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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전자책(e-북)을 비롯한 디지털 출판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해외 선례를 통해 국내 디지털 출판이 나아갈 방향과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은 19∼20일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제4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을 열어 '책의 진화와 디지털 출판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외국 전문가들로부터 해외 선례를 소개받는다. 기조강연자로 나서는 미래학자 제임스 데이터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장은 디지털 시대의 철학적 의미를 탐색하고 이런 시대의 세계 출판과 한국 출판의 미래를 전망한다. 또, 미국의 앤드루 앨버니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편집장과 일본의 호시노 와타루 문화통신사편집장이 각각 미국과 일본의 디지털 출판이 어디까지 왔는지 현황을 소개한다. 디지털 출판에 적극적인 미국 업체 사이먼앤슈스터의 캐롤린 리디 회장이 디지털 시장 진출 배경과 전략을, 우에무라 야시오 일본서적출판협회 이사가 시장 수요의 변화와 진화하는 마케팅 기법을 설명한다. 호주 퀸즐랜드 작가센터 대표 케이트 엘섬이 호주 사례를 중심으로 이제 출발 단계에 있는 전자책 서비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짚어본다. 국내에서도 박성철 국립디지털도서관 디지털총괄기획과 사무관, 이중호 북센 디지털사업본부장,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박영률 커뮤니케이션북스 대표 등이 국내 디지털 출판의 미래를 고민한다. 송영만 출판도시문화재단 실행이사는 "그동안 포럼에서 이념적이고 무거운 토론이 진행됐다면, 올해는 좀 더 현실적이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로 디지털 출판을 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출판도시문화재단은 27일 '아시아 차세대 북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제5회 동아시아 책의 교류' 행사를 진행한다. 국내에서는 정병규 정디자인 대표와 프리랜서 디자이너 오진경씨, 정재완 사이언스북스 디자이너가 참여하며 중국 한자잉(韓家英) 한자잉디자인 대표, 대만 샤오칭양(蕭靑陽) 샤우트 대표, 일본 시라이 요시하라 월간 '아이디어' 아트디렉터, 고다이라 마사요시 스튜디오 플레임 대표가 강연한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고분에 묻힌 16세 여성 순장자는 이미 사망한 정권의 핵심인물을 내세에서도 섬기고 봉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6세기 전후 독약을 마셨거나 질식사해 무덤에 함께 들어가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무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누워있던 남성 순장자는 죽어서 무덤에 묻힐 때 발가락이 없어 사슴의 발가락으로 온전한 모양을 갖추도록 한 것으로 연구됐다. 가야문화재연구소 측은 "정치·사회적으로 확실하게 그 권위를 보장받지 못했던 창녕지역 정치엘리트 집단은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정권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순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6일과 7일 전북대 삼성문화관 등에서 열린 한국고고학회(회장 이강승) '제33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는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송현동 15호분에서 나온 순장 인골 복원 연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해 큰 관심을 모았다.이번 연구는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고대 인골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인체와 문화의 복원을 시도한 고고학·유전학·생화학·법의인류학·물리학의 학제간 융합연구 사례로 그 의미를 인정받았다.'갈등과 전쟁의 고고학'을 주제로 꺼내든 이번 고고학전국대회는 청동기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와 전술, 군사체계 등을 분석하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시기 민간인 집단학살 사례 등을 다뤘다.류창환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장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분석해 고구려 기병을 기사형-장창무장형, 갑주무장형, 개마무사형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으며, 손준호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연구교수는 "청동기시대의 전쟁은 동일한 문화를 소유한 집단 간의 갈등이 대부분이었으며 다른 문화 집단간의 치열한 전쟁은 초기 철기시대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이영후)이 주관하는 '2009 아리랑 세계화 국제심포지엄'이 오는 10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 자리는 '아리랑, 6천만의 민요를 넘어 60억의 노래로'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 아리랑을 세계적인 문화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서 베스트셀러 '컬처코드'를 통해 문화에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짓는 