문학의전당)를 냈다. 허공, 소멸, 이중성 등 일상을 변주하는 시인은 주체적인 주제로 시적 순간을 맞이한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자연법칙에 따른 생사의 순환을 형상화한 시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심 시인만의 시각과 독창적인 시적 이미지들로 주제를 표현한다. 시인에게 허공에서 맴도는 침묵은 올록볼록 엠보싱(시 ‘표면장력’중)이고, 여린 가지 끝을 뚫고 올라오는 새 잎은 단단한 허공을 뚫는 푸른 송곳(시 ‘푸른 송곳’중)이다. 정옥상 원광대 교수(시인)는 “심 시인의 상상력은 현실 속 사물을 다양하게 변형시키기도 하고 현실에 없는 대상을 창조하기도 한다”며 “그의 시적 몽상이 만들어낸 신선한 시적 이미지는 독자들을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심옥남 작가는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세상, 너에게>, <나비돛>이 있다. 전북시인상, 해양문학상, 신석정촛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26 19:40

고통의 시간들, 시로 일어나

등단 20주년을 맞은 박갑순 시인이 첫 시집 <우리는 눈물을 연습한 적 없다>를 펴냈다. 시집 <우리는 눈물을 연습한 적 없다>는 시인이 자신에게 보내는 의도적인 메시지다. 위암과 유방암 등 힘든 투병 중에 시는 태어났다. 그래서 ‘칼의 흔적’, ‘양파’, ‘항문의 능력’, ‘생의 구간’ 등 고통을 감싸 안고 뒹굴던 시간이 시의 행간에 묻어있다. 캄캄한 슬픔을 종이 한 장에 쏟아놓기까지 숱한 절망이 가슴을 관통했을 것.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조율하며 희망을 확인한다. “나는 당신의 빈 잔에 채워지고 싶은 물/ 당신은 나를 가슴에 담아야 하는 잔// 나는 이만큼의 거리에서/ 당신을 위해 채워야 하는 목숨// (중략) 우리는 기다림에 지친 가슴 열고/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야 할 운명// 아니면 엎질러져야 한다/ 차라리 깨어져야 한다” ( ‘물과 잔’ 일부) 잔은 채워질 무언가를 기다리며 비어 있다. 그 잔 속에는 완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그는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다짐하고 몸부림친다. 이렇듯 절반의 시편들은 악물고 절뚝거리며 ‘일어선 흔적’이다. 마경덕 시인은 “박갑순 시인은 삶과 부딪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파장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한다”며 “시인이 작품 속에 텍스트로 차용한 이미지는 ‘부드러움 속의 완강함’이고, 곳곳에 누적된 삶의 무늬는 ‘붉은빛’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부안 출신인 박갑순 시인은 1998년 ‘자유문학’에서 시로, 2004년 ‘수필과비평’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월간 ‘소년문학’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글다듬이집’ 주인을 맡고 있다. 수필집 <꽃망울 떨어질라>를 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7.26 19:40

전북문단 거목들의 숨겨진 일화

전북 문단의 큰 스승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책이 발간됐다. 전북 문단 일화집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전북 문단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기록보다 그 기록 이면에 숱하게 얽힌 개인적인 일화나 기행, 사사로운 삽화나 사연을 모아놓았다. 전북 문단의 거목들과 관련한 일화를 문우와 후학들이 기술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2016년 간행한 <전북 문단 70년사>가 정사의 개념으로 전북 문단 역사를 정리한 것이라면, 전북 문단 일화집은 야사의 범주에 가깝다. 전북 문단 일화집은 전북문인협회 생성 과정 등을 모아 제1부 전북 문단 태동기로 편성하고, 이병기와 신석정 선생 등 연대가 높은 문인들을 제2부 한국 문단을 빛낸 큰 별들로 구성했다. 김해강, 홍석영 등의 일화를 제3부 이런 일 저런 일로 편집했다. 그리고 제4부 지역 문단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엮고, 제5부 문학상과 문학관, 시비 건립으로 마쳤다. 제1부에는 전북문인협회 통합의 역사를 비롯해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을 이끌었던 목정 김광수 선생과 목정문학상 제정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2부에서는 이병기, 김대준, 신석정, 채만식, 서정주, 김환태, 김완동, 송기원, 이철균, 최승렬 선생 등 전북 문단의 큰 어른들과 관련한 숨은 일화를 소개한다. 전북 문단에 얽힌 일화도 눈길을 끈다. 1952년 전주에서 전국 최초로 시화전이 열린 일, 1986년 전북문화상 심사에서 문학 부문이 탈락한 것을 두고 문인들이 당시 지사를 찾아가 항의했던 일 등 증언하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모른 채 지나갈 일화들이 실려 있다. 전북문인협회는 전북 문단 일화집을 발간하기 위해 지난해 6월 편찬위원회를 조직해 1년간 원고를 취합하고 수정했다. 그 사이 원고 수집과 예산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편집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홍식 목정문화재단 이사장의 예산 지원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편찬위원장은 조기호, 편찬부위원장은 소재호 시인이 맡았다. 편찬위원으로 김남곤, 이운룡, 김순영, 서재균, 이목윤, 진동규, 안도 등 문인 16명이 참여했다. 조기호 편찬위원장은 일화 일부는 앞서간 선배들의 것이지만, 이 시대 우리들의 것이기도 하다며 그러기에 선배들이 살아온 과거가 곧 우리의 일상으로 재현됨을 인식하면서 전북 문단 일화집을 발간했다고 말했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희생과 봉사 정신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한 꼭지씩 집필에 동참해준 문사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리 전북 문단사 이면의 이 야사들이 뜻 있는 선비들이 기록한 역사로 길이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7.26 19:40

