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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다 담지 못한 그의 기록

사법고시가 내 삶에 있어 첫 번째 커다란 변화였다면, 인권변호사로의 변신은 그 두 번째였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변신은 굳은 각오나 비장한 결심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변화의 계기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과 양심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문을 당해 시커멓게 죽어버린 학생들의 발톱을 보았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분노였다. 나는 분노했고, 분노한 나의 양심은 그 가엾은 상처를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재야운동에 투신했다.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138쪽 변호사님이 매일 청원경찰에게 15도 인사를 해요. 늘 먼저 하시기 때문에 황송해서 벌써 밖에 나와 있어요. (노수현, 운전기사) 돈 없이 정치할 순 없나? 이게 나한테 가장 숙제다. 돈 안 드는 정치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냐. 그러면서 우시는 거예요. (서갑원, 노무현 캠프 참모)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노무현 대통령. 그런 그를 사랑해서 그를 닮아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깊이 숨겨놓았던 이야기로 빚어낸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 노무현을 바라봤다. 정치적, 사회적 측면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에 집중했다. 짧은 상영시간에 담지 못한 생생한 노무현에 대한 증언을 기록한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 유년기와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정치인 시절, 대통령 시절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기 위한 세 개의 변곡점이다. 그래서 이 감독은 노무현과 함께했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인물을 인터뷰이로 택했다. 노무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400여 명을 먼저 선별하고, 이 중에서 시대별로 대표할 만한 72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와 영상 자료만 A4용지 1500매, 1만2000분에 달한다. 그래서일까 이 감독은 109분의 영화보다 이 책이 노무현이라는 숲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이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미, 진정성, 정의, 시민의식, 가치, 초지일관, 용기, 책임감, 리더십 등으로 나눠 노무현이라는 숲길을 걷는다. 그의 변호사 시절 운전기사를 했던 노수현 씨는 민법 관련 책 두 권을 손에 쥐어주던, 손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을 불러 함께 식사하던 그와의 일화를 전한다. 직업이나 직급이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또 그는 부산지역 법조인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 이화춘 씨와 친구로 지내는 등 현실적으로 가장 먼 위치에 있는 적과도 마음을 열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다. 이 씨는 그를 목소리만 들어도 호감 가는 사람,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이외에도 정치인 시절, 대통령 시절 노무현에 관한 주변인들의 기억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그는 평생에 걸쳐 반칙과 특권, 권위주의를 척결하기 위해 싸웠다. 이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주인공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그의 마침표를 리와인드 해서 그 삶의 웅장했던 희망의 흐름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이창재 감독은 2004년부터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길 위에서>, <목숨> 등을 연출했다. 무당, 스님, 호스피스 등 관련 다큐를 통해 영성(靈性)을 탐구해오던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 다큐 제작을 결심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다큐 <노무현입니다>를 선보였다. 지은 책으로 <길 위에서>,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가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7.19 21:44

[불멸의 백제] (140) 7장 전쟁 16

“안시성이오!” 척후장이 달려와 소리쳤을 때는 해시(오후 10시)가 되어 갈 무렵이다. 기마군은 아침에 본대에서 떼어져 2백여 리를 주파한 후에 안시성에 가까워진 것이다. “10리 거리입니다!” 다가온 척후장이 말고삐를 채어 계백과 나란히 걸으면서 말을 이었다. “성 안으로 전령을 보냈으니 곧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뒤를 따르는 전령장에게 말했다. “대오를 정비하고 평보(平步)로!” 곧 전령이 앞뒤로 뛰면서 외침이 울렸고 기마군은 속보에서 평보로 걸음을 늦췄다. 잘 훈련된 기마군이다. 선봉, 중군, 후위, 3개 대(隊)로 나뉘어 행군을 하면서도 계백은 수시로 진용을 바꾸었다. 선봉을 기마군 1500, 중군을 2000, 후미 1500으로 나누었다가 1000, 3000, 1000으로 또는 500, 3500, 1000으로 달리면서 변형을 시키는 것이다. 아침에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십 번 진용을 바꾸고 수십 번 공격 연습을 했다. 이제는 진군(進軍) 자체가 공격이며 방어가 된다. 북소리, 날카롭게 부는 호적 소리 몇 번으로 대군이 움직이는 것이다. 기마군이 짙게 어둠이 덮인 산기슭을 돌아 갔을 때다. 다시 앞에서 대열이 흐트러지더니 다가오는 수십 기의 말굽소리가 울렸다. 그때 먼저 달려온 전령이 소리쳤다. “안시성주께서 오시오!” “성주가?” 성주가 성 밖까지 마중을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백이 말고삐를 고쳐 쥐었다. 곧 앞쪽에 불빛이 보이더니 횃불을 든 기마군 셋이 달려왔고 그 뒤를 일대의 기마대가 따라왔다. 그 중심에 선 장수가 안시성주인 것 같다. 계백이 말을 멈췄을 때 그쪽도 다가와 마신(馬身)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안시성주 양만춘이오!” 턱수염이 짙은 장수가 소리쳐 인사를 했다. 어둠속에서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백제국 은솔 계백이오! 대막리지 전하의 명으로 지원군으로 왔습니다.” 계백도 소리쳐 말하자 장수가 웃음 띤 얼굴로 다가와 말고삐를 틀었다. “잘 오셨소.” “이렇게 나와 주셔서 반갑습니다.” 이제 두 장수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안시성으로 다가간다. 곧 눈앞에 안시성의 위용이 드러났다. 성벽에 횃불을 켜 놓아서 윤곽이 다 드러났다. 깃발이 정연하게 꽂혀있고 군사들도 보인다. 그때 양만춘이 말했다. “대막리지께서 은솔이 떠나신 후에 지원군 3만을 더 보내셨다고 합니다.” “안시성의 수비군은 얼마나 됩니까?” 계백이 묻자 양만춘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기마군 5천에 보군 3만입니다. 이제 기마군 1만이 되었으니 공수(攻守)를 함께 운용할 수가 있겠소.” 안시성은 평지에 세워진 평성(平城)이다. 그러나 화강암으로 기반을 굳힌 성벽의 높이는 30자(9m), 성벽 위의 넓이가 15자(4.5m)나 되어서 성벽 위로 마차가 다닐 수가 있고 군사의 이동이 가능했다. 그날 밤, 안시성주 양만춘 이하 장수들과 백제군 장수들이 둘러앉아 주연이 벌어졌다. 성안의 넓은 청에는 1백 명 가까운 장수들이 모였다. 양만춘은 미리 소, 돼지, 양을 수백 마리 잡아서 군사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에 성안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요동성, 백암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에 위축되었던 고구려군에게 활기가 일어났다. 장수들끼리 인사를 마쳤을 때 술잔을 든 양만춘이 계백에게 말했다. “중원(中原)에 수많은 왕조가 일어났다가 수십 년만에 멸망을 했소.” 양만춘의 말이 이어졌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19 19:53

