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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최아현 "'글 쓰는 사람'되는 꿈에 훨씬 더 가까워져"

산타할아버지가 실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올해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하게 잘해서 당선되었다기보다 앞으로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올해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덕에 저는 그 꿈에 훨씬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꿈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변해가겠지요. 그저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마음에 포근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것으로 알고 꾸준히 열심히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올해 겨울 어떤 글을 쓰고 싶냐는 물음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장 보통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가까이서 보통의 상상을 하게 해주신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모든 가족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곁에는 몇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채워나가며 더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아침 대화 - 최아현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신호등의 빨간불도 무시하고 달렸다. 딸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알람을 잊는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들이받듯 편의점 문을 열어젖혔다.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아르바이트생인 다이가 인사를 건네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꾸할 정신도 아니었다.별일 아냐.사실은 별일이었고, 아주 큰일이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하늘은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곧 편의점 뒤로 가서 지난주 CCTV를 확인했다. 까득까득 손톱이 이에 갈리는 소리가 났다. 어릴 때, 엄마에게 혼쭐이 나며 고친 습관이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튀어나왔다. 내가 편의점을 나서는 것이 화면에 잡힐 때쯤 다이가 들어왔다.다이를 보며 딸의 일은 다이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말도 잘 듣고 모난 곳 없이 자라던 딸애가 비행 따위 저지를 리 없어. 아주 잠깐이지만, 평화가 찾아왔다. 일의 시작은 건빵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건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자명종 소리가 집에 가득했다. 매일 듣는 익숙한 소리지만 가끔 싫을 때가 있다. 팔꿈치를 반쯤 펴서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그래도 이 소리에 깼으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이번 한 주도 바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찌뿌듯했다.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눈을 비비며 커튼을 열었다. 하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비가 내린 흔적도 없었다. 한기 가득한 바람이 방을 휘돌았다. 이불을 개며 어제 몸 쓰는 일을 했었나, 생각했다. 딱히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는 결론을 얻은 뒤 곧 방에서 나갔다. 더 있다가는 딸애의 아침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뜬금없이 어제와 다른 몸 상태에 서러웠다. 늙긴 늙었나.딸애가 중학교에 다닐 때, 남편과 헤어졌다. 세상은 이혼 같은 건 흉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승진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골목 어귀에 편의점을 차렸다. 사계절을 지내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나는 젊음의 매 순간을 자리를 잡는 데 써 왔는지도 모른다. 졸업과 취업, 아내와 엄마, 딸과 며느리잡다한 추억 더듬기에 빠져 있는 나를 질책하듯 칼을 쥔 손이 미끄러졌다. 이런 날이 거의 없는데 결국 왼손 검지를 베고 말았다. 툭, 몽우리 진 피 한 방울이 도마로 떨어졌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검붉은 피는 금세 속을 메스껍게 했다. 딸애의 아침을 차려줄 만큼은 썰어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식탁에 앉은 딸애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드레싱은 뭐로 줄까?그냥 엄마 먹던 거 먹을게요.냉장고 문을 열고 서성이다 참깨 드레싱을 꺼냈다. 접시 위로 흐르는 드레싱을 물끄러미 보던 딸애가 엄마 다쳤어요?라고 물었다. 드레싱을 달라던 목소리와 감정 변화 하나 없었다.양배추 썰다가.조심해요.딸애의 말을 진심 어린 걱정으로 듣는다. 상투적인 톤으로 으레 예의처럼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 같은 건 상투적인 톤이어도 좋다. 오가는 말이 있다는 건 여전히 가족애가 오가는 것이다. 오히려 딸애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관계의 끝은 대체로 대화가 없을 때 끝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날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아침 식탁에서 딸애와 나는 꼭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학원 빼먹지 말고.알아요.딴짓하지 말고, 학원 차 놓치지 않게 미리 가서 기다리고, 이상한 아이들하고 놀지 말고.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네. 근데 엄마, 이 이야기 한 달째 하는 거 아시죠?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요즘에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 잘못이 없어도 운이 나쁘면 잘못한 게 되기도 하니까.알겠어요. 학교 다녀올게요.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는 것으로 딸애와의 아침이 끝났다. 입맛이 없었는지 샐러드를 반이나 남긴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느리게 걸을 거면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했는데, 고등학교에 간 뒤로는 그런 날이 거의 없다. 가끔 딸애가 놓고 가는 것이 있는 날에나 돌아서 다시 챙겨 가곤 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 보이는데 그게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우리 모녀가 이렇게 삭막한 사이는 아니었다. 딸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전주 팔달로에서 촛불을 들곤 했다. 세상은 한참 먹는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보며 딸애가 물었다.엄마, 왜 촛불을 들고 있어?나는 아이에게 불의는 참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 말을 후회한 건 딸애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딸애는 나의 가르침을 발판 삼아 촛불을 들고 걸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딸애에게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말은 참았어야 했다. 어른이 돼서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을 잘 듣고 자라던 딸애는 거리로 나갔다.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고서 기어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그해에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다쳤다. 내 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아이가 더는 다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의 일이었고, 책임이었다.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이가 다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여전히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반지를 쓰다듬는 나는 결국 딸애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반지를 쓰다듬으며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 딸인데. 그러다 문득 식탁을 보며 다시 곱씹는다. 나는 우리 딸애의 엄마인데.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준 적 없었다. 동시에 누구나 나에게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나는 보호자로서 딸애를 더 다치게 놔둘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바쁘게 만들기로 했다. 딸의 학원을 두 배로 늘렸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길은 항상 동행했다. 그쯤부터 아침 식사에서 소란스럽던 아이의 재잘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남긴 샐러드를 씹으며 식탁을 정리했다. 혼자 남은 집에는 내가 움직이는 곳에서만 소리가 났다. 꾸역꾸역 샐러드가 씹혔고,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이 부딪쳤다. 매스꺼운 배를 쓰다듬으며 변기에 앉았다. 시선이 내 속옷에 닿았고,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가족이라곤 둘밖에 없는 집에 혼자 남으면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에 덜렁 혼자 떨어진 기분. 혼자는 늘 낯설었다. 욕실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위험한 순간에 세상의 누구도 도와주지 못하는 곳은 혼자 남은 내 집뿐이었다.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오래도록 건강해야 한다.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면 됐다.엄마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새내기 대학생이던 나는 동아리며 학생운동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늘 늦는 외동딸 탓에 엄마는 혼자였다. 엄마는 내가 늦는 것을 못마땅해 했고, 흙먼지를 달고 들어오는 내 손을 잡으며 내일은 학교가 끝나는 대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엄마는 항상 내 어깨에 묻은 흙먼지만 털었다. 대신 내 몸에서 나는 술과 담배 냄새는 모른 척했다. 계속해서 늦지 말라는 당부만 반복할 뿐, 엄마는 꼭 후각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지막 한마디는 늘 같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일이니 그만두라고. 그러나 무엇이 무서웠는지 말하지 않았다.엄마는 끝난 줄 알았던 달거리를 다시 시작한다며 진통제를 사서 일찍 들어오라고 일렀다. 엄마를 평생토록 괴롭힌 것은 생리통이었다. 으레 달거리를 시작하면 배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흙먼지를 뱉으며 들어왔을 때, 집은 꼭 나 하나 남은 것처럼 조용했다. 엄마가 달려 나와 손을 감싸 쥐든, 진통제를 찾든, 혹은 이제는 좀 그만하라며 윽박을 질렀어야 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에 집을 뒤졌다.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피를 잔뜩 쏟고 쓰러져 있었다. 달거리가 멈췄다며 지긋지긋한 배앓이를 안 해서 좋다던 엄마는 이제 공장을 닫는다고 했다. 여자구실은 이제 끝이라고 했다. 쓰러진 엄마를 봤을 때 나는 여자구실을 끝내고, 공장을 닫는다는 건 삶도 끝나 버리는 것이라고 배워 버렸다. 엄마가 쏟아 내던 말들이 머릿속에 반복됐다.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곧이어 들어온 아빠가 엄마를 짊어지고 병원으로 내달렸고, 머지않아 엄마는 나와, 생리통과 이별했다.그리고 나는 오늘 월경을 다시 시작했다.여전히 몸은 피곤했고 오늘따라 하루가 조금씩 뒤틀린 기분이었다. 월요일이면 가는 마트에서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길. 손가락에서 다시 피가 났다. 상처가 아문 줄 알았는데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다시 찢어진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상자를 뒤적여 밴드를 붙였다. 해가 간당간당 빌딩 사이에 걸릴 때가 되어서야 집안일을 마쳤다. 손가락의 피도 멎었다. 나이를 먹어 가는 내내 혼자인 것조차 익숙해지지 못하고 다시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았다.이것저것 감상에 젖어 있다가 시간이 조금 늦어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분주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젠 괜찮았다. 이 주 전부터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더 구했기 때문이다. 배가 알싸하게 아파 왔다. 