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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문화센터(관장 김민영)가 '1문화재 1지킴이' 호남권 활동을 관할하게 됐다.'1문화재 1지킴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가꾸고 지켜나가기 위한 문화재 보호 자원봉사활동. 개인·가족·기업·단체 단위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전북에서는 전주문화재지킴이 시민운동21과 익산가정사랑학교, 남원문화재지킴이 등이 활동하고 있다. 전통문화센터는 27일 오후 2시 '1문화재 1지킴이' 행사를 연다. 문화재 지킴이 뿐만 아니라 각 시·군 문화재 담당 공무원 등 200여명을 초청해 '1문화재 1지킴이' 활동을 홍보하고 문화재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전라북도·전주시와 함께 3월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기공식에 맞춰 개최하는 '아·태 무형문화축제'도 센터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행사다. 이번 축제에서 센터는 국내 무형문화재 초청공연을 기획하고 세계무형문화유산 사진전을 전주로 유치할 계획이다.전통문화센터 대표 프로그램인 '해설이 있는 판소리'는 야외 진행 등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 단오제 등에서 전통혼례신행길놀이와 수문장교대의식 등을 펼쳐 지역축제와 연계하는 노력도 이어갈 예정이다. 전국대학생마당놀이축제와 무형문화재 초청공연 등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행사도 계속된다.전통음식관 한벽루는 4월쯤 메뉴를 정비한다. 음식관을 활성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주의 대표적인 향토음식과 계절음식을 개발하고 음식관 고문도 위촉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와 시민들 속에 전통문화센터가 분명하게 설 수 있는 해로 만들겠습니다. 센터를 맡고 있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을 단순히 외부 기관으로만 보는 시각들도 있지만, 공익성 있는 공연과 행사를 확대하면서 문화재단 산하의 공공기관으로서 이미지를 높여가겠습니다."김민영 전주전통문화센터 관장은 "올해 역점 추진과제들을 '찾아가는 전통문화사업'과 '함께하는 전통문화사업', '감동을 주는 전통문화사업'으로 나누었다"며 "기존 사업의 공익성을 강화하고 전주시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2013년에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이 완공되면 한옥마을 일대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3월에 열리는 '아·태 무형문화축제'가 전당 건립을 알리는 의미있는 자리인 만큼 센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김관장은 "'아·태 무형문화축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만큼 올해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며 "'오감만족 비빔판'이나 '소리마을을 지켜라' 등 그동안 센터가 자체적으로 제작해 온 공연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문화재청이 주관하던 '1문화재 1지킴이' 활동을 지난해 하반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맡게 되면서 센터가 호남권 관할 센터가 됐습니다. '1문화재 1지킴이' 행사 등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의식과 애정을 높여나가겠습니다."김관장은 "지난해 센터가 진행한 걷기 행사는 코스에 한옥마을 둘레길 안내표지판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며 "올해는 '한옥마을 자전거여행'와 한옥마을 주민들을 위한 잔치 등을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의 번역 추세대로라면 100년 이상이 걸린다는 한국의 한문고전을 한 세대 안에 끝낸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이 약 4천 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번역 한문고전(주로 문집)을 30년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청사진을 들고나왔다. 11일 번역원이 발표한 고전번역 프로젝트에 의하면, 이를 위해 지금까지는 주로 수도권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치중된 고전 번역을 앞으로는 전국 각 지역의 번역 거점 연구소를 선정해 지역 원로 한학자와 고전 관련 학과 등과 연계해 번역하는 '권역별 거점 연구소 협동번역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에서 전국은 수도권, 중부권(강원,충청), 영남권, 호남권(제주 포함)의 4개 권역으로 나눈다. 1차 연도인 올해는 21억원을 들여 전국에서 중형 연구소 6곳과 소형 연구소 4곳을 선정해 번역서 48책을 펴낼 계획이다. 예산과 지원 규모 또한 점차 늘려 2012년에는 20개 거점 연구소에서 140명의 고전 번역 인력을 확보해 연간 120책의 번역 성과를 내게 된다. 원전 정리가 이뤄진 '한국문집총간'(정편)에 수록된 개인 문집 가운데 아직 번역되지 않은 문집 312종을 중심으로 번역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문집에다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등 국고 문헌(국가기록물)까지 더한다 해도 주요한 한국의 한문고전은 30년 안에 다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 번역원 측 설명이다. 번역원은 나아가 이런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고전강독 클러스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도교수와 학생들의 고전강독 모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번역원은 다음 달 초까지 이번 사업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4월 초에 대상 연구소를 확정할 예정이다.