코드가 있다는 주장한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아리랑을 활용한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이어 지리학자인 이정면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와 호주 시드니대학 키스 하워드 교수, 그리고 노르웨이 출신 유명 재즈 가수인 잉거마리가 각각 아리랑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말갈(靺鞨)족의 실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아직 이렇다 할만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말갈'이라는 명칭은 중국 역사서에 563년에 처음 등장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삼국의 건국 무렵부터 말갈 관련 기록이 나온다.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말갈을 진말갈이라 하고 그 이전인 삼국사기에 등장한 말갈을 위말갈이라고 구분한 정약용의 견해를 비롯해 낙랑과 고구려의 변방 주민 또는 피지배민을 칭하는 것이란 설 등 다양한 견해가 그동안 제시됐다. 고구려발해학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주최로 7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리는 '고대 동북아의 종족과 문화' 학술회의는 이례적으로 말갈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발표자 중 김진광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일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갈은 임진강ㆍ한강 상류와 신라 북쪽에서 출몰하며 백제ㆍ신라와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말갈로 불린 이들은 임진강과 한강 상류의 강변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적석총을 조영한 집단"이라고 '삼국사기' 본기에 나오는 말갈의 실체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또 그는 "이들이 고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필요에 따라 이동하는 세력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문화적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 국가단계로 성장하지 못한 독립된 집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경영실장은 '6-7세기 말갈 제부(諸部)와 고구려' 발표문에서 "말갈은 특정 시기의 만주지역 거주 종족을 일괄하는 명칭으로, 원류를 따지면 하나의 종족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며 "만주지역에서 산과 강을 따라 소집단별로 살아가던 고대 종족인데 그중에서 수와 당 초기에 대략 6-7개 큰 부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말갈 7부' 아래에 각각의 추장이 다스리는 수십 개의 부락이 있었으며 각 부의 인구는 대략 3만명 전후였다"고 덧붙였다. 권은주 경북대 강사는 "발해와 말갈 제부(諸部)는 건국 초기부터 연합을 이루며 당에 대항해 성장했으며 이후 발해는 말갈 제부의 대외활동을 철저히 통제해 나가면서 점차 통합해 나갔다"면서 "발해의 말갈 지배는 시기가 짧았으므로 발해 멸망 이후 발해 유민과 여진으로 분리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용가 최승희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한 가운데, 최승희를 신화화하는 데 머물렀던 국내 연구가 이제는 최승희에 대한 실체적 접근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해리 한국춤문화자료원 연구위원은 4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09 최승희 춤축제 국제포럼'에서 지금까지 국내의 최승희 연구는 생애와 무용 활동 등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쳐 최승희를 신화적 인물로 고착시켰다고 지적했다. '신화를 넘어서 실체적 연구로 나아가야'를 주제로 발제한 최 연구위원은 "모든 학문에서 역사 연구는 기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국내의 최승희 연구물 대부분이 연대기적 생애 서술, 무용 활동의 시대별 나열, 작품의 시대별 분류 등 역사적 고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최승희 연구는 월북 예술가에 대해 정부가 해금 조치를 취한 1987년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단행본 13건, 박사논문 3건, 석사논문 16건, 학술지 연구논문 42건 등 총 73건의 연구 성과물이 존재한다. 최 연구위원은 "이제 최승희 연구에서 필요한 것은 신화가 아니라 진실"이라며 "이를 위해 최승희의 춤과 삶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동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흐름 속에서 해석함으로써 최승희 춤의 실체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승희를 둘러싼 신화를 걷어내고, 실체로 나아가려면 무용계가 최승희의 친일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오는 8일 공개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에 최승희가 포함된 데 대해 무용계 일부가 비판하는 것과 관련, 그는 "확고한 증거가 있다면 진실로 인정하고, 밝히는 게 학자의 사명"이라며 "사전에 등재된다고 해서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과 춤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니며, 후세대 무용가들이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애순 중국 옌볜대 예술연구소장이 '최승희와 동양무용', 일본의 문학평론가 고오노 에이지는 '일본인들이 본 최승희'에 대해 각각 발표하고, 장주휘 전 중국발레무극단장,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 등은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도 들려줬다. 