허리도 지끈거렸고 횡단보도에 선 나를 받치고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소화 기능까지 느려진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 이후에 먹은 것이라곤 달걀 한 알이었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횡단보도와 도로에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근엄히 붉은빛을 내며 멈추라 말하는 신호등 때문에 나는 그 건너편에 서 있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좌우를 살피고 빨간불로 가득한 횡단보도를 건넜다. 남자가 막 횡단보도에 발을 들이자 거짓말처럼 우회전을 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차가 지나길 기다렸다. 그제야 파란불이 켜졌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대로 하면 될 것을.아르바이트생은 대학생을 구할 생각이었다. 다이가 찾아와 사정을 말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단호히 거절하겠지만, 편의점에 와서 종종 폐지를 담아 가는 할머니의 손녀딸이라니 마음이 약해졌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오는 다이가 안쓰럽고, 기특하고, 또 비슷한 또래의 딸애가 생각났다.편의점 문을 열자 진득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네에서 노는 한량 중 하나였다. 한량은 자신의 딸보다 어릴 것 같은 다이 앞에 술 두 병을 놓고, 계산대를 두들기고 있었다.내가 여기 사장이랑 잘 안다고!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볼게요.다이가 두려움에 손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술 냄새를 찾아갔다.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저게, 달랑 백 원 모자란다고 지랄이네.알겠어요. 다음에 가져다주세요.한량이 나가고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한참 동안 편의점을 환기해야 했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다이는 원망하는 말투로 나를 나무랐다.저런 손님, 앞으로 어떻게 해요?내가 원칙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해.방금 저 아저씬 꼭 때릴 것처럼 굴었어요. 무서웠단 말이에요.계속 소란 피우면 경찰을 불러.다이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재차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으레 사회에는 이런 일이 많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며 다이를 다독이며 덧붙였다.네가 물렁하게 굴어서 그래.나는 다이 탓을 하고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런 사람들은 제 눈에 만만한 사람들만 골라 진상을 부린다.하지만 방금은 돈 안 받고 보냈잖아요.괜찮아. 나는 그렇게 해도 돼.그날 다이는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재고를 채워 넣다가 잘못 둬서 정리를 다시 했고, 교대 시간에 현금을 잘못 세는 바람에 세 번이나 내가 함께 세야 했다. 퇴근하는 다이에게 따뜻한 두유 한 병을 건넸다.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한 다이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까 괜히 다이 탓을 했다고 생각했다. 별말을 덧붙이지 않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괜찮아.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차라리 다이의 눈을 가리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더군다나 고등학생이라면 모르게 하는 편이 낫다.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알아도 늦지 않을 테다. 나는 다이를 볼 때마다 딸애가 생각이 났다. 딸애가 아르바이트하겠다고 하면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나이를 속물로 먹었나 보다. 다이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세상에 그런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두유 한 병을 퇴근길에 건네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교대를 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가 달거리가 멈췄다며 기뻐하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이었다. 이제는 배가 아프면 속옷을 버릴 걱정에 서둘러 화장실에 앉거나 날짜를 세어 가며 생리대를 챙겨 다닐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6개월 만에 하는 월경이 두렵고, 반가웠고, 반갑지 않았다.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그동안 나는 생리가 멈췄다는 이야기를 엄마 말고는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다. 생리가 멈췄을 다이의 할머니도 폐지를 가져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살아 있으니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빠도 없는 딸애가 혼자 남을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벌써 죽을까 싶었고, 늙지 않았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월경이 반가울 리도 없다. 손톱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다시 엄마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생리대를 꺼내려 연 선반에는 수건만 가득했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생리대 한 장 없는 현실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편의점에서 챙겨 오지 않은 것도 원망됐다. 내 월경이 멈추고 나니 채워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탓이었다. 온 신경을 딸애에게 쏟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참 무신경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변기에 앉아 있었다.마침 딸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 문을 조금 열고서 딸애를 불렀다.생리대 없어?평소라면 잠들어 있을 시간에 화장실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놀란 것 같았다.없어요.아이는 제 방으로 향하며 흐르듯 말했다. 생리대가 없어진 지 한참인데 이제야 행방을 묻는 엄마가 귀찮은 모양이었다.어떻게 집에 생리대가 없어. 너는 어떡하고.엄마, 뉴스 안 봐요?무슨 뉴스.생리대에서 안 좋은 성분 나왔다잖아요. 나 이제 생리대 안 써요.괜찮아. 가서 하나 사 와. 다녀오는 길에 내일 먹을 과자도 조금 사 오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위험하니까.딸애는 가끔 어떤 이야기들에 오랫동안 몰두하곤 했다. 이미 뉴스에서 안전하다고 말한 생리대도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생리대를 쓰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TV에서 몇 가지 다른 용품을 소개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모양도 이상했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제 무언가 익숙해지기에는 전에 이용하던 것들이 너무 몸에 익어 버린 탓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월경도 하다 말다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할 줄 알고 무엇으로 바꾼단 말인가. 딸애라면 몰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대로 살고 싶다. 딸애는 생리대를 화장실 앞에 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매달 반복되던 일이었지만, 고작 6개월 만이라고 제법 불편했다. 끝나 버린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랐던 초경처럼 그 끝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모른다는 말이 맞는다. 나는 긴 세월 나와 함께한 달거리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고 있다.화장실 문틈으로 아이의 방문이 보였다. 방문 앞에 걸어둔 팻말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이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수학여행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가정통신문에 첨부되어 온 일이 있었다.너는 어디 가고 싶니?당연히 제주도죠. 비행기 안 타봤잖아요.위험할까 봐 그러지.내 말에 아이는 그 뒤로 무어라 몇 마디 덧붙였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낮에 나간 마트에서 아이의 과자를 사 올 생각이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날 아이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관해 한참을 떠들었다. 심지어 입고 갈 옷과 가지고 갈 과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무얼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토피가 있는 딸애가 초콜릿은 피해야 했기에 고를 수 없었고, 너무 자극적인 맛의 과자는 사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과자가 진열된 매대를 한참이나 돌다가 건빵을 한 봉지 사서 들어와야 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였다. 월경이 다시 찾아온 어느 날, 별안간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궁금한 걸 묻는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눈이 거의 감기기 직전이었다.알람 소리를 듣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어났다. 날은 어제와 똑같았고 핸드폰 위치도 그대로였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기운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 한쪽과 바지가 피로 얼룩져 버렸다. 이런 일은 학교에 다닐 때 빼곤 거의 없던 일이라 당황했다. 수건을 깔고 잠들지 않은 탓이었다. 예정에 없이 이불 빨래를 해야 할 생각에 아침부터 아득해졌다. 이마를 몇 번 훔쳐 내고 나서야 집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간이면 아이가 씻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들리는 건 이마를 매만지는 내 손의 까끌까끌한 소리였다.다급하게 일어나 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 바지는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는지 알고 있었다. 당장 아이를 깨워 학교에 데려가야 했다. 방문을 열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 집에 아이는 없었다. 무엇에 이렇게 놀라고 긴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고 다리는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아이 방의 시계를 보니 이미 8시였다. 어제부터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샤워하는 내내 열이 올라 찬물로 씻었다. 원래 몸에 열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샤워만큼은 따뜻한 물로 했다. 그저 올겨울이 조금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일 년 전보다 수도꼭지의 방향이 찬물 쪽으로 한 마디나 돌아가 있었다. 문득 물이 너무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온수로 다시 바꾸지는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탓이었다. 온종일 몽롱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마다 기분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겨우 이불 빨래를 하고서 다이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부터는 혼자 하면 될 것 같다고. 다이는 답장이 없었다. 허무하게 앉아서 수건을 몇 장 개켰다. 이상한 하루의 시작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꼭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 핸드폰이 유난스럽게 울렸다. 딸애의 담임 선생님이었다.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들떠 있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큰 사고가 나면서 전국의 학교들은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했다. 딸애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쯤이면 한참 제주도에 도착해서 여행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반쯤 접은 수건을 옆으로 치워 두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담임 선생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내 딸이 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온통 상상할 수 없는 일들만 닥쳐오는 것 같았다. 이게 꿈이라고도 생각했다. 멈췄던 월경을 다시 하고, 늦잠을 자고, 이불을 버리고. 꿈에서 너무 깨고 싶어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다. 그저 변하는 건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힘없이 돌아가는 내 허벅지 살뿐이었다.아이가 술을 가져와 친구들과 마셨다고 했다. 