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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가 11일, 문화재청에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豊南門)의 이름을 '전주부성 풍남문'으로 변경해줄 것을 건의했다.문화재청이 전국의 국보와 보물에 지역 이름을 넣기로 하고, 풍남문의 이름을 '전주읍성 풍남문'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시한 것에 따른 것.시는 건의서에서 "전주는 조선시대에 전라감영이 있었던 대도시였으며, 행정 명칭도 '전주부'로 쓰였다"며 "이에 걸 맞게 전주읍성 대신 전주부성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한편 문화재청의 방침에 따라 보물 제1578호인 경기전의 이름도 '전주 경기전'으로 바뀔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시 갈산동 관음사(대한불교조계종)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입상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됐다.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은 방형의 긴 얼굴과 좁은 어깨, 형식화된 의습표현 등 17세기 보살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보살상 이운과정에서 확인된 복장유물 중 만력 33년(1605년)에 쓰여진 발원문에 따르면 "북암이 병란 때 불타 다시 불사했고 1605년 문수·보현·관음·지장, 약사·미타, 지장탱·시왕탱 등을 원오·충신·청허·신현·신일비구가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익산시는 발원문에 기재된 존상들이 모두 남아있거나 북암의 현재 위치가 파악되는 않았지만 17세기 초 제작된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의 보존상태도 좋고 시대성이 반영된 양식적 특징을 지닌 점, 정확한 제작연대, 제작자, 유래 등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 그 가치가 중요시 되어 복장유물과 함께 이번에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1762년 10세의 세손이던 정조와 9세 세손빈이 혼례 때 입었던 옷이 재현된다. 사단법인 한국궁중복식연구원(원장 유송옥)은 20~24일 강남구 삼성동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기획전시실에서 '왕세손 혼례로의 주말나들이' 전시회를 개최한다. 궁중복식연구원은 당시 혼례에 대한 기록인 '정조효의후 가례청의궤(正祖孝懿后 嘉禮廳儀軌)'와 혼례 행렬을 그린 반차도 등을 바탕으로 의복을 고증해서 제작했다. 세손의 대례복인 면복(冕服), 세손빈의 적의(翟衣)와 노의(露衣) 등 왕실의 복식을 생생하게 재현했으며 의복과 장신구 등 80점을 전시한다. 유송옥 원장은 "왕실 문화는 우리나라 문화의 정수"라면서 "당시 복식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도 기능과 디자인이 탁월하게 결합돼 있어 선조들의 심미안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은 무료. ☎02-3675-0027.
한나라 때 유통된 동전인 오수전(五銖錢) 17점을 꿴 동전 꾸러미가 발견된 인천 영종도 운북 복합레저단지 조성사업 예정 부지에서 국내(북한 제외)에서 가장 오래된 철제 갑옷의 찰갑(札甲ㆍ갑옷비늘)이 출토됐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슴베(자루)는 쇠, 촉은 청동으로 제작한 화살촉인 철경동촉(鐵莖銅鏃)이 19점이나 수습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은 레저단지 조성업체인 리포인천개발㈜ 의뢰로 영종도 북동쪽 해안가와 인접한 운북동 일대를 조사한 결과 기원전후 무렵의 초기 삼국시대 주거지 2기와 성격 미상의 수혈(竪穴. 구덩이) 9기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중 훼손이 심각한 2호 주거지에서는 끈으로 꿴 오수전 17점과 함께 화살촉 9점이 출토됐으며, 평면 장타원형인 1호 주거지(장축 572㎝, 단축 249㎝, 깊이 38㎝)에서는 찰갑편을 비롯한 철기류와 화살촉 11점이 출토됐다고 발굴단은 덧붙였다. 이 중 철제 비늘갑옷인 찰갑(札甲)은 출토 숫자가 1점에 불과하지만 "남한지역에서 출토된 찰갑 중 가장 오랜 시기에 속하는 유물로 한반도에서 찰갑이 언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발굴단은 말했다. 이번 유적이 형성된 시기를 연구원은 "빠르면 기원전 1세기, 늦게는 기원후 1세기대"라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백제 유적으로는 몽촌토성에서 뼈로 만든 찰갑이 발견됐으며, 신라나 가야의 경우에는 찰갑보다는 판갑(板甲)이 주로 발견됐지만 모두 그 제작 시기가 3세기 말, 또는 4세기대 이후에 속한다. 쇠 찰갑은 북한이나 만주지역에서도 이처럼 빠른 시대에 속한 것은 발견된 사례가 매우 드물며 "최근 중국 지린성 압록강 유역에서 기원전 1세기 혹은 기원전후 무렵 쇠 찰갑을 발굴한 사례가 중국에서 보고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대전대 이한상 교수가 말했다.
