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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명 학자와 아베 총리

세계적인 저명 역사학자들이 지난 5일 ‘일본의 역사가들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이라 명명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학자는 9개 국가의 역사학자 187명. 퓰리처상을 수상한 허버트 빅스를 비롯해 디어도어 쿡과 하루코 다야 쿡 부부, 존 다우어, 브루스 커밍스, 피터 두스 같은 세계적 역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규모로도 그렇지만 참여 학자들의 이러한 면면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일본학과 일본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명서에 ‘일본은 연구지역일 뿐 아니라 제 2의 고향’이라고 밝혀놓았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의미일터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집단성명까지 냈을까.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성명서에는 관심을 끄는 내용이 있다. ‘여성인권이 본질인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중국내에서 민족주의적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민족주의적 비난으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역사적 사실 추구라는 기본적 가치를 놓치고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이번 성명서의 본류는 따로 있다. 학자들이 근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실체다.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의회에서 가진 합동연설에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인도적 안전의 중요성,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 가했던 고통에 직면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기대했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없었다. 이번 집단 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교수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연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발언을 내놓을지 주시했지만 오히려 과거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과거 고노담화가 그랬던 것처럼 아베 정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역사왜곡과 정치쟁점화를 하지 말라는 직접적 호소”라고 밝혔다.일본의 역사왜곡은 시대를 넘나든다. 가깝게는 고노담화가 그 증거다. 사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행태를 보면 아베정권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일이라면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외교적 마찰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전례 없는 187명 역사학자들의 집단성명이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끌고 있지만 그 영향력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5.08 23:02

혁신

전세계가 온통 혁신, 창조라는 화두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에서 성장 동력이 된 것은 혁신의 결과물들이다. 등자와 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원거리 무역과 정복전쟁은 불가능했다. 증기기관이 발명됐기 때문에 거대한 교통 혁명이 일어났고, 인터넷과 메모리칩은 정보 혁명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혁신 열풍은 스마트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가 출발이다. 최대 경쟁사인 삼성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혁신에 몰두하고,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식 혁신 거점을 만들고 있다. 혁신만이 치열한 국가간,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보증수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오늘날 대한민국이 OECD국가, 1조달러 무역국가, 세계 10위에 달하는 경제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는 혁신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구축하는 등 기업의 창조와 혁신을 독려하는 것도 혁신만이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한국·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5개국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2014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정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이 평가는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10대 분야, 120개 기술을 대상으로 하며 전문가 3,939명이 각국의 기술력을 수치화 해 비교한 것이다. 기술력이 쟁쟁한 선진국들과의 비교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0대 분야 중 전자·정보·통신, 의료, 바이오, 기계·제조·공정, 에너지·자원 등 9개 분야에서 중국에만 앞섰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중국에도 크게 뒤졌다. 우리의 전체 기술수준은 미국을 100%로 했을 때 78.4%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술력 격차는 4.4년이었다. 2010년 2.5년이던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술 격차는 2014년 1.4년으로 좁혀졌다. 중국은 18개 세부 기술에서 우리보다 앞섰다. 우리보다 기술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추격이 거센 것으로 확인됐다. 120개 세부 기술에서 우리는 인간친화형 디스플레이, 초정밀 디스플레이 공정 및 장비, 스마트 그리드 등 3개 기술만 미국과 EU, 일본 기술수준의 90%를 넘었다. 2012년과 비교해 74개 기술은 이들과 격차가 좁혀졌지만 45개 기술은 커졌다. 최근 전북의 경쟁력으로 부상한 탄소섬유는 차별화된 기술이지만, 일본에 훨씬 뒤져있다. 계속되는 혁신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5.07 23:02

무력한 전북정치 탈출구

4·29 재보궐 선거가 야당 참패로 끝나면서 내년 총선으로 관심이 모아졌다. 도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관악을에 출마한 정동영과 광주 서구 을서 출마한 천정배 후보에 관심이 컸다. 그 이유는 정동영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인가와 호남 새정연 텃밭에서 천정배가 승리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정동영과 천정배는 신기남의원과 함께 지난 2000년 DJ정권 때 당내 정풍운동을 주도한 멤버로 노무현 정권 때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당의장과 법무부장관 등을 맡았다.정동영 한테 야권 분열로 인한 책임론이 제기되지만 도민들은 천정배가 뉴 DJ를 내세우며 호남정치 복원을 외친 그점에 관심이 오히려 높다. 5선의 천정배가 호남정치 복원을 외치면 내년 총선 때 새정연에 식상해서 등돌린 도민들이 천정배와 손잡은 후보를 지지할 공산이 크다. 그 만큼 새정연에 대한 믿음이 예전 같지 않고 친노세력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이 강해졌다. 일부에서는 “당 주류인 친노가 해놓은 일이 뭣인지 모르겠다”면서 “그들은 수권세력이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도내서도 친노가 경선때 얄팍한 대중조작기술로 국회의원 후보가 된 사례가 있다”면서 “이들 한테 더 이상 지역정치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상당수 도민들은 “그간에는 새정연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해 금배지를 달아 줬으나 지역으로 돌아 온 게 없었다”면서 “이번 광주 서구을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를 당선시킨 것처럼 도내서도 선거혁명을 이뤄야 전북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민 가운데는 “경선 때 당심을 업고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이 되는 잘못된 정치구조가 전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면서 “내년 총선 때는 당 대 당 아니면 무소속이라도 경쟁을 벌이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여론주도층들은 “도내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너무 떨어져 중앙정치 무대에서 전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면서 “존재감 없는 국회의원도 유권자가 잘못 뽑아서 만든 것인 만큼 유권자 잘못이 크다”고 힐난했다. “앞으로는 선거기술자를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면서“도민들이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 받고 살려면 광주 전남사람처럼 자기주장이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정배의 승리를 놓고 도민들도 “뭔가 전북도 새판짜기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새정연 후보라고 과거같이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새로운 리더십을 출현시키려면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가능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행동하는 양심만이 전북을 살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5.06 23:02