[불멸의 백제] (145) 8장 안시성 ①

고구려는 대국(大國)이다. 그래서 수양제가 수천 리 원정길에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결국 패퇴했다. 이번에는 안시성이다. 요동성까지 함락시켰지만 당군은 안시성에 막혔다. 고구려 중심에 위치한 요동성,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않고 대군을 진입시켰다가 퇴로가 막히면 전멸이다. 그래서 대국인 것이다. 하루 이틀에 고구려 도성까지 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양제는 군량미 수송마차가 수천 리에 뻗쳤기 때문에 수만 명의 병사가 굶어죽었다. 그 긴 수송로를 고구려군이 토막을 내었기 때문이다. 안시성, 이제 당황제 이세민이 안시성 앞에 와 있다. “백제군 대장이 누구라고 했느냐?” 진막 안에서 이세민이 묻자 우성문이 먼저 대답했다. “예, 은솔 벼슬의 계백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놈이 동쪽의 백제령 출신이라고 했던가?” “예, 연남군 출신입니다.” “으음, 거머리 같은 족속들.” 둘러앉은 장수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우성문에 이어서 당황제 이세민이 주력군을 이끌고 온지 열흘째, 어제는 30만 대군이 성을 둘러쌓고 하루종일 공성전(功城戰)을 펼쳤지만 사상자만 수천을 내고 물러났다. 안시성 안의 고구려 백제 연합군은 4만이 안 되고 주민은 3만여 명, 군민(軍民)이 힘을 합쳤다고 하지만 하루 이틀에 함락시킬 작정이었는데 만만치가 않다. 이세민이 머리를 돌려 요동총독 서위를 보았다. “그놈의 용병술이 대단한가?” “백제왕의 총애를 받는 무장(武將)이라고 합니다.” “백제왕이 총신을 연개소문한테 보낸 것이군.” “예, 연개소문과 백제왕 의자가 뜻이 맞은 것입니다.” “두 놈이 동맹을 맺고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말인가?” 서위가 숨만 삼켰고 둘러선 장수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당(唐)도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 첩자를 보내거나 심어놓은 간자(間者)를 통해 양국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이세민이 물었다. “서위, 그대는 양광시대에도 장군을 지냈으니 잘 알 것이다. 양광이 고구려에 친정(親征)한 것과 내가 친정을 한 것이 무엇이 다르냐?” 서위가 머리를 들었다. 양광(楊廣)은 수(隋)의 양제(煬帝)를 말한다. 서위는 이때 65세, 노신(老臣)이다. “폐하, 양광은 말년에 황음무도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었지만 폐하는 성군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다른 점입니다.” “두 번째 다른 점도 있는가?” “예, 당군(唐軍)은 수군(隋軍)에 비하여 기동력이 강하고 전의(戰意)가 투철하며 용병입니다. 수는 농민을 끌어모아 숫자만 채운 잡군이었습니다.” “또 있는가?” “예, 그 당시의 고구려는 영양왕이 을지문덕과 함께 수군을 맞았으나 지금은 연개소문이 정권을 탈취하여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 대당(大唐)과 대적하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고구려 민심은 연개소문을 떠나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안시성주 양만춘을 회유할 수는 없느냐?” 그때 서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이세민이 말을 이었다. “고구려는 대국(大國)이다. 당과 맞설 대국이 있다면 천하에 고구려와 백제 두 왕국 뿐이다. 수의 양광은 오만했기 때문에 멸망했다. 나는 양광과 다른 방법을 쓰겠다.” 이세민이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양만춘에게 밀사를 보내라. 계백에게도 밀사를 보내 회유해보도록 하라. 연개소문에게 불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백에게는 담로의 왕으로 봉해준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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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6 17:28