가나자와시가 진행하고 있는 '가나자와성 원정비 사업'은 가나자와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 공원화해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이다.마루야마 이시카와현 공원녹지과장은 "가나자와성은 이시카와 현민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특별명승지 켄로쿠엔과 함께 현은 물론 가나자와시의 상징적인 공간"이라며 "현민의 귀중한 공유 재산인 가나자와성 공원을 도심부의 새로운 활력소로 만드는 도시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마루야마 과장은 "역사 건축물의 복원에 있어서도 지나간 옛 성곽의 분위기와 역사를 느끼게 하는 공원으로 정비하려고 한다"며 "구체적인 정비에 있어서는 전문가와 현민 대표 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가나자와성은 1583년 마에다 도시이에가 성에 입성한 후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1602년 천둥과 번개로 천수각이 소실됐지만, 천수각은 재건되지 않고 혼마루에 산카이야구라와 혼마루고텐이 건축됐다.이후 가나자와성은 1631년, 1759년, 1881년 등 세 번의 큰 화재로 소실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하며 성 구조가 변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성의 중심이 혼마루에서 '1000장의 타타미가 깔린 어전'으로 불려질 만큼 장대한 건물이 있었던 니노마루로 옮겨졌다.1949년에는 가나자와대학이 설립돼 캠퍼스로 이용돼 왔지만, 1978년 이전을 결정하고 1995년까지 가나자와시 교외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1991년 '가나자와대학 철거지 등 이용간담회' 등을 통해 1993년 3월 '공원화와 문화적인 시설 이용을 기본으로 한다'는 큰 틀이 결정됐다. 1996년 1월 도시 공원으로 이용하는 도시계획을 결정, 같은 해 3월 가나자와 중심부에 28.5㏊(동경돔의 6배 이상 넓이) 공원이 탄생했다.가나자와성 건물들은 1999년 복원 공사에 들어가 2001년 히시야구라, 고줏켄나가야, 하시즈메몬쓰즈키야구라 등이 복원됐다. 다행히 옛 지도나 사진 등의 자료가 많이 남아있어 전통적인 목조축조공법을 기본으로 1809년 모습으로 복원됐다. 건축기준법에 따라 콘크리트의 기초 보강, 기둥을 굵게 하는 보강공사, 내화보드 및 스프링쿨러 설치 등도 이뤄졌다.니노마루에서 가장 높은 3층의 망루인 히시야구라는 둔각 100도, 예각 80도의 건물로 기둥이 전부 마름모형인 것이 특징이다. 니노마루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천수각이 없는 가나자와성의 상징적 건물이다. 하시스메몬쓰즈키야구라는 니노마루 정문의 하시즈메몬 입구에 딸린 3층의 망루로, 산노마루에서 전투가 발생했을 때 지휘소였다.히시야구라와 하시즈메몬쓰즈키야구라를 연결하는 벽면에 이어 지어진 2층 건물 고줏켄나가야는 무기창고였다. 산노마루측과 니노마루측의 창문 배치가 다른 것이 특징. 이는 전쟁시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산노마루측은 1·2층 창을 상하 교대로 배치했으며 니노마루측은 1·2층 창을 상하 같은 위치에 배치했다. 건물은 그 자체가 전시물로서, 컴퓨터 그래픽 영상, 발굴조사 출토품, 각종 모형 등을 전시해 내부 구조를 잘 알 수 있도록 고안됐다.성이 폐쇄된 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 가나자와성은 건물의 반 이상을 잃었지만, 지난날의 유적은 매장문화재로 남아있다. 성터를 상징하는 돌담과 굴, 여러번 재건된 건축물의 흔적, 기와와 도자기 등 가나자와성의 변천사는 물론 각 시설의 기능과 구조, 당시의 기술력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일본 가나자와도 항상 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챙겨주는 것은 분명하다. 전주의 자매도시답게 비슷한 고민을 앞서 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전라감영 복원문제를 등짐삼아 짊어지고 다시 찾은 일본의 전통문화도시 가나자와에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 해결의 원칙과 방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찾았을 때에는 복원된 가나자와성(金澤城)의 규모에 압도되어 후백제 전주성도 복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이번에 좀 더 구체적인 물음을 가지고 찾았을 때에도 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인 놀라운 풍광에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그것은 눈이 아니다. 납으로 만든 기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 것이다. 그런데 4년 전과는 분명 달라 보였다.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몇몇 건물이 보강되고 해자(垓字)에 세월의 켜가 쌓이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오바 요시미 선생(가나자와학원대학 교수·이시카와현 비주얼 디자인협회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전통은 창조다!'. 이 분의 지론이다. 그래서 복원보다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렇게 보였다. '직인대학'이나 '시민예술촌' 그리고 지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21세기 미술관'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의 기획물들이다. 가나자와 하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거리 '히가시 차야가이'나 무사 저택 등 많은 역사 유적들이 있는데도 화려한 금박공예나 고급 브랜드의 기모노 등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런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그분이 복원의 의미를 묻자 '백년 후의 국보를 만드는 일이다!' 하는 것이다. 그랬다. 1996년부터 복원을 시작한 가나자와성은 벌써부터 당당한 국가적 보물의 '아우라'를 내품고 있었다!복원은 단순히 끊긴 역사를 잇거나 볼거리 하나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의 예지를 모아 다음 세대 국보가 될 만큼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경제살리기나 지역활성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심오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전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기대며 살아갈 수 있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와 같은 전통 하나를 우뚝 세워가는 일이다. 고대 로마 유적이 현재 이탈리아인들을 먹여 살리듯. 그런 의미에서 '복원은 창조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제멋대로 '상상의 정비'나 '상상의 복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가나자와성도 철저하게 고증된 것만 복원정비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을 꿈꾸고 있는 마당에 허투루 대강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그 예산규모만 해도 그 진정성은 확인할 수 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제 1차 복원에 쓰인 경비가 252억엔, 토지매입비 112억엔을 뺀 순수 복원정비경비만 140억엔, 우리 돈으로 1700억원. 