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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유료화

경기전 관람료 유료화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단다. 전주시가 유료화 시행 한달 성적표로 발표한 결과다. 숱한 논란과 우려를 딛고 시행을 강행했던 전주시로서는 다행이다 싶었을 법하다. 전주시는 '빠른 정착'의 공을 국보로 승격된 태조어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돌리고 있다.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면, 유료화를 두고 제기됐던 논란 자체가 그야말로 기우였거나 의미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전주시는 그동안 무료로 운영됐던 경기전 관람객 수에 대한 정확한 분석자료조차 없다면서도 관람객들이 유료화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기준을 온전히 관객수 집계에만 의지한 결과다. 유료화에도 경기전 관람이 인기인 것은 전주한옥마을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조선왕조 발상지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생생히 느끼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란 뻔 한 해석까지 덧붙였다. 아전인수식 해석도 그렇지만, 불과 한 달동안의 관람객 숫자만으로 유료화 성공 가능성을 자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쯤 되면 관람객 인식조사도 없이 이런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용기는 또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해진다. 경기전은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놓칠 수없는 답사지다. 지난달에는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돼 그 의미는 더 커졌다. 그래서다.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태조어진' 구본 발굴의 과제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경기전의 태조 이성계 어진은 1409년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해 1410년에 전주부에 봉안한 것이다. 이 태조 어진은 이후 1763년 한차례 수리과정을 거쳤지만 1872년 그 소임을 다하고, 현재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이 새로 제작됐다. 여러 사료들은 이 어진 구본(舊本)이 경기전 안에 묻혀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연구자들은 '경기전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했다'는 「조선왕조실록」기록을 주목하고 있다. 조선시대 태조 어진은 왕의 존재 그 자체였다. 구본의 의미 또한 그만큼 각별하다.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이었던 2010년에는 어진 구본 발굴 작업 논의가 제법 진전되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발굴 자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탓이다. 역사유물은 발굴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를 존중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기전 유료화 목적이 역사를 존중하는데 있다면 이런 과제부터 푸는 일이 우선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7.06 23:02

농촌유학

정읍 칠보에 있는 수곡초등학교. 면 소재지도 아닌 산골짜기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촌학교다. 개교한지 50여년이 넘었지만 지난 2004년 전교생이 20명에 불과, 한때 폐교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 다니면 아토피가 낫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 학생들이 하나 둘씩 전학해와 8년 만에 학생수가 6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해 초등학생 103명, 유치원생 13명 등 모두 116명이 한 울타리에서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인근에 있는 칠보중학교도 지난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학년을 두 학급으로 증설 편성했다. 산골학교가 자연생태 환경을 활용한 전원학교로 탈바꿈하면서 학교가 살아나고 지역이 살아나는 기적을 일으켰다. 임실 신평에 있는 대리초등학교도 지난 2009년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데다 전교생이라야 모두 17명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농촌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사 3명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마을주민들이 내놓은 땅에 군비 2억원을 들여 농촌유학센터를 만들면서 20여명의 도시학생이 거꾸로 시골로 유학을 왔다. 아예 귀촌·귀농한 가정도 10가구나 된다. 현재 대리초등학교는 초등학생 72명과 유치원생 12명 등 모두 84명으로 늘어나 활기가 넘치고 있다.완주 삼우초등학교 익산 성당초등학교 진안 장승초등학교 장수 동화분교 등도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학교들도 부러워하는 농촌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우리나라 농촌유학의 첫 사례는 지난 2006년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을 통해 유명해진 임실 덕치초등학교의 '섬진강 참 좋은 학교 프로젝트'다. 2007년에는 완주 고산에 전국 최초로 농촌유학센터가 설립되면서 전라북도가 전국 농촌유학의 1번지로 부상했다. 현재 전국의 농촌유학센터 35곳중 도내에서만 9곳이 운영중이다. 지난해 전국의 농촌유학생 355명 가운데 30%에 가까운 100여명이 도내 학교를 선택했다. 이처럼 농촌유학이 인기를 끌자 전북도가 최근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 농촌유학지원센터를 열었다. 원스톱 상담전화를 개설하고 도시민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에 나서는 한편 7∼8월 전국 시도교육청 팸 투어와 10월에는 농촌유학 박람회도 열 계획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겨진 우리 농산어촌이 농촌유학을 통해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넘치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7.05 23:02

