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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여수세계박람회(EXPO)가 내일(12일) 개막한다. 지난 1997년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니 준비해온지 15년만이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는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수정궁(Crystal Palace) 만국산업박람회'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최대 공업국가로 성장했다. 자연히 각 국가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덕분에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되고 문화가 양산되었다. 엑스포는 영국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탄생됐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엑스포 개최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행사의 질적저하와 참여국과 개최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제박람회기구(BIE)다. 1928년 파리에서 설립된 'BIE'는 박람회의 개최지를 결정하고 개최 및 참가에 따른 각종 기준을 설정해 박람회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기념비적 건축물과 기술력을 통해 각 국가마다의 국력을 과시하는 성격으로 시작된 엑스포는 그동안 새로운 발명과 성과를 통해 세계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전화기(1876년 뉴욕박람회) 상용자동차(1885년 앤트워프박람회) 비행기구(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텔레비전(1939년 뉴욕박람회)도 모두 엑스포를 계기로 출시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엑스포는 단순히 과학 기술 발전의 기폭제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엑스포는 평화로운 발전과 화합·공존이라는 개념을 전파하고 다양한 문명·문화를 교류하는 세계 화합의 장이다. 특히 매스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에는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세계인의 주목을 환기시키는, 대중외교의 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돋보인다. BIE가 공인하는 세계박람회는 두 가지. 광범위한 주제를 갖고 전시면적에 제한 없이 참가국이 자비로 국가관을 짓는 '등록박람회(Register ed Exhibitions)'와 특화한 주제로 전시면적이 25만㎡ 이하인 곳에서 전시기간이 3개월 이하로 제한되는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 ions)'다. 여수엑스포는 '인정박람회'다. 8월 12일까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 ving Ocean and Coast)'을 주제로 열리는 여수엑스포에는 105개국이 참가한다.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는 당초 800만 명으로 예상했던 관람객을 1000만여 명으로 높여 잡았다. 생산유발 12조2000억 원에 일자리 7만8800개 창출의 부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바란다.
전북 도민들의 염원을 모아 추진했던 프로야구 10구단이 또 다시 무산됐다. 그제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선 "10개 구단으로 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맞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심층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기약 없이 뒤로 미뤘다. 그러면서 KBO 이사회는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사안을 실행위원회로 다시 떠넘겼다. 서로 핑퐁 치듯 10구단 창단 안건이 이사회와 실행위를 오락가락 하면서 시간만 축내고 있다.이 같은 KBO 행태에 속 터지는 것은 10구단 유치에 나선 전북과 수원이다. 가타부타 결론을 내려야 자치단체도 행정력을 허비하지 않을텐데 엉거주춤한 상태로 KBO 처분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실망감에 빠진 시민들의 추진 열기도 시들고 연고 기업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창단 의지가 있을 때 추진해야지 자꾸 늦춰지다 보면 기업의 상황과 여건이 바뀔 수 있고 그럴 경우 기업이 발을 뺄 가능성도 높다.사실 10구단 문제가 겉돌고 있는 것은 기존 구단의 탐욕 때문이다. 커지는 프로야구 시장의 파이를 9구단에 이어 10구단에 까지 나눠주기는 싫다는 심산이다. 그래서 제9구단 NC 다이노스 창단 때도 일부 구단이 반대했었고 이번 10구단 문제도 형식적인 논의만 하고 결정은 뒤로 미룬 연유이다. 하지만 당초 NC 다이노스의 내년 1군 진입을 반대했던 구단들은 "기형적인 홀수구단 체제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홀수구단 체제로 그냥 가겠다는 입장이다. 논리도 명분도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각 구단의 야구감독들도 홀수구단 체제에 껄그러운 입장이다. 홀수 팀으로 리그를 운영하면 8팀이 4경기를 하고 나머지 한 팀은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기나 팀 운영에 파행이 예상되고 흥행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 야구인들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10구단 체제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미국은 내셔널과 아메리칸 양대 리그에 30개팀이, 일본은 센트럴과 퍼시픽 리그에 12개팀, 쿠바와 멕시코는 16개팀, 캐나다는 10개 팀이 활약하고 있다. 우리 프로야구 관중이 지난 2007년 410만명에서 올해 800만명을 목표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국민들 여망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그간 변화를 갈망했던 도민들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져 국회의원 7명이 물갈이 됐다. 국회의원을 새로 당선시키는 것 보다 낙선시키는 게 더 어렵다. 그 만큼 기득권을 털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권한이 예전만은 못해도 그래도 선망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천권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산중에서 짐승들끼리 회의할 때 호랑이 같은 존재나 다름 없다.이번에 국회의원을 대거 신진들로 바꾼 것은 지방권력을 물갈이 하자는 신호탄이었다. 국회의원 자신이 몇선하는 동안 해 놓은 일이 별로여서 팽 당했겠지만 그 이면에는 옆에 붙어 호가호위 하는 사람 때문에 벼락 맞을 수 있었다. 원래 국회의원 자리는 지역 일을 잘해도 선거때가 닥치면 유권자들이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면서 흔들어대는 자리다.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지금까지 민주당 일당 독식 구조가 20여년간 지속돼 와 각 지역구별로 선거때마다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잘 먹고 산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질과는 상관없이 지역구 국회의원과 관계여부에 따라 지역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표 깎아 먹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면전복배하는 그들을 내팽개치질 못하고 함께 간 게 화근일 수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고사가 나온다. 호랑이를 뒤에 세우니 모든 동물들이 여우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호랑이 힘을 믿고 마냥 설쳐대는 여우가 나타날 수 있다. 