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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석정 문학 연구한 원로시인 허소라 별세… 향년 84세

고 허소라 시인 한평생을 신석정 시인(1907~1974) 연구에 바친 지역문단의 대표적인 원로시인이자 문학연구자 허소라(본명 허형석) 교수가 16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84세. 1936년 진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금산동중, 금산농고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국문과에서 허 시인은 석정 시인을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1959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자유문학〉에 시 지열 피를 말리는, 도정 등 3편의 시를 추천받으면서 등단했다. 당시 시 추천을 해준 사람도 석정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석정 시인의 <촛불>, <슬픈목가> 등을 구해 읽으며 그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허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고자,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줄곧 석정 문학 연구에만 매달려왔다. 석박사 논문도 모두 석정 시인의 문학세계를 주제로 했다. 전주신흥고 교사로 시작해 군산 수산고등전문학교와 수산전문대학을 거쳐 군산대 교수로 정년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이밖에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어계 교류교수, 연변대학 객좌교수,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허 시인은 군산대에서 정년 퇴임 한 이후에도 시 쓰기와 석정 문학 연구로 시간을 보내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석정의 문학과 삶을 조명정리하는 일에 바쳐온 셈이다. 살아생전 고인은 석정 시인에 대해 스승과 제자 관계로 뿐 아니라 부모와도 같은 분이셨다. 그만큼 제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제게는 늘 미치지 못하는 거목 같은 존재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허 시인은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여왔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낸 이후 <풍장> <겨울나무> <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전라북도문화상,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모악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석정의 문학 세계를 조명한 논문 50여 편을 발표했다. 2012년 개관한 부안 석정문학관 조성작업에 참여하는 등 건립을 주도했다. 석정문학관 초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석정 시인의 수많은 시를 발굴수집했으며 2009년에는 미발표 저항시 11편을 공개해 석정 문학을 새롭게 연구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빈소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태평교회동산.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0.12.16 18:42

[신간] 아웅산 폭탄테러의 전말, <그들은 왜 순국해야했는가>

1983년 발생한 버마암살폭파사건, 이른바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에 대한 전말이 밝혀진다. 최병효 작가의 <그들은 왜 순국해야했는가>(박영사). 버마암살폭파사건은 1983년 10월 9일 버마(현재의 미얀마)의 수도 랭군(현재의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전두환을 암살하려는 북한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사건이다. 이 사고로 대통령 공식 수행원과 수행 보도진 17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 현장에 있던 미얀마인 3명도 사망하였다. 사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묘소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날 희생된 사람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서석준, 외무부장관 이범석, 상공부장관 김동휘, 동자부장관 서상철,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심상우,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김재익, 재무부차관 이기욱, 주 버마대사 이계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하동선, 대통령 주치의 민병석, 농수산부차관 강인희, 과학기술처차관 김용한, 청와대 공보비서관 이재관 등 공식 수행원과 동아일보 기자 이중현, 경호원 한경희, 정태진 등이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 하려했지만 첫 방문지에서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책은 외무부의 서남아지역 담당 서기관으로서 순방계획부터 사건발생 직후 현지에서의 외교적 조치, 사건조사와 북한에 대한 응징업무까지 2년 간 사건을 실무적으로 맡았던 저자가 사건의 실체를 알리고 보다 광범한 외교적 배경에 대해 국민에게 바치는 보고서이다. 또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전두환의 버마방문 지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과 테러범들을 싣고 랑군에 기항한 북한공작선 동건애국호 감시업무를 우리 측이 어떻게 소홀하게 하였는지, 왜 우리 경호당국이 아웅산묘소에 대한 사전 점검을 하지 않았는지 등 많은 의문들을 외교문서를 근거로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되었던 사건의 전말에 관한 많은 의문을 해소한다. 최병효 작가는 전두환은 정권 유지를 위해, 김정일은 세습왕조체제 유지를 위해, 독재체제는 끊임없이 체제 내부와 외부의 긴장과 무고한 희생을 필요로 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희생한 사람은 버마에서 순국한 17명의 외교사절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희생자들은 순국자로 포장되어 버린채 그들이 왜 순국해야 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면서 잘못된 정치적 리더쉽에 의한 탐욕과 소모적 외교전쟁이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일상적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되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순국자가 더 이상 발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전주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군 복무 후 1974년 1월 외무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36년간 외교부에 근무 후 2009년 12월 말 정년퇴임할 때까지 포르투갈, 네팔, 영국, 폴란드, 뉴질랜드, 태국(공사 겸 국제연합 아태경제사회이사회 한국 상임대표)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또 국무총리실과 인천광역시(국제관계 자문대사), 외교부에서 동구과장, 안보정책심의관, 감사관 등을 역임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12.16 17:57

