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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로 다지는 새해 새 각오 - 청소를 잘 하자

“청소를 잘 하자. 주변이 잡다하면 고를 게 많아져서 인생을 낭비한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송웅정씨의 말을 재구성하여 써본 나의 새해 각오이다. 청소(淸掃)의 뜻은 ‘(빗자루로)깨끗하게 쓴다.’이다. 그런데, 누구라도 쓸고 닦기 전에 먼저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청소라는 말에는 ‘정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주변에 물건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잡다하게 널브러져 있으면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또 적당한 것을 고르느라 헛된 시간을 보낸다. ‘불과 몇 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라며 간과하다보면 평생 동안 그렇게 낭비하는 시간이 일생의 1/10, 2/10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정리를 포함한 의미의 청소를 잘해야 하는 이유이다. 주변의 환경을 정리하는 청소도 잘 해야겠지만 그런 청소보다 더 중요한 청소는 마음의 청소이다. 마음 청소를 못하여 오래된 원망과 미움을 가슴에 안고 산다든가, 쓸데없는 물욕, 권력욕, 과시욕에 사로잡혀 늘 허덕이며 산다면 삶을 그만큼 낭비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청소하지 못하여 이것저것 손 안대는 것이 없이 서둘다 보면 결국 이루는 일은 하나도 없고 그저 ‘공자망(空自忙:헛되이 스스로 바쁨)’의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된다. 고를 옷이 많아서 매일 아침 옷을 골라 입는 데에 필요 이상의 시간을 쓴다면 그 또한 인생의 낭비이다. 마음 청소를 잘하여 마음으로부터 쓸데없는 것들을 내 보내면 삶이 그만큼 가볍고, 가벼운 만큼 알찬 내실로 내 안을 다질 수 있다. 주변 청소, 마음 청소가 나를 알차게 하는 지름길이다. 유가(儒家)들이 사용한 어린이 교육 교재였던 「소학(小學)」 의 첫머리에서도 어린이가 먼저 몸에 익혀야 할 일로 “쇄소(灑掃)”를 들고 있다. “먼지가 일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비로 쓴다.”는 뜻이다. 어릴 적부터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부터 몸에 배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물건에 치이거나 잡다한 생각에 얽혀 들어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친 것이다. 필자가 40여 년 동안 교육현장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청소를 잘 하는 학생이 대부분 공부도 잘한다. 주변을 정리하는 능력이 학습내용을 정리하는 능력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공부를 잘 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어린이 교육의 항목이다. 어린이에게 공부할 시간을 많이 주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부모나 교사, 혹은 미화원이 청소를 대신해 주는 것은 오히려 어린이를 공부는 물론 제 앞가림도 못하게 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새로 한 해를 맞을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실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한한 삶을 보다 더 알차고 뜻깊게 사는 길은 주변청소와 마음청소를 잘 하는 데에 있다. 새해 아침에 붓을 들어 한번 써 보도록 하자. “청소를 잘 하자. 주변이 잡다하면 고를 게 많아져서 인생을 낭비한다.”라고.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서예가·서예평론가

  • 문화일반
  • 기고
  • 2023.01.03 17:38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이수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그 계절이 다시 오면 수령 600살쯤 된다는 노란 은행잎들이 소복하게 마당에 쌓여 있을 전주 향교에 가는 길 초입 향교길 68번지. 이곳에는 그 번지를 그대로 살려서 더 멋져진 '향교길68'이라는 갤러리가 있다. 그곳에서는 풋풋한 젊은 작가 둘이서 각각 개인전을 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서서 오른쪽의 공간에서는 전북대학교에서 석사 학위 과정에 있는 이수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 왼쪽의 공간에서는 젊은 조각가 김승주의 개인전이 열렸다. 먼저 이수아의 '( ) 새'전을 보면 대학을 중국에서 보낸 이수아가 겪은 외국 생활의 치열한 외로움에서 유발됐을 생각이 젊은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심각하고도 절실하게 가감 없이 표현돼 있었다. 여기서 '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사이의 준말이니 '틈'을 뜻하는 의미다. 괄호와 괄호 사이의 절박한 틈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생활, 작업, 외로움 등)과 일 사이의 완충된 공간과 시간의 틈, 사이에서 느꼈을 여유로움이라거나 반전을 꿈꾸는, 또는 회복하려는 귀중한 공간이나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멍 때리는 시간이라도 좋고, 그 시공간의 절실함이라도 좋다. 제작 방법을 유추해 보면 재료의 선택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종이에서는 각이 잘 잡히기 때문에 틈을 만들려는 본인의 의지에 걸맞지 않다. 전공으로 많이 접해 왔던 한지의 물성을 깨닫고 한지를 바탕으로 먹물의 농도로 그러데이션을 준다거나 비슷한 유사색상으로 통일감을 줘 염색하고 접어 틈새를 만들었다. 그래서 틈새라는 단어, 즉 표현하고자 원했던 것을 사실적으로 이뤄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노련하고 철학적인 명제를 훌륭하게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림이라는 것이 남보다 뛰어난 기능도 있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움의 준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철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미술의 변화는 기능의 발달이 아니라 철학의 시대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3.01.02 18:04

