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요즘 대통령과 정치인,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사회단체, 기업은 물론 개인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최대 화두다. 소통을 잘 하는 사람, 기업, 국가가 경쟁력 높고, 지구촌 생존 게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엄청난 신기술을 발명한 듯 떠든다. 하지만 소통은 인류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 조건이다.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창조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창조, 창의성이 중시되지 않은 때가 없다. 본질은 다를 것 없는데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는 상황에 따라 쇄신, 혁신, 융합 등으로 단어가 바뀌고 편집돼 떠들썩할 뿐이다. 긴장 풀린 인간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것이다. 최근 소통이 강조되는 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전 때문이기도 하다. 소통은 투명유리이다. 감춰질 것 없다. 공유다. 그 속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도 나온다. 소통은 또 광장이다. SNS 공간에서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들이 의견을 나누고 세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기분 좋은 일은 칭찬하고, 기분 나쁜 일은 비판한다. 칭찬하고 격려하며 어두운 사회를 밝게 만들어 간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수단도 된다. 소통의 공간은 여전히 상식 선에서 발전을 지향한다. 하지만 권력은 소통 때문에 힘들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2년이 되지만 ‘불통’ 비판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권력은 그 자체가 장벽이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다. 박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적 고정관념이 의식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 대세인 시대의 대통령이 불통 지적을 받는 것을 두고 대중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광복 7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경제에서 자동차는 중심에 있다. 1997년 등록대수 1000대를 돌파한 자동차는 이제 20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술수준도 획기적으로 진화했다. 대부분 오토매틱이고, 인공지능화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자동차를 보자. 소통은 간 곳 없고 불통 덩어리가 질주한다. 대부분 자동차가 가시광선 투과율 35%∼5%에 불과한 선팅을 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이 앞유리 70%, 옆유리 40%를 규정하고 있지만 휴지조각이 됐다. 선팅하는 사회는 불통 사회이고, 범죄와 음모가 판치는 사회다.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집’을 이른다. 아마도 옛사람들에게 마천루는 상상속의 집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세계 도처에 마천루가 들어서면서 마천루 경쟁시대가 됐다. 마천루는 근대화를 지향한 1920년대의 모더니즘이 주목했던 소재였다. 건축가 임석재 교수에 따르면 마천루는 양식사조와 관계없이 소재의 관점에서 많은 예술가들의 흥미를 유발했는데, 화풍이나 기법, 상징 등 회화의 범위 안에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예술가들이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높이를 드러내는 마천루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마천루 운동’이라 부를만한 흐름이 형성되기도 했다. 마천루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합한 양식을 찾는 실험운동에 집중한 것은 역시 건축 분야였다. 마천루 건설이 실제로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곳은 미국인데, 시카고와 맨해튼에서는 이미 19세기말~20세기 초에 마천루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산업기술을 축적하고 자본을 집중시켜 높이 경쟁을 벌였다. 1931년에 지어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를 40여 년 동안이나 지켰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그 결정체다. 그러나 엠파이어스테이트의 영광도 오래 전에 끝났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마천루의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1위 마천루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다. 163층에 그 높이가 828m나 된다. 그러나 부르즈 칼리파도 2019년에는 1위의 자리를 빼앗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상 167층에 1,007미터 높이로 건설중인 ‘킹덤 타워’가 완공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높이 기록이 흥미롭지만 그 이면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말이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index)다. 1999년 경제학자 앤드루 로렌스에 의해 개념화된 ‘마천루의 저주’는 초고층 빌딩 건축 붐이 거품 경제를 불러와 결국은 대규모 경제불황을 맞게 된다는 상황을 이름 붙인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이 우연히 이뤄진 현상이 아니라 초고층 건물을 짓는 국가마다 어김없이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국내에서도 ‘마천루의 저주’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나라 최고층빌딩으로 주목을 받은 제2롯데월드몰의 계속되는 안전사고가 계기다. 지나친 우려란 반론도 있지만 허투루 지나가기에는 찝찝함이 크다. 늘 과도한 인간의 욕망이 문제다.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 이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한다.Coffee! 7Euro. Coffee Please! 4.25Euro. Hello Coffee Please! 1.4Euro.즉 ‘커피’라고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은 7유로(9100원), ‘커피주세요’라고 주문하면 4.25유로(5500원),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인사하면서 주문하면 1.4유로(1800원)라는 것.가격표를 만든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이 같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한 예화가 있다.옛날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상놈이 있었다. 하루는 젊은 양반 둘이 고기를 사러 왔는데 먼저 한 젊은 양반이 “어~이 백정, 고기 한 근 잘라 줘”라고 주문을 했다. 박씨는 늘 하던대로 정확히 한 근을 잘라줬다. 다른 젊은 양반도 고기를 주문했다. 그는 “여보게 박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그런데 고기 양이 먼저 주문한 사람 것보다 훨씬 많아보였다. 그러자 먼저 고기를 주문한 젊은 양반이 박씨에게 항의했다. “똑같이 고기 한 근을 샀는데 왜 양이 다르냐” 고깃집 주인이 대답했다. “그것은 백정이 잘라 준 것이고, 이것은 박서방이 드린 것입니다”요즘이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기에 부천의 현대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생 무릎까지 꿇린 모녀 갑질에 이어 한 대형마트에서 “나 VIP야”라며 막무가내로 휴대폰을 바꿔달라는 마트 갑질녀까지 등장하면서 ‘갑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적 인격적 성숙은 뒤따르지 못하는 졸부 근성,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해진 탓일까.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실종된 막말과 갑질이 이처럼 만연해지고 있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어제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 같은 틈새를 노려 ‘따뜻한 말 한마디’ 이벤트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공손하게 주문하면 커피 값을 50%까지 깎아주고 반말이나 불친절한 말로 주문하면 할인혜택이 없다. 이 체인점은 지난해 10월 4일 1004 데이 때 한시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가 반응이 좋아 올해부터는 매월 첫째 수요일마다 이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케하느니라.” 성경 잠언 15장 1절 말씀이다.