[신간] 최종규 시인의 10번째 시집 <전주의 불빛>

김제출신 최종규 시인의 10번째 시집이 발간됐다. <전주의 불빛>(가온미디어). 최 시인은 9번째 시집인 <섬, 25>출간 이후 8년만에 이번 시집을 세상에 내보냈다. 이번 시집은 105편의 시를 한데 엮었다. 총 4부로 이뤄진 시집은 1부 노을 앞에서, 2부 전주의 때깔, 3부 마라도 바람, 4부 꽃들의 경연으로 나눠져있다. 특히 2부 전주의 때깔은 시인이 온고을 시라는 부제를 붙일정도로 시인이 전주의 정취를 사랑하고 자랑스레 여기며 연작으로 모은 시다. 전주의 아침과 한낮, 저녁, 전주의 사계, 전주 향교와 한옥마을, 전주의 맛과 멋, 흥, 향, 혼까지 전주의 상징이다 싶은 모든 것들을 노래하며 그야말로 사랑하고, 자랑스레 여기는 마음을 눌러 담아냈다. 최 시인은 이번 시집은 그간 틈틈이 발표된 시들이 많지만, 어떤 시는 퇴고를 많이 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기부정의 소이로 봐주면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는 김제출신으로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현대문학(現代文學)으로 등단, <초설>, <세월>, <밀물썰물>, <장안산 억새꽃>, <마음과 마음 사이로 흐르는 강물>, <엄뫼에 내리는 하늘>, <섬 25> 등 다양한 시집을 발간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12.16 17:57

[신간] 송태규 원광중 교장, 첫 수필집 ‘마음의 다리를 놓다’ 출간

송태규 원광중학교 교장이 자신의 첫 수필집 마음의 다리를 놓다(수필과 비평사)를 출간했다. 총 7부로 구성된 수필집은 송 교장이 30년 이상 교직에 있으면서 느낀 일상을 되새겨 놓은 것이다. 1부(마음의 다리를 놓다)와 2부(온실 속 화초보다 들꽃처럼)는 교단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이야기를 훈훈한 손길로 담아냈다. 그중 회복 탄력성은 숱한 비바람에 휘청거리다 뿌리째 뽑혀 밑동을 드러낸 학생의 이야기다. 누구라도 주위의 누군가가 공감하고 격려하면 우거진 느티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작가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3부(사람이 안주다)와 4부(손잡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롯해 사회 현상을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했다. 특히 토착왜구와 소녀상과 국가라는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다뤘다. 5부(철인의 특권)는 철인3종 마니아로 알려진 그가 20년 가까이 철인 경기에 나가면서 느낀 생각을 생생하게 그렸다.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작아져도 서럽지 않아는 아들과 철인대회에 동반 출전해 먼저 들어온 아들 앞에서 자식이 크면 부모가 작아진다는데 이럴 땐 한없이 작아져도 서럽지 않겠다라는 말로 자식 사랑을 나타냈다. 6부(헌혈은 단비이다)는 헌혈 300회를 눈앞에 둔 작가의 헌혈 이야기다. 아들딸과 함께 535회를 넘긴 헌혈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7부(별이 다섯 개)는 애틋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섬세한 필체로 되새기고 있다. 평소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송 교장은 이 책에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연결된 끈을 끊어지지 않도록 잘 이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 좋은 관계에서 맺은 인연은 가슴에 따뜻한 기운을 준다라고 밝히며 부모와 자식으로, 선생과 제자로, 동료로 만난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고자 하는 마음을 작품 곳곳에 녹여냈다. 한편 송 교장은 익산 원광고등학교와 원광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수필 손잡이(에세이 문예)와 올해 시 아무거나(시인정신)를 통해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 문학·출판
  • 송승욱
  • 2020.12.16 17:18