명운이 엇갈린 '천·신·정'

지난 2000년 12월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일대 파문이 일었다. 당내 소장파인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른바 정풍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정풍운동의 중심에는 ‘천신정’, 즉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등 트로이카가 있었다. 전남 신안과 남원, 순창 출신인 이들 세 사람은 15대 때 함께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의원시절 감히 살아있는 권력인 동교동계 실세들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여세를 몰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면서 일약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이후 정동영은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일부장관에 이어 집권여당 대통령후보에 오르는 등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천정배 역시 집권여당 원내 대표에 이어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했다. 신기남은 정동영으로부터 당의장직을 넘겨받아 여당 대표가 됐다.하지만 이들 트로이카의 정치적 명운이 엇갈리고 있다. 정동영은 2007년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 후 민주당을 탈당, 전주덕진 재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9대 때 강남 을에서 다시 낙선한 뒤 이번 4·29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관악 을에 출사표를 냈지만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더구나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긴 야권분열의 책임까지 떠안게 돼 정치적 입지가 바늘 꽂을 곳보다도 좁아졌다. 4선 관록의 천정배 역시 19대 총선 때 서울 송파 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지만 이번 4·29 재보선에서 호남정치의 부활을 내걸고 새정연을 탈당해 광주 서구 을에서 무소속으로 5선 고지에 올랐다. 그는 호남 정치권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면서 내친김에 내년 총선 때 호남 전 지역 공천을 호언하고 있다. 그에게 DJ이후 정치적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신기남은 강서 갑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18대 때 안방을 내줬다가 19대 때 권토중래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여전히 중진으로서 활동하고 있다.이들 3인방 가운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정동영이지만 지금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관악 을에서 정치적 부활을 꿈꿨으나 패착을 한데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면서 국민모임의 추동력마저 잃었다. 전주 덕진에서 마지막 재기를 노릴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잃어버린 명분과 민심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석(素石) 이후 전북의 정치적 재목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5.04 23:02

원본과 모사본

조선왕실의 마지막 회화가 공개됐다. 지난 28일부터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그림은 두 점. 벽화로 제작된 ‘봉황도’와 ‘백학도’다. 애초 이 그림은 역대 왕비들의 거처였던 창덕궁 대조전 안 동쪽과 서쪽 벽에 그려 넣은 그림이다. 벽화인 만큼 크기도 가로 5m 세로 2m가 넘는 대작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 당대 일급 화가들이 그린 마지막 궁중회화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전통산수화풍에 서구적 화풍이 결합되어 근대과도기 화풍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봉황도’는 산수화로 이름을 날렸던 오일영과 이용우의 합작이고, ‘백학도’는 채색인물화로 유명했던 이당 이은호의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 벽화 원본을 보존하기 위해 벽에서 떼어내 보존처리하고 대조전 벽에는 새로 제작된 모사본을 붙였다. 물론 이번 처음 공개된 것은 진본이다.전주에도 귀중한 유산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회화사적으로도 가치가 특별한 ‘왕의 초상’ 태조어진이다. 어진은 당대를 통치한 조정과 국가의 상징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태조어진은 조선 창업자의 초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어진을 모시기 위해 세운 공간을 진전이라고 하는데 태조 어진을 모신 진전은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와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가 성장한 개성,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세워졌다. 그러나 모두 소실되고 전주의 경기전의 ‘태조어진’만 살아남았다. 게다가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 중에서 전란을 견디고 화재를 피하여 살아남은 어진은 태조 어진과 영조 어진뿐이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그린 전신상으로는 유일한데다 초상화의 최고봉으로 꼽혔다. 이런 이유로 태조어진을 모셨던 전주 경기전은 회화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꼭 들러야 하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경기전 안에 어진박물관이 세워진 후로 어진을 보러오는 관객들이 더 늘고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니 130만 명이 박물관을 들렀다. 그러나 관객들이 박물관에서 만나는 어진은 사실 진본이 아닌 모사본이다. 진본은 11월경 박물관 개관일에 맞추어 2주일 정도 공개될 때만 만날 수 있다. 태조어진은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회화적으로 보자면 모사본과 원본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진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전문가든 일반관객이든 마찬가지일터다. 진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렸으면 좋겠다. 지혜를 모으면 답이 있지 않을까.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5.01 23:02