전북 도세가 약화된 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측면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내 출신 정치인들이 제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정치는 독립변수로서 가장 상위 개념이다. 정치를 잘해야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존재감이 크면 국가예산도 많이 확보한다. 힘으로 국가예산을 나누는 세계라서 그렇다. 그렇지 않고 당내에서 물 당번도 제대로 못할 정도라면 영향력이 약해 아무 일도 못한다. 자기 자신의 입신양명만 구가할뿐 국가나 지방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미미하다.소석 이철승 선생이 국회부의장을 지낸 다음 김원기의원이 국회의장이 됐고 정동영의원이 대통령 후보까지 됐지만 전반적으로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떨어져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못줬다. 도민들 가운데는 전북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이 약하다고 힐난한다. 국회의원수가 줄어 세력이 약화됐지만 그 보다는 개인별 역량이 떨어져 큰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의 모태나 다름없는 전북이 차츰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현역들의 정치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는 고사하고 최고위원 조차도 출마하지 못한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요즘 국회의원들의 지역 방문이 잦다. 연초라서 그럴 수 있겠지만 20대 총선을 겨냥하고 앞서 표밭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철저히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정치력과 영향력이 센 의원은 활동 무대가 중앙정치권이어서 지역구 활동은 잘 못한다. 지역에 자주 내려 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하지만 영향력이 약한 의원은 존재감이 떨어져 지방의원이나 줄 세워가며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민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해서 국정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큰 정치는 못하고 만다. 도내는 7명이 초선이라서 한둘 빼고는 당과 국회에서 존재감이 희미하다.상당수 도민들은“3선인 김춘진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재선인 이춘석의원이 야당 측 예결위 간사를 맡은 것 외에는 눈에 띈 것이 없다”며 “전북정치권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극단적인 평도 서슴지 않는다. 재선 이상이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역만 파고 들일이 아니다. 중앙에서 큰 정치를 잘하면 다음 출마때 걱정이 없다. 재선인 유성엽의원이 문재인 의원 등 3인이 당대표로 출마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어필했기 때문에 지역과 본인의 정치생명을 위해서도 이번에 최고위원직에 강력하게 도전했어야 옳았다. 도당위원장 정도는 초선에게 맡기도록 하는 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상무이사 주필
새정치의 아이콘인 안철수 의원이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새정치연합 창당을 주도한 것이 지난해 초다. 당시 새정치추진위를 출범시킨 안 의원은 “낡은 틀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 이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설 수 밖에 없다.”며 그 첫걸음을 디디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라는 링컨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민통합의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창당 계획을 접고 그해 3월 1일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100년은 커녕 100일도 가지 못했다. 50 대 50의 수평적 통합을 강조하고 당명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했다. 외형은 그럴지언정 사실상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먹힌 꼴이었다.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 후보’들의 참패가 잘 말해준다. 정치공학적 통합은 진정성이 없고 결말도 좋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그런 경우다.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당명을 쓴 지 채 1년도 안돼 또 당명 개정 논란이 일고 있다.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선거에 나선 박지원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을 민주당으로, 문재인 의원은 새정치민주당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발음하기 어렵고 ‘새정련’ ‘새민련’ 등의 약칭도 별로인 모양이다. 개정 이유도 명확치 않고 사과도 없다.세력으로 사귄 사람은 세력이 기울면 끊어지고, 이익으로 사귄 사람은 이익이 다하면 흩어진다(以勢交者 勢傾則絶, 以利交者 利窮則散)는 세간의 법칙이 어긋나지 않는 걸까. 새정치의 효용성이나 안철수의 약효가 다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정통 야당이 어쩌다 문패만 바꿔 다는 신세로 전락했는 지 안타깝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200년,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정당역사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당 수명이 짧은 건 우리나라의 정치가 그만큼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개혁과제들에 대한 실천 없이 포장지만 그럴듯 바꿔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다 보니 당 이름만 바꾸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발가락이 가려운데 구두를 긁는 꼴이다. 내용물을 바꾸지 않고 간판만 바꿔 단다면 정치소비자들의 냉소가 쌓일 수밖에 없다. 국민 눈높이 정치를 한다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수석논설위원