진안 마령고 이상훈 교사, 진안문학상 수상…"지역사랑 진정성 담아"

이상훈 진안 마령고 교사 진안 마령고등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치는 이상훈(56) 교사가 제13회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진안문학상은 지역 문학의 위상을 높인 작가를 선정, 3년마다 시상한다. 진안문인협회(회장 이병율, 이하 협회)는 지난 15일 오후 문화마실 진안에서 진안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이 교사에게 상패와 상금 200만원을 수여했다. 이 교사는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청어람M&A, 2020)>에 자신의 지역사랑 진정성을 녹여내, 이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시상식은 코로나19 감염 차단과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엄격히 지키며 최소 인원으로 진행됐다. 수상자인 이 교사는 지난 2003년 <좋은 사람> 가을호에 돌의 생명력, 영험함 인간 속에서 나타나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한 문인(수필가)이기도 하다. 교직에 종사하면서도 8년가량 진안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전력이 있는 이 수상자는 진안지역의 마을, 민속신앙, 풍속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관련 분야 중견 연구가로 통한다. 진안문학상 운영위원회 김영화 위원장은 교사이지만 지역주민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를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아내려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면서 이 교사의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는 단단한 문장력과 필체가 돋보이며 지역사회의 시기별 현안문제에 대해 균형 있는 대안이 제시돼 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교사는 귀한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글을 잘 썼다는 의미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교사는 1991년 진안고등학교(진안공고 전신)에 첫 부임해 진안과의 인연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편생활의 많은 시기를 진안에서 보냈다. 진안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마령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 문화일반
  • 국승호
  • 2020.12.16 17:03

일제강점기 전주 가야금 풍류 90여 년만에 복원, 연주된다

일제강점기 전주의 가야금 풍류가 90여 년 만에 부활한다. 가야금연주자 이예원 씨(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 강의초빙교수)는 오는 19일 오후 5시 한옥마을에 위치한 전주소리문화관 본청에서 일제강점기 전주를 중심으로 연주되었던 전주의 가야금풍류 악보집 『악서정해』(樂書正解)를 40여분에 걸쳐 원형 그대로 복원 연주하는 독주회를 연다. 『악서정해』는 전주에서 최초로 전통음악 부흥을 위해 정악구락부(正樂俱樂部)를 발족하고 조선정악의 진흥에 앞장선 풍류객 이기태(李起兌)가 1932년 전주도서인쇄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가야금 풍류보이다. 이 가야금풍류보는 일제강점기 신문 지면에 광고로 만 소개되었을 뿐 90여 년동안 역사 속에서 사라진 악보집이었다. 지난 1970년대 국악연구가 한명희에 의해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집된 이 책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5년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40집으로 발간될 정도로 국악계의 주목을 받아온 가야금 풍류보였지만 그동안 복원 연주가 없어 문헌으로만 알려져 왔다. 동시대에 서울풍류가 전주풍류로 어떻게 전승되고 변화되었는지 규명할 수 있는 사료집으로 평가받아 왔다는 점에서 20세기 전반기 전주지역 가야금풍류 복원에 절대적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만 3여년을 준비기간을 거친 이 씨는 전주지역은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율방이 형성되면서 풍류가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곳이라며 이번 연주를 통해 국악사에 있어 암흑기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에 전주의 가야금풍류를 전승하고자 했던 풍류객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전승하며, 그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자리고 했다. 한양대 국악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를 취득한 이 씨는 독주회와 지역음악사 관련 논문들을 발표하는 등 연주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코로나 19 감영증 확산 상황에 따라 무관중 또는 온라인공연(실황, 녹화등)등으로 전환될 수 있다.