합창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맞춰 새로운 화음과 선율로 노래 부르는 합창단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노래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합창은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 실력만 좋아서는 안된다. 구성원 간 화합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공동체 활동이니만큼 음악적 재능이나 노래 실력과 더불어 소통과 조화, 균형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3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라면, 30명의 단원이 선율과 가사에 깃든 감정을 서로 공유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합창이 이뤄진다. 그래서 합창으로 하나가 되려면, 최고의 합창단이 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이해와 배려, 감사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합창의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의 노랫소리를 잘 경청하고 배려하고, 또 그에 맞춰 자기 노래를 부르는 데서 꽃피워진다.세계적 합창 지휘자로 손꼽히는 윤학원 명예교수(75·중앙대학교 음악대학)가 지난 28일 군산을 찾았다. 그는 국내 합창계의 대부다. 합창이 빈약하던 1970년부터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해외공연을 다녔고, 그가 배출한 현역 지휘자가 70명에 달한다. 그가 인천시립합창단을 맡은 후 2009년에 미국 합창지휘자연합회(ACDC) 창립 50주년 기념무대에 올랐는데, ACDC는 미국 전역의 합창단 40개와 세계 4대 합창단만을 선별해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합창의 대부가 지난해 인천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에서 물러난 뒤 서울 자양교회 시온찬양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합창 일선에서 뛰고 있다. 군산합창연합회가 이날 군산 남부교회에서 마련한 ‘윤학원 교수와 함께하는 합창세미나’에는 군산지역 합창 애호가 수백명이 참석, 그의 합창강연과 즉석에서 펼쳐진 합창 지도를 경청했다. 윤 교수는 이날 남부교회 찬양대가 부른 ‘그가(우효원 곡)’ 등 4곡의 합창을 들은 후 “곡과 가사에 깃든 기쁨과 슬픔, 평화와 고마움 등 감정을 잘 담아내야 좋은 합창이 된다”고 조언했다. 성대만으로 소리를 내지 말고 공기를 적절히 활용해야(성대 반, 공기 반) 호소력 짙은 노랫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주제의식을 갖고 템포와 엑센트를 정확하게 할 것, 파트간 조화를 이룰 것, 아름답게 할 것, 가사의 뜻을 느끼고 감동이 있는 합창을 할 것 등을 주문했다. 군산합창연합회가 올 가을 계획하고 있는 군산 합창 대향연이 기대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30 23:02

인맥정치

도내 시장 군수들은 한결같이“중앙에 큰 인물이 없어 일하기가 힘들다고”고 볼멘소리를 한다. 유신 때나 군부독재 시절에도 전북 출신들이 곳곳에 박혀 일하기가 수월했는데 MB정권 이후에는 씨가 말라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 총리만해도 5공 때는 김상협 진의종(고창), 김영삼정부 때는 황인성 (무주) 고건(군산), 노무현정부 때는 고건 한덕수(전주)가 발탁돼,보이지 않게 전북 발전의 후원군 역할을 했다는 것. 총리가 전북 출신일 때는 도지사부터가 자유롭게 중앙부처를 왕래하면서 국가예산을 확보하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MB 정권 이후에는 총리는 고사하고 장차관도 없어 전북 몫 확보하기가 버겁고 힘들다는 것.유신정권 때는 정치권에 소석 이철승씨가 떡 버티고 있어 웬만한 부처 일은 전화 한통화로도 해결했다. 중앙정치 무대에 큰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참여정부 시절 김원기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였던 관계로 국회의장이 돼 지역 일을 원활하게 풀었던 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전주고법 유치 문제도 참여정부 시절에 전북 출신 인사들이 법조계 등 힘 있는 부처에 다양하게 포진했던 관계로 힘이 모아지면서 이뤄진 것. 그 당시에도 김원기 의장의 막후 역할이 컸다. 김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있을 당시 정읍시장이었던 유성엽 현 국회의원이 국가예산 확보를 쉽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유 시장이 찾아오면 해당 부처 장차관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지역현안을 그 자리서 해결해 줬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언감생심이다.단체장들이 중앙부처를 상대로 국가예산을 확보할 때 상황에 따라 지역구 의원의 도움을 받지만 각 부처에 통하는 인맥이 없으면 명함도 못내밀고 허탕치기 일쑤다. 장차관 못지 않게 중요한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 고시 출신 파워엘리트 들이다. 이들 관료들을 알아야 사전에 정보를 파악해서 국가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각 부처에 전북 출신 간부들이 없어 단체장들은 별의별 궁리를 다한다는 것. 남 소개를 받아 타 시도 출신 유력 인사에 매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철저히 인맥으로 얽혀 있는 중앙부처에서 그 만큼 전북이 타 시도에 경쟁력이 뒤처져 있다.그렇다고 전북 출신 유력인사가 중앙 부처에 없다고 하소연만 할게 아니라 전북인맥을 종횡으로 찾아서 활용하는 게 급하다. 송하진 지사는 파벌로 나눠진 의원들과 현안이 있을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전북의 이익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정치권이 단합하지 않으면 전북의 힘은 분대전투력 밖에 안된다.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긴 정세균의원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필요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4.29 23:02

무기수의 미귀(未歸)

