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비극 되풀이 않으려면…대책은?
■ 주제에 다가서기1. 세월호 침몰사고의 책임① 선장과 승무원선장과 승무원들이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하고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 없이 승객들을 놔둔 채 1차 탈출했다. 2시간의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에도 이들의 무책임한 행위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후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의 생존율이 높았다.② 무리한 화물적재와 증축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 실린 화물은 차량 180대화물 1157톤으로 무리한 화물을 적재했다. 이와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며, 게다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동차와 컨테이너 등 기타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또 청해진해운은 2012년 일본에서 노후선박을 사들여 개조 작업을 했는데, 이로 인해 배 아래쪽에 있어야 할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 그 복원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세월호는 배가 균형을 잡는 데 꼭 필요한 평형수도 제대로 채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③ 진도 VTS 관제 허술, 골든타임 허비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이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골든타임)을 허비했다.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④ 허둥댄 정부, 초동대처 대실패정부의 재난대응체계는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해수부교육부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다.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뎌졌다.2.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논란들① 투입된 수색인원뉴스타파에 의하면 침몰 첫날 동원된 잠수요원은 해경 140명과 해군 42명등 모두 182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이중 9%인 16명에 불과했다. 또한 민간 잠수사들이 수색작업에서 제외돼 대기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현장의 지휘 통제는 해경이 맡았지만 해경 해군 소방방재청 민간 잠수사 등 에 대한 효율적인 지휘체계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② 최첨단 수상구조함 통영함통영함은 천안함 사건 이후 겪었던 어려움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 자체 기술로 만든 최첨단 수상구조함이다. 그러나 해군 참모총장이 두 차례나 긴급 지원 지시를 내렸음에도 통영함은 투입되지 않았다. 음파탐지기 수중로봇 장비 등 구조 관련 장비들이 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이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③ 정부△ 대통령은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약 7시간 동안의 행적과 관련하여 비판의 대상이 된데다 중앙재난 안전 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 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세월호 구조자들이 응급치료를 하던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안보실의 역할은 자연재해 같은 것이 났을 때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의 재난관리 대응에 대한 대학 교수들의 비판이 21일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진 것을 보면 정보당국의 통제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④ 어이없는 상황들△ 해난구조대 소속의 장병에게 드라이수트를 입히고 수도장치로 물을 뿌려 막 수색작업을 마치고 선상에 오른 것처럼 연출해 방송하게 했으며 시계에 대해 말을 맞추기도 했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해경의 헬기를 타고 사고 해역에 있던 지휘 함정으로 이동했고 헬기는 함정에서 1시간 이상을 대기했다. 그 시간 잠수특공대 16명은 헬기가 없어 배를 타고 현장에 가야 했다.△ 세월호를 부양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리프트백은 사실 부양 역할이 아니라 부표 역할로 활용했다고 백승주 국방부 차관이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대책반은 단원고 학생이 전원 구조됐다고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단원고등학교도 학생과 교사 338명이 전원 구조됐다고 밝혔다.△ 최고의 수중 탐색 구조 구조 능력을 갖춘 공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현장 지휘통제 기능 마비로 인명구조 작업에 단 1명도 투입되지 못했다.■ 생각키우기1.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승객을 구조해내지 못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은 항목을 중심으로 설명하세요.△ 자기들만 탈출한 선장과 선원, 아마추어 수준해경, 우왕좌왕했던 정부당국2. 최첨단 수상 구조함인 통영함이 구조에 투입되지 못한 이유를 방산비리와 연계하여 알아보고 발표하세요.3.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고 해요. 학생들이 배가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었던근본 이유를 생각해보세요.4. 국가 개조론까지 나왔던 당시 상황과 비교하여 1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세요.5.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어요. 참사를 당한 가족을 대하는 기자들의 바람직한 태도와 올바른 보도 지침을 만들어보세요.6. 당국자들이 구조보다는 의전에 신경썼던 이유가 무엇일까요?7. 다음 사진의 의미를 자기 관점으로 설명한 뒤 신문의 사진 설명문과 비교해보세요.8. 다음 시사만평의 의도를 설명하세요.9. 덕성여고생들은 섣부른 위로 안 되게 고민하여 외모나 성적 등 일상을 나눈 편지를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냈다고 해요. 우리가 단원고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엔 무엇이 있을까요?■ 읽고 생각하기△ 다음 기사를 읽고 1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함께 눈물 흘렸던 우리는 당시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본 후 기억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세요.-지난 2일 경기 안산시 고잔동의 허름한 상가 건물 3층에 기억의 방으로 이름 붙여진 사진 전시관이 마련됐다. 54점이 전시된 사진에는 책상위에 장난스럽게 놓은 구충제, 벽면을 가득 채운 아이돌 연예인의 포스터, 몇 년은 족히 넘었을 손 때 잔뜩 묻은 기타와 전자 피아노 등이 있을 뿐,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흔적만을 남 이 방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사진들은 조용히 되묻고 있었다. 사진 속 방의 주인은, 다름 아닌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출처:2015-04-18 한국일보〉■ 나의 주장 말하기△ 다음 기사처럼 의인을 돕기 위한 다른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국가제도적 차원에서 이런 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서술하세요.