[불멸의 백제] (144) 7장 전쟁 20

난전(亂戰), 7천의 당군을 5천의 백제군이 어지럽게 물어뜯었다. “백제군 대덕 윤창이 당의 장수를 베어 죽였노라!” 가끔 소리쳐서 무공을 뽐내는 장수가 있다. “군사 막태가 은투구를 쓴 장수의 목을 베고 머리통을 차지했다!” 그때마다 함성이 울렸다. 당군 측에서도 외침이 울렸지만 이미 백제군에 밀려 사분오열이 된 상태, 백제군은 소규모 기마대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당군은 이리 몰리고 저리 기는 상황이다. “당군 중심의 장수를 베었다!” 외침이 일어났을 때는 한식경쯤이 지난 후다. 그 이후부터 당군은 더욱 혼란에 휩싸여 흩어졌다. 다시 한식경이 지났을 때 계백이 소리쳤다. “회군!” 호각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면서 백제군이 대별(隊別)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진퇴가 재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무엇이? 석범이 죽었어? 유충도?” 버럭 소리친 우성문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던졌다. 술잔이 날아가 부장의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 깊은 밤 인시(오전 4시) 무렵이다. 목책 밖으로 나간 기마군 7천은 하나둘씩 귀환했는데 모두 2천여기밖에 안되었다. 5천기가 죽거나 황무지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말도 1천여기밖에 돌아오지 못했으니 참담한 패전이다. 더구나 장군 셋이 나가서 부장 하나만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감군 곽영탁이 말했다. “대장군, 기마군 3만 5천에서 7천을 잃었으나 2만 8천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사기에 영향이 있으니 오늘밤의 전황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과연.” 우성문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감군은 현명하시오.” “모두 폐하께 승전보를 바치려는 일념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곽명탁은 우성문이 이세민의 최측근인 줄 아는 것이다. 감군으로 우성문을 감독하는 입장이었지만 아부를 한다. 군사 7천쯤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안시성으로 돌아온 계백이 마당에서 내리지 않은 채 기마군을 점검했다. 백제군의 부사령 역할인 나솔 화청이 점검을 마치고 계백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고덕 하용과 문독 용비, 좌군 연신, 사현이 죽고 덕품(德品) 3명, 12품 이하 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212명이 전사했거나 귀환하지 못했고 24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계백이 듣기만 했고 화청의 말이 이어졌다. “은솔, 쉬게 하겠소.” “잘 싸웠어.” “힘껏 싸웠습니다.” 사방에 횃불을 켜 놓아서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펴고 화청이 말을 이었다. “잘 싸웠으니 사기가 일어날 것이오.” 화청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계백 옆에 말 없이 서있던 양만춘이 입을 열었다. “강군(强軍)이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양만춘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였소.” “과찬의 말씀이오.” “당군의 말 1천여필까지 끌고 오다니 백제군의 기동은 놀랍습니다.” 백제군은 성으로 돌아오면서 주인을 잃고 떠도는 당군의 말 1천여필을 전리품으로 끌고 온 것이다. 양만춘이 길게 숨을 품으면서 말했다. “지원군이 패퇴해서 사기가 떨어진 상황에 백제군의 대승은 가뭄에 내린 소낙비 같소. 대륙에 백제군의 용명을 떨치셨습니다.” 동맹군에게도 가볍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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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5 20:31