일정을 소화하던 와중에 자유 시간을 줬는데 그때 한쪽에서 아이들이 유난히 모여 있더란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가서 확인하니 아이들에게서 술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앉아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는데 그 아이가 내 딸애였다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이들 모두 마신 술과 가방에서 나온 담배를 딸애가 가져왔다고 말했다. 엄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가져왔고 자신들은 그저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천장이 도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에 이상한 일에 엮이지 말라고 했을 때, 딸애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담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딸애는 내 말이면 일단 알겠다고 하는 아이였다.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학원을 보냈고, 매년 소풍에 건빵만 가방에 넣어줘도 불만이 없는 아이였다. 며칠 내가 다친 것을 걱정하며 묻던 아이였다. 내가 보지 않은 것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본 적 없는 딸애의 모습을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잠시 윙윙거렸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내 눈에 딸애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학교로 돌아가면 징계가 있을 겁니다.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확실히 확인했나요? 증거가 있는 거예요?어머니.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담임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개키던 수건을 던지고 일어섰다.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CCTV를 보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일그러진 일상은 순식간에 비틀어졌다.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조금씩 엇나간 믿음들이 동시에 무너졌다. 딸애의 비행을 전해 듣고 덜컥 확인해야겠다는 내 다짐이 무너짐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르게 알람을 듣지 못했고, 피가 이불에 새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니,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벌떡 일어나 갑자기 움직이는 내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는 내가 쌓아 둔 수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집 한가운데서 벌러덩 넘어진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엉엉 울어 버렸다. 혼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모난 곳 없이 잘 키웠다고 생각했다. 조금 냉랭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말썽 한번 피운 적 없던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내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아이는 결국 징계를 받았다. 벌점을 한가득 받았고 매일 학교가 끝이 나면 사회봉사 활동을 했다. 덕분에 학원은 잠시 쉬어야 했다. 나는 CCTV를 확인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딸애가 술을 훔쳐간 날은 다이가 겁에 질려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던 날이었다. 여러 번 재고와 현금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분명 실수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이도, 나도 가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아이는 결국 학교의 징계를 받게 됐다. 고작 그만큼을 인정하는 데 나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꼭 편의점 CCTV 영상이 없더라도 현장을 들켜 버린 아이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더 크게 번지길 원하지 않았고, 그날의 기록을 전부 지웠다. 지울 수만 있다면 내 삶에서도 지워 버리고 싶었던 일주일이었다.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우리는 꼭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당분간 학원에 다니지 않아 일찍 돌아온 딸애가 인사도 없이 나를 지나쳤다. 울컥 나는 화가 났다. 왜 딸애가 저렇게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아 내고 있는데 딸애는 늘 무엇이 저렇게 불만이고 당당한 걸까. 발끝에서 울화가 치밀었다.예의 없이 굴지 말랬지.다녀왔습니다.엄마가 지금 인사받으려고 불러 세운 줄 알아?그럼 뭔데요?뭐?엄마가 원하는 게 뭔데요?아이의 물음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건 물어본 적 있어요?지금 말대꾸하는 거니?이렇게 하지 마라, 이건 하면 안 된다.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원해요?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무엇을 원해야 하나. 엄마는 원하는 게 있어야 했나. 나는 평온한 가정과 아이의 건강한 성장만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헷갈렸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뿐이었나 싶다가, 이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흘렀다. 아이가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아이가 징계받은 일조차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는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구나.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죄다 한 번에 했는데, 엄마는 왜 묻질 않아요? 그 전에 한 번이라도 내 말을 들어준 적 있어요?아침에 항상 대화하잖니.건빵 싫다고 말한 건 기억하세요? 매년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매년 건빵만 사 오잖아요. 다른 것들도 그래요. 저는 영어학원보다 수학학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기억하세요? 바둑을 배워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요? 그 이야기에 딴짓할 생각 말라던 것도요. 엄마는 늘 물어봤다는 사실만 기억해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불의는 참지 말라면서요. 지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려면 엄마가 시킨 말을 다시 어겨야 해요.다들 그렇게 살아.아이는 내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이는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근래 나눈 대화의 몇 배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그동안 아침마다 내게 했던 질문을 되짚었다.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나와 아이는 그 질문에 서로 완벽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아이와 나 모두 사람이었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애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딸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되짚느라 한참을 뒤척였다. 대답에 닿을 것 같다가도 그 대답에 닿기에는 세상이 그걸 가만둘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딸애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원했다. 모두의 행복이 다를 것이 분명해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행복에 닿는 길이 모두가 가는 방식이 아니라면 더 꺼려졌다. 그런 건 위험한 것들 투성일 터였다. 나는 결국 그날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음 날 딸애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대신 식탁에 짧은 메모를 남겨 두었다.저 아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요.마침내 어제 저녁부터 이미 내렸던 답을 확정 짓기로 했다.얼굴이 붉어지며 열이 오르는 건 생각보다 꽤 신경을 긁는 일이었다. 나부터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를 펼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 내 이름 한정희를 적었다. 나머지 한 공간에는 딸애의 이름 강다영을 적었다. 양쪽 모두에 건강과 행복을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채워 넣었다. 우선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장 산부인과에 들러 검진을 받고, 갱년기임이 틀림없는 이 증상들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가서 이 두려움에 맞서야겠다. 적어도 나는 딸애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고작 노트의 반쪽을 채우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만, 이제는 물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딸애가 돌아오면 이 노트를 건넬 생각이었다. 빳빳한 노란색 노트를 덮고 일어났다. 지금 산부인과를 다녀올 생각이었다.나는 여전히 사람도 차도 없는 신호등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것들을 지키고 규칙에 맞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신호등을 바라보는 일 말고 주변에 차가 오고 있는지 둘러봤다. 오늘도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뒤쪽에서 바쁜 뜀박질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길을 건너려던 여자를 불렀다.저기요! 차 와요!내 목소리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의 앞으로 차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신호는 다시 파란불로 바뀌었다. 여자는 그저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아무 과자나 건빵이 아니라면 좋았다. 잔뜩 늘어놓고 딸애가 좋아하는 걸 골라가게 할 셈이었다. 오늘도 조용히 들어선 편의점에는 그 한량이 와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저번에 사장이 하는 말 들었잖아!저는 사장님이 아니잖아요.두 마디만 들어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이는 여전히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았고 핸드폰을 꼭 쥔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사장 불러!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손님.마침 사장님 오셨네. 저번처럼.나가세요.뭐요?나가시라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세요.그 전에 밀린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에 그는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다이는 되레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사장님, 그래도 동네 사람인데.저런 사람들은 고객으로 대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봐.나는 정말로 다이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엔 그냥 저 사람이 오거든 CCTV 위치를 가리키며 경찰 부르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한량과 같은 사람이 또 편의점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는 전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같은 말이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내 말 한마디가 따뜻한 두유 따위보다 나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나는 다이에게 좋아하는 과자를 물었다.저는 나초 좋아해요.다영이가 좋아할 과자가 짐작이 안 가서 물어봤어.다영이가 따님이세요?다이의 말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갱년기 탓만은 아니었다. 문득 다영이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 혹은 딸애로 부르면서 정작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류별로 과자를 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빵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나초 한 봉지는 다이에게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딸애의 이름을 불러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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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마키코 언니 - 김영주