"처벌 대신 미술" 조건부 기소유예 청소년들 예술과 만나다

"애들아, 같이 교육 받으면서 친해지진 못 했지만 어느 정도 너희들의 성격은 파악하고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 앞으로 밖에 나가서는 더 이상 사고 치지 말고 내가 보고 싶다고 일부러 사고 쳐서 들어오지 마."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고 전북대 예술대학의 청소년 아트 세러피를 수강한 한 학생의 말이다. 법정에서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청소년들이 예술과 만났다. 처벌 대신 미술 체험을 통해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 '청소년 아트 세러피 J.AT' 2기 과정 전시회 '나는 비행 청소년이다'가 오는 9일까지 전북대 컨벤션센터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 과정은 전북대 예술대학이 전체 총괄했다. 지난해 9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10명의 학생이 집단예술치유 프로그램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 판단을 위해 자신의 범죄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자기성찰에 이르게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진행했다. 전시장 곳곳에는 청소년들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의 아픈 상처에 직면하고 자기성찰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 작품들이다. 청소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굳는 석고의 성질을 이용해 마음의 형상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인터뷰를 통해 내면의 소리를 항아리에 담기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게 된 사건에 직면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 억압된 기억을 깨트리기 위해 컵 깨기 퍼포먼스, 새출발하는 의미로 깨트린 조각을 붙여 만든 조각 자동차 등을 만들었다. 엄혁용 전북대 예술대학장은 "아트 세러피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치유를 돕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정서를 순화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청소년 선도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3.01.02 18:03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새해 첫 기획 전시 주인공은 송만규, 청년 작가 7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새해를 맞아 첫 번째 기획 전시를 연다. 주인공은 섬진강 화가로 불리는 송만규 작가의 '섬진강에서 두만강까지'와 2030 세대 청년작가 7명의 '7ing: 칠링'이다. 전시는 오는 5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다. 첫 번째 주인공 송만규 작가는 전당 전시장에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강을 소재로 그림 그린 지 30여 년이 지났다. 오랜 세월 송 작가만의 시선으로 강의 의미를 화폭에 담는 작업을 했다. 계절마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걸으며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물이 던지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묵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선보였던 섬진강뿐만 아니라 만경강, 임진강, 한탄강, 예성강, 두만강, 해란강 등 영역을 확장해 작업한 작품을 볼 수 있다. 2월 11일에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청년작가 박경덕·박창은·백지수·이다나·이준규·최무용·홍경태 등 7명이다. 이들은 전당 야외광장에서 작품을 전시한다. 같은 세대지만 저마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2023년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조각·설치 작품의 소재 특성상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작업에 매진했다. 전당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당에서 처음 개최하는 야외 조각전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공원을 산책하듯이 작품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획했다"며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과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3.01.02 18:02