-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20여명을 구하며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던 김동수씨가 지난 달 19일 트라우마와 생활고로 자살을 기도한 사건은 또 한 번 우리 사회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충격으로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대학생 정석원(24경희대 철학과 3년)씨도 있었다. 그는 현재 크라우드 펀딩으로 김씨를 돕고 있다. 정씨는 14일 세상은 김씨를 영웅이라 추대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지 우리는 무관심했다며 모금 취지를 설명했다.〈출처:2015-04-15 한국일보〉■ 토론하기1. 다음은 이제 가만히 있는 엄마는 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사의 일부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한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토론하세요.-지난 1년 내내 전철역 앞에서 세월호 관련 서명을 받아 서명지기로 불리는 이상순씨. 그는 일련의 활동이 엄마들을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했다. 내가 했던,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학생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3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다는 이씨는 서명지를 들고 나설 때마다 내 발밑에 차오르는 물이 어떤 이에게는 목에 차오를 수도 있다는 말을 되새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1년을 되짚었다. 〈출처:2015-04-16 한겨레〉■ 논술1.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보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국민들이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만해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논술하세요.△전국에서 위문품들이 진도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수많은 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세탁해드립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조용히 가족들 사이를 다니는 사람, 말없이 청소만 하고 다니는 사람, 진료가 필요한 가족들의 상태를 살피고 즉각 의료조치를 취하는 의료진,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변호사, 심리상담실을 비롯한 현장 응급의료소나 휴대전화 충전서비스, 안산 개인택시 기사들의 교통 봉사 등■ 쟁점 관련 도서〈금요일엔 돌아오렴〉-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연말까지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기록작업을 해 온 작가기록단이 그들 중 13명의 부모형제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펴냄)이 출간됐다.〈잊지 않겠습니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 2014년 6월 15일부터 세월호 추모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는 제목으로 연재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 그림과 가족의 절절한 심경이 담긴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출처:2015-04-19 매일신문〉고사성어 : 파사현정(破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깨뜨릴 파, 간사할 사, 나타날 현, 바를 정 불교(佛敎)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도리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행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라는 고사성어를 넣어서 오로지 진실규명을 바라는 유가족의 입장이 되어 사회를 향한 호소문을 작성하세요.■ 학생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구와 기적은 우리 곁에 있다라는 노란 리본과 세월호란 단어만 들어도 숨이 꽉 막히며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던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난 지 어느덧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즐겁고 설레며 행복하게 떠났던 수학여행이 가장 슬픈 여행이 되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들이 구조 받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차디찬 바다 속에서 외롭고 무섭게 죽어갔던 사람들, 내 생명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몸을 사리지 않으셨던 분들, 살아만 있어 달라고 울부짖는 가족들과 국민들의 소리, 살아 남은 것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구조된 사람들, 이렇게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함께 울었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아직도 9명의 실종자들이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또한 사망자중 대부분이 아직 꿈도 피워보지 못한 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였기 때문에 더욱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당시 선장의 잘못된 판단과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 어른들의 사리사욕으로 인하여 초래한 결과가 정말 엄청난 사고로 이어졌고 몇 사람의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월호와 같은 대참사가 겪은 자만의 슬픔이 아닌 우리 모두의 슬픔이 되도록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상고 3년 김윤하- 골든 타임을 놓친 이유세월호 침몰 후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고 승객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대체 왜 골든타임을 활용하지 못했을까?그 이유 중 하나는 관료제와 서열우선주의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교는 나이에 따른, 신분에 의한, 등의 위계질서를 많이 내세웠고 현재까지 그 영향은 지대하다. 세월호가 기울어졌을 당시 학생들을 구하러 먼저 온 것은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이었다. 민간인들은 작은 배에 그 만큼의 학생들밖에 태울 수 없었고 갇혀 있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큰 배와 장비가 필요했다. 당국은 구조를 위해 조직하고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또는 윗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무의미하게 계속해서 흘려보냈다. 그러는 사이 기울어진 배는 점차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관료제의 부작용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두 번째로는 우리나라의 안전제도의 미흡을 들겠다. 세월호는 계약직 선장을 써서 항해의 안전성을 떨어뜨렸고, 적당량의 3배에 달하는 화물을 싣고 승선인원도 2배 가까이를 태웠다. 또한 펼쳐지지 않은 많은 구명정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세월호의 점검 과정에서 부실한 부분들에 대한 지적 또한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세월호가 침몰한 뒤에 밝혀진 사실이다. 점검 과정의 주체는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와 해양경찰과 항만청 소속 공무원들이었다. 결국 그들의 무사안일과 검은 돈의 실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세월호는 보여주었다.이를 계기로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상고 3년 임영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