닥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진 손. 어려서부터 해온 일이라 다른 일은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전통한지를 지켜가는 자부심이 있다.11일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로 승격된 홍춘수씨(68·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닥나무 껍질에서 한 장의 한지를 만들어 내기까지 백번의 손길이 필요해 '백지'라고도 불리는 전통한지를 그는 아버지 고 홍순성씨의 뒤를 이어 45년째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완주에서 태어난 홍씨는 열두살 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주시 서서학동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일은 생업이 됐고, 이제는 큰사위 노정훈씨가 홍씨 뒤를 이으면서 가업이 됐다.홍씨가 처음 전통한지를 만들 때만 해도 일상 생활에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였다. 홍씨는 1963년 임실군 청웅면에 청웅한지를 설립,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으며, 반응도 좋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장은 활기를 띠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고 중국산·일본산 종이가 들어오면서 전통한지 산업이 쇄락하기 시작했다.하지만, 한지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공 재료나 화학 약품을 섞어 사용하거나 기계를 대지 않았다. 오히려 천연 재료를 활용해 한지를 다양화하는 데 몰두했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와 단풍잎이나 김을 무늬로 끼워넣은 '단풍지'나 '김종이' 등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1998년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및 노동부 기능전승자에 선정됐으며, 2006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문화재청은 "홍춘수씨는 특히 전통한지 제조 기술을 전승, 우수한 종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한지장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게 됐다"며 "한지장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이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랜 기간 전승활동에 전념해 온 전승자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전승환경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나는 "저런 호랭이나 물어갈 놈"이란 욕을 예사로 들으며 자랐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거나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호랑이와 관련된 속담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였다. 그러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야 이 사람아" 하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는 호랑이와 늘 함께한 시절이 있었다.우리나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그 산에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산에는 호랑이가 아주 많이 살고 있어서 '호랑이의 나라'라 하기도 했단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산 속에서나 동네에서 만나는 맹수 중의 맹수가 바로 호랑이였다. 이런 호랑이가 사람이나 가축을 잡아먹기 때문에 퇴치해야 할 포악한 맹수로서 호환을 당하기도 했다.이렇게 무서운 호랑이를 우리는 노하지 않도록 산을 지키는 산신으로 정성껏 모셨다. 그래서 산신각(山神閣)에는 소나무 밑에 수염이 하얀 산신이 있고 그 옆에 호랑이가 누워있는 그림이 모셔져 있다. 호랑이가 산신으로, 또 산신이 호랑이로 그려지기도 했다.호랑이에 대한 이런 두려움이 오히려 그 무서움을 역으로 이용해 사람의 편에 서서 삿된 악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존재로 여기게 되기도 했다. 또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야기를 통해 친근함과 정겨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담뱃대를 문 호랑이에게 토끼가 불을 붙여주는 그림에서는 익살스럽고 귀여운 모습으로 해학의 극치를 보기도 했다.민화에는 일반 서민들의 정서와 심성이 담겨있다. 소박한 익살과 건강한 풍자와 해학이 그 속에 담겨있다. 호랑이가 아무리 사납고 무서운 존재일 지라도, 그걸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유머와 여유를 가지고 새롭게 대하는 시각을 우리 조상들은 지니고 있었다. 그 지혜로움의 시각적 표현이 민화이다.호랑이 민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는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이다. 벽사를 염원하여 호랑이를 삼재 부적으로 그려 문지방 위나 벽에 붙여두기도 했다. 또 지금도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집의 솟을 대문에 호랑이 호(虎)자와 용(龍)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축삼재(虎逐三災), 용수오복(龍輸五福) 즉 호랑이는 풍(風), 수(水), 화(火) 세 가지 재앙 즉 삼재를 물리쳐 주고, 용은 오복을 가져다준다는 표현에서 앞 글자만 따서 붙여놓은 것이다.민화 중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까치 호랑이'이다.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그려져 쉽게 "까치 호랑이 그림"이라 부르는데, 호랑이와 까치 모두 상서로운 존재이므로 함께 배치함으로써 길상(吉祥)의 의미를 더하게 하는 표현이다.까치 호랑이 그림은 보통 까치 한두 마리가 소나무에 앉아 아래에 있는 호랑이에게 무슨 얘기인가를 전하고 있는 것 같고, 호랑이는 그 까치를 쳐다보고 있거나 앞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과 함께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호랑이는 문채의 화려함으로 길상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이 둘을 함께 그린 것은 생활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염원하는 뜻을 담은 것이다.또 까치 호랑이 민화는 본래 새해를 맞이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한 그림이라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희보(喜報)라는 의미의 길상적 표현으로 까치와 표범을 그렸다. 