  • 전시·공연
  • 백세종
  • 2020.12.15 19:15

김용석 화가 개인전… 수풀로 비춰보는 인생의 본질

수풀은 바람을 거르지 않는다. 함께할 뿐.난 그들이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들을 스케치하는 것이다. 붓으로 정직하게 승부하는 화가 김용석이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 다져온 자신의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17일부터 23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김 작가의 작품에는 인생살이의 굴곡진 시간이 자연풍광 속에 녹아있다. 그의 안식처는 출퇴근 길에서 만난 풍경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서 세월의 풍상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수풀. 그는 수풀을 보며 지친 몸과 상처받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회화에서는 나무에, 풀잎에, 잔잔한 바람이 감돈다. 쪼개는 듯, 채를 써는 듯한 필법은 수풀의 속살을 밀도감 있게 드러낸다. 문리 미술평론가는 김용석의 회화는 봄여름가을겨울 풍광 속에서 생몰 하는 초목을 통해 변화를 응축하고 있다며 물의 흐름을 관통해서 표현한 풍광이기에 젊음의 푸른 물이 다 빠져나간 겨울 풍경에도 아련하고 미묘한 운무를 더해서 생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홀로 서 있는 겨울나무도 외롭지 않아 보인다. 눈을 이고 있는 수풀도 의연하고 당당하다. 충만한 생명 위 고요와 평화가 스친다. 김 작가는 전북대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과 전주에서 4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건지전, 녹색종이, 색깔로 만난 사람들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0.12.15 18:43

[최완규 교수의 '마한 이야기'] 마한문화의 인식

최완규 원광대학교 교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요즘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유물의 이해를 돕는 설명 패널과 유물 명패에서 어렵지 않게 마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주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를 정리하고 발굴조사에서 수집된 자료를 중심으로 건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은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사실 지금처럼 명쾌하게 역사적 정치체로서 마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마한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대형 옹관마저도 1990년대 초까지는 광주 박물관 전시유물의 명패에 「백제시대 5~6세기」라 쓰여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90년대 초반까지 마한과 백제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학계의 연구가 미미한 수준의 현실을 그대로 방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마한은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마한과 백제의 관계를 대나무와 죽순에 비교될 정도로 두 정치체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쯔이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등이 발견됨에 따라 이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곧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에 심취했던 그는 무덤 주위에 들러진 도랑을 근거로 왜인의 무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9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일인 학자들의 발굴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정보를 구체적으로 얻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마한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1970~80년대에 걸쳐 국립광주박물관의 설립과 호남지역 대학교에 고고학 관련 학과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각 대학 박물관이 주동이 되어 영산강유역의 영암과 나주일대의 대형 옹관고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의 문화양상이 백제문화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별로 역사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에 건설된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조사는 비로소 마한문화의 정체성을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곧 마한의 옛 영역에서 서해안을 따라서 이루어진 조사는 마치 마한 전역에 대한 샘플 조사와 같은 효과를 보여 백제문화와 구분되는 마한문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0.12.15 18:17

전북 지역 국립박물관 수장 임명 '하세월'

2021년 초 각종 기관들의 인사철을 앞둔 가운데, 전북 내 국립박물관장의 임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립박물관 2곳이 이번 인사 대상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관장이 공석이고, 국립익산박물관 신상효 관장이 이달 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도내 2곳의 박물관장 인사가 임박한 셈이다. 먼저 전주국립박물관은 지난 6월 30일 천진기 전 관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고지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이 난 이후 공석상태다. 현재 정상기 학예실장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천 전 관장이 임기를 마친 후 곧바로 관장인선이 되거나 늦어져도 2~3주 후 내정 또는 인사발령이 나지만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수장이 없는 지역국립박물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지역 내 거점 박물관의 수장 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이를 두고 도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문체부가 전주박물관장으로 적정한 인물을 찾지 못해 발령이 늦어지고 있다, 인사가 내정되어 있지만 담당 부서에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해 마무리 후에 올 것이라는 등의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런 추측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인사에서는 반드시 관장인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문화예술계의 말이다. 한 지역 문화예술인은 지역 내 거점 박물관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면 문화예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구심점이 없는 것과 같다면서 계속해서 인선이 길어지는 것의 지역에 대한 소홀함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익산박물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해 인사가 늦어질 수 있다며 특히 국립전주박물관(3급 상당)의 경우 인사혁신처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 내에서는 이번 관장인사가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1월에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점은 국립민속박물관 인사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12.15 18:17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무사독오(無師獨悟)