[불멸의 백제] (143) 7장 전쟁 19

밤하늘에 솟은 불화살 2개, 그리고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4번 울렸다. 황무지 끝쪽의 당군 목책을 돌아가던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가자! 적 기마군이 나왔다!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소리쳤다. 기마군의 방향은 북쪽이다! 불화살은 기마군이 나왔다는 표시고 호각소리 4번은 북쪽이다. 그것은 10개 기마부대가 들었을 테니 모두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이것이 백제군의 전략이다. 5백기씩 10개 부대로 나뉘어 사방의 진지를 어지럽게 밖에서 화공(火攻)을 퍼부은 후에 적이 나오면 순식간에 모이는 것이다. 불을 꺼라! 목책 밖에서 스쳐 지나면서 불화살을 쏜 터라 이쪽은 진막이 불에 탔다. 불화살은 날아오는 불덩이다. 소경이 아닌 이상 불덩이에 맞는 군사는 없다. 진막과 쌓아놓은 군량, 모아놓은 말떼를 겨냥하고 쏘아서 어떤 부대는 말떼가 목책 밖으로 달아났다. 당군의 진영은 혼란에 휩싸였지만 인명 피해는 적다. 기마군 7천이 나갔습니다! 부장 하나가 달려와 보고 했을 때는 화공이 시작된지 한식경쯤이 지난 후다. 장군 석범이 중랑장 유충, 빈우장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우성문이 머리만 끄덕였다. 물자 피해는 예상보다 적다. 목책 안의 진막 3할 정도가 불에 탔고 군량은 거의 잃지 않았다. 말떼도 5백여필이 도망쳤지만 소란에 비하면 약소하다. 그때 우성문이 호각소리를 또 들었다. 이번에는 3번이 계속 울린다. 저 호각소리가 귀에 익다. 우성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남쪽에서 들은 것 같은데. 머리를 기울였던 우성문이 혀를 찼다.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 부분이 있다. 기억력이다. 호각소리 4번이 물에만 밥을 삼키는 간격으로 세번째 울렸을 때 백제군 3천이 사방에서 당군을 압박했다. 사방에 퍼져있던 5백기씩의 백제 기동군이 호각소리를 듣고 모여든 것이다. 마치 피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떼와 같다. 피냄새는 호각이다. 네번째 울렸을 때는 8개대(隊) 4천 기마군이 달려들었고 다섯번째 울렸을 때의 광경은 장관이었다. 처음에 당군 중심부에 설치된 중군(中軍)의 거대한 진지에서 목책 밖으로 뛰어나온 기마군 7천은 우선 앞에서 불화살을 쏴대고 도망치던 백제 기마군 제4대(隊)를 쫓았다. 장덕 백용문이 이끄는 5백기다. 백용문의 기마대가 즉시 북쪽으로 도망치면서 밤하늘에 불화살을 쏘았고 호각을 불어 재낀 것이다. 그러나 제 4대는 미끼다. 뒤에서 물려고 달려오는 대어(大漁)를 끌고 가는 미끼다. 그래서 꼬리 부분이 다 뜯겼고 몸통까지 손상을 입었다. 5백 기마군중 2백여기가 희생되었다. 그 사이에 백용문은 당군을 굴곡이 많은 북쪽 황무지로 유인했고 그 사이에 계백까지 지휘하는 백제 기마군 10개대에 둘러싸이게 된 것이다. 쳐라! 적이 눈앞에 펼쳐지자 장졸의 눈이 뒤집혔다. 와앗! 외침과 탄성이 함께 일어났고 사방에서 백제군이 달려들었다. 같은 밤, 당군은 기마군 7천의 대군이다. 7천이 한개의 목표로 돌입하면 10만도 깨뜨릴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양상이다. 7천 기마군은 목표를 잃었고 사방 열 군데에서 물어 뜯기기 시작했다. 시력을 잃은 고래가 10마리의 상어에게 물어뜯기는 것과 같다. 같은 밤, 대륙에서 피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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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4 19:36

[더위 탈출, 문화체험] ③ 심야 책방 - 잠못 이루는 밤…독서 삼매경 빠져볼까 새로운 세상속으로 '풍덩'