[불멸의 백제] (139) 7장 전쟁 ⑮

자, 그때 이세민은 어쩌고 있었는가? 요동성에 이어서 백암성까지 함락시킨 이세민은 그야말로 사기가 충천한 상태이다. 여기는 백암성 옆쪽 황무지에 세워놓은 황제의 진막 안이다. 백암성도 길이가 20여리나 되는 대성(大城)이지만 장안성의 황궁에 비하면 오두막이라 이세민은 원정 기간동안 진막을 치고 기거했다. 그 진막이 길이가 2백자(60m)요, 넓이도 그만하고 높이는 20자(6m)로 1백명이 들어가도 빈자리가 많은 임시궁전이다. 진막은 겉을 양가죽과 비단을 이중으로 겹대었고 침상은 원정용으로 특별 제작했다. 황제의 진막을 운반하는 데만 마차 1백대가 필요했고 거기에 시중드는 시녀가 10여 인이다. “이제 안시성만 거치면 평양성까지는 골짜기에서 물 쏟아지듯이 진군하게 된다.” 이세민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술기운이 오른 이세민의 얼굴빛이 붉다. “연개소문이 백제의 지원군과 함께 요동성으로 가려다가 안시성으로 방향을 돌리겠구나.” “예, 폐하. 지금 요동성 동쪽 1백여리 지점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안시성까지는 2백여리, 이곳에서도 그 정도의 거리다. 이세민이 앞쪽에 앉은 대장군 우성문에게 말했다. 우성문은 현무문의 난 때 공을 세운 이세민의 측근이다. “대장군, 그대가 10만 군사를 끌고 가서 안시성으로 오는 연개소문의 지원군을 격멸시켜라.” “예, 폐하.” “연개소문의 군사가 10만에서 15만이라고 하니 5만쯤을 안시성으로 보냈을 것이다.” “예,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겠습니다. 폐하.” “네가 안시성의 지원군을 차단하면 이번 전쟁의 1등공이 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차단하겠소.” “백제의 지원군 규모가 기마군 5천이라고 했으니 시늉만 낸 것이야.” 이세민이 원정군의 부장(副將)격인 요동총독 서위에게 물었다. 서위는 65세로 수양제의 장수로 고구려 원정에 나갔다가 요동성에서 패퇴한 전력이 있다. 33년 전이다. “총독, 그대는 백제군 담로와의 전쟁도 겪어보았을 것이다. 백제군의 전력이 어떠냐?” “소장이 백제군의 지원군 대장 계백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서위가 말하자 이세민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이 가늘어져 있다. 곧 서위의 말이 이어졌다. “백제령 담로 연남군의 기마대장을 지내다가 본국으로 간 놈인데 임기응변이 능하고 용맹합니다.” “그대의 칭찬을 받을만한가?” “예, 소장하고는 접전이 없었지만, 그자를 겪은 여러 무장한테서 들었습니다.” “기마군 5천을 이끈다니 선봉으로 쓰기는 적당하겠다.” 혼잣말한 이세민이 손짓을 하자 곧 옆쪽 장막이 젖혀지더니 휘황한 옷차림의 귀인(貴人)이 나타났다. 둘러앉은 장수들이 모두 머리를 숙였고 시녀 둘의 부축을 받은 귀인이 하늘거리며 다가와 이세민의 옆자리에 앉는다. 불빛을 받은 얼굴이 요염했다. 전장이었기 때문인지 더욱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녀다. 이세민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 여자는 이세민이 19년전 현무문의 난 때 죽인 동생 원길의 처 양씨(楊氏)다. 이세민은 동생의 처를 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전처인 은덕황후가 죽은 후로 양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했지만, 중신들이 반대해서 성사되지 않았다. 형제를 죽이고 그 처를 차지한 이세민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18 21:20