이 예산의 전부를 가나자와가 속해 있는 이시카와현에서 부담했다. 2006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진행될 2차 복원 예산도 50억엔(600억원). 그런데 이제부터는 역사문화의 복원에 나선 국가가 예산의 절반을 보조한다는 것이다.또 하나, 오오바 선생이 강조한 가나자와성 복원의 의미는 그 밀폐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열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1546년 가나자와미도가 창건된 이래 이 성은 성주들만을 위한 금단의 영역이었다. 명치시대에 병부성, 육군성이 들어서면서도 역시 출입금지의 땅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뒤 가나자와대학이 들어서면서 일부에게 해금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의 발걸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복원을 시작하는 동시에 공원으로 재정비하면서 비로소 주민들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가나자와시민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개방된 것이다. 실로 450년 만의 일이다.50칸 집이라는 의미의 고주켄나가야를 이용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성 안과 밖의 광장에서는 대형 음악회 등 시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들이 다채롭게 꾸려지고 있다. 복원을 통해 공원으로 거듭나면서 성 앞쪽의 일본 3대 명원(名園)의 하나인 켄로쿠엔과 더불어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인구 46만의 가나자와시에는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당당히 서게 된 것이다.더 중요한 것은 이 유형의 건축물 복원을 통해 무형의 일본 전통목조공법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명치이후 목조성곽으로는 일본 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고주켄나가야 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둥과 대들보를 짜 맞춰 거대한 뼈대를 이루는, 일본 최고의 전통 대목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 내부를 잠깐만 둘러보아도 그 정교한 '짜맞춤공법'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 전통목조공법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건물 곳곳에 벽 투시공간을 마련하여 내부구조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배려를 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수요가 사라지면 기술도 사라지게 마련. 이런 대규모 목조 건축의 복원을 통해 최고의 목조공법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직인대학' 등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니 이를 두고 일석이조라 하는 것인가?복원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미래로의 당찬 전진의 발걸음이다. 왜곡의 역사를 떨치고 스러져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백년 후의 국보'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유형의 건축물을 남긴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무형의 국보급 공법, 그 미학까지 후세에게 오롯이 전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전라감영의 복원도 그 당당한 '아우라'까지 되살리는, 그런 진정성이 결여된 채 시늉만 내는 것이라면 아직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본 가나자와=이종민 기획 참여 전문가(전북대 교수·전라감영 전주4대문 복원 통합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전북 익산시 관음사의 목조보살입상이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익산시는 "갈산동에 있는 관음사(대한불교 조계종) 법당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됐다"고 11일 밝혔다. 익산시 관계자는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은 방형의 긴 얼굴과 좁은 어깨선 등이 17세기 초인 조선 중기 보살상의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신라 시대의 최치원부터 구한말의 최익현까지 우리나라 주요 인물의 문집을 엄선한 '한국문집총간' 정편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이 10년 만에 끝났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은 최근 '한국문집총간' 정편 663종 350책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끝내고 이달 말 웹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0일 밝혔다. 속편 150책 가운데 17책도 고전번역원 한국고전DB 사이트(http://db.itkc.or.kr)에서 함께 볼 수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디지털화 작업에는 10년이 걸렸으며 예산은 55억원이 들었다. 글자 수는 무려 1억6천만자나 된다.통일신라시대의 '계원필경'(최치원)부터 고려시대의 '동국이상국집'(이규보), '익재난고'(이제현), '목은집'(이색), '포은집'(정몽주), 조선시대의 '삼봉집'(정도전), '화담집'(서경덕), '퇴계집'(이황), '율곡전서'(이이), '백사집'(이항복), 성호전집'(이익), '연암집'(박지원) 등 662명의 문집을 시대순으로 총망라했다. 인생의 정서적 감흥을 노래한 시부류(詩賦類), 생활실용문인 서독류(書牘類), 정사에 관한 의견서인 주소류(奏疏類),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의견을 모은 잡저류(雜著類)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모여 있다. 이미 인터넷 서비스 중인 289책에 더해 이번에 작업을 마친 것은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 구한말 매천 황현의 '매천집' 등 조선후기의 문집 61책이다. 고전번역원 백한기 고전자료센터 팀장은 "조선후기의 자료에 대한 연구자들의 요구가 많았는데 앞으로 한국학 연구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문집총간은 1985년 정부의 '고전국역사업활성화방안'에 따라 시작된 우리나라 최대의 고전적(古典籍) 정리사업의 결과물로, 지난 2005년 정편이 완간된 데 이어 속편 150책 가운데 현재까지 70책이 간행됐으며 2012년 정편과 속편을 포함해 1천270종 500책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한국문집총간' 데이터베이스 구축 성과를 알리는 보고회를 27일 개최한다.