사람은 하루에 1.8리터 정도의 물을 마셔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의 약 60-65%를 차지하는 수분은 체내 화학반응에 작용하고, 영양소와 노폐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체온 유지 등 물은 그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일정량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약 600㎖의 물이 오줌과 대변으로 배출되고, 피부와 호흡 등으로 증발되는 수분도 1000㎖에 달한다. 우리는 매일 이에 상당하는 수분을 계속 보충해 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에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고, 오줌 색깔이 투명하지 않다. 인체가 물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목 마를 때 커피나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커피와 녹차 등은 강력한 배뇨 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체내 수분을 억지로 배출시킨다. 평소 갈증을 느끼지 않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기 전후에 커피의 양과 비슷한 양의 물을 마셔야 인체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물은 우리 육체 건강에 필수적 요소이듯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널따란 호수, 수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평온을 느끼거나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낀다. 삶의 활력을 얻는다. 옛 선인들은 물을 주제로 지혜를 선물했다. 공자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물처럼 막힘이 없으니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밝고 산처럼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니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물은 고여 있기도 하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힌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을 찾아 구불 구불 돌아 흐른다. 제갈공명은 궁신접수(躬身接水) 자세로 세상을 대했다. 궁신접수란 몸을 낮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받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의 이상 중력 현상도 나온다. 각종 재앙의 원인 중 하나가 이상 중력이다. 중력이 무너져 모래 바람이 불고,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사람이 흐르는 물을 거스르고 몸을 치켜세울 때, 중력이 무너져 모래바람이 제멋대로 불 듯, 재앙이 초래되게 마련이다. 권력을 손에 쥔 자, 재물을 조금 더 가진 자, 지식을 조금 더 쌓은 자들이 낮은 곳을 지향하는 물처럼 살라고 인터스텔라는 말하고 있다.
2011년 일본 내각부가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일본의 매체와 지식인들은 그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결과는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20대 젊은이 중 70% 정도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답한 셈이다. 오랜 경기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불행한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이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는 결과는 의미심장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젊은이들이 느끼는 생활만족도와 행복지수가 더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내놓은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생활만족도는 이제 78.3%까지 올라섰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조사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데 NHK 방송문화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일본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95%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답한 것이다. 경기침체에 취업난과 부조리한 사회구조의 절망적 환경에서도 정작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자신 20대인 일본 사회학자가 집중 탐구해 내놓은 분석이 흥미롭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적인 일본사회에서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했다. 그가 내린 답은 이들의 ‘행복’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라며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젊은이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반드시 ‘행복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또 있다. 그는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아무리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그 행복을 지탱해주는 생활기반은 서서히 썩어 들기 시작했다’고 단언한다. 의미 있는 경고다.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긍정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물론 많은 논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들여다보니 일본이 처한 현실이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돈과 출세로만 내몰리는 경쟁사회의 ‘반작용’은 우리사회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궁금해진다. 이들은 지금 행복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
갑오년 끝자락이다. 지금 상황이 어렵게 돌아간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가 불의에 먹히지 않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면 가능하다. 그간 우리는 고소 고발을 많이 했다. 상대를 해치기 위한 음해성 투서도 많았다. 뒤에서 총질하는 일도 거리낌 없이 했다. 앞에서 떳떳하게 잘 잘못을 가리지 않고 음습한 어둠속에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패배감과 좌절감만 맛보았다. 지역감정 못지않게 이 문제는 그 해악이 크기 때문에 이를 뿌리 뽑지 않고는 지역이 건강해질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뒤에서 바짓가랑이나 잡으려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자기 앞에다 큰 감 놓으려다 못 놓으면 투서질이나 해댔으니 지역이 건강할 수 있었을까. 요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지역민심도 흉흉해졌다. 정권으로부터 소외와 선거 부작용 일수 있다. 선거를 많이 치르다 보니까 네편 내편으로 나눠져 안 좋은 일만 속출했다. 단체장들이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과 교육이 덜된 탓인지 잘 안 된다. 오히려 선거감정만 쌓여 간다. 