김영 시인 '월간문학상' 수상 안은순 소설가 '한국문협작가상'

▲ 김영 시인안은순 소설가 김영 시인(김제예총 회장)이 작품 변방의 발로 한국문인협회의 제7회 월간문학상을 수상했다. (사)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문효치)는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전국 문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매년 월간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한국문학백년상, 한국문학인상을 선정하고 있다. 월간문학상은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에 발표된 작품 중 문학적 가치가 두드러지는 작품을 선정해 수여한다. 1995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영 시인은 시집 <나비편지>, <다시 길눈 뜨다> 등을 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및 김제예총 회장을 맡아 지역 문학 발전과 김제 문학인들의 활동 토대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김제시민의 장 문화장, 독서대상(국무총리상), 전국공무원문예대전 행자부 장관상, 독서대상(대통령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전북 여류문학상, 석운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김제 출신의 안은순 소설가는 소설집 <하모니카>로 제15회 한국문협작가상을 받았다. 그는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가라앉는 오후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우리 춤추러 가요>, <지붕 위의 남자> 등을 냈으며,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크리스찬문학회, 펜문학회 등에 속해 있다. 시상식은 2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문학의 집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18 21:20

"혼돈의 시대, 잃어버린 어른의 표상"

▲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 최승범(87) 전북대 명예교수가 제22회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만해축전조직위원회(위원장 이관제동국대 대외부총장)가 주최하는 만해대상은 한평생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쳤던 만해 한용운의 사상과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평화, 실천, 문예 등 3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역대 수상자로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달라이 라마, 김대중 전 대통령, 신영복 작가 등이 있다. 최승범 교수는 3개 분야 중 만해문예대상(문예 부문)을 받았다. 고하 최승범 선생은 평생 시조와 수필을 가르쳐온 고고한 선비다. 현대시조의 태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수제자이기도 한 그는 40년간 모교인 전북대에 재직하면서 시조론과 수필론을 가르치며 항토예술 진흥에 헌신했다. 특히 최 교수가 1969년부터 발간한 <전북문학>은 지역 문학발전의 초석이 됐다. 최근까지도 시조, 수필, 고전문학 등에서 역사문학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저서들을 출간했다. 선비의 기품을 잘 담아낸 시조집 <설청>, 충효사상과 자연을 찬미하는 시조집 <여리오신 당신>, 현대시조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 <계절의 뒤란에서>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수필문학연구>를 비롯해 <한국의 소리를 찾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 <풍미기행>, <신전라박물지> 등이다. 최 교수는 평생 시조와 수필을 쓰면서 널리 후학을 양성해 온 공덕이 크다는 평가다. 진흙탕을 부유하는 혼돈의 시대에 잃어버린 어른의 표상을 올곧게 간직한 스승이라는 것이 수상의 이유다. 이와 함께 올해 만해평화대상에는 대만 불교단체이자 민간 구호봉사기구인 대만불교자제공덕회가 선정됐고, 실천대상은 조병국 홀트아동병원 명예원장이 받았다. 부르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교수가 최 교수와 공동으로 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제22회 만해대상 시상식은 8월 12일 오후 2시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진행된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7.18 21:20

