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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어진 구본 왜 발굴해야 하나

경기전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구본(御眞 舊本) 발굴은 태조 어진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자 조선 왕조의 본향으로서 전주 역사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본보 2009년 2월 23일 1면·5면)특히 전주가 조선 왕조의 발상지임을 기념하여 태조 어진을 전주에 봉안한 지 600주년이 되는 올해가 적기로, 이를 발굴해 올 가을 개관하는 유물전시관에 보관한다면 전주의 역사문화자원을 확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발굴 과정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전주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무엇보다 전문가들은 귀중한 유물이 땅 속에서 더 훼손되기 전에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본보가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년, 원본을 찾자'를 기획·보도하면서 구본 발굴 작업을 포함,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년 기념 사업 준비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구본 발굴을 추진하려다가 중단했던 전주시가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 전문가들은 "땅 속에 묻힌 지 138년이 지난 지금, 더 늦기 전에 구본을 발굴해 이에 대한 보존처리와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구본 발굴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면서 도굴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전주시는 2007년 8월 문화재청에 경기전 본전 후원 600㎡를 대상으로 매장유물 발굴을 위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냈지만,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 심의결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며 이를 반려한 바 있다.경기전에 어진 구본이 묻혀있을 것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충분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1872년) 기사에 따르면, '경기전의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埋安)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태조 어진을 모사한 행사의 기록이란 점에서 의의가 큰 「어진이모도감청의궤」에도 '어진 구본은 1872년 9월 27일에 세초하여 백자항에 넣어 본전 북계상에 매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일성록」 고종 9년 10월 7일 기사에도 '신본을 먼저 봉안하고, 고안제를 한 후에 구본은 돌돌 말아서 봉안하는데 세초하고, 또한 본전의 북쪽계단에 매안하는데, 박석으로 둘러 이를 쌓았다'고 적혀있다. 폐쇄공간인 경기전 본원 후원 등을 대상으로 지질탐색을 벌여 4곳에 매장 의심물체가 감지됐다는 결과도 이미 확보하고 있다.현재까지 논란이 되는 것은 구본을 어떻게 묻었냐에 대한 해석. 비단에 그려진 그림 자국을 물로 씻어냈을 것이라는 주장과 태워서 그 재를 묻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둘 다 백자항아리에 넣어 경기전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에 씻어 묻었든 불에 태워서 묻었든 어진 구본을 담은 백자항아리가 발굴만 된다면야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어진 매안과 관련된 중요 유물이나 관련 기록물 등이 나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럴 경우 조선시대 어진의 세초와 매안의 전체 과정을 처음으로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진 구본을 담을 정도면 명품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내비쳤다. 설사 구본이 나오지 않더라도 역사적 기록을 확인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고언기 전주시 전통문화국장은 "구본 발굴은 태조 어진과 전주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일"이라며 "올해 어진 봉안 600주년의 의미를 살려 반드시 구본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10.03.02 23:02

개운사·운람사 보물 한자리에서 보세요

최근 보물로 지정예고된 개운사 불상의 복장유물, 이달 보물로 지정된 운람사 불상 복장유물과 광흥사 동종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관장 범하스님)은 다음달 2일 '2010년 상설전'을 개막해 보물 9건을 포함한 59건 125점의 성보문화재를 8월22일까지 전시한다고 28일 말했다. 3개 전시실에서는 각각 주제를 달리해 전시를 꾸민다. 1전시실에서는 '부처님의 일생과 전법(傳法)'을 주제로 화엄사의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화엄석경'(보물 1040호), 조선초기 문화재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278호) 등 5건 38점이 전시된다. 석가모니 부처의 생애와 전법을 종이에 쓰거나(사경), 목판, 금속활자 등으로 표현한 법보(法寶)가 소개된다. 2전시실은 다양한 형태의 불교미술품으로 구성된다. 불상 안에 공양하는 복장유물이 중심이다. 이달 보물로 새로 지정된 '운람사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 및 기타 복장유물이 보물 지정 후 최초로 공개된다. 석가모니 부처가 가장 신임한 제자 마하가섭이 열반에 든 석가모 니를 찾아간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전으로 '마하가섭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시 이달 보물로 지정된 광흥사 동종(보물 1천645호)도 공개된다. 보물로 지정예고된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발원문 및 복장 전적도 2전시실에서 소개된다. 3전시실은 남양주 수종사의 목조 불상과 금동불상들, 사리장엄구 등과 화엄사와 신원사의 사리장엄구를 전시한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3.01 23:02

외규장각 약탈 고문서 반환 소송 항소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을 프랑스 국내에서 제기 중인 문화연대는 프랑스 행정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고 25일 말했다.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이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법률 대리인인 김중호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어제(24일) 항소장을 접수했다"면서 "외규장각 고문서는 약탈된 것이 명백한 이상, 그 완전한 반환을 위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김중호 변호사는 1심에서 패소한 데 대해 "우리가 패소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성과도 냈다"면서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에서 외규장각 고문서를 취득한 과정이 '약탈'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변호사는 "소송에서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이 원고 자격을 무효화하는 것인데, 이번 소송에서 프랑스 정부 또한 문화연대는 소송 자격이 없다는 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나, 프랑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1866년 외규장각 고문서 탈취 당시 이들 고문서는 조선왕조 소유였으며, 대한민국은 이 조선왕조의 합법적 계승자이므로 당연히 대한민국 재산"이라면서 이런 약탈 고문서를 "프랑스가 자기네 국유재산으로 일방적으로 편입한 것은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약탈 문화재 또한 인종학살이나 전범 등의 반인류적ㆍ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시효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외규장각 고문서는 문화재 반환과 관련한 각종 국제협약이 체결되기 전에 프랑스가 취득한 것으로 지금은 프랑스 국유재산이므로 반환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세계인권선언의 모태가 된 프랑스인권선언이 1789년에 나왔다고 해서 그때부터 인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실제 이 인권선언은 '이미 존재하는 인권'을 재천명한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약탈 문화재 반환 또한 이에 대한 국제협약이 병인양요 이후에 생겼다고 해서 우리가 외규장각 고문서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평우 위원장은 우리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외규장각 고문서의 '등가교환'을 통한 영구임대방식, 즉, 이들 고문서를 프랑스 정부가 영구 대여하는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하는 대신, 그에 버금가는 다른 한국 문화재를 프랑스에 대여해 전시하는 방식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황 위원장은 "등가교환이나 영구임대는 점유권만 우리가 갖는 데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26 23:02

