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5 07:1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전선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바람 나그네’

전선자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바람 나그네>(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7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이 담겨 있다. 1부 바람 나그네는 시종일관 나의 자아정체성을 탐색하는 시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 2부 인연에는 모든 작품이 인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교적 상상력,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에 두고 있는 전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3부 하얀 여름에는 전 시인의 자연 친화적 사유와 소박하고 품위 있는 자연의 거울에 반사된 시인의 내면 풍경이 잘 표현되어 있다. 4부 소예 아리랑에는 꽃 진 자리, 소예 아리랑이란 제목을 붙인 시편이 5개씩 줄지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순영 수필가를 기리는 시 한 편도 포함되어 있다. 5부 딴짓에는 전 시인이 섬기는 삶의 여러 지형도가 담겨 있다. 전 시인이 바리스타와 도예를 배웠던 이야기, 불문의 수학과 국내외 여행의 소회 등을 담았다. 세상을 향해 열심히 갈구한 것은/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욕구였다/숲을 그리워하고 숲길에 들어/산과 계곡물의 정기 받아//음이온과 피톤치드로 몸을 정화하고/나이 듦을 인정하며 살고 싶은 꿈//(중략) 딴짓/건강을 잃으면/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진리를/깨닫게 되는 순간/늦게나마 숲에 들게 했다(딴짓 5 - 산림치유지도사 일부) 시집의 해설을 맡은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5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 시인이 산림치유지도사로 무주 향로봉 자연휴양림에서 방문자와 함께 숲과 숲길, 산과 계곡물이 공여하는 마음의 안식과 몸의 건강을 체현하려 애썼다는 대목이다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여백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각박한 지경이 되고 만다. 시인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라고 평가했다. 전선자 시인은 지난 1987년 4월 전북문학 117집부터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무주여성문학 산글 동인회를 창립했다. 봄호 시대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를 창립하고 초대 지부장을, 이어 전북 여류문학회 회장, 전북 불교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김환태문학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21.12.29 19:19

[신간] 김광원 시집 '불 속에 핀 우담바라'

김광원 시인이 시집 <불속에 핀 우담바라>(시문학사)를 펴냈다. 양장시조(중장을 빼고 초장과 종장만으로 이루어진 시조의 한 형식) '님의 침묵'이라는 부제를 단 이 시집은 그가 쓴 원광대 박사학위논문 '만해 한용운 시 연구'(1996)에서 소재를 착안했다. 그의 논문에서는 만해 시집 '님의 침묵'의 창작 배경을 매월당 김시습이 저술한 '십현담요해'로 본다. '십현담요해'는 당나라 상찰 선사가 지은 10수의 게송 '십현담'을 매월당이 풀이한 저서인데, 이를 만해가 다시 풀이해 '십현담주해'부터 '님의 침묵'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시인은 '십현담주해'와 '님의 침묵'에 나온 시구를 주목한다. 전자에 나온 '화사첨족'과 후자에 나온 '군말'이 의미적으로 일치하고, 곳곳의 문구에서 상관성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김광원 시인의 시집은 만해 시집 '님의 침묵'이 담고 있는 이런 비밀을 양장시조 두 줄로 대응시키면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양장시조의 첫 줄은 '십현담주해에서, 둘째 줄은 '님의 침묵'에서 드러낸다. 다소 어려운 부분은 시인이 해설을 덧붙여서 양장시조로 풀어낸다. 이런 방식으로 시집에 담긴 90편의 시조는 모두 5행으로 구성했다. 시인은 '님의 침묵'에 담긴 비밀을 풀면서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님은 일제강점기 고통 속에도 함께했고,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21세기 현 시대에도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광원 시인의 자서 에 드러낸다. 그는 "만해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광복인 남북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지요. 나아가 국조 단군의 한사상이 세계의 평화사상으로 자리잡고, 마침내 우리 민족이 온 세계에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해 낼 때까지 만해의 보살행은 멈출 수 없는 것이겠지요"라고 썼다. 전주 출생인 김광원 시인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원광대 국어교육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시문학>에서 우수작품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은 <슬픈 눈짓>,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 <패랭이꽃>(양장시조), <대장도 폐가>를 발간했다. 저서는 <만해의 시와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를 발간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원광문화대상(시부문), 제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기념 단가 공모에서 '민초가'가 최우수상에 당선됐으며, 군산문학상‧소태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의상만해연구원 연구위원과 원광대 및 백제예술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신간] 인간문화재의 올곧은 삶을 담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이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의 삶을 구술로 기록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국립무형유산원) 5권을 발간했다.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 사업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2017년부터 발간해 온 이 구술자서전은 올해까지 총 45권이 나왔다. 올해 발간된 자서전은 강강술래 박용순 보유자,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영희 보유자, 예천통명농요 이상휴 보유자, 윤도장 김종대 보유자, 황해도평산소놀음굿 고(故) 이선비 보유자의 생애와 활동을 각각 담고 있다. 강강술래 박용순 보유자는 결혼 후 6명의 시동생과 8남매 자녀를 돌보면서도 강강술래 가락을 잊지 않고 계속 전승해왔으며, 70대가 되어서는 만학도로 자신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영희 보유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들과 함께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혔다. 현재도 제자양성과 국악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힘을 쏟고 있다. 예천통명농요 이상휴 보유자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여 풍물과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가 어른들 어깨너머로 음악을 배우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윤도장 김종대 보유자는 윤도 제작의 가업을 잇기 위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왔다. 최근 큰 아들이 보유자로 인정돼 전통의 계승이란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 고인이 된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이선비 보유자는 해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피난했다. 그 후 신내림을 받아 황해도의 대표적인 굿거리들을 주관하는 무당으로 성장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문화재의 삶뿐만 아니라,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발간한 자서전은 국내 국공립도서관 등 관련 공공기관에 배포하고,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www.iha.go.kr)에 공개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작가-김하종 「사랑이 밥 먹여준다」

밥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온 지 30여 년 만에 쓴 삶의 고백서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온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숙제를 해결하려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난독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난독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고 주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타인의 절망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가 되어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것도 아픔을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난독증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었던 어린 시절에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사제의 길을 간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괜찮다라고 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41쪽)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조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성남시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씨는 성남 김씨가 되었다. 1998년에 불어닥친 IMF는 이웃의 생존을 위협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다. 김하종 신부는 그해 7월 7일 실직자와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문을 열고 수백 명분의 쌀과 반찬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리어카를 끌고 새벽 시장을 돌며 팔다 남은 야채를 얻었고 학교의 급식소를 찾아가 남은 반찬을 얻었으며 빵집과 결혼식장의 뷔페, 김장 김치를 나눠주는 절에도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동안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하루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다섯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싸움을 말리다가 뺨을 맞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매일 사랑을 주는 데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돌아온 것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늘 흘린 눈물은 어두운 땅에 소중한 씨로 뿌려질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킬 것이다.(145쪽) 안나의 집에는 무료급식소 외에 공동생활 가정인 쉼터가 있다. 춥고 위험한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의 대피소다. 쉼터에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 의료 지원, 직업, 자활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와 따뜻한 환영,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꽃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나눔의 길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감자와 배추를 나눠주는 분,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주머니의 용돈을 다 털어준 사람, 어렵게 모은 100만 원을 놓고 가신 낡은 코트의 할머니, 해마다 약을 기부하는 약사들, 돌잔치 대신 나눔을 택한 부부,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후원자가 된 사람. 김하종 신부는 나눔의 꽃들을 끝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읽어준 당신이 내게는 큰 응원이다.(255쪽)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황보윤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9:19