[불멸의 백제] (138) 7장 전쟁 ⑮

요하를 건넌 당(唐)의 대군은 요동성을 함락시켰다. 수 양제가 함락시키지 못했던 요동성이다. 이번에는 당군의 기세가 맹렬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요동성 수비군이 방심했던 것이 함락의 원인이었다. 수 양제는 1백만이 넘는 대군을 지휘하여 요동성을 석달 이상 공략했다가 결국 패퇴했던 것이다. 요동성은 성벽 높이가 30자(9m)에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져서 포차의 돌에 맞아도 부서지지 않았고 구름사다리인 운제가 소용이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요동성주는 당군의 기만술에 속아 성밖으로 공격해 나왔다가 성문이 닫치기도 전에 당군이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어이없이 함락을 당했다. 요동성 옆의 백암성까지 함락당했을 때 당군의 사기는 충천했고 고구려군은 당황했다. 적을 가볍게 본 결과가 이것이다. 연개소문이 진막 안에서 말했다. 저녁 술시(8시) 무렵, 이곳은 요동성에서 1백여리 떨어진 황무지, 려제의 기마군 10만이 주둔하고 있는 터라 황무지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연개소문이 모여 앉은 1백여명의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요동성주가 수성(守城)만 했다면 1년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다. 요동성 안에는 7만 가까운 병사가 있었던 것이다. 7만으로 1백만의 공격도 막아낼 수가 있다. 이세민은 10만의 병력으로 요동성을 공격 시켰다가 사흘안에 함락시켰다.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더라도 성을 함락시키려면 최소한으로 수비군의 3배 이상의 병력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이세민이 30만을 다 풀었어도 요동성은 견딜 수가 있었다. 그때 이번에 부장군(副將軍)으로 참전한 남부대인이며 막리지인 양성덕이 말했다. 안시성(安市城)이 당군의 진로(進路)에 있습니다. 안시성에서 당군을 저지시키면 됩니다. 연개소문이 머리를 들었다. 그렇다. 이세민을 그곳에서 막고 우리는 우회해서 장안성을 친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이 건무의 처단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다. 막리지인 연정토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왕의 부름을 받고도 오지 않았습니다. 대막리지 전하. 그놈이 건무의 측근이었지. 쓴웃음을 지은 연개소문의 시선이 계백을 스치고 지났다가 돌아왔다. 은솔, 그대가 가 주겠는가? 어디로 말씀입니까? 안시성으로 가주게. 가지요. 대번에 승낙한 계백이 말을 이었다. 지원군으로 가서 싸우겠습니다. 그대는 백제군 사령관이야. 양만춘의 휘하에서 지원군 역할은 맞지 않는다. 연개소문이 엄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대는 독전군(督戰軍) 사령으로 임명할테니 백제군을 이끌고 가서 양만춘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감독하라. 예, 대막리지. 기막힌 용인술이다. 양만춘은 고구려군 장수가 독전군으로 온다면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맹군인 백제군 장수가 기마군 5천을 이끌고 독원군 역할로 와서 독전을 한다면 부담이 없을 것이다.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양만춘을 알아. 그놈은 고구려를 배신할 놈은 아니야. 그대와 손발이 맞을 것이다. 내일 일찍 떠나지요. 당군을 격파하면 백제군을 이끌고 내게로 오게. 내가 장안성의 미녀를 다 모아 놓겠네. 연개소문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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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7 18:36

[불멸의 백제] (136) 7장 전쟁 ⑫

계백이 연개소문을 만난 것은 황산벌에서 출발한 지 열흘 후다. 평양성 남쪽 벌판에서 기다리던 연개소문이 계백의 인사를 받고 활짝 웃었다. 이보게 은솔, 백제군(軍)의 기동력이 뛰어나구만. 전령의 보고를 받고 서둘러 나왔다네. 치중대에 맞추느라 늦은 편입니다. 기마군만으로는 하루 4백리도 갈 수 있지만 군량을 실은 치중대까지 함께 움직이는 터라 그 절반 속도밖에 내지 못했던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까지 기마군이 발달하여 당(唐)에서는 3국(國)을 기마족이라고도 부른다. 휘하 장수들을 인사시킨 계백과 연개소문은 진막 안으로 들어섰다. 연개소문이 이끌고 온 고구려군 3만도 황야에 포진되어 있다. 1백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진막 안에는 고구려, 백제군 장수들이 둘러앉았다. 오후 유시(6시)무렵이다. 연개소문이 먼저 계백에게 말했다. 은솔,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김춘추가 이번에는 장안성에 갔다네. 아마 지금쯤 이세민을 만나고 나서 신라로 돌아가는 중일 거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연개소문을 보았다. 당에 가는 김춘추를 잡았다가 놓아 주었지요. 무슨 말인가? 놀란 연개소문이 눈을 치켜떴고 고구려 장수들이 웅성거렸다. 계백이 김춘추를 생포하고 의자왕 앞으로 끌고 간 후에 해상에서 놓아준 사연을 이야기하는 동안 진막 안은 탄성이 자주 일어났다. 김춘추가 헤어지기 전에 부사(副使) 일행을 처치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에서는 연개소문까지 신음을 뱉었다. 이윽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연개소문이 머리를 저었다. 죽였어야 했어. 나도, 백제왕께서도 실수를 한 것 같네. 여왕 다음에 비담이 신라왕으로 되는 것보다 김춘추가 낫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김춘추, 그놈이 나는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네. 정색한 연개소문이 흐려진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놈을 한신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수모도 견딜 놈이야. 그런 놈의 약속을 믿는 자가 결국은 바보가 되지. 그자의 목적은 손바닥만 한 땅덩이의 신라왕일 뿐입니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연개소문을 보았다. 대막리지께서는 신라보다 1백배나 더 큰 대륙을 딛고 계십니다. 대륙을 정벌하고 나시면 신라는 저절로 복속되어 올 것입니다. 그것이 백제왕 전하께서도 생각하신 것인가? 연개소문이 소리 내어 웃더니 그동안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자, 고구려 백제의 동맹군의 건승을 위하여 건배를 하세. 계백이 술잔을 들었고 둘러앉은 양국 장수들도 따라서 건배를 했다. 당황제 이세민은 대륙 동쪽과 북방을 지배하고 있는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킨 것이다. 수양제가 1백만 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에 나선 때가 서기 612년, 양제의 대업 7년째요 고구려 영양왕 23년째다. 그러나 고구려 을지문덕에 대패하고 총사령관 우문술은 목숨만 겨우 건졌다. 그것이 수의 패망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32년이 지난 서기 644년 당의 태종 18년째에 또다시 고구려 원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고구려, 백제를 멸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대륙 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7.15 20:03