선거 때 도왔던 지방의원부터 시작해서 측근들이 발호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도 모두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 같다. 호랑이가 사라졌을 때 늑대 등이 과연 자그마한 여우에게 절을 하겠는가.선거 때 알게 모르게 힘써 준 사람들이 있다. 거의 가족이나 친인척들 빼고는 조건없이 그냥 도움 준 사람은 없다. 당선되고 나면 뭔가를 바란다. 당선자들이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 대형비리의 시작이 자신의 심복이었던 운전사들이 사진 찍어 내놓은 증거 때문에 속속 드러난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당선자들은 여우들 한테 책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어릴 적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서면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거나, 세대차이가 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20대가 되면 "기성세대는 갔다"며 반발심이 발동하고, 30대 때는 "하긴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라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다. 40대에 들어서 비로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의견을 한번 들어봅시다"며 아버지의 존재감을 인정한다. 50대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라고 말한다. 자식 키우고 느낀 동병상련 탓이리라. 그리고 60대에 이르면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하며 아쉬워한다. 세대별 아버지의 인상이 그럴듯 하다. 아버지가 하루에 하는 일을 자식들이 거울처럼 들여다 본다면 어찌 될까.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자식이 없을 것이다. 결재판을 들고 다니며 직장 상사한테 연신 굽신거리고 때로는 혼쭐이 나는 모습, 부하 직원을 어르고 달래느라 곤욕을 치르고 경우에 따라선 치받치기도 하는 광경, 승진하기 위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근무평정을 잘 받기 위해 아첨도 떨면서 술자리에선 딸랑딸랑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헛웃음 짓는 일 등이 비일비재할 터이다. 모두 가족을 지탱하기 위한 '인내와 헌신'이다. 이런 행동거지를 자식들이 훔쳐본다면 경외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오늘날 아버지들은 끝 없는 일과 피로,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러니 집에서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무심한 아버지가 돼 있다. 밖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특히 50대는 부모를 모실 줄 아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서글픈 '낀세대'다.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자녀 교육비에 자녀 부양까지 힘겨운 생활을 하는 세대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3중고에 시달리는 낀세대 아버지들도 흠뻑 격려받는 날이었으면 좋겠다.'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라는 걸 자식들은 알까 모를까. /이경재 논설위원
요즘 전주를 찾는 사람들은 무조건 한옥마을부터 들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는 덕진공원이었다. 덕진공원에는 넓은 호수가 있어 경관이 빼어났고 연인들끼리 보트도 탈 수 있었다. 또 인근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도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전북대와 체련공원, 건지산 편백나무숲, 조경단, 소리문화의 전당, 혼불문학공원 등에 둘러싸여 오히려 왜소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덕진공원의 핵심은 단연 덕진연못이다. 4만5000평의 공원부지 중 2/3인 3만 평이 연못이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현수교와 함께 여름 내내 호수 절반을 차지하는 연잎과 그 위에 하얗게 핀 연꽃은 장관이다.옛부터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 하여, 전주 8경 중 하나였다. 풍월정에 앉아 저녁 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소리 실은 어화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다보는 던진연못의 풍경을 이름이다. 단오에는 연꽃을 보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이같은 덕진연못은 언제쯤 생겼을까. 명쾌한 기록이 없긴 하나 몇가지 유래가 내려온다. 하나는 1100년 전인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면서 도성방위를 위해 늪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려 때 이미 자연호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 초기에 전주 용왕제가 덕진연못에서 행해진 기록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만은 틀림없다.하지만 오늘날의 덕진연못은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깊다. 전주부성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북서쪽이 공허하여 지기(地氣)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이 지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지산과 가련산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이서구가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덕진공원은 일제때 호남갑부였던 박기순이 이 일대에 사설공원을 설치할 목적으로 1917년에 30년간 임대를 했다. 1927년 취향정을 짓는 등 여러 시설을 했고 1929년 전주시에 기부채납했다.그런데 이 덕진연못의 수질이 최악이라고 한다. 수질측정 결과 '등급 외'라는 것이다. 음악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보라가 피부에 닿으면 질병이 우려되고, 심한 물비린내로 공원 이미지가 훼손될 지경이라고 한다. 서울의 석촌호수나 일산호수처럼 오염처리시설을 하루 빨리 갖춰, 사랑받는 공원으로 거듭 났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1971년, 일본에서 육조시대의 옛 문헌기록이 발견됐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관세음이 경험한 신비한 사례들을 모은 문헌이었다. 그런데 이 문헌에 백제 관련 기록이 담겨 있었다.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라는 곳에 천도해 새로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는데 제석사에 벼락이 떨어져 석탑이 무너졌다. 초석부분은 남아 사리함를 열어보니 그 안 유리병에 있던 사리가 없어졌다. 무왕은 발정이라는 스님에게 일러 참회법회를 보게 했는데 이후 다시 보니 사리가 다시 놓여있었다. 이에 감격한 무왕은 사찰을 건립해 그곳에 사리함을 모셨다"는 내용이었다. 역사학계는 이 내용에 주목했다. 지난 65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 수리때 발견된 푸른 유리병을 담고 있는 사리함과 '금강반야경 ' 등과 비교해 그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와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유적은 불과 1.3Km의 거리. 