마른 잎 하나가 김이 피어오르는 허공에서 팔랑거리다 노천탕 수면에 내려앉는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둘러쓴 마키코 언니가 물살을 밀어내며 엄마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간다. 영락없는 모녀 사이다. 언니의 낯빛이 어린아이처럼 해맑다.옛날에 저하고 목욕탕에 갔던 거 혹시 기억하세요? 언니가 엄마의 어깨에 물을 한웅큼 정겹게 끼얹는다. 그런 일이 다 있었어? 엄마의 희미한 기억이 잔잔한 미소로 번진다.마키코 언니가 초청한 4박 5일 삿포로 여행이었다. 언니는 친정아버지까지 꼭 모시고 와야 한다고 내게 몇 번이나 당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외국여행을 감당하기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았다. 언니는 그걸 못내 아쉬워했다.마키코 언니는 가는 곳마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친모녀 같아서 가끔 샘이 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도 함께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었다. 언니는 또 그 불편한 걸음으로 엄마와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바빴다. 옛정을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언니의 올곧은 심성이 그대로 전해졌다.사촌올케 마키코 언니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 때였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작고 깡마른 소녀, 내 눈에 비친 언니의 첫 모습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눈망울이 유난히 똘망똘망했던 걸로 기억한다.언니는 심한 소아마비 장애가 있었다. 큰댁 어른들은 중증 장애인인 데다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며느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사람이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일본여자를 보는 바람에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면서 큰아버지는 일본인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다.당시 큰아버지는 미국에 건너가 살고 있었다. 사촌오빠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서 어른들의 기대가 컸다. 그래서 일본 유학까지 보냈던 건데, 그 아들이 한마디 상의도 않고 덜컥 결혼식까지 올린 뒤 며느리라고 데려왔으니 오죽했을까. 큰댁 어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가며 며느리를 냉대하기 일쑤였단다.아버지는 조카며느리를 큰딸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사코 마다해도 볕이 제일 잘 드는 방을 언니에게 내주었다. 식사 때 언니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은 따로 기억해 두었다가 엄마에게 특별 주문을 할 정도로 살뜰히 챙겼다.언니의 한국어학당 입학수속을 거들어준 건 바로 나였다. 당시 대학 1학년인 나는 공강 시간에 언니하고 캠퍼스에서 단둘이 자주 만났다. 도서관에서 언니의 한국어 공부도 거들어주었다. 우리는 마치 친자매 같았다.언니의 한국어 습득 속도는 신기할 정도였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시댁 어른들하고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내가 몇 달 겪어보니 우리 조카며느리는 참 좋은 사람이야.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석별을 아쉬워하는 정이 그득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언니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키코, 시댁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말아. 내 말, 알겠지? 언니의 볼에 굵은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졌다.언니가 떠나자 우리는 가족 하나를 잃은 듯 꽤 오랫동안 허전해했다. 간간 전해오는 큰댁 식구들 소식에 섞인 것 말고는 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지난달에 사촌오빠 내외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삿포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마키코 언니는 엄마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꼭 함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고단하셨는지 일찍 잠들었다. 우리 둘은 맥주 한 캔씩을 탁자에 두고 마주앉았다.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건 한국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지냈을 때야. 언니는 엄마하고 재래시장 좌판에서 맛있게 먹었던 잔치국수, 나와 함께 자주 갔던 학교 앞 떡볶이 집, 동네 생선가게 곰보 아줌마의 친절, 추석 때 엄마가 선물해준 분홍색 운동화, 우리 집 마당의 평상에서 함께 수박을 먹었던 일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진짜 한 가족이었잖아. 마키코 언니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시집살이는 별로였나 보네?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빙긋 웃어보였다. 며느리를 그토록 홀대했던 큰아버지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다. 언니는 싫은 내색 한 번 비치지 않고 그 수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큰아버지는 몇 년 전에 저세상으로 가셨다.시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어? 내가 물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러셨을 테니까 나는 그냥 받아들였어. 이제 다 지난 일이야.시댁 어른들이 못살게 굴 때마다 작은댁 식구들의 정성을 떠올렸단다. 한국을 떠나던 날 작은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말씀을 새기며 시댁 어른들하고의 거리를 좁혀나갔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언니는 시댁 가족에게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꿰매고 싶어서 우리를 삿포로에 초대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삿포로를 떠나던 날이었다. 욘주! 특유의 발음을 내며 마키코 언니가 내 팔을 잡았다. 욘주는 좋은 사람이야. 작은아버님도 어머님도. 엄마와 내 손을 꼭 쥔 언니의 눈동자는 가을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이제는 왠지 나와 엄마가 언니의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마키코 언니가 이메일을 보내왔다.영주, 삿포로에는 눈이 많이 내렸어. 오늘 아침에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공원에도 가보았어. 참, 작은아버지 건강은 좀 어때? 그분 건강이 회복되면 언제든 삿포로에 다시 와줄 거지? 영주의 가족은 모두 내게 하얀 눈처럼 축복이야.오래 전에 보았던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눈 덮인 먼 산을 향해 손나팔을 만들어 그리운 이의 안부를 애타게 묻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 나는 마키코 언니의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장을 썼다.엄마는 여행 다녀와서 한 이틀 몸살을 앓았어요. 물론 아버지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요. 언니가 보내준 삿포로 공원 풍경은 숨이 막힐 것처럼 아름답네요. 마키코 언니. 보고 싶어요, 아주 많이요. 이담에는 우리,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요.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인간적 화해의 정,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빚어"