각 지역별로 단합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분오열 돼 더 힘들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후 단체장들도 승자의 자만심에 빠져 자기편만 챙긴다. 선거 때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국물도 없다. 생각할수록 아찔하고 끔찍하다. 윗선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가다보니까 시군 조직이 사유화 돼간다. 역량 있는 공직자나 인재가 있어도 제쳐놓기 일쑤다. 아예 공직을 그만 둘 각오나 해야 바른말 하는 분위기다. 어느새 아첨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졌다.특히 지역에 뒷담화가 많아졌다. 왜 그럴까. 정상적으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부자 몸조심 하듯 권력자와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안 좋아도 좋은척하는 이중구조가 생겨났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칫 진실을 말 했다가는 말한 사람이 그 피해를 보는 구조라서 더 거짓이 판쳤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깊이 살펴야 할 것 같다. 정여립 사건과 동학농민혁명때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역모죄로 너무 많은 인재가 죽임을 당했고 동학농민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탓이 크다. 두 차례나 너무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다 보니까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이어졌다. 바른 말 했다가는 목숨 부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때로는 눈치를 살폈을 수도 있다. 도민들의 영혼에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동학후예로서 을미년에는 바른말 하는 전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전북의 장래가 있다. 상무이사 주필
어제의 시간이나 10년 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똑같다. 그런데 시일이 흐를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40대는 시속 40㎞의 속도로, 50대는 50㎞, 60대는 60㎞ 속도로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왜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생각은 단순 명료하다. 기억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이른바 ‘회상효과(Reminiscent Effect)’다.학창시절은 나이 들어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한다. 호기심 많고 가슴 설레이던 시절,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기 시작한 언제부턴가 시간은 미친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될 게 별로 없다. 정신 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게 없으니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올 한해도 미친 듯이 흘러갔다. 수능 대박에다 결혼·취업 걱정 다 날려버리고 승진·로또 당첨· 금연· 건강 다짐도 했을 법 하다. 전· 월세시대를 마감하고 반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겠다는 것도 서민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데 이룬 것도 없이 일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들 한탄한다. 청마의 해인 올해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교수신문은 올해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로 우긴다는 뜻이다. 시비곡직이 뒤죽박죽 된 걸 이르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나타내는 ‘참불인도(慘不忍睹)’도 수위에 꼽혔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을 겪었어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또 직장인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다사다망(多事多忙)’, 구직자들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사자성어로 뽑았다. 취업난 속에서 매우 힘들고, 괴로운 한 해를 보냈다는 뜻이겠다. 중소기업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생은 ‘고(苦)’다.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목표로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 이는 괴에테다. 과정을 즐겨야 한다.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기억할 일은 자꾸 만들면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것을 시도하며 살으시길 권한다. · 수석논설위원
몇 일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인 가석방을 해야 한다”고 언급해 시작된 기업인 사면 문제가 여야 정치집단간 엇갈린 반응으로 논란을 낳고 있다. 이를 처음 언급한 최 부총리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쪽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 사면, 가석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도 “기업인을 우대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안 된다. 일반 범죄인들은 일정 기간 복역하면 다 가석방해준다”며 찬성하고 나섰다. 재계 쪽도 수출 중심의 기간산업이 흔들리는 등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활성화에 일조하라는 취지에서 가석방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오너 중심의 한국 대기업 경영 체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썰렁한 반응도 나온다. 원혜영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확대 간부회의 자리에서 “정부 여당이 비리 기업인의 가석방 사면을 위한 군불때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더욱 엄격히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가석방돼도 투자결정을 할 수 없고, 굳이 가석방될 이유도 없다며 반대다.김무성 대표, 최경환 부총리 등의 기업인 사면 언급은 기업 총수 봐주기 차원의 군불때기 측면이 강하다. 과거로부터 기업인 사면은 매우 민감하고 비난받을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일단 말을 던져놓고 여론 추이를 지켜보자는 속셈이 엿보인다. 게다가 요즘 경제상황은 그 빌미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달러화 강세 속에서 미국경제는 살아나고 있지만, 일본이 엔저 정책을 계속하는 바람에 이래 저래 한국 경제는 어렵다. 