[오목대] 태조 어진(太祖御眞) - 장세균

태조 어진이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말한다. 전주에 있는 경기전은 유서깊은 곳으로써 조선왕조 실록과 태조 어진이 모셔져 있었던 곳이다. 태조 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 행사가 10월에 치루어진다.오늘의 태조 어진이 지금까지 보존될수 있었던 데에는 깊은 사연이 숨어있다. 1592년,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한반도에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런 국난에 전주 경기전에 있었던 조선왕조 실록과 태조 어진의 안전에 위험이 닥쳤다.조선왕조 실록은 전주 경기전을 비롯하여 서울의 춘추관과 충청도 청주, 경상도 성주 실록각에 각각 분치(分置)되었는데 전주만 제외하고 나머지 3곳의 실록이 모두 전란(戰亂)중에 불타버렸다. 왜군이 웅치재를 넘어 전주에 당도한다는 정보를 듣고 경기전 참봉 오히길은 실록과 태조 어진을 봉안(奉安)할 뜻있는 인물을 찾던중 태인의 손홍록과 안의라는 두선비가 자진해서 나섰다.참봉 오희길과 두 선비는 여려 사람들을 대동해서 실록을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庵)으로 옮기고 9일후에는 태조 어진을 내장산 은적암(隱寂庵)옮겼다고 한다. 실록과 어진은 조선의 국보(國寶)였기에 전란 중에도 조정(朝廷)은 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않고 그 행방에 관심을 가졌다. 조정은 좌랑(佐郞) 신흠(申欽)을 내장산 현지에 파견하여 실록과 어진의 안전을 확인케 했다.이렇게 옮겨진 실록과 어진은 다른곳으로 이전되기까지 약 1년간을 머물게 되는데 이때도 안의 손홍록 두 선비는 이의 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둘이서 감시를 했다고 한다. 그후 왕명(王命)에 따라 어진은 충청도 아산 객사으로 옮기게 되었고 실록은 해주목(海州牧 )으로 옮겼다고 한다.얼마후 정유재란이 터지자 안의, 손홍록은 다시 분발하여 아산에 있는 어진을 강화부를 거쳐 청천강을 지나 안주(安州) 객사에 옮겼다고 한다.이때 해주목에 있던 실록도 옮겨져 와 어진과 5년만에 재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후로 다시 심산유곡인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별전으로 옮겼다. 태조 어진만 광해군 때 경기전의 중건(重建)과 함께 봉안되었다. 태조 어진은 그냥 지켜진것이 아니었다./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재·학술
  • 장세균
  • 2010.02.25 23:02

진관사 태극기 문화재 등록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와 독립신문류를 오는 25일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문화재로 등록되는 태극기 등은 진관사 내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태극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의 면직물 중앙에 지름 32cm의 태극문양, 건ㆍ곤ㆍ감ㆍ리 4괘가 갖춰져 있다. 4괘의 위치가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하나 현재의 태극기와는 달라 태극기 변천사에서 귀중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독립신문류는 태극기에 싸인 채로 발견되었는데 '신대한(新大韓)' 3점, '독립신문(獨立新聞)' 4점,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5점, '자유신종보(自由晨鍾報)' 6점, '경고문(警告文)' 2점 등 5종 20점으로 발간일자가 1919년 6월부터 12월 사이다.신문마다 태극기 도안과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을 게재해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이 중 '자유신종보'는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로 파악됐다. 지난해 5월 경내 칠성각 건물을 수리하다가 이 자료들을 발견한 진관사 측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백초월(1878-1951)스님이 진관사에 머무를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이 자료들을 건네 받았다가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5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진관사 태극기와 독립신문류를 전시한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24 23:02

서산 해미읍성서 상평통보 통용

충남 서산시의 대표적 사적지인 해미읍성에서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를 복원한 엽전이 현금 대신 통용된다. 23일 서산시에 따르면 오는 28일 정월 대보름부터 해미읍성을 찾는 관광객들은 성내 환전소에서 1냥에 1천원인 상평통보 엽전을 환전해 장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서산시가 조선시대 군영으로 사적 116호인 해미읍성의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성내 장터 등에서 상평통보 사용을 의무화기로 방침을 정한 데 따른 것. 시는 정월 대보름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하기로 하고 서울의 엽전 및 기념품 제조업체에 의뢰해 상평통보 1만냥을 제작했다. 엽전 1개에 1냥인 상평통보는 1개당 제작비가 650원 가량 들었다. 시는 성내에 환전소를 설치하고 장터와 국궁체험장, 승마체험장 등 성내 모든 경제활동에 엽전 사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시는 읍성내에 전통 주막과 옹기 등 전통그릇 판매장, 한복과 삼베보자기 등 전통의복 판매장 등 옛 저잣거리를 조성, 조선시대 육의전이나 난전과 같은 분위기를 재현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엽전을 이용해 주막에서 음식값을 내거나 물건을 구입하면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기념품으로 소장하기 위해 엽전을 가져가는 관광객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24 23:02