그것은 표범의 한자 발음과 까치의 상징성 때문이다. 중국어에서 표범의 표(豹) 발음이 보답한다는 뜻의 보(報)와 발음이 같다고 한다. 그래서 표범이 보(報)를 뜻하고, 까치는 옛날부터 상서로움과 기쁨을 전해 주어 희작(喜鵲)으로 불렀다. 그래서 한 화면에 표범과 까치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즐거움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라는 길상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범보다 호랑이를 그린 경우가 더 많다. 호랑이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로 설화나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은혜를 베풀면 반드시 그 이상의 보답을 한다는 영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우리와 애환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지녔던 정서나 생각이 호랑이를 통해서 투영되기도 하였으며, 반대로 호랑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호랑이는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맹수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악에서 지켜주는 벽사의 존재이기도 했다.이런 호랑이에 대한 관념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 호랑이 그림이다. 누가 그렸는지도 알 수 없는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염원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고, 그들의 정서를 읽어 낼 수 있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문화체육관광부는 10일 오후 국립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2010년 문화정보화 정책방향 포럼'을 열었다. 이번 포럼은 문화포털을 비롯한 기존 공공 분야 문화예술정보 서비스의 활용도가 높지 않고 모바일 등 정보통신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따라 문화 정보화 사업의 미래 비전과 철학적인 기반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에는 전수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임희석 고려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자로 참석, 문화정보화의 의미, 핵심 추진 분야 등을 논의했다. 문화부는 이번 포럼의 논의 내용을 기초자료로 활용, 문화 정보화 정책을 수립,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사회적기업이 문화예술분야에서도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료관객 확보가 어려운 현실이나 작품 한 편을 위해 단원들이 장기간 호흡을 맞춰야 하는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 줘야 한다는 것.10일 오후 전북도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전라북도 정책토론회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에 날개를 날다'에 참석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인건비만 지원받아 작품을 만들고 지원금의 20%, 사업계획의 50%에 달하는 매출을 달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특히 지역에서 공연예술로 수익을 낸다는 것은 아직은 어렵다"고 토로했다.또한 사회적기업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기존 단원들이 아닌, 신규 인력이란 점에 대한 불만도 컸다.이도현 극단 작은소동 대표는 "문화예술분야에서 한 작품을 올리려면 단원들간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데, 짧은 시간 신규 단원들을 확보해 공연을 올린다면 아무래도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걸 전문예술법인 푸른문화 정책실장은 "문화예술분야에서 단체 운영이 가족이나 동료의 개념에서 이뤄져 왔다면, 새로 합류하게 되는 인력들은 직장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존 인력과 새로운 인력이 신뢰를 구축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고 덧붙였다.푸른문화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운영되다 지난해 사회적기업으로 승인받는 데 실패했다. 장 실장은 "사회적기업은 운영 개념에서 경영 개념으로의 전환"이라며 "문화예술단체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적기업이 날개가 될 수 있지만, 한계와 과제는 분명이 있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특히 지원이 종료된 후와 지속적으로 발전이 가능한 사업 모델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서성원 사회적기업지원 전북연구센터 사무국장은 "사회적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지만 영업활동을 통해 수익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 국장은 "예비 사회적기업 일자리창출사업은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수익성 등이 부족해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문화, 복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사회적 목적 실현과 수익창출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현재 전라북도 문화예술분야의 사회적기업은 이음(대표 김병수) 하나 뿐. 그러나 이음의 경우 공연 이외에도 농촌컨설팅 등을 겸하고 있어 순수 문화예술분야로는 볼 수 없다. 지난해 전라북도에서는 6개 단체가 문화예술분야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완료했으며, 현재 전통예술원 모악을 비롯해 7개 단체가 전라북도 예비 사회적기업 추가 발굴 대상으로 선정됐다.