저금리와 유가 하락이 지속되고, 중국 경제성장률 약화 등 세계 경제가 힘든 것도 기업인 가석방 논의에 긍정적 요인이다. 게다가 가석방 대상이 되는 최태원 SK 회장 등 몇 명은 2년 전후 복역, 가석방 요건을 갖췄다. 적어도 억지 주장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최근 ‘땅콩 회항’ 사건에서 보듯이 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 무소불위의 제왕적 일탈 행위 등 대기업 오너들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기업인 가석방, 사면’ 언급은 부적절하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은퇴 후 호스피스 활동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안득수 박사로부터 ‘데스 카페(Death Cafe)’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죽음을 체험하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며 죽음에 대한 활동을 독려하는 카페가 운영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각 나라마다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 지금은 18개 나라에서 800개 정도의 데스 카페가 운영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안 박사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터부시하는 문화적 편견속에서 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실체를 다룬 다큐 ‘데스’ 로 화제를 모은 EBS 제작팀이 최근 펴낸 책 ‘죽음’에도 영국의 데스 카페가 소개되어 있다. 데스 카페의 역사는 길지 않다. 데스 카페를 처음 만든 이는 존 언더우드라는 사람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를 만들었는데, 데스 카페 운영 가이드라인을 인터넷에 올리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오늘날 운영되고 있는 데스 카페는 일정하게 정해진 공간이 따로 없다. 죽음을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행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모아 운영하면 되는 것이어서 도심 속의 카페나 도서관, 공원, 축제의 한편 어디서든 열릴 수 있다. EBS 제작팀이 찾아간 영국의 데스 카페는 한 달에 한번 항상 같은 시간에 열리는 카페다. 예약으로 참가자를 받지만 정해진 좌석이 부족해서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이 카페 운영자는 “데스 카페를 다녀간 사람들은 죽음을 일반적인 주제처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다”며 “무엇보다 인생에 대하여 더 감사하고 현재를 살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데스 카페의 가장 큰 효과”라고 소개한다. ‘죽음’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야기하면서 이해해야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과 함께 확산되고 있는 데스 카페의 성장은 흥미롭다. 주목을 모으는 것이 또 있다. 영국의 ‘죽음 알림 주간’이다. 영국 정부가 지난 2009년부터 매년 5월에 운영하는 한 주간동안 영국 전역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를 공유한다. 세계 각국의 ‘죽음의 질’ 순위에서 영국이 1위 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모 방송에 출연한 션과 정혜영 부부의 기부 이야기가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별명이 ‘기부 천사’일정도로 매달 고정적으로 후원하는 금액만 2000~3000만원에 달한다. 홀트아동복지회에는 매년 1억원씩 6년째 기부를 통해 매년 100명의 어린이들에게 꿈장학금을 주고 있다. ‘오늘 더 사랑해’ 가족에세이 발간을 통해 얻은 인세 1억3000만원도 대학생 27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1주일에 2~3번 정도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1km마다 1만원씩, 1년에 1만km 뛰어 1억원을 후원하는 ‘1만원의 기적’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 션·정혜영 부부가 직접 기부한 금액만도 35억원이 넘었다. 여기에 푸르메재단과 함께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기금 마련에 나서 목표금액 430억원 중 현재 320억원을 모금했다. ‘1만원의 기적’이 정말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자가 물었다. “돈이 많아서 기부하는 건가요” 그들 부부는 “우리가 돈이 많아서 돈을 쌓아 두고 있어서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다보니 하루 1만원으로 시작한 기부금이 늘어났다고.연예계의 또 다른 기부 천사로 가수 김장훈이 있다. 독도 지킴이, 대한민국 홍보대사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아직도 5000만원짜리 월세방에 살면서 나라와 어려운 이웃, 청소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도 자그마치 200억원에 달한다. 1991년 가수 데뷔 후 8년 만에야 흥행 가수가 됐다. 그러자 교회 목사로 청소년 사역을 하는 그의 어머니가 “너도 이제 사랑을 받으니 베풀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권유에 사회복지시설을 찾았던 게 기부천사로서 첫 출발이 됐다는 것. 그는 자신이 고교 중퇴 등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만큼 빗나가는 청소년 선도에 열정을 쏟고 있다.우리 지역에도 자랑스런 기부 천사가 있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주 서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 지난 2000년 4월 주민센터 앞에 58만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14년간 성탄절 전후에 몰래 돈 상자를 놓고 간 금액이 3억 4699만원에 이른다. 얼굴 없는 천사는 도내 곳곳에서 줄을 잇고 있다. 장수 장계면에서는 폐품을 모아 10여년째 기부하는 익명의 독지가가 있다. 익산 성당면·어양동 남원 산동면·대강면 진안읍 부안 하서면 전주 인후1동·서서학동 등 올해도 곳곳에서 남몰래 쌀과 돈봉투를 놓고 갔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 사회에 기부 DNA와 천사 바이러스가 널리 확산되었으면 한다.