[도전하니 청춘이다] 시니어들의 뜨거운 도전...도전하니 청춘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부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는 2025년 상반기 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이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하 시니어)인 셈이라는 뜻이다. 최근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증가 등 여러 사유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다. 도내 곳곳에서도 시니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시니어도 청년 세대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는 것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 키우느라 소 팔고 땅 팔았던 시절을 살아온 지금의 시니어들. 늦게서야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 해야만 했던 일 등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모습이다. 전북도립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만났다. 모악산 자락에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매일같이 꼬불꼬불 비탈진 길을 오르는 시니어들이 있다. 기본 왕복 두세 시간.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는 시간이지만 관람객과 마주하는 시간을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는 시니어들. 그들은 미술관 전시장 곳곳에서 밝은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거대한 미술 작품 앞에 서서 전시 안내와 작품 설명까지 마다하지 않는 미술관의 꽃이라 불리는 시니어 도슨트 장춘실 씨, 자원봉사자 권길자 씨와 이야기를 나눠 봤다. 할머니 도슨트가 되고 싶은 장춘실 씨 "춘실아, 너 자신을 잘 보살피렴." 지력과 체력을 잘 관리해야 미술관을 빛낼 수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는 장춘실(73) 씨. 전직 국어 교사이자 오래된 작품 컬렉터다. 장 씨는 33년을 교사로 살았지만 늦게나마 10대부터 관심 있었던 미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3관이 나를 살렸다. 나를 먹여 살린 8할은 3관이다.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나이 먹고 나서야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관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새로운 전시 들어오는 날, 작품 설치하는 날, 관람객 만나는 날. 미술관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미소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장 씨는 미술관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바로 할머니 도슨트. 그는 "33년을 국어 교사로 살면서 다짐한 게 있다. 조직 속에 들어가서 위아래 따지는 거 안 하기. 돈 욕심 내지 않기. 그냥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할머니 도슨트로 오래오래 미술관에 있으면서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술관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권길자 씨 "호적아, 너는 계속 나이 먹으면서 가라. 나는 안 가련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은 자원봉사자 권길자(77) 씨. 과거에는 자식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거둬야 했었다. 권 씨는 자식 4명, 조카 5명 총 9명을 키워야 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육아에만 전념했었다. 65세가 돼서야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고 10여 년 동안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나이 먹고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다니면서 점점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를 새로 아는 게 즐겁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것도 신기하고 마냥 재미있다"며 "특히 관람객을 마주하다 보니 머리, 옷도 다 신경 쓰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가꾸게 되고,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며 지금이 행복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권 씨에게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나를 먼저 챙기고 자식을 챙겼으면 좋겠다. 나를 먼저 아끼고 보살피고, 나이 많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사람과 마주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시니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발걸음을 옮겨 국립전주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연신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인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물관 1층에 들어선 '바로곁애 카페'. 이곳은 지역 시니어 사회 참여를 위해 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카페다. 말끔한 유니폼 차림으로 커피 머신 앞에 선 시니어들. 커피를 건네주는 시니어들의 마스크 속 환한 미소가 손님들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게 만든다. 이곳에서 시니어 바리스타 박종미·이다민 씨와 마주했다. 오히려 일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박종미 씨 "종미야, 너 대단하다. 