수형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연간 2000만 원대에 이른다. 9급 공무원에 맞먹는 비용이다. 이를 빗대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재소자를 ‘10급 공무원’으로 부르기도 한다. 국가 녹을 먹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국가 녹을 먹는것도 팔자를 타고 나야 한다고 한다. 팔자에 없으면 법망을 이리저리 빠져 나가, 국가 녹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다. 무기형을 선고 받고 징역살이를 하는 죄수가 무기수(無期囚)다. 그들에겐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절망에 빠져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는 수형자들도 있다. 징역을 살면서 화장지 제조공장 같은 자립형 공장에 취업하면 매월 25∼30만원, 최고 45만원까지도 번다. 전공을 살려 공부하는 수형자들도 있다. 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무기수 신창원은 독학사(獨學士) 준비를 하고 있다. 독학 학위 규정에 따라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는 학사학위다. 한때 모범수 생활을 한 무기수는 20년 형으로 감형 받기도 했다. 만기 1∼2년을 앞두고 가석방되는 수형자들도 있었지만 지금 이 제도는 없어졌다고 한다. 다만 교정성적이 우수한 수형자에게는 귀휴(歸休)가 주어진다.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심사를 거쳐 수형자에게 잠시 휴가를 주는 제도다.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야 하고 무기수의 경우에는 7년이 지나야 한다.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무기수 홍승만씨(47)가 지난 17일 고향인 경기도 하남으로 4박5일 귀휴를 나간 뒤 오리무중이다. 한달 전 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귀휴를 신청했고 영치금 300만원 정도를 챙겨 친형과 함께 고향으로 떠났다. 펜팔로 알게 된 여성에게 혼인신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가석방을 노리고 혼인을 제안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1996년 강도살인죄로 수감돼 19년째 복역했고 행형은 모범적이었다고 한다. 미귀(未歸)가 장기화되자 직원을 따라 붙이는 이른바 ‘대동귀휴’를 하지 않은 걸 꼬집기도 한다. 그렇다고 귀휴 탓만 할 건 아니다.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모범적 수감생활을 하면 희망이 있다는 제도적 장치도 차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살만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절망에 빠지게 되고 절망에 빠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지금 이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28 23:02

생뚱맞은 황희 정승 논란

장수 방화동계곡을 오르다보면 용소(龍沼)를 지나 널따란 바위 가운데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있다. 꼭 작은 세숫대야처럼 생긴 곳인데 이곳을 정승탕이라 부른다. 그 연유는 황희 정승에서 유래됐다. 1418년 조선 태종 때 이조판서였던 황희는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 폐위에 맞서 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우는 일(廢長立幼)은 재앙을 부르게 되는 근본이라며 반대하다 태종의 진노를 사서 유배를 당한다. 남원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황희는 세종 즉위 4년(1422년)에 왕의 부름을 받자 이곳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뒤 상경해 24년간 재상을 지냈고 영의정만 18년을 역임한데서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정승탕이 불렀다. 지금도 이곳 정승탕을 찾는 사람들은 꼭 세수를 한번씩 한다. 유종근 전 도지사도 대권도전 때 이곳에서 얼굴을 씻은 적이 있다.대쪽 같은 소신과 원칙으로 명재상(宰相)과 청백리의 사표(師表)가 된 황희 정승이 생뚱맞은 논란에 휩싸였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며칠 전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이완구 총리의 낙마를 거론하면서 “조선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무슨 참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다는 건데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분을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당장 장수 황씨 대종회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종회 원로단 회의에 이어 오늘 회장단 회의를 거쳐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대한 공식 대응방침을 결정한다.황희 정승에 대한 기록은 세종 10년 6월 25일자(1428년 8월 6일) 세종실록에 나온다. 세종과 황희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사관(史官) 이호문이 추가한 내용으로 황희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있다. 승려로부터 황금을 받았다며 황희를 ‘황금 대사헌’으로 지칭하고 간통·살인범인 여성을 자기 집에 숨겨주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매관매직과 뇌물을 받고 옥살이를 면해주었다는 내용 등이다.이와 관련, 단종 즉위년(1452년)에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 김종서 정인지 정창손 최항 등 9명이 회의를 열고 “우리 아홉 사람이 이미 모두 듣지 못하였으니 이호문이 어찌 능히 홀로 알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필(史筆)은 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라며 삭제나 개정의견 등을 냈다. 하지만 작성된 사초(史草)를 고쳐 한번 그 실마리를 열어 놓으면 나중에 폐단을 막기 어렵다하여 삭제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를 폄훼해서 현직 총리의 비리 의혹을 희석시키려는 김진태 의원의 언동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재갈은 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4.27 23:02

골목의 귀환

‘골목길’이 도시를 살려내고 있다. 대구의 ‘근대골목’이 그 증거다. ‘근대골목’이란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적어도 대구의 구도심에서는 지역의 근대사를 이야기로 담아낸 근대골목의 존재가 빛난다. 대구 중구는 역사적 전통과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몇 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의 구도심 거개가 그렇듯 대구 중구 역시 근대자산들은 방치되고 공동화된 거리는 활기를 잃었다.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작업이 더해졌다. ‘일상장소 문화공간화사업’과 ‘근대문화공간디자인개선사업’에 선정되면서 구도심의 변화가 시작됐다. 지금은 꽤 이름난 상품이 된 ‘대구 근대골목투어’는 그 결실이다. 대구근대골목투어는 2008년에 시작됐다. 첫해 방문객은 300명이 채 안됐지만 6년만인 지난해에는 근래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김광석 길 방문객까지 67만 명이 찾았다는 통계가 있다. 놀라운 변화다. 중요한 것은 방문객 수가 아니라 골목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다. 근대문화골목길은 1.64㎞, 2시간 정도 걷는 거리다. 골목투어에는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다. 근대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거리’에 관심이 쓸리고 있는 덕분이다. 2010년에 조성된 이 거리는 350미터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이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이야기로 입힌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은 통행로로서의 기능에 그쳤을 골목길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거리를 끼고 있는 방천시장은 찾아오는 방문객들 덕분에 활기를 띤다. 지역주민들이 반가워하는 이유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 목적만 앞세워 방문객수에만 집중하다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상업화로의 변질이다. 우리 지역에도 아름다운 골목길이 많이 있다. 5-6년 전, 전주 한옥마을도 적잖은 골목길이 살아 있었다. 한옥마을은 그 골목길들로 인해 더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됐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좁디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담장과 담장이 어깨를 맞댄 틈 사이에 또 다른 골목길이 놓여있던 공간. 그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이집 저집 대문도 담장도 쳐다보며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옥마을 골목길의 대부분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의 존재는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아 있는 골목길의 존재도 위태롭다. 다른 도시의 ‘골목길 귀환’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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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5.04.24 23:02