종로 감로암에 중광 스님이 계실 때에 가끔씩 양담배 한 보루씩 사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가면 스님은 좋아서 활짝 웃었다. 어느 날 아침 감로암을 찾았을 때에 스님은 기분이 좋아서 법문하기를, 진정한 깨달음은 스승 없이 깨닫는 거야. 그게 진짜지!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느낀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무사독오(無師獨悟)라고 붓을 들어 써주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하셨다는 조선시대 진묵스님 일화를 보면 이런 게 있다. 상운암에 계실 때에 모시고 있던 스님들이 약 한달 예정으로 탁발을 나갈 때에 진묵 스님은 창가에 손을 걸치고 앉은 채 작별을 했고 곧 선정에 들었다. 한달 후 탁발을 마치고 돌아 온 스님들이 보니, 진묵 스님은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가에 걸친 손은 닫히고 열리는 문틀에 망가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묵 스님의 얼굴은 거미가 몇 겹으로 집을 지어 더럽혀져 있었다. 스님을 깨우자, 곧 눈을 뜨고, 너희들 벌써 왔느냐?고 했다는 장면이다. 선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선정에 들어야지 하면 그것은 선정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선정에 들어 삼매에 들 수 있어야 선정이다. 그것이 순일하고 전일한 경지이다. 그리고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 깨어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동치기로는 천둥번개가 번쩍일 때처럼 강렬하다가도 고요할 때에는 잔잔한 연못에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순간보다 더 고요한 것이 그 세계이다. 마음의 세계가 미묘해서 그 극단적인 모순을 지니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순간순간 미묘한 작용을 스스로 하는 것이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마주치는 마음의 문제는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할 때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이러한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면 그 어떤 옷을 입었든 가짜이다. 공무원이든, 상인이건, 가정주부이건, 사기꾼이건, 스님 또는 목사이건 모두 가짜이다. 가짜가 되지 않으려면 깨달아야 한다. 공중에 걸쳐놓은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떼는 곡예사처럼 모두를 걸고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누가 알겠는가?