총장직선제

지난 70~80년대 초까지만해도 도내와 타 지역 우수학생들이 전북대를 많이 다녔다. 학비와 하숙비 부담으로 서울대와 연·고대 상위학과를 진학하지 않을 바에는 전북대를 갔다. 그 당시 고시 합격자 등을 많이 배출 전북대가 한수(漢水) 이남의 명문대학으로 통했다. 지금과 달리 취직도 잘 되었다. 경제 성장에 따른 고급 인력 수요가 는 탓도 있었지만 전북대 졸업생들이 취직하려고 실력을 드높인 결과였다.정부의 수도권 편향정책이 계속되면서 수도권 대학으로 쏠림현상이 가속화,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대로 유입되지 않고 빠져 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예전 같으면 경쟁 상대도 아니었던 서울 사립대 등이 대학 평가에서 전북대를 앞지르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는 비단 전북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서거석 현 총장이 총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학교 경쟁력이 강화돼 예전의 위상에 상당 부분 근접했다. 교수들의 연구경쟁력은 물론 취업율과 장학금 지급에서 앞서 갔다.하지만 최근 전북대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거의 강압적으로 총장직선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의 장·단점은 그간 20년간 경험을 통해 들어 났다. 대학행정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강화해온 면이 크다. 정치권을 뺨치는 혼탁, 편가르기와 논공행상의 보직인사가 대학 사회를 분열시켰다. 교직원의 표를 얻어 당선된 직선제 총장은 구성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므로 학내문제 개혁에 손댈 수 없었다.직선제를 도입했던 다수 사립대는 갖가지 폐해를 경험한 뒤 직선제를 폐지했다. 대부분의 국립대는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전체 38곳 중 32곳이 직선제를 폐지했다. 현재 남은 곳은 전북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목포대 등이다. 국립대 길들이기란 비난도 나오지만 대학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다. 구조개혁 중점 추진 대학으로 선정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돈줄 죄고 있는 정부를 전북대가 이겨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1~2점 차이로 구조개혁 대상에 들거나 빠질 수 있기 때문에 100만점 중 5점을 차지하는 직선제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YS정권 때 준칙주의에 따라 마구 대학을 설립해주고 불과 20년도 못 돼서 학령인구 미달로 구조 조정을 들먹인 정부가 병주고 약 주는 것 같아 야속할 뿐이다. /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7.04 23:02

처량한 58년 개띠 세대

58년 개띠 해/ 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 마을 어르신들/ 너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 살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공짜 술 얻어먹거나/ 돈 떼어먹은 일 한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 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서정홍 시인의 '58년 개띠'라는 시다. 1992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노동자 시인이다. 현장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거짓 없이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담아내고 있다. 58년 개띠인 그는 자신의 상황을 빗대, 한 눈 팔지 않고 땀 흘리며 살아온 근로자들의 정직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출세라고 읊고 있다. 58년 개띠는 베이머부머(1955년~63년생)의 중간쯤 된다. 시인은 58년 개띠를 상징어로 택했지만 베이비부머들이 모두 그러한 삶을 산 세대다.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어 왔고 경제동력을 창출한 세대들이다. 산아제한정책 전에 태어난 이들로 대략 713만명쯤 된다. 전체 인구의 15%에 이르고 취업자 532만명 중 급여근로자는 약 3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런데 한국 경제의 중추세력이었던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 공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종사자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맞고 있다. 방 뒷구석에 쳐박아 두는 직장도 있고 일감을 주지 않는 곳도 있다. 한창 때 단물 빼먹고 고임금 근로자가 되니까 방출하는 격이다. 임금 피크제를 적용하는 직장은 그나마 나은 경우다. 문제는 노후 대비가 부실하다는 데에 있다. 생활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등 사회문제화될 수도 있다. 대량 은퇴에 따른 세수 축소와 복지비용 증가, 숙련 노동력 퇴직으로 인한 기업경쟁력 약화 등의 역기능도 우려된다. 그냥 놔두었다간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일을 위해 살았지만 조기 퇴직당하고 막판 갈 곳도 없는 베이비부머들이 처량하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돈 떼먹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 치고는 세상이 너무 고약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7.03 23:02

내장산 깃대종 비단벌레

1973년 신라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큰 경주 황남대총 발굴 때 일이다. 고고학자들은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에서 영롱한 빛이 비치자 일손을 멈추었다. 실로 눈부셨다. 영롱한 빛은 다름아닌 비단벌레 날개였다.나중에 조사한 결과 이 장식품은 목심 2개를 접합한 뒤 백화수피(자작나무 또는 산벗나무 껍질) 2겹을 깔고 그 위에 세로 방향으로 비단벌레 날개를 촘촘히 깔아 붙인 것이었다. 그 위에 금동 맞새김판을 덮고 테두리를 감싸 못으로 고정시켰다. 이를 다시 복원해 보니 1000 마리 분의 비단벌레 날개가 필요했다.(KISTI의 과학향기)비단벌레 날개는 신라시대 왕릉급 무덤인 황남대총 뿐 아니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화살통, 발걸이, 허리띠 꾸미개 등의 유물에서도 발견됐다. 또 고구려 진파리 고분에서도 출토되었다.이처럼 왕실에서 비단벌레 장식을 좋아한 것은 황금빛의 금동판과 비단벌레 특유의 화려한 초록빛 광택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최상의 공예품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비단벌레는 '왕의 곤충'으로 불렸다. 더불어 비단벌레 장식을 옷 같은데 달고 다니면 증미(增媚·성욕을 증가시킴), 미약(媚藥)이라 하여 선호했다. 이같은 비단벌레는 한국과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 걸쳐 폭넓게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는 2008년 천연기념물 496호로 지정했다.현재 비단벌레는 변산반도 내소사 일대와 해남 두륜산과 완도, 전남 백양사, 국립공원 내장산과 고창 선운산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내장산의 깃대종으로 진노랑상사화와 함께 비단벌레를 지정했다. 깃대종은 특정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을 일컫는다.우리나라 국립공원은 19개 지역에서 식물 18종과 동물 19종 등 37종을 깃대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리산은 히어리와 반달가슴곰, 설악산은 눈잣나무와 산양, 다도해해상은 풍란과 상괭이, 덕유산은 구상나무와 금강모치, 변산반도는 변산바람꽃과 부안종개 등이다. 때 마침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와 (주)한국유용곤충연구소가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존, 멸종위기 곤충 서식지 보호와 개선 등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비단벌레와 같이 소중한 멸종 위기 곤충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7.02 23:02