이애순 소장은 최승희의 무용이 한국, 일본, 중국, 북한 등 아시아 4개국이 근대 무용의 체계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최승희에 의해 동양 무용이 비로소 서양에 알려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1962년 무형문화재보호제도를 도입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무형문화재 관련 제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지난달 21일 유네스코 제35차 총회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유네스코 카테고리 2급기관인 아ㆍ태무형문화센터 설립을 승인받아 국제 문화유산 보호 정책을 주도하게 됐다.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센터는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정보와 네트워킹 활동을 주로 하게 된다. 아ㆍ태무형유산센터(소장 박성용)는 유네스코 승인을 기념해 3일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정보 및 네트워킹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세실 뒤벨 유네스코 무형유산과장은 기조연설에서 "최근 아부다비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무형문화유산 긴급보호목록에 제출된 등재신청은 15건에 불과했고 대표목록에 제출된 신청은 111건이었다. 이는 당사국들이 유산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인식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아직 수많은 무형문화유산이 소멸 직전에 처해있거나 보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등재된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가운데 아ㆍ태 지역의 유산이 44%를 차지하는 지역적 불균형이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많은 나라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 체결되기 훨씬 전부터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돈희 동국대 명예교수는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지역 역량강화와 국제협력'이란 발표에서 "무형문화유산 목록을 등록하고 지정하는 데 있어 지역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면서 "지역민들이 그들의 무형문화유산을 지정하도록 하며 정부나 연구기관, 비정부기관은 그들을 돕고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무형문화유산의 가장 큰 잠재적 가치는 세계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특정 지역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지구촌 어디를 가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는 국내외 무형문화유산 분야 전문가 및 관계기관 대표 20여명이 참가해 무형문화유산 관련 정보 체계 구축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논의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프리어갤러리는 4일 프리어갤러리 한국실 개편과 관련해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프리어갤러리는 2011년까지 한국실을 더 좋은 위치로 이전해 개편할 계획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큐레이터를 파견하고 유물을 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를 지원하기로 했다. 프리어갤러리는 스미소니언박물관 산하기관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 미술 중심의 박물관으로 도자 및 고고학 유물을 중심으로 500여점의 한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993년 한국실을 개설해 유물 30여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개편 이후 전시 유물을 50여점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역사상 춘추 전국을 통일한 진(秦)과 남북조를 통일한 수(隋)는 서로 닮은 점이 있다. 7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오행상 불(火)을 종식하고 새로운 물(水)의 시대를 열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육수법(六水法)에 의하여 제도를 개편하였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서동문(書同文)이라는 문자통일 정책을 추진하고, 춘추전국을 풍미한 제가들의 사상을 일시에 단절하는 분서갱유를 단행하였다. 관용과 포용보다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한다는 중앙집권적 법치주의를 표방하였으나 시황제의 죽음 이후 동력을 상실한 진나라는 결국 15년 만에 한나라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나라는 400여 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며 중국문화의 첫 번째 봉우리를 이루었다.