  • 문화일반
  • 기고
  • 2020.12.14 18:40

[전라감사 100인 열전] 전주출신 전라감사 이백유

△전주 마전출신의 신진사대부 이백유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공민왕 1년(1352)에 태어나 정종 1년(1399) 48세로 졸하였다. 그는 본향도 전주이고 살기도 전주에 살았다. 전주이씨는 전주최씨, 전주유씨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3대성씨이다. 전주이씨라고 하면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를 떠올리지만, 이백유 집안은 그의 증조부 이문정을 대표로 하는 가문으로 조선왕실과는 다른 가계이다. 이백유 집안은 전주 효자동 마전(馬田, 마랏)에서 대대로 세거하여 세칭 마랏(말안)이씨라고 한다. 마전이라는 지명은 지세가 달리는 말이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고 하여 붙여졌다. 이백유가 개국공신이 되어 전라감사로 오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삼밭[麻田]이 마소 매는 밭으로 바뀌어 마전(馬田)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의 문학로(文學路)라는 도로명은 그 집안에서 세운 정자 문학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백유의 초명은 재(才)ㆍ자유(子愉)이다. 그의 조부는 정당문학 이문정(李文挺)으로 고려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으며 마랏이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아버지는 검교중추부사 이몽(李蒙)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고려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을 지낸 최용갑(崔用甲)의 딸이다. 부인은 해주 오씨 군수 오사운(吳士雲)의 딸과 파평 윤씨 진사 윤승열(尹承烈)의 딸이다. 마랏이씨의 유적으로 이문정이 낙향하여 건립하였다는 문학대가 있고, 이문정ㆍ이백유ㆍ이경동ㆍ이목 등을 모신 황강서원이 있다. 황강(黃崗)은 이문정의 호이다. 문학대와 황강서원은 도문화재로지정되어 있다. 이백유를 모신 부조묘 양후사(良厚祠)가 그 중심적 위치에 있다. 문학대는 완산동 곤지산 아래에 있다가 마전마을로 옮겼으며, 신도심이 개발되면서 황강서원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조선 개국공신 책봉과 전라감사 임용 이백유는 이색의 문인으로 공민왕 20년(1371) 문과에 급제하여 공양왕 2년 우상시(右常侍)를 지내고 예조판서에 올랐다. 1392년 7월 배극렴, 남은 등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선 건국후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완산군)에 봉해졌다. 그가 전라감사로 부임한 것은 44살 때인 태조 4년(1395) 2월 26일이다. 『호남도선생안』에 을해년 2월 26일 하계(下界)로 기록되어 있다. 하계는 전라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전라감사 이임에 대해서는 같은 해 8월 30일 한성윤으로 상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6개월간 전라감사로 재임하다가 한성윤이 되어 한양으로 올라간 것이다 <태조실록>에 보면, 그가 전라감사 재임 때 황군서(황희의 부)가 도안문사로 제주에 다녀와 암말이 줄어드는 폐단을 아뢰어 마른 말고기 진상을 그만두게 한 일이 있다. 또 왜구에 항거한 완산의 절부 임씨 정문을 세운 일도 있었다. 상피제로 인해 출신지역의 지방관으로 임용될 수 없는데 이백유는 전라도출신으로 전라도관찰사에 임용되었다. 조선왕조 5백년간 전라도 출신 전라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혼맥 이백유는 태조 7년 8월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일파로 지목되어 외방에 부처되었다가 풀려나 이듬해 정종 원년 고향인 전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의 짧은 생애였다. 후에 양후(良厚)라는 시호가 내렸다. 조선건국후 정국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백유 만이 아니라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이 1차 왕자의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는 것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을 꼽으라면 이백유, 심효생, 오몽을 등을 꼽을 수 있고, 장지화와 정용수도 전라도출신으로 추정된다. 심효생은 세자 방석의 장인으로 본향은 순천이지만 그 선대에 전주로 이주하였다. <씨족원류>를 통해 이들의 혼맥을 보면 전주최씨 최용갑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용갑은 전주최씨 최아의 아들로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에 올랐으며 그 부인은 우주황씨 황공로의 딸이다. 이백유의 외조부가 최용갑이며, 고모부는 전주유씨의 시조 유습의 아들 유극강이다. 심효생은 유습의 사위이며 최용갑의 처이질(아내 자매의 아들)이다. 오몽을은 최용갑의 조카사위이다.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된 우주황씨 황거중은 최용갑의 처조카이다. 이백유는 또 개국공신 조견과 동서지간으로 조견의 친형이 조선창업의 핵심인물 조준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실각 이렇게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혼맥으로 연결되었고, 이들은 또 전주의 대표적 사족 이씨, 최씨, 유씨 등과 중첩되는 혼인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황씨 세력도 주목된다. 이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1차 왕자의 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 방석의 장인 심효생과 인친 장지화, 오몽을 등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백유는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죽었다. 정용수는 왕자의 난은 피했으나 태조의 측근으로 조사의난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이러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의 실각은 전라도의 운명을 가름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건국에 전라도세력이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전주의 토착세력들이 혼맥으로 연계되어 조선창업에 적극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심효생의 사위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도전세력이 실각하고 방석이 죽임을 당하면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은 대대적으로 숙청되었다. 전주와 전라도가 조선왕실의 고향이면서도 조선초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이런 권력재편 과정에서 밀려난 데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성종대이후 사림들이 중용되면서 호남사림들이 중앙에 적극 진출하여 선조대 정국의 주도적 위치에 올랐던 것 같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 관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0.12.14 17:54

전주문화재단 사무공간 일원화, 체계적 조직관리 기대

전주문화재단이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 보다 체계적인 조직관리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주문화재단은 그동안 한벽문화관 교육체험 공간을 사용했던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고 14일 밝혔다. 동문시민놀이터에 입주해 있던 생활문화팀을 제외한 4개 팀이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 이에 따라 분산되어 있던 업무와 사무공간이 일원화를 이루게 됐다. 그간 전주문화재단은 한벽문화관 5개팀, 팔복예술공장에 3개팀, 동문문화센터에 1개팀으로 사무공간이 3개 시설에 분리 운영되고 있었다. 백옥선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조직의 쇄신과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조직개편 단행과 사무공간의 일원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 재단이 이전하게 되는 팔복예술공장은 1단지(A동) 지상 3층, 2단지(B동) 지상 2층(연면적 6,001㎡, 대지면적 13,224㎡)으로 전시장 및 작가 스튜디오, 카페 및 그림책방, 예술놀이터 등의 문화시설 및 시민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전국 최초로 꿈꾸는 예술터 전국 1호 공간과 예술교육 체험공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간 약 4만5000명이 이용하는 등 지역관광거점도시 전주의 자원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예술의 거점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단 사무실이 입주할 공간은 1단지 A동 2층(61평) 전시장 뒷편이다. 1층에는 창작지원팀과 예술놀이팀이 근무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과거 사업공간의 분리로 원활한 소통과 전달체계와 연대의식이 미흡했다면서 이번에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함에 따라 업무의 효율과 안정적 운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12.14 17:54