왕궁터의 비밀을 밝혀내는 단서가 된 이 기록은 백제 말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 해줄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학계는 '무광왕'을 '무왕'(재위 600-641), '지모밀지'를 전북 익산시 금마의 옛 지명인 '지마마지'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익산의 금마와 왕궁면 일대 역사유적지구에는 백제 왕궁 터와 삼국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쌍릉, 그리고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최대의 석불이 있는 석불사 까지 많은 백제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의 구조만으로도 왕궁터의 역사적 배경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음을 증명해줄 '익산 천도설'은 여전히 미완이고 수수께끼다. '관세음응험기' 말고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백제역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등재를 지원하는 추진단이 출범한다. 전북도, 익산시와 충남도, 공주시, 부여군이 함께 기금을 출연해 설립하는 이 추진단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지원뿐 아니라 등재 이후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업무까지 맡게 된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본 등재가 목표다. 그런데 등재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왕궁터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천도의 진실은 아직 명료하지 않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거나 설화로 남는다. 왕궁터는 기록도 있고 유물도 있다. 역사적 실체를 드러내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부안출신 조선중기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이 첫사랑 유희경을 그리며 쓴 유명한 한글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다. 부안현 아전의 서녀로 태어난 매창은 시와 거문고에 능통했지만 출생의 한계 때문에 기생으로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작(詩作)은 400여년을 뛰어 넘은 우리에게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이란 말처럼 이매창은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시인 신석정 선생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에 견주어 이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를 '부안삼절'이라 칭했다.당시 한시와 시조 가무 등에 다재다능한 매창의 소문은 전국에 알려졌고 같은 천민 출신으로 시재(詩材)에 출중한 유희경이 매창을 찾으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동병상련이랄까. 스무 살 꽃다운 매창과 스물여덟이나 더 많은 유희경은 첫 눈에 반해 시(詩)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면천을 받아 양반으로 신분상승과 함께 관직에 나가 종2품 가의대부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런 유희경에 대한 소식을 접한 매창은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짐을 느끼면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시로 승화시켰다. 15년의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유희경은 열흘간의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매창과 10년동안 교류했던 문재(文才) 허균도 매창이 죽자 2편의 시를 지어 그녀를 추도했다. 매창의 작품은 500여편이 넘는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시조 1수와 부안현 아전들이 구전되는 것을 모아 1668년 개암사에서 간행한 '매창집'에 수록된 한시 58수에 불과하다. 부안군과 부안문화원은 지난 2001년 매창의 묘지 주변을 정비해서 매창공원을 조성하고 매년 매창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오늘부터 6일까지 부안 매창공원과 스포츠파크 일대에서 매창시비 제막식과 추모제 백일장 사생대회 등으로 꾸며진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에 보관중인 매창집 원본을 사진으로 처음 공개한다. 이번 주말엔 꽃비 속에서 400여년전 매창의 시심에 빠져보면 어떨까.
왜 김완주지사가 전주 완주 통합에 나섰을까. 3년전만해도 무관심했던 김지사가 적극 나선 배경은 명분도 좋고 잘만 추진하면 큰 일 한번 할 수 있다는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 두번이나 전주시장을 역임했던 그로서는 통합의 필요성을 잘 알고 LH 유치 실패 이후 반대 여론을 잠재울 만한 아이템이 없던 터라 이를 붙잡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김지사의 통합 중재에 반신반의했다. 최규성의원은 물론 군 관내 기득권 세력들이 일관되게 반대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의지를 피력한 것은 우선 당장 LH 무산에 따른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고 레임덕 방지 등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H 유치 실패 이후 도가 중앙에 요구한 5가지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자 국면돌파용으로 통합쪽에다 승부수를 걸었다.때마침 총선 결과가 좋게 나온 게 행운이었다. 그에게 정치적으로 부담돼온 정동영과 정세균이 서울로 떠난 이후 힘의 공백을 신예들로 대거 채워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선인 최규성과 이번 선거에서 혼쭐났던 김춘진도 조직면에서 김지사를 당해내기가 버거워 김지사 3선 진출이 한결 쉬워졌다. 다만 무소속 유성엽의 도전이 어떤 형태로 다시 이뤄질지와 LH책임론에 따른 퇴진운동을 어떻게 비켜 가느냐만 남았다. 최규성의 입지가 김지사의 선점효과로 좁혀진 것도 관심사다. 3선이어서 도지사에 출마하거나 상임위원장 자리나 대선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갈 수 있지만 항상 '형 문제'가 족쇄처럼 따라 붙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도당위원장인 김춘진도 30%대의 낮은 득표율로 도지사 선거전에 나설 동력을 잃었다.김지사의 통큰 결단 요구에 부담 가졌던 송하진 시장은 완주군에 큰 선물을 안겨줘 유약한 이미지는 벗었다. 김지사가 3선 출마를 포기하지 않는 한 송시장은 자력으로 지사선거에 나서기가 껄끄러워 오히려 통합시장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할 것이다. 지사 관사에서 통합키로 해놓고 오락가락했던 임군수는 정치적으로 송시장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가장 큰 이득을 챙겼다. 통합시장이냐 아니면 국회로 나갈 것이냐가 그의 예상 진로다. 하지만 송시장에 비해 전주 국회의원 3인방과 인간적 끈이 약해 부담이 커 보인다. 아무튼 통합 3인방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결말날지 예측 불허다. /백성일주필