수필은 대상을 관조하고 성찰해서 삶의 무게와 깊이를 다져가는 데 유용한 양식이다. 일상의 다양하고 독특한 체험이야말로 수필의 마르지 않는 글감이다. 그걸 퍼 올려 씨줄과 날줄로 짜 맞춘 뼈대에 살을 덧대서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한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해묵은 정의와는 반대로, 수필을 ‘청자연적’에 은유했던 피천득 선생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예심을 거친 작품들 중에서 1차적으로 고른 작품은 ‘소리샘’, ‘슬픈 바람개비’, ‘그해 봄’, ‘복숭아화채’, ‘혼서지’, ‘한선, 가을 매미’,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왜 의자는 파란색이었을까’,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등 11편이었다.이 중에서 눈길을 끈 건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네 편이었다. ‘바람의 언덕’에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겪게 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의 온기와 웃음꽃’을 발견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잘 녹아 있었다. ‘그 골목의 필경사들’은 오래된 골목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겨운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두 작품 모두 이웃을 대하는 성찰력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지만, 이야기 구성이 다소 산만해서 수필다운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떨쳐내지 못했다.나머지 두 작품은 우선 글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가면’에서는 젊어서 주물 일을 하셨다가 노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복잡하고 애틋한 심경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린 수작이었다. ‘마키코 언니’는 일본인 사촌올케와 ‘나’(를 포함한 가족)의 오랜 인연을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인간적 화해의 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수필적 감동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이 둘을 놓고 오래 고심했다. ‘아버지의 가면’은 장면 묘사가 생동감이 넘쳤지만 문체가 다소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키코 언니’는 서사수필다운 박진감은 다소 부족했지만 안정된 문체로 잘 다듬어져서 수필적 완성도가 높았다. 결국 거듭된 퇴고로 작은 흠결까지 걸러내어 정성스럽게 구워낸 ‘청자연적’ 쪽으로 손이 갔다. 당선작으로 함께 올릴 수 없는 여건 탓에 마지막 손길을 아쉽게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가면’의 필자에게는 각별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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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소감] "나이 쉰에 시작한 문학, 꿈 이뤘어요"