폭염이 낮밤을 잊은 채 기승이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룬다면 심야 책방으로 향하는 것은 어떨까. 전주 심야 문학서점 L의 서재 책방지기는 책은 역시 밤과 궁합이 맞다고 했다. 주변이 모두 침묵 속으로 빠져들 때,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보자. △매달 마지막 금요일 심야 책방의 날 야밤에 재미난 일을 꿈꾸는 밤도깨비들은 오는 27일을 놓치지 말자. 문화체육관광부가 2018 책의 해를 맞아 심야 책방의 날을 마련한 것. 전북에서는 군산 한길문고, 익산 호남문고, 전주 책방 토닥토닥, 전주 책애바라 등 4곳이 매주 금요일 밤 12시까지 문을 열고 시민들을 기다린다. 늦은 밤까지 시원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별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함께 읽기의 즐거움과 책의 새로운 매력을 나눌 수 있다. 저녁 10시에 전주 서부시장 청춘시전 내 서점 책애바라를 방문하면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며 책에 관한 수다를 나눌 수 있다. 책을 사면 에코백을 증정하고, 읽지 않는 중고 책을 가져오면 동일한 가격대의 중고 책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책을 사거나 읽지 않아도 일단 서점에 오면 이득이다. 무료로 부채를 나눠주고, 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면 추첨해 상품도 준다. 미션카드를 작성하면 볼펜 책갈피를 증정한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책방 토닥토닥은 여름을 주제로 한 책을 모아 여름의 맛 기획전을 열었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랠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도 한다. 군산 한길문고에서는 맥주로 목도 축이는 책맥파티가 열린다. 청소년은 아이스티를 마실 수 있다. 익산 호남문고에서는 책을 구매하면 에코백이나 책갈피를 증정한다. 심야 책방의 날은 하반기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진행된다. △낮에도 열지만 밤에도 특별한 서점들 전주 주택가에 있는 L의 서재는 심야 문학서점이다. 낮에도 문을 열지만 밤 8시부터 11시까지는 책방지기(대표)인 이재규 씨가 직접 독자를 맞는다. 책을 추천해주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길목이 아님에도 일부러 찾는 단골이 상당하다. 이 대표는 밤은 다른 차원으로 훌쩍 건너뛰는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라며 밤 사이 어느 한 소설가에게 푹 빠져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앞에 위치한 북스포즈도 매달 한 번씩 새벽 3시까지 운영한다. 78월에는 열대야로 한 달에 두 번으로 늘렸다. 매번 콘셉트를 달리한다. 밤 11시 30분까지 자유롭게 독서를 한 후 그날 주제에 맞춰 단체 대화를 시작한다. 오는 27일에는 만화를 주제로 새벽 2시까지 이야기한다. 각자 좋아하는 만화책을 가져와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24 19:36

[불멸의 백제] (142) 7장 전쟁 18

“경비를 배로 늘려라.” 우성문이 부장에게 지시했다. “사방에 목책을 쌓고 통로는 한 면에 한 곳만 만들어라. 적진 앞에 도착한 첫날에 대부분 야습을 당한다.” 우성문은 수십 번 전쟁을 치른 용장이다. 세월이 지나면 살아남은 용장(勇將)이 지장(智將)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른바 지용을 겸비한 장수가 되는 것이다. 우성문이 바로 그 예다. 19년 전,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이세민이 태자인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죽였을 때 우성문은 원길을 베어 죽였다. 이세민에게는 피보다도 진한 심복이다. 그때는 하루종일 싸워도 지치지 않았던 20대의 장수였지만 지금은 경륜까지 쌓은 대장군이다. 밤 해시 무렵,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우성문이 술에 취해 마악 잠이 들 무렵에 수선거리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 소리쳐 물었더니 곧 위사장이 진막 안으로 들어서서 보고했다. “적 정탐병들이 목책 밖을 지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 그놈들이 귀머거리에 장님이 아니다.” 그러나 우성문이 침상에서 일어나 비스듬히 앉았다. 진막의 불은 켜 놓아서 위사장의 긴장한 얼굴이 드러났다. “대장군, 사방의 목책 주위에 정탐병이 있습니다.” “사방에?” 우성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초저녁, 유시(6시) 경에 이곳 황무지에 도착해서 해시(10시)기 되었을 때까지 진(陣)의 목책 공사를 한 후에 마악 전군이 쉬고 있는 참이다. 10만 군사의 진은 사방 20여리에 걸쳐서 수십개의 진(陣)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우성문이 곧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안시성의 전 군사가 나와도 우리 진을 포위 못한다. 목책을 굳게 지키고 기마군을 보내 쫓아라.” 그때다. 밖에서 함성과 북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우성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만큼 소음이 컸기 때문이다. “무엇이냐!” 우성문이 소리쳤을 때 진막 안으로 당직 사령이 들어섰다. “대장군! 화공이요!” 소리친 사령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놈들이 사방에서 불화살을 쏩니다!” “쏘아라!” 화청이 소리치고는 달리는 말에서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화살촉에 기름뭉치를 낀 불화살이 어둠속을 날아갔다. 밤하늘에 수백대의 불화살이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당군 진지로 쏟아졌다. 목책 밖을 내달리면서 쏘는 불화살이다. 벌써 진막 10여개는 불이 붙어 화광이 치솟고 있다. 화청이 이끄는 5백기의 기마군이 당군 진지 하나를 지나 옆쪽 진지로 다가간다. 옆쪽 진지도 불길이 솟고 있었는데 이미 일대(一隊)의 백제 기마군이 불화살을 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백제 기마군은 각각 5백기씩 10대(隊)로 나뉘어져 당군의 진지를 밖에서 휩쓸고 지나간다. 한곳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당군 진지는 사방으로 목책이 둘러쳐져 있어서 들어가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나오기도 어렵다. 겨우 서너명이 들락일 수 있도록 출구가 좁은데다 4방에 각각 하나씩만 출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기마군이 나온다!” 외침소리가 들렸을 때는 진지 10여 곳에서 화광이 충천했을 때였다. 중군(中軍) 진영에서 일대의 기마군이 쏟아져 나와 백제군을 쫓기 시작했다. 기세가 사납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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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3 20:01

