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팬 7명이 박유천에게 바치는 연가
현재 '이모팬덤'이 가장 뜨거운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인터넷 팬카페 '블레싱유천'이다.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성스)'의 주인공 박유천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카페에는 "난생처음 팬 활동을 해본다"는 30~60대 여성 5천명이 활동 중이다. 팬들은 하루에도 100건이 넘는 게시물, 수천 건이 넘는 댓글을 남기고, 동네 곳곳에서 삼삼오오 오프라인 모임을 하며 '유천앓이'에 열중하고 있다. 과거 신승훈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음반을 구입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했다던 여성들. 그들의 가슴이 이토록 뜨거워진 이유는 무엇일까?지난 11일 블레싱유천 회원 권대향(40.초등학교 영양교사), 김은희(42.주부), 유수연(42.사업), 이명숙(48.학교행정실 근무), 이미영(43.주부), 나경애(42.주부), 홍인하(38.연구원)씨를 만나 그들의 '연가(戀歌)'를 들어봤다. ◇ 팬 활동 경험이 있나요?▲유수연 = 팬 활동 카페까지 가입해서 한 건 처음이죠. 대학 다닐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문화 대통령이었는데 그때 잠깐 좋아한 적은 있었죠. ▲이명숙 = 저도 팬카페 활동은 처음이에요. 대학교 때 변진섭 콘서트 쫓아다닌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페 활동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이미영 = 제 경우는 예전에도 했었습니다. 배용준씨. 그때가 2001년 호텔리어 때부터입니다. 호텔리어 때가 어떻게 보면 이모팬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호텔리어가 배용준씨의 2년 만의 컴백이었는데 저 사람 누구냐, 스마트하고 괜찮다, 이래서 배용준씨에게 빠졌죠.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때라 신랑한테 MBC 게시판에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물어봐서 들어갔습니다. 그때 다음카페가 있었거든요. 그때 이모팬들이 처음으로 몰렸고 일본팬들이 가세하면서 활성화가 된 것이죠. ▲권대향 = 저는 지금까지 처음입니다. 학창시절에도 좋아했던 배우라던가 가수라던가 가슴을 뛰게 하는 선생님도 없었습니다. 저를 사로잡은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는데 근데 성스를 보면서 일단은 반듯한 외모, 반듯한 대사와 얘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빠져들게 됐죠. 그러면서 성스에서 JYJ 동방신기로 가면서 얘네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서 아줌마로서 정의감이 불끈 솟아오르면서 뜨거운 마음이 됐습니다. ▲나경애 = 연예인에게 이렇게 빠져든 건 처음이에요. 중고등학교 때 듀란듀란을 좋아했는데 그때 듀란듀란은 아는 사람만 알던 시절이었고 인터넷 문화도 없어서 조직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 없었죠. 그저 외국 잡지 모으는 낙으로 사춘기를 보냈었는데, 이렇게 드라마, 연예인을 알고 정신 못 차리는 건 처음이에요. 처음에는 연예인에 빠져드는 나 자신이 당혹스러웠고 이런 나를 인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참 편하고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홍인하 = 저도 팬 활동은 처음이라고 봐야 해요. 노래를 좋아했지만, 우리 때는 신승훈이나 김건모씨 활동할 때 음반 사는 활동에서 그쳤어요. 사실 처음에는 주저했어요. 그런데 좋아지는 마음이 커지다 보니 게시판에 그런 마음이나 응원의 글을 계속 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30대 후반의 나이로 근 십년간 직장과 가정 사이를 오가면 친구도 거의 못 만나고 지냈어요. 꾹꾹 눌려졌던 마음이 유천이를 통해서 표현되고, 남편과도 팬 활동을 의논하며 그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더 생기더군요. ▲김은희 = 저도 물론 처음입니다. 제가 KBS 게시판에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것을 보다가 카페가 있는 걸 알고 처음에는 '눈팅'만 하다가 가입을 안 했었는데 호기심이 너무 자극돼서 등록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매일 들여다보죠. 근데 길게는 못 들어가고 애들이 있으니까 하루 2-3번은 들어갑니다. ◇ 박유천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이미영 = 박유천이 맡은 이선준이라는 역할은 '청춘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를 보여줬어요. 