[불멸의 백제] (135) 7장 전쟁 ⑪

숙소로 돌아온 김춘추가 김법민에게 말했다. “너, 이세민 아래쪽에 낮은 이치(李治)를 보았느냐?” “예, 아버님.” “돼지도 그런 돼지가 없더구나. 어쨌든 그놈이 다음 황제가 될테니 놈의 비위를 잘 맞춰주도록 해라.” “예, 아버님.” 김법민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이제 김법민은 이세민의 시종으로 발탁이 된 것이다. 김춘추가 긴 숨을 뱉었다. “그놈, 이세민이 한 말을 들었겠지? 달콤한 말을 늘어놓은 자는 진심이 가볍다는 말 말이다.” “예, 아버님.” “나는 그것이 수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세민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달콤한 말에 중독이 걸린 놈이다.” 김춘추의 눈빛이 강해졌다. “지금은 지금 당이 고구려와 전쟁을 할 시기가 아니다. 위징의 말대로 국력을 더 길렀다가 나서야 한다.” “……” “이세민은 이제 교만해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숙소의 방에는 둘 뿐이다. 이세민은 신라의 사신인 이찬 김춘추에게 영빈관도 내주지 않았다. 변방의 부족장이 공물을 바치려고 왔을 때 묵은 여관 한채를 정해주었을 뿐이다.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이세민이 30여만 대군을 이끌고 친정을 나간다고 하니 우리 신라한테는 잘된 일이야. 고구려와 백제가 당을 맞아 싸우느라고 신라를 넘볼 생각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예, 아버님.” “이세민이나 돼지 이치가 너한테 고구려 백제에 대해서 묻거든 그놈들 때문에 조공길이 막혔다고 하거라. 신라인은 당의 속령이 되는 것을 소원이라고 하고.” “예, 아버님.” 머리를 든 김법민이 김춘추를 보았다. “아버님, 당황제께 신라군이 고구려, 백제의 후방을 공격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지 않습니까? 아버님이 진두에 설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걱정이 됩니다.” “흐흐흐.” 짧게 웃은 김춘추가 곧 정색했다. “시늉만 내면 된다. 이세민이는 확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아.” “내가 이곳에 군관 셋을 남겨두고 갈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수시로 나에게 연락을 해야 된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너한테 대업(大業)을 맡겼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신라의 왕이 된다면 너는 그 뒤를 잇게 될 것이다.” 마침내 김춘추가 속심을 털어 놓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김법민은 긴장했다.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비담이 왕위를 노리고 있으니 그놈 일당과 한번은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야.” 비담은 상대등으로 신라 제1의 실력자다. 진골 왕족들의 모임인 화백회의의 수장이기도 한 것이다. 화백회의에서 차기 왕을 뽑는 터라 수장은 왕 다음의 서열이다. 김춘추가 김법민을 보았다. “네가 이세민의 시종으로 있으면 비담 일파가 당의 지원을 얻으려고 오가는 것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살피고나서 나한테 연락을 해라.” “예, 아버님.” 김법민이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장안성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김춘추 부자(父子)의 밀담은 계속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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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2 19:59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8) 갈매기살 - 횡경막 → 가로막, 가로매기, 갈매기살

고깃집에 가면 여러 부위의 고기 말고도 ‘갈매기살’이라는 고기가 있다. 이 갈매기살은 바다에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고기가 아니다. 이것은 돼지 내장의 한 부위, 즉 횡격막(橫膈膜)에 붙어 있는 고기이다. 횡격막은 포유류의 배와 가슴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폐의 호흡 운동을 돕는다. 이 ‘횡격막’을 우리말로는 ‘가로막’이라고 한다.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을 ‘가로막살’ 또는 ‘안창고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의 고기를 ‘가로막살’이라고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갈매기살’이라고 불렀다. 이 ‘갈매기살’이라는 명칭은 ‘가로막살’이라는 본래의 명칭에서 변형돼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가로막살’이었는데 후에 ‘가로마기살’로 변하였다. 다음으로 ‘가로마기살’이 ‘가로매기살’로 변하였고 이어서 ‘가로매기살’이 ‘갈매기살’로 변하였다. 왜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단지 ‘가로매기’가 ‘갈매기’와 비슷한 음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매기’의 어원을 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과 음이 비슷한 ‘갈매기’를 연계해 엉뚱하게 만들어낸 단어가 ‘갈매기살’인 것이다. 그러나 바다의 갈매기 고기는 먹어 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푸줏간에서 바다의 갈매기살을 먹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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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2 19:59