문화재청이 판소리의 원형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게을리하면서 우리 소리의 맥이 끊길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명창들 대부분이 고령으로 판소리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데도 문화재청 담당자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판소리 전문가들은 "김소희 김연수 정권진 박초월 박동진 명창의 제자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문화재 제도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잊혀질 소리가 한 둘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는 문화재청 담당자들이 판소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다, 전승예술인 판소리의 특성상 사숙 관계로 제자간 갈등이 심해 문화재 지정을 꺼리는 것으로 분석된다.한 문화재 심사위원은 "제자들 중 한 사람의 기량이 특출나면 상관 없지만, 기량이 엇비슷할 경우 문화재 지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판소리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또한, 판소리 문화재 지정에 참여하는 일부 심사위원들이 판소리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소리에 대한 이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문화재를 지정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15년 이상 문화재 전수교육조교(준보유자)로만 머물고 있는 이들의 경우 이같은 문화재청의 태도에 대해 합리성이 결여됐다는 반응이다.문화재청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판소리 문화재 지정 수요가 다른 종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며 전수교육조교로 오래 있었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최동현 군산대 교수는 "문화재청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문화재 지정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며 "후계자부터 지정해 소리 계보를 이어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원장 임덕수)은 18~22일 문화재 수리ㆍ복원 전문인 양성과정 교육생을 모집한다고 6일 밝혔다. 교육 기간은 2년이며 전통회화 모사 및 지류ㆍ섬유 문화재 수리ㆍ복원 분야와 전통목칠공예 분야에서 각 과정별 12명 이내를 모집한다. 대학ㆍ대학원 관련 학과 전공 졸업생(2010년 2월 졸업예정자 포함), 문화재 수리 기술 및 기능 자격 소유자 또는 문화재 수리 등 관련 분야 경력 5년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홈페이지(http://tctc.nuch.ac.kr) 참조.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소리의 보존 가치를 더욱 견고하게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도내에선 김일구(69) 김영자(60) 조통달 명창(65)만이 전수교육조교(준보유자)로 활동하고 있을 뿐, 15년 넘게 판소리 문화재가 지정되지 않고 있다. 2003년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판소리의 창조적 계승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을 미루고 있는 것은 엇박자라는 지적이다.1992년 '적벽가' 전수조교로 지정된 김일구 명창은 "우리들이 죽고 나면, 누가 우리 소리를 익혀 계보를 이어나갈 지 모르겠다"며 "소리를 올곧게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수십 여 년 째 전수조교로만 있는 것이 원통하다"고 말했다.김 명창은 "판소리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전통을 지키려는 제자들도 갈수록 줄게 될 것"이라며 "문화재 지정을 통해 명창들이 세계 문화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명창의 부인인 김영자 명창은 유성준, 정광수로 이어지는 '정광수제 수궁가'로 1991년 국내 최연소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된 주인공. 하지만 그 역시 20여 년 가까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김 명창은 "스승이 살아 계셔도 연로하시면 후계자를 지정해 소리를 이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승인 정광수 선생이 돌아가신 지 5년이 돼 가지만, 문화재 지정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1998년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해온 조통달 명창은 문화재청의 문화재 지정과 심사과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조 명창은 "문화재청이 판소리 전문가가 아닌 이들을 판소리 문화재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문화재 지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제자들의 기량이 비슷해 문화재 지정이 어렵다면 그것을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 마련을 위해 판소리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이라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산시민들은 기업 유치 덕택으로 귀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그동안 수도권에서만 열렸던 송암문화재단의 전시회가 군산에서 처음으로 열린다.'향기로 가득한 민화- 일상(日常)의 관조(觀照)'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13일부터 27일까지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개최된다.이번에 전시될 작품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던 OCI(옛 동양제철화학) 창업자인 고 이회림 회장이 수집한 것으로, 신선도·화조도·십장생도·어룡도·미인도 등 31점이다. 북한 미술품 수집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고 이회림 회장은 신용과 성실을 몸소 실천한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OCI 군산공장 측은 "창업주인 송암 이회림 회장의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는 송암문화재단이 공장이 들어선 군산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우리나라 옛 그림의 미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면서 "군산시민들은 이번 전시전에서 조선시대의 민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OCI는 군산에 1조7000억원을 투입해 폴리실리콘(태양광산업의 핵심 원료) 1공장과 2공장을 완공한데 이어, 1조원을 추가 투자해 내년까지 3공장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12일부터 15일까지 겨울방학 박물관학교를 연다.'경기전 속 이성계는 살아있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박물관학교는 경기전에 보물로 지정된 태조 어진 봉안 600주년을 기념해 전시, 퀴즈, 유적 답사 등으로 이뤄진다.태조 이성계 연표 만들기·부조 만들기 미니어처 경기전 만들기 등 딱딱한 수업 형태가 아닌 재밌게 배우고 익히는 체험도 준비된다.모집 기간은 9일까지. 도내 초등학생 25명(3학년~6학년)을 모집한다.참가비 5만원. 전화 접수. 문의 063) 228-6485~6.