잘했고 잘하고 있어." 1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박종미(63) 씨. 카페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나 차 종류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예쁜 커피, 더 맛있는 차를 건넬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하는 것도 기쁘지만, 카페에 나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도 카페에 있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안정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며 "집에 있을 때는 한없이 우울해졌었는데 밖으로 나와 활동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했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는 '바리스타'. 바리스타로 지내면서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박 씨다. 그는 "시니어가 되면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서운 것 같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으면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처럼 다른 시니어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이다민 씨 "하고 싶었던 것, 해 보고 싶은 것 다 해 보면서 나 자신한테 몰두하고 있어요."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이 컸던 이다민(62) 씨. 2019년에 암 선고를 받고 2년 가까이 쉬면서 우울증까지 심해졌다. 그런 그를 환한 세상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바리스타. 이 씨는 카페에서 손님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 그는 "평생 한 번 밖에 못 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항상 기분 좋게 손님, 동료를 마주하다 보니 혼자 있으면서 화가 나고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진정됐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살기 위해 '돈'만 보고 달렸던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단다. 지금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한 후회이기도 하다. 이 씨는 "바리스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많이 움직이다 보니 매일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좋은 일자리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시니어들이 행복한 세상을 경험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3.01.01 17:34

[새해특집 - 동물민속학자에게 듣는 토끼 이야기] 문화 영웅적 속임수의 명수, 꾀보 토끼

2023년 계묘년의 수호동물, 토끼 2023년 계묘년의 주인공은 토끼다. 토끼는 십이지 띠동물 가운데 넷째로 을묘(乙卯) 정묘(丁卯) ․ 기묘(己卯) ․ 신묘(辛卯) ․ 계묘(癸卯)의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십이지의 토끼[卯]는 방향으로는 정동(正東), 시간적으로는 오전 5시에서 7시, 즉 해가 떠오르는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시간신과 방위신이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an emblem of longevity)이며, 달의 정령(the vital essence of the Moon)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생김새, 놀란 듯이 쫑긋 세운 양쪽 귀를 가져 연약하고 선한 동물로 보이지만, 토끼는 영특하고 슬기로운 꾀보, 꾀쟁이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그리며, 토끼처럼 천년만년 평화롭게 풍요로운 세계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이상세계(理想世界)를 꿈꾸어 왔다.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 토끼 토끼는 달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토끼는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고 있다. 계수나무는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목(不死木)이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드는 존재이자 불로장생 그 자체의 상징이다. <토끼전>에 나오는 토끼의 간을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여겨져 별주부가 목숨을 걸고 찾아 다녔다. 토끼는 장생의 선약을 찧어 만드는 존재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천년을 사는 영물로 알려져 있다. 토끼는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이다. 불교 설화에서 토끼는 부처의 전생인 제석환인을 위하여 스스로를 소신공양한 자기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옛날 누가 진실로 보살도를 닦고 있는지 시험하고자 제석환인이 노인으로 변신하여 여우, 원숭이,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다. 여우는 생선을, 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져 제석환인을 공양하였다. 불교에서 최고의 공양으로 여겨지는 소신공양을 통해 달에 그려진 토끼는 후세의 본이 될 자기 희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불교에서 토끼는 불사(不死)와 공(空), 토보살의 상서로운 존재이다. 