아줌마들이 '성스'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나온 청춘, 아줌마로서 살면서 잊고 지냈던 것들, 나는 없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지내 온 시간이 아쉬웠기 때문이에요. 선준이라는 빛나는 청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나도 꿈이 있었는데 아쉬워하면서 박유천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은 거죠. 여자 나이 마흔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 아닌가요? 결혼 생활도 외부 활동도 열정이 식어요. 열정이 되살아나면서 그를 위해 해 줄 일을 찾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유수연 = 40대는 지금껏 전력질주를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친정엄마가 항상 '너 그렇게 애쓰면서 살지 마라'라고 말씀하셔도 그게 무슨 뜻인지 통 몰랐죠. 그런데 우연히 TV를 보다 주인공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의 마음이 떨리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 행동을 제가 따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제가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라는 걸 느꼈어요. 사는 게 별 게 아닌데 너무 정신이 없었고 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거예요. 드라마와 주인공 덕분에 제가 변할 수 있어서 전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죠. ◇ 팬카페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유수연 = 남편이 하는 말이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못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하더라구요.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부동산 시장 20년 동안 좌지우지했고, 아무리 입시정책을 내놔도 그거 무시하고 사교육 시장 엄청 부풀려놓지 않았느냐는 거죠. 대한민국 아줌마들 뭉치면 못하는 게 뭐가 있느냐. 잘 됐다. 이제 실컷 보고 싶은 사람 TV에서도 마음껏 볼 수 있게 문화시장을 한번 바꾸어봐라. 부동산도 입시도 한물갔는데 386 아줌마들 뭉쳐서 해보라고. 고학력 아줌마들 갈 곳이 없는데 서로 윈윈하는 관계로 좋지 않나요? 저는 이렇게 사명감이 있는 일이 있나 생각합니다. ▲나경애 = 그게 유천이가 준 힘이라는 거에요. 그동안 우리가 할 줄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에게 자극적인 일이 없었던 거죠. ▲권대향 =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우리가 모두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부분 청소년 꿈이 연예인입니다. 저희들은 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연예인인 우리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이미영 = 제가 카페 운영자여서 '연기대상 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공지를 띄웠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어요. 40대가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세대다 보니 표를 구할 능력도 있었던 거죠. 당시 정말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거든요. 방송관계자, 기자도 못 구한다고 했어요. 결국은 300석 중 50석을 저희 회원들이 구했는데 정말 대단한 비율이죠? ▲나경애 = 박유천 어머니도 입석표밖에 못 구했는데, 블레싱유천 회원이 가운데 자리 2석을 마련해 드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열정에 기가 죽더라고요. ▲권대향 = 콘서트도 김장 무렵이었는데, 어렵게 예매를 했는데 친정이나 시댁에 김장 계획이 잡히면 며느리고 딸이다 보니 김장을 하러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그 표를 취소하지 않고 나 대신 갈 수 있는 어린 팬들에게 줬다고 합니다. 회원들한테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유수연 = 저도 표를 어렵게 구했어요. 