안진경의 해서가 초당의 서법을 발전시켜 새로운 이채를 발하였다면, 그의 행초서는 그의 감성과 강직한 성품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간다 기이치로는 중국서예사를 일별하여 왕희지와 안진경을 이대조류로 볼 만큼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에는 그의 거침없는 행초서가 크게 작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쟁좌위첩>을 비롯하여 <제질문고>와 <제백문고>가 특히 유명하다. 이들을 일컬어 삼고(三稿)라 칭한다.안진경은 47세 때(755) 경험한 안사의 난을 기점으로 점차 독자성이 발휘된다. 안사의 난이 발발한 후 건원 원년(758, 50세)에 쓰여진 <제질문고>는 그가 종형 안고경의 막내 아들 계명(季明)의 제문초고이다. 본문에 "아버지는 함락되고 아들은 죽었다"라고 한 것처럼 고경과 계명이 잇달아 안록산 때문에 참살된 후, 진경이 계명의 형 천명(泉明)을 파견하여 아버지와 동생의 시신을 거두어 장안에 합장하고자 한 때이다. 그러나 수습된 고경의 유체는 이미 한 쪽 다리를 잃어버렸고, 계명의 시신도 겨우 머리 하나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서글픈 비애가 담긴 이 초고는 물론 글씨로써 고금의 명필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으나 문장 또한 훌륭하다.안진경의 두 제문에는 비애를 넘어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 격함이 잘 드러나 있다. 육친의 참살과 육편(肉片)의 수습으로 인한 비분의 격정이 필단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가며 격앙된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단숨에 쓰여진 한 폭의 제문은 긴박함으로 가득 차 뜻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전아함을 연출하였다. 한마디로 비애미의 예술적 승화이다. 이 초고들의 전아함은 역사적으로 왕희지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거기에 나타난 격함과 긴박감은 진경에 이르러 처음 개척된 서미(書美)라고 평가한다.그의 또 다른 걸작 <쟁좌위첩(爭座位帖)>은 우복야 곽영예(郭英)에게 보낸 서간초고이다. 곽영예가 당시 환관으로서 권세를 남용하고 있던 어조은(魚朝恩)에게 아첨하여 백관들의 집회시 좌석서열을 어지럽힌 사실에 항의한 글이다. 마음 속의 격정을 억누르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설파한 글은 물론 그 서예적 표현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안진경이 강직한 성품을 지녔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히 그가 이 글에서 질서를 의미하는 '이륜(彛倫)'이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하여 인용한다. 764년 56세 때 쓰여진 쟁좌위첩은 앞에서 언급했던 격함이 한층 내면적으로 깊어져 고삽한 형태로 나타났다. 동기창은 「화선실수필」에서 송4대가(소식·황정견·미불·채양)가 모두 안진경의 <쟁좌위첩>을 배웠음을 서술한 뒤, "안로공(안진경)의 첩을 살펴보면 기이하고 빼어나 위·진·수·당 이래의 풍류와 기골을 덮어 가리고 있다. 구양순·우세남·저수량·설직·서호·심전사 등의 제가들을 돌아봄에 모두 법도에 구속되는 바가 있는데, 어찌하여 안로공만이 쓸쓸히 승묵(繩墨)의 밖에 나아가 마침내 그것과 합치되었을까?"라고 평하였다. 송나라 주장문(朱長文)은 「속서단」에서 당 이후의 서예가를 신·묘·능 3품으로 나누었는데 진경을 신품 3인(안진경·장욱·이양빙)의 첫 자리에 배치하였다.스기무라 구니히코(杉村邦彦)의 말처럼, 그의 수많은 비각이 각각 체제를 달리하고 있는 것은 '대개 그가 느낀 일이나 만난 흥취에 따라 하지 않음이 없었다'는 것으로 안서가 상황과 감흥에 따라 이른바 '일비일면모(一碑一面貌)'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은혁(사단법인 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다카야마 시민들은 다캬야마성을 복원하고 싶어하지만 예산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비용 때문에 문화유산을 콘크리트로 복원하기도 하지만, 다카야마는 그보다는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복원하고 싶어합니다. 다카야마성을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의 심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다카야마시 교육위원회 문화재과 니시나가 과장은 "다카야마성은 성곽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돌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지만 정비하고자 한다"며 "다만 예산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야마성터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과거에는 문화재를 가능한한 보존하고자 했다면 요즘에는 문화재를 활용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전체적인 흐름이어서 다카야마시 역시 역사적인 경관을 보존하고 정비하는 내용을 담아 '역사적 풍치 유지 향상계'를 만들었습니다."니시나가 과장은 "다카야마에는 다른 지역에 없는 문화유산들이 많은데 예산을 투입해 문화재나 오래된 마을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며 "이 곳에도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카야마 진야도 유료로 완전개방하고 있지만 시민의식이 높아 파손이나 화재 등의 위험요소는 없다."다카야마는 일본의 전통마을 분위기가 남아있으면서도 관광산업이 발달돼 있습니다. '기후현 다카야마'라고 하면 몰라도 '히다 다카야마'라고 알 정도로 브랜드 가치가 비교적 높은 편이지요."다카야마의 주요 관광지인 산노마찌는 예로부터 상공업이 발달한 다카야마의 대표적인 상업거리. 