토끼는 소신공양한 자기희생의 상징이다. 옛 건축에는 기둥과 서까래 사이에 거북이를 타고 있는 토끼를 조각했는데, 이는 그 건물이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초가나 목조로 이루어진 건물은 불에 굉장히 취약하다. 용궁으로 가는 토끼와 거북이 조각과 그림은 불교적이면서 교훈적인 내용과 함께 용궁, 바다, 물의 의미로 불을 제압하려는 의도이다. 한 쌍으로 그려진 토끼그림은 다정하고 화목한 부부관계를 의미한다. 달 표면에서 육안으로 살펴볼 수 있는 ‘달 토끼’ 모양은 39억 년 전 거대 운석과 충돌한 흔적이라는 우주과학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제 달 속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던 이야기 속의 토끼는 사라졌지만, 실제 토끼와 인간과의 교감은 애완용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토끼는 생명공학을 위한 희생으로 인간을 대신해 실험대 위에 오른다. 사육이 쉽고, 번식이 빨라 유전자 형질전환 실험에 토끼가 쓰인다. 토끼는 실험동물로서 유용하고 약품의 독성시험이나 면역학적 실험에 많이 쓰이고 있다. 토끼는 ‘용왕구하기’ 대신에 현대판 ‘인류구하기’를 하고 있다. 영원한 꾀보, 토끼 토끼가 한국문화 속에서 어떤 존재로 상징화되든지 간에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꾀가 많고 지혜로운 동물이다. 토끼는 체구가 크고 힘은 강하나 우둔한 동물들에게 저항하는 의롭고 꾀 많은 동물 구실을 도맡아 한다. 토끼는 꾀보와 꾀쟁이, 지혜와 슬기로운 존재이다 옛날 이야기에서 토끼는 힘이 약하고 몸집이 작은 것에 반비례하여 매우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토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또다른 소재인 호랑이 등의 맹수에 비하면 약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꾀와 영리함으로 다른 강한 동물에게 지거나 이용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골탕을 먹이는 존재이다. 토끼는 남을 해살하지 않는 심성 때문에 곧잘 평범한 서민이나 백성들로 비유된다. 토끼를 민중으로 호랑이를 양반이나 관리로 빗대어 표현한다. 호랑이는 권력이나 지위를 앞세운 탐관오리나 양반을 빗대고, 토끼는 그 반대쪽 입장에서 밟히고 시달려야 하는 서민이다. 약한 백성이 강한 존재들을 이기는 방법은 곧, 지혜이다. 토끼가 호랑이를 골탕 먹인 것은 양반이나 나쁜 관리들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 속 반란이다. 토끼 이야기는 백성들의 강한 저항 의식과 삶의 지혜가 결집되어 있다. 자라의 꾐에 빠져 경황없이 용궁 속에 따라 갔다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의 간을 꺼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챈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는 대목은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목이다. 자신의 간을 배밖에 내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넣고 다닌다는 얘기로 용왕을 속이는 토끼의 재치는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이다’처럼 꾀 많은 토끼가 굴 셋을 연결시켜서 비상시에 이용하듯이, 무슨 일은 하든지 비상대책을 세워서 안전하게 해야 한다. 턱시도에 타이를 맨 플레이보이(playboy), 토끼 토끼는 귀가 쫑긋하고, 입은 째졌고, 꼬리가 짧으며, 깡충깡충 뛰는 뜀박질이 경쾌하고 빠르다. 귀여움, 영리함, 신속함이 토끼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때문에 토끼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이고 일찍부터 각국의 캐릭터로 사랑받아왔다. 어린 시절 부르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의 동요 ‘반달’에 투영된 토끼의 모습은 최근 유아용품이나 초등학생 학용품의 토끼 캐릭터로 나타난다. 토끼는 다산의 동물이다. 왕성한 번식력의 토끼의 특성을 감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Playboy)의 로고가 '턱시도 타이를 매고 귀를 쫑긋 세운 토끼'이다. 이 플레이보이 토끼 로고는 디자인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로고 중 하나이다. 지혜와 슬기의 토끼는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으로 한국문화 속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천진기 민속학 문학박사·동물민속학자·전 국립민속박물관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3.01.01 14:48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ESG 경영실천 선포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ESG 경영 선언을 선포했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은 지난달 30일 재단 전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ESG 경영에 대한 실천 의지를 모으고 재단의 ESG 경영 방향과 철학을 발표했다. 도내 문화와 관광 진흥을 위한 공공기관으로 ESG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다. 선언문에는 탄소 절감 노력, 지역사회 공헌,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 등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추진 의지와 행동규범 등을 담았다. 재단은 이전에 ESG 경영 도입을 위해 대내·외적 환경 분석과 내부 설문조사, 임직원 간담회 등을 실시해 지속 가능한 경영체계 구축의 방향성을 정리했다. 앞으로도 지역 사회와의 동반 성장에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2023 비전 전략과 연동해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를 수립·추진할 계획이다. 이경윤 대표이사는 "ESG 경영은 미래세대를 위한 재단의 의무로 생각하고 도민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단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갖고 올해 지역 문화예술 진흥과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모범적이고 혁신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우수한 성과로 공적이 인정된 직원에게 도지사, 대표이사 표창장을 수여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3.01.01 14:19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황사라