[신간] 아동문학전문지 '아동문학사조' 5호 발간

아동문학전문지인 <아동문학사조> 제5호(아동문학사조사)가 발간됐다. 발행인인 박상재 아동문학가는 책의 편집방향을 "작가들이 탐구하는 소재와 지향하는 가치관을 통해 시대정신을 탐색하고, 아동문학 이론과 작품 연구,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가작품론, 서평 등을 중점적으로 게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책은 '동시조의 숲'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특집Ⅰ에 수록되는 '현대 동시조의 현주소'(김종헌)에서는 동시조의 흐름을 조명했고, 평론 '꽃가지를 향한 그리움, 엄마 목소리' (박상재)를 통해서는 백수(白水) 정완영의 작가작품론을 살폈다. 다음 장인 '동시조의 향기'는 김영기, 박영식, 신현배, 윤삼현, 전병호, 조두현, 하순희의 특선 동시조를 수록하고 있다. 특집Ⅱ로 마련한 '사조 응접실'에서는 상주 글짓기 신화를 만든 최춘해 시인과 팔순기념 동화선집 6권을 출간한 윤수천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탄생 100주년 아동문학가'에서는 창령 출신 이준범 시인의 동시, '다시 읽고 싶은 동화‧동시'에는 작고문인 허동인의 동시 '산새알'외 3편과 정채봉의 동화 '어린 새'를 조명했다. 이밖에 도쿄준신대학 오타케 기요미 교수의 '생태환경문학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일본 평화그림책'과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권애영 특임연구원의 '신중국 수립부터 문화대혁명 전까지'의 중국아동문학사가 관심을 끈다. '만나고 싶은 작가 시인'에서는 동시인 박선미론(황수대), 손동연론(이정석), 동화작가 안미란론(함윤미), 서석영론(김옥선), 배유안론(전영경)이 실렸다. 특선 동화에는 김양경, 김희숙, 윤수천, 정성희 작가의 작품, 특선 동시에는 김완기, 류병숙, 이상현 시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제4회 신인문학상 당선작도 소개한다. 동시부문 신극원, 동화부문, 박경란, 유순덕, 평론부문 안수연의 작품이 실려있다. 해외 명작동화란에 소개된 그림형제의 '홀레 아주머니'도 흥미롭다. 장수 출신인 박상재 아동문학가는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국제펜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 1월 15일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남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원점 재검토하라"

남원시 가야역사 바로세우기 시민연대(이하 남원가야 시민연대)가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세계유산등재과정 대해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29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한 공문 서류 한 장도 공개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문화재청, 가야고분군 등재추진단과 7개 자치단체, 전북도‧경북도‧경남도 세 곳을 향해 엄중 경고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이미 올해 8월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남원가야고분군 국책사업의 문제점이 전국언론에 보도됐다"며 "11월 남원임실순창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이용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정 의원이 12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등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볼 때 국익을 해치는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송하진 지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단은 시감사나 도감사, 국정감사도 피해가는 무소불위의 한시적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 또 남원가야고분군 완성도 통과 신청서 건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도 자체 내 위원회에서 회의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소통의 부재도 꼬집었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전북도가 주최하고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가 주관한 학술대회는 행사장 출입을 제한했고, 시민의 자료집 요구도 여분이 없다고 거절했다"며 "추운 겨울 전주박물관 밖에서 6시간을 기다린 시민들이 학술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제자 곽장근 교수에게 공개 질문하려는 상황도 제지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자이며 연구책임자인 당사자에게 질문하려는 시민의 권리를 가로막고, 당사자도 아닌 제3자들이 개입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심각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남원가야시민연대는 "5000만원을 연 학술행사는 전북도민을 기망하는 학술대회로 추락했다"며 "전북도민의 혈세가 사용된 내역을 자세히 공개한 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국 명칭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를 남원시민에게 해명한 뒤, 원점부터 재검토해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야 한다"며 "세계문화유산 신청은 매년 제출, 철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12.29 19:19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수필] “중년의 나를 붙들어 매준 문학 그리고 글쓰기”

신춘문예 수필 당선자- 오미향 작가 몇 해 전, 눈밭이 흩날리던 겨울날이었습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더 희망을 주지 못했고 인생은 이상대로 흐르지 않는 것 같아, 뭐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도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검정 가죽바지에 긴 머리를 틀어 올린 교수님이 하는 문학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낯설고 매력적인 외모보다 문학에 대한 진솔한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문학이, 글쓰기가 이렇게 중년의 저를 붙들어 매줬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끄적거렸던 일기를 수필로 완성해 보고, 사물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시로 적어봤습니다. 첨삭을 기다리던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지고 글쓰기에 푹 빠져들어 가며 저는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름답고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되라며 예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께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용산도서관의 이수정 교수님, 첫걸음부터 지켜봐 주시고 매번 아낌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면 늘 운전대를 잡아 쥐고 따뜻한 커피를 말없이 내밀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 삶의 전부인 유리야, 영훈아. 엄마 일냈어. /오미향 작가 △오미향 작가는 제주 출생이다.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영어학원 강사를 했다. 서울 중구 여성문예백일장, 용산도서관 창작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근로자문학상, 남명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수필] 돌챙이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자, 암벽 위에 작은 돌집이 보였다. 벼랑 위 깔깔한 소금기를 벗 삼아 삶의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는 삭정이 같은 무릎을 보듬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만 불어도 거친 말 한마디만 내 던져도, 금세 기울 것 같은 수평을 아버지는 꼭 붙들고 있었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에 햇볕을 끌어모으고 먼바다를 내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잊었다는 것인지 다 지나간 일이라 모른다는 것인지 그 고갯짓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물 쓴물 다 빠진 아버지의 빈 가슴에 찾아 든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마른 웅덩이처럼 젖어들었다. 말랑하게 가라앉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 놓은 돌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거칠고 힘든 석공 일은 당신만 하고자 했다. 대물림은 생각도 하지 말라며 더는 돌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오늘도 돌집 마당을 서성였다. 조용히 봄볕 드는 양지 녘에 앉아 돌을 바라본다. 어느새 아버지의 얼굴에선 미소가 감돌고 커다란 원석을 어루만지는 손에 힘이 느껴졌다. 꼭 다문 입술이 비장했다. 허공 중에 떠 있던 쇠망치가 주인의 손을 거쳐 낙하했다. 끙 소리와 함께 사과 잘리듯 커다란 돌덩이는 반쪽으로 벌어졌다. 바가지 머리의 소녀가 그 틈 사이를 비집으며, 기억 속 유폐된 추억 주머니를 매달고 걸어 나오며, 아버지 뭐 만들어요?, 우리집은 언제 만들거예요? 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돌하고 얘기를 나눴고 돌을 부수고 깨며 겹겹이 쌓아 올릴 뿐이었다. 애써 만든 조형물이 다음 날은 자취도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아련했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갖출 때까지 아버지는 수없이 반복했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이 일을 택했다는 아버지의 얘기에 비하면 너무나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돌을 조각하면서도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돌은 우리들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돌가루가 튄다고 나를 멀찍이 밀어내며 장난스레, 우리 향이한테 무얼 만들어줄까? 물으면, 음, 이따만한 멋진 궁전을 만들어주세요, 라며 두 손을 넓게 벌려 보였다. 땀이 비 오듯 내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디선가, 밥 먹으멍 헙써.(식사 드시면서 하세요), 점심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아버지는 궁전을 지었었나? 울퉁불퉁한 표면에 우락부락한 생김새의 커다란 사람, 돌하르방이 떡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일까. 우스꽝스러운 그의 코는 반질거리며 납작해져 갔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미소를 잊지 않는 돌하르방은 자식을 위해 온몸의 윤기가 빠져나가도 헬쭉거리며 웃어 보이는,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포근한 아버지였다. 어느새 정수리를 뚫고 나온 새치를 한 가닥 뽑으며, 아버지, 혹시 물팡 만드세요? 물허벅을 부릴 데가 있어요?, 라고 물었다. 받침대로 쓰일 튼튼한 돌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이지만 옛것에 대한 향수로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민속박물관에, 마당 너른 집에서 볼 수 있는 물팡은 물허벅을 진 이의 욕망과 간절한 이상향의 징표였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부지런히 올라와선 물허벅을 집 마당에 부려놓으며 쳐다보는 하늘이 그렇게 파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물 한 방울이라도 안 흘리려 고생했던 그 마음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줬다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고 했다. 물을 길어 올리고 관리하는 게 여자의 일이라면 제주 남자는 돌과 함께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삶이 녹아있는 돌 하나 하나하나가 모여 홑담이 되었다. 아랫돌 괴어 윗돌 받치고 중간 돌 빼서 윗돌 올리며 어깨동무하듯 겹담이 되면서 견고해졌다. 빽빽이 잘 쌓아 올리는 게 최선은 아니었다. 사이사이로 바람구멍을 터줘야 돌들도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의 삶도 높이 쌓아 올리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을까? 주변을 돌아보며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바람길을 만들 생각은 했었는지? 내쉬는 날숨에 상처받은 이가 있었다면 더불어 배려하는 들숨으로 바람구멍을 터야겠다. 아버지는 험한 바다와 돌담의 형식으로 바람을 붙잡고 살아냈다. 시꺼먼 화산불이 핥고 지나가도 섬을 지켜냈다. 송송 뚫린 시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인 돌담은 숱한 바람들이 돌 틈 사이로 빠져나가며 삶을 이어주고 견고하게 지켜준 자리였다. 시골집 근처 밭마다 테두리를 두른 돌담이 즐비했다. 여기는 순이네 집 철수삼촌의 보금자리 영희네 우영팟 작은삼촌의 일터, 라는 밭담이 아버지의 손에서 빚어졌다. 그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바람을 피하고 햇살을 받으며 자양분을 듬뿍 먹고 자라날 수 있었다. 나만의 방식대로 물허벅을 지고 왔다. 구덕에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앉히고 두 줄의 긴 끈으로 돌돌 감아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날랐다. 물허벅을 어깨 너머로 꺼꾸러지게 해서 순도 높은 물을 항아리에 부어 넣었다. 잠시 물팡에 물허벅을 얹혀 숨을 돌리기도 하면서. 잠시 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반 호흡 사이 생의 교차로는 여러 갈래로 뒤엉키기도 했다. 길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어디쯤에서 사라졌을까. 평생을 걸어도 아직 닿지 못한 길의 끝에 돌하르방이 있다. 두 손에는 끌과 망치를 들고 내게 손짓을 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앞에 커다란 암석이 있더라도 헤치고 걸어오라고. 오월의 기분 좋은 햇살과 살랑거리는 미풍에 알맞게 데워진 돌의 살갗을 만져보라 한다. 돌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며 돌의 향기를 맡아본다. 쓰다듬는 손에선 따뜻한 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오미향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수필] “석수인 아버지의 삶을 소중한 가치로 들여다 본 작품”