최명희의 제망매가

소설 ‘혼불’로 유명한 작가 최명희는 198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월간 전통문화에 소설 ‘제망매가’를 연재했다. 여성 명창 안향련의 가련한 죽음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다. 전주와 완주가 배경이고, 이 지역 인물과 풍경, 민담과 설화, 민요, 굿 등이 오롯이 배어 있다. 하지만 제망매가는 미완이다. 연재 도중 잡지가 폐간됐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최명희는 계속 이어진 혼불 연재 때문에 제망매가 집필을 재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았으니 일반인들이 최명희의 소설 제망매가를 책으로 읽을 기회는 없었다.그 소설 제망매가를 최명희문학관이 세상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나섰다. 올해로 개관 9주년을 맞은 최명희문학관이 21일부터 5월5일까지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지선실에서 제망매가 삽화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판화가 유대수씨와 서양화가 황진영씨가 소설을 읽고 작업한 판화와 펜화 작품이 더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의 특정 대목 상황에 걸맞는 그림을 유대수 작가는 판화로, 황진영 작가는 선이 가는 펜 드로잉으로 작업했는데 소설 속 인물의 감성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1960년대 전주의 풍경과 역사 인물 등이 가득하다. 소리광대 임호근의 한 세상 소원은 명창이다. 최명희 작가는 임호근이 명창을 꿈꾸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완주 출신의 권삼득 명창이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 맞섰다가 결국 파문 당하면서까지 소리꾼의 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또 한벽루를 지은 최담과 함께 조선시대 명필 이삼만도 등장시킨다. ‘그날도 그들은, 한벽당의 옛 주인 월당 최담 선생의 유허인 월당지 주변 대숲에 이르러 이삼만의 글씨를 어루만져 보았던 것이다.’전주천변의 풍경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연날리는 패들은 쇠전 강변 언저리로부터 매곡교를 지나 전주교가 가로 걸린 초록바우 동천에 이르기까지 가득하였다.’경기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이라해서, 그 선조의 뼈가 생겨난 전주에, 경기전을 세운 뒤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엄숙하게 분향 제전을 받들었던 곳이, 이제는 허물어져 담장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5백 년 동안,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야 했던 경기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울창한 아름드리 고목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소설 제망매가는 살아 있는 전주 완주 역사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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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5.04.23 23:02

검은 돈의 유혹

기업인 가운데 성완종만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을까. 국민들의 시각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기업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보험 성격의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간 IMF를 거치면서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되어온 불법행위가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 차츰 제도 중심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정치가 부정부패로 얼룩져 OECD에 가입하고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정체 돼 있다. 우리 정치가 고비용 저효율을 내는 구조라서 다른 분야가 잘 되어도 시너지 효과를 못내고 있다.국회의원들의 중앙정치 말고도 지방의원들이 하는 지방정치는 어떨까. 엇 비슷하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와 맞물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활정치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1년에 지방자치제 부활로 도지사 시장 군수를 직접 주민들이 선출하지만 아직도 절름발이식이다. 중앙당에서 지방의원까지 공천권을 틀어 쥐고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사병이나 다를 바 없다. 무소속 지방의원은 국회의원 눈치 안보고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지만 정당공천 받아 지방의원이 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재정자립도가 빈약한 각 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각 자치단체는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한다. 이같은 틀속에서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를 그대로 닮아간다. 지방의원들은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억대를 쓴다. 재력 있는 후보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은행권 차입부터 시작해서 친인척 내지는 지인들을 통해 선거자금을 융통해서 쓴다. 당선자는 임기내 선거자금을 메우려고 혈안이고 낙선자는 빚더미에 빠져 풍비박산난다.상당수 지방의원은 의정비로 의정활동을 하지만 이 돈 갖고는 애경사비 충당하기도 힘들다. 사업하거나 내조가 없으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 치기가 쉽지 않다. 집행부측은 ‘경제력이 약한 의원들의 쪼들린 행태가 그대로 의정활동으로 나타난다’면서 ‘돈 없이 깨끗하게 의정활동 하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말한다. 시단위 지방의원은 그나마 낫지만 농촌은 애경사를 외면했다가는 다음에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정도다. 의원이랍시고 품위유지도 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인사개입과 이권을 쫓아 다니는 일부 의원에 대해 주변에서는 교도소 담벼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 같다고 힐난한다. 알게 모르게 지방의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린 이유는 검은 돈 유혹 때문이지 다른데 있지 않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4.22 23:02