목조건물이 많아 에도시대부터 소방대가 결성돼 있었다. 니시나가 과장은 "시민들은 40여년 전부터 이곳에 대한 보존 운동을 펼쳐왔다"며 "30년 전 국가로부터 중요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받았다"고 덧붙였다.다카야마시는 현재 연간 4억엔 정도를 투자해 문화재 수리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미관에 좋지 않은 전봇대를 땅에 묻는 지중화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도시인 히다지역의 다카야마(高山)는 일본의 4대 섬 중 가장 큰 섬인 혼슈(本州)의 중앙부분인 기후현(岐阜縣)에 위치한 곳으로 일본열도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이 여인들 옷의 주름이 겹친 것과 같다고 해서 유래된 히다라는 지명으로 통칭된다. 또 다카야마(高山)란 한자 표현에도 나타나고 있듯이 험한 산과 산 사이에 좁은 계곡들이 쭉 이어져 산촌 취락지가 산재한 분지의 하나인 다카야마 분지에 위치한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도시로 교토를 지나 56개의 터널을 거쳐 도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역적으로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2차대전의 피해도 입지 않아 과거 일본의 전통 문화와 전통 공간이 보존될 수 있었던 지역이다. 특히, 일본 에도시대 60여곳에 설치되었던 관아 가운데 유일하게 그 원형이 남아있는 다카야마 진야(高山 陣屋)가 있고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옛 건축물과 시가지가 남아 있으며 일본의 3대 축제 중의 하나인 다카야마 마츠리로 유명한 도시이다. 그래서 이곳은 '작은 교토(리틀 교토)'라고도 불리는 전통도시이다.다카야마는 약 450년전 무로마치(室町)시대 말기에 현재 도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텐진산(天神山, 지금의 시로야마(城山))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이곳을 다카야마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성은 사라지고 성 밑의 전통 시가지와 관련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최근에는 '살기 좋은 도시는 방문하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전통적 거리의 보존과 아울러 고령자와 장애인들도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생활 환경을 조성하여 '장벽 없는 도시' 조성을 추진하여 전통문화도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다카야마를 대표하는 공간은 에도시대이래의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이다. 이 곳은 다카야마 시내를 흐르는 미야가와(宮川])강 동쪽에 고색창연한 거리로 남아 있는 데 크게 세 개의 가로망을 따라 이치노마치(一の町), 니노마치(二の町), 산노마치(三の町)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에도시대의 집들이 남아 있는 것이 산노마치이다. 이곳은 성곽도시인 다카야마의 모습을 가장 많이 남기고 있고 술양조장과 격자집들이 이어져 '국가 중요 전통 건축물군'으로 지정되었다.특히 주목되는 곳은 에도시대로부터 중앙의 관리인 대관(代官)이 파견되고 여기에 관청을 두고 히다지역을 다스린 관청건물인 다카야마 진야이다. 일본에서 대관소(代官所)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다카야마 뿐으로 전통문화의 상징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는 전라감영을 복원할 예정인 전주에게 가장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이 곳은 일본 전통시대 지방통치공간의 상징적 공간으로 우리나라 관아와 거의 같은 공간적 구성과 기능을 한곳이다. 공간별로 관련 기물과 장식재료를 구분하여 신분에 따른 장소별 차등을 두고 있는 모습과 민·형사 재판공간, 취조 및 고문하던 공간, 내아에 해당하는 생활공간 등이 공간별 구분을 통해 잘 남아 있었다. 특히, 세금을 징수하고 보관한 전통 창고의 규모가 매우 컸을 뿐 아니라 이를 박물관 공간으로 활용하여 역사성과 사실성을 적절히 보여주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 매우 헌신적인 관광안내원과 현장관리인들의 모습은 지역전통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관계자 및 지역 행정담당관들도 일본에서 유일한 관아건물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자부심있게 설명하고 있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관아의 원래공간을 확보하고 일부 화재로 소실된 건물터도 그 초석들을 보존하고 있는 모습은 전라감영의 복원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공간의 진정성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이는 전라감영을 복원하여 전주의 대표적 문화자원의 거점으로 자리하도록 계획하고 있는 전주시, 전라북도의 방향성 정립에 큰 참고가 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진야 앞의 광장은 매일 새벽 시민들과 주변 농민들의 아침시장 공간으로 개방하여 주민들의 적극적 생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단순한 역사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으로 병용한다는 점에서 역사문화공간의 실용적 활용의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한편, 산노마치를 비롯한 전통 건축물군은 전주 한옥마을과 대비되는 일본의 대표적 전통건축물 군으로 지역적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대만 싱가폴 등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밤 늦게까지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전통의 원형과 내용을 보존하면 결국 세계인의 관심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또한 거리골목마다 다양한 관광 상품으로 매장을 장식하고 지역 특산품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는 판매방식을 통해 거부감없이 관광객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 간판없이 상품진열을 통해 각 상점의 특색을 보여주어 외관을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은 우리 지역이 서둘러야 할 모습으로 생각된다.