제품에 '예술적 감성'을 담아라

기업이 이윤에 목맨다고 치자. 그렇게 쌓은 생산성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나. 사는 일에 풍류를 더한다면 아무도 굶어 죽지 않는다. (크라운해태 윤영달 회장) 직원들의 AQ(Artistic Quotient예술가적 지수)를 높이는 예술경영을 강조하는 크라운해태 윤영달 회장. 그가 펼치는 예술경영의 이론과 실제를 풀어낸 해설서와 같은 책이 출간됐다. 조덕원 한국예술경영연구협회 회장과 이웅규이준철문임수 한국예술경영연구협회 회원의 공동 저서 <예술경영 리더십>. 윤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크라운제과가 부도났을 때 대금 연주로 국악을, 2005년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할 때 미술을 접했다고 한다. 해태제과 인수합병 시절,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회사 직원들을 하나로 묶은 방법도 미술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과자산업 쇠퇴기와 맞물려 예술경영의 필요성을 더 실감하고 판소리, 시조, 조각 등 각종 예술 창작 활동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의 AQ를 키워 제품 속에 예술적 의미를 담아내도록 지원한 것이다. 이 책은 △예술경영을 통한 리더십의 4가지 스타일 △예술경영의 실제 적용 방법 △GAQ 역량 극대화 방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는 예술경영 리더십 등 총 다섯 마당을 통해 크라운해태 예술경영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표 저자인 조덕원 한국예술경영연구협회 회장은 해태제과에서 20여 년, 크라운해태에서 10여 년을 근무해왔다. 현재 크라운해태 아트밸리 이사로 크라운해태의 예술경영을 전파하기 위해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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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2 19:59

비유와 상상력으로 바라본 세상

(상략) 경로당에 떡 돌리러 간/ 우리 할머니/ 찾으려면 한참이 걸린다// 할머니? 하고 부르자/ 휙 뒤를 돌아보는데// 빠글빠글 볶은 머리가/ 모두 우리 할머니 같다 ( 스프링 머리 일부)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게 보인다. 어쩌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어른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시인의 비유와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동시집이 나왔다. 하미경 시인의 <우산 고치는 청개구리>.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는 걸을 때마다 피고 지는 무릎 꽃이 되었고, 민들레는 봄이 머리에 찌르고 나온 노란 딱핀이 되었다. 연잎 위에 올라앉은 청개구리는 구멍 난 연잎 우산을 고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 시인은 사물 의인화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 꽃과 나무, 연필 깎기나 지우개 모두 사랑스러운 친구가 된다는 것. 비유와 상징, 다르게 보기를 통해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물에 말 걸기를 통해 그 마음을 이해하고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날의 기쁨, 자녀들을 통해 느낀 행복, 앞날에 대한 설렘을 동시로 쓰고 싶습니다. 하미경 시인은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14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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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주
  • 2018.07.12 19:59

교사 부부, 자동차로 발칸반도를 누비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발칸반도를 종횡무진 누비는 이야기.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를 거치는 25일간의 여정을 일기 형식으로 쓴 여행집이 출간됐다. 한준호, 김은주 부부의 <자동차로 떠나는 발칸반도 여행>은 비행기, 열차, 버스 등을 이용하는 일반 여행과 달리 자동차를 렌트해 발칸반도를 누빈 여행기다. 작가는 우리나라와 다른 유럽의 주유소 사용 방식, 교통 문화규칙 등 자동차 여행 정보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함께 교사로 근무하던 부부는 방학 때마다 배낭을 메고 외국으로 훌쩍 자유 여행을 떠난다. 재작년 여름엔 라오스, 재작년 겨울엔 남미, 작년 여름엔 미얀마, 작년 겨울엔 중남미를 등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의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 한국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잘 알지 못한다. 대신, 외국 생수 구매 시 주의할 사항 등 자유 여행을 통해 체득한 실전 지식은 풍부하다. 작가는 발칸반도 4개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경험을 맛깔나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발칸반도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아 생생하게 전달한다. 발칸반도 4개국별 도시의 이동 거리와 시간, 여행 코스, 숙소 이용 금액 등도 수록해 정보를 제공한다. 한준호, 김은주 부부는 이 책자가 단순히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기일 수도 있지만, 여행 경로와 방법 그리고 소소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 발칸반도 자유 여행,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지침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성 들여 집필했다고 말했다. 남편 한준호 씨는 임실 지사중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내 김은주 씨는 은퇴한 뒤 여행 플래너로 부부 여행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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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2 19:59