유자광교·유자광도서관

유자광(柳子光)은 인명사전에 따르면 간신으로 그려져 있다. 경주 부윤(시장)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로, 남원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재주와 용맹이 뛰어나 1468년(세조 14) 무과에 올랐고 남이 장군 등을 역모로 몰아 죽인 공으로 공신이 됐다. 유자광은 자신의 시가 쓰인 현판을 함양 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떼내 버리자 김종직 문하 김일손의 사초 중 조의제문(吊義帝文)이 있음을 트집 잡아 김종직의 저서와 현판을 모조리 불사르게 하고 그를 탄핵해 대역죄로 몰았다. 이른바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이번에는 성희안과의 인연으로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책봉돼 무령부원군(武靈府院君)에 피봉됐지만 그후 탄핵을 받아 훈작을 빼앗겼다. 귀양지에서 장님이 돼 사망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고 자신의 신분에 당당히 맞서 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임금을 모셨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그런데 남원지역에서는 유자광 이름을 딴 대로와 도서관 명칭을 짓자는 주장이 나왔다. 남원고전문화연구회가 최근 남원시 도토동 부영 5차 아파트 앞에 신설 중인 인도교의 이름을 ‘유자광교’로 짓고, 고죽동의 황죽 작은도서관을 ‘유자광 작은 도서관’으로 개명하자고 이환주 남원시장에게 건의했다. 또 박문화 남원시의원도 5분 발언을 통해 인도교와 도서관 명칭에 유자광 이름 사용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자광은 1908년(순종 2년) 죄명을 탕척받고 삭탈된 모든 관작을 돌려받아 명예를 회복한 남원의 큰 인물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의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공을 인정해 주자는 뜻이겠다. 글쎄다. 사면 복권됐다고 해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행위까지 없던 일로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간신의 행적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떼낼 수가 없다. 간신을 갑자기 남원의 ‘큰 인물’로 변환시키는 건 무리다. 더구나 그의 이름을 도로와 도서관에 붙이는 건 좀 거시기하다. 대로와 도서관에 유자광의 이름을 써 붙인다고 해서 남원의 이미지가 쇄신되고 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다. 공연히 간신의 고장이란 불명예만 세상에 드러낼 지도 모른다. 명칭 사용은 신중히 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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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5.04.21 23:02

거짓말

사람들은 평균 8분에 1번씩,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만 전 캘리포니아 의과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물론 이 거짓말 속에는 우리가 의례적으로 나누는 인사말부터 타인을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과 위장된 표정·태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어린 아이들의 경우 4살짜리는 2시간에 한 번꼴로, 6살 아이는 90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게 캐나다 워털루대학 연구팀의 연구 보고서다. 아이들은 10살까지 거짓말하는 횟수가 증가하다 이후 차츰 줄어든다고 한다. 10살이 넘으면 거짓말하다 들켰을 때 뒤따르는 문제점을 알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빈도수가 감소하는 것이다.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오래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설파했다. 한 번 거짓말을 내뱉으면 그 거짓말을 합리화 하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공작반을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워싱턴 포스트 등 몇몇 언론에서 사건의 진실을 알렸지만 당시 선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닉슨은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처음엔 모든 것을 부인했던 닉슨이 1년 만에 사건을 처음 시인했다. 충성스런 부하들이 ‘자신은 모르게 한 일’이라고. 그러나 입막음용으로 백악관에서 돈을 주었다는 딘 보좌관의 폭로에 닉슨은 “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를 승인하지는 않았다”며 세 번째 거짓말을 했다. 법원은 자동으로 녹음되는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닉슨은 대통령 특권을 내세워 거부했다. 하지만 여론에 밀려 녹음테이프를 제출했으나 18분간의 분량이 지워졌었고 이를 우연한 실수라고 네 번째 거짓말을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요즘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꼭 닉슨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만난 적이 없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일면식도 없다”고 강력 부인했지만 거짓말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야당의원의 계속되는 말바꾸기 지적에 “충청도 말투가 그렇다”고 답변해 실소를 자아냈다.“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으나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 대통령의 말을 뼈에 새겨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4.20 23:02

LP음반과 비망록

언제부터인가 빠르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됐다. 일상의 대부분이 디지털로 무장해가는 세상에서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를 갈구하는 욕구에 더 이상 제동 장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서도 삶의 가치는 ‘빠르고 편한 것’에만 있지 않다고 일러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느림과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론이다. 여러해 전, 아날로그적 삶의 가치를 지켜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분이 있는데, LP음반을 즐겨들었던 오디오 마니아다. 중학교 교사였던 그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아 통화조차 어려웠었다. 어렵게 연락이 되었지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바람에 ‘그럼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애면글면 겨우 취재를 했다. 당시 그가 수집한 LP음반은 4000여 장. LP를 즐겨듣는 지인들에게 많이 나누어주었다지만 그러고도 방 벽면을 빼곡히 채운 오래된 음반이 전하는 시간의 무게는 깊었다. 그 역시 CD음반을 듣기도 하지만 음악의 제 울림을 듣기위해서는 LP를 듣는다고 했다. LP는 아무래도 번거롭다. 기온이 낮아지기라도 하면 열을 받아 스스로 힘을 얻기까지 기다리거나 인위적인 힘을 가해야 한다. 어찌됐든 취재를 겸해 갖게 된 그날 우리의 귀는 호사를 했는데, 깊고 인간적인 음악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된 것 역시 덤으로 얻은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호사보다도 더 깊은 울림을 준 것은 그가 깨우쳐 준 아날로그의 가치다. 그가 말하는 아날로그 가치는 ‘기다림’이었다. 기다리지 않고도 얻어지는 결실은 그만큼 가치가 반감된다는 것이 세상을 살면서 그가 얻은 지론이다. 소중한 지혜를 엿보았지만 그럼에도 속도와 편리함에 묻혀 사는 우리에게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늘 궁금했다.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의 실체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녹취록’과 ‘비망록’이 공개되면서다. 음모적이고 음습한 상황이다.주목되는 것이 있다. 그가 세상과 결별하기 직전에 써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지’와 오래전부터 써왔다는 ‘비망록’의 가치(?)다. 만약 이 기록이 그가 직접 쓴 글씨가 아니라 다른 형식의 활자체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 가치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조작에 왜곡, 진위여부를 둘러싼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되었을 것이다.아날로그적 방식이 갖는 힘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흥미로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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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5.04.17 23:02