구해주신 분이 말씀하시길 연기대상 날 박유천 팬들이 거의 점령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 응원 열기가 너무 강해 그 반향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용준, 이병헌씨도 워낙 일본에서 유명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이모팬들의 팬덤이 대단하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상당히 뿌듯했습니다. ▲김은희 = 연말에 TV로도 연기대상을 본 적이 없었는데 KBS 연기대상에 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지인에게 표를 부탁하고 그 집에 날마다 전화해 "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어요. 그러다가 그 집 아저씨한테 야단을 들었어요(웃음). 저는 "딸애가 표를 구한다"고 둘러댔지만 결국은 들통이 나더군요. 표를 구하고 나선 남편이 감기에 걸리는 불운을 맞았죠. 그래서 늦은 밤인데도 마트에 뛰어가서 배와 생강을 사왔어요. 꿀까지 넣어 정성껏 달여 자는 남편을 깨워 먹었어요. "빨리 나아라" 주문을 외면서요. 내 정성에 내가 놀랄 지경이었죠(웃음). ▲나경애 = 연평도 사태로 시끄러웠던 때 JYJ 콘서트를 보러 갔어요. 첫날 입장이 1시간이나 미뤄지는 바람에 칼바람을 맞고 서 있었어요. 내 앞에는 일본팬 2명, 뒤에는 말레이시아팬 2명이 서 있었는데, 일본어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던 저희 일행이 그 사람들과 3개 국어로 한 시간을 대화했어요. JYJ라는 공통분모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너무나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말레이시아 친구는 며칠 전에도 국제전화를 해서 "새로운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어요. 국제 친구도 생긴 거예요. 콘서트 당시 연평도 사태 때문에 정세가 아주 불안했는데 개의치 않고 오는 외국 팬들이 참 대단했었어요. ◇ 좋아하는 연예인의 존재..가족의 반응은?▲이명숙 = 박유천은 처음부터 남자였어요. 항상 내 옆에 있고 항상 신경쓰이는 존재죠. 현실적으로 보면 유천이 엄마보다 내가 2살이 더 많아요(웃음). 기사만 뜨면 가슴이 벌름거리고 무슨 일 있으면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과는 별개의 존재인데..나중에 악수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손 마사지도 받아봤어요. 연인 같은 느낌에 항상 기분이 좋고 생활의 활력소가 되죠. 남편은 조용필 콘서트에 가지 왜 JYJ 콘서트냐고 핀잔을 주지만 제 활동을 인정해주고 있어요. ▲나경애 = 외국에서 몇 년 살다 들어왔더니 관계들이 단절되어 있어 힘들더라고요. 남편이 출근하고 애들이 학교 가면 집에서 잠만 잤어요. 커튼도 닫아놓고요. 우울증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10개월을 그렇게 지냈어요. 그런데 빨래를 개다가 우연히 성스를 보고 점점 빠지게 됐죠. 컴퓨터에 관심도 없던 제가 밤새 '성스' 게시판을 기웃거렸지요. 즐거운 마음이 생기고 팬 활동을 하며 활력을 찾으니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어요. 박유천이 연기대상 3관왕을 했을 때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줘서 친아들이 상 받은 것처럼 축하를 받았어요. 저는 문자 한번 안 보내던 사람이었는데 문자로 인사도 다 했죠. ▲권대향 = 시부모님이 연말에 서울로 올라오셨어요. 며느리는 원래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이번에는 다르더라고요. 팬 활동이 즐거우니까 힘든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거기서 일이 벌어졌어요. 식사를 하러 간 곳에서 유천이가 모델로 활동하는 화장품 광고물이 쫙 깔렸기에 저도 모르게 '꺅~' 소리를 질러버린 거예요. 게다가 무슨 배짱인지 조카를 불러 사진까지 찍었어요. 어른들이 다 아시게 됐죠. 시누이도 "에미가 박유천을 좋아해서 이제 홍콩도 일본도 갈 것 같다"고 '고자질'을 했는데 어머니가 "그 비행기 값 내가 내준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가족들의 긍정적인 지지는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성실히 살아야 나온다고 생각해요. ▲유수연 =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이 있는데 제 활동에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나랑 11살밖에 차이가 안 나?" 이러면서요. 그런데 제 마음이 열리다 보니 아들에게도 점점 관심이 가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제 기준으로만 애를 평가했는데 마음이 열리다 보니 애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캐릭터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아들도 그걸 느꼈는지 엄마가 내려받은 자료를 위해 폴더 정리도 해주고 MP3 음악도 넣어주고요. 팬 활동이 엄마 아들 사이에 대화할 물꼬를 터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