[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4)동기창(董其昌)의 빈풍도시권(빈風圖詩卷)

명대의 서화가 동기창(1555~1636)은 자가 현재(玄宰)이며 호는 사백(思白)·향광거사(香光居士) 등이 있다. 화정(華亭 : 지금의 上海松江) 사람으로 만력 17년(1589)에 진사로 급제하여 남경(南京) 예부상서를 지냈으나 위충현(魏忠賢)의 화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여 사직하였다. 시서화에 뛰어났으며, 특히 실기를 겸비한 서화가로서 이론와 감상에도 이름이 높아 후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이로 인하여 훗날 '藝林百世之師'라고 불렸지만, 동기창은 평소 얽매임이 없이 서화를 탐닉하며 정무를 게을리하다가 탄핵을 당하기도 하고, 고향에서는 고리대금으로 폭리를 취하여 서화수집에 힘쓰다 저택이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완물상지의 전형적인 예이다.자신이 술회한 학서이력을 보면, 17세 때 안진경의 「다보탑비」에서 출발하여 우세남을 배우고, 종요와 왕희지로 거슬러 올라가 공부하는 소원(溯源)의 방법을 취하였다. 그러나 감상가로 널리 알려진 항원변의 집에서 역대 진적을 목도하고 금릉(金陵)에서 왕희지의 진적 관노첩(官奴帖)을 본 뒤 진적이 아니면 신수를 깨달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은 동원(董源)으로부터 출발하여 송원 제가들의 장점을 두루 배워 일가를 이루었다. 화론 연구는 남파와 북파의 이론적 체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며 흔히 일컫는 남종화와 북종화라는 용어 역시 그의 화론 체계에 의한 것이다. 이는 훗날 추사 김정희의 스승 완원(阮元)이 제기한 남북서파론에도 영향을 주었다.동기창은 왕희지의 글씨를 종주로 삼았으나 단지 형사를 취하지 않고 신수를 파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러한 점은 전대의 조맹부와 그 계통들이 왕서의 형사를 추구한 것과 대조적이며, 스스로를 조맹부와 견주어 말하곤 하였다. 그는 창신을 추구하며 중시했던 솔의(率意)와 평담천진을 강조했던 송대 미불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선종에 조예가 깊어 선리(禪理)에 의한 깨달음도 있었다. 그의 서화와 이론이 후세에 높이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깊이 때문일 것이다. 훗날 청나라 강희제가 그의 글씨를 혹애하자 당시 신하들이 모두 동기창의 글씨를 모방했다고 한다. 서화수필집으로 유명한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이 있으며 저서로 「용대집(容臺集)」이 전한다. 「화선실수필」을 통해서 간단히 그의 서예관을 살펴보면, 왕희지의 자세(字勢)는 사기반정(似奇反正) 즉 기이한 듯하지만 오히려 바르다고 평한 것, 그리고 서도(書道)는 다만 교묘(巧妙) 두 글자에 있다고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여기에 소개하는 '빈풍도시권'은 그 끝에 '天啓元年秋九月董其昌書'라는 관기가 있으므로 1621년 동기창의 나이 67세 때에 쓰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동기창은 이때 다시 조정에 출사하여 궁중에 소장되어 있던 조맹부의 빈풍도를 직접 보았는데 그 느낌을 시로 지어 쓴 것이다. 구름문양이 있는 종이에 다른 행초시권보다 비교적 큰 글씨로 쓰여졌으며 유려한 행초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두 26구의 칠언고시로 횡서하였고 章皇, 宸章, 聖道 등의 단어가 나올 때는 행을 바꾸어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시경」의 빈풍은 일반 백성들의 농사짓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빈풍도는 이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동기창의 시권에 詩中盡繪農桑事, 田家作苦非一狀 등의 구절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누차 조맹부와 비교한 동기창은 아마 조맹부의 빈풍도를 보고 그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0.02.24 23:02

[전시] '마그나 카르타' 6월 서울서 볼 수 있다

전 세계 국보급 기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국가기록원은 6월1일부터 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프랑스와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의 기록유산 100여점을 선보이는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전시회에는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경', 백설공주 등이 수록된 '그림형제 동화',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자장가',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된 '마그나 카르타'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기록물들이 전시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 조선왕조 의궤 등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의 기록유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물들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상징성과 대표성이 있는 원본이나 복제본 등으로 구성되고, 관람객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종교와 동화, 음악 등 주제별로 분리 전시된다. 전시장에서는 고서 만들기, 탁본 뜨기, 국새 찍기 등 다채로운 체험 행사도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방문객은 사전에 전시회 홈페이지(http://www.iace.or.kr)를 통해 전시 현황을 알아볼 수 있다. 전시회와 연계해 기록관리 분야 국제기구인 국제기록관리협의회(ICA)와 동아시아기록관리협의회(EASTICA)의 집행이사회가 열리고, 국내외 기록관련 전문가 400여명이 참가하는 세미나도 마련된다. 박상덕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전시회는 세계 최초로 열리는 지구촌 기록문화 축제"라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록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22 23:02