새 학기가 되면 전공이 문예창작과인 아들에게 시집, 소설집, 희곡집, 작법서 등을 구입해주었다. 자연스레 한 권씩 한 권씩 곁에서 읽다 꿈이 생겨났다. 결국 아들과 같은 과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누군가 글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했던가! 나는 학부 때도 안했던 공부를 열심히 했다. 밤새 글을 쓰다 날이 훤히 밝은 날도 많았고, 고요해야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작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는 쑥을 뜯을 때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만큼 진득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자면 몇 시간씩 앉아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이는 참 묘한 쾌감을 줬다.나이 쉰이 되어 다시 공부하겠다는 딸의 등록금을 내준 친정아버지께 당선 소식을 알리니 오히려 당신이 고맙단다. 좋은 성소로 끌어주신 하느님과 최고의 스승이신 우석대 문창과 모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나를 가르칠 때 전라도 말로 무척이나 폭폭 했으리라. 함께 공부한 문창과 교우들과 동시랑 회원들이나 매번 흔쾌히 내 글의 독자가 되어 준 동생 영아가 고맙다. 문학을 두 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비 오는 성탄 이브에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알려준 전북일보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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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고요한 은유, 따뜻한 위로같아"

예전에 결선 작품들을 보고 나와서 나눈 말이 생각났다. 시들이 너무 어려웠다는 의견이다. 해독이 불가한 암호와도 같은 난독증을 일으키는 시들은 화성악을 내치며 유리창에 스티로폼을 긁어대는 것처럼 불편한 불협의 음을 차용해 시종 들이대는 난해한 음악을 읽는 것 같았다.결선에 오른 10인의 작품들은 우수한 시들이 많았다. ‘소년병’과 ‘회전의 시간’과 ‘삼례터미널’에 주목했다. ‘소년병’은 시를 밀고 가는 힘도 단단하고 신선했다. 전혀 다른 시선이기는 하지만 문득 군대이야기를 쓴 이문열의 등단작이었던 ‘새하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소년병’을 받쳐줘야 할 다른 시편들이 다소 무게감이 떨어졌다. 언어 선택이 젊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겠으나 정제되지 않은 수식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회전의 시간’은 그의 다른 작품인 ‘오늘의 나이’와 ‘장항선’에서 보여주는 재치와 또 다른 시적 감각을 보여주는 수준에 오른 성취를 가늠케 했다. 그러나 “달맞이꽃을 깨운 샛노란 얘기들이”라든지 “물레의 올을 타래로 짓는 실패의 날들”과 같은 표현은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던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을 해서 오히려 풍요로운 시적 멋과 맛을 돋보이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은유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잔잔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쓴 ‘삼례터미널’은 다른 작품인 ‘7번 출구에서’· ‘개개비의 여름’과 함께 대상의 이면과 그림자까지 관찰하며 사려 깊은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놓았다. 모름지기 시인의 눈이라면 대상의 아득한 너머와 순간의 찰나까지, 쓰러지고 일어나 건너온 시간까지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걸어 잠근 뒷문 곁에 그림자 없는 하루가 눕는다” “빗방울이 욕심을 내던 처마 밑이 환하다”라니, 이 같은 고요한 은유에서 볼 때 시를 짓는 새로운 시인의 눈이 따뜻하고 그렁그렁한 눈매로 대상을 위로하며 시를 풀어놓았을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당선작을 결정해야 한다. 실험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이 꿈틀거리는 젊고 싱싱한 야생의 시에 손을 내밀어야 할까. “나의 음악은 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가수 밥말리의 말처럼 상처받은 생명의 동굴 속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부드럽고 깊은 응시의 위로와 산들을 껴안고 가는 먼 산빛과 같은 시를 불러내야 할까 망설였다.결국 ‘삼례터미널’을 당선작으로 선택하였다. 축하한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첫 시’이다. 당선작이 대표작이 아니라 삶의 길 위에서 시의 종착역행 나침반을 잃지 않고 오래오래 치열한 시마에 사로잡혀 먼 길을 가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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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두 번째 짝 - 이경옥

엄마, 이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거야?새벽부터 이삿짐센터에서 온 아저씨들이 짐을 싸고 있어요. 나희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나희 엄마와 아빠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해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지금 사는 집보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어떤 집인지 궁금했거든요.쨍그랑!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이삿짐을 나르던 아저씨가 나와 내 짝인 항아리를 떨어뜨린 거예요.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나희 엄마가 조금 남은 고추장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씻어놨거든요. 내 짝인 항아리는 산산조각 나 버렸어요.어머, 어떡해!우리를 보고 달려온 나희 엄마가 깨진 항아리 조각 앞에 털썩 주저앉았어요.죄송합니다. 옮기다가 그만 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숙였어요.친정 엄마가 준 항아리인데.나희 엄마는 한숨을 길게 쉬었어요.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나희 아빠 말에도 나희 엄마는 깨진 항아리를 밀치고 나를 집어 햇빛에 비춰봤어요.이것도 금이 갔네.나희 엄마가 나를 살피는 동안에도 나는 온 몸이 욱신거렸어요.아파트에 놓을 자리도 없던데 항아리 정리 좀 해. 금이 간 건 쓸모없으니 버리고.나를 버리라는 나희 아빠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한참 망설이던 나희 엄마가 깨진 항아리를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어요. 나희 아빠 말대로 이대로 버려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어요. 난 누군가를 덮어야 하는데 금이 가서 쓸모가 없어졌으니까요. 나희 엄마는 다시 한 번 나를 들어보더니 깨진 항아리 조각 위에 얹어놨어요. 나는 다른 항아리 친구들과 인사도 못한 채 대문 밖으로 나왔어요.나희 엄마, 이사 가우?네. 할머니 건강하게 계세요.길 건너 언덕 위에 혼자 사시는 유모차 할머니예요. 항상 유모차를 끌며 폐지를 주우러 다녀요. 나희 엄마가 신문지를 몇 번 준 적이 있어서 나도 알아요. 할머니는 깨진 항아리 조각과 나를 빤히 쳐다봤어요.근디 뭘 그렇게 내 놓은 거여?항아리가 깨져서 버리려고요.뚜껑은 쓸 만 헌 거 같은디?살짝 금이 갔어요. 제 짝도 없어서 마땅히 쓸데도 없고요.나희 엄마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대답했어요.뚜껑은 내가 가져가도 될랑가?금이 가서 못 쓸 텐데....... 필요하시면 가져가셔요.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유모차에는 재활용 병과 신문지가 고무 밴드로 단단히 묶여 있었어요. 할머니가 나를 번쩍 들어 단단하게 여며주었어요.세상에 쓸모없는 게 어디 있당가. 짝이 없어도 서로 어울리는 것이 따로 있것제.할머니가 유모차를 힘껏 밀면서 중얼거렸어요.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마당에는 재활용 물건들이 많았어요. 신문지, 박스, 온갖 병들이 차곡차곡 한 쪽에 쌓여 있었거든요. 마당 한쪽 감나무 옆에는 작은 항아리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장독대로 가더니 엎어놓고 물을 부었어요. 그러자 내 몸에서 물이 방울방울 빠져나갔어요. 난 불안해졌어요. 할머니 집에서도 버려질까봐서요.뚜껑으로는 못 쓰것구먼. 그랴도 따로 쓸데가 있것제.후, 다행이에요. 할머니는 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항아리만 덮다가 배를 드러내고 있으니 조금 허전했어요.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햇빛도 한꺼번에 쏟아져 눈이 부셨어요.다음 날, 현관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왔어요.다녀오마.대문을 밀고 나가는 할머니가 마당에 대고 인사를 했어요. 마치 나에게 인사 하는 것 같았어요.할머니, 집 걱정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나는 할머니 등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어요.할머니는 매일 아침이 되면 빈 유모차를 끌고 나가 저녁이 되어서야 신문지와 박스를 가득 싣고 돌아왔어요. 그러고 늦은 저녁에 혼자서 밥을 먹었고요. 그러다 가끔씩 장독대로 다가와 길게 한숨을 쉬었어요.할머니가 신문과 병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어요. 전화벨이 울렸어요.힘들쟈? 그려도 힘을 내그라. 무슨 방도가 있것제.할머니가 아들과 통화를 하는 소리에요. 할머니 아들이 사업에 실패해서 찾아오지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전화를 끊은 할머니의 주름살은 더 깊어보였어요.내 자슥도 가슴에 금이 나서 저렇게 마음을 못 잡는구먼.할머니가 나를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그걸 보니 내 가슴도 먹먹해졌어요.아이구!이튿날 할머니가 현관문을 나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누구 없어요? 할머니가 다쳤어요!나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동안 앉아 있던 할머니가 벽을 짚고 한 발짝씩 걸어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걱정이 되었어요. 저러다 못 일어나실까 봐요.오후가 되자 할머니는 절뚝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평상시보다 더 늦게 돌아왔어요.하나, 둘, 셋.......이렇게라도 도움이 될랑가 모르것구먼.빈 유모차를 끌고 온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고 있었어요. 아들에게 보내려나 봐요. 돈을 세는 할머니 얼굴이 환했거든요.감나무 잎이 주홍빛으로 물들었어요. 바람까지 몹시 심하게 불던 날, 금이 간 내 몸 위로 비가 쏟아졌어요. 그런데 빗물이 톡톡 떨어진 곳에 어디선가 작은 씨앗이 날아왔어요.아이, 추워!아직 빗물이 남아 있어서인지 오들오들 떨었어요. 나는 씨앗을 꼭 끌어안았어요. 씨앗도 나에게 살짝 기대었고요. 나는 갈라진 틈으로 씨앗이 빠져나갈까 봐 몸을 바짝 움츠렸어요. 그 모습을 봤는지 감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씨앗을 덮어주었어요. 감잎 덕분에 씨앗은 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 모래가 날아들었어요. 내 몸은 점점 무거워졌지만 씨앗의 숨소리는 점점 편안해졌어요.쉴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씨앗은 나에게 소곤거리더니 잠이 들었어요. 나는 찬바람을 막아주려고 온 몸에 힘을 주었어요.어, 그랴. 괜찮다. 걱정허지 말그라.할머니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어요. 또 할머니 아들한테 전화가 온 거 같아요. 할머니는 바보예요. 아픈 데도 괜찮다고 말해요. 넘어진 뒤로 할머니는 절뚝거리며 걷는 데도요.갑자기 찬바람이 씽 불어왔어요. 감잎이 덮어주긴 했어도 점점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덜덜 떨려 왔어요. 오늘은 하늘에 구름까지 가득했어요. 삐그덕,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나왔어요.눈이 오려나. 에구, 무릎이 또 말썽이구먼.바람 부는 하늘을 쳐다보던 할머니가 몸서리를 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할머니는 밖에 잘 나오지 않아요. 예전처럼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볼 수가 없어요.다음 날 온 세상에 하얀 눈이 왔어요. 감잎으로 뒤덮인 내 몸에도 하얀 눈이 쌓였어요. 감나무에는 빨간 홍시 한 개만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고요.할머니, 눈이 왔어요. 나와 보세요.소리쳐 불렀지만 방에서는 할머니 기침 소리만 들려왔어요. 겨울이 깊어갈수록 할머니는 나오지 않고 마당에는 차가운 바람만 머물다 갔어요.그러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내 몸이 자꾸만 간질거렸어요. 내 몸 구석에서 뭔가 꿈틀거렸거든요.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어요.아, 따뜻해!난 깜짝 놀랐어요. 연두 빛 새싹이 내 몸에서 쑥 나왔거든요.넌 누구야?민들레에요.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뚜껑님이 절 안아주었잖아요. 감잎은 이불이 되었고요, 모래는 나를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여며주었어요. 뚜껑님 몸에 금이 가 있어서 내가 살 수 있었어요. 물이 잘 빠져서 썩지 않았거든요.나는 어리둥절했어요. 새싹이 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오후가 되자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어요. 겨우내 할머니 얼굴이 핼쑥해졌어요.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장독대로 빠르게 왔어요. 그러면서 함박 웃었어요. 얼마 만에 보는 웃음인지 모르겠어요.겨우내 씨앗을 품느라 애썼구먼. 그려, 혀야 헐 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제. 항아리는 깨졌어도 두 번째 짝은 꽃이구먼. 우리 준석이도 너처럼 다른 일을 찾것제.할머니는 몇 번이고 나를 쓰다듬었어요.노랑꽃이 이쁘구먼.할머니가 내 옆에서 오랫동안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어요.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심사평] "현실사회와 삶의 진실, 안정감 있게 담아"