한 이후, 위진에서 남조와 북조로 이어지며 점차 분열되었는데 북조를 통일하고 세운 나라가 바로 수나라이다. 건국 후 검약을 솔선하고 사치를 금하며, 불교를 장려하고 형법의 율(律)과 관제의 령(令)을 명문화하여 율령국가로서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는 시험제도는 '과거'의 효시가 되었으며, 중국의 5대 운하가 수대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수문제가 죽은 후 왕위계승 과정에서 패륜이 자행되는 등 정체성을 상실하고 결국 4제(帝) 37년의 왕조를 마감하였다. 이를 계승한 당(唐)은 수나라의 국가체제를 이어받아 300년의 명맥을 유지하며 중국문호의 두 번째 봉우리를 이루었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하여 진한제국과 수당제국이라 부르게 되었다.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불교를 표방하여 일부 사경이 남아있으나 서예자료는 지극히 미약한 편이다. 「수서(隋書)」 등의 정사에 서가로서 거론된 사람은 10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술서부(述書賦)」에 방언겸(房彦謙)과 노창형(盧昌衡)의 이름이 올라 있고, 당의 명서가 저수량의 스승으로 전해지는 사릉(史陵), 계법사비(啓法寺碑)를 쓴 정도호(丁道護, 생졸미상)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남조 진(陳)과 수대에 걸쳐 생존한 지영(智永, 생졸미상)은 왕희지의 7대손으로서 이름은 법극(法極)이며 회계 사람이다. 형(惠欣)과 함께 출가하여 오흥의 영흔사(永欣寺)에 거처하였는데 진초(眞草) 천자문 800본을 임서하여 강남의 여러 절에 한 본씩 나누어 준 일은 유명하다. 이 일로 서명이 알려지자 글씨를 구하려는 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심지어는 대문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부득이 철피(鐵皮)로 문을 싸서 막았는데 이로부터 철문한(鐵門限)이라는 말이 생겼다.지영은 가법(왕희지)을 계승하기 위하여 루에 올라 공부하며 "書不成, 不下此樓" 즉 "글씨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루를 내려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30년 동안 숙련하였다고 한다. 닳은 붓이 상자에 가득 차 더이상 둘 데가 없자 묻었는데 이를 퇴필총이라 한다. 역대 서론가들은 고습(苦習)하여 마침내 그의 진수를 얻은 지영의 서를 '정숙(精熟)'이라 귀결하며, 기이함이 없는 전형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정숙'은 법이 정밀하고 매우 숙련되었다는 말이다. 소동파도 "정밀함이 극에 달하여 도리어 소담(疏淡)하며, 마치 도연명이 시를 보는 듯하다."고 평하였다. 왕법을 계승하여 법조(法祖)가 된 지영의 「진초천자문」은 이후 손과정, 회소를 비롯하여 조맹부, 문징명 등의 천자문에 영향을 미쳤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전주역사문학학회(회장 나종우)와 전주문화원(회장 서승)이 5일 오전11시 전주리베라호텔 백제홀에서 '조선조 기호학파의 학맥과 전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을 갖는다.이번 학술대회는 조선 500년을 이어온 전북 유학의 학맥을 통해 전북 정신의 뿌리찾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변주승 전주대 교수의 사회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나종우 원광대 교수가 '전북의 유학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맡는다. 유학과 선비정신은 지행합일사상으로, 국난 극복의 저항정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황안웅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는 '조선 중기 전북의 유맥(儒脈)에 대한 일 고찰'을 통해 포은 정몽주에서 퇴계 이황으로 이어지는 계보 보다 전주인 진일재 유승조를 거쳐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의 계보로 구분지어야 한다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다.이용엽 동국진체연구소장은 '유극수 신도비에 나타난 전북의 학맥'을 통해 유분의 제자로 이계맹을 비롯해 후탄 이경동, 한재 이목, 건계 나안세로 이어지는 계보의 근거를 제시하고, 전북에도 학통이 분명하게 존재했다는 점을 언급한다.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전주 유씨의 금석문과 편액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유습·삼한국대부인·유극수 신도비 등과 고산과 인후동의 시사재, 승유재, 용강서원 등의 편액을 조사해 전북 유학의 학맥을 고찰한다.이후 종합토론이 이어질 계획. 이재운 전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유본기 용강서원 별임, 안진회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서홍식 전북역사문학학회 이사가 참여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이 개관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2일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에서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어령)와 국립중앙박물관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국 국ㆍ공ㆍ사립ㆍ대학 박물관과 미술관 관장, 세계박물관협회(ICOM) 회장 등 국내외 박물관 종사자와 문화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했다. 박물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과 유상옥 코리아나화장박물관장이 문화훈장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기념식이 끝나고 이날 신설된 고조선실을 관람했다.