신춘문예 수필 심사위원- 지연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각기 주제가 다른 작품들로 수필 문학의 참신한 문학성을 바탕으로 문장을 전개해내는 기법이 다채로웠다. 인생 철학이라 말하는 수필 문학을 사유의 깊이로 짚어 내어 준 훌륭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 작품은 다양한 소재를 결합하여 의미를 형상화해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생사의 경계를 극명하게 가르는 죽음에 대한 천착과 석공인 아버지의 가난한 평생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본심 2차 심사에서 <돌챙이>, <노을공책>, <물음>의 수필을 선하여 놓고 이들 작품이 요구하는 메시지가 적절하게 제시되었는지 시선을 모았다. 수필 문학이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는 데는 일상적 사실 체험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떤 사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이 내포하는 필자의 사고를 천착하는 데 있다. 최종심에는 석수인 아버지의 삶을 소중한 가치로 들여다본 <돌챙이>를 선하였다. 아버지는 평생 돌하고 이야기를 나눴고, 돌을 부수고 깨며 겹겹이 돌을 쌓아 올린 분이다. 애써 만든 조형물이 다음 날이면 형체도 없이 무너졌지만, 자연스런 형태를 갖출 때까지 아버지는 수없이 작업을 반복한 완벽주의자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이 일을 택한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포근한 분이며, 자식의 삶의 길에 위로와 길잡이가 되어 내일을 여는 귀감으로 존재한다. /심사위원 지연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동화] 지하철역 아이

뚜루루루 뚜루루루 .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열차는 정리 된 책장의 책처럼 제자리에 착착 멈추었어. 그러고는 입을 벌려 몇 안 되는 승객을 토해놓기가 바쁘게 또 몇 안 되는 승객을 빨아들이고 꽁무니를 빼 버렸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발길이 뜸 한 곳인데 열차가 지나간 역사는 정말 조용하고 쓸쓸했어. 나는 역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비추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는 보안카메라야. 이 역사 안에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어. 내가 이 역에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크던지 어깨가 아주 무거웠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잡는데 내 힘이 꼭 필요 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로 떠나갔어. 이 역에도 점점 승객 수가 줄어들었지.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은 이 역에서 난 정말 할 일이 없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던지 하품을 하다가 깜빡 졸아 버린 적도 있지 뭐야. 게다가 요즘은 나이 탓인지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아. 대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오후 4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역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누구랑 약속이라도 한 걸까? 손목에 차고 있는 키즈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어.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열차는 긴 꼬리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역에 도착했지만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그 아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어. 왜 이번 열차에 타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열차가 부리나케 역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아이는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어. 여전히 키즈폰으로 시간만 보고 또 보았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아이는 역에 왔어. 가방을 메고 오는 걸 보니 학교가 끝나면 바로 여기로 오는 것 같았어. 여자아이가 가방을 열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가방 안쪽에 하나 초등학교 3학년 1반 정기쁨 이라고 쓰여 있었어. 아이의 이름이 기쁨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지. 귀여운 얼굴이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런데 하나초등학교를 역사 안에 있는 지도로 찾아보니 꽤 먼 거리에 있는 거야. 나는 조금씩 기쁨이에게 관심이 갔어. 왜 저 아이는 열차를 타러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 먼 곳까지 매일 오는 것일까? 나의 궁금증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갔어. 그날도 누군가를 아니면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는 기쁨이가 보였어. 심심한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그림도 그리고 과자도 먹고. 그러다 열차 들어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봐. 기쁨이도 내가 보는 걸 알아차린 걸까? 맨 처음에는 기쁨이가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내가 아니라 안내방송 소리가 나는 내 옆의 스피커씨를 쳐다보는 거더라고. 이보시오. 스피커씨, 저기 저 아이가 매일 와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스피커씨를 쳐다보는데 혹시 까닭을 아시오? ...... 궁금해서 물어는 봤지만 스피커씨가 대답을 해줄리 없었어. 이 역사가 생기고 스피커씨와 내가 설치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을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구식 기계가 된 카메라와 스피커일 뿐이지만 우리도 한때는 최신식이라 불릴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반짝이는 렌즈에 지금처럼 깜빡깜빡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이 흐릿해 보이지도 않았지. 스피커씨도 광채 나는 진한 검정에 지금처럼 잡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깨끗하고 낭랑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다 흰 눈 같은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초라해졌지. 한때는 우리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하룻밤 꿈만 같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 한번 제대로 해 주지 않는 스피커씨한테 서운해지려 해. 기쁨이가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어. 목소리가 크고 흥분한 걸 보니 전화 건 사람이 잔뜩 화가 났나 봐. 정기쁨, 너 어디야? 매일 학원 간다더니 어딜 쏘다녔던 거야? 친구 집에서 ... ... . 그때 기쁨이의 거짓말을 꾸짖기라도 하듯 다음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역 안에 울려 퍼졌어. 너, 또 거기 간 거야? 엄마가 거기 가지 말랬지? 전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어. 동시에 기쁨이의 얼굴도 붉어지고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 ....... 정기쁨, 왜 대답이 없어? 엄마가 금방 갈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 엄마와 통화를 마친 기쁨이의 어깨가 들썩였어. 이럴 때 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어깨라도 토닥여 줄 수 있다면. 난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구닥다리 카메라일 뿐 이었어.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급한 걸음으로 후다닥 계단으로 내려왔어. 그러더니 기쁨이를 와락 끌어안았어. 둘은 한 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어. 그런데, 어? 저 얼굴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나는 흐릿해진 기억을 되짚어봤어. 내가 기쁨이 엄마를 처음 본 날도 기쁨이 엄마는 울고 있었어. 얼마나 울었던지 기운이 없어서 울다 쓰러 지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어. 기쁨이 엄마가 울게 된 이유는 전날 밤 사고 때문이었지. 우리 역에 역무원들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 번갈아 일해.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그날은 부역장님이 일하는 밤이었어. 마지막 열차만을 남겨둔 참이었지. 부역장님은 열차를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에 서있었어. 보통 그 시간엔 아무도 없기 마련인데 그날은 어떤 남자 승객 하나가 서 있었어. 그런데 자꾸 몸을 비틀비틀 했어.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로로 떨어져 버렸어. 그때 부역장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철로로 뛰어 내려갔어. 분명 방금 전에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들었을 텐데 말이야. 서둘러 술 취한 승객을 철로 밖으로 밀어냈어. 곧바로 열차가 들어오고 부역장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어. 난 그때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다음날 사고 현장인 역에 찾아온 기쁨이 엄마는 울고 또 울었어. 그날 이후에 기쁨이 엄마는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았어. 역에서 일 년에 한번 부역장님을 위해 하얀 국화꽃을 준비하고 추모를 하지만 기쁨이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어. 부역장님은 우리 역 목소리 미남이었어. 나도 역무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아는 건데, 부역장님의 원래 꿈이 성우였는데 집안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고 해. 그래서 우리 역 안내방송을 부역장님 목소리로 녹음해서 쓰고 있었어. 다른 역들은 모두 디지털 안내방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역만 아직도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야. 기쁨이가 바로 정강훈 부역장님의 딸이었구나. 이제야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 아빠 목소리를 들으러 엄마 몰래 매일 같이 여길 온 거였구나. 나는 기쁨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는 카메라일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어. 한 가지 생각을 깊이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 지끈. 이런, 눈만 잠깐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잤나 봐. 카메라가 꺼졌다고 난리가 났어. 요즘 자꾸 화면이 자꾸 꺼지던데 오늘은 아예 먹통이네요. 너무 오래돼서 그렇지 뭐야. 또 오작동하면 카메라를 교체해야겠는 걸........ 젊은 역무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은근 부아가 치밀어. 내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갖다 버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 요즘 사람들은 고쳐 쓰는 일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고향 같은 이곳에서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때 번뜩 기쁨이를 도울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내일도 또 오겠거니 기쁨이를 기다렸어. 그런데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간 후로 기쁨이는 오지 않았어. 정말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고 자꾸만 졸린 데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만 하던 어느 날. 드디어 기쁨이가 왔어. 나는 너무 반갑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 기쁨이는 어디가 아팠던 건지 조금은 야윈 얼굴이었어. 작아진 어깨에 달팽이집 같은 큰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기쁨이는 오늘도 열차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안내방송이 나오자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 거렸어. 아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눈을 질끈 감았어.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눈을 다시 떴어. 역사 안의 모든 카메라에 기쁨이가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계획이야. 사무실에서는 또 소란이 일었지. 아니, 이게 뭐야! 또 고장인 건가? 아주 멋대로 잖아! 지난번에 한 번 더 고장 나면 카메라를 바꿔달아 버리자던 젊은 역무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왜! 무슨 일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어. 모니터 속 기쁨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 역장님 오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보안 카메라가 말썽이더니 오늘은 아예 이렇게 한곳만 비춘 채 먹통입니다. 아무래도 새 걸로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울고 있지? 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장님의 지시로 역무원들이 기쁨이한테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어.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카메라들을 정상으로 되돌렸어. 잠시 후 젊은 역무원 뒤로 두리번거리며 기쁨이가 따라들어 왔어. 역장님은 기쁨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어. 기쁨이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대화를 마친 역장님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기쁨아, 아빠 목소리 여기에 담았으니까 언제든지 들으렴. 여기서 정말 울 아빠 목소리가 나와요? 역장님이 기쁨이 손에 작은 이동식 메모리 장치를 쥐어주자, 기쁨이는 봄꽃 마냥 살포시 웃었어. 나도 덩달아 너무 기뻤어. 카메라에 눈물샘이 있었다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스피커씨한테 말을 걸었어. 저기, 나 오늘 좀 멋지지 않았소? .......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오? 치익 치지, 지직. /박영미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동화] 박영미 작가 “울림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 어루만져줄 것”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박영미 작가 한때는 소설가가 꿈이었기에 동화는 아주 쉬운 떡 먹기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세상 풍파에 찌든 어른이었고, 제가 쓴 동화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희미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동심이라는 것과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이번 당선 소식을 접하고 동심의 그림자 정도는 찾았다는 생각에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어봅니다. 어쩌면 동심을 찾는 술래잡기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한발 한발 가볼 것입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놀이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길고도 어두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동화가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더 써보라는 기적 같은 응원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재미보다는 울림이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부끄럽고 서투른 글을 뽑아 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정옥 선생님, 김정민 선생님, 동화세상 글벗들과 저의 제1독자인 남편 전대원, 아들 준우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박영미 작가 △박영미 작가는 전남 여수 출생이다. 2009년 일본 류코쿠 대학교에서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시] 빈집