[불멸의 백제] (141) 7장 전쟁 17

근래의 3백년 동안 사마씨(氏)의 동진(東晉)이 겨우 1백년 간 왕조를 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북방의 5개 이민족은 130년간에 걸쳐 16개 왕조를 세웠으니 매년 전쟁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양만춘의 목소리에 열기가 띠었다. 허나 고구려, 백제는 이미 대국(大國)으로 600년이 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소. 대륙 북방과 동방을 차지한 고구려, 백제가 천하를 통일할 기반이 갖춰진 것과 같습니다. 과연. 감동한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왕국의 역사는 연륜(年輪)과 같다. 나이든 고목처럼 뿌리가 깊게 번지고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잎이 번성한다. 중원의 역사는 어떤가. 천하를 통일했다는 수(隨)는 대륙의 중부와 남부만 소유했는데도 겨우 3대 37년에 멸망했고 그 뒤를 이은 당(唐)은 이제 30년도 안 된다. 백제, 고구려는 단일민족으로 1천만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수십개 이민족과 왕국을 조합한 당은 인구가 4천만 남짓이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날 밤 백제, 고구려 양국의 장수들은 대취했다. 사기가 충천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날 오전, 안시성 동북방 50리 지점의 황무지를 통과하던 안시성의 지원군 5만이 매복하고 있던 당군(唐軍)의 기습을 받았다. 고구려군을 이끌던 고성군, 고영모 두 대장군이 필사적으로 응전했지만 대패하고 군사는 사분오열이 되었다. 안시성의 지원군은 먼저 달려온 백제군 5천뿐이었다. 패잔병의 전갈을 들은 양만춘이 비장한 표정으로 계백에게 말했다. 장군, 당군이 요동성, 백암성을 함락시키고 이제 지원군까지 패퇴시켰으니 사기가 충천해 있을 것이오. 묘책이 없겠습니까?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제가 백제군을 이끌고 당군을 기습하고 돌아오지요. 성루에 서서 앞쪽을 응시하는 장졸들은 곧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구름을 보았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곧 당의 주력군이 오기 전에 기습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나가서 북쪽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미 성 밖 지리는 눈에 익혀둔 계백이다. 양만춘이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기마군 얼마를 끌고 가실 겁니까? 5천을 다 끌고 갑니다. 계백이 손을 눈 위에 붙이고 태양을 보았다. 오후 미시(2시) 무렵이다. 주위에 둘러선 장수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아직 당군의 전력은 알 수가 없다. 밤에 야습을 하겠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돌려 양만춘을 보았다. 전장에 도착한 날은 진지가 허술한 법입니다. 그 첫날 밤에 적진을 흔들어 놓지요. 담로에서 여러번 당군과 접전 해보셨을 테니 맡기겠습니다. 당군은 이세민이 서북방 이민족의 전술을 자주 쓰는 바람에 이제는 밤에 기동하는 적이 드뭅니다. 허어. 감탄한 양만춘이 계백을 보았다. 이세민이 동생의 처를 빼앗아서 황후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선비족 풍습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하더니 전쟁도 선비족 전술을 쓰는군요. 만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양만춘이 아직 20대인 계백에게 점점 진심으로 감동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계백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대륙의 한족도 곧 백제, 고구려 족(族)의 지배하에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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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2 19:25

[더위 탈출, 문화체험] ① 필사 -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는 즐거움…잡생각 싹~ 우울증도 이겨냈어요"