흔히 중국정치를 일치일란의 순환론적 역사로 귀결하는데, 서예도 이와 비슷하여 전통과 혁신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순환하였다. 왕희지에 의해 완성된 서예의 전형이 이후 남북으로 분화되며 새로운 서예미를 추구하다가 초당의 삼대가에 의해 새로운 전형주의가 확립되었다. 구양순을 비롯한 초당의 서가들이 추구한 전형주의는 당 중기 안진경의 출현으로 혁신적인 서풍으로 선회하였고, 이는 북송 사대가에게 계승되었다. 북송 사대가는 신의(新意)의 창출을 기치로 내걸고 각기 개성적인 필치를 보이며 서예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원대에 들어서면서 송왕조 출신의 조맹부가 출현하여 복고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다시 왕희지의 전형이 부활되었다. 이러한 순환론적 역사는 시대를 인식하는 선각자들의 우환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자(朱子)가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천운의 순환을 운운한 것과 청말민국초의 대학자 양계초(梁啓超)가 청대의 학술을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불교사상에 빗대어 순환론 즉 사조(思潮)를 설명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조맹부(1254~1322)는 자가 자앙(子昻)이며, 호는 송설(松雪)이다. 송태조의 아들 진왕 조덕방(秦王趙德芳)의 후예였는데, 송이 멸망한 후 정거부(程距夫)의 추천으로 원왕조에 출사하여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지고 한림원학사 승지(承旨)에까지 영달하였으나 출처진퇴에 대해서는 눈총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서화에 대한 천부적인 소양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가 표방한 복고주의는 중국 서예사를 돌려놓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복고주의는 송의 귀족문화와 부합하여 큰 동력을 얻어 몽고족이 지배한 원왕조에서 꽃을 피웠다. 그의 서는 삼변(三變)으로 논해지는데 왕희지의 서풍을 추구한 송 고종의 서를 배운 것, 1310년 독고장노(獨孤長老)로부터 정무난정(定武蘭亭)을 얻고 왕희지의 고법을 추구한 것, 그리고 말년에 당의 서가 이옹과 유공권의 필법을 가미한 것이 그것이다. 필력이 굳세고 신채를 발하였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용숙(庸熟)하고 평판(平板) 같다는 혹평도 있다. 서평을 토대로 그의 글씨를 검토해보면 전형주의에 의거하여 그 형태적인 면에서 완정함을 보이지만 변화가 부족한 점을 지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사대가의 신선함과 호탕함에 견주어 본다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그의 전형적인 서는 시대적 미감을 전형으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의식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전형의 부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조맹부의 난정십삼발(蘭亭十三跋)은 그가 얻은 정무난정본에 대한 발문으로 복고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학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필법이고 둘째는 자형이다. 필법이 정밀하지 못하면 비록 잘 썼다할지라도 눈에 거슬리며, 자형이 묘하지 않으면 비록 익숙하게 썼다할지라도 생경하다. 학서에서 이것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서를 말할 수 있다." "서법은 용필(用筆)을 최상으로 삼으며 결자(結字) 역시 치밀해야 한다. 결자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용필은 천고에 바뀌지 않는다."훗날 명대의 동기창(董其昌)은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자부하였지만 조맹부의 소해(小楷)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재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려 말 충선왕의 만권당(萬卷堂) 교유에 조맹부가 관련되어 있으며, 송설체의 수용은 조선조 서예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대사습(大私習)은 소리 광대들이 스스로 익히고 연마함으로써 기예를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광대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고 청중들 한테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 저절로 명창이 됐다. 명창이란 어떤 특정인이나 기관이 칭호를 내린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정된 명예였다.당대의 내노라하는 광대들은 전주대사습에 참가해 마음껏 기량을 선보이는 것을 최고로 쳤고 그 영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건 전주가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판소리의 고장'이기 때문이다대사습놀이가 열리는 날은 전주부성의 축제일이다. 초청된 광대들은 최고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기호에 맞는 음식을 대접받았고 심지어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문 구멍까지 막아줄 정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전주대습사(史)는 적고 있다. 한마디로 대사습놀이는 조선시대 명창들의 등용문이었던 것이다.전주대사습놀이는 영조(1724∼1776)때 관아의 아전들이 광대를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놀던 동짓날 잔치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일제에 의해 중단됐으나 1974년 전주의 뜻있는 인사들이 추진위원회를 결성, 부활시켰다. 1975년 첫 대회에서 오정숙 명창을 배출한 뒤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이일주 최난수 조통달 김일구 등이 모두 대사습을 통해 당대 제일의 명창으로 발돋움했다.전주대사습놀이는 이런 역사성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주대사습보존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장원선발과 심사위원 선정의 잡음, 방만한 예산운영 등이 도마에 올랐다. 몇몇 사람이 배타적인 운영을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회를 생중계하던 MBC도 발을 뺐다.쇠락의 시기에 여성 국악인인 홍성덕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65)이 전주대사습보존회 이사장에 선출됐다. 