빗속에 집이 잠겨있다 태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지만 빈집은 날개를 접고 흔들리지 않았다 식구들은 모두 전주로 떠나버리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 퇴행성관절염에 어깨 한쪽이 내려앉은 채 기울어 가는 생을 붙들고 있다 빈집의 담장을 지나다보면 허옇게 바랜 집이 손을 저으며 말을 걸어온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와 그 길로 져 날랐던 가난과 고단함에 대해서 빈집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빈 방에다 새긴다 행간마다 피어나는 유폐의 점자들 마당 우물터로 목마른 잡초들이 조촘조촘 들어서고 버리고 간 장독대엔 혼잣말이 웅얼웅얼 발효 중이다 죽은 참가죽나무에 앉아 종일 귓바퀴를 쪼아대던 새소리도 날아가고 귀가를 서두르는 골목 일몰의 욕조에 몸을 담근 빈집이 미지근한 어둠으로 눈을 닦는다 종일 입술을 다문 대문을 빈집은 몇 번이고 눈에 힘을 주어 밀어 보지만 끝내 대문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당 깊은 곳까지 어둠이 차오르면 빈집은 눈을 들어 별자리를 더듬는다 식구들이 몰려 간 서남쪽 하늘 별이 기울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들쥐가 들어앉아 새끼를 낳았다 이따금 달빛이 새끼들의 털을 핥아주고 갔다 들쥐는 빈집의 뒷다리를 갉아 먹으며 자라고 집은 제자리에서 우물처럼 늙어간다 빈집의 늑막 아래로 어둠이 점점 차오른다 /박수봉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시] 박수봉 작가 “시의 길은 말없이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뒷모습 따라가는 것”

신춘문예 시 당선자 박수봉 작가 보라색 공원관리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나무 줄기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지난 계절을 잃고 바람을 흘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런 나무 곁에서 문득 내가 줄기 잘린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퍼렇게 뻗어 가는 시의 줄기를 잃고 자꾸 움츠러드는 제 모습이 나무를 닮았다며 허전함의 지평을 늘이고 있을 때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수변 공원 나무들을 보러 나섰습니다. 매서운 한파에 뭉툭하게 가지가 잘린 나무들이 즐비하게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잘린 부분을 어루만지면서 저는 제 시가 가야할 길을 더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리고, 꺾이고, 찢겨가면서도 말없이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시의 길임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천천히 공원을 걸었습니다. 저의 움츠러든 손목에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름이 더욱 무거워졌음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최종심에서 낙선하고 우울해 할 때 낙선주라며 담근 술을 따라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오산의 문우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하는, 제가 사랑하는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봉 작가는 전북 장수 출생으로, 경기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2018년 최충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2021년 중봉 조헌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시] “주관적 정서의 객관화, 소통 잊지 않은 작품"

심사위원 민윤기(서울시인협회 회장), 이병초(전북작가회 회장) 전주에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겠다고 예보된 날 신문사로부터 본심에 올라온 14편의 시를 전달받았다. 이름을 지운 응모자의 시편들은 자아와 세계의 화해 불가능을 확신하는 비규범성이나 이질적인 것들의 혼돈 등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혼종적 욕망이 들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시단 풍토와 다르게 뜻하는 바가 분명했고 시어들 개개의 인상과 소리 맵시가 어울려 새 형상을 짓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응모작 중에서 <괄호 밖의 사람들>, <빈집>, <편의점 라이프>, <오래 머무르는 풍경>, <바람의 건축> 등의 작품을 오래 들여다봤다. <괄호 밖의 사람들>은 괄호 안의 사람들을 궁금하게 함과 동시에 모래가 환기하는 삶의 황폐성을 떠올리도록 하고, <오래 머무르는 풍경>에 적힌 경작금지라는 팻말과 누군가는 스며들고 또 누군가는 닮아간다라는 구절은 시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편의점 라이프>와 <바람의 건축>도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숙고 끝에 <빈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태풍을 피해서 모두가 떠난 빈집, 삶의 내력과 유폐된 시간을 감당하는 의인화는 고단한 시간을 견딘 타인의 이야기, 동시대 모두의 사연으로 읽혔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에 어울린 빈집의 서사는 시 공부를 열심히 한 흔적도 보였다. 시는 주관적 정서의 객관화이며, 소통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시적 형상화에 공력을 들인 <빈집>의 시인,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민윤기(서울시인협회 회장), 이병초(전북작가회 회장)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이불