'공공문화 체험프로그램 개발 및 전주시립도서관 발전방향 토론회'가 4일 오후 2시 전주시의회 5층 간담회장에서 열린다.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날 세미나는 시립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과 작은도서관 활성화 대책 등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안찬수 책읽는사회 문화재단 사무처장이 '전주시 도서관 현실과 정책의 방향'을, 허순영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이사가 '지역을 혁신한 도서관의 도시 순천 이야기'를 주제로 발제한다.토론자로는 김남규 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과 서윤근 시의원, 유금호 시립도서관장, 김은자 도서관사랑모임 회원이 참여한다.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7세기 백제 궁궐의후원(後苑)과 수로가 발견됐다. 1989년 이후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을 발굴조사 중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올해 그 북편 구릉지역 조사한 결과 백제시대 궁성 내부 후원과 물길(곡수로<曲水路>), 보도(步道) 시설, 석축시설 및 건물터 등을 확인했다고29일 말했다. 물길은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로 크게 두 줄기가 확인됐으며, 그 중간에는 물을저장해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네모난 집수시설(集水施設)이 드러났다. 곡수로는 너비 80~140㎝이고 단면은 바닥이 편평한 U자형으로 현재까지 확인된총 길이는 228m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庭園)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사행수로(蛇行水路)와유사한 형태지만, 이들과는 달리 왕궁리 유적 수로는 바닥이나 측벽에 자갈돌이나판석 등의 석재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나아가 수로 내부에서는 유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으며 주변에서 백제시대 기와등이 소량 출토됐다. 부여연구소 김낙중 학예연구관은 "신라시대 포석정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에도물을 대기 위한 수로는 있지만 이렇게 구릉 전체를 이용한 큰 규모의 수로는 없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곡수로가 궁성 내에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역할뿐만 아니라 정원과 어우러진 조경 공간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 동진(東晉)시대부터 유행했고, 일본 헤이죠큐(平城宮) 동원정원(東院庭園)등에서 채택된 구불구불한 물길이 후원 공간의 중심적인 요소로 확인돼 동아시아 고대 원림의 조영방식에 대한 비교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연구소는 평가했다. 연구소는 또 왕궁리 유적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제석사지(사적 제405호)에대한 2차 조사를 통해 가람 배치가 기본적으로 백제 사비시대(538~660년) 사찰의 그것과 동일하며, 그 규모가 매우 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확인된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이외에 회랑지, 중문지, 동ㆍ서 건물지가확인됐다. 목탑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42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된 동회랑지는 폭 7.8m로,폭 6.8m인 미륵사지 회랑 백제 사찰의 회랑 가운데 가장 넓다. 또 목탑지와 금당지 사이의 서편에서 목탑과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한 방형 건물의 기초부(동서 21.5m, 남북 20.8m)가 새롭게 확인됨으로써 제석사의 조성 및 변천양상을 밝히는 데 새로운 단서를 확인하게 됐다. 건물 기초부는 현재의 지표 아래로 130㎝ 두께가 남아 있으며, 특히 목탑 기단기초에서 보이는 달구질 흔적(건물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흔적)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이 방형 건물은 목탑과 그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목탑과 유사한성격의 건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설명 = 왕궁리유적 곡수로와 제석사지 동회랑지(맨아래)>
전주·전북 정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역사서에 보이는 전라도에 대한 혹평 등 소극적·부정적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전북 문화 정체성의 탐구'를 주제로 28일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에서 열린 전북문화원연합회(회장 이복웅) '제7회 향토문화연구심포지엄'에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라도에 대해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기술해 놓은 「택리지」 등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은 조선시대 3대도시 혹은 4대 거점도시로 거론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전라도에 대한 통치자의 견제에서 비롯된 성향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전주·전북 정신에 대한 소극적·부정적 시각'을 발제한 