눈 내리는 ktx 안에서 등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흘러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6년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지요. 제가 접한 시들은 예전에 알고 있던 시들이 아니었습니다. 시가 전해주는 의미와 감정의 결도 모른 채 수십 권의 시집을 필사했습니다. 그럴수록 시는 더욱더 혼미한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불현듯 ‘시는 본래가 그런 것이다’라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습니다. 삶처럼 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삶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앞선 등단자분들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라고. 오직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산 아카데미 길상호 선생님, 시클 하린 선생님, 걷는 사람 김성규 선생님, 박형준 교수님을 비롯한 동국예술대학원 교수님들, 시로 좋은 예시를 보여주신 많은 시인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중대포엣, 블루버드 선생님들도 고맙습니다. 크리스티나, 필립보 네리, 너희들이 있어 엄마는 항상 웃을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 황사라 작가는 익산 출생으로 동국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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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1 14:17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 시적 진정성

이미지의 부조화와 언어표현의 부정교합으로 빚어내는 파격미 혹은 의외적 정서충격도 소통의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 유의미하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강박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실험적 언어표현을 과도하게 구사한다든지 열린 언어 구조로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경우를 본다. 의미맥락을 간추릴 수 없거나 일상적 의미맥락에서 너무 멀어진 경우가 많다. 주제의 치우침 현상 때문에 예심을 넘어서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사회적인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었을 때 변별력을 잃고 또한 상식을 넘어서는 개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투고된 많은 작품들에서 산문화 경향이 뚜렷했다. 압축과 생략 그리고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혹은 감추어두는) 시의 언어적 속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긴 시간 고립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 특성도 자주 발견되었다. 고립된 시간을 견디며 혼자 읊조리는 독백형, 사변형의 문장들이 그것이다. 배출 혹은 배설과 다른 지점에서 씨 쓰기의 이유는 찾아져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의 우려를 하기도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아보카도', '밀리터리룩의 이중성', '활어', '검은 고양이'다. 이 작품들과 함께 제출한 다른 작품도 참고하여 시인이 그의 시 세계를 계속하여 펼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도 가늠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아보카도'에서 견디기 힘든 폭염 속 시적화자는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려 그 안에 자라고 있던 푸른 식물들이 다 타버릴지도 모를 날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밀리터리룩의 이중성'은 위선과 관능과 관음을 도덕으로 위장한 ‘이곳’(도시)에서 ‘그곳’으로의 이탈(혹은 일탈)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표현했다.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함께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단순 서사에 머물거나 설명적 요소가 강하여 형상화가 미흡하다거나 정서 수준으로 용해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검은 고양이'는 빚어내는 이미지가 발랄하고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흥미롭다는 점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상상이 과잉된 측면이 있고 그 어떤 메시지로 수렴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활어'는 바닷가의 삶에서 읽어낸 활력과 긍정의 힘을 그려낸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끌어가는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그가 펼치는 정서에 신뢰를 갖게 하는 노련함이 보인다. 