역사도시 나라의 기념사업

710년 고대 일본인들은 나라(奈良)에 수도 헤이죠우코우(平城京)를 건설했다. 불교를 보호했던 국가는 이곳에 많은 사원을 세워 불교를 번성시켰다. 74년 후인 784년, 수도가 다시 교토로 옮겨졌지만 사원은 그대로 남았고 나라는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수많은 사찰과 신사가 도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나라는 지난 2010년, 천도 1300주년을 맞아'평성천도 1300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정작 그 해에 나라를 가보진 못했지만 준비가 한창이던 2007년 나라를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 나라현과 나라시, 그리고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던 기념사업 준비과정은 놀라웠다. 기념사업은 단순히 옛 역사를 반추하며 기리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지역주민들의 대대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기념사업은 과거를 복원하는데 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세계 속의 역사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통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관과 민이 의지를 모으고 나선 덕분에 활기가 넘쳤던 나라는 역사와 전통문화의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고 실현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도시의 모범이었다. 나라현이 대대적으로 준비했던 '평성천도 1300년 기념사업'은 나라를 역사와 문화를 통해 세계의 사람들이 모이는 교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념사업은 3개. 세계문화유산인 '헤이조궁'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 즐기며 교류하는 국제적인 이벤트 '역사문화의 제전', 역사와 문화를 통해 다채로운 교류 활동을 전개하는 중심공간으로 나라현을 조성하는 '역사문화의 국제교류지역 형성', 새로운 교류 무대로 '다시 소생하는 헤이조궁 복원'이다. '고대의 수도에서 인간과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면 세계의 미래가 보인다'는 슬로건 역시 천도 1300년 기념사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명쾌하게 담고 있었다. 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던 나라현의 관계자는 기념사업 취지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 다음 세대로 계승하는 새로운 문화와 교류를 창출하는 감동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1998년부터 천도 1300주년을 기획해 준비해온 나라는 기념사업을 2010년에만 집중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20~30년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짰다. 물론 2010년, 대대적인 역사문화제전이 펼쳐졌던 나라에 세계 여러 도시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따로 있다. 천도 1300년을 기념해 세운 20~30년 단위의 장기 플랜 추진이다. 일회성 단기성 이벤트와 행사 중심 사업들이 넘쳐나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6.29 23:02

워킹맘

몇 해 전 지상파 TV드라마 가운데 '워킹맘'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커리어 우먼으로서 화려한 모습으로만 비쳐졌던 워킹맘(workingmom·일하는 주부)이 직장과 가정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일상을 실제적으로 보여줘 일하는 여성들의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일 뿐만 아니라 가사와 출산 육아 등 매일 같이 워킹과 맘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워킹맘의 실상은 어떨까.지난 26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2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워킹맘 10명 중 3명은 직업과 건강 경제상황 등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족하는 비율은 24.1%에 불과했다.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는 워킹맘(55%)보다 전업맘(61.2%)의 만족도가 높았고 자녀와의 관계 또한 워킹맘(70.2%)보다 전업맘(72.1%)의 만족도가 높았다.워킹맘의 삶의 질은 전업맘보다 더 열악했다. 맞벌이 여성의 23.1%가 아침식사를 걸렀으며, 21.6%가 적정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전업맘에서는 이 비율이 각각 18.9%, 19.7%로 워킹맘보다 낮았다. 운동에서는 차이가 더 뚜렸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비율은 워킹맘이 26.4%로 전업맘 42.1%보다 15.7%포인트가 낮았다.지난해 연령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보면 25∼29세가 71.4%로 가장 높다가 30∼39세 구간에선 55.4%∼55.6%로 뚝 떨어졌다. 출산과 육아 부담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둔 워킹맘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세계 각국의 성 평등 순위를 매긴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135개국 가운데 107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경제분야에 있어선 117위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개발한 여성권한척도는 2009년 전 세계 93개국 가운데 68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나라의 여성경제활동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 인식과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가사와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가부장적 사고가 여전한데다 같은 여성임에도 어머니들의 딸과 며느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직장 일 모두 완벽하길 바라는 슈퍼맘신드롬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땅의 워킹맘들은 더욱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6.28 23:02