요즘 유행하고 있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의 원조는 일본이다. 1981년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일본에서 펼쳐졌다. 이 운동을 로컬푸드의 시작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당시에는 식생활 개선 차원이었지만 최근에는 농촌지원 활성화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다. '지산지소'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농림수산성 산하 농림수산정책연구소의 시노하라 다카시 소장이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반경 50㎞ 이내 지역농산물을 일컫는다. 유통단계를 생략해 직접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는 신선하고 믿을 만한 농산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먹을거리는 농업이 세계화되면서 글로벌푸드화된 지 오래다. 글로벌푸드는 다량의 방부제가 첨가되고, 식탁에 오르기까지 온갖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원낭비와 공해유발도 심각하다. 더욱이 지역 고유의 전통음식과 식문화의 소멸을 알게 모르게 부채질한다. 이런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도 결국엔 로컬푸드다. 국내 로컬푸드운동의 원조는 완주군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당시 자원순환운동을 벌이던 박 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 일행이 일본을 방문, 20∼30평 규모의 소규모 매장에서 생산자-소비자 직거래가 이뤄지고 호응도 컸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쯔노예끼'('길의 역'=街の驛)라고 부르는 직매장이다. '꾸러미 밥상'과 고산에 설립된 영농조합법인 '로컬푸드 건강한 밥상'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작년 매출이 18억, 올해 목표는 50억원이다. 로컬푸드운동을 벤치마킹하러 전국에서 연간 200여팀 5000여명이 완주군을 찾고 있다. 이런 환경에 힙입어 국내 첫 로컬푸드 직매장이 지난달 27일 완주 용진농협에 개장됐다. 지역내 100여명의 농민이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매일 아침 포장해 공급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1일 유통' 원칙을 지킨다. 협동조합인 농협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등한히 해 왔다. 완주군의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늦게나마 눈을 떠 다행이다. 농협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모델케이스다. 직매장을 개설할 곳이 도시 주변에 너무 많다./이경재 논설위원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중략, (산은) 백두산으로 부터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8로(路)가 된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1712-1781)이 편찬한 '산수고(山水考)'의 첫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국토의 뼈대와 핏줄을 이루고 있는 산과 강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지리서로 꼽힌다. 흔히 백두대간 등의 명칭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정리해 널리 알려진 '산경표'의 모태라 할 수 있다.이 책의 저자 신경준은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출신으로 지리는 물론 어문학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대학자다. 그의 집안이 순창에 정착하게 된 것은 조선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은 공조참판을 지낸 신장으로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가 셋째요, 다섯째가 말주(末舟)다. 당시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자 말주는 벼슬을 버리고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귀래정을 짓고 시문을 벗삼아 지냈다.그의 부인 순창 설씨(薛氏)는 자질이 총명하고 문장력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순창 강천산에 사찰을 짓는데 직접 권선문(勸善文)을 쓰고 아름다운 경치 속에 세워질 절의 그림까지 그려 서화첩을 만들었다. 이 서화첩을 돌려 시주를 권한 것이다. 보물 728호로 지정된 서화첩은 양쪽 표면과 내용이 16폭으로 되어 있다. 신경준은 말주의 10대 직계 후손으로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승지 북청부사 순천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다방면에 걸친 저작물에서 빛을 발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문자론을 전개한 '운해훈민정음'(세칭 훈민정음운해)을 비롯해 '문헌비고'의 '여지고(輿地考)'를 썼고 '동국여지도'를 감수했다. 또한 일본증운(日本證韻) 거제책(車制策) 병선책(兵船策) 등 숱한 저작을 남겼다.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보다 50년 먼저 태어나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동안 저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마침 전북대와 순창군이 10월 5일 신경준 탄생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사학 문학 어학 과학 지리학 등 5개 분야로 나눠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조상진 논설위원
전주국제영화제가 어제 개막했다. 2000년에 첫 막을 열었으니 벌써 열 세 번째다.'대안과 독립, 소통'이란 다소 낯선 주제를 내세우고 출발했던 전주영화제는 이제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전주영화제의 성장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전주는 한국영화의 고향이다. 1950-60년대, 서울 충무로와 함께 지방으로는 유일하게 전주에서 영화가 제작됐다.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아골'과 '아리랑'이 만들어졌고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와 '애정산맥''성벽을 뚫고''애수의 남행열차''붉은 깃발을 들어라' 등 당대의 흥행작 여러 편이 이곳에서 제작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주의 영화역사는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했다. 잊혔던 영화사를 되살리고 기록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은 사람이 영화인 탁광선생(1923-1999, 본명 탁형연)이다. 전북영화사의 산증인이었던 선생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50-60년대 화려했던 전주영화의 부활을 갈망했다. 들여다보면 전주국제영화제가 만들어진 바탕에도 선생의 지치지 않는 열망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직후 경찰에 투신했던 선생은 전주경찰서 후생극장인 백도극장 지배인을 맡으면서 영화기획, 제작, 극장경영은 물론 무대사회자와 심지어 변사로까지 활동했다. 1953년에는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영화제작에도 나섰다. 당시 전북에서의 영화제작 여건은 척박했지만 전북의 영화인들은 열정으로 뭉쳐 16㎜ 극영화를 만들어냈고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여럿이었다. '선화공주'며 '피아골' 등 수편의 영화 제작 현장 중심에는 언제나 선생이 있었다. 영화 말고도 이 지역 문화예술 안팎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영원한 영화인'이 앞세워졌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선생은 부산과 부천에서 국제영화제가 만들어져 영화문화가 새롭게 꽃피우고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늘 전주가 다시 한 번 한국영화의 꿈을 키우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전주영화제가 개최된다고 했을 때는 "큰 꿈이 이제야 이루어졌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선생은 전주영화제를 바로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던 선생은 말년, 기억을 더듬어 전북의 영화사를 구술과 기록으로 남겼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빛바랜 사진과 가장자리 다 닳아진 포스터도 함께 놓였다.