이관장은 "전주·전북을 바라보는 시각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점들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이런 시각이 타자에 의해 설정되고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낙후된 현재 처지에 의해 고착된 결과인 것 같다"며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 정신이 지역 발전 전략과도 직결되어 있는 만큼 가능한한 지역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또 전주·전북의 대표 정신으로 자주 거론되는 '저항정신'은 소외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는 점에서 '변혁의 정신'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이관장은 "지역 정신의 정립은 지역민들의 결집과 지역의 대외 이미지 구축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올바른 지역 정신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전북 지역문화와 그 특성'을 통해 전북 문화의 특성을 크게 '농경문화'와 '선비정신과 절의(節義) 문화'로 본 나종우 원광대 교수 역시 "오늘날 경쟁 주체가 국가보다는 지역 사회가 되면서 지역의 역량이 중요한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나교수는 "지역 문화라고 하면 으레 중앙문화에 대한 변방문화로서 지방 문화만 생각하기 쉬운데, 일정한 지역적 범주 안에 형성된 공동체문화를 가리킨다"며 "지역 문화의 범주에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나름대로 새롭게 만들고 개발한 것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전북문화원연합회 이복웅 회장은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문화산업시대가 되면서 무분별하게 문화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28일 시 승격 60년을 기념해 지난 60년의 발자취를 담은 '전주시 60년 일지'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전주부에서 전주시로 승격된 1949년 8월 15일부터 최근까지 지역에서일어난 주요 사건과 사고, 행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쌀과 커피 값, 행정시책 등도 포함됐다. 전주시 성하준 홍보담당관은 "전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유용한 자료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한글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 중인 세종사업에 대한 자문 위원회로 '세종사업 위원회'가 출범, 27일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어령 전 장관이 공동 위원장을 맡으며 권재일 국립국어원장, 김승곤 한글학회장, 조중빈 국민대 교수, 이상봉 패션디자이너 등 10명의 위촉직 위원, 7개 부처 차관으로 구성된 7명의 당연직 위원, 간사 2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됐다. 문화부는 이날 낮 프라자호텔에서 연 세종사업 위원회 1차 회의에서 로마자표기법, 외래어표기법을 비롯한 어문규범 정비 계획, (가칭)한국어지식대사전 편찬, 세종학당 브랜드 통일화, 한글문화관 건립 등 세종사업의 과제별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위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제안됐던 세종대왕릉과 연계된 여주 한글테마파크에 대해 사업성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동진의 귀족문화를 계승한 남조는 이왕(二王)의 필법을 전승하는 한편 문화의 이양과정에서 독특한 미감을 지닌 예해(隸楷)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이찬비(찬보자비와 찬용안비)이다. 남조 마애의 대표작으로 예학명(514)이 있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평탄한 남조문화의 역량을 드러내 보이는 것들로서 서예사적 가치를 지닌다.이에 반하여 화북지방의 이민족들이 난립한 오호십육국은 국가의 존망을 두고 치열한 각축을 벌였으며, 이를 평정한 위(魏)나라가 비로소 강남의 송왕조와 대응함으로써 남북조시대가 병립하게 된다. 북조는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웅강(雄强)한 필치를 펼치며 남조와는 다른 지역적 특성을 나타냈다. 북위는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국가로 군림하며 북조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국력을 바탕으로 북조의 패권을 잡은 북위(효문제)는 북방민족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중원문화의 지배를 위하여 낙양(洛陽) 천도를 단행한다. 이처럼 한화(漢化) 정책의 일환으로 단행된 낙양 천도로 인하여 남조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지만, 한편 북조의 문화가 중원에 뿌리를 내리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북조의 서예자료는 대부분 석각에 편중되어 있다. 비와 묘지명, 조상기, 마애 등 뛰어난 석각들이 매우 풍부하다. 북위 말의 '장흑녀묘지(張黑女墓誌)'처럼 지영(智永)의 '천자문'을 연상케 하는 완전히 남조화된 것도 있으며, 남조의 마애비 '예학명'에 비길 만한 것으로 섬서성의 '석문명(石門銘)'과 산동성의 '정희하비(鄭羲下碑)'처럼 독자성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러한 남조와 북조의 서예적 특징을 구별하여 서예사 연구에 적용한 사람은 청나라의 완원(阮元)이다. 