꿀먹은 초선의원

농심이 타들어 간다. 택시 전면 파업에 이어 전국 화물 연대가 운송료 인상과 유류비 인하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요즘 비가 오지 않으면서 부쩍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하소연들을 한다. 물가는 오르지만 돈벌이가 안좋기 때문이다. 어느때든지 돈 없는 서민들이 어렵게 살기는 매 한가지였다. 하지만 이 정권들어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들이다. 국민들이 이토록 고통 받고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일도 안하면서 꼬박 세비만 받아 챙겼다.국회의원 한테는 무노동 무임금이 안 통한다. 일도 안하면서 200여가지나 되는 특권만 누린다. 도내 초선의원 7명도 똑같다. 국회를 열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줄 알았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모기 소리도 못내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면 마치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이야기하던 그 사람들이 왜 목소리를 못내는가. 당 지도부 눈밖에 나면 미운털이 박혀 국회의원 해먹기가 힘들어서 그런가.초선들은 다선들과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도민들이 지난 4.11 총선서 세대교체를 통한 물갈이를 해줬으면 그 깊은 뜻을 헤아려 의정활동을 잘해야 했다. 당 지도부를 향해 국회를 열라고 하이킥을 날렸어야 했다. 그런 패기가 없으면 국회의원 배지를 떼야 한다. 초선들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뻔질나게 배포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면피용 밖에 안된다.지금 국회가 대선 볼모로 잡혀 있다. 여야가 대선 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상임위원장 배분서부터 샅바싸움만 벌인다. 민생문제는 뒤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말로는 서민들의 생계를 돕겠다고 하지만 그건 한낱 구두선으로 그쳤다. 도내 국회의원들은 국회도 열리지 않고 있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이런 때는 직접 농촌 들녘으로 찾아가 가뭄 피해 실태를 파악해서 정부로 하여금 대책을 마련토록 촉구해야 했다. 의원은 항상 지역구민 속에 있어야 한다.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가를 신속하게 파악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줘야 한다. 좋은 양복 입고 비싼차나 타고 다니면서 목에다 힘주고 맛 있는 음식이나 먹는 사람이 돼선 안된다. 국회의원 되기 전 그 절박했던 마음이 잠시도 변하면 안된다. 도내 초선들은 그간 여의도 길 찾기도 힘들 시간이었겠지만 그래도 할말은 하는 선량이었으면 한다. /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6.27 23:02

전북언론인클럽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언론단체가 관훈클럽이다. 중견 언론인들의 언론연구 및 친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 처럼 대선 정국에서는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고 후보들을 검증하는 등 현역 못지 않게 언론 본연의 기능도 충실히 한다. 한국의 언론발전을 이끄는 중견 언론인 단체지만 태동 당시엔 박권상 조세형 등 개혁적인 젊은 기자 6명이 뜻을 같이 한 소박한 모임이었다. 1955년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으로 연수를 갔던 이들이 선진화된 미국 언론에 충격을 받고, 한국의 언론발전을 위해 연구와 친목단체를 만들기로 결의한 것이 시발점이다. 귀국한 뒤 기자 몇몇이 추가로 참여하고 여러차례 모임을 가진 뒤 1957년 1월 11일 관훈클럽이 창립됐다. 창립회원은 김보성 김용구 김인호 노희엽 민병규 박권상 박중희 이경성 이광표 이규현 이시호 이정석 임방현 정인양 조세형 진철수 최병우 홍성원(가나다 순) 등 18명이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KBS 사장을 지낸 박권상,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국회의원·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월간 '현대' 편집장과 청와대 대변인·국회의원을 지낸 임방현은 전북출신이다. 관훈클럽은 관훈동에서 맨 처음 모임을 결성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원은 현재 900여명에 이른다.1957년 창간한 '회지(會誌)' 제1호 '권두언'은 관훈클럽 창립정신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세계의 사조는 숨가쁘게 흐르고 현실의 과업은 겹겹이 절박해 오는 이때 어찌 언론만이 수구(守舊)하여 주저앉아 있겠는가. 자성과 개신(改新)으로 취약과 편협과 횡포를 박차고 새 사조를 호흡하여 능히 세대의 앞장을 서야 한다." 55년 전의 일이건만 오늘날에도 딱 들어맞는 창립정신이다. 언론의 사명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국민의 '알권리(right to know)'에 충실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 그것이다. 지역언론 환경은 열악하고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감시견(watch dog)'이 아니라 '애완견'이란 비판도 있다. 전북엔 변변한 언론 모임 하나 없는 터에 때마침 '전북언론인클럽'이 내일(27일) 창립총회를 갖는다. 현직에 있는 '전·현직 편집 보도국장'이 그 대상이고 향후 외연도 더 넓혀질 것이다. 관훈클럽이 한국 언론발전을 이끈 것처럼 전북언론 발전에 새 디딤돌이 되길 기원한다. /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6.26 23:02

가뭄

"가뭄이 이토록 심하고 심해/ 산천초목 모두 다 말라버렸네./ 가뭄이 그 위세를 떨치는 곳은/ 모두 다 불붙여서 태우듯 하네./ 이 마음은 더위를 두려워하여/ 근심에 마음마저 불타는도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귀절이다. 시경의 편찬 연대가 3000년쯤 전이니, 그 때도 가뭄이 꽤 심했던 모양이다.가뭄은 심한 강수량 부족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인간과 가축 식물 등이 피해를 입는 기상재해 중 하나다. 한자로는 한발(旱魃)로, 농사철인 6-8월 사이에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하다.삼국사기나 증보문헌비고 등을 보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가뭄이 304회 발생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뭄으로 인한 흉년으로 너무 배가 고파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인상식(人相食) 수준이 23회, 대기근 82회, 기근 199회였다. 평균 6년마다 가뭄이 있었고, 20년에 한번 정도는 대기근이 나타났다.이같은 가뭄이 계속되면 조정이나 지방관청,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를 올렸다. 나라에서는 왕이 정사를 잘못해 내리는 천벌이라 하여 왕 스스로가 몸을 청결히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식음을 폐하고 거처를 초가로 옮기고 죄인을 석방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산 정상이나 냇가에 제단을 차리고, 이곳을 신역(神域)으로 정해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한번 가뭄이 들면 대책이 쉽지 않다. 구름 속에 드라이아이스 같은 응결핵을 뿌려 인공으로 비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다. 그렇다고 댐과 저수지, 지하수를 무한정 개발할 수도 없다. 경제적 부담 뿐 아니라 환경문제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가뭄 피해도 심각하다. 양파와 마늘 고추 감자 등 밭작물과 과수농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병충해마저 기승을 부린다.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곡창지대에도 가뭄이 지속되면서 곡물가격이 치솟고 있다. 북한은 더 심하다고 한다.우리 정부는 11년만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시키고,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가뭄관련 관계장관회의'를 가졌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시원한 비가 죽죽 내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랜 가뭄 끝에 큰 비 온다'는 속담이 있다. 곧 닥칠 장마에도 대비해야 하니 이래저래 걱정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6.25 23:02