佛외규장각 도서 '17년 난제' 해결되나

정부가 내달 중 외교문서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대여'를 공식 요청하기로 함에 따라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상호교류와 대여'의 원칙에 합의한 이후 17년만에 구체적인 해법도출이 시도되는 셈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영구대여 방식이 운용의 묘를 살릴 경우 공공재산의 소유권 이전 및 영구 임대를 허락하지 않고 있는 자국 국내법의 개정 없이도 실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프랑스 측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프랑스의 등가등량(等價等量.동등한 가치와 무게) 교환원칙 폐기 방침을 밝힌 이후 장기임대-교환전시 방안에 대한 구두협상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가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을 문서로 요청했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물론 프랑스의 국내법을 개정해서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지만 협상 상대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프랑스 국내법이 허용하는 기간인 4년마다 임대를 갱신할 경우 법 개정 없이 사실상 영구대여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프랑스 내부 여건을 감안할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외규장각 도서를 넘길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프랑스는 과거에도 우리 정부가 외규장각 도서 대신 기탁하겠다고 제안한 고도서의 가치가 낮다며 등가 도서 기탁을 주장하며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정부가 등가등량 교환원칙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측이 외규장각 도서 대여의 대가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당국자는 "프랑스가 영구대여 방식에 합의할 경우 우리 문화재를 프랑스 현지에서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는 양국 대통령이 합의한 상호교류와 대여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도 만족할 만한 방안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이 프랑스의 입장을 고려한 현실적인 해법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문화유산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라며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는 문화연대의 한 관계자는 "설사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아온다 해도 점유권만 인정되는 것이므로 소유권을 찾는 소송을 끝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이 다음 달 중 방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한.프랑스 외교장관회담을 여는 방안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이번 회담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22 23:02

[전시] 국립전주박물관 '조선의 궁궐과 경기전' 사진전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왕조 궁궐과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본래 모습을 담은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이 처음으로 선보인다.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특별전인'조선의 궁궐과 경기전 - 유리건판 사진전'을 열고, 조선 궁궐 관련 사진 90여 점을 전시한다. 유리건판은 감광제를 유리판에 바른 뒤 건조시킨 확대 사진으로 유리원판이라고도 불린다.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촬영한 조선총독부에서 찍은 궁궐 사진 3만8000여 장 가운데 추린 것으로 지난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 최초 공개에 이은 두번째로 소개되는 자리다.일제 강점기에 궁궐 밖으로 옮겨지거나 팔려나간 전각(殿閣)은 수없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왕조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경우 일제 치하에서 철거되거나 옮겨 지은 건물은 356동(4648칸)에 이른다. 경희궁(慶熙宮) 역시 몇몇 회랑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이 철거됐으며, 또 다른 전각 가운데 민간에 팔려 음식점, 살림집, 사찰, 기생집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전한다. 궁궐은 훼손되는데 그친 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찬미하는데 악용되기도 했다.이번 전시는 창덕궁(昌德宮)·창경궁(昌慶宮)·덕수궁 (德壽宮) 등 5대 궁궐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20년부터 1930년까지 촬영된 사진은 일제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궁궐이 철거되고 훼손된 모습을 담고 있어 궁궐 복원과 연구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복궁 일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운 뒤 촬영한 사진이 대표적.조선왕실의 본향인 전주를 재조명하기 위한 경기전(慶基殿)과 조경단(肇慶壇)의 모습도 공개된다. 특히 올해 는 태조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는 해로 경기전 정전(正殿),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의 모습과 경기전 내 조경묘(肇慶廟) 전경도 만날 수 있다.또한, 지난 2008년 화재로 사라진 숭례문 사진 2점은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과 보존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듯하다.이재정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은 일제에 의한 파괴와 왜곡의 기록까지 역사적 고증을 위한 가장 정확한 사료"라며 "우리 궁궐의 진정한 건축적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가장 훌륭한 전달자"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23일부터 4월25일까지 계속된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02.22 23:02

전주 3대 문화관 민간위탁해야

전주 3대문화관(완판본·소리·부채문화관)이 전주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살릴 곳으로 거듭나려면, 전문가에게 민간위탁하되 이들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장치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지난 17일 공간 봄에서 '3대문화관의 올바른 운영 및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열린 '제85회 마당 수요포럼'에서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시의 운영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복합적인 요인을 검토할 때 어떤 수탁자가 되더라도 그 운영에 관한 엄격한 평가와 감독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가 맡게 될 경우 현실을 도외시하고 또 다른 연구소로 전락할 우려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 이해관계에 따라 문화관의 방향이 변질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정통한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다면, 박제된 박물관 하나를 더 만드는 것 밖엔 안된다"고 강조했다.소리문화관이 일반 소리 체험을 할 수 있는 곳과 차별화된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려면 판소리 전용극장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왕기석 명창은 소리문화관을 대청마루가 무대의 중심이 되는 판소리 전용극장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배움터를 만들어 교육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심인택 우석대 교수도 소리문화관이 고품격 판소리 전용 극장이 돼야 한다며 유명한 외부인들을 초청하는 공연 보다는 소리문화관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간판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료 공연은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안준영 목판서화체험관 관장은 앞으로 완판본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가 의욕적으로 완판본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 마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변주승 전주대 교수는 완판본을 전공한 이 지역의 인재가 완판본문화관에 취업하고 싶고,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며 공급자 보다는 수요자가 중심되는 고품격 체험 프로그램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02.19 23:02