전주와 전북은 예로부터 맛과 멋의 고장으로 소개돼왔다. 지금도 이 같은 컨셉은 변하지 않았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한정식 추어탕 바지락죽 풍천장어 꽃게장 말고는 각 시군별로 특별히 내놓을만한 음식이 없다. 전주 군산 남원 고창 부안 등 일부 시군 빼고는 전반적으로 향토색 짙은 음식이 제대로 개발돼 있지 않다. 무주는 금강에서 잡은 동자 빠가 등 물고기로 어죽을 끓이지만 그 수요가 많지 않아 겨우 몇 집만 명맥을 유지한다. 구천동에서 산채정식을 팔지만 그 맛 때문에 일부러 구천동을 찾을 정도는 아니다. 진안이 예전에는 애저와 돼지고기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딱히 진안을 대표할만한 음식이 없다. 한우로 유명한 장수도 특색 있는 음식이 없어 관광객이 그냥 지나친다.남원은 광한루원 만인의총 지리산 등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겨우 추어탕 하나로 남원 음식의 명맥을 이어간다. 추어탕 재료인 미꾸라지도 거의가 중국산이어서 예전의 맛을 못 낸다. 배고팠던 시절의 어머니 손맛은 어림없다. 가을 벼 베기를 마친 후 도랑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던 그 맛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대다수 식당들이 천연조미료 대신 값싼 중국산 식재료에다 MSG를 넣어 맛을 내기 때문에 옛맛이 나질 않는다. 마치 패스트푸드 같은 맛만 난다. 순창도 강천사 입구에서 산채정식과 비빔밥 등을 팔지만 음식맛 때문에 특별히 이곳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강천사 산책길이 너무 좋아 찾을 뿐이다.김제는 총체보리를 먹인 한우로 유명하지만 그 수요가 제한적이고 심포에서 죽합 백합 등을 소재로 한 음식을 만들지만 타 지역과 대동소이하다. 부안은 바지락죽이 대표 음식으로 각광 받을 뿐 격포 횟집의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아 전주서도 대천등지로 빠진다. 풍광 좋은 변산반도를 드라이브 삼아 곰소에 이르면 그나마 맛깔스러운 젓갈냄새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고창은 풍천장어로 소문나 선운사 도솔암길 산책길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정읍 산외가 한때 소고기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주춤하고 군산에는 금강하구둑 주변에 꽃게장 백반 손님들로 붐빈다. 익산은 기억에 남을 음식이 별로지만 황등 비빔밥 정도가 그나마 낫다. 이에 반해 장항 할매온정집은 아구요리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논산 고향식당은 도가니탕으로 착한가게 명성을 얻었다. 진주 하연옥 냉면은 사계절 요리로 명성이 자자하고 목포인동초마을은 삼합과 홍어요리를 잘해 항상 식객들로 붐빈다. 이 정도 맛집이라야 소리 소문 듣고 천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제발 각 시군들이 맛집 개발에 신경 좀 썼으면 한다. 상무이사 주필
“우리 세대는 누구나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 이야기를 들었던 추억이 있지요. 할머니가 ‘어흥’하며 호랑이 소리를 흉내 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린 남매가 호랑이한테 쫓길 때에는 발을 동동 구르다 잠이 들곤 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었던 옛 이야기가 내가 받은 첫 교육이었어요.” 지난해 연말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전국대회’에서 문체부 장관상을 받은 어느 ‘이야기 할머니’의 수상 소감이다. 이야기 할머니는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여성 어르신들이 유아교육 기관을 방문해 옛 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봉사자들이다. 이야기 할머니는 ‘유치원 스타’로서 인기 짱이라고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이 각광 받고 있다. 올해에는 750명 선발에 4995명의 신청자가 몰려 6.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년도에는 2600여 명이 몰렸었다. 경북도 산하 재단법인인 한국국학진흥원이 2010년 안동을 중심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열풍이랄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개 친구가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서 지원하거나, 은퇴 후 소외감을 느끼던 할머니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가족들의 권유로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고정된 직업이 없는 만 56세에서 만 70세까지의 여성 어르신이다. 기본적 인성과 소양을 갖추고 관심과 열정을 가진 분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서류-면접심사를 거쳐 선발된 뒤 연간 70여 시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거주 지역 인근의 유아교육기관에서 활동하게 된다. 효과도 큰 모양이다. 컴퓨터게임과 TV 등 혼자 놀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힐링시키는 효과가 있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조(祖)-손(孫)간 소통함으로써 핵가족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 무릎교육이 부활하는 것 같아 반갑다. 할머니의 무릎교육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유아의 인성을 함양하고, 어르신에게는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처럼 호응도가 크고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면 우리지역 교육청이나 자치단체들도 시도해 볼만하다. 여성 어르신 일자리로도 제격이고, 동량으로 커 나갈 아이들에게도 풍부한 정서적 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갑오년 말띠해가 저물고 열흘 후면 을미년 양띠해다. 말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다. 양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내성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을 맞아 지나온 1년을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갑오년 말띠해가 저무는 길목인지라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가 눈길을 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다. 소와 말은 물에 빠져도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올 줄 안다. 실제로 저수지에 빠진 소와 말은 헤엄쳐 나오는데, 말이 소보다 훨씬 빠르게 헤엄쳐 나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말은 땅에서 뿐 아니라 물 속에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여 물살을 헤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급류가 형성된 강에 빠진 상황에서는 수영선수 말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크게 불어나면 소나 말도 강물에 휩쓸린다. 재주가 많은 사람도 휩쓸려 익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나 말은 익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되면 소는 살지만 말은 죽는다는 것이 우생마사 이야기다. 물속에서 헤엄을 잘 치는 말이 급류에서 익사하는 이유는 말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는 말은 물살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네 발을 마구 저으며 물살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이 문제다. 