창의도시 동력

전주가 지난달 유네스코 선정 '음식창의도시'가 됐다. '창의도시'는 유네스코가 지난 2004년부터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도시를 선정해 주는 이름이다. 지금까지 문학·음악·민속공예·디자인·영화·미디어·음식 등 7개 분야에 19개국 34개 도시가 지정되어 있다. 창의도시로 선정된다는 것은 '문화적 도시환경과 문화·예술·지식정보산업 분야에 인적 자원등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도시 안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상 전 세계 도시는 2만2천500여개. 이중 34개 도시만 창의도시란 이름을 얻었으니 자랑스러울만하다.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몬트리올, 나고야와 고베, 가나자와, 선전과 상해, 그라츠, 에든버러, 멜버른, 볼로냐, 글래스고, 시드니, 리옹 등 세계적 도시들이 문화적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도시로 명성을 더한 것 역시 '창의도시'의 이름을 일찌감치 얻었던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0년 서울(디자인)에 이어 이천(공예)과 전주까지 3개 도시가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창의도시는 문화·창의자산을 확보,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교류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다. 도시와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에서 '창의도시' 란 이름은 경쟁력 확보에 큰 자산인 셈이다. 그런데 창의도시가 되었다고해서 모든 동력을 거저 얻을 수는 없다. 전주의 자매결연도시인 일본의 가나자와는 우리보다 앞선 2009년에 공예로 '창의도시'가 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가나자와는 '창조도시'(Creative City)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창조도시'는 영국의 찰스 랜드리,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주창한 개념이다. 독자적인 예술문화의 육성과 자유로운 창조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21세기형 도시를 이른다. 가나자와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것, '독자적인 예술문화의 육성과 자유로운 창조활동' 에 있다. 가나자와 시민들은 예술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다. 시민 대부분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할 만큼 예술 활동 참여도 활발하다. 전통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책임감을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나자와 시의 정책이다. 전주 시민들 또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음식도시로서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그에 못지않다. 그런데 정작 '음식'으로 즐겁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야 할 시민들의 창조적 활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과제가 분명해졌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6.22 23:02

새만금 신항만

지난 14일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신항 기공식을 가졌다. 지난 1982년 4월 해운항만청이 고군산지역 신항만 입지조사에 나선지 30년 만에, 1995년 정부가 신항만 건설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한지 17년 만에 착공한 것이다. 새만금의 국제관문 역할을 할 신항만은 새만금 성공의 필수조건으로서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래서 1999년 정부가 새만금 신항만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새만금 환경논란과 내부개발 계획문제로 2001년 신항 개발사업이 전격 유보됐다. 2006년에는 제2차 전국 무역항 기본계획에서마저 새만금 신항만이 빠지면서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8년 광역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에 새만금 신항만이 선정되었고 2009년 간이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2010년 11월 새만금 신항만 기본계획이 수립·고시되면서 오늘에서야 항만공사가 착수됐다.반면 지난 1995년 정부가 함께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한 부산 신항(가덕도)과 포항영일만 신항, 울산 신항, 인천 북항, 목포 신항 등은 이미 완공되어 막대한 물류처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항만 배후단지와 연계 교통망 등이 구축되면서 2단계 항만개발이나 민자 투자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것과 비교하면 2030년 완공 목표인 새만금 신항은 가야할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물론 새만금 신항은 배후단지인 내부개발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앞선다. 방조제 공사처럼 내부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신항만 역시 겉돌기 십상이다. 2조3000억 들여 방조제 하나 막는데 18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신항 건설에 2조5000억원, 방수제와 내부 산업단지 개발에 22조원이 넘게 투자되어야하니 '2030년 완공'이라는게 뜬구름 잡는 느낌이다.올 12월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이 새만금을 앞다퉈 찾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장밋빛 약속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입을 믿는 도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991년 새만금 착공이후 4차례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의 판박이 공약이 그야말로 말 잔치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 립 서비스로는 도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구체적 실행계획과 차질없는 예산 투자만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새만금에 쏟아 온 200만 도민들의 땀과 눈물과 한(恨)을 생각하면 신항만 착공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20년간은 어떻게 투쟁해야할지…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6.21 23:02