보존회는 이사장 개인의 것도 아니고 국악인들만의 것도 아니다. 도민들의 것이자 대한민국의 것이다.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홍 이사장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의 눈물이 개인적인 한풀이 눈물이어서는 곤란하다. 역사적인 책임의식에서 발로한 눈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선언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선 전주대사습보존회의 자기객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이경재 논설위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사회적기업 200개 육성, 일자리 1000개 창출을 실현시키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노동부와 MOU를 체결, 문화예술분야의 사회적기업 창출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했다.사회적기업이 문화예술분야의 일자리 창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전라북도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활로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10일 오후 2시 도청 중회의실.이날 토론회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사례발표와 추진절차 및 지원효과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서성원 사회적기업지원 전북연구센터 사무국장이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육성정책'을, 장걸 전문예술법인 푸른문화 정책실장이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접근'을, 김병수 사회적기업 이음 대표가 '사회적기업 가치혁신의 길'을 발표한다.도 문화예술과 예술진흥계 소현성씨는 "전라북도 역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육성을 위해 이번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인큐베이팅과 컨설팅 기능 등 다양한 행정적 지원을 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한 지붕 두 수장'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7일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법원에서 받아내 예술위에 복귀한 김정헌(64) 위원장이 재직 중인 대학에 제출한 휴직 신청서가 지난 5일 처리됐다. 김 위원장은 예술위에 복귀하면서 위원장에 대해서는 겸직을 못하게 한 예술위 규정에 따라 지난달 25일 공주대에 휴직을 신청했다. 결국, 휴직 처리로 김 위원장은 위원장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하게 됐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해임 처분 효력정지 결정에 대해 서울 고등법원에 항고했지만 이 역시 빠른 판결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법원이 인사철이어서 평소보다는 항고 판결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기가 올해 9월까지인 김 위원장은 문화부가 문화예술진흥기금 운용 규정 등 위반을 이유로 2008년 12월 자신을 해임하자 바로 소송을 제기, 법정 공방을 벌여왔으며 김 위원장의 해임 뒤 예술위에서는 작년 2월 임명된 오광수(72) 위원장이 근무해왔다. 한편, 예술위는 8일 오후 4시 이번 사태에 의한 혼란을 수습하고자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며 이날 회의에는 오 위원장과 김 위원장이 함께 참석한다.
서울시는 숭례문 방화 사건 이후 2년간 시내 주요 문화재에 상시 경비 시스템을 모두 구축했다고 7일 밝혔다. 서울시는 2008년 2월10일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 종합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해 주요 건축물 문화재 127곳을 중점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동안 104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주요 건축 문화재 23곳에 경비인력 113명을 배치해 3교대 24시간 감시체제를 구축했다. 서울시는 경비 근무 체제를 강화하고자 이달 중으로 29명의 감시 인력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또 문화재 79곳에는 CC(폐쇄회로)TV와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하고 51곳에는 화재감지기를 다는 등 원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흥인지문과 문묘, 사직단 정문, 대원각사비 등 60개의 목조 문화재에는 불이 났을 때 확산을 늦추는 방염제가 뿌려졌다. 특히 흥인지문에는 9명의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방범펜스와 CCTV, 불꽃감지기, 하론 소화기, 자동경보기 등을 집중적으로 설치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에는 환구단과 광희문, 약현성당 등에 화재감지기와 소화전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흥인지문 등 62개소의 재난 대비용 설계도를 제작해 자치구와 소방서 등에 비치했다. 서울시는 유사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문화재의 이력과 기본 현황, 보수 이력과 도면 등의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충세 서울시 문화재과장은 "제2의 숭례문 화재 사고를 막고자 종합적인 목조문화재 안전 대책을 마련해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소방서 등 관련 기관과 협조체제를 갖춰 재난대응 능력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는 한국 문화유산의 약탈자로도 악명이 높다. 이런 그가 총리대신에 발탁되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초상화 1점을 기증했다. 일본인 화가 가노 쓰네요부(狩野常信. 1636~1713)가 그린 '조태억(趙泰億. 1675~1728) 초상'이 그것이다. 나중에 좌의정까지 역임하는 조태억은 1710년 대사성에 오르고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을 다녀왔는데 이때 그의 초상을 가노가 그린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초상화 108점 중에는 이를 포함해 기증받은 20건이 포함돼 있다. 