예년보다 일찍 물러난 장마에 연일 불볕더위다. 얼굴은 불그죽죽, 몸은 축 늘어진다. 하지만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폭염과 열대야는 한 달 이상 이어질 예정.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자. 이 여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을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사나흘 주기로 울리는 폭염특보야생진드기 안내 문자에 에어컨 앞이 유일한 안식처인 요즘이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 곁에서, 사각사각 연필심 소리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필사(筆寫). 실내에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고, 정적이지만 활력은 큰 문화 활동이다. 독서보다 접근하기 쉽고 우리 말씨의 매력은 더 깊게 다가온다. 김미숙, 김은주, 최경아, 이경미 씨 등 시민 30여 명은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전주 최명희문학관에서 소설 <혼불>을 필사하고 있다. 필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대부분인데 벌써 4개월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교육청과 최명희문학관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매주 목요일 소설 <혼불>에 대한 강연을 듣고 함께 필사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분량을 채웠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시 등을 베껴 쓰는 필사는 눈으로 읽었을 때 놓치기 쉬운 좋은 글귀나 고운 우리말을 되새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독서에 비해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만 한다면 저자의 의도, 감성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필사를 질적 독서라고 일컫는 이유다. 특히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질박한 사투리와 순수한 우리말을 아름답게 녹여 전라도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살필 수 있다. 방정임(56) 씨는 <혼불> 필사를 하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많은 미사여구를 배웠다며 언어의 기적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필사는 정적인 활동인 것 같지만 삶의 활력이 된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여름, 명상하듯 필사를 하면 마음이 꽉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낍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는 즐거움은 시름을 잊게 할 정도예요. 더운 날 땀 흘려 몸을 쓰지 않아도 성취감이 큰 문화 활동이어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박정미51) 일부 참여자는 활력을 넘어 치유의 효과도 얻었다. 김미숙(54) 씨는 필사를 하면서 갱년기 우울증을 물리쳤다며 글자를 옮겨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이겨냈다거나 집에서 필사하면 대화거리가 생겨 가족 간의 관계도 돈독해졌다는 참여자도 많았다. 최근 울산에서 전주로 옮겨 온 전선경 (43)씨는 낯선 새 터전에서 위로가 되는 든든한 친구를 얻었다. 자투리 시간을 틈틈이 활용해 즐기는 것도 필사의 큰 장점이다.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은데, 이 시간을 모아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또 모여서 함께 하면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지만 혼자서도 쉽게 시작할 수 있어 인기가 있다. 지난해부터 필사 책이 베스트셀러 안에 꾸준히 들고 있으니 말이다.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닿는 단어와 문장을 쓰다 보면 펜과 종이의 세계, 글쓰기에 대한 욕심도 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22 19:25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꿈으로 가는 기차 - 장은영