그는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북비의 정통성을 들어 비학(碑學)을 주장하였고, 이는 포세신(包世臣), 강유위(康有爲) 등을 통하여 계승되었다. 이왕을 중심으로 한 간찰 위주의 첩학(帖學)보다 서법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엄정한 비문서체를 통하여 글씨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연경(燕京)에서 완원과 사제의 연을 맺은 이후 '남북서파론'과 비학이 추사 서예학의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북조의 수많은 석각들 중에서도 서예가들의 이목을 집중한 것이 '장맹룡비'다. 북위 정광(正光) 3년(522)에 산동성 곡부의 공묘(孔廟)에 세워진 것으로, 비액에 '魏魯郡太守張府君淸頌之碑' 3행 12자의 해서가 새겨져 있어 장맹룡의 덕을 칭송한 송덕비임을 알 수 있다.청말의 강유위는 '광예주쌍즙'에서 "장맹룡비는 마치 주공(周公)이 예법을 만든 것처럼 일삼은 것들이 모두 아름다우며, 정자체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들 중에서 종주가 된다. 결구가 매우 뛰어나며 변화가 끝이 없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필의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북조의 전통을 계승한 당해(唐楷)가 횡획과 결체에서 좌양우음의 법칙을 보이는 데 반하여, 장맹룡비는 좌음우양을 경향을 보이고 해서이면서 팔분서(八分書)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남조의 영향이 섞이지 않고 순일하게 북조의 웅강한 멋을 표현하여 풍격이 높다. 다만 추사(秋史)가 경계한 것처럼 북조의 비들은 변화가 심하여 자법(字法)에 대한 면밀한 공부가 요구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2009년도 조경묘·경기전 대제 봉행이 26일 오전 10시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에서 이동선 전북경찰청장과 이강안 완산구청장 전주 이씨 종약원 회원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이날 조경묘 대제에는 이준기 상임고문이 초헌관, 이강안 완산구청장이 아헌관, 이태용 종무원장이 종헌관으로 참여했다.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경기전 경내 북쪽에 있는 조경묘는 1771년(영조 47) 이득리(李得履) 등 7도(七道) 유생들의 상소로 창건된 것이다.경기전 중앙대제 봉행(음력 9월9일)과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유형 제 16호인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조경묘를 기려왔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과 업적 등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집필한 미완의 원고 '동양평화론'에 초점을 맞춘 학술대회가 열렸다. 26일 안중근ㆍ하얼빈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미래' 국제학술회의에는 한ㆍ중ㆍ일 학자 20여명이 모여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했다.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동양평화론'에 나타난 안중근의 동아시아 전략은 막연히 한ㆍ중ㆍ일 3국이 연대, 제휴해야 한다는데 머물지 않고 다자간 협의기구 성격을 띤 평화회의 건설을 제안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면서 "동양의 범주에 동북아의 3국 외에 시암(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까지 포함시킨 지역공동체 구상을 펴고 있음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그는 "한ㆍ중ㆍ일 동양 3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공동체를 결성하자는 동양주의를 몸으로 실천한 안중근은 제국주의 시대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취급받았을지라도 탈근대, 탈서구중심주의가 도래한 21세기의 동아시아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단순히 한ㆍ중ㆍ일 자유무역협정, 동북아개발은행 같은 경제 공동체의 논리에 한정되지 않고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선 문명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논하려면, 100년전 동아시아인들에게 '동양평화론'이 던진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쑤용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심각하게 비판하면서도 진정한 인내심을 가지고 일본을 계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서 "안중근이 가졌던 평화의 희망은 침략과 확장 노선을 분명히 밝힌 일본 군국주의 앞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배부른 희망으로 보였으나 그가 평화를 희망했다는 점은 결코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술적인 면에서 안중근 의거의 구체적인 사실이나 이 사건이 미친 영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동양평화론'에 종합적으로 드러난 안중근의 사상을 살피는 것이 진정으로 동아시아 학술을 발전시키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는 '안중근 연구가 나아가야할 길'이라는 기조연설에서 "안중근 자료 전집 편찬은 늦출 수 없는 당면 기본 사업"이라면서 "안 의사의 하얼빈 의열투쟁은 그 전후 있었던 이준의 헤이그 순국과 장인환, 전명운의 샌프란시스코 의거 등과 밀접히 연관된 정황이 발견되므로 의열투쟁의 성격과 계보를 밝혀 그 의의를 정립하는 심층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27일까지 계속되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의 현대적 의의'(마키노 에이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고종황제'(이태진), '안중근 의거의 중국에 대한 영향과 그 평가'(최봉룡)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집. 