[전시] 결혼 직전 영친왕비 친필일기 공개

"미혼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신년이다. 왠지 모르게 즐거운 마음도 들고 또 아쉬운 마음도 든다." 마사코(1901~1989)는 약혼자인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과의 결혼을 앞둔 1919년 신년인 1월1일자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지만 결혼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같은 달 21일(화)자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보인다. "오후 1시, …비보(悲報), 생각하지 못한 비보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경성에 계시는 이태왕(李太王.고종) 전하께서 뇌일혈로 오전 1시35분에 발병해 오전 7시50분에 중태에 빠지셨다는 보고였다. 아아, 지금까지의 기쁨은 이내 슬픔으로 변했다." 이 사건으로 결혼식은 이듬해로 연기됐다. 하지만 이런 곡절을 거쳐 1919년 마지막날이 왔다. 내년 4월이면 연기된 결혼식을 올린다. 12월31일을 맞아 훗날의 영친왕비 이방자(李方子)는 이렇게 일기에 썼다.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즐거운 추억은 오직 전하께서 오셨을 때의 기억이다. 이것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이다. 이것은 올해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두 번, 세 번, 몇 번이라도 거듭해 가야 할 즐거움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의 흥분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처럼 영친왕비가 1919년 1월1일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총 136일간 쓴 일기를 포함해 영친왕가(英親王家) 관련 희귀 자료 700여 점이 공개됐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18일 박물관에서 영친왕비 친필일기 1첩을 비롯해 편지 39통, 엽서 121매, 사진 514매와 기타 영친왕의 수첩, 다큐멘터리 필름 등을 기증받았다고 밝히면서, 그 중 일부 유물을 공개했다. 이들 유물은 2008년 12월 재일교포 하정웅(河正雄)씨가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기증한 것들로 이후 문화재청은 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연구했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환수유물 중 영친왕비 일기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서 설레는 감정과 약혼자 영친왕에 대한 연민, 결혼식을 나흘 앞두고 발생한 고종황제의 승하와 그에 따른 결혼 연기, 영친왕의 고국 조선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등의 내용이 사실적으로 기록됐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이 친필일기가 유출된 경위는 확실치 않지만, 고궁박물관 정계옥 유물과학과장은 "이방자 여사 자서전을 보면, (자서전 출간을 위해) 일기를 인쇄소로 보냈는데 분실됐다는 내용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런 사정으로 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영친왕가 편지 39통은 국문ㆍ국한문ㆍ일문 등으로 작성됐다. 이중 순종황제 비인 순정효황후가 영친왕 부부에게 안부를 물은 친필 한글편지는 특히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그 외 편지에는 1960년대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환국과 관련한 입국절차 등을 논의한 편지들이 있으며 이를 통해 이를 둘러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등을 엿볼 수 있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또한, 친지에거 온 안부 편지와 일본거주 조선왕실 사람들의 경제적 지원요청 편지 등도 포함됐다. 엽서 121매는 영친왕비 가족에게서 받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왕실의 덕혜옹주와 의친왕 아들인 이건ㆍ이우 및 부인들의 안부 문안 엽서 등으로 구성된다. 사진 자료 중에는 1909년 이토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서북순행(西北巡行)하는 사진 63매를 비롯해 덕수궁 석조전과 정관헌 내부 등 궁궐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 그 당시 영친왕비의 주변 인물 사진 등이 포함됐다. 이중 순행할 때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걸린 사진과 덕수궁 석조전 내부에서 촬영된 사진은 역사적 현장으로서 가치가 크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영친왕과 영친왕비의 출생 및 성장, 결혼, 결혼 후의 한국방문과 유럽여행, 영친왕의 사망 후 영친왕비의 사회활동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8㎜영화 '흐르는 세월'도 공개됐다. 1978년 제작한 상영시간 20분짜리 이 필름은 영친왕이 이토 히로부미와 노는 장면을 비롯해 기존에 알려진 자료를 포함해 영친왕의 장례식 등의 장면을 "개인 소장을 위해 집안에서 편집한 자료로 판단된다"고 정계옥 과장은 덧붙였다. 나아가 이 필름에 보이는 1922년 순종황제 알현 때 착용한 복장은 2009년 12월 중요민속자료 265호로 일괄 지정된 것이다. 이 외에도 영친왕이 휴대한 포켓용 수첩도 환수유물에 포함됐다. 고궁박물관은 이들 환수유물에 대한 도록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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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2.19 23:02

조선왕조실록 복본 206권 내달 선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을 전주의 전통한지에 그대로 본뜬 복본(複本)이 내달 선보인다. 전주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추진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의 1차 사업을 내달 20일께 마무리 짓고 복본 206책(권)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복본화사업은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 내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보관됐던 태조에서 명종까지의 조선왕조실록 614책, 5만3천102면(쪽)의 원본(原本)과 똑같은 부본(副本)을 전주한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 복본화가 시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시작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차 사업은 이 가운데 태조에서 세종까지의 206책, 1만5천558쪽을 복본화하는 것으로, 현재 150책 분량이 완성됐으며 나머지 56책도 마무리단계에 있다. 복본화는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실록의 원형을 그대로 복제하고 나서 전통한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쓰인 한지는 조선시대와 같은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뒤 인쇄용지로 일부 가공된 것이며, 인쇄는 한지 전문 인쇄업체인 미래영상의 첨단 '덧씌움' 기술이 적용됐다. 전주시는 다음 달에 1차 사업이 끝나면 곧바로 2차 사업에 들어가 남은 408책을 복본화한다. 지난 2년여간의 노하우가 쌓여 연말이면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본은 애초 조선왕조실록이 있었던 경기전 내 전주사고에 보관돼 교육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오길중 한지담당은 "전주한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한지를 산업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세계적인 기록물의 복본화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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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2.18 23:02