나는 지금 플랫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기찻길 옆에 붉게 피어 있는 칸나가 내 마음처럼 화사하다. 오늘만큼은 잡다한 일상을 벗고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난다. 오래 미뤄둔 숙제와 같았던 내 꿈을 키우기 위해 나는 기차를 탈 것이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하며 쓴 원고를 떠올린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오늘은 얼마나 쓴소리를 쏟아낼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기차가 곧 도착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가슴이 뛴다. 빛나던 젊음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세월의 무게에 치인 내 마음에도 열정의 불꽃이 피어남을 느낀다. 멀리서 기찻길을 따라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기적 소리가 들린다. 군데군데 섬처럼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홈으로 모여든다. 바람이 분다. 빠르게 달려오는 기차가 내 앞을 스쳐 지나자 내 몸이 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바람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떠오른다. 단발머리를 하고 흰 칼라를 달던 여고 시절, 나는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다. 하루에 세 번 왕래하는 완행열차는 아직도 별빛이 총총거리는 새벽에 출발했다가, 땅거미가 어둑어둑 그림자 닻을 내리고 저녁 별이 총총 박히는 밤까지, 덜컹거리며 기찻길 위를 달리곤 했다. 시골 중학교에서 낯선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나는 정든 친구들을 떠나왔다는 것 때문에 늘 외로웠다.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차 말수도 적어졌다. 이런 나를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가 이 기차였다. 정읍에서 익산까지 운행되고, 주 고객이 학생인 이 기차에는,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를 전통이 하나 있었다. 익산에는 남학교가 다섯 개, 여학교가 네 개였다. 기차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각 학교별로 열차 객실 한 칸씩을 차지했다. 수가 적은 여학생들은 여학생 칸에 탔는데, 등교할 때는 맨 앞 칸, 하교할 때는 맨 뒤 칸으로 정해져 있었다. 남학생 객실은 각 칸마다 통학반장이라는 게 있어 규율도 엄했다. 입시철엔 돈을 걷어 후배에게 엿을 사주고 선배의 졸업식 인사치레도 했다. 그러나 여러 학교가 모여서 함께 가는 여학생 칸에서는 통학반장을 뽑을 수가 없었다. 이 기차를 놓치면 학교에 결석하고 하루를 쉬는 수밖에 없는데도 난 언제나 늑장을 부리다가 겨우겨우 기차에 오르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늦게 집에서 나오는 바람에 맨 앞 칸인 여학생 칸에 미처 탈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이라 할 수 없이 아무 칸이나 올라탔는데 온통 새카만 남학생들의 교복과 상고머리가 보였다. 나는 눈을 어디다 둘 줄 몰라 얼굴만 빨개졌다. 가슴은 쉴 새 없이 콩닥콩닥 뛰었다. 1분 정도 정차하는 김제역이 어서 오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드디어 기차가 김제역에 서자마자 뛰어내려 여학생 칸으로 달려 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아이들 앞에서 얘기했지만 부끄러움 때문에 한동안 혼자서 끙끙거렸다. 사춘기 소녀 때여서 그런지 여학생 칸은 언제나 왁자하고 시끄러웠다. 빙 둘러앉아 듣는 각 학교 선생님들의 흉과 남학생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는 웃음소리와 함께 섞여 길게 이어지곤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흰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까지 빗어 내리면서 칼라를 고쳐 다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겨울이면 나는 새벽 여섯 시 사십오 분에 출발하는 첫 기차를 타기 위해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치고 동동걸음을 쳤다. 새벽에 감아서 미처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역까지 걸어오는 동안 빳빳하게 얼었다. 곱은 손을 불며 기차에 오르면 따뜻한 온기에 몸이 녹아 나른해지곤 했다. 흔들거리는 기차에 앉아 어두웠던 세상이 서서히 밝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시간이 손에 잡힐 듯했다. 가로수가 빼어난 들길을 배경으로 떠오르던 해돋이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온통 하얗게 덮여 있던 겨울 산과 벌판, 그 부드러움과 고요함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시린 발을 기차의 히터로 녹이던 내 십 대의 마지막 시간들이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와 칙칙폭폭 기차 바퀴 소리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도시는 온통 회색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을씨년스럽고 춥기만 했던 역 광장에 서면 낯선 건물들에 주눅이 들었다. 이방인 같은 내 모습에 혼자 외로웠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먼 산 위로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물들었다. 주황빛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쉽게 정들 수 없는 도시와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숨 쉬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노트를 샀다. 그리고 표지에 꿈으로 가는 기차라고 썼다. 그날 이후 내 마음에 고이는 수많은 생각들이 종이 위에서 살아났다. 기차가 멈추자 나는 서둘러 기차에 오른다. 서서히 기차가 출발한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원고를 꺼내 들고 작품 속 인물이 되어 사건 속에 빠져 본다. 하지만 쉽게 풀리지가 않는다. 깊은 숨을 내쉬다 창밖을 보니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찬란한 햇빛 사이로 초록이 짙은 나뭇잎이 아름답다. 찌푸렸던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지금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를 타고 있지 않은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언젠가 나는 멋지게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장은영(동화작가) *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장편동화 <마음을 배달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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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0 12:35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9)동냥 - 스님이 곡식 얻으러 다니며 흔들던 '동령'

거지가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를 뜻하는 ‘동냥’은 원래 불교 용어 동령(動鈴)에서 나온 말이다. 동령(요령을 흔들다)이라는 말을 비하한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스님들이 걸식할 때 지금처럼 목탁을 치는 것이 아니라 요령을 흔들며 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령’은 원래 금강령을 가리키는 말인데, 금강령이란 옛날 불교 의식에서 쓰던 도구로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더욱 강하게 일으키기 위해서 흔들었다. 도를 닦는 수행승이 곡식을 얻으려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는 일인 걸식은 스님들에게 수행의 한 방편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조선 중기 때부터 구걸의 의미로 변하기 시작했다. 성종 5년 경국대전이 완성돼 반포되면서 도성 안의 모든 염불소는 폐지되고, 스님들의 사대문 안 출입은 금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녀자가 절에 올라갈 경우에는 곤장 100대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을 두고 절에 가는 아녀자를 바람난 여인으로 취급하는 등 조선 왕조가 가시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일어나게 된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거지나 동냥아치가 돈이나 물건을 구걸하러 다니는 일, 또는 그렇게 얻은 물건이나 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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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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