물을 거슬러 헤엄을 치는 것이다. 물살이 약한 상황이라면 문제없이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급류에 빠진 말은 약간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고 한다. 결국 탈진해 익사하고 만다. 하지만 소는 바보스럽게도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간다고 한다. 말처럼 급류를 벗어나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 가다 보면(폭포 등 위험구간이 없는 한) 조금씩 조금씩 강가에 접근되고, 얕은 곳에 닿게 됐을 때 빠져나온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이야기처럼, 느림보 소가 빠른 말을 이기는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자동차, KTX, 비행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빠름의 미학에 빠져 산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노후를 대비한 건강과 돈도 챙겨야 한다며 마음이 급하다. 겉으로 ‘슬로시티’를 말하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30년 이상을 늙은이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느림의 미학은 허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옹지마고, 우생마사다. 말처럼 빠르게 앞서간들 종착역은 같다. 3세녀를 고속승진시킨 대한항공 오너 집안이 요즘 행복한가.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자리. 모두발언에 나선 시진핑 주석이 한시 한수를 인용했다. 최치원선생이 지은 ‘범해(泛海)’란 한시였다. 중국 난징(南京)시 뤼슈이현의 당나라 시대 원형을 복원한 초대형 7층탑. 이곳에는 ‘최치원 방’이 있다. 그의 시문과 초상을 전시하고 동상과 초상화, ‘계원필경’ 등을 판매한다. 양주(揚州)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 지난 2007년 양주시가 중국 외교부의 비준을 받아 당나라성 유적지 안에 건립한 것이다. 외국인을 기리는 기념관으로는 첫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성이 있던 이 터는 수나라 양제의 행궁과 회남절도사의 관아가 있었다. 최치원은 880년부터 884년까지 회남절도사의 종사관(비서격)으로 일했다. 양주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다. 당나라 시대 고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는 한중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예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당나라시대에는 장안과 낙양에 이은 제 3의 도시이자 최대 국제무역항으로 꼽혔다. 최치원은 이곳에서 명망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명문으로 꼽히는 ‘토황소격문’을 비롯한 많은 문장과 한시를 남긴 그를 중국인들은 ‘당송 1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기념관까지 지어 추앙하는 일은 특별하다. 최치원을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인데다 동양의 대문호로 칭송 받을 만큼 빼어났던 문장가에 대한 경외심일 수도 있겠지만 들여다보니 이보다 더 명징한 배경이 보인다. 고운 최치원이 갖고 있는 한중문화교류사에서의 위상이다. 그는 한중문화교류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의 자리에서 한시를 인용하고 양주가 기념관을 건립해 그를 기억하게 하는 중심에는 한중문화교류사에 놓인 그의 족적이 있는 것이다. 최치원 초상화가 47년 만에 태인의 무성서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식이야 어쨌든 제자리를 찾았으니 반갑다. 국내에서도 기념관 건립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최치원 기념사업이 부상하고 있다. 전북도 최치원과 인연이 깊다. 태산군수 인연 뿐 아니라 신시도 일대의 설화도 흥미진진하다. 예외 없이 기념사업 추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내세운 전략적 목표가 숨어 있다.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때다.
연말 극장가에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이 화제다. 76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탄탄한 배급망을 통해 누적관객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 2009년 영화 ‘워낭소리’ 이후 독립영화로서 최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 ‘목숨’도 개봉 11일만에 3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말기 암환자들의 애틋한 가족 사랑을 통해 가족 해체시대에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반면 흥행과는 무관하지만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드러낸 다큐 영화 ‘쿼바디스’도 기독교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십계 벤허 등과 더불어 불후의 기독교 명화로 꼽히는 할리우드 영화 ‘쿼바디스’와 동명 영화이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가 열연한 영화 쿼바디스는 네로 황제의 무자비한 기독교 탄압을 피해 로마를 떠나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는 예수님을 만나자 묻는 물음이 “쿼바디스(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였다. 이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가니 내가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다”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를 당한다. 다큐 영화 ‘쿼바디스’는 양떼들은 뒷전인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비리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수천억을 들여 지은 초대형 교회와 내부 분쟁, 유명 목사들의 탈세와 배임 성범죄와 교회세습 등 언제부터인지 한국 교회내 팽배한 맘몬주의와 초대형 교회 목사들의 탐욕과 타락 성장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사례를 받으며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초대형 교회의 법적 조치 압박과 일부 기독교 단체의 영화 상영중단 요구로 쿼바디스는 상영관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을 비롯 전국 10여 곳에서 개봉됐다. 입소문을 타고 벌써 만명 가까이 영화관을 찾았다. 온라인상 반응도 뜨거워지면서 포털 영화 사이트에선 네티즌 평점, 관객 평점이 9점대를 넘어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교회는 점점 커졌고 예수는 점점 작아졌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아들 목사가 다음 주인이다. 모두 탐욕에 눈이 멀었고 이 땅에서 예수를 죽여버렸다” 고(故) 옥한음 목사의 질타가 한국교회에 뇌성처럼 울렸으면 한다.