MB의 전북 득표율 9%

새만금 사업의 성패는 수질 문제에 달려 있다. 정부는 새만금호로 유입되는 만경강과 동진강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까지 2조9502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2단계 수질 개선 사업 중 우선 2015년까지 65.5%에 해당한 1조7000여억원을 투입, 그 성과를 평가한뒤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새만금사업은 전북의 미래를 견인할 사업인 만큼 계획대로 추진되는 게 중요하다.이명박대통령은 대선 출정식을 새만금 공사 현장에서 할 정도로 처음에는 새만금 사업에 의지가 강했다. 농지 비율을 줄이고 산업용지를 70%로 바꿔 놓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 그 약속을 지켰지만 새만금개발청 설립 등은 이 정권서는 물건너간 느낌이다. MB는 대선 때 전북에서 9%를 얻었다. 마의 두자릿수 득표에 실패했다. 이 게 전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도민들은 이 정권들어 전북 출신 인재를 중용치 않고 국가예산을 제대로 배분해주지 않아 전북이 더 낙후됐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지난 4년동안 전북은 찬밥 신세였다. 호남은 있지만 전북은 없었다. 정동영후보의 고향이어도 MB측은 두자릿수를 기대했던 것 같다. 지역감정을 완화시켜 볼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러나 모든 구상이 수포로 돌아갔다.어찌보면 MB의 전북에 대한 생각이 선거날 밤에 깨끗하게 정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표가 안나와 전북에 대한 생각을 접은 것 같다. 지난 4년여를 뒤돌아 보면 그 같은 생각이 든다. 승자독식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은 모두가 다 그렇다. 표 많이 준 지역부터 우선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전북에서 두자릿수를 줬으면 MB는 임기내내 전북에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2010년 7월15일 도의회가 전국서 처음으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MB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민주당 4대강 저지특위가 출당까지 거론하며 압박했음에도 "당 방침만 쫓아가면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영산강 찬성 입장을 고수했다. 4대강 사업으로 추진했던 영산강은 약발이 나타나고 있다. 전남서는 박지사를 대선에 나가라고 박수치고 있다. 정부에서 도와 정치권에 섬진강 사업 의향을 묻자 반대했다. 정서가 같은 전남북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 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6.20 23:02

김 지사 편지와 새만금 신항만

김승수 정무부지사는 새만금신항만 기공식 이틀 전인 지난 12일, 김완주 지사의 편지 얘기를 꺼냈다. 새만금신항만 건설은 김 지사 편지 때문에 앞당겨졌다고 했다. 편지에서 신항만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 때문에 업무추진이 당겨져 기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지사의 '새만금 감사 편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민주당과 도민을 분노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2009년 7월23일 정부는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을 발표했다. 그해 2월 마련한 마스터플랜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이 계획안이 발표된 일주일 뒤 김완주 지사는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의 A4용지 3장 반 분량의 감사편지를 이명박 대통령한테 보냈다.마스터플랜이 마련됐으면 세부적인 실천계획은 자동적으로 정부가 마련한다. 감사해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걸 두고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 절 올립니다'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내용과 시기도 문제였다. 정부 발표에 대해 '기쁘고 눈물 납니다'라고 표현한 것이라든지, '감사합니다'를 일곱번씩이나 되풀이하는 굴욕적인 표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편지를 보낸 시점은 뙤약볕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의원직을 내던지며 미디어법 투쟁을 열나게 하던 시기다. 이런 판에 MB를 향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김 정무부지사가 신항만과 연결지으려 한 편지 내용은 이 부분이다. "새만금이 날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군산공항 확장과 신항만 건설이 그것입니다. 명품 새만금에 비행기가 날 수 없고 명품 새만금 바다에 배가 출항할 수 없다면 날개 없는 새만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셨듯이 새만금이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도록 훈풍을 불어 주십시오. 이미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의 훈풍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편지로 입은 상처를 수확으로 해석하려는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신항만 기공식이 앞당겨졌다고 해석한다면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없다. 뜬금 없이 김 지사 편지와 신항만을 연결지으려는 저의가 뭣인지, 편지 보낼 까닭이 없는 데도 편지를 보낸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6.19 23:02

무주 사람, 최북과 김환태

무주 구천동은 옛부터 산자수명한 오지(奧地)의 대명사였다. 그런 산천을 닮아서인지, 무주는 걸출한 문화예술인 2명을 배출했다. 하나는 300년 전에 태어난 직업화가 최북(1712-1786)이요, 또 하나는 100여년 전에 태어나 한국비평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김환태(1909-1944)다. 각각 그림과 문학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흔히 후기인상주의 작가 고흐와 비견되는 무주 사람(경주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최북은 그의 호 호생관(毫生館)이 말해주듯 붓 한자루로 조선과 중국 일본을 오가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짓눌린 조선 유교사회 탓에 그의 기행(奇行)은 작품보다 더 크게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어느 세도가 양반이 마음에도 없는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또 금강산을 여행하다 "천하의 명인이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구룡연 폭포에 뛰어 들었다는 얘기도 전한다.하지만 국립전주박물관이 마련한 탄생 300주년 특별전은 그의 작품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중인 출신이었으나 남종문인화풍으로 일가를 이뤘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영의정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 남공철이 자신의 문집에 최북의 전기 '최칠칠전'을 남길 정도였다. 칠칠(七七)은 최북이 자신의 이름 북(北)을 파자해 지은 별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180여 점 중 산수화, 화조영모화 등 57점을 선보였다. 표훈사, 사시8경첩, 계류도, 메추라기, 게 등이 눈에 띤다. 이번에 전시되지는 않았으나 1763년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한여름(松下觀瀑圖)'은 북한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한편 무주읍 출신으로 일본 규슈제대(九州帝大) 영문과를 나온 눌인(訥人) 김환태는 1930년대 우리 문단에 순수비평의 씨앗을 뿌렸다. 35년의 짧은 생애동안 김동인 김상용 정지용 등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다. 또한 도산 안창호와의 친분관계로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서울대 권영민 교수는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 탄압에 대응하면서 발표된 그의 평문에는 문학비평의 대상이 사회도, 정치도, 사상도 아닌 문학 그 자체라는 명제가 제시돼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무주군은 이들의 이름을 걸고 문학관과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들의 예술혼을 널리 알리는 계기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6.18 23:02