최근 잇따라 터지는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를 보면서 정권 말기가 어찌 그렇게 판에 박은 듯 똑같을까 하는 착잡한 생각이 앞선다. 마치 TV 사극의 재방송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장면은 과거 정권에 비해 등장인물이 매우 광범위하고 자주 등장한다.지난 2008년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자리를 받아주겠다며 30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것은 친인척 비리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제일저축은행 로비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홍씨와 동서 황태섭씨가 구속되었고 손위 동서인 신기옥씨는 최근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되는 '가짜 편지'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MB정권에서 '만사형통'으로 통하던 친형 이상득 의원 역시 저축은행 구명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을 그림자처럼 보좌해 온 박배수 보좌관은 지난해 말 제일저축은행과 SLS그룹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19대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여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내곡동 사저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의 고발로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이 엊그제 조사를 받은데 이어 아들 시형씨가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측근비리는 지난해 초부터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이른바 함바집 비리사건으로 배건기 청와대 감찰팀장과 최영 강원랜드사장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등 대통령 측근들이 옷을 벗은데 이어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과 BBK 대책반장을 맡았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된 것은 서막 수준이다. MB정권 최고 실세로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연루사실이 드러나면서 '본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나온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지난해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발언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파이시티는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근간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다.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이 언제나 나올지 아쉬움이 커진다.
도민들의 선택 폭이 제한돼 있다. 지금도 DJ나 노무현 그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411 총선서 무소속과 통합진보당에 2석을 내줬지만 그래도 다수가 민주통합당을 선택했다. 익산서 이춘석 의원만 78%로 과거처럼 높은 득표를 했을 뿐 나머지 8명의 민주당 당선자들은 정당지지도 65.57%를 밑돌았다. 표심이 변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내팽개친 건 아니었다. 전주 완산을서 예측불허의 싸움을 벌였지만 MB심판론이 먹혀들면서 '미워도 다시한번이' 승리했다.이번 총선은 12월 대선을 가늠할 수 있어 그 의미가 컸다. 예상과 달리 여대야소가 만들어졌지만 수도권서 새누리당이 패배해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친노가 민주당을 장악해 부산의 문재인 당선자와 김두관경남지사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너무 좌클릭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온 정동영의원은 강남을서 고배를 마셔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모르지만 지지도가 낮아 예전 같은 정치력은 행사하기 힘들 것 같다.여야를 통틀어 신사로 알려진 정세균의원은 종로서 새누리당 홍사덕의원을 꺾어 정치적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친노진영과도 가깝고 당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가 이끄는 국민시대를 중심으로 대권행보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문제는 전북 출신이라는 한계다. 경선과정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세를 키워 나갈 수 있지만 지금까지 지지도가 너무 낮아 자칫 킹 메이커로 그칠 우려도 있다.연말 대선은 새누리당 대 민주당 1대1 구도로 갈 공산이 짙다. 이 대로 가면 51대 49로 결말 날 수도 있다. 아마 전북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 때처럼 MB심판론을 내세우며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질 것이다. 정운천 후보가 애써 얻은 36%도 상당히 희석될 우려가 높다. 대선서 세대간 투표가 이뤄지겠지만 지역주의가 되살아 날 가능성이 높다.아무튼 도민 대다수가 대선 때도 총선 때처럼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전망이어서 대선 후보가 누가 되느냐가 관심거리다. 鄭丁 둘 중 하나가 되길 바라겠지만 그 가능성이 약하면 젊은층과 호남서 폭넓게 지지를 받는 안철수 서울대교수를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북인의 고민은 그래서 생긴다. /백성일주필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고 매화가 피는가 했더니 목련이 피었다.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 해서 목련이다. 목련은 봄의 전령사다. 목련이 자태를 뽐내자 진달래가 수줍은 모습을 드러냈다.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봄철이다. 지난주엔 벚꽃이 만개했다. 꽃구경을 나갔다. 전주천을 끼고 삼례로 이어지는 둑방길 벚꽃, 전주천변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완주 화심에서 두부 한 모 먹고 소양 벚꽃축제에 갈려던 계획이 초입부터 찻길이 막혀 둑방길을 택했다. 