[불멸의 백제] (134) 7장 전쟁 ⑩

“네가 김춘추냐?” 당황제 이세민이 물었다. 장안성 안 황궁의 청은 넓다. 붉은색 기둥이 늘어선 청 바닥은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대리석을 깔았다. 오늘은 황제의 친정 준비 때문에 문무백관이 다 모였다. 수백명의 신하가 좌우로 갈라져서 고관(高官) 순(順)으로 늘어선 광경은 보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주고도 남는다. 화려한 장식,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청, 그러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때는 정관 18년, 태종 이세민이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태조 이연의 장남인 이승건, 막내아들 원길을 죽이고 황제가 된지 18년이 되었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지만 이세민은 당제국의 기초를 착실하게 닦았다. 그리고 이제 고구려 원정에 직접 나서려는 것이다. “예. 황제폐하.” 물음에 대답한 김춘추가 청 바닥에 부복했다. 뒤쪽의 김법민도 납작 엎드린다. 용상에 앉아있는 이세민과의 거리는 30보 정도. 김춘추는 이세민이 잡무를 처리 할 때까지 한시진 정도나 뒤에서 기다려야 했다. 16계단 위의 용상에 앉은 이세민이 김춘추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다가 백제 해적을 만나 조공품을 다 빼앗기고 관리들까지 죽었다고?” “예, 황제폐하. 백제 해적이 아니라 백제 수군(水軍)이었습니다.” 머리를 든 김춘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신(臣)은 황제폐하의 은덕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이렇게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세민이 한계단 아래쪽에 앉은 황태자 이치(李治)에게 말했다. “태자, 잘 들어라.” “예, 폐하.” 이치는 작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세민은 황자가 14명 있었는데 그중 정비인 문덕황후가 낳은 황자는 장남인 황태자 이승건과 넷째아들 태(泰), 아홉째아들 치(治)였다. 그런데 이승건이 다리 병신인데다 행동이 괴팍했고 동성애자여서 결국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아끼던 태를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자 이승건과 이태가 서로 다투는 바람에 마지못해서 치(治)를 황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것이 작년이다. 이세민이 말을 이었다. “저런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자는 진심이 가볍다. 주의해야 한다.” “예, 폐하.” 대답한 이치가 지그시 김춘추를 노려보았다. 그때 이세민이 김춘추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여왕은 문제가 많다. 여왕이 다스리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의 무시를 받아서 빈번하게 침략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사내놈들이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단 말이냐?” “황공합니다, 폐하. 밀서를 실은 배를 백제 수군이 침몰시켜서 소신이 직접 여왕의 말씀을 전합니다.” “말하라.” “신라가 당의 속령으로 천년만년 남기 위해서는 백제 고구려를 멸해야 됩니다. 통촉하시옵소서.” “그래서 내가 고구려를 징벌하려고 준비했지 않느냐? 고구려 다음은 백제다.” “대당(大唐)은 천하를 통일할 것이옵니다.” “네가 귀국하면 후방에서 백제, 고구려를 쳐라. 네가 신라군 주장(主將)으로 당과 호응하도록 해라.” “예, 폐하.” 김춘추가 뒤에 엎드린 김법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 자식을 폐하를 모시는 시동으로 부려주시옵소서. 그것이 제 충심(忠心)이오니 부디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이세민이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과연 충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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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1 17:36

[불멸의 백제] (133) 7장 전쟁 ⑨

황산벌에서 기마군 조련과 함께 출정 준비를 마친 계백의 5천 기마군은 엿새째 되는날 아침에 고구려로 출발했다. “은솔, 장졸들에게 중원의 지리를 읽히고 당군(唐軍)의 피맛을 보여줘라.” 황산벌까지 찾아온 의자가 계백에게 말했다. “곧 대륙이 우리 차지가 될테니까 말이다.” “예, 대왕. 명심하겠습니다.” 마상에서 절을 한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었다. 백제 기마군 5천기가 떠난다. 각각 예비마를 2필씩 끌고 있는 데다 치중대도 말이 끄는 수레로 따르고 있어서 마필만 2만필 가까운 터라 땅이 울린다. 첨병대, 선봉군, 중군(中軍), 후군, 치중대로 정연하게 구분된 기마군의 전진 속도는 빠르다. 백제, 고구려는 기마군이 발달되어서 하루에 300리씩 진군할 수가 있다. 백제군은 사흘만에 고구려 영토로 진입했고 엿새가 되는날 오후에 고구려 도성에서 30여리쯤 떨어진 들판에서 고구려군과 만났다. 고구려군 장수는 남부대인 양성덕 휘하에 기마군 3천여기를 이끌고 백제군을 맞으려고 기다린 것이다. “장군, 대막리지께서 요동으로 떠나셨소. 제가 장군을 대막리지께 안내하겠소.” 인사를 마친 양성덕이 말했다. 양성덕과는 지난번 고구려에 갔을 때 얼굴을 익힌 사이다. “요동으로 가시다니? 당군이 침입했습니까?” 장수들과 인사를 마친 계백이 양성덕의 안내를 받고 진막으로 들어와 물었다. “당의 정탐대가 수시로 들락이는 상황이라 국경의 주민들을 피란시키고 있지요.” 양성덕이 말을 이었다. “이세민이 30만 군사를 장안에서 출발시켰다고 합니다. 이세민의 친정이요.” 당황제 이세민이 직접 지휘한다는 말이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세민이 수양제의 전철을 밟으려고 하는군요.” “이 기회에 중원을 통일하겠다고 대막리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양성덕이 호기있게 말했다. “더구나 백제의 지원군까지 왔으니 천하통일은 눈앞에 왔습니다.” 곧 진막 안으로 양성덕이 준비한 술과 안주가 들어왔고 백제와 고구려 장수들이 어울려 주연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고 진막안은 떠들썩해졌다. 술잔을 든 양성덕이 계백에게 물었다. “은솔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뒤늦게 축하드리오.” “감사합니다. 대인께서도 막리지가 되셨더군요.” 양성덕은 연개소문의 심복이다. 한모금에 술을 삼킨 양성덕이 계백을 보았다. “신라가 등을 칠 여유는 없겠지요?” “경계는 하고 있습니다.” “김춘추를 잡았다가 놓아 주셨지요?” 양성덕이 묻자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 김춘추는 당의 도성인 장안성에 들어갔을 것이다. 다시 술잔을 든 양성덕이 따라 웃었다. “그 소식을 듣고 대막리지께서도 웃으셨습니다. 김춘추가 신라 왕으로는 적합한 인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대왕도 그러셨지요.” “비담이 신라왕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요. 김춘추는 사태가 불리하면 제 목숨을 살리려고 신라를 내놓을 위인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고구려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합병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백제는 합병에 김춘추가 유리하다고 보고있는 것이다. 김춘추는 당왕 이세민을 만나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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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0 20:36