동화는 우선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며 그들의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나 문체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써나가야 한다. 그런데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 중에 동화가 갖추어야할 특수한 성격이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작품들이 눈에 띄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아래 네 편의 작품은 비교적 소재와 주제, 구성 및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독창성이 엿보여 최종심에 올렸다. ‘시암마을 새봄이’는 농촌마을에 버려진 아기를 정성껏 돌보고자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현실성 있게 담아냈지만 갑작스런 아기의 발견과 아줌마의 뒷모습으로 끝을 내는 등 주독자인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게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늘 속으로’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솔개와 비둘기, 백로 등 숲속 여러 동물들이 어린 황조롱이를 잘 보살펴 하늘로 날 수 있게 돕는 이야기로 소재 선택은 좋았으나, 문장과 대화 글의 표현에서 덜 다듬어진 부분이 많아 완성도가 떨어졌다. ‘달려라 큰언니’는 승부와 관계없이 친구와의 우정을 중요시한 생활동화로 군더더기 없이 문장이나 글의 흐름은 매끄러웠으나, 소재 선택의 참신성과 어린이의 심리적 갈등이나 표현 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째 짝’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은 전체적인 글의 짜임과 문장 구성력이 비교적 탄탄하고, 사건 진전이 자연스러웠으며, 마지막 결말까지 무리 없이 이끌어간 솜씨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떨어뜨려 버려진 항아리 뚜껑이 폐지 줍는 유모차 할머니네 집으로 옮겨진다. 항아리 뚜껑은 혼자 사는 할머니의 동태를 살피며 생각에 잠기고,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어느 날, 금이 간 사이로 작은 씨앗이 날아들고, 감나무와 모래의 도움까지 얻어 겨울을 지나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우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작가는 단순히 의인화된 항아리 뚜껑이 노란 민들레꽃을 피운 것으로 끝내려 하지 않았다. 자나 깨나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어려운 처지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몫까지 담아낸 것이다. 굳이 지적한다면 시작을 좀 길게 끌고간 느낌이 없지 않지만, 현실 사회와 삶의 진실을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안정감 있게 담아낸 충실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당선작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최종 선에 올라온 작가들에게도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써내어 어린이들의 정서순화와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소감] "모든 아이들 행복할 수 있는 글로 보답"

일요일 아침, 중학생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재 옆에 자리 잡은 핸드폰이 반짝였고, 모르는 번호가 보였을 때 망설이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에서 당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감사합니다, 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감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요.글을 쓰느라 애를 태웠던 저 자신에게도 감사했고, 지치지 않도록 항상 격려해주시던 박서진 선생님께도 감사했고, 옆에서 늘 함께하며 힘을 주셨던 박금희 선생님, 임선희 선생님, 공미경 선생님 등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하나의 글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기쁨이 컸습니다. 학생들에게 늘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는 타자의 역할도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이 순간이 있기까지 많은 타자의 힘이 있었음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축복 속에서 한 발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함께 하는 남편과 두 아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8.01.02 23:02