시계 제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터트린 ‘판도라 상자’가 정국을 강타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연일 계속되는 폭로와 정치권 공방, 검찰 수사 상황을 한심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명단을 올린 인물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거물급들이어서 국민 충격이 더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모르쇠다. 검찰은 지난 6일 성 전 회장에 대해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검찰은 포스코와 경남기업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었고, 결국 성 전 회장이 회삿돈 250억 원을 횡령했다는 등의 혐의를 내세워 성 전 회장의 목에 씌운 올가미를 바짝 조였다. 이에 성 전 회장은 충청도 동향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자신을 표적 삼아 사정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또 주변 유력 정치인들에게 구명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9일 새벽 자살하기 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완구 국무총리 등에게 부적절한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고발했다. 내용은 고스란히 녹음됐다.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이완구 등 8명의 리스트가 발견됐다. 특히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제공했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은 핵폭풍이 됐다. 이 총리는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다. 14일 국회에 출석, 자신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까지 했다. 성완종이 걸려 든 올가미에 이 총리가 걸려들어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여당의 눈도 싸늘하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더러운 정치자금 시비에 휘말리면서 사면초가에 갇혔고, 그는 우미인곡을 들으며 뭔가를 결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착잡할 것이다. 어떤 이는 성 전 회장이 이완구 등에 대한 모종의 섭섭함 때문에 악의적으로 리스트를 폭로하고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성 전회장이 오랫동안 기업 활동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도당위원장, 국회의원 출마와 당선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해 온 이력으로 볼 때 자살 전 폭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국민들은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차떼기 등 정치권 금품수수 사건에 진절머리가 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16 23:02

성깔 있는 도민

도민들의 성향이 크게 보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생활권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창과 순창은 인접한 광주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기질이 엇비슷하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을 광주에서 나온 사람들은 설령 고향이 고창과 순창이라도 말씨나 기질이 광주 사람과 닮았다. 광주 사람들은 긍정적이면서 비판적이다. 뭔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들로 평가 받기 때문에 타 지역 사람들도 그 점을 높이 산다. 호남여론을 대표하는 것도 매사에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표출시키기 때문이다.충남에 인접한 익산 북부와 대전에 인접한 무주도 생활권이 비슷한 관계로 기질이 같다. 경남 함양에 인접한 남원 운봉 4개면도 그 쪽 영향을 받아서인지 말씨나 억양이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연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생활경제권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도청 소재지인 전주가 경제력이 약화되면서 도 전체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아직도 농업비중이 큰 관계로 도민들의 전반적인 기질이 온순하다. 타지 사람들이 도민들을 좋게 말해 양반기질이 강하다고 평가하지만 그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은 정보산업사회라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질이 강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발전은 ‘도전과 응전’의 관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창의적인 자세를 갖고 도전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그 지역은 도태된다. 전주가 산업화 이전만해도 전국 7대도시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지금 17위로 처진 이유를 알아야 한다.지금부터라도 도민들의 의식이 뭔가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광주나 전남 사람들처럼 진취적이면서 예스나 노가 분명해야 한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야 중앙정치권도 깜보지 않는다. 그간 너무 도민들이 자신감을 잃어 왔다. 지역정치인들이 특정정당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노리는 그릇된 정치를 해온 탓이 제일 크다. 남들은 4대강 사업에 찬성해서 지역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판에 전북도의회는 바보처럼 전국에서 최초로 반대하고 나섰지 않았던가.20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지역정서에 함몰되는 묻지마식 투표를 하면 지역이 망한다. 그간 이같은 투표로 덕 본게 없고 잃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를 취해야 지역이 산다. 현역들도 역량이 떨어졌다 싶으면 가차없이 낙선시키고 역량 있는 사람을 뽑아 키우면 된다. 우선 선거 때 도민들이 정신 차려 바보짓 안해야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대접받으면서 살아 갈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15 23:02

사람 끄는 한국전통문화전당

한국전통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이 마침내 30일 개관한다. 한(韓) 스타일 중심의 전통문화 산실이다. 전주 한옥마을 북쪽 옛 도청 2청사 부지(1만9,000여㎡)에 465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됐다. 2009년 12월 착공 이후 5년 4개월만이다. 일부 부실시공에다 예산 확보 미흡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랜 준비 끝에 개관하는 것이어서 관심도 많다. 갈수록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터에 전통문화도시 전주에 문화전당이 들어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곳에는 공예명품 전시관과 기획전시실, 공방(17개소), 공연장, 전주의 역사와 한(韓) 문화가 전시된 홍보관, 전주의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시루방(음식조리교실), 뷔페식 비빔밥 등이 들어서 있다.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실행하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전통문화산업 분야의 인력양성과 전시공연, 연구개발 등이 그런 업무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되고 일자리도 만들어 내야 한다. 김동철(58) 원장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韓) 문화의 융합거점으로 자리매김해 전통의 대중화, 산업화, 세계화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충분한 가치가 담긴 슬로건이지만 대중화와 산업화, 세계화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중요한 건 한옥마을과의 연관성이랄 수 있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한옥마을 관광객의 이른바 ‘낙수효과’로 연결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눈요기와 체험에다 특색있는 향토 먹거리까지 연계된다면 금상첨화다. 전당 주변에 각 지역별 향토음식 공간이 들어서면 어떨까 싶다. 이를테면 군산 꽂게장, 부안 백합죽, 고창 풍천장어, 정읍 산채정식, 순창 다슬기수제비, 임실 운암매운탕, 남원 추어탕, 진안 더덕구이, 장수 소머리탕집처럼. 백문이 불여일식(百聞不如一食)이다. 문화전당은 전주옥(獄)이 있던 자리로 천주교 박해 현장이기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동정부부인 유중철과 동생 유문석이 옥중에서 교살됐고 1827년 박해 때는 240여명이 넘는 천주교 교인들이 감금돼 문초를 받았던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충분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있는 곳이다. 문화전당이 대중화돼야 산업화도 세계화도 가능하다. 사람 끄는 문화전당으로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14 23:02