더구나 저자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68-?)이다. 그럼에도 더욱 의아스런 대목은 이렇게 중요한 그의 문집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온전한 번역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최치원 전문가인 장일규 국민대 박사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단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한다. 단순히 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신라와 당나라의 정치ㆍ역사ㆍ문화에도 정통해야 한다.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문체를 구사한 그의 문장은 난삽하기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제1의 문호라고 할 만한 서거정도 "최치원의 문장은 이해할 수 없는 데가 많은데 그건 아마도 문체가 법도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토로했을까? 이런 최치원의 계원필경집이 마침내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과거 우리의 한문고전 번역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은 민족문화추진위원회를 대체한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이 번역원 전환 이후 그 회심작으로 내세운 성과물이 계원필경집 역주본이다. 최치원의 글은 계원필경집과 고운집(孤雲集)이라는 두 가지 문집으로 정리돼 있다. 고전번역원은 이 두 가지 문집을 계원필경집 2권, 고운집 1권의 전 3권으로 내기로 하고, 최근 고운집과 계원필경집 제1권을 완간했다. 계원필경집 2권 또한 사실상 역주가 완료된 단계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내년에 출간한다. 역주는 올해 환갑을 맞은 고전번역원 국역위원 이상현(李相鉉.60)씨가 했다. 전주 출생으로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사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강제해직 된 뒤에는 고전 연구와 번역에 투신했다. 두 문집 중에서도 계원필경집(전 20권)은 최치원이 신라로 귀국한 직후에 당나라에서 절도사 고변 휘하에서 문장을 담당하는 막료로 활동할 때 지은 시문 중에서도 시 50수, 문 320편을 최치원 자신이 직접 골라 엮어 신라 헌강왕에게 바쳤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제목 중 계원(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인 곳을 일컫는 명사이며, 필경(筆耕)은 군대 막사에서 거주하면서 문필로 먹고 살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계원필경집은 고변을 중심으로 해서 숨가쁘게 전개된 당나라 말기 중국과 신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시대 양상을 고스란히 증언하는 제1급 문헌인 셈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계원필경집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계원필경집과 고운집 완역을 기념해 고전번역원과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는 3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강대 다산관에서 '국제인 최치원의 사상과 저술'을 주제로 내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장일규 박사와 김복순(동국대) 교수, 중국 난징사범대학 당인핑 교수, 일본 규슈대 하마다 고사쿠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최치원 전문가들이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2010년 전주한옥마을에 개관하는 완판본문화관과 부채문화관, 소리문화관.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사장 라종일)이 전주의 대표 브랜드를 내세운 3대 문화관을 놓고 운영방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28일 오후 3시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리는 제23회 천년전주문화포럼 '3대 문화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현재 전주시는 3대 문화관을 통해 완판본과 부채, 소리를 전시·교육할 계획이다. 문화관 별로 명창, 장인 등 전문가를 주도적으로 참여시키며, 자립운영을 원칙으로 문화관별 특성에 따라 운영비를 연차적으로 차등지원하며 줄여나갈 예정이다. 또한 전주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한국전통문화아카데미 사업과 연계, 3대 문화관을 문화체험관광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곽병창 우석대 교수가 소리와 부채문화관을, 이태영 전북대 교수가 완판본문화관을 중심으로 운영방안을 발제하며, 변주승 송화섭(전주대) 정회천 교수(전북대)와 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이 토론에 참여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종합토론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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