또한 100여년 이상된 양조장 건물인 요시지마 가문주택, 쿠사카베 민예관 등은 호쾌하게 쌓아올린 대들보와 넓게 보이는 공간미로 에도시대의 기법을 최대한 살린 민가건축의 집대성으로 이들 공간을 유료개관하여 지역 전통민가건축에 대한 이해를 살리는 모습도 주목된다. 인상적인 것은 집의 주인이 이들 공간을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며 직접 공간을 설명하는 등 나름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모습과 골목에 마련된 조그마한 히다민속고고관 등 작지만 의미있는 기념공간들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살기 좋은 도시가 방문하기 좋은 도시'라는 표어는 지역주민이 잘 살고 있어야 외지 관광객도 찾아온다라는 시 행정부의 방침과 정책실천은 주민을 최우선으로 표방하며서도 관광정책과 잘 연동시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지역민들은 이 지역에 대해 매우 자부심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가 적극적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자원봉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노력은 2009년 일본정부가 일본전통도시를 국가적으로 지원하여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역사마을 만들기 법'의 첫 대상도시 가운데 가나자와와 다카야마가 1,2위로 선정되어 사업이 진행되게 하였다.이러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시 당국의 노력 특히,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자긍심 고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은 전주를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에 많은 참고가 된다. /일본 다카야마=조법종 기획 참여 전문가(우석대 교수·전주시 문화재위원)
전남대학교는 부설 5·18연구소(소장 박만규)가 발간하는 학술지 '민주주의와 인권'이 전문 학술지의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로 선정됐다고 4일 밝혔다. 광주·전남지역 대학 부설 연구기관이 발행하는 학술지 가운데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2001년 창간해 현재 9권3호까지 발간됐으며 5.18민중항쟁 연구를 비롯해 민주주의와 정의·인권 등과 관련한 국내외 사안들을 전문적인 시각에서 다룬 논문 등을 싣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전국 각지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이 참여해 학술지의 질적 수준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국내에서 발행되는 학술지를 대상으로 정시발행 여부, 편집위원 실적, 투고 및 게재율, 게재 논문의 질적 수준 등을 종합 심사해 선정했다. 편집위원장인 최영태 교수(사학과)는 "이번 선정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명실상부한 전국 규모의 전문 학술지로 인정받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연구재단은 전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국가 기초연구지원시스템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위해 교과부 산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하나로 통합돼 지난해 6월 새롭게 출범한 연구관리 전문기관이다.
한국인과 비교적 접촉이 많은 중국인을 만나 삼국지 얘기를 꺼내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일이 많다. 소설 삼국지는 물론이고 정사 삼국지에 대해서도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훨씬 더 해박하다며 꽁무니를 빼고 만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왜 그렇게 삼국지에 관심이 많으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만큼 적어도 삼국지에 관한 한, 한국인의 관심도나 열독률은 중국인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모철민)은 2010년 4일부터 3월31일까지 삼국지를 비롯해 우리 선인들이 읽은 고소설 22종과 관련 도서를 모은 전시회를 도서관 6층 고전운영실에서 마련한다. 이 자리에는 도서관 소장 영웅소설, 장편(가문)소설, 애정소설, 전기소설, 판소리계 설, 중국소설 등이 모습을 보인다. 판소리계소설을 대표하는 춘향전은 1892년 간행된 최초의 불어 번역본인 'Printemps Parfume'(봄 향기)을 비롯해 영어, 베트남어 번역서와 다양한 판본의 고전자료, 딱지본을 포함한 사진자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나아가 유일본이거나 희귀본인 '남홍량전', '천리구', '니화전', '해당향' 등도 선보인다.