전주대사습놀이와 무형문화유산

전주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전승성과 현재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 발견이다. 전주대사습놀이와 관련한 기존 연구에서 대사습의 특성을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로 평가했던 예가 없지는 않으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특성을 부각시켜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본격적인 시도는 이제 시작 단계다. 지난 주말, 전주문화방송이 주관한 전주대사습놀이 학술세미나에서는 전북대 함한희교수가 발표한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전주대사습놀이 특성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무형문화유산은 지역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표현물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보유 집단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람들의 창조적 정신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은 형체로 남아 있는 유형문화유산에 비해 물질적인 토대가 없기 때문에 쉽게 눈에 뜨이지 않고 그 변화의 과정도 쉽게 인식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화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전통문화유산이 소멸되거나 단절된 이유도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사습은 그 연원이 300년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것을 고증해낼만한 자료나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승성이 강조되는 무형문화유산의 기준으로 보자면 가치를 평가 받는데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함교수는 그 전승성을 증명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전주대사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다는 이 놀이가 19세기부터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원래 그 유산의 정확한 시점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그것이 완성되어 나타나는 과정과 현재에 이르는 전승력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함교수의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 무형문화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전주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적 가치를 발견하고 성격을 규명하는데 에는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전승주체를 조직화해 그들로 하여금 창조적 활동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이제 시작된 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적 가치 조명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다. 단순히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대사습놀이의 전승과 과제를 모색하고 실현해나가는데도 중요한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6.15 23:02

고무줄 萬里長城

중국 북경에 들르면 꼭 찾는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가 팔달령이다. 사통팔달에서 유래된 팔달령은 만리장성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해발 1000m에 이르는 험산준령을 따라 견고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같은 장성이 중국 서쪽 자위관에서 동쪽 산하이관(山海關)까지 약 5000km 걸쳐 이어져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우리의 전통적인 거리 단위인 리는 400m이지만 중국의 리, 즉 화리(華里)는 500m로 그래서 만리장성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 만리장성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국가문물국 퉁밍캉 부국장이 "2007년부터 5년간 만리장성에 대한 정밀 조사와 측량 작업을 진행한 결과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8㎞에 이르며 총 4만3721곳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6000km를 조금 넘는다던 만리장성이 2009년 장성의 동쪽 끝을 기존의 허베이성 산하이관에서 압록강 하구의 후산(虎山)산성으로 수정하면서 총 길이가 8851.8㎞라고 했고, 이번에는 3년 만에 무려 3.5배나 부풀렸다. 문제는 중국 동북부 지방에 있는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발해의 장성들까지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왜곡이다. 이 같은 이면에는 중화주의의 영토적 확장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북한 청천강 유역까지 만리장성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중국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동북공정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니 중국의 또 다른 장성판(版) 동북공정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이 같은 역사왜곡은 '통일적 다민족국가관'이란 역사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동북공정뿐 아니라 서북 서남 등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역사 편입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만리장성의 확대를 통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이 발표한 '역대 장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의 개념하고는 다르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학계도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통일된 목소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부와 학계가 나서서 적극적인 대응전략 마련과 통일된 대응논리 개발이 시급하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6.14 23:02

새만금의 불편한 진실

언제부턴가 전북하면 새만금이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새만금사업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노대통령과 정치적 담판을 지어 착공했다. 착공 20년이 지나는 동안 새만금은 종교처럼 돼버렸다. 33㎞나 되는 세계서 가장 긴 방조제를 막았다고 모두가 기뻐했다. 지금까지 방조제 개통 이후 1500만명이 다녀갔다. 새만금은 글로벌 시대를 견인할 아이콘임엔 틀림없다.MB정권은 2020년으로 준공을 10년 앞당기고 당초 농지와 산업용지 비중을 3대7로 바꿨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북에 큰 혜택을 줬는데도 전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섭섭해 한다는 것. 농지를 산업용지로 대폭 변경해 땅값을 상승시켰기에 그 만큼 혜택이 주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피부로 느끼려면 해마다 1조원의 사업비를 쏟아 부어야 가능하다.새만금은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주객이 바뀐 모습이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추진해야할 사업인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지 못해 하는척 시늉만 내 전북도만 애 태웠다. 이 정권서도 똑같다. MB가 처음에는 대선 출정식을 새만금에서 갖는 등 나름대로 의지를 보였지만 개발에 따른 로드맵 정도만 밝히고 새만금개발청 설립과 특별회계 설치 그리고 매립용지 분양가 인하 등은 다음 정부로 넘길 것 같다.그간 집권 세력들이 새만금을 너무 오래 갖고 놀았다. 선거때 표만 많이 주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DJ정권 때는 광주·전남 출신들이 훼방꾼이었다. 선거때마다 도민들이 조삼모사 (朝三暮四)처럼 돼버렸다. 지금도 유력 대선주자가 전북을 방문하면 김완주 지사는 어김없이 새만금사업에 도 입장을 설명한다. 당장 그자리에선 뭔가를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지만 돌아서면 함흥차사다. 새만금사업 때문에 도민들이 속앓이를 많이 했다. 아무리 정치판이 속고 속이는 판이라해도 국책사업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다룰 순 없다. 역대 지사들도 그 장단에 맞춰 춤추기는 매 한가지였다. 선거 때만 닥치면 새만금은 득표수단으로 바뀐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전북도가 지금껏 정치인들에게 전북 이미지를 새만금 하나로만 각인시킨 게 잘못이다. 새만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처럼 정치인들에게 애걸복걸했기 때문이다. 전북의 이미지를 다양화 하는 게 중요하다. / 백성일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6.13 23:02