[불멸의 백제] (132) 7장 전쟁 ⑧

“너는 은솔(恩率)이다.” 의자가 계백에게 말했다. 다음날 오전, 도성의 대왕전 안, 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계백의 인사를 받은 의자가 말한 것이다. 이미 성충과 흥수로부터 귀띔을 받은 계백이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대왕.” 성충은 사양하지 말라고 했다. 너는 은솔이 되고도 남으니 당당하게 받으라고도 했다.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받는구나. 상좌평이 그러라고 시키더냐?” “예, 대왕.” 도열해 앉은 백관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졌지만 성충은 물론 흥수, 의직 등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의자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색했다. “도성에 기마군 5천이 모일 것이다. 열흘 간 조련을 하고 나서 고구려로 떠나도록 하라.” “예, 대왕.” “너는 연남군 기마군 대장으로 당군(唐軍)과 접전을 한 경험이 많다. 그래서 선발한 것이다.” “예, 대왕.” “연개소문 공(公)에게 대백제군의 위용을 보이도록 하라.” 이제는 의자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이것이 백제 지원군 파견의 주목적인 것이다. 당(唐) 태종 이세민은 내부 정비를 마치고 숙원인 고구려 원정을 떠나려는 것이다. 중원을 통일한 수 양제가 대륙 북부를 지배하고 있는 고구려를 정복하여 천하통일을 이루려다가 패망했다. 이제 수를 이어받은 당이 다시 천하통일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을 통합하면 대략 2천만 인구가 된다. 수 양제가 중원을 통일했을 때의 인구가 대략 4800만이었다. 그것도 10여 개의 이민족까지 모은 숫자다. 북방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단일민족으로 2천만인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더라도 천하통일이 가능하다. 그날 밤부터 계백은 도성에서 50여리 떨어진 들판의 진막에서 야영을 했다. 이곳에 기마군 5천이 모이는 것이다. 계백의 부장이 된 나솔 윤진이 진막 밖에서 어둠이 덮인 들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왼쪽이 장동석성(壯洞石城)이며, 가운데 있는 곳이 웅치산성(熊峙山城), 오른쪽이 황령토성(黃嶺土城)입니다.” 윤진이 이 근처가 고향인 터라 말을 이었다. “이 3개 성이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지금은 허물어지고 보수를 안 해서 수비군 백여명씩만 남아 있습니다.” 계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에 산 윤곽만 드러난 산성들을 보았다. 도성 동쪽으로 가로막듯이 세워진 산성(山城)들이다. 계백이 앞쪽 들판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들판 이름이 뭔가?” “예, 황산벌이라고 합니다.” 계백은 3개 산성을 바라보며 서있다. 앞쪽에는 황산벌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계백이 윤진에게 지시했다. “나솔, 5천 군사를 각각 1500, 2000, 1500씩 나눠서 3개 산성에 주둔시키도록 하라.” “예, 은솔.” “주둔하면서 산성을 고치고 각 대별로 황산벌에 나와 기마군 훈련을 한다.” “예, 은솔.” 계백이 둘러선 장수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3개 대 대장은 윤진과 화청, 정찬이고 나는 정찬과 함께 중군을 맡겠다.” 계백이 손으로 3개 산성을 가리켰다. “나는 중심에 있는 웅치산성으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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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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