향이 너무 독하지 않아요? 퇴근길에 들른 수연은 그새 두 번이나 내게 물었다. 당연히 내가 동의할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집 안은 거실 베란다에서 행운목 꽃이 뿜어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한 뼘쯤 도막진 행운목을 사다가 수반에 담아주고 나중에 다시 화분에 옮긴 건 그 애였다. 베란다로 가 꽃을 피운 걸 신기해하더니, 요모조모 살펴볼 새도 없이 꽃향내에 진저리를 치며 거실로 뛰어들어왔다. 꽃은 저녁 무렵 피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물었다. 그만큼 향기도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좋기만 하구나.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갸웃하는 수연의 얼굴에 언뜻 딱해하는 빛이 스쳐갔다. 이모도 어쩔 수 없이 노인이네,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의미일 터였다. 나는 그저 꽃대를 따라 뭉쳐 핀 볼품없는 흰 꽃이 분내보다 향긋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십 년 넘게 행운목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그게 꽃을 피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탓에 수연이 올 때마다 공기청정제부터 뿌려대며 수선을 부려도 집 안에 괴어 있다는 퀴퀴한 냄새가 늘 긴가민가하듯 꽃향기 또한 정체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뎠다. 내 눈에 꽃대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자잘한 꽃망울이 제법 벌어진 뒤였다. 수연은 차라리 평소의 구중중한 냄새가 낫다고 했다. 꽃향내가 향수 냄새처럼 메스껍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젊은 시절 립스틱 향내에도 멀미를 했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인 수연의 엄마를 건너뛰어 수연도 그랬다. 수연이 특히 못 견뎌하는 건 향수 냄새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근처 누군가가 향수 냄새를 풍기면 모처럼 잡은 자리도 포기하고 멀찌감치 피해간다고 했다. 내가 낳은 삼남매 중에서는 향내에 예민한 아이는 없었다. 나는 떨어진 기력만큼이나 코가 무뎌진 뒤로는 웬만한 냄새쯤은 순하게 길들이고 사는 편이었다. 거실 창문을 닫지 그러니. 나는 수연이 사온 호박죽을 쇼핑백에서 꺼내며 말했다. 그럴까? 나를 거들려고 식탁 쪽으로 오던 수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꽃향내가 아니더라도 시월 저녁은 창문을 열어놓기에는 서늘했다. 그러나 거실 창가로 간 수연은 창문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그냥 돌아섰다. 겨울에도 창문 한 귀퉁이를 열어놓고 지내는 내 갑갑증을 떠올린 듯했다. 수연은 주방 쪽으로 되돌아오며 어쨌든 행운목 꽃이 핀 건 내게 길조라며 좋아했다. 제집에 있는 것도 꽃대를 내미는지 살펴봐야겠다고 했다. 도막진 걸 살 때 내 것을 함께 샀고, 뿌리를 내려 화분에 옮긴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하지만, 꽃이 핀다면, 아무래도 꽃대를 잘라버려야겠죠? 아무리 좋은 징조를 예고한다 해도 이 향내를 어떻게 견디겠냐고 했다. 나는 그런 수연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얘야, 모진 손이 꽃을 꺾는 법이란다. 향내가 독하다 한들 저대로 세상 보러 나온 걸 해쳐서야 되겠니? 수연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은 수연의 봉급날이었다. 낮에 전화를 걸어 누룽지백숙으로 유명한 인근의 맛집을 예약하겠다는 수연에게 나는 호박죽이나 사오라고 일렀다. 이종들 생일이 죄다 이달이잖니. 시월에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삭신이 오죽 쑤시겠냐. 우스개처럼 덧붙였다. 수연은 실망하면서도 퇴근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달려갈게요, 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수연이 교사로 일하는 초등학교는 서울 외곽에 있었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수연이 전자레인지에 호박죽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서너 가지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렸다. 달착지근한 호박죽이 입맛에 썼다. 나박김치는 국물이 시고 무 숙채는 양념이 가라앉아 마르고 싱거웠다. 수연은 퍽퍽 수저질을 하는데도 어쩐지 깨작거리는 느낌이었다. 반찬 탓이려니 하면서도 눈빛으로 수연을 나무랐다. 수연은 고갯짓으로 행운목이 있는 베란다를 가리켰다. 넌 결혼할 맘이 영 없는 거니? 올해 지나면 마흔 쪽으로 부쩍 휘어질 텐데. 누군들 나일 안 먹나요? 지지고 볶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라죠 뭐. 얜, 결혼을 취미로 하니? 재밌게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해놓고 보니 잔소리였다. 언제부턴지 나는 수연을 만나면 당연하다는 듯 결혼 얘기를 입에 올렸다. 제 엄마를 대신해 간섭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굴었다. 뻔한 길이 싫으면서도 문득 돌아보면 그 길에 깊숙이 들어와 있듯 사람 사는 일은 매사가 그런 것 같았다. 소녀 시절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낭자한 웃음소리를 경멸했다. 까마귀나 까치가 깍깍대는 소리처럼 조심성이 사라진 웃음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년의 어느 날 내 웃음 속에서 깍깍 소리를 발견하곤 정말 깍깍거리고 웃었다. 나도 말 많은 노인네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호박죽 한 그릇을 억지로 비웠다. 생목이 오르는 걸 꾹 참았다. 수저를 내려놓으며 수연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안성에서 배농장을 하는 수연 아빠는 오 년 전 동생이 암으로 죽은 뒤 바로 재혼했다. 고등학교 때 인근 여학교에 다니던 풋사랑 상대였다. 남편과 사별하고 안성 시내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던 여자였다. 여자는 재혼하면서 식당을 접고 수연 아빠의 농장일을 돕고 있었다. 제 오빠처럼 재혼에 시큰둥하지는 않았지만, 수연은 그들 신혼부부가 이듬해 새집을 지어 옮겨간 뒤로는 발을 끊다시피 했다. 동생의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진 듯했다. 새집에 다녀와선, 섭섭함보다도 아빠의 하이모 가발이 좀 낯설었을 뿐이라며 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의 서로에게 익숙한 모습이나 애도 기간 없는 다정함 같은 것도. 여름에 태풍으로 낙과가 심해 올해 배농사는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가끔 제 아빠와 통화라도 하니 다행이었다. 겨우 죽 먹은 설거지에 시간을 들인다 했더니 수연은 조리대며 개수대까지 꼼꼼히 닦고 있었다. 올 때마다 하는 짓이었다. 며느리들도 들어가길 꺼려 거실에서만 뱅뱅 도는데 수연은 내 부엌살림에 스스럼이 없었다. 개수대 부근에서 시궁창 냄새가 난다거나 냉장고 바닥에 눌어붙은 푸성귀를 떼어내며 투덜거려도 늘 깔끔하게 치워놓곤 했다. 나는 수연을 쫓아다니며 부엌이 더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변명했다. 귀찮아서라고 한마디면 끝날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수연은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하더니, 생각났다는 듯 남은 죽은 꼭 데워 먹으라고 당부했다. 수연이 사온 죽은 호박죽 말고도 종류별로 넉넉했다.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수연을 채근했다. 아니면 내일 아침 출근은 여기서 하라고 일렀다. 수연은 꽃향내 타령을 하면서도 아홉시 뉴스가 끝날 즈음에야 일어섰다. 제가 사온 죽으로 저녁을 때워 보내려니 미안했다. 수연이 구두에 발을 꿰며 심상한 척 나를 돌아보았다. 수진 언니 생일엔 월차 내려고요. 저도 언니 보러 가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두덩이 뜨거워져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딸아이 수진의 생일은 아흐레 뒤였다. 수진의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기고 두 해가 지났다. 텔레비전에서 내일의 날씨를 전했다. 설악산과 오대산은 단풍이 절정이었고 내일도 전국은 가을볕이 눈부실 예정이었다. * 마을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단지 안으로 걸어들어가며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심장 수치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숨이 찼다. 지난해 협심증 수술을 받곤 꾸준히 약을 먹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이번엔 와파린 양을 조금 줄여서 처방했다고 했다. 피를 묽게 해 혈관 속에서 핏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해주는 약이었다. 손가방이 두 달치 약으로 불룩했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관리만 잘하면 백 살까지 너끈하리라는 의사의 말이 지나친 농담처럼 언짢게 들렸다. 지금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여 부딪치고 성할 날이 없는데, 백 살까지라니 끔찍했다. 물론 젊고 친절한 의사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집으로 꺾어드는 모퉁이 벤치에 낯익은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이옥련과 김선희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이옥련이 와서 앉으라는 뜻으로 비어 있는 옆자리를 톡톡 쳤다. 벤치는 두 개가 니은자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오후 볕이 좋으니 노인정으로 가지 않고 거기 모인 듯했다. 벤치에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 잎이 그새 노릇했다. 노파들은 잎이 노릇한 느티나무 아래 무심히 모여들어 지저귀는 새들 같았다. 맘보가 없으니 이옥련이 허전해 보였다. 맘보는 초가을 찬 바람이 돌기 시작할 때 폐렴이 더쳐 세상을 떠났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맘보춤을 잘 춘대서 노인정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둘은 어릴 적의 연과 얼레처럼 늘 짝패로 붙어 다니곤 했다. 나는 노인정 회원은 아니었고 벤치에서 이들을 알게 됐다. 그러잖아도 다리를 쉬려던 참이었다. 나는 이옥련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함께 있던 중년 여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불집 광고 명함이었다. 여자는 집집마다 명함을 꽂아놓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파트 노파들 사이에선 여자네 이불집이 꽤 알려진 모양이었다. 맘보도 봄에 이 집에서 이불 했잖어. 이옥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봄에 묵은 솜을 틀어 새로 이부자리 했다고 자랑이더니 두 계절 만에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얘기였다. 하긴 맘보야말로 제일 좋은 이불 덮었지. 김선희가 맞장단을 쳤다. 맘보는 신도시에서 가까운 공원묘지에 묻혔다. 여자가 준 명함을 살펴보았다. 다솜이부자리, 솜틀공장과 이불공장을 갖춘 직거래 침구 전문업체라고 씌어 있었다. 두꺼운 목화, 명주, 양모 솜을 최신 기계설비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고쳐드립니다. 이불 맞춤 일체, 침대 커버, 혼수품 전문 병원에 가기 전 온 집 안을 헤집고 찾던 그 명함과 똑같은 것이었다. 현관문 틈에 끼워놓은 것을 잘 간수해두었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영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노파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찾기를 포기했다. 목화솜이 열 근 있는데, 오래된 거라. 나는 말을 더듬었다. 어떤 뻐근한 감정 같은 것이 한꺼번에 몰려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여자가 반색했다. 솜을 타면 묵은 솜도 보송하게 살아나는데, 오래된 건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귀한 목화솜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냐며 놀라워했다. 열 근이면 이불이랑 요 해서 두 채씩은 나오겠구먼. 이옥련이 거들었다. 짐작대로였다. 예전 같으면 한 채를 만들 양이지만 요즘은 아파트 생활 기준으로 얄팍하게 두 채를 지었다. 여자가 재촉하듯 내 팔을 잡았다. 새삼 망설임이 그늘처럼 밀려왔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방으로 여자를 데려갔다. 두 개의 마대에 담긴 목화솜이 붙박이장 한쪽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오래됐지만 최상품이라고 여자가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보관을 잘하셨어요? 여자의 감탄이 빈말 같지는 않았다. 딸에게 혼수이불을 해주려 마련했는데 여태껏 쓸 일이 없었노라고 여자에게 말했다. 더 묵힐 수도 없어 솜이불이나 해주려 한다고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시대가 달라진걸요. 저희 딸도 결혼은 선택이라 하네요. 여자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거실로 나오며 여자가 다시 말했다. 따님이 내켜하지 않으면 저한테 파세요. 값은 후하게 쳐드릴게요. 나는 손을 내저었다. 수연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여자와의 약속 날짜를 정했다. 이틀 뒤 토요일 오후에 여자와 수연이 집으로 오기로 했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수연은 느닷없는 솜이불 이야기에 어리둥절해했지만 사연은 나중에 들려달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내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샘플책을 보고 겉감을 골라야 했다. 그럼 목화솜은 모레 따님 만난 뒤 실어갈게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런데 따님이 따로 사나 봐요. 하긴 직장이 멀면 출퇴근하기가 힘드니까. 나는 가만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자는 그제야 집 안에 감도는 꽃향내를 맡았는지 안노인이 계신 집은 냄새부터 다르다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으니 생각들이 갈피 없이 몰려왔다. 그 생각의 줄기 하나가 머릿속에 괴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의 방문이 굳이 내일일 이유가 있겠냐고, 좀 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불현듯 정신이 들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실로 가 불을 켜고 텔레비전 전원을 눌렀다. 그새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밤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작은방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그 생각의 줄기 하나가 또다시 찾아들지도 몰랐다. 두 개의 마대가 정확히 닷 근씩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남편한테서 한쪽 무게가 약간 세다고 들은 것도 같았다. 작은방 붙박이장에서 그것을 꺼내 하나씩 거실로 옮겼다. 한 손으로는 어림없어 주둥이에 양손을 모아서 들었더니 넘어질 것처럼 걸음이 뒤뚱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먼저 것이 조금 더 묵직했다. 남편은 뭐든 저울에 달아보는 습관이 있었으니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거였다. 지금도 창고에는 장대저울이며 앉은뱅이저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두 시어른들이 농사지을 때 쓰던 물건이었다. 마대는 색만 바랬을 뿐 깨끗했다. 두 자루 다 끈을 풀어보았다. 이불집 여자와 미리 풀어본 것은 꼭 동여매지 않아 느슨했다. 목화솜은 노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타지 않은 날솜 그대로 스무 해 가까이 보관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보송보송하고 희디희던 첫 모양과 감촉이 아련했다. 