최근 '조선시대 초상화Ⅲ'을 발간함으로써 지난 2007년 이후 3년간 계속한 소장 한국 초상화 정리작업을 끝낸 박물관은 내친김에 이들 초상화가 박물관에 들어오게 된 내력 또한 유물카드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이들 유물카드에는 구입의 경우, 가격까지 적어놓았다. 그랬더니 가장 먼저 소장하게 된 초상화는 제실박물관에서 1909년 구입한 '이하응 초상'으로 드러났으며, 가장 싼 값에 구입한 초상화는 김홍도와 이명기가 합작해 그린 '서직수 초상'으로 나타났다. 유물카드에 의하면 서직수 초상은 1916년 1원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1913년 구입한 중국인물상인 제갈무후도를 280원에 구입한 점을 비교하면, 굉장히 싼 값에 입수한 셈이다. 박물관은 한국 초상화 정리작업의 완결편인 이번 '조선시대 초상화Ⅲ'를 통해 1774년(영조 50)에 시행한 공무원 특별 채용시험인 등준시(登俊試)에서 무과시험에 합격한 18명의 초상화를 묶은 화첩을 공개했다. 이 화첩은 처음으로 전모가 공개되는 데다, 문신에 비해 무신 초상화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크다. 나아가 이번 자료집에는 70세가 넘은 정2품 이상 고위직 공무원에게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 '기로소' 회원들의 초상화집인 기해기사첩(己亥耆社帖. 보물 929호)과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과 같은 자료도 원색 도판으로 수록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 연속 전주시 민간위탁 문화시설 운영평가에서 우수시설로 선정된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 '전주의 역사·문화로 특화된 지역사박물관 정립'이 역사박물관의 운영목표다.올해 역시 전시를 비롯한 제반 프로그램을 전주 역사와 문화로 집중한다. 특히 태조 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이와 관련한 학술대회 '조선왕조와 전주', 전주학 총서 '경기전과 조선왕실 제례', 기획전시 '자료로 보는 경기전' 등을 진행한다. '조선왕조와 전주'는 조선왕조의 근간인 전주의 위상과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며, '자료로 보는 경기전'은 경기전 관련 문서 및 사진자료 전시다.전주학 연구 일환으로 전주학 연구지원사업인 '전주학 콜로키움'도 새롭게 시작한다. 전주지역 연구자들의 소그룹 토론모임 활동을 지원, 전주학 연구의 발전을 꾀하는 것으로 전 학문 분야에서 5개 팀을 선정해 200만원씩 지원할 계획이다.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도 마련된다. 안중근 서거 100년을 기념하며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안중근 순국 100주년 특별전'을 열며,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전북지역의 농장수탈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선경제 수탈 자료전'도 준비했다.박물관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도 이뤄진다. 약 1만여점의 소장유물을 대상으로 유물분류체계를 새롭게 확립하고, 유물사진촬영과 유물카드도 작성한다.그동안 없었던 박물관 가이드 북을 발간하고 상설전시실 전시활동지도 제작할 예정이다. 박물관 취약 관람객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층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학교 단체관람객을 위한 상설 체험프로그램 '나도야 간다! 전주역사박물관 나들이'를 기획했다. 박물관학교, 청소년 사군자 교실, 수험생 특별행사 등 청소년 대상 이외에도 초등교사 팸투어, 전주학 시민 강좌 등 관람객과 가까이 만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연중 이어진다.
미불(1051-1107)은 북송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초명이 불이었으며, 자는 원장(元章), 호는 녹문거사(鹿門居士)·양양만사(襄陽漫仕)·해악외사(海岳外史) 등이 있다. 오나라 양양(襄陽·호북성) 사람으로 어머니가 선인(宣仁)황후를 모셔 그 은혜로 비서성교서랑이 되었고, 후에 태상박사(太常博士), 지무위군(知無爲軍)을 거쳐 서화학박사가 되었을 때 휘종을 대면했는데 아들(米友仁)이 그린 '초산청효도(楚山淸曉圖)'를 바쳤다. 이로써 어부(御府)의 서화를 감식하고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에도 발탁되었다. 이 때문에 그를 미남궁(米南宮)이라 부르기도 한다.왕희지의 왕략첩(王略帖), 사안의 팔월오일첩(八月五日帖), 왕헌지의 십이월첩(十二月帖)을 소장하여 자신의 서재 이름을 보진재(寶晉齋)라고 명명하였고, 그것들을 임모하면 진적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묵산수에서는 독자적인 기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송사」의 전기에는 미불의 기이한 벽이 소개되어 있다. 당나라 사람들이 입는 관복을 입어 특이하였고 말이 유창하여 그가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위주(無爲州)에 근무할 때 그 지역에 큰 돌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기괴하였다. 미불이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이 돌은 내 절을 받을만하다!" 하고 곧바로 의관을 갖추어 절하고는 그 돌을 형이라고 불렀다. 기괴함이 자기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다. 이러한 기벽으로 인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미전(米顚)이라 불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여러 차례 곤란을 겪었으나, 임금의 명을 받들어 황정경(黃庭經)을 모방하여 소해천자문(周興嗣千字韻語)을 쓰는가 하면, 선화전(宣話殿)에 들어가 소장된 작품들을 열람하여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저서로 삼사(三史) 즉 「서사(書史)」, 「화사(畵史)」, 「연사(硯史)」와 「보장대방록(寶章待訪錄)」이 있으며, 제발집 「해악명언(海岳名言)」이 있다.미불의 촉소첩은 1088년 9월에 호주(湖州)의 지주(知州)였던 임희(林希)의 초청을 받고 그의 청에 따라 자작시를 행서로 쓴 것이다. 미불의 나이 38세 때 작품으로 정연하고 유려한 진대의 행서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촉소첩의 유래는 대략 이렇다. 