그냥 놔두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터인데 축제란 걸 갖다 붙여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꼴이 꼭 후진국이다. 내친 김에 전주∼금산사 길로 향했다. 벚꽃 색깔이 선명하고 곱기로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개화시기가 조금 일렀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엊그제 비바람에 벚꽃이 다 날리고 말았다. 벚꽃이 만개해 폼 잡을 즈음이면 꼭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매년 그런다. 이젠 듬성듬성 막 피기 시작한 산 벚꽃이 유혹하고 있다. 꽃구경엔 가장 한국적인 가수 장사익의 '꽃구경'도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아들이 꽃구경을 가자며 어머니를 업고 산엘 간다. 어머니는 처음에 좋아라 하고 업혀 갔지만, 점점 길어지는 발걸음에 꽃구경이 아니라 '고려장'이라는 걸 알게 되고 솔잎을 뿌린다. 아들이 되돌아 가는 길 헤맬까 걱정하며 솔잎을 뿌리는 장면을 연상하면 애절하다. 이걸 장사익의 목소리로 읊조리니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꽃은 저절로 피는 게 아니다. 인고의 기간을 견뎌낸 뒤 꽃망울을 터뜨린다. 실은 나무의 순이나 눈은 이미 가을에 생겨져 있다. 가을에 이파리를 들어보면 새로 생긴 순들을 볼 수 있다. 나무는 봄을 위해 여름이나 가을부터 자신을 준비하고 겨울에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담금질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은 나무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자신을 담금질하듯 내일을 위해 미리 생명력을 준비하고 세찬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한 뒤 비로소 화려한 인생의 봄을 맞이한다. 화려한 봄날 꽃구경 한번 가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많다. 막걸리 몇잔 걸치고 지난날을 곱씹으며 흥얼거려 보자.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가 제격이다. 한낮은 벌써 여름이다./이경재 논설위원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실례되는 말이 있다. "소리가 참 곱다, 예쁘다"라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판소리의 발성법이 서양음악과 다르기 때문이다.서양음악은 머리를 울려 깨끗한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반면 판소리는 목을 파열시켜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을 좋은 소리로 친다.흔히 목이 약간 쉰듯하고 탁한 허스키 보이스를 수리성이라 한다. 이것이 판소리의 이상적인 '소리 목'이다. 이와 대립되는 천구성(또는 청구성)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맑고 깨끗한 목을 말한다. 수련하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천구성은 무겁고 박진감 넘치는 판소리 대목을 소화하는데 다소 무리가 따른다. 나무로 치면 천구성은 버드나무나 오동나무처럼 반듯하게 자란 경우다. 이에 비해 수리성은 구부러지고 휘어진 소나무와 같다. 톱과 대패질로 잘 다듬기만 하면 나무결과 무늬가 아름답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톱과 대패질이 득음의 과정이다. 이러한 득음의 과정을 거쳐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 그런데 수리성이 지나쳐 이른바 '떡목'이면 곤란하다. 떡목은 듣기에 몹시 빡빡하고 탁한 소리다. 갑갑하고 변화가 없어 소리 목으로는 최악이다. 고음부의 음역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힘들다.이 치명적인 목을 극복하고 5명창 반열에 오른 분이 익산시 망성면 출신 정정렬(1876~1938)이다. 7살 무렵에 정창업의 문하에 들어갔던 정정렬은 14세에 스승이 세상을 뜨자 이날치를 찾았다. 하지만 이날치 또한 16세에 죽고 말았다. 스승 복이 없음을 한탄한 정정렬은 입산수도해 홀로 수련을 쌓는 독공(篤工)에 들어갔다. 맨 먼저 들어간 곳이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 기슭에 있는 심곡사였다. 이곳에서 수년간 공부하다 충남 홍성의 무량사, 이어 공주 갑사로 옮겨 40세까지 내공을 쌓았다. 그야말로 25년 동안 소리에만 미쳐 지냈다.이러한 내공이 사망하기 전 서울생활 10년 동안 불꽃처럼 피어났다. 판소리 대회를 휩쓸었고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어 판소리 중흥에 앞장섰다. 특히 창극운동을 주도해 '현대 창극의 아버지'로 불린다. 김연수 김소희 박녹주 김여란 이기권 박동진 등이 그의 제자다.때 마침 그가 첫번째 독공에 들어갔던 심곡사에서 정정렬 명창의 득음 기념 공연장 개관을 기념해 제1회 떡목음악회가 열렸다. 비가 오는 가운데 열렸는데, 명창의 음악혼이 오랫동안 기려졌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이 물러났다. 2010년 8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1년 7개월만이다. 슈미트 대통령은 지난 2일, 의회에 출석해 사의를 밝혔다. 그는 "대통령은 국가 통합을 대표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며"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분열의 중심에 '논문표절 논란'이 있다. 슈미트 대통령은 1992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이 다른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모교인 젬멜와이스 대학교는 슈미트 논문의 상당 부분이 다른 논문을 표절했다고 판단, 박사 학위 박탈을 결정했다. 곧바로 사임요구가 불거졌지만 슈미트는 "표절 문제와 (대통령직) 사임에는 관련성이 없다"며 사임을 거부했었다. 지난해 독일에서도 논문표절로 사임한 정치인이 있다. 미래의 총리감으로 촉망받던 칼-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다. 논문 표절 의혹은 한 교수가 그 논문의 서평을 쓰기 위해 검색하다가 인용도 없이 그대로 '따다 붙인' 많은 부분을 발견하면서 불거졌다. 논문은 서문마저 몇 단락을 통째로 끌어다 썼다는 의혹까지 더해졌지만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라거나 "항상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버텼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나섰다. 