고창 반암리서 ‘초기 청자’ 가마 확인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에서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초기 청자 가마가 확인된 가운데, 가마와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10세기 후반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가마유적으로 판단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고창군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 2020년 긴급발굴조사 공모사업을 통해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은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계명산 줄기 서쪽 기슭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최근 들어 가마터 일부가 훼손됨에 따라 유적의 훼손 방지와 성격 규명, 보존 관리 등을 위한 발굴 조사였다. 그 결과 벽돌가마(전축요, 塼築窯) 1기, 진흙가마(토축요, 土築窯) 3기, 퇴적구릉(폐기장) 3개소, 건물지 2동 등이 확인됐다. 특히 벽돌가마는 1호 진흙가마 아래에서 중첩돼 확인됐다. 이같은 사례는 최근 사적으로 지정된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요지에서 처음 확인됐다. 하지만 진안 도통리 가마는 벽돌가마를 파괴한 후 그 위에 진흙가마를 축조한 반면, 반암리 가마는 벽돌가마 폐기후 퇴적층과 퇴적구릉(1.5m 내외)이 형성된 다음 진흙가마를 조성해 벽돌가마가 비교적 잘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바뀌어 간 양상이 잘 남아 있어 앞으로 초기청자 가마의 발생과 변화 과정, 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번 시굴트렌치를 통해 확인된 1호 가마는 길이 35~40m, 폭 1.2m 내외로 추정돼 전형적인 초기 청자 가마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것이 발굴팀의 설명이다. 퇴적구릉은 다량의 청자편과 청자를 구울 때 씌웠던 갑발(도자기를 구울때 담는 큰 그릇), 가마 축조재료인 벽돌 등이 2~3m 정도로 쌓여 있었고 건물지에서는 官, 坪 명 등의 명문기와도 출토돼 반암리 청자요지의 성격과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일대는 사적 제345호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사적 제250호 고창 분청사기요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15호 고창 용산리 분청사기요지 등 다수의 지정비지정 가마유적이 분포하는 곳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도자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고창군은 반암리 청자요지의 보존관리를 위한 방안과 함께 유적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추가발굴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며, 전라북도 기념물과 국가사적 지정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김성규
  • 2020.12.14 17:42

국립익산박물관, ‘100년 전 사진에 담긴 미륵사지 1300년’ 전시회

국립익산박물관(관장 신상효)이 100년 전 미륵사지를 볼수 있는 테마전 100년 전 사진에 담긴 미륵사지 1300년을 개최한다. 15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국립익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미륵사지를 촬영한 100년 전 사진 전체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1915년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수리 시 쓰였던 석탑 보강철물(H빔)과 콘크리트 부재, 공사 도면청사진(靑寫眞)을 최초로 소개한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전시에서 제1부 미륵사지, 세상에 드러나다는 1910년 일본의 문화재 조사사업으로 동아시아 고대사원의 면모가 드러난 미륵사지의 첫 사진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문서에 드러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사 내용과 평가 기록을 바탕으로 미륵사지가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제2부 석탑, 시멘트로 보수하다는 첫 조사 후 5년 뒤인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을 응급 수리한 기록을 소개한다. 밑그림이 남아있는 설계도면의 청사진뿐만 아니라 미륵사지 석탑 수리 과정에서 사용된 보강철물(H빔)과 콘크리트 부재는 당시 일본 문화재 수리 기술의 시험 무대가 되었음을 알수 있다. 제3부 미륵사지, 가까이 보다는 100년 전 일본인들이 바라본 미륵사지의 모습을 소개한다. 때마다 석탑을 같은 방향에서 촬영해 과거로부터 변화하는 옛 미륵사지 풍광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을 찾을 수 없는 관람객들을 위해 3D VR 온라인 전시실, 미륵사지 다른 그림 찾기 게임 등 다채로운 온라인 전시 콘텐츠들을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집에서도 즐길수 있도록 했다.