호주의 지주 임희는 경력(慶曆) 4년(1044)에 촉의 동천(東川)에서 생산된 비단을 구하여 두루마리로 꾸며 놓고, 명필에게 글씨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러 명사들을 초청하여 비단권을 자랑하던 임희는 희녕(熙寧) 8년(1075)에 진릉(晉陵)의 호완부(胡完夫)를 초청하여 비단을 보여주며 제식(題識)을 받았고, 원우(元祐) 3년(1088) 9월에는 미불을 초청하여 마침내 원하던 글씨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미불의 자작시 '의고(擬古)'를 비롯하여 오언시와 칠언시가 각각 4수가 쓰여 있다. 현재 첩의 앞에는 청나라 고종의 「米?書蜀素帖」 6자가 있고, 첩 뒤에는 호완부를 비롯하여 동기창, 심주, 축윤명, 고종의, 왕형, 동힐 등의 발문이 있다. 그 중에서 명나라 동기창은 "마치 사자가 코끼리를 잡으려고 전력 질주하는 것 같다"고 평하고 "이전에 촉소첩 모본을 얻어 희홍당첩에 새겨 넣었는데 갑진년(1604) 5월에 오정(吳廷)에게 진적을 양도받았다"고 소장내력을 소개하였다. 동기창의 글씨가 미불과 흡사한 하나의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한다. 횡획의 기필이 수필보다 무겁게 되어 있으며 결구가 좌측으로 기운 모습은 미불 행서의 특징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대한제국기에 세운 서양식 궁궐 건축인 덕수궁 석조전을 복원하는 공사 과정에서 건립 당시 이 건축물의 모습이 드러남으로써 원래 형태대로 복원하는 길을 열게 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최근 석조전 건립 당시의 실별 규모와 벽체, 아치형 문, 벽난로와 연기 통로 등의 위치와 형태 등을 확인했다고 2일 말했다. 서양식 근대건축물인 석조전은 1900년 착공해 1909년 완공했으며 퇴위한 고종황제의 처소와 집무실로 사용됐다. 이후 이왕가미술관, 미소공동위원회 사무실,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쓰이면서 내부 구조가 많이 변형됐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일본 궁내청(宮內廳) 도서관인 쇼로부(書陵部)가 소장한 한국고서 중 국내 반환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661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1일 "당시 조사 결과 쇼로부가 소장한 한국고서는 총 639종 4천678책으로 집계됐으며, 그중 반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661책임을 확인했다"며 "이를 최근 문화재청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쇼로부 소장 한국 관련 자료 현황을 조사해 2001년 간행한 보고서인 '일본 궁내청 쇼로부 한국본 목록'을 토대로 이같이 분석했다. 박 원장에 따르면 이들 661책은 거기에 찍힌 소장처 도장에 따라 ▲조선총독부 기증인(조선총독부가 기증했다는 도장이 찍힌 도서) 79종 269책 ▲경연인(經筵印. 경연이라는 도장이 찍힌 도서) 3종 17책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 제실도서관 직인이 찍힌 도서) 38종 375책의 세 가지로 세분된다. 박 원장은 "이들 도서는 조선왕실에서 소장했던 도서가 명백하고, 나아가 그 대부분이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을 것임이 확실하므로 반환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김홍동 국제교류과장은 "(이들 쇼로부 소장 도서 반환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어떠한 입장이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관계 부처 실무자들이 이들 도서 중 어떤 것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있다면 그 대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경술국치 100년 주년을 맞아 쇼로부 소장 한국도서의 반환이 추진될지 주목된다. 쇼로부는 일본 황실의 보록(譜錄), 실록(實錄), 도서(圖書), 공문서(公文書),능묘(陵墓) 등의 업무를 관리하는 궁내청 부설 도서관으로, 메이지(明治) 17년(1884)에는 즈쇼료(圖書寮)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으며, 쇼와(昭和) 24년(1949)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이곳에는 많은 한국 관련 자료를 소장했으며, 그중 한국 금석문 탁본집은 대체로 다이쇼(大正) 시대(1912~1924)에 제작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특히 크다. 나아가 이곳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거의 전부가 국내에서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전집을 갖췄다는 점에서 서지학은 물론 역사ㆍ지리ㆍ문화ㆍ외교ㆍ금석학ㆍ서예 등 각 방면 연구에서 기초자료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이곳 소장 한국 전적 중 163종 852책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문화재 반환 협정에 따라 국내로 돌아왔다. 현재 남아있는 한국본 4천678책은 판본(활자)별로는 ▲동활자 123종 ▲철활자 7종 ▲신연활자본 7종 ▲목활자 37종 ▲목판본 209종 ▲필사본 54종 ▲의궤 79종 ▲탁본 110종 ▲지도 2종 ▲사진첩 8종 ▲영인본 3종이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경기전의 창건 600돌을 맞아 이곳에 봉안된 태조 어진의 구본을 발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조선시대 어진의 세초(어진을 만들고서 낡은 어진을 없애는 일) 과정을 확인하고 세초와 관련된 각종 유물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다. 29일 전북지역 학계와 전주시 등에 따르면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에 '태조 어진의 구본을 경기전에 묻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고종 9년(1872년)에 태조 어진을 이모(남의 글씨나 그림을 본떠 쓰거나 그리는 것)한 뒤 낡고 오래된 어진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 경기전 북편에 묻었다'며 구본의 세초 과정과 매안(埋安) 장소 등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발굴작업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발굴하면 조선시대 어진의 세초와 매안의 전체 과정을 처음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어진의 세초와 매안에 대한 기록 