한 줌 쥐어보곤 도로 내려놓았다. 주둥이를 여며 현관 쪽 구석으로 치웠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잘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지레 부린 수선 탓에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그것도 일이라고 티를 냈다. 마대를 꺼내다 몸이 쏠리며 붙박이장에 부딪혀 어깨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와파린을 복용하면서부터는 멍이 쉽게 들었다. 수연은 와파린이 두 잎짜리 작은 연둣빛 식물이 떠오르는 이름이라고 했지만 내 몸에 종종 푸른 멍을 남겼다. 주의해야 하는데 자주 잊었다. 한번은 부엌에서 거실로 전화를 받으러 가다가 고꾸라진 일도 있었다. 전화벨은 울리고 마음은 다섯 발짝 가 있는데 발이 두 발짝만 나갔다. 만세 부르는 모양새로 엎어지곤 광대뼈 부근에 피멍이 들어 한동안 바깥출입도 못 했다. 상처를 본 수연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건강하던 엄마를 대장암으로 잃고 난 뒤 누군가 다치거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렵다고 그 애는 말했다. 수연 엄마는 나의 막냇동생이었다. 우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고 그 때문인지 수연 엄마는 나를 친정어머니처럼 따랐다. 내일 이불집 여자와 만난 수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새삼 신경이 쓰였다. 어제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수연에게 전화로 간단히 설명했을 때 그 애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애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짚어졌다. 주고 싶다는 내 마음에만 열중한 탓이었다. 수연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이모, 너무나 감사한데요. 근데 그것이 저한테 와도 되는 걸까요? 수진 언니에게 주려던 용도로 쓰이지 못한다면 이모가 실망하실 거라고 했다. 나는 심야 뉴스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대 주위를 서성거렸다. * 토요일이었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는 오후 세시에 올 터였다. 냉장고에 변변한 음료수 하나 없었다. 비우고 채워 넣는 일이 느슨해지면서 냉장고는 빈 배로 지낼 때가 많았다. 아파트단지 앞에 있는 마트로 나섰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에게 대접할 만한 것을 사올 요량이었다. 오늘도 볕이 좋았다. 노인네 살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햇빛만 쐐도 살갗으로 살아갈 힘이 쏙쏙 스며들 것 같았다. 공연히 눈에 물기가 돌았다. 헐거워지는 건 오래 신은 신발만이 아니었다. 어느 때부턴가 헛도는 나사처럼 감정도 잘 죄어지지 않았다. 단지 초입에 있는 101동이 진입로 건너로 마주 보였다. 남편과 함께 가꾸던 텃밭이 그 어름에 있었다. 목화솜은 거기서 수확한 것이었다. 괜찮은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 사십대였고 건강한 주부였다. 남편은 조만간 은행 지점장이 될 예정이었으며, 아이들은 청죽처럼 푸르디푸른 나이였다.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큰아이는 신도시 북쪽의 부대에 배속되어 군 생활 중이었고 작은아이는 의대 예비과정 학생이었다. 그리고 막내, 수진은 고등학생이었다. 공부에 지쳐 원숭이처럼 두 팔을 늘어뜨려 보이곤 했으나 잘 웃는 버릇과 싱그러움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남편은 이곳 토박이였다. 텃밭은 시어른들의 것이었다. 그분들은 신도시가 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차례 돌아가셨다. 남편이 신도시 지점에 발령받고 우리가 그 부근의 아파트에 이사해 살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신도시 외곽의 농촌 지역이었다. 첫 봄에 우리는 텃밭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게다가 둘 다 농촌에서 자라선지 농사일의 고단함을 먼저 떠올렸다. 작은 밭 하나를 놓고 겁을 냈다. 우리는 한쪽에 상추와 치커리 따위 푸성귀를 심었다. 그리고 생각해낸 것이 목화였다. 나의 고향에서는 그때도 밭 한 귀퉁이에 목화를 심었다. 그것으로 식구들의 이부자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해마다 얼마씩 모았다가 딸들에게 혼수이불을 해주었다. 나는 그게 흉내내고 싶었다. 수진이 결혼할 때 직접 가꾼 목화솜으로 이불을 해주고 싶었다. 딸을 둔 부모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남편과 나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화초 다루듯 목화를 가꾸었다. 꽃을 피우고 다래를 맺고 목화솜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어여쁘게 지켜보았다. 텃밭 농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신도시가 커지면서 이곳도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목화 가꾸기에 점점 자신이 붙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사이 모은 목화솜을 마대에 담아 쓰일 날을 헤아리며 보관해두었다. 텃밭을 포함해 들판은 곧 아파트 숲으로 변했고 우리도 그때 우선 분양을 받아 이곳으로 옮겼다. 남편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셈이었다. 자동차 경적이 연거푸 울렸다. 택시가 멎더니 차창으로 중년 사내 얼굴이 튀어나와 짜증을 냈다. 할머니, 빨간불에 건너시면 어떡해요. 몇 번이나 미안하다 말하고는 길을 건넜다. 마트는 마을버스가 다니는 이차선도로 건너에 있었다. 도로가 한적한 편이어서 아파트 사람들은 차만 다니지 않으면 신호를 곧잘 무시했다. 파란불이 켜져도 주위를 둘러보고 한 박자 늦춰서 건너라던 수연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 애는 가끔 나를 그렇게 상늙은이 취급했다. 돌아올 때는 도로가 텅 비어 있는데도 그 애 말대로 했다. 바퀴 달린 것만 보아도 몸이 후들거리던 시절이 되짚어지며 새삼 몸서리가 났다. 101동을 쳐다보며 진입로에 들어섰다. 멀리 108동 쪽으로 이옥련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 노인정이 있었다. 이옥련은 아마 한 시간도 안 돼 영감 점심밥을 차려야 한다며 일어설 것이었다. 이옥련은 죽은 맘보를 부러워했다. 맘보의 남편은 적당히 먹고살 것을 남겨주고 젊다 싶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맘보의 기억 속에 남편은 등허리가 꼿꼿하고 새치 몇 개 뽑아내면 염색하지 않아도 검은 머리 빽빽하던 중년 남자였다. 자신의 남편처럼 끼니때마다 밥을 차려 바쳐야 하는 잔소리 많은 영감이 아니었다. 내게 수진이 늘 스물다섯 꽃다운 처녀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흘 뒤면 수진의 생일이었다. 마흔두 살의 수진은 어째 상상 속에서도 그려지지 않았다. * 아들들은 수진의 생일에 못 올 모양이었다. 맏이는 그날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이태 전 아프리카로 의료 활동을 떠났던 둘째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았다. 안부 전화를 걸어온 맏이에게 슬쩍 비춰보고 나서야 맏이가 수진의 생일을 기억조차 못 한다는 걸 알았다. 맏이는 평소 골프조차 흥미보다는 업무와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친다고 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는 수진의 생일에 가족 모두 모이는 일이 뜸해졌다. 내게도 무덤덤해진 자식들에게 수진의 생일을 기억해달라고 바라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법이었다. 알아야 할 것은 언제나 너무 늦게 깨달아졌다. 치사랑을 바쳤어야 할 분들은 이 세상에 없고 내리사랑을 주고픈 이들은 내게서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맏이와 통화를 마치고 집 안을 치웠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가 손님이라도 되는 듯 모처럼 집안일에 열중했다. 거실 베란다를 비로 쓰는데 행운목 부근이 끈적끈적했다. 옆에 있는 화초들도 잎이 번들거렸다. 행운목 꽃에서 흘러나온 끈끈한 액이 주변에 떨어진 것이었다. 꽃대는 꼭대기와 옆구리에서 나온 것 두 개였다. 꽃숭어리 무게가 버거운지 둘 다 잎사귀에 얹히듯 휘어져 있었다. 꽃대가 기대고 있는 이파리에도 투명한 액에 작은 꽃잎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분무기로 물을 뿜어 화초 잎을 닦아냈다. 개나 고양이만 발정이 나는 건 아닐 터였다. 뜬금없는 상상에 낯을 붉혔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었다. 수연이 사온 전복죽을 데워 점심을 먹었다. 입이 깔깔해 도통 맛을 알 수 없었다. 수연의 정성을 생각해 몇 수저 넘겼다. 잠깐 소파에 누웠다. 정신은 우물처럼 맑은데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거워진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혼이 쑥 빠져나가는 것일 터였다. 시월엔 애를 셋이나 낳았지. 뼈 마디마디가 죄다 물러난다 한들 그게 뭐 이상한 일이라고. 기운이 없으니 자꾸 헛된 생각이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꿈같기도 한 허방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들어갔다. 나 같으면 화장할 시간에 밥 한술 더 뜨겠다. 출근하는 수진의 등에 대고 내가 혀를 찬다. 아침밥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수진은 머리 손질부터 화장까지 공들인 게 표가 난다. 게다가 생일 밥상 아닌가. 미역국도 먹는 시늉만 한 애가 트렌치코트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현관문을 연다. 어쨌거나 그렇게 차려입으니 제법 사회인 티가 난다. 수진은 대학을 졸업하고 두 해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앳된 얼굴이 불만이더니 오늘의 화장과 차림은 마음에 드나 보다. 저녁에 말씀드릴게요. 수진은 싱글거리며 집을 나선다. 곧바로 현관문이 빼꼼 열리고 수진이 고개를 디민다. 엄마, 미안해요. 수진이 사라진다. 현관의 도어록이 잠긴다. 삐리릭. 나는 현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수진의 젊음이 눈부셔 그 애가 불고기며 잡채며 생일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는 것을 잊는다. 아침 반찬으론 사실 과하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가슴에서 불덩이 같은 게 치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캄캄해진 눈앞에서 도어록 버튼이 반 바퀴 돌아 제자리에 멈췄다. 동시에 도어록 버튼음도 멎었다. 먼저 살던 집 도어록 버튼은 유난히 소리가 또렷했다. 엄마, 미안해요. 수진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단풍색 트렌치코트가 어둠 속에서 점점 부풀며 다가오더니 싱글거리는 아이 얼굴이 그대로 내 얼굴 전체로 스며들었다. 나는 냉장고로 달려가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불 때까지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 집에서 겨우 두 블록 거리였다. 아이가 사고를 당한 시간에 나는 주중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이의 소개팅에 철 지난 낭만을 덧씌우곤 공연히 들떠 있었다. 생일날의 소개팅을 부추긴 건 나였다. 그 애의 눈부신 젊음이 아까워서였을까. 다음 날로 미루려는 아이에게 미루지 말라고, 생일날 누군가를 만난다면 엄마와 아빠처럼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 바람을 넣었다. *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안방의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응급실로 모셔가려 했다고 수연이 말했다. 나는 수연에게 이불 겉감을 골라보라고 했다. 여자가 그래도 될까 하는 얼굴로 샘플책을 내밀었다. 수연이 두세 가지를 골라서 보기 편하게 내 눈 가까이 대주었다. 단색에 디자인이 점잖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수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네 취향대로 골라보렴. 자세를 고쳐 앉는 수연에게 내가 말했다. 잠깐 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결심하듯 입술을 꼭 다물고 샘플책 몇 장을 넘겼다. 나는 그런 수연에게 말했다. 이제는 네 것이란다. 혼수이불이면 좋겠다는 말은 애써 참았다. 나도 말 많은 노인네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녀석과 지지고 볶는 일에 재미를 가져보는 쪽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수연의 표정이 환해졌다. 수연은 제 침대 커버에 맞춰 단순한 줄무늬를 고르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바꿨다.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간 것으로 분홍색과 푸른색 두 가지를 정했다. 선물은 역시 꽃이겠죠. 수연이 웃으며 너스레를 피웠다. 그쵸, 그쵸. 센스 있으시네. 이불집 여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자가 주문서를 만들고 수연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완성된 이부자리는 수연의 집으로 배달해주기로 했다. 일주일쯤 걸릴 거라고 여자가 말했다. 아, 그런데 따님이 아니셨어요? 여자가 수연과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엄마를 자꾸 이모라 부른다고 여자에게 대답했다. 수연이 내게 눈을 흘겼다. 하긴 이모는 반쯤 엄마니까요. 여자가 말했다. 수연이 여자를 따라 나갔다. 여자와 함께 목화솜 마대를 엘리베이터에 옮기고, 밖으로 나가 여자의 차에 실어주고 돌아올 터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 속에 담긴 후련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연은 밤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예정에 없이 자고 가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어지러울 뿐 견딜 만했다. 수연은 마치 나를 자리보전하고 누운 환자처럼 대했다. 저녁때는 씻겨주겠다며 수선을 부렸다. 실랑이 끝에 나는 지고 말았다. 대신 세수만 하기로 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방으로 가져오겠다는 걸 억지로 말렸다. 수연이 욕실에서 세숫대야에 따듯한 물을 받았다. 나는 욕실 문 앞에 순한 아이처럼 앉아 있었다. 수연이 내 목에 수건을 둘렀다. 아주 어릴 적 이렇게 해준 이는 어머니였을까, 할머니였을까. 기억 속에서 삼베수건을 둘러주던 어떤 손길이 생생했다. 수연이 세숫물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세면대에서 비누를 내리며 말했다. 자, 우리 정옥이, 손 씻고 세수하자. 나는 얼굴을 앞으로 빼고 눈을 꼭 감았다. 수연의 손이 어릴 적 누군가의 손길처럼 얼굴에서 시원하게 움직였다. 비누 거품을 내어 씻은 뒤 손으로 물을 퍼 헹구었다. 눈앞으로 말간 가을볕이 지나간다 싶더니 어느새 나는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나는 젖먹이가 으앙 하고 우는 것처럼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울음소리는 어딘지 산비둘기 소리와도 닮은 듯했다. 그것은 구슬픔의 뿌리까지 함께 토해내는 소리였다. 수연은 이번에는 손을 씻자고 했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돋은 내 두 손을 잡아 세숫대야에 담갔다. 기름기 없는 피부가 수연의 손길에 따라 밀려다녔다. 울음은 참을수록 흑흑 소리가 커졌다. 수연은 다시 물을 받아 손과 얼굴을 헹궜다. 수연은 내 울음은 아예 달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곤 거실로 가더니, 행운목 꽃향내가 향수 냄새보다 독하다고 투덜거렸다. 다행히 제집에 있는 것은 꽃이 필 기미 따윈 보이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연이 꽃향내에 넌더리내기는 처음이었다. /방희진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동화]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동화다운 문장이 미덕”