언제부턴가 도민들이 왜소해졌다는 말이 들린다. 상당수가 경기 침체로 힘들지만 그 보다는 자신감을 잃은 게 더 문제인 것 같다. 지역에 돈도 없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졌다. 예전에는 도민들이 정권한테 불이익을 받으면 그냥 있질 않았다. 불처럼 일어나 도민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막히고 맺힌 것을 스스로 뚫고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장차관 하나 없는데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는 사람조차 없다. 왜 이렇게 전북이 쪼그라 졌을까.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내부의 적이 크다. 바로 패배주의와 자기비하적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지역이 소외된 탓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민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는 게 더 걱정스럽다. 차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도민들이 전북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어버린 걸 지적할 수 있다. 자긍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스스로에게 긍지를 갖는 마음을 뜻한다. 전북인이란 걸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그렇게 못해 애석하다. 과거에는 도민들한테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심지어 관에서 관변단체까지 만들어 나선 적이 있었지만 별반 성과는 못 올렸다. 지난 8년 전북은 정권으로부터 소외돼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경제가 어렵게 돌아가면서 도민들의 의식수준도 뒷걸음질 쳤다. 응집력도 떨어졌다. 보자기 찧는 일도 많았다.최근 국립대 총장을 역임하신 원로 한분이 너무 도민들이 자긍심을 잃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특강을 했지만 젊은 대학생들도 자긍심을 못 갖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고 전한다. 일례로 전북대는 예전의 전북대가 아니다. 학교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이 명문대를 다닌다는 자긍심을 못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마음가짐이 그래서 중요하다. 전북대가 SKY대학 못지 않은 대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 그게 긍지다. 자긍심을 갖는 사람은 항상 용기가 있다.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인한 도전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까지는 네 탓 공방만 일삼았지만 앞으로는 내 탓으로 돌리고 깨어 있는 도민이 되었으면 한다. 도민들도 정권에 대해 잘한 것은 잘했다고 박수쳐주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새해에는 도민들도 이남호 신임 총장이 취임한 전북대가 인접 충남 전남대 경북대 등을 크게 앞질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자긍심을 회복했으면 한다. 도민들이 자긍심을 되찾아야 전북의 미래가 열린다. 상무이사 주필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10배 부자에게는 욕을 하고, 100배 정도 부자라면 무서워하며, 1000배 부자한테는 그 사람 일을 해 주고, 만배 부자라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의 말이다. 기원전 100년쯤의 얘기인데 오늘날에 비춰보아도 사뭇 어울리는 표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富)는 만능 키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잘 나간다는 의사나 판·검사 등 ‘사’자 들어가는 사위나 며느리도 돈이면 해결된다. 부는 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다. 부는 특권과 힘, 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지도층이라는 명예까지 따라 붙게 만든다. 부와 명예,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조직 내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돈과 지위 앞에 무릎 꿇는다고 해서 이성까지 마비되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 지도층은 적지 않은 권리를 갖고 존경을 받는다. 사회 구성원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한다. 또 사회 지도층의 언행은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항상 주시의 대상이다. 공식적인 행위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모범이 돼야 한다. 윤리 도덕적인 하자도 없어야 한다. 모범적 삶의 자세를 요구 받고 있는 건 명문화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 지도층’의 행실이 도마에 올라 있다. 존경은 커녕 오히려 욕을 먹는다. ‘땅콩 회항 부사장’ ‘성추행 서울대 교수’ ‘벤츠 여검사’ ‘막말 판사’ ‘폭행 CEO’ 등 상식을 벗어난 사건의 주인공이 모두 사회 지도층이다. 오만 방자하고 이기적 사고에 함몰된 결과물이다. 고생 없이 손쉽게 부를 얻거나 돈으로 지위를 사는 등 사회 지도층으로 기능할 내적 인프라가 형성돼 있지 않은 탓이다. 일천한 사회자본은 서민만도 못하니 누가 누구를 우러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도 많다. 천민 자본, 부도덕성의 동의어 쯤으로 인식한다. 공동체 의식, 배려와 겸손, 법 준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겠다. 사회 지도층이 어쩌다 욕 먹는 대상이 됐는지 딱하다.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사회 지도층일수록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럴 때 존경받고 사회도 건강해진다. 수석논설위원
담배는 원산지가 남아메리카다. 1492년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 원주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하니, 담배는 아메리카의 선물이다.담배가 본격적으로 지구촌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1518년 스페인에 상륙하면서부터다. 담배에 약효가 있다고 믿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유럽인들도 니코틴에 쉽게 중독된 것이다. 유럽에서의 담배 재배는 한참 후의 일이었다. 1556년 프랑스, 1558년 포루투갈, 1559년 스페인, 1565년 영국 등으로 알려진다. 아시아에는 1571년 필리핀 상륙이 처음이고, 중국과 한국에는 1600년대 초에 일본 등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인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게 400년 정도 되는 셈이다. 선조들의 담배 사랑은 담뱃대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원에서 만들어진 백동연죽장 제작 기능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끽연가들이 내세우는 ‘식후불연초 노상객사’란 말은 그들 스스로 담배의 마약성에 심각하게 중독됐음을 알리는 고백이다.담배의 주성분은 니코틴이다. 니코틴은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해로운 성분이지만, 애연가들은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된다며 개의치 않는다. 차분하게 사색을 할 수 있고, 복잡한 일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대화 분위기를 이끌수 있고, 작가 등 예술인들은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담배만한 것이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사람도 많다. 빌딩 몇 십 층을 오르내리는 수고는 물론 모진 풍파가 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밖 끽연을 즐기는 모습에서 그들의 사정을 짐작할 수는 있다. 내년 담배 가격 인상이 확정됐다. 찬반 시비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율 하락과 서민 피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흡연율은 지난 10년 사이 떨어지는 추세다. 남성 흡연율의 경우 2003년 49.4%에서 담뱃값이 인상된 2005년에 43.9%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42.5%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인상 효과도 낙관한다. 흡연율이 2016년까지 35%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래도 OECD 평균 흡연율 29%에 접근하려면 갈길이 멀다. 하지만 애연가들은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만 큰 피해를 입는다며 불만이다. 어쨌든, 폐암 사망률 1위 사회에서 흡연은 공공의 적인 게 분명하다.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