문화재청이 보물 지정을 예고했다고 30일 발표한 대구ㆍ경북 지역 불교 성보문화재 16건에는 문경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유물이 포함됐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를 위한 기초 조사를 담당한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스님)는 이 금동 불상과 관련한 상세한 조사 성과를 추가로 공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금동 아미타불 좌상은 몇 년 전까지는 같은 사찰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가 근래 극락전으로 이안(移安)했으며, 그 좌우에는 각각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그 양식적인 특성으로 볼 때, 14세기 무렵 고려시대 작품으로 학계에서 추정한 이 불상이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지게 된 것은 지난 10월23일이었다. 이날 연구소는 불상의 성분 분석을 위해 X-레이 조사를 하다가 놀랍게도 불상 육계 부분에서 불상 조성 당시에 납입됐다고 추정되는 묵서(墨書)가 적힌 다라니(불교에서 쓰는 주문)를 발견했다. 이 묵서에는 "대덕 5년 신축 5월20일에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 인출(印出.목판에 찍어 펴냄)했다"(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 /는 줄바뀜)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대덕 5년은 1301년이며, 고려 충렬왕 27년(1301)이 된다. 나아가 불상 복부에 넣은 공양품들인 복장(腹藏)에서는 고려시대 다라니류 3종 12매와 같은 시대 묵서가 적힌 향낭(향을 넣는 주머니) 1점이 발견됐다. 3종 다라니는 아미타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 1매(1301년)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8매(충렬왕 18년<1292> 판각), 그리고 정확한 인출 연도는 불명이지만 고려후기로 판단되는 아자범자원상태장계만다라(阿字梵字圓相胎藏界曼茶羅) 3매로 구성된다. 이들 자료를 통해 이 금동 아미타불좌상은 1301년 무렵에 제작됐으며, 발원자 혹은 시주자는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더욱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출처 불명이던 국내 기관 및 개인 소장 일련의 묵서 자료 10여 장도 다름 아닌 이번 대승사 금동 아미타불 좌상 복장 유물 일부였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들 묵서 자료는 대승사 복장품 묵서와 지질과 필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문구에서도 "大德五年五月二十日彫板 奴介'라든가 '興威衛保勝別將丁承說書', '良得卜仁莊子奴介'와 같은 대목이 보인다. 인출 연대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발원자 혹은 시주자도 같은 정승설로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사 금동불상의 복장유물은 전부가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고 이번에 발견된 다라니 일부 등은 왜 남았을까? 그 원인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한 다라니류는 복장 깊숙이, 쉽게 꺼낼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이 불상은 조성연대가 밝혀짐에 따라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될 전망이다. 한국불교미술사 전공인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최성은 교수는 "고려시대 불상 중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원래는 서산 부석사에 있다가 지금은 일본 쓰시마섬 관음사에 가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과 1333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금동대세지보살입상 정도밖에 없다"면서 "이번 대승사 금동불상은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연대나 양식 등을 추정하는 기준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조 불상 중에서는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개심사 불상과 1274년 보수한 서울 개운사 소장 불상 등이 있지만, 보수한 연대만 알 수 있을 뿐 처음 제작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한파가 계속될 새해 연휴에는 따뜻한 박물관에서 문화의 향기에 빠져보면 어떨까?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말까지 시범적으로 벌였던 국립박물관 무료 관람제를 일단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국립박물관 상설전시는 당분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지난 11일 개막한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이 계속된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잉카가 멸망할 때까지 안데스 지역 수천 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페루 유물 351점을 엄선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꼽히는 것은 시판왕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유물 41점이다. 시판왕 무덤에서 나온 수많은 황금 부장품과 신과 같은 존재인 왕을 표현한 각종 신상 등은 이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휴관일인 내년 1월1일에는 상설전시실은 문을 닫지만 잉카 특별전은 계속된다. 관람료는 일반인 1만원, 중고생 9천원, 65세 이상은 5천원이다. 상설전시실에서는 한 해 동안 기증받은 문화재를 선보이는 '기증으로 꽃피우는 문화재사랑 2' 전시회, 선사시대부터 8세기까지 우즈베키스탄의 고대 문화를 소개하는 '동서 문명의 십자로-우즈베키스탄의 고대 문화' 전시회 등을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내년 호랑이띠 해를 맞아 지난 23일부터 '변신, 신화에서 생활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호랑이 그림, 장신구, 부적 등 호랑이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 100여 점을 통해 호랑이가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복의 패션화를 이끈 디자이너 이리자씨가 기증한 한복을 전시하는 '선과 색의 어울림-이리자 한복 기증 특별전'은 2월15일까지 연장됐다. 프란체스카ㆍ이순자ㆍ이희호ㆍ권양숙 여사 등 역대 대통령 부인이 입었던 한복도 볼 수 있다.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에서 대한제국까지 중앙 관청에서 사용했던 관인(官印) 160여점을 볼 수 있는 '조선왕조의 관인' 특별전이 열린다.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령 지산동고분 발굴 100년사를 회고하는 '지산동고분과 대가야' 특별전을 열고 있고 국립공주박물관은 공주의 대표적인 17개 문중이 소장한 조선시대의 고문서, 고서, 서화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국립춘천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은 최근 상설전시실을 새롭게 꾸며 재개관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는 힌두교 신앙에 바탕을 둔 인도의 민간 회화작품을 소개하는 '인도의 신화(神畵)' 특별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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