김 교육감의 청렴관

"…공사, 납품, 승진과 전보, 프로젝트 발주 등의 교육비리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들을 입수해 놓고 있습니다. 교육감으로서 단돈 백 원의 뇌물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와 교육행정을 맡은 관료들에게 뇌물 건네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전북을 교육 청정지역으로 바꿔놓는 교육감이 되겠다."며 2010년 7월1일 취임식 때 밝힌 청렴선언이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청렴한가. 세간의 평가는 '상당히 맑아졌다'는 게 지배적이다. 다른 건 물라도 김 교육감의 청렴성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교육감 본인만 깨끗했지 밑에서는 해 먹을 것 다 해먹는다'는 비아냥이 그것이다. 얼마전 감사원이 밝힌 감사결과는 아직도 불법 비리가 여전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도교육청과 14개 지역교육청, 일선 학교에 대한 감사(2008년~올해)에서 146명이 금품·향응·횡령 등을 저질러 적발됐다. 파면·정직 또는 수사 의뢰되고 이에 연루된 2493개 업체는 입찰참가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교육 수장이 청렴을 제일 가치로 내걸었지만 현장에서는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엔 촌지 사건도 있었다. 그러자 김 교육감이 또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불법 비리 공직자는 단 1%의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 비리 등의 부패는 고도의 은밀성을 띤다.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들은 은밀히 준비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의 속사정을 아는 구성원이 아니고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사와 계약, 입찰방식 등이 그런 것들이다. 먹이사슬이 활발하게 작동되는 분야다. 일이 벌어지면 단도리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매번 으름짱 놓기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보다는 제도적으로 보다 엄격한 보완책을 강구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 중의 하나가 내부고발제다. 공정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이걸 활성화시키면 허튼 수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에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고발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숙제다. 청렴선언을 반복하기 보다는 보다 파격적인 내부고발제를 도입해 청렴의지를 제도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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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6.12 23:02

목산 이기경 탄생 300주년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누구를 꼽을까. 선뜻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학문이 뛰어났다는 이유만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그 학문이 후손이나 제자들에 의해 잘 계승·발전된 덕이 더 크다. 나아가 그들의 학문이 제자들에 의해 현실정치에 적용되면서 빛을 발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호남(전북)의 유학은 인물의 빈곤이나 학문의 깊이를 탓하기 전에 계승·발전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물론 1589년 일어난 정여립 역모사건(?)이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인재 자체가 고갈된 측면도 없지 않다.어쨌든 이러한 토양에서도 학문과 선비정신의 싹을 보인 인물들이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목산 이기경(李基敬·1713-1787)이 아닐까 싶다. 전주 오목대(梧木臺) 아래 산다하여 아호를 목산(木山)이라 붙인 그는 오늘날 각광받고 있는 한옥마을 선비정신의 원조격이다. 영조때 주로 활동한 목산은 전주 출신으로 몇 안되는 고위 관료이자 학자였다. 최근 전북대 민중생활사연구소에서 펴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김명엽 씀)'에 따르면 목산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목산은 27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벼슬길에 올랐다. 하지만 별탈없이 관직생활을 한 기간은 20년에 지나지 않았다. 군수, 현감과 함께 사도세자를 가르친 서연관, 북경에 다녀온 서장관, 승지, 황해감사, 대사간 등을 지냈다. 사직하고 고향에 머문 것이 15년, 유배기간이 4회에 걸쳐 13년이었다. 그는 스승 이재의 가르침에 따라 난진이퇴(難進離退·벼슬길에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남을 쉽게 함)를 거듭했다. 그를 아끼던 영조가 좋은 자리에 중비(中批·오늘날의 특채)하려 할 때마다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벼슬을 받지 않았다. 또 영조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펴낸 '유곤록'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당쟁이 심하던 당시 탕평책이 진정한 인재를 발탁하기 보다 노론과 소론인사들을 적당히 안배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죄지론(罪地論)을 이유로 호남의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내년이면 목산 탄생 300주년이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선비정신을 올곧게 실천한 목산의 학문과 생애가 지역에서부터 재정립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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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2.06.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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