그의 이름을 따 '구텐플라크 위키'(GuttenPlag Wiki)를 개설하고 논문 검증을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표절로 드러나면서 인터넷에서는 사임 촉구 서명이 이어졌다. 독일 의회는 구텐베르크가 의회 규칙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고, 바이로이트대학도 박사학위를 취소했다. 사임 회견에서 그는 "내 힘의 한계에 도달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 표절논문은 2007년도 최우수 논문으로 평가 받았었다. 새누리당 후보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문대성 동아대 태권도학과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이 뜨겁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IOC 위원인 그의 논문 표절 의혹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한다. 18일에는 표절의혹과 관련해 자진탈당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던 그가 탈당하지 않겠다는 회견을 했다.'왜 탈당하지 않느냐'는 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고 되물었단다. 표절(剽竊)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니 '도둑질'에 다름 아니다. 하지 않은 '도둑질'을 뒤집어썼으면 참으로 억울할 일일텐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부르대는 것을 보니 도둑질을 하기는 했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다음 회견의 내용이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내일은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다. 이 때 내리는 봄비가 온갖 곡식을 이롭게 한다 해서 붙여진 24절기중 봄의 마지막 절기다. 요즘은 영농기술 발달로 벼 못자리 시기를 조절하지만 예전엔 곡우 무렵 내린 빗물로 못자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단비다. 나라에선 이 무렵에 볍씨를 내어주며 못자리를 권장하고 파종을 위해서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볍씨를 담글 땐 금기사항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방아를 찧어서는 안된다는 것. 방아를 찧으면 쌀 눈 깨지는 소리에 볍씨가 놀라 싹을 틔우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또 부정을 탄다 해서 부부관계를 삼가는 풍속이 있으며 상가(喪家)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봤을 땐 집 앞에 불을 피우고 그 불에 악귀를 태우는 의식을 거친 후 볍씨를 담갔다고 한다.조선시대에는 곡우 무렵 국왕이 농사의 신인 신농씨(神農氏)·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드리는 선농대제를 올렸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에서 왕이 이들 농사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한해 풍년을 기원한 뒤 친히 쟁기질을 하며 농사의 소중함을 알렸던 의식이다. 그 때 밭을 갈던 소를 잡아 고기와 뼈 내장 등을 넣고 푹 삶아 먹던 음식이 오늘날 설렁탕의 원조라는 것이다. 선농대제는 1910년 경술국치 후 중단되었다가 1979년 제기동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부활되었으며 1992년부터 동대문구청과 농수산식품부 주관으로 선농문화축제로 열리고 있다.올해 곡우에는 비소식이 없는 대신 주말과 휴일 도내를 비롯 전국에 비 예보가 있다. 기상청이 지난 2009년 4월 곡우에 내린 비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평균 37mm 강우량으로 인해 46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 미세먼지 제거 등 대기질 개선효과와 가뭄 극복, 수자원 확보, 농업용수 공급, 산불 발생 억제 등으로 수천억원대 이익을 얻은 셈이다. 비와 바람과 같은 기상현상도 자원으로서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요즘 주말 휴일마다 내리는 비로 인해 나들이 계획에 차질을 빚으면서 불평 불만을 가질수 도 있지만 봄비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감사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배 고팠던 시절에는 우선 끼니 때우는 게 급했지만 지금은 맛이 우선이다. 맛 있는 집이 있으면 불원천리를 마다 않고 한 걸음에 내달려간다. 소문난 맛집은 입소문으로 퍼지게 돼 있다. 어딜 가면 무슨 맛집이 있다고 자랑 한다. 도내도 맛집이 수두룩하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올해가 전북 방문의 해라서 외지 관광객이 도내를 많이 찾고 있지만 걱정이 앞선다.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온 전주 음식맛이 서서히 그 주도권을 광주로 빼앗기고 있다. 음식축제도 광주 전남이 앞서고 있다. 음식은 경제력과 밀접하다. 80년대만해도 전주 음식점들이 잘 됐다. 가격도 어느 정도 맞아 음식점해서 돈 번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일정 규모의 고급소비층이 사라지면서 전주 음식 맛이 떨어졌다. 수요가 있어야 음식맛이 꾸준히 이어지는 법이다.심지어 한정식 반찬가지수가 30여 가지가 넘지만 막상 숟가락 갈곳이 없다고 말한다. 업주들은 업주들대로 불만이 다. 가격은 올릴 수 없고 인건비 등은 올라 제대로 상을 차릴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손님들이 팍팍 먹어 주는 것도 아니어서 어렵다는 것이다. 전주 사람들은 먹던 가락이 있어 입맛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손님 숫자대로 음식도 안시키면서 자꾸 서비스만 요구해 남는 것도 별로라는 것이다.비빔밥이나 콩나물 국밥 맛도 제각각이어서 외지에서 귀한 손님이 올때 고민 된다는 사람이 있다. 뚝배기다 끓여주거나 남부시장식처럼 국물에다 밥 말아 주는 두 종류의 콩나물 국밥이 있지만 딱히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 옛날처럼 시원하면서 담백한 그 맛을 못내는 것 같다. 식재료 탓인지 입맛이 변한 탓인지는 몰라도 전주 음식 맛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음식점 차려 성공할 확률이 5% 미만인데 전주 사람들은 개업하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한다. 음식은 과학이요 문화다. 갈수록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 잡기 위해선 화학조미료에 의존하지 않고 전통의 맛을 살려내는 수 밖에 없다.예전 같으면 전주 남부시장에 가면 우리 것의 주부식재료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다. 음식재료가 중국산으로 넘쳐나 제맛 내기가 힘든 것 같다. /백성일 주필