'독도는 한국땅'..19세기 일본 지도 공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1905년 이전에도 독도를 영유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부정하는 일본 지도가 여러 장 발견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17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여러 장의 일본 지도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가 입수한 '대일본전도(大日本全圖)'는 일본 육군참모국이 1877년 제작한 것으로 일본의 영토 전체를 자세하게 나타냈지만 독도는 제외했다. 또 1899년 일본 육지측량부는 당시 나온 모든 일본 지도를 참고하고 새롭게 측량해 20만분의 1 크기의 지도를 만들었지만, 구역 일람표에는 독도가 나오지 않는다. 호사카 교수는 "이 지도를 보면 1905년 이전에도 독도를 영유했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허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호사카 교수가 공개한 '관허대일본사신전도(官許大日本四神全圖)'는 지도제작자 하시모토 교큐란사이가 1868년 일본 정부의 허가를 얻어 제작한 것으로 한국의 동해안을 따라 '조선해(朝鮮海)', 일본 본토의 서측에는 '일본서해(日本西海)'로 표기했다. 그는 일본에서 '일본해'라는 명칭이 정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동해 해역의 명칭을 병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호사카 교수 소장 지도와 재단이 지난해 구입한 동해ㆍ독도 관련 지도 등 40점을 다음달 2~9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동해ㆍ독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이 가운데 10점은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영국의 지리학자 존 세넥스가 1721년 제작한 인도ㆍ중국 지도와 1744년 영국 지도학자 에마뉴엘 보웬이 만든 지도에는 '동해(EASTERN SEA)'라는 표기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왕실지리학자 질 로베르 드 보곤디는 1750년 '일본왕국도'에서 한국 연안은 '한국해(MER DE COREE)'로 일본 연안은 '일본해(MER DU JAPON)'로 함께 표기했다. 프랑스 왕실지리학자 당빌이 1737년 제작한 '조선왕국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중국어 발음으로 표시돼 있다.신길수 동북아역사재단 국제표기명칭대사는 "서양 고지도에 '동해(Eastern Sea)'라고 나오는 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한반도의 동쪽이란 뜻을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개념"이라면서 "'동해(Eastern Sea)'라고 표기하다 한국을 인식하면서 '한국해(Sea of Korea)'를 사용했다. 이후 '일본해(Sea of Japan)' 명칭도 나타났다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해'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날 간담회에서 고지도 전시회 외에도 올해의 여러 주요 사업을 소개했다. 재단은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재조명하기 위해 8월 24~26일에는 이태진(서울대), 와다 하루키(도쿄대) 등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의 연구자를 초청해 '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7월에는 병합 과정의 불법성을 규명하기 위한 조약자료집도 발간한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6월에는 한국전쟁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피는 국제학술회의를 연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18 23:02

[도약! 2010전북문화] ⑩국립전주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전북과 전주의 역사성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전시를 준비한다. 올해는 태조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국립전주박물관은 특별전 '조선의 궁궐과 경기전'과 20주년 기념전'조선왕조와 전주'를 통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귀한 유물을 내놓는다.'조선의 궁궐과 경기전'은 일제 강점기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인 경기전과 조경단을 비롯해 궁궐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9~1945년에 촬영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 중 일부로 지난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도 이와 같은 전시를 열었다.'조선왕조와 전주' 역시 조선왕실의 본향인 전주를 재조명하는 전시다. '전주의 DNA'라고 볼 수 있는 태조어진을 비롯해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 등 150여 점을 선보여 조선시대의 뿌리찾기를 시도한다.조선후기 3대 명필 중 하나인 창암 이삼만 탄생 240주년을 기념한 '창암 이삼만전'도 창암의 재조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창암 선생이 서예의 전수를 위해 출간한 교재 「화동서법」과 그 의미에 초점을 맞춘 전시. '창암체'를 개발해 추사에 비견될 정도로 심오한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으나, 지방작가로만 대접 받았던 그의 서예사적 위치를 재평가하는 자리다.'전북의 역사문물전'은 올해 백제와 가야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장수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전시다. 장수 호덕리 가야 토기, 영락 12주년 왕지 등 가야의 흔적이 많이 남은 유물 150여 점이 한자리에 모두어진다.박물관이 새롭게 소장하게 된 유물을 소개하는 '신수 문화재전'도 열 예정. 조성왕실의 왕과 왕위계승·궁궐·회화·도자기 등을 소재로 한 토요명사특강과 조선왕실과 전주사고, 조선왕실과 태조어진 등을 주제로 다룬 국제 심포지엄도 10월 중에 열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02.18 23:02

[도약! 2010전북문화] "전북역사의 복원, 더욱 힘 쏟겠다"

"어떤 해도 쉽게 쉽게 넘어가는 해는 없었어요. 더더욱 올해는 국립전주박물관 20주년과 태조어진 봉안 600주년과도 맞물려 있어 기념비적인 사업을 해보고픈 욕심이 많았습니다. 조선왕실과 전주라는 지역성을 살리는 전시와 이와 관련된 국제적인 심포지엄도 마련합니다."김영원 국립전주박물관 관장(56)은 올해도 녹록치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벽두부터 문화체험관 체험학습실을 개편하느라 진을 뺐던 그는 올해는 특별전 '조선의 궁궐과 경기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조경단이 일제시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시게 되면 놀라게 되실 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호평 받았던 전시를 여기로 끌고 왔어요. 이런 귀한 전시에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단 생각 듭니다."지난해 백제에 가려진 마한의 역사를 재조명한 '마한, 숨쉬는 기록전'도 전국적,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전시였다. 하지만 김 관장은 "도민들의 반응은 무심했다"고 했다.그는 이어 "전주는 조선왕실이나 백제의 역사만 집중하는듯 보인다"며 "백제 보다 먼저 문명을 이루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웠던 마한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에서 바라보는 위상에 비해 지역에서의 위치나 정서는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는 것 같다"며 이와 같은 다양한 기획 전시에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홍보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전시라 하더라도 시민들이 찾지 않고,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김 관장은 "박물관의 노력 뿐만 아니라 전주시나 전라북도의 관심도 필요하다"며 "전북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더욱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02.18 23:02