자체는 더러 있지만, 실제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발굴된 예는 현재까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먼저 백자 항아리와 그 안에 있는 태조 어진의 구본, 백자 항아리를 보호하는 석함 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세초와 매안을 하며 지낸 각종 의례에서 사용한 유물이나 관련 기록물 등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주시가 3년 전에 발굴을 시도하며 관심을 산 적이 있어 더 이상 발굴을 미루다가는 자칫 도굴꾼의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우석대학교 사회교육학과 조법종 교수는 "어진을 어떻게 교체해 처리했고, 교체된 구본을 어떻게 보존했는지 등 세초와 매안에 대한 전체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특히 올해는 경기전 창건 600주년인 만큼 이에 맞춰 발굴한다면 의미가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주역사박물관 이동희 관장도 "구본을 담은 항아리나 석함 등은 지금껏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그 자체로 대단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라면서 "도굴 우려도 없지 않은 만큼 발굴작업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주시 고언기 전통문화국장은 "학계와 전문가의 의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면서 "문화재청과 협의해 될 수 있으면 올해 안에 발굴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전주로 들어서려면 두번 한옥으로 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번째는 전주IC 톨 게이트에 세워진 일주문이요, 다음은 전주시내 초입에 서 있는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다. 모두 한옥 지붕을 이고 있어 낯선 이들에게 이곳이 전통문화와 관련해 "뭔가 범상치 않은 고장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먼저 톨 게이트의 일주문. 이 문은 한국도로공사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CBS 전북방송 자리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세운 것이다. 당초에는 한옥이 아니었으나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의 요청에 의해 다시 설계를 했다.'전주'라는 현판은 민체(民體)를 개발해 한글 서예의 대중화를 꾀해 온 원광대 여태명 교수가 썼으며 서각(書刻)은 조각가 김종연씨가 맡았다.다음은 여의동 대로를 지키고 있는 호남제일문. 이 문은 1977년 당시 4차선 도로에 건립돼 전주의 랜드 마크 구실을 톡톡히 했다. 1991년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체전때 도로 확장공사로 헐렸다가 1994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인근이 훵 했으나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 짜임새를 갖췄다. 팔작 겹치마의 전통한옥 지붕 양식이며 길이 43m 폭 3.5m 높이 12.4m로 전국에서 가장 크다.호남제일문이란 명칭이 붙은 것은 전주에 전라감영이 있어, 조선시대 이래 전남·북과 제주도를 통할하는 중심지였기 때문. 풍남문이 전주제일성(全州第一城)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호남평야의 첫 관문이란 의미도 담겨있다. 현판 글씨는 강암 송성용이 썼다. 강암은 효산 이광열에 이어 석전 황욱과 함께 전북서예계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호남제일문은 육교 기능까지 겸하고 있어 자동차가 밀려오는 도로를 내려다 보는 맛이 남다르다. 또한 풍수적으로 '북(北)이 허해 부(富)가 드물다'하여 지세상 허술한 북쪽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것도 흥미롭다.그러나 이들 건물은 한옥 외관의 재료와 형태만을 모사(模寫)하였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전주시는 호남제일문의 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한다. 역사가 너무 일천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전주가 글자 그대로 호남의 수부(首府)로 부활했으면 좋겠다./조상진 논설위원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확정됐다.전라북도는 "지난해 6월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문화재위원회에서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대상으로 선정된 이후, 이번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최종통과돼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정식게재됐다"고 26일 밝혔다.세계유산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예비목록으로, 최소 1년 전에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유산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익산역사유적지구는 익산시 금마면·왕궁면·삼기면·낭산면·웅포면 일원. 웅포면 입점리 금강하구 일원의 입점리 권역과 금마 왕궁면 일원의 왕궁·미륵사지 권역으로, 세계유산으로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쌍릉, 미륵산성 등 고대 도성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요건인 궁성, 사찰, 왕릉, 산성 유적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륵사지석탑에서 백제 사리장엄이 출토되면서 한국 고대사를 새로 쓰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분묘들과 관아 유적, 연동리 석불좌상, 태봉사 삼존석불, 제석사지 등 고도로서 많은 문화유적들을 보유하며 역사발전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영문판 뉴스레터 발간, 한·중·일 국제심포지움 개최 등을 통해 익산역사유적지구의 가치를 알려온 전라북도는 보다 치밀한 전략과 장기적인 연구를 통해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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