서정성도 잃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섬광 같은 새로움이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역량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의 없이 「활어」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김사인(문학평론가)·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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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1 14:16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골죽 - 지영미

수직으로 곧게 뻗은 대나무 군락, 속을 비운 대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흘러넘치는 푸르른 본능 사이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댓잎에 튕긴 빛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바람이 불자 일제히 우듬지를 출렁이며 허공에 부서진 소리를 쓸어 담는다. 대나무들은 하룻밤에도 훌쩍 키가 자란다. 늦게서야 자라는 대는 죽죽 뻗고 싶지만, 햇볕은 먼저 큰 친구들이 차지한다. 시간이 갈수록 초라한 모습이 도드라진다. 버스럭거리는 낙엽만이 골골이 파인 상처를 감싸줄 뿐이다. 속 깊은 자괴감에 비하면 겉면을 타고 내리는 고통쯤은 참을만하다. 제때 자라지 못한 몸뚱이는 결핍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시간이 갈수록 마디를 파고드는 골이 깊어진다. 생장의 마디마다 사연을 간직한 채 낮은 자세로 사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골이 깊어진 대나무, 골죽은 위로 자라는 대신 속을 채운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후미진 곳이지만 그것도 하나의 삶이기에 야무지게 제 속을 키운다. 속살은 두텁게 불리고 겉은 단단하게 여민다. 눈을 늦게 떠 늦자란 죄, 뭉툭하고 못생긴 자신의 모습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모두가 속을 비우는 대숲에서 내면을 옹골지게 키우며 자신을 지킨다. 잘 자란 대나무들은 진작 주인의 눈에 들었다. 살을 얇게 저민 고운 합죽선이 무용수의 손에서 나붓거리고, 매끈한 대는 실팍한 붓대가 되어 명필의 손에서 일필휘지 一筆揮之로 명문장을 휘갈긴다. 성글게 엮은 죽부인은 한여름 밤 어느 여염집 주인의 품에 든다. 숲을 떠나는 튼실한 대나무들을 보면서, 골죽은 소박한 국숫집 채반이라도 꿈꾸지만, 이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들 잘려나간 자리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숨죽인 대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주검처럼 누웠다. 남은 녀석들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두려움보다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골죽에게 찾아들었다. 이제야 햇볕을 흠뻑 받고 달빛을 마시지만, 몸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 서러워 울고 싶어도 누가 건들어 주지 않는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휘이잉 속울음을 운다. 대숲을 흔드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노인이 대숲을 이리저리 살핀다. 숲을 헤집는 낫이 달빛에 번득인다. 이놈은 너무 굵고, 저놈은 가늘어서 안 되고, 골 깊은 대나무를 응시한다. 저놈이 쓸 만하군. 온 힘을 다해 한 몸으로 엮어진 골죽을 뿌리째 뽑아낸다. 매서운 눈으로 골의 형상과 속살의 두께를 가늠한 노인이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불길로 병골죽의 겉면을 이리저리 굽는다. 은근한 불에 시퍼런 거죽이 거뭇해지다가 누렇게 변한다. 지지고 펴고 뿌리는 물세례에 허연 연기가 허공에 솟구친다. 우두둑 철심이 속살을 휘젓는다. 푹 파인 속심 사이로 소금기가 흘러든다. 베이고 파이고 골 죽은 만신창이가 된다. 저릿한 아픔이 전신을 파고든다. 죄라고는 기형으로 자란 것밖에 없다. 그런데 몸을 참하는 형이라니, 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터이다. 툭, 한순간 골죽은 컴컴한 방 한쪽에 놓인다. 골방에서 세월을 곰 삭인다. 골죽의 머리가 명인의 어깨에 살포시 얹힌다. 곧게 편 왼팔과 약간 낮게 드리운 오른팔이 대금을 수평으로 받쳐 든다. 취구를 따라 당겼다 늘렸다 입술에 주름을 편다. 입김이 소리 구멍으로 들어간다.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이윽고 골죽은 명기名器가 된다. 후루루 휘리리 후루후루 휘리리 명인의 날숨을 마신 대금이 첫울음을 토해낸다. 숱한 기다림과 번민의 시간이 진양조장단으로 흘러나온다. 속울음이 심금을 흔든다. 취구에 불어 넣은 입김이 끊어질 듯 말 듯 사그라들다가 중모리에 이르면 다시 굵고 길게 살아난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꽁지를 터는 새처럼 파르르 떤다. 혀를 굴리다가 튕기고 막았다가 떼고 들숨과 날숨의 어우러짐이 절창 絶唱에 이른다. 명인의 기교에 음정은 자진모리장단으로 거듭난다. 청의 떨림에 바람이 지나가고 달빛이 아른거린다. 시조를 읊조리듯 감은 눈이 움찔거린다. 장구 소리가 추임새를 넣자 입술과 어깨가 파도를 탄다. 토해내지 못한 설움이 입김을 타고 나오자 절로 손가락이 춤을 춘다. 골마다 묻어 두었던 통한과 비명이 파문을 일으킨다. 불의 다스림을 무수히 견딘 고통의 비틀림이 신비로운 가락으로 풀려난다. 떨고 흘리고 꺾고, 다시 혀를 치는 모든 기교에, 억눌렸던 고통이 대금의 골을 타고 승화한다. 소리 내어 우는 것은 가슴 깊숙한 곳에 정한 情恨을 품었기 때문이다. 가락도 외침도 하물며 비명까지, 맺힌 것이 있어야 밖으로 새어 나온다. 