일제강점기 '구마모토 농장' 베일 벗는다

일제강점기 때 전국 최대 규모의 농장이었던 '구마모토 농장(현 군산 간호대)'이 베일을 벗는다. 군산 간호대(총장 김순자)가 쌀 수탈의 상징적 존재였던 구마모토 농장의 운영 실태를 살필 수 있는 결산서류 및 영업보고서 등 75점을 최근 군산시에 기증하면서다.군산 간호대가 기증한 결산서류 및 영업보고서는 1935년부터 1945년까지 농장 운영방식과 회계방법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수탈된 소출량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또 당시 토지대장과 건물등기부 등본, 지적도, 재산목록, 신탁재산 인계서, 개량 경영관계 서류, 시험지 성적일람 등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일본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는 1930-1940년 군산 개정에 설치한 농장을 중심으로 1개 부(당시 '군산시')와 5군('김제'.'정읍' 등), 26개 면을 관장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당시 1200여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며 3000여 가구의 소작농을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러한 농지 관리와 쌀 수출을 도맡았던 구마모토 농장이 있었던 자리는 현재 군산 간호대의 부지로 사용되고 있다.이번에 기증된 75점에는 쌍천 이영춘 박사의 붓글씨, 일본식 옷장, 고서화, 사각 장식대, 중국의 당ㆍ송시대의 책자 40여권 등도 포함돼 있다. 이영춘 박사는 1935년 4월 구마모토 농장 진료소 소장으로 부임하고서 10년 5개월 동안 소작인 21만여 명을 진료해 '한국판 슈바이처'로 불렸다군산시 김중규 학예연구사는 "군산 간호대가 기증한 유물 중에는 근대사 및 경제사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포함돼 있다"면서 "특히 일제시대 당시 전국 최대 규모였던 구마모토 농장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군산시는 기증자의 뜻에 따라 구마모토 농장과 관련된 자료는 시립박물관으로, 이영춘 박사와 관련된 자료는 이영춘 전시관으로 보낼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홍성오
  • 2010.02.17 23:02

백제시대 목제품서 일본산 다수 확인

백제의 마지막 도읍 부여에서 발굴된 목제품에 수종(樹種)이 일본 열도에서만 자생하는 삼나무가 다수 사용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과 국립부여박물관 보존과학실이 부여 지역 백제시대 유적들인 능산리와 쌍북리, 그리고 궁남지 출토 목제품 16건 70점 중 53점에 대한 수종을 최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분석 결과 이들 목제품 수종은 소나무류ㆍ상수리나무류ㆍ느티나무류ㆍ밤나무속ㆍ뽕나무속ㆍ버드나무류ㆍ비자나무ㆍ주목ㆍ삼나무ㆍ굴피나무ㆍ대추나무속ㆍ전나무속의 12가지로 나타났으며, 이중 일본 특산 수종인 삼나무는 전체 16%인 9점인 것으로 분석됐다. 삼나무로 제작한 목제품은 칼 모양인 것도 있으며, 그 외 기능을 짐작하기 어려운 다른 가공 제품도 포함됐다. 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일본 특산 수종으로 가공과 공작이 쉬워 일본에서는 건축용재를 비롯해 기구, 가구, 선박 등 그 이용범위가 넓으며 이런 삼나무 목제품이 검출된 데서 당시 백제와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보존과학팀은 설명했다. 나아가 역시 일본 특산일 가능성이 있는 주목과 주목속으로 제작한 가공목제류 1점도 확인됐다. 주목은 중국과 일본의 혼카이도ㆍ혼슈ㆍ시코쿠ㆍ큐수 등지에 분포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북쪽 추운 곳에서 자란다. 이밖에 주목과 비자나무속, 전나무속으로 만든 목제품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나무가) 자라는 곳이 한정되어 있어 나라간 교류가 있었거나 삼나무와 함께 일본에서 들여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존과학팀은 덧붙였다. 백제시대 목제류 출토 유물 중 무령왕릉 관재(棺材)가 일본 특산 금송(金松)으로 드러났는가 하면, 무령왕비 두침(頭枕.나무베개)은 일본 특산일 가능성이 큰 주목으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궁남지 출토 목간 1점 또한 일본 특산 삼나무가 원료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같은 분석 결과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하는 학술지인 '박물관 보존과학' 2009년 12월호(통권 10집)에 수록됐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2.17 23:02