JB금융그룹 임태환씨 〈군웅할거 시대 생존전략-46조의 신화〉

JB금융그룹의 역동의 시기, 그리고 약 10년 만에 자산 성장 46조를 이룬 발전, 그 중심엔 임태환 씨가 있었다.JB금융그룹에 근무하는 임태환 씨가 <군웅할거 시대 생존전략- 46조의 신화>(동아E&D)를 펴냈다.책은 그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IR(Investor Relations) 담당자로서 겪은 경험을 담았다. IR은 기업설명회를 적극적으로 갖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주식을 사서 보유하도록 해 주가를 적정 기업가치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참여자인 투자 관계자들과의 소통창구인 IR을 맡아 겪은 성과, 시행착오를 설명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치열한 기업 내부 현장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는 부담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투자서’이기도 하다.IR 담당자로 발령받은 후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IR’을 입력하는 것부터 벼락같은 하한가를 맞은 후 투자자들로부터 온몸으로 비난을 맞았던 일화, 돈보다 중요한 신뢰를 위해 일보 후퇴하는 모습, 실제 주식을 운용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모습, 국내·외 경제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을 키우기 위해 경제대학원에 입학했던 심정 등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연세대와 연세대 경제대학원을 졸업한 임태환 씨는 전북은행에 입행해 외환(F/X), 자금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고 지주사 최초의 IR을 맡았다. 현재 한국거래소(KRX) 산하 한국IR협의회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FP·AFPK·외환전문역 등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7.12.29 23:02

생태적인 삶이란…서울여자의 산골 사투기

이마를 칠 듯 바짝 붙어선 절벽 아래 큰 집이 있다. 무인카페와 인문학 서적이 빼곡한 서가, 뜬금없는 창고형 갤러리가 있는 곳. 마당에 서면 오디오 명상음악 대신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곳. 우리가 모르던 유토피아, 그 곳에 하채현 작가가 산다.하채현 작가가 직접 경험한 아름다운 산골 사투기를 담은 <수수에게 들키다>(상상)를 펴냈다.책을 보면 <조화로운 삶>을 쓴 헬런 니어링스콧 니어링이나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생태주의적인 삶의 지침서로 불리는 두 책의 저자 못지않게 하 작가만의 아름다운 자연관과 인간 삶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다.한번은 내 팔다리에 두드러기가 났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두드러기가 아니고 벌레 물린 것이에요한다. 남편에게 벌레가 싫다고 말했다. 남편이 말하길 벌레와 같이 사는 게 생태적인 삶입니다.(139쪽)대중이 그의 일상 속 소박함과 건강함을 공감한 탓일까. 최근에는 FM라디오 방송에서 <수수에게 들키다>가 낭독되기도 했다.하 작가는 나의 사투는 감추고 그 자리에 내 로망을 채웠다며, 아직 이곳에 동화되지 못한 만큼 글쓰기는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역 문화 부흥을 위해 동상연구소를 설립했다. 전주 등지에서 인문학 특강 등을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7.12.29 23:02

글로 지나온 시간을 추억하다

수필가는 글로 지나온 시간을 추억하고, 통과한 공간을 기억한다. 이 글을 한편한편 엮어낸 수필집이 잇달아 출간됐다.이정숙 작가는 수필집 <꽃잎에 데다>을 발간했다. 이 작가에게 글쓰기는 나를 나이도록 만드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저에게 글쓰기는 세월이란 갈피 안에 정지된 나를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끄집어낸 삶의 편린은 언제나 부끄러움으로 옵니다.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일지라도 나를 더욱 나이도록 하기 위해 수필을 쓸 생각입니다.그래서일까 수필집에는 글쓰기에 관한 체험이나 고민, 바람, 목표 등에 대한 글이 여러 편 실렸다. 작가는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한 자각, 자의식, 이상에 대해 끊임없이 번뇌한다. 또 글의 소재로 추억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유년의 삶, 고향에서의 추억, 학창시절의 사건, 결혼과 육아의 체험 등으로 드러난다.이정숙 작가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고, 온글문학회장과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국제펜클럽 전북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지금은 노랑 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를 펴냈다.이창현 작가는 10년 만에 세 번째 수필집 <다시 부르는 삶의 노래>를 출간했다. 5년간의 암 투병 끝에 발간한 책이어서 의미가 더 남다르다. 그는 24절기를 입춘역과 경칩역 등 절기역으로 명명하면서 쓴 열차 여행기를 비롯해 암 투병하면서 체험했던 일, 칠순을 맞을 때까지 걸어왔던 길,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면서 한 권의 책을 엮었다.이창현 작가는 정읍 출생으로 2002년 한맥문학 수필 부문, 2003년 한맥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학, 한맥문학, 정읍문학 회원이다. 수필집으로 <전망 좋은 방에서 띄우는 편지> <가슴 밭에 두고 온 언어들>, 시집으로 <마중물>이 있다.김형진 작가는 수필집 <바람의 몸짓>을 내놨다. 그는 빈터에 버려진 찻잔 하나,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질항아리 등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는 물건을 이야기 소재로 삼는다. 자연의 순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형진 작가는 부안 출생으로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광주 살레시오고에서 정년 퇴임했다. 2002년 수필동인 토방을 결성했다. 수필집으로 <흐르는 길> <종달새> <바딧소리>가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7.12.29 23:02

격동의 역사를 이끈 삼국지 인물들

약 1800년 전 중국에서는 200여 년의 후한 왕조가 무너지고, 약 1세기에 걸친 긴 전란 시대가 막을 연다. 중국 천하를 놓고 많은 군웅이 쟁패를 벌이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유력한 선두주자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시대 상황은 군웅할거 국면에서 위 조조, 촉 유비, 오 손권의 삼국 국면으로 전환된다. 위촉오 삼국은 각기 주군, 모신, 무장이 역량과 지략을 다해 천하 통일을 향한 쟁패를 펼쳐나간다.오랜 기간 삼국지를 연구해 온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삼국지 인물론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을 펴냈다. 위촉오 삼국이 정립되기 전, 군웅할거 시대의 인물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을 시작으로 <삼국지 위나라 인물론>, <삼국지 위나라삼분귀진 인물론>, <삼국지 촉나라 인물론>, <삼국지 오나라 인물론>을 발간할 예정이다.<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에서는 군웅할거 인물로 포악한 동탁, 강자에 약하고 잇속에 강한 여포, 아집으로 패망한 공손찬, 포부가 큰 원소, 잘난 척하는 원술, 생각이 많은 유표 등을 다룬다.저자는 삼국 시기를 이끌어가는 관건을 인물적 조건으로 보았다. 국면을 전환하는 추동력을 인물의 의지와 계책이라고 판단한 것. 그래서 사상가치 성향, 후흑론(厚黑論,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어야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내용), 성격 유형으로 삼국지 인물을 분석한다. <삼국지> 속 인물 41명, <진서> 속 인물 3명 등 총 44명을 주요 인물로 선정해 심층적으로 탐색한다.한 명예교수는 중학교 시절 대나무 숲에서 소설 <삼국연의>를 읽을 때 떠올랐던 역사는 흐른다는 문제의식에서, 이제는 역사 <삼국지>를 통해 1800년 전 약 1세기에 걸친 긴 전란의 삼국시대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을 무엇인가라는 테제에 나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밝혔다.한형수 명예교수는 전북 장수 출생으로 고려대 사회학과,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전임강사,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회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다. 1992년부터 삼국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의 삼국지 세미나에 20여 년간 참여했다. 2008년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시민대학에서 삼국지와 삶의 세계 강의를 시작해 현재까지 다양한 곳에서 강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7.12.29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