  • 전시·공연
  • 엄철호
  • 2020.12.14 17:23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전반적 수준 향상… 아쉬운 완결성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를 지난 7일 마감한 결과, 시 부문에 316명이 1239편, 단편소설 부문에 96명이 97편, 수필 부문에 199명이 471편, 동화 부문에 89명이 94편 등 총 700명이 1901편을 응모했다. 지난해(740명, 1895편)에 비해 응모자 수는 줄었지만, 출품작 수는 늘었다. 특히 시 부문의 응모자출품작 수 증가가 눈에 띄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응모가 많았지만, 10대부터 80대 응모자까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강원, 경상, 전라, 충청,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작품을 보냈다. 올해 신춘문예 예심은 지난 10일 전북일보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개조로 나뉜 심사위원들이 오전에는 시수필, 오후에는 단편소설동화를 심사했다. 심사는 전북일보 문우회(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모임) 회원인 김근혜, 김영주, 김헌수, 김형미, 안성덕, 오은숙, 이경옥, 이진숙, 장은영, 장창영, 정숙인, 최기우, 최아현 작가가 함께했다. 올해는 코로나19와 같은 현 세태를 반영하는 작품을 비롯해 신선한 소재의 작품들이 많았다. 예년에 비해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다만 완결성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 부문 예심 심사위원들은 11편을 본심에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신선한 발상, 세련되고 안정된 표현,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시어로 가득찬 시를 읽는 일은 즐거웠다고 말했다. 반면 열정은 넘치지만 불협화음처럼 삐걱거리는 단어, 정제되지 않은 표현, 식상한 습관을 놓지 못하고 있는 글도 보였다는 평이다. 이미지가 완숙되지 못하고 과도하게 상징을 배치한 점도 아쉬움으로 꼽았다. 단편소설은 7편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독특한 인물과 참신한 소재가 돋보이고 문장이 안정된 작품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면서도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소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자기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든 탓에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이야기가 장황하고 복잡하게 얽혀 주제를 선명하게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 시대상을 민감하게 반영한 작품이 많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고 말했다. 수필은 코로나19 영향인지 이와 관련된 작품이 눈에 띄었다는 평이다. 그에 관련된 기행수필이 특히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14편을 본선에 올리며 신선한 소재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며 심사했다. 예년에 비해 보편적으로 수준이 높아져 심사하는 내내 행복한 고민을 했다며 다만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인용문구가 많이 등장해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5편이 본심에 진출한 동화는 예년보다 참신하고 다양한 소재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심사위원들은 치매, 의인화, 장애인 등 많이 다뤄온 익숙한 소재도 있었지만 다름이나 환경, 4차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소재를 고민한 흔적도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현 세태를 반영하는 작품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제를 드러내기까지 완결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아 아쉬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미흡한 구성과 느슨한 긴장감, 빈틈이 많은 상상력과 같은 미숙함이 드러난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당선작은 본심을 거쳐 2021년 1월 1일자 본보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한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13 18:23

전북 구상화단 거목 박남재 화백 별세… 향년 91세

한국의 대표 구상화가이자 지역 화단의 거목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이 지병으로 지난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중퇴하고,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 화백(1905~1982) 만나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1960년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전주여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전북의 구상화단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원로 작가이다. 자연과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예술정신으로 70년 가까운 화업을 일궈왔다. 전북 출신 화가로는 처음으로 국내 예술분야 중 가장 권위 있는 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0년대의 설경, 雲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 내장산 秘景, 지리산 하경, 성산일출봉, 제주 비자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줬다. 한결같이 자연 풍경과 정물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로운 붓질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각종 대회 수상을 했으며, 초대전과 개인전 등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1년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그의 60년 화업을 조명하는 초대전을 비롯해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 원로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전시회에 초대 출품했다. 20여 년간 원광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숱한 제자를 길러낸 그는 정년 퇴임 후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후배 작가들에게 귀중한 본보기가 됐다. 2016년 말에는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 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섬진강미술관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등 평생 지역 구상화단을 지켜왔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 각종 미술 관련 활동을 해오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비롯해 미술세계상 본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우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2층 VIP실에 마련됐다가 13일 오전 11시 발인이 이뤄졌다. 고인은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에 묻혔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시완, 딸 박지연 1남 1녀가 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0.12.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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