[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3)문징명(文徵明)의 행서시권(行書詩卷)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명대의 서화가로서 초명이 벽(壁) 또는 벽(璧)이었으며, 자는 징명(徵明)이었으나 후에 징중(徵仲)으로 고쳤다. 호는 형산(衡山)이며, 장주(長洲 : 蘇州) 사람이다. 온주지부(溫州知府) 아버지 문림(文林)의 주선에 의하여 시문을 오관(吳寬), 그림을 심주(沈周), 글씨를 이응정(李應禎)에게 배웠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아버지의 친구로서 당시 뛰어난 명사였다. 이후 징명은 절차탁마하여 축윤명(祝允明), 당인(唐寅), 서정경(徐楨卿)과 더불어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로 일컬어졌다. 처음에는 관로에 뜻을 두고 26세 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이후 아홉 번이나 낙제함으로써 뜻을 펼치지 못하였다. 한때 시서화에 뛰어나 한림대조(翰林待詔)라는 직책을 받았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3년 만에 사직, 귀향하여 9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야의 인물로 활동하며 소주예원을 주도하였다.징명의 중자(中子)인 문가(文嘉)의 「선군행략(先君行略)」에 의하면, "아버지는 젊었을 때 글씨를 잘 못썼다. 그러나 힘써 배우며 송 원시대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아 절차탁마하여 필의를 깨달았고, 이후에는 진·당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았다. 소해는 왕희지의 황정경(黃庭經)과 악의론(樂毅論)을 따랐으며, 예서는 종요(鍾繇)를 모법으로 삼아 일세에 독보적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년에 이르러 승두체에 뛰어났으며, 심주(沈周)를 모방하여 황정견 풍의 대서를 잘 썼다. 시문집으로 「보전집(甫田集)」이 있으며, 「정운관첩(停雲館帖)」에 그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의 장자 문팽(文彭)은 가학을 이어받아 각 서체에 두루 능하여 아버지와 비교될 정도였으며, 특히 전각의 비조로 이름이 높다. 북송대 소순, 소식, 소철의 소씨(蘇氏) 삼부자가 출현하여 문단을 풍미한 것처럼 명대의 문징명, 문팽, 문가의 문씨(文氏) 삼부자가 출현하여 서화각으로 일세를 풍미한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문징명의 작품 중에서 76세 때 행초서로 쓴 「천자문」이 일품이다. 「명산장(名山藏)」 권95에 의하면, 그가 소주부학(蘇州府學)의 학생신분이었을 때 매일 천자문을 열 번씩 임사하며 글씨를 연마하였고, 이후에도 각 서체로 천자문을 계속 쓰며 서법을 수련하였다고 한다. 집자성교서와 지영의 천자문의 필법이 강하게 드러나 있는 유려한 행초서로 좋은 서학자료이다.여기에 소개하는 행서시권은 권미의 관기에 '丁巳春三月卄日徵明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정(嘉靖) 36년(1557) 징명의 나이 88세 때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미수(米壽)의 글씨라지만 그 기개와 골기가 결코 쇠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한 필력을 구사하고 있는 징명의 만년 수작이다. 필의는 황정견과 심주의 서풍을 따르고 있지만 황풍이 강하며, 뛰어난 필력과 결구을 구사하고 있어 송대 이래 황산곡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그 내용은 이전에 호구(虎丘)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며 읊었던 칠언율시 4수이다. 그 필치와 내용이 흡사 황정견의 송풍각 시권을 보는 듯하며, 같은 글자도 빈출하여 좋은 대비를 이룬다. 송풍각 시권과 이 행서 시권을 번갈아 임서해보면 그 취의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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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2.17 23:02

고전 번역으로 학문 지형 바꾼다

"개인 문집 등 일반고전은 연간 20책 정도 번역하고 있는데 이를 연간 120책으로 늘린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번역물이 나오면 관련 분야의 연구가 확산되고 대중적 활용이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한문희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사업팀장은 번역원이 100년 이상 걸릴 주요 한문고전의 번역을 30년 안에 마무리하겠다며 최근 공고한 '권역별 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에 대해 15일 이같이 평가했다. 고전 번역은 고단한 작업이다. 본격적인 번역에 앞서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을 확정하고, 끊어 읽기가 없는 한문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거나 인명, 지명 등을 기호로 표시하는 작업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개인 문집이나 철학, 역사, 과학서 등 일반고전은 연간 20책을 번역하는 수준인데 3천700여책이 번역되지 않은 상태라 이대로라면 10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 ◆ 거점 연구소 20곳, 연간 120책 번역고전번역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고전번역원은 이제까지 자체적으로 해온 번역을 전국 각 지역에서 선정한 번역 거점 연구소에 맡겨 장기 계획으로 번역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사업에서 전국은 수도권, 중부권(강원,충청), 영남권, 호남권(제주 포함)의 4개 권역으로 나눈다. 올해는 21억원을 들여 전국에서 중형 연구소 6곳과 소형 연구소 4곳을 선정해 번역서 48책을 펴낼 계획이며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2012년부터는 20개 거점 연구소에서 140명의 고전 번역 인력을 확보해 연간 120책을 번역할 계획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미번역 일반고전은 30년 정도면 번역이 끝나게 된다. 거점 연구소별로 4~7명의 연구인력이 번역을 전담하게 된다. 필요할 때 지역의 원로 한학자에게 자문을 하거나 대학 고전 관련 학과와 연계할 수도 있다. 유학자 등이 남긴 개인 문집이 주 번역대상인데 문집을 쓴 인물의 출신 지역 연구소에서 번역을 담당하게 된다. 고전번역원은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전국적으로 고전 번역 인력층을 탄탄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대중적 고전 활용 대폭 늘 것한문희 팀장은 번역물이 학술 연구와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1971년 시작해 1993년에야 번역이 끝난 '조선왕조실록'의 예를 들었다. 그는 "실록에는 500년간의 천문기상 정보가 정확하게 기록돼 있는데 실록이 번역되자 천문ㆍ기상 연구 결과물이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또 '허준', '대장금', '왕의 남자' 등 실록에 짤막하게 언급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도 쏟아져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 문집은 실록보다 더 대단하다.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문집을 원문으로 보는 사람들은 전문 연구자로 극히 제한돼 있는데 번역이 되면 연구 성과도 늘어나고 문화계 종사자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생 출신 거상으로 흉년에 사재를 내놓아 제주도 백성을 구한 김만덕에 대해 실록에는 3줄 정도로 짧게 적혀있지만 어느 선비는 자신의 문집에 금강산에서 만덕을 본 사실을 남기고 있어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고전번역원은 번역이 끝날 때마다 평가와 검증 작업을 거쳐 책을 출간한다. 또 책 출간 이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일반인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신승운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은 고전번역원의 사업안에 대해 "기존 번역 인력의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인력을 기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예산이 끊기거나 하면 사업이 예정대로 안 될 수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일부 부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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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2.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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