구심점 잃은 전북 출신 공무원

“전북출신 공무원들은 고향이 없습니다. 대구·경북이나 충청도는 중앙 부처 내에서 인맥도 탄탄하고 당당하게 모이는데 우리는 고향을 밝히기도 꺼리고 교류도 없다보니 전북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30년 넘게 중앙 부처에서 근무한 한 공무원의 푸념이다. 그는 자신은 물론 서울서 태어난 아들의 본적지도 전북 임실로 기재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렇지만 중앙 공직사회에서 소외된 전북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토로한다. 타 지역출신들은 씨줄날줄로 엮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지만 전북출신 공무원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때문에 남들이 퇴근할 때 야근해야 하고 휴무 때 특근 하는 등 2배 3배 더 노력해야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말 장관급 자리에 오른 한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프로필에 출신지를 아예 서울로 표기했다. 그가 도내에 근무할 당시에는 정읍이 고향이라고 밝혔지만 중앙으로 영전한 이후에는 출신지가 슬그머니 바뀐 것이다.이 같은 현상은 중앙부처 공직사회에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시절에는 청와대를 비롯 장·차관 자리에 전북출신들이 대약진하면서 공직사회가 크게 활기를 띠었다. 재경 전북출신 공무원 모임인 삼수회를 중심으로 전북발전 비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운용하기도 했다. 중앙에서 활동하는 장·차관과 기관단체장 CEO 등 중량급 인사들은 모악포럼을 만들어 전북발전 싱크탱크와 인재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중앙 부처 장·차관과 핵심 부서에 전북인맥의 씨가 마르면서 공직사회도 위축되고 말았다. 전북 출신이라 하면 괜히 불이익을 받을까 봐 내색도 하지 못하는 게 재경 전북인들의 현실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금언(金言)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시련기에는 그들 스스로 일어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선배들이나 전북도와 자치단체, 재경 모임 등 외부에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대구·경북은 지역상공인들이 든든한 후원자다. 충청도는 실세총리 등장이후 중앙 공직사회에서 맨파워가 더 커지고 있다.“요즘은 전라도를 ‘멍라도’ 라고 합니다” 전북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은 이 말의 의미를 잘 곱씹어 봐야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4.13 23:02

민살풀이의 위기

우리의 전통춤인 허튼춤과 살풀이는 한국인의 미학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춤으로 꼽힌다. 이 춤의 공통적인 특성은 즉흥성인데 설명을 더하자면 허튼춤은 일정한 형식이나 정해진 순서 없이 자신의 감정과 멋을 넣어 추는 춤이고 살풀이는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이다. 우리의 전통춤은 더러는 소멸되고 더러는 잊혀져 이름만 남은 경우가 많은데 살풀이는 오늘까지 살아남아 널리 알려졌다.굿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살풀이는 교방에서 기생들이 추었던 춤이다.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지고 수건을 들고 추는데 수건의 길이가 지방과 춤꾼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건으로 수많은 선을 그리는 것은 살을 풀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라고도 하고 기방에서 추는 살풀이의 수건놀음은 여인의 한풀이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살풀이 중에서도 일상적인 미학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춤이 있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에 의해 우리 지역에서 이어져온 민살풀이다. 민살풀이는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맨손으로 추는 즉흥춤이다. 예기들을 통해 기방에서 완성됐다고 알려진 민살풀이는 손이 머리 보다 높이 올라가는 법 없이 귀 뒤와 배꼽 근처로만 움직이는데, 멈춰있는 듯 가늘게 움직이는 손과 흰 저고리와 치마의 선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이 슬플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래서 평자들은 이 춤의 생명력을 슬픈 아름다움이라고도 한다.지난 4월 1일, 이 춤을 지켜온 조갑녀 선생이 작고했다.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고 했을 정도로 빼어난 춤꾼이었던 선생은 결혼과 함께 스스로 무대를 떠났다. 춤꾼으로 이름을 숨기고 산지 수십 년, 그러나 세상은 그의 춤을 다시 무대로 이끌었다. 2007년,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였다. 그의 나이 여든 여섯, 몸조차 가누기 힘들게 보일정도로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 무대에 섰을 때 객석은 숨을 멈추었다. 선생의 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아흔을 앞둔 나이에 조갑녀 선생은 왜 가누기도 어려운 몸을 추스려 다시 무대에 섰을까. 사실 민살풀이는 위기에 처한 춤이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 이후 춤의 계승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조갑녀 선생의 민살풀이는 슬하의 두 딸에게 전해졌다고 하니 다행스럽지만 이제는 민살풀이 명인으로 유일하게 남은 장금도 선생도 아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돌아보면 우리의 전통춤은 옛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춤의 생명이 위태롭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4.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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