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학 양성,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정읍사 전국서화協 이사장 운산 정용안
50여년을 서예가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정읍사 전국서화협회 운산(雲山) 정용안(74·鄭鎔安)이사장은 요즘도 후학 양성에 여념이 없다.서예문화 진흥과 보급을 위해 2010년 (사)정읍사 전국서화협회를 조직, 정읍향교 인근에 사무실과 연습 서실을 직접 운영중이며 부산과 순천에도 협회 지부가 구축되었다. 특히 정읍시 여러곳의 공공건물 현판에서 정용안 이사장의 글씨체를 볼수 있을 정도로 문화의 도시 정읍의 서예를 이끌어오고 있다.실제로 정읍시청을 비롯해 정읍시의회, 우동농악전수회관, 정읍학생수련원, 내장저수지 옆 동학100주년기념, 황토현전적지, 필야정, 정읍법원 신청사등을 알리는 현판은 그의 작품이다.고창 성송면 출신인 정용안 이사장은 서울에서 중고교와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서양화를 전공한 정이사장은 졸업후 한번의 붓놀림으로 원근이 나오는 동양화(문인화)의 매력에 심취하며 청전 이상범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수학했다.인사동을 자주찾던 정 이사장은 다시 난곡 김기승 선생에게서 서예를 배우며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걷게됐다.당시 대한일보 디자인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향하던 중 정읍에 살던 친구의 권유로 정읍시 연지동 현 박병원 인근에 '운산 서예학원'을 개원하며 정착했다.하지만 배우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간판, 표구, 액자 등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며 서예보급을 지속했다."1989년 정읍사문화제 1회 행사가 열리는데 서예협회가 제외되어 무척 섭섭했죠. 당시 조명근 정읍시장을 찾아가 문화제에 서예가 빠지면 안된다고 설득하며 2회대회부터는 참여할수 있게 된것이지요"정 이사장은 이 시기에 20여명의 지역 서예가들과 함께 정묵회(정읍의 묵을 좋아하는 사람들)를 결성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현재까지 '정읍사 전국서화대전'을 이끌어 오고 있다.서예와 동양화를 접목한 서화의 명인으로 손꼽히는 정 이사장은 특히 운산체(한글로 쓰는 글씨체)를 5년전 개발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내놓고 있다.정 이사장은 "한글 서예는 한문 붓글씨에서 나온 것으로 오체(전서,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병행하여 쓸줄 알아야 하며 작가라면 자기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 이사장의 작품에는 글씨체를 혼합한 혼서와 여러색상을 사용한 한국화를 병행한 작품이 많아 때론 평론가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거부감을 낳기도 한다."예술세계가 쉽지 않다"는 정 이사장은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2011년 세계 서예전북비엔날레'등 주요 서예전에 초대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또 2005년 제7회 한국종합예술대회, 이천 세계도자기비엔날레 전국도자미술대전, 2006년 제7회 전국 미술대전, 제11회 2007 대한민국문화예술대회 등에서 서예부문 대상을 차지했다.이같은 명성에 힘입어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전'에서 당시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현 새누리당 대표)측의 요청으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필승(必勝)'이라는 글씨를 가로3m, 세로5m 크기로 써주기도 했다.또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는 '세계평화(世界平和)'라는 글이 가로35cm, 세로 140cm 크기로 전달되는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글씨를 요청받고 있다."서예는 필력이다. 붓은 끌고다니는 것이 아니라 치고 다녀야한다. 붓을 직각으로 잡고 써야 한다"고 강조한 정 이사장은 "문하생들이 입상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서예보급을 위해 무료강습도 마다하지 않는 정 이사장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위해 좀더 큰 사무실이 필요하지만 여력이 부족하다"며 "다양한 곳에 재능기부를 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