신춘문예 동화 심사위원 이준관(아동문학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소재는 결손 가정, 불법 체류 외국인 가정 등 다양했다. 전반적으로 동화의 기본 요소를 고루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다만, 희망과 위안을 주는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의 참신한 동화가 눈에 띄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자바시, 같이 가자!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가정의 아이를 다룬 작품이다. 축구를 통해 외국인 아이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 밋밋하고 평범한 것이 흠이었다. 마법의 바지는 보육도우미 할머니와의 사랑의 교감을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정감 있게 그려냈다. 할머니의 사랑의 힘을 상징하는 마법의 바지 설정도 좋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 너무 작위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마법사 김유진은 안 좋은 기억들을 지우고 싶은 아이의 내면 심리를 세련된 문장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슬픈 기억을 지우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해 가려는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구성이나 문장도 무난했지만 기존의 동화에서 흔히 보았던 발상과 설정이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당선작으로 뽑은 지하철역 아이는 위험에 처한 승객을 살리고 목숨을 잃은 아빠를 잊지 못하고 지하철역에 찾아오는 아이의 이야기다. 의인화된 보안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아이의 슬픔과 아픔을 비춰주는 설정이 돋보였다. 아빠의 목소리를 찾는 결말도 감동의 여운을 주었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동화다운 문장도 미덕이었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도입부와 잔잔한 울림이 있는 후반부의 결말도 좋았다. 지하철 의인 가족의 슬픔과 그것을 극복해 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애틋하고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좋은 작품이었다. /심사위원 이준관 (아동문학가 )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소설] 방희진 작가 “진심에 닿는 언어 찾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방희진 작가 신춘문예 시즌이 되었을 때 응모에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몇 차례 낙방해 본 경험 때문일까요.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건 축제이고, 축제에 나가 춤을 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춤 솜씨가 형편없은들 잘 추려고 축제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저 자신을 설득시켰습니다. 축제가 다 끝났다고 여기던 때에 뜻밖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놀람과 설렘의 감정이 뒤엉켜 한동안 허둥거렸습니다. 누군가 저의 춤을 봐준 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기왕이면 다음번에는 조금 더 근사하게 춰 보자, 그런 다짐을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소설은 제게 신 포도였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왜곡된 사랑이 우습기만 합니다. 지나친 사랑이 빚은 참사일까요. 지금은 저 나름의 자기 암시 같은 것을때때로 해 봅니다. 정면을 바라봐. 뒷걸음치지 마. 여전히 부족하고 소설이 주는 고통도 만만치 않지만, 더 나은 실패 쪽으로 한 걸음만이라도 더 나아가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언어는 늘 미끄러지고 인물의 진심에 가닿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잠을 설치곤 합니다. 인간과 인간사의 탐구라는 소설의 명제를 논하기에는 저는 아직 애송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명제에 다가가기 위해 늘 깨어 있겠습니다. 진심에 가닿는 언어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번 네 글을 써보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라생각합니다.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스승과 문우들, 고맙습니다. 아둔한 눈이 조금이나마 뜨였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 덕분입니다. 함께 파고를 건너온 가족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는 별이 되신 부모님께 오늘의 기쁨을 바칩니다. △방희진 작가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편집자로 불교 역주 서적을 만들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소설] “잘 다듬어진 문장,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읽히는 문체가 작품의 큰 미덕”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글감과 주제의식, 인물과 사건의 탄탄한 구성, 깔끔하게 다듬어진 문장. 이는 단편소설의 기본적인 요건이고 미덕이다. 소설 습작 과정도 이런 점들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다. 심사위원이 갖고 있는 잣대 또한 그것이다. 전체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범에 대하여>부터 <미결>, <배출>, <소리없는 방>, <스벅 1호점 한정판 머그잔 구매기>, <이불>, <탈곡기>, <해왕성엔 다이아몬드 비가>, <화이트 칼라의 색깔 노트>, <흉터>까지 모두 열 편이었다. 한 편만 가려 뽑는 심사여서 각각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장점보다는 흠결을 앞서 들춰볼 수밖에 없었다. 추억담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식의 구성이 산만한 글이나 문장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이 안타깝게도 절반을 넘었다. 읽는 재미가 돋보여도 결말을 느슨하게 처리하거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사건을 전개해서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들의 수고를 크게 덜어준 작품이 <이불>이다. 암으로 엄마를 잃은 조카와 교통사고로 하나뿐인 딸을 여읜 큰이모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절제된 언어에 얹혀 따뜻하게 다가온다. 단편소설다운 구성력 또한 탄탄하다. 잘 다듬어진 문장,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읽히는 문체 역시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그간의 습작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앞으로 써나갈 소설이 벌써 기대된다. /심사위원 송준호 우석대 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김철규 개인전 '인체풍경-주름'