무른 나무에서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생에 고생을 거듭한 나무라야 딴딴한 소리가 난다. 숱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울음이 영혼을 울리듯, 울 줄 아는 나무 한 그루가 대신 울어주는 악기가 된다. 깊은 한이 담긴 저릿한 소리는 문득 슬퍼지기도, 이내 비장해지기도 한다. 너울거리는 선율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밑바닥을 훑는다. 깊은 골짜기 눈 쌓인 언덕, 사람 발길이 뜸한 산자락까지 휘감아 돈다. 침묵이 필생의 업인 바위, 태풍에 가지가 부러진 나무, 아파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미물들을 쓰다듬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며 가슴에 구멍이 뚫려, 공허에 빠져본 사람이라야 제대로 울줄 안다. 심연 深淵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절절함으로 삼라만상의 아픈 것들을 보듬는다. 다시 맑고 청아한 음색이 울린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사뭇 비장하다. 교교한 달빛이 만상 萬象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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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1 14:16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지영미

매서운 바람에 눈발까지 흩날리는 날 낭보를 받았습니다. 전화 속 목소리에 몸속 깊숙한 곳이 온기로 그득 해졌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의 보상이며, 보이지 않는 글을 잡아보려 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명이었습니다. 일과 글쓰기 사이에서 글만 파고들 수 없는, 무의식 저 너머의 불안을 말끔하게 씻어주었습니다. 치유로 시작한 글이 바닥을 보이며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했습니다. 또 다른 도약을 위한 목표물이 필요했습니다. 신춘문예를 생각하면 마음이 부듯해졌습니다. 해마다 수상작과 심사평을 읽어가며 혼자만의 방을 키웠습니다.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으면 깃발이 펄럭이는 방을 꿈꾸었습니다. 집 맞은편 대나무 숲의 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립니다. 쓸모없는 병든 대나무가 자신의 결핍을 발판으로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고 명기가 됩니다. 삼라만상의 아픈 것들을 보듬는 과정을 함께 아파하고 지켜보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저의 글이 누군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이겨내야 하는 혼자만의 싸움입니다. 누구도 함께 해주지도 않지만, 한편의 글을 해산한 후에 찾아오는 희열이 언제나 저를 추동합니다. 저의 글을 낙점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우들이 있어 글살이의 고난과 보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의 발자국마다 이끌어 주신 모든 분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오래도록 같이하고 싶습니다. 전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 지영미 작가는 울산 출생으로, 지금은 청도로 귀촌했다. 현재 고등학교 영어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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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1 14:16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체험을 통한 발견과 의미 담긴 작품

수필은 삶의 경지이고 깨달음에 닿아있기에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응모 작품에서 인생과 마음의 경지를 보면서 체험을 통한 발견과 의미를 살펴본다. 작품 5편을 가려내어 다시 읽어 보았다. 수필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피워내는 작업이고, 삶의 경지와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응모 작품 중 두 편을 골랐다. ‘골죽’과 ‘옹이’이다. 제목 자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골죽’은 골이 깊어진 대나무, 위로 자라는 대신 속을 채우는 대나무를 말한다. 골죽이 불기운과 물과 철심으로 다듬어져 대금으로 탄생한다. 오랜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취구에 입김이 닿으면 중모리, 자진모리, 진양조장단의 가락으로 심금을 울리는 악기로 재탄생한다. 인간의 자각은 삶의 발견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일 것이다. ‘골죽’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나무의 옹이는 줄기가 견뎌 온 인고의 흔적이다.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그루터기 상처를 입어 몸부림을 친다. 새 살이 돋은 것이 바로 옹이다. 인생도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 단단히 꿈을 안고 옹이가 박혔을 테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건승,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정목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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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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