"부산에서의 선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14대 선거 당시 대세가 아닌데 제가 부산에 출마하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모두 안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는 거창한 문구를 선거구호로 내걸었습니다."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 나오는 이야기다(153쪽).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운동원과 지지자를 독려한 배경을 표현하고 있다. 정치인에게 당선이란 곧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부분 소신을 굽히거나 소신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이것이 정치 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점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은 소신을 지켜왔다"며 '선거, 왜 부산인가'를 소신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신은 지역주의 극복이었다.이번 4·11 총선에서도 지역주의 문제는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내리 3선을 한 지역구(경기 군포)를 버리고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 수성 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이나 민주당 텃밭인 광주 서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도 소신이 돋보인 경우다. 김 의원은 40.4%, 이 의원은 39.7%를 얻었지만 모두 낙선했다. 철옹성 같던 곳에서 득표율이 이 정도로 나온 건 의미 있는 변화다. 김 의원은 "지역주의를 깨려는 민심을 확인했다."고 말했고 이 의원은 "제가 얻은 2만8000명의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꾼 것이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북도 예외는 아니다. 새누리당의 정운천 후보는 낙선했지만 35.7%를 득표했다. 도지사 선거때 지지율 18.2%의 두배다. 그는 "3만명이 넘는 분들이 지지해 주셨다. 그 마음 소중히 가꾸고 키워 지역의 벽을 허물겠다."고 했다. 무소속 후보의 득표력도 놀랍다. 이명노 후보(무·진·장·임실) 43.9%, 김종규 후보(부안·고창) 33.7%였다. 각각 당선자와 5.4%, 5.6%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이남기 후보(김제·완주)도 36.8%였다.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시대는 물러가는가. 지역주의 벽은 허물어져야 한다. 정치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거니와 지역주민들에 대한 정치서비스 극대화 차원에서도 그렇다. 벌써부터 4년뒤 20대 총선이 기다려진다./이경재 논설위원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귀농(歸農)·귀촌(歸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귀농한 가구수가 1만503 가구로 전년 4067 가구보다 158%가 급증했다. 2001년 880 가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이러한 트렌드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비슷하다. 일본은 680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이비부머(1947~49년생)의 은퇴 시기가 도래하면서 2000년 이후 해마다 6만 명이 귀농했다. 또 미국은 1990~2010 동안 비도시지역 인구가 323만 명이 증가했으며, 영국 역시 지난 10년 간 80만 명의 농촌인구가 늘어났다.이러한 추세에 힘 입어 우리나라는 2007년을 기점으로 이촌향도(離村向都)에서 이도향촌(離都向村)으로 전환했다. 50년 만에 농촌 순유입인구가 유출인구를 앞지른 것이다. 지난해 귀농한 가구주의 연령은 40~60대가 전체의 77.9%를 차지했다. 지역적으로는 강원도가 20.6%로 가장 많고 전남 경남 경북 전북의 순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번듯한 직장을 때려 치우고 귀농한 경우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농사 짓는 것은 아니다. 37.7%인 3962 가구는 농사를 짓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는 귀촌가구다.또 이들이 모두 귀농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9년 귀농한 4080 세대 가운데 5.4%인 221세대는 그 다음해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실패 사례는 대개 귀농에 대해 환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충분한 준비없이 바로 수익을 내려 하거나 시골 생활의 불편을 참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귀농·귀촌 트렌드도 분화하는 추세다. 종전에는 생계형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IT와 농업을 결합한 스마트형, 전원적 삶의 대안 가치를 추구하는 전원생활형, 도시 은퇴자가 전원에서 노년의 삶을 영위하는 노후생활형 등 다양하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책도 크게 변화해야 할듯 싶다. 사회안전망과 연금제도, 노동력 관리, 보건정책 등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때 마침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농촌경제연구원이 완주군에서'귀촌-지역공동체 정책연계 지역순회 세미나'를 가졌다. 급증하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은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부정적 영향도 증가하고 있다.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