인체주름은 결정되어 타고 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체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름은 삶의 리얼리티이며 한 인생이 살아온 긴 시간의 기록이고 그 누구의 관여가 없는 진실의 흔적이다. (작가노트 중) 김철규 작가가 내년 1월 3일부터 1월 14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인체풍경-주름'을 연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주름이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과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콘셉트로 기획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주름은 유한한 삶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변화와 확장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김 작가는 "주름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전시"라며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인지변화를 꾀하며, 초월적 변화로 포용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을 지향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주름이 아름다움으로 인지되는 세상의 가치관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철규 작가는 군산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군산대 대학원에서는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전 23차례 열었으며, 기획 및 단체전은 '편린(片鱗), 없어진 존재들' (전북도립미술관기획/서울관), '노동 정신을 만들다'(한국전통문화의전당), '천년전라기념 전라굴기展(전) (전북도립미술관기획) 등 170여회 참여했다. 전북청년작가위상작가상, 전북 미술대전 대상 및 우수상, 온고을미술대전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김세희 기자

  • 전시·공연
  • 김세희
  • 2021.12.28 19:31

전북미술협회 회장 백승관 후보 당선

백승관 씨 전북미술협회 제20대 회장 선거관리위원회는 백승관(54) 후보가 회장으로 사실상 당선됐다고 27일 밝혔다. 백 당선인은 당초 회장 선거일인 내년 1월 8일에 당선 증을 교부받고 3년 임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날 선거관리위원회는 최미남 후보가 사퇴함에 따라 단일후보로 선거 없이 백 후보 선출을 결정하고 최 후보의 사퇴를 전북미협 회원에게 알렸다. 미협관계자는 이날 28일 전북일보와 통화에서 "최 후보가 사퇴하면서 백 후보가 자동적으로 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앞서 전북미협 회장 선거는 전북지역 미술협회 회면 1300여명이 직접선거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절차를 거렸으며 지난 20일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또 사단법인 전북미술협회를 만들어 문체부 공모사업 등 사업권을 확보하고 회원들의 일자리 창출과 재원을 마련하며 국제아트페어 추진단을 신설해 전북국제아트페어를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도내 기업 및 상공인, 유관기관과 협력해 메세나 후원회를 설립하고 작품판매, 작품대여, 행사 후원 등 지속적인 지원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서 전북미술인센터 건립, 회원작품 판매 사이트 운영, 전북미술협회 신물발행 등을 추진해 전북미술협회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김세희 기자, 박현